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불가리아, 공식 명칭 불가리아 공화국(Република България레푸블리카 벌가리야불가리아어)은 유럽 남동부 발칸반도에 위치한 공화국이다. 북쪽으로는 루마니아와 다뉴브강을 경계로 접하고, 서쪽으로는 세르비아 및 북마케도니아, 남쪽으로는 그리스 및 터키와 국경을 맞대고 있으며, 동쪽으로는 흑해에 면한다. 수도이자 최대 도시는 소피아이다. 국토 면적은 11.10 만 km2로 유럽에서 16번째로 넓다.
불가리아 지역의 초기 문화 중 하나는 기원전 6,500년경의 카라노보 문화이다. 기원전 6세기에서 3세기 사이에는 고대 트라키아인, 페르시아인, 켈트족, 고대 마케도니아인들의 각축장이었으나, 기원후 45년 로마 제국이 이 지역을 정복하면서 안정을 찾았다. 로마 제국 분열 후에는 다시 부족들의 침입이 이어졌고, 6세기경에는 초기 슬라브족이 정착했다. 7세기 후반, 아스파루흐 칸이 이끄는 불가르족이 고대 대불가리아 지역에서 발칸반도로 남하하여 제1차 불가리아 제국 (681년~1018년)을 건설했고, 681년 비잔티움 제국으로부터 공식적으로 인정받았다. 이 제국은 발칸반도 대부분을 지배하며 키릴 문자를 창제하는 등 슬라브 문화 발전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으나, 11세기 초 비잔티움 제국의 바실리우스 2세에게 정복당했다. 1185년 아센과 페터르의 봉기로 제2차 불가리아 제국 (1185년~1396년/1422년)이 성립되었고, 이반 아센 2세 (1218년~1241년) 치하에서 전성기를 누렸다. 그러나 거듭된 전쟁과 봉건 분열로 쇠퇴하여 1396년 오스만 제국의 지배 하에 들어갔으며, 이는 약 5세기 동안 지속되었다.
1877년~1878년의 러시아-튀르크 전쟁 결과로 제3차 불가리아 국가가 형성되었고, 1908년 오스만 제국으로부터 완전한 독립을 선언했다. 그러나 많은 불가리아 민족이 신생 국가의 국경 밖에 남게 되어 실지회복주의 감정이 고조되었고, 이는 주변국과의 여러 분쟁 및 양차 세계 대전에서 독일과의 동맹으로 이어졌다. 1946년, 불가리아는 소련이 주도하는 동구권에 편입되어 사회주의 국가가 되었다. 집권 불가리아 공산당은 1989년 혁명 이후 권력 독점을 포기하고 다당제 선거를 허용했으며, 불가리아는 민주주의와 시장경제 체제로 전환했다. 1991년 민주 헌법을 채택한 이후 불가리아는 28개 주로 구성된 단일 의회제 공화국으로, 정치, 행정, 경제적으로 중앙집권화되어 있다.
불가리아는 고소득 경제 국가이며, 유럽 단일 시장의 일부인 시장 경제를 가지고 있다. 경제는 주로 서비스업에 기반하며, 제조업(특히 기계 및 광업)과 농업이 그 뒤를 잇는다. 그러나 인구 감소 문제에 직면해 있으며, 1989년 900만 명으로 정점을 찍었던 인구는 2024년 현재 640만 명 미만으로 감소했다. 불가리아는 유럽 연합 (EU), NATO, 유럽 평의회 (CoE) 회원국이며, 유럽 안보 협력 기구 (OSCE) 창립 회원국이기도 하다. 또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비상임이사국을 세 차례 역임했다.
2. 국호
불가리아라는 국명은 제1차 불가리아 제국을 세운 튀르크계 부족인 불가르족에서 유래했다. 불가르라는 이름의 기원은 4세기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가기가 어려워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았으나, 원시 튀르크어 단어 '불가(bulģha)'에서 파생되었을 가능성이 있다. 이 단어는 '섞다', '흔들다', '휘젓다'라는 의미를 가지며, 파생어 '불가크(bulgak)'는 '반란', '무질서'를 뜻한다. 이러한 의미는 '반역자', '선동하다' 또는 '무질서한 상태를 만들다'로 확장될 수 있으며, 결과적으로 '소요를 일으키는 자들'이라는 뜻을 내포하게 된다. 중앙아시아에서 음성학적으로 유사한 이름을 가진 부족 집단들이 종종 비슷한 용어로 묘사되었는데, 예를 들어 4세기 오호(五胡)의 구성 요소 중 하나였던 갈(羯)족은 '혼합된 민족'이자 '말썽꾼'으로 묘사되었다.
대한민국에서는 불가리아 공화국으로 불리며, 약칭으로 불가리아라고 한다. 한자 음차 표기는 발가리(勃牙利)이며, 발(勃)로 줄여 쓰기도 한다.
3. 역사
불가리아의 역사는 선사 시대부터 고대 문명, 중세 제국들의 흥망성쇠, 외세 지배, 그리고 근현대 독립 국가로 이어지는 다채로운 과정을 거쳐왔다. 이 지역은 발칸반도의 지정학적 요충지로서 다양한 민족과 문화가 교차하며 복잡한 역사를 형성했다.
3.1. 선사 시대와 고대

현재 불가리아 영토에서의 인류 활동 흔적은 구석기 시대 중기인 약 15만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네안데르탈인 유적으로 확인된다. 이후 약 4만 7천 년 전의 호모 사피엔스 유적이 발견되었으며, 이는 현생인류가 유럽에 가장 이르게 도착했음을 보여주는 증거 중 하나이다. 신석기 시대인 기원전 6,500년경에는 농경을 기반으로 한 카라노보 문화가 발흥했다. 동기 시대 (기원전 5천년기)의 바르나 문화는 금속 제련술, 특히 금 가공 기술을 발명한 것으로 유명하며, 바르나 공동묘지에서 발견된 금 장신구들은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황금 유물로 평가받는다. 이 유물들은 초기 유럽 사회의 계층화와 사회 구조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단서를 제공한다.
현대 불가리아인의 주요 조상 중 하나인 트라키아인은 기원전 12세기 이전에 발칸반도에 등장했다. 트라키아인들은 금속 공예에 뛰어났으며, 고대 그리스에 오르페우스교와 디오니소스 숭배를 전파했지만, 부족 단위로 분열되어 통일 국가를 이루지는 못했다. 기원전 6세기, 아케메네스 제국 페르시아가 현재 불가리아 동부 지역을 포함한 일부를 정복하고 기원전 479년까지 지배했다. 페르시아의 침입은 트라키아 부족들의 통합을 촉진하는 계기가 되었고, 기원전 470년대에 테레스 1세를 중심으로 대부분의 부족이 연합하여 오드뤼사이 왕국을 형성했다. 이 왕국은 기원전 341년 마케도니아 왕국의 필리포스 2세에게 약화되어 종속되었고, 기원전 3세기에는 켈트족의 공격을 받았다. 최종적으로 기원후 45년, 트라키아는 로마 제국의 속주가 되었다.
기원후 1세기 말에는 발칸반도 전체에 로마의 통치가 확립되었고, 4세기경에는 기독교가 이 지역에 전파되기 시작했다. 오늘날 북부 불가리아 지역에서는 381년경 고트족 주교 울필라스에 의해 최초의 게르만어 성경인 고트 성서가 만들어졌다. 476년 서로마 제국 멸망 후, 이 지역은 비잔티움 제국의 지배 하에 들어갔다. 비잔티움 제국은 페르시아와의 오랜 전쟁으로 발칸 영토 방어에 어려움을 겪었고, 이는 초기 슬라브족이 다뉴브강과 발칸산맥 사이의 모에시아 지역을 통해 약탈자로서 발칸반도로 들어오는 계기가 되었다. 점차 반도 내륙은 슬라브족의 땅이 되었고, 그들은 부분적으로 헬레니즘화되고 로마화된 트라키아인들을 농촌 지역에서 동화시켰다.
3.2. 제1차 제국


슬라브족의 침입 직후, 모에시아는 불가르족의 칸 아스파루흐의 공격을 받았다. 그의 세력은 현재의 우크라이나와 남부 러시아 지역인 흑해 북쪽에 위치했던 멸망한 부족 연맹체 고대 대불가리아의 잔존 세력이었다. 아스파루흐는 모에시아의 비잔티움 영토를 공격하여 680년에 그곳의 슬라브 부족들을 정복했다. 681년 비잔티움 제국과의 평화 조약 체결은 제1차 불가리아 제국 건국의 시초가 되었다. 소수였던 불가르족은 긴밀하게 결속된 지배 계급을 형성했다.
이후의 통치자들은 8세기와 9세기에 걸쳐 불가리아 국가를 강화했다. 크룸 칸은 성문법을 도입하고, 플리스카 전투에서 비잔티움의 대규모 침입을 저지했으며, 이 전투에서 비잔티움 황제 니키포로스 1세가 전사했다. 보리스 1세는 864년에 다신교를 폐지하고 동방 정교회를 국교로 받아들였다. 기독교화 이후 비잔티움은 불가리아 정교회를 인정했고, 수도 프레슬라프에서 발전된 키릴 문자가 채택되었다. 공통된 언어, 종교, 문자는 중앙 권력을 강화하고 점차 슬라브족과 불가르족을 단일 슬라브어를 사용하는 통일된 민족으로 융합시켰다. 시메온 1세의 34년간의 통치 기간 동안 제국은 최대 영토 확장을 이루며 황금기를 맞이했다. 고대 불가리아어로 작성된 문학 작품들은 불가리아 북부로 빠르게 퍼져나가 발칸반도와 동유럽의 링구아 프랑카가 되었다. 크룸 왕조 시대 불가리아 제국의 정치적, 문화적, 정신적 영향력은 당시 비잔티움 제국, 프랑크 왕국 (후일 신성 로마 제국)과 함께 유럽의 3대 강국 중 하나로 만들었다.
시메온 1세 사후, 불가리아는 마자르인과 페체네그인과의 전쟁, 그리고 보고밀파의 확산으로 약화되었다. 프레슬라프는 연이은 키예프 루스와 비잔티움의 침공 끝에 971년 비잔티움 군에게 함락되었다. 사무일 제 치하에서 제국은 잠시 회복세를 보였으나, 1014년 비잔티움 황제 바실리우스 2세가 클레이디온 전투에서 불가리아 군을 격파하면서 종식되었다. 사무일은 전투 직후 사망했고, 1018년까지 비잔티움은 제1차 불가리아 제국을 완전히 정복했다. 정복 후 바실리우스 2세는 지역 귀족들의 지배권을 유지하고 그들을 비잔티움 관료제와 귀족 사회에 통합시켰으며, 그들의 영지에 금 대신 현물로 세금을 납부하도록 하여 반란을 막았다. 불가리아 총대주교청은 대주교구로 격하되었으나, 자체적인 지위와 교구는 유지했다.
3.3. 비잔티움 제국 통치와 제2차 제국

