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벨기에는 서유럽에 위치한 국가로, 정식 명칭은 벨기에 왕국이다. 네덜란드, 독일, 룩셈부르크, 프랑스와 국경을 접하며 북해와도 맞닿아 있다. 수도는 브뤼셀이며, 이곳에는 유럽 연합(EU)의 주요 기관들이 다수 위치해 있어 'EU의 수도'로 불리기도 한다. 벨기에는 네덜란드어를 사용하는 플란데런 공동체와 프랑스어를 사용하는 프랑스어 공동체, 그리고 소수의 독일어 공동체로 구성된 다언어 국가이다. 이러한 언어적, 문화적 다양성은 복잡한 연방제 정치 체제의 배경이 되었다. 벨기에는 역사적으로 주변 강대국들의 각축장이었으나, 1830년 독립 이후 입헌군주국으로 발전해왔다. 산업 혁명의 선두 주자였으며, 20세기에는 두 차례의 세계 대전을 겪고 전후 복구와 유럽 통합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다. 현재 벨기에는 선진 경제국이자 EU, NATO 등 주요 국제기구의 창립 회원국으로서 국제 사회에서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
2. 국호
벨기에라는 국가 명칭은 로마 제국 시절 이 지역에 거주했던 켈트계 부족인 벨가이족(Belgae)에서 유래했다. 로마의 장군 율리우스 카이사르는 그의 저서 《갈리아 전기》에서 갈리아 북부 지역을 '갈리아 벨기카'(Gallia Belgica)라고 칭했으며, 이 명칭이 오늘날 벨기에 국호의 기원이 되었다. 벨가이족은 용맹함으로 알려졌으며, 로마에 편입된 이후에도 이 지역은 전략적 요충지로 여겨졌다. '벨기에'라는 명칭은 1830년 네덜란드로부터 독립하면서 공식적으로 국가 명칭으로 채택되었다.
한국어 '벨기에'는 네덜란드어 발음 '벨히어'(België)에서 유래했으며, 에도 시대 일본에 네덜란드 상인들을 통해 전해진 발음을 차용한 것이다. 한자로는 '백이의'(白耳義)로 표기하며, '백'(白)으로 약칭하기도 한다.
- Koninkrijk België코닝크레이크 벨히어네덜란드어
- Royaume de Belgique루아욤 드 벨지크프랑스어
- Königreich Belgien쾨니히라이히 벨기엔독일어
3. 역사
벨기에 지역의 역사는 선사 시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문명과 강대국의 영향을 받으며 복잡하게 전개되었다. 고대 켈트족과 게르만족의 정착, 로마 제국의 지배, 프랑크 왕국 시대를 거쳐 중세에는 여러 공국과 백국으로 나뉘었다. 이후 부르고뉴 공국과 합스부르크 가문의 지배를 받았으며, 스페인과 오스트리아의 통치를 거쳐 프랑스 혁명기에 프랑스에 병합되기도 했다. 1830년 독립 혁명을 통해 주권 국가로 탄생한 벨기에는 산업 혁명을 이끌고 식민지를 확장했으나, 두 차례의 세계 대전으로 큰 피해를 입었다. 전후 복구와 함께 유럽 통합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며 오늘에 이르고 있다.
3.1. 고대와 중세

현재의 벨기에 지역에는 구석기 시대부터 인류가 거주하기 시작했으며, 농경과 어로를 중심으로 생활했다. 신석기 시대에는 중앙 유럽에서 온 부족들이 정착하며 목축과 농경 기술을 발전시켰다. 기원전 6세기경 켈트족이 라인강을 건너 이주해오면서 철기 문화와 화장 풍습이 전파되었다.
기원전 1세기경 로마의 율리우스 카이사르는 갈리아 북부에 거주하던 켈트계 부족들을 총칭하여 벨가이족(Belgae)이라 불렀다. 이들은 현재의 벨기에보다 훨씬 넓은 지역에 분포했으며, 카이사르는 이들을 특히 호전적이고 경제적으로 덜 발달된 민족으로 묘사했다. 갈리아 전쟁 이후 기원전 51년, 이 지역은 로마의 속주인 갈리아 벨기카가 되었다. 로마는 이 지역에 통에런, 투르네, 아를롱과 같은 식민 도시를 건설했다. 로마 제국 말기에는 로마화된 인구와 게르만계 프랑크족이 혼재했으며, 프랑크족은 점차 군사적, 정치적 지배 계급으로 부상했다.
5세기에 이 지역은 프랑크족의 메로빙거 왕조 지배 하에 들어갔으며, 8세기에는 카롤루스 왕조의 중심지가 되었다. 843년 베르됭 조약으로 카롤루스 제국이 분열되면서 현재 벨기에의 대부분 지역은 중프랑크 왕국(후에 로타링기아)에 속하게 되었으나, 스헬더강 서쪽의 해안 지역인 플란데런은 서프랑크 왕국(프랑스의 전신)의 일부가 되었다. 870년 메르센 조약으로 벨기에 지역 전체가 잠시 서프랑크 왕국에 편입되었으나, 880년 리베몽 조약으로 로타링기아는 동프랑크 왕국(후에 신성 로마 제국)의 지속적인 지배를 받게 되었다.
13세기와 14세기에 플란데런 백국은 직물 산업과 상업이 크게 발달하여 유럽에서 가장 부유한 지역 중 하나가 되었다. 이러한 번영은 플란데런과 프랑스 왕 사이의 갈등을 유발하기도 했다. 1302년 황금 박차 전투에서 플란데런 민병대가 프랑스 기사단에게 기적적인 승리를 거두었으나, 곧 프랑스의 지배를 받게 되었다.
3.2. 부르고뉴령과 합스부르크령 네덜란드

15세기, 프랑스의 부르고뉴 공작이 플란데런을 장악한 것을 시작으로 현재의 베네룩스 지역 대부분을 통합하여 이른바 부르고뉴령 네덜란드를 형성했다. '부르고뉴'와 '플란데런'은 부르고뉴령 네덜란드를 지칭하는 초기 명칭들이었으며, 이는 이후 오스트리아령 네덜란드와 현대 벨기에의 전신이 되었다. 이 통합은 두 왕국에 걸쳐 이루어졌으며, 이 지역에 경제적, 정치적 안정을 가져와 더 큰 번영과 예술 창조를 이끌었다.
벨기에에서 태어난 신성 로마 제국 황제 카를 5세는 부르고뉴 공작가의 상속자였을 뿐만 아니라 오스트리아의 합스부르크 가문, 카스티야, 아라곤 왕가의 상속자이기도 했다. 1549년 국사조칙을 통해 그는 네덜란드 17주를 단순한 일시적 동군연합이 아닌 안정적인 실체로서 더 큰 정당성을 부여했다. 또한, 그는 이들 네덜란드 지역이 리에주 주교후국에 미치는 영향력을 증대시켰는데, 리에주 주교후국은 거대한 반독립적 고립 영토로 계속 존재했다.
3.3. 스페인령과 오스트리아령 네덜란드
80년 전쟁(1568년~1648년)은 저지대 국가에서 인기를 얻고 있던 개신교에 대한 스페인 정부의 정책으로 촉발되었다. 반란을 일으킨 북부의 네덜란드 공화국(라틴어로 Belgica Foederata, 즉 '연방 네덜란드')은 결국 남부 네덜란드(Belgica Regia, 즉 '왕령 네덜란드')로부터 분리되었다. 남부 지역은 계속해서 스페인 합스부르크 왕가(스페인령 네덜란드)와 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 왕가(오스트리아령 네덜란드)의 지배를 받았으며, 현대 벨기에의 대부분을 포함했다. 이 지역은 17세기와 18세기의 상당 기간 동안 프랑스와 관련된 여러 장기적인 분쟁의 무대가 되었는데, 여기에는 네덜란드 전쟁(1672년~1678년), 9년 전쟁(1688년~1697년), 스페인 왕위 계승 전쟁(1701년~1714년), 그리고 오스트리아 왕위 계승 전쟁(1740년~1748년)의 일부가 포함된다.
3.4. 프랑스 혁명과 네덜란드 연합왕국
프랑스 혁명 전쟁 중 1794년 전역 이후, 저지대 국가 - 명목상 합스부르크 지배 하에 있지 않았던 리에주 주교후국과 같은 영토 포함 - 는 프랑스 제1공화국에 병합되어 이 지역에서 오스트리아의 통치가 종식되었다. 제1제정 프랑스가 해체되고 나폴레옹이 워털루 전투에서 패배하여 퇴위한 후, 1814년~1815년 빈 회의는 네덜란드 연합왕국을 창설했다. 이 완충국은 주요 유럽 강대국들 사이에 위치했으며, 구 네덜란드 공화국, 오스트리아령 네덜란드, 리에주 주교후국의 영토를 네덜란드의 빌럼 1세 국왕 하에 통합했다.
3.5. 독립과 발전 (19세기)


