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오스트레일리아 연방, 통칭 오스트레일리아 또는 호주는 오스트레일리아 대륙 본토, 태즈메이니아섬 및 다수의 작은 섬으로 이루어진 오세아니아의 주권국이다. 캔버라가 수도이며, 가장 큰 도시는 시드니이다. 오스트레일리아는 세계에서 6번째로 면적이 넓은 나라이며, 오세아니아에서 가장 넓은 나라이다. 북쪽으로는 파푸아뉴기니, 인도네시아, 동티모르와 접하고, 북동쪽으로는 솔로몬 제도와 바누아투, 남동쪽으로는 뉴질랜드와 접한다.
오스트레일리아 원주민은 최소 65,000년 전부터 오스트레일리아 대륙에 거주해왔다. 유럽인의 탐험은 17세기 초 네덜란드 탐험가들에 의해 시작되었고, 1770년 그레이트브리튼 왕국이 대륙의 동쪽 절반을 자국의 영토로 선언하였다. 최초의 정착은 1788년 1월 26일 뉴사우스웨일스 식민지에 죄수들을 이송하면서 시작되었다. 이후 인구가 꾸준히 증가하여 19세기 중반까지 대륙의 대부분이 탐험되고 5개의 추가적인 자치 영국 식민지가 설립되었다. 1901년 1월 1일, 6개의 식민지가 연합하여 오스트레일리아 연방을 결성하였다. 오스트레일리아는 입헌군주제 하의 연방 의회 민주주의 국가 체제를 유지하고 있다. 국가원수는 영국 국왕인 찰스 3세이며, 오스트레일리아 총독이 그를 대리한다.
오스트레일리아는 선진국으로, 1인당 소득이 세계에서 가장 높은 국가 중 하나이며, 경제 규모는 세계 14위이다. 인간 개발 지수에서 높은 순위를 기록하며, 삶의 질, 건강, 교육, 경제적 자유, 시민 자유 및 정치적 권리 보호 측면에서도 높은 평가를 받는다. 오스트레일리아는 약 2,700만 명의 인구를 보유하고 있으며, 매우 도시화되어 동부 해안에 인구가 밀집되어 있다. 이민자의 비율이 높아 세계에서 가장 다문화적인 국가 중 하나이다. 서비스업이 경제의 주축이며, 풍부한 천연자원을 바탕으로 광업과 농업 수출도 활발하다. 국제 연합, G20, 영연방, ANZUS, OECD, WTO, APEC, 태평양 제도 포럼의 회원국이다.
2. 국호
오스트레일리아라는 국명은 '남쪽의 땅'을 의미하는 라틴어 구절 '테라 아우스트랄리스 인코그니타'(Terra Australis Incognita테라 아우스트랄리스 인코그니타라틴어) (미지의 남쪽 땅)에서 유래했다. 고대부터 남반구에 존재한다고 상상되었던 이 가상의 대륙 이름은 17세기 초 유럽인들이 오스트레일리아 대륙을 실제로 발견하고 지도를 제작하면서 자연스럽게 이 새로운 땅에 적용되었다.
17세기 네덜란드 탐험가 아벌 타스만은 1644년 이 대륙을 '니우홀란트'(Nieuw-Holland니우홀란트네덜란드어)라고 명명했고, 이후 영국인들이 이를 영어식인 '뉴홀랜드'(New Holland뉴홀랜드영어)로 불렀다. 19세기 초까지 이 명칭이 일반적으로 사용되었으나, '테라 아우스트랄리스'라는 이름도 학술 문헌 등에서 여전히 사용되었다. 탐험가 매슈 플린더스는 1803년 오스트레일리아 대륙을 일주한 후, 1814년에 출판된 그의 항해기 《A Voyage to Terra Australis테라 아우스트랄리스로의 항해영어》에서 '오스트레일리아'라는 이름을 대중화시켰다. 그는 이 이름이 "귀에 더 부드럽게 들리고, 세계의 다른 위대한 지역들의 이름과 조화를 이룬다"고 주장했다.
뉴사우스웨일스 총독 래클런 매쿼리는 1817년 12월, '뉴홀랜드' 대신 '오스트레일리아'라는 이름을 공식적으로 사용할 것을 영국 식민지부에 건의했다. 1824년 영국 해군성은 이 대륙의 공식 명칭을 '오스트레일리아'로 하는 데 동의했고, 1830년 영국 수로국에서 발행한 《The Australia Directory오스트레일리아 항해 안내서영어》에 이 이름이 처음으로 공식 사용되었다. 1900년 오스트레일리아 연방헌법이 제정되면서 6개 식민지가 연합하여 새로운 국가를 형성할 때, '오스트레일리아 연방'(Commonwealth of Australia커먼웰스 오브 오스트레일리아영어)이라는 명칭이 공식 국호로 확정되었다.
