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국호
폴란드의 폴란드어 정식 국명은 제치포스폴리타 폴스카(Rzeczpospolita Polska제치포스폴리타 폴스카폴란드어)이며, 통용되는 국명은 폴스카(Polska폴스카폴란드어)이다. "폴스카"라는 이름은 오늘날 비엘코폴스카 지역의 바르타 강 유역에 거주했던 서슬라브 부족인 폴란인(Polans)에서 유래했다(서기 6~8세기). 이 부족의 이름은 '들판'을 의미하는 원시 슬라브어 명사 '폴레(pole)'에서 유래했으며, 이는 다시 평지를 의미하는 원시 인도유럽어 '*pleh₂-'에서 비롯되었다. 이 어원은 해당 지역의 지형과 비엘코폴스카의 평평한 풍경을 암시한다.
중세 시대에는 라틴어 형태인 '폴로니아(Polonia)'가 유럽 전역에서 널리 사용되었다. 폴란드의 고대 대체 명칭은 '레히아(Lechia)'이며, 그 어근은 헝가리어, 리투아니아어, 페르시아어 등 여러 언어에서 공식적으로 사용되고 있다. 이 외국 명칭은 레흐족(Lechites)의 전설적인 통치자인 레흐(Lech) 또는 마워폴스카 남동쪽 가장자리에 거주했던 서슬라브 부족인 렌디아인(Lendians)에서 유래했을 가능성이 있다. 이 부족 이름의 기원은 '평야'를 의미하는 고대 폴란드어 단어 '렝다(lęda)'에 있다. 초기에 '레히아'와 '폴로니아'라는 두 이름은 중세 시대 연대기 작가들이 폴란드를 지칭할 때 혼용하여 사용했다. 영어 명칭 '폴란드(Poland)'는 1560년대에 형성되었으며, 독일어 '폴레(Pole)'(복수형 '폴렌(Polen)')에 사람이나 국가를 나타내는 접미사 '-land'가 붙은 것이다.
'공화국'에 해당하는 '제치포스폴리타(Rzeczpospolita)'는 '공공의 것'을 의미하는 라틴어 '레스 푸블리카(res publica)'를 번역차용한 것이다. '레스(res)'는 '사물' 또는 '재산'을 의미하며, 폴란드어에서는 '제치(rzecz)'가 이에 해당한다. '푸블리카(publica)'는 '공공의'를 의미하며, 폴란드어에서는 '포스폴리타(pospolita)'가 이에 해당한다.
2. 역사
폴란드 영토 내의 인류 거주 흔적은 구석기 시대 전기로 거슬러 올라가며, 마지막 빙하기가 끝난 이후 지속적인 정착이 이루어졌다. 고대 후기에는 다양한 문화가 공존했으며, 중세 초기에는 서슬라브 부족인 폴란인이 거주하며 폴란드라는 국명의 기원이 되었다. 국가 형성 과정은 966년 폴란인의 이교도 통치자가 로마 가톨릭교회의 후원 하에 기독교로 개종하면서 시작되었다. 1025년 폴란드 왕국이 등장했고, 1569년에는 리투아니아와의 오랜 연합을 공고히 하여 폴란드-리투아니아 연방을 형성했다. 당시 연방은 유럽의 강대국 중 하나였으며, 선거군주제와 독특하게 자유로운 정치 체제를 가졌고, 1791년에는 유럽 최초의 근대 헌법을 채택했다.
번영했던 폴란드 황금기가 지나면서 18세기 말 폴란드는 주변 국가들에 의해 분할되었다. 제1차 세계 대전이 끝난 1918년 폴란드 제2공화국이 수립되면서 독립을 되찾았고, 전간기 동안 여러 분쟁에서 승리했다. 1939년 9월 나치 독일과 소련의 폴란드 침공은 제2차 세계 대전의 시작을 알렸으며, 이는 홀로코스트와 수백만 명의 폴란드인 희생자를 낳았다. 냉전 시대 동구권에 편입된 폴란드 인민 공화국은 바르샤바 조약 기구의 창립 서명국이었다. 자유노조 운동의 등장과 기여를 통해 공산 정부는 해체되었고, 폴란드는 1989년 주변국들 중 가장 먼저 자유민주주의 국가로 재탄생했다.
2.1. 선사 시대와 고대 국가

폴란드가 될 지역에 최초의 구석기 시대 고대 인류와 호모 에렉투스 종이 정착한 것은 약 50만 년 전이지만, 이후 혹독한 기후로 인해 초기 인류는 더 영구적인 야영지를 세우지 못했다. 호모 사피엔스와 해부학적으로 현생인류의 도래는 마지막 빙하기(북폴란드 빙하작용, 기원전 10,000년) 말기의 기후 단절과 일치하며, 이때 폴란드는 거주 가능하게 되었다. 신석기 시대 발굴 조사에 따르면 그 시대에 광범위한 발전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유럽 최초의 치즈 제조 증거(기원전 5500년)가 폴란드 쿠야비아에서 발견되었고, 브로노치체 단지에는 바퀴 달린 차량으로 추정되는 최초의 묘사가 새겨져 있다(기원전 3400년).
청동기 시대와 철기 시대 초기(기원전 1300년~기원전 500년)는 인구 밀도 증가, 목책으로 둘러싸인 정착지(고르드) 건설, 루사티아 문화의 확장이 특징이었다. 폴란드 선사 시대의 중요한 고고학적 발견물은 청동기 시대 후기(기원전 8세기 중반) 루사티아 문화에 속하는 비스쿠핀의 요새화된 정착지이다.
고전 고대(기원전 400년~서기 500년) 동안 현재 폴란드 영토에는 켈트족, 스키타이인, 게르만족, 사르마티아인, 발트족, 슬라브족 등 많은 고대 부족이 거주했다. 또한, 고고학적 발견은 호박 교역을 보호하기 위해 파견된 로마 군단의 존재를 확인시켜 주었다. 폴란드 부족들은 서기 6세기경 민족 대이동의 두 번째 물결 이후 등장했으며, 이들은 슬라브계였고 이전에 이 지역에 거주했던 민족들의 동화된 잔존 세력을 포함했을 수 있다. 10세기 초부터 폴란인은 이 지역의 다른 레흐 부족들을 지배하게 되었으며, 처음에는 부족 연맹을 형성했다가 나중에는 중앙 집권적인 군주 국가를 형성했다.
2.2. 폴란드 왕국 (피아스트 왕조)

폴란드는 피아스트 왕조 하에서 10세기 중반경부터 통일되고 영토적인 실체로 형성되기 시작했다. 966년 폴란인의 통치자 미에슈코 1세는 로마 가톨릭교회의 후원으로 기독교를 받아들였다. 968년 포즈난에 선교 주교구가 설립되었다. 다고메 유덱스라는 제목의 인키피트는 그니에즈노를 수도로 하는 폴란드의 지리적 경계를 처음으로 정의하고 그 군주국이 교황청의 보호 하에 있음을 확인했다. 폴란드의 초기 기원은 가장 오래된 폴란드 연대기인 갈루스 아노니무스의 폴란드 군주 행록에 기술되어 있다. 이 시기의 중요한 국가적 사건은 997년 프로이센 이교도들에게 살해된 성 아달베르트의 순교였으며, 그의 유해는 미에슈코의 후계자 볼레스와프 1세 흐로브리가 금과 같은 무게로 사들였다고 전해진다.
1000년 그니에즈노 회의에서 볼레스와프는 오토 3세로부터 서임권을 얻었으며, 오토 3세는 그니에즈노에 추가 주교구와 대교구 설립에 동의했다. 이후 크라쿠프, 코워브제크, 브로츠와프에 세 개의 새로운 교구가 설립되었다. 또한 오토 3세는 볼레스와프에게 왕실 레갈리아와 성창 복제품을 수여했으며, 이는 1025년경 볼레스와프가 교황 요한 19세로부터 대관식 허가를 받아 폴란드 최초의 국왕으로 즉위할 때 사용되었다. 볼레스와프는 또한 독일 루사티아, 체코 모라바, 헝가리 북부, 키예프 루스의 남서부 지역을 점령하여 영토를 상당히 확장했다.
폴란드에서 이교도 신앙에서 기독교로의 전환은 즉각적으로 이루어지지 않았으며 1030년대의 이교도 반란을 초래했다. 1031년 미에슈코 2세 람베르트는 왕위를 잃고 폭력 사태 속에서 도피했다. 이 소요로 인해 1038년 카지미에시 1세에 의해 수도가 크라쿠프로 이전되었다. 1076년 볼레스와프 2세는 왕위를 다시 세웠으나, 1079년 그의 반대파였던 스타니스와프 주교를 살해한 죄로 추방당했다. 1138년 볼레스와프 3세가 자신의 영지를 아들들에게 분할하면서 국가는 5개의 주요 공국으로 분열되었다. 이들은 마워폴스카, 비엘코폴스카, 실레시아, 마조프셰, 산도미에시였으며, 포메라니아에 대한 간헐적인 지배권을 가졌다. 1226년 콘라트 1세는 발트계 프로이센인과의 전투를 돕기 위해 튜턴 기사단을 초청했는데, 이는 나중에 기사단과의 수세기에 걸친 전쟁으로 이어지는 결정이었다.
13세기 전반에 헨리크 1세와 헨리크 2세는 분열된 공국들을 통합하려 했으나, 몽골의 침공과 전투에서 헨리크 2세가 사망하면서 통일은 좌절되었다. 이어진 황폐화로 인한 인구 감소와 수공업 노동력 수요는 폴란드 공작들의 장려로 독일인과 플랑드르인 정착민들의 폴란드 이주를 촉진했다. 1264년 칼리시 법령은 유럽 다른 지역에서 박해를 피해 폴란드로 온 폴란드 유대인들에게 전례 없는 자치권을 부여했다.
1320년 브와디스와프 1세는 1296년 프셰미수 2세 이후 통일된 폴란드의 첫 번째 국왕이 되었으며, 크라쿠프의 바벨 대성당에서 처음으로 대관식을 올린 왕이 되었다. 1333년부터 시작된 카지미에시 3세 대왕의 통치는 성곽 기반 시설, 군대, 사법 제도, 외교 분야의 발전으로 특징지어진다. 그의 권위 하에 폴란드는 주요 유럽 강국으로 변모했으며, 1340년에는 루테니아에 대한 폴란드 통치를 확립하고 흑사병의 확산을 막는 검역을 시행했다. 1364년 카지미에시는 유럽에서 가장 오래된 고등 교육 기관 중 하나인 크라쿠프 대학교를 창립했다. 1370년 그가 사망하면서 피아스트 왕조는 막을 내렸다. 그의 가장 가까운 남자 친척인 앙주의 러요시가 그를 계승하여 폴란드, 헝가리, 크로아티아를 동군연합으로 통치했다. 러요시의 작은 딸 야드비가는 1384년 폴란드 최초의 여성 군주가 되었다.
2.3. 황금 시대 (야기에우워 왕조)

1386년 폴란드의 야드비가는 리투아니아 대공 요가일라와 정략결혼을 하여 야기에우워 왕조와 폴란드-리투아니아 연합을 형성했으며, 이는 중세 시대 후기와 근대 초기에 걸쳐 이어졌다. 폴란드인과 리투아니아인의 협력은 광대한 다민족 리투아니아 영토를 폴란드의 영향권으로 끌어들였으며, 당시 유럽에서 가장 큰 정치적 실체 중 하나에서 공존했던 주민들에게 유익한 것으로 입증되었다.
발트해 지역에서 폴란드와 리투아니아의 튜턴 기사단과의 투쟁은 계속되었고 1410년 그룬발트 전투에서 절정에 달했으며, 이 전투에서 연합된 폴란드-리투아니아 군대는 그들에게 결정적인 승리를 거두었다. 1466년 13년 전쟁 이후 카지미에시 4세 국왕은 폴란드 종주권 하에 미래의 프로이센 공국을 창설하고 프로이센 통치자들에게 조공을 바치도록 강요한 토룬 평화 조약에 왕실의 동의를 표했다. 야기에우워 왕조는 또한 보헤미아 왕국(1471년 이후)과 헝가리 왕국에 대한 왕조적 지배권을 확립했다. 남쪽에서는 폴란드가 오스만 제국(바르나 십자군에서)과 크림 타타르족과 대치했으며, 동쪽에서는 리투아니아가 러시아와 싸우는 것을 도왔다.
폴란드는 봉건제 국가로 발전하고 있었으며, 주로 농업 경제와 점점 더 강력해지는 지주 귀족 계급이 인구를 폴바르크(folwarks)로 알려진 개인 장원 농장에 가두었다. 1493년 얀 1세 올브라흐트는 하원인 대의원 회의와 상원인 원로원 회의로 구성된 양원제 의회(세임) 창설을 승인했다. 1505년 폴란드 총세임이 채택한 니힐 노비 법은 대부분의 입법권을 군주로부터 의회로 이전시켰으며, 이는 국가가 겉보기에 자유롭고 평등한 폴란드 귀족들에 의해 통치되었던 황금의 자유로 알려진 시대의 시작을 알리는 사건이었다.

16세기에는 종교 개혁 운동이 폴란드 기독교에 깊숙이 파고들었으며, 이는 당시 유럽에서 독특했던 종교적 관용을 증진하는 정책 수립으로 이어졌다. 이러한 관용은 폴란드가 유럽을 휩쓴 종교적 혼란과 종교 전쟁을 피할 수 있게 해주었다. 폴란드에서는 비삼위일체 기독교가 소위 폴란드 형제단의 교리가 되었으며, 이들은 칼뱅파 교단에서 분리되어 세계 유니테리언주의의 공동 창시자가 되었다.
지그문트 1세와 지그문트 2세 아우구스트 치하에서 일어난 유럽 르네상스는 문화적 각성을 촉진해야 한다는 절박감을 불러일으켰다. 폴란드 황금기 동안 국가 경제와 문화는 번성했다. 밀라노 공작의 딸이자 지그문트 1세의 왕비였던 이탈리아 태생의 보나 스포르차는 바벨성의 건축, 요리, 언어 및 궁정 관습에 상당한 공헌을 했다.
2.4. 폴란드-리투아니아 연방
1569년 루블린 연합은 선거군주제를 채택하고 주로 귀족에 의해 통치되는 통일된 연방 국가인 폴란드-리투아니아 연방을 수립했다. 후자는 번영의 시기와 일치했다. 폴란드가 지배하는 연합은 이후 주요 강국이자 주요 문화 실체가 되었으며, 중부, 동유럽, 남동유럽, 북유럽 일부 지역에 대한 정치적 통제권을 행사했다. 폴란드-리투아니아 연방은 최전성기에 약 100만 km²를 차지했으며 유럽에서 가장 큰 국가였다. 동시에 폴란드는 새로 획득한 영토에서 폴란드화 정책을 강행했으며, 이는 소수 민족과 종교 집단의 저항에 부딪혔다.
1573년 최초의 선출된 국왕인 프랑스의 앙리 드 발루아는 장래 군주들에게 귀족의 권리를 존중하도록 의무화한 앙리 조항을 승인했다. 그가 폴란드를 떠나 프랑스 국왕이 되자, 그의 후계자인 스테판 바토리는 리보니아 전쟁에서 성공적인 원정을 이끌어 폴란드에게 발트해 동쪽 해안에 더 많은 영토를 부여했다. 그 후 국정은 왕관령 재상인 얀 자모이스키가 이끌었다. 스테판의 후계자인 지그문트 3세는 폴란드 왕위 계승 전쟁에서 경쟁자인 합스부르크 선거 후보 막시밀리안 3세 대공을 물리쳤다. 1592년 지그문트 3세는 아버지 요한 바사를 계승하여 스웨덴 국왕이 되었다. 폴란드-스웨덴 동군연합은 1599년까지 지속되었으나, 그가 스웨덴인들에 의해 폐위되면서 끝났다.

