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칠레 공화국은 남아메리카 서부에 위치한 나라로, 안데스산맥과 태평양 사이에 남북으로 길게 뻗어 있다. 북쪽으로는 페루, 북동쪽으로는 볼리비아, 동쪽으로는 아르헨티나와 국경을 접하며, 서쪽과 남쪽은 태평양과 드레이크 해협에 면해 있다. 수도는 산티아고이며, 국토 면적은 약 75.61 만 km2이고, 2017년 인구 조사 기준 약 1,750만 명이 거주한다. 칠레는 본토 외에도 후안 페르난데스 제도, 살라스이고메스섬, 데스벤투라다스 제도, 그리고 폴리네시아의 이스터섬(라파누이)을 영토로 하며, 남극 대륙의 일부에 대한 영유권도 주장하고 있다.
국토의 지리적 특성상 북부의 아타카마 사막부터 중부의 지중해성 기후, 남부 파타고니아의 한랭한 기후에 이르기까지 매우 다양한 기후와 자연환경을 보인다. 이러한 환경은 풍부한 광물 자원(특히 구리, 리튬), 다양한 농수산물(포도, 와인, 연어 등) 생산의 기반이 된다.
역사적으로 칠레 지역은 선사 시대부터 다양한 원주민 문화가 발달했으며, 16세기 스페인의 식민 통치를 거쳐 1818년 독립을 선언했다. 이후 국가 건설 과정에서 영토 확장과 정치적 변동을 겪었으며, 20세기에는 민주주의 발전과 사회경제적 변화, 그리고 살바도르 아옌데 정부의 인민연합과 아우구스토 피노체트의 군부 독재라는 극적인 시기를 경험했다. 1990년 민주주의로 복귀한 이후, 칠레는 정치적 안정과 경제 성장을 이루었으나, 소득 불평등과 같은 사회 문제도 안고 있다. 21세기 들어서는 2019년 대규모 시위와 제헌 과정 등 중요한 사회적 변화를 겪고 있다.
칠레는 대통령 중심제의 공화국이며, 입법부, 행정부, 사법부의 삼권분립 원칙에 따라 운영된다. 다당제 국가로 다양한 정당이 활동하며, 행정 구역은 주, 현, 코무나로 구성된다. 국제적으로는 유엔, 미주기구, APEC, OECD 등 주요 국제기구의 회원국으로 활동하며, 주변국 및 주요국들과 다각적인 외교 관계를 맺고 있다. 경제적으로는 고소득 국가로 분류되며, 광업, 농림수산업, 관광업 등이 주요 산업이다. 자유무역협정(FTA)을 적극적으로 체결하여 대외 무역을 확대하고 있다.
칠레 사회는 유럽계, 메스티소, 원주민 등 다양한 민족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가톨릭이 주요 종교이다. 공용어는 스페인어이며, 교육과 보건 시스템도 발전해왔다. 문화적으로는 파블로 네루다와 가브리엘라 미스트랄 같은 노벨 문학상 수상자를 배출했으며, 전통 음악인 쿠에카, 다양한 음식 문화, 그리고 축구를 비롯한 스포츠가 발달했다. 유네스코 세계유산도 다수 보유하고 있다.
2. 어원
'칠레'라는 국가 명칭의 어원에 대해서는 다양한 학설이 존재한다. 17세기 스페인 연대기 작가 디에고 데 로살레스에 따르면, 잉카인들은 아콩카과강 유역을 '칠리(Chili)'라고 불렀는데, 이는 15세기 잉카의 정복 당시 그 지역을 다스리던 피쿤체족 추장 '틸리(Tili)'의 이름이 와전된 것이라고 한다. 또 다른 설은 아콩카과 계곡이 페루의 카스마 계곡과 유사하며, 그곳에 '칠리'라는 이름의 마을과 계곡이 있었다는 점을 지적한다.
다른 학설들은 칠레라는 이름이 아메리카 원주민 단어에서 유래했을 가능성을 제시한다. '세상의 끝' 또는 '갈매기'를 의미하는 단어에서 왔다는 설, 마푸체어로 '땅이 끝나는 곳'을 의미할 수 있는 '칠리(chilli)'에서 유래했다는 설, 또는 케추아어로 '춥다'는 뜻의 '치리(chiri)'나 '눈' 또는 '지구의 가장 깊은 지점'을 의미하는 '칠리(tchili)'에서 유래했다는 설 등이 있다. '칠리'의 또 다른 어원으로는 트릴레라는 새의 울음소리를 흉내 낸 마푸체 의성어 '칠레-칠레(cheele-cheele)'가 거론되기도 한다.
스페인 정복자들은 잉카인들로부터 이 이름을 들었으며, 1535년에서 1536년 사이 페루에서 남쪽으로 향했던 디에고 데 알마그로의 첫 스페인 원정대 생존자들은 스스로를 "칠리 사람들"이라고 불렀다. 궁극적으로 알마그로는 마포초강 유역을 그렇게 명명한 후 '칠레'라는 이름을 널리 알린 인물로 여겨진다. 영어에서는 20세기 초까지 'Chili'라는 옛 철자법이 사용되다가 'Chile'로 바뀌었다.
3. 역사
칠레 지역의 역사는 선사 시대의 초기 인류 정착부터 시작되어, 스페인 식민 통치, 독립과 국가 건설, 20세기의 정치적 격변기, 그리고 21세기 현대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사건과 발전 과정을 거쳐왔다. 각 시대는 칠레의 정체성과 사회 구조에 깊은 영향을 미쳤다.
3.1. 선사 시대와 초기 정착

칠레 지역의 초기 인류 거주 증거는 석기 도구를 통해 확인되며, 약 18,500년 전부터 몬테베르데 계곡 지역에 인류가 간헐적으로 출현했던 것으로 보인다. 약 10,000년 전에는 아메리카 원주민 이주민들이 오늘날 칠레의 비옥한 계곡과 해안 지역에 정착했다. 초기 인류 거주지로는 몬테베르데, 쿠에바 델 밀로돈, 팔리-아이케 분화구의 용암 동굴 등이 있다.
이 지역의 고대 문화 중 가장 주목할 만한 것은 친초로 문화이다. 기원전 5050년경부터 기원전 1700년경까지 칠레 북부 해안 지역, 특히 아타카마 사막 연안에서 번성했던 이 문화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인공 미라 제작 기술로 유명하다. 친초로인들은 정교한 미라 제작을 통해 죽은 자를 기렸으며, 이는 당시 사회의 복잡한 장례 의식과 사후 세계관을 보여준다. 이들의 생활은 주로 어업과 해양 자원 채집에 의존했다.
잉카 제국은 한때 현재 칠레 북부 지역까지 세력을 확장했으나, 국가 조직이 없었던 마푸체족(스페인인들은 아라우카니아인이라고 불렀음)은 잉카 제국의 여러 차례 정복 시도에 성공적으로 저항했다. 마푸체족은 잉카의 사파 잉카였던 투팍 잉카 유팡키와 그의 군대에 맞서 싸웠다. 마울레 전투로 알려진 3일간의 치열한 전투 결과, 잉카의 칠레 영토 정복은 마울레강에서 멈추게 되었다.
3.2. 스페인 식민 통치

1520년, 세계 일주를 시도하던 페르디난드 마젤란은 현재 그의 이름을 딴 마젤란 해협을 발견하며 현재의 칠레 땅에 발을 디딘 최초의 유럽인이 되었다. 그 다음으로 칠레에 도달한 유럽인들은 1535년 금을 찾아 페루에서 온 디에고 데 알마그로와 그의 스페인 정복자들이었다. 스페인인들은 주로 화전 농업과 사냥으로 생계를 유지하던 다양한 원주민 문화와 마주쳤다.
칠레 정복은 1540년 프란시스코 피사로의 부관 중 한 명이었던 페드로 데 발디비아에 의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으며, 그는 1541년 2월 12일 산티아고 시를 창건했다. 스페인인들은 그들이 찾던 막대한 양의 금과 은을 발견하지는 못했지만, 칠레 중부 계곡의 농업적 잠재력을 인식했고, 칠레는 스페인 제국의 일부가 되었다.
정복은 점진적으로 이루어졌으며, 유럽인들은 반복적인 좌절을 겪었다. 1553년에 시작된 대규모 마푸체족 봉기로 발디비아가 사망하고 식민지의 주요 정착지 다수가 파괴되었다. 이후 1598년과 1655년에도 주요 봉기가 일어났다. 마푸체족과 다른 원주민 집단이 반란을 일으킬 때마다 식민지의 남쪽 국경은 북쪽으로 밀려났다. 1683년 스페인 왕실이 노예제를 폐지한 것은 마푸체족을 노예로 만드는 것이 그들을 복종시키는 대신 저항을 격화시킨다는 인식 때문이었다. 왕실의 금지에도 불구하고, 식민주의자들의 계속된 간섭으로 관계는 긴장 상태로 남아 있었다.
북쪽으로는 사막, 남쪽으로는 마푸체족, 동쪽으로는 안데스 산맥, 서쪽으로는 태평양으로 단절된 칠레는 스페인령 아메리카에서 가장 중앙집권적이고 동질적인 영토 중 하나가 되었다. 일종의 국경 수비대 역할을 하며, 식민지는 마푸체족과 스페인의 유럽 적국들, 특히 잉글랜드와 네덜란드의 침입을 막는 임무를 맡았다. 해적과 사략선원들은 마푸체족 외에도 식민지를 위협했으며, 이는 1578년 프랜시스 드레이크 경이 식민지의 주요 항구인 발파라이소를 습격한 사건에서 잘 드러난다. 칠레는 아메리카 대륙에서 가장 큰 상비군 중 하나를 주둔시켜 스페인 식민지 중 가장 군사화된 지역 중 하나였으며, 페루 부왕령의 재정에 부담을 주었다.
최초의 총인구 조사는 1777년에서 1778년 사이 아구스틴 데 하우레기 총독 정부에 의해 실시되었으며, 인구는 259,646명으로 나타났다. 이 중 73.5%가 유럽계, 7.9%가 메스티소, 8.6%가 아메리카 원주민, 9.8%가 흑인이었다. 1784년 칠로에현의 주지사 프란시스코 우르타도는 인구 조사를 실시하여 인구가 26,703명임을 확인했으며, 이 중 64.4%가 백인, 33.5%가 원주민이었다. 콘셉시온 교구는 1812년 마울레강 이남 지역에서 인구 조사를 실시했으나, 원주민 인구나 칠로에현 주민은 포함하지 않았다. 이 지역 인구는 210,567명으로 추산되며, 이 중 86.1%가 스페인인 또는 유럽계, 10%가 원주민, 3.7%가 메스티소, 흑인, 물라토였다.
3.3. 독립과 국가 건설

1808년, 나폴레옹이 그의 형 조제프를 스페인 국왕으로 즉위시킨 사건은 칠레가 스페인으로부터 독립하려는 움직임을 촉발시켰다. 폐위된 왕의 후계자인 페르난도 7세의 이름으로 1810년 9월 18일 국가 평의회(훈타)가 결성되었다. 칠레 정부 평의회는 스페인 군주국 내에서 칠레의 자치 정부를 선포했으며, 이 날을 기념하여 칠레는 매년 9월 18일을 국경일(피에스타스 파트리아스)로 기념한다.
이러한 사건 이후, 가장 저명한 애국자 중 한 명인 호세 미겔 카레라와 그의 두 형제 후안 호세, 루이스 카레라의 지휘 아래 완전한 독립을 위한 운동이 곧 광범위한 지지를 얻었다. 스페인이 레콩키스타라고 불리는 기간 동안 자의적인 통치를 재확립하려는 시도는 카레라의 지도력에 도전한 베르나르도 오이긴스의 내부 투쟁을 포함한 장기적인 투쟁으로 이어졌다.
간헐적인 전쟁은 1817년까지 계속되었다. 카레라가 아르헨티나에 수감된 사이, 오이긴스와 반(反)카레라파인 아르헨티나 독립 전쟁의 영웅 호세 데 산 마르틴은 안데스 군대를 이끌고 안데스 산맥을 넘어 칠레로 진격하여 왕당파를 격파했다. 1818년 2월 12일, 칠레는 독립 공화국으로 선포되었다. 그러나 정치적 반란은 사회적 변화를 거의 가져오지 못했고, 19세기 칠레 사회는 가족 정치와 로마 가톨릭 교회의 큰 영향을 받은 계층화된 식민지 사회 구조의 본질을 유지했다. 강력한 대통령제가 결국 등장했지만, 부유한 지주들은 여전히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했다. 베르나르도 오이긴스는 한때 필리핀을 스페인으로부터 해방시키고 이 섬들을 통합하여 칠레를 확장할 계획을 세웠다. 이와 관련하여 그는 1821년 11월 12일자 편지에서 스코틀랜드 해군 장교 토머스 코크런 경에게 과야킬, 갈라파고스 제도, 그리고 필리핀을 정복할 계획을 밝혔다. 준비는 있었으나 오이긴스가 망명하면서 계획은 실현되지 못했다.

칠레는 점차 영향력을 확대하고 국경을 확립하기 시작했다. 탄타우코 조약에 의해 1826년 칠로에 군도가 편입되었다. 차냐르시요에서 은광석이 발견되고 발파라이소 항구의 무역이 성장하면서 경제가 호황을 누리기 시작했으며, 이는 페루와의 태평양 해상 우위 다툼으로 이어졌다. 동시에 남부 칠레의 주권을 강화하려는 시도가 이루어져 아라우카니아로의 침투를 강화하고 1848년 양키우에에 독일 이민자들을 정착시켰다. 존 윌리엄스 윌슨의 지휘 아래 안쿠드 스쿠너에 의한 불네스 요새 설립을 통해, 마가야네스주는 1843년부터 칠레의 통제 하에 놓이기 시작했으며, 당시 볼리비아와 분쟁 중이던 안토파가스타주에는 사람들이 정착하기 시작했다.
보수파가 승리한 1829-1830년 칠레 내전 이후, 호아킨 프리에토 행정부 하에서 삼부 장관 디에고 포르탈레스의 큰 영향력 아래 1833년 칠레 헌법이 제정되고 발효되었다. 1850년대에는 칠레에서 두 차례의 내전이 더 발생했는데, 하나는 1851년 칠레 혁명이었고 다른 하나는 1859년 칠레 혁명이었다.
19세기 말, 산티아고 정부는 아라우카니아 점령을 통해 남부에서의 입지를 공고히 했다. 1881년 칠레-아르헨티나 국경 조약은 마젤란 해협에 대한 칠레의 주권을 확인했지만, 1842년에 시작된 분쟁 이후 나머지 동파타고니아에 대한 영유권 주장을 포기하게 만들었다. 페루 및 볼리비아와의 태평양 전쟁(1879-83년) 결과, 칠레는 북쪽으로 영토를 거의 3분의 1 확장하고 볼리비아의 태평양 접근을 차단했으며, 가치 있는 초석 매장지를 확보하여 국가적 번영의 시대를 열었다. 칠레는 1870년까지 남아메리카의 고소득 국가 중 하나로 부상했다.
1888년 9월 9일, 칠레는 타히티 주교 조제 마리아 베르디에르 몬시뇰의 노력 덕분에 현지 왕과의 상호 의지 협정 체결을 통해 이스터섬을 점령했다. 이 섬은 지속적으로 노예 상인들의 공격을 받고 있었다. 해군 장교 폴리카르포 토로가 칠레 정부를 대표했고, 아타무 테케나가 라파누이 평의회 의장이었다. 라파누이 원로들은 족장으로서의 칭호, 토지 소유권, 문화와 전통의 동등한 유효성을 포기하지 않고 주권을 양도했다. 라파누이인들은 아무것도 팔지 않았으며, 동등한 조건으로 칠레에 통합되었다.
1891년 칠레 내전은 대통령과 의회 간의 권력 재분배를 가져왔고, 칠레는 의원내각제 민주주의를 확립했다. 그러나 이 내전은 지역 산업 발전을 지지하는 세력과 강력한 칠레 은행 이익 집단, 특히 외국 투자자와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던 에드워드 가문 간의 경쟁이기도 했다. 곧이어 칠레는 아르헨티나와의 값비싼 해군 군비 경쟁에 휘말렸고, 푸나 데 아타카마 분쟁으로 인해 전쟁 직전까지 갔다.
태평양 전쟁 이후 칠레는 아메리카 대륙의 해군 강국으로 부상했으며, 심지어 당시 콜롬비아 영토였던 1885년 파나마 위기에 미국의 개입에 항의하며 군함을 파견하기도 했다. 미국과 칠레는 볼티모어 위기를 겪으며 전쟁 직전까지 갔는데, 이는 칠레가 서반구에서 미국의 패권 의도에 잠재적인 위협이었기 때문이다.
3.4. 20세기

