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생애
자이수마 사이디 은두레는 감비아 서부 바카우에서 태어나 어머니 밑에서 자랐다. 그의 첫 단거리 달리기 경험은 고향의 고등학교에서 시작되었다.
1.1. 어린 시절과 교육
사이디 은두레는 감비아 서부 바카우에서 태어나 어머니의 보살핌을 받으며 성장했다. 그의 첫 단거리 달리기 경험은 고향의 고등학교에서 시작되었다. 그는 이미 100m 종목을 시작한 친구를 이기는 것을 피하기 위해 200m 종목을 선택했다고 알려져 있다. 2001년 6월, 사이디는 나이지리아 라고스에서 열린 서아프리카 선수권 대회에 참가하여 200m에서 21.27초를 기록하며 우승했다. 이 기록은 당시 감비아 신기록이었다. 그러나 국가 기록 수립에도 불구하고 그는 진지한 훈련에 몰두하지 않았고, 학교 친구들과 농구나 배구를 즐기는 것을 더 선호했다.
1.2. 노르웨이 이주 및 초기 활동
2002년, 18세의 사이디는 노르웨이 오슬로로 이주했다. 그의 친척들 중 다수가 이미 오슬로 인근에 살고 있었으며, 특히 1970년대부터 노르웨이에 거주해온 그의 아버지가 중요한 역할을 했다. 여가 활동을 찾던 사이디는 다시 육상을 시작하기로 결심하고 오슬로의 육상 클럽 중 하나인 IL i BUL에 가입했다. 이 클럽의 훈련은 국제적으로 잘 알려진 비슬레트 스타디온에서 진행되었다. 이곳에서 그의 재능은 곧 발견되었고, 사이디는 현재까지 그를 지도하고 있는 올라브 마그네 트베이타 코치와 인연을 맺게 되었다.
1.3. 개인적인 삶
사이디 은두레는 나중에 노르웨이 산네피오르 출신의 전 국가대표 400m 허들 선수인 헤이디 트롤사스와 관계를 맺었다. 두 사람은 결국 오슬로 외곽의 블리스타들리아로 이주하여 현재까지 거주하고 있다. 트롤사스는 2008년까지 사이디의 매니저 역할도 수행했다. 사이디의 경력을 전문적으로 관리할 에이전트가 필요하다고 판단한 그들은 저명한 스웨덴 육상 매니저인 다니엘 베스트펠트를 고용했다. 그 직후 사이디는 나이키와 5년 장기 계약을 체결하며 큰 수입을 올리게 되었다.
2. 국적 변경 및 관련 이슈
사이디 은두레는 노르웨이로 이주한 후, 새로운 고국을 대표하기 위해 국적 변경을 추진했다. 이 과정에서 감비아 육상 협회와의 갈등이 있었으나, 결국 합의를 통해 노르웨이 국가대표로 국제 대회에 참가할 수 있게 되었다.
2.1. 감비아에서 노르웨이로의 국적 변경
노르웨이로 이주한 후, 사이디는 새로운 조국을 대표하기 위해 국적 변경을 고려했다. 그는 한 신문 인터뷰에서 자신이 "100% 노르웨이인"이라고 언급하기도 했다. 노르웨이 이민법에 따라 이민자는 노르웨이 시민권을 얻기 위해 5년을 기다려야 했으며, 이 절차는 2006년 12월에 완료되어 그가 노르웨이 국내 선수권 대회에 참가하고 세계 육상 선수권 대회나 올림픽과 같은 주요 국제 대회에서 노르웨이를 대표할 수 있게 되었다.
반면, 그의 고국인 감비아에서는 그의 새로운 시민권 취득이 "충격적인 폭로"로 받아들여졌다. 감비아 육상 협회, 감비아 국가 올림픽 위원회, 청소년 및 스포츠부는 모두 그가 국적을 변경하는 것을 꺼려했는데, 사이디가 "국민 영웅"이자 "국가적 보물"로 여겨졌기 때문이다.