바실리우스 2세 사후 비잔티움의 국내 정책이 변화하면서 여러 차례 실패한 반란이 일어났는데, 그중 가장 큰 규모는 페터르 델얀이 이끈 봉기였다. 셀주크 제국 침략군과의 만지케르트 전투에서의 재앙적인 군사적 패배 이후 제국의 권위는 쇠퇴했고, 십자군으로 인해 더욱 혼란스러워졌다. 이는 비잔티움의 그리스화 시도를 막고 추가적인 반란의 기반을 마련했다. 1185년, 아센 왕조의 귀족 이반 아센 1세와 페터르 4세는 대규모 봉기를 조직하여 불가리아 국가를 재건하는 데 성공했다. 이반 아센과 페터르는 터르노보를 수도로 삼아 제2차 불가리아 제국의 기초를 다졌다.
아센 왕조의 세 번째 군주인 칼로얀은 영토를 베오그라드와 오흐리드까지 확장했다. 그는 교황의 정신적 우위를 인정하고 교황 특사로부터 왕관을 받았다. 제국은 이반 아센 2세 (1218년~1241년) 치하에서 절정에 달했으며, 국경은 알바니아, 세르비아, 이피로스 해안까지 확장되었고 상업과 문화가 번성했다. 이반 아SEN 2세의 통치는 종교 문제에서 로마로부터 멀어지는 전환점을 맞이하기도 했다.
아센 왕조는 1257년에 단절되었다. 이후 내부 갈등과 끊임없는 비잔티움 및 헝가리의 공격이 이어졌고, 이는 몽골이 약화된 불가리아 국가에 대한 종주권을 확립하도록 만들었다. 1277년, 돼지치기 출신 이바일로가 대규모 농민 봉기를 이끌어 몽골군을 불가리아에서 몰아내고 잠시 황제가 되었다. 그는 1280년 봉건 영주들(보야르)에 의해 축출되었으며, 이들의 파벌 갈등으로 인해 제2차 불가리아 제국은 14세기에 이르러 작은 봉건 영지들로 분열되었다. 이렇게 분열된 잔존 국가들(비딘과 터르노보의 두 차르국, 도브루자 데스포트국)은 남동쪽에서 온 새로운 위협인 오스만 튀르크의 쉬운 먹잇감이 되었다. 이반 알렉산더르 황제 통치 기간 동안 불가리아 제국은 문화적 부흥기를 맞았으며, 이는 "불가리아 문화의 제2황금기"라고도 불린다.
3.4. 오스만 제국 통치

오스만 제국은 1340년대에 비잔티움 제국의 용병으로 고용되었으나, 이후 스스로 침략자가 되었다. 술탄 무라트 1세는 1362년 비잔티움으로부터 아드리아노플을 점령했고, 소피아는 1382년에, 슈멘은 1388년에 함락되었다. 오스만 제국은 1393년 터르노보가 3개월간의 포위 공격 끝에 약탈당하고, 니코폴리스 전투로 인해 1396년 비딘 차르국이 멸망하면서 불가리아 영토 정복을 완료했다. 소조폴은 1453년에 함락된 마지막 불가리아 정착지였다. 이후 불가리아 귀족 계급은 소멸되었고, 농민들은 오스만 영주들의 농노가 되었으며, 교육받은 성직자들 대부분은 다른 나라로 망명했다.
불가리아인들은 데브시르메 (피의 세금)를 포함한 무거운 세금에 시달렸고, 그들의 문화는 억압받았으며, 부분적인 이슬람화를 경험했다. 오스만 당국은 룸 밀레트라는 종교 행정 공동체를 설립하여 민족에 관계없이 모든 정교회 신자들을 통치했다. 그 결과 대부분의 지역 주민들은 점차 뚜렷한 민족 의식을 잃고 신앙으로만 자신을 구분하게 되었다. 일부 고립된 수도원의 성직자들은 민족 정체성을 유지하여 외딴 시골 지역과 국가 북서부의 호전적인 가톨릭 공동체에서 그 명맥을 이어갈 수 있도록 했다.
오스만 제국의 힘이 약해지기 시작하자, 합스부르크 오스트리아와 러시아는 불가리아 기독교인들을 잠재적인 동맹으로 보았다. 오스트리아는 1598년 터르노보 봉기를 시작으로 1686년 두 번째 봉기, 1688년 치프로프치 봉기, 그리고 1689년 카르포시 봉기를 지원했다. 러시아 제국 또한 1774년 퀴취크 카이나르카 조약을 통해 오스만 영토 내 기독교인들의 보호자로서의 입지를 다졌다.
18세기 서유럽의 계몽주의는 불가리아 민족 부흥 운동의 시작에 영향을 미쳤다. 이는 민족 의식을 회복시키고 해방 투쟁의 이념적 기반을 제공하여 1876년 4월 봉기로 이어졌다. 오스만 당국이 반란을 진압하면서 최대 3만 명의 불가리아인이 사망했다. 이 학살은 열강들의 개입을 촉발시켰다. 열강들은 1876년 콘스탄티노폴리스 회의를 소집했으나, 그들의 결정은 오스만 제국에 의해 거부되었다. 이는 러시아 제국이 크림 전쟁에서처럼 다른 열강과의 대결 위험 없이 군사적 해결책을 모색할 수 있게 해주었다. 1877년, 러시아는 오스만 제국에 전쟁을 선포했고, 특히 콘스탄티노폴리스로 가는 주요 도로에 대한 러시아의 통제권을 확보한 결정적인 시프카 고개 전투에서 불가리아 반군의 도움으로 그들을 격파했다.
3.5. 제3차 국가 (근현대)
1878년 독립 이후부터 현대 불가리아에 이르는 시기는 격동의 역사와 급격한 정치, 사회적 변화로 점철되어 있다. 이 시기는 독립 왕국 시대, 공산주의 시대, 그리고 민주화 이후 시대로 크게 구분할 수 있다.
3.5.1. 독립과 왕국 시대 (1878년 ~ 1946년)

1878년 3월 3일, 러시아 제국과 오스만 제국 사이에 산스테파노 조약이 체결되었다. 이 조약은 모에시아, 마케도니아, 트라키아에 걸쳐 제2차 불가리아 제국의 영토와 거의 일치하는 자치 불가리아 공국을 수립하는 것을 목표로 했으며, 이날은 현재 국경일인 국가 해방의 날로 기념된다. 그러나 다른 열강들은 발칸반도에 이렇게 큰 국가가 생기는 것이 자신들의 이익을 위협할 것을 우려하여 즉각 이 조약을 거부했다. 1878년 7월 13일 체결된 베를린 조약이 이를 대체했다. 이 조약은 모에시아와 소피아 지역만을 포함하는 훨씬 작은 불가리아 공국을 규정했으며, 많은 불가리아계 민족이 신생 국가의 국경 밖에 남게 되었다. 이는 20세기 전반 불가리아의 군사주의적 외교 정책에 크게 기여했다.
불가리아 공국은 세르비아-불가리아 전쟁에서 승리하고 1885년 반자치적인 오스만 영토였던 동루멜리아를 병합했으며, 1908년 10월 5일 독립 국가를 선포했다. 독립 이후 몇 년 동안 불가리아는 점차 군사화되었고 종종 "발칸의 프로이센"으로 불렸다. 1912년부터 1918년까지 두 차례의 발칸 전쟁과 제1차 세계 대전이라는 세 차례의 연속적인 분쟁에 휘말렸다. 제2차 발칸 전쟁에서의 처참한 패배 이후, 불가리아는 제1차 세계 대전에서 중앙 동맹국과의 동맹으로 인해 다시 패전국이 되었다. 인구의 4분의 1 이상을 120만 명의 군대에 동원하고 도이란과 모나스티르에서 여러 차례 결정적인 승리를 거두었음에도 불구하고, 1918년에 항복했다. 전쟁은 상당한 영토 손실과 총 87,500명의 군인 사망이라는 결과를 낳았다. 1912년부터 1929년까지 잃어버린 영토에서 253,000명 이상의 난민이 불가리아로 이민해 왔으며, 이는 이미 피폐해진 국가 경제에 추가적인 부담을 안겨주었다.
1925년 10월 19일부터 29일까지 "길 잃은 개의 전쟁"이라는 별명으로 알려진 경미한 무력 충돌인 페트리치 사건이 발생했다. 이는 불가리아 군인이 그리스 대위와 보초병을 살해한 후 그리스가 불가리아를 침공한 사건이다. 이 분쟁은 국제 연맹에 의해 해결되었으며, 불가리아의 외교적 승리로 끝났다. 국제 연맹은 휴전을 명령하고, 그리스군의 불가리아 철수 및 그리스가 불가리아에 45,000 파운드를 지불하도록 했다.

이어진 정치적 불안은 차르 보리스 3세 (1918년~1943년)에 의한 왕정 권위주의 독재 수립으로 이어졌다. 불가리아는 1941년 추축국의 일원으로 제2차 세계 대전에 참전했지만, 바르바로사 작전 참여를 거부하고 강제 수용소로의 유대인 인구 추방을 막았다. 1943년 중반 보리스 3세의 갑작스러운 죽음은 독일에게 전쟁이 불리하게 돌아가고 공산주의 게릴라 운동이 기세를 얻으면서 나라를 정치적 혼란으로 몰아넣었다. 보그단 필로프 정부는 연합국과의 평화 협상에 실패했다. 불가리아는 자국 영토에서 독일군을 축출하라는 소련의 요구를 따르지 않았고, 이는 1944년 9월 소련의 선전포고와 침공으로 이어졌다. 공산주의자들이 주도하는 조국 전선이 권력을 장악하고 추축국 참여를 끝내고 전쟁이 끝날 때까지 연합국 측에 합류했다. 불가리아는 전쟁 피해를 거의 입지 않았고 소련은 배상금을 요구하지 않았다. 그러나 남부 도브루자를 제외한 모든 전시 영토 획득은 상실되었다.
3.5.2. 공산주의 시대 (1946년 ~ 1989년)