1609년 지그문트 3세는 내전에 휩싸인 러시아를 침공했으며, 1년 후 스타니스와프 주키에프스키 휘하의 폴란드 윙드 후사르 부대는 클루시노에서 러시아군을 격파한 후 2년 동안 모스크바를 점령했다. 지그문트 3세는 또한 남동쪽에서 오스만 제국과 맞섰다. 1621년 호틴에서 얀 카롤 호드키에비치는 튀르크에 대한 결정적인 승리를 거두었으며, 이는 술탄 오스만 2세의 몰락을 가져왔다. 폴란드에서의 지그문트 3세의 긴 통치는 은의 시대와 일치했다. 자유주의적인 브와디스와프 4세는 폴란드의 영토를 효과적으로 방어했지만, 그의 사후 광대한 연방은 내부 혼란과 끊임없는 전쟁으로 쇠퇴하기 시작했다.
1648년 우크라이나에 대한 폴란드의 헤게모니는 흐멜니츠키 봉기를 촉발시켰고, 이어 제2차 북방 전쟁 중 파괴적인 스웨덴의 대홍수가 뒤따랐으며, 1657년 프로이센의 독립이 이루어졌다. 1683년 얀 3세 소비에스키는 빈 전투에서 오스만 군대의 유럽 진격을 저지하면서 군사적 위력을 재확립했다. 작센 시대, 아우구스트 2세와 아우구스트 3세 치하에서 주변 강대국들은 폴란드를 희생시키면서 세력을 키웠다. 두 작센 국왕은 대북방 전쟁(1700년)과 폴란드 왕위 계승 전쟁(1733년) 동안 스타니스와프 레슈친스키의 반대에 직면했다.
2.5. 분할과 독립 운동
1764년 국왕 선거로 스타니스와프 2세 아우구스트 포니아토프스키가 왕위에 올랐다. 그의 입후보는 그의 후원자이자 옛 연인이었던 러시아의 예카테리나 2세 황후가 광범위하게 자금을 지원했다. 새 국왕은 필요한 근대화 개혁을 시행하려는 욕구와 주변 국가들과 평화를 유지해야 하는 필요성 사이에서 줄타기를 했다. 그의 이상은 1768년 바르 연맹의 결성으로 이어졌는데, 이는 포니아토프스키와 모든 외부 영향력에 반대하는 반란이었으며, 폴란드의 주권과 귀족이 가진 특권을 보존하려는 서투른 시도였다. 정부 구조 조정 시도의 실패와 국내 혼란은 주변국들의 침공을 유발했다.
1772년 프로이센, 러시아, 오스트리아에 의한 연방의 제1차 분할이 일어났고, 분할 세임은 상당한 압력 하에 결국 이를 기정사실(fait accompli)로 비준했다. 영토 손실에도 불구하고 1773년 중요한 개혁 계획이 수립되었으며, 유럽 최초의 정부 교육 당국인 국민교육위원회가 출범했다. 1783년에는 아동에 대한 체벌이 공식적으로 금지되었다. 포니아토프스키는 계몽주의의 주역이었으며, 산업 발전을 장려하고 공화주의적 신고전주의를 받아들였다. 예술과 과학에 대한 공헌으로 그는 왕립학회 회원 자격을 받았다.
1791년 대세임 의회는 최초의 국가 최고법인 5월 3일 헌법을 채택하고 입헌군주제를 도입했다. 이 법에 반대하는 귀족과 의원들의 조직인 타르고비차 연맹은 예카테리나에게 호소하여 1792년 폴란드-러시아 전쟁을 일으켰다. 폴란드 헤게모니의 재등장을 두려워한 러시아와 프로이센은 1793년 제2차 분할을 계획하고 실행하여 폴란드를 영토를 빼앗기고 독립적인 존재가 불가능한 상태로 만들었다. 1795년 10월 24일, 연방은 세 번째로 분할되어 영토적 실체로서 존재하지 않게 되었다. 폴란드 최후의 국왕 스타니스와프 아우구스트는 1795년 11월 25일 퇴위했다.

폴란드 민중은 분할자와 점령군에 대항하여 여러 차례 봉기했다. 폴란드 주권을 방어하려는 실패한 시도는 1794년 코시치우슈코 봉기에서 일어났는데, 이 봉기에서 몇 년 전 미국 독립 전쟁에서 조지 워싱턴 휘하에서 복무했던 대중적이고 저명한 장군 타데우시 코시치우슈코가 폴란드 반란군을 이끌었다. 라츠와비체 전투에서의 승리에도 불구하고, 그의 최종적인 패배는 폴란드의 독립적인 존재를 123년 동안 종식시켰다.

1806년 얀 헨리크 동브로프스키가 조직한 봉기는 제4차 대프랑스 동맹 전쟁 중 나폴레옹이 프로이센으로 진격하기에 앞서 폴란드 서부를 해방시켰다. 1807년 틸지트 조약에 따라 나폴레옹은 그의 동맹자인 작센의 프리드리히 아우구스트 1세가 통치하는 종속국인 바르샤바 공국을 선포했다. 폴란드인들은 나폴레옹 전쟁에서 프랑스 군대, 특히 유제프 포니아토프스키 휘하의 군대를 적극적으로 지원했으며, 그는 1813년 라이프치히에서 사망하기 직전에 프랑스 원수가 되었다. 나폴레옹의 망명 이후, 바르샤바 공국은 1815년 빈 회의에서 폐지되었고 그 영토는 러시아의 폴란드 입헌왕국, 프로이SEN의 포젠 대공국, 그리고 자유시 크라쿠프와 함께 오스트리아령 갈리치아로 분할되었다.
1830년 바르샤바의 사관학교 부사관들이 11월 봉기를 일으켰다. 봉기가 무너지자 폴란드 입헌왕국은 헌법적 자치권, 군대, 입법 의회를 잃었다. 유럽의 1848년 혁명 동안 폴란드인들은 1848년 대폴란드 봉기에서 독일화에 저항하기 위해 무기를 들었으나, 봉기의 실패로 공국의 지위는 단순한 주로 격하되었고, 이후 1871년 독일 제국에 통합되었다. 러시아에서는 1월 봉기(1863년~1864년)의 몰락으로 가혹한 정치적, 사회적, 문화적 보복이 뒤따랐으며, 폴란드-유대인 인구에 대한 추방과 포그롬이 이어졌다. 19세기 말, 폴란드 입헌왕국은 중공업화되었으며, 주요 수출품은 석탄, 아연, 철, 직물이었다.
2.6. 제2공화국

제1차 세계 대전의 여파로 연합국은 폴란드의 재건에 합의했고, 이는 1919년 6월 베르사유 조약을 통해 확인되었다. 총 200만 명의 폴란드 군대가 세 점령국의 군대와 함께 싸웠고, 45만 명 이상이 사망했다. 1918년 11월 독일과의 휴전 이후, 폴란드는 폴란드 제2공화국으로 독립을 되찾았다.
폴란드 제2공화국은 일련의 군사 분쟁 이후 주권을 재확인했는데, 가장 주목할 만한 것은 폴란드-소비에트 전쟁으로, 이 전쟁에서 폴란드는 바르샤바 전투에서 적군에게 결정적인 패배를 안겼다.
전간기는 폴란드 정치의 새로운 시대를 예고했다. 폴란드 정치 운동가들이 제1차 세계 대전까지 수십 년 동안 심한 검열에 직면했던 반면, 폴란드에는 새로운 정치적 전통이 수립되었다. 나중에 총리가 된 이그나치 얀 파데레프스키와 같은 많은 망명 폴란드 운동가들이 귀국했다. 그들 중 상당수가 새로 형성된 정치 및 정부 구조에서 핵심 직책을 맡았다. 1922년, 초대 대통령 가브리엘 나루토비치가 바르샤바의 자헹타 갤러리에서 화가이자 우익 민족주의자인 엘리기우시 니에비아돔스키에게 암살당하는 비극이 발생했다.
1926년, 폴란드 독립 운동의 영웅 유제프 피우수트스키 원수가 이끈 5월 쿠데타는 폴란드 제2공화국의 통치권을 초당파적인 사나차(치유) 운동에 넘겨주어 좌우 양측의 급진적인 정치 조직이 국가를 불안정하게 만드는 것을 막았다. 1930년대 후반, 국내 정치 극단주의의 위협 증가로 인해 폴란드 정부는 점점 더 강압적이 되어 국가 안정을 위협하는 공산주의 및 극단 민족주의 정당을 포함한 여러 급진 조직을 금지했다.
2.7. 제2차 세계 대전

제2차 세계 대전은 1939년 9월 1일 나치 독일의 폴란드 침공으로 시작되었고, 9월 17일 소련의 폴란드 침공이 뒤따랐다. 1939년 9월 28일, 바르샤바가 함락되었다. 몰로토프-리벤트로프 조약에 따라 폴란드는 나치 독일 점령지와 소련 점령지 두 구역으로 분할되었다. 1939년부터 1941년까지 소련은 수십만 명의 폴란드인을 추방했다. 소련 NKVD는 바르바로사 작전에 앞서 카틴 학살 등에서 수천 명의 폴란드 전쟁 포로를 처형했다. 독일 계획가들은 1939년 11월 "모든 폴란드인의 완전한 파괴"를 요구했으며, 그들의 운명은 대량 학살적인 동부 총계획에 명시되어 있었다.

폴란드는 유럽에서 네 번째로 많은 병력을 파병했으며, 그 군대는 서부의 폴란드 망명 정부와 동부의 소련 지도부 모두에게 복무했다. 폴란드 군대는 노르망디, 이탈리아, 북아프리카 전역 및 네덜란드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으며, 특히 영국 본토 항공전과 몬테카시노 전투로 기억된다. 폴란드 정보 요원들은 유럽 및 그 너머에서 많은 정보를 제공하여 연합군에게 매우 귀중한 존재임이 입증되었으며, 폴란드 암호 해독가들은 에니그마 암호 해독을 담당했고 맨해튼 프로젝트에 참여한 폴란드 과학자들은 미국 원자폭탄의 공동 개발자였다. 동부에서는 소련의 지원을 받는 폴란드 제1군이 바르샤바와 베를린 전투에서 두각을 나타냈다.
전시 저항 운동과 국내군(Armia Krajowa)은 독일 점령에 맞서 싸웠다. 이는 전쟁 전체에서 가장 큰 세 개의 저항 운동 중 하나였으며, 지하 국가로서 기능하는 광범위한 비밀 활동을 포함했으며, 학위 수여 대학과 법원 제도를 갖추고 있었다. 저항 운동은 망명 정부에 충성했으며 일반적으로 공산주의 폴란드라는 개념에 반감을 가졌다. 이러한 이유로 1944년 여름, 폭풍 작전을 시작했으며, 1944년 8월 1일에 시작된 바르샤바 봉기가 가장 잘 알려진 작전이다.
아돌프 히틀러의 명령을 받은 나치 독일군은 점령된 폴란드에 트레블링카, 마이다네크, 아우슈비츠를 포함한 6개의 독일 절멸 수용소를 세웠다. 독일군은 점령된 유럽 전역에서 수백만 명의 유대인을 이송하여 이 수용소에서 살해했다. 전체적으로 폴란드 유대인 300만 명(전전 폴란드 유대인의 약 90%)과 180만에서 280만 명의 폴란드계 민족이 폴란드 독일 점령 기간 동안 살해되었으며, 여기에는 폴란드 지식인(학자, 의사, 변호사, 귀족, 성직자) 5만에서 10만 명이 포함된다. 바르샤바 봉기 기간에만 15만 명 이상의 폴란드 민간인이 살해되었으며, 대부분은 볼라와 오호타 학살 동안 독일군에 의해 살해되었다. 1939년에서 1941년 사이 소련의 폴란드 동부(크레시) 점령 기간 동안 약 15만 명의 폴란드 민간인이 소련에 의해 살해되었고, 1943년에서 1944년 사이에는 우크라이나 반란군(UPA)에 의해 볼히니아 학살로 알려진 사건에서 약 10만 명의 폴란드인이 살해되었다. 전쟁에 참전한 모든 국가 중 폴란드는 시민의 가장 높은 비율을 잃었다. 약 600만 명이 사망했으며, 이는 전전 폴란드 인구의 6분의 1 이상이었고, 그들 중 절반은 폴란드 유대인이었다. 사망자의 약 90%는 비군사적 성격이었다.
1945년, 폴란드의 국경은 서쪽으로 이동했다. 크레시의 200만 명 이상의 폴란드 주민들은 스탈린에 의해 커즌선을 따라 추방되었다. 서쪽 국경은 오데르-나이세선이 되었다. 결과적으로 폴란드의 영토는 20%, 즉 7.75 만 km2만큼 줄어들었다. 이러한 변화는 폴란드인, 독일인, 우크라이나인, 유대인을 포함한 수백만 명의 사람들의 이주를 강요했다.
2.8. 공산주의 시대 (폴란드 인민 공화국)

이오시프 스탈린의 주장으로 얄타 회담은 모스크바에 새로운 친공산주의 연립 임시정부 구성을 승인했으며, 이는 런던에 기반을 둔 폴란드 망명 정부를 무시했다. 이 조치는 연합국에 의한 배신으로 여긴 많은 폴란드인들을 분노케 했다. 1944년 스탈린은 윈스턴 처칠과 프랭클린 D. 루스벨트에게 폴란드의 주권을 유지하고 민주적인 선거를 실시할 것을 보장했다. 그러나 1945년 승리하자 점령 소련 당국이 조직한 선거는 조작되었고 폴란드 문제에 대한 소련의 헤게모니에 정당성을 부여하는 데 사용되었다. 소련은 폴란드에 새로운 공산주의 정부를 수립했는데, 이는 동구권의 나머지 국가들과 유사했다. 공산주의 유럽의 다른 곳과 마찬가지로 폴란드에 대한 소련의 영향력은 처음부터 무장 저항에 부딪혔고 1950년대까지 계속되었다.
광범위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폴란드 정부는 전쟁 전 폴란드 동부 지역의 소련 합병(특히 빌노와 르부프 시)을 수락하고 폴란드 영토에 붉은 군대 부대의 영구 주둔에 동의했다. 냉전 기간 동안 바르샤바 조약 기구 내의 군사적 제휴는 폴란드 정치 문화의 이러한 변화의 직접적인 결과로 나타났다. 유럽 무대에서 이는 폴란드가 공산주의 국가 형제애에 완전히 통합되는 특징을 나타냈다.
새로운 공산 정부는 1947년 2월 19일 소헌법 채택으로 통제권을 장악했다. 폴란드 인민 공화국(Polska Rzeczpospolita Ludowa)은 1952년에 공식적으로 선포되었다. 1956년 볼레스와프 비에루트 사망 후 브와디스와프 고무우카 정권은 일시적으로 더 자유주의적이 되어 많은 사람들을 감옥에서 석방하고 일부 개인의 자유를 확대했다. 폴란드 인민 공화국의 집단화는 실패했다. 1970년대 에드바르트 기에레크 치하에서도 비슷한 상황이 반복되었지만, 대부분의 경우 반공 야당 단체에 대한 박해는 지속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시 폴란드는 동구권에서 가장 억압적이지 않은 국가 중 하나로 간주되었다.
1980년 노동 불안은 독립 노동조합 "연대자유노조"("Solidarność")의 결성으로 이어졌으며, 이는 시간이 지남에 따라 정치 세력이 되었다. 보이치에흐 야루젤스키 장군의 1981년 계엄령 선포와 박해에도 불구하고, 연대자유노조는 폴란드 연합노동자당의 지배력을 약화시켰고 1989년 제2차 세계 대전 종전 이후 폴란드 최초의 부분적으로 자유롭고 민주적인 의회 선거에서 승리했다. 연대자유노조 후보였던 레흐 바웬사는 결국 1990년 대통령 선거에서 승리했다. 연대자유노조 운동은 유럽 전역의 공산 정권과 정당의 붕괴를 예고했다.
2.9. 제3공화국 (현대)