20세기 초, 칠레는 정치적, 사회경제적으로 큰 변화를 겪었다. 이 시기는 의회 공화국 시기의 정치적 불안정과 사회 갈등, 인민연합 정부의 등장과 군부 쿠데타, 그리고 피노체트 군부 독재와 민주주의로의 이행 과정으로 점철되었다.
3.4.1. 의회 공화국과 정치적 변동
20세기 초반 칠레는 의회 공화정 시기를 맞이했으나, 정치적 불안정과 사회 갈등이 지속되었다. 집권층의 이익을 보호하는 과두 정치 체제로 변질되면서 경제는 부분적으로 퇴보했다. 1920년대에는 중산층과 노동 계급이 부상하여 개혁주의 대통령 아르투로 알레산드리를 선출했으나, 그의 정책은 보수적인 의회에 의해 좌절되었다. 이 시기, 대중적 지지를 받는 마르크스주의 그룹들이 등장했다.
1902년 칠레와 아르헨티나는 영국 왕실이 중재한 1902년 안데스산맥 아르헨티나-칠레 중재 판결 결과를 수용했다. 1903년에는 푸나 데 아타카마 분쟁이 해결되었고, 1904년 칠레와 볼리비아는 양국 간 국경을 명확히 하는 평화 우호 조약을 체결했다.
1924년 루이스 알타미라노 장군이 이끈 군사 쿠데타는 1932년까지 지속된 정치적 불안정 시기를 촉발했다. 이 기간 동안 집권한 10개의 정부 중 가장 오래 지속된 것은 카를로스 이바녜스 델 캄포 장군의 정부로, 그는 1925년에 잠시 권력을 잡았다가 1927년부터 1931년까지 사실상의 독재 정권을 유지했다. 이바녜스 델 캄포는 민주적으로 선출된 후임자에게 권력을 이양함으로써 30년 이상 정치인으로 활동할 수 있을 만큼 충분한 대중적 지지를 유지했다.
1932년 헌정 질서가 회복되면서 강력한 중산층 정당인 급진당이 등장하여 이후 20년간 연립 정부의 핵심 세력이 되었다. 급진당 집권기(1932년~1952년) 동안 국가는 경제에서 더 큰 역할을 수행했다. 1952년 유권자들은 이바녜스 델 캄포를 다시 6년 임기의 대통령으로 선출했다. 호르헤 알레산드리는 1958년 이바녜스 델 캄포의 뒤를 이어 칠레 보수주의를 민주적으로 복귀시켰다.
1964년 기독교민주당의 에두아르도 프레이 몬탈바가 압도적인 과반수로 대통령에 당선되면서 주요 개혁의 시기가 시작되었다. "자유 속의 혁명"이라는 슬로건 아래, 프레이 행정부는 교육, 주택, 농업 개혁(농업 노동자의 농촌 조합화 포함) 등 광범위한 사회경제적 프로그램을 추진했다. 그러나 1967년경 프레이는 그의 개혁이 불충분하다고 비판하는 좌파와 과도하다고 생각하는 보수파로부터 점점 더 많은 반대에 직면했다. 임기 말에 프레이는 당의 야심찬 목표를 완전히 달성하지 못했다.
3.4.2. 인민연합 정부와 군부 쿠데타

1970년 대통령 선거에서 칠레 사회당의 살바도르 아옌데 상원의원이 삼파전에서 단순 다수표를 얻어 부분적인 승리를 거두었다. 그는 "인민연합" 연립정부의 일원으로, 이 연립에는 공산당, 급진당, 사회민주당, 기독교민주당 반체제파, 인민통합행동운동, 독립인민행동 등이 포함되어 있었다. 아옌데는 절대 과반수를 얻지 못하고 35% 미만의 득표율을 기록했다.
칠레 의회는 주요 후보인 아옌데와 전 대통령 호르헤 알레산드리 사이에서 결선 투표를 실시했고, 전통에 따라 153대 35로 아옌데를 선택했다. 프레이는 기독교민주당이 노동자 정당이며 우익과 공동 전선을 형성할 수 없다는 이유로 알레산드리와의 동맹을 거부했다.
아옌데 정부는 노동자 이익 증진, 사법 체제를 "사회주의적 합법성"으로 대체, 은행 국유화 및 다른 은행 파산 유도, MIR로 알려진 "인민 민병대" 강화 등을 포함한 정책을 추진했다. 이전 프레이 대통령 시절 시작된 인민연합 강령은 칠레 주요 구리 광산의 국유화를 헌법 개정 형태로 요구했고, 이 조치는 의회에서 만장일치로 통과되었다.
이러한 사회주의 정책 추진은 국내외적으로 큰 반향을 일으켰다. 미국 리처드 닉슨 행정부는 아옌데 정부를 신속하게 불안정하게 만들기 위해 칠레에 비밀 요원들을 조직하고 투입했다. 또한 미국의 금융 압박은 칠레에 대한 국제 경제 신용을 제한했다. 1972년에 시작된 경제 불황은 아옌데의 사회주의 프로그램에 대한 자본 도피, 민간 투자 급감, 은행 예금 인출로 인해 더욱 악화되었다. 생산은 감소하고 실업률은 증가했다. 아옌데는 소비자 지출을 늘리고 소득을 하향 재분배하기 위해 가격 동결, 임금 인상, 세제 개혁 등의 조치를 취했다. 공공-민간 합동 공공 사업 프로젝트는 실업률 감소에 기여했다. 은행 부문의 상당 부분이 국유화되었고, 구리, 석탄, 철, 초석, 철강 산업의 많은 기업들이 수용, 국유화되거나 국가 개입 대상이 되었다. 아옌데 행정부 첫해에는 산업 생산량이 급격히 증가하고 실업률이 감소했다.
그러나 경제 문제는 아옌데의 공공 지출(주로 화폐 발행으로 조달)과 상업 은행의 낮은 신용 등급으로 인해 더욱 악화되었다. 동시에 야당 언론, 정치인, 기업 조합 및 기타 조직들은 국내 정치 및 경제 불안정화 캠페인을 가속화하는 데 일조했으며, 이 중 일부는 미국의 지원을 받았다. 1973년 초, 인플레이션은 통제 불능 상태에 빠졌다.
1973년 5월 26일, 아옌데 정부에 반대하던 칠레 대법원은 만장일치로 아옌데의 "국가 합법성 파괴"를 규탄했다. 칠레 헌법상 불법이었지만, 법원은 곧이어 일어날 피노체트의 권력 장악을 지지하고 강화했다. 결국 1973년 9월 11일, 아우구스토 피노체트 장군이 이끄는 군부가 쿠데타를 일으켜 아옌데 정부를 전복시켰다. 군대가 대통령궁을 폭격하는 동안 아옌데는 자살한 것으로 알려졌다. 쿠데타 이후 헨리 키신저는 미국 대통령 리처드 닉슨에게 미국이 쿠데타를 "도왔다"고 보고했다. 역사학자 세바스티안 우르타도에 따르면, 미국 정부가 칠레 군대의 9월 11일 쿠데타 작전 조정 및 실행에 적극적으로 관여했다는 문서 증거는 없지만, 닉슨 대통령은 처음부터 아옌데 정부가 공고화되지 않기를 바랐으며 정부 불안정화 캠페인에 적극적이고 결정적으로 행동했다.
3.4.3. 군부 독재 시기 (1973년~1990년)


1973년 9월 11일, 아우구스토 피노체트 장군이 이끄는 군사 평의회(훈타)가 살바도르 아옌데 대통령의 인민연합 정부를 전복시키고 정권을 장악했다. 피노체트 정권은 1973년부터 1990년까지 17년간 지속되었으며, 이 기간 동안 칠레는 정치적 억압과 심각한 인권 침해를 겪었다.
정권 초기, 군부는 정치 활동을 금지하고 의회를 해산했으며, 언론 검열을 실시하고 좌파 정당 및 단체에 대한 대대적인 탄압을 자행했다. DINA(국가정보국)와 이후 CNI(국가정보센터)로 개편된 비밀경찰 조직은 반체제 인사들을 체포, 고문, 살해하는 데 앞장섰다. 이 시기 칠레는 주변 남미 국가들의 우익 독재 정권들과 연계하여 반체제 인사들을 국경을 넘어 탄압하는 콘도르 작전에도 적극 참여했다. 1973년 10월에는 최소 72명이 죽음의 행렬 작전으로 학살당했다. 레티그 보고서와 발레치 위원회에 따르면, 군부 독재 기간 동안 최소 2,115명이 살해당했고, 27,265명이 고문을 당했으며 (이 중 12세 미만 아동 88명 포함), 2011년 추가 조사로 9,800명의 희생자가 더 확인되어 총 정치적 이유로 살해, 고문 또는 투옥된 사람은 40,018명에 달했다. 수감자들로 가득 찼던 국립 경기장에서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시인이자 가수였던 빅토르 하라가 고문당하고 살해당하기도 했다.
피노체트 정권은 정치적 안정을 명분으로 강력한 중앙집권적 통치를 펼쳤으며, 1980년 논란의 여지가 있는 국민투표를 통해 신헌법(1980년 칠레 헌법)을 제정하여 피노체트 자신을 8년 임기의 대통령으로 만들었다. 이 헌법은 오르투사르 위원회의 자문을 받아 제정되었다. 경제적으로는 시카고 학파의 신자유주의 경제학자들(시카고 보이즈)을 등용하여 급진적인 시장경제 개혁을 추진했다. 이 개혁에는 국영기업 민영화, 무역 자유화, 규제 완화, 재정 긴축 등이 포함되었다. 이러한 정책들은 단기적으로 높은 인플레이션을 억제하고 경제 성장을 이끌어내 "칠레의 기적"이라고 불리기도 했으나, 동시에 빈부 격차 심화, 실업률 증가, 사회복지 축소 등의 문제를 야기했다. 구리 산업과 기타 중요한 광물 자원은 경쟁에 개방되지 않았다. 수백 명의 헌신적인 칠레 혁명가들은 니카라과의 산디니스타 군대, 아르헨티나의 게릴라 부대 또는 쿠바, 동유럽, 북아프리카의 훈련소에 합류했다.
1980년대 후반, 1982년 경제 붕괴와 1983년부터 1988년까지 이어진 대규모 시민 저항 운동의 결과로, 정부는 점차 집회, 언론, 결사의 자유를 확대하여 노동조합 및 정치 활동을 포함시켰다. 재무장관 에르난 부치 하에 시장 지향적 개혁이 시작되었다. 그러나 국내외적인 민주화 압력은 계속 커졌고, 결국 1988년 10월 5일 실시된 국민투표에서 피노체트는 대통령 임기 연장에 실패했다 (찬성 44%, 반대 56%). 이 결과는 칠레 민주주의로의 이행에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3.4.4. 민주주의로의 이행
1988년 국민투표에서 아우구스토 피노체트의 집권 연장이 부결된 이후, 칠레는 민주주의로의 전환 과정을 밟기 시작했다. 1989년 12월 14일, 새로운 대통령과 양원제 의회의 다수 의원을 선출하는 선거가 치러졌다. 이 선거에서 17개 정당 연합인 콘세르타시온의 후보였던 기독교민주당 소속 파트리시오 아일윈이 55%의 절대 과반수 득표로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아일윈 대통령은 1990년부터 1994년까지 집권했으며, 이 시기는 과도기로 간주된다. 그의 정부는 민주적 제도를 복원하고, 새로운 국가 정책을 수립하며, 이전 군부 정권의 경제 구조를 유지하는 한편, 빈곤 감소와 군부 독재 시절의 인권 침해 문제 해결에 주력했다. 특히, 과거사 청산을 위해 레티그 보고서로 알려진 "진실과 화해를 위한 국가 위원회"를 설립하여 군부 독재 하에서의 사망 및 실종 사건을 조사하고 공식적인 기록을 남겼다. 이는 칠레 사회의 화해와 정의 실현을 위한 중요한 첫걸음이었다.
이후 콘세르타시온 연립 정부는 2010년까지 지속적으로 집권하며 민주주의를 공고히 하고 경제 발전을 추구했다. 과거사 청산 노력은 발레치 위원회 등으로 이어지며 고문 피해자들에 대한 조사와 보상도 이루어졌다. 그러나 피노체트 전 대통령에 대한 사법 처리 문제는 칠레 사회 내에서 여전히 논쟁적인 사안으로 남아 있었다.
3.5. 21세기

2000년대 이후 칠레는 정치적 안정과 경제 성장을 지속하면서도 여러 중요한 사회적 변화와 도전에 직면했다. 콘세르타시オン 연립 정부는 2010년까지 집권을 이어갔으며, 이 기간 동안 리카르도 라고스(2000-2006)와 미첼 바첼레트(2006-2010, 칠레 최초의 여성 대통령)가 대통령직을 수행했다. 이들은 사회 정책 확대와 국제 관계 강화에 힘썼다.
1993년 12월, 기독교민주당 소속 에두아르도 프레이 루이스 타글레(전 대통령 에두아르도 프레이 몬탈바의 아들)가 콘세르타시온 연합을 이끌고 58%의 압도적인 득표율로 승리했다. 프레이 루이스 타글레의 뒤를 이어 2000년에는 사회당 소속 리카르도 라고스가 우익 연합 칠레를 위한 동맹의 호아킨 라빈을 상대로 전례 없는 결선 투표 끝에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2006년 1월, 칠레 국민들은 사회당 소속 미첼 바첼레트 헤리아를 최초의 여성 대통령으로 선출하여 국민혁신당의 세바스티안 피녜라를 물리치고 콘세르타시온의 집권을 4년 더 연장시켰다. 2010년 1월, 칠레 국민들은 세바스티안 피녜라를 20년 만의 첫 우익 대통령으로 선출하여 콘세르타시온의 전 대통령 에두아르도 프레이 루이스 타글레를 물리치고 바첼레트의 뒤를 이어 4년 임기를 수행하게 되었다. 임기 제한으로 인해 세바스티안 피녜라는 2013년에 재선에 출마하지 않았고, 그의 임기는 2014년 3월에 만료되어 미첼 바첼레트가 다시 집권했다. 세바스티안 피녜라는 2017년 12월 대통령 선거에서 승리한 후 2018년에 다시 바첼레트의 뒤를 이어 칠레 대통령이 되었다.
2010년 2월 27일, 칠레는 규모 8.8의 2010년 칠레 지진으로 큰 피해를 입었다. 이 지진은 당시 기록된 지진 중 다섯 번째로 강력한 지진이었으며, 500명 이상이 사망(대부분 쓰나미로 인한 사망)하고 백만 명 이상이 집을 잃었다. 지진 이후 여러 차례의 여진이 이어졌다. 초기 피해 추정액은 150억~300억 달러로, 칠레 실질 국내총생산(GDP)의 약 10~15%에 해당했다.
칠레는 2010년 33명의 광부 구출 성공으로 세계적인 인정을 받았다. 2010년 8월 5일, 칠레 북부 코피아포 인근 아타카마 사막의 산호세 구리 및 금광에서 접근 터널이 붕괴되어 33명의 남성이 지하 700 m에 갇혔다. 칠레 정부가 조직한 구조 노력으로 17일 후 광부들의 위치가 확인되었다. 33명 모두 약 24시간에 걸쳐 2010년 10월 13일 지상으로 구조되었으며, 이 과정은 전 세계에 생중계되었다.

