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포르투갈 공화국, 약칭 포르투갈은 이베리아반도 서부에 위치한 공화국이다. 북쪽과 동쪽으로는 스페인과 국경을 접하고 있으며, 서쪽과 남쪽으로는 대서양에 면해 있다. 수도는 리스본이며, 주요 도시로는 포르투가 있다. 포르투갈 영토에는 대서양의 아소르스 제도와 마데이라 제도라는 두 자치 지방도 포함된다. 국토 총면적은 9.22 만 km2이며, 2023년 기준 인구는 약 1,063만 명이다. 공식 언어는 포르투갈어이며, 일부 지역에서는 미란다어도 공인 지역어로 사용된다.
포르투갈 지역은 선사 시대부터 인류가 거주해 왔으며, 켈트족과 이베리아족 등이 초기 문화를 형성했다. 기원전 2세기 고대 로마의 지배를 받았고, 이후 게르만족과 무어인의 지배를 거쳤다. 12세기 기독교 세력의 헤콩키스타 과정에서 포르투칼레 백국을 기반으로 1139년 포르투갈 왕국이 건국되었으며, 이는 유럽에서 가장 오래된 민족 국가 중 하나로 평가받는다. 15세기부터 17세기에 걸친 대항해 시대에는 해양 탐험을 통해 남아메리카, 아시아, 아프리카, 오세아니아 등지에 광대한 해양 제국을 건설하며 세계적인 경제, 정치, 군사 강국으로 부상했다.
그러나 19세기 이후 브라질 독립 등 식민지 상실과 국내 정치적 혼란으로 국력이 쇠퇴하였다. 1910년 혁명으로 왕정이 종식되고 제1공화국이 수립되었으나, 곧이어 안토니우 살라자르의 권위주의 정권인 이스타두 노부 체제가 들어섰다. 1974년 카네이션 혁명으로 민주주의가 회복되었고, 식민지 전쟁이 종식되며 아프리카의 마지막 해외 영토들이 독립하였다.
오늘날 포르투갈은 선진국으로 분류되며, 주로 서비스업, 제조업, 관광업에 기반한 경제 구조를 가지고 있다. 인간 개발 지수(HDI)는 매우 높은 수준이며, 삶의 질 또한 우수하다. 포르투갈은 국제 연합(UN), 유럽 연합(EU), 유로존, 솅겐 지역, 북대서양 조약 기구(NATO),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포르투갈어 사용국 공동체(CPLP)의 창립 회원국이다. 유로화(EUR)를 통화로 사용한다.
2. 국명
포르투갈의 공식 국명은 포르투갈 공화국(República Portuguesa헤푸블리카 포르투게자포르투갈어)이다. 통칭 포르투갈(Portugal푸르투갈포르투갈어)로 불린다. 한국어로는 '포르투갈'로 표기하며, 한자로는 포도아(葡萄牙)라고 쓰고 '포'(葡)로 약칭하기도 한다. 이는 광둥어 발음(Pou4tou4nga4)에서 유래한 표기로, 19세기 중국 남부에서 시작되어 주변국으로 전파된 것이다. 그 이전에는 "파이두와이"(波爾杜瓦爾), "보류지가류"(保留止賀留), "포려도가"(蒲麗都家) 등 다양한 표기가 사용되었으나, 구한말 이후 '포도아' 표기가 우세해졌다.
2.1. 어원
'포르투갈'이라는 이름은 고대 로마- 켈트어 지명인 포르투스 칼레(Portus Cale포르투스 칼레라틴어)에서 유래했다. 이는 오늘날 포르투와 빌라 노바 드 가이아를 포함하는 도시권을 지칭하는 이름이었다. '포르투스'는 라틴어로 '항구'를 의미하며, '칼레'의 의미와 기원은 명확하지 않으나, 주류 학설은 이베리아반도 북서부를 점령했던 갈라이키족(Gallaeci)에서 파생된 민족명이라는 것이다.
다른 학설로는 '칼레'가 켈트어로 '항구'를 의미한다는 주장과 '칼라'라는 켈트 여신의 이름에서 유래했다는 주장 등이 있다. 일부 프랑스 학자들은 '갈리아인의 항구'라는 의미의 라틴어 '포르투스 갈루스'(Portus Gallus포르투스 갈루스라틴어)에서 유래했을 가능성을 제기하기도 한다.
기원전 200년경, 고대 로마는 제2차 포에니 전쟁 중 카르타고로부터 이베리아반도를 빼앗았다. 이 과정에서 로마는 칼레를 정복하고 '포르투스 칼레'(칼레의 항구)로 개명한 후, 갈라이키아 속주에 편입시켰다. 중세 시대에 포르투스 칼레 주변 지역은 수에비족과 서고트족에게 '포르투칼레'(Portucale)로 알려졌다. '포르투칼레'라는 이름은 7세기와 8세기에 '포르투갈레'(Portugale)로 변형되었고, 9세기경에는 도루강과 미뉴강 사이의 지역을 지칭하는 데 사용되었다. 11세기와 12세기에는 '포르투갈레', '포르투갈리아'(Portugallia), '포르투갈로'(Portvgallo) 또는 '포르투갈리에'(Portvgalliae)가 이미 '포르투갈'로 불렸다.
3. 역사
포르투갈 지역은 선사 시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문명의 흥망성쇠를 겪으며 독자적인 역사를 형성해왔다. 초기 인류 정착부터 시작하여 로마 제국, 게르만족, 이슬람 세력의 지배를 거쳐 독립 왕국을 이루었고, 대항해 시대를 통해 세계적인 해양 제국으로 발전했다. 이후 이베리아 연합, 왕정 복고, 계몽주의 개혁, 입헌군주정 수립, 공화정, 독재 정권을 거쳐 카네이션 혁명을 통해 민주주의 국가로 거듭났다.
3.1. 선사 시대와 고대

포르투갈 지역에는 약 40만 년 전 하이델베르크인이 처음 들어와 거주하기 시작했다. 포르투갈에서 발견된 가장 오래된 인류 화석은 2014년 아로에이라 동굴에서 발견된 40만 년 전의 하이델베르크인 두개골(아로에이라 3)이다. 이후 네안데르탈인이 이베리아반도 북부를 배회했으며, 이스토레마두라의 노바 다 콜룸베이라 동굴에서 치아 화석이 발견되기도 했다. 약 3만 5천 년 전에는 현생 인류(호모 사피엔스 사피엔스)가 포르투갈에 도착하여 빠르게 확산되었다. 선-켈트 부족들이 포르투갈에 거주했으며, 키네테스족은 문자를 개발하여 주로 남부 지역에서 발견되는 석비를 남겼다.
기원전 1천년기 초, 중앙 유럽에서 여러 차례 켈트족이 포르투갈로 이주해와 현지 주민들과 혼혈을 이루며 다양한 민족 집단을 형성했다. 켈트족의 존재는 고고학적, 언어학적 증거를 통해 명확히 드러난다. 그들은 포르투갈 북부와 중부 대부분을 지배했지만, 남부 지역은 로마 정복 이전까지 바스크어와 관련된 비-인도유럽어족적 특징을 유지했다. 남부 포르투갈 해안에는 페니키아와 카르타고인들이 세운 소규모의 반영구적 상업 정착지들도 존재했다.
로마인들은 기원전 219년에 처음으로 이베리아반도를 침공했다. 로마의 포에니 전쟁 상대였던 카르타고인들은 해안 식민지에서 축출되었다. 율리우스 카이사르 통치 기간 동안 거의 모든 반도가 로마에 합병되었다. 이 정복은 200년이 걸렸으며, 많은 사람들이 희생되었는데, 그중에는 노예 광산에서 강제 노동을 하거나 제국의 다른 지역으로 노예로 팔려간 사람들도 포함되었다. 기원전 155년, 북부에서 루시타니아 전쟁이 발발하면서 로마의 점령은 일시적으로 후퇴했다. 비리아투스의 지휘 아래 루시타니아인들과 다른 토착 부족들은 이베리아 서부 전역의 통제권을 장악했다. 로마는 반란을 진압하기 위해 군단을 파견했으나 성공하지 못했다. 로마 지도자들은 비리아투스의 동맹들을 매수하여 기원전 139년에 그를 살해하도록 했고, 그의 자리는 타우탈루스가 계승했다.
기원전 27년, 루시타니아는 로마 속주의 지위를 얻었다. 이후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의 개혁으로 히스파니아 타라코넨시스 속주에서 북부 속주가 분리되어 갈라이키아로 알려지게 되었다. 현재까지도 카스트로 문화의 유적인 힐포트(카스트로)와 코님브리가, 미로브리가, 시타니아 드 브리테이루스 등의 유적이 남아있다.
3.2. 게르만족 왕국과 이슬람 지배
409년, 로마 제국의 쇠퇴와 함께 이베리아반도는 게르만족에게 점령당했다. 411년, 호노리우스 황제와의 연방 계약을 통해 이들 중 다수가 히스파니아에 정착했다. 주요 그룹은 갈라이키아의 수에비족과 반달족으로, 이들은 브라가를 수도로 하는 수에비 왕국을 세웠다. 그들은 아이미니움(코임브라)까지 지배하게 되었고, 남쪽에는 서고트족이 있었다.
수에비족과 서고트족은 현대 포르투갈에 해당하는 영토에 가장 지속적인 영향을 미친 게르만 부족이었다. 서유럽의 다른 지역과 마찬가지로, 암흑 시대 동안 도시 생활은 급격히 쇠퇴했다. 게르만족의 침입 이후 로마 제도는 사라졌지만, 5세기에 수에비족에 의해 육성되고 이후 서고트족에 의해 채택된 교회 조직은 예외였다. 수에비족과 서고트족은 초기에 아리우스주의와 프리스킬리아누스주의를 따랐지만, 현지 주민들로부터 가톨릭교를 받아들였다. 특히 브라가의 마르티노는 영향력 있는 복음 전도자였다.
429년, 서고트족은 남쪽으로 이동하여 알란족과 반달족을 몰아내고 톨레도를 수도로 하는 왕국을 세웠다. 470년부터 수에비족과 서고트족 간의 갈등이 심화되었다. 585년, 서고트 왕 리우비길드가 브라가를 정복하고 갈라이키아를 합병하여 이베리아반도는 서고트 왕국 하에 통일되었다. 로마 시대에는 알려지지 않았던 새로운 계급인 귀족이 등장하여 중세 동안 중요한 사회적, 정치적 역할을 수행했다. 서고트족 치하에서 교회는 국가 내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기 시작했다. 서고트족은 현지인들로부터 라틴어를 배우지 않았기 때문에, 로마 통치 체제를 계속 유지하기 위해 주교들에게 의존해야 했다. 법률은 주교 협의회에 의해 제정되었고, 성직자 계급이 상류층으로 부상했다.
3.3. 이슬람 지배와 헤콩키스타

오늘날의 포르투갈 본토는 현대 스페인의 대부분 지역과 함께 남쪽으로부터 침략을 받아 726년부터 1249년까지 알안달루스의 일부가 되었다. 이는 우마이야 칼리파국의 이베리아반도 정복 이후의 일이다. 이슬람의 지배는 북부에서는 수십 년, 남부에서는 5세기까지 지속되었다.
몇 달 만에 서고트족을 물리친 후, 우마이야 칼리파국은 이베리아반도에서 빠르게 세력을 확장하기 시작했다. 726년부터 현재의 포르투갈 지역은 다마스쿠스를 수도로 한 거대한 우마이야 칼리파국의 일부가 되었으며, 이는 750년 칼리파국이 붕괴될 때까지 지속되었다. 그해 제국의 서부는 아브드 알라흐만 1세 하에 독립하여 코르도바 토후국을 세웠다. 이 토후국은 929년에 코르도바 칼리파국이 되었으나, 1031년에 23개의 작은 왕국, 즉 타이파로 분열되었다.
타이파의 통치자들은 자신들의 지방에서 에미르를 자처하고 북부의 기독교 왕국들과 외교 관계를 맺었다. 현재 포르투갈의 대부분은 아프타스 왕조의 바다호스 타이파의 지배하에 들어갔고, 1022년에는 아바드 왕조 시인들의 세비야 타이파에 속하게 되었다. 타이파 시대는 1086년 알모라비드 왕조의 정복으로 끝났고, 이후 1147년 알모하드 칼리파국에 의해 다시 정복되었다.
알안달루스는 쿠라(Kura)라는 구역으로 나뉘었다. 가장 넓었을 때의 가르브 알안달루스는 10개의 쿠라로 구성되었으며, 각 쿠라에는 고유한 수도와 총독이 있었다. 주요 도시는 베자, 실베스, 알카세르두살, 산타렝, 리스본 등 남부 지역에 집중되어 있었다. 이슬람 인구는 주로 이슬람으로 개종한 이베리아 원주민과 베르베르인으로 구성되었다. 아랍인(주로 시리아 출신의 귀족)은 소수였지만 엘리트 계층을 이루었다. 그들과 합류한 베르베르인들은 북아프리카 리프산맥 출신의 유목민이었다.
이 시기에는 북쪽으로부터의 침략도 있었는데, 9세기에서 11세기 사이에 바이킹이 리스본을 포함한 해안 지역을 습격했다. 이로 인해 도루강과 미뉴 사이의 해안선에 작은 노르드인 정착지가 생겨났다.
헤콩키스타

헤콩키스타는 기독교 세력이 이베리아반도를 무어인의 지배로부터 되찾은 시기이다. 아스투리아스의 서고트 귀족인 펠라기우스는 718년 축출된 많은 서고트 귀족들에 의해 지도자로 선출되었다. 펠라기우스는 남은 기독교 서고트 군대에게 무어인에 대항하여 반란을 일으키고, 오늘날 스페인 북서부의 칸타브리아산맥으로 알려진 미정복된 북부 아스투리아스 고원지대에 다시 집결할 것을 촉구했다. 722년 코바дон가 전투에서 무어인을 물리친 후, 펠라기우스는 왕으로 선포되어 기독교 아스투리아스 왕국을 세우고 기독교 재정복 전쟁을 시작했다.
9세기 말, 미뉴강과 도루강 사이의 포르투갈 지역은 아스투리아스 왕국의 알폰소 3세의 명령에 따라 귀족이자 기사인 비마라 페레스에 의해 무어인들로부터 재정복되었다. 많은 도시가 버려진 것을 발견한 그는 도시들을 재건하고 사람들을 다시 정착시키기로 결정했다.
비마라 페레스는 이 지역을 백국으로 격상시키고, 주요 항구 도시인 포르투스 칼레 또는 현대의 포르투의 이름을 따서 포르투갈 백국이라고 명명했다. 그가 세운 첫 번째 도시 중 하나는 오늘날 "포르투갈 국가의 발상지" 또는 "요람 도시"로 알려진 기마랑이스인 비마라네스이다.
포르투갈 백국을 아스투리아스 왕국을 구성하는 백국 중 하나로 합병한 후, 아스투리아스 왕국의 알폰소 3세는 868년 비마라 페레스를 포르투스 칼레(포르투갈)의 초대 백작으로 기사 작위를 수여했다. 이 지역은 포르투칼레, 포르투갈레, 그리고 동시에 포르투갈리아로 알려지게 되었다. 910년 알폰소 3세가 강제로 퇴위하면서 아스투리아스 왕국은 세 개의 독립된 왕국으로 분열되었고, 924년에 레온 왕국의 왕관 아래 재통일되었다.
1093년 레온의 알폰소 6세는 이 백국을 부르고뉴의 엔히크에게 하사하고 자신의 딸인 포르투갈의 테레사와 결혼시켰다. 이로써 엔히크는 포르투갈 백작 엔히크가 되었고, 새로 형성된 백국을 브라카라 아우구스타(현대의 브라가)에 기반을 두었다.
3.4. 왕국의 성립과 해양 제국