1990년대 초 레셰크 발체로비치가 시작한 충격 요법 프로그램은 폴란드가 소련식 계획 경제를 시장 경제로 전환할 수 있게 해주었다. 다른 탈공산주의 국가들과 마찬가지로 폴란드는 사회, 경제, 생활 수준에서 일시적인 하락을 겪었지만, 1995년에 이미 1989년 이전의 GDP 수준에 도달한 최초의 탈공산주의 국가가 되었으나 실업률은 증가했다. 폴란드는 1991년 비셰그라드 그룹의 회원국이 되었고, 1999년 NATO에 가입했다. 이후 폴란드인들은 2003년 6월 국민투표를 통해 유럽 연합 가입에 찬성했으며, 그에 따른 조직 확대 이후 2004년 5월 1일 폴란드는 정회원국이 되었다.
폴란드는 2007년 솅겐 지역에 가입했으며, 그 결과 폴란드의 국경과 다른 유럽 연합 회원국과의 국경이 철폐되어 유럽 연합 대부분 지역 내에서 완전한 이동의 자유가 허용되었다. 2010년 4월 10일, 폴란드 대통령 레흐 카чин스키와 89명의 다른 폴란드 고위 관리들이 러시아 스몰렌스크 근처에서 비행기 추락 사고로 사망했다.
2011년, 집권 시민 연단이 의회 선거에서 승리했다. 2014년, 폴란드 총리 도날트 투스크가 유럽 이사회 의장으로 선출되어 총리직을 사임했다. 2015년과 2019년 선거는 야로스와프 카чин스키가 이끄는 국민보수주의 법과 정의당(PiS)이 승리하여 유럽회의주의 증가와 유럽 연합과의 마찰 증가를 초래했다. 2017년 12월, 마테우시 모라비에츠키가 2015년부터 재임한 베아타 시드워의 뒤를 이어 총리로 취임했다. 법과 정의당의 지원을 받은 안제이 두다 대통령은 2020년 대통령 선거에서 재선되었다.
2023년 11월 현재,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인해 1,700만 명의 우크라이나 난민이 폴란드 국경을 넘었다. 2023년 11월 현재, 그 중 90만 명이 폴란드에 머물고 있다. 2023년 10월, 집권 법과 정의당(PiS)은 선거에서 가장 많은 표를 얻었지만 의회 과반수를 잃었다. 2023년 12월, 도날트 투스크가 시민 연합, 제3의 길, 좌파당으로 구성된 연립 정부를 이끌고 새로운 총리가 되었다. 법과 정의당은 제1야당이 되었다.
3. 지리

폴란드는 행정 구역상 31.27 만 km2를 차지하며, 유럽에서 9번째로 큰 국가이다. 국가 영토의 약 31.19 만 km2는 육지, 2041 km2는 내수면, 8783 km2는 영해로 구성된다. 지형학적으로 폴란드의 풍경은 다양한 지형, 수역, 생태계를 특징으로 한다. 북쪽의 발트해와 접하는 중부 및 북부 지역은 평평한 중앙 유럽 평원 내에 위치하지만, 남쪽은 구릉지고 산악 지대이다. 해발 평균 고도는 173미터로 추정된다.
폴란드는 770 km에 달하는 해안선을 가지고 있으며, 서쪽의 포메라니아만 연안에서 동쪽의 그단스크만까지 뻗어 있다. 해안선은 모래언덕이나 해안 능선이 풍부하며, 특히 러시아와 공유하는 헬반도와 비스툴라 석호와 같은 곶과 석호로 움푹 들어가 있다. 발트해에서 가장 큰 폴란드 섬은 볼린 국립공원 내에 위치한 볼린섬이다. 폴란드는 또한 슈체친 석호와 우제돔섬을 독일과 공유한다.
폴란드 최남단의 산악 지대는 서쪽의 수데티산맥과 동쪽의 카르파티아산맥이라는 두 개의 주요 산맥으로 나뉜다. 카르파티아 산맥의 가장 높은 부분은 폴란드 남쪽 국경을 따라 뻗어 있는 타트리산맥이다. 폴란드의 최고점은 타트리산맥에 위치한 리시산으로 해발 2501 m이다. 수데티 산맥의 최고봉은 스네슈카산으로 해발 1603.3 m이며, 체코 공화국과 공유한다. 폴란드에서 가장 낮은 지점은 비스툴라 삼각주의 라치키엘블롱스키에에 위치하며, 해수면보다 1.8 m 낮다.

폴란드의 가장 긴 강은 비스와강, 오데르강, 바르타강, 부크강이다. 폴란드는 또한 세계에서 호수 밀도가 가장 높은 나라 중 하나로, 약 만 개의 호수가 있으며 대부분은 마수리아 북동부 지역, 마수리아 호수 지역 내에 집중되어 있다. 100 km2 이상을 덮는 가장 큰 호수는 시니아르드비호와 마므리호이며, 가장 깊은 호수는 한차호로 수심이 108.5 m이다.
3.1. 지형과 수계
폴란드는 주로 저지대로 이루어져 있으며, 국토의 약 91%가 해발 300 m 이하이다. 지형은 북쪽의 발트해 연안에서 남쪽의 카르파티아산맥과 수데티산맥으로 갈수록 점차 높아진다.
- 평야: 국토의 대부분은 북유럽 평원의 일부를 이루는 광활한 평야 지대이다. 이 평야는 빙하의 영향을 받아 형성되었으며, 비옥한 토양은 농업 발달에 기여했다. 주요 평야로는 비엘코폴스카 저지대, 마조프셰 저지대, 실레시아 저지대 등이 있다.
- 산맥: 남부 국경 지대에는 두 개의 주요 산맥이 있다.
- 카르파티아산맥: 동쪽에 위치하며, 폴란드에서 가장 높은 산맥이다. 타트리산맥은 카르파티아산맥의 일부로, 폴란드 최고봉인 리시산(해발 2501 m)이 이곳에 있다. 아름다운 고산 풍경과 다양한 등산로로 유명하다.
- 수데티산맥: 서쪽에 위치하며, 체코와 국경을 이룬다. 최고봉은 스네슈카산(해발 1603.3 m)이다.
- 강: 폴란드에는 여러 강이 흐르며, 국토를 관통하여 발트해로 흘러 들어간다.
- 비스와강: 폴란드에서 가장 긴 강(총 길이 1047 km)으로, 국토 중앙을 남북으로 가로지르며 바르샤바, 크라쿠프 등 주요 도시를 지난다. 폴란드의 역사와 문화에 중요한 역할을 해왔다.
- 오데르강: 폴란드 서부 국경의 일부를 이루며 독일과의 경계를 형성한다. 총 길이는 854 km(폴란드 내 742 km)이다.
- 기타 주요 강으로는 바르타강, 서부크강 등이 있다.
- 호수: 폴란드에는 약 1만 개에 달하는 호수가 있으며, 특히 북동부의 마수리아 호수 지역에 집중되어 있다. 이 지역은 '천 개의 호수의 땅'으로 불리며, 아름다운 자연 경관과 다양한 수상 스포츠 활동으로 유명하다. 가장 큰 호수는 시니아르드비호(면적 113.8 km2)와 마므리호(면적 104 km2)이며, 가장 깊은 호수는 한차호(수심 108.5 m)이다.
폴란드의 수자원은 주로 강과 호수에서 비롯되며, 농업, 공업, 생활용수 등 다양한 용도로 활용된다.
3.2. 기후
폴란드의 기후는 온대 과도기성 기후로, 북서부는 해양성 기후에서 남동부는 대륙성 기후로 변화한다. 산악 지대인 남쪽 가장자리는 고산 기후에 속한다. 폴란드는 따뜻한 여름이 특징이며, 7월 평균 기온은 약 20 °C이고, 겨울은 비교적 온화하며 12월 평균 기온은 -1 °C이다. 폴란드에서 가장 따뜻하고 햇볕이 잘 드는 지역은 남서부의 돌니실롱스크이며, 가장 추운 지역은 포들라스키에주의 수바우키 주변 북동쪽 구석으로, 이곳의 기후는 스칸디나비아와 시베리아에서 오는 한랭 전선의 영향을 받는다. 강수량은 여름철에 더 잦으며, 6월부터 9월까지 가장 많은 강우량이 기록된다.
일일 날씨 변동이 상당하며, 특정 계절의 도래는 매년 다를 수 있다. 기후 변화와 기타 요인들은 연간 열 변칙과 기온 상승에 더욱 기여했다. 2011년에서 2020년 사이의 연평균 기온은 9.33 °C로, 2001년~2010년 기간보다 약 1.11 °C 높았다. 겨울 또한 점점 더 건조해지고 있으며, 진눈깨비와 강설량이 줄어들고 있다.
3.3. 생물 다양성

식물지리학적으로 폴란드는 북극권 지역 내 구북구의 중앙 유럽 지방에 속한다. 폴란드는 4개의 구북구 생태지역을 가지고 있다 - 중앙, 북부, 서유럽 온대 활엽수혼합림, 그리고 카르파티아 산지 침엽수림. 숲은 폴란드 국토 면적의 31%를 차지하며, 가장 큰 숲은 돌니실롱스크 원시림이다. 전국적으로 가장 흔한 낙엽수는 참나무, 단풍나무, 너도밤나무이며, 가장 흔한 침엽수는 소나무, 가문비나무, 전나무이다. 모든 숲의 약 69%가 침엽수림으로 추정된다.
폴란드의 식물상과 동물상은 대륙 유럽의 그것이며, 비젠트, 황새, 흰꼬리수리는 국가 동물로 지정되었고, 개양귀비는 비공식적인 국화이다. 가장 보호받는 종 중에는 유럽에서 가장 무거운 육상 동물인 유럽들소뿐만 아니라 유라시아비버, 유라시아 스라소니, 회색늑대, 타트라산양이 있다. 이 지역은 또한 멸종된 오록스의 서식지였으며, 마지막 개체는 1627년 폴란드에서 죽었다. 붉은사슴, 노루, 멧돼지와 같은 사냥 동물은 대부분의 삼림 지대에서 발견된다. 폴란드는 또한 철새의 중요한 번식지이며 전 세계 황새 개체수의 약 4분의 1이 서식한다.
폴란드 영토의 약 31.51 만 ha(1%에 해당)가 23개의 폴란드 국립공원 내에서 보호받고 있으며, 그중 비아워비에자숲과 비에슈차디 국립공원 두 곳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이다. 경관공원으로 지정된 지역은 123곳이며, 자연보호구역 및 기타 보호구역은 나투라 2000 네트워크 하에 있다.
4. 정치
폴란드는 단일제 반 대통령중심 공화제이자 대의 민주주의 국가이며, 대통령이 국가원수이다. 행정권은 각료회의와 총리가 행사하며, 총리는 정부수반 역할을 한다. 각료회의의 개별 구성원은 총리가 선정하고 의회의 승인을 받아 대통령이 임명한다. 국가원수는 5년 임기로 국민투표를 통해 선출된다. 현 대통령은 안제이 두다이고 총리는 도날트 투스크이다.
폴란드의 입법 의회는 460명으로 구성된 하원(세임)과 100명으로 구성된 상원(상원)으로 이루어진 양원제이다. 세임은 비례대표제에 따라 동트 방식으로 의석을 배분하여 선출된다. 상원은 단순 다수제 선거 제도로 선출되며, 100개 선거구에서 각각 1명의 상원의원이 선출된다. 상원은 세임에서 통과된 법안을 수정하거나 거부할 권리가 있지만, 세임은 과반수 찬성으로 상원의 결정을 번복할 수 있다.
소수민족 정당을 제외하고는 전국 득표율이 최소 5% 이상인 정당의 후보만이 세임에 진출할 수 있다. 폴란드 의회의 하원과 상원 모두 4년 임기로 선출되며, 폴란드 의회 의원 각자는 의원 면책 특권이 보장된다. 현행법에 따르면, 의원직을 맡으려면 만 21세 이상이어야 하고, 상원의원이 되려면 만 30세 이상, 대통령 선거에 출마하려면 만 35세 이상이어야 한다.
세임과 상원 의원들은 공동으로 폴란드 공화국 국민의회를 구성한다. 세임 의장이 이끄는 국민의회는 세 가지 경우에 구성된다 - 새 대통령이 취임 선서를 할 때, 대통령에 대한 탄핵 소추가 국가재판소에 제기될 때, 그리고 대통령이 건강상의 이유로 영구적으로 직무를 수행할 수 없다고 선언될 때이다.
4.1. 정부 구조
폴란드는 공화국 형태의 대의 민주주의 국가이며, 국가원수는 대통령이다. 대통령은 직접 선거를 통해 5년 임기로 선출된다. 대통령은 국가를 대표하고, 법안에 서명하거나 거부권을 행사하며, 국제 조약을 비준하고, 군대의 최고 통수권자이다. 그러나 실질적인 행정권은 총리가 이끄는 내각(각료회의)에 있다. 총리는 대통령이 지명하지만, 의회(특히 하원인 세임)의 신임을 받아야 한다. 내각은 국가의 일상적인 행정을 담당하고, 법안을 제안하며, 예산을 집행한다. 총리는 내각 구성원을 임명하고 해임할 권한을 가진다. 폴란드의 정부 구조는 의회와 대통령 간의 권력 분립과 균형을 특징으로 한다.
4.2. 의회