2010년 중도우파 연합 후보 세바스티안 피녜라가 대통령에 당선되며 20년 만에 정권 교체가 이루어졌으나, 2014년 바첼레트가 재선에 성공하며 다시 콘세르타시온(당시 명칭은 누에바 마요리아)이 집권했다. 피녜라는 2018년에 다시 대통령으로 선출되었다.
2019년부터 2022년까지 칠레는 산티아고 지하철 요금 인상, 생활비 증가, 민영화, 경제 불평등에 대한 불만으로 촉발된 대규모 전국적인 시위를 겪었다. 이는 피노체트 시대에 제정된 헌법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 제기로 이어졌고, 2020년 10월 국민투표를 통해 새 헌법 제정이 결정되었다. 2021년 5월 제헌의회 의원 선거가 치러졌으나, 제헌의회가 마련한 새 헌법 초안은 2022년 9월 국민투표에서 부결되었다. 이후 보수 성향의 헌법위원회가 작성한 두 번째 새 헌법 초안 역시 2023년 12월 국민투표에서 부결되면서, 헌법 개정 논의는 교착 상태에 빠졌다.
2021년 12월, 좌파 성향의 35세 전 학생 시위 지도자 가브리엘 보리치가 대통령 선거에서 승리하여 칠레 역사상 최연소 대통령이 되었으며, 2022년 3월 11일 취임했다. 그의 내각은 24명 중 14명이 여성으로 구성되어 여성 과반수 내각을 이루었다.
4. 지리
칠레는 남아메리카 대륙 서부에 위치하며, 안데스 산맥 서쪽의 길고 좁은 해안 국가이다. 북쪽에서 남쪽으로 4300 km 이상 뻗어 있지만, 가장 넓은 동서 폭은 350 km에 불과하며 가장 좁은 곳은 64 km, 평균 폭은 175 km이다. 이러한 지리적 특성으로 인해 매우 다양한 기후와 경관을 포함한다. 국토 면적은 75.70 만 km2이며, 환태평양 조산대에 위치한다. 태평양의 섬들과 남극 영유권 주장을 제외하면, 칠레는 남위 17도에서 56도, 서경 66도에서 75도 사이에 자리 잡고 있다.
칠레는 세계에서 남북으로 가장 긴 나라 중 하나이다. 본토만 고려할 경우, 이 그룹 내에서 동서 폭이 좁다는 점에서 독특하며, 다른 남북으로 긴 나라들(브라질, 러시아, 캐나다, 미국 등)은 모두 동서 폭이 10배 이상 넓다. 칠레는 또한 자국 영토의 일부로 남극 대륙 약 125.00 만 km2(칠레령 남극 지역)를 주장한다. 그러나 이 주장은 칠레가 서명국인 남극 조약의 조건에 따라 현재 효력이 정지된 상태이다. 지리적으로 본토에 위치한 국가 중 세계 최남단 국가이다.
칠레는 폴리네시아 최동단 섬들인 이스터섬과 살라스이고메스섬(1888년 영토 편입), 그리고 본토에서 600 km 이상 떨어진 후안페르난데스 제도를 관할한다. 또한 데스벤투라다스 제도의 작은 섬들인 산 암브로시오섬과 산 펠릭스섬도 관할하지만, 일부 지역 어부들만 일시적으로 거주한다. 이 섬들은 칠레의 영해 주장을 태평양으로 확장시킨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북부의 아타카마 사막은 주로 구리와 초석 등 막대한 광물 자원을 보유하고 있다. 산티아고를 포함하는 상대적으로 작은 중앙 계곡은 인구와 농업 자원 면에서 국가를 지배한다. 이 지역은 또한 19세기 후반 칠레가 북부와 남부 지역을 통합하면서 확장된 역사적 중심지이기도 하다. 칠레 남부는 숲과 목초지가 풍부하며, 일련의 화산과 호수가 특징이다. 남부 해안은 피오르, 작은 만, 해협, 구불구불한 반도, 섬들이 미로처럼 얽혀 있다. 안데스 산맥은 동쪽 국경에 위치한다.
4.1. 지형과 지질

칠레는 나스카판과 남극판이 남아메리카판 아래로 섭입함에 따라 형성된 환태평양 조산대의 일부로, 지진과 화산 활동이 매우 활발한 지역에 위치한다. 후기 고생대(2억 5,100만 년 전)에 칠레는 곤드와나 대륙의 일부였다. 당시 해양 퇴적물이 쌓이던 함몰 지형이었으나, 6,600만 년 전 중생대 말 나스카판과 남아메리카판의 충돌로 인해 안데스 산맥이 융기하기 시작했다. 수백만 년에 걸쳐 암석이褶曲(습곡)되면서 현재의 지형이 형성되었다.
칠레의 지형은 국토의 약 80%를 차지하는 두 개의 산맥과 그 사이에 놓인 중앙 계곡으로 구성된다. 동쪽에는 안데스 산맥이 볼리비아 및 아르헨티나와의 자연 국경을 이루며, 아타카마주 지역에서 가장 높은 봉우리인 오호스델살라도산(해발 6891.3 m)이 솟아 있다. 이는 세계에서 가장 높은 활화산이기도 하다. 서쪽에는 안데스 산맥보다 고도가 낮은 칠레 해안 산맥이 있으며, 가장 높은 지점은 안토파가스타주 남부 시에라 비쿠냐 마케나에 위치한 비쿠냐 마케나산(해발 3114 m)이다. 해안 산맥과 태평양 사이에는 길이가 다양한 해안 평야가 발달하여 해안 도시와 주요 항구가 들어서 있다. 일부 지역은 안데스 산맥 동쪽에 영토를 포함하며, 파타고니아 스텝과 마젤란 지역, 또는 고산으로 둘러싸인 고원 지대(알티플라노 또는 푸나 데 아타카마)를 이룬다.

최북단(Norte Grande)은 국토 북쪽 경계에서 남위 26도까지 이어지는 지역으로, 처음 세 개 주를 포함한다. 세계에서 가장 건조한 아타카마 사막이 특징이며, 사막은 팜파 델 타마루갈로 알려진 지역에서 발원하는 하천들에 의해 단절된다. 안데스 산맥은 두 갈래로 나뉘며, 동쪽 산맥은 볼리비아를 통과한다. 이 지역의 안데스 산맥은 고도가 높고 화산 활동이 활발하여 알티플라노 고원과 살라르 데 아타카마와 같은 염호 구조가 형성되었다. 이는 오랜 시간에 걸쳐 퇴적물이 점진적으로 축적된 결과이다.
그 남쪽으로는 북부 소 사막 지대(Norte Chico)가 아콩카과강까지 이어진다. 안데스 산맥은 남쪽으로 갈수록 고도가 낮아지고 해안에 가까워지며, 칠레 영토의 가장 좁은 부분인 이야펠 부근에서는 해안까지의 거리가 90 km에 불과하다. 두 산맥이 교차하면서 중앙 계곡은 거의 사라진다. 이 지역을 흐르는 강들은 횡단 계곡을 형성하여 최근 농업이 크게 발전했으며, 해안 평야도 확장되기 시작했다.
중앙 지대(Zona Central)는 칠레에서 인구가 가장 밀집된 지역이다. 해안 평야는 넓고 태평양을 따라 도시와 항구가 들어서 있다. 안데스 산맥은 해발 6000 m 이상의 고도를 유지하지만, 평균적으로 4000 m까지 서서히 낮아진다. 중앙 계곡이 다시 나타나 비옥한 계곡을 이루며, 퇴적물 축적으로 농업 발달과 인간 정착이 가능하다. 남쪽으로는 나우엘부타 산맥에서 해안 산맥이 다시 나타나고, 라 프론테라 지역에서는 빙하 퇴적물이 일련의 호수를 형성한다.
파타고니아는 남위 41도에 위치한 렐론카비만 내부에서 남쪽으로 뻗어 있다. 양키우에 빙하기 동안 이 지역은 빙하로 덮여 있었고, 이로 인해 칠레의 지형 구조가 심하게 침식되었다. 그 결과 중앙 계곡은 바다 밑으로 가라앉았고, 해안 산맥은 칠로에섬과 초노스 군도와 같은 일련의 군도로 솟아올랐다가 남위 47도의 타이타오반도에서 사라진다. 안데스 산맥은 높이가 낮아지고 빙하 작용으로 인한 침식으로 피오르가 형성되었다. 대륙의 안데스 산맥 동쪽이나 티에라델푸에고섬 북쪽에는 비교적 평탄한 평야가 있으며, 마젤란 해협에서는 넓은 지역을 차지한다. 안데스 산맥은 이전에 해안 산맥이 그랬던 것처럼 바다로 갈라지면서 무수한 섬과 작은 섬을 형성하고 바다 속으로 사라졌다가 남극 스코샤 열도에서 다시 나타나고, 이후 남극 반도에서 안타르탄데스 산맥으로 불리며 서경 53도에서 90도 사이의 칠레령 남극 지역에 놓여 있다.
태평양 한가운데에는 칠레가 주권을 가진 여러 화산섬들이 있으며, 이들을 통칭하여 칠레 도서 지역이라고 한다. 후안 페르난데스 제도와 이스터섬은 나스카판과 태평양판 사이의 단층 지대인 동태평양 해령에 위치한다.
4.2. 기후
칠레의 다양한 기후는 북쪽의 세계에서 가장 건조한 사막인 아타카마 사막에서부터 중앙의 지중해성 기후, 이스터섬의 열대 우림 기후, 동쪽과 남쪽의 서안 해양성 기후(고산 툰드라와 빙하 포함)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쾨펜 시스템에 따르면, 칠레 국경 내에는 최소 18개의 주요 기후 아형이 존재한다. 국토 대부분 지역에는 사계절이 뚜렷하게 나타난다: 여름 (12월~2월), 가을 (3월~5월), 겨울 (6월~8월), 봄 (9월~11월).
이러한 기후 다양성은 칠레의 길고 좁은 지형, 안데스 산맥의 존재, 그리고 훔볼트 해류와 같은 해류의 영향을 받는다. 북부 아타카마 사막은 극도로 건조하며 연간 강수량이 거의 없다. 중앙 지역은 따뜻하고 건조한 여름과 온화하고 습한 겨울이 특징인 지중해성 기후를 보인다. 남쪽으로 갈수록 강수량이 증가하며, 서안 해양성 기후가 나타나 연중 비가 많이 내리고 기온이 낮다. 파타고니아 지역과 안데스 고산 지대는 더 춥고 바람이 많이 부는 기후를 보인다. 이스터섬은 아열대 기후로 연중 온화하다.
기후 변화는 칠레의 산불, 홍수, 산사태, 가뭄, 해수면 상승 등 다양한 자연재해의 빈도와 심각성을 변화시킬 것으로 예상된다. 기후 변화 영향에 취약한 주요 부문으로는 농업, 어업, 수자원 안보 등이 있다.
4.3. 수자원
칠레의 영토적 특성으로 인해, 일반적으로 길이가 짧고 유량이 적은 수많은 강이 국토를 가로지른다. 이 강들은 보통 안데스 산맥에서 발원하여 동쪽에서 서쪽으로 흘러 태평양으로 유입된다.
아타카마 사막이 있는 북부 대 사막 지대(Norte Grande)에는 칠레에서 가장 긴 강인 로아강(길이 440 km)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짧은 내륙수계 하천만이 존재한다. 고지대 계곡의 습지 지역에는 해발 4500 m에 위치한 충가라호가 형성되어 있다. 이 호수와 라우카강은 루타강과 마찬가지로 볼리비아와 공유한다.
칠레 중북부 지역에는 농업적으로 중요한 계곡을 형성하는 강의 수가 증가한다. 주목할 만한 강으로는 길이 75 km의 엘키강, 142 km의 아콩카과강, 250 km의 마이포강과 그 지류인 110 km의 마포초강, 그리고 240 km의 마울레강이 있다. 이들 강의 수원은 주로 여름철 안데스 산맥의 눈이 녹은 물과 겨울철 강우이다. 이 지역의 주요 호수로는 인공호인 라펠호, 콜분 마울레 호수, 라하 호수 등이 있다.
남쪽으로 갈수록 수자원은 더욱 풍부해진다. 비오비오강(길이 380 km)은 수백 개의 마을을 지나며 칠레의 중요한 수력 발전원으로 기능한다. 그 외 주요 강으로는 임페리알강(길이 55 km), 비야리카호를 수원으로 하는 톨텐강(길이 231 km) 등이 있다. 이 지역에는 비야리카호를 비롯하여 란코호, 푸예우에호, 루판코호, 토도스 로스 산토스호, 그리고 칠레에서 두 번째로 큰 양키우에호 등 아름다운 빙하호들이 산재해 있다.
파타고니아 지역의 강들은 길이가 짧지만 유속이 빠르며, 푸탈레우푸강, 팔레나강(길이 240 km), 칠레에서 가장 유량이 풍부한 베이커강(길이 370 km), 파스쿠아강(길이 62 km) 등이 대표적이다. 이 지역의 호수들, 예를 들어 헤네랄카레라호(칠레에서 가장 큰 호수로 칠레 측 면적 970 km2), 코크란호, 오이긴스호, 파냐노호(티에라델푸에고섬에 위치) 등은 아르헨티나와 국경을 공유하는 경우가 많다.
4.4. 생물 다양성

칠레의 동식물상은 독특한 지리적 특성으로 인해 높은 고유성을 특징으로 한다. 대륙 칠레에서는 북쪽의 아타카마 사막과 동쪽의 안데스 산맥이 동식물의 고립을 초래하는 장벽 역할을 해왔다. 여기에 4300 km가 넘는 칠레의 엄청난 남북 길이가 더해져 광범위한 기후와 환경이 형성되었으며, 이는 크게 북부 사막 지역, 중부 칠레, 남부 습윤 지역의 세 가지 일반 구역으로 나눌 수 있다.
칠레의 자생 식물은 다른 남아메리카 국가들의 식물상에 비해 종 수가 상대적으로 적다. 최북단 해안 및 중부 지역은 식생이 거의 없으며, 세계에서 가장 절대적인 사막에 가깝다. 안데스 산맥의 경사면에는 드문드문 톨라 사막 관목 외에 풀도 자란다. 중앙 계곡은 여러 종의 선인장, 강인한 에스피노, 칠레 소나무, 남부 너도밤나무(노토파구스), 그리고 칠레의 국화인 붉은 종 모양의 꽃 코피우에가 특징이다.
비오비오강 이남의 칠레 남부에서는 폭우로 인해 월계수, 목련, 다양한 종류의 침엽수와 너도밤나무로 이루어진 울창한 숲이 형성되었으며, 남쪽으로 갈수록 크기가 작아지고 왜소해진다. 극남의 추운 기온과 바람은 울창한 삼림을 방해한다. 초원은 동부 마가야네스주와 북부 티에라델푸에고주(파타고니아)에서 발견된다. 칠레 식물상의 상당 부분은 이웃 아르헨티나의 식물상과 구별되는데, 이는 안데스 장벽이 형성될 당시 존재했음을 시사한다.