1128년 기마랑이스 외곽의 상마메드 전투에서 포르투갈 백작 아폰수 엔히크스는 그의 어머니 포르투갈의 테레사 백작 부인과 그녀의 연인 페르낭 페레스 데 트라바를 물리치고 포르투갈 백국의 유일한 지도자로 자리매김했다. 아폰수는 그의 아버지 부르고뉴의 엔히크가 시작한 헤콩키스타 전쟁을 계속했다. 그의 원정은 성공적이었고, 1139년 오리케 전투에서 승리를 거두자 그의 군사들에 의해 포르투갈 왕으로 선포되었다. 이는 전통적으로 포르투갈 백국이 독립된 포르투갈 왕국으로 변모한 시기로 여겨지며, 1129년 수도는 기마랑이스에서 코임브라로 옮겨졌다. 아폰수는 1143년 레온의 알폰소 7세에 의해 포르투갈의 초대 왕으로, 1179년에는 교황 알렉산데르 3세에 의해 아폰수 1세로 인정받았다.
아폰수 엔히크스와 그의 후계자들은 군사적 수도회의 도움을 받아 무어인에 대항하여 남쪽으로 계속 진격했다. 1249년, 알가르브를 점령하고 마지막 무어인 정착지를 축출함으로써 헤콩키스타는 끝났다. 약간의 조정은 있었지만, 포르투갈의 영토 경계는 그대로 유지되어 유럽에서 가장 오래된 국가 중 하나가 되었다.
카스티야 왕국과의 분쟁 후, 포르투갈의 디니스는 1297년 카스티야의 페르난도 4세와 알카니세스 조약을 체결했다. 이 조약은 포르투갈 왕국과 레온 왕국 사이의 국경을 확립했다. 디니스, 아폰수 4세, 페드루 1세의 통치 기간 동안에는 이베리아의 다른 왕국들과 대체로 평화가 유지되었다.
1348-49년 포르투갈은 유럽의 나머지 지역과 마찬가지로 흑사병으로 황폐화되었다. 1373년, 포르투갈은 세계에서 가장 오래 지속된 동맹인 영국-포르투갈 동맹을 영국과 체결했다.
대항해 시대

1383년 카스티야의 후안 1세, 포르투갈의 베아트리스, 포르투갈의 페르난두 1세가 포르투갈 왕위를 주장했다. 아비스의 주앙(훗날 포르투갈의 주앙 1세)은 알주바로타 전투에서 카스티야군을 물리치고 아비스 왕조가 지배 왕가가 되었다. 새로운 지배 왕조는 포르투갈을 유럽 정치와 문화의 중심으로 이끌었다. 그들은 페르낭 로페스의 포르투갈 역사서와 같은 문학 작품을 창작하고 후원했다.
포르투갈은 항해왕자 엔히크의 후원 아래 세계의 유럽 탐험과 대항해 시대를 주도했다. 포르투갈은 대서양을 탐험하여 아소르스 제도, 마데이라 제도, 포르투갈령 카보베르데를 발견했고, 이는 최초의 식민주의 운동으로 이어졌다. 포르투갈인들은 인도양을 탐험하고, 아시아 남부 대부분 지역에 무역로를 개설했으며, 중국(조르즈 알바르스)과 일본(남만무역)에 최초의 직접적인 유럽 해상 무역 및 외교 사절단을 파견했다. 1415년, 포르투갈은 북아프리카의 세우타를 정복하여 최초의 식민지를 획득했다. 15세기 내내, 포르투갈 탐험가들은 아프리카 해안을 항해하며 황금에서 노예제에 이르는 상품들을 위한 교역소를 설립했다. 포르투갈은 희망곶을 경유하여 고아로 포르투갈 인도 함대를 항해시켰다.
1494년 토르데시야스 조약은 크리스토퍼 콜럼버스의 귀환 이후 발생한 분쟁을 해결하기 위한 것으로, 아프리카 서해안의 카보베르데 제도 서쪽 선을 따라 유럽 외부의 새로 발견된 땅을 포르투갈과 스페인 사이에 분할했다. 1498년 바스쿠 다 가마는 해로를 통해 인도에 도달한 최초의 유럽인이 되어 포르투갈에 경제적 번영을 가져다주고 포르투갈 르네상스를 시작하는 데 도움을 주었다. 1500년, 포르투갈 탐험가 가스파르 코르테-헤알은 현재의 캐나다에 도달하여 포르투갈 코브-세인트 필립스 마을을 세웠는데, 이는 아메리카의 많은 포르투갈 식민지 중 하나였다.

1500년, 페드루 알바르스 카브랄이 브라질에 상륙하여 포르투갈령으로 선포했다. 10년 후, 아폰수 드 알부케르크는 인도의 고아, 오만의 무스카트와 페르시아 해협의 오르무즈, 그리고 현재 말레이시아에 있는 믈라카를 정복했다. 이로써 포르투갈 제국은 인도양과 남대서양의 상권을 장악하게 되었다. 포르투갈 선원들은 동아시아로 항해하여 대만, 일본, 티모르, 플로레스, 몰루카 제도에 상륙했다. 네덜란드인들이 호주에 도착한 최초의 유럽인으로 여겨졌지만, 포르투갈인들이 1521년에 호주를 발견했을 가능성을 시사하는 증거가 있다.
1519년에서 1522년 사이 페르디난드 마젤란은 동인도로 향하는 스페인 원정대를 조직하여 최초의 세계 일주를 달성했다. 1529년 포르투갈과 스페인 사이에 체결된 사라고사 조약은 태평양을 스페인과 포르투갈로 분할했다.
3.5. 이베리아 연합과 왕정 복고

아비스 왕조의 마지막 두 왕이 후계자 없이 사망하여 1580년 포르투갈 왕위 계승 위기가 발생하자, 포르투갈은 자발적으로 왕조 연합(1580년-1640년)에 들어갔다. 스페인의 펠리페 2세가 왕위를 주장하여 포르투갈의 필리페 1세로 받아들여졌다. 포르투갈은 공식적인 독립을 잃지 않고 이베리아 연합을 형성했다. 그러나 두 왕관의 결합은 포르투갈의 독립적인 외교 정책을 박탈하고, 스페인과 네덜란드 간의 80년 전쟁에 휘말리게 만들었다.
전쟁은 포르투갈의 가장 오래된 동맹국인 영국과의 관계 악화와 이란과 오만 사이에 위치한 전략적 교역 거점인 호르무즈의 상실로 이어졌다. 1595년부터 1663년까지의 네덜란드-포르투갈 전쟁은 주로 네덜란드 회사들이 브라질, 아프리카, 인도 및 극동 지역의 포르투갈 식민지와 상업적 이익을 침략하는 양상으로 진행되었으며, 이로 인해 포르투갈은 인도 해상 무역 독점권을 상실했다.
1640년 포르투갈의 주앙 4세는 불만을 품은 귀족들의 지원을 받아 봉기를 주도하고 왕으로 선포되었다. 포르투갈 독립 전쟁은 합스부르크 왕가 하의 60년간의 이베리아 연합 시대를 종식시켰다. 이는 1910년까지 통치한 브라간사 왕조의 시작이었다. 주앙 5세의 통치는 주로 포르투갈 식민지인 브라질과 마라냥에서 왕실 5분의 1세(귀금속에 대한 세금)로 공급된 금이 왕실 금고로 유입되는 특징을 보였다. 18세기 금광 시대 동안 식민지 브라질로 이주한 포르투갈인의 수는 60만 명으로 추산된다. 이는 식민지 시대 동안 유럽인들이 자신들의 식민지로 이주한 가장 큰 규모의 이동 중 하나였다.
3.6. 폼발 후작 시대와 계몽주의

1738년, 훗날 제1대 폼발 후작으로 봉해진 세바스티앙 조제 드 카르발류 이 멜루는 런던 주재 포르투갈 대사로 경력을 시작했고, 이후 빈 대사로 활동했다. 1750년 즉위한 조제 1세는 그를 외무장관으로 임명했다. 왕이 카르발류 이 멜루에 대한 신뢰가 깊어지면서, 그는 국가 통제권을 더 많이 위임받게 되었다. 1755년까지 카르발류 이 멜루는 총리가 되었다. 대사 시절 목격한 영국의 경제적 성공에 감명받은 그는 포르투갈에서도 유사한 경제 정책을 성공적으로 시행했다.
1761년, 조제 1세 통치 기간 동안 그는 인도주의적 이유가 아니라 브라질에서 필요한 노동력이었기 때문에 본토 포르투갈과 인도로 흑인 노예 수입을 금지했다. 동시에 그는 흑인 노예("당시 용어로 '조각'")를 해당 식민지로의 무역을 장려했으며, 폼발 후작의 지원과 직접적인 관여로 그랑파라 이 마라냥 회사와 페르남부쿠 이 파라이바 일반 회사라는 두 회사가 설립되었는데, 이들의 주요 활동은 주로 아프리카인 노예를 브라질 땅으로 인신매매하는 것이었다.
그는 군대와 해군을 재편성하고 다른 기독교 종파에 대한 법적 차별을 종식시켰다. 그는 상업 활동을 규제하기 위해 회사와 길드를 만들었고, 포트 와인의 품질을 보장하기 위해 생산 지역을 구분하는 최초의 원산지 명칭 보호 제도 중 하나를 만들었다. 이는 유럽에서 와인 품질과 생산을 통제하려는 최초의 시도였다. 그는 포르투갈 사회의 모든 계층에 엄격한 법을 부과했으며, 세금 제도를 광범위하게 검토했다. 이러한 개혁은 상류층의 적들을 만들었다.


1755년 11월 1일 리스본은 규모 7.7에서 9.0 사이로 추정되는 대지진의 강타를 받았으며, 사상자는 12,000명에서 50,000명에 달했다. 이 지진은 포르투갈 수도를 황폐화시켰으며 국가 역사에 깊은 흔적을 남겼다.


지진 이후 조제 1세는 총리에게 더 많은 권한을 부여했고, 카르발류 드 멜루는 계몽 전제군주가 되었다. 1758년 조제 1세는 암살 시도에서 부상을 입었다. 타보라 후작과 그의 가족 여러 명, 심지어 하인들까지 타보라 사건의 일부로 추정되어 극도로 잔인하게(당시 기준으로도) 고문당하고 공개 처형되었다.
이듬해 예수회는 탄압받고 추방되었다. 이는 귀족조차 폼발 앞에서 무력하다는 것을 공개적으로 보여줌으로써 반대 세력을 분쇄했다. 1770년에 "폼발 후작"으로 더욱 칭호를 받은 그는 1777년 조제 1세가 사망할 때까지 포르투갈을 통치했다. 새로운 통치자인 포르투갈의 마리아 1세 여왕은 폼발의 과도함 때문에 그를 싫어했고, 왕위에 오르자마자 그의 모든 정치적 직위를 박탈했다. 폼발은 폼발에 있는 그의 영지로 추방되어 1782년에 그곳에서 사망했다.
역사학자들은 폼발의 "계몽"이 광범위했지만, 주로 개인의 자유를 희생시키면서 독재를 강화하는 메커니즘이었으며, 특히 반대 세력을 분쇄하고, 비판을 억압하며, 식민지 착취를 심화하고 개인적인 통제와 이익을 공고히 하는 장치였다고 주장한다.
3.7. 19세기 위기와 입헌군주정

1807년 포르투갈은 나폴레옹의 영국에 대한 금수 조치인 대륙 봉쇄령 가입 요구를 거부했다. 쥐노 장군 휘하의 프랑스군이 침공하여 1807년 리스본이 함락되었다. 반도 전쟁에서 영국의 개입은 포르투갈의 독립을 유지하는 데 도움이 되었으며, 마지막 프랑스군은 1812년에 축출되었다.
브라질의 리우데자네이루는 1808년부터 1821년까지 포르투갈의 수도였다. 1820년 포르투와 리스본에서 입헌주의 봉기가 일어났다. 1822년 브라질이 독립을 선언하자 리스본은 다시 포르투갈의 수도 지위를 되찾았다. 1826년 주앙 6세 국왕의 사망은 왕위 계승 위기로 이어졌다. 그의 장남인 브라질의 페드루 1세가 잠시 포르투갈의 페드루 4세가 되었지만, 포르투갈인도 브라질인도 통일된 군주정을 원하지 않았다. 결과적으로 페드루는 7세 딸 마리아 다 글로리아에게 포르투갈 왕위를 양위했는데, 조건은 그녀가 성인이 되면 그의 동생 포르투갈의 미겔과 결혼하는 것이었다. 페드루의 헌법 개혁에 대한 불만으로 지주와 교회의 "절대주의" 파벌은 1828년 2월 미겔을 왕으로 선포했다. 이는 자유주의 전쟁(두 형제의 전쟁 또는 포르투갈 내전으로도 알려짐)으로 이어졌고, 이 전쟁에서 페드루는 1834년 미겔을 퇴위시키고 망명하게 한 후 그의 딸을 포르투갈의 마리아 2세 여왕으로 왕위에 앉혔다.