1830년 벨기에 혁명은 남부 주들이 네덜란드로부터 다시 분리되어, 임시 정부와 국민 의회 하에 가톨릭적이고 부르주아적이며, 공식적으로 프랑스어를 사용하고 중립적인 독립 벨기에를 수립하는 결과를 낳았다. 1831년 7월 21일 레오폴 1세가 국왕으로 즉위한 이래 (이 날은 현재 벨기에의 국경일로 기념됨), 벨기에는 나폴레옹 법전에 기초한 세속주의 헌법을 갖춘 입헌군주제이자 의회민주주의 국가가 되었다. 처음에는 선거권이 제한되었으나, 1893년 총파업 이후 남성 보통선거권이 도입되었고(1919년까지는 복수투표제), 1949년에는 여성에게도 보통선거권이 부여되었다.
19세기 주요 정당으로는 가톨릭당과 자유당이 있었으며, 19세기 말에는 벨기에 노동당이 등장했다. 네덜란드 왕정을 거부한 이후, 특히 귀족과 부르주아 계층이 사용하는 공식 언어는 원래 프랑스어였다. 네덜란드어가 점차 지위를 회복하면서 프랑스어의 우위는 점차 약화되었다. 이러한 네덜란드어의 지위 회복은 1898년에 공식적으로 인정되었고, 1967년에는 의회가 네덜란드어판 헌법을 수용했다.
1885년 베를린 회담은 콩고 자유국의 통치권을 레오폴 2세 국왕의 개인 소유로 할양했다. 1900년경부터 레오폴 2세 치하 콩고인들에 대한 극심하고 잔혹한 처우에 대한 국제적 우려가 커졌는데, 레오폴 2세에게 콩고는 주로 상아와 고무 생산을 통한 수입원이었다. 많은 콩고인이 상아와 고무 생산 할당량을 채우지 못했다는 이유로 레오폴 2세의 대리인들에게 살해당했다. 1908년, 이러한 국제적 비난으로 인해 벨기에 국가는 식민지 정부에 대한 책임을 지게 되었고, 이후 이 지역은 벨기에령 콩고로 불리게 되었다. 1919년 벨기에 위원회는 콩고의 인구가 1879년의 절반 수준이라고 추정했다. 이러한 식민 통치는 벨기에 역사에서 중요한 부분이며, 인권과 민주주의에 대한 비판적 시각에서 평가되어야 한다.
3.6. 두 차례의 세계 대전과 전후
20세기 초, 벨기에는 두 차례의 세계 대전을 겪으며 큰 시련을 맞았다. 제1차 세계 대전 당시 독일의 침공으로 중립이 침해되었고, 국토의 많은 부분이 전쟁터가 되었다. 전후 복구 과정에서 경제적 어려움과 사회적 변화를 겪었으며, 제2차 세계 대전에서는 다시 한번 나치 독일의 점령 하에 놓였다. 전쟁 이후 벨기에는 냉전 체제 속에서 유럽 통합 과정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며 새로운 국제 질서 형성에 기여했다.
3.6.1. 제1차 세계 대전
1914년 8월, 독일 제국은 프랑스를 공격하기 위한 슐리펜 계획의 일환으로 벨기에를 침공했으며, 제1차 세계 대전 중 서부 전선 전투의 대부분이 벨기에 서부 지역에서 벌어졌다. 전쟁 초기 몇 달은 독일의 잔학 행위로 인해 "벨기에의 강간"으로 알려졌다. 전쟁 중 벨기에는 독일 식민지였던 루안다-우룬디(현재의 르완다와 부룬디)를 장악했으며, 1924년 국제 연맹은 이 지역을 벨기에에 위임 통치하도록 했다. 제1차 세계 대전 이후, 벨기에는 1925년 프로이센의 오이펜-말메디 지역을 병합하여 독일어 사용 소수 민족이 생겨나게 되었다.
3.6.2. 제2차 세계 대전

1940년 5월, 나치 독일군이 다시 벨기에를 침공했으며, 이후 독일 점령과 홀로코스트 기간 동안 유대인을 포함한 40,690명의 벨기에인이 사망했다. 1944년 9월부터 1945년 2월까지 연합군이 벨기에를 해방했다.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총파업으로 인해 레오폴 3세 국왕은 1951년 아들인 보두앵 왕세자에게 왕위를 양위해야 했는데, 이는 많은 벨기에인들이 그가 전쟁 중 독일에 협력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3.6.3. 냉전과 유럽 통합
냉전 시기 벨기에는 서방 진영의 주요 국가로서 북대서양 조약 기구(NATO) 창립 회원국으로 참여했다. 또한, 네덜란드, 룩셈부르크와 함께 베네룩스 경제 공동체를 결성하여 유럽 통합의 초석을 다졌다. 벨기에는 1951년 유럽 석탄 철강 공동체(ECSC)와 1957년 유럽 원자력 공동체(EURATOM) 및 유럽 경제 공동체(EEC)의 6개 창립 회원국 중 하나였다. EEC는 이후 유럽 연합(EU)으로 발전했으며, 벨기에는 EU의 주요 행정 기관 및 기구(유럽 위원회, 유럽 연합 이사회, 유럽 의회의 임시 및 위원회 회의 등)를 유치하고 있다.
1990년대 초, 벨기에는 마르크 뒤트루 사건, 앙드레 콜스 암살 사건, 다이옥신 파동, 아구스타 스캔들, 카렐 판노펀 살해 사건 등 여러 대형 부패 스캔들을 겪었다.
4. 지리
벨기에는 프랑스(620 km), 독일(162~167 km), 룩셈부르크(148 km), 네덜란드(450 km)와 국경을 접하고 있다. 수역을 포함한 총 면적은 3.07 만 km2이다. 2018년 이전에는 총 면적이 3.05 만 km2로 알려졌으나, 2018년 새로운 측정 방법이 사용되면서 이전 계산과 달리 해안선에서 저조선까지의 면적을 포함하여 이전보다 160 km2 더 넓은 것으로 밝혀졌다. 순수 육지 면적은 30,494 km²이다. 벨기에는 북위 49°30'에서 51°30', 동경 2°33'에서 6°24' 사이에 위치한다.
벨기에는 크게 세 가지 주요 지리적 지역으로 나뉜다. 북서부의 해안 평야와 중앙 고원은 영국-벨기에 분지에 속하며, 남동부의 아르덴 고지대는 헤르시니아 조산대에 속한다. 파리 분지는 벨기에 최남단인 벨기에 로렌의 작은 네 번째 지역까지 이어진다.
4.1. 지형과 기후

벨기에는 북서부의 해안 평야, 중앙 고원, 남동부의 아르덴 고지대 등 세 가지 주요 지형으로 구분된다. 해안 평야는 주로 모래 언덕과 폴더로 이루어져 있다. 내륙으로 더 들어가면 수많은 수로로 관개되는 완만하게 솟아오른 평탄한 지형이 나타나며, 비옥한 계곡과 북동부의 모래 평야인 캉핀(Kempen) 지역이 있다. 아르덴의 숲이 우거진 언덕과 고원은 동굴과 작은 협곡이 있는 더 거칠고 암석이 많은 지형이다. 서쪽으로 프랑스까지 뻗어 있는 이 지역은 동쪽으로 독일의 아이펠 지역과 오트파뉴 고원을 통해 연결되며, 이곳에 있는 보트랑주는 해발 694 m로 벨기에에서 가장 높은 지점이다.
기후는 서부 유럽 대부분 지역과 마찬가지로 연중 강수량이 많은 해양성 기후(쾨펜 기후 구분: Cfb)이다. 평균 기온은 1월에 가장 낮은 3 °C이며, 7월에 가장 높은 18 °C이다. 월평균 강수량은 2월과 4월에 54 mm로 가장 적고, 7월에 78 mm로 가장 많다. 2000년에서 2006년까지의 평균 기온은 일 최저 7 °C, 일 최고 14 °C이며, 월평균 강수량은 74 mm로, 이는 지난 세기의 평년값보다 각각 약 1°C, 약 10mm 높은 수치이다.
4.2. 환경
벨기에의 기후 변화는 기온 상승과 더 잦고 강렬한 폭염, 겨울 강수량 증가 및 강설량 감소를 초래했다. 2100년까지 벨기에 해안의 해수면은 60 cm에서 90 cm까지 상승할 것으로 예상되며, 최악의 시나리오에서는 최대 200 cm까지 상승할 가능성이 있다. 기후 변화로 인한 비용은 2050년에 연간 95.00 억 EUR(벨기에 GDP의 2%)에 달할 것으로 추정되며, 주로 극심한 더위, 가뭄, 홍수로 인한 것이다. 반면 온화한 겨울로 인한 경제적 이득은 연간 약 30.00 억 EUR(GDP의 0.65%)로 추산된다. 2023년 벨기에는 1억 682만 톤의 온실 가스(전 세계 총 배출량의 약 0.2%)를 배출했으며, 이는 1인당 9.12톤에 해당한다. 벨기에는 2050년까지 탄소 중립을 목표로 하고 있다.
식물지리학적으로 벨기에는 북극 식물상 왕국 내 대서양 유럽 및 중앙 유럽 지방에 걸쳐 있다. 세계 자연 기금(WWF)에 따르면 벨기에 영토는 대서양 혼합림과 서유럽 활엽수림이라는 육상 생태 지역에 속한다. 벨기에는 2018년 산림 경관 보전 지수(FLII) 평균 점수 1.36/10으로, 전 세계 172개국 중 163위를 기록했다. 벨기에의 산림 면적은 총 육지 면적의 약 23%로, 2020년 기준 689,300 헥타르(ha)이며, 이는 1990년의 677,400 헥타르(ha)에서 증가한 수치이다. 2020년 자연 재생림은 251,200 헥타르(ha), 인공 조림지는 438,200 헥타르(ha)였다. 2015년 기준 산림 면적의 47%는 국유지, 53%는 사유지로 보고되었으며, 0%는 소유권이 기타 또는 불명으로 기재되었다.
5. 정치
벨기에는 입헌군주제와 연방제를 채택한 의원내각제 민주주의 국가이다. 국왕은 국가 원수이지만 제한된 대권을 행사하며, 총리를 포함한 장관들을 임명하여 연방 정부를 구성한다. 벨기에의 복잡한 정치 구조는 지역 및 언어 공동체에 기반한 연방 체제로 특징지어진다.
5.1. 정부 구조