일부 칠레 식물상은 백악기 빙하기 동안 형성된 육교로 인해 남극 기원을 가지고 있으며, 이로 인해 식물들이 남극에서 남아메리카로 이동할 수 있었다. 2018년 칠레의 산림 경관 보전 지수 평균 점수는 7.37/10으로, 172개국 중 세계 43위를 차지했다.
칠레에는 3,000종 이상의 균류가 기록되어 있지만, 이 수치는 전체와는 거리가 멀다. 칠레에 서식하는 균류 종의 실제 총 수는 훨씬 더 많을 가능성이 높으며, 전 세계 모든 균류 중 약 7%만이 지금까지 발견되었다는 일반적인 추정치를 고려하면 더욱 그렇다. 이용 가능한 정보의 양은 여전히 매우 적지만, 칠레 고유의 균류 종 수를 추정하기 위한 첫 번째 노력이 이루어졌으며, 1995종이 잠정적으로 칠레 고유종으로 확인되었다.
칠레의 지리적 고립은 동물 생명체의 이주를 제한하여 독특한 남아메리카 동물 중 일부만이 발견된다. 대형 포유류 중에는 퓨마, 라마와 유사한 과나코, 여우와 유사한 칠라 등이 있다. 산림 지역에는 여러 종류의 유대류와 푸두로 알려진 작은 사슴이 발견된다.
작은 새 종류는 많지만, 라틴 아메리카의 일반적인 대형 조류 대부분은 없다. 자생하는 민물고기는 거의 없지만, 북미 송어가 안데스 호수에 성공적으로 도입되었다. 훔볼트 해류의 근접성으로 인해 바닷물에는 물고기와 다른 해양 생물이 풍부하며, 이는 여러 펭귄을 포함한 다양한 물새를 부양한다. 고래도 풍부하며, 이 지역에는 약 6종의 물개가 발견된다.
5. 정치



칠레는 대통령 중심제의 공화국으로, 삼권분립 원칙에 따라 행정부, 입법부, 사법부가 구성되어 있다. 다당제 민주주의 국가이며, 시민의 정치 참여와 기본권이 보장된다. 현재 칠레의 헌법은 1980년 아우구스토 피노체트 군부 독재 시절 국민투표를 통해 제정된 것으로, 이후 여러 차례 개정을 거쳤다.
5.1. 헌법과 정부구조
현재 칠레 헌법은 1980년 하이메 구스만에 의해 초안이 작성되었고, 그해 9월 아우구스토 피노체트 군부 독재 하에서 일부 관찰자들에게 "매우 비정상적"이라고 여겨지는 국민투표를 통해 승인되었다. 이 헌법은 1981년 3월에 발효되었다. 1988년 국민투표에서 피노체트가 패배한 후, 헌법은 향후 헌법 개정 조항을 완화하기 위해 수정되었다. 2005년 9월, 리카르도 라고스 대통령은 의회에서 통과된 여러 헌법 개정안에 서명하여 법으로 공포했다. 여기에는 임명직 상원의원과 종신 상원의원직 폐지, 대통령에게 군 총사령관 해임 권한 부여, 대통령 임기를 6년에서 4년으로 단축하는 내용이 포함되었다.
행정부는 대통령이 국가원수이자 정부수반으로서 이끈다. 대통령은 국민 직접 선거를 통해 선출되며, 임기는 4년이고 연임은 불가능하다. 대통령은 국무총리(내무부 장관이 겸임)와 각 부 장관을 임명하여 내각을 구성하고 국정을 운영한다.
입법부는 양원제로, 상원(Senado)과 하원(Cámara de Diputados)으로 구성된다. 상원의원은 50명으로 임기는 8년이며, 하원의원은 155명으로 임기는 4년이다. 의회는 법률 제정, 예산 심의, 정부 견제 등의 기능을 수행한다. 국회의사당은 수도 산티아고에서 서쪽으로 약 140 km 떨어진 항구도시 발파라이소에 위치한다.
사법부는 독립되어 있으며, 대법원(Corte Suprema)을 최고 법원으로 한다. 그 외에 항소법원, 군사법원, 헌법재판소 등이 있다. 2005년 6월, 칠레는 형사사법제도에 대한 전국적인 개혁을 완료했다. 이 개혁은 기존의 규문주의적 절차를 미국과 같은 보통법 관할권과 유사한 당사자주의 시스템으로 대체했다.
2019년 대규모 시위 이후 새 헌법 제정에 대한 논의가 활발해졌으나, 2022년과 2023년 두 차례의 국민투표에서 새 헌법안이 모두 부결되면서 1980년 헌법 체제가 유지되고 있다.
5.2. 주요 정당 및 선거 제도
칠레는 다당제 국가로, 여러 정당들이 연합(코알리시온)을 구성하여 정치 활동을 하는 경우가 많다. 주요 정치 연합 및 정당은 다음과 같다.
정부 (여당 연합)
- 존엄성을 지지한다** (Apruebo Dignidad): 좌파 성향의 연합으로, 2021년 제헌의회 선거를 계기로 형성되었다. 대통령 예비선거에서 가브리엘 보리치(CS, FA)가 승리했다. 광역전선(Frente Amplio)과 칠레 존엄 (Chile Digno, 칠레 공산당 및 기타 좌파 정당으로 구성) 연합으로 이루어져 있다.
- 민주사회주의** (Socialismo Democrático): 중도좌파 성향의 연합으로, 이전의 제헌연합(Constituent Unity)의 후신이며, 이는 1988년 국민투표에서 "반대" 옵션을 지지하고 이후 1990년부터 2010년까지 집권했던 콘세르타시온 연합의 후신이다. 이 연합은 사회당, 민주주의를 위한 정당, 급진당, 자유당으로 구성된다.
야당 연합
- 바모스 칠레** (Chile Vamos): 중도우파 성향의 연합으로, 자유보수주의에 뿌리를 두고 있으며, 국민혁신당(Renovación Nacional), 독립민주연합, 에보폴리 정당으로 구성된다. 1988년 국민투표에서 "찬성" 옵션을 지지했던 주요 정당들로 구성된 칠레를 위한 동맹 연합에 기원을 두고 있으며, 이후 여러 차례 명칭이 변경되었다. 세바스티안 피녜라의 첫 번째(2010년~2014년) 및 두 번째(2018년~2022년) 정부 시절 여당 연합이었다.
국회에서 바모스 칠레는 하원의원 52석과 상원의원 24석을, 존엄성을 지지한다 연합은 하원의원 37석과 상원의원 6석을 차지하고 있다. 민주사회주의는 하원의원 30석과 상원의원 13석으로 세 번째 정치 세력이다. 그 외 의회에 의석을 가진 그룹으로는 공화당(하원의원 15석, 상원의원 1석), 기독교민주당(하원의원 8석, 상원의원 5석), 인민당(하원의원 8석), 무소속(하원의원 5석, 상원의원 1석) 등이 있다.
선거 제도는 1989년부터 2013년까지 사용된 이항체제(Binominal System)는 비다수 정치 그룹을 배제하는 대신 두 개의 다수 정치 블록(콘세르타시온과 알리안사) 설립을 조장했다. 이 시스템의 반대자들은 2015년에 완화된 동트 방식의 비례대표제를 승인하여 2017년 의회 선거부터 시행되었으며, 새로운 정당과 연합의 진입을 허용하고 있다.
5.3. 행정 구역
1978년 칠레는 행정적으로 주(región)로 나뉘었고, 1979년에는 주가 현(provincia)으로, 현은 다시 코무나(comuna)로 세분화되었다. 현재 칠레는 16개 주, 56개 현, 348개 코무나로 구성되어 있다.
각 주는 원래 북쪽에서 남쪽 순으로 로마 숫자가 부여되었으나, 산티아고 수도주는 예외적으로 번호가 없었다. 2007년 아리카 이 파리나코타주(XV)와 로스리오스주(XIV), 2018년 뉴블레주(XVI) 등 새로운 주가 신설되면서 이 번호 매기기는 원래의 순서 의미를 잃게 되었다.
칠레의 행정 구역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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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 | 인구 (2017년) | 면적 (km2) | 인구 밀도 (명/km2) | 주도 | ||
아리카 이 파리나코타주 | 224,548 | 16,873.3 | 13.31 | 아리카 | ||
타라파카주 | 324,930 | 42,225.8 | 7.70 | 이키케 | ||
안토파가스타주 | 599,335 | 126,049.1 | 4.75 | 안토파가스타 | ||
아타카마주 | 285,363 | 75,176.2 | 3.80 | 코피아포 | ||
코킴보주 | 742,178 | 40,579.9 | 18.29 | 라세레나 | ||
발파라이소주 | 1,790,219 | 16,396.1 | 109.19 | 발파라이소 | ||
산티아고 수도주 | 7,036,792 | 15,403.2 | 456.84 | 산티아고 | ||
오이긴스주 | 908,545 | 16,387.0 | 55.44 | 랑카과 | ||
마울레주 | 1,033,197 | 30,296.1 | 34.09 | 탈카 | ||
뉴블레주 | 480,609 | 13,178.5 | 36.47 | 치얀 | ||
비오비오주 | 1,556,805 | 23,890.2 | 65.17 | 콘셉시オン | ||
아라우카니아주 | 938,626 | 31,842.3 | 29.48 | 테무코 | ||
로스리오스주 | 380,181 | 18,429.5 | 20.63 | 발디비아 | ||
로스라고스주 | 823,204 | 48,583.6 | 16.94 | 푸에르토몬트 | ||
아이센주 | 102,317 | 108,494.4 | 0.94 | 코이아이케 | ||
마가야네스 이 라 안타르티카 칠레나주 | 165,593 | 132,297.2(1) | 1.25 | 푼타아레나스 | ||
칠레 | 17,373,831 | 756,102.4(2) | 22.98 | 산티아고 | ||
(1) 칠레령 남극 지역 (1,250,257.6 km2)을 제외한 면적. (2) 칠레령 남극 지역을 포함한 총 면적은 2,006,360 km2. 인구 밀도는 남극 지역 제외 면적 기준. |
6. 국방
칠레의 국방은 육군, 해군, 공군으로 구성된 칠레군이 담당한다. 대통령은 국방부 장관을 통해 군에 대한 민간 통제를 행사하며, 군 총사령관을 해임할 권한을 가진다.
6.1. 군대 구성 및 역할


- 칠레 육군: 리카르도 마르티네스 메난테아우 육군 대장이 총사령관이다. 병력은 약 45,000명이며, 산티아고에 육군 본부를 두고 전국에 6개 사단, 랑카과에 공수여단, 콜리나에 특수부대사령부를 두고 있다. 칠레 육군은 라틴 아메리카에서 가장 전문적이고 기술적으로 발전된 군대 중 하나로 평가받는다.
- 칠레 해군: 훌리오 레이바 몰리나 제독이 지휘하며, 약 25,000명의 병력(해병대 2,500명 포함)을 보유하고 있다. 29척의 수상함 중 8척이 주력 전투함(호위함)이며, 이들은 발파라이소에 기지를 두고 있다. 해군은 자체적으로 수송 및 초계용 항공기를 운용하지만, 전투기나 폭격기는 보유하고 있지 않다. 또한 탈카우아노에 기지를 둔 4척의 잠수함을 운용한다.
- 칠레 공군: 호르헤 로하스 아빌라 공군 대장(4성 장군)이 지휘하며, 병력은 12,500명이다. 항공 자산은 이키케, 안토파가스타, 산티아고, 푸에르토몬트, 푼타아레나스에 본부를 둔 5개 공군 여단에 분산되어 있다. 공군은 남극 킹조지섬에도 공군 기지(에두아르도 프레이 몬탈바 대통령 기지)를 운영하고 있다. 칠레 공군은 수십 년간의 미국 내 논쟁과 판매 거부 끝에 2007년 3월 미국으로부터 구매한 F-16 전투기 10대 중 마지막 2대를 인도받았다. 또한 2007년 네덜란드로부터 개량된 F-16 블록 15 전투기 여러 대를 인도받아, 네덜란드에서 구매한 F-16은 총 18대가 되었다.
- 카라비네로스(국가경찰): 1973년 9월 군부 쿠데타 이후 국방부에 통합되었다가, 민주 정부 복귀와 함께 내무부의 작전 통제 하에 놓였으나 명목상으로는 국방부 통제 하에 남아있다. 구스타보 곤살레스 후레 장군이 이끄는 40,964명의 국가경찰은 칠레 전역의 법 집행, 교통 관리, 마약 단속, 국경 통제, 대테러 임무를 담당한다.
2017년 칠레는 유엔 핵무기금지조약에 서명했다. 2024년 세계 평화 지수에 따르면 칠레는 세계에서 64번째로 평화로운 국가이다.
7. 대외 관계
칠레는 독립 초기부터 외교 문제에 적극적으로 관여해왔다. 1837년, 칠레는 태평양 무역로의 패권을 두고 페루 카야오 항의 지배력에 도전하여 단명한 페루-볼리비아 연합(페루-볼리비아 연합)(1836-39)을 연합 전쟁에서 격파했다. 이 전쟁은 연합을 해체시키고 태평양 지역의 세력 분포를 바꾸었다. 두 번째 국제전인 태평양 전쟁(1879-83)은 칠레의 지역적 역할을 더욱 증대시키고 영토를 상당히 확장시켰다.
19세기 동안 칠레의 주요 상업 관계는 영국과 맺어졌으며, 영국은 칠레 해군 형성에 큰 영향을 미쳤다. 프랑스는 칠레의 법률 및 교육 제도에 영향을 미쳤고, 20세기 전환기 호황기에 수도 건축을 통해 칠레에 결정적인 영향을 주었다. 독일의 영향은 프로이센에 의한 군대 조직 및 훈련에서 비롯되었다.
1945년 6월 26일, 칠레는 캘리포니아 샌프란시스코에서 국제 연합 헌장에 서명한 50개국 중 하나로 국제 연합 창립 회원국으로 참여했다. 1973년 군부 쿠데타 이후, 칠레는 광범위한 인권 유린으로 인해 정치적으로 고립되었다.
1990년 민주주의로 복귀한 이후, 칠레는 국제 정치 무대에서 활발한 참여자로 활동해왔다. 칠레는 2005년 1월 유엔 안전 보장 이사회 비상임이사국 임기를 2년 만에 마쳤다. 칠레 국적의 호세 미겔 인술사는 2005년 5월 미주 기구 사무총장으로 선출되었고 2009년 재선되어 그 지위를 확고히 했다. 칠레는 현재 국제 원자력 기구(IAEA) 이사회에서 활동하고 있으며, 2007-2008년 이사회 의장은 IAEA 주재 칠레 대사인 밀렌코 E. 스콕니치였다. 칠레는 유엔 산하 기구들의 적극적인 회원국이며 유엔 평화 유지 활동에 참여하고 있다. 2011년에는 3년 임기의 유엔 인권 이사회 이사국으로 재선되었다. 또한 2013년에는 유엔 안전 보장 이사회 5개 비상임이사국 중 하나로 선출되었다. 칠레는 2002년 미주 국방장관 회의와 2004년 APEC 정상회의 및 관련 회의를 개최했다. 또한 2005년 4월 민주주의 공동체 장관급 회의와 2007년 11월 이베로-아메리카 정상회의를 개최했다. 메르코수르 준회원국이자 APEC 정회원국인 칠레는 국제 경제 문제와 반구 자유 무역에서 주요 역할을 해왔다.
7.1. 주요 국제기구 활동
칠레는 국제 연합(UN) 창립 회원국으로, UN의 다양한 기구 및 평화 유지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미주 기구(OAS)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며, 2005년부터 2015년까지 칠레 출신의 호세 미겔 인술사가 사무총장을 역임했다. 아시아 태평양 지역에서는 아시아 태평양 경제협력체(APEC)의 정회원국으로, 2004년과 2019년에 APEC 정상회의를 개최하는 등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2010년에는 남미 국가 최초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가입하여 국제 경제 질서 논의에 참여하고 있다. 그 외에도 라틴아메리카 카리브 국가 공동체(CELAC), 태평양 동맹 등 다양한 국제 및 지역 기구에서 활동하며 국제 사회와의 협력을 강화하고 있다.
7.2. 주변국 및 주요국과의 관계
칠레는 지리적으로 아르헨티나, 볼리비아, 페루와 국경을 접하고 있으며, 이들 국가와 역사적으로 복잡한 관계를 맺어왔다. 특히 볼리비아와는 태평양 전쟁(1879-1883) 이후 해양 접근권 문제로 인해 현재까지도 외교 관계가 단절된 상태이며, 영사 관계만 유지하고 있다. 페루와도 태평양 전쟁의 영향으로 영토 및 해양 경계 문제가 있었으나, 2014년 국제사법재판소(ICJ) 판결 이후 관계 개선의 노력이 이루어지고 있다. 아르헨티나와는 과거 비글 해협 분쟁 등 국경 문제가 있었으나, 1984년 평화우호조약 체결 이후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미국은 칠레의 주요 교역 상대국이자 투자국으로, 양국은 2004년 자유무역협정(FTA)을 발효하는 등 경제적으로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다. 정치적으로도 협력 관계를 유지하고 있으나, 과거 1973년 칠레 쿠데타 당시 미국의 개입 논란은 양국 관계에 민감한 부분으로 남아있다. 유럽 연합(EU)과도 2003년 포괄적 경제동반자협정(EPA)을 체결하여 경제, 정치, 문화 등 다방면에서 협력을 강화하고 있다.
아시아 주요국들과의 관계도 활발하다. 대한민국과는 1962년 수교 이후 우호적인 관계를 발전시켜 왔으며, 2004년 한국 최초의 FTA를 칠레와 체결했다. 일본과는 1897년 수교한 이래 경제 및 문화 교류를 지속하고 있으며, 2007년 경제동반자협정(EPA)을 체결했다. 중국은 칠레의 최대 교역 상대국으로, 2006년 FTA를 체결하는 등 경제적 관계가 매우 중요하다.
8. 경제
칠레는 남아메리카에서 가장 안정적이고 번영하는 국가 중 하나로, 인간 개발 지수, 경쟁력, 세계화, 경제적 자유, 낮은 부패 인식 등에서 라틴 아메리카 국가들을 선도하고 있다. 2013년 7월부터 세계은행은 칠레를 "고소득 경제" 국가로 분류하고 있다. 칠레 중앙은행은 산티아고에 위치하며, 칠레의 통화는 칠레 페소(CLP)이다.
8.1. 경제 현황 및 정책