1944년 9월 9일의 좌익 쿠데타는 군주제 폐지와 약 1,000명에서 3,000명에 이르는 반체제 인사, 전범, 구 왕실 엘리트 구성원들의 처형으로 이어졌다. 그러나 1946년 국민투표 이후에야 일당제 인민 공화국이 수립되었다. 이 국가는 게오르기 디미트로프 (1946년~1949년)의 지도 하에 소련의 영향권에 들어가 억압적이고 급속한 산업화를 추진하는 스탈린주의 국가가 되었다. 1950년대 중반까지 생활 수준이 크게 향상되었고 정치적 억압도 완화되었다. 토도르 지프코프 (1954년~1989년) 치하에서 소련식 계획 경제는 일부 실험적인 시장 지향적 정책을 보였다. 전쟁 시기 수준과 비교하여 1980년대까지 국가 GDP는 5배, 1인당 GDP는 4배 증가했으나, 1960년, 1977년, 1980년에는 심각한 부채 급증이 발생했다. 지프코프의 딸 류드밀라는 불가리아의 유산, 문화, 예술을 전 세계에 홍보하여 민족적 자긍심을 고취했다. 불가리아계 다수 민족의 출산율 감소에 직면하여, 지프코프 정부는 1984년 소수 민족인 터키인들에게 그들의 정체성을 지우고 동화시키기 위해 슬라브식 이름을 채택하도록 강요했다. 이러한 정책으로 인해 약 30만 명의 터키계 민족이 터키로 이주했다.
3.5.3. 민주화 이후 (1989년 ~ 현재)
1989년 혁명의 영향으로 1989년 11월 10일 불가리아 공산당은 정치적 독점권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지프코프는 사임했고 불가리아는 의회 민주주의로의 전환을 시작했다. 1990년 6월 첫 자유 선거에서 공산당은 불가리아 사회당으로 개명하여 승리했다. 1991년 7월에는 상대적으로 약한 권한을 가진 선출직 대통령과 입법부에 책임을 지는 총리를 규정하는 새 헌법이 채택되었다. 새로운 체제는 초기에 생활 수준을 향상시키거나 경제 성장을 창출하는 데 실패했고, 평균적인 삶의 질과 경제 성과는 2000년대 초반까지 공산주의 시절보다 낮았다. 2001년 이후 경제, 정치, 지정학적 조건이 크게 개선되었고, 불가리아는 2003년에 높은 인간 개발 지수 국가로 인정받았다. 2004년 NATO에 가입하여 아프가니스탄 전쟁에 참여했다. 수년간의 개혁 끝에, 정부 부패에 대한 EU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2007년 유럽 연합과 단일 시장에 가입했다. 불가리아는 2018년 소피아의 국립 문화 궁전에서 유럽 연합 이사회 의장국을 주최했다.
4. 지리
불가리아는 발칸반도 동부에 위치한 중규모 국가로, 다양한 지형과 기후를 특징으로 한다. 국토는 산맥, 평야, 해안선이 어우러져 있으며, 풍부한 자연 자원과 생물 다양성을 보유하고 있다.
4.1. 지형과 천연자원

불가리아는 남동부 유럽, 발칸반도 동쪽에 위치한 중규모 국가이다. 국토 면적은 11.10 만 km2이며, 5개 인접국과의 국경선 총 길이는 1808 km, 해안선 길이는 354 km이다. 불가리아의 지리 좌표는 북위 43°, 동경 25°이다. 국토의 가장 두드러진 지형적 특징은 다뉴브 평원, 발칸산맥, 트라키아 평원, 그리고 릴라-로도피 산괴이다. 다뉴브 평원의 남쪽 가장자리는 발칸산맥의 산기슭으로 경사져 올라가며, 다뉴브강은 루마니아와의 국경을 이룬다. 트라키아 평원은 대략 삼각형 모양으로, 소피아 남동쪽에서 시작하여 흑해 연안에 이르면서 넓어진다.
발칸산맥은 국토 중앙을 서에서 동으로 가로지른다. 남서부의 산악 지대는 두 개의 뚜렷한 알프스형 산맥인 릴라산맥과 피린산맥을 포함하며, 이들은 동쪽으로 더 낮지만 더 광범위한 로도피산맥과 접하고, 서쪽, 북서쪽, 남쪽으로는 비토샤산, 오소고보산, 벨라시차산과 같은 다양한 중고도 산맥들이 있다. 무살라산 (2925 m)은 불가리아와 발칸반도에서 가장 높은 지점이다. 흑해 연안은 국토에서 가장 낮은 지점이다. 평야는 국토의 약 3분의 1을 차지하며, 고원과 언덕은 41%를 차지한다. 대부분의 강은 짧고 수량이 적다. 불가리아 영토 내에만 위치한 가장 긴 강인 이스커르강은 길이가 368 km이다. 스트루마강과 마리차강은 남부의 주요 강이다.
불가리아는 보크사이트, 구리, 납, 아연, 비스무트, 망간 등의 광물 자원을 보유하고 있다. 그 외에도 철, 금, 은, 우라늄, 산화 크로뮴, 니켈 등의 소규모 매장량이 확인된다. 또한 암염, 석고, 카올린, 대리석과 같은 비금속 광물도 풍부하다. 주요 탄전은 발칸산맥과 로도피산맥 주변에 분포하며, 특히 마리차 동부 탄전은 중요한 에너지원이다.
4.2. 기후


불가리아는 지중해성 기후, 해양성 기후, 대륙성 기후 기단의 접점과 산맥의 장벽 효과로 인해 다양하고 변화무쌍한 기후를 보인다. 북부 불가리아는 발칸산맥 남쪽 지역보다 평균적으로 1 °C 더 시원하고, 강수량은 200 mm 더 많다. 기온의 연교차는 지역마다 상당히 다르다. 기록된 최저 기온은 -38.3 °C이며, 최고 기온은 45.2 °C이다. 연평균 강수량은 약 630 mm이며, 도브루자 지역의 500 mm에서 산악 지역의 2500 mm 이상까지 다양하다. 대륙성 기단은 겨울철에 상당한 양의 눈을 가져온다.
상대적으로 작은 면적에도 불구하고 불가리아는 다양하고 복잡한 기후를 가지고 있다. 국토는 대륙성 기후대의 최남단 부분을 차지하며, 남부의 작은 지역들은 지중해성 기후대에 속한다. 대륙성 기후가 우세한 이유는 대륙성 기단이 장애물 없는 다뉴브 평원으로 쉽게 유입되기 때문이다. 겨울철에 더 강한 대륙성 기후의 영향은 풍부한 강설을 야기하며, 여름 후반기에는 지중해성 기후의 영향이 증가하여 덥고 건조한 날씨를 만든다. 불가리아는 다섯 개의 기후대로 세분화된다: 대륙성 기후대 (다뉴브 평원, 발칸산맥 이전 지역 및 전환기 지형 지역의 높은 계곡), 전환 기후대 (트라키아 상부 평원, 스트루마 및 메스타 계곡 대부분, 발칸산맥 이전 계곡 하부), 대륙성-지중해성 기후대 (스트루마 및 메스타 계곡 최남단 지역, 로도피산맥 동부, 사카르 및 스트란자산맥), 흑해 연안 기후대 (해안선을 따라 내륙으로 평균 30 km-40 km), 그리고 고도 1000 m 이상의 산악 지역 (중부 발칸산맥, 릴라산맥, 피린산맥, 비토샤산, 서부 로도피산맥 등)의 고산 기후대.
4.3. 생물 다양성과 환경
기후, 수문, 지질 및 지형 조건의 상호 작용은 상대적으로 다양한 동식물 종을 만들어냈다.
유럽에서 가장 풍부한 곳 중 하나인 불가리아의 생물 다양성은 3개의 국립공원, 11개의 자연공원, 10개의 생물권보전지역 및 565개의 보호 구역에서 보존되고 있다. 유럽의 233종의 포유류 중 93종이 불가리아에서 발견되며, 나비 종의 49%와 유관속식물 종의 30%도 이곳에 서식한다. 전반적으로 41,493종의 동식물이 존재한다. 개체수가 많은 대형 포유류로는 사슴 (106,323마리), 멧돼지 (88,948마리), 황금자칼 (47,293마리), 붉은여우 (32,326마리) 등이 있다. 자고새는 약 328,000마리로 가장 널리 분포된 사냥용 새이다. 불가리아에서 번식하는 모든 조류의 3분의 1이 릴라 국립공원에서 발견되며, 이 공원에는 고지대에 북극 및 고산 종도 서식한다. 식물상에는 3,800종 이상의 유관속 식물이 포함되며, 그중 170종은 고유종이고 150종은 멸종 위기종으로 간주된다. 식물학 연구소의 불가리아 대형 균류 목록에는 1,500종 이상이 확인되었다. 불가리아의 산림 면적률은 총 국토 면적의 약 36%로, 2020년 기준 3,893,000 헥타르(ha)의 산림에 해당하며, 이는 1990년의 3,327,000 헥타르(ha)에서 증가한 수치이다. 2020년에는 자연 재생림이 3,116,000 헥타르(ha), 조림지가 777,000 헥타르(ha)를 차지했다. 자연 재생림 중 18%는 원시림 (인간 활동의 명확한 징후가 없는 토종 수종으로 구성)으로 보고되었으며, 산림 면적의 약 18%가 보호 구역 내에 있었다. 2015년 기준으로 산림 면적의 88%는 공공 소유, 12%는 사유로 보고되었다.

1998년 불가리아 정부는 지역 생태계 보존, 멸종 위기종 보호 및 유전자원 보존을 추구하는 종합 프로그램인 국가 생물 다양성 보존 전략을 채택했다. 불가리아는 유럽에서 가장 큰 나투라 2000 지역 중 일부를 보유하고 있으며, 이는 국토의 33.8%를 차지한다. 또한 1990년부터 2009년까지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30% 감축하는 교토 의정서 목표를 달성했다.
불가리아는 2024년 환경성과지수에서 37위를 차지했지만 대기 질 부문에서는 낮은 점수를 받았다. 미세먼지 농도는 유럽에서 가장 높은 수준이며, 특히 자동차 교통과 석탄 화력 발전소의 영향을 받는 도시 지역에서 심각하다. 이 중 하나인 갈탄을 연료로 사용하는 마리차 이즈톡-2 발전소는 유럽 연합에서 건강과 환경에 가장 큰 피해를 주는 곳으로 지목되고 있다. 농업에서의 살충제 사용과 구식 산업 하수 시스템은 광범위한 토양 및 수질 오염을 야기한다. 수질은 1998년부터 개선되기 시작하여 완만한 개선 추세를 유지하고 있다. 지표수의 75% 이상이 양호한 수질에 대한 유럽 기준을 충족한다.
5. 정치
불가리아는 총리가 정부 수반이자 가장 강력한 행정권을 행사하는 의원내각제 국가이다. 정치 체제는 입법, 행정, 사법의 삼권 분립을 따르며, 18세 이상의 모든 시민에게 보통선거권이 부여된다. 헌법은 또한 청원 및 국민 투표와 같은 직접 민주주의의 가능성을 제공한다. 선거는 모든 주요 정당의 구성원을 포함하는 독립적인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의 감독 하에 치러진다. 정당은 전국 선거에 참여하기 전에 위원회에 등록해야 한다. 일반적으로 총리 지명자는 의회 선거에서 가장 많은 표를 얻은 정당의 지도자이지만, 항상 그런 것은 아니다.
5.1. 정부 구조와 헌법
불가리아는 공화국으로, 헌법은 국가의 기본 원칙, 국민의 권리와 의무를 규정한다. 정부 구조는 대통령, 총리, 내각(각료회의)으로 구성된다. 대통령은 국가원수이자 군대의 총사령관으로서 제한된 국내 권한을 가지며, 법안을 재심의하도록 되돌려 보낼 권한이 있지만, 의회는 단순 과반수 투표로 대통령의 거부권을 무효화할 수 있다. 총리는 행정부의 수장으로, 내각을 이끌며 국가 정책을 집행한다. 헌법은 삼권분립을 명시하고 있으며, 국민의 기본권과 자유를 보장한다.

