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독일연방공화국(獨逸聯邦共和國, Bundesrepublik Deutschland분데스레푸블리크 도이칠란트독일어), 약칭 독일(獨逸, Deutschland도이칠란트독일어)은 중앙유럽에 위치한 국가이다. 인구는 2023년 기준 약 8,470만 명으로, 유럽 연합 회원국 중 가장 인구가 많으며, 러시아를 제외한 유럽 국가 중에서도 인구가 가장 많은 국가이다. 북쪽으로는 발트해와 북해, 남쪽으로는 알프스산맥과 접하며, 덴마크, 폴란드, 체코, 오스트리아, 스위스, 프랑스, 룩셈부르크, 벨기에, 네덜란드와 국경을 맞대고 있다. 독일의 영토는 35.70 만 km2이며, 주로 온대 기후를 보인다. 수도이자 최대 도시는 베를린이며, 주요 금융 중심지는 프랑크푸르트, 가장 큰 도시권은 루르이다.
현대 독일 지역의 역사는 선사 시대부터 시작되었으며, 다양한 게르만족 부족들이 고대부터 이곳에 정착하였다. 962년 독일 왕국이 형성되어 신성 로마 제국의 핵심부를 이루었고, 16세기에는 종교 개혁의 중심지가 되었다. 1806년 신성 로마 제국 해체 후 독일 연방이 결성되었으며, 1871년 프로이센 왕국 주도로 독일 제국이 성립되어 현대적 국민 국가로 통일되었다. 제1차 세계 대전 패전 후 바이마르 공화국이 수립되었으나, 1933년 아돌프 히틀러의 나치당이 집권하면서 전체주의 독재 체제가 되었고, 이는 제2차 세계 대전과 홀로코스트로 이어졌다.
제2차 세계 대전 패전 후 독일은 연합군에 의해 분할 점령되었고, 이후 독일연방공화국(서독)과 독일민주공화국(동독)으로 분단되었다. 서독은 유럽 경제 공동체(EEC)와 유럽 연합(EU)의 창립 회원국이었으며, 동독은 공산주의 국가로 바르샤바 조약 기구의 회원국이었다. 1989년 베를린 장벽 붕괴와 평화 혁명을 거쳐 1990년 10월 3일 독일은 재통일되었다.
독일은 강력한 경제력을 가진 강대국으로 평가받으며, 유럽 최대 경제 규모를 자랑하고 명목 GDP 기준 세계 3위, 구매력 평가(PPP) 기준 세계 5위이다. 산업, 과학 기술 분야에서 선도적인 역할을 하며, 세계 3위의 수출국이자 수입국이다. 독일은 선진국으로서 포괄적인 사회 보장 제도, 보편적 의료보험 시스템, 무상 고등 교육을 제공한다. 또한 유엔, NATO, G7, G20, OECD 등 주요 국제기구의 회원국이며, 유네스코 세계유산을 세 번째로 많이 보유하고 있다.
2. 국명
독일의 공식 국명은 독일연방공화국(Bundesrepublik Deutschland분데스레푸블리크 도이칠란트독일어)이며, 일반적으로 독일(Deutschland도이칠란트독일어)로 불린다. '도이칠란트'라는 이름은 고대 고지 독일어의 'diutisc'에서 유래했으며, 이는 '민중의' 또는 '민족의'를 의미하는 게르만조어 '*þiudiskaz'에서 파생되었다. 원래 이 용어는 라틴어나 로망스어와 구별되는 게르만 부족들의 언어를 지칭하는 데 사용되었다.
한국에서 사용되는 '독일(獨逸)'이라는 명칭은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 일본을 통해 유입된 것으로, 당시 일본에서 독일을 음차하여 표기한 '도이쓰(獨逸)'를 한국 한자음으로 읽은 것이다. 그 이전에는 중국의 영향으로 '덕국(德國)' 등으로 불리기도 했다. 표준어 규정상 '도이칠란트'도 독일을 지칭하는 올바른 표현으로 인정된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서는 원어 발음에 가까운 '도이췰란드'라는 표기를 사용한다.
영어에서 독일을 뜻하는 '저머니(Germany)'는 고대 로마인들이 라인강 동쪽에 사는 민족들을 가리켜 사용했던 라틴어 '게르마니아(Germania)'에서 유래했다. 이 명칭은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이 지역의 민족들을 지칭하면서 널리 사용되기 시작했다. 프랑스어의 '알마뉴(Allemagne)'는 게르만 부족의 하나인 알레만니족의 이름에서 유래했으며, 폴란드어의 '니엠치(Niemcy)'는 '말을 못 하는 사람', 즉 '외국인'을 뜻하는 슬라브어에서 비롯되었다. 이처럼 독일은 역사적, 지리적 배경으로 인해 다양한 언어에서 각기 다른 명칭으로 불리고 있다.
3. 역사
독일 지역의 역사는 선사 시대 인류의 정착으로부터 시작하여 고대 게르만족의 형성, 로마 제국과의 관계를 거쳐 프랑크 왕국, 신성 로마 제국으로 이어졌다. 이후 근대에는 독일 연방과 독일 제국 시대를 맞이했으며, 두 차례의 세계 대전을 겪으며 바이마르 공화국, 나치 독일, 그리고 동서독 분단이라는 격동의 시기를 거쳤다. 1990년 재통일 이후 현대 독일은 유럽 연합의 핵심 국가로 발전했다.
3.1. 선사 시대와 고대

독일 지역에서는 1100만 년 전의 초기 직립 유인원인 다누비우스 구겐모시의 화석이 발견되었으며, 최소 60만 년 전부터 고대 인류가 거주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최초의 네안데르탈인 화석이 네안데르 계곡에서 발견되었고, 슈베비셰 알프 지역에서는 약 4만 2천 년 전의 플루트(가장 오래된 악기), 4만 년 전의 사자 인간상, 3만 5천 년 전의 홀레 펠스 비너스상 등 현생 인류의 유물이 출토되었다. 유럽 청동기 시대에 제작된 네브라 하늘원반 역시 독일 지역에서 발견된 중요한 유물이다.
고대 독일 지역에는 다양한 부족들이 거주했는데, 남부에는 켈트족 계열의 부족들이 라텐 문화를 이루며 정착했고, 북부에는 고전 고대 시대부터 여러 게르만족 부족들이 거주했다. '게르마니아'라는 지역명은 기원후 100년 이전에 로마인들에 의해 기록되기 시작했다. 로마 제국은 아우구스투스 황제 시대에 게르마니아 지역을 침공하여 라인강과 엘베강 사이에 잠시 속주를 설치하기도 했으나, 기원후 9년 토이토부르크숲 전투에서 아르미니우스가 이끄는 게르만족에게 대패하면서 게르마니아 정복을 단념했다. 이 전투는 유럽 역사에서 중요한 전환점으로 평가받는다. 기원후 100년경 타키투스가 《게르마니아》를 저술할 당시, 게르만 부족들은 라인강과 다뉴브강(리메스 게르마니쿠스)을 따라 정착하여 오늘날 독일 영토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었다. 그러나 바덴뷔르템베르크, 바이에른 남부, 헤센 남부, 라인란트 서부 등은 로마의 속주로 편입되어 로마의 지배를 받았다.
3.2. 게르만족과 프랑크 왕국

게르만족은 북유럽 청동기 시대 또는 초기 철기 시대에 야스토르프 문화에서 발전한 것으로 추정된다. 그들은 스칸디나비아 남부와 독일 북부에서 남쪽, 동쪽, 서쪽으로 확장하며 켈트족, 이란족, 발트족, 슬라브족 등과 접촉했다.
260년경 게르만족은 로마 제국의 국경을 넘어 로마 영토로 진입하기 시작했다. 375년 훈족의 침입과 395년 이후 로마 제국의 쇠퇴는 게르만족의 대이동을 더욱 가속화했다. 이 과정에서 프랑크족은 프랑크 왕국을 건설하고 동쪽으로 세력을 확장하여 작센족과 바이에른족을 복속시켰다. 한편, 오늘날 독일 동부 지역에는 서슬라브족 부족들이 거주하고 있었다.
카롤루스 대제는 800년에 카롤루스 제국을 세웠으나, 그의 사후 제국은 843년 베르됭 조약에 의해 세 아들 사이에서 분할되었다. 이 중 동쪽 영토를 차지한 동프랑크 왕국은 서쪽의 라인강에서 동쪽의 엘베강, 북쪽의 북해에서 남쪽의 알프스산맥에 이르는 광대한 지역을 포함했으며, 이후 신성 로마 제국의 모태가 되었다.
3.3. 동프랑크 왕국과 신성 로마 제국