칠레 경제는 1980년대 이후 일관되게 유지된 건전한 경제 정책 덕분에 꾸준한 성장을 이루었고 빈곤율을 절반 이상으로 낮추었다. 피노체트 군부 독재 시절 도입된 신자유주의 경제 모델은 민영화, 규제 완화, 무역 개방 등을 통해 경제 성장의 기반을 마련했다는 평가와 함께, 소득 불평등 심화라는 비판도 받고 있다. 민주화 이후 역대 정부들은 이러한 시장 중심의 경제 정책 기조를 대체로 유지하면서 사회 정책을 확대하는 방향으로 나아갔다.
헤리티지 재단은 칠레가 독립적이고 효율적인 사법 시스템과 신중한 공공 재정 관리 덕분에 남아메리카에서 가장 높은 수준의 경제적 자유를 누리고 있다고 평가한다 (세계 22위). 2010년 5월 칠레는 남아메리카 국가 최초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가입했다. 2006년, 칠레는 라틴 아메리카에서 1인당 명목 GDP가 가장 높은 국가가 되었다. 2020년 기준, 칠레는 명목 1인당 GDP에서 라틴 아메리카 3위(우루과이와 파나마 다음)를 기록했다.
구리 채광은 칠레 GDP의 20%, 수출의 60%를 차지한다. 세계 최대 구리 광산인 에스콘디다는 전 세계 공급량의 5% 이상을 생산하며, 칠레 전체적으로는 세계 구리 생산량의 3분의 1을 담당한다. 국영 광업 회사인 코델코는 민간 구리 광업 회사들과 경쟁하고 있다.
1999년 칠레는 완만한 경기 침체를 겪기 시작했다. 경제는 2003년까지 부진했으나, 이후 뚜렷한 회복세를 보이며 4.0%의 GDP 성장률을 달성했다. 2004년 칠레 경제는 6% 성장으로 마감했다. 실질 GDP 성장률은 2005년 5.7%에 도달했다가 2006년 4%로 다시 하락했다. 2007년 GDP는 5% 증가했다. 2007-2008년 금융 위기에 직면하여 정부는 고용과 성장을 촉진하기 위한 경제 부양책을 발표했고, 대침체에도 불구하고 2009년 GDP 2~3% 확장을 목표로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경제 분석가들은 정부 추정치에 동의하지 않고 중간값 1.5%의 경제 성장을 예측했다. 2012년 실질 GDP 성장률은 5.5%였다. 성장은 2013년 1분기에 4.1%로 둔화되었다.
2022년 실업률은 세계은행에 따르면 7.8%였다. 농업, 광업, 건설업에서 노동력 부족이 보고되고 있다. 1인당 가계 소득이 빈곤선(최소 영양 필요량의 두 배 비용으로 정의) 미만인 칠레인의 비율은 정부 조사에 따르면 1987년 45.1%에서 2009년 11.5%로 감소했다. 그러나 칠레의 비평가들은 실제 빈곤 수치가 공식 발표된 수치보다 상당히 높다고 주장한다. ECLAC의 후안 카를로스 페레스에 따르면, 많은 유럽 국가에서 선호하는 상대적 기준을 사용하면 칠레인의 27%가 빈곤층에 해당한다.
2012년 11월 기준, 약 1,110만 명(인구의 64%)이 빈곤층 및 빈곤 위험군을 포함하는 "사회 보호 카드"를 통해 정부 복지 프로그램의 혜택을 받고 있다. 민영화된 국민연금제도(AFP)는 국내 투자를 장려하여 총 국내 저축률을 GDP의 약 21%로 추정하는 데 기여했다. 의무 민간 연금 제도 하에서 대부분의 정규직 근로자는 급여의 10%를 민간 관리 기금에 납부한다.
칠레는 2003년에 체결되어 2004년 1월에 발효된 미국과의 FTA를 포함하여 여러 국가와 자유무역협정(FTA)을 체결했다. 칠레 정부 내부 자료에 따르면 인플레이션과 최근 높은 구리 가격을 제외하더라도 미국과 칠레 간의 양자 무역은 그 이후 60% 이상 성장했다. 2006년 중국과의 총 교역액은 88억 달러에 달했으며, 이는 아시아와의 교역 관계 가치의 거의 66%를 차지했다. 아시아로의 수출은 2005년 152억 달러에서 2006년 197억 달러로 29.9% 증가했다. 수입의 전년 대비 성장은 에콰도르(123.9%), 태국(72.1%), 한국(52.6%), 중국(36.9%) 등 여러 국가에서 특히 두드러졌다.
칠레의 외국인 직접 투자에 대한 접근 방식은 국가의 외국인 투자법에 명시되어 있다. 등록은 간단하고 투명하다고 보고되며, 외국인 투자자는 이익과 자본을 본국으로 송환하기 위해 공식 외환 시장에 접근할 수 있도록 보장받는다. 칠레 정부는 경제의 새로운 부분에 추가적인 FDI를 유치하기를 희망하며 혁신경쟁위원회를 구성했다.
스탠더드 앤드 푸어스는 칠레에 A 등급의 신용 등급을 부여한다. 칠레 정부는 외채를 계속 상환하고 있으며, 2006년 말 공공 부채는 GDP의 3.9%에 불과했다. 칠레 중앙 정부는 2012년 말 GDP의 7%에 해당하는 순자산 포지션을 가진 순채권국이다. 2013년 1분기 경상수지 적자는 4%였으며, 주로 외국인 직접 투자로 조달되었다. 2012년 중앙 정부 수입의 14%는 구리에서 직접 나왔다. 2024년 세계 혁신 지수에서 칠레는 1위를 차지했다.
8.2. 주요 산업
칠레 경제는 광업, 농림수산업, 관광업 등 다양한 산업 부문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 각 산업은 칠레의 지리적, 환경적 특성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발전해왔다.
8.2.1. 광업

칠레는 세계적인 광물 자원 부국으로, 특히 구리 생산에 있어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한다. 2019년 기준 칠레는 구리, 요오드, 레늄의 세계 최대 생산국이었으며, 리튬과 몰리브데넘은 세계 2위, 은은 세계 6위 생산국이었다. 그 외에도 소금, 칼륨, 황, 철광석 등을 상당량 생산한다. 2023년에는 세계 4위의 은 생산국이었다. 칠레의 금 생산량도 상당하여, 2006년부터 2017년까지 연간 35.9톤에서 51.3톤 사이를 기록했다.
칠레 북부의 아타카마 사막 지역에는 세계 최대 규모의 구리 광산들이 밀집해 있으며, 코델코(CODELCO)와 같은 국영기업 및 다국적 기업들이 채굴 활동을 벌이고 있다. 리튬은 전기 자동차 배터리 및 재생 에너지 저장 시스템의 핵심 원료로 부상하면서 칠레의 지정학적 중요성을 높이고 있으나, 다른 지역에서의 생산 확대 가능성으로 인해 그 영향력이 과대평가되었다는 비판도 있다. 광업은 칠레 GDP의 약 20%, 수출의 약 60%를 차지하는 핵심 산업이다.
8.2.2. 농림수산업

칠레의 농업은 지리적, 기후적 다양성 덕분에 광범위한 활동을 포괄한다. 역사적으로 농업은 칠레 경제의 기반 중 하나였으며, 현재 농업 및 임업, 벌목, 어업과 같은 관련 부문은 GDP의 약 4.9%(2007년 기준)를 차지하고 노동력의 13.6%를 고용한다. 칠레는 체리와 블루베리의 세계 5대 생산국 중 하나이며, 포도, 사과, 키위, 복숭아, 자두, 개암의 세계 10대 생산국 중 하나로, 고부가가치 과일 수출에 중점을 두고 있다. 그 외 주요 농산물로는 배, 양파, 밀, 옥수수, 귀리, 마늘, 아스파라거스, 콩, 쇠고기, 가금육, 양모, 목재, 삼 등이 있다. 지리적 고립과 엄격한 통관 정책 덕분에 칠레는 광우병, 과실파리, 필록세라와 같은 질병과 해충으로부터 자유롭다. 이러한 점과 남반구에 위치하여 북반구와 수확 시기가 다른 점, 그리고 광범위한 농업 조건이 칠레의 주요 비교 우위로 간주된다. 그러나 칠레의 산악 지형은 농업의 범위와 집약도를 제한하여 경작지는 전체 영토의 2.62%에 불과하다. 칠레는 현재 1.40 만 ha의 농지를 활용하고 있다.
칠레는 노르웨이에 이어 세계 2위의 연어 생산국이다. 2019년에는 전 세계 공급량의 26%를 담당했다. 와인 분야에서 칠레는 일반적으로 세계 10대 생산국 중 하나이며, 2018년에는 6위를 차지했다. 남부 지역의 서늘한 기후와 비옥한 토양은 포도 재배에 적합하여 고품질 와인 생산에 기여하고 있다. 임업 또한 중요한 산업으로, 주로 소나무와 유칼립투스 조림을 통해 펄프와 목재를 생산하여 수출한다.
8.2.3. 관광업
남부의 주요 관광지로는 국립공원(가장 인기 있는 곳은 아라우카니아 지방의 콩기요 국립공원)과 티루아 및 카녜테 주변 해안 지역(모차섬과 나우엘부타 국립공원 포함), 칠로에 군도, 그리고 여러 빙하가 있는 라구나 산 라파엘 국립공원과 토레스 델 파이네 국립공원을 포함하는 파타고니아가 있다.

독특한 건축물로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중부 항구 도시 발파라이소도 인기가 많다.

마지막으로 태평양의 이스터섬은 칠레의 주요 관광지 중 하나이다.

칠레의 관광업은 지난 수십 년 동안 지속적인 성장을 경험해왔다. 2005년 관광업은 13.6% 성장하여 45억 달러 이상을 창출했으며, 이 중 15억 달러는 외국인 관광객으로부터 발생했다. 칠레 국립관광청(Sernatur)에 따르면 연간 200만 명이 칠레를 방문한다. 이 방문객 대부분은 아르헨티나를 중심으로 한 아메리카 대륙의 다른 국가에서 오며, 미국, 유럽, 브라질에서 오는 방문객 수가 증가하고 있고, 한국과 중국 등 아시아 국가의 방문객 수도 늘고 있다.
주요 관광 명소는 국토 극단 지역에 위치한 자연의 아름다움이다. 북부의 산페드로데아타카마는 잉카 건축물, 알티플라노 호수, 달의 계곡을 감상하기 위해 도착하는 외국인 관광객들에게 매우 인기가 있다. 북부의 푸트레에는 충가라호뿐만 아니라 각각 해발 6348 m와 6282 m의 파리나코타 화산과 포메라페 화산이 있다. 중앙 안데스 산맥 전역에는 포르티요, 바예네바도, 테르마스 데 치얀 등 국제적으로 유명한 스키 리조트가 많이 있다.
국내 관광객의 경우, 관광은 주로 여름(12월~3월)에 집중되며, 주로 해안 해변 마을에서 이루어진다. 아리카, 이키케, 안토파가스타, 라세레나, 코킴보는 북부의 주요 여름 중심지이며, 비야리카호 기슭의 푸콘은 남부의 주요 중심지이다. 산티아고와의 근접성 때문에 발파라이소 주의 해안은 많은 해변 휴양지가 있어 가장 많은 관광객을 유치한다. 발파라이소의 북쪽에 있는 부유한 이웃 도시인 비냐델마르는 해변, 카지노, 그리고 라틴 아메리카에서 가장 중요한 음악 행사인 연례 비냐델마르 국제 노래 축제로 인기가 있다. 오이긴스주의 피칠레무는 포더스(Fodor's)에 따르면 남아메리카 최고의 서핑 명소로 널리 알려져 있다.
2005년 11월, 정부는 "칠레: 모든 면에서 놀라운 (Chile: All Ways Surprising)"이라는 브랜드로 캠페인을 시작하여 사업과 관광 모두를 위해 국제적으로 국가를 홍보하고자 했다. 칠레 국립 미술관과 같이 1880년에 건립된 칠레의 박물관에는 칠레 예술가들의 작품이 전시되어 있다.
칠레에는 아르헨티나와 칠레 국경에 위치한 세계적으로 유명한 파타고니아 트레일이 있다. 칠레는 최근 보존 기반 개발을 장려하기 위해 대규모 관광 명승 도로를 개설했다. 이 공원 도로는 2800252 m (1740 mile)에 달하며, 톰킨스 보존 재단(창립자 더글러스 톰킨스와 그의 아내 크리스틴)이 설계했다.
8.3. 무역 및 투자
칠레는 적극적인 자유무역협정(FTA) 정책을 통해 국제 무역 네트워크를 확장해왔다. 2003년 미국과 체결하여 2004년 발효된 FTA를 시작으로, 유럽 연합, 중국, 일본, 대한민국, 캐나다, 오스트레일리아 등 다수의 국가 및 경제권과 FTA를 체결했다. 이러한 FTA 네트워크는 칠레 수출입 구조의 다변화와 외국인 직접투자(FDI) 유치에 기여하고 있다.
주요 교역 상대국으로는 중국(최대 교역국), 미국, 유럽 연합, 일본, 브라질 등이 있다. 주요 수출품은 구리를 비롯한 광물 자원이며, 그 외에 연어, 와인, 과일, 목재 등 농림수산물의 비중도 높다. 수입품은 주로 공산품, 자본재, 소비재, 원유 등이다.
칠레 정부는 외국인 투자 유치를 위해 노력하고 있으며, 외국인 투자법을 통해 투자 절차를 간소화하고 외국인 투자자에게 내국민 대우를 보장하고 있다. 안정적인 정치 및 경제 환경, 잘 갖춰진 법규, 투명한 행정 시스템 등은 외국인 투자자들에게 매력적인 요소로 작용하고 있다. 그러나 최근 몇 년간 사회적 불안정과 헌법 개정 논의 등으로 인해 투자 환경의 불확실성이 다소 증가하기도 했다.
8.4. 에너지 자원
칠레의 에너지 공급은 화석 연료가 주를 이루며, 석탄, 석유, 가스가 전체 1차 에너지의 73.4%를 차지한다(2020년 기준). 바이오 연료와 폐기물이 20.5%를, 나머지는 수력 및 기타 재생 가능 에너지원에서 공급된다. 2014년 전력 소비량은 68.90 TWh였으며, 주요 전력원은 수력, 천연가스, 석유, 석탄이었다.
칠레는 석유, 천연가스, 석탄 생산량이 국내 수요에 비해 부족하여 대부분을 수입에 의존한다. 이러한 에너지 수입 의존도를 낮추고 기후 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신재생 에너지 개발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특히 아타카마 사막 지역은 세계에서 가장 높은 일사량을 자랑하여 태양광 발전의 잠재력이 매우 크다. 또한, 긴 해안선과 안데스 산맥의 지형적 특성을 활용한 풍력 발전도 확대되고 있다. 2009년부터 미국 에너지부와의 협력을 통해 풍력 및 태양 에너지 사용이 장려되고 있다. 전력 산업은 민영화되어 있으며, 엔데사(ENDESA)가 이 분야에서 가장 큰 회사이다.
2021년 기준, 칠레의 설치된 재생 가능 전력 용량은 수력 6,807 MW(세계 28위), 풍력 3,137 MW(세계 28위), 태양광 4,468 MW(세계 22위), 바이오매스 375 MW였다. 2023년 칠레는 1억 799만 톤의 온실가스를 배출했으며, 이는 전 세계 총량의 약 0.2%에 해당한다. 최근 몇 년 동안 칠레는 청정에너지, 특히 태양광 및 풍력 분야에서 세계적인 선두 주자로 부상했으며, 2050년까지 탄소 중립을 달성하겠다고 약속했다. 기후 행동 추적기에 따르면, 칠레는 재생 가능 에너지 확대와 석탄 단계적 폐지를 통해 기후 행동에서 "상당한 진전"을 이루고 있다.
9. 교통
칠레의 지형적 특성상 효율적인 교통망은 경제에 매우 중요하다. 도로는 주요 교통수단이며, 철도, 항공, 해상 교통 또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9.1. 도로 교통