오스트레일리아의 일상적인 별칭으로는 "오즈"(Oz오즈영어), "스트라야"(Straya스트라야영어), 그리고 "다운 언더"(Down Under다운 언더영어, 남쪽 아래 땅) 등이 있다. 대한민국에서는 한자 음차 표기인 '호사태랄리아주'(濠斯太剌利亞洲)를 줄인 '호주'(濠洲)라는 이름이 널리 통용된다.
3. 역사
오스트레일리아의 역사는 대륙에 인류가 최초로 정착한 선사 시대부터 시작하여 유럽인의 탐험과 식민화, 식민지 확장, 연방 결성, 두 차례의 세계 대전, 그리고 전후 현대 사회로 이어지는 다층적인 과정을 거쳐왔다. 특히 원주민의 오랜 역사와 문화, 그리고 이민을 통해 형성된 다문화 사회는 오늘날 오스트레일리아 정체성의 중요한 부분을 이룬다.
3.1. 선사 시대와 원주민

오스트레일리아 대륙에 인류가 거주하기 시작한 것은 약 5만 년에서 6만 5천 년 전으로 추정되며, 이들은 현재의 동남아시아 지역에서 육교나 짧은 바다를 건너 이주해 온 것으로 보인다. 현대 오스트레일리아 원주민의 조상인 이들이 몇 차례의 이주 물결을 통해 정착했는지는 확실하지 않다. 아넘랜드의 마제베베 바위 동굴은 오스트레일리아에서 가장 오래된 인류 거주 유적지 중 하나로 여겨진다. 가장 오래된 인류 유해는 약 4만 2천 년 전의 것으로 추정되는 멍고호 유적이다.
오스트레일리아 원주민 문화는 지구상에서 가장 오래 지속된 문화 중 하나로 평가받는다. 유럽인들이 처음 접촉했을 당시, 원주민들은 최소 250개의 서로 다른 언어 집단으로 나뉘어 다양한 사회를 이루고 살았으며, 그들의 경제는 주로 수렵채집에 기반을 두었다. 영국 정착 이전 원주민 인구는 30만 명에서 최대 300만 명에 이르렀을 것으로 추산된다. 원주민 문화는 땅과 환경에 깊이 연결되어 있으며, 몽환시(Dreaming) 이야기는 구전, 노래(송라인), 춤, 그림 등을 통해 전승되었다. 일부 원주민 집단은 불을 이용한 경작 방식(fire-stick farming), 양어업, 반영구적인 주거지 건설 등 다양한 생계 활동을 영위했다. 이러한 활동은 '수렵 채집', '농업', '자연 경작', '집약화' 등 다양하게 특징지어진다.
토레스 해협 제도인들은 최소 2,500년 전에 그들의 섬에 정착했다. 본토 원주민과는 문화적, 언어적으로 구별되는 이들은 항해 민족이었으며, 계절에 따른 원예 농업과 주변 바다의 자원을 통해 생계를 유지했다. 일부 섬에서는 농업이 발달하여 1300년대에는 마을이 형성되기도 했다. 18세기 중반 북부 오스트레일리아에서는 현지 원주민 집단과 현재 인도네시아에서 온 마카사르족 해삼 채취업자들 사이에 교류, 무역, 문화적 접촉이 이루어졌다.
3.2. 유럽인의 탐험과 식민화

네덜란드 동인도 회사 소속 선박인 다위프컨호의 선장 빌럼 얀스존은 1606년 유럽인 최초로 오스트레일리아에 상륙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같은 해 말, 루이스 바에스 데 토레스는 토레스 해협을 통과하여 뉴기니 남쪽 해안을 따라 항해했다. 1642년 아벌 타스만의 항해는 반디멘스랜드(현재의 태즈메이니아)에 도달한 최초의 유럽 탐험으로 알려져 있다. 1644년 두 번째 항해에서 그는 뉴기니 남쪽의 오스트레일리아 북부 해안 지도를 제작했다. 타스만의 항해 이후 네덜란드인들은 오스트레일리아 북부와 서부 해안, 그리고 태즈메이니아 남부 및 남동부 해안 대부분의 지도를 거의 완성하고 이 대륙을 '뉴홀랜드'라고 명명했다.
1770년, 영국 해군의 제임스 쿡 선장은 오스트레일리아 동부 해안을 항해하며 지도를 제작하고, 이 지역을 "뉴사우스웨일스"라 명명하며 영국령으로 선포했다. 1786년 영국 정부는 뉴사우스웨일스에 유형 식민지를 건설할 계획을 발표했다. 1788년 1월 26일, 아서 필립 선장이 이끄는 제1함대가 포트잭슨만의 시드니코브에 도착하여 유니언 잭을 게양하고 정착촌을 건설했다. 이 날은 훗날 오스트레일리아의 국경일인 오스트레일리아의 날이 되었다.