1815년 이후 포르투갈은 아프리카 해안을 따라 교역항을 확장하고 내륙으로 진출하여 앙골라와 모잠비크를 장악했다. 노예 무역은 1836년에 폐지되었다. 포르투갈령 인도에서는 고아 식민지와 그 부속 식민지인 홍콩 근처의 마카오, 호주 북쪽의 티모르에서 무역이 번성했다. 포르투갈은 식민지에 가톨릭과 포르투갈어를 성공적으로 도입했지만, 대부분의 정착민은 계속해서 브라질로 향했다.
1890년 1월 11일, 영국 정부는 포르투갈에 1890년 영국 최후통첩을 전달하여, 포르투갈의 식민지인 모잠비크와 앙골라 사이 지역에서 포르투갈군을 철수할 것을 요구했다. 이 지역은 포르투갈이 식민주의적 분홍색 지도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영유권을 주장했지만, 영국은 주로 모든 영국 식민지를 단일 철도로 연결하려는 케이프-카이로 철도를 건설하려는 세실 로즈의 야망 때문에 이러한 주장에 이의를 제기했다. 포르투갈 정부는 조용히 최후통첩을 수락하고 분쟁 지역에서 군대를 철수시켰는데, 이는 영국 요구 수락을 굴욕으로 여긴 포르투갈 대중 사이에서 광범위한 반발을 불러일으켰다.
3.8. 제1공화국과 이스타두 노부

1910년 10월 5일, 쿠데타가 거의 800년 된 군주제를 전복시키고 공화국이 선포되었다. 제1차 세계 대전 중 포르투갈은 연합국이 중앙 강대국과 싸우는 것을 도왔지만, 전쟁은 취약한 경제에 타격을 입혔다. 정치적 불안정과 경제적 취약성은 포르투갈 제1공화국 동안 혼란과 불안의 비옥한 토양이었다. 이러한 상황은 실패한 북부 왕국, 1926년 5월 28일 쿠데타, 그리고 국가 독재정권(디타두라 나시오날)의 창설로 이어졌다. 이는 다시 1933년 안토니우 드 올리베이라 살라자르 하의 우익 독재 정권인 이스타두 노부(새로운 국가)로 이어졌다.
포르투갈은 제2차 세계 대전에서 중립을 유지했다. 1940년대부터 1960년대까지 포르투갈은 NATO, OECD, 유럽 자유 무역 연합(EFTA)의 창립 회원국이었으며 1955년 UN에 가입했다. 아프리카의 해외 지방으로 본토 포르투갈 시민들을 이주시키는 새로운 경제 개발 프로젝트가 시작되었으며, 앙골라와 모잠비크가 이러한 계획의 주요 대상이었다. 이러한 조치들은 포르투갈을 식민 제국이 아닌 초대륙 국가로서의 지위를 확립하는 데 사용되었다.
다드라 나가르하벨리의 친인도 주민들은 1954년 이 지역들을 포르투갈 통치로부터 분리시켰다. 1961년 다호메이 공화국에 의한 상주앙바프티스타드아주다 요새 합병은 수세기 동안 지속된 포르투갈 제국의 해체로 이어진 과정의 시작이었다. 1961년 포르투갈이 고아를 포기하기를 거부하자 또 다른 강제 철수가 발생했다. 포르투갈은 포르투갈령 인도에서 인도군에 대항하여 무력 충돌에 휘말렸다. 작전은 패배와 인도 아대륙에 남아 있던 포르투갈 영토 상실로 귀결되었다. 포르투갈 정권은 합병된 영토에 대한 인도 주권을 인정하기를 거부했고, 이 영토들은 1974년 쿠데타까지 국회에서 계속 대표되었다.
또한 1960년대 초 아프리카의 포르투갈 지방인 앙골라, 모잠비크, 기니의 독립 운동은 포르투갈 식민지 전쟁(1961년부터 1974년까지 지속)을 초래했다. 이 전쟁에는 군사 또는 민간 지원 서비스에 약 140만 명의 남성이 동원되었으며, 많은 사상자가 발생했다. 식민지 전쟁 기간 동안 포르투갈은 국제 사회로부터 가중되는 반대, 무기 금수 조치 및 기타 징벌적 제재에 직면했다. 처음에는 살라자르가, 1968년부터는 마르셀루 카에타누가 통치한 권위주의적이고 보수적인 이스타두 노부 정권은 제국을 보존하려고 노력했다.
3.9. 카네이션 혁명과 민주화

정부와 군대는 1974년 4월 리스본에서 좌익 군사 쿠데타인 카네이션 혁명이 일어나 해외 영토의 독립과 PREC(진행 중인 혁명 과정)로 알려진 2년간의 과도기 이후 민주주의 회복의 길을 열 때까지 해외 영토의 탈식민지화에 저항했다. 이 시기는 좌익과 우익 정치 세력 간의 권력 다툼이 특징이었다. 1975년 여름까지 긴장은 극도로 고조되어 국가는 내전 직전에 놓였다. 극좌익과 관련된 세력은 11월 25일 또 다른 쿠데타를 일으켰지만, 군사 파벌인 9인 그룹이 반격을 시작했다.
9인 그룹은 승리하여 공산주의 국가 수립을 막고 정치적 불안정을 종식시켰다. 해외 영토에서의 철수는 포르투갈 시민들이 아프리카 영토에서 대량 탈출하는 계기가 되었다. 포르투갈 난민 100만 명 이상이 이전 포르투갈 지방에서 도망쳤는데, 백인 정착민들은 보통 이전 식민지의 일부로 간주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1975년까지 모든 포르투갈 아프리카 영토는 독립했고 포르투갈은 50년 만에 최초의 민주 선거를 치렀다.
포르투갈은 1976년 포르투갈 총선까지 구국정부평의회에 의해 계속 통치되었다. 이 선거에서는 포르투갈 사회당이 승리했고, 당수인 마리우 소아르스가 총리가 되었다. 소아르스는 1976년부터 1978년까지, 그리고 1983년부터 1985년까지 총리를 지냈다. 소아르스는 카네이션 혁명 이전에 달성했던 경제 성장과 발전 기록을 재개하려고 노력했다. 그는 유럽 경제 공동체(EEC) 가입 절차를 시작했다.
민주주의로 전환한 후, 포르투갈은 사회주의와 신자유주의 모델 준수 사이를 오갔다. 토지 개혁과 국유화가 시행되었고, 포르투갈 헌법은 사회주의 및 공산주의 원칙을 수용하도록 개정되었다. 1982년과 1989년 개정 전까지 헌법에는 사회주의, 노동자 권리, 사회주의 경제의 바람직함에 대한 언급이 있었다. 혁명 이후 포르투갈의 경제 상황은 정부가 1977년~78년과 1983년~85년에 국제 통화 기금(IMF)의 감시 하에 안정화 프로그램을 추진하도록 강요했다.

1986년 포르투갈은 스페인과 함께 유럽 경제 공동체에 가입했고, 이는 나중에 유럽 연합(EU)이 되었다. 유럽 구조 및 투자 기금과 기업들의 해외 시장 접근 용이성 덕분에 포르투갈 경제는 상당히 발전했다.
포르투갈의 마지막 해외 영토인 마카오는 1999년 중국에 평화적으로 반환되었다. 2002년, 동티모르(아시아)의 독립은 포르투갈에 의해 공식적으로 인정되었다. 1995년, 포르투갈은 솅겐 지역 규정을 시행하기 시작하여 다른 솅겐 회원국과의 국경 통제를 철폐했다. 엑스포 '98이 포르투GAL에서 열렸고, 1999년에는 유로와 유로존의 창립 국가 중 하나가 되었다. 2004년 당시 포르투갈의 총리였던 조제 마누엘 두랑 바호주는 유럽 위원회 위원장으로 지명되었다. 2009년 12월 1일 리스본 조약이 발효되어 연합의 효율성과 민주적 정당성을 강화했다. 2007-2008년 세계 금융 위기 동안의 경제 혼란과 지속 불가능한 정부 부채 증가는 2011년 IMF 및 유럽 연합과 유럽 금융 안정 기구 및 유럽 금융 안정 제도를 통해 국가 재정 안정화를 위한 차관 협상을 하도록 이끌었다.
4. 지리
thumb|지형 및 행정 구역
포르투갈은 이베리아반도의 한 지역(대부분의 포르투갈인이 대륙이라고 부름)과 대서양의 두 군도인 마데이라와 아소르스를 차지하고 있다. 북위 30도에서 42도, 서경 32도에서 6도 사이에 위치한다.
포르투갈 본토는 스페인에서 발원하여 테주강 하구에서 리스본으로 흘러든 후 대서양으로 빠져나가는 주요 강인 테주강에 의해 나뉜다. 북부 지형은 강 계곡으로 움푹 들어간 여러 고원이 있는 내륙을 향해 산악 지형인 반면, 알가르브와 알렌테주 지역을 포함한 남부는 완만한 평야가 특징이다.
포르투갈의 가장 높은 봉우리는 아소르스 제도의 피쿠섬에 있는 피쿠산이다. 마데이라와 아소르스 군도는 대서양 내에 흩어져 있다. 아소르스 제도는 지각판 삼중점 위의 대서양 중앙 해령에 걸쳐 있고, 마데이라는 판 내 열점 지질학에 의해 형성된 산맥을 따라 위치한다. 지질학적으로 이 섬들은 화산 및 지진 활동으로 형성되었다. 마지막 육상 화산 폭발은 1957년~58년(카펠리뉴스)에 발생했으며, 작은 지진이 산발적으로 발생한다.
배타적 경제 수역은 포르투갈이 해양 자원의 탐사 및 사용에 대한 특별한 권리를 갖는 해역으로, 면적은 172.74 만 km2이다. 이는 유럽 연합에서 세 번째로 큰 배타적 경제 수역이며 세계에서 20번째로 크다.
4.1. 지형
이베리아반도 서부에 위치한 포르투갈 본토와 대서양의 아소르스 제도, 마데이라 제도는 다양한 지형적 특징을 보인다. 본토 북부는 내륙으로 갈수록 산지가 발달하며, 여러 고원이 강 계곡에 의해 침식되어 있다. 가장 높은 산맥은 세하다이스트렐라산맥으로, 최고봉인 토르레산은 해발 1993 m에 달한다. 주요 강으로는 스페인에서 발원하여 대서양으로 흘러드는 테주강, 도루강, 과디아나강 등이 있으며, 이 강들은 포르투갈의 중요한 수자원이자 교통로 역할을 한다. 남부의 알렌테주와 알가르브 지역은 비교적 평탄한 구릉지대로 이루어져 있으며, 해안선은 길고 다양한 모습을 보인다. 알가르브 해안은 아름다운 해변과 절벽으로 유명하다.
아소르스 제도는 9개의 주요 화산섬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대서양 중앙 해령 위에 위치하여 지각 활동이 활발하다. 포르투갈 최고봉인 피쿠산(해발 2351 m)이 이 제도에 속한 피쿠섬에 있다. 마데이라 제도는 마데이라섬, 포르투산투섬 및 무인도들로 구성되며, 화산 활동으로 형성된 가파른 산지와 깊은 계곡이 특징이다.
4.2. 기후
포르투갈은 주로 지중해성 기후를 나타내며, 아소르스 제도의 고지대에서는 온화한 해양성 기후, 베자현 남부 일부와 포르투산투섬에서는 반건조 기후, 셀바젱스 제도에서는 고온 사막 기후, 서부 아소르스 제도에서는 온난 습윤 기후를 보이는 등 쾨펜-가이거 기후 구분에 따라 다양한 기후 양상을 보인다. 포르투갈은 유럽에서 가장 따뜻한 나라 중 하나로, 포르투갈 본토의 연평균 기온은 북부 산악 내륙 지역이 10 °C에서 12 °C까지이며, 남부와 과디아나강 유역은 17 °C에서 19 °C까지이다. 고지대와 저지대 간에는 기온 차이가 있다. 알가르브는 알렌테주 지역과 최대 900 m 높이의 산맥(알투 다 포이아)으로 분리되어 있으며, 스페인 남부 해안 지역이나 호주 남서부와 유사한 기후를 보인다.
본토의 연평균 강수량은 페네다-제레스 국립공원에서 3200 mm를 약간 넘는 수준에서 알렌테주 남부 일부 지역에서는 500 mm 미만으로 다양하다. 포르투갈 해양대기연구소에 따르면 피쿠산은 연간 6250 mm 이상의 가장 많은 강수량을 기록한다. 과디아나강 유역과 같은 일부 지역에서는 연간 일평균 기온이 24.5 °C에 달할 수 있으며, 여름철 최고 기온은 일상적으로 40 °C를 넘는다. 기록된 최고 기온은 아마렐레자에서 기록된 47.4 °C이다.
겨울철에는 북부 및 중부 내륙, 특히 산악 지역에서 규칙적으로 눈이 내린다. 이 지역에서는 기온이 -10 °C 아래로 떨어질 수 있다. 이들 지역에서는 10월부터 5월까지 언제든지 눈이 내릴 수 있다. 남부 지역에서는 눈이 드물지만 가장 높은 고도에서는 여전히 발생한다. 포르투갈 해양대기연구소(IPMA)의 공식 최저 기온은 페냐스 다 사우드와 미란다두도루에서 기록된 -16 °C이지만, 더 낮은 기온도 기록된 바 있다. 포르투갈 본토는 연간 약 2,300~3,200시간의 일조량을 받으며, 겨울에는 평균 4~6시간, 여름에는 10~12시간으로 남동부, 남서부, 알가르브 해안에서 더 높고 북서부에서 더 낮다.
포르투갈 중서부 및 남서부 해안은 극심한 해양 계절 지연 현상을 보인다. 해수 온도는 7월보다 10월에 더 따뜻하며 3월에 가장 차갑다. 포르투갈 본토 서해안의 평균 해수면 온도는 1월~3월에 14 °C에서 16 °C까지이며, 8월~10월에는 19 °C에서 21 °C까지이다. 남해안에서는 1월~3월에 16 °C에서 여름철에는 약 22 °C에서 23 °C까지 올라가며 때때로 26 °C에 달하기도 한다. 아소르스 제도에서는 2월~4월에 약 16 °C에서 7월~9월에 22 °C에서 24 °C까지이며, 마데이라 제도에서는 2월~4월에 약 18 °C에서 8월~10월에 23 °C에서 24 °C까지이다.
아소르스 제도와 마데이라 제도는 아열대 기후를 보이지만 섬마다 차이가 있다. 마데이라와 아소르스 군도는 기온 범위가 좁으며, 일부 해안 지역에서는 연평균 기온이 20 °C를 초과한다. 아소르스 제도의 일부 섬은 여름에 건조한 달이 있다. 결과적으로 아소르스 제도의 섬들은 지중해성 기후로 확인되었으며, 일부 섬(플로레스 또는 코르부)은 온난 습윤 기후로 분류되어 고도가 높은 지역에서는 해양성 기후로 전환된다. 마데이라 제도의 포르투산투섬은 온난한 반건조 기후이다. 마데이라 지역 영토의 일부이자 자연보호구역인 셀바젱스 제도는 연평균 강수량이 약 150 mm인 사막 기후로 분류되는 독특한 곳이다.
4.3. 생물 다양성