2020년 기준 칠레의 고속도로 총 길이는 8.60 만 km이며, 이 중 2.13 만 km가 포장도로이다. 같은 해, 칠레는 3347 km의 복선 도로를 보유하여 남아메리카에서 브라질에 이어 두 번째로 큰 규모를 자랑했다. 1990년대 중반 이후 입찰 과정을 통해 도로망이 크게 개선되었으며, 특히 푸에르토몬트와 칼데라 사이 1950 km에 달하는 팬아메리칸 하이웨이(칠레 5번 국도)의 연속적인 복선화(아타카마 사막 지역 복선화 계획 추가)에 중점을 두었다. 또한 산티아고, 발파라이소, 중부 해안 지역 간의 연결 도로와 2004년에서 2006년 사이에 개통된 산티아고 도시 고속도로망 대규모 프로젝트도 포함된다.
철도망의 쇠퇴 이후 버스가 칠레 장거리 교통의 주요 수단이 되었다. 버스 시스템은 아리카에서 산티아고(30시간 소요), 산티아고에서 푼타아레나스(오소르노에서 환승, 약 40시간 소요)까지 전국을 연결한다.
9.2. 철도 교통
칠레의 철도 시스템은 과거에는 전국적으로 광범위하게 연결되어 있었으나, 현재는 여객 운송보다는 화물 운송, 특히 광물 자원 운송에 더 큰 비중을 두고 있다. 국영철도회사 EFE(Empresa de los Ferrocarriles del Estado)가 주요 간선 노선을 운영하며, 일부 구간에서는 여객 열차도 운행한다.
산티아고와 인근 도시를 연결하는 메트로트렌과 같은 교외 통근 열차 서비스가 있으며, 산티아고 시내에는 현대적인 산티아고 지하철이 운영되어 주요 대중교통 수단으로 기능하고 있다. 발파라이소 및 콘셉시온과 같은 다른 주요 도시에도 도시철도 또는 교외철도 시스템이 있다. 최근에는 철도 인프라 현대화 및 노선 확장에 대한 논의가 다시 활발해지고 있다.
9.3. 항공 교통
칠레에는 총 372개의 활주로(포장 62개, 비포장 310개)가 있다. 주요 공항으로는 차카유타 국제공항(아리카), 디에고 아라세나 국제공항(이키케), 안드레스 사베야 갈베스 국제공항(안토파가스타), 카리엘 수르 국제공항(콘셉시オン), 엘 테푸알 국제공항(푸에르토몬트), 카를로스 이바녜스 델 캄포 대통령 국제공항(푼타아레나스), 라 아라우카니아 국제공항(테무코), 다른 공항과의 거리로 정의되는 세계에서 가장 외딴 공항인 마타베리 국제공항(이스터섬), 그리고 2011년 12,105,524명의 승객을 처리한 아르투로 메리노 베니테스 국제공항(산티아고)이 있다. 산티아고는 라틴 아메리카 최대 항공 지주회사이자 칠레 국적 항공사인 LATAM 항공의 본사가 있는 곳이다.
국내선 및 국제선 항공편이 주요 도시와 관광지를 연결하며, 특히 남북으로 긴 국토 특성상 항공 교통의 중요성이 크다.
9.4. 해상 교통
칠레는 긴 해안선을 가지고 있어 해상 교통이 발달했다. 주요 항구로는 발파라이소, 산안토니오, 이키케, 안토파가스타 등이 있으며, 이들 항구는 칠레의 수출입 물류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 특히 구리, 과일, 와인 등 주요 수출품이 이들 항구를 통해 해외로 운송된다.
남부 파타고니아 지역과 같이 육로 접근이 어려운 섬이나 피오르 지역에서는 여객선과 화물선이 중요한 교통수단으로 이용된다. 또한, 마젤란 해협은 국제 해상 운송로로서의 중요성을 지닌다.
10. 과학기술과 통신
칠레는 과학기술 발전과 정보통신 인프라 구축에 지속적인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특히 천문학 분야와 지진 관련 연구에서 강점을 보이며, 정보통신 기술의 보급도 꾸준히 확대되고 있다.
10.1. 주요 과학기술 분야

칠레는 지리적 이점을 활용하여 특정 과학기술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 천문학: 칠레 북부의 건조한 기후와 높은 고도는 천체 관측에 최적의 조건을 제공하여 세계적인 천문학 연구 중심지로 부상했다. 유럽 남방 천문대(ESO)의 파라날 천문대(VLT 소재), 라 시야 천문대, 알마 전파 망원경(ALMA) 등 다수의 국제 천문대가 운영 중이며, 세계 천문학 연구의 중요한 부분을 담당하고 있다.
- 지질학 및 지진학: 환태평양 조산대에 위치하여 지진과 화산 활동이 잦은 칠레는 지진 및 화산 연구 분야에서 많은 경험과 데이터를 축적해왔다. 관련 연구기관들은 지진 예측, 건축물 내진 설계, 화산 감시 시스템 개발 등에 힘쓰고 있다.
- 해양학 및 남극 연구: 긴 해안선과 남극에 대한 영유권 주장을 바탕으로 해양 생태계, 해류, 기후 변화 연구 및 남극 연구도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그 외에도 광업 기술, 농업 기술, 수산 양식 기술 등 국가 경제와 밀접하게 관련된 분야의 연구 개발도 이루어지고 있다.
10.2. 정보통신

칠레는 칠레의 도서 및 남극 기지를 포함하여 국토 대부분을 포괄하는 통신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 전화 시스템의 민영화는 1988년에 시작되었으며, 칠레는 광범위한 마이크로웨이브 무선 중계 시설과 3개의 지상국을 갖춘 국내 위성 시스템을 기반으로 하는 현대적인 시스템을 갖춘 남아메리카에서 가장 발전된 통신 인프라 중 하나를 보유하고 있다. 2012년에는 327만 6천 개의 주요 회선이 사용 중이었고, 2,413만 명의 이동전화 가입자가 있었다.
2012년 국제 전기 통신 연합(ITU) 데이터베이스에 따르면, 칠레 인구의 61.42%가 인터넷을 사용하여 칠레는 남아메리카에서 인터넷 보급률이 가장 높은 국가가 되었다. 칠레의 인터넷 국가 코드 최상위 도메인(ccTLD)은 ".cl"이다. 2017년 칠레 정부는 미주 기구(OAS) 테러방지위원회(CICTE)의 사이버 보안 프로그램으로부터 기술 지원을 받는 첫 번째 사이버 보안 전략을 시작했다.
인터넷 보급률과 이동통신 가입자 수는 꾸준히 증가하고 있으며, 특히 도시 지역을 중심으로 광대역 인터넷 서비스가 확대되고 있다. 정부는 디지털 격차 해소와 정보통신 기술을 활용한 공공 서비스 개선에도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11. 사회
칠레 사회는 다양한 인구학적 특징, 복잡한 사회 구조, 그리고 여러 사회 제도와 현안들을 안고 있다. 오랜 기간 정치적, 경제적 변화를 겪으면서 사회 전반에 걸쳐 역동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
11.1. 인구
칠레의 2017년 인구 조사는 17,574,003명의 인구를 보고했다. 인구 증가율은 출생률 감소로 인해 1990년 이후 감소해왔다. 2050년까지 인구는 약 2,020만 명에 이를 것으로 예상된다. 평균 수명은 2023년 기준 약 80.7세(남성 78.1세, 여성 83.2세)로 라틴 아메리카에서 높은 편에 속한다. 인구 구조는 점차 고령화되는 추세를 보이고 있으며, 도시화율이 높아 전체 인구의 약 85%가 도시 지역에 거주하고, 그중 약 40%가 수도인 산티아고 대도시에 집중되어 있다.
11.2. 민족 구성


칠레의 민족 구성은 매우 다양하며, 역사적으로 여러 인종 및 민족 집단이 혼합되어 형성되었다.
멕시코 국립 자치 대학교의 프란시스코 리스카노 교수는 칠레인의 52.7%가 백인, 39.3%가 메스티소, 8%가 아메리카 원주민이라고 추정했다. 브리태니커 백과사전에 따르면 2002년 기준 칠레인의 22%만이 백인이었고 72%가 메스티소였다.
1984년 칠레 소아과 학회지(Revista de Pediatría de Chile)의 "칠레 공중 보건 연구를 위한 사회유전학적 참조 프레임워크" 연구에서는 유럽계 67.9%, 아메리카 원주민 32.1%의 혈통을 확인했다. 1994년 생물학적 연구에서는 칠레인의 구성이 유럽계 64%, 아메리카 원주민 35%로 나타났다. 최근 칸델라 프로젝트 연구에 따르면 칠레의 유전적 구성은 유럽계 52%, 아메리카 원주민 44%, 아프리카계 4%로, 칠레는 인구의 절반에 아프리카계 혈통이 존재하는 주로 메스티소 국가임을 보여준다. 브라질리아 대학교가 여러 남아메리카 국가에서 실시한 또 다른 유전학 연구에서도 칠레는 유럽계 51.6%, 아메리카 원주민 42.1%, 아프리카계 6.3%로 유사한 유전적 구성을 보였다. 2015년의 또 다른 연구에서는 유전적 구성을 유럽계 57%, 아메리카 원주민 38%, 아프리카계 2.5%로 확립했다.
칠레 대학교의 공중 보건 소책자에 따르면 인구의 35%가 백인계이며, "주로 백인인" 메스티소가 총 65%를 차지하고, 아메리카 원주민이 나머지 5%를 구성한다고 한다.
유전적 고려 사항에도 불구하고 많은 칠레인들은 질문을 받으면 스스로를 백인으로 인식한다. 2011년 라티노바로메트로 조사에서 칠레 응답자들에게 자신이 어떤 인종에 속한다고 생각하는지 물었을 때, 대부분 "백인"(59%)이라고 답했고, 25%는 "메스티소", 8%는 스스로를 "원주민"으로 분류했다. 2002년 전국 여론 조사에서는 대다수의 칠레인이 자신에게 약간(43.4%) 또는 많은(8.3%) "원주민 혈통"이 있다고 믿는 반면, 40.3%는 전혀 없다고 응답했다.
- 유럽계 (Blancos): 주로 스페인 식민 시대 정착민의 후예들이며, 19세기와 20세기에 걸쳐 독일, 이탈리아, 크로아티아, 영국, 프랑스 등지에서 온 이민자들의 후손도 상당수 포함된다. 이들은 칠레 사회의 정치, 경제, 문화 전반에 걸쳐 큰 영향력을 행사해왔다.
- 메스티소 (Mestizos): 유럽계와 원주민의 혼혈 후손으로, 칠레 인구의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 원주민 (Indígenas): 마푸체족이 가장 큰 원주민 집단이며, 주로 남부 아라우카니아 지방에 거주한다. 그 외에도 북부에는 아이마라족, 동부 안데스 산맥 지역에는 케추아족, 그리고 이스터섬에는 라파누이족 등이 거주하고 있다. 칠레 정부는 원주민의 권리 보호와 문화 보존을 위한 정책을 추진하고 있으나, 토지 문제 등으로 인한 갈등이 지속되기도 한다. 2017년 인구 조사에서는 약 12.8%의 인구가 스스로를 원주민으로 밝혔다.
11.2.1. 원주민
칠레는 원주민에 관한 유일한 구속력 있는 국제법인 1989년 원주민 및 부족민 협약을 체결하고 비준한 22개국 중 하나이다. 이 협약은 1989년 국제 노동 기구(ILO) 협약 제169호로 채택되었다. 칠레는 2008년에 이를 비준했다. 2009년 11월 칠레 법원의 판결은 원주민 권리에 관한 획기적인 판결로 간주되며, 이 협약을 활용했다. 아이마라족의 물 권리에 대한 대법원 판결은 포소 알몬테 법원과 이키케 항소 법원의 판결을 모두 지지했으며, 이는 칠레에서 ILO 협약 제169호가 사법적으로 적용된 첫 사례이다.
칠레의 주요 원주민 집단과 그 특징은 다음과 같다.
- 마푸체족 (Mapuche): 칠레에서 가장 큰 원주민 집단으로, 주로 남부의 아라우카니아주, 비오비오주, 로스라고스주에 거주한다. 역사적으로 스페인 정복에 강력히 저항했으며, 독자적인 언어(마푸둥군어)와 문화를 유지하고 있다. 현재 토지 반환, 자치권 확대, 문화적 정체성 보존 등을 요구하며 사회 운동을 전개하고 있다.
- 아이마라족 (Aymara): 주로 칠레 북부 고원지대, 페루 및 볼리비아 국경 지역에 거주한다. 고유 언어인 아이마라어와 전통적인 농경 및 목축 생활 방식을 유지하고 있으며, 안데스 문화의 중요한 일부를 구성한다.
- 라파누이족 (Rapa Nui): 이스터섬(라파 누이)의 원주민으로, 폴리네시아계이다. 독특한 모아이 석상과 라파누이어로 유명하며, 섬의 문화유산 보존과 자치권 문제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다.
- 케추아족 (Quechua): 주로 칠레 북부 안데스 산맥 지역, 볼리비아 및 아르헨티나 국경 지대에 거주한다. 잉카 제국의 후예로, 케추아어를 사용하며 전통적인 농업과 직물 공예 등을 이어오고 있다.
- 기타 원주민 집단: 그 외에도 아타카메뇨(Likan Antai), 코야(Colla), 디아기타(Diaguita), 카웨스카르(Kawésqar), 야간(Yaghan) 등 소수 원주민 집단이 존재하며, 각각 고유한 문화와 역사를 가지고 있다. 이들 중 일부는 심각한 소멸 위기에 처해 있기도 하다.
칠레 정부는 "원주민법"(Ley Indígena, 1993년 제정)을 통해 원주민의 권리 보호, 토지 문제 해결, 문화 발전 지원 등을 위한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그러나 원주민 공동체와 정부 또는 기업 간의 갈등은 여전히 중요한 사회 문제로 남아 있다.
11.2.2. 이민자 집단
칠레는 역사적으로 다양한 이민자 집단을 받아들였으며, 이들은 칠레 사회와 문화 형성에 중요한 역할을 해왔다.
초기 유럽 이민자들은 16세기에 도착한 스페인 식민주의자들이었다. 칠레 중부의 아메리카 원주민 인구는 식민 시대 초기에 스페인 정착민 인구에 흡수되어 오늘날 칠레에 존재하는 대규모 메스티소 인구를 형성했으며, 메스티소는 현대 중산층과 하층 계급을 창출한다. 18세기와 19세기에는 많은 바스크인들이 칠레로 와서 기존 카스티야 출신의 엘리트들과 통합되었다. 식민 시대 이후 칠레는 유럽과의 거리와 외딴 위치 때문에 이민자들에게 특별히 매력적인 목적지가 아니었다. 유럽인들은 마젤란 해협을 통과하거나 안데스 산맥을 넘는 긴 여정을 택하는 대신 고국에 더 가까운 나라에 머무는 것을 선호했다. 유럽 이민은 마젤란 지역을 제외하고는 칠레의 민족 구성에 큰 변화를 가져오지 않았다. 스페인인들은 칠레로 이주한 유일한 주요 유럽 이민자 집단이었으며, 아르헨티나나 브라질과 같은 대규모 이민은 없었다. 그러나 이민자들이 칠레 사회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다.
19세기와 20세기 동안 칠레로 온 이민자들은 프랑스, 영국, 독일, 크로아티아 등에서 왔다. 다양한 유럽 민족 집단의 후손들은 칠레에서 종종 통혼했다. 이러한 통혼과 문화 및 인종의 혼합은 칠레 중산층과 상류층의 현재 사회와 문화를 형성하는 데 도움이 되었다. 또한, 칠레 인구의 약 50만 명은 팔레스타인계 혈통을 가지고 있으며, 80만 명은 아랍계 혈통을 가지고 있다. 현재 칠레에는 베네수엘라, 페루, 아이티, 콜롬비아, 볼리비아, 아르헨티나 출신을 중심으로 한 150만 명의 라틴 아메리카 이민자들이 있으며, 이는 2019년 전체 인구의 8%에 해당하며 후손은 포함하지 않은 수치이다. 2002년 전국 인구 조사에 따르면 칠레의 외국 태생 인구는 1992년 이후 75% 증가했다. 2021년 11월 현재, 라틴 아메리카 다른 지역에서 칠레로 들어오는 사람들의 수는 지난 10년 동안 급격히 증가하여 지난 3년 동안 세 배로 늘어 150만 명에 달했으며, 아이티(약 18만 명)와 베네수엘라(약 46만 명)의 인도주의적 위기로 인한 입국이 주를 이루었다.
최근에는 특히 베네수엘라, 아이티, 콜롬비아, 페루 등 주변 라틴 아메리카 국가들로부터의 이민이 증가하는 추세이다. 이들 이민자들은 칠레 경제에 노동력을 제공하는 한편, 사회 통합과 문화 다양성 측면에서 새로운 과제를 제기하기도 한다.
11.3. 도시화
칠레는 도시화율이 매우 높은 국가 중 하나이다. 전체 인구의 약 85% 이상이 도시 지역에 거주하며, 이러한 도시 집중 현상은 특히 수도인 산티아고에서 두드러진다. 산티아고 대도시권에는 전국 인구의 약 40%가 밀집해 있다.
2002년 인구 조사 기준 주요 도시 및 대도시권은 다음과 같다.
- 산티아고 대도시권 (Gran Santiago): 5,428,590명
- 발파라이소 대도시권 (Gran Valparaíso): 803,683명
- 콘셉시온 대도시권 (Gran Concepción): 666,381명
- 라세레나 대도시권 (Gran La Serena): 296,253명
- 안토파가스타: 285,255명
- 테무코 대도시권 (Gran Temuco): 260,878명
- 랑카과 연담도시권: 236,363명
- 탈카: 191,154명
- 아리카: 175,441명
- 치얀 연담도시권: 165,528명
그 외 주요 도시로는 이키케, 오소르노, 칼라마, 푸에르토몬트, 코피아포, 발디비아, 푼타아레나스 등이 있다.
도시화는 경제 발전과 서비스 접근성 향상에 기여했지만, 동시에 주택 부족, 교통 혼잡, 환경 오염, 도시와 농촌 간의 격차 심화와 같은 문제도 야기하고 있다. 특히 산티아고와 같은 대도시의 경우, 급격한 인구 증가로 인해 도시 기반 시설에 대한 부담이 커지고 있으며, 지역 불균형 문제도 중요한 사회적 과제로 남아 있다. 정부는 지속 가능한 도시 개발과 지역 균형 발전을 위한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11.4. 종교