2.2. 감비아 육상 협회와의 갈등 및 해결
궁극적으로 감비아는 사이디가 노르웨이를 대표하여 주요 국제 선수권 대회에 3년간 참가하는 것을 막기로 결정했다. 이러한 조치는 주로 사이드 사이프 샤힌과 같이 케냐에서 카타르로 국적을 바꾼 올림픽 챔피언 선수들의 사례처럼, 아프리카 선수들이 더 부유한 국가에서 경력을 추구하는 것을 막기 위해 마련된 것이었다. 그러나 샤힌과 달리 사이디는 귀화한 노르웨이인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감비아 시민권을 포기한 사이디는 2007년 세계 육상 선수권 대회에서 어떤 국가도 대표할 수 없었으며, 심지어 IAAF 월드 애슬레틱스 투어 대회에서는 그의 이름 옆에 노르웨이 국기가 표시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러했다. 이에 노르웨이 육상 협회는 2008년 하계 올림픽에 맞춰 이 제재가 해제되기를 희망했으며, 이는 감비아 육상 협회의 승인에 달려 있었다.
2007년 11월, 이 불일치가 해결되었다는 보도가 나왔다. 노르웨이 육상 협회와 노르웨이 올림픽 위원회 및 스포츠 연맹은 감비아 측과 합의에 도달했으며, 이 합의 조건에는 사이디가 그의 고국에서 젊은 선수들을 위한 14일간의 훈련 캠프를 이끌어야 한다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었다. 연말이 되자, 사이디가 처음으로 노르웨이 엘리트 육상팀의 일원으로 소개되면서 "형식적인 절차"만 남게 되었다. 2008년 TV 인터뷰에서 그는 자신의 국적 의식에 대해 자세히 설명했다. 그는 감비아인이자 노르웨이인이라는 느낌을 표현하면서도, 사람들 사이의 차이점보다는 유사점을 강조했다.
3. 주요 업적 및 활동
사이디 은두레는 노르웨이 이주 후 꾸준히 기량을 발전시키며 국제 무대에서 두각을 나타냈다. 특히 2007년에는 100m와 200m에서 노르웨이 신기록을 수립하며 국제적 도약의 발판을 마련했다.
3.1. 초기 경력 및 주니어 시절 (2002-2003)
2002년, 노르웨이에 온 사이디는 더욱 진지하게 국제 대회에 참가하기 시작했다. 18세의 나이로 자메이카 킹스턴에서 열린 2002년 세계 주니어 육상 선수권 대회에 참가하여 200m 경기에 출전했으나, 예선에서 21.53초를 기록하며 조 5위에 머물러 다음 라운드에 진출하지 못했다. 일주일 후, 그는 영국 맨체스터에서 열린 2002년 코먼웰스 게임에 참가했다. 여기서 그는 200m에서 21.25초의 새로운 감비아 기록을 세우며 처음으로 다음 라운드에 진출했다. 비록 21.20초를 기록하며 조 5위로 준결승 진출에는 실패했지만, 이 기록은 또 다른 감비아 신기록이었다. 그해 여름 노르웨이에 도착한 후, 그는 100m 종목에 도전하여 8월 드람멘에서 10.66초를 기록했다.
2003년 시즌은 꾸준한 발전을 보였지만, 아직 국제적인 큰 돌파구는 없었다。 7월 스웨덴 예테보리에서 10.52초를 기록하며 자신의 첫 감비아 100m 기록을 경신했다. 이는 2001년 5월 라민 산양이 세운 10.54초의 기록을 넘어선 것이었다. 다음 날 그는 200m에서 21.18초를 기록하며 이틀 만에 두 번째 감비아 기록을 세웠다. 2003년 아프리카 주니어 육상 선수권 대회에서는 100m 동메달과 200m 금메달을 획득했다. 8월, 19세의 나이로 첫 세계 육상 선수권 대회인 2003년 세계 육상 선수권 대회에 참가했으나, 200m에서 21.42초를 기록하며 예선에서 탈락했다. 하지만 그는 조에서 가장 빠른 반응 시간인 0.128초를 기록했다. 또한 5월에는 400m에 처음 도전하여 오슬로에서 48.76초를 기록했다. 그는 30세 이후에는 400m를 주력 종목으로 삼을 수도 있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3.2. 시니어 데뷔 및 국제 대회 경험 (2004-2005)
2004년은 사이디가 시니어 수준에서 첫 국제 메달을 획득하고 단거리 두 종목에서 크게 발전한 해였다. 실내 시즌 동안, 그는 60m 개인 최고 기록을 6.77초로 단축했다. 5월 말에는 헝가리 솜버트헤이에서 200m에서 21초의 벽을 허물며 20.69초의 감비아 신기록을 세웠다. 같은 대회에서 100m 기록도 이틀 연속 두 차례 경신하여 5월 29일 10.46초, 5월 30일 10.37초를 기록했다. 두 달 후, 그는 콩고 공화국 브라자빌에서 열린 2004년 아프리카 육상 선수권 대회 100m에서 10.43초를 기록하며 올루소지 파수바와 이드리사 사누에 이어 동메달을 획득했다. 이는 감비아가 아프리카 선수권 대회에서 획득한 세 번째 메달이었다.