전반적으로 불가리아는 불안정한 정부 패턴을 보인다. 중도 우파 성향의 친 EU 정당 GERB의 지도자인 보이코 보리소프는 2009년부터 2021년까지 세 차례 총리를 역임했다. GERB는 2009년 총선에서 승리하여 소수 정부를 구성했으나, 낮은 생활 수준, 부패, 민주주의 체제 실패에 대한 전국적인 시위 이후 2013년 2월 사임했다.
이후 5월에 치러진 조기 총선에서 GERB가 근소한 차이로 승리했으나, 보리소프가 의회 지지를 확보하지 못하자 결국 불가리아 사회당이 플라멘 오레샤르스키를 총리로 하는 정부를 구성했다. 오레샤르스키 정부는 계속되는 대규모 시위 속에서 2014년 7월 사임했다.
2014년 10월 총선에서는 GERB가 세 번째로 승리했다. 보리소프는 여러 우익 정당과 연립 정부를 구성했으나, 자신의 정당이 지지한 후보가 2016년 대통령 선거에서 패배한 후 다시 사임했다. 2017년 3월 조기 총선에서도 GERB가 승리했지만, 의회 95석에 그쳤다. 그들은 27석을 가진 극우 정당 통합애국자당과 연립 정부를 구성했다.
보리소프의 마지막 내각은 언론 자유의 급격한 감소와 여러 부패 폭로로 인해 2020년 또 다른 대규모 시위를 촉발했다. GERB는 2021년 4월 정기 총선에서 1위를 차지했지만, 역대 가장 약한 성적을 거두었다. 다른 모든 정당이 정부 구성을 거부했고, 잠시 교착 상태에 빠진 후 7월에 또 다른 선거가 치러졌다. 이 선거 역시 어떤 정당도 연립 정부를 구성하지 못하면서 교착 상태를 타개하지 못했다.
2023년 4월, 정치적 교착 상태로 인해 불가리아는 2021년 4월 이후 다섯 번째 의회 선거를 치렀다. GERB가 가장 많은 69석을 얻었고, 변화를 지속한다가 이끄는 연합은 240석 의회에서 64석을 얻었다. 2023년 6월, 니콜라이 덴코프 총리가 '변화를 지속한다'와 GERB 간의 새로운 연립 정부를 구성했다. 연립 협정에 따라 덴코프는 첫 9개월 동안 정부를 이끌고, 이후 GERB당의 전 유럽연합 집행위원인 마리야 가브리엘이 9개월 후 총리직을 이어받게 된다.
프리덤 하우스는 2009년 이후 민주적 통치의 지속적인 악화를 보고하며, 언론 독립성 감소, 개혁 지연, 최고위층의 권력 남용, 중앙 정부에 대한 지방 행정부의 의존도 증가를 지적했다. 불가리아는 여전히 "자유로운" 국가로 분류되며, 정치 체제는 점수는 악화되고 있지만 반쯤 공고화된 민주주의로 지정되어 있다. 민주주의 지수는 이를 "결함 있는 민주주의"로 정의한다. 2018년 경제 평화 연구소의 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15% 미만이 선거가 공정하다고 생각했다.
5.2. 입법부 (국민의회)
불가리아의 입법부는 국민의회 (Народно събрание, 나로드노 서버라니에)라고 불리며, 단원제 의회이다. 국민의회는 총 240명의 의원으로 구성되며, 의원들은 보통선거에 의해 비례대표제와 지역구 선거를 통해 4년 임기로 선출된다. 의석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정당이나 연합이 전국적으로 최소 4%의 득표율을 얻어야 한다.
국민의회는 법률 제정, 예산 승인, 대통령 선거 일정 결정, 총리 및 기타 장관 임명 및 해임, 선전포고, 해외 파병, 국제 조약 및 협정 비준 등의 권한을 가진다. 의회 활동은 여러 상임위원회를 통해 이루어지며, 각 위원회는 특정 분야의 법안 심사 및 정책 감독을 담당한다. 의장은 의회 운영을 총괄하며, 국가 의전 서열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5.3. 행정부
불가리아의 행정부는 대통령과 내각 (각료회의)으로 구성된다. 대통령은 국가원수이자 군대의 총사령관이지만, 국내 정치에서는 상대적으로 제한된 권한을 행사한다. 대통령은 국민 직접 선거를 통해 5년 임기로 선출되며, 1회 연임이 가능하다. 대통령은 법안에 대해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으나, 의회는 단순 과반수 찬성으로 이를 무효화할 수 있다.
행정부의 실질적인 권한은 총리가 이끄는 내각에 있다. 총리는 의회에서 선출되며 대통령이 임명한다. 총리는 각 부처의 장관들을 임명하고 내각을 구성하여 국가 정책을 수립하고 집행한다. 내각은 의회에 책임을 지며, 의회의 불신임 결의가 있을 경우 총사퇴해야 한다. 주요 부처로는 외무부, 내무부, 국방부, 재무부, 법무부 등이 있으며, 각 부처는 소관 분야의 행정 업무를 담당한다.
5.4. 사법부와 법 체계
불가리아는 대륙법 체계를 따르며, 사법부는 법무부의 감독을 받는다. 최고행정법원과 최고파기법원은 최고 상고 법원으로서 하급 법원의 법 적용을 감독한다. 최고사법위원회는 사법 시스템을 관리하고 판사를 임명한다. 불가리아의 법 체계는 국내외 관찰자들로부터 투명성 부족과 부패로 인해 유럽에서 가장 비효율적인 시스템 중 하나로 간주된다. 법 집행은 주로 내무부 산하 기관들에 의해 수행된다. 국가경찰청 (GDNP)은 일반 범죄를 퇴치하고 공공질서를 유지한다. GDNP는 지역 및 국가 부서에 26,578명의 경찰관을 두고 있다. 대부분의 형사 사건은 교통 관련 사건이며, 그 다음으로 절도 및 마약 관련 범죄가 많고, 살인율은 낮은 편이다. 내무부는 또한 국경 경찰청과 대테러 활동, 위기 관리 및 폭동 진압을 위한 특수 부대인 국가 헌병대를 관장한다. 방첩 및 국가 안보는 국가안보국 (State Agency for National Security)의 책임이다.
5.5. 주요 정당
불가리아는 다당제를 채택하고 있으며, 여러 정당들이 정치 활동을 하고 있다. 주요 정당들은 각기 다른 정치적 이념과 지지 기반을 가지고 있으며, 선거 결과에 따라 연립 정부를 구성하는 경우가 많다.
대표적인 정당으로는 중도우파 성향의 GERB (유럽 발전을 위한 불가리아 시민), 중도 성향의 변화를 지속한다 (PP), 중도좌파 성향의 불가리아 사회당 (BSP), 터키계 소수 민족을 대표하는 권리와 자유 운동 (DPS), 그리고 민족주의 및 보수주의 성향의 정당들이 있다. 이 외에도 다양한 소규모 정당들이 존재하며, 정치 지형은 유동적인 편이다. 정당들은 선거를 통해 국민의회 의석을 확보하고, 정부 구성 및 정책 결정 과정에 참여한다. 정당들의 이념적 스펙트럼은 사회민주주의, 자유주의, 보수주의, 민족주의 등 다양하게 분포되어 있다.
5.6. 행정 구역
불가리아는 단일 국가이다. 1880년대 이후로 행정 구역 단위의 수는 7개에서 26개 사이로 다양했다. 1987년부터 1999년까지 행정 구조는 9개의 주(област, 단수형 област)로 구성되었다. 경제 시스템의 분권화와 병행하여 새로운 행정 구조가 채택되었다. 현재 불가리아는 28개의 주(област, oblast)와 수도인 소피아시 주로 구성되어 있다. 모든 주는 각 주의 주도 이름을 따서 명명되었다. 주는 다시 총 265개의 기초자치단체(община, obshtina)로 나뉜다. 기초자치단체는 4년 임기로 선출되는 시장과 직접 선출된 시의회에 의해 운영된다. 불가리아는 중앙집권화된 국가로, 각료회의가 주지사를 직접 임명하며 모든 주와 기초자치단체는 재정적으로 각료회의에 크게 의존한다.
![]() |
# | 주 (Oblast) | # | 주 (Oblast) | # | 주 (Oblast) |
---|---|---|---|---|---|
1 | 블라고에브그라드 | 10 | 파자르지크 | 19 | 스몰랸 |
2 | 부르가스 | 11 | 페르니크 | 20 | 소피아주 |
3 | 도브리치 | 12 | 플레벤 | 21 | 스타라자고라 |
4 | 가브로보 | 13 | 플로브디프 | 22 | 터르고비슈테 |
5 | 하스코보 | 14 | 라즈그라드 | 23 | 바르나 |
6 | 커르잘리 | 15 | 루세 | 24 | 벨리코터르노보 |
7 | 큐스텐딜 | 16 | 슈멘 | 25 | 비딘 |
8 | 로베치 | 17 | 실리스트라 | 26 | 브라차 |
9 | 몬타나 | 18 | 슬리벤 | 27 | 얌볼 |
5.7. 군사