카롤루스 대제가 800년에 세운 카롤루스 제국은 그의 사후 843년 베르됭 조약으로 분할되었다. 이 중 동프랑크 왕국은 이후 신성 로마 제국으로 발전하는 기반이 되었다. 오토 왕조(919년~1024년)의 군주들은 여러 주요 부족공국들을 통합했으며, 962년 오토 1세는 로마 교황으로부터 신성 로마 황제 대관을 받았다. 그의 손자인 오토 3세는 996년 자신의 사촌인 교황 그레고리오 5세를 최초의 독일인 교황으로 임명하고 곧이어 신성 로마 황제로 즉위했다. 잘리어 왕조(1024년~1125년) 시대에 신성 로마 제국은 이탈리아 북부와 부르고뉴를 병합했으나, 황제들은 서임권 투쟁으로 인해 권력을 잃었다.
호엔슈타우펜 왕조(1138년~1254년)의 황제들은 독일인들의 남부 및 동부 지역으로의 정착(동방식민운동)을 장려했다. 북독일의 여러 도시들은 한자 동맹의 일원으로서 교역 확대를 통해 번영을 누렸다. 그러나 1315년의 대기근을 시작으로 인구가 감소했으며, 1348년~1350년의 흑사병으로 더욱 큰 타격을 입었다. 1356년에 반포된 금인칙서는 제국의 헌정 구조를 마련하고 일곱 선제후에 의한 황제 선출 방식을 법제화했다.
요하네스 구텐베르크는 유럽에 활판 인쇄술을 도입하여 지식의 대중화에 기여했다. 1517년 마르틴 루터는 95개조 반박문을 발표하며 종교 개혁을 촉발했고, 그의 성경 번역은 독일어 표준화의 시작을 알렸다. 1555년 아우크스부르크 화의는 루터교를 공인했으나, 동시에 "군주의 종교가 곧 신민의 종교(Cuius regio, eius religio)"라는 원칙을 확립했다. 쾰른 전쟁부터 30년 전쟁(1618년~1648년)에 이르는 종교 분쟁은 독일 전역을 황폐화시키고 인구를 급감시켰다.
베스트팔렌 조약은 제국 내 영방 국가들 간의 종교 전쟁을 종식시켰다. 이후 제국 개혁(1495년~1555년경)을 통해 상당한 수준의 지방 자치권과 강력한 제국 의회가 마련되었다. 합스부르크가는 1438년부터 1740년 카를 6세가 사망할 때까지 제위를 유지했다. 오스트리아 왕위 계승 전쟁과 아헨 조약 이후 카를 6세의 딸 마리아 테레지아는 남편 프란츠 1세가 황제가 되면서 황후로서 제국을 공동 통치했다.
1740년부터 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 군주국과 프로이센 왕국 사이의 이원적 대립이 독일 역사를 지배했다. 1772년, 1793년, 1795년에 프로이센과 오스트리아는 러시아 제국과 함께 폴란드 분할에 참여했다. 프랑스 혁명 전쟁, 나폴레옹 시대, 그리고 제국 의회의 마지막 회의 기간 동안 대부분의 제국자유도시는 왕조 영토에 병합되었고, 교회 영토는 세속화되어 병합되었다. 1806년 신성 로마 제국은 결국 해체되었고, 이후 프랑스, 러시아, 프로이센, 합스부르크(오스트리아)는 나폴레옹 전쟁 기간 동안 독일 영방 국가들에 대한 패권을 다투었다.
3.4. 독일 연방과 독일 제국

나폴레옹 몰락 이후 빈 회의는 39개의 주권 국가로 구성된 느슨한 연맹체인 독일 연방을 창설했다. 오스트리아 황제가 연방의 영구 의장으로 임명된 것은 프로이센의 영향력 증대에 대한 회의의 거부감을 반영한 것이었다. 복고 정치 내부의 불일치는 부분적으로 자유주의 운동의 부상으로 이어졌고, 이는 오스트리아 정치가 클레멘스 폰 메테르니히에 의한 새로운 억압 조치로 이어졌다. 관세 동맹인 촐페라인은 경제적 통일을 더욱 촉진했다. 유럽의 혁명 운동에 비추어 지식인들과 평민들은 독일 국가들에서 1848년 혁명을 시작하여 독일 문제를 제기했다. 프로이센의 프리드리히 빌헬름 4세 국왕은 황제의 칭호를 제안받았지만 권력 상실을 우려하여 왕관과 제안된 헌법을 거부했고, 이는 운동의 일시적인 좌절이었다.
빌헬름 1세는 1862년 오토 폰 비스마르크를 프로이센 총리로 임명했다. 비스마르크는 1864년 덴마크와의 전쟁을 성공적으로 종결시켰고, 이후 1866년 프로이센-오스트리아 전쟁에서의 결정적인 프로이센의 승리로 오스트리아를 배제한 북독일 연방을 창설할 수 있었다. 프로이센-프랑스 전쟁에서 프랑스가 패배한 후, 독일 제후들은 1871년 독일 제국의 건국을 선포했다. 프로이센은 신생 제국의 지배적인 구성 국가였으며, 프로이센 국왕이 카이저로서 통치했고 베를린이 수도가 되었다.
독일 통일 이후 그륀더차이트 시기, 비스마르크의 외교 정책은 동맹을 맺고 전쟁을 피함으로써 독일의 강대국 지위를 확보했다. 그러나 빌헬름 2세 치하에서 독일은 제국주의 노선을 취하여 주변 국가들과 마찰을 빚었다.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과 이중 동맹이 체결되었고, 1882년 삼국 동맹에는 이탈리아가 포함되었다. 영국, 프랑스, 러시아도 발칸반도에서 러시아의 이익에 대한 합스부르크의 간섭이나 프랑스에 대한 독일의 간섭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동맹을 체결했다. 1884년 베를린 회담에서 독일은 독일령 동아프리카, 독일령 남서아프리카, 토골란드, 카메룬을 포함한 여러 식민지를 주장했다. 이후 독일은 식민 제국을 더욱 확장하여 태평양과 중국에도 영유권을 확보했다. 남서아프리카(현재의 나미비아) 식민 정부는 1904년부터 1908년까지 봉기에 대한 처벌로 현지 헤레로족과 나마족을 학살(헤레로·나마 집단학살)했는데, 이는 20세기의 첫 번째 집단학살이었다.
1914년 6월 28일 오스트리아 황태자 암살 사건은 오스트리아-헝가리가 세르비아를 공격하고 제1차 세계 대전을 촉발하는 빌미를 제공했다. 약 200만 명의 독일군이 사망한 4년간의 전쟁 끝에 총체적인 정전 협정으로 전투가 종결되었다. 1918년 11월 독일 혁명에서 빌헬름 2세와 지배 제후들은 퇴위했고, 독일은 연방공화국으로 선포되었다. 독일의 새로운 지도부는 1919년 베르사유 조약에 서명하여 연합국에 대한 패배를 받아들였다. 독일인들은 이 조약을 굴욕적인 것으로 인식했으며, 역사가들은 이것이 아돌프 히틀러의 부상에 영향을 미쳤다고 본다. 독일은 유럽 영토의 약 13%를 잃고 아프리카와 태평양의 모든 식민지를 할양했다.
3.5. 바이마르 공화국과 나치 독일

1919년 8월 11일, 프리드리히 에베르트 대통령은 민주적인 바이마르 헌법에 서명했다. 이후 권력 투쟁 과정에서 공산주의자들은 바이에른에서 잠시 권력을 장악했고, 독일의 다른 지역에서는 보수 세력들이 카프 폭동을 일으켜 공화국을 전복시키려 했으나 실패했다. 주요 산업 중심지에서의 시가전, 벨기에와 프랑스 군대에 의한 루르 점령, 그리고 초인플레이션이 뒤따랐다. 부채 구조 조정 계획과 1924년 새로운 통화인 렌텐마르크의 발행은 예술적 혁신과 자유로운 문화 생활의 시대인 황금의 20년대를 열었다.
1929년 전 세계적인 대공황이 독일을 강타했다. 하인리히 브뤼닝 총리 정부는 재정 긴축과 디플레이션 정책을 추구했으며, 이로 인해 1932년에는 실업률이 거의 30%에 달했다. 아돌프 히틀러가 이끄는 나치당은 1932년 7월 총선거 이후 독일 의회에서 제1당이 되었고, 1933년 1월 30일 파울 폰 힌덴부르크 대통령은 히틀러를 독일의 총리로 임명했다. 국가의회 의사당 화재 사건 이후, 새로운 법령은 기본적인 시민권을 폐지했고, 최초의 나치 강제 수용소가 다하우에 문을 열었다. 1933년 3월 23일, 전권 위임법은 헌법을 무시하고 히틀러에게 무제한적인 입법권을 부여하여 나치 독일의 시작을 알렸다. 히틀러 정부는 중앙 집권적인 전체주의 국가를 수립하고, 국제 연맹에서 탈퇴했으며, 재군비를 통해 군사력을 급격히 증강했다. 공공 사업에 중점을 둔 경제 부흥 프로그램 중 가장 유명한 것은 아우토반 건설이었다.
1935년 나치 정권은 베르사유 조약에서 탈퇴하고 유대인과 기타 소수 민족을 겨냥한 뉘른베르크법을 도입했다. 또한 독일은 1935년 자르 분지 지역의 통제권을 되찾고, 1936년 라인란트를 재무장했으며, 1938년에는 오스트리아를 병합(안슐루스)하고 같은 해 뮌헨 협정을 통해 주데텐란트를 합병했다. 1939년 3월에는 협정을 위반하고 체코슬로바키아를 점령했다. 수정의 밤에는 유대교 회당이 불타고 유대인 상점이 파괴되었으며 유대인들이 대량으로 체포되었다.
1939년 8월, 히틀러 정부는 동유럽을 소련과 독일의 세력권으로 나누는 몰로토프-리벤트로프 조약을 체결했다. 1939년 9월 1일 독일이 폴란드를 침공하고 9월 3일 영국과 프랑스가 독일에 선전포고하면서 유럽에서 제2차 세계 대전이 발발했다. 1940년 봄, 독일은 덴마크와 노르웨이, 네덜란드, 벨기에, 룩셈부르크, 프랑스를 침공하여 점령하고 프랑스 정부가 정전 협정에 서명하도록 강요했다. 그러나 영국 공군은 영국 본토 항공전에서 독일 공군의 공습을 격퇴했다. 1941년 독일군은 유고슬라비아, 그리스, 소련을 침공했다. 1942년까지 독일과 추축국 동맹국들은 유럽 대륙과 북아프리카 대부분을 장악했지만, 스탈린그라드 전투에서 소련이 승리하고 연합군이 북아프리카를 탈환한 후 1943년 연합군이 이탈리아에 상륙하면서 독일군은 거듭된 군사적 패배를 겪었다. 1944년 소련은 동유럽을 점령했고, 서방 연합군은 프랑스에 상륙하여 독일의 마지막 반격을 물리치고 독일에 진입했다. 베를린 공방전 중 히틀러가 자살한 후, 독일은 1945년 5월 8일 항복 문서에 서명하여 유럽과 독일에서의 제2차 세계 대전을 종식시켰다. 전쟁이 끝난 후 살아남은 나치 관료들은 뉘른베르크 국제군사재판에서 전쟁범죄로 재판을 받았다.
나중에 홀로코스트로 알려지게 된 나치 독일 정부의 정책은 소수 민족을 박해하고 유럽 전역의 강제 수용소와 절멸 수용소에 수용하는 것이었다. 총 1,700만 명이 조직적으로 살해당했는데, 여기에는 유대인 600만 명, 로마인 최소 13만 명, 장애인 27만 5천 명, 수천 명의 여호와의 증인, 동성애자 수천 명, 정치 및 종교적 반대자 수십만 명이 포함된다. 독일 점령지에서 나치 독일의 정책으로 인해 폴란드인 약 270만 명, 우크라이나인 130만 명, 벨라루스인 100만 명, 소련 전쟁 포로 350만 명이 사망했다. 독일군 사상자는 530만 명으로 추산되며, 독일 민간인 약 90만 명이 사망했다. 약 1,200만 명의 독일계 주민들이 동유럽 전역에서 추방되었고, 독일은 전쟁 전 영토의 약 4분의 1을 상실했다.
3.6. 동독과 서독