8월, 사이디는 첫 올림픽 참가를 위한 최종 준비를 했다. 그는 스웨덴 말뫼에서 100m 국가 기록을 10.29초로, 일주일 후 릴레함메르에서 10.27초로 다시 단축하며 좋은 기량을 보였다. 3주 후 올림픽이 시작되었고, 사이디는 여자 선수 아다마 은지에와 함께 두 명으로 구성된 감비아 올림픽 선수단의 일원으로서 개막식에서 감비아 기수로 선정되었다. 그는 100m와 200m 모두에 출전했으며, 처음으로 국제 대회에서 예선을 통과했다. 100m 경기에서 사이디는 10.26초로 기록을 단축하며 조 3위로 다음 라운드에 진출했으나, 준준결승에서 10.39초로 조 최하위를 기록하며 탈락했다. 200m 경기에서는 조 5위로 20.78초를 기록하며 간신히 다음 라운드에 진출했으나, 준준결승에서 조 6위로 탈락했다.
2005년 그의 시즌 데뷔는 6월 4일 플레뢰에서 이루어졌으며, 100m에서 10.53초, 200m에서 21.14초를 기록했다. 2005년 시즌의 주요 목표는 2005년 세계 육상 선수권 대회였다. 작년 올림픽과 달리 사이디는 200m에만 출전했다. 그는 예선과 준준결승을 무난히 통과했으나, 준결승에서 20.75초로 조 5위에 그쳐 우사인 볼트에게 0.07초 뒤지며 결승 진출에 실패했다. 세계 선수권 대회 두 달 전, 그는 6월 12일 폴란드 바르샤바에서 20.57초를 기록하며 200m에서 또 다른 감비아 기록을 세웠다. 같은 대회에서 100m 시즌 최고 기록인 10.31초를 기록했다. 세계 선수권 대회 일주일 후, 그는 말뫼 대회에서 우승하며 200m 기록을 20.51초로 다시 경신했다.
3.3. 기록 경신 및 국제적 도약 (2006-2007)
2006년 시즌은 3월 오스트레일리아 멜버른에서 열린 2006년 코먼웰스 게임으로 일찍 시작되었다. 사이디는 3월 9일 100m에서 10.56초를 기록했으나, 3월 19일 열린 100m 종목에는 출전하지 않고 200m 종목을 선택했다. 준결승에 진출했으나, 조 5위를 기록하며 탈락했다.
코먼웰스 게임 후 사이디는 한 달간 훈련에 집중한 뒤, 4월 말 세네갈 다카르에서 200m에서 20.89초를 기록했다。 2주 후 카타르 도하에서 열린 슈퍼 그랑프리 대회에서는 20.59초로 기록을 단축했다. 그는 2004년 메달을 방어하기 위해 2006년 아프리카 육상 선수권 대회에 참가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여름 내내 활발히 활동했다. 다양한 그랑프리 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며 IAAF 월드 애슬레틱스 투어에서 5위를 차지하여 처음으로 IAAF 월드 애슬레틱스 파이널에 출전할 수 있게 되었다. 2006년 IAAF 월드 애슬레틱스 파이널은 독일 슈투트가르트에서 열렸으며, 사이디는 200m에서 20.47초의 새로운 감비아 기록을 세우며 6위를 차지하며 국제적인 돌파구를 마련했다.
이것이 그의 마지막 감비아 기록이 되었다. 그는 월드 애슬레틱스 파이널 며칠 전 노르웨이 시민권을 신청했으며, 다음 달 노르웨이 이민청에서 그의 시민권 신청이 승인되었다.