불가리아군은 불가리아의 군대로, 육군, 해군, 공군으로 구성된다. 현역 병력은 36,950명이며, 3,000명의 예비군이 이를 보충한다. 육군은 2개의 기계화 보병 여단과 8개의 독립 연대 및 대대로 구성된다. 공군은 6개 공군 기지에 106대의 항공기와 방공 시스템을 운용하며, 해군은 다양한 함정, 헬리콥터, 해안 방어 무기를 운용한다. 군사 장비는 주로 MiG-29 및 Su-25 제트기, S-300PT 방공 시스템, SS-21 스캐럽 단거리 탄도 미사일과 같은 소련제 장비로 구성되어 있다. 군대는 F-16 블록 70 전투기, 새로운 다목적 초계함 및 기타 현대적인 NATO 표준 장비로 현대화되고 있다. 불가리아는 새로운 미국산 스트라이커 차량, 새로운 155mm 자주포, 새로운 3D 조기경보 레이더, 새로운 지대공 미사일 등을 구매하는 과정에 있다.
6. 대외 관계
불가리아는 1955년 유엔에 가입했으며, 1966년 이후 세 차례 안전보장이사회 비상임이사국을 역임했고, 가장 최근에는 2002년부터 2003년까지 활동했다. 또한 1975년 유럽 안보 협력 기구 (OSCE) 창립 회원국 중 하나였다. 공산주의 붕괴 이후 유로-대서양 통합이 우선 과제가 되었으나, 공산주의 지도부 역시 1987년까지 바르샤바 조약 기구를 탈퇴하고 유럽 공동체에 가입하려는 열망을 가지고 있었다. 불가리아는 2005년 4월 25일 유럽 연합 가입 조약에 서명하고, 2007년 1월 1일 유럽 연합의 정회원국이 되었다. 또한 루마니아, 그리스와 삼자 경제 및 외교 협력을 맺고 있으며, 중국, 베트남과도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고, 러시아와는 역사적 관계를 맺고 있다.
불가리아는 냉전 기간 동안 니카라과, 리비아와 같은 소련 동맹국에 상당수의 민간 및 군사 고문단을 파견했다.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외국군이 불가리아 영토에 처음 배치된 것은 2001년으로, 아프가니스탄 전쟁 지원을 위해 6대의 KC-135 스트래토탱커 항공기와 200명의 지원 인력을 주둔시켰다. 2004년 3월 NATO 가입과 2006년 4월 미국-불가리아 국방 협력 협정 체결로 국제 군사 관계는 더욱 확대되었다. 베즈메르 및 그라프 이그나티에보 공군기지, 노보 셀로 훈련장, 아이토스의 병참 센터는 이후 미국과 불가리아 군대가 협력하여 사용하는 합동 군사 훈련 시설이 되었다. 활발한 국제 국방 협력에도 불구하고 불가리아는 세계에서 가장 평화로운 국가 중 하나로 평가받으며, 국내외 분쟁 관련해서는 아이슬란드와 함께 6위, 세계 평화 지수 평균에서는 26위를 기록하고 있다.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불가리아는 우크라이나를 지원하기로 결정했다. 2023년, 가스프롬이 불가리아로의 가스 수출을 불법적으로 중단하자, 불가리아는 이에 대응하여 러시아산 석유와 가스 수입을 중단했다.
6.1. 유럽 연합과의 관계
불가리아의 유럽 연합(EU) 가입은 국가의 중요한 외교적 성과이자 현대사의 전환점이었다. 1990년대 민주화 이후 불가리아는 EU 가입을 주요 외교 목표로 설정하고 정치, 경제, 사회 전반에 걸친 광범위한 개혁을 추진했다. 2005년 4월 25일 가입 조약에 서명했으며, 2007년 1월 1일 루마니아와 함께 정식 회원국이 되었다.
EU 회원국으로서 불가리아는 EU의 공동 정책 및 예산에 참여하며, 유럽 단일 시장의 혜택을 누리고 있다. EU 기금은 불가리아의 기반 시설 개발, 환경 보호, 농업 현대화 등 다양한 분야에 지원되고 있다. 또한, 불가리아 시민들은 EU 내 다른 회원국에서 자유롭게 이동, 거주, 취업할 수 있는 권리를 갖게 되었다. 불가리아는 EU의 의사 결정 과정에 참여하며, 유럽의 정치, 경제, 안보 문제에 대해 공동으로 대응하고 있다.
그러나 가입 이후에도 부패 및 조직범죄 척결, 사법 개혁 등 일부 분야에서는 EU로부터 지속적인 개선 요구를 받고 있다. 협력 검증 메커니즘 (CVM)을 통해 이러한 문제 해결 노력이 평가되었으며, 2019년 공식적으로 종료되었다. 불가리아는 유로존 가입을 추진하고 있으며, 2020년 7월 ERM II에 가입했다. 솅겐 지역 가입은 부분적으로 이루어져 2024년 3월부터 항공 및 해상 국경 통제가 철폐되었으나, 육상 국경 통제는 여전히 남아있다.
6.2. NATO와의 관계
불가리아의 NATO 가입은 냉전 종식 이후 국가 안보 정책의 중요한 전환을 의미했다. 1990년대 민주화 이후 불가리아는 서방과의 관계 강화를 추구하며 NATO 가입을 목표로 설정했다. 1997년 공식적으로 가입 신청을 했으며, 군사 개혁, 국방 시스템 현대화 등 NATO 기준을 충족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였다.
2004년 3월 29일, 불가리아는 NATO의 정식 회원국이 되었다. NATO 회원국으로서 불가리아는 집단 방위 체제에 편입되어 안보를 강화했으며, NATO의 군사 작전 및 평화 유지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아프가니스탄의 ISAF 및 RSM, 코소보의 KFOR 등에 병력을 파견했다. 또한, NATO의 군사 훈련에 참여하고 자국 영토 내에 NATO 군사 시설을 제공하는 등 동맹의 군사 협력에 기여하고 있다.
미국과의 국방 협력 협정(2006년)을 통해 베즈메르 공군기지, 그라프 이그나티에보 공군기지, 노보 셀로 훈련장 등이 미군과 불가리아군의 합동 훈련 시설로 사용되고 있다. 이는 불가리아의 군사적 현대화와 상호 운용성 증진에 기여하고 있다. NATO와의 협력은 불가리아의 국방 정책 및 안보 전략의 핵심 요소로 자리 잡고 있다.
6.3. 러시아와의 관계
불가리아와 러시아는 역사적, 문화적, 종교적으로 깊은 유대 관계를 맺어왔다. 19세기 오스만 제국으로부터의 해방 과정에서 러시아가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은 양국 관계의 중요한 기반이 되었다. 슬라브족이라는 공통된 민족적 배경과 동방 정교회라는 종교적 유사성은 문화적 친밀감을 형성했다.
공산주의 시대에 불가리아는 소련의 가장 충실한 동맹국 중 하나였으며, 정치, 경제, 군사적으로 긴밀하게 협력했다. 그러나 1989년 민주화 이후 불가리아는 서방 지향적인 외교 정책을 추진하며 유럽 연합과 NATO에 가입했다. 이러한 변화는 때때로 러시아와의 관계에 긴장을 유발하기도 했다.
현대에 들어서도 양국은 에너지(특히 천연가스), 무역, 관광 등 경제 분야에서 중요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불가리아는 러시아 가스의 유럽 수송로로서 지정학적 중요성을 가진다. 그러나 에너지 의존도, 러시아의 역내 영향력 확대 시도, 안보 문제 등은 양국 관계의 민감한 현안으로 남아있다. 특히 2014년 러시아의 크림반도 합병과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불가리아는 EU 및 NATO 회원국으로서 러시아에 대한 제재에 동참하고 있으며, 이는 양국 관계에 상당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6.4. 주변국과의 관계
불가리아는 발칸반도에 위치하여 루마니아, 세르비아, 북마케도니아, 그리스, 터키와 국경을 접하고 있으며, 이들 국가와의 관계는 역사적, 정치적, 경제적 요인들로 복잡하게 얽혀 있다.
- 루마니아: 북쪽으로 다뉴브강을 경계로 하며, 유럽 연합과 NATO 회원국으로서 협력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경제, 교통, 환경 문제 등에서 협력이 이루어지지만, 과거 영토 문제로 인한 미묘한 긴장감도 존재한다.
- 세르비아: 서쪽으로 접하며, 역사적으로 전쟁과 협력이 교차했다. 유고슬라비아 해체 이후 관계가 개선되었으며, 세르비아의 EU 가입 노력을 지지하고 있다. 코소보 문제에 대해서는 불가리아가 코소보 독립을 인정하여 세르비아와 입장 차이를 보였다.
- 북마케도니아: 서쪽으로 접하며, 역사, 언어, 문화적으로 매우 밀접하지만, 동시에 민감한 문제들이 존재한다. 불가리아는 북마케도니아의 독립을 가장 먼저 인정한 국가 중 하나이지만, 북마케도니아의 정체성, 언어, 역사 해석 등을 둘러싼 갈등으로 인해 북마케도니아의 EU 가입 협상 과정에서 마찰을 빚기도 했다.
- 그리스: 남쪽으로 접하며, 역사적으로 경쟁과 협력 관계를 반복했다. 현재는 EU 및 NATO 회원국으로서 안정적인 관계를 유지하고 있으며, 경제, 관광, 에너지 분야에서 협력이 활발하다.
- 터키: 남동쪽으로 접하며, 과거 오스만 제국의 지배라는 역사적 배경으로 인해 복잡한 관계를 가지고 있다. 현재는 NATO 회원국으로서 협력하고 있으며, 경제 교류도 활발하다. 그러나 터키 내 불가리아계 소수 민족 문제, 난민 문제, 흑해 안보 문제 등 민감한 현안들이 존재한다.
불가리아는 발칸 지역의 안정과 협력을 중시하며, 지역 협력 이니셔티브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6.5. 대한민국과의 관계
불가리아와 대한민국은 1990년 3월 23일 공식 외교 관계를 수립했다. 냉전 종식과 불가리아의 민주화 과정이 양국 관계 수립의 배경이 되었다. 수교 이후 양국은 정치, 경제, 문화 등 다양한 분야에서 우호 협력 관계를 발전시켜 왔다.
정치적으로는 고위급 교류가 꾸준히 이루어지고 있으며, 국제무대에서도 협력하고 있다. 경제적으로는 교역량이 점진적으로 증가하고 있으며, 한국 기업들의 불가리아 투자도 이루어지고 있다. 주요 교역 품목은 전자제품, 자동차 부품, 기계류 등이다.
문화 교류도 활발하여, 양국은 문화 협정을 체결하고 다양한 문화 행사, 공연, 전시 등을 통해 상호 이해를 증진하고 있다. 특히 불가리아의 전통 음악, 무용, 요구르트 등이 한국에 알려져 있으며, 한국의 K-팝, 드라마 등 한류 콘텐츠도 불가리아에서 인기를 얻고 있다.
양국은 수도에 각각 대사관을 두고 있다. 주불가리아 대한민국 대사관은 소피아에 위치하며, 북마케도니아 관련 외교 업무도 겸임하고 있다. 주한 불가리아 대사관은 서울에 있다. 소수의 한국 교민이 불가리아에 거주하고 있으며, 주로 사업이나 학업에 종사하고 있다.
7. 경제
불가리아는 시장 경제로의 전환 과정을 거쳐 현재 중상위 소득 국가로 분류된다. 과거 공산주의 체제 하에서는 중공업 중심의 계획 경제였으나, 1990년대 민주화 이후 시장 경제 원리를 도입하고 경제 구조를 개혁해왔다. 주요 산업은 서비스업, 제조업, 농업이며, 최근에는 정보통신기술(ICT) 및 관광 산업도 성장하고 있다.
7.1. 경제 구조와 동향