초기 정착민 대부분은 경범죄로 이송된 죄수들이었으며, 이들은 "자유 정착민"(자발적 이민자)에게 노동자나 하인으로 배정되었다. 형기를 마친 죄수들은 식민지 사회에 통합되는 경향이 있었다. 원주민의 저항, 죄수 반란, 부시레인저의 활동은 때때로 계엄령 하에 진압되었다. 1808년 럼주의 반란은 뉴사우스웨일스 군단 장교들에 의해 일어났으며, 일시적인 군사정권으로 이어졌다. 이후 20년 동안 사회경제적 개혁과 함께 뉴사우스웨일스 입법위원회와 뉴사우스웨일스 대법원이 설립되면서 유형 식민지는 시민 사회로 전환되었다.
유럽인 정착 이후 150년 동안 주로 전염병으로 인해 원주민 인구는 급감했다. 영국 식민 당국은 원주민 집단과 어떠한 조약도 체결하지 않았다. 정착지가 확장됨에 따라, 수만 명의 원주민과 수천 명의 정착민이 오스트레일리아 국경 전쟁에서 사망했으며, 많은 역사학자들은 정착민에 의한 집단살해 행위가 포함되었다고 주장한다. 살아남은 원주민들은 대부분의 땅을 정착민들에게 빼앗겼다.
3.3. 식민지 확장

1803년, 반디멘스랜드(현재의 태즈메이니아)에 정착지가 건설되었고, 1813년에는 그레고리 블랙슬랜드, 윌리엄 로슨, 윌리엄 웬트워스가 시드니 서쪽의 블루마운틴을 넘으면서 내륙으로 유럽인 정착이 확대되었다. 1827년 에드먼드 로키어 소령이 킹조지사운드(현재의 올버니)에 정착지를 건설하면서 영국의 오스트레일리아 대륙 전체에 대한 영유권 주장이 확장되었다. 1829년에는 스완강 식민지(현재의 퍼스)가 설립되어 면적상 가장 큰 오스트레일리아 식민지인 웨스턴오스트레일리아로 발전했다. 뉴사우스웨일스로부터 별도의 식민지들이 분리되었는데, 1825년 태즈메이니아, 1836년 사우스오스트레일리아, 1851년 빅토리아, 1859년 퀸즐랜드가 그것이다. 사우스오스트레일리아와 빅토리아는 자유 식민지로 건설되어 유형수들을 받지 않았다. 죄수 제도에 대한 반대가 커지면서 1850년대 동부 식민지들에서는 죄수 수송이 폐지되었다. 처음에는 자유 식민지였던 웨스턴오스트레일리아는 1850년부터 1868년까지 죄수들을 수용했다.
6개 식민지는 1855년에서 1890년 사이에 개별적으로 책임정부를 획득하여 대영제국의 일부로 남아 있으면서도 대부분의 자체적인 문제를 관리했다. 런던의 식민지부는 외교 문제 등 일부 사안에 대한 통제권을 유지했다. 식민지 의회들은 1856년부터 성인 남성에게 점진적으로 투표권을 확대했으며, 1890년대와 1900년대 사이에 여성 참정권이 동등하게 부여되었다. 일부 식민지에서는 1885년부터 투표에 인종적 제한을 두기도 했다.
19세기 중반, 버크와 윌스와 같은 탐험가들이 오스트레일리아 내륙을 탐사했다. 1850년대 초부터 시작된 일련의 골드러시는 중국, 북미, 유럽 대륙으로부터 새로운 이민자들의 유입을 가져왔으며, 부시레인저 활동과 시민 봉기의 발생을 야기했다. 후자는 1854년 밸러랫 광부들이 금 채굴 면허세에 반대하여 유레카 반란을 일으키면서 절정에 달했다. 1860년대에는 남태평양 제도민들을 강제 또는 납치하여 계약 노동자로 만드는 블랙버딩이 주로 퀸즐랜드 식민지 주민들에 의해 자행되었다.
1886년부터 오스트레일리아 식민지 정부들은 아동 보호와 강제 동화 정책을 명분으로 많은 원주민 아동들을 가족과 공동체로부터 분리시키기 시작했다. 제2차 보어 전쟁(1899년~1902년)은 오스트레일리아 식민군의 최대 규모 해외 파병이었다.
3.4. 연방 결성부터 세계 대전까지

1901년 1월 1일, 10년간의 계획, 헌법 회의, 국민투표를 거쳐 식민지들의 연방이 성립되었고, 새로운 오스트레일리아 헌법 하에 오스트레일리아 연방이 국가로 출범했다.