2007년, 그는 5월 도하 슈퍼 그랑프리 대회 200m에서 20.62초로 시즌 데뷔를 했다. 6월 말까지 100m에 출전하지 않다가, 릴레함메르에서 열린 국내 대회에서 10.50초를 기록했다. 다음 주 말뫼에서 열린 대회에서는 10.44초를 기록했지만, 200m에서는 20.41초로 개인 최고 기록을 경신하며 성공적인 대회를 보냈다. 월말에도 좋은 기량을 이어가며 에스토니아 탈린에서 100m 개인 최고 기록을 10.10초로 단축했고, 같은 대회에서 200m 개인 최고 기록도 20.25초로 단축했다. "노르웨이 기록이 다음"이라는 뉴스 보도처럼, 그는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8월 7일, 그는 스톡홀름에서 열린 DN 갈란 슈퍼 그랑프리 대회에 두 종목 모두 참가했다. 그는 100m에서 10.07초를 기록하며 1996년부터 게이르 모엔이 보유하고 있던 노르웨이 기록을 경신했다. 이 기록은 1.0m/s의 맞바람 속에서 달성되었으며, 그로 하여금 9초대 기록 달성이 가능하다고 믿게 만들었다.
처음으로 노르웨이 선수권 대회에 참가할 자격을 얻은 사이디는 두 단거리 종목 모두에서 우승했다. 8월 중순 아심에서 열린 선수권 대회 첫날, 그는 비가 오고 다소 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100m에서 10.14초를 기록하며 2위 선수보다 0.5초 이상 앞섰다. 이 결과로 그는 전국 선수권 대회의 최고 남자 선수에게 주어지는 왕의 컵을 수상했다. 선수권 대회 둘째 날, 그는 "훈련 세션"이라고 묘사한 200m 경기에서 우승했다. 그러나 그는 국적 문제로 인해 2007년 세계 육상 선수권 대회에 참가할 수 없었고, 대신 9월 IAAF 골든 리그 대회에 집중하기로 했다.
9월 7일, 그는 벨트클라세 취리히 대회에 참가하여 10.20초로 2위를 차지했다. 이틀 후, 그는 이탈리아 리에티로 가서 아사파 파월 등과 경쟁했다. 1.7m/s의 순풍이 부는 좋은 조건에서 파월은 예선에서 9.74초의 새로운 세계 기록을 세웠고, 사이디는 10.07초로 자신의 노르웨이 기록과 동률을 이루었다. 다음 주, 벨기에 브뤼셀에서 열린 메모리얼 반 담 골든 리그 대회에서 사이디는 다시 아사파 파월에 이어 10.11초로 2위를 차지했다. 이틀 후, 독일 베를린에서 열린 ISTAF 대회에서 사이디는 10.14초를 기록하며 일관된 기량을 보여주었고, 말런 데보니시를 제치고 첫 골든 리그 우승을 차지했다. 이 IAAF 월드 애슬레틱스 투어 대회에서의 성공으로 그는 2007년 골든 리그 서킷을 마감한 ISTAF 대회 일주일 후 슈투트가르트에서 열린 월드 애슬레틱스 파이널의 두 단거리 종목에 모두 참가할 자격을 얻었다.
2007년 IAAF 월드 애슬레틱스 파이널에서 사이디는 100m에서 2위를, 200m에서 1위를 차지하며 두 종목 모두에서 새로운 노르웨이 기록을 세웠다. 200m에서는 최근 세계 선수권 대회 동메달리스트인 월러스 스피어몬을 제치고 19.89초를 기록했다. 이 결과는 "엄청난 놀라움"으로 묘사되었고, 사이디 자신도 20초 미만의 기록을 "미친" 또는 "믿을 수 없는" 일이라고 표현했다. 전날 그는 100m 국가 기록을 10.06초로 단축하며 아사파 파월에 이어 2위를 차지했지만, 두 번의 부정 출발로 인해 최적의 조건은 아니었다. 이러한 결과로 그는 유럽 역대 200m 목록에서 피에트로 멘네아, 콘스타디노스 케데리스, 존 레지스에 이어 4위에 올랐으며, 유럽 역대 100m 목록에서는 공동 10위에 올랐다.
