노르웨이의 왕비 소냐(Dronning Sonja av Norge노르웨이어, 1937년 7월 4일~)는 노르웨이의 하랄 5세 국왕의 배우자이자 현 노르웨이의 왕비이다. 평범한 시민이었던 소냐는 하랄 왕세자(당시)와의 9년간의 비밀 연애 끝에 1968년 결혼하여 왕세자빈이 되었고, 1991년 남편이 국왕으로 즉위하면서 노르웨이 역사상 52년 만에 처음으로 즉위한 왕비가 되었다.
소냐 왕비는 왕실의 공식적인 의무와 후원 활동을 통해 노르웨이 사회에 깊은 영향을 미쳤다. 그녀는 특히 노르웨이 적십자사 부회장을 역임하며 국제 난민과 장애 아동을 지원하는 등 사회적 약자를 위한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또한 퀸 소냐 국제 음악 콩쿠르와 퀸 소냐 프린트 어워드를 설립하여 노르웨이의 문화 예술 발전에 크게 기여했으며, 개인적으로도 판화가이자 그래픽 아티스트로서 여러 전시회를 개최하기도 했다. 2005년에는 남극을 방문한 최초의 왕비가 되었고, 2017년에는 여성 최초로 트뤼실-크누트 상을 수상하는 등 다양한 분야에서 주목할 만한 업적을 남겼다. 그녀의 활동은 노르웨이 왕실의 현대적 이미지 구축과 사회 통합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 것으로 평가받는다.
소냐는 오슬로의 빈데렌 지역에 있는 튀엥엔 알레 1B에서 성장했으며, 1954년 중등 교육을 마쳤다. 그녀는 오슬로 직업 학교에서 양재 및 재봉 디플로마를 취득했고, 스위스 로잔에 있는 에콜 프로페시오넬 데 죈 피유(École Professionnelle des Jeunes Filles)에서 회계, 패션 디자인, 사회 과학을 공부하며 디플로마를 받았다. 이후 노르웨이로 돌아와 추가 학업을 이어갔고, 오슬로 대학교에서 프랑스어, 영어, 미술사 분야 학사 학위를 취득했다.
소냐는 1959년 6월 요한 H. 스테네르센이 주최한 파티에서 당시 하랄 왕세자(미래의 하랄 5세 국왕)를 처음 만났다. 같은 해 8월, 하랄 왕세자는 그녀를 자신의 졸업 무도회에 초대했고, 그곳에서 두 사람은 처음으로 함께 사진을 찍었다.
두 사람은 9년 동안 교제했지만, 소냐가 평민이라는 신분 때문에 그들의 관계는 비밀리에 유지되었다. 하랄 왕세자는 아버지인 올라프 5세 국왕에게 소냐와의 결혼을 허락하지 않으면 평생 독신으로 남겠다고 선언했다. 이는 하랄이 유일한 왕위 계승자였기 때문에 노르웨이 왕실의 통치와 군주제 자체를 종식시킬 수 있는 중대한 문제였다. 올라프 5세 국왕은 아들 대신 덴마크 왕실이나 슐레스비히홀슈타인 공작, 심지어 올덴부르크 대공 가문에서 새로운 후계자를 선택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했고, 정부에 자문을 구했다. 이 과정에서 노르웨이 정부는 평민 출신인 미치코 황태자비(현 상황후 미치코)를 황태자비로 맞이했던 일본 황실의 사례를 참고하기도 했다.
정부의 승인 끝에 소냐는 1968년 3월 19일 하랄 왕세자와 약혼했다. 두 사람은 1968년 8월 29일 오슬로 대성당에서 결혼식을 올렸고, 소냐는 이로써 노르웨이의 왕세자빈 칭호와 함께 '왕실 전하'의 경칭을 얻게 되었다.
1991년 1월 17일 올라프 5세 국왕이 서거하자, 소냐는 노르웨이 역사상 52년 만에 처음으로 왕비로 즉위했다. 그녀는 1991년 1월 21일 스토르팅(Storting)에서 하랄 5세 국왕이 헌법 준수 서약을 할 때 동행했다. 이는 노르웨이 왕비가 스토르팅에 참석한 지 69년 만에 처음 있는 일이었다. 이후 소냐 왕비는 매년 가을 스토르팅의 공식 개회식과 국왕의 연설 낭독에 국왕과 동행하고 있다.