나치 독일 항복 이후 연합국은 베를린과 독일의 나머지 영토를 4개의 점령 지역으로 분할했다. 프랑스, 영국, 미국이 통제하는 서부 지역은 1949년 5월 23일 독일연방공화국(BRD)을 형성하며 통합되었고, 1949년 10월 7일 소련 점령 지역은 독일민주공화국(DDR)으로 개편되었다. 이들 국가는 각각 비공식적으로 '서독'과 '동독'으로 불렸다. 동독은 동베를린을 수도로, 서독은 본을 임시 수도로 선택하여 양국 분단이 일시적인 것임을 강조했다.
서독은 '사회적 시장경제'를 가진 연방 의회 공화국으로 수립되었고, 1948년부터 미국의 마셜 플랜에 따라 재건 원조를 받는 주요 국가가 되었다. 콘라트 아데나워는 1949년 독일연방공화국의 초대 연방총리로 선출되었으며, 독일은 1950년대 초부터 장기간의 경제 성장을 누렸다. 서독은 1955년 NATO에 가입했고 EEC의 창립국이었다. 1957년 1월 1일, 자르 보호령은 서독에 가입하여 연방의 일원이 되었다.
동독은 소련의 점령군과 바르샤바 조약 기구를 통해 정치적, 군사적으로 통제받는 동구권 국가였다. 동독은 스스로 민주주의 국가임을 주장했지만, 모든 정치 권력은 비밀 정보기관인 국가보안부의 지원을 받는 독일 사회주의통일당 지도부(정치국)에 의해서만 행사되었다. 동독의 선전은 사회 프로그램의 혜택과 서독의 침략 위협에 기반했지만, 많은 동독 시민들은 자유와 번영을 위해 서독을 동경했다. 1961년에 건설된 베를린 장벽은 동독 시민들이 서독으로 탈출하는 것을 막았고, 이후 냉전의 상징이 되었다.
동독과 서독 간의 긴장은 1960년대 후반 빌리 브란트 총리의 동방 정책으로 완화되었다. 1989년 헝가리는 철의 장막을 해체하고 오스트리아와의 국경을 개방하기로 결정했고, 이로 인해 수천 명의 동독 시민들이 헝가리와 오스트리아를 거쳐 서독으로 이주했다. 이는 정기적인 대중 시위가 점점 더 많은 지지를 받던 동독에 치명적인 영향을 미쳤다. 동독 체제를 유지하려는 노력의 일환으로 동독 당국은 국경 제한을 완화했지만, 실제로는 독일이 완전한 주권을 되찾은 2+4 조약으로 정점에 이른 평화 혁명 개혁 과정을 가속화했다. 이로 인해 1990년 10월 3일 구 동독의 재건된 5개 주가 독일연방공화국에 가입하면서 독일 재통일이 허용되었다. 1989년 베를린 장벽 붕괴는 공산주의 몰락, 소련의 붕괴, 독일 재통일, 그리고 전환점(Die Wende)의 상징이 되었다.

통일 독일은 서독의 확장된 연속체로 간주되어 국제기구 회원 자격을 유지했다. 1994년 베를린-본 법에 따라 베를린이 다시 독일의 수도가 되었고, 본은 일부 연방 부처를 유지하는 연방 도시(Bundesstadt)라는 독특한 지위를 얻었다. 정부 이전은 1999년에 완료되었고, 동독 경제의 현대화는 2019년까지 지속될 예정이었다.
3.7. 통일 독일과 유럽 연합
통일 이후 독일은 유럽 연합에서 더욱 적극적인 역할을 수행하여 1992년 마스트리흐트 조약과 2007년 리스본 조약에 서명하고 유로존을 공동 창설했다. 독일은 발칸반도의 안정을 확보하기 위해 평화 유지군을 파견했고, 탈레반 축출 이후 아프가니스탄에 안보를 제공하기 위한 NATO의 노력의 일환으로 독일군을 파견했다.
2005년 선거에서 앙겔라 메르켈은 독일 최초의 여성 총리가 되었다. 2009년 독일 정부는 500.00 억 EUR 규모의 경기 부양책을 승인했다. 21세기 초 독일의 주요 정치 프로젝트에는 유럽 통합 진전, 지속 가능한 에너지 공급을 위한 에너지 전환(Energiewende), 균형 예산을 위한 부채 한도, 출산율 증가를 위한 조치, 그리고 인더스트리 4.0으로 요약되는 독일 경제 전환을 위한 첨단 기술 전략 등이 포함된다. 2015년 유럽 난민 위기 동안 독일은 100만 명이 넘는 난민과 이주민을 수용했으며,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당시에는 우크라이나에 상당한 군사 지원을 제공했다.
4. 자연 환경
독일의 영토는 35.70 만 km2로, 육지 면적 34.92 만 km2와 수역 면적 7798 km2로 구성되어 유럽에서 일곱 번째로 넓은 국가이다. 지리적으로는 북쪽의 발트해와 북해 연안에서 남쪽의 알프스산맥까지 다양하며, 중부에는 숲이 우거진 고원 지대와 북부 저지대가 펼쳐져 있다. 라인강, 다뉴브강, 엘베강 등 주요 강들이 국토를 가로지른다.
4.1. 지리적 위치와 지형

독일은 유럽 중앙에 위치하며, 북쪽으로는 덴마크, 동쪽으로는 폴란드와 체코, 남쪽으로는 오스트리아와 스위스, 서쪽으로는 프랑스, 룩셈부르크, 벨기에, 네덜란드와 국경을 접하고 있다. 북서쪽으로는 북해, 북동쪽으로는 발트해와 맞닿아 있다.
독일의 지형은 남쪽의 알프스산맥(최고봉: 추크슈피체산, 2963 m)에서 북서쪽의 북해 연안과 북동쪽의 발트해 연안(최저점: 노이엔도르프-작센반데의 빌스터마르쉬, 해수면 아래 3.54 m)까지 다양하다. 독일 중부에는 숲이 우거진 고지대가, 북부에는 저지대가 넓게 펼쳐져 있으며, 이 지역들을 라인강, 다뉴브강, 엘베강과 같은 주요 강들이 관통한다. 독일의 주요 천연자원으로는 철광석, 석탄, 포타쉬, 목재, 갈탄, 우라늄, 구리, 천연가스, 소금, 니켈 등이 있다.
4.2. 기후
독일 대부분 지역은 온대 기후에 속하며, 북부와 서부는 서안 해양성 기후, 동부와 남동부는 대륙성 기후의 특징을 보인다. 겨울은 남부 알프스 지역의 추위부터 서늘한 날씨까지 다양하며, 대체로 흐리고 강수량은 적다. 여름은 덥고 건조하거나 시원하고 비가 많이 내리는 등 변화가 심하다. 북부 지역은 북해에서 불어오는 습한 편서풍의 영향으로 기온이 비교적 온화하고 강수량이 많다. 반면 남동부 지역은 기온 변화가 더 크다.
2019년 2월부터 2020년 2월까지 독일의 월평균 기온은 2020년 1월의 3.3 °C에서 2019년 6월의 19.8 °C 사이였다. 월평균 강수량은 2019년 2월과 4월의 30 L/m² 에서 2020년 2월의 125 L/m² 까지 다양했다. 월평균 일조 시간은 2019년 11월의 45시간에서 2019년 6월의 300시간 사이였다. 독일의 기후 변화는 농업에 장기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으며, 폭염과 한파, 돌발 홍수 및 해안 홍수, 물 부족 현상을 심화시키고 있다. 기후 변화는 2050년까지 독일에 최대 9000.00 억 EUR의 경제적 손실을 초래할 수 있다.
4.3. 생물 다양성 및 환경 보호