폴란드 의회(폴란드 공화국 국민의회)는 양원제로 구성된다.
- 세임(Sejm): 하원에 해당하며, 총 460명의 의원으로 구성된다. 의원들은 비례대표제(동트 방식 사용)를 통해 4년 임기로 선출된다. 세임은 주로 입법 활동을 담당하며, 정부를 구성하고 감독하는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 법안 발의, 예산 심의 및 승인, 총리 및 내각에 대한 불신임권 행사 등의 권한을 가진다. 정당이 세임에 의석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전국적으로 최소 5%의 득표율(정당 연합의 경우 8%)을 얻어야 하며, 소수민족 정당은 이 요건에서 제외될 수 있다.
- 상원(Senat): 상원에 해당하며, 총 100명의 의원으로 구성된다. 의원들은 소선거구제(단순 다수제)를 통해 4년 임기로 선출된다. 상원은 세임에서 통과된 법안을 검토하고 수정안을 제안하거나 거부할 권한을 가진다. 그러나 세임은 과반수 찬성으로 상원의 거부권을 무효화할 수 있다. 상원은 주로 세임의 입법 활동을 견제하고 보완하는 역할을 한다.
양원은 공동으로 국민의회를 구성하여 대통령 취임 선서, 대통령 탄핵 소추 등의 특정 국가적 의례 및 절차를 수행한다. 의회의 입법 과정은 법안이 세임에서 발의되어 심의, 표결을 거친 후 상원으로 송부되고, 상원의 검토를 거쳐 최종적으로 대통령의 서명을 받아 공포되는 순서로 진행된다.
4.3. 주요 정당
폴란드는 다당제 국가로, 다양한 정치적 이념을 가진 정당들이 활동하고 있다. 1989년 민주화 이후 여러 정당이 등장하고 소멸했으며, 정치 지형은 변화를 거듭해왔다. 최근 주요 정당 및 정치 세력은 다음과 같다.
- 법과 정의당(Prawo i Sprawiedliwość, PiS): 국민보수주의, 우익대중주의 성향의 정당이다. 사회적으로 보수적 가치를 강조하며, 국가 주권과 전통적 가치 수호를 내세운다. 2015년부터 2023년까지 집권하며 폴란드 정치에 큰 영향을 미쳤다. 유럽회의주의적 입장을 보이기도 한다.
- 시민 연단(Platforma Obywatelska, PO): 중도우파, 자유보수주의, 친유럽주의 성향의 정당이다. 과거 집권 경험이 있으며, 법과 정의당의 주요 경쟁 상대이다. 현재는 시민 연합(Koalicja Obywatelska, KO)이라는 선거 연합의 핵심 정당으로 활동한다.
- 폴란드 2050 시몬 호워브니아(Polska 2050 Szymona Hołowni): 중도주의, 녹색 정치, 친유럽주의를 표방하는 정당이다. 상대적으로 신생 정당이지만 빠르게 지지세를 확장했다. 현재는 제3의 길(Trzecia Droga)이라는 선거 연합의 일부이다.
- 폴란드 인민당(Polskie Stronnictwo Ludowe, PSL): 농본주의, 기독교 민주주의 성향의 중도 또는 중도우파 정당이다.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으며, 주로 농촌 지역에 지지 기반을 두고 있다. 현재는 제3의 길 선거 연합에 참여하고 있다.
- 좌파당(Lewica): 사회민주주의, 진보주의 성향의 정당 연합이다. 민주좌파연합(SLD), 봄(Wiosna), 좌파 함께(Lewica Razem) 등이 연합하여 구성되었다.
- 자유와 독립 연합(Konfederacja Wolność i Niepodległość): 우익대중주의, 국민주의, 자유지상주의 성향의 극우 정당 연합이다.
2023년 의회 선거 결과, 시민 연합이 주도하는 야권 연합이 법과 정의당을 누르고 다수 의석을 확보하여 도날트 투스크를 총리로 하는 새로운 연립 정부가 출범했다. 법과 정의당은 제1야당이 되었다. 폴란드 정치 지형은 이념적 대립이 뚜렷하며, 선거 결과에 따라 정부 구성과 정책 방향이 크게 변화하는 역동적인 모습을 보인다.
4.4. 사법 제도
폴란드의 사법 제도는 대륙법 체계를 따르며, 헌법에 의해 그 독립성이 보장된다. 사법부의 주요 구성 요소와 기능은 다음과 같다.
- 일반 법원 (Sądy powszechne):
- 민사, 형사, 가족, 노동 관련 사건 등 대부분의 사법 사건을 다룬다.
- 구성: 지방법원(sądy rejonowe), 지구법원(sądy okręgowe), 항소법원(sądy apelacyjne)의 3심제로 운영된다.
- 대법원(Sąd Najwyższy):
- 일반 법원의 최종 상소심 법원이다.
- 법률 해석의 통일성을 확보하고, 사법 행정 및 판례에 대한 감독 기능을 수행한다.
- 선거의 유효성 및 기타 특정 국가적 사안에 대한 판결 권한도 가진다.
- 행정 법원 (Sądy administracyjne):
- 정부 기관 및 지방 자치 단체의 행정 행위의 적법성을 심사한다.
- 구성: 주 행정법원(wojewódzkie sądy administracyjne)과 최고행정법원(Naczelny Sąd Administracyjny)으로 구성된다.
- 헌법재판소(Trybunał Konstytucyjny):
- 법률 및 기타 규범이 헌법에 합치하는지 여부를 심판하는 기관이다.
- 정당의 위헌 여부, 국가 기관 간의 권한 분쟁 등도 다룬다.
- 판사들은 의회(세임)에 의해 선출된다.
- 국가재판소(Trybunał Stanu):
- 대통령, 총리, 장관 등 고위 공직자의 헌법 또는 법률 위반 행위에 대한 책임을 심판한다.
판사 임명 과정:
판사는 국가사법위원회(Krajowa Rada Sądownictwa)의 추천을 받아 대통령이 임명한다. 국가사법위원회는 사법부의 독립성과 판사의 자율성을 보장하는 역할을 한다. 그러나 최근 몇 년간 이 위원회의 구성 및 판사 임명 절차와 관련하여 국내외적으로 논란이 있었다.
폴란드의 법률 체계는 민법, 형법, 행정법, 노동법 등 다양한 분야로 나뉘며, 유럽 연합 회원국으로서 EU법 또한 국내법에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
4.5. 치안 및 긴급 서비스
폴란드의 치안 및 긴급 서비스 시스템은 국민의 안전과 생명을 보호하기 위해 다양한 기관들이 협력하여 운영된다.
- 경찰 (Policja):
- 주요 치안 담당 기관으로, 내무행정부 산하에 있다.
- 범죄 예방, 수사, 공공질서 유지, 교통 관리 등 광범위한 임무를 수행한다.
- 중앙 경찰청(Komenda Główna Policji)을 중심으로 각 주(voivodeship) 경찰청 및 지역 경찰서로 조직되어 있다.
- 최근 통계에 따르면 폴란드의 범죄율은 유럽 연합 평균에 비해 상대적으로 낮은 편이며, 특히 강력 범죄 발생률이 낮은 편이다. 그러나 소매치기나 차량털이와 같은 경범죄는 관광지 등에서 주의가 필요하다.
- 교정 시설 (Zakłady karne i areszty śledcze):
- 법무부 산하 교정청(Służba Więzienna)에서 관리한다.
- 수감자의 교정교화 및 사회 복귀 지원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 소방 (Państwowa Straż Pożarna, PSP):
- 화재 진압, 구조 활동, 재난 대응 등을 담당하는 국가 기관이다.
- 전문 소방관으로 구성되며, 자원봉사 소방대(Ochotnicza Straż Pożarna, OSP)가 이를 보조한다.
- 응급의료 서비스 (Państwowe Ratownictwo Medyczne, PRM):
- 응급 환자에 대한 현장 처치 및 병원 이송을 담당한다.
- 구급차와 응급의료팀(의사, 간호사, 응급구조사)으로 구성되며, 전국적으로 통일된 응급번호(112 또는 999)를 통해 호출할 수 있다.
- 공공 및 민간 병원의 응급실과 연계하여 운영된다.
- 기타 긴급 서비스:
- 국경수비대(Straż Graniczna): 국경 보안 및 불법 이민 단속.
- 내부보안국(Agencja Bezpieczeństwa Wewnętrznego, ABW) 및 정보국(Agencja Wywiadu, AW): 대테러 및 정보 수집.
- 중앙부패방지국(Centralne Biuro Antykorupcyjne, CBA): 부패 범죄 수사.
폴란드에서는 유럽 공통 긴급번호인 112를 통해 경찰, 소방, 응급의료 서비스를 모두 호출할 수 있다. 각 서비스별 직통 번호(경찰: 997, 소방: 998, 응급의료: 999)도 사용 가능하다. 치안 및 긴급 서비스는 국민의 안전을 최우선으로 하며, 지속적인 시스템 개선과 현대화를 추구하고 있다.
5. 행정 구역

폴란드의 행정 구역은 1999년 1월 1일부터 3단계로 구성되어 있다. 최상위 행정 구역은 16개의 주(województwo, 보이보드십)이다. 주는 다시 총 380개의 군(powiat, 포비아트)으로 나뉘며, 군은 314개의 농촌 군(powiat ziemski)과 66개의 도시 군(miasto na prawach powiatu, 군급시)으로 구분된다. 최하위 행정 구역은 2,477개의 면(gmina, 그미나)으로, 도시 면(gmina miejska), 도농복합 면(gmina miejsko-wiejska), 농촌 면(gmina wiejska)으로 나뉜다.
각 행정 단위의 역할은 다음과 같다.
- 주(Województwo): 지역 발전 정책 수립 및 시행, 고등 교육, 보건 의료, 문화 시설 관리 등 광범위한 자치권을 가진다. 주의 행정은 주지사(wojewoda, 중앙정부 파견)와 주의회(sejmik województwa, 주민 직선) 및 주 집행부(zarząd województwa, 주의회 선출)가 담당한다.
- 군(Powiat): 주와 면 사이의 중간 행정 단위로, 중등 교육, 도로 관리, 공공 안전, 고용 지원 등의 업무를 수행한다. 군의회(rada powiatu, 주민 직선)와 군수(starosta, 군의회 선출)가 있다. 도시 군은 그미나의 지위도 함께 가진다.
- 면(Gmina): 기초 자치 단체로, 주민 생활과 가장 밀접한 행정 서비스를 제공한다. 초등 교육, 상하수도, 쓰레기 처리, 지역 도로 관리 등을 담당한다. 면의회(rada gminy, 주민 직선)와 면장(wójt - 농촌, burmistrz - 소도시, prezydent miasta - 대도시, 면의회 선출 또는 주민 직선)이 있다.
이러한 행정 구역 체계는 지방 자치를 강화하고 행정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도입되었다.
주 (Województwo) | 주도 (Stolica) | 면적 (km²) | 인구 (2021년 기준) |
---|---|---|---|
돌니실롱스크 (Dolnośląskie) | 브로츠와프 | 19,947 | 2,891,321 |
쿠야비포모제 (Kujawsko-Pomorskie) | 비드고슈치 & 토룬 | 17,971 | 2,061,942 |
루블린 (Lubelskie) | 루블린 | 25,123 | 2,095,258 |
루부시 (Lubuskie) | 고주프비엘코폴스키 & 지엘로나구라 | 13,988 | 1,007,145 |
우치 (Łódzkie) | 우치 | 18,219 | 2,437,970 |
마워폴스카 (Małopolskie) | 크라쿠프 | 15,183 | 3,410,441 |
마조프셰 (Mazowieckie) | 바르샤바 | 35,559 | 5,425,028 |
오폴레 (Opolskie) | 오폴레 | 9,412 | 976,774 |
포트카르파츠키에 (Podkarpackie) | 제슈프 | 17,846 | 2,121,229 |
포들라스키에 (Podlaskie) | 비아위스토크 | 20,187 | 1,173,286 |
포모제 (Pomorskie) | 그단스크 | 18,323 | 2,346,671 |
실롱스크 (Śląskie) | 카토비체 | 12,333 | 4,492,330 |
시에토크시스키에 (Świętokrzyskie) | 키엘체 | 11,710 | 1,224,626 |
바르미아마주리 (Warmińsko-Mazurskie) | 올슈틴 | 24,173 | 1,416,495 |
비엘코폴스카 (Wielkopolskie) | 포즈난 | 29,826 | 3,496,450 |
서포모제 (Zachodniopomorskie) | 슈체친 | 22,905 | 1,688,047 |
5.1. 주요 도시

폴란드에는 역사적, 문화적, 경제적으로 중요한 여러 도시들이 있다. 다음은 폴란드의 주요 도시들이다.
- 바르샤바(Warszawa): 폴란드의 수도이자 최대 도시로, 마조프셰주에 위치한다. 인구는 약 186만 명(광역권 약 310만 명)이다. 제2차 세계 대전으로 도시 대부분이 파괴되었으나 전후 복구되어 역사 지구가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되었다. 정치, 경제, 문화, 교육의 중심지이며, 많은 국제 기업과 금융 기관이 자리 잡고 있다. 바르샤바 왕궁, 와지엔키 공원, 문화과학궁전 등이 주요 명소이다. q=Warsaw|position=right
- 크라쿠프(Kraków): 마워폴스카주의 주도로, 폴란드의 옛 수도이자 역사 문화의 중심지이다. 인구는 약 80만 명이다. 중세 시대의 모습을 잘 간직한 구시가 전체와 바벨성, 카지미에시 지구 등이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되어 있다. 야기에우워 대학교를 비롯한 유서 깊은 교육 기관들이 있으며, 폴란드에서 가장 많은 관광객이 찾는 도시 중 하나이다. q=Kraków|position=left
- 우치(Łódź): 우치주의 주도로, 폴란드 제3의 도시이다. 인구는 약 67만 명이다. 19세기 섬유 산업의 중심지로 발전했으며, 독특한 산업 유산과 예술적 분위기로 유명하다. 피오트르코프스카 거리는 유럽에서 가장 긴 상업 거리 중 하나이며, 영화 산업의 중심지이기도 하다. q=Łódź|position=right
- 브로츠와프(Wrocław): 돌니실롱스크주의 주도로, 폴란드 남서부의 역사적인 도시이다. 인구는 약 67만 명이다. 오데르강과 여러 지류가 도시를 관통하여 '폴란드의 베네치아'로도 불린다. 다채로운 건축물과 난쟁이 동상들로 유명하며, 문화와 학술의 중심지이다. q=Wrocław|position=left
- 포즈난(Poznań): 비엘코폴스카주의 주도로, 폴란드 서부의 주요 상업 및 산업 도시이다. 인구는 약 54만 명이다. 폴란드 국가의 발상지 중 하나로 여겨지며, 국제 박람회가 자주 개최되는 곳이기도 하다. 역사적인 구시가와 포즈난 대성당 등이 있다. q=Poznań|position=right
- 그단스크(Gdańsk): 포모제주의 주도로, 발트해 연안의 항구 도시이다. 인구는 약 47만 명이다. 역사적으로 한자 동맹의 주요 도시였으며, 제2차 세계 대전의 발발지이자 폴란드 민주화 운동인 자유노조 운동의 발상지이기도 하다. 아름다운 구시가지와 넵툰 분수가 유명하다. q=Gdańsk|position=left
- 슈체친(Szczecin): 서포모제주의 주도로, 폴란드 북서부의 주요 항구 도시이다. 인구는 약 39만 명이다. 오데르강 하구에 위치하며, 독일 국경과 가깝다. q=Szczecin|position=right
- 카토비체(Katowice): 실롱스크주의 주도로, 폴란드 남부 상부 실레시아 지역의 중심 도시이다. 인구는 약 28만 명(광역권은 훨씬 큼)이다. 과거 석탄 및 중공업 중심지였으나, 현재는 문화 및 비즈니스 중심으로 변모하고 있다. q=Katowice|position=left
이 외에도 루블린, 비드고슈치, 비아위스토크, 토룬 등 각 지역의 중심 도시들이 폴란드의 경제와 문화 발전에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6. 대외 관계
폴란드는 중견국이며 유럽에서 지역 강국으로 전환하고 있다. 2024년 현재 유럽 의회에 총 53명의 대표를 두고 있다. 바르샤바는 유럽 연합의 외부 국경 보안 기관인 프론텍스와 OSCE의 주요 기관 중 하나인 ODIHR의 본부 역할을 한다. 유럽 연합 외에도 폴란드는 NATO, 유엔, WTO의 회원국이다.
최근 몇 년 동안 폴란드는 미국과의 관계를 상당히 강화하여 유럽에서 가장 가까운 동맹이자 전략적 파트너 중 하나가 되었다. 역사적으로 폴란드는 헝가리와 강력한 문화적, 정치적 유대를 유지해 왔으며, 이러한 특별한 관계는 2007년 양국 의회가 3월 23일을 "폴란드-헝가리 우정의 날"로 공동 선언하면서 인정받았다.
러시아와는 역사적으로 복잡한 관계를 이어왔다. 과거 폴란드 분할과 소련의 영향력 하에 있었던 역사로 인해 국민 감정은 좋지 않은 편이다.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폴란드는 우크라이나에 대한 강력한 지지를 표명하고 러시아에 대한 제재에 동참하면서 양국 관계는 더욱 악화되었다.
독일과는 제2차 세계 대전의 아픈 역사가 있지만, 현재는 유럽 연합 내에서 중요한 경제 및 정치 파트너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국경을 맞대고 있어 교류가 활발하며, 양국 간 협력은 중부 유럽의 안정과 발전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우크라이나와는 역사적으로 영토 문제 등으로 갈등을 겪기도 했으나, 러시아의 침공 이후 폴란드는 우크라이나 난민을 가장 많이 수용하고 군사 및 인도적 지원을 적극적으로 제공하는 등 강력한 연대 관계를 보여주고 있다. 이는 폴란드의 대외 정책에서 중요한 변화로 평가된다.
폴란드는 비셰그라드 그룹(체코, 헝가리, 슬로바키아)의 일원으로서 중부 유럽 국가들과의 지역 협력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또한, 발트 3국과의 관계 강화에도 힘쓰고 있으며, 삼수령 계획을 통해 발트해, 아드리아해, 흑해 연안 국가들과의 경제 및 인프라 협력을 추진하고 있다.
7. 군사