국왕 부부의 뜻에 따라, 1991년 6월 23일 트론헤임의 니다로스 대성당에서 국왕과 왕비의 성별식이 거행되었다. 성별식 후 국왕 부부는 10일간 노르웨이 남부 지역을 순방했으며, 1992년에는 왕실 가족 전체가 노르웨이 최북단 4개 주를 22일간 순방했다. 소냐 왕비는 국왕의 공식 해외 순방에 동행하며, 외국 국가원수가 노르웨이를 공식 방문할 때에는 안주인 역할을 수행한다. 2021년 1월 17일, 소냐 왕비는 노르웨이 왕비로서 즉위 30주년을 기념했다.
퀸 소냐 국제 음악 콩쿠르:** 1988년 퀸 소냐 국제 음악 콩쿠르를 설립했다. 이 콩쿠르는 처음에는 피아니스트를 위한 것이었으나, 1995년부터는 성악가만을 위한 콩쿠르로 변경되었다. 심사위원단은 오페라 분야의 권위 있는 인물들로 구성되며, 우승자에게는 상금과 노르웨이 음악 기관에서의 공연 기회가 주어진다.
개인 예술 활동 및 전시회:** 오랜 기간 열렬한 사진작가이자 예술에 대한 깊은 관심을 가진 인물로 알려져 있다. 그녀는 판화가이자 그래픽 아티스트, 도예가로서도 활동하며, 2011년과 2013년에는 예술가 키엘 누펜 및 외른울프 오프달과 함께 전시회를 개최했다. 그녀의 많은 작품은 노르웨이 및 해외 여러 국가에서 전시되었다.
퀸 소냐 노르딕 아트 어워드:** 2011년에는 퀸 소냐 노르딕 아트 어워드를 제정했으며, 핀란드의 티나 키비넨이 2012년 첫 수상자로 선정되었다. 이 상은 격년으로 수여된다.
퀸 소냐 아트 스테이블:** 2017년에는 예술과 문화를 위한 공간으로 '퀸 소냐 아트 스테이블'(The Queen Sonja Art Stable)이 개관했다.
궁전 박물관 설립 노력:** 하랄 국왕과 함께 수십 년간 오슬로에 궁전 박물관을 설립하기 위해 노력해왔다.
예술 갤러리 개관:** 2021년, 프랭크 로사빅은 소냐 왕비가 직접 자신의 권위 있는 상을 받은 예술가들의 작품을 판매하는 예술 갤러리를 시작할 것이라고 언급했다.
소냐 왕비는 왕실의 공식적인 역할 외에도 다양한 개인적인 관심사를 가지고 있다. 그녀는 열렬한 하이킹 애호가로 알려져 있으며, 80세 생일을 기념하여 노르웨이 트레킹 협회로부터 그녀의 하이킹 열정을 기리는 조각상을 선물 받기도 했다. 또한 사진과 예술에 대한 깊은 관심은 그녀의 삶에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
소냐 왕비는 평민 출신이라는 사회적 장벽을 극복하고 왕실에 입성한 인물로서, 노르웨이 국민들에게 큰 감동과 희망을 주었다. 그녀는 사회적 약자와 소외 계층을 위한 헌신적인 자선 활동과 노르웨이의 문화 예술 발전에 기여한 공로로 널리 존경받고 있다. 특히 노르웨이 적십자사 부회장으로서 국제 난민 문제에 적극적으로 개입하고, 장애 아동을 위한 기금을 설립하는 등 인권과 사회 통합에 대한 그녀의 노력은 노르웨이 왕실이 현대 사회에서 수행해야 할 긍정적인 역할을 보여주었다. 또한 예술가로서의 개인적인 재능과 문화 진흥을 위한 끊임없는 노력은 왕실의 이미지를 더욱 풍요롭게 만들었으며, 그녀의 활동은 노르웨이 사회에 지속적으로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
소냐 왕비는 노르웨이 왕실의 전통에 따라 자신만의 문장(Coat of Arms)과 왕실 모노그램을 가지고 있다. 그녀의 문장은 노르웨이 왕실의 상징과 개인적인 요소를 결합하여 디자인되었으며, 왕실 모노그램은 그녀의 이름 첫 글자를 조합한 형태로 공식 문서나 왕실 물품에 사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