불가리아는 민간 부문이 GDP의 70% 이상을 차지하는 개방형 고소득 시장 경제 국가이다. 1948년 주로 농업 국가였고 농촌 인구가 대다수였던 불가리아는 1980년대까지 산업 경제로 전환되었으며, 과학 기술 연구가 예산 지출 우선순위의 최상위에 있었다. 1990년 코메콘 시장 상실과 이후 계획 경제 체제의 "충격 요법"은 산업 및 농업 생산의 급격한 감소를 초래했고, 궁극적으로 1997년 경제 붕괴로 이어졌다. 경제는 몇 년 후 급속한 성장 기간 동안 크게 회복되었지만, 월평균 급여는 2072 BGN (미화 1142 USD)으로 EU에서 가장 낮다.
2003년에 균형 예산이 달성되었고, 이듬해부터 흑자를 기록하기 시작했다. 2017년 지출은 211.50 억 USD이었고, 수입은 216.70 억 USD이었다. 정부 지출의 대부분은 안보 기관에 할당된다. 국방부, 내무부, 법무부가 연간 정부 예산의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는 반면, 환경, 관광, 에너지 담당 부처는 가장 적은 자금을 받는다. 세금은 정부 수입의 대부분을 차지하며 GDP의 30%에 해당한다. 불가리아는 EU에서 기업 소득 세율이 가장 낮은 국가 중 하나로, 단일 10% 세율을 적용한다. 조세 제도는 이원적이다. 부가가치세, 소비세, 법인세 및 개인 소득세는 국세이며, 부동산세, 상속세, 자동차세는 지방 당국이 부과한다. 2000년대 초반의 강력한 경제 성과로 정부 부채는 1998년 79.6%에서 2008년 14.1%로 감소했다. 이후 2022년까지 GDP의 22.6%로 증가했지만, EU에서 두 번째로 낮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유고자파덴 계획 지역은 2018년 1인당 국내총생산(PPP)이 2.98 만 USD으로 가장 발전된 지역이다. 이 지역에는 수도와 주변 소피아주가 포함되며, 인구의 22%만 거주함에도 불구하고 국가 국내총생산의 42%를 창출한다. 1인당 GDP (PPP 기준)와 2019년 생활비는 각각 EU 평균 (100%)의 53%와 52.8% 수준이었다. 2016년 국가 PPP GDP는 1431.00 억 USD로 추정되며, 1인당 가치는 2.01 만 USD이다. 경제 성장 통계에는 EU에서 경제 생산량 대비 비중이 가장 큰 비공식 경제의 불법 거래가 포함된다. 불가리아 국립은행은 국가 통화인 레프를 발행하며, 이는 유로당 1.95583 레프의 비율로 유로에 고정되어 있다.
수년간의 높은 성장 이후, 2007-2008년 금융 위기의 여파로 2009년 GDP가 3.6% 위축되었고 실업률이 증가했다. 2010년에 플러스 성장이 회복되었지만, 기업 간 부채가 590억 달러를 초과하여 모든 불가리아 기업의 60%가 상호 부채 상태에 놓였다. 2012년까지 이는 970억 달러, 즉 GDP의 227%로 증가했다. 정부는 IMF와 EU의 독려로 엄격한 긴축 조치를 시행하여 일부 긍정적인 재정 결과를 얻었지만, 소득 불평등 증가와 해외 이주 가속화와 같은 이러한 조치의 사회적 결과는 국제 노동 조합 연맹에 따르면 "재앙적"이었다.
현직 정당 정치인의 가족 및 친척에게 공적 자금을 빼돌리는 행위는 사회에 재정적, 복지적 손실을 초래했다. 불가리아는 부패인식지수에서 71위를 차지하며, 유럽 연합 내에서 최악의 부패 수준을 경험하고 있으며, 이는 심각한 대중 불만의 원인으로 남아 있다. 조직 범죄와 함께 부패는 국가의 솅겐 지역 가입 신청 거부와 외국인 투자 철회를 초래했지만, 2025년 1월 공식적으로 해당 지역의 정회원국이 되었다. 정부 관리들은 면책을 받으며 횡령, 영향력 거래, 정부 조달 위반, 뇌물 수수에 연루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특히 정부 조달은 부패 위험의 중요한 영역이다. 매년 약 100억 레프 (59억 9천만 달러)의 국가 예산과 유럽 통합 기금이 공공 입찰에 사용되며, 2017년에만 공공 계약에 거의 140억 달러 (83억 8천만 달러)가 지출되었다. 이러한 계약의 상당 부분은 광범위한 부정, 절차 위반, 맞춤형 낙찰 기준 속에서 소수의 정치적으로 연줄이 닿는 기업에 낙찰된다. 유럽 위원회의 반복적인 비판에도 불구하고, EU 기관들은 폴란드나 헝가리와 달리 여러 문제에서 브뤼셀을 지지하기 때문에 불가리아에 대한 조치를 자제하고 있다.
7.2. 주요 산업
노동력은 336만 명이며, 이 중 6.8%가 농업, 26.6%가 산업, 66.6%가 서비스 부문에 종사한다. 금속 및 광물 추출, 화학제품 생산, 기계 제작, 철강, 생명공학, 담배, 식품 가공 및 석유 정제 등이 주요 산업 활동이다. 광업만으로 24,000명을 고용하고 국가 GDP의 약 5%를 창출하며, 모든 광업 관련 산업 종사자 수는 120,000명이다. 불가리아는 유럽에서 다섯 번째로 큰 석탄 생산국이다. 석탄, 철, 구리, 납의 현지 매장량은 제조업 및 에너지 부문에 필수적이다. EU 외부의 주요 불가리아 수출 대상국은 터키, 중국, 세르비아이며, 러시아, 터키, 중국은 단연코 가장 큰 수입 상대국이다. 수출품의 대부분은 공산품, 기계류, 화학제품, 연료 제품 및 식품이다. 식품 및 농산물 수출의 3분의 2는 OECD 국가로 향한다.
곡물 및 채소 생산량은 1990년에서 2008년 사이에 40% 감소했지만, 이후 곡물 생산량은 증가하여 2016-2017년 시즌에는 10년 만에 가장 큰 곡물 생산량을 기록했다. 옥수수, 보리, 귀리, 쌀도 재배된다. 양질의 오리엔탈 담배는 중요한 산업 작물이다. 불가리아는 또한 향수에 널리 사용되는 라벤더와 장미 오일의 세계 최대 생산국이다. 서비스 부문 내에서 관광업은 경제 성장에 크게 기여한다. 소피아, 플로브디프, 벨리코터르노보, 해안 휴양지 알베나, 골든샌즈, 서니비치 및 겨울 휴양지 반스코, 팜포로보, 보로베츠는 관광객들이 가장 많이 찾는 장소 중 일부이다. 방문객 대부분은 루마니아인, 터키인, 그리스인, 독일인이다. 관광은 추가적으로 100대 관광지 시스템을 통해 장려된다.
7.3. 무역
불가리아는 개방 경제 체제를 바탕으로 활발한 대외 무역을 전개하고 있다. 주요 수출 품목으로는 의류, 신발, 철강, 기계류, 정제 연료, 농산물(특히 장미유, 와인, 담배) 등이 있다. 주요 수입 품목은 원자재, 에너지, 기계류, 운송 장비, 화학제품 등이다.
주요 교역 상대국은 유럽 연합 회원국들이며, 특히 독일, 이탈리아, 루마니아, 그리스 등과의 교역 비중이 높다. EU 역외 국가 중에서는 터키, 러시아, 중국 등이 중요한 교역 파트너이다. 불가리아 정부는 수출 증진과 외국인 투자 유치를 위해 노력하고 있으며, 자유무역협정(FTA) 체결 등 대외 무역 정책을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흑해 연안의 바르나항과 부르가스항은 중요한 무역항 역할을 수행한다.
7.4. 과학 기술

연구 개발 지출은 GDP의 0.78%에 해당하며, 공공 R&D 자금의 대부분은 불가리아 과학 아카데미 (BAS)에 지원된다. 민간 기업은 2015년 R&D 지출의 73% 이상을 차지했으며, 불가리아 연구원 22,000명 중 42%를 고용했다. 같은 해 불가리아는 블룸버그 혁신 지수 50개국 중 39위를 차지했으며, 교육(24위)에서 가장 높은 점수를, 부가가치 제조업(48위)에서 가장 낮은 점수를 받았다. 불가리아는 2024년 세계 혁신 지수에서 38위를 차지했다. 1990년 이후 정부의 만성적인 연구 투자 부족으로 많은 과학 기술 전문가들이 불가리아를 떠났다.
자금 부족에도 불구하고 화학, 재료과학, 물리학 연구는 여전히 강력하다. 남극 연구는 서남극 리빙스턴섬의 성 클리멘트 오흐리드스키 기지를 통해 활발히 수행되고 있다. 정보통신기술 (ICT) 부문은 경제 생산량의 3%를 창출하고 40,000명에서 51,000명의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를 고용하고 있다. 불가리아는 코메콘 컴퓨팅 기술 생산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하여 소련 시대에 "공산주의 실리콘 밸리"로 알려졌다. 학교에서 컴퓨팅 및 IT 기술을 가르치려는 공산주의 정부의 집중적인 노력은 1980년대와 90년대에 불가리아가 컴퓨터 바이러스의 주요 발원지가 되는 간접적인 원인이 되기도 했다. 이 나라는 고성능 컴퓨팅 분야에서 지역 선두 주자이다: 동남유럽에서 가장 강력한 슈퍼컴퓨터인 아비토홀(Avitohol)을 운영하고 있으며, 8개의 페타스케일 EuroHPC 슈퍼컴퓨터 중 하나를 유치할 예정이다.
불가리아는 우주 탐사에 많은 기여를 했다. 여기에는 과학 위성 2기, 지구 궤도에서의 200개 이상의 탑재체와 300개의 실험, 그리고 1971년 이후 우주인 2명이 포함된다. 불가리아는 미르 우주정거장의 스벳 온실에서 밀을 우주에서 재배한 최초의 국가이다. 그라나트 감마선 관측소 및 베가 프로그램 개발에 참여했으며, 특히 두 베가 탐사선의 궤도 모델링 및 유도 알고리즘에 기여했다. 불가리아 장비는 화성 탐사에도 사용되었으며, 여기에는 포보스 2호 탐사선으로 화성의 달 포보스의 최초 고품질 분광 이미지를 촬영한 분광기가 포함된다. 행성으로 향하는 도중 및 주변의 우주 방사선은 엑소마스 TGO의 리울린-ML 선량계로 매핑되었다. 이러한 장비의 변형은 국제우주정거장과 찬드라얀 1호 달 탐사선에도 장착되었다. 또 다른 달 탐사 임무인 스페이스IL의 베레시트에도 불가리아에서 제조한 이미징 탑재체가 장착되었다. 불가리아 최초의 정지궤도 통신 위성인 불가리아샛-1호는 2017년 스페이스X에 의해 발사되었다.
7.5. 기반 시설