벨기에는 입헌군주제이자 국민적 군주제, 그리고 연방제 의원내각제이다.
양원제인 벨기에 연방의회는 원로원과 대의원으로 구성된다. 원로원은 공동체 및 지역 의회에서 임명하는 50명의 상원의원과 추가로 선출되는 10명의 상원의원으로 구성된다. 2014년 이전에는 대부분의 원로원 의원이 직접 선출되었다. 대의원의 150명 대표는 11개 선거구에서 비례대표제로 선출된다. 벨기에는 의무투표제를 시행하고 있어 세계에서 투표율이 가장 높은 국가 중 하나이다.
국왕(현재 필리프)은 국가 원수이지만 제한된 대권을 갖는다. 국왕은 대의원의 신임을 받는 장관들(총리 포함)을 임명하여 연방 정부를 구성한다. 각료회의는 15명 이하로 구성된다. 총리를 제외하고는 네덜란드어 사용 의원과 프랑스어 사용 의원의 수가 동일하게 구성된다.
사법 체계는 대륙법계에 기초하며 나폴레옹 법전에서 유래했다. 파기원은 최종 상고 법원이며, 항소법원은 그 하급 법원이다.
벨기에의 정치 기관은 복잡하며, 대부분의 정치 권력은 주요 문화 공동체의 대표성에 기반한다. 1970년경부터 벨기에의 주요 전국 정당들은 각 공동체의 정치적, 언어적 이해관계를 주로 대변하는 별개의 구성 요소로 분리되었다. 각 공동체의 주요 정당들은 정치적으로 중도에 가깝지만, 기독교민주주의, 자유주의, 사회민주주의의 세 가지 주요 그룹에 속한다. 그 외 주목할 만한 정당들은 지난 세기 중반 이후에 주로 언어적, 민족주의적, 또는 환경적 이해관계를 대변하기 위해 생겨났으며, 최근에는 특정 자유주의적 성격을 띤 소규모 정당들도 등장했다.

1958년부터 이어진 기독교민주당 연립 정부는 1999년 최초의 다이옥신 파동(대규모 식품 오염 스캔들) 이후 붕괴되었다. 이후 6개 정당(플란데런 및 프랑스어권 자유당, 사회민주당, 녹색당)으로 구성된 "무지개 연립 정부"가 등장했다. 그 후 녹색당이 2003년 선거에서 대부분의 의석을 잃자 자유당과 사회민주당으로 구성된 "자주색 연립 정부"가 구성되었다.
기 페르호프스타트 총리가 이끈 1999년부터 2007년까지의 정부는 균형 예산, 일부 세제 개혁, 노동 시장 개혁, 예정된 원자력 단계적 폐지를 달성했으며, 더욱 엄격한 전쟁 범죄 및 보다 관대한 마약 사용 기소를 허용하는 법안을 발의했다. 안락사에 대한 제한이 완화되었고, 2003년 벨기에는 세계 최초로 동성결혼을 합법화한 국가 중 하나가 되었다. 정부는 아프리카에서의 적극적인 외교를 장려하고 이라크 침공에 반대했다. 벨기에는 안락사에 대한 연령 제한이 없는 유일한 국가이다.
페르호프스타트 연립 정부는 2007년 6월 선거에서 부진한 성적을 거두었다. 이후 1년 넘게 벨기에는 정치적 위기를 겪었다. 이 위기로 인해 많은 관찰자들이 벨기에의 분할 가능성을 예측하기도 했다. 2007년 12월 21일부터 2008년 3월 20일까지 페르호프스타트 3기 정부가 임시로 집권했다. 이는 플란데런 및 프랑스어권 기독교민주당, 플란데런 및 프랑스어권 자유당, 그리고 프랑스어권 사회민주당의 연립 정부였다.
그 후, 2007년 6월 연방 선거의 실질적인 승자인 플란데런 기독교민주당의 이브 르테름이 이끄는 르테름 1기 정부가 국왕에 의해 임명되었다. 2008년 7월 15일, 르테름은 헌법 개혁에 진전이 없자 국왕에게 내각 총사퇴를 제안했다. 2008년 12월, 르테름은 포르티스를 BNP 파리바에 매각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위기 이후 다시 한번 사임을 제안했다. 이때 그의 사임은 수락되었고, 플란데런 기독교민주당의 헤르만 반롬푀이가 2008년 12월 30일 총리로 취임했다.
2009년 11월 19일 헤르만 반롬푀이가 최초의 상임 유럽 이사회 의장으로 지명된 후, 그는 2009년 11월 25일 알베르 2세 국왕에게 정부 총사퇴를 제안했다. 몇 시간 후, 이브 르테름 총리 하의 르테름 2기 정부가 출범했다. 2010년 4월 22일, 연립 파트너 중 하나인 열린 플람스 자유민주당(OpenVLD)이 정부에서 탈퇴하자 르테름은 다시 내각 총사퇴를 제안했고, 2010년 4월 26일 알베르 국왕은 공식적으로 사임을 수락했다.
2010년 6월 13일 벨기에 의회 선거에서 플란데런 민족주의 정당인 신플람스 연맹(N-VA)이 플란데런에서 제1당이 되었고, 사회당(PS)이 왈롱에서 제1당이 되었다. 2011년 12월까지 벨기에는 새 정부 구성을 위한 교착 상태의 협상이 끝나기를 기다리며 르테름의 임시 정부에 의해 통치되었다. 2011년 3월 30일까지 공식 정부 없이 경과한 시간은 전쟁으로 피폐해진 이라크가 보유하고 있던 이전 세계 기록을 경신했다. 마침내 2011년 12월, 왈롱 사회주의자 총리 엘리오 디뤼포가 이끄는 디뤼포 정부가 출범했다.
2014년 벨기에 연방 선거(지역 선거와 동시에 실시)는 플란데런 민족주의 정당인 N-VA의 추가적인 선거 승리로 이어졌다. 그러나 현 연립 정부(플란데런 및 프랑스어권 사회민주당, 자유당, 기독교민주당으로 구성)는 의회와 모든 선거구에서 확고한 과반수를 유지했다. 2014년 7월 22일, 필리프 국왕은 샤를 미셸(MR)과 크리스 페터르스(CD&V)를 지명하여 플란데런 정당인 N-VA, CD&V, Open Vld와 프랑스어권 정당인 MR로 구성된 새로운 연방 내각 구성을 주도하도록 했고, 그 결과 미셸 1기 정부가 탄생했다. 이는 N-VA가 연방 내각에 참여한 최초의 사례였으며, 프랑스어권은 왈롱에서 과반수 미만의 표를 얻은 MR만이 대표했다.
2019년 5월 연방 선거에서는 플란데런 북부 지역에서 극우 정당인 플람스 벨랑이 큰 지지를 얻었다. 프랑스어권 남부 왈롱 지역에서는 사회당이 강세를 보였다. 온건 플란데런 민족주의 정당인 N-VA는 의회에서 제1당 자리를 유지했다.
2019년 7월, 샤를 미셸 총리가 유럽 이사회 의장으로 선출되었다. 그의 후임자인 소피 윌메스는 벨기에 최초의 여성 총리가 되었으며, 2019년 10월부터 임시 정부를 이끌었다. 플란데런 자유당 정치인 알렉산더르 더크로가 2020년 10월 새 총리가 되었다. 정당들은 선거 후 16개월 만에 연방 정부 구성에 합의했다.
5.2. 행정 구역과 연방제
부르고뉴와 합스부르크 궁정에서 유래한 관행에 따라, 19세기에 지배 상류층에 속하려면 프랑스어를 구사해야 했고, 네덜란드어만 구사할 수 있는 사람들은 사실상 2등 시민이었다. 그 세기 후반부터 20세기까지 플란데런 운동이 이러한 상황에 대항하기 위해 발전했다.
벨기에 남부 사람들은 프랑스어나 프랑스어 방언을 사용했고, 대부분의 브뤼셀 시민들은 프랑스어를 모국어로 채택했지만, 플란데런인들은 이를 거부하고 점차 네덜란드어를 교육 시스템에서 동등한 언어로 만드는 데 성공했다.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벨기에 정치는 두 주요 언어 공동체의 자치권에 의해 점점 더 지배되었다. 공동체 간 긴장이 고조되었고 갈등 가능성을 최소화하기 위해 헌법이 개정되었다.
1962년~1963년에 정의된 4개 언어 지역(네덜란드어, 이중 언어, 프랑스어, 독일어 지역)을 기반으로 1970년, 1980년, 1988년, 1993년에 국가 헌법을 연속적으로 개정하여 분리된 정치 권력을 세 단계로 나누는 독특한 형태의 연방 국가를 수립했다:
# 브뤼셀에 기반을 둔 연방 정부.
# 세 개의 언어 공동체:
#* 플란데런 공동체 (네덜란드어 사용)
#* 프랑스어 공동체 (프랑스어 사용)
#* 독일어 공동체
# 세 개의 지역:
#* 플란데런 지역, 5개 주로 세분됨.
#* 왈롱 지역, 5개 주로 세분됨.
#* 브뤼셀 수도 지역
헌법상 언어 지역은 해당 지방 자치 단체의 공식 언어와 특정 문제에 대한 권한 있는 기관의 지리적 한계를 결정한다. 1980년 공동체와 지역이 만들어졌을 때 7개의 의회와 정부가 허용되었지만, 플란데런 정치인들은 두 가지를 통합하기로 결정했다. 따라서 플란데런인들은 연방 및 특정 지방 자치 문제를 제외한 모든 문제에 대해 단일한 의회 및 정부 기관의 권한을 갖는다.
지역과 공동체의 경계가 중첩되면서 두 가지 주목할 만한 특징이 생겨났다: 브뤼셀 수도 지역(다른 지역보다 거의 10년 후에 생겨남)의 영토는 플란데런 공동체와 프랑스어 공동체 모두에 포함되며, 독일어 공동체의 영토는 전적으로 왈롱 지역 내에 있다. 기관 간의 관할권 충돌은 헌법재판소에서 해결한다. 이 구조는 서로 다른 문화가 평화롭게 공존할 수 있도록 하는 타협안으로 의도되었다.
연방 국가의 권한에는 사법, 국방, 연방 경찰, 사회 보장, 원자력 에너지, 통화 정책 및 공공 부채, 그리고 공공 재정의 기타 측면이 포함된다. 국영 기업으로는 벨기에 우정 그룹과 벨기에 국립 철도 회사가 있다. 연방 정부는 벨기에와 그 연방화된 기관의 유럽 연합 및 NATO에 대한 의무를 책임진다. 또한 공중 보건, 내무 및 외교의 상당 부분을 통제한다. 연방 정부가 통제하는 예산(부채 제외)은 국가 재정 수입의 약 50%에 달한다. 연방 정부는 공무원의 약 12%를 고용하고 있다.
공동체는 원래 공동체 언어 사용자를 대상으로 하는 언어적으로 결정된 지리적 경계 내에서만 권한을 행사한다: 문화(시청각 매체 포함), 교육 및 해당 언어 사용. 언어와 직접적인 관련이 적은 개인 문제로 확장된 분야에는 보건 정책(치료 및 예방 의학) 및 개인 지원(청소년 보호, 사회 복지, 가족 지원, 이민자 지원 서비스 등)이 포함된다.
지역은 영토와 광범위하게 관련된 분야에서 권한을 갖는다. 여기에는 경제, 고용, 농업, 수자원 정책, 주택, 공공 사업, 에너지, 교통, 환경, 도시 및 국가 계획, 자연 보호, 신용 및 대외 무역이 포함된다. 이들은 주, 지방 자치 단체 및 공동체 간 공익 사업 회사를 감독한다.
여러 분야에서 각기 다른 수준의 정부가 특정 사안에 대해 각자의 발언권을 갖는다. 예를 들어 교육의 경우, 공동체의 자치권에는 의무 교육에 대한 결정이 포함되지 않으며 자격 부여를 위한 최소 요건 설정도 허용되지 않는데, 이는 연방 문제로 남아 있다. 각급 정부는 권한과 관련된 과학 연구 및 국제 관계에 참여할 수 있다. 지역 및 공동체 정부의 조약 체결 권한은 전 세계 모든 연방 구성 단위 중에서 가장 광범위하다.
주 | 네덜란드어 명칭 | 프랑스어 명칭 | 독일어 명칭 | 주도 | 면적 | 인구 (2024년 1월 1일) | 인구 밀도 | ISO 3166-2:BE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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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란데런 지역 | ||||||||||
안트베르펜 | Antwerpen네덜란드어 | Anvers프랑스어 | Antwerpen독일어 | 안트베르펜 | 2876 km2 | 1,926,522 | 670 /km2 | VAN | ||
오스트플란데런 | Oost-Vlaanderen네덜란드어 | Flandre orientale프랑스어 | Ostflandern독일어 | 헨트 | 3007 km2 | 1,572,002 | 520 /km2 | VOV | ||
플람스브라반트 | Vlaams-Brabant네덜란드어 | Brabant flamand프랑스어 | Flämisch-Brabant독일어 | 뢰번 | 2118 km2 | 1,196,773 | 570 /km2 | VBR | ||
림뷔르흐 | Limburg네덜란드어 | Limbourg프랑스어 | Limburg독일어 | 하셀트 | 2427 km2 | 900,098 | 370 /km2 | VLI | ||
베스트플란데런 | West-Vlaanderen네덜란드어 | Flandre occidentale프랑스어 | Westflandern독일어 | 브뤼허 | 3197 km2 | 1,226,375 | 380 /km2 | VWV | ||
왈롱 지역 | ||||||||||
에노 | Henegouwen네덜란드어 | Hainaut프랑스어 | Hennegau독일어 | 몽스 | 3813 km2 | 1,360,074 | 360 /km2 | WHT | ||
리에주 | Luik네덜란드어 | Liège프랑스어 | Lüttich독일어 | 리에주 | 3857 km2 | 1,119,038 | 290 /km2 | WLG | ||
뤽상부르 | Luxemburg네덜란드어 | Luxembourg프랑스어 | Luxemburg독일어 | 아를롱 | 4459 km2 | 295,146 | 66 /km2 | WLX | ||
나무르 | Namen네덜란드어 | Namur프랑스어 | Namur독일어 (Namür독일어) | 나무르 | 3675 km2 | 503,895 | 140 /km2 | WNA | ||
브라반왈롱 | Waals-Brabant네덜란드어 | Brabant wallon프랑스어 | Wallonisch-Brabant독일어 | 우아브르 | 1097 km2 | 414,130 | 380 /km2 | WBR | ||
브뤼셀 수도 지역 | ||||||||||
브뤼셀 수도 | Brussels Hoofdstedelijk Gewest네덜란드어 | Région de Bruxelles-Capitale프랑스어 | Region Brüssel-Hauptstadt독일어 | 브뤼셀시 | 162 km2 | 1,249,597 | 7700 /km2 | BBR | ||
총계 | België네덜란드어 | Belgique프랑스어 | Belgien독일어 | 브뤼셀시 | 3.07 만 sortable=on | 11,763,650 | 383 sortable=on |
5.3. 주요 정당과 정치 지형
벨기에의 정치 지형은 언어권에 따른 정당 분화가 두드러진다. 주요 정당들은 플란데런(네덜란드어권)과 왈롱(프랑스어권) 지역을 기반으로 활동하며, 각기 다른 정치적 우선순위와 이념을 내세운다. 최근에는 플란데런 지역의 분리독립을 주장하는 정당이 영향력을 확대하는 등 지역 간 갈등이 정치의 주요 쟁점으로 부상하고 있다. 선거 제도는 비례대표제를 채택하고 있으며, 이는 다당제 구도를 심화시키는 요인이 되기도 한다. 정치 문화는 타협과 연립 정부 구성이 일반적이나, 정부 구성에 장기간이 소요되는 경우도 빈번하다.
6. 대외 관계
벨기에는 지리적으로 서유럽의 교차로에 위치하여 역사적으로 주변 강대국들의 침략 경로가 되어왔다. 거의 방어 불가능한 국경을 가진 벨기에는 전통적으로 중재 정책을 통해 주변 강대국들의 지배를 피하고자 노력해왔다. 벨기에인들은 유럽 통합의 강력한 지지자들이다. 벨기에는 유럽 연합(EU)과 북대서양 조약 기구(NATO)의 창립 회원국이며, 수도 브뤼셀에는 이들 기구의 본부가 위치해 있다.
6.1. 유럽 연합과 국제 기구