1901년부터 오스트레일리아는 영국 제국 내 자치령이었다. 1920년 국제 연맹 창립 회원국 중 하나였으며, 1945년 국제 연합 창립 회원국이 되었다. 1931년 웨스트민스터 헌장은 영국의 동의 없이 연방 차원에서 오스트레일리아에 대한 입법 능력을 종료시켰다. 오스트레일리아는 1942년에 이를 채택했지만, 제2차 세계 대전 중 통과된 법률의 유효성을 확인하기 위해 1939년으로 소급 적용되었다.
오스트레일리아 수도 준주는 1911년 미래의 연방 수도인 캔버라의 위치로 지정되었다. 건설 기간 동안 멜버른은 1901년부터 1927년까지 임시 수도 역할을 했다. 노던 준주는 1911년 사우스오스트레일리아의 통제에서 연방으로 이관되었다. 오스트레일리아는 1905년 파푸아 준주(이전 영국 식민지)와 1920년 뉴기니 준주(이전 독일령 뉴기니)의 행정을 맡았다. 두 지역은 1949년 파푸아 뉴기니 준주로 통합되었고 1975년 오스트레일리아로부터 독립했다.

1914년, 오스트레일리아는 제1차 세계 대전에서 연합국에 합류하여 여러 전선에서 전투에 참여했다. 해외에서 복무한 324,000명 중 약 60,000명이 사망하고 152,000명이 부상당했다. 많은 오스트레일리아인들은 1915년 갈리폴리에서 오스트레일리아 뉴질랜드 군단(ANZAC)의 패배를 새로운 국가 정체성을 형성한 "불의 세례"로 여긴다. 캠페인의 시작은 매년 안작 데이에 기념되며, 이 날은 오스트레일리아의 날과 함께 국가에서 가장 중요한 날로 여겨진다.
1939년부터 1945년까지 오스트레일리아는 제2차 세계 대전에서 연합국에 합류하여 싸웠다. 오스트레일리아의 군대는 태평양, 유럽, 지중해 및 중동 전구에서 싸웠다. 1942년 싱가포르에서의 영국의 패배와 그 직후 다윈 폭격 및 다른 일본의 오스트레일리아 본토 공격으로 인한 충격은 오스트레일리아에서 일본의 침공이 임박했다는 광범위한 믿음을 불러일으켰고, 오스트레일리아의 주요 동맹국이자 안보 파트너가 영국에서 미국으로 전환되는 계기가 되었다. 1951년부터 오스트레일리아는 ANZUS 조약 하에 미국과 동맹을 맺고 있다.
3.5. 전후와 현대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30년 동안 오스트레일리아는 생활 수준, 여가 시간, 교외 개발이 크게 향상되었다. 정부는 유럽 전역에서 대규모 이민을 장려했고 이 이민자들을 "새로운 오스트레일리아인"이라고 불렀다. "인구를 늘리거나 망하거나"라는 슬로건을 사용하여 대규모 이민이 정당화되었고, 1960년대부터 백호주의는 점차 완화되었다.
냉전 기간 동안 서방의 일원이었던 오스트레일리아는 1950년대 한국 전쟁과 말라야 비상사태, 그리고 1962년부터 1973년까지 베트ナム 전쟁에 참여했다. 사회 내 공산주의 영향력에 대한 긴장은 멘지스 정부의 오스트레일리아 공산당 금지 시도 실패와 1955년 노동당의 격렬한 분열로 이어졌다.
1967년 국민투표 결과, 연방 정부는 오스트레일리아 원주민에 관한 입법권을 얻었고, 원주민은 인구 조사에 완전히 포함되었다. 식민지 이전 토지 소유권(오스트레일리아에서는 원주민 토지 소유권이라고 함)은 오스트레일리아 고등법원이 마보 대 퀸즐랜드 (제2호) 사건에서 오스트레일리아가 유럽 정착 당시 무주지나 "사막과 미개간지"가 아니었다고 판결하면서 처음으로 법적으로 인정되었다.
1973년 백호주의의 마지막 잔재가 폐지된 후, 오스트레일리아의 인구 구성과 문화는 주로 아시아에서 온 비유럽 이민자들의 대규모 지속적인 물결로 인해 변화했다. 20세기 후반에는 다른 아시아 태평양 국가들과의 외교 관계에 대한 관심이 증가했다. 1986년 오스트레일리아 법은 오스트레일리아와 영국 간의 남은 헌법적 관계를 단절하면서도 군주를 독립적인 오스트레일리아 여왕으로서 유지했다. 1999년 헌법 국민투표에서 유권자의 55%가 군주제 폐지와 공화국 수립을 거부했다.
미국의 9·11 테러 이후 오스트레일리아는 2001년부터 2021년까지 아프가니스탄 전쟁과 2003년부터 2009년까지 이라크 전쟁에 미국과 함께 참여했다. 21세기에는 국가의 무역 관계가 점점 더 동아시아로 향하게 되었고, 중국이 최대 교역 상대국이 되었다.