독일의 영토는 대서양 혼합림, 발트 혼합림, 중앙유럽 혼합림, 서유럽 활엽수림, 알프스 침엽수 및 혼합림 등 5개의 육상 생태지역으로 나눌 수 있다. 2016년 기준 독일 국토의 51%는 농경지, 30%는 삼림, 14%는 주거지 또는 기반 시설로 덮여 있다.
독일의 식물과 동물은 일반적으로 중앙유럽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종들이다. 국립 산림 조사에 따르면, 너도밤나무, 참나무 등의 활엽수가 삼림의 40% 이상을 차지하며, 약 60%는 가문비나무와 소나무를 비롯한 침엽수이다. 다양한 종류의 양치류, 꽃, 균류, 이끼 등이 서식한다. 야생 동물로는 노루, 멧돼지, 무플런, 붉은여우, 유럽오소리, 산토끼, 그리고 소수의 유럽비버 등이 있다. 푸른 수레국화는 한때 독일의 나라꽃이었다.
독일에는 야스문트 국립공원, 포어포메른 석호 지대 국립공원, 뮈리츠 국립공원, 바덴해 국립공원, 하르츠 국립공원, 하이니히 국립공원, 슈바르츠발트 국립공원, 작센 스위스 국립공원, 바이에른숲 국립공원, 베르히테스가덴 국립공원을 포함한 16개의 국립공원이 있다. 또한 17개의 생물권보전지역과 105개의 자연공원이 있다. 독일에는 400개가 넘는 동물원과 동물 공원이 운영되고 있다. 1844년에 개장한 베를린 동물원은 독일에서 가장 오래된 동물원이며, 세계에서 가장 다양한 종을 보유하고 있다고 알려져 있다.
5. 정치


독일은 연방제, 의원내각제, 대의 민주주의 공화국이다. 연방 입법권은 독일 연방의회(분데스탁, Bundestag독일어)와 독일 연방상원(분데스라트, Bundesrat독일어)으로 구성된 의회에 있으며, 이 두 기관이 함께 입법부를 구성한다. 연방의회는 직접선거와 혼합 비례대표제를 통해 선출된다. 연방상원의 의원들은 16개 연방주의 정부를 대표하며 각 주 정부에 의해 임명된다. 독일의 정치 체제는 1949년 제정된 기본법(Grundgesetz)에 명시된 틀에 따라 운영된다. 기본법 개정은 일반적으로 연방의회와 연방상원 모두에서 3분의 2 이상의 찬성을 필요로 하며, 인간의 존엄성, 권력 분립, 연방 구조, 법치주의를 보장하는 기본법의 근본 원칙들은 영구적으로 유효하다.
대통령은 국가원수로서 주로 대표적인 책무와 권한을 갖는다. 현재 대통령은 프랑크발터 슈타인마이어이며, 2017년부터 재임 중이다. 대통령은 연방의회 의원들과 동수의 주 대표들로 구성된 연방총회(Bundesversammlung)에서 선출된다. 독일 국가 서열에서 두 번째로 높은 직위는 연방의회 의장(Bundestagspräsident)이며, 연방의회에서 선출되어 의회의 일상적인 회의를 감독한다. 세 번째로 높은 직위이자 정부수반은 총리(Bundeskanzler)이며, 연방의회에서 과반수 의석을 확보한 정당 또는 연립 정당에 의해 선출된 후 대통령이 임명한다. 현재 총리는 올라프 숄츠이며, 2021년부터 재임 중이다. 총리는 정부수반으로서 내각을 통해 행정권을 행사한다.
1949년 이래 독일 정당 체제는 기독교민주연합(CDU)과 사회민주당(SPD)이 주도해왔으며, 역대 총리는 모두 이 두 정당 중 한 곳에 소속되어 있었다. 그러나 소수 정당인 자유민주당(FDP)과 녹색당(Bündnis 90/Die Grünen) 또한 연립 정부의 소수 파트너로 참여해왔다. 2007년부터는 민주사회주의 정당인 좌파당(Die Linke)이 연방의회에서 꾸준히 의석을 확보해왔으나 연방 정부에는 참여한 적이 없다. 2017년 연방의회 선거에서는 우익 포퓰리즘 정당인 독일을 위한 대안(AfD)이 처음으로 의회에 진출할 만큼 충분한 표를 얻었다.
5.1. 행정 구역
독일은 연방제 국가이며, 총 16개의 주(Länder)로 구성되어 있다. 각 주는 고유한 헌법을 가지며, 내부 조직에 관해서는 대체로 자치권을 행사한다. 2017년 기준, 독일은 시정촌 수준에서 401개의 군(Kreise)으로 나뉘며, 이는 294개의 란트크라이스(Landkreise, 농촌 군)와 107개의 군 독립시(kreisfreie Städte, 도시 군)로 구성된다.
주 | 주도 | 면적 (km2) | 인구 | |||
---|---|---|---|---|---|---|
바덴뷔르템베르크주 | 슈투트가르트 | 3.58 만 km2 | 11,104,040 | 6150.71 억 EUR | 14.92 | 5.43 만 EUR |
바이에른주 | 뮌헨 | 7.06 만 km2 | 13,038,724 | 7684.69 억 EUR | 18.65 | 5.73 만 EUR |
베를린 | 베를린 | 892 km2 | 3,596,999 | 1932.19 억 EUR | 4.69 | 5.12 만 EUR |
브란덴부르크주 | 포츠담 | 2.97 만 km2 | 2,534,075 | 974.77 억 EUR | 2.37 | 3.78 만 EUR |
브레멘주 | 브레멘 | 420 km2 | 693,204 | 392.52 억 EUR | 0.95 | 5.70 만 EUR |
함부르크 | 함부르크 | 755 km2 | 1,808,846 | 1505.75 억 EUR | 3.65 | 7.92 만 EUR |
헤센주 | 비스바덴 | 2.11 만 km2 | 6,207,278 | 3511.39 억 EUR | 8.52 | 5.48 만 EUR |
메클렌부르크포어포메른주 | 슈베린 | 2.32 만 km2 | 1,570,817 | 592.17 억 EUR | 1.44 | 3.63 만 EUR |
니더작센주 | 하노버 | 4.76 만 km2 | 7,943,265 | 3631.09 억 EUR | 8.81 | 4.45 만 EUR |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주 | 뒤셀도르프 | 3.41 만 km2 | 17,890,489 | 8390.84 억 EUR | 20.36 | 4.62 만 EUR |
라인란트팔츠주 | 마인츠 | 1.99 만 km2 | 4,094,169 | 1742.49 억 EUR | 4.23 | 4.18 만 EUR |
자를란트주 | 자르브뤼켄 | 2569 km2 | 1,006,864 | 413.48 억 EUR | 1.00 | 4.16 만 EUR |
작센주 | 드레스덴 | 1.84 만 km2 | 4,038,131 | 1559.82 억 EUR | 3.78 | 3.81 만 EUR |
작센안할트주 | 마그데부르크 | 2.05 만 km2 | 2,146,443 | 783.80 억 EUR | 1.90 | 3.59 만 EUR |
슐레스비히홀슈타인주 | 킬 | 1.58 만 km2 | 2,927,542 | 1186.80 억 EUR | 2.88 | 4.01 만 EUR |
튀링겐주 | 에르푸르트 | 1.62 만 km2 | 2,110,396 | 759.09 억 EUR | 1.84 | 3.57 만 EUR |
독일 | 베를린 | 35.74 만 km2 | 82,719,540 | 4.12 조 EUR | 100 | 4.88 만 EUR |
5.2. 사법
독일은 게르만법을 일부 참조한 로마법 기반의 대륙법 체계를 가지고 있다. 연방헌법재판소(Bundesverfassungsgericht)는 사법심사권을 가진 헌법 문제 담당 독일 대법원이다. 독일의 전문화된 대법원 시스템에는 민사 및 형사 사건을 위한 규문주의적 연방사법원과 기타 문제를 위한 연방노동법원, 연방사회법원, 연방재정법원, 연방행정법원이 포함된다.
형법과 사법은 각각 형법전(Strafgesetzbuch)과 민법전(Bürgerliches Gesetzbuch)에 국가 차원에서 성문화되어 있다. 독일 형벌 제도는 범죄자의 교화와 공공 보호를 추구한다. 단독 전문 판사가 심리하는 경범죄와 중대한 정치 범죄를 제외하고, 모든 혐의는 평신도 판사(쇠펜, Schöffen)와 전문 판사가 함께 재판하는 혼합 법정에서 판결된다.
2016년 독일의 살인율은 인구 10만 명당 1.18명으로 낮은 수준이었다. 2018년 전체 범죄율은 1992년 이후 최저 수준으로 떨어졌다. 동성 결혼은 2017년부터 독일에서 합법화되었으며, 성소수자 권리는 일반적으로 국가에서 보호받는다.
5.3. 대외 관계