벨기에는 유럽 연합(EU)의 창립 회원국으로서 유럽 통합 과정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해왔다. 수도 브뤼셀은 사실상 EU의 수도 기능을 하며, 유럽 위원회, 유럽 연합 이사회, 유럽 이사회의 공식 소재지이자 유럽 의회의 두 소재지 중 하나이다(다른 하나는 스트라스부르). 또한 브뤼셀은 북대서양 조약 기구(NATO) 본부를 비롯한 여러 주요 국제기구의 본부가 위치한 곳이기도 하다. 벨기에는 베네룩스, 세계무역기구(WTO),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등 다수의 국제기구 회원국으로 활동하며 국제 협력과 다자주의를 지지한다.
6.2. 대한민국과의 관계
벨기에는 1901년 대한제국과 수교하였으나, 1905년 단교하였다. 1949년 대한민국을 한반도의 유일한 합법 정부로 승인하였다. 벨기에군과 룩셈부르크군은 6.25 전쟁에 참전하여 대한민국을 지원했으며, 이른바 '벨룩스 대대'는 약 3,500명의 병력을 파병하여 106명이 전사했다.
현재 벨기에 수도 브뤼셀에는 주벨기에 대한민국 대사관(주룩셈부르크 대사관 및 주유럽연합 대표부 겸임)이, 서울특별시에는 주한 벨기에 대사관이 각각 개설되어 있다. 2017년 기준 양국 간 교역액은 벨기에의 대한 수출이 약 22.00 억 USD, 대한 수입이 약 40.00 억 USD 수준이다. 주요 수출품은 화학제품, 의약품, 자동차 등이며, 주요 수입품은 자동차, 기계류, 화학제품 등이다. 약 800여 명의 한국 교민이 벨기에에 거주하고 있다. 2014년에는 송도국제도시에 겐트 대학교 글로벌 캠퍼스가 설립되어 교육 교류도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다.
7. 군사