폴란드군은 육군, 해군, 공군, 특수군, 영토방위군의 5개 군으로 구성된다. 군은 국방부에 소속되어 있다. 그러나 평시 지휘관은 대통령으로, 장교, 국방부 장관, 참모총장을 지명한다. 폴란드 군사 전통은 매년 8월 15일에 기념되는 국군의 날로 일반적으로 기념된다. 2024년 7월, 폴란드군은 총 216,100명의 현역 군인을 보유하여 유럽 연합에서 가장 큰 상비군이자 NATO에서 세 번째로 큰 군대이다.
폴란드는 군비 지출 면에서 세계 14위를 차지하며, 2024년에는 GDP의 4.12%(약 350.00 억 USD)를 군비에 할당했다. 2022년부터 폴란드는 미국, 대한민국, 폴란드 국내 방위 산업체와 긴밀히 협력하여 군 현대화 프로그램을 시작했다. 또한 폴란드군은 병력 규모를 장교 및 사병 25만 명, 방위군 5만 명으로 늘릴 예정이다. SIPRI에 따르면, 폴란드는 2020년에 4억 8,700만 유로 상당의 무기를 외국에 수출했다.
이전에 9개월간 복무해야 했던 남성에 대한 의무 병역은 2008년에 폐지되었다. 폴란드 군사 교리는 NATO 파트너 국가들과 마찬가지로 방어적 성격을 반영하며, NATO 군사 훈련을 적극적으로 주최한다. 1953년부터 폴란드는 다양한 유엔 평화유지 임무에 크게 기여해 왔으며, 현재 중동, 아프리카, 발트 3국, 남동 유럽에 군대를 주둔시키고 있다.
8. 경제
GDP (PPP) | 1.99 조 USD (2025년) |
---|---|
명목 GDP | 9150.00 억 USD (2025년) |
실질 GDP 성장률 | 5.3% (2022년) |
CPI 인플레이션 | 2.5% (2024년 5월) |
고용률 | 57% (2022년) |
실업률 | 2.8% (2023년) |
총 공공 부채 | 3400.00 억 USD (2022년) |
폴란드는 사회적 시장경제이며 동중부 유럽의 지역 경제 강국이다. 2023년 현재 폴란드의 국내총생산(GDP)은 명목 기준으로 유럽 연합에서 6번째, 구매력 평가 기준으로는 5번째로 크다. 폴란드는 유럽 연합 내에서 가장 빠르게 성장하는 국가 중 하나이며 2018년에 선진 시장 지위를 획득했다. 유로스타트가 2023년에 발표한 실업률은 2.8%로 유럽 연합에서 두 번째로 낮았다. 2023년 현재 고용 인구의 약 62%가 서비스 부문에서, 29%가 제조업에서, 8%가 농업 부문에서 일하고 있어 매우 다양화된 경제를 보여준다. 폴란드는 유럽 단일 시장의 회원국이지만, 유로를 법정 통화로 채택하지 않고 자체 통화인 폴란드 즈워티(zł, PLN)를 유지하고 있다.
폴란드는 해외직접투자 측면에서 유럽의 지역적 선도 국가이며, 매출 기준으로 이 지역 500대 기업 중 약 40%를 보유하고 있으며, 높은 세계화율과 비교적 높은 경제 경쟁력을 유지하고 있다. 폴란드의 가장 큰 기업들은 WIG20 및 WIG30 주가 지수를 구성하며, 이는 바르샤바 증권거래소에서 거래된다. 중앙통계청은 2014년에 3,194개의 외국 법인에 이해관계를 가진 1,437개의 폴란드 기업이 있었다고 추정했다. 폴란드는 또한 중앙 유럽에서 가장 큰 은행 부문을 보유하고 있으며, 성인 10만 명당 32.3개의 지점을 두고 있다. 통화 정책은 국가 통화 발행을 통제하는 폴란드 국립은행(NBP)에 의해 결정된다. 폴란드는 2008년 경기 침체를 피한 유일한 유럽 경제였다. 2019년부터 26세 미만의 근로자는 소득세 납부가 면제된다.
폴란드는 세계에서 19번째로 큰 상품 수출국이자 서비스 수출국이다. 2023년 기준 상품 및 서비스 수출액은 GDP의 약 58%에 달한다. 폴란드의 주요 교역 상대국은 독일, 영국, 체코, 프랑스, 이탈리아, 네덜란드, 미국이다. 주요 수출품으로는 자동차, 버스, 차량 관련 액세서리, 기계류, 전자제품, 전기 배터리, 가전제품, 가구, 화장품, 군사 장비, 담배뿐만 아니라 은, 구리, 강철, 석탄, 아연, 타르, 코크스와 같은 원자재가 있다. 2023년 폴란드는 1,300톤의 은을 생산하여 세계 5위의 은 생산국이었다. 2024년 현재 폴란드는 세계 12위의 금 보유고(377톤 추정)를 보유하고 있다.
8.1. 경제 구조 및 지표
폴란드는 유럽 연합 내에서 6번째로 큰 경제 규모를 가지고 있으며(명목 GDP 기준), 구매력 평가(PPP) 기준으로는 5번째이다. IMF에 따르면 2023년 폴란드의 명목 GDP는 약 7500.00 억 USD이며, 1인당 GDP는 약 1.95 만 USD이다. 같은 해 PPP 기준 GDP는 약 1.70 조 USD이며, 1인당 GDP는 약 4.50 만 USD이다. 최근 몇 년간 폴란드는 유럽 연합 내에서 가장 빠르게 성장하는 경제 중 하나로, 2022년에는 5.3%의 실질 GDP 성장률을 기록했다.
폴란드의 산업 구조는 서비스업이 주도하며, GDP의 약 62%를 차지한다. 제조업은 약 29%, 농업은 약 8%를 차지한다. 주요 산업 분야로는 자동차, 전자, 기계, 화학, 식품 가공 등이 있다. 실업률은 비교적 낮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으며, 2023년에는 2.8%로 유럽 연합에서 두 번째로 낮았다. 물가 상승률(인플레이션)은 최근 몇 년간 변동성을 보였으나, 2024년 5월 기준으로는 2.5%로 안정적인 수준을 나타내고 있다. 국가 부채는 GDP 대비 약 50% 수준으로 관리되고 있다. 폴란드는 유럽 단일 시장의 회원국이지만, 자체 통화인 즈워티(PLN)를 사용하고 있으며 아직 유로존에 가입하지 않았다.
8.2. 주요 산업
폴란드는 다양한 산업 분야에서 경쟁력을 갖추고 있으며, 특히 제조업, 농업, 광업이 국가 경제의 중요한 축을 담당하고 있다.
- 제조업: 폴란드 경제의 핵심 동력 중 하나이다.
- 자동차 산업: 폭스바겐, 오펠, 피아트 등 다국적 자동차 기업들의 생산 기지가 위치해 있으며, 자동차 부품 산업도 발달했다. 폴란드 자체 브랜드로는 솔라리스(버스) 등이 있다.
- 전자 산업: 텔레비전, 가전제품, 전기 배터리 등의 생산이 활발하며, LG, 삼성 등 한국 기업들도 현지 투자를 통해 생산 시설을 운영하고 있다.
- 기계 산업: 산업용 기계, 농업용 기계, 공작 기계 등 다양한 기계류를 생산한다.
- 기타: 가구, 조선, 항공기 부품, 방위 산업 등도 중요한 제조업 분야이다.
- 농업: 전통적으로 강한 농업 기반을 가지고 있으며, 현대화된 농업 기술 도입으로 생산성이 향상되고 있다.
- 주요 작물: 밀, 호밀, 보리, 감자, 사탕무, 유채 등이 주요 재배 작물이다. 특히 사과, 딸기, 라즈베리, 블랙커런트 등 과일 생산량이 많으며, 유럽의 주요 과일 공급국 중 하나이다.
- 축산업: 돼지, 소, 가금류 사육이 활발하다.
- 광업: 풍부한 지하자원을 보유하고 있다.
- 석탄: 유럽 최대의 역청탄 및 갈탄 생산국 중 하나이다. 상부 실레시아 지역에 주요 탄전이 밀집해 있다. 그러나 환경 문제와 EU의 기후 정책으로 인해 석탄 산업은 점차 축소되는 추세이다.
- 구리: 세계적인 구리 생산국 중 하나로, KGHM은 세계 주요 구리 및 은 생산업체이다.
- 기타: 아연, 납, 황, 암염 등도 채굴된다.
- 서비스업: 최근 가장 빠르게 성장하는 분야로, 정보통신기술(ICT), 비즈니스 서비스 아웃소싱(BPO), 금융, 관광 등이 발달하고 있다.
폴란드는 외국인 직접 투자 유치에 적극적이며, 제조업을 중심으로 많은 다국적 기업들이 폴란드에 생산 및 연구 개발 시설을 두고 있다.
8.3. 에너지
폴란드의 에너지 생산 및 소비는 국가 경제와 환경 정책에 있어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
- 에너지 생산 및 소비 현황: 폴란드는 에너지 자립도가 상대적으로 낮은 편이며, 특히 석유와 천연가스는 수입 의존도가 높다. 반면, 석탄은 국내 생산량이 많아 주요 에너지원으로 활용된다. 최근 몇 년간 에너지 효율 개선과 재생 가능 에너지 비중 확대를 위한 노력이 이루어지고 있지만, 여전히 화석 연료가 전체 에너지 믹스에서 큰 비중을 차지한다.
- 주요 에너지원:
- 석탄: 폴란드의 가장 중요한 국내 에너지 자원이다. 역청탄과 갈탄 매장량이 풍부하여 발전 및 난방 연료로 널리 사용된다. 그러나 온실 가스 배출 문제와 EU의 기후 정책으로 인해 석탄 사용 감축 압력이 커지고 있다.
- 천연가스: 주로 수입에 의존하며, 러시아로부터의 도입 비중이 높았으나 최근에는 LNG 터미널 건설 및 파이프라인 다변화를 통해 공급선 다각화를 추진하고 있다. 난방 및 산업용 연료로 사용된다.
- 석유: 대부분 수입에 의존하며, 주로 수송용 연료로 사용된다.
- 재생 가능 에너지: 풍력, 태양광, 바이오매스 등을 중심으로 점차 비중이 확대되고 있다. EU의 재생에너지 목표 달성을 위해 정부 지원 정책이 시행되고 있다.
- 원자력 발전: 폴란드는 현재 원자력 발전소를 운영하고 있지 않으나, 에너지 안보 강화 및 탄소 중립 목표 달성을 위해 원자력 발전소 건설 계획을 추진 중이다.
- 에너지 정책: 폴란드 정부는 에너지 안보 확보, 에너지 효율 향상, 온실 가스 배출 감축, 재생 가능 에너지 비중 확대 등을 주요 목표로 하는 에너지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특히, 러시아산 에너지 의존도를 낮추고 에너지 공급원을 다변화하는 것이 중요한 과제이다. 또한, EU의 기후 목표에 맞춰 에너지 시스템 전환을 위한 장기적인 계획을 수립하고 있다. 최근에는 SMR(소형모듈원자로) 도입에도 관심을 보이고 있다.
폴란드의 에너지 부문은 전통적인 석탄 기반에서 벗어나 보다 지속 가능하고 다양한 에너지원으로 전환하는 과정에 있으며, 이는 상당한 투자와 정책적 노력을 필요로 한다.
8.4. 과학 기술
폴란드는 역사적으로 니콜라우스 코페르니쿠스, 마리 퀴리와 같은 세계적인 과학자를 배출한 전통을 가지고 있으며, 현대에도 과학 기술 발전을 위한 노력을 지속하고 있다.
- 주요 과학 기술 연구 분야:
- 정보통신기술(ICT)**: 소프트웨어 개발, 게임 산업(CD 프로젝트 레드의 '위쳐' 시리즈, '사이버펑크 2077' 등), IT 아웃소싱 분야에서 강점을 보인다.
- 생명과학 및 생명공학**: 제약, 의료 기기, 농업 생명공학 분야의 연구 개발이 활발하다.
- 재료과학 및 나노기술**: 신소재 개발 및 응용 연구가 진행 중이다.
- 항공우주**: 소형 위성, 드론 기술 등 틈새시장을 공략하고 있다.
- 환경 기술**: 재생 에너지, 폐기물 처리, 수질 정화 등 지속 가능한 기술 개발에 대한 관심이 높다.
- 연구 기관:
- 폴란드 과학 아카데미(Polska Akademia Nauk, PAN)**: 폴란드 최고의 학술 기관으로, 다양한 분야의 연구소를 운영하며 기초 및 응용 연구를 수행한다.
- 대학교**: 야기에우워 대학교, 바르샤바 대학교, 바르샤바 공과대학교 등 주요 대학들은 각자의 강점 분야에서 활발한 연구 활동을 벌이고 있다.
- 국립 연구 개발 센터(Narodowe Centrum Badań i Rozwoju, NCBR)**: 연구 개발 프로젝트에 대한 자금 지원 및 관리를 담당한다.
- Łukasiewicz 연구 네트워크**: 다수의 국책 연구기관들을 통합하여 산업계와의 협력을 강화하고 기술 상용화를 촉진한다.
- 정부 지원 정책: 폴란드 정부는 과학 기술 혁신을 경제 성장의 핵심 동력으로 인식하고, 연구 개발(R&D) 투자 확대, 스타트업 육성, 산학 협력 강화 등을 위한 다양한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유럽 연합의 구조 기금을 활용한 R&D 지원 프로그램도 활발히 운영 중이다.
- 주요 성과 및 과제:
- ICT 분야, 특히 게임 산업은 국제적으로 높은 경쟁력을 인정받고 있다.
- 우수한 이공계 인력을 바탕으로 외국 기업의 R&D 센터 유치에도 성과를 보이고 있다.
- 그러나 GDP 대비 R&D 투자 비중은 여전히 유럽 연합 평균보다 낮은 편이며, 기초 연구 성과를 산업적 혁신으로 연결하는 데 있어 개선의 여지가 있다는 평가도 있다.
폴란드는 과학 기술 역량 강화를 통해 지식 기반 경제로의 전환을 가속화하고 있으며, 특히 디지털 전환과 녹색 전환 관련 기술 분야에서 새로운 성장 기회를 모색하고 있다.
8.5. 교통