포르투갈은 세계에서 세 번째로 다양한 식물상을 자랑하는 지중해 분지에 위치하고 있다. 이곳에는 6개의 육상 생태 지역이 있다: 아소르스 온대 혼합림, 칸타브리아 혼합림, 마데이라 상록수림, 이베리아 경엽수 및 반낙엽수림, 북서 이베리아 산지림, 남서 이베리아 지중해 경엽수 및 혼합림. 국토 면적의 22% 이상이 나투라 2000 네트워크에 포함되어 있다. 유칼립투스, 코르크 참나무, 해송이 함께 포르투갈 본토 전체 삼림 면적의 71%를 차지한다. 산불은 포르투갈에서 매우 흔하고 주요 문제이며, 유럽 연합 전체에서 평균적으로 가장 높은 소실 면적 비율을 가진 나라이다.
지리적 및 기후적 조건은 외래종의 유입을 용이하게 하여 나중에 토착 서식지에 침입하여 파괴적인 종으로 변하게 한다. 포르투갈 본토 현존 종 전체 수의 약 20%가 외래종이다. 포르투갈은 유럽에서 멸종 위기에 처한 동식물 종 수가 두 번째로 많은 나라이다. 포르투갈 전체는 철새 종들에게 중요한 중간 기착지이다.
포르투갈의 대형 포유류 종(사슴, 이베리아 아이벡스, 멧돼지, 붉은여우, 이베리아 늑대, 이베리아 스라소니)은 한때 전국에 널리 분포했으나, 19세기와 20세기 초의 집중적인 사냥, 서식지 파괴, 농업 및 가축으로 인한 압력 증가로 인해 개체수가 크게 감소했으며, 포르투갈 아이벡스와 같은 종은 멸종에 이르렀다. 오늘날 이 동물들은 다시 자생 범위를 확장하고 있다.
포르투갈 서해안은 해양의 4대 동부 경계 용승 시스템 중 하나에 속한다. 여름철에 일반적으로 나타나는 이 계절적 용승 시스템은 더 차갑고 영양이 풍부한 물을 해수면으로 끌어올려 식물성 플랑크톤 성장, 동물성 플랑크톤 발달 및 그에 따른 부어류 및 기타 해양 무척추동물의 풍부한 다양성을 촉진한다. 이로 인해 포르투갈은 세계에서 1인당 어류 소비량이 가장 많은 나라 중 하나이다. 이베리아반도에 서식하는 민물고기의 73%가 고유종으로, 유럽의 어느 지역보다도 가장 많다. 포르투갈의 보호 구역으로는 세하스 드 아이르 이 칸데이루스 자연공원, 남서 알렌테주 및 비센티나 해안 자연공원, 그리고 이베리아 늑대와 이베리아 불곰의 유일한 개체군 일부가 서식하는 몬테시뉴 자연공원 등이 있다.
5. 정치

2016년부터 대통령

2024년부터 총리
포르투갈은 1976년 헌법 비준 이후 이원집정부제 대의 민주 공화국이며, 국가 최대 도시인 리스본을 수도로 한다. 헌법은 공화국 대통령, 공화국 의회, 정부, 법원 등 4개 주권 기관 간의 권력 분립 또는 분할을 부여한다.
국가 원수는 공화국 대통령으로, 직접 보통선거를 통해 5년 임기로 선출된다. 현 대통령은 마르셀루 헤벨루 드 소자이다. 대체로 의례적인 직책이지만, 대통령의 권한에는 총리 및 기타 정부 구성원 임명, 총리 해임, 의회 해산, 법안 거부권 행사(의회에 의해 번복될 수 있음), 전쟁 선포(정부의 조언과 의회의 승인이 있어야 함) 등이 포함된다. 대통령은 또한 감독권과 예비권을 가지며, 직권상 군 최고사령관이다. 대통령은 국무위원회로부터 중요 사안에 대해 자문을 받는다.
5.1. 정부 구조

공화국 의회는 4년 임기로 선출되는 최대 230명의 의원으로 구성된 단원제 의회이다. 정부는 총리가 이끌며, 완전한 행정권을 가진 장관과 국무장관을 포함한다. 현 총리는 루이스 몬테네그루이다. 각료회의는 총리(또는 후자의 요청에 따라 대통령)와 장관들로 구성되며 내각 역할을 한다. 법원은 사법, 행정, 재정 분야에 걸쳐 여러 단계로 조직되어 있다. 대법원은 최종심/항소 기관이다. 13명으로 구성된 헌법재판소는 법률의 합헌성을 감독한다.
포르투갈은 국가, 지역, 지방 차원에서 경쟁적인 입법/지방 행정 정부의 다당제를 운영한다. 공화국 의회, 지역 의회, 지방 자치 단체 및 교구는 사회민주당과 사회당이라는 두 정당이 지배하며, 그 외에도 체가, 자유 구상, 좌익 연합, 통일민주연합 (포르투갈 공산당 및 생태주의 녹색당), 자유당, 인민당, 사람-동물-자연당 등이 있다.
5.2. 대외 관계

1955년부터 국제 연합 회원국인 포르투갈은 NATO(1949년), OECD(1961년), EFTA(1960년)의 창립 회원국이다. 1986년 EFTA를 탈퇴하고 유럽 경제 공동체에 가입했으며, 이는 1993년 유럽 연합이 되었다. 1996년 포르투갈은 포르투갈어가 공식 언어인 포르투갈어 사용국 공동체(CPLP)를 공동 창설했다. 이 기구는 포르투갈어권 국가들의 국제기구이자 정치 협회이다. 포르투갈은 2007년 7월 제1차 EU-브라질 정상회의, 2007년 12월 제2차 EU-아프리카 연합 정상회의, 2007년 12월 리스본 조약 서명식, 2010년 11월 NATO 정상회의 등 여러 국제 정상회의와 행사를 개최했다.
포르투갈은 라틴 연합(1983년)과 이베로-아메리카 국가 기구(1949년)의 정회원국이었다. 이전 식민지였던 브라질과 우호 동맹 및 이중 국적 조약을 맺고 있다. 포르투갈과 영국은 1373년에 체결된 영국-포르투갈 동맹(윈저 조약)을 통해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현역 군사 협정을 공유하고 있다.
5.3. 영토 분쟁
올리벤사: 1297년부터 포르투갈의 주권 하에 있던 올리벤사 지방 자치체는 오렌지 전쟁 이후 1801년 바다호스 조약에 따라 스페인에 할양되었다. 포르투갈은 1815년 빈 조약에 따라 이를 다시 주장했다. 그러나 19세기부터 스페인이 지속적으로 통치해 왔으며, 스페인은 이 영토를 사실상뿐만 아니라 법적으로도 자국 영토로 간주한다.
셀바젱스 제도: 포르투갈 마데이라 자치 지방 관할하에 있는 대부분 무인도인 작은 섬 그룹이다. 1364년 항해왕자 엔히크의 지휘하에 있던 이탈리아 선원들에 의해 발견되었으며, 1438년 포르투갈 항해사 디오구 고메스 드 신트라에 의해 처음 기록되었다. 역사적으로 이 섬들은 16세기부터 포르투갈 개인 소유주에게 속해 있다가 1971년 정부가 매입하여 전체 군도를 포함하는 자연보호구역을 설정했다. 이 섬들은 1911년부터 스페인에 의해 영유권이 주장되었으며, 이 분쟁은 양국 간 정치적 긴장을 야기하기도 했다. 스페인이 이 작은 섬들을 주장하려는 주된 이유는 섬 자체의 본질적인 가치보다는 포르투갈의 배타적 경제 수역을 남쪽으로 상당히 확장시켜 스페인에 불리하게 작용한다는 점이다. 셀바젱스 제도는 2017년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 잠정 목록에 추가되었다.
5.4. 군사

포르투갈군은 해군, 육군, 공군 세 개의 군종으로 구성되며, 포르투갈군 총참모부가 지휘한다. 주로 국가의 영토 보전을 보호하는 자위군 역할을 하지만, 해외 영토에서의 공격 임무에도 투입될 수 있다. 최근 몇 년간 포르투갈군은 아프가니스탄, 이라크, 레바논,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코소보, 말리, 중앙아프리카 공화국, 소말리아, 모잠비크, 동티모르 등 다양한 지역에서 NATO 및 유럽 연합 군사 임무를 수행했다. 2023년 기준, 세 군종의 병력은 24,000명이다. 2023년 포르투갈의 국방비 지출은 40억 미국 달러 이상으로, GDP의 1.48%에 해당한다.
11,000명의 병력을 보유한 육군은 3개 여단과 기타 소규모 부대로 구성된다. 보병 여단(주로 판두르 II APC, M114 곡사포, MIM-72 채퍼랠 방공 시스템으로 무장), 기계화 여단(주로 레오파르트 2 A6 전차와 M113A2 APC로 무장), 신속 대응 여단(낙하산 부대, 특공대, 레인저, 포병 연대로 구성)이 있다. 해군(7,000명, 이 중 900명은 해병대)은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현존 해군으로, 호위함 5척, 초계함 2척, 잠수함 2척, 해양 순찰선 20척을 보유하고 있다. 공군(6,000명)은 록히드 F-16M 파이팅 팰컨을 주력 전투기로 운용한다.
세 군종 외에도 25,000명의 병력으로 구성된 군법 및 조직의 적용을 받는 보안군(국가헌병대)인 공화국 국가경비대가 있다. 이 부대는 국방부와 내무부 모두의 권한 하에 있다. 이라크와 동티모르에서의 국제 작전 참여를 위해 파견대를 제공했다. 미국은 아소르스 제도의 테르세이라섬에 있는 라제스 공군기지에 770명의 병력을 주둔시키고 있다. 연합 합동군 사령부 리스본(JFC 리스본)은 NATO의 연합 작전 사령부의 3개 주요 하위 부대 중 하나이다.
5.5. 사법 및 치안
포르투갈 법 체계는 대륙법 법 체계의 일부이다. 주요 법률로는 헌법(1976년), 포르투갈 민법(1966년), 포르투갈 형법(1982년) 등이 있으며, 모두 개정되었다. 기타 관련 법률로는 상법(1888년)과 민사소송법(1961년)이 있다. 포르투갈 법률은 이전 식민지 및 영토에 적용되었으며, 해당 국가들에 계속해서 영향을 미치고 있다. 최고 국가 법원은 대법원과 헌법재판소이다. 검찰청은 공화국 검찰총장이 이끌며, 독립적인 검찰 기관을 구성한다.
2001년 마약 비범죄화가 선언되어 포르투갈은 모든 일반적인 마약의 사용 및 개인 소지를 허용한 최초의 국가가 되었다. 다른 유럽 국가들로부터 포르투갈의 마약 소비가 엄청나게 증가할 것이라는 비판에도 불구하고, 전반적인 마약 사용은 감소했으며 HIV 감염 사례도 2009년까지 50% 감소했다. 16세에서 18세 사이의 전반적인 마약 사용은 감소했지만, 마리화나 사용은 약간 증가했다.
포르투갈의 성소수자 권리는 21세기에 크게 증진되었다. 2003년 포르투갈은 성적 지향에 따른 차별 금지 고용법을 추가했다. 2004년에는 성적 지향이 차별로부터 보호받는 특성 중 하나로 헌법에 추가되었다. 2010년 포르투갈은 유럽에서 6번째, 세계에서 8번째로 동성결혼을 국가 차원에서 합법화한 국가가 되었다.
성소수자 입양은 2016년부터 허용되었으며, 여성 동성 커플의 의학적 보조 생식 접근도 허용되었다. 2017년 성 정체성법은 트랜스젠더의 성별 및 이름 변경 법적 절차를 간소화하여 미성년자가 법적 문서에서 성별 표시를 변경하기 쉽게 만들었다. 2018년에는 성 정체성 및 성 표현 자기 결정권이 보호받게 되었고, 간성 미성년자는 "미성년자의 성 정체성이 나타날 때까지" 불필요한 의학적 시술로부터 법적으로 보호받게 되었으며, 성징에 따른 차별로부터 보호받을 권리가 같은 법에 의해 보호받게 되었다.
안락사는 여러 차례의 의회 검토 끝에 합법화되었다. 말기 질환으로 극심한 고통을 겪고 있지만 여전히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18세 이상의 국내 거주자는 보조 사망을 요청할 법적 권리가 있다. 비거주자나 외국인은 안락사가 허용되지 않는다. 2023년 의회 승인에도 불구하고 안락사 법규는 아직 정의되고 시행되지 않았다.
치안
포르투갈의 주요 경찰 조직은 국가 공화국 수비대(GNR, 국가헌병대), 도시 지역에서 활동하는 민간 경찰력인 공공 안전 경찰(PSP), 그리고 공공부의 감독을 받는 고도로 전문화된 범죄 수사 경찰인 사법 경찰(PJ)이다.
포르투갈에는 법무부가 운영하는 총 49개의 교정 시설이 있다. 여기에는 중앙 교도소 17개, 특별 교도소 4개, 지역 교도소 27개, '지원 구금 센터'(Cadeia de Apoio) 1개가 포함된다. 2023년 1월 1일 기준, 현재 수감자 수는 약 12,257명으로, 전체 인구의 약 0.12%에 해당한다. 수감률은 2010년 이후 증가 추세이며, 지난 8년간 15% 증가했다.
6. 행정 구역
포르투갈의 행정 구역은 크게 본토와 자치 지방으로 나뉜다. 본토는 18개의 현(Distrito)으로 구성되며, 각 현은 여러 개의 지방 자치체(Município 또는 Concelho)로, 지방 자치체는 다시 여러 개의 프레게지아(Freguesia, 행정구역 최하위 단위)로 세분된다. 2013년 행정 구역 개편 이후 총 308개의 지방 자치체와 3,092개의 프레게지아가 있다. 아소르스 제도와 마데이라 제도는 자치 지방(Região Autónoma)으로, 각각 독자적인 정부와 의회를 가지고 있다.
6.1. 주요 행정 단위
포르투갈 본토의 18개 현은 다음과 같다: 아베이루, 베자, 브라가, 브라간사, 카스텔루브랑쿠, 코임브라, 에보라, 파루, 구아르다, 레이리아, 리스보아, 포르탈레그르, 포르투, 산타렝, 세투발, 비아나두카스텔루, 빌라헤알, 비제우. 각 현의 명칭은 해당 현의 중심 도시 이름을 따른다.
유럽 연합의 NUTS 체계 내에서 포르투갈은 9개 지역으로 나뉜다: 아소르스, 알렌테주, 알가르브, 센트루, 리스보아, 마데이라, 노르트, 오에스트 이 발르 두 테주, 페닌술라 드 세투발. 아소르스와 마데이라를 제외한 NUTS 지역은 28개의 하위 지역으로 세분된다. 2023년 인구 추정치.
지역 | 중심 도시 | 면적 | 인구 | [[File:196493ee217_bdaa0fc7.png|width=699px|height=1023px|165px|포르투갈 NUTS 2 지역 (2024년 기준) | |
---|---|---|---|---|---|
1 | 노르트 | 포르투 | 2.13 만 0 | 3,673,861 | |
2 | 센트루 | 코임브라 | 2.26 만 0 | 1,695,635 | |
3 | 오에스트 이 발르 두 테주 | 산타렝 | 9839 0 | 852,583 | |
4 | 그란드 리스보아 | 리스본 | 1580 0 | 2,126,578 | |
5 | 페닌술라 드 세투발 | 세투발 | 1421 0 | 834,599 | |
6 | 알렌테주 | 에보라 | 2.73 만 0 | 474,701 | |
7 | 알가르브 | 파루 | 4997 0 | 484,122 | |
8 | 마데이라 자치 지방 | 푼샬 | 801 0 | 256,622 | |
9 | 아소르스 자치 지방 | 폰타델가다 | 2351 0 | 241,025 |
현 | 면적 | 인구 | ![]() | 현 | 면적 | 인구 | ||
---|---|---|---|---|---|---|---|---|
1 | 리스보아 | 2761 0 | 2,355,867 | 10 | 구아르다 | 5518 0 | 141,995 | |
2 | 레이리아 | 3517 0 | 479,261 | 11 | 코임브라 | 3947 0 | 418,136 | |
3 | 산타렝 | 6747 0 | 441,255 | 12 | 아베이루 | 2808 0 | 725,461 | |
4 | 세투발 | 5064 0 | 902,863 | 13 | 비제우 | 5007 0 | 355,309 | |
5 | 베자 | 1.02 만 0 | 148,881 | 14 | 브라간사 | 6608 0 | 122,739 | |
6 | 파루 | 4960 0 | 484,122 | 15 | 빌라헤알 | 4328 0 | 185,086 | |
7 | 에보라 | 7393 0 | 153,475 | 16 | 포르투 | 2395 0 | 1,846,178 | |
8 | 포르탈레그르 | 6065 0 | 104,081 | 17 | 브라가 | 2673 0 | 863,547 | |
9 | 카스텔루브랑쿠 | 6675 0 | 179,608 | 18 | 비아나두카스텔루 | 2255 0 | 234,215 |
6.2. 주요 도시