벨기에군은 2023년 기준 23,200명의 현역 병력을 보유하고 있으며, 여기에는 육군구성군 8,500명, 해양구성군 1,400명, 항공구성군 4,900명, 의료구성군 1,450명, 합동부대 6,950명이 포함된다. 예비 병력은 5,900명이다. 2019년 벨기에의 국방 예산은 총 43.03 억 EUR(49.21 억 USD)로 GDP의 0.93%에 해당한다. 4개 구성군의 작전 지휘는 국방부 작전훈련참모부와 국방참모총장에게 종속된다. 벨기에군은 1995년 징병제가 폐지된 후 지원병으로 구성되며, 다른 EU 회원국, 아이슬란드, 노르웨이, 스위스, 리히텐슈타인 국민도 입대할 수 있다. 벨기에는 유엔 또는 EU 임무의 일환으로 여러 아프리카 국가, 이라크(이슬람 국가와의 전쟁), 동유럽(NATO 주둔)에 군대를 파병하고 있다.
제2차 세계 대전의 영향으로 집단 안보는 벨기에 외교 정책의 우선순위가 되었다. 1948년 3월 벨기에는 브뤼셀 조약에 서명한 후 같은 해 NATO에 가입했다. 그러나 군대의 NATO 통합은 6.25 전쟁 이후에야 시작되었다. 벨기에는 룩셈부르크 정부와 함께 벨기에-룩셈부르크 대대로 알려진 대대 규모의 파견대를 한국에 파병했다. 이 임무는 벨기에가 지원한 여러 유엔 임무 중 첫 번째였다. 현재 벨기에 해양구성군은 베네룩스 제독의 지휘 하에 네덜란드 해군과 긴밀히 협력하고 있다.
2024년 세계 평화 지수에 따르면 벨기에는 세계에서 16번째로 평화로운 국가이다.
8. 경제
벨기에의 경제는 고도로 세계화되어 있으며, 교통 인프라는 유럽의 나머지 지역과 통합되어 있다. 고도로 산업화된 지역의 중심부에 위치한 덕분에 2007년 세계 15위의 무역 국가가 되었다. 경제는 생산성이 높은 노동력, 높은 국민총생산(GNP), 1인당 높은 수출액을 특징으로 한다. 벨기에의 주요 수입품은 원자재, 기계 및 장비, 화학제품, 원석 다이아몬드, 의약품, 식료품, 운송 장비, 석유 제품이다. 주요 수출품은 기계 및 장비, 화학제품, 가공 다이아몬드, 금속 및 금속 제품, 식료품이다.
8.1. 경제 구조와 동향
벨기에 경제는 서비스업 중심이며, 역동적인 플란데런 경제와 상대적으로 뒤처진 왈롱 경제라는 이중적인 특징을 보인다. 유럽 연합 창립 회원국 중 하나인 벨기에는 개방 경제와 회원국 경제 통합을 위한 EU 기관의 권한 확대를 강력히 지지한다. 1922년부터 벨기에-룩셈부르크 경제 동맹을 통해 벨기에와 룩셈부르크는 관세 및 통화 동맹을 맺은 단일 무역 시장을 형성해왔다.
벨기에는 19세기 초 유럽 대륙에서 최초로 산업 혁명을 겪은 국가이다. 리에주와 샤를루아 주변 지역은 광업과 철강업이 급속히 발전하여 20세기 중반까지 삼브르-에-뫼즈 계곡에서 번성했으며, 1830년부터 1910년까지 벨기에를 세계 3대 산업 국가 중 하나로 만들었다. 그러나 1840년대 플란데런의 섬유 산업은 심각한 위기에 처했고, 이 지역은 1846년부터 1850년까지 감자 대기근을 겪었다.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헨트와 안트베르펜에서는 화학 및 석유 산업이 급속히 확장되었다. 1973년과 1979년 석유 파동은 경제를 침체에 빠뜨렸는데, 특히 철강 산업의 경쟁력이 약화되고 심각한 쇠퇴를 겪은 왈롱 지역에서 장기화되었다. 1980년대와 1990년대에 국가 경제 중심지는 계속 북쪽으로 이동하여 현재는 인구가 밀집된 플란데런 다이아몬드 지역에 집중되어 있다.
1980년대 말 벨기에의 거시 경제 정책으로 인해 누적 정부 부채가 GDP의 약 120%에 달했다. 2006년 기준 예산은 균형을 이루었고 공공 부채는 GDP의 90.30%와 같았다. 2005년과 2006년 실질 GDP 성장률은 각각 1.5%와 3.0%로 유로 지역 평균보다 약간 높았다. 2005년 8.4%, 2006년 8.2%의 실업률은 지역 평균에 근접했다. 2010년 10월 기준 실업률은 8.5%로 유럽 연합 전체(EU 27개국) 평균인 9.6%와 비교된다. 1832년부터 2002년까지 벨기에의 통화는 벨기에 프랑이었다. 벨기에는 2002년에 유로화로 전환했으며, 최초의 유로 동전 세트는 1999년에 주조되었다. 유통을 위해 지정된 표준 벨기에 유로 주화에는 군주(처음에는 알베르 2세, 2013년부터 필리프)의 초상화가 새겨져 있다.
2016년 기준 벨기에의 생태용량은 1인당 0.8 글로벌 헥타르로, 전 세계 1인당 평균 생태용량 1.6 글로벌 헥타르의 절반에 불과하다. 반면, 2016년 벨기에인들은 평균 6.3 글로벌 헥타르의 생태용량을 소비하여, 자국이 보유한 생태용량의 약 8배를 필요로 했다. 결과적으로 벨기에는 2016년에 1인당 5.5 글로벌 헥타르의 생태용량 적자를 기록했다.
8.2. 주요 산업과 무역
벨기에의 주요 산업은 화학, 자동차, 제약, 식품 가공, 정밀 기계 등이며, 특히 화학 산업과 자동차 산업은 수출에서 큰 비중을 차지한다. 안트베르펜은 세계적인 화학 산업 클러스터 중 하나이며, 다수의 국제적인 자동차 제조사들이 벨기에에 생산 기지를 두고 있다. 벨기에는 고도로 개방된 경제 구조를 가지고 있어 무역 의존도가 매우 높다. 주요 교역 상대국은 독일, 프랑스, 네덜란드 등 인접 유럽 국가들이며, 이들 국가와의 교역이 전체 무역량의 상당 부분을 차지한다. 또한, 다이아몬드 가공 및 거래의 중심지로서 안트베르펜은 세계 다이아몬드 시장에서 중요한 위치를 점하고 있다.
8.3. 과학 기술

벨기에의 과학 기술 발전은 역사적으로 꾸준히 이루어져 왔다. 16세기에는 지도 제작자 헤라르뒤스 메르카토르, 해부학자 안드레아스 베살리우스, 약초학자 렘베르트 도둔스, 수학자 시몬 스테빈 등이 중요한 업적을 남겼다.
화학자 에르네스트 솔베이와 엔지니어 제노브 그람은 각각 1860년대에 솔베이 공정과 그람 발전기를 개발하여 산업 발전에 기여했다. 레오 베이클랜드는 1907년~1909년에 베이클라이트를 개발했다. 에르네스트 솔베이는 또한 주요 자선가로서 솔베이 사회학 연구소, 솔베이 브뤼셀 경제 경영 대학원, 그리고 현재 브뤼셀 자유 대학교의 일부인 국제 솔베이 물리 화학 연구소에 그의 이름을 남겼다. 1911년, 그는 솔베이 회의라는 일련의 회의를 시작했는데, 이는 양자 물리학과 화학의 발전에 깊은 영향을 미쳤다. 벨기에 출신의 조르주 르메트르 몬시뇰(루뱅 가톨릭 대학교)은 1927년 우주 기원에 관한 빅뱅 이론을 제안한 공로를 인정받고 있다.
벨기에 출신으로 노벨 생리학·의학상을 수상한 인물은 3명(1919년 쥘 보르데, 1938년 코르네유 하이만스, 1974년 알베르 클로드와 크리스티앙 드뒤브 공동 수상), 노벨 물리학상 1명(2013년 프랑수아 앙글레르), 노벨 화학상 1명(1977년 일리야 프리고진)이 있다. 벨기에 수학자 2명(피에르 들리뉴 1978년, 장 부르갱 1994년)이 필즈상을 수상했다. 벨기에는 2024년 세계 혁신 지수에서 24위를 차지했다.
8.4. 교통 및 기반 시설
벨기에는 1970년부터 1999년까지 철도망 밀도가 18% 감소했음에도 불구하고, 1999년 기준 유럽 연합 내에서 1,000 km²당 113.8 km로 가장 높은 철도망 밀도를 유지했다. 반면 같은 기간(1970년~1999년) 동안 고속도로망은 56%나 크게 성장했다. 1999년 기준 1,000 km²당 고속도로 밀도와 1,000명당 고속도로 밀도는 각각 55.1 km와 16.5 km로, EU 평균인 13.7 km와 15.9 km보다 훨씬 높았다.
벨기에는 유럽에서 교통 체증이 가장 심한 국가 중 하나이다. 2010년 브뤼셀과 안트베르펜으로 출퇴근하는 사람들은 교통 체증으로 인해 각각 연간 65시간과 64시간을 도로에서 보냈다. 대부분의 소규모 유럽 국가와 마찬가지로 항공 교통량의 80% 이상이 단일 공항인 브뤼셀 공항에서 처리된다. 안트베르펜항과 제이브뤼허항(브뤼허)은 벨기에 해상 교통량의 80% 이상을 차지하며, 안트베르펜은 2000년 기준 총 물동량 1.16 억 t으로 유럽에서 두 번째로 큰 항구였으며, 이는 이전 5년간 10.9% 성장한 수치이다. 2016년 안트베르펜항은 전년 대비 2.7% 성장하여 2.14 억 t을 처리했다.
9. 사회
벨기에 사회는 다양한 인구학적 특징과 복잡한 언어 및 문화적 구성을 가지고 있다. 북부의 플란데런 지역과 남부의 왈롱 지역 간의 차이는 사회 전반에 걸쳐 영향을 미치며, 수도 브뤼셀은 다문화적 특성을 지닌다. 높은 생활 수준과 잘 발달된 사회 복지 시스템을 갖추고 있으나, 언어 문제와 관련된 사회적 긴장도 존재한다.
9.1. 인구와 민족 구성