폴란드의 교통은 철도, 도로, 해상 운송, 항공 여행을 통해 이루어진다. 폴란드는 EU 솅겐 지역의 일부이며 중앙 유럽의 전략적 지리적 위치로 인해 중요한 교통 중심지이다. E30 및 E40을 포함한 가장 긴 유럽 노선 중 일부가 폴란드를 통과한다. 폴란드는 고속도로 및 간선도로로 구성된 잘 발달된 고속도로망을 갖추고 있다. 2023년 8월 현재 폴란드는 세계에서 21번째로 큰 도로망을 보유하고 있으며, 사용 중인 고속도로는 5000 km가 넘는다.
2022년 폴란드는 1.94 만 km의 철로를 보유하여 독일과 프랑스에 이어 유럽 연합에서 세 번째로 길었다. 폴란드 국철(PKP)이 주요 철도 운영사이며, 특정 주요 주 또는 도시 지역에는 자체 통근 및 지역 철도가 있다. 폴란드에는 여러 국제공항이 있으며, 그중 가장 큰 공항은 바르샤바 쇼팽 공항이다. 이 공항은 폴란드 국책 항공사인 LOT 폴란드 항공의 주요 국제 허브이다.
폴란드 발트해 연안에는 항구가 존재하며, 대부분의 화물 운송은 슈비노우이시치에, 폴리체, 슈체친, 코워브제크, 그디니아, 그단스크, 엘블롱크를 기지로 사용한다. 그단스크항은 발트해에서 유일하게 원양 선박을 수용할 수 있도록 개조된 항구이다. 폴페리스와 유니티 라인은 폴란드의 가장 큰 페리 운영사이며, 후자는 스칸디나비아로 가는 화물운반 및 열차 페리 서비스를 제공한다.
8.6. 관광

2020년 폴란드 관광 산업의 총 가치는 1043.00 억 PLN로, 당시 폴란드 GDP의 4.5%에 해당했다. 관광업은 전체 경제에 상당한 기여를 하며, 폴란드 서비스 시장에서 비교적 큰 비중을 차지한다. 2020년에는 약 20만 명이 숙박 및 요식업 부문에 고용되었다. 2021년 폴란드는 국제 관광객 도착 기준으로 세계에서 12번째로 많이 방문한 국가로 선정되었다.
폴란드의 관광 명소는 남쪽의 산에서 북쪽의 해변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며, 풍부한 건축 및 문화 유산의 흔적을 따라간다. 가장 인지도가 높은 명소로는 크라쿠프, 바르샤바, 브로츠와프(난쟁이 동상), 그단스크, 포즈난, 루블린, 토룬, 자모시치의 구시가지뿐만 아니라 박물관, 동물원, 테마파크, 그리고 광부들이 지하 암염으로 조각한 미로 같은 터널, 지하호, 예배당이 있는 비엘리치카 소금광산이 있다. 폴란드에는 100개가 넘는 성이 있으며, 주로 돌니실롱스크주와 독수리 둥지길에 있다. 육지 면적으로 세계에서 가장 큰 성은 말보르크에 있다. 독일 아우슈비츠 강제 수용소(오시비엥침)와 쿠도바즈드루이의 해골 예배당은 다크 투어리즘을 구성한다. 자연 기반 여행과 관련하여 주목할 만한 장소로는 동쪽의 마수리아 호수 지역과 비아워비에자숲이 있으며, 남쪽에는 크르코노셰, 테이블산맥, 그리고 리시산과 독수리의 길 등산로가 있는 타트리산맥이 있다. 피에니니산맥과 비에슈차디산맥은 극동남쪽에 있다.
9. 사회
폴란드의 인구, 언어, 종교, 교육, 보건 등 사회 전반의 특징을 포괄적으로 다루는 부분으로, 각 하위 섹션에서는 구체적인 내용을 상세히 기술한다.
9.1. 인구와 민족
2021년 기준 폴란드의 인구는 약 3,820만 명이며, 유럽에서 9번째로 인구가 많은 국가이자 유럽 연합 회원국 중 5번째로 인구가 많다. 인구 밀도는 km²당 122명이다. 2021년 합계출산율은 여성 1인당 1.33명으로 추정되어 세계에서 가장 낮은 수준 중 하나이다. 또한 폴란드의 인구는 상당히 고령화되고 있으며, 중위 연령은 42.2세이다.
폴란드 인구의 약 60%가 도시 지역이나 주요 도시에 거주하고 40%는 농촌 지역에 거주한다. 2020년 폴란드인의 50.2%가 단독 주택에, 44.3%가 아파트에 거주했다. 가장 인구가 많은 행정 구역(주)은 마조프셰주이며, 가장 인구가 많은 도시는 수도인 바르샤바로 180만 명의 주민이 거주하며, 수도권에는 추가로 200만~300만 명이 거주한다. 카토비체의 도시권은 인구가 270만에서 530만 명 사이로 가장 큰 도시 집합체이다. 인구 밀도는 폴란드 남부에서 더 높으며 주로 브로츠와프와 크라쿠프 시 사이에 집중되어 있다.
2011년 폴란드 인구 조사에서 37,310,341명이 폴란드인 정체성을, 846,719명이 실레시아인, 232,547명이 카슈브인, 147,814명이 독일인 정체성을 보고했다. 다른 정체성은 163,363명(0.41%)이 보고했으며, 521,470명(1.35%)은 국적을 명시하지 않았다. 공식 인구 통계에는 영주권이나 카르타 폴라카를 소지하지 않은 이주 노동자는 포함되지 않는다. 2017년에는 170만 명 이상의 우크라이나 시민이 폴란드에서 합법적으로 일했다. 이민자 수는 꾸준히 증가하고 있으며, 2021년에만 504,172명의 외국인에게 노동 허가를 승인했다. 유럽 평의회에 따르면 폴란드에는 12,731명의 로마인이 거주한다.
2002년, 2011년, 2021년 인구 조사에 따른 주별 폴란드 민족 구성은 다음과 같다:
인구 조사 연도 | 2002년 인구 조사 | 2011년 인구 조사 | 2021년 인구 조사 | ||||||
---|---|---|---|---|---|---|---|---|---|
주 | 폴란드계 민족 | 비폴란드계 민족 | 미보고 또는 민족 없음 | 폴란드계 민족 (혼혈 포함) | 비폴란드계 민족만 | 미보고 또는 민족 없음 | 폴란드계 민족 (혼혈 포함) | 비폴란드계 민족만 | 미보고 또는 민족 없음 |
돌니실롱스크 | 98.02% | 0.42% | 1.56% | 97.87% | 0.38% | 1.75% | 99.25% | 0.72% | 0.03% |
비엘코폴스카 | 99.29% | 0.13% | 0.58% | 98.96% | 0.13% | 0.91% | 99.60% | 0.38% | 0.02% |
시에토크시스키에 | 98.50% | 0.09% | 1.41% | 98.82% | 0.08% | 1.10% | 99.70% | 0.27% | 0.03% |
쿠야비포모제 | 98.74% | 0.13% | 1.13% | 98.73% | 0.12% | 1.15% | 99.63% | 0.34% | 0.03% |
마워폴스카 | 98.72% | 0.26% | 1.02% | 98.22% | 0.24% | 1.54% | 99.50% | 0.47% | 0.03% |
루블린 | 98.74% | 0.13% | 1.12% | 98.66% | 0.14% | 1.20% | 99.64% | 0.33% | 0.03% |
루부시 | 97.72% | 0.33% | 1.95% | 98.26% | 0.31% | 1.43% | 99.43% | 0.54% | 0.03% |
우치 | 98.06% | 0.15% | 1.78% | 98.86% | 0.16% | 0.98% | 99.61% | 0.37% | 0.02% |
마조프셰 | 96.55% | 0.26% | 3.19% | 98.61% | 0.37% | 1.02% | 99.29% | 0.68% | 0.03% |
오폴레 | 81.62% | 12.52% | 5.86% | 88.14% | 9.72% | 2.14% | 95.58% | 4.33% | 0.09% |
포들라스키에 | 93.94% | 4.57% | 1.49% | 95.18% | 2.89% | 1.93% | 98.17% | 1.79% | 0.04% |
포모제 | 97.42% | 0.58% | 2.00% | 97.68% | 0.95% | 1.37% | 98.97% | 1.01% | 0.02% |
실롱스크 | 91.99% | 3.93% | 4.08% | 90.65% | 7.78% | 1.57% | 95.49% | 4.48% | 0.03% |
포트카르파츠키에 | 98.83% | 0.26% | 0.91% | 98.16% | 0.21% | 1.63% | 99.60% | 0.36% | 0.04% |
바르미아마주리 | 97.13% | 1.28% | 1.60% | 97.59% | 0.90% | 1.51% | 99.21% | 0.76% | 0.03% |
서포모제 | 98.27% | 0.46% | 1.27% | 98.18% | 0.36% | 1.46% | 99.39% | 0.58% | 0.03% |
폴란드 | 96.74% | 1.23% | 2.03% | 97.10% | 1.55% | 1.35% | 98.84% | 1.13% | 0.03% |
9.2. 언어

폴란드어는 폴란드의 공식 및 주요 사용 언어이며, 유럽 연합의 공식 언어 중 하나이다. 또한 인접한 리투아니아 일부 지역에서는 제2언어로 사용되며, 폴란드 소수 민족 학교에서 교육된다. 현대 폴란드는 언어적으로 동질적인 국가로, 응답자의 97%가 폴란드어를 모국어라고 밝혔다. 현재 폴란드에는 15개의 소수 민족 언어가 있으며, 그중 하나는 인정된 지역 언어인 카슈브어로, 북부 카슈비아 및 포메라니아 지역에서 약 10만 명이 일상적으로 사용한다. 폴란드는 또한 이중 언어 사용 지자체에서 보조 행정 언어 또는 보조 언어를 인정하며, 이 지역에서는 이중 언어 표지판과 지명이 일반적이다. 공공의견조사센터에 따르면, 2015년 폴란드 시민의 약 32%가 영어를 구사할 수 있다고 밝혔다.
9.3. 종교
2021년 인구 조사에 따르면, 전체 폴란드 시민의 71.3%가 로마 가톨릭교회를 따르며, 6.9%는 무교, 20.6%는 답변을 거부했다.
폴란드는 유럽에서 가장 종교적인 국가 중 하나로, 로마 가톨릭교가 국가 정체성의 일부로 남아 있으며 폴란드 태생의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이 널리 존경받는다. 2015년 응답자의 61.6%가 종교가 매우 또는 매우 중요하다고 답했다. 그러나 최근 몇 년 동안 교회 출석률은 크게 감소하여, 2000년 약 절반에서 2021년에는 가톨릭 신자의 28%만이 매주 미사에 참석했다. 월스트리트 저널에 따르면, "2018년 퓨 연구센터가 연구한 100개 이상의 국가 중 폴란드는 젊은이와 노년층의 종교성 차이로 측정했을 때 가장 빠르게 세속화되고 있었다."
폴란드의 종교의 자유는 헌법에 의해 보장되며, 폴란드와 교황청 간의 정교조약은 공립학교에서의 종교 교육을 허용한다. 역사적으로 폴란드 국가는 높은 수준의 종교적 관용을 유지했으며 유럽 다른 지역에서 종교적 박해를 피해 온 난민들에게 피난처를 제공했다. 폴란드는 유럽 최대의 유대인 디아스포라를 유치했으며, 홀로코스트 이전까지 아슈케나즈 유대 문화와 전통 학문의 중심지였다.
현대 종교 소수 집단에는 정교회 신자, 개신교도(복음 아우크스부르크 교회의 루터교도, 오순절교회의 오순절교도,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회의 재림교도 및 기타 소규모 복음주의 교파 포함), 여호와의 증인, 동방 가톨릭교도, 마리아파, 유대인, 무슬림(타타르족), 신이교도(일부는 폴란드 토속교회 회원)가 포함된다.
9.4. 교육

1364년 크라쿠프에서 카지미에시 3세에 의해 설립된 야기에우워 대학교는 폴란드에 설립된 최초의 고등 교육 기관이며, 지속적으로 운영되고 있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대학 중 하나이다. 1773년에 설립된 폴란드의 국민교육위원회(Komisja Edukacji Narodowej)는 세계 최초의 국가 교육부였다. 2018년 경제협력개발기구가 주관하는 국제 학생 평가 프로그램(PISA)은 폴란드의 교육 성과를 OECD 최고 수준 중 하나로 평가했으며, 2022년에는 학생 성취도 5위, 학생 성적 6위를 기록했다. 이 연구는 폴란드 학생들이 대부분의 OECD 국가보다 학업적으로 더 우수하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초등, 중등 및 고등 교육의 틀은 교육과학부에 의해 수립된다. 6세 아동에게는 1년간의 유치원 교육이 의무 교육이다. 초등 교육은 전통적으로 7세에 시작되지만, 부모나 보호자의 요청에 따라 6세 아동도 다닐 수 있다. 초등학교는 8학년제로 운영되며, 중등 교육은 학생의 선호에 따라 4년제 고등학교(리세움(liceum)), 5년제 기술학교(테흐니쿰(technikum)) 또는 다양한 직업 교육 과정(szkoła branżowa)을 선택할 수 있다. 리세움이나 테흐니쿰은 대학이나 기타 고등 교육 기관에 지원하기 위해 반드시 통과해야 하는 졸업 시험(마투라(matura))으로 마무리된다.
폴란드에는 500개 이상의 대학 수준 기관이 있으며, 수많은 학부가 있다. 바르샤바 대학교와 바르샤바 공과대학교, 브로츠와프 대학교, 포즈난 아담 미츠키에비치 대학교, 그단스크 공과대학교 등이 가장 저명한 대학으로 꼽힌다. 폴란드에는 3가지 전통적인 학위가 있다 - 리첸치아트(licencjat) 또는 인ჟ니에르(inżynier)(1주기), 마기스테르(magister)(2주기), 독토르(doktor)(3주기 자격).
9.5. 보건
폴란드의 의료 서비스 제공자와 병원은 보건부에 소속되어 있다. 보건부는 일반 의료 행위에 대한 행정적 감독과 조사를 제공하며, 높은 수준의 위생과 환자 관리를 유지할 의무가 있다. 폴란드는 포괄적인 건강보험 시스템에 기반한 보편적 의료보장 시스템을 갖추고 있으며, 국민건강기금(NFZ)의 일반 건강보험 프로그램에 가입된 모든 시민에게 국가 보조 의료 서비스가 제공된다. 전국적으로 사립 의료 단지가 존재하며, 인구의 50% 이상이 공공 및 사립 부문을 모두 이용한다.
2020년 인간 개발 보고서(HDI)에 따르면, 출생 시 평균 기대 수명은 79세(남아 약 75세, 여아 약 83세)이며, 영아 사망률은 낮다(출생 1,000명당 4명). 2019년 주요 사망 원인은 허혈성 심질환이었으며, 순환계통 질환이 전체 사망의 45%를 차지했다. 같은 해 폴란드는 의약품 및 제약 제품 수입국 중 15번째로 큰 규모였다.
10. 문화