독일은 227개의 해외 공관을 두고 있으며 190개국 이상과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독일은 유럽 평의회, NATO, OECD, G7, G20, 세계은행, IMF의 회원국이다. 독일은 창립 이래 유럽 연합에서 영향력 있는 역할을 해왔으며, 1990년 이후 프랑스 및 모든 주변국과 강력한 동맹을 유지해 왔다. 독일은 보다 통일된 유럽의 정치, 경제 및 안보 기구 창설을 촉진한다. 독일 정부와 미국 정부는 긴밀한 정치적 동맹국이다. 문화적 유대와 경제적 이해관계는 양국 간의 유대감을 형성하여 대서양주의로 이어졌다.
1990년 이후 독일과 러시아는 에너지 개발이 가장 중요한 요소 중 하나인 "전략적 동반자 관계"를 구축하기 위해 협력했다. 이러한 협력의 결과로 독일은 대부분의 천연가스와 원유를 러시아에서 수입했다. 1955년 독일 정부와 대한민국 정부가 상호 승인함으로써 우호 관계가 시작된 한국과 독일은 현재까지도 양국 간 수출입이 활발한 긴밀한 협력국이다.
독일의 개발 정책은 외교 정책 내에서 독자적인 분야로 기능한다. 이는 연방경제협력개발부에서 수립하고 시행 기관에서 수행한다. 독일 정부는 개발 정책을 국제 사회의 공동 책임으로 간주한다. 독일은 2019년 미국에 이어 세계에서 두 번째로 큰 원조 제공국이었다.
5.4. 국방

독일의 군대인 연방방위군(Bundeswehr)은 육군(Heer, 특수부대 KSK 포함), 해군(Marine), 공군(Luftwaffe), 사이버 및 정보 영역부(Cyber- und Informationsraum)로 구성된다. 절대적인 기준으로 볼 때, 2023년 독일의 군비 지출은 세계 7위였다.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대응하여 올라프 숄츠 총리는 독일의 군비 지출을 NATO 목표치인 2%를 초과하여 늘리고, 2021년 군비 예산 530억 유로의 거의 두 배에 달하는 1,000억 유로를 2022년에 일시적으로 투입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2023년 NATO 기준 군비 지출은 731억 달러로 GDP의 1.64%였으며, 이는 NATO 목표치인 2%에 미치지 못했다. 2024년 독일은 NATO에 977억 달러를 보고하여 GDP의 2.12%로 NATO 목표치를 초과했다.
2024년 5월 기준, 연방방위군은 현역 군인 180,215명과 민간인 80,761명으로 구성되어 있다. 예비군은 군대에 동원될 수 있으며 국방 훈련 및 해외 파병에 참여한다. 2011년까지 18세 남성에 대해 병역 의무가 있었으나 공식적으로 중단되고 지원병제로 대체되었다. 2001년부터 여성은 제한 없이 모든 군 복무를 할 수 있다. 스톡홀름 국제 평화 연구소에 따르면 독일은 2019년부터 2023년까지 세계 5위의 주요 무기 수출국이었다.
평시에는 연방방위군이 국방부 장관의 지휘를 받는다. 국방 상태에서는 총리가 연방방위군의 총사령관이 된다. 연방방위군의 역할은 독일 헌법에 방어적인 것으로만 기술되어 있다. 그러나 1994년 연방헌법재판소 판결 이후 "방어"라는 용어는 독일 국경 보호뿐만 아니라 위기 대응 및 분쟁 예방, 또는 더 넓게는 전 세계 어디에서든 독일의 안보를 수호하는 것으로 정의되었다. 2017년 기준, 독일군은 ISIL 반대 작전 지원 약 1,200명, 아프가니스탄에서의 NATO 주도 확고한 지원 임무 980명, 코소보 800명 등 국제 평화 유지군의 일원으로 약 3,600명의 병력을 해외에 주둔시키고 있다.
6. 경제

독일은 고도로 숙련된 노동력, 낮은 수준의 부패, 높은 수준의 혁신을 갖춘 사회적 시장경제를 운영하고 있다. 독일은 세계에서 세 번째로 큰 수출국이자 세 번째로 큰 수입국이며, 유럽에서 가장 큰 경제 규모를 가지고 있고, 세계적으로는 명목 GDP 기준 3위, 구매력 평가(PPP) 기준 6위의 경제 대국이다. 1인당 GDP(PPP 기준)는 EU27 평균의 121%에 달한다. 2023년 기준 서비스 부문은 총 GDP의 약 72%를, 산업은 27%(독일은 유럽에서 가장 큰 제조업 부문을 보유)를, 농업은 1%를 차지한다. 유로스탯이 발표한 2020년 1월 실업률은 3.2%로 EU에서 네 번째로 낮다.
독일은 4억 5천만 명 이상의 소비자를 대표하는 유럽 단일 시장의 일부이다. 2017년 IMF에 따르면, 독일은 유로존 경제의 28%를 차지했다. 독일은 2002년에 유럽 공동 통화인 유로를 도입했으며, 통화 정책은 프랑크푸르트의 유럽 중앙은행이 결정한다.
독일의 자동차 산업은 세계에서 가장 경쟁력 있고 혁신적인 산업 중 하나로 간주되며, 2021년 기준 생산량 기준 세계 6위이다. 독일은 차량 생산량 기준 세계 2위의 자동차 제조업체인 폭스바겐 그룹의 본거지이다.
독일의 10대 수출품은 자동차, 기계, 화학제품, 전자제품, 전기 장비, 의약품, 운송 장비, 기초 금속, 식품, 고무 및 플라스틱이다.
2023년 매출 기준 세계 500대 상장 기업(포춘 글로벌 500) 중 32개가 독일에 본사를 두고 있다. 독일 주식 시장 지수인 DAX에는 30개의 주요 독일 기업이 포함되어 있으며, 프랑크푸르트 증권거래소에서 운영된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브랜드로는 메르세데스-벤츠, BMW, 폭스바겐, 아우디, 포르쉐, 오펠, 지멘스, 알리안츠, 아디다스, 푸마, 휴고 보스, SAP, 보쉬, 도이체 텔레콤 등이 있다. 베를린은 스타트업 기업의 허브이며 유럽 연합에서 벤처 캐피털 투자 기업의 주요 거점이 되었다. 독일은 미텔슈탄트로 알려진 전문화된 중소기업의 비중이 높은 것으로 인정받고 있다. 이들 기업은 해당 분야에서 세계 시장 선도 기업의 약 48%를 차지하며 히든 챔피언으로 불린다.
연구개발(R&D) 노력은 독일 경제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며, 독일은 2005년 이후 R&D 지출에서 세계 4위를 기록하고 있다. 2018년 독일은 과학 및 공학 연구 논문 발표 수에서 세계 4위를 차지했고, 2023년에는 질적 평가를 반영한 네이처 인덱스에서 3위를 기록했다. 독일의 연구 기관으로는 막스 플랑크 협회, 헬름홀츠 협회, 프라운호퍼 협회, 라이프니츠 협회 등이 있다. 독일은 유럽 우주국에 가장 큰 기여를 하고 있다. 독일은 2024년 세계 혁신 지수에서 9위를 차지했다.
6.1. 기반 시설

유럽 중앙에 위치한 독일은 대륙의 교통 중심지이다. 독일의 도로망은 유럽에서 가장 조밀한 편에 속한다. 고속도로(아우토반)는 일부 차종에 대해 연방 차원의 일반적인 속도 제한이 없는 것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인터시티익스프레스(ICE) 열차망은 독일 주요 도시와 인접 국가의 목적지를 최고 시속 300 km/h로 운행한다. 독일에서 가장 큰 공항은 프랑크푸르트 공항, 뮌헨 공항, 베를린 브란덴부르크 공항이다. 함부르크항은 유럽에서 세 번째로 분주한 항구이자 세계 20대 컨테이너 항구 중 하나이다.

2019년 기준, 독일은 세계에서 7번째로 에너지를 많이 소비하는 국가였다. 독일의 모든 원자력 발전소는 2023년에 단계적으로 폐쇄되었다. 독일은 전력 수요의 40%(2018년 기준)를 재생 에너지원으로 충당하며, 태양광 패널과 해상 풍력 발전 분야의 "선두 주자"로 불려왔다. 독일은 파리 협정 및 생물 다양성 증진, 저배출 기준, 수자원 관리 등을 위한 여러 조약에 가입되어 있다. 2017년 기준, 독일의 가정 재활용률은 약 65%로 세계 최고 수준이다. 2023년 독일은 14번째로 많은 온실가스를 배출한 국가였다. 독일의 에너지 전환(Energiewende)은 에너지 효율성과 재생 에너지를 통해 지속 가능한 경제로 나아가는 인정받는 움직임이며, 독일은 "세계 최초의 주요 재생 에너지 경제"로 불린다. 독일은 1990년에서 2015년 사이에 1차 에너지 소비량을 11% 줄였으며, 2030년까지 30%, 2050년까지 50% 감축 목표를 설정했다.
6.2. 관광

2015년 독일의 국내외 여행 및 관광 산업은 독일 GDP에 1053.00 억 EUR 이상을 직접적으로 기여했다. 간접 및 유발 효과를 포함하여 이 산업은 2015년에 약 420만 개의 일자리를 지원했다. 2022년 기준, 독일은 세계에서 8번째로 많이 방문한 국가이다. 가장 인기 있는 랜드마크로는 쾰른 대성당, 브란덴부르크 문, 국가의회 의사당, 드레스덴 성모교회, 노이슈반슈타인성, 하이델베르크성, 바르트부르크성, 상수시궁 등이 있다. 프라이부르크 근처의 유로파파크는 유럽에서 두 번째로 인기 있는 테마파크 리조트이다.
7. 사회
독일 사회는 다양한 인구 구성, 언어 사용, 종교 분포를 특징으로 한다. 교육 제도와 보건 시스템은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으며, 치안 상태도 비교적 양호한 편이다.
7.1. 인구 구성