2024년 1월 1일 기준 벨기에의 총인구는 11,763,650명이다. 2024년 1월 기준 벨기에의 인구 밀도는 km²당 383명으로, 세계에서 22번째, 유럽에서 6번째로 인구 밀도가 높은 국가이다. 인구 밀도가 가장 높은 주는 안트베르펜이며, 가장 낮은 주는 뤽상부르이다. 2024년 1월 기준, 플란데런 지역(플란데런)의 인구는 6,821,770명(벨기에 인구의 58.0%)이며, 주요 도시로는 안트베르펜(545,000명), 헨트(270,000명), 브뤼허(120,000명)가 있다. 왈롱 지역(왈롱)의 인구는 3,692,283명(벨기에 인구의 31.4%)이며, 주요 도시로는 샤를루아(204,000명), 리에주(196,000명), 나무르(114,000명)가 있다. 브뤼셀 수도 지역(브뤼셀)의 인구는 1,249,597명(벨기에 인구의 10.6%)이며, 19개 지방 자치체로 구성되어 있고, 주요 도시로는 브뤼셀시(197,000명), 스하르베이크(130,000명), 안데를레흐트(127,000명)가 있다.
2017년 벨기에의 평균 합계출산율(TFR)은 여성 1인당 1.64명으로, 인구 대체율인 2.1명보다 낮으며, 1873년 여성 1인당 4.87명이었던 최고치보다 현저히 낮다. 이후 벨기에는 평균 연령 41.6세로 세계에서 가장 고령화된 국가 중 하나이다.
2007년 기준, 인구의 거의 92%가 벨기에 시민권을 가지고 있었으며, 다른 유럽 연합 회원국 시민이 약 6%를 차지했다. 주요 외국 국적자는 이탈리아인(171,918명), 프랑스인(125,061명), 네덜란드인(116,970명), 모로코인(80,579명), 포르투갈인(43,509명), 스페인인(42,765명), 튀르키예인(39,419명), 독일인(37,621명)이었다. 2007년 벨기에에는 외국 태생 거주자가 138만 명으로 전체 인구의 12.9%에 해당했다. 이 중 685,000명(6.4%)은 EU 외부에서 태어났고, 695,000명(6.5%)은 다른 EU 회원국에서 태어났다.
2012년 초, 외국 배경을 가진 사람들과 그 후손들은 전체 인구의 약 25%, 즉 280만 명의 "신규 벨기에인"을 형성한 것으로 추정되었다. 이들 신규 벨기에인 중 120만 명은 유럽계이며, 135만 명은 비서구 국가(대부분 모로코, 튀르키예, 콩고 민주 공화국) 출신이다. 1984년 벨기에 국적법 개정 이후 130만 명 이상의 이민자가 벨기에 시민권을 취득했다. 벨기에에서 가장 큰 이민자 및 그 후손 집단은 이탈리아계 벨기에인과 모로코계 벨기에인이다. 튀르키예 출신 주민의 89.2%가 귀화했으며, 모로코 배경을 가진 사람들의 88.4%, 이탈리아인의 75.4%, 프랑스인의 56.2%, 네덜란드인의 47.8%가 귀화했다.
벨기에 통계청(Statbel)은 벨기에 인구의 출신 배경에 관한 수치를 발표했다. 자료에 따르면 2021년 1월 1일 기준 벨기에 인구의 67.3%가 벨기에 민족 출신이었고, 32.7%는 외국 출신 또는 국적자였으며, 이 중 20.3%는 이웃 국가 출신의 외국 국적 또는 민족 집단이었다. 이 연구는 또한 브뤼셀 수도 지역 주민의 74.5%가 비벨기에 출신이며, 이 중 13.8%는 이웃 국가 출신이라는 사실을 발견했다.
9.2. 언어

벨기에에는 네덜란드어, 프랑스어, 독일어 등 3개의 공용어가 있다. 그 외 다수의 비공식 소수 언어도 사용된다. 벨기에 인구의 약 59%가 네덜란드어를 모국어로 사용하며, 약 40%가 프랑스어를, 약 1%가 독일어를 모국어로 사용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인구 조사가 없기 때문에 벨기에의 세 공용어 또는 그 방언의 분포나 사용에 관한 공식적인 통계 자료는 없다. 그러나 부모의 언어, 교육 언어, 외국 태생자의 제2언어 지위 등 다양한 기준을 통해 추정치를 얻을 수 있다. 벨기에 인구의 약 60%가 네덜란드어(종종 플란데런어라고도 함)를 모국어로 사용하며, 인구의 40%가 프랑스어를 모국어로 사용한다. 프랑스어를 사용하는 벨기에인은 종종 왈롱인이라고 불리지만, 브뤼셀의 프랑스어 사용자는 왈롱인이 아니다.
네덜란드어 모국어 사용자는 총 약 623만 명으로 추산되며, 북부 플란데런 지역에 집중되어 있다. 반면 프랑스어 모국어 사용자는 왈롱 지역에 332만 명, 공식적으로 이중 언어 지역인 브뤼셀 수도 지역에 약 87만 명(또는 85%)이 있는 것으로 추산된다. 독일어 공동체는 왈롱 지역 동부에 73,000명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약 10,000명의 독일인과 60,000명의 벨기에 국적자가 독일어를 사용한다. 약 23,000명의 독일어 사용자가 공식 공동체 인근 지방 자치 단체에 추가로 거주하고 있다.
벨기에 네덜란드어와 벨기에 프랑스어는 각각 네덜란드와 프랑스에서 사용되는 표준어와 어휘 및 의미상의 미묘한 차이가 있다. 많은 플란데런 사람들은 여전히 지역 환경에서 네덜란드어 방언을 사용한다. 왈롱어는 프랑스어의 방언 또는 별개의 로망스어군 언어로 간주되지만, 현재는 주로 노년층에서 간헐적으로만 이해되고 사용된다. 왈롱어는 4개의 방언으로 나뉘며, 피카르디 방언과 함께 공공 생활에서는 거의 사용되지 않고 대부분 프랑스어로 대체되었다.
9.3. 종교

벨기에 헌법은 종교의 자유를 보장하며, 정부는 실제로 이 권리를 존중한다. 벨기에는 공식적으로 세 가지 종교를 인정한다: 기독교(가톨릭, 개신교, 정교회, 성공회), 이슬람교, 유대교이다. 알베르 1세와 보두앵 통치 기간 동안 벨기에 왕실은 뿌리 깊은 가톨릭 신앙으로 명성이 높았다.
전통적으로 가톨릭은 벨기에의 다수 종교였으며, 특히 플란데런 지역에서 강세를 보였다. 그러나 2009년 기준 벨기에 전체의 일요일 교회 출석률은 5%였으며, 브뤼셀은 3%, 플란데런은 5.4%였다. 2009년 벨기에의 교회 출석률은 1998년(벨기에 전체 11%)의 약 절반 수준이었다. 교회 출석률 감소에도 불구하고 가톨릭 정체성은 여전히 벨기에 문화의 중요한 부분으로 남아 있다.

2010년 유로바로미터에 따르면, 벨기에 시민의 37%는 신을 믿고, 31%는 일종의 영혼이나 생명력을 믿는다. 27%는 어떤 종류의 영혼, 신, 또는 생명력도 믿지 않는다. 5%는 응답하지 않았다. 2015년 유로바로미터에 따르면, 벨기에 전체 인구의 60.7%가 기독교를 신봉했으며, 가톨릭이 52.9%로 가장 큰 교파였다. 개신교는 2.1%, 정교회는 1.6%를 차지했다. 무종교인은 인구의 32.0%를 차지했으며, 무신론자(14.9%)와 불가지론자(17.1%)로 나뉘었다. 인구의 5.2%는 이슬람교도였고, 2.1%는 다른 종교를 믿었다. 2012년 같은 조사에서는 기독교가 벨기에에서 가장 큰 종교로, 벨기에인의 65%를 차지했다.
2000년대 초, 벨기에에는 약 42,000명의 유대인이 있었다. 안트베르펜 유대인 공동체(약 18,000명)는 유럽에서 가장 큰 공동체 중 하나이며, 이디시어가 대규모 유대인 공동체의 주요 언어인 세계에서 몇 안 되는 곳 중 하나이다(뉴욕, 뉴저지, 이스라엘의 특정 정통파 및 하시디즘 공동체와 유사). 또한, 안트베르펜의 대부분의 유대인 어린이는 유대교 교육을 받는다. 벨기에에는 여러 유대인 신문과 45개 이상의 활동적인 유대교회당(이 중 30개는 안트베르펜에 있음)이 있다.
왈롱보다 종교적이라고 여겨지는 플란데런에서의 2006년 조사에 따르면, 55%가 자신을 종교적이라고 생각했으며, 36%는 신이 우주를 창조했다고 믿었다. 반면, 왈롱은 유럽에서 가장 세속적이거나 종교성이 낮은 지역 중 하나가 되었다. 프랑스어권 지역 인구의 대부분은 종교를 삶의 중요한 부분으로 여기지 않으며, 인구의 45%가 비종교인으로 자신을 규정한다. 이는 특히 동부 왈롱과 프랑스 국경 지역에서 두드러진다.
2008년 추정에 따르면 벨기에 인구의 약 6%(628,751명)가 이슬람교도이다. 이슬람교도는 브뤼셀 인구의 23.6%, 왈롱 인구의 4.9%, 플란데런 인구의 5.1%를 차지한다. 벨기에 이슬람교도의 대다수는 안트베르펜, 브뤼셀, 샤를루아와 같은 주요 도시에 거주한다. 벨기에에서 가장 큰 이민자 집단은 모로코인으로 40만 명이다. 튀르키예인은 세 번째로 큰 집단이자 두 번째로 큰 이슬람 민족 집단으로 22만 명이다.
9.4. 교육