폴란드의 문화는 복잡한 1,000년 역사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으며, 서양 문명의 중요한 구성 요소이다. 폴란드인들은 종종 흰색과 빨간색과 연관되는 국가 정체성에 큰 자부심을 가지고 있으며, 비아워-체르보니(biało-czerwoni)("흰색-빨간색")라는 표현으로 발산된다. 왕관을 쓴 흰꼬리수리를 비롯한 국가 상징물은 의류, 휘장, 상징물에 자주 보인다. 중요한 건축 기념물은 폴란드 국립유산위원회에 의해 보호된다. 국가의 가장 중요한 유형 문화재 100여 점이 역사 기념물 등록부에 등재되었으며, 추가로 17점이 유네스코에 의해 세계문화유산으로 인정받았다.
10.1. 전통과 공휴일

폴란드에는 정부가 승인한 연간 공휴일이 13일 있다 - 1월 1일 새해, 1월 6일 세 왕의 날, 부활절 일요일과 부활절 월요일, 5월 1일 노동절, 5월 3일 헌법의 날, 오순절, 성체성혈 대축일, 8월 15일 성모 승천 대축일, 11월 1일 모든 성인 대축일, 11월 11일 독립기념일, 그리고 12월 25일과 26일의 크리스마스 기간이다.
폴란드에서 지켜지는 특정 전통과 미신적 관습은 유럽 다른 곳에서는 찾아볼 수 없다. 크리스마스 이브(비길리아(Wigilia))는 공휴일은 아니지만, 한 해 중 가장 기억에 남는 날로 남아 있다. 12월 24일에는 트리를 장식하고, 예수의 구유를 상징하기 위해 식탁보 아래에 건초를 깔고, 모인 손님들 사이에 크리스마스 웨이퍼(opłatek)를 나누며, 첫 번째 별이 뜨면 12가지 고기 없는 저녁 식사가 제공된다. 예상치 못한 손님을 위해 빈 접시와 좌석이 상징적으로 식탁에 남겨진다. 때때로 캐럴러들은 사순절 기간까지 민속 투론(Turoń) 생물을 데리고 작은 마을을 돌아다닌다.
부활절 52일 전인 기름진 목요일에는 널리 인기 있는 도넛과 달콤한 페이스트리 향연이 열린다. 성스러운 일요일을 위한 달걀은 칠해져서 장식된 바구니에 담겨 성토요일에 교회에서 성직자들에 의해 미리 축복받는다. 부활절 월요일은 이교도적인 딘구스(dyngus) 축제로 기념되며, 젊은이들은 물싸움을 벌인다. 모든 성인의 날에는 가족들이 고인의 묘지를 매년 방문한다. 존경의 표시로 묘비를 청소하고, 전례 없는 규모로 죽은 이들을 기리기 위해 촛불을 밝힌다.
10.2. 문학


폴란드의 문학 작품은 전통적으로 애국심, 영성, 사회적 우화, 도덕적 서사에 집중되어 왔다. 라틴어로 쓰인 폴란드 문학의 가장 초기 사례는 12세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최초의 폴란드어 문구 Day ut ia pobrusa, a ti poziwai (공식적으로 "내가 갈 테니, 너는 쉬어라"로 번역됨)는 헨리쿠프의 서에 기록되었으며 맷돌 사용을 반영했다. 그 이후 유네스코의 세계기록유산에 포함되었다. 고대 폴란드어로 된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순수 산문 필사본은 성십자가 설교집과 소피아 여왕의 성경이며, 크라코비엔세 달력(Calendarium cracoviense, 1474년)은 폴란드에서 가장 오래된 현존 인쇄물이다.
시인 얀 코하노프스키와 미코와이 레이는 폴란드어로 글을 쓴 최초의 르네상스 작가가 되었다. 이 시기의 주요 문인으로는 단티스쿠스, 모드제비우스, 고실리키우스, 사르비에비우스, 신학자 얀 와스키 등이 있다. 바로크 시대에는 예수회 철학과 지역 문화가 얀 안제이 모르슈틴(마리니즘)과 얀 흐리소스톰 파세크(사르마티아 회고록)의 문학 기법에 큰 영향을 미쳤다. 계몽주의 시대에는 극작가 이그나치 크라시츠키가 최초의 폴란드어 소설을 집필했다. 폴란드의 19세기 주요 낭만주의 시인은 세 명의 국민 시인 - 율리우시 스워바츠키, 지그문트 크라신스키, 아담 미츠키에비치였으며, 미츠키에비치의 서사시 판 타데우시 (1834년)는 민족 고전이다. 20세기에는 영어 인상주의와 초기 모더니즘 작가인 조지프 콘라드의 작품이 그를 역대 가장 저명한 소설가 중 한 명으로 만들었다.
현대 폴란드 문학은 다재다능하며, 특히 판타지 장르가 높은 평가를 받았다. 스타니스와프 렘의 철학적 SF 소설 솔라리스와 안제이 사프콥스키의 더 위쳐 시리즈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허구 작품이다. 폴란드는 6명의 노벨 문학상 수상자를 배출했다 - 헨리크 시엔키에비치 (쿠오 바디스; 1905년), 브와디스와프 레이몬트 (농민; 1924년), 아이작 바셰비스 싱어 (1978년), 체스와프 미워시 (1980년), 비스와바 심보르스카 (1996년), 올가 토카르추크 (2018년).
10.3. 음악


프레데리크 쇼팽, 아르투르 루빈스타인, 이그나치 얀 파데레프스키, 크시슈토프 펜데레츠키, 헨리크 비에니아프스키, 카롤 시마노프스키, 비톨트 루토스와프스키, 스타니스와프 모니우슈코와 같은 유명한 음악가들을 포함한 폴란드 예술가들과 전통적이고 지역화된 민속 음악 작곡가들은 활기차고 다양한 음악계를 창조하며, 노래하는 시와 디스코 폴로와 같은 자체 음악 장르까지 인정받고 있다.
폴란드 음악의 기원은 13세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스타리송치에서 파리 노트르담 악파와 관련된 다성음악 작품이 포함된 필사본이 발견되었다. 보구로지차와 신은 태어나시네(폴란드 국왕들을 위한 대관식 폴로네즈 곡조, 작곡가 미상)의 멜로디와 같은 다른 초기 작품들도 이 시기로 거슬러 올라갈 수 있지만, 최초로 알려진 주목할 만한 작곡가인 라돔의 니콜라스는 15세기에 살았다. 크라쿠프에 살았던 이탈리아 태생의 디오메데스 카토는 지그문트 3세 궁정에서 저명한 류트 연주자가 되었다. 그는 남유럽의 일부 음악 스타일을 수입했을 뿐만 아니라 토착 민속 음악과 혼합했다.
17세기와 18세기에 폴란드 바로크 작곡가들은 전례 음악과 협주곡, 성악이나 악기를 위한 소나타와 같은 세속 작품을 작곡했다. 18세기 말, 폴란드 클래식 음악은 폴로네즈와 같은 국가 형태로 발전했다. 보이치에흐 보구스와프스키는 1794년에 초연된 크라코비아치 이 구랄레(Krakowiacy i Górale)라는 제목의 최초의 폴란드 국립 오페라를 작곡한 것으로 인정받는다. 프레데리크 쇼팽의 마주르카 중 가단조 작품 17의 4번은 3박자의 양식화된 민속춤 곡으로, 1832년에 작곡되어 11월 봉기를 기념하는 의미를 담고 있다.
오늘날 폴란드는 활발한 음악계를 가지고 있으며, 재즈와 메탈 장르가 현대 대중들 사이에서 특히 인기가 많다. 크시슈토프 코메다와 같은 폴란드 재즈 음악가들은 독특한 스타일을 창조했으며, 이는 1960년대와 1970년대에 가장 유명했고 오늘날까지도 인기가 계속되고 있다. 폴란드는 또한 폴란드앤드록 페스티벌, 오프너 페스티벌, 오폴레 페스티벌, 소폿 페스티벌 등 대규모 음악 축제의 주요 개최지가 되었다.
10.4. 미술


폴란드의 예술은 변함없이 유럽의 경향을 반영해 왔으며, 폴란드 회화는 민속, 가톨릭 주제, 역사주의, 사실주의뿐만 아니라 인상주의와 낭만주의에 중점을 두었다. 중요한 예술 운동은 청년 폴란드로, 19세기 말 퇴폐주의, 상징주의, 아르누보를 장려하기 위해 발전했다. 20세기부터 폴란드 다큐멘터리 예술과 사진은 세계적으로 명성을 누렸으며, 특히 폴란드 포스터 학파가 유명하다. 폴란드에서 가장 저명한 그림 중 하나는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흰 담비를 안은 여인 (1490년)이다.
국제적으로 유명한 폴란드 예술가로는 얀 마테이코(역사주의), 야체크 말체프스키(상징주의), 스타니스와프 비스피안스키(아르누보), 헨리크 시미라즈키(로마 아카데미 예술), 타마라 드 렘피카(아르데코), 즈지스와프 벡신스키(디스토피아적 초현실주의) 등이 있다. 여러 폴란드 예술가와 조각가들도 아방가르드, 구성주의, 미니멀리스트, 현대 미술 운동의 저명한 대표자였으며, 여기에는 카타지나 코브로, 브와디스와프 스트셰민스키, 마그달레나 아바카노비치, 알리나 샤포츠니코프, 이고르 미토라이, 빌헬름 사스날 등이 포함된다.
폴란드의 유명한 미술 학교로는 크라쿠프 미술 아카데미, 바르샤바 미술 아카데미, 슈체친 미술 아카데미, 포즈난 미술 대학교, 브로츠와프 게페르트 미술 아카데미 등이 있다. 현대 작품은 자헹타, 우야즈두프, MOCAK 미술관에 전시된다.
10.5. 건축


폴란드의 건축은 유럽 건축 양식을 반영하며, 이탈리아, 독일, 저지대 국가에서 파생된 강력한 역사적 영향을 받았다. 마그데부르크법에 따라 설립된 정착지는 중앙 시장 광장(폴란드어: plac, rynek)을 중심으로 발전했으며, 격자형 또는 동심원형 거리망으로 둘러싸여 구시가지(폴란드어: stare miasto)를 형성했다. 폴란드의 전통적인 풍경은 화려한 교회, 도시 연립주택, 시청을 특징으로 한다. 직물 회관 시장(폴란드어: sukiennice)은 한때 폴란드 도시 건축의 풍부한 특징이었다. 남부 산악 지대는 폴란드에서 유래한 자코파네 샬레 양식으로 유명하다.
가장 초기 건축 경향은 로마네스크 양식(11세기 이전)이었지만, 원형 로툰다 형태의 흔적은 드물다. 벽돌 고딕 양식(13세기 이전)의 도래는 폴란드의 가장 독특한 중세 양식을 정의했으며, 말보르크, 리드즈바르크, 그니에프, 크비진 성과 그니에즈노, 그단스크, 브로츠와프, 프롬보르크, 크라쿠프 대성당에서 그 예를 볼 수 있다. 르네상스(16세기)는 이탈리아풍 안뜰, 방어적인 팔라초, 영묘를 탄생시켰다. 첨탑과 아케이드 로지아가 있는 장식적인 다락방은 폴란드 매너리즘의 요소로, 포즈난, 루블린, 자모시치에서 발견된다. 외국 장인들은 종종 왕이나 귀족의 비용으로 왔으며, 그들의 궁전은 이후 바로크, 신고전주의, 부흥주의 양식(17~19세기)으로 지어졌다.
주요 건축 자재인 목재와 붉은 벽돌은 폴란드 민속 건축에 광범위하게 사용되었으며, 요새화된 교회의 개념은 일반적이었다. 드보레크(dworek) 저택, 농가, 곡창, 제분소, 시골 여관과 같은 세속 건축물은 일부 지역이나 야외 박물관(스칸센)에 여전히 남아 있다. 그러나 전통적인 건축 방식은 도시화와 기능주의적 주택 단지 및 주거 지역 건설로 인해 20세기 초중반에 사라졌다.
10.6. 요리

폴란드의 요리는 절충적이며 다른 지역 요리와 유사점을 공유한다. 주요 또는 지역 요리로는 피에로기(속을 채운 만두), 키에우바사(소시지), 비고스(사냥꾼 스튜), 코틀레트 스하보비(빵가루를 입힌 커틀릿), 고웜프키(양배추 롤), 바르시치(보르시), 주레크(신 호밀 수프), 오시페크(훈제 치즈), 토마토 수프 등이 있다. 빵의 일종인 베이글도 폴란드에서 유래했다.
전통 요리는 푸짐하며 돼지고기, 감자, 달걀, 크림, 버섯, 지역 허브, 소스를 풍부하게 사용한다. 폴란드 음식은 다양한 종류의 클루스키(부드러운 만두), 수프, 곡물, 다양한 빵과 오픈 샌드위치가 특징이다. 미제리아(오이 샐러드), 코울슬로, 사워크라우트, 당근, 익힌 비트를 포함한 샐러드가 일반적이다. 식사는 세르니크(치즈케이크), 마코비에츠(양귀비 씨 롤), 또는 나폴레온카(밀푀유) 크림 파이와 같은 디저트로 마무리된다.
전통적인 알코올 음료에는 13세기부터 널리 퍼진 꿀 봉밀주, 맥주, 와인, 보드카가 포함된다. 세계 최초로 보드카에 대한 기록이 언급된 곳은 폴란드이다. 현재 가장 인기 있는 알코올 음료는 맥주와 와인으로, 1980년~1998년에 더 인기가 많았던 보드카를 대체했다. "폴란드 샴페인"이라고도 불리는 그로지스키에는 폴란드의 역사적인 맥주 스타일의 예이다. 차는 19세기부터 폴란드 사회에서 흔했으며, 커피는 18세기부터 널리 마셨다.
10.7. 패션과 디자인