포르투갈의 수도이자 가장 큰 도시는 리스본이다. 리스본은 약 56만 명의 인구를 보유하고 있으며, 리스본 대도시권 전체로는 약 280만 명 이상의 인구가 거주한다. 리스본은 포르투갈의 정치, 경제, 문화의 중심지이며, 역사적인 건축물과 현대적인 시설이 조화를 이루는 도시이다.
제2의 도시는 포르투로, 약 25만 명의 인구를 가지고 있으며, 포르투 대도시권은 약 170만 명의 인구를 포함한다. 포르투는 포트 와인의 본고장으로 유명하며, 역사 지구는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있다.
그 외 주요 도시로는 다음과 같다:
- 빌라노바드가이아: 포르투 남쪽에 위치하며, 포트 와인 저장고로 유명하다. 인구 약 31만 명.
- 브라가: 역사 깊은 종교 중심지로, "포르투갈의 로마"라고도 불린다. 인구 약 20만 명.
- 아마도라: 리스본 대도시권에 속하며, 주거 지역 중심의 도시이다. 인구 약 18만 명.
- 코임브라: 포르투갈에서 가장 오래된 대학 중 하나인 코임브라 대학교가 위치한 학문의 도시이다. 인구 약 14만 명.
- 푼샬: 마데이라 제도의 중심 도시로, 온화한 기후와 아름다운 자연경관으로 유명한 관광지이다. 인구 약 10만 명.
- 세투발: 중요한 항구 도시이자 산업 중심지이다. 인구 약 9만 명.
이 외에도 아베이루, 기마랑이스, 파루, 비제우 등 각 지역의 중심 역할을 하는 도시들이 있다. 포르투갈의 도시들은 역사적 유산과 현대적 발전이 공존하는 모습을 보여주며, 각기 독특한 매력을 지니고 있다.
2023년 포르투갈 국가통계국(INE) 추계에 따른 주요 도시(지방 자치체 기준) 인구는 다음과 같다.
순위 | 도시 | 지방 | 인구 |
---|---|---|---|
1 | 리스본 | 리스보아 | 567,131 |
2 | 신트라 | 리스보아 | 395,528 |
3 | 빌라노바드가이아 | 노르트 | 311,223 |
4 | 포르투 | 노르트 | 248,769 |
5 | 카스카이스 | 리스보아 | 219,636 |
6 | 로르스 | 리스보아 | 207,065 |
7 | 브라가 | 노르트 | 201,583 |
8 | 알마다 | 리스보아 | 181,232 |
9 | 마토지뉴스 | 노르트 | 179,558 |
10 | 아마도라 | 리스보아 | 178,253 |
11 | 오에이라스 | 리스보아 | 175,677 |
12 | 세이샬 | 리스보아 | 173,163 |
13 | 곤도마르 | 노르트 | 168,582 |
14 | 기마랑이스 | 노르트 | 156,789 |
15 | 오디벨라스 | 리스보아 | 153,708 |
16 | 코임브라 | 센트루 | 144,822 |
17 | 마이아 | 노르트 | 142,594 |
18 | 산타마리아다페이라 | 노르트 | 139,837 |
19 | 빌라프랑카드시라 | 리스보아 | 139,452 |
20 | 빌라노바드파말리상 | 노르트 | 135,994 |
7. 경제

포르투갈은 선진국이자 고소득 국가로, 1인당 GDP는 2023년 EU27 평균의 83%이며, 2021년 HDI는 0.874(세계 42위)이다. 국립 중앙은행에 세계 13위 규모의 금 보유고를 보유하고 있으며, 리튬 확인 매장량은 세계 8위이다. 2023년 총 수출액은 GDP의 47.4%를 차지했다. 포르투갈은 1986년 당시 EEC였던 유럽 연합에 가입한 이후 유럽 연합 예산의 순 수혜국이었다.
2023년 말 기준, 세계은행에 따르면 1인당 GDP(PPP)는 47,209달러였다. 2023년 포르투갈은 유로존 20개 회원국 중 1인당 GDP(PPP)가 5번째로 낮았고, 유럽 연합 27개 회원국 중에서는 8번째로 낮았다. 2022년 노동생산성은 유럽 연합 27개 회원국 중 4번째로 낮았으며, EU 평균보다 35% 낮았다.
포르투갈은 유로존 창립 회원국이다. 국가 통화인 유로(€)는 2000년부터 포르투갈 이스쿠두에서 전환되기 시작하여 2002년에 통합되었다. 포르투갈의 중앙은행은 유럽 중앙은행 시스템의 핵심 부분인 뱅쿠 드 포르투갈이다. 대부분의 산업, 기업 및 금융 기관은 리스본 및 포르투 대도시권에 집중되어 있으며, 세투발, 아베이루, 브라가, 코임브라, 레이리아, 파루 현은 이 두 주요 지역 외의 가장 큰 경제 중심지이다.
1974년 카네이션 혁명으로 포르투갈의 가장 두드러진 경제 확장기 중 하나가 끝난 이후, 국가의 연간 경제 성장에 상당한 변화가 일어났다. 1974년 혁명의 혼란 이후, 포르투갈은 변화하는 현대 세계 경제에 적응하려고 노력했으며, 이 과정은 계속되고 있다. 1990년대 이후 포르투갈의 공공 소비 기반 경제 발전 모델은 수출, 민간 투자, 첨단 기술 부문 개발에 초점을 맞춘 시스템으로 변화했다. 결과적으로 비즈니스 서비스는 섬유, 의류, 신발, 코르크 (포르투갈은 세계 최고의 코르크 생산국), 목재 제품, 음료와 같은 전통 산업을 추월했다.
2010년대 포르투갈 경제는 1970년대 이후 가장 심각한 불황을 겪었으며, 그 결과 2011년 5월 유럽 연합과 국제 통화 기금으로부터 780억 유로의 구제 금융을 받았다. 2023년 말까지 GDP 대비 부채 비율은 100% 미만인 97.9%로 떨어졌고, 2024년 말에는 95.3%로 더욱 하락했다.
2024년 평균 총 급여는 월 1,602유로였으며, 법으로 규정된 최저 임금은 2025년 기준 월 870유로(연 14회 지급)이다. 세계 경제 포럼에서 발표한 2019년 세계 경쟁력 보고서는 포르투갈을 34위로 평가했다. 넘베오 삶의 질 지수는 2023년 포르투갈을 세계 20위로 평가했다.

유로넥스트 리스본 증권 거래소에 상장된 기업들, 예를 들어 EDP, 갈프, 제로니무 마르틴스, 모타-엥질, 노바베이스, 세마파, 포르투셀 소포르셀, 포르투갈 텔레콤, 소나에 등은 직원 수, 순이익 또는 국제 시장 점유율 기준으로 가장 큰 기업들 중 하나이다. 유로넥스트 리스본은 주요 증권 거래소이며, 범유럽 증권 거래소 그룹인 유로넥스트의 일부이다. PSI-20은 포르투갈에서 가장 선별적이고 널리 알려진 주가 지수이다.
2018년 이후 OECD 경제 보고서는 회복세를 보여주고 있다. 포르투갈의 임대료와 주택 가격은 특히 리스본에서 급등하여 2022년 임대료가 37%나 올랐다. 같은 해 8%의 인플레이션율은 문제를 더욱 악화시켰다. IMF에 따르면 2022년 포르투갈의 코로나19 팬데믹으로부터의 경제 회복은 EU 평균보다 상당히 양호했다. 완만하지만 2023년에도 경제 성장은 지속되었고 인플레이션은 계속해서 5%로 감소했다. 2024년 연간 인플레이션은 하락세를 이어가 2.3%로 마감되었으며, 소폭의 경제 성장과 함께였다. 2025년 경제는 연 1.9% 성장할 것으로 예상되며, 회계연도 인플레이션은 2.1%로 전망된다. 이러한 다소 낙관적인 지표는 민간 소비 증가, 투자, 고용 증가 및 실업 완화에 의해 뒷받침된다.
포르투갈의 농업은 소규모에서 중간 규모의 가족 소유 분산형 단위에 기반을 두고 있다. 그러나 이 부문에는 대규모 집약 농업, 수출 지향적 농업 기업도 포함된다. 이 나라는 토마토, 감귤류, 녹색 채소, 쌀, 밀, 보리, 옥수수, 올리브, 유지 작물, 견과, 체리, 빌베리, 포도, 식용 버섯, 유제품, 가금류, 쇠고기 등 다양한 작물과 축산물을 생산한다. FAO에 따르면 포르투갈은 세계 최고의 코르크 및 캐럽 생산국으로, 각각 세계 생산량의 약 50%와 30%를 차지한다. 또한 세계 3위의 밤 수출국이자 유럽 3위의 펄프 생산국이다. 포르투갈은 세계 10대 올리브유 생산국 중 하나이며 4번째 수출국이다. 이 나라는 고급 와인으로 유명한 세계 최대의 와인 수출국 중 하나이다. 임업은 농촌 지역 사회와 산업에서 중요한 경제적 역할을 해왔다. 2001년 농업 총생산은 경제의 4%를 차지했지만, 2022년에는 2%였다.
7.1. 주요 산업 및 동향
포르투갈 경제는 서비스업, 제조업, 관광업이 주축을 이루고 있다. 과거에는 섬유, 의류, 신발, 코르크 가공업 등 전통적인 제조업이 강세였으나, 유럽 연합 가입 이후 자동차, 전자, 금형, 제약, 정보통신기술(ICT) 등 고부가가치 산업으로 다변화되었다. 농업 부문에서는 와인, 올리브유, 과일, 채소 등이 주요 생산품이며, 특히 포트 와인과 마데이라 와인은 세계적으로 유명하다. 수산업 또한 중요한 역할을 하며, 정어리, 대구 등이 주요 어획물이다.
최근 포르투갈 경제는 2007-2008년 세계 금융 위기 이후 어려움을 겪었으나, 구조 조정과 긴축 정책을 통해 점진적인 회복세를 보이고 있다. 관광업은 경제 성장의 주요 동력이며, 외국인 직접 투자 유치와 수출 증대 노력도 지속되고 있다. 신재생 에너지 분야, 특히 풍력 및 태양광 발전에도 적극적으로 투자하고 있으며, 유럽 내에서 높은 신재생 에너지 비중을 차지하는 국가 중 하나이다. 주요 경제 과제로는 국가 부채 관리, 청년 실업 문제 해결, 산업 경쟁력 강화 등이 있다.
7.2. 관광

여행 및 관광은 포르투갈 경제의 중요한 부분이다. 2023년 기준, 실질 GDP 성장의 거의 절반이 관광 부문에서 비롯되었으며, 관광은 GDP의 16.5%를 차지했다. 포르투갈은 경쟁국들보다 앞서 나가기 위해 건강, 자연, 농촌 관광과 같은 틈새 명소에 집중해야 했다.
포르투갈은 세계에서 가장 많이 방문하는 20개국 중 하나로, 2023년까지 2,650만 명 이상의 외국인 관광객을 유치했다. 2014년, 포르투갈은 USA 투데이에 의해 최고의 유럽 국가로 선정되었다. 2017년, 포르투갈은 유럽 최고의 여행지로, 2018년과 2019년에는 세계 최고의 여행지로 선정되었다.
포르투갈의 관광 명소로는 리스본, 카스카이스, 알가르브, 마데이라, 나자레, 파티마, 오비두스, 포르투, 브라가, 기마랑이스, 코임브라 등이 있다. 리스본은 유럽 도시 중 16번째로 많은 관광객을 유치하며(2006년 리스본 호텔 투숙객 700만 명), 포르투갈의 주요 관광 중심지 역할을 하고 있다.
7.3. 과학 기술

과학 기술 연구 활동은 주로 공립 대학 소속의 R&D 단위 네트워크와 INETI - 국립 공학 기술 혁신 연구소 및 INRB - 국립 생물 자원 연구소와 같은 국가 관리 자율 연구 기관 내에서 수행된다. 이 시스템의 자금 지원 및 관리는 과학 기술 고등 교육부와 과학 기술 재단 (Fundação para a Ciência e Tecnologia푼다상 파라 아 시엔시아 이 테크놀로지아포르투갈어)의 권한 하에 수행된다. 연구 보조금 및 동료 검토 간행물 규모 기준으로 공립 대학의 가장 큰 R&D 단위에는 생명과학 연구 기관이 포함된다.
최대 규모의 비국영 연구 기관으로는 굴벤키안 과학 연구소와 신경과학 및 종양학 연구 센터인 샹팔리모 재단이 있다. 국내 및 다국적 첨단 기술 및 산업 기업들이 연구 개발 프로젝트를 담당한다. 포르투갈에서 가장 오래된 학회 중 하나는 1779년에 설립된 리스본 과학 아카데미이다.
이베리아 양자 국가 지원 연구 노력에는 국제 이베리아 나노기술 연구소와 이베르시비스 분산 컴퓨팅 플랫폼이 포함된다. 포르투갈은 범유럽 과학 기구의 회원국이다. 여기에는 유럽 우주국(ESA), 유럽 입자 물리 연구소(CERN), ITER, 유럽 남방 천문대(ESO)가 포함된다. 포르투갈에는 유럽에서 가장 큰 수족관인 리스본 해양수족관이 있으며, 과학 관련 전시 및 보급에 중점을 둔 다른 주목할 만한 기관으로는 국영 기관인 시엔시아 비바, 코임브라 대학교 과학 박물관, 리스본 대학교의 국립 자연사 박물관, 비저너리움 등이 있다. 유럽 혁신 스코어보드 2011은 혁신 지출 및 성과 증가와 함께 포르투갈 기반 혁신을 15위로 평가했다. 포르투갈은 2024년 세계 혁신 지수에서 31위를 차지했다.
7.4. 교통