전화 서비스는 널리 보급되어 있으며, 중앙 디지털 간선이 대부분의 지역을 연결한다. 비바콤 (BTC)은 유선 전화의 90% 이상을 서비스하며, A1, 텔레노르와 함께 이동통신 서비스를 제공하는 3개 사업자 중 하나이다. 인터넷 보급률은 2020년 기준 16~74세 인구의 69.2%, 가구의 78.9%에 달했다.
불가리아의 전략적 지리적 위치와 잘 발달된 에너지 부문은 상당한 화석 연료 매장량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유럽의 주요 에너지 중심지로 만들었다. 화력 발전소가 전기의 48.9%를 생산하며, 그 뒤를 코즐로두이 원자로의 원자력 (34.8%)과 재생 에너지원 (16.3%)이 잇는다. 벨레네의 두 번째 원자력 발전소용 장비는 확보되었지만, 프로젝트의 향방은 불확실하다. 설치 용량은 12,668 MW로, 불가리아는 국내 수요를 초과하여 에너지를 수출할 수 있다.
국가 도로망의 총 길이는 1.95 만 km이며, 이 중 1.92 만 km가 포장되어 있다. 철도는 주요 화물 운송 수단이지만, 고속도로가 점차 더 많은 화물 운송을 담당하고 있다. 불가리아는 6238 km의 철로를 보유하고 있으며, 루마니아, 터키, 그리스, 세르비아와 철도 연결이 가능하고, 키이우, 민스크, 모스크바, 상트페테르부르크로 가는 직행 고속 열차가 운행된다. 소피아는 국가의 항공 여행 허브이며, 바르나와 부르가스는 주요 해상 무역항이다.
7.6. 관광
불가리아의 관광 산업은 경제에 중요한 기여를 하고 있으며, 흑해 연안, 스키 리조트, 문화유산 등 다양한 관광 자원을 보유하고 있다. 2008년 불가리아를 방문한 관광객은 890만 명이었으며, 그리스, 루마니아, 독일 관광객이 전체의 40%를 차지했다. 영국, 러시아, 네덜란드, 세르비아, 폴란드, 덴마크 관광객도 상당수 방문했다. 2010년 론리 플래닛은 불가리아를 2011년 상위 10대 관광 목적지 중 5위로 선정했다.
주요 관광지로는 수도 소피아, 해안 휴양지인 알베나, 소조폴, 네세버르, 골든샌즈, 서니비치 등이 있으며, 겨울 휴양지로는 팜포로보, 체펠라레, 보로베츠, 반스코 등이 유명하다. 아르바나시와 보젠치 같은 농촌 관광지는 전통 민속 문화를 잘 보존하고 있다. 그 외 유명한 명소로는 10세기에 건립된 릴라 수도원과 19세기에 지어진 에프크시노그라드 궁전이 있다. 불가리아의 100대 관광지 사업은 관광객 유치에 기여하고 있다.
8. 인구
불가리아의 인구는 최근 수십 년간 감소 추세를 보이고 있으며, 이는 낮은 출산율과 높은 이민율에 기인한다. 다양한 민족 구성과 언어, 종교 분포가 특징이며, 교육 및 보건 시스템은 현대화 과제를 안고 있다.
8.1. 인구 통계와 도시
불가리아 정부의 2022년 공식 추산에 따르면, 불가리아의 인구는 6,447,710명으로, 2021년 마지막 공식 인구 조사의 6,519,789명에서 감소했다. 인구의 대다수인 72.5%가 도시 지역에 거주한다. 2019년 기준으로, 소피아가 1,241,675명으로 가장 인구가 많은 도시 중심지이며, 그 뒤를 플로브디프 (346,893명), 바르나 (336,505명), 부르가스 (202,434명), 루세 (142,902명)가 잇는다. 불가리아인이 주요 민족 집단으로 인구의 84.6%를 차지한다. 터키인과 로마인 소수 민족은 각각 8.4%와 4.4%를 차지하며, 약 40개의 소규모 소수 민족이 1.3%를 차지하고, 1.3%는 민족 집단에 자신을 밝히지 않았다. 로마인 소수 민족은 인구 조사 데이터에서 과소평가되는 경우가 많으며, 실제로는 인구의 최대 11%를 차지할 수 있다. 인구 밀도는 2023년 말 기준 제곱킬로미터당 55~60명으로, 유럽 연합 평균의 거의 절반 수준이다.
불가리아는 인구 위기 상태에 있다. 1989년 냉전 이후 경제 붕괴로 장기간의 이민 물결이 발생한 이후 인구 증가율이 마이너스를 기록하고 있다. 2005년까지 약 937,000명에서 1,200,000명(주로 청년층)이 나라를 떠났다. 대부분의 아이들은 미혼 여성에게서 태어난다. 2024년 불가리아의 평균 합계출산율 (TFR)은 여성 1인당 1.59명으로, 2018년의 1.56명에서 약간 증가했으며, 1997년의 역대 최저치인 1.1명보다는 훨씬 높지만, 여전히 대체 출산율인 2.1명에는 미치지 못하고 1905년의 역대 최고치인 여성 1인당 5.83명보다는 훨씬 낮다. 따라서 불가리아는 평균 연령 43세로 세계에서 가장 고령화된 인구 구조를 가진 국가 중 하나이다. 더욱이, 전체 가구의 3분의 1이 1인 가구이며, 가족의 75.5%는 16세 미만의 자녀가 없다. 결과적으로 출생률은 세계에서 가장 낮은 수준이며, 사망률은 가장 높은 수준이다.
불가리아는 성평등에서 높은 점수를 받아 2018년 세계 성 격차 보고서에서 18위를 차지했다. 여성 참정권은 1937년 비교적 늦게 시행되었지만, 오늘날 여성은 동등한 정치적 권리, 높은 노동력 참여율, 법적으로 의무화된 동일 임금을 누리고 있다. 2021년, 시장 조사 기관인 리부트 온라인은 불가리아를 여성이 일하기 가장 좋은 유럽 국가로 선정했다. 불가리아는 EU에서 여성 ICT 연구원 비율이 가장 높으며, 기술 부문 여성 비율도 44.6%로 두 번째로 높다. 여성의 높은 사회 참여는 사회주의 시대의 유산이다.
도시 | 인구 |
---|---|
소피아 | 1,241,675명 |
플로브디프 | 346,893명 |
바르나 | 336,505명 |
부르가스 | 202,434명 |
루세 | 142,902명 |
8.2. 민족 구성
2021년 인구 조사에 따르면 불가리아의 주요 민족은 불가리아인으로 전체 인구의 84.57%를 차지한다. 다음으로 큰 소수 민족은 터키인으로 8.40%이며, 로마인(집시)이 4.41%를 구성한다. 그 외 러시아인, 아르메니아인, 블라크인, 그리스인 등 약 40여 개의 소수 민족이 전체 인구의 1.31%를 차지하며, 자신의 민족을 밝히지 않은 인구도 1.31%이다. 로마인의 경우 실제 인구는 공식 통계보다 더 많을 것으로 추정되며, 일부 연구에서는 전체 인구의 약 10%에 이를 수 있다고 보기도 한다. 역사적으로 다양한 민족이 거주하며 문화적 다양성을 형성해왔다.
8.3. 언어
불가리아의 유일한 공용어는 불가리아어이다. 2011년 인구 조사에서 언어 관련 질문은 선택 사항이었으며, 응답자의 90.2%가 답변했다. 불가리아어는 슬라브어파에 속하지만, 다른 슬라브어와 구별되는 여러 문법적 특징을 가지고 있다. 여기에는 복잡한 동사 형태론(증거성을 구분하는 기능 포함), 명사 격 및 부정사의 부재, 접미사로 사용되는 정관사 등이 포함된다. 소수 민족 언어로는 터키어, 로마어 등이 사용되며, 이들 언어 사용자들은 불가리아어와 함께 자신들의 모어를 사용하기도 한다. 과거 공산주의 시대에는 러시아어가 주요 외국어였으나, 현재는 영어, 독일어, 프랑스어 등 서유럽 언어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8.4. 종교
불가리아는 헌법상 정교분리 국가로 종교의 자유를 보장하지만, 동방 정교회를 전통 종교로 지정하고 있다. 불가리아인의 약 3분의 2가 동방 정교회 신자로 확인된다. 불가리아 정교회는 동방 정교회의 고대 4대 총대주교청(콘스탄티노폴리스, 알렉산드리아, 안티오키아, 예루살렘) 외에 최초로 927년에 자체적인 지위를 획득한 최초의 국가 교회이다. 불가리아 총대주교청은 12개의 교구와 2,000명 이상의 사제를 두고 있다.
무슬림은 두 번째로 큰 종교 공동체이며, 불가리아 전체 종교 구성의 약 10%를 차지한다. 2011년 불가리아 무슬림 850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 따르면, 30%가 자신을 매우 종교적이라고 밝혔고 50%는 그냥 종교적이라고 답했다. 이 연구에 따르면, 이슬람 장례식과 같은 일부 종교적 가르침은 전통적으로 통합되어 널리 행해지는 반면, 무슬림 기도나 음주 자제, 돼지고기 섭취 자제, 동거 자제와 같은 다른 주요 가르침은 덜 준수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기타 중요한 종교로는 로마 가톨릭교와 유대교가 있으며, 이들의 불가리아 역사는 초기 중세로 거슬러 올라간다. 아르메니아 사도교회 및 다양한 개신교 교파도 있으며, 이들은 모두 불가리아 인구의 약 2%를 차지한다. 무종교이거나 어떤 종교에도 속하지 않은 불가리아인의 수는 계속 증가하고 있으며, 이 비율은 지난 20년 동안 급격히 증가하여 2001년 3.9%에서 2011년 9.3%, 2021년에는 15.9%에 이르렀다.
가장 최근인 2021년 인구 조사에 따르면 인구의 종교 분포는 다음과 같다: 기독교 (71.5%), 이슬람교 (10.8%), 기타 종교 (0.1%). 나머지 12.4%는 무소속이거나 응답하지 않았다.
8.5. 교육

교육에 대한 공공 지출은 유럽 연합 평균에 훨씬 못 미친다. 교육 수준은 한때 높았으나, 2000년대 초반 이후 크게 하락했다. 불가리아 학생들은 2001년 읽기 부문에서 세계 최고 수준이었으며, 캐나다와 독일 학생들보다 우수한 성적을 거두었다. 그러나 2006년까지 읽기, 수학, 과학 점수가 하락했다. 2018년 PISA 연구에 따르면 9학년 학생의 47%가 읽기와 자연 과학에서 실질적으로 문맹인 것으로 나타났다. 평균 기본 문해율은 98.4%로 성별 간 큰 차이가 없다. 교육과학부는 공립학교, 전문대학, 대학교에 부분적으로 자금을 지원하고, 교과서 기준을 설정하며 출판 과정을 감독한다. 초중등 공립학교 교육은 무료이며 의무이다. 교육 과정은 12학년제로, 1학년부터 8학년까지는 초등, 9학년부터 12학년까지는 중등 과정이다. 고등 교육은 4년제 학사 과정과 1년제 석사 과정으로 구성된다. 불가리아에서 가장 높은 순위를 차지하는 고등 교육 기관은 소피아 대학교이다.
8.6. 보건
높은 사망률은 인구 고령화, 빈곤 위험에 처한 높은 인구 비율, 취약한 의료 시스템의 복합적인 결과이다. 사망자의 80% 이상이 암과 심혈관계 질환으로 인한 것이며, 이 중 거의 5분의 1은 예방 가능했다. 불가리아의 의료 서비스는 명목상 보편적이지만, 본인 부담금이 전체 의료비 지출의 거의 절반을 차지하여 의료 서비스 접근을 상당히 제한한다. 의료 서비스 제공을 방해하는 다른 문제로는 낮은 임금으로 인한 의사 해외 유출, 인력 및 장비 부족 지역 병원, 공급 부족, 보험 가입자를 위한 기본 서비스 패키지의 잦은 변경 등이 있다. 2018년 블룸버그 의료 효율성 지수에서 불가리아는 56개국 중 최하위를 기록했다. 평균 기대수명은 74.8세로, EU 평균 80.99세와 세계 평균 72.38세에 비해 낮다.
9. 문화
현대 불가리아 문화는 오스만 통치 말기에 민족 의식을 형성하는 데 도움을 준 공식 문화와 수천 년 된 민속 전통이 혼합되어 있다. 불가리아 민속의 필수 요소는 악령과 질병을 물리치는 데 사용되는 불이다. 이러한 악령 중 다수는 마녀로 의인화되는 반면, 즈메이나 사모디바 (빌라)와 같은 다른 생물들은 자비로운 수호자이거나 양면적인 장난꾸러기이다. 악령을 퇴치하는 일부 의식은 살아남아 여전히 행해지고 있으며, 가장 주목할 만한 것은 쿠케리와 수르바카리이다. 마르테니차 또한 널리 기념된다. 트라키아 기원의 불춤 의식인 네스티나르스트보는 유네스코 무형 문화유산 목록에 포함되어 있다. 9개의 역사 및 자연 유적지는 유네스코 세계유산이다: 피린 국립공원, 스레버르나 자연보호구, 마다라 기마상, 스베슈타리와 카잔러크의 트라키아 무덤, 릴라 수도원, 보야나 교회, 이바노보 암석 교회군 및 고대 도시 네세버르. 릴라 수도원은 중세 시대부터 수많은 문학 작품의 주제가 된 불가리아의 수호성인인 릴라의 성 요한에 의해 설립되었다.
9.1. 전통 문화와 민속