코로나19 범유행에 대응하여 2020년 3월부터 연방, 주, 준주 정부는 봉쇄 및 국경과 주 경계를 넘나드는 이동과 공공 집회에 대한 기타 제한을 시행했다. 2021년 백신 접종이 시작된 후 이러한 제한은 점차 완화되었다. 2023년 10월 오스트레일리아는 코로나19가 더 이상 국가적으로 중요한 전염병 사건이 아니라고 선언했다.
4. 지리
오스트레일리아는 지리적으로 다양한 특징을 가지고 있으며, 대륙 본토와 태즈메이니아섬, 그리고 여러 작은 섬들로 구성된다. 광활한 면적에 걸쳐 사막, 열대 우림, 온대 기후 지역 등 다양한 자연환경이 나타나며, 독특한 생물 다양성을 자랑한다.
4.1. 일반적 특징

오스트레일리아는 오스트레일리아 대륙 본토, 태즈메이니아섬, 수많은 작은 연안 섬들, 그리고 애시모어 카르티에 제도, 크리스마스섬, 코코스 (킬링) 제도, 산호해 제도, 허드섬과 맥도널드 제도, 노퍽섬과 같은 외딴 해외 영토로 구성된다. 또한 오스트레일리아는 남극 대륙의 약 42%를 오스트레일리아령 남극 지역으로 주장하지만, 이 주장은 다른 4개국만이 인정하고 있다.
오스트레일리아 본토는 남위 9°에서 44° 사이, 동경 112°에서 154° 사이에 위치한다. 인도양과 태평양으로 둘러싸여 있으며, 아시아와는 아라푸라해와 티모르해로 분리되어 있다. 산호해는 퀸즐랜드 해안에 접해 있고, 태즈먼해는 오스트레일리아와 뉴질랜드를 가른다. 세계에서 가장 큰 산호초인 그레이트배리어리프는 북동쪽 해안에서 가까운 거리에 있으며 2300 km 이상 뻗어 있다.
본토는 세계에서 가장 작은 대륙이며, 국토 면적은 세계 6위이다. 오스트레일리아는 때때로 세계에서 가장 큰 섬으로 간주되기도 하며, 종종 "섬 대륙"이라고 불린다. 해안선 길이는 3.59 만 km(모든 연안 섬 제외)이며, 814.83 만 km2의 배타적 경제 수역(EEZ)을 주장한다. 이 EEZ에는 오스트레일리아령 남극 지역은 포함되지 않는다.

오스트레일리아 대부분은 건조하거나 반건조 지역이다. 2021년 기준으로 오스트레일리아는 전 세계 영구 목초지 및 방목지의 10%를 차지했다. 삼림은 오스트레일리아 육지 면적의 약 17%를 덮고 있다. 오스트레일리아 본토는 비교적 평탄하며, 평균 고도는 325 m로 모든 대륙의 평균 고도인 870 m와 비교된다. 그레이트디바이딩산맥은 오스트레일리아 동부 대부분을 따라 뻗어 있으며, 중앙 저지대와 동부 고지대를 나눈다. 본토에서 가장 높은 산은 2228 m 높이의 코지어스코산이다. 더 높은 산으로는 허드섬의 2745 m 높이의 모슨봉과 오스트레일리아령 남극 지역의 매클린톡산( 3492 m) 및 멘지스산( 3355 m)이 있다.

머리-달링 분지는 주요 강 시스템으로, 뉴사우스웨일스 내륙 대부분과 퀸즐랜드 남부를 지나 알렉산드리나호와 사우스오스트레일리아의 바다로 흘러 들어간다. 또한 더 작은 해안 강 시스템, 에어호 시스템과 같은 내륙 배수 시스템, 그리고 오스트레일리아 중부와 서부에 염호 시스템이 있다. 오스트레일리아 강들의 바다로의 방류량은 모든 대륙 중에서 가장 낮다. 본토의 평탄하고 건조한 지형은 또한 강물의 흐름을 느리게 만들어 땅에 염분이 축적되게 한다. 염류화는 오스트레일리아 토양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며, 이 토양은 세계 표준에 비해 평균적으로 영양분이 부족하다.
오스트레일리아 인구는 해안가에 집중되어 있다. 인구의 약 95%가 해안에서 100 km 이내에 거주하며, 이는 세계 평균인 39%보다 높다. 오스트레일리아의 인구 밀도는 평방 킬로미터당 3.5명으로 세계에서 가장 낮은 수준 중 하나이다. 그러나 온화한 남동부 해안 도시에는 인구가 많이 집중되어 있으며, 멜버른 중심부의 인구 밀도는 평방 킬로미터당 38명을 초과한다.
4.2. 지질

이전에 로디니아와 곤드와나 초대륙의 일부였던 오스트레일리아는 약 3,500만 년 전에 남극 대륙과 완전히 분리되어 북쪽으로 계속 표류했다. 마지막 빙하기가 끝나면서 해수면이 상승하여 약 8,000년 전에는 오스트레일리아 본토가 뉴기니와, 약 6,000년 전에는 태즈메이니아와 분리되었다.