9월, 사이디는 유럽 이달의 선수상 후보에 올랐으나, 폴란드 허들 선수 마레크 플라프고에게 밀려 2위를 차지했다. 2008년 초, 그는 노르웨이 올해의 신인 스포츠 선수로 선정되었는데, 이는 크로스컨트리 스키 세계 선수권 대회에서 메달을 획득한 두 명의 여성 선수를 제치고 얻은 영예였다. 당시 남아프리카 공화국에서 훈련 캠프에 참여 중이어서 시상식에는 불참했다.
3.4. 올림픽 및 주요 국제 대회 활약 (2008-2016)
3.4.1. 2008 베이징 올림픽
전년도와 달리 사이디는 2008년 실내 시즌에 참가하기로 결정했다. 그는 2월에 세 번의 60m 대회에 출전했다. 첫 대회는 플레뢰에서 열렸는데, 그는 준결승에서 실격되었다. 비공식 추가 레이스에서 6.71초를 기록했는데, 이는 공식 경기였다면 새로운 노르웨이 실내 기록이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다음 주 사이디는 영국 버밍엄에서 6.56초를 기록하며 노르웨이 기록을 0.01초 단축했다. 예선에서는 6.58초를 기록했다. 보도에 따르면 출발이 최적이지 않아 개선의 여지가 있었다. 마지막으로, 일주일 후 벨기에 헨트에서 그는 6.55초로 우승하며 자신의 기록을 0.01초 더 단축했다.
노르웨이 육상 협회의 예상과 달리, 사이디는 2008년 IAAF 세계 실내 육상 선수권 대회에 출전하지 않겠다고 발표했다. 그의 코치에 따르면, 세계 실내 선수권 대회는 최고의 단거리 선수들 사이에서 "낮은 위상"을 가지고 있었으며, 사이디는 2008년 올림픽 시즌을 위해 철저히 준비하고 싶어 했다. 대신, 그는 5월 9일 도하 슈퍼 그랑프리 대회에서 야외 시즌을 시작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하지만 4월 캘리포니아주 훈련 캠프에서 그는 샌디에이고의 미국 올림픽 훈련 센터 선수들로 구성된 4x100m 계주 팀에 합류하여 38.72초의 세계 최고 기록을 세웠다.
5월 9일 도하에서 사이디는 100m 경기에서 10.01초의 새로운 국가 기록으로 우승했다. 그의 새로운 기록은 그를 유럽 역대 목록에서 공동 7위로 끌어올렸다. IAAF 기자에 따르면, 이는 강력한 경쟁자들과 최적이지 않은 출발에도 불구하고 "아마도 그의 가장 인상적인 100m 우승"이었다. 게다가, 경기 마지막 15m는 햄스트링 통증으로 인해 방해를 받았고, 사이디는 결승선을 통과하면서 허벅지를 움켜쥐었다. 그 결과, 그는 그날 저녁 예정된 200m 경기에서 기권했다. 그러나 부상은 경미한 것으로 진단되었고, 사이디는 "크게 걱정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사이디가 올림픽 준비에 중요하다고 생각했던 비슬레트 게임 2주 전, 부상이 회복되었고 사이디가 100m와 200m 모두에 출전할 것이라는 보도가 나왔다. 그러나 일주일 후, 이러한 보도는 반박되었다. 부상에서 완전히 회복되지 않은 사이디는 6월 말까지는 경기에 출전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그의 시선은 여전히 2008년 시즌의 주요 목표인 2008년 하계 올림픽에 고정되어 있었다. 베이징에서 그는 100m 단거리 경기에 출전하여 10.37초로 예선에서 3위를 차지했다. 2차 예선에서는 10.14초로 기록을 단축했지만, 준결승 진출에는 실패했다. 그는 또한 200m 개인 종목에도 참가하여 1차 예선에서 20.54초로 2위를 차지했다. 2차 예선에서는 20.45초로 3위를 차지하며 준결승에 진출했으나, 경기 시작 시점에 나타나지 않았다.
장기적인 관점에서 그는 400m 종목에 특화할 수도 있다고 언급했다. 다른 단거리 선수들보다 날씬한 그는 상대적으로 낮은 체질량 지수를 가지고 있으며 대흉근을 강화하기 위한 벤치프레스 훈련은 하지 않는다. 캘리포니아 훈련 캠프 후 그의 체중은 74 kg이었지만, 올림픽 전에 최소 2 kg을 감량하는 것이 목표였다.