포르투갈은 6.87 만 0의 도로망을 보유하고 있으며, 이 중 거의 3000 0이 44개 고속도로 시스템의 일부이다. 많은 고속도로에서는 통행료를 지불해야 한다(비아 베르드 참조). 바스쿠 다 가마 다리는 12.345 km로 EU에서 가장 긴 다리(유럽에서 두 번째로 김)이다.
포르투갈 본토의 8.90 만 0 영토는 리스본, 포르투, 파루, 베자 등 주요 도시 근처에 위치한 4개의 국제공항을 통해 서비스된다. 리스본의 지리적 위치는 국내 여러 공항에서 많은 외국 항공사의 경유지가 된다. 주요 국적 항공사는 TAP 포르투갈 항공이지만, 다른 많은 국내 항공사들이 국내외 서비스를 제공한다.
가장 중요한 공항은 리스본, 포르투, 파루, 푼샬(마데이라), 폰타델가다(아소르스)에 있으며, 국립 공항 당국 그룹인 ANA - 아에로포르투스 드 포르투갈이 관리한다. 현재 리스본 공항을 대체할 새로운 공항 건설 계획은 50년 이상 논의되었으나 여러 가지 이유로 항상 연기되었다.
전국 및 스페인으로 확장되는 국가 철도 시스템은 콤보이우스 드 포르투갈(CP)이 지원하고 관리한다. 승객 및 화물 철도 운송은 현재 운행 중인 2791 0의 철도 노선을 통해 이루어지며, 이 중 1430 0은 전철화되었고 약 900 0은 시속 120 0 이상의 열차 속도를 허용한다. 철도망은 인프라에스트루투라스 드 포르투갈이 관리하고 승객 및 화물 운송은 공기업인 CP가 담당한다. 2006년 CP는 1억 3,300만 명의 승객과 975.00 만 t의 화물을 운송했다.

주요 항구는 시느스, 레이숑이스, 리스본, 세투발, 아베이루, 피게이라다포스, 파루에 위치한다. 두 개의 가장 큰 대도시 지역에는 지하철 시스템이 있다: 리스본 대도시권에는 리스본 지하철과 메트로 술 두 테주 경전철 시스템이 있고, 포르투 대도시권에는 포르투 지하철 경전철 시스템이 있으며, 각 시스템은 35 0 이상의 노선을 보유하고 있다. 코임브라는 현재 간선급행버스체계인 메트로 몬데구를 개발 중이며, 알가르브의 알가르브 메트로버스도 마찬가지이다.
포르투갈에서는 리스본 트램 서비스가 콤파니아 드 카리스 드 페후 드 리스보아(카리스)에 의해 1세기 이상 공급되어 왔다. 포르투에서는 도루강 강변의 관광 노선만 남아 있는 트램 네트워크가 1895년 9월 12일에 건설을 시작했다(이베리아반도 최초). 모든 주요 도시와 마을에는 자체 지역 도시 교통망과 택시 서비스가 있다.
7.5. 에너지
포르투갈은 상당한 풍력 및 수력 자원을 보유하고 있다. 2006년 당시 세계 최대 규모의 태양광 발전소인 모라 태양광 발전소가 가동을 시작했으며, 세계 최초의 상업용 파력 발전 단지인 아구사도라 파력 발전 단지가 노르트 지역에서 문을 열었다(2008년). 2006년까지 포르투갈 전력 생산의 66%는 석탄 및 연료 발전소에서 이루어졌고, 29%는 수력 발전 댐에서, 6%는 풍력 에너지에서 생산되었다. 2008년에는 심각한 가뭄으로 수력 발전 생산량이 감소했음에도 불구하고 재생 가능 에너지 자원이 국가 전력의 43%를 생산했다. 2010년 기준 전력 수출량이 수입량을 넘어섰고, 에너지의 70%가 재생 가능 에너지원에서 나왔다.
포르투갈의 국가 에너지 전송 회사인 헤드스 에네르제티카스 나시오나이스(REN)는 날씨, 특히 바람 패턴을 예측하기 위해 모델링을 사용한다. 태양광/풍력 혁명 이전, 포르투갈은 수십 년 동안 강에 수력 발전소를 건설하여 전기를 생산해 왔다. 새로운 프로그램은 풍력과 수력을 결합한다: 풍력 터빈이 밤에 물을 위로 펌핑하고, 낮에는 물이 아래로 흘러내려 소비자의 수요가 가장 높을 때 전기를 생산한다. 포르투갈의 배전 시스템은 이제 양방향이다. 옥상 태양광 패널과 같은 소규모 발전기에서 전기를 끌어온다.
8. 인구와 사회
포르투갈의 인구 구조는 비교적 동질적이며, 대다수는 포르투갈인이다. 역사적으로 이베리아 원주민, 켈트족, 로마인, 게르만족, 무어인 등이 혼혈되어 현재의 민족 구성을 이루었다. 2023년 12월 31일 기준, 포르투갈 통계청(INE) 추산 인구는 10,639,726명이며, 이 중 여성이 52.2%, 남성이 47.8%를 차지한다.
8.1. 인구 구성 및 동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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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기준 포르투갈의 기대수명은 82.8세이며, 유엔은 2100년까지 90세 이상이 될 것으로 전망한다. 포르투갈은 1980년대부터 대체출산율 미만의 출산율을 경험하며 낮은 출산율 문제에 직면해 있다. 2024년 합계출산율(TFR)은 여성 1인당 1.36명으로 추정되어 세계에서 가장 낮은 수준 중 하나이며, 대체출산율인 2.1명에 훨씬 못 미친다. 이는 1911년 여성 1인당 5명의 높은 출산율과 대조적이다. 2016년에는 출생아의 53%가 미혼 여성에게서 태어났다.
포르투갈의 인구는 꾸준히 고령화되어 2023년 기준 중위 연령은 46세로 세계에서 11번째로 높았다. 같은 해, 65세 이상 인구 비율은 전체 인구의 21.8%로 세계에서 4번째로 높았다.
포르투갈 사회 구조는 사회적 불평등을 보여주며, 2019년 EU 사회 정의 지수에서 24위를 기록했다. 2018년 포르투갈 의회는 2007-2008년 세계 금융 위기 동안 떠났던 이민자들을 다시 유치하기 위해 귀국 이민자들에게 세금 감면을 포함하는 2019년 예산안을 승인했다. 국가 통계청의 예측에 따르면 포르투갈 인구는 1,060만 명에서 2080년까지 770만 명으로 감소하고 인구 고령화는 계속될 것이다.
2021년 인구 조사 직후 실시된 국가 통계 연구소(INE) 연구에 따르면, 2022년에서 2023년 사이 18세에서 74세 사이의 640만 명이 자신을 백인(84%)으로, 262,000명 이상이 혼혈(3%)로, 거의 170,000명이 흑인(2%)으로, 57,000명이 아시아인(<1%)으로, 47,500명이 로마인(<1%)으로 확인했다.
8.2. 도시화
포르투갈은 역사적으로 농업 중심 사회였으나, 20세기 중반 이후 산업화와 함께 도시화가 빠르게 진행되었다. 특히 카네이션 혁명 이후 경제 발전과 사회 변화로 인해 농촌 인구가 도시로 대거 이동하였다. 오늘날 포르투갈의 도시 인구 비율은 유럽 연합 평균과 비슷하거나 약간 낮은 수준이다.
주요 도시 집중 현상은 수도인 리스본과 제2의 도시인 포르투를 중심으로 뚜렷하게 나타난다. 이 두 대도시권은 포르투갈 전체 인구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며, 경제, 문화, 교육의 중심지 역할을 하고 있다. 리스본 대도시권에는 리스본 외에도 신트라, 카스카이스, 알마다, 세투발 등의 위성 도시들이 발달해 있으며, 포르투 대도시권 역시 빌라노바드가이아, 마토지뉴스, 마이아 등 주변 도시들과 함께 광역 경제권을 형성하고 있다.
그 외 지역에서는 코임브라, 브라가, 아베이루, 파루 등이 각 지역의 중심 도시로서 역할을 수행하며, 이들 도시를 중심으로 한 소규모 도시권이 형성되어 있다. 최근에는 해안 지역을 중심으로 관광 산업이 발달하면서 일부 해안 도시들의 인구 증가 및 도시화가 나타나고 있으나, 내륙 농촌 지역은 인구 감소와 고령화 문제에 직면해 있다. 포르투갈 정부는 지역 균형 발전을 위한 정책을 추진하고 있으나, 대도시로의 인구 집중 현상은 여전히 지속되고 있다.
OECD와 유로스타트는 통근 패턴을 기준으로 8개의 포르투갈의 대도시권을 정의한다. 이 중 인구가 100만 명을 넘는 곳은 두 곳뿐이며, 2013년 지방 정부 개혁 이후 이 두 곳만이 대도시권의 행정적 법적 지위를 가지고 있다: 리스본 대도시권과 그레이터 포르투 대도시권. 몇몇 소규모 대도시권(알가르브, 아베이루, 코임브라, 미뉴, 비제우)도 2003년부터 2008년까지 이 지위를 가졌으나, 이후 도시 간 공동체로 전환되었으며, 이들의 영토는 대략 NUTS III 통계 지역에 기반을 두고 있다.
8.3. 이민

2023년 포르투갈의 인구는 10,639,726명이었으며, 이 중 1,044,606명이 합법적인 거주 외국인이었다. 거주 외국인은 인구의 약 10%를 차지한다. 이 수치에는 외국계 포르투갈 시민은 포함되지 않는데, 포르투갈에서는 민족성에 기반한 데이터 수집이 불법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2008년에서 2022년 사이에 포르투갈 국적을 취득한 340,000명 이상의 거주 외국인(2022년 기준 국가 인구의 약 3.27%에 해당)은 공식적인 포르투갈 시민이 되었기 때문에 이민 통계에 포함되지 않았다. 2022년에만 거의 21,000명의 외국인 거주자가 포르투갈 국적을 취득했으며, 이 중 11,170명이 여성이었고 9,674명이 남성이었다.
오랫동안 이민 송출국이었던 포르투갈(브라질인의 대다수가 포르투갈계 혈통을 가짐)은 순 이민 유입국이 되었다. 이민자 유입은 마지막 인도(1961년까지 포르투갈령), 아프리카(1975년까지 포르투갈령), 극동 아시아(1999년까지 포르투갈령) 해외 영토뿐만 아니라 세계 다른 지역에서도 이루어졌다.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2022년 포르투갈의 이민 송출률은 6.9‰로 증가했지만, 여전히 약 11.3‰의 이민 유입률보다는 훨씬 낮았다. 또한 포르투갈 이민자의 압도적인 다수는 단기간 동안 출국하는 경향이 있으며, 2022년에 출국한 사람들 중 56.8%는 1년 미만 동안 출국했다.
1990년대 이후 건설 붐과 함께 우크라이나인, 브라질인, 아프리카계 포르투갈인 및 기타 아프리카인의 새로운 물결이 이 나라에 정착했다. 루마니아인, 몰도바인, 코소보 알바니아인, 러시아인, 불가리아인, 중국인도 이 나라로 이주했다. 베네수엘라인, 파키스탄인, 인도인, 방글라데시인 이주민의 수도 상당하다. 또한 포르투갈의 로마인 인구는 약 50,000명으로 추산된다.
약 30,000명 이상의 계절적, 종종 불법 이민자들이 주로 오데미라와 같은 남부 도시의 농업에 종사하며, 종종 조직적인 계절 노동자 네트워크에 의해 착취당한다. 적절한 서류나 노동 계약 없이 자주 도착하는 이 이주민들은 포르투갈 남부 농업 노동자의 90% 이상을 차지한다. 대부분은 인도, 방글라데시, 네팔, 파키스탄, 태국 출신의 동남아시아인이다. 알렌테주 내륙에는 많은 아프리카 노동자들이 있다. 상당수는 동유럽, 몰도바, 우크라이나, 루마니아, 브라질에서도 온다.
또한 이탈리아인, 프랑스인, 독일인 또는 기타 북유럽 국가 출신의 상당수 EU 시민이 이 나라에 영주하게 되었다. 영국인, 캐나다인, 미국인으로 구성된 대규모 외국인 커뮤니티도 있다. 영국인 커뮤니티는 주로 알가르브와 마데이라에 거주하는 은퇴한 연금 수급자로 구성된다.
국가 통계 연구소(INE)가 2022년에서 2023년 사이에 실시한 연구에 따르면, 인구의 13%인 140만 명이 이민 배경을 가지고 있으며, 이 중 947,500명이 1세대 이민자로, 주로 리스본 대도시권과 알가르브에 집중되어 있다. 이 조사는 인터뷰 당시 최소 1년 이상 합법적으로 국내에 거주한 사람들만을 대상으로 실시되었으며, 2022년 통계청 수치에 따르면 국가 인구의 16.1% 또는 1,683,829명이 1세대 이민자였음을 유의해야 한다.
8.4. 종교

포르투갈에서 오랜 역사를 지닌 로마 가톨릭교는 여전히 지배적인 종교이다. 과거에는 가톨릭 교회가 국교였으나, 현재 포르투갈에는 공식적인 국교가 없다.
2021년 인구 조사에 따르면 포르투갈 인구의 80.2%가 로마 가톨릭교 신자였으며, 그 외 개신교 (2.13%), 여호와의 증인 (0.72%), 동방 정교회 (0.69%), 기타 기독교 (1.04%), 이슬람교 (0.42%), 힌두교 (0.22%), 불교 (0.19%), 유대교 (0.03%), 기타 종교 (0.28%) 순이었고, 약 14.09%는 자신을 무종교라고 밝혔다.
포르투갈은 세속 국가이다. 정교분리는 포르투갈 제1공화국 시기에 공식적으로 이루어졌으며, 이는 1976년 포르투갈 헌법에서 재확인되었다. 헌법 외에 포르투갈의 종교의 자유와 관련된 가장 중요한 두 문서는 포르투갈과 성좌 간의 1940년 협약(1971년 개정)과 2001년 종교 자유법이다. 많은 포르투갈 공휴일, 축제 및 전통은 기독교적 기원이나 의미를 가지고 있다.
8.5. 언어