오스트레일리아는 오스트레일리아판 내에 잘 위치해 있다. 본토는 지질학적으로 비교적 안정되어 주요 산맥 형성, 활화산, 또는 지각판 경계가 없다. 그러나 오스트레일리아판은 연간 약 6~7cm의 속도로 북북동쪽으로 이동하고 있으며 현재 유라시아판 및 태평양판과 충돌하고 있다. 그 결과로 발생하는 판내 응력은 지질학적으로 안정된 육괴치고는 비교적 높은 지진 활동을 유발한다. 1901년에서 2017년 사이에 모멘트 규모 6 이상의 지진이 18회 발생했다. 1989년 뉴캐슬 지진은 13명의 사망자를 내어 오스트레일리아에서 가장 치명적인 지진이었다. 동부 본토에는 불과 4,600년 전까지만 해도 활화산이 있었으며, 외딴 허드섬과 맥도널드 제도에서는 화산 활동이 계속되고 있다.
오스트레일리아 대륙 지각은 서쪽의 가장 오래된 시생누대 강괴에서 동쪽의 더 젊은 조산대(약 5억 4,100만 년에서 2억 5,200만 년 전에 형성)에 이르기까지 세 번의 주기를 통해 생성되었다. 가장 오래된 오스트레일리아 지표 암석은 시생누대 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웨스턴오스트레일리아의 일부 암석은 37억 년 이상 되었고, 사우스오스트레일리아의 다른 암석은 31억 년 이상 되었다. 지구상에서 가장 오래된, 44억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지르콘 결정이 웨스턴오스트레일리아에서 발견되었다. 그러나 오스트레일리아의 약 80%는 2억 5,000만 년 미만의 퇴적암과 표토로 덮여 있다.
4.3. 기후
오스트레일리아의 기후는 북동부와 북서부의 습윤 열대 기후에서 중앙부의 건조 기후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남부 해안은 온화하고 습하며, 남동부 고지대와 태즈메이니아에서는 겨울에 결빙과 눈이 내린다. 기후는 건조한 조건을 가져오는 경향이 있는 "말 위도"에 오스트레일리아가 위치한 것의 영향을 받는다. 전반적으로 오스트레일리아 본토는 사람이 거주하는 가장 건조한 대륙으로, 연평균 강수량은 470 mm이다. 국토의 약 70%가 건조하거나 반건조 지역이며, 약 18%가 사막이다.
기후는 또한 엘니뇨 남방진동, 인도양 쌍극자, 남극 환상 모드와 같은 다양한 시스템의 영향을 받는다. 오스트레일리아는 연중 및 연간 강수량 변동이 특이하게 커서 잦은 가뭄과 홍수를 유발한다. 열대 오스트레일리아에서는 사이클론과 강우 저기압이 흔하다. 여름 몬순은 북부 오스트레일리아에 상당한 강수량을 가져오고, 저기압 세포는 남부에 겨울 강수량을 가져온다. 가장 더운 지역은 북서부이고 가장 추운 지역은 남동부이다. 남부 오스트레일리아에서는 산불 조건이 흔하다.
온실 기체 배출 증가로 인한 기후 변화는 1910년 이후 오스트레일리아 기온이 1.5 °C 상승하고 극한 폭염과 폭우 현상이 증가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1970년 이후 남부 오스트레일리아에서는 4월부터 10월까지 강수량이 감소했고, 1950년대 이후 산불 계절이 길어졌다. 북부 오스트레일리아에서는 1970년대 이후 강수량이 증가했다. 1982년 이후 열대성 사이클론의 수는 줄어들었고, 1950년대 후반 이후 고산 지대의 눈은 감소했다. 오스트레일리아 주변의 해수면이 상승하고 있으며 주변 바다는 더욱 산성화되고 있다.
4.4. 생물 다양성

오스트레일리아의 대부분이 반건조 또는 사막 지역이지만, 이 대륙은 고산 히스 지대에서부터 열대 우림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서식지를 포함하고 있다. 균류는 이러한 다양성을 대표하며, 약 25만 종으로 추정되는데 이 중 단 5%만이 기술되어 있다. 대륙의 오랜 역사, 극도로 변덕스러운 기상 패턴, 장기간의 지리적 고립으로 인해 오스트레일리아의 생물군 대부분은 독특하다. 속씨식물의 약 85%, 포유류의 84%, 조류의 45% 이상, 연안 온대 어류의 89%가 고유종이다. 오스트레일리아에는 최소 755종의 파충류가 서식하며, 이는 세계 어느 나라보다 많은 수치이다. 남극 대륙을 제외하고 오스트레일리아는 고양이과 동물이 없는 유일한 대륙이다. 야생 고양이는 17세기 네덜란드 난파선이나 18세기 후반 유럽 정착민들에 의해 유입되었을 수 있으며, 현재는 많은 취약종 및 멸종 위기 토착종의 감소와 멸종에 주요 요인으로 간주된다. 아시아에서 온 해양 이주민들이 마지막 빙하기 이후, 아마도 4000년 전에 딩고를 오스트레일리아로 데려왔다고 여겨지며, 원주민들은 딩고를 애완동물로 대륙 전역에 퍼뜨려 본토에서 틸라신의 멸종에 기여했다. 오스트레일리아는 또한 17개 생물다양성 거대국가 중 하나이다.