3.4.2. 2009년 이후 주요 대회
2009년 독일 베를린에서 열린 2009년 세계 육상 선수권 대회에 출전하여 100m 준결승에 진출했다. 그는 2010년 유럽 육상 선수권 대회에서 100m와 200m 결승에 진출했으나, 각각 6위와 5위에 그쳤다. 2012년 유럽 육상 선수권 대회에서는 100m에서 동메달을 획득했다.
2011년 6월 30일 IAAF 다이아몬드 리그 스위스 로잔 대회 남자 100m에서 9.99초의 노르딕 및 노르웨이 신기록을 수립하며, 노르웨이 선수로는 처음으로 10초의 벽을 돌파했다. 8월에서 9월 사이 대한민국 대구에서 열린 2011년 세계 육상 선수권 대회에는 남자 100m와 200m에 출전하여, 100m는 2회 연속 준결승에서 탈락했지만, 200m는 준결승에서 20.50초를 기록하며 처음으로 결승에 진출했다. 결승에서는 개인 최고 기록인 19.89초에 육박하는 19.95초를 기록했으나, 우사인 볼트 (19.40초), 월터 딕스 (19.70초), 크리스토프 르메트르 (19.80초)에 이어 4위를 차지하며 메달을 놓쳤다.
2012년 런던 올림픽에서는 100m 예선에서 탈락하고 200m 준결승에서 탈락했다. 2013년 8월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열린 2013년 세계 육상 선수권 대회 남자 200m 준결승에서 20.33초를 기록하며 2회 연속 결승에 진출했지만, 결승에서는 20.37초로 8위에 그쳤다. 2014년 스위스 취리히에서 열린 유럽 육상 선수권 대회에서는 100m에서 6위를, 200m에서는 예선에서 탈락했다. 2016년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서 열린 유럽 육상 선수권 대회에서는 200m 준결승에서 탈락했으며, 2016년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 200m 예선에서도 탈락했다.
4. 기록 및 성과
자이수마 사이디 은두레는 100m, 200m, 60m 종목에서 노르딕 및 노르웨이 기록을 보유하고 있으며, 여러 국제 대회에서 메달을 획득하며 뛰어난 성과를 거두었다.
4.1. 개인 최고 기록
4.2. 노르딕 및 노르웨이 기록
사이디 은두레는 노르웨이 국적을 취득한 후 여러 노르딕 및 노르웨이 신기록을 수립했다.
- 100m:
- 2007년 8월 7일, 10.07초를 기록하며 게이르 모엔의 1996년 기록을 경신하고 노르웨이 신기록을 세웠다.
- 2007년 9월 7일, 10.06초를 기록하며 자신의 노르웨이 기록을 다시 경신했다.
- 2008년 5월 9일, 10.01초를 기록하며 노르웨이 신기록을 다시 수립했다.
- 2011년 6월 30일, 9.99초를 기록하며 노르웨이 선수 최초로 10초의 벽을 허물고 노르딕 신기록을 세웠다.
- 200m:
- 2007년 9월 23일, 19.89초를 기록하며 게이르 모엔의 1996년 기록을 경신하고 노르딕 신기록을 세웠다.
- 60m (실내):
- 2008년 2월 16일, 6.56초를 기록하며 노르웨이 신기록을 세웠다.
- 2008년 2월 24일, 6.55초를 기록하며 자신의 노르웨이 기록을 다시 경신했다.
- 100m (실내):
- 2014년 2월 15일, 10.19초를 기록하며 노르웨이 신기록을 세웠다.