2023년 독일 인구 조사에 따르면 독일의 인구는 8,470만 명으로, 유럽 연합에서 가장 인구가 많고, 러시아를 제외한 유럽에서 두 번째로 인구가 많으며, 전 세계에서는 19번째로 인구가 많은 국가이다. 인구 밀도는 236 /km2이다. 합계출산율은 2022년 추정치로 여성 1인당 1.57명으로, 대체 출산율인 2.1명보다 낮아 세계에서 가장 낮은 출산율을 기록한 국가 중 하나이다. 1970년대 이후 독일의 사망률은 출생률을 초과했으나, 2010년대 초부터 출생률과 이민율이 증가하면서 인구가 증가하고 있다. 독일은 세계에서 세 번째로 인구 고령화가 심각한 국가로, 평균 연령은 47.4세이다.
독일에는 조상 대대로 각 지역에 거주해 온 네 개의 주요 소수 민족 집단이 있다. 최북단 주인 슐레스비히홀슈타인주에는 덴마크인 소수 민족이 거주하고, 작센주와 브란덴부르크주의 루사티아 지역에는 슬라브족 계열인 소르브인이 거주한다. 롬인과 신티인은 전국에 흩어져 살고 있으며, 프리지아인은 슐레스비히홀슈타인주 서해안과 니더작센주 북서부에 집중적으로 거주한다.
독일은 미국에 이어 세계에서 두 번째로 주요한 이민 대상국이다. 2015년 유럽 난민 사태 이후, 유엔 경제사회국 인구국은 독일이 전 세계 2억 4,400만 명의 국제 이주민 중 약 5%인 1,200만 명을 수용하여 세계에서 두 번째로 많은 국제 이주민을 받아들인 국가로 발표했다. 난민 위기는 상당한 인구 증가를 초래했으며, 예를 들어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우크라이나 이민자들이 대거 유입되어 2023년 4월 기준 독일에는 106만 명 이상의 우크라이나 출신 난민이 기록되었다. 2019년 기준, 독일은 인구 중 이민자 비율이 13.1%로 EU 국가 중 7위를 차지했다. 2022년에는 전체 인구의 28.7%인 2,380만 명이 이민 배경을 가지고 있었다.
독일에는 여러 대도시가 있으며, 공식적으로 인정된 11개의 대도시권이 있다. 가장 큰 도시는 베를린이며, 가장 큰 도시권은 루르이다.
도시 | 주 | 인구 (2022년) |
---|---|---|
베를린 | 베를린 | 3,596,999 |
함부르크 | 함부르크 | 1,808,846 |
뮌헨 | 바이에른주 | 1,478,638 |
쾰른 |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주 | 1,017,355 |
프랑크푸르트 | 헤센주 | 743,268 |
뒤셀도르프 |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주 | 611,258 |
슈투트가르트 | 바덴뷔르템베르크주 | 610,458 |
라이프치히 | 작센주 | 598,899 |
도르트문트 |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주 | 598,246 |
브레멘 | 브레멘주 | 575,071 |
에센 |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주 | 571,039 |
드레스덴 | 작센주 | 557,782 |
뉘른베르크 | 바이에른주 | 522,554 |
하노버 | 니더작센주 | 513,291 |
뒤스부르크 |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주 | 501,415 |
부퍼탈 |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주 | 356,768 |
보훔 |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주 | 354,288 |
빌레펠트 |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주 | 330,072 |
본 |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주 | 321,544 |
만하임 | 바덴뷔르템베르크주 | 313,693 |
7.2. 언어
독일어는 독일의 공용어이며 가장 널리 사용되는 언어이다. 독일어는 유럽 연합의 24개 공식 언어 중 하나이며, 유럽 위원회의 세 가지 실무 언어 중 하나이기도 하다. 약 1억 명의 원어민이 있는 독일어는 유럽 연합에서 가장 많이 사용되는 모국어이다.
독일에서 인정받는 소수 민족 언어로는 덴마크어, 저지 독일어, 저지 라인 방언, 소르브어, 롬어, 북프리슬란트어, 자터란트 프리지아어 등이 있으며, 이들은 유럽 지방 또는 소수 민족 언어 헌장에 의해 공식적으로 보호받고 있다. 가장 많이 사용되는 이민자 언어는 튀르키예어, 아랍어, 쿠르드어, 폴란드어, 이탈리아어, 그리스어, 스페인어, 세르보크로아트어, 불가리아어 및 기타 발칸 언어, 그리고 러시아어이다. 독일인은 일반적으로 다국어를 구사하며, 독일 시민의 67%가 최소 한 가지 외국어로 의사소통할 수 있고 27%는 최소 두 가지 외국어로 의사소통할 수 있다고 응답했다.
7.3. 종교

2022년 인구 조사에 따르면, 기독교는 인구의 49.7%를 차지하는 가장 큰 종교이며, 이 중 23.1%는 개신교, 25.1%는 가톨릭 신자로 확인되었다.
이슬람교는 독일에서 두 번째로 큰 종교이다. 2011년 인구 조사에서 응답자의 1.9%(152만 명)가 자신의 종교를 이슬람교라고 밝혔지만, 이 수치는 이슬람교(및 유대교와 같은 다른 종교) 신자 중 상당수가 질문에 답변하지 않을 권리를 행사했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신뢰할 수 없는 것으로 간주된다. 2019년에는 이민 배경을 가진 무슬림이 530만~560만 명(인구의 6.4~6.7%)으로 추산되었으며, 이민 배경이 없는 무슬림의 수는 알려지지 않았다. 대부분의 무슬림은 튀르키예 출신의 수니파와 알레비파이지만, 소수의 시아파, 아흐마디야 및 기타 종파도 있다. 다른 종교는 각각 독일 인구의 1% 미만을 차지한다.
2011년, 유대인 공동체의 공식 구성원은 전체 독일 인구의 0.2%를 넘지 않았으며, 그들 중 60%는 베를린에 거주했다. 독일에 거주하는 유대인 중 약 80~90%는 1980년대 이후 독일로 온 구소련 출신의 러시아어 사용자 이민자들로 추정된다.
2023년 연구에 따르면 인구의 46.2%가 어떤 종교 단체나 종파에도 속해 있지 않다. 독일의 무종교는 과거 국가 무신론이 시행되기 전에는 주로 개신교 지역이었던 구 동독과 주요 대도시 지역에서 가장 강하게 나타난다.
7.4. 교육

독일의 교육 감독 책임은 주로 개별 주 내에서 조직된다. 3세에서 6세 사이의 모든 어린이를 위해 선택적인 유치원 교육이 제공되며, 그 이후에는 주에 따라 최소 9년 동안 학교 출석이 의무화된다. 초등 교육은 보통 4년에서 6년 동안 지속된다. 중등 교육은 학생들이 학문적 과정을 추구하는지 또는 직업 교육 과정을 추구하는지에 따라 여러 과정으로 나뉜다. 이중 교육 시스템(Duale Ausbildung)이라고 불리는 견습 제도는 학문적 학위와 거의 동등한 숙련된 자격을 부여한다. 이를 통해 직업 훈련을 받는 학생들은 회사와 국영 직업 학교에서 학습할 수 있다. 이 모델은 전 세계적으로 높은 평가를 받고 있으며 널리 채택되고 있다.
대부분의 독일 대학은 공립 기관이며, 학생들은 전통적으로 수업료를 지불하지 않고 공부한다. 대학 입학을 위한 일반적인 요건은 아비투어이다. 2014년 OECD 보고서에 따르면, 독일은 세계에서 세 번째로 인기 있는 국제 유학 대상국이다. 독일의 기존 대학에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대학 중 일부가 포함되며, 하이델베르크 대학교(1386년 설립), 라이프치히 대학교(1409년 설립), 로스토크 대학교(1419년 설립)가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대학이다. 자유주의 교육 개혁가인 빌헬름 폰 훔볼트가 1810년에 설립한 베를린 훔볼트 대학교는 많은 서구 대학의 학문적 모델이 되었다. 현대 독일은 11개의 우수 대학을 개발했다.
7.5. 보건
독일의 병원 시스템인 크랑켄호이저(Krankenhäuser독일어)는 중세 시대로 거슬러 올라가며, 오늘날 독일은 1880년대 비스마르크의 사회 입법에 따른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보편적 건강보험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 1880년대 이후 개혁과 규정을 통해 균형 잡힌 의료 시스템이 보장되었다. 인구는 법률에 의해 제공되는 건강보험 플랜으로 보장되며, 일부 그룹은 민간 건강보험 계약을 선택할 수 있는 기준이 있다. 세계보건기구(WHO)에 따르면, 2013년 독일의 의료 시스템은 77%가 정부 기금으로, 23%가 민간 기금으로 운영되었다. 2014년 독일은 GDP의 11.3%를 의료에 지출했다.
2019년 WHO 기준 독일의 기대수명은 남성 78.7세, 여성 84.8세로 세계 21위를 기록했으며, 영아 사망률은 매우 낮았다(출생아 1,000명당 4명). 2019년 기준 주요 사망 원인은 심혈관계 질환으로 37%를 차지했다. 독일의 비만은 주요 건강 문제로 점점 더 많이 언급되고 있으며, 2014년 연구에 따르면 독일 성인 인구의 52%가 과체중 또는 비만이었다.
7.6. 치안
독일은 2024년 세계 평화 지수에서 20위를 기록했다. 독일 연방 경찰 발표에 따르면 2019년 독일 국내 전체 범죄 발생 건수는 약 544만 건으로, 인구 10만 명당 범죄 발생 건수는 대한민국의 약 10배에 달한다. 범죄 유형은 소매치기, 날치기 등 절도, 강도, 사기 등 금전 및 재산 관련 범죄가 대부분이지만, 상해, 폭행(여성 폭행 포함) 등 신체 안전 관련 범죄도 발생하고 있다.
특히 관광객이 많이 찾는 수도 베를린을 비롯한 대도시 및 관광지는 외국인 범죄 집단의 유입, 마약 확산 등 다양한 요인으로 인해 범죄 발생률이 높은 실정이다. 일반적으로 유럽 대도시는 치안이 좋지 않으며, 베를린의 "적극적 평화 지수"와 "일반 평화 지수"는 모두 독일에서 가장 낮았다. 치안이 가장 불안한 3개 도시는 베를린, 브레멘, 함부르크이다.
또한 일정 규모 이상의 도시에는 특정 국가·지역 출신 외국인이 많이 거주하는 구역이 존재하며, 이러한 장소는 해당 국가·지역의 문화가 뿌리내리고 있어 낮에는 활기가 넘치지만 야간 치안은 일반적으로 좋지 않은 경향이 있다. 이 밖에도 도시별로 마약 및 범죄의 소굴이 된 위험 지역(No-Go-Areas)이 존재하므로, 해당 지역에는 절대 접근하지 않도록 현재도 경고가 이루어지고 있다.
한편 독일은 난민 수용에 적극적인 정책을 취하고 있으며, 2015년 이후 현재까지 180만 명 이상의 난민이 시리아, 이라크 등에서 독일로 입국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반(反)이민·난민을 표방하는 시위가 대도시를 중심으로 독일 국내에서 단속적으로 발생하고 있으며, 일부가 폭력적으로 변하는 사례도 나타나고 있다. 반대로 반이민·난민 분위기에 대한 불만과 이민자 및 난민으로 위장한 테러리스트 잠복 위험성이 높아지고 있어, 체류 시 외출이나 산책은 신중하게 해야 한다.
치안 유지는 다른 나라와 마찬가지로 기본적으로 경찰(Polizei)이 담당한다. 경찰 조직은 나치 독일 시대에 설치되었던 중앙집권적인 질서경찰(Ordnungspolizei)을 폐지하고, 각 주 정부가 주 경찰(Landespolizei)을 운영하며, 경찰과는 별도로 도시나 구 단위의 치안 조직도 있다. 연방 전체 조직으로는 연방형사청(BKA)과 연방경찰청(BPOL)이 있으며, 전자는 여러 주나 다른 국가와 관련된 사건에 개입하여 조정하고, 후자는 국경 경비와 테러 대응을 담당한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특수부대인 GSG-9은 BPOL의 지휘 하에 있다. 집단 경비가 필요한 경우에는 기동대(Bereitschaftspolizei)가 동원되는데, 이에 대해서는 BPOL과 주 경찰이 각각 부대를 보유하고 있으며, 내무부가 전체를 관할한다.
그 외 경찰 조직 이외의 특수한 치안 기관으로는 내무부 직속의 연방헌법수호청(BfV)이 있으며, 정부 직속의 연방정보부(BND), 군 직속의 군사방첩청(MAD)과 함께 정보 기관으로도 기능하고 있다.
8. 문화