벨기에에서는 6세부터 18세까지 의무 교육을 실시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2002년 기준으로 벨기에는 18세에서 21세 사이 인구의 고등 교육 등록 비율이 42%로 세 번째로 높았다. 성인 인구의 약 99%가 글을 읽고 쓸 줄 알지만, 기능적 문맹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OECD가 주관하는 국제 학생 평가 프로그램(PISA)은 현재 벨기에의 교육을 세계 19위로 평가하며, 이는 OECD 평균보다 상당히 높은 수치이다. 교육은 각 공동체별로 별도로 조직되며, 플란데런 공동체는 프랑스어 공동체 및 독일어 공동체보다 눈에 띄게 높은 점수를 받는다.
19세기 벨기에 정치 지형을 반영하여 자유당과 가톨릭당이 특징이었던 것처럼, 교육 시스템은 세속 학교와 종교 학교로 분리되어 있다. 세속 학교는 공동체, 주 또는 지방 자치 단체가 관리하는 반면, 종교 학교, 주로 가톨릭 학교 교육은 종교 당국이 조직하며, 공동체의 보조금과 감독을 받는다.
9.5. 보건과 복지

벨기에 국민은 건강 상태가 양호하다. 2012년 추정에 따르면 평균 기대 수명은 79.65세이다. 1960년 이후 기대 수명은 유럽 평균과 마찬가지로 매년 2개월씩 증가했다. 벨기에의 주요 사망 원인은 심혈관 질환, 종양, 호흡기 질환 및 비자연적 사망 원인(사고, 자살)이다. 비자연적 사망 원인과 암은 24세 이하 여성과 44세 이하 남성의 가장 흔한 사망 원인이다.
벨기에의 의료 서비스는 사회 보장 기여금과 세금 모두를 통해 재원을 조달한다. 건강 보험은 의무 사항이다. 의료 서비스는 독립 의료 종사자와 공립, 대학 및 준사립 병원으로 구성된 공공 및 민간 혼합 시스템에 의해 제공된다. 의료 서비스 비용은 환자가 지불하고 나중에 건강 보험 기관에서 상환받지만, 부적격 범주(환자 및 서비스)의 경우 소위 제3자 지불 시스템이 존재한다. 벨기에 의료 시스템은 연방 정부, 플란데런 및 왈롱 지역 정부의 감독과 재정 지원을 받으며, 독일어 공동체도 (간접적인) 감독 및 책임을 진다.
벨기에 역사상 처음으로 안락사 연령 제한이 해제된 지 2년 만에 첫 번째 아동 안락사가 시행되었다. 이 아동은 불치병으로 인해 안락사되었다. 안락사에 대한 일부 지지가 있었을 수 있지만, 조력 자살이라는 주제를 둘러싼 문제로 인해 논란의 여지가 있을 수 있다.
조력 자살을 제외하고, 벨기에는 서유럽에서 자살률이 가장 높으며, 선진국 중에서도 가장 높은 자살률을 보이는 국가 중 하나이다(리투아니아, 한국, 라트비아 다음으로 높음).
9.6. 치안
벨기에의 전반적인 치안 상황은 양호한 편이나, 주요 도시의 관광지 주변에서는 소매치기, 날치기 등 여행객 대상 범죄가 발생하므로 주의가 필요하다. 특히 브뤼셀 중앙역, 남역 등 기차역과 그랑플라스 주변, 주요 관광 명소에서는 소지품 관리에 각별히 유의해야 한다. 심각한 강력 범죄 발생률은 낮은 편이지만, 야간에는 외진 곳이나 인적이 드문 공원 등은 피하는 것이 좋다. 벨기에 경찰은 관광객 지원을 위한 다국어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으며, 긴급 상황 발생 시 112(유럽 공통 긴급번호) 또는 101(경찰)로 신고할 수 있다. 최근에는 자전거 절도나 차량 관련 범죄도 보고되고 있으므로, 잠금 장치 사용 및 귀중품 차량 내 방치 금지 등 예방 조치가 권고된다.
10. 문화
정치적, 언어적 분열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벨기에에 해당하는 지역은 유럽 예술과 문화에 막대한 영향을 미친 주요 예술 운동의 번영을 목격했다. 오늘날 어느 정도 문화생활은 각 언어 공동체 내에 집중되어 있으며, 다양한 장벽으로 인해 공유된 문화 영역은 덜 뚜렷해졌다. 1970년대 이래로 벨기에에는 왕립 군사 학교와 안트베르펜 해양 학교를 제외하고는 이중 언어 대학이나 단과대학이 없다.
10.1. 예술과 건축

회화와 건축에 대한 기여는 특히 풍부했다. 모상 미술, 초기 네덜란드 회화, 플란데런 르네상스 및 바로크 회화, 그리고 로마네스크, 고딕, 르네상스 및 바로크 건축의 주요 사례들은 예술사의 이정표이다. 15세기 저지대 국가의 예술은 얀 판 에이크와 로히르 판 데르 베이던의 종교화가 지배적이었던 반면, 16세기는 피터르 브뤼헐의 풍경화와 람베르트 롬바르트의 고대 표현과 같은 더 넓은 범위의 양식이 특징이다. 페테르 파울 루벤스와 안토니 반 다이크의 바로크 양식이 17세기 초 남부 네덜란드에서 번성했지만, 이후 점차 쇠퇴했다.
19세기와 20세기에는 야코프 요르단스, 제임스 엔소르를 비롯한 레뱅 그룹 소속 예술가들, 콘스탄트 페르메케, 폴 델보, 르네 마그리트 등 독창적인 낭만주의, 표현주의, 초현실주의 벨기에 화가들이 많이 등장했다. 아방가르드 코브라 운동은 1950년대에 나타났으며, 조각가 파나마렌코는 현대 미술에서 주목할 만한 인물로 남아 있다. 다분야 예술가 얀 파브르, 빔 델보예와 화가 뤽 타이만스는 현대 미술계에서 국제적으로 유명한 또 다른 인물들이다.
벨기에의 건축 기여는 19세기와 20세기에도 계속되었으며, 아르누보 양식의 주요 창시자였던 빅토르 오르타와 앙리 반 데 벨데의 작품을 포함한다.
10.2. 문학과 만화
벨기에는 에밀 베르하렌, 기도 헤젤러, 로베르 고팽과 같은 시인들과 헨드릭 콘시엔스, 스테인 스트뢰벨스, 조르주 심농, 쉬잔 릴라르, 휘호 클라우스, 아멜리 노통브와 같은 소설가들을 포함하여 여러 잘 알려진 작가들을 배출했다. 시인이자 극작가인 모리스 마테를링크는 1911년 노벨 문학상을 수상했다. 에르제의 땡땡의 모험은 프랑스-벨기에 만화 중 가장 잘 알려져 있지만, 페요(개구쟁이 스머프), 앙드레 프랑캥(가스통 라가프), 뒤파(퀴비튀스), 모리스(럭키 루크), 그레그(아실 탈롱), 랑빌(레 투니크 블뢰), 에드가 P. 자콥스, 윌리 판데르스테인 등 다른 많은 주요 작가들이 벨기에 만화 산업에 세계적인 명성을 가져다주었다.
10.3. 음악과 영화

프랑코-플람스 악파의 성악 음악은 저지대 국가 남부에서 발전했으며 르네상스 문화에 중요한 기여를 했다. 19세기와 20세기에는 앙리 비외탕, 외젠 이자이, 아르튀르 그뤼미오와 같은 주요 바이올리니스트들이 등장했고, 아돌프 삭스는 1846년에 색소폰을 발명했다. 작곡가 세자르 프랑크는 1822년 리에주에서 태어났다. 벨기에의 현대 대중음악도 명성이 높다. 재즈 음악가 장고 라인하르트와 투츠 틸레망 그리고 가수 자크 브렐은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다. 오늘날 가수 스트로마이는 유럽 및 그 외 지역에서 음악적 센세이션을 일으키며 큰 성공을 거두고 있다. 록/팝 음악에서는 텔렉스, 프론트 242, 케이의 선택, 후버포닉, 자프 마마, 소울왁스, 데우스 등이 잘 알려져 있다. 헤비메탈 분야에서는 마키아벨, 채널 제로, 인쓰론드와 같은 밴드들이 전 세계적인 팬층을 보유하고 있다.
벨기에 영화는 주로 플란데런 소설을 스크린에 옮겨왔다. 다른 벨기에 감독으로는 앙드레 델보, 스테인 코닝스, 뤽과 장피에르 다르덴 형제가 있으며, 잘 알려진 배우로는 장클로드 반담, 얀 데클레르, 마리 질랭이 있다. 성공적인 영화로는 불헤드, 이웃집 살인마, 알츠하이머 케이스 등이 있다. 벨기에는 또한 다수의 성공적인 패션 디자이너들의 본고장이기도 하다.
10.4. 음식 문화