4.3. 주요 대회 수상 경력
연도 | 대회 | 장소 | 종목 | 결과 | 기록 | 비고 |
---|---|---|---|---|---|---|
감비아 대표 | ||||||
2003 | 아프리카 주니어 육상 선수권 대회 | 카메룬 가루아 | 100m | 동메달 | 10.59초 (+3.7 m/s) | |
2003 | 아프리카 주니어 육상 선수권 대회 | 카메룬 가루아 | 200m | 금메달 | 21.23초 (+3.6 m/s) | |
2004 | 아프리카 육상 선수권 대회 | 콩고 공화국 브라자빌 | 100m | 동메달 | 10.43초 (0.0) | |
2006 | IAAF 월드 애슬레틱스 파이널 | 독일 슈투트가르트 | 200m | 6위 | 20.47초 (-0.1 m/s) | 감비아 기록 |
노르웨이 대표 | ||||||
2007 | IAAF 월드 애슬레틱스 파이널 | 독일 슈투트가르트 | 100m | 은메달 | 10.06초 (-0.3 m/s) | 노르딕 기록 |
2007 | IAAF 월드 애슬레틱스 파이널 | 독일 슈투트가르트 | 200m | 금메달 | 19.89초 (+1.3 m/s) | 노르딕 기록 |
2007 | 노르웨이 육상 선수권 대회 | 노르웨이 아심 | 100m | 우승 | 10.14초 | 왕의 컵 수상 |
2011 | IAAF 다이아몬드 리그 | 총합 | 200m | 3위 | 5점 (3개 레이스) | |
2011 | 세계 육상 선수권 대회 | 대한민국 대구 | 200m | 4위 | 19.95초 (+0.8 m/s) | |
2012 | 유럽 육상 선수권 대회 | 핀란드 헬싱키 | 100m | 동메달 | 10.17초 (-0.7 m/s) | |
2013 | 세계 육상 선수권 대회 | 러시아 모스크바 | 200m | 8위 | 20.37초 (0.0) |
5. 논란
사이디 은두레의 선수 경력 중 가장 큰 논란은 2007년에 발생한 대마초 검출 사건이었다. 이 사건은 그의 명성에 큰 영향을 미쳤으나, 그는 적극적으로 해명하며 최종적으로는 경고 조치로 마무리되었다.
5.1. 도핑 규정 위반 사건
2007년, 사이디는 도핑 사건에 연루되었다. 8월 8일, IAAF는 사이디가 2007년 6월 28일 스위스 루체른에서 실시된 경기 중 검사에서 대마초 양성 반응을 보였다고 발표했다. 사이디는 당시 루체른에서 열린 EAA 대회에 두 단거리 종목 모두 출전하여 각각 10.26초와 20.41초를 기록했다. 첫 위반이었기 때문에 사이디에게 부과된 유일한 제재는 해당 경기 실격과 공개 경고뿐이었다.
이 소식은 사이디가 왕의 컵을 수상한 노르웨이 선수권 대회 이틀 후인 8월 14일까지 노르웨이 언론에 보도되지 않았다. 노르웨이 육상 협회 사무총장과 스포츠 이사는 물론 노르웨이 반도핑 기구도 이 사건을 알지 못했다. 나중에 이 사건이 감비아 육상 협회로 전달되었음이 밝혀졌다. 사이디는 반년 전 노르웨이 시민권을 취득했음에도 불구하고 루체른 대회에서 감비아 선수로 등록되어 있었다. 9월에는 이 사건이 노르웨이 당국으로 이관되었다.
이 사건에 대해 사이디는 즉시 루체른 대회 며칠 전 친구 집 방문 중 발생한 간접 흡연으로 인한 마리화나 흡입을 탓했다. 그는 대마초가 경기력에 해로운 영향을 미 미친다는 점을 언급하며 의도적으로 섭취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노르웨이의 도핑 전문가는 간접 흡연만으로는 도핑 검사에 영향을 미치기 어렵다고 주장하며 그의 설명을 "매우 가능성이 낮다"고 의심했다. 일부는 그의 설명을 지지하기도 했다. 유사한 사례로 캐나다 스노보더 로스 레바글리아티는 1998년 올림픽 금메달을 박탈당했으나, 간접 흡연을 주장한 후 메달을 되찾았다.
나중에 사이디가 친구들과의 모임에서 아타야 차를 마시던 중 대마초를 섭취했음이 밝혀졌고, 친구 중 한 명이 대마초를 넣어 차를 준비했다고 인정했다. 이 설명은 받아들여졌고, 12월 사이디는 노르웨이 반도핑 기구로부터 무혐의 처분을 받았다. 그러나 IAAF는 이 결정을 받아들이지 않았고, 은두레에게 반도핑 규정 위반에 대한 공개 경고를 수락하거나 CAS에 항소할지 선택하도록 했다. 은두레는 공개 경고를 수락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