역사적으로 독일은 "시인과 사상가의 나라(Das Land der Dichter und Denker독일어)"로 불려왔다. 연방 각 주는 문화 시설을 담당하며, 독일에는 국가 지원을 받는 극장 240개, 교향악단 수백 개, 박물관 수천 개, 도서관 25,000개 이상이 있다. 이러한 문화 시설은 많은 사람들이 이용하며, 매년 독일인 9,100만 명 이상이 박물관을 방문하고, 20만 명이 극장과 오페라를, 3,600만 명이 교향악단을 관람한다. 유네스코는 독일의 문화유산 51건을 세계유산으로 등재했다.
독일은 높은 수준의 성평등, 장애인 권리 증진, 동성애자에 대한 법적·사회적 관용을 확립했다. 동성애자 커플은 파트너의 유전적 자녀를 입양할 수 있으며, 2001년부터 시민결합이 허용되었다. 1990년대 중반 이후 독일은 이민에 대한 태도를 바꾸어, 정부와 국민 대다수가 이민 관리는 자격 기준에 따라 허용되어야 한다고 인식하게 되었다. 독일은 2010년 세계에서 가장 존경받는 국가 조사에서 50개국 중 2위를 차지했다. 2013년 BBC 여론 조사에 따르면, 독일은 세계에서 가장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국가로 인정받았다. 마찬가지로 2018년 유럽 위원회가 실시한 유럽 연합 회원국의 세계 주요 경제국에 대한 호감도 조사에서도 독일은 프랑스와 일본을 근소한 차이로 앞섰다.
독일의 공휴일은 계몽주의 사상의 영향을 받은 역사를 가지며 독일 연방제를 상징하는 문화이다. 독일은 가톨릭과 개신교가 혼재되어 있기 때문에, 새해 첫날이나 독일 통일의 날처럼 독일 전역에서 공휴일로 지정된 날 외에 가톨릭 신자가 많은 주에서만 또는 개신교 신자가 많은 주에서만 공휴일로 지정된 날이 있어 주마다 공휴일이 다르다.
8.1. 문학 및 철학

독일 문학은 중세 시대 발터 폰 데어 포겔바이데나 볼프람 폰 에셴바흐와 같은 작가들의 작품에서 그 기원을 찾을 수 있다. 유명한 독일 작가로는 요한 볼프강 폰 괴테, 프리드리히 실러, 고트홀트 에프라임 레싱, 테오도어 폰타네 등이 있다. 그림 형제가 수집하고 출판한 민담 모음집은 독일 민속 문학을 국제적으로 널리 알렸다. 그림 형제는 또한 독일어의 지역적 변형을 수집하고 체계화하여 역사적 원리에 기반한 연구를 수행했으며, 그들의 저작인 《독일어 사전(Deutsches Wörterbuch)》은 1838년에 집필을 시작하여 1854년에 첫 권이 출판되었다.
20세기의 영향력 있는 작가로는 게르하르트 하웁트만, 토마스 만, 헤르만 헤세, 하인리히 뵐, 귄터 그라스 등이 있다. 독일 도서 시장은 미국과 중국에 이어 세계에서 세 번째로 크다. 500년 이상의 전통을 가진 프랑크푸르트 도서전은 국제 거래 및 무역에서 가장 중요한 도서 박람회이며, 라이프치히 도서전 또한 유럽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독일 철학은 역사적으로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고트프리트 빌헬름 라이프니츠는 합리주의에 기여했고, 이마누엘 칸트는 계몽주의 철학을 이끌었으며, 요한 고틀리프 피히테, 게오르크 빌헬름 프리드리히 헤겔, 프리드리히 빌헬름 요제프 셸링은 고전 독일 관념론을 확립했다. 아르투어 쇼펜하우어는 형이상학적 염세주의를 구성했고, 카를 마르크스와 프리드리히 엥겔스는 공산주의 이론을 정립했으며, 프리드리히 니체는 관점주의를 발전시켰다. 또한 고틀로프 프레게는 분석철학의 발전에 기여했고, 마르틴 하이데거는 존재에 관한 연구를 수행했으며, 오스발트 슈펭글러의 역사 철학은 큰 영향을 미쳤다. 프랑크푸르트 학파의 발전 역시 독일 철학의 중요한 부분이다.
8.2. 음악

독일의 고전 음악에는 세계적으로 가장 잘 알려진 작곡가들의 작품이 포함되어 있다. 디트리히 북스테후데,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 게오르크 프리드리히 헨델은 바로크 시대의 영향력 있는 작곡가들이었다. 루트비히 판 베토벤은 고전주의와 낭만주의 시대를 잇는 중요한 인물이었다. 카를 마리아 폰 베버, 펠릭스 멘델스존, 로베르트 슈만, 요하네스 브람스는 중요한 낭만주의 작곡가들이었다. 리하르트 바그너는 그의 오페라로 유명했다. 리하르트 슈트라우스는 후기 낭만주의와 초기 현대 음악의 대표적인 작곡가였다. 카를하인츠 슈토크하우젠과 볼프강 림은 20세기와 21세기 초의 중요한 작곡가들이다.
2013년, 독일은 유럽에서 두 번째로 큰 음악 시장이었으며, 세계에서는 네 번째로 큰 시장이었다. 20세기와 21세기의 독일 대중음악에는 노이에 도이체 벨레(Neue Deutsche Welle), 팝, 오스트록(Ostrock), 헤비메탈/록, 펑크, 팝록, 인디, 폴크스무지크(Volksmusik), 슐라거 팝(Schlager pop), 독일 힙합 등이 포함된다. 독일 전자 음악은 세계적인 영향력을 얻었으며, 크라프트베르크와 탠저린 드림이 이 장르를 개척했다. 독일의 테크노와 하우스 음악계의 DJ와 아티스트들(파울 판 디크, 펠릭스 옌, 파울 칼크브레너, 로빈 슐츠, 스쿠터 등)은 널리 알려져 있다.
8.3. 미술 및 건축