포르투갈의 공식 언어는 포르투갈어이다. 미란다어 또한 북동부 포르투갈 일부 지방 자치체에서 공동 공식 지역 언어로 인정받고 있다. 미란다어는 아스투리아스레온어 그룹에 속한다. 포르투갈에서는 6,000명에서 7,000명 사이의 미란다어 사용자가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또한, 바항쿠스에서 사용되는 특정 방언인 바항케뉴어도 2021년부터 포르투갈에서 공식적으로 인정 및 보호받고 있다. 포르투갈어의 사회 방언인 민데리쿠어는 민드 마을에서 약 500명이 사용한다.
국제 영어 능력 지수에 따르면, 포르투갈은 스페인, 이탈리아, 프랑스와 같은 다른 로망스어 사용 유럽 국가들보다 영어 능숙도 수준이 높다.
8.6. 교육
포르투갈의 교육 제도는 유치원(6세 미만), 기초 교육(9년, 3단계, 의무), 중등 교육(3년, 2010년부터 의무), 고등 교육(대학 및 폴리테크닉 교육으로 세분화)으로 나뉜다. 대학은 일반적으로 단과대학으로 조직된다. 연구소와 학교 또한 포르투갈 고등 교육 기관의 자율적인 하위 부문에 대한 일반적인 명칭이다.
2021년 포르투갈의 총 성인 문해율은 99.8%였다. 국제 학생 평가 프로그램(PISA) 2018에 따르면, 포르투갈은 읽기, 수학, 과학 분야에서 OECD 평균 수준의 점수를 받았다. 읽기와 수학 분야의 2018년 평균 성적은 2009년에서 2015년 사이에 관찰된 수준과 비슷했다. 과학 분야의 2018년 평균 성적은 2015년보다 낮았으며, 2009년과 2012년에 관찰된 수준으로 돌아가 평균보다 약간 낮았다. 2022년 PISA 결과에서는 OECD 학생들의 평균 점수가 전례 없이 하락했으며, 포르투갈도 이러한 하락세를 따랐다.
대학 연령 시민(20세)의 약 47.6%가 포르투갈의 고등 교육 기관 중 한 곳에 재학 중이다(미국 50%, OECD 평균 35%와 비교). 유학생들의 목적지일 뿐만 아니라, 포르투갈은 유학생들의 주요 출신지 중 하나이기도 하다. 2005년 국내외 모든 고등 교육 학생 수는 총 380,937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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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르투갈 대학은 1290년부터 존재해 왔다. 가장 오래된 포르투갈 대학교는 처음 리스본에 설립되었다가 코임브라로 이전했다. 역사적으로 포르투갈 제국 내에서 포르투갈인들은 1792년 아메리카 대륙에서 가장 오래된 공과대학(리우데자네이루의 왕립 포병 요새화 및 설계 아카데미)과 1842년 아시아에서 가장 오래된 의과대학(고아의 고아 의과외과학교)을 설립했다. 현재 포르투갈에서 가장 큰 대학은 리스본 대학교이다.
볼로냐 프로세스는 2006년 포르투갈 대학 및 폴리테크닉 연구소에 의해 채택되었다. 국영 교육 기관의 고등 교육은 경쟁 기반으로 제공되며, 학생 입학에 관한 국가 데이터베이스를 통해 정원 제한 제도가 시행된다. 그러나 모든 고등 교육 기관은 운동선수, 성인 지원자(23세 이상), 유학생, 포르투갈어권 출신 외국인 학생, 다른 기관의 학위 소지자, 다른 기관의 학생(학업 편입), 이전 학생(재입학), 과정 변경 등 기타 특별 입학 절차를 통해 추가 공석을 제공하며, 이는 각 기관 또는 학과에서 정한 특정 표준 및 규정의 적용을 받는다.
대부분의 학생 비용은 공공 자금으로 지원된다. 포르투갈은 포르투갈 고등 교육 및 연구의 효율성을 더욱 발전시키고 높이기 위해 매사추세츠 공과대학교 및 기타 미국 기관과 협력 협정을 체결했다.
8.7. 보건
2025년, 포르투갈은 세계에서 23번째로 우수한 의료 시스템으로 평가받았으며, 이는 2000년 세계보건기구(WHO)의 세계 최고 공공 의료 시스템 순위에서 12위를 차지했던 것보다 눈에 띄게 낮아진 순위이다. 의료 시스템은 세 가지 공존하는 시스템으로 특징지어진다: 국민 건강 서비스(Serviço Nacional de Saúde, SNS), 특정 직업을 위한 특별 사회 건강 보험 제도(건강 하위 시스템), 그리고 자발적인 민간 건강 보험이다. SNS는 보편적인 보장을 제공한다. 또한, 인구의 약 55%가 건강 하위 시스템의 적용을 받고, 43%는 민간 보험 제도의 적용을 받으며, 또 다른 12%는 상호 기금의 적용을 받는다.
보건부는 의료 정책 개발 및 SNS 관리를 담당한다. 5개의 지역 보건 행정부는 국가 의료 정책 목표 시행, 지침 및 프로토콜 개발, 의료 서비스 제공 감독을 담당한다. 분권화 노력은 재정 및 관리 책임을 지역 수준으로 이전하는 것을 목표로 해왔다. 실제로 예산 설정 및 지출에 대한 지역 보건 행정부의 자율성은 1차 진료에 국한되어 왔다. SNS는 주로 일반 세금으로 자금을 조달한다. 고용주(국가 포함) 및 직원 기여금은 건강 하위 시스템의 주요 자금 조달원이다. 또한, 환자의 직접 지불 및 자발적인 건강 보험료가 자금 조달의 큰 부분을 차지한다.
다른 '유럽-A 국가들'(서유럽)과 마찬가지로, 대부분의 포르투갈인들은 비전염성 질환으로 사망한다. 심혈관계 질환(CVD)으로 인한 사망은 연간 약 30,000명으로, 전체 연간 사망자의 3분의 1을 차지하지만, 주요 두 가지 구성 요소인 허혈성 심장 질환과 뇌혈관 질환은 유럽-A 국가들과 비교하여 반대 경향을 보이며, 뇌혈관 질환은 포르투갈에서 단일 사망 원인 중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여 연간 11,000명 이상이 사망한다. 종양 질환은 국내 전체 사망자의 22%를 차지하며, 폐암과 유방암 발병률은 낮고 자궁경부암과 전립선암은 더 빈번하다. 당뇨병 사망률은 2010년 4.5%에서 2021년 2.8%로 감소하고 있다.
포르투갈의 영아 사망률(IMR)은 2024년 기준 출생아 1,000명당 2.25명이었다. 2023년 유로스타트 여론 조사에 따르면 성인의 55.4%가 자신의 건강을 좋거나 매우 좋다고 평가했으며, 이는 유럽 연합에서 수집된 비율 중 세 번째로 낮은 수치이다. 국내 최대 대학 병원은 리스본의 산타 마리아 병원이다.
9. 문화

포르투갈은 유럽 대륙과 지중해를 건너온 다양한 문명의 영향을 받거나, 대항해 시대에 적극적인 역할을 수행하면서 도입된 문명의 영향을 받으며 독특한 문화를 발전시켜 왔다. 1990년대와 2000년대(10년)에 포르투갈은 1956년 리스본에 설립된 칼루스트 굴벤키안 재단 외에도 공공 문화 시설을 현대화했다.
여기에는 리스본의 벨렝 문화 센터, 포르투의 세랄베스 재단과 카자 다 무지카, 그리고 전국 여러 지방 자치 단체에 건설되거나 개조된 시립 도서관 및 콘서트 홀과 같은 새로운 공공 문화 시설이 포함된다. 포르투갈은 17개의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을 보유하고 있으며, 이는 유럽에서 9위, 세계에서 18위에 해당한다.
9.1. 건축

포르투갈의 전통 건축은 독특하며, 16세기 초 수십 년 동안 화려하고 복합적인 포르투갈 건축 장식 양식인 마누엘 양식(포르투갈 후기 고딕 양식으로도 알려짐)과 18세기 폼발 양식이 대표적이다.
20세기 전통 건축을 재해석한 부드러운 포르투갈 양식은 주요 도시, 특히 리스본에서 광범위하게 나타난다. 현대 포르투갈은 에두아르두 소투 드 모라, 알바루 시자 비에이라(두 사람 모두 프리츠커상 수상자), 곤살루 비른과 같은 세계적으로 유명한 건축가들을 배출했다. 포르투갈에서는 토마스 타베이라도 특히 경기장 설계로 유명하다. 아줄레주는 포르투갈 전통 건축 자재 및 건축 기법 중 주류를 이루는 전형적인 요소이다.
9.2. 미술

포르투갈은 회화 분야에서 풍부한 역사를 가지고 있다. 15세기로 거슬러 올라가는 최초의 유명 화가들, 예를 들어 누노 곤살베스와 바스쿠 페르난데스는 후기 고딕 회화 시대의 일부였다. 르네상스 시대 동안 포르투갈 회화는 북유럽 회화의 큰 영향을 받았다. 바로크 시대에는 주제파 드 오비두스와 비에이라 루시타누가 가장 다작한 화가였다.
자신의 작품 파두로 유명한 조제 말료아와 테오필루 브라가 및 안테루 드 켄탈의 초상화를 그린 콜룸바누 보르달루 피녜이루는 모두 자연주의 회화의 참고 자료였다.
20세기는 모더니즘의 도래를 목격했으며, 이와 함께 가장 저명한 포르투갈 화가들이 등장했다. 아마데우 드 소자 카르도주는 프랑스 화가들, 특히 들로네 부부(로베르와 소니아)에게 큰 영향을 받았다. 그의 가장 잘 알려진 작품 중에는 칸상 포풀라르 - 아 후사 이 우 피가루가 있다. 다른 위대한 모더니스트 화가/작가로는 시인 페르난두 페소아의 친구였던 카를루스 보텔류와 알마다 네그레이루스가 있으며, 페소아의 초상화를 그렸다. 그는 입체파와 미래주의 경향 모두에 깊은 영향을 받았다.
오늘날 시각 예술 분야에서 저명한 국제적 인물로는 화가 비에이라 다 실바, 줄리우 포마르, 조아나 바스콘셀루스, 줄리앙 사르멘투, 파울라 헤구 등이 있다.
9.3. 문학

초기 서양 문학 중 하나인 포르투갈 문학은 텍스트뿐만 아니라 노래를 통해서도 발전했다. 1350년까지 포르투갈-갈리시아어 음유시인들은 이베리아반도 대부분 지역에 문학적 영향력을 전파했으며, 시로 유명해진 디니스 1세(1261년~1325년)와 같은 왕들도 있었다. 다른 왕들도 포르투갈 역사 전반에 걸쳐 문학 작품을 쓰거나 후원했으며, 예를 들어 페르난두 1세(1367년~1383년)는 페루 메니누가 매사냥의 서를 쓰는 것을 지원했다.
모험가이자 시인인 루이스 드 카몽이스(1524년경~1580년)는 서사시 우스 루지아다스(루시아드)를 썼으며, 베르길리우스의 아이네이스를 주요 영향으로 삼았다. 현대 포르투갈 시는 보카즈(1765년~1805년), 안테루 드 켄탈(1842년~1891년), 페르난두 페소아(1888년~1935년)가 대표하는 신고전주의 및 현대 스타일을 뿌리로 하고 있다. 현대 포르투갈 문학은 알메이다 가헤트, 카밀루 카스텔루 브랑쿠, 에사 드 케이로스, 페르난두 페소아, 소피아 드 멜루 브레이네르 안드레센, 안토니우 로부 안투느스, 미겔 토르가, 아구스티나 베사-루이스와 같은 작가들로 대표된다. 특히 인기 있고 저명한 작가는 1998년 노벨 문학상 수상자인 조제 사라마구이다.
9.4. 음악

포르투갈 음악은 다양한 장르를 포괄한다. 전통적인 음악은 백파이프( 가이타), 드럼, 플루트, 탬버린, 아코디언, 우쿨렐레(카바키뉴)와 같은 악기를 활용하여 지역 관습에 깊은 뿌리를 둔 포르투갈 민속 음악이다. 포르투갈 민속 음악에는 19세기에 리스본에서 시작된 우울한 도시 음악인 유명한 장르 파두가 있으며, 아마도 보헤미안 환경에서 유래했을 것이며, 일반적으로 포르투갈 기타 및 사우다드 또는 그리움과 관련이 있다. 독특한 유형의 "음유시인 세레나데" 파두인 코임브라 파두도 주목할 만하다. 국제적으로 유명한 연주자로는 아말리아 호드리게스, 카를루스 파레데스, 조제 아폰수, 마리자, 카를루스 두 카르무, 안토니우 샤이뉴, 미시아, 둘스 폰트스, 마드레데우스 등이 있다.
민속, 파두, 클래식 음악 외에도 팝 및 기타 현대 음악, 특히 북미와 영국, 그리고 다양한 포르투갈, 카리브해, 포르투갈어권 아프리카 및 브라질 예술가 및 밴드와 같은 다른 장르가 포르투갈에 존재한다. 국제적으로 인정받는 예술가로는 둘스 폰트스, 문스펠, 부라카 송 시스테마, 블라스티드 메커니즘, 다비드 카레이라, 더 기프트가 있으며, 후자 세 명은 MTV 유럽 뮤직 어워드 후보에 올랐다.
포르투갈에는 잠부제이라두마르의 페스티벌 수두에스트, 파레드스드코라의 페스티벌 드 파레드스드코라, 카미냐 근처의 페스티벌 빌라르드모루스, 이다냐아노바 지방 자치체의 붐 페스티벌, 그레이터 리스본의 NOS 얼라이브, 에리세이라의 수몰 서머 페스트, 록 인 리우 리스보아, 수페르 보크 수페르 록과 같은 여러 여름 음악 축제가 있으며, 그레이터 포르투 지역에는 프리마베라 사운드 포르투와 MEO 마레스 비바스가 있다.