불가리아는 독특하고 다채로운 전통 문화와 민속을 자랑한다. 오랜 역사 속에서 트라키아, 슬라브, 불가르족의 문화가 융합되고 비잔티움 및 오스만 제국의 영향을 받으며 풍부한 문화유산을 형성했다. 대표적인 민속 전통으로는 봄을 맞이하는 축제인 마르테니차가 있다. 3월 1일에 빨간색과 흰색 실로 만든 팔찌나 인형을 서로에게 선물하며 건강과 행운을 기원한다. 겨울의 악령을 쫓고 풍요를 기원하는 가면 축제인 쿠케리와 수르바카리도 중요한 전통이다. 참가자들은 화려하고 무서운 동물 가죽과 뿔로 만든 가면을 쓰고 종을 울리며 춤을 춘다. 트라키아에서 유래한 불 위를 걷는 의식인 네스티나르스트보는 유네스코 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되어 있으며, 주로 특정 성인의 축일에 행해진다. 이 외에도 다양한 지역 축제, 민요, 민속춤(호로, 러체니차) 등이 있으며, 각 지역마다 고유한 의상, 공예품, 음식 등의 특징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전통 문화는 오늘날에도 불가리아인들의 정체성을 이루는 중요한 요소로 계승되고 있다.
9.2. 문학

10세기 프레슬라프와 오흐리드 문예 학교의 설립은 중세 불가리아 문학의 황금기와 관련이 있다. 이 학교들이 기독교 경전에 중점을 둔 덕분에 불가리아 제국은 슬라브 문화의 중심지가 되었고, 슬라브인들을 기독교의 영향권으로 끌어들였으며 그들에게 문어를 제공했다. 그 문자 체계인 키릴 문자는 프레슬라프 문예 학교에서 개발되었다. 반면, 터르노보 문예 학교는 아센과 시슈만 왕조 시대에 역사적이거나 신비로운 주제에 대한 고품질 필사본으로 정의되는 문학의 은세기를 이끌었다. 많은 문학 및 예술 걸작들이 오스만 정복자들에 의해 파괴되었고, 예술 활동은 19세기 민족 부흥 운동 때까지 다시 나타나지 않았다. 이반 바조프 (1850년~1921년)의 방대한 작품은 모든 장르를 망라하고 불가리아 사회의 모든 측면을 다루었으며, 해방 이전 작품과 새로 수립된 국가의 문학을 연결했다. 주목할 만한 후기 작품으로는 알레코 콘스탄티노프의 바이 가뇨, 펜초 슬라베이코프의 니체적 시, 페요 야보로프와 딤초 데벨랴노프의 상징주의 시, 게오 밀레프와 니콜라 바프차로프의 마르크스주의에서 영감을 받은 작품, 그리고 디미터르 디모프와 디미터르 탈레프의 사회주의 사실주의 소설 등이 있다. 츠베탄 토도로프는 주목할 만한 현대 작가이며, 불가리아 태생의 엘리아스 카네티는 1981년 노벨 문학상을 수상했다.
9.3. 시각 예술과 건축

종교적 시각 예술 유산에는 중세 터르노보 예술 학교에서 많이 제작된 프레스코, 벽화, 이콘 등이 포함된다. 문학과 마찬가지로, 불가리아 시각 예술은 민족 부흥 운동 때까지 다시 부상하지 못했다. 자하리 조그라프는 해방 이전 시대 시각 예술의 선구자였다. 해방 이후 이반 므르크비치카, 안톤 미토프, 블라디미르 디미트로프, 찬코 라브레노프, 즐라튜 보야지에프는 새로운 양식과 내용을 도입하여 불가리아 마을, 옛 도시, 역사적 주제의 풍경을 묘사했다. 크리스토는 야외 설치 작품으로 유명한 21세기 가장 유명한 불가리아 예술가이다. 불가리아 건축은 고대 트라키아, 로마, 비잔티움 양식부터 중세 불가리아 제국의 요새와 교회, 오스만 제국 시대의 모스크와 주택, 그리고 민족 부흥기 특유의 목조 주택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영향을 보여준다. 현대에는 사회주의 시대의 기념비적인 건축물과 현대적인 디자인의 건물들이 공존한다.
9.4. 음악
민속 음악은 단연 가장 광범위한 전통 예술이며, 극동, 동양, 중세 동방 정교회, 표준 서유럽 음조 및 선법의 융합으로 시대에 걸쳐 서서히 발전해왔다. 불가리아 민속 음악은 독특한 소리를 가지고 있으며, 가둘카, 가이다, 카발, 투판과 같은 광범위한 전통 악기를 사용한다. 독특한 특징은 유럽 나머지 지역의 음악에는 없는 확장된 리듬 시간이다. 국영 TV 여성 보컬 합창단은 불가리아 민속 음악 공연으로 1990년 그래미상을 수상했다. 작곡된 음악은 요안 쿠쿠젤 (약 1280년~1360년)의 작품으로 거슬러 올라갈 수 있지만, 현대 클래식 음악은 1890년 최초의 불가리아 오페라를 작곡한 에마누일 마놀로프와 함께 시작되었다. 판초 블라디게로프와 페트코 스타이노프는 교향곡, 발레, 오페라를 더욱 풍부하게 했으며, 가수 게나 디미트로바, 보리스 흐리스토프, 류바 벨리치, 니콜라이 갸우로프는 이를 세계적인 수준으로 끌어올렸다. 불가리아 연주자들은 일렉트로팝 (미라 아로요), 재즈 (밀초 레비에프), 재즈와 민속 음악의 혼합 (이보 파파조프)과 같은 다른 장르에서도 호평을 받았다.
9.5. 음식
불가리아 요리는 다른 발칸 국가의 요리와 유사하며 터키와 그리스의 강한 영향을 보여준다. 요구르트, 루칸카, 바니차, 숍스카 샐러드, 류테니차, 코주나크는 가장 잘 알려진 현지 음식 중 하나이다. 다양한 샐러드를 선호하는 문화적 특성 때문에 육류 소비는 유럽 평균보다 낮다. 불가리아는 1989년까지 세계에서 두 번째로 큰 와인 수출국이었지만 이후 그 자리를 잃었다. 2016년 수확량은 1억 2,800만 리터의 와인이었으며, 이 중 6,200만 리터가 주로 루마니아, 폴란드, 러시아로 수출되었다. 마브루드, 루빈, 시로카 멜니슈카, 디미아트, 체르벤 미스켓은 불가리아 와인에 사용되는 대표적인 포도 품종이다. 라키야는 14세기부터 불가리아에서 소비된 전통 과일 브랜디이다.
9.6. 스포츠

불가리아는 1896년 최초의 근대 올림픽에 체조 선수 샤를 샹포를 대표로 출전했다. 이후 불가리아 선수들은 금메달 55개, 은메달 90개, 동메달 85개를 획득하여 역대 메달 순위에서 25위를 기록했다. 역도는 불가리아의 대표적인 스포츠이다. 이반 아바지예프 코치는 1980년대 이후 역도에서 많은 불가리아 세계 및 올림픽 챔피언을 배출한 혁신적인 훈련 방법을 개발했다. 불가리아 선수들은 레슬링, 권투, 체조, 배구, 테니스에서도 뛰어난 성적을 거두었다. 스테프카 코스타디노바는 1987년 세계 선수권 대회에서 세운 2.09 m로 여자 높이뛰기 세계 기록 보유자이다. 그리고르 디미트로프는 ATP 랭킹 상위 3위 안에 든 최초의 불가리아 테니스 선수이다.
축구는 불가리아에서 압도적으로 가장 인기 있는 스포츠이다. 국가대표팀의 최고 성적은 1994년 FIFA 월드컵 준결승 진출이었으며, 당시 공격수 흐리스토 스토이치코프가 팀을 이끌었다. 스토이치코프는 역대 가장 성공적인 불가리아 선수로, 골든 부트와 골든 볼을 수상했으며, 1990년대 FC 바르셀로나에서 활약할 당시 세계 최고 선수 중 한 명으로 꼽혔다. 소피아를 연고로 하는 CSKA와 레프스키는 국내에서 가장 성공적인 클럽이자 오랜 라이벌이다. 루도고레츠는 불과 9년 만에 지역 4부 리그에서 2014-15년 UEFA 챔피언스리그 조별 리그에 진출한 것으로 주목할 만하다. 2018년 UEFA 랭킹 39위에 오른 이 클럽은 불가리아 클럽 중 가장 높은 순위를 기록했다.
9.7. 세계유산
불가리아에는 유네스코가 지정한 다수의 세계유산이 있으며, 이는 불가리아의 풍부한 역사와 자연을 반영한다. 대표적인 문화유산으로는 고대 트라키아 문명의 뛰어난 예술성을 보여주는 카잔러크의 트라키아 무덤과 스베슈타리의 트라키아 무덤, 중세 불가리아 종교 예술의 정수인 릴라 수도원과 보야나 교회, 그리고 이바노보 암각 교회군이 있다. 또한, 고대부터 중세에 이르는 다양한 시대의 건축물과 유적을 간직한 네세버르의 고대 도시와 바위에 새겨진 독특한 마და라 기마상도 중요한 문화유산이다. 자연유산으로는 다양한 동식물과 아름다운 경관을 자랑하는 피린 국립공원과 희귀 조류의 서식지인 스레버르나 자연보호구가 있다. 이러한 세계유산들은 불가리아의 문화적 정체성을 형성하고 전 세계적으로 그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