독일 화가들은 서양 미술에 영향을 미쳤다. 알브레히트 뒤러, 한스 홀바인 셔 Jüngere, 마티아스 그뤼네발트, 루카스 크라나흐 장로는 르네상스의 중요한 독일 예술가였고, 요한 밥티스트 치머만은 바로크 시대, 카스파르 다비트 프리드리히와 카를 슈피츠베크는 낭만주의 시대, 막스 리버만은 인상주의 시대, 막스 에른스트는 초현실주의 시대의 중요한 예술가였다. 20세기에 여러 독일 예술 그룹이 형성되었는데, 디 브뤼케(Die Brücke, 다리)와 데어 블라우에 라이터(Der Blaue Reiter, 푸른 기수)는 뮌헨과 베를린에서 표현주의 발전에 영향을 미쳤다. 신즉물주의는 바이마르 공화국 시대에 표현주의에 대한 반작용으로 등장했다.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독일 미술의 광범위한 경향에는 신표현주의와 신라이프치히 화파가 포함된다.
독일 디자이너들은 현대 제품 디자인의 초기 선구자가 되었다. 베를린 패션 위크와 패션 박람회 브레드 앤 버터는 매년 두 차례 개최된다.
독일의 건축적 기여에는 로마네스크 건축의 전신인 카롤링거 건축과 오토 왕조 건축 양식이 포함된다. 벽돌 고딕은 독일에서 발전한 독특한 중세 양식이다. 또한 르네상스 건축과 바로크 건축 예술에서도 지역적이고 전형적인 독일적 요소가 발전했다(예: 베저 르네상스). 독일의 토속 건축은 종종 목골조(Fachwerk) 전통으로 식별되며 지역과 목공 양식에 따라 다양하다. 산업화가 유럽 전역으로 확산되면서 고전주의와 독특한 역사주의 양식이 독일에서 발전했는데, 때때로 그륀더차이트 양식이라고도 불린다. 표현주의 건축은 1910년대 독일에서 발전하여 아르 데코와 기타 현대 양식에 영향을 미쳤다. 독일은 초기 모더니즘 운동에서 특히 중요했다. 헤르만 무테지우스가 시작한 공작연맹(신즉물주의 건축)과 발터 그로피우스가 설립한 바우하우스 운동의 본고장이다. 루트비히 미스 판 데어 로에는 20세기 후반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건축가 중 한 명이 되었으며, 유리 외관의 마천루를 구상했다. 유명한 현대 건축가 및 사무소로는 프리츠커상 수상자인 고트프리트 빔과 프라이 오토가 있다.
8.4. 대중 매체 및 영화

독일에서 국제적으로 활동하는 가장 큰 미디어 기업으로는 베르텔스만, 악셀 슈프링어 SE, 프로지벤자트아인스 미디어(ProSiebenSat.1 Media) 등이 있다. 독일의 TV 시장은 2012년 기준 3,800만 가구 이상으로 유럽에서 가장 크다. 독일 가구의 약 90%가 케이블 또는 위성 TV를 보유하고 있으며, 다양한 무료 공영 및 상업 채널을 시청할 수 있다. 독일에는 300개 이상의 공영 및 민영 라디오 방송국이 있으며, 독일 국영 라디오 네트워크는 도이칠란트라디오이고 공영 도이체 벨레는 주요 독일어 및 외국어 라디오 및 TV 방송사이다. 독일의 신문 및 잡지 인쇄 시장은 유럽에서 가장 크다. 발행 부수가 가장 많은 신문은 《빌트》, 《쥐트도이체 차이퉁》, 《프랑크푸르터 알게마이네 차이퉁》, 《디 벨트》 등이다. 가장 큰 잡지로는 《ADAC 모터벨트(ADAC Motorwelt)》와 《데어 슈피겔(Der Spiegel)》 등이 있다. 독일은 대규모 비디오 게임 시장을 보유하고 있으며, 전국적으로 3,400만 명 이상의 플레이어가 있다. 게임스컴은 세계 최대의 게임 컨벤션이다.
독일 영화는 영화에 주요 기술 및 예술적 기여를 했다. 스클라다노프스키 형제의 첫 작품은 1895년에 관객에게 공개되었다. 포츠담의 유명한 바벨스베르크 스튜디오는 1912년에 설립되어 세계 최초의 대규모 영화 스튜디오가 되었다. 초기 독일 영화는 로베르트 비네나 프리드리히 빌헬름 무르나우와 같은 독일 표현주의자들에게 특히 영향을 받았다. 프리츠 랑 감독의 《메트로폴리스》(1927년)는 최초의 주요 공상 과학 영화로 불린다. 1945년 이후 전후 즉각적인 시기의 많은 영화는 잔해 영화(Trümmerfilm)로 특징지을 수 있다. 동독 영화는 국영 영화 스튜디오 DEFA가 주도했으며, 서독의 지배적인 장르는 향토 영화(Heimatfilm)였다. 1970년대와 1980년대에 폴커 슐뢴도르프, 베르너 헤어초크, 빔 벤더스, 라이너 베르너 파스빈더와 같은 뉴 저먼 시네마 감독들은 서독 작가주의 영화를 비평가들의 찬사를 받게 했다.
아카데미 국제영화상("오스카상")은 독일 제작 영화인 《양철북(Die Blechtrommel)》(1979년), 《아프리카 아무데도 없는 곳(Nirgendwo in Afrika)》(2002년), 《타인의 삶(Das Leben der Anderen)》(2007년)에 수여되었다. 다양한 독일인들이 다른 영화에서의 연기로 오스카상을 수상했다. 연례 유럽 영화상 시상식은 유럽 영화 아카데미의 본거지인 베를린에서 격년으로 개최된다. "황금곰상"을 수여하고 1951년부터 매년 개최되는 베를린 국제 영화제("베를리날레"로 알려짐)는 세계 유수의 영화제 중 하나이다. "롤라상"은 매년 베를린에서 열리는 독일 영화상에서 수여된다.
8.5. 음식

독일 요리는 지역마다 다르며, 종종 인접 지역과 유사한 요리 특징을 공유한다. 예를 들어 바이에른과 슈바벤 남부 지역은 스위스, 오스트리아와 비슷한 점이 많다. 피자, 스시, 중국 요리, 그리스 요리, 인도 요리, 되네르 케밥과 같은 세계 각국의 음식도 인기가 많다.
빵은 독일 요리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며, 독일 제빵소에서는 약 600가지 주요 빵 종류와 1,200가지 페이스트리와 롤빵(Brötchen)을 생산한다. 독일 치즈는 유럽 전체 치즈 생산량의 약 22%를 차지한다. 2012년 독일에서 생산된 모든 육류의 99% 이상이 돼지고기, 닭고기, 소고기였다. 독일은 브라트부르스트, 바이스부르스트를 포함하여 거의 1,500가지 종류의 소시지를 생산한다.
국민 술은 맥주이다. 2013년 독일의 1인당 맥주 소비량은 110 L로, 여전히 세계 최고 수준이다. 16세기에 제정된 독일 맥주 순수령(Reinheitsgebot)은 오늘날까지도 그 명맥을 이어오고 있다. 와인은 특히 포도주 생산지 근처의 많은 지역에서 인기를 얻고 있다. 2019년 독일은 세계 9위의 와인 생산국이었다.
2018년 《미슐랭 가이드》는 독일의 11개 레스토랑에 별 3개를 부여했으며, 이로써 독일은 총 300개의 미슐랭 스타를 보유하게 되었다.
8.6. 스포츠

축구는 독일에서 가장 인기 있는 스포츠이다. 700만 명이 넘는 공식 회원을 보유한 독일 축구 연맹(Deutscher Fußball-Bund)은 세계에서 가장 큰 단일 스포츠 조직이며, 독일의 최상위 리그인 분데스리가는 전 세계 모든 프로 스포츠 리그 중에서 평균 관중 수 2위를 기록하고 있다. 독일 남자 축구 국가대표팀은 FIFA 월드컵에서 1954년, 1974년, 1990년, 2014년에 우승했으며, UEFA 유럽 축구 선수권 대회에서는 1972년, 1980년, 1996년에, FIFA 컨페더레이션스컵에서는 2017년에 우승했다.
독일은 세계 최고의 모터스포츠 국가 중 하나이다. BMW와 메르세데스-벤츠와 같은 제조사들은 모터스포츠 분야에서 저명한 기업이다. 포르쉐는 르망 24시 레이스에서 19번, 아우디는 13번 우승했다(2024년 4월 기준). 드라이버 미하엘 슈마허는 그의 경력 동안 많은 모터스포츠 기록을 세웠으며, 포뮬러 원 월드 드라이버 챔피언십에서 7번 우승했다. 제바스티안 페텔 또한 역대 가장 성공적인 포뮬러 원 드라이버 중 한 명이다.
독일 선수들은 역사적으로 올림픽에서 성공적인 경쟁자였으며, 동독과 서독의 메달을 합산하면 올림픽 총 메달 순위에서 3위를 차지한다. 1936년 베를린은 하계 올림픽을, 가르미슈파르텐키르헨은 동계 올림픽을 개최했다. 뮌헨은 1972년 하계 올림픽을 개최했다.
8.7. 축제 및 공휴일
독일의 주요 민속 축제로는 옥토버페스트, 크리스마스 마켓 등이 있으며, 법정 공휴일은 연방 공휴일과 주별 공휴일로 나뉜다. 독일 통일의 날(10월 3일)은 독일 전체의 국경일이다. 대표적인 공휴일은 다음과 같다.
- 신년 (Neujahr): 1월 1일
- 성금요일 (Karfreitag): 부활절 이틀 전 (날짜 변동)
- 부활절 월요일 (Ostermontag): 부활절 다음 날 (날짜 변동)
- 노동절 (Tag der Arbeit): 5월 1일
- 그리스도 승천일 (Christi Himmelfahrt): 부활절 39일 후 (날짜 변동)
- 성령 강림 월요일 (Pfingstmontag): 성령 강림절 다음 날 (날짜 변동)
- 독일 통일의 날 (Tag der Deutschen Einheit): 10월 3일
- 크리스마스 (Weihnachten): 12월 25일, 26일
이 외에도 각 주별로 주님 공현 대축일, 그리스도의 성체 성혈 대축일, 종교개혁일, 모든 성인 대축일 등 다양한 종교적, 지역적 의미를 가진 공휴일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