역사적으로 칠레의 원주민들은 16세기 스페인의 정복 이전에 다양한 종교를 믿었다. 스페인 식민 통치 기간과 칠레 독립 초기 한 세기 동안 가톨릭 교회는 국내에서 가장 강력한 기관 중 하나였다. 19세기 후반, 자유주의 정책(소위 "세속법" 또는 "Leyes laicas")으로 인해 성직자의 영향력이 줄어들기 시작했고, 1925년 새 헌법 공포로 정교 분리가 확립되었다.
2012년 기준, 15세 이상 칠레 인구의 66.6%가 로마 가톨릭 신자라고 밝혔으며, 이는 2002년 인구 조사의 70%에서 감소한 수치이다. 같은 2012년 인구 조사에서 칠레인의 17%는 복음주의 교회에 속한다고 보고했다 (인구 조사에서 "복음주의"는 로마 가톨릭 및 정교회(그리스, 페르시아, 세르비아, 우크라이나, 아르메니아) 교회, 예수 그리스도 후기 성도 교회,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회, 여호와의 증인을 제외한 모든 기독교 교파를 지칭하며, 본질적으로 대부분의 영어권 국가에서 여전히 "개신교"라고 불리는 교파들이지만, 재림교는 종종 복음주의 교파로 간주되기도 한다). 복음주의 기독교인의 약 90%는 오순절파이다. 그러나 웨슬리언, 루터교, 성공회, 성공회 감독파, 장로교, 개혁 교회, 침례교, 감리교 교회도 칠레 복음주의 교회들 사이에 존재한다. 무종교인, 무신론자, 불가지론자는 인구의 약 12%를 차지한다.
2015년까지 칠레의 주요 종교는 여전히 기독교(68%)였으며, 칠레인의 약 55%가 로마 가톨릭 교회에, 13%가 다양한 복음주의 교회에 속했고, 단 7%만이 다른 종교를 따랐다. 불가지론자와 무신론자는 인구의 25%로 추정되었다.
칠레에는 바하이교 공동체가 있으며, 라틴 아메리카를 위한 바하이교 모 사원 또는 대륙 바하이 예배당이 있다. 2016년에 완공된 이 사원은 모든 종교와 배경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 명상하고, 성찰하고, 예배할 수 있는 공간으로 사용된다. 주조 유리와 반투명 대리석으로 만들어졌으며 건축 양식이 혁신적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헌법은 종교의 자유를 보장하며, 다른 법률과 정책은 일반적으로 자유로운 종교 활동에 기여한다. 모든 수준의 법률은 정부나 민간 행위자에 의한 남용으로부터 이 권리를 완전히 보호한다. 교회와 국가는 칠레에서 공식적으로 분리되어 있다. 1999년 종교법은 종교 차별을 금지한다. 그러나 로마 가톨릭 교회는 주로 역사적, 사회적 이유로 특권적 지위를 누리며 때때로 우대받는다. 정부 관리들은 로마 가톨릭 행사뿐만 아니라 주요 복음주의 및 유대교 행사에도 참석한다.
칠레 정부는 크리스마스, 성금요일, 카르멜 산의 성모 축일, 성 베드로와 성 바오로 축일, 성모 승천 대축일, 모든 성인의 날, 원죄 없이 잉태되신 동정 마리아 대축일을 공휴일로 지정하고 있다. 최근 정부는 국내 복음주의 교회를 기리기 위해 10월 31일 종교 개혁 기념일을 추가 공휴일로 선포했다.
칠레의 수호성인은 가르멜 산의 성모와 대 야고보(산티아고)이다. 2005년 교황 베네딕토 16세는 알베르토 우르타도를 시성했으며, 그는 안데스의 데레사에 이어 칠레 출신의 두 번째 로마 가톨릭 성인이 되었다.
11.5. 언어

칠레에서 사용되는 스페인어는 독특한 억양을 가지고 있으며, 마지막 음절이 종종 생략되고 일부 자음이 부드럽게 발음되기 때문에 이웃 남아메리카 국가들의 스페인어와는 상당히 다르다. 억양은 북쪽에서 남쪽으로 갈수록 아주 약간만 다르며, 사회 계층이나 도시 또는 시골 거주 여부에 따른 억양 차이가 더 두드러진다. 칠레 인구가 주로 국토 중앙의 작은 구역에서 형성된 후 북쪽과 남쪽으로 소규모로 이주했다는 사실은 이러한 상대적인 차이 부족을 설명하는 데 도움이 되며, 이는 라디오의 전국적인 영향력, 그리고 현재는 텔레비전에 의해 유지되어 구어 표현을 확산시키고 균질화하는 데에도 기여한다.
칠레에는 여러 원주민 언어가 사용된다: 마푸둥군어, 아이마라어, 라파누이어, 칠레 수어, 그리고 (거의 살아남지 못한) 카웨스카르어와 야간어가 있으며, 비원주민 언어로는 독일어, 이탈리아어, 영어, 그리스어, 케추아어가 있다. 스페인 정복 이후, 스페인어가 공용어가 되었고 원주민 언어들은 소수 언어가 되었으며, 일부는 현재 멸종되었거나 멸종 위기에 처해 있다.
독일어는 칠레 남부에서 어느 정도 사용되며, 작은 시골 지역이나 대도시 공동체 내에서 제2언어로 사용된다.
잉글리시 오픈 도어스 프로그램과 같은 계획을 통해 정부는 공립학교 5학년 이상 학생들에게 영어를 필수로 지정했다. 칠레의 대부분 사립학교는 유치원부터 영어를 가르치기 시작한다. 일반적인 영어 단어들이 일상 스페인어에 흡수되어 사용되기도 한다.
11.6. 보건과 복지

칠레의 보건 시스템은 공공 부문과 민간 부문이 혼합된 형태로 운영된다. 공공 부문은 국민건강기금(FONASA, Fondo Nacional de Salud)을 통해 대부분의 국민에게 의료 서비스를 제공하며, 민간 부문은 민간의료보험기관(ISAPRE, Instituciones de Salud Previsional)을 통해 추가적인 의료 서비스를 제공한다.
보건부(Minsal)는 칠레 대통령이 수립한 공중 보건 정책을 계획, 지휘, 조정, 실행, 통제하고 대중에게 알리는 내각 수준의 행정 기관이다. 1979년에 설립된 FONASA는 칠레의 국가 보건 기금을 징수, 관리, 분배하는 금융 기관으로, 공공 자금으로 운영된다. 모든 근로자는 월 소득의 7%를 이 기금에 납부한다. FONASA는 국가보건의료시스템(NHSS)의 일부이며 보건부를 통해 집행권을 갖는다. 본부는 산티아고에 있으며, 분산된 공공 서비스는 다양한 지역 사무소에서 수행한다. 천이백만 명 이상의 수혜자가 FONASA의 혜택을 받는다. 수혜자는 ISAPRE를 통해 더 비싼 민간 보험을 선택할 수도 있다.
칠레는 높은 평균 수명과 낮은 영아 사망률 등 비교적 양호한 건강 지표를 가지고 있으나, 공공 의료 시스템의 대기 시간 문제, 의료 자원의 지역적 불균형, 그리고 공공 부문과 민간 부문 간의 서비스 질 차이 등이 해결해야 할 과제로 남아 있다.
사회 복지 제도로는 연금 제도, 실업 보험, 저소득층 지원 프로그램 등이 운영되고 있다. 특히 연금 제도는 1980년대 민영화되어 개인 계좌를 기반으로 하는 AFP(Administradoras de Fondos de Pensiones) 시스템으로 운영되고 있으나, 낮은 연금 수령액 문제로 인해 사회적 논란이 지속되어 왔으며, 이에 대한 개혁 논의가 진행 중이다.
2024년 세계 기아 지수에서 칠레는 GHI 점수가 5 미만인 22개국 중 하나이다.
11.7. 교육

칠레의 교육 제도는 유아 교육, 초등 교육, 중등 교육, 고등 교육 단계로 구성된다. 의무 교육은 초등 교육부터 중등 교육 2학년까지 총 8년이다.
- 유아 교육 (Educación Parvularia): 만 5세까지의 아동을 대상으로 한다.
- 초등 교육 (Educación Básica): 만 6세부터 13세까지의 아동을 대상으로 하며, 8년 과정이다.
- 중등 교육 (Educación Media): 초등 교육 이후 4년 과정으로, 인문-과학(científico-humanista), 기술-전문(técnico-profesional), 예술(artística) 과정으로 나뉜다.
- 고등 교육 (Educación Superior): 대학(universidades), 전문 교육 기관(institutos profesionales), 기술 교육 센터(centros de formación técnica)에서 제공된다.
칠레의 교육은 부에 따라 세 단계로 분리되어 있으며, 학교의 질은 사회경제적 배경을 반영한다.
- 대부분 무료이며 교육 결과가 가장 나쁜 도시 학교(colegios municipales)는 주로 가난한 학생들이 다닌다.
- 정부로부터 일부 지원을 받는 보조금 학교(subsidized schools)는 학생 가족이 지불하는 수업료로 보충될 수 있으며, 중산층 학생들이 다니고 일반적으로 중간 수준의 결과를 얻는다.
- 지속적으로 최고의 결과를 얻는 완전 사립 학교(entirely private schools)가 있다. 많은 사립 학교는 가계 소득 중앙값의 0.5배에서 1배에 해당하는 수업료를 부과한다.
칠레의 주요 대학으로는 국립 칠레 대학교(Universidad de Chile), 칠레 교황청 가톨릭 대학교(Pontificia Universidad Católica de Chile), 콘셉시온 대학교(Universidad de Concepción) 등이 있다. 칠레는 라틴 아메리카에서 비교적 높은 교육 수준을 가지고 있으나, 교육의 질과 기회에 있어 사회 계층 간 불균형 문제가 지속적으로 제기되어 왔다. 2000년대 이후 학생 운동을 통해 교육 개혁에 대한 요구가 높아졌으며, 무상 교육 확대 및 교육의 질 향상을 위한 정책들이 추진되고 있다. 예일 대학교와 협력하여 법률 학교를 제공하는 의과 대학과 칠레 대학교 및 디에고 포르탈레스 대학교가 있다.
11.8. 사회 문제
칠레는 라틴 아메리카에서 비교적 안정적이고 발전된 국가로 평가받지만, 여러 사회 문제에 직면하고 있다.
- 소득 불평등: 칠레는 OECD 국가 중에서도 소득 불평등이 심각한 나라 중 하나이다. 경제 성장에도 불구하고 부의 분배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아 상위 계층과 하위 계층 간의 소득 격차가 크며, 이는 사회적 긴장과 갈등의 주요 원인이 되고 있다.
- 사회 갈등: 소득 불평등, 교육 및 의료 시스템의 문제, 연금 제도의 미비 등은 다양한 사회 갈등을 야기하고 있다. 특히 2019년에는 지하철 요금 인상을 계기로 대규모 전국적인 시위가 발생했으며, 이는 칠레 사회의 구조적인 문제에 대한 광범위한 불만을 표출하는 계기가 되었다.
- 원주민 문제: 마푸체족을 중심으로 한 원주민 집단은 토지 반환, 자치권 확대, 문화적 정체성 존중 등을 요구하며 정부 및 기업과 갈등을 겪고 있다. 일부 지역에서는 폭력적인 시위와 충돌이 발생하기도 한다.
- 환경 문제: 광업, 임업, 농업 등 주요 산업 활동으로 인한 환경 오염과 자연 파괴 문제가 제기되고 있다. 특히 북부 광산 지역의 수질 오염, 남부 산림 파괴, 기후 변화로 인한 물 부족 문제 등이 심각하다.
- 젠더 불평등 및 폭력: 여성에 대한 차별과 폭력 문제 또한 중요한 사회 문제로 인식되고 있으며, 여성 권익 향상을 위한 사회적 요구가 높아지고 있다.
- 이민 문제: 최근 베네수엘라, 아이티 등 주변 국가로부터의 이민자가 증가하면서, 이민자 통합 및 사회적 갈등 문제가 새로운 과제로 부상하고 있다.
이러한 사회 문제 해결을 위해 정부와 시민 사회는 다양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으며, 특히 2019년 시위 이후에는 사회 구조 개혁과 새 헌법 제정에 대한 논의가 활발하게 진행되었으나, 두 차례의 국민투표에서 새 헌법안이 부결되면서 개혁의 방향은 여전히 모색 중이다.
12. 문화
칠레의 문화는 아메리카 원주민 전통, 스페인 식민 시대의 유산, 그리고 이후 유입된 다양한 유럽 이민자들의 영향이 혼합되어 형성되었다. 지리적으로 길고 다양한 환경을 가진 국토는 지역별로 독특한 문화적 특색을 발전시키는 데 기여했다.
12.1. 음악과 춤