벨기에는 맥주, 초콜릿, 와플, 감자튀김으로 유명하다. 국가 요리로는 "스테이크와 감자튀김", "홍합과 감자튀김"이 있다. 미슐랭 가이드와 같은 가장 영향력 있는 레스토랑 가이드에서 높은 순위를 차지하는 벨기에 레스토랑을 많이 찾아볼 수 있다. 높은 명성을 가진 많은 맥주 중 하나는 트라피스트 수도승들의 맥주이다. 기술적으로는 에일이며 전통적으로 각 수도원의 맥주는 자체 잔(형태, 높이, 너비가 다름)에 제공된다. 트라피스트 맥주를 양조할 수 있도록 허용된 양조장은 11곳(이 중 6곳이 벨기에에 있음)뿐이다.
벨기에 요리는 프랑스 요리와 연관되어 있지만, 감자튀김(이름에도 불구하고 정확한 원산지는 불확실함), 플란데런 카르보나드(맥주, 겨자, 월계수 잎으로 만든 소고기 스튜), 스페퀼로스(프랑스어로는 speculoos, 계피와 생강 맛이 나는 쇼트크러스트 비스킷의 일종), 브뤼셀 와플(그리고 그 변형인 리에주 와플), 바터르조이(닭고기나 생선, 크림, 채소로 만든 국물 요리), 치커리와 베샤멜 소스, 방울양배추, 벨기에 프랄린(벨기에는 가장 유명한 초콜릿 하우스 중 일부를 보유하고 있음), 샤퀴트리(가공육), 팔링 인 엇 흐룬(녹색 허브 소스를 곁들인 강 장어) 등 일부 요리법은 벨기에에서 발명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코트 도르, 노이하우스, 레오니다스, 고디바와 같은 벨기에 초콜릿 및 프랄린 브랜드는 물론 안트베르펜의 부리와 델 레이, 브뤼셀의 메리스와 같은 독립 생산자들도 유명하다. 벨기에는 1100가지가 넘는 맥주를 생산한다. 베스트블레테렌 수도원의 트라피스트 맥주는 여러 차례 세계 최고의 맥주로 평가받았다. 세계 최대 규모의 양조 회사는 뢰번에 본사를 둔 앤하이저부시 인베브이다.
10.5. 축제와 민속

민속은 벨기에 문화생활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벨기에는 비교적 많은 수의 행렬, 기마 행렬, 퍼레이드, 옴메강, 뒤카스, 케르메스, 그리고 거의 항상 원래 종교적이거나 신화적 배경을 가진 기타 지역 축제들이 있다. 몽스 근처에서 열리는 3일간의 뱅슈 카니발은 유명한 질(높고 깃털 달린 모자와 밝은 의상을 입은 남성들)과 함께 사순절(재의 수요일과 부활절 사이의 40일) 직전에 열린다. 아토, 브뤼셀, 덴더르몬더, 메헬렌, 몽스의 '행렬 거인과 용'과 함께 유네스코에 의해 인류 구전 및 무형유산 걸작으로 인정받았다.
다른 예로는 2월이나 3월에 열리는 3일간의 알스트 카니발; 5월에 브뤼허에서 열리는 매우 종교적인 성혈 행렬; 7년마다 하셀트에서 열리는 비르가 예세 행렬; 메헬렌에서 매년 열리는 한스베이크 행렬; 8월 15일 리에주에서 열리는 축제; 그리고 나무르에서 열리는 왈롱 축제가 있다. 1832년에 시작되어 1960년대에 부활한 헨트 축제(7월 21일 벨기에 국경일을 전후하여 헨트에서 열리는 음악 및 연극 축제)는 현대적인 전통이 되었다. 이러한 축제 중 다수는 사이클과 같은 스포츠 경기를 포함하며, 많은 축제가 케르메스 범주에 속한다.
공식 공휴일은 아니지만 중요한 비공식 휴일은 성 니콜라스의 날(네덜란드어: 신터클라스, 프랑스어: la Saint-Nicolas)로, 어린이를 위한 축제이며 리에주에서는 학생들을 위한 축제이다. 이 축제는 매년 12월 6일에 열리며 일종의 이른 크리스마스이다. 12월 5일 저녁, 잠자리에 들기 전에 아이들은 신발을 벽난로 옆에 두고 성 니콜라스의 말이나 당나귀를 위해 물이나 와인, 당근을 놓는다. 전통에 따르면 성 니콜라스는 밤에 와서 굴뚝으로 내려온다. 그런 다음 그는 음식과 물 또는 와인을 가져가고, 선물을 남기고, 다시 올라가서 말이나 당나귀에게 먹이를 주고 여정을 계속한다. 그는 또한 아이들이 착했는지 나빴는지도 안다. 이 휴일은 특히 벨기에와 네덜란드의 어린이들에게 사랑받는다. 네덜란드 이민자들은 이 전통을 미국으로 가져갔고, 그곳에서 성 니콜라스는 현재 산타클로스로 알려져 있다.
10.6. 스포츠

1970년대 이래로 스포츠 클럽과 연맹은 각 언어 공동체 내에서 별도로 조직되었다. Administration de l'Éducation Physique et du SportADEPS프랑스어는 다양한 프랑스어권 스포츠 연맹을 인정하는 역할을 하며 브뤼셀 수도 지역에서 3개의 스포츠 센터를 운영한다. 네덜란드어권의 해당 기관은 Sport Vlaanderen스포르트 플란데런네덜란드어 (이전 명칭 BLOSO)이다.
축구는 벨기에 양쪽 지역 모두에서 가장 인기 있는 스포츠이며, 사이클, 테니스, 수영, 유도, 농구 또한 매우 인기 있다. 벨기에 축구 국가대표팀은 2015년 11월 처음으로 FIFA 세계 랭킹 1위에 오른 이래 줄곧 상위권을 유지해왔다. 1990년대 이후 이 팀은 브라질과 스페인에 이어 역사상 가장 오랫동안 세계 1위를 차지한 팀 중 하나이다. 에덴 아자르, 케빈 더 브라위너, 장마리 파프, 얀 쾰레만스 등 세계 정상급 선수들로 구성된 황금세대는 2018년 FIFA 월드컵에서 동메달, UEFA 유로 1980에서 은메달을 획득했다. 벨기에는 UEFA 유로 1972를 개최했고, 네덜란드와 함께 UEFA 유로 2000을 공동 개최했다.
벨기에인들은 프랑스를 제외하고 투르 드 프랑스 최다 우승 기록을 보유하고 있다. 또한 UCI 로드 월드 챔피언십에서도 최다 우승 기록을 가지고 있다. 투르 드 프랑스 5회 우승 및 수많은 사이클 기록을 보유한 벨기에 사이클 선수 에디 메르크스는 역사상 가장 위대한 사이클 선수 중 한 명으로 여겨진다. 필리프 질베르와 렘코 에베네풀은 각각 2012년과 2022년 세계 챔피언이었다. 다른 유명한 벨기에 사이클 선수로는 톰 보넨과 바우트 반아트가 있다.
킴 클레이스터르스와 쥐스틴 에냉은 모두 여자 테니스 협회(WTA)에서 올해의 선수로 선정되었으며, 여자 테니스 세계 랭킹 1위를 기록했다.
스파프랑코르샹 자동차 경주장은 포뮬러 원 월드 챔피언십 벨기에 그랑프리를 개최한다. 벨기에 드라이버 재키 익스는 그랑프리 8회, 르망 24시 6회 우승을 차지했으며 포뮬러 원 월드 챔피언십에서 두 차례 준우승했다. 벨기에는 조엘 로베르, 로저 드 코스터, 조르주 조베, 에릭 게보어스, 스테판 에버츠 등 모토크로스 분야에서도 강력한 명성을 가지고 있다.
벨기에에서 매년 열리는 스포츠 행사로는 메모리얼 반 담 육상 대회, 포뮬러 원 벨기에 그랑프리, 그리고 투르 오브 플랜더스와 리에주-바스토뉴-리에주와 같은 다수의 클래식 사이클 대회가 있다. 1920년 하계 올림픽은 안트베르펜에서 개최되었다. 1977년 유럽 농구 선수권 대회는 리에주와 오스텐더에서 열렸다.
10.7. 언론
벨기에의 언론은 언어 공동체별로 나뉘어 발달해왔다. 주요 신문, 방송사, 통신사들은 각 언어권(네덜란드어, 프랑스어, 독일어)을 대상으로 운영되며, 이는 벨기에의 복잡한 연방 구조와 문화적 다양성을 반영한다. 공영 방송으로는 네덜란드어권의 VRT, 프랑스어권의 RTBF, 독일어권의 BRF가 있으며, 이들은 각 언어 공동체의 정보 전달과 문화 발전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민영 방송과 다양한 신문, 잡지 역시 활발하게 발행되어 다양한 시각과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언론의 자유는 헌법으로 보장되며, 다양한 매체들이 정치, 사회, 문화 등 광범위한 주제를 다루고 있다. 브뤼셀에는 다수의 국제 언론사 특파원들이 상주하며 유럽 연합 관련 뉴스를 취재하는 등 국제 언론의 중심지 역할도 수행한다.
11. 세계유산
벨기에는 풍부한 역사와 문화를 바탕으로 다수의 유네스코 세계유산을 보유하고 있다. 대표적인 문화유산으로는 브뤼셀의 그랑플라스, 브뤼허 역사 지구, 플란데런의 베긴회 수녀원 단지, 투르네의 노트르담 대성당, 건축가 빅토르 오르타의 주요 도시 주택들(브뤼셀), 스피엔네의 신석기 시대 플린트 광산, 그리고 벨기에와 프랑스의 종탑군 등이 있다. 또한, 플랑탱 모레투스 박물관은 인쇄술 발전에 기여한 공로로 세계기록유산으로도 등재되어 있다. 이러한 유산들은 벨기에의 뛰어난 예술, 건축, 역사적 중요성을 보여주며 전 세계적으로 그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