몇몇 폴란드 디자이너와 스타일리스트는 미용 발명품과 화장품 분야에서 유산을 남겼다. 여기에는 헬레나 루빈스타인과 막시밀리안 팍토로비치가 포함되는데, 후자는 캘리포니아에 맥스 팩터라는 화장품 회사를 설립하고 현재 화장품을 설명하는 대체 용어로 널리 사용되는 "메이크업"이라는 용어를 만들었다. 팍토로비치는 또한 현대 속눈썹 연장을 발명한 것으로도 알려져 있다. 2020년 현재 폴란드는 유럽에서 6번째로 큰 화장품 시장을 보유하고 있다. 잉글롯 코스메틱스는 폴란드 최대의 미용 제품 제조업체이며, 소매점 리저브드는 폴란드에서 가장 성공적인 의류 매장 체인이다.
역사적으로 패션은 폴란드의 국가 의식 또는 문화적 표현의 중요한 측면이었으며, 17세기 전환기에 사르마티즘으로 알려진 자체 스타일을 발전시켰다. 폴란드의 민족 의상과 에티켓은 베르사유 궁정에도 영향을 미쳤으며, 폴란드 의상에서 영감을 받은 프랑스 드레스에는 로브 아 라 폴로네즈(robe à la polonaise)와 비슈라(witzchoura)가 포함되었다. 영향 범위에는 가구도 포함되었다. 캐노피가 있는 로코코 양식의 폴란드 침대는 프랑스 샤토에서 유행했다. 사르마티즘은 결국 18세기에 사라졌다.
10.8. 영화

폴란드 영화의 기원은 1894년 발명가 카지미에시 프루신스키가 플레오그래프를 특허내고 이후 최초의 성공적인 휴대용 영화 카메라인 아에로스코프를 발명한 것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897년 얀 슈체파니크는 이미지와 소리를 전송하는 텔레비전의 원형인 텔렉트로스코프를 제작했다. 두 사람 모두 영화 촬영술의 선구자로 인정받는다. 폴란드는 또한 영향력 있는 감독, 영화 제작자, 배우를 배출했으며, 그중 다수가 할리우드에서 활동했다. 대표적인 인물로는 로만 폴란스키, 안제이 바이다, 폴라 네그리, 새뮤얼 골드윈, 워너 형제, 맥스 플라이셔, 아그니에슈카 홀란트, 크시슈토프 자누시, 크시슈토프 키에실로프스키 등이 있다.
폴란드 영화에서 흔히 탐구되는 주제로는 역사, 드라마, 전쟁, 문화, 암흑 사실주의(필름 누아르) 등이 있다. 21세기에 두 편의 폴란드 작품이 아카데미상을 수상했다 - 로만 폴란스키의 피아니스트 (2002년)와 파베우 파블리코프스키의 이다 (2013년)이다. 폴란드 영화는 또한 많은 호평을 받은 코미디 영화를 제작했다. 가장 잘 알려진 작품들은 스타니스와프 바레야와 율리우시 마훌스키가 만들었다.
10.9. 대중매체

유로바로미터 보고서(2015년)에 따르면 폴란드인의 78%가 매일 텔레비전을 시청한다. 2020년에는 인구의 79%가 하루에 한 번 이상 뉴스를 읽어 스웨덴에 이어 2위를 차지했다. 폴란드에는 공영 방송사인 TVP, 무료 방송 채널인 TVN과 폴샛, 그리고 24시간 뉴스 채널인 TVP 인포, TVN24, 폴샛 뉴스 등 여러 주요 국내 미디어 매체가 있다. 공영 텔레비전은 TVP 스포르트, TVP 히스토리아, TVP 쿨투라, TVP 로즈리프카, TVP 세리알레, 그리고 폴란드 디아스포라를 위한 폴란드어 방송 전송 전용 국영 채널인 TVP 폴로니아와 같은 장르별 프로그램으로 운영을 확대하고 있다. 2020년 가장 인기 있는 신문 유형은 타블로이드와 사회 정치 뉴스 일간지였다.
폴란드는 비디오 게임 개발자의 주요 유럽 허브이며 가장 성공적인 회사로는 CD 프로젝트, 테크랜드, 더 팜 51, CI 게임스, 피플캔플라이가 있다. 폴란드에서 개발된 인기 비디오 게임에는 더 위쳐 3부작과 사이버펑크 2077이 포함된다. 폴란드 도시 카토비체는 또한 세계에서 가장 큰 e스포츠 행사 중 하나인 인텔 익스트림 마스터스를 개최한다.
10.10. 스포츠

모터사이클 스피드웨이, 배구, 축구는 폴란드에서 가장 인기 있는 스포츠이며, 국제 대회에서 풍부한 역사를 가지고 있다. 육상, 농구, 핸드볼, 권투, MMA, 스키점프, 크로스컨트리 스키, 아이스하키, 테니스, 펜싱, 수영, 역도 등도 인기 있는 스포츠이다.
폴란드 축구의 황금기는 1970년대부터 1980년대 초까지였으며, 이 시기에 폴란드 축구 국가대표팀은 1974년과 1982년 FIFA 월드컵 대회에서 3위를 차지하며 최고의 성적을 거두었다. 대표팀은 올림픽 축구에서 1972년 하계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1976년과 1992년에는 은메달을 두 차례 획득했다. 2012년 폴란드는 UEFA 유럽 축구 선수권 대회를 공동 개최했다.
2024년 9월 현재, 폴란드 남자 배구 국가대표팀은 세계 1위에 올라 있다. 대표팀은 1976년 하계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FIVB 세계선수권대회에서는 1974년, 2014년, 2018년에 금메달을 획득했다.
마리우시 푸지아노프스키는 매우 성공적인 스트롱맨 선수로, 세계에서 가장 많은 세계에서 가장 강한 남자 타이틀을 획득했으며, 2008년에 5번째로 우승했다.
폴란드는 모터사이클 스피드웨이 경주에서 두드러진 성과를 거두었다. 최상위 엑스트랄리가 디비전은 폴란드에서 모든 스포츠 중 평균 관중 수가 가장 높은 곳 중 하나이다. 폴란드 스피드웨이 국가대표팀은 국제 스피드웨이의 주요 팀 중 하나이다. 개인적으로 폴란드에는 세 명의 스피드웨이 그랑프리 세계 챔피언이 있으며, 가장 성공적인 선수는 2019년과 2020년에 연속 우승하고 2022년, 2023년, 2024년에도 우승한 5회 세계 챔피언 바르토시 즈마르즐리크이다. 2021년 폴란드는 영국 맨체스터에서 열린 스피드웨이 오브 네이션스 세계 선수권 대회 결승에서 준우승을 차지했다.
21세기에 폴란드는 테니스 인기가 증가했으며, 그랜드 슬램 단식 타이틀 5회 우승자인 세계 랭킹 1위 이가 시비옹테크, 2015년 WTA 파이널을 포함하여 WTA 통산 단식 타이틀 20회 우승자인 전 세계 랭킹 2위 아그니에슈카 라드반스카, ATP 톱 10 선수 후베르트 후르카치, 그랜드 슬램 복식 타이틀 2회 우승자인 전 세계 랭킹 1위 복식 선수 우카시 쿠보트, 그랜드 슬램 혼합 복식 타이틀 2회 우승자인 얀 지엘린스키 등 다수의 성공적인 테니스 선수를 배출했다. 폴란드는 또한 아그니에슈카 라드반스카와 예지 야노비치가 국가를 대표하여 2015년 호프먼컵에서 우승했다.
폴란드인들은 등반, 특히 히말라야와 8천 미터급 봉우리 동계 등정에서 상당한 성과를 거두었다(예: 예지 쿠쿠츠카, 크시슈토프 비엘리츠키, 반다 루트키에비치). 폴란드 산들은 폴란드의 관광 명소 중 하나이다. 하이킹, 등반, 스키, 산악자전거는 전 세계에서 매년 수많은 관광객을 끌어들인다. 수상 스포츠는 가장 인기 있는 여름 레크리에이션 활동으로, 특히 폴란드 북부 지역에서 낚시, 카누, 카약, 요트, 윈드서핑을 즐길 수 있는 장소가 풍부하다.
10.11. 세계유산
폴란드는 풍부한 역사와 문화를 자랑하며, 다수의 유네스코 세계유산을 보유하고 있다. 2023년 기준 폴란드에는 총 17개의 세계유산이 등재되어 있으며, 이 중 15개는 문화유산, 2개는 자연유산이다. (하나의 자연유산은 벨라루스와 공유)
- 문화유산:
1. 크라쿠프 역사 지구 (1978년): 폴란드의 옛 수도로, 중세 유럽 도시의 모습을 잘 간직하고 있다. 바벨성, 중앙 시장 광장, 성모 마리아 성당 등이 포함된다.
2. 비엘리치카와 보흐니아 왕립 소금 광산 (1978년, 2013년 확장): 수 세기 동안 운영된 암염 광산으로, 지하에 조각된 예배당과 예술 작품들이 경이롭다.
3. 아우슈비츠 비르케나우 독일 나치 강제 수용소 및 절멸 수용소 (1940년-1945년) (1979년): 제2차 세계 대전 중 나치 독일이 운영한 최대 규모의 강제 수용소이자 절멸 수용소로, 인류 비극의 상징적인 장소이다.
4. 바르샤바 역사 지구 (1980년): 제2차 세계 대전으로 거의 완전히 파괴되었으나, 시민들의 노력으로 철저한 복원을 거쳐 옛 모습을 되찾았다.
5. 자모시치 구시가지 (1992년): 16세기 르네상스 시대에 이상적인 도시로 계획되어 건설된 도시이다.
6. 토룬 중세 도시 (1997년): 천문학자 니콜라우스 코페르니쿠스의 출생지로, 중세 고딕 건축물이 잘 보존되어 있다.
7. 말보르크의 튜턴 기사단 성 (1997년): 세계에서 가장 큰 벽돌 성이자 중세 튜턴 기사단의 본부였다.
8. 칼바리아 제브지도프스카: 매너리즘 건축 및 공원 조경 단지와 순례 공원 (1999년): 바로크 양식의 교회와 예배당들이 있는 종교 순례지이다.
9. 야보르와 시비드니차의 평화 교회군 (2001년): 17세기 30년 전쟁 이후 실레시아 지역에 건설된 독특한 목조 개신교 교회이다.
10. 마워폴스카 남부의 목조 교회군 (2003년): 독특한 건축 양식을 보여주는 중세 목조 교회들이다.
11. 무스카우 공원 / 무자코프 공원 (2004년, 독일과 공유): 폴란드와 독일 국경에 걸쳐 있는 19세기 영국식 풍경 정원이다.
12. 브로츠와프 백주년관 (2006년): 20세기 초 철근 콘크리트 건축 기술의 중요한 예시이다.
13. 폴란드와 우크라이나 카르파티아 지역의 목조 체르크바 (2013년, 우크라이나와 공유): 동방 가톨릭 및 정교회 전통을 보여주는 독특한 목조 교회 건축물이다.
14. 타르노프스키에구리 납-은-아연 광산과 지하수 관리 시스템 (2017년): 수백 년 동안 운영된 역사적인 광산 유적이다.
15. 크셰미온키 선사 시대 줄무늬 부싯돌 광산 지역 (2019년): 신석기 시대와 청동기 시대 초기의 중요한 부싯돌 채광 유적지이다.
- 자연유산:
1. 비아워비에자숲 (1979년, 1992년·2014년 확장, 벨라루스와 공유): 유럽 저지대의 마지막 남은 원시림 중 하나로, 유럽들소의 서식지이다.
2. 카르파티아 및 유럽의 기타 지역에 있는 원시 너도밤나무 숲 (2007년, 2011년·2017년·2021년 확장, 알바니아, 오스트리아, 벨기에,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불가리아, 크로아티아, 체코,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북마케도니아, 루마니아, 슬로바키아, 슬로베니아, 스페인, 스위스, 우크라이나와 공유): 유럽 전역에 걸쳐 있는 너도밤나무 원시림 네트워크의 일부이다.
이러한 세계유산들은 폴란드의 풍부한 역사, 문화, 그리고 아름다운 자연을 전 세계에 알리는 중요한 자산이다.
11. 개요

폴란드(폴란드어: Polska 폴스카), 공식적으로 폴란드 공화국(폴란드어: Rzeczpospolita Polska 제치포스폴리타 폴스카)은 중앙유럽에 위치한 공화국이다. 북쪽으로는 발트해에 면하며, 북동쪽으로는 러시아(칼리닌그라드) 및 리투아니아, 동쪽으로는 벨라루스 및 우크라이나, 남쪽으로는 슬로바키아 및 체코, 서쪽으로는 독일과 국경을 접한다. 국토 면적은 31.27 만 km2이며, 16개의 주(voivodeship)로 구성되어 있다. 인구는 약 3,800만 명으로, 유럽 연합 회원국 중 5번째로 인구가 많다. 수도이자 최대 도시는 바르샤바이며, 주요 도시로는 크라쿠프, 우치, 브로츠와프, 포즈난, 그단스크, 슈체친 등이 있다.
폴란드 영토 내 인류 거주 흔적은 구석기 시대 전기로 거슬러 올라가며, 중세 초기에 서슬라브계 폴란인이 정착하면서 국가의 기틀이 마련되었다. 966년 미에슈코 1세가 기독교를 수용한 것이 폴란드 국가 형성의 중요한 전환점으로 여겨진다. 피아스트 왕조와 야기에우워 왕조를 거치며 강력한 왕국으로 성장했으며, 특히 1569년 리투아니아 대공국과의 루블린 연합을 통해 형성된 폴란드-리투아니아 연방은 16~17세기 유럽의 주요 강국 중 하나였다. 이 시기 연방은 황금의 자유로 알려진 귀족 민주주의 체제를 발전시켰고, 1791년에는 유럽 최초의 근대 성문 헌법인 5월 3일 헌법을 채택했다. 그러나 18세기 말, 프로이센, 러시아, 오스트리아에 의한 세 차례의 폴란드 분할로 인해 국가 주권을 상실했다.
123년간의 외세 지배 이후, 제1차 세계 대전 종전과 함께 1918년 폴란드 제2공화국으로 독립을 회복했다. 그러나 1939년 나치 독일과 소련의 침공으로 제2차 세계 대전이 발발했고, 폴란드는 다시 점령당하여 막대한 인명 피해와 홀로코스트라는 비극을 겪었다. 종전 후 폴란드는 소련의 영향권 아래 폴란드 인민 공화국이 되었고, 냉전 시대 바르샤바 조약 기구의 핵심 회원국이었다. 1980년대 자유노조(Solidarność) 운동을 중심으로 민주화 요구가 거세졌고, 1989년 동유럽 혁명의 일환으로 공산 정권이 붕괴되면서 폴란드 제3공화국이 출범했다.
현대 폴란드는 대의 민주주의와 시장 경제 체제를 채택하고 있으며, 유럽 연합(2004년 가입)과 NATO(1999년 가입)의 회원국이다. GDP 규모는 유럽 연합 내에서 6번째(명목)이며, 높은 인간 개발 지수를 기록하고 있다. 주요 산업으로는 제조업(자동차, 전자제품), 농업, 서비스업 등이 있으며, 풍부한 역사 유적과 자연환경을 바탕으로 관광 산업도 발달했다. 로마 가톨릭이 국민 다수의 종교이며, 폴란드어가 공용어이다. 교육 수준이 높으며, 특히 ICT 및 게임 산업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폴란드 문화는 음악(쇼팽), 문학(노벨상 수상자 다수 배출), 영화 등 다양한 분야에서 세계적으로 인정받고 있으며, 17개의 유네스코 세계유산을 보유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