칠레의 음악은 민속 음악, 대중 음악, 클래식 음악 등 다양한 장르를 아우른다. 광대한 지리적 특성은 북부, 중부, 남부 지역뿐만 아니라 이스터섬과 마푸체 음악을 포함하여 다양한 음악 스타일을 낳았다. 국가 춤은 쿠에카(cueca)이다. 전통 칠레 노래의 또 다른 형태는 춤은 아니지만 토나다(tonada)이다. 스페인 식민주의자들이 수입한 음악에서 비롯된 이 노래는 중간 멜로디 부분과 더 두드러진 멜로디로 쿠에카와 구별된다.
1950년대부터 1970년대까지, 비올레타 파라, 라울 데 라몬, 페드로 메소네와 같은 작곡가들이 이끈 누에바 칸시온 칠레나 운동으로 토착 민속 음악 형식이 부활했으며, 이는 빅토르 하라, 인티 이이마니, 킬라파윤과 같은 정치 운동가 및 개혁가들과도 관련이 있었다. 또한 로스 하이바스, 로스 프리시오네로스, 라 레이, 로스 트레스, 로스 붕케르스와 같은 많은 칠레 록 밴드들이 국제적인 성공을 거두었으며, 일부는 로스 하이바스처럼 강력한 민속적 영향을 통합했다. 2월에는 비냐델마르에서 연례 음악 및 코미디 축제가 열린다.
- 쿠에카 (Cueca): 칠레의 국가무(國家舞)로 지정된 전통 춤과 음악이다. 손수건을 흔들며 추는 구애의 춤으로, 지역별로 다양한 스타일이 존재한다.
- 누에바 칸시온 (Nueva Canción): 1960년대와 1970년대에 사회적, 정치적 메시지를 담아 민중의 목소리를 대변했던 음악 운동이다. 비올레타 파라, 빅토르 하라 등이 대표적인 음악가이다.
- 안데스 음악: 북부 지역을 중심으로 발달한 음악으로, 케나, 시쿠, 차랑고 등 전통 악기를 사용하여 연주된다.
- 현대 대중음악: 록, 팝, 힙합 등 다양한 장르의 현대 대중음악도 활발하며, 국제적으로 성공한 칠레 음악가들도 다수 있다.
12.2. 문학


노벨 문학상 수상자인 파블로 네루다와 가브리엘라 미스트랄.
칠레는 "시인의 나라"로 불린다. 가브리엘라 미스트랄은 라틴 아메리카 최초로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인물(1945년)이다. 칠레에서 가장 유명한 시인은 파블로 네루다로, 그는 노벨 문학상(1971년)을 수상했으며 로맨스, 자연, 정치에 관한 방대한 작품으로 세계적으로 유명하다. 이슬라 네그라, 산티아고, 발파라이소에 있는 그의 매우 개인적인 세 채의 집은 인기 있는 관광지이다.
다른 칠레 시인으로는 카를로스 페소아 벨리스, 비센테 우이도브로, 곤살로 로하스, 파블로 데 로카, 니카노르 파라, 이본 코뉴에카르, 라울 수리타 등이 있다. 이사벨 아옌데는 칠레에서 가장 많이 팔린 소설가로, 전 세계적으로 5,100만 부의 소설이 팔렸다. 소설가 호세 도노소의 소설 야밤의 음탕한 새는 비평가 해럴드 블룸에 의해 20세기 서양 문학의 정전 중 하나로 간주된다. 국제적으로 인정받는 또 다른 칠레 소설가이자 시인으로는 영어 번역본이 비평가들로부터 훌륭한 평가를 받은 로베르토 볼라뇨가 있다.
칠레는 두 명의 노벨 문학상 수상자를 배출했다.
- 가브리엘라 미스트랄 (Gabriela Mistral, 1889-1957): 라틴 아메리카 최초의 노벨 문학상 수상자(1945년)로, 서정적이고 모성애 넘치는 시로 유명하다.
- 파블로 네루다 (Pablo Neruda, 1904-1973): 1971년 노벨 문학상 수상자로, 사랑, 자연, 정치 등 다양한 주제를 다룬 시로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다.
그 외에도 니카노르 파라(반시(反詩) 운동의 창시자), 이사벨 아옌데(현대 셔설가), 로베르토 볼라뇨(소설가 및 시인) 등 국제적으로 인정받는 작가들이 다수 있다.
12.3. 음식

칠레 음식은 다양한 지형을 반영하여 해산물, 소고기, 과일, 채소를 풍부하게 사용한다. 전통 요리로는 아사도, 카수엘라, 엠파나다, 우미타, 파스텔 데 초클로, 파스텔 데 파파스, 쿠란토, 소파이피야 등이 있다. 크루도스는 칠레의 다양한 민족적 영향이 혼합된 요리의 예이다. 생 다진 라마, 해산물의 풍부한 사용, 쌀빵은 토착 케추아족 안데스 요리에서 가져왔으며(유럽인들이 칠레에 가져온 소고기도 라마 고기 대신 사용됨), 레몬과 양파는 스페인 식민주의자들이 가져왔고, 마요네즈와 요구르트 사용은 독일 이민자들이 맥주와 함께 도입했다.
- 엠파나다 (Empanada): 다진 고기, 양파, 올리브, 삶은 달걀 등을 넣어 만든 소를 밀가루 반죽으로 감싸 구운 파이 형태의 음식이다.
- 파스텔 데 초클로 (Pastel de Choclo): 옥수수 반죽 아래에 다진 고기, 닭고기, 양파, 올리브 등을 넣고 구운 캐서롤과 유사한 음식이다.
- 쿠란토 (Curanto): 주로 칠로에섬 지방의 전통 음식으로, 뜨겁게 달군 돌 위에 조개류, 고기, 감자, 소시지 등을 겹겹이 쌓고 나뭇잎으로 덮어 쪄서 만든다.
- 세비체 (Ceviche): 신선한 생선이나 해산물을 레몬이나 라임 즙에 절여 양파, 고추 등과 함께 먹는 음식으로, 페루의 영향도 받았다.
- 칠레 와인: 세계적으로 유명한 칠레 와인은 다양한 품종의 포도로 생산되며, 특히 카베르네 소비뇽, 메를로, 카르메네르 등이 대표적이다.
12.4. 민속과 신화
칠레의 민속과 신화는 원주민 문화와 스페인 식민 시대의 영향이 결합된 독특한 형태를 띤다. 각 지역마다 고유한 전설과 민담이 전해져 내려온다.
- 칠로에 신화 (Mitología chilota): 칠로에 군도 지역의 풍부한 신화 체계로, 트라우코(Trauco, 숲의 정령), 핀코야(Pincoya, 바다의 풍요를 관장하는 여신), 칼레우체(Caleuche, 유령선) 등 다양한 신화적 존재들이 등장한다.
- 마푸체 신화 (Mitología mapuche): 마푸체족의 우주관과 세계관을 반영하는 신화로, 창조신화, 자연현상에 대한 설명, 영웅담 등이 포함된다. 필란(Pillán, 화산과 천둥의 정령) 등이 중요한 존재로 여겨진다.
- 기타 지역 민속: 북부 안데스 지역의 광산 관련 전설, 파타고니아 지역의 거인 전설 등 지역별 특색을 담은 다양한 민속 이야기가 존재한다.
이러한 민속과 신화는 셔실, 음악, 미술 등 다양한 예술 분야에 영감을 제공하며 칠레 문화의 중요한 부분을 이루고 있다.
12.5. 스포츠

칠레에서 가장 인기 있는 스포츠는 축구이다. 칠레는 FIFA 월드컵에 9번 출전했으며, 1962년 FIFA 월드컵을 개최하여 국가대표팀이 3위를 차지했다. 국가대표팀이 달성한 다른 성과로는 코파 아메리카 우승 2회(2015년 및 2016년), 준우승 2회, 팬아메리칸 게임 은메달 1개 및 동메달 2개, 2000년 하계 올림픽 동메달, FIFA U-17 및 U-20 청소년 토너먼트 3위 2회가 있다. 칠레 축구 리그 시스템의 최상위 리그는 칠레 프리메라 디비시온으로, IFFHS에 의해 세계에서 9번째로 강력한 국내 축구 리그로 선정되었다.
주요 축구 클럽으로는 콜로-콜로, 우니베르시다드 데 칠레, 우니베르시다드 카톨리카가 있다. 콜로-콜로는 국내 및 국제 대회에서 가장 많은 우승을 차지한 칠레에서 가장 성공적인 축구 클럽으로, 남미 클럽 토너먼트인 코파 리베르타도레스 우승도 포함한다. 우니베르시다드 데 칠레는 가장 최근의 국제 대회 우승팀이다(코파 수다메리카나 2011).
테니스는 칠레에서 가장 성공적인 스포츠이다. 국가대표팀은 월드 팀 컵 클레이 토너먼트에서 두 번 우승(2003년 및 2004년)했으며, 1976년 이탈리아를 상대로 데이비스 컵 결승전을 치렀다. 2004년 하계 올림픽에서 칠레는 남자 단식에서 금메달과 동메달, 남자 복식에서 금메달을 획득했다(니콜라스 마수가 금메달 2개 획득). 마르셀로 리오스는 1998년 ATP 단식 랭킹 1위에 오른 최초의 라틴 아메리카 남성이 되었다. 아니타 리사나는 1937년 US 오픈에서 우승하여 라틴 아메리카 여성 최초로 그랜드 슬램 토너먼트에서 우승했다. 루이스 아얄라는 프랑스 오픈에서 두 번 준우승했으며, 리오스와 페르난도 곤살레스 모두 호주 오픈 남자 단식 결승에 진출했다. 곤살레스는 또한 2008년 베이징 하계 올림픽 단식에서 은메달을 획득했다.
하계 올림픽에서 칠레는 총 금메달 2개(테니스), 은메달 7개(육상, 승마, 권투, 사격, 테니스), 동메달 4개(테니스, 권투, 축구)를 자랑한다. 2012년 칠레는 패럴림픽에서 첫 메달(육상 금메달)을 획득했다.

로데오는 칠레의 국기(國技)이며, 주로 시골 지역에서 행해진다. 스페인 정복 당시 마푸체족이 했던 추에카라는 하키와 유사한 스포츠도 있다. 스키와 스노보드는 중앙 안데스 산맥의 스키 센터와 오소르노, 푸에르토바라스, 테무코, 푼타아레나스 근처의 남부 스키 센터에서 즐길 수 있다. 서핑은 일부 해안 마을에서 인기가 있다. 폴로는 칠레에서 전문적으로 행해지며, 2008년과 2015년 세계 폴로 선수권 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했다.
농구는 인기 있는 스포츠로, 칠레는 1950년 개최된 제1회 남자 FIBA 세계 선수권 대회에서 동메달을 획득했고, 1959년 FIBA 세계 선수권 대회를 개최했을 때 두 번째 동메달을 획득했다. 칠레는 1953년 제1회 FIBA 여자 세계 선수권 대회를 개최하여 은메달로 대회를 마쳤다. 산페드로데아타카마는 매년 열리는 "아타카마 크로싱"의 개최지로, 35개국에서 약 150명의 경쟁자가 참가하는 6단계, 250 km의 도보 경주이다. 다카르 랠리 오프로드 자동차 경주는 2009년부터 칠레와 아르헨티나에서 개최되었다.
12.6. 세계유산

칠레는 풍부한 자연환경과 독특한 문화적 발자취를 인정받아 여러 유네스코 세계유산을 보유하고 있다. 2024년 기준 칠레의 세계유산은 총 7건으로, 문화유산 6건과 자연유산 1건(친초로 문화의 정착지와 인공 미라화 유적)이 등재되어 있다. (친초로는 문화유산이지만 자연 경관 내에 위치하여 복합적 성격을 지닌다.)
- 라파 누이 국립공원 (Rapa Nui National Park, 1995년 등재): 이스터섬에 위치하며, 거대한 모아이 석상으로 유명한 폴리네시아 문화의 독특한 유적지이다.
- 칠로에의 교회들 (Churches of Chiloé, 2000년 등재): 칠로에섬과 인근 지역에 있는 목조 교회들로, 유럽 예수회 양식과 원주민 건축 기술이 결합된 독특한 건축 양식을 보여준다.
- 발파라이소 항구 도시의 역사 지구 (Historic Quarter of the Seaport City of Valparaíso, 2003년 등재):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에 건설된 항구 도시로, 가파른 언덕에 다채로운 색상의 건물들이 들어서 있는 독특한 도시 경관을 자랑한다.
- 움베르스톤 및 산타 라우라 초석 작업장 유적 (Humberstone and Santa Laura Saltpeter Works, 2005년 등재):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까지 번성했던 초석 채굴 산업의 중심지로, 당시 노동자들의 생활 모습과 산업 시설이 잘 보존되어 있다.
- 세웰 광산촌 (Sewell Mining Town, 2006년 등재): 안데스 산맥 고지대에 위치한 구리 광산 도시로, 20세기 초 노동자들의 생활과 산업 활동을 보여주는 독특한 건축물과 도시 구조를 간직하고 있다.
- 카팍냔, 안데스의 도로 체계 (Qhapaq Ñan, Andean Road System, 2014년 등재): 아르헨티나, 볼리비아, 콜롬비아, 에콰도르, 페루와 공동 등재된 유산으로, 잉카 제국의 광대한 도로망 중 칠레 구간을 포함한다.
- 아리카 이 파리나코타 지방 친초로 문화의 정착지와 인공 미라화 유적 (Settlement and Artificial Mummification of the Chinchorro Culture in the Arica y Parinacota Region, 2021년 등재):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인공 미라 제작 기술을 보여주는 친초로 문화의 고고학적 유적지이다.
이들 세계유산은 칠레의 자연적 아름다움과 풍부한 문화적 다양성을 세계에 알리는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13. 국가 상징
칠레를 대표하는 주요 국가 상징물들은 다음과 같다.
- 국기: 흰색, 파란색, 빨간색의 세 가지 색으로 구성된다. 하얀색은 안데스 산맥의 눈을, 파란색은 하늘과 태평양을, 빨간색은 독립을 위해 흘린 피를 상징한다. 파란색 사각형 안의 흰색 별은 진보와 명예를 향한 길잡이를 의미한다. 칠레 국기는 텍사스주기와 유사하지만, 칠레 국기가 21년 더 오래되었다. 그러나 텍사스 주기처럼 칠레 국기도 미국 국기를 모델로 했다.
- 국장: 방패 중앙에는 국기와 동일한 별이 그려져 있으며, 방패 좌우에는 국가를 상징하는 동물인 안데스콘도르(Vultur gryphus)와 우에물(Huemul, Hippocamelus bisulcus)이 방패를 받치고 있다. 콘도르는 안데스 산맥의 웅장함을, 우에물은 칠레 고유의 동물상을 상징한다. 국장 위쪽에는 세 가지 색의 깃털 장식이 있으며, 아래쪽에는 "Por la Razón o la Fuerza" (이성으로 또는 힘으로)라는 국가 표어가 적혀 있다.
- 국가: "Himno Nacional de Chile"로, 에우세비오 리요(Eusebio Lillo)가 작사하고 라몬 카르니세르(Ramón Carnicer)가 작곡했다.
- 국화: 코피우에(Lapageria rosea)는 칠레 남부 숲에서 자라는 붉은색 또는 흰색의 아름다운 종 모양 꽃으로, 칠레의 고유종이다.
- 국조: 안데스콘도르는 안데스 산맥에 서식하는 매우 큰 새로, 칠레의 국장에도 등장하는 중요한 상징 동물이다.
이러한 상징물들은 칠레의 역사, 자연, 국민 정체성을 반영하며 국내외적으로 칠레를 대표하는 역할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