오스트레일리아의 숲은 대부분 상록수로 이루어져 있으며, 특히 덜 건조한 지역에는 유칼립투스 나무가 많고, 더 건조한 지역과 사막에서는 와틀이 우점종으로 대체된다. 잘 알려진 오스트레일리아 동물로는 단공류(오리너구리와 바늘두더지), 다양한 유대류(캥거루, 코알라, 웜뱃 포함), 그리고 에뮤와 쿠카부라와 같은 조류가 있다. 오스트레일리아는 세계에서 가장 독성이 강한 뱀들을 포함하여 많은 위험한 동물들의 서식지이다. 딩고는 기원전 3000년경 오스트레일리아 원주민들과 교역하던 오스트로네시아인들에 의해 유입되었다. 오스트레일리아 거대동물군을 포함한 많은 동식물 종들이 최초의 인간 정착 직후 멸종되었으며, 틸라신을 포함한 다른 종들은 유럽인 정착 이후 사라졌다.
오스트레일리아의 많은 생태 지역과 그 지역 내 종들은 인간 활동과 도입된 동물, 유색조식물, 균류, 식물 종들에 의해 위협받고 있다. 이러한 모든 요인들로 인해 오스트레일리아는 세계에서 포유류 멸종률이 가장 높은 나라가 되었다. 연방 1999년 환경 보호 및 생물 다양성 보전법은 멸종 위기종 보호를 위한 법적 틀이다. 오스트레일리아 생물 다양성 보전 국가 전략에 따라 독특한 생태계를 보호하고 보존하기 위해 수많은 보호 지역이 설정되었다. 65개의 습지가 람사르 협약에 등재되어 있으며, 16개의 자연 세계유산이 지정되었다. 오스트레일리아는 2018년 환경성과지수에서 178개국 중 21위를 차지했다. 오스트레일리아의 멸종 위기종 목록에는 500종 이상의 동물을 포함하여 1,800종 이상의 동식물이 등재되어 있다. 고생물학자들은 사우스오스트레일리아주의 맥그래스 플랫에서 선사 시대 열대 우림의 화석 유적지를 발견했는데, 이는 현재 건조한 사막과 건조한 관목지/초원이 한때 풍부한 생명체의 서식지였음을 보여주는 증거이다.
5. 정치
오스트레일리아는 입헌군주제이자 의회 민주주의 국가이며, 연방제를 채택하고 있다. 국왕을 대신하는 총독, 국민이 선출하는 의회, 그리고 독립적인 사법부로 구성된 정부 구조를 가진다. 주요 정당들이 경쟁하는 다당제 선거 제도를 통해 정부가 구성된다.
5.1. 정부 구조



오스트레일리아는 입헌군주제, 의회 민주주의, 연방제 국가이다. 1901년 연방 결성 이후 거의 변하지 않은 오스트레일리아 헌법과 함께 안정적인 자유민주주의 정치 체제를 유지해 왔다. 오스트레일리아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연방 국가 중 하나로, 권력이 연방 정부와 주 정부로 나뉘어져 있다. 오스트레일리아 정부 체제는 영국(권력 융합, 입헌군주제, 정당 규율)과 미국(연방주의, 성문헌법, 상원에서 주들이 동등한 대표권을 갖는 강력한 양원제)의 정치 체제에서 파생된 요소들을 결합하여 독특한 혼합형 체제를 이루고 있다.
연방 정부 권력은 부분적으로 세 집단으로 분리된다:
- 입법부: 군주, 상원, 하원으로 구성된 양원제 의회
- 행정부: 총리(하원에서 과반수를 차지하는 정당 또는 연립의 지도자), 그가 선택한 내각 및 기타 장관들로 구성된 오스트레일리아 정부; 공식적으로는 총독이 임명한다.