포르투갈 전역의 여러 도시에서 주요 행사인 케이마 다스 피타스 학생 축제는 매년 대중에게 잘 알려진 유명 음악가와 밴드는 물론, 확실한 인정을 받으려는 신진 유망 예술가들을 선보인다. 2005년 포르투갈은 리스본의 파빌랴웅 아틀란티쿠에서 MTV 유럽 뮤직 어워드를 개최했다. 또한 포르투갈은 살바도르 소브랄이 부른 "아마르 펠루스 도이스"라는 곡으로 키이우에서 열린 유로비전 송 콘테스트 2017에서 우승했으며, 이후 2018년 대회를 개최했다.
포르투갈 클래식 음악은 서양 음악의 중요한 장을 구성한다. 수세기에 걸쳐 작곡가와 연주자들의 이름이 두드러졌는데, 예를 들어 음유시인 마르팀 코닥스와 디니스 1세 국왕, 다성음악가 두아르트 로부, 필리프 드 마갈량이스, 마누엘 카르도주, 페드루 드 크리스투, 오르가니스트 마누엘 호드리게스 코엘류, 작곡가 겸 하프시코드 연주자 카를루스 세이샤스, 가수 루이자 토디, 교향곡 작곡가 겸 피아니스트 주앙 도밍구스 봄템푸, 작곡가 겸 음악학자 페르난두 로페스-그라사 등이 있다. 포르투갈 음악의 황금기는 아마도 17세기 고전 다성음악의 전성기(에보라 악파, 산타크루스드코임브라)와 일치할 것이다. 현재 위대한 참고 자료 중에는 피아니스트 아르투르 피자루, 마리아 주앙 피르스, 세케이라 코스타, 바이올리니스트 카를루스 다마스, 작곡가 에마뉘엘 누느스, 작곡가 겸 지휘자 알바루 카수투의 이름이 두드러진다. 가장 중요한 교향악단은 굴벤키안 재단, 포르투 국립 오케스트라, 포르투갈 교향악단이다. 오페라의 경우 리스본의 상카를루스 국립극장이 가장 대표적이다.
9.5. 영화
포르투갈 영화 산업은 마노엘 드 올리베이라 감독과 같은 국제적으로 인정받는 인물들을 배출하며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다. 그는 활동 기간 내내 평단의 찬사를 받았으며, 2015년 106세의 나이로 사망할 때까지 활동한 세계에서 가장 나이가 많은 현역 감독이었다. 포르투갈 영화는 카네이션 혁명 이후 특히 두드러졌으며, 주앙 보텔류, 주앙 세자르 몬테이루, 주앙 페드루 호드리게스, 페드루 코스타, 페르난두 로페스, 주앙 루이 게하 다 마타, 테레자 빌라베르드와 같은 감독들이 비평가들의 호평을 받았다. 포르투갈 영화 배우로는 조아킹 드 알메이다, 누누 로페스, 다니엘라 후아, 마리아 드 메데이루스, 디오구 인판트, 루시아 모니즈, 시오라텔라 나르디, 리누 파시올리 등이 국제적으로 알려져 있다.
9.6. 요리

포르투갈 요리는 다양하며, 대서양 식단의 일부이다. 포르투갈 식단의 중요한 재료는 말린 대구 (포르투갈어로 바칼랴우)이다. 포르투갈인들은 대구 요리법을 365가지나 숙달했다고 하며, 이는 일년 내내 매일 다른 대구 요리를 먹을 수 있다는 뜻이다. 몇 가지 요리법을 예로 들면 바칼랴우 아 브라스, 바칼랴우 아 고메스 드 사, 바칼랴우 콩 나타스, 바칼랴우 아 미뇨타, 바칼랴우 이스피리투알, 바칼랴우 아 라가레이루, 바칼랴우 아사두, 바칼랴우 아 제 두 피푸, 파스테이스 드 바칼랴우 등이 있다. 다른 생선 요리로는 구운 정어리, 고등어, 도미, 그리고 여러 종류의 생선이나 조개류에 양파, 마늘, 월계수 잎, 감자, 피망, 파슬리를 섞어 토마토를 기본으로 한 스튜인 칼데이라다가 있다.
일반적인 쇠고기, 돼지고기, 닭고기, 염소고기, 양고기 또는 오리고기로 만든 포르투갈 전통 육류 요리로는 코지두 아 포르투게자, 페이조아다, 프랑구 드 슈하스쿠, 레이탕 (새끼 돼지 통구이), 샨파나, 카르느 드 포르쿠 아 알렌테자나 등이 있다. 대표적인 패스트푸드 요리로는 포르투의 프란세지냐 (프렌치)와 비파나스 (돼지고기 구이) 또는 프레구 (쇠고기 구이) 샌드위치가 있다. 계란 커스터드 타르트 페이스트리인 파스텔 드 나타는 포르투갈의 대표적이고 인기 있는 음식으로, 해외에서도 인기를 얻어 포르투갈을 방문하는 외국인 관광객들에게도 인기가 높다.
포르투갈 와인은 로마 시대부터 인정을 받아왔으며, 로마인들은 포르투갈을 기후 때문에 그들의 신 바쿠스와 연관시켰다. 최고의 포르투갈 와인으로는 비뉴 베르드, 알바리뉴, 비뉴 두 도루, 비뉴 두 알렌테주, 비뉴 두 당, 비뉴 다 바이라다와 달콤한 포트 와인, 마데이라 와인, 그리고 세투발과 파바이우스의 모스카텔이 있다.
9.7. 스포츠

축구는 포르투갈에서 가장 인기 있는 스포츠이다. 지역 아마추어부터 세계적인 프로 수준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축구 대회가 열린다. 역대 최고의 선수들인 에우제비우, 피구, 크리스티아누 호날두는 포르투갈 축구 역사의 주요 상징이다. 포르투갈 축구 감독들도 주목할 만하며, 조제 모리뉴와 아벨 페헤이라가 가장 유명한 감독들 중 하나이다.
포르투갈 축구 국가대표팀은 UEFA 유로 2016에서 결승전에서 개최국 프랑스를 1-0으로 꺾고 한 차례 UEFA 유럽 선수권 대회 우승을 차지했다. 또한, 포르투갈은 2018-19 UEFA 네이션스리그에서 우승했고, 유로 2004에서 준우승, 1966년 FIFA 월드컵에서 3위, 2006년 FIFA 월드컵에서 4위를 차지했다. 청소년 대표팀 수준에서는 두 차례 FIFA 세계 청소년 선수권 대회에서 우승했다.
SL 벤피카, 스포르팅 CP, FC 포르투는 인기와 우승 횟수 면에서 가장 큰 스포츠 클럽으로, 종종 "우스 트레스 그란드스"("빅 쓰리")로 알려져 있다. 이들은 유럽 UEFA 클럽 대회에서 8개의 타이틀을 획득했으며 21번의 결승전에 진출했다. 포르투갈 축구 연맹(FPF) - 페데라상 포르투게자 드 푸테볼 -은 매년 여자 축구 토너먼트인 알가르브컵을 개최한다.
축구 외에도 "빅 쓰리"를 포함한 많은 포르투갈 스포츠 클럽들이 다양한 수준의 성공과 인기를 누리며 다른 스포츠 경기에 참가하고 있으며, 여기에는 롤러하키, 농구, 풋살, 핸드볼, 배구, 육상 등이 포함된다. 포르투갈 럭비 유니언 국가대표팀은 2027년 럭비 월드컵 출전 자격을 얻었고, 포르투갈 럭비 세븐스 국가대표팀은 월드 럭비 세븐스 시리즈에 출전했다.
도로 사이클링은 볼타 아 포르투갈이 가장 중요한 대회이며, 인기 있는 스포츠 행사로 스포르팅 CP, 보아비스타, 클루브 드 시클리스무 드 타비라, 우니앙 시클리스타 다 마이아와 같은 프로 사이클링팀이 참가한다. 모터스포츠에서 포르투갈은 랠리 포르투갈, 에스토릴 및 알가르브 서킷으로 유명하며, 2년마다 WTCC의 한 단계를 개최하는 부활한 포르투 스트리트 서킷과 미겔 올리베이라, 티아구 몬테이루, 안토니우 펠리스 다 코스타, 필리프 알부케르크, 페드루 라미, 아르민두 아라우주 등 다양한 모터스포츠 분야에서 국제적으로 유명한 여러 선수들로도 유명하다.
수상 스포츠에서는 포르투갈에 세 가지 주요 스포츠가 있다: 수영, 수구, 서핑. 포르투갈은 올림픽 메달리스트 페르난두 피멘타와 같은 여러 세계 및 유럽 챔피언을 배출하며 카누에서 성공을 거두었다. 매년 이 나라는 월드 서프 리그 남녀 챔피언십 투어의 한 단계인 페니시의 수페르투부스에서 열리는 MEO 립 컬 프로 포르투갈을 개최한다. 포르투갈 북부에는 선수들이 지팡이를 사용하여 한 명 또는 여러 명의 상대와 대결하는 독창적인 무술인 조구 두 파우가 있다. 기타 인기 있는 스포츠 관련 레크리에이션 야외 활동으로는 에어소프트, 낚시, 골프, 하이킹, 사냥, 오리엔티어링 등이 있다. 포르투갈은 세계 최고의 골프 목적지 중 하나이다.
9.8. 세계유산
포르투갈에는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문화 및 자연유산이 다수 존재한다. 건축, 역사 지구, 자연 경관 등 다양한 분야에서 그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대표적인 유산은 다음과 같다.
- 리스본의 제로니무스 수도원과 벨렝탑 (1983년 등재): 마누엘 양식 건축의 정수로, 포르투갈 대항해 시대의 번영을 상징한다.
- 토마르의 그리스도 수도원 (1983년 등재): 템플 기사단과 관련된 역사적인 수도원으로, 다양한 건축 양식이 혼합되어 있다.
- 바탈랴 수도원 (1983년 등재): 포르투갈 고딕 건축의 걸작으로, 알주바로타 전투 승리를 기념하여 건립되었다.
- 에보라 역사 지구 (1986년 등재): 로마 시대 유적부터 중세, 르네상스 시대 건축물까지 잘 보존된 역사 도시다.
- 알코바사 수도원 (1989년 등재): 초기 고딕 양식의 장엄한 수도원으로, 포르투갈 역사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다.
- 신트라 문화경관 (1995년 등재): 낭만주의 궁전, 성, 정원 등이 어우러진 독특한 문화경관을 자랑한다. 페나성, 신트라 국립 궁전, 무어인의 성 등이 포함된다.
- 포르투 역사 지구, 루이스 1세 다리 및 세라 두 필라르 수도원 (1996년 등재): 도루강 유역에 발달한 역사적인 항구 도시로, 독특한 도시 경관과 건축물을 간직하고 있다.

- 코아 계곡과 시에가 베르데의 선사시대 암각화 유적 (1998년, 2010년 확장 등재): 이베리아반도 최대 규모의 야외 암각화 유적으로, 구석기 시대 예술을 엿볼 수 있다. (스페인과 공동 등재)
- 마데이라의 라우리실바 (1999년 등재): 월계수림으로 대표되는 아열대성 산림으로, 독특한 생태계를 이루고 있다. (자연유산)
- 알투 도루 와인 산지 (2001년 등재): 2000년 역사의 와인 생산 전통을 지닌 지역으로, 독특한 계단식 포도밭 경관이 특징이다.
- 기마랑이스 역사 지구와 쿠루스 지구 (2001년, 2023년 확장 등재): 포르투갈 왕국의 발상지로 여겨지는 역사 도시로, 중세 건축물이 잘 보존되어 있다.
- 피쿠섬 포도원 문화 경관 (2004년 등재): 아소르스 제도의 화산섬인 피쿠섬의 독특한 포도 재배 경관을 보여준다.
- 엘바스 국경 요새 도시와 방어시설 (2012년 등재): 포르투갈과 스페인 국경에 위치한 전략적 요충지로, 광범위한 요새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
- 코임브라 대학교 - 알타 및 소피아 (2013년 등재): 유럽에서 가장 오래된 대학 중 하나로, 역사적인 대학 건물과 도시 경관이 특징이다.
- 마프라 국립 궁전, 수도원, 바실리카 및 수렵 공원 (2019년 등재): 바로크 양식의 웅장한 복합 건축물이다.
- 브라가의 봉 제수스 두 몬트 성역 (2019년 등재): 바로크 양식의 계단과 교회가 있는 종교 순례지이다.
이러한 세계유산들은 포르투갈의 풍부한 역사와 문화를 보여주는 중요한 자산이다.
9.9. 국경일 및 축제
포르투갈은 다양한 국경일과 전통 축제를 통해 풍부한 문화유산을 기념한다. 주요 국경일은 다음과 같다.
- 1월 1일: 새해 (Ano Novo아누 노부포르투갈어)
- 사순절 전 화요일: 카니발 (Carnaval카르나발포르투갈어) - 이동 축일, 화려한 퍼레이드와 가장 행렬이 특징이다.
- 성금요일: (Sexta-Feira Santa섹스타페이라 산타포르투갈어) - 부활절 전 금요일, 예수의 수난을 기리는 날이다.
- 부활절: (Páscoa파스코아포르투갈어) - 이동 축일, 기독교의 중요한 절기이다.
- 4월 25일: 자유의 날 (Dia da Liberdade지아 다 리베르다드포르투갈어) - 1974년 카네이션 혁명을 기념하는 날로, 독재 정권 종식과 민주주의 회복을 의미한다.
- 5월 1일: 노동절 (Dia do Trabalhador지아 두 트라발랴도르포르투갈어)
- 6월 10일: 포르투갈의 날 (Dia de Portugal, de Camões e das Comunidades Portuguesas지아 드 포르투갈, 드 카몽이스 이 다스 코무니다드스 포르투게자스포르투갈어) - 위대한 시인 루이스 드 카몽이스의 기일이자, 포르투갈 국민 및 해외 동포를 기념하는 날이다.
- 그리스도의 성체 성혈 대축일: (Corpo de Deus코르푸 드 데우스포르투갈어) - 이동 축일, 부활절 60일 후 목요일.
- 8월 15일: 성모 승천 대축일 (Assunção de Nossa Senhora아순상 드 노사 세뇨라포르투갈어)
- 10월 5일: 공화국 선포 기념일 (Implantação da República임플란타상 다 헤푸블리카포르투갈어) - 1910년 왕정 종식과 공화국 수립을 기념한다.
- 11월 1일: 모든 성인 대축일 (Todos os Santos토두스 우스 산투스포르투갈어)
- 12월 1일: 독립 회복 기념일 (Restauração da Independência헤스타우라상 다 인데펜덴시아포르투갈어) - 1640년 스페인으로부터의 독립 회복을 기념한다.
- 12월 8일: 원죄 없이 잉태되신 동정 마리아 대축일 (Imaculada Conceição이마쿨라다 콘세이상포르투갈어)
- 12월 25일: 크리스마스 (Natal나탈포르투갈어)
이 외에도 각 지역별로 수호성인을 기리는 다양한 축제(Festa)가 열린다. 특히 6월에는 리스본의 성 안토니오 축제(Festas de Santo António), 포르투의 성 주앙 축제(Festa de São João) 등 유명한 민속 축제가 개최되어 거리 행진, 전통 음식, 음악, 불꽃놀이 등으로 도시 전체가 활기를 띤다. 이러한 축제들은 포르투갈 사람들의 공동체 의식과 전통문화를 생생하게 보여주는 중요한 행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