- 사법부: 고등법원 및 기타 연방 법원
찰스 3세는 오스트레일리아 국왕으로서 통치하며, 연방 차원에서는 총독이, 주 차원에서는 주지사가 그를 대리한다. 헌법 제63조와 관례에 따라 이들은 각료들의 조언에 따라 행동한다. 따라서 실제로는 총독이 총리와 내각의 조치에 대한 법적 상징으로 기능한다. 총독은 일부 상황에서 각료의 조언 없이 또는 그에 반하여 행사할 수 있는 권한인 유보 권한을 행사할 수 있다. 이러한 권한이 언제 행사될 수 있는지는 관례에 따르며 그 정확한 범위는 불분명하다. 이러한 권한이 가장 두드러지게 행사된 사례는 1975년 헌정 위기 당시 휘틀럼 정부의 해임이었다.

상원(상원)에는 76명의 상원의원이 있으며, 각 주에서 12명씩, 본토 준주(오스트레일리아 수도 준주와 노던 준주)에서 각각 2명씩 선출된다. 하원(하원)은 인구를 기준으로 각 주에 할당된 단일 의원 선거구(일반적으로 "선거구" 또는 "의석"으로 알려짐)에서 선출된 151명의 의원으로 구성되며, 현재 각 주는 최소 5석을 보장받는다. 하원의 임기는 최대 3년이지만 고정되어 있지는 않으며, 정부는 일반적으로 최대 임기 6개월 전에 조기 해산을 통해 선거를 실시한다. 양원 선거는 일반적으로 동시에 치러지며, 상원의원들은 준주 출신을 제외하고는 6년 임기가 겹치도록 되어 있다. 준주 출신 상원의원의 임기는 고정되어 있지 않고 하원 선거 주기에 연동된다. 따라서 이중 해산으로 인해 주기가 중단되지 않는 한, 상원 76석 중 40석만이 각 선거에 부쳐진다.
오스트레일리아의 선거 제도는 하원과 모든 주 및 준주 하원 선거(태즈메이니아와 ACT는 헤어-클라크 제도 사용)에 선호투표제를 사용한다. 상원과 대부분의 주 상원은 각 주에 대한 비례대표제와 선호투표제를 결합한 단기 이양식 투표제를 사용한다. 모든 관할 구역에서 18세 이상 등록된 모든 시민에게는 투표 및 유권자 등록이 의무이다. 하원에서 과반수 지지를 얻은 정당이 정부를 구성하고 그 지도자가 총리가 된다. 과반수 지지를 얻은 정당이 없는 경우, 총독은 헌법상 총리를 임명하고 필요한 경우 의회의 신임을 잃은 총리를 해임할 권한을 갖는다. 오스트레일리아는 강력하고 선출된 상원을 갖춘 웨스트민스터 의회 민주주의로 운영되는 비교적 독특한 위치 때문에 때때로 "워시민스터 변형" 또는 준의회제라고 불리기도 한다.
5.2. 정당 및 선거
연방 차원에서 정부를 구성하는 주요 정치 집단은 두 개가 있다: 오스트레일리아 노동당과 보수연립으로, 후자는 자유당과 그 소수 파트너인 국민당의 공식적인 연합체이다. 주 정부 차원에서 국민당과 자유당 간의 관계는 다르다. 퀸즐랜드와 노던 준주에서는 합당되었고 (연방 의원들은 자유당 또는 국민당 원내대표단에 속함), 뉴사우스웨일스, 빅토리아, 웨스턴오스트레일리아에서는 연립을 이루고 있으며, 사우스오스트레일리아와 태즈메이니아에서는 자유당과 경쟁 관계에 있다. 오스트레일리아 정치 문화 내에서 보수연립은 중도우파, 노동당은 중도좌파로 간주된다. 무소속 의원들과 여러 소수 정당들이 오스트레일리아 의회, 주로 상원에서 의석을 확보했다. 오스트레일리아 녹색당은 득표율과 당원 수 모두에서 세 번째로 큰 정당이며, 의회 의석 수에서는 네 번째로 큰 정당이다. 가장 최근의 연방 선거는 2022년 5월 21일에 치러졌으며, 앤서니 앨버니지가 이끄는 오스트레일리아 노동당이 정부를 구성하게 되었다.
6. 행정 구역
오스트레일리아는 6개의 주(state)와 2개의 주요 준주(territory), 그리고 몇몇 기타 특별 지역으로 구성된 연방 국가이다. 각 주와 준주는 고유한 입법 및 행정 체계를 가지고 있으며, 연방 정부와의 관계 속에서 자치권을 행사한다.
6.1. 주와 준주
오스트레일리아는 뉴사우스웨일스(NSW), 빅토리아(Vic), 퀸즐랜드(Qld), 웨스턴오스트레일리아(WA), 사우스오스트레일리아(SA), 태즈메이니아(Tas) 등 6개의 주와 오스트레일리아 수도 준주(ACT), 노던 준주(NT) 등 2개의 본토 자치 준주로 구성되어 있다.
주는 헌법이 연방(연방 정부)에 배타적 권한을 부여한 몇몇 분야를 제외하고는 법률을 제정할 수 있는 일반적인 권한을 갖는다. 연방은 헌법에 명시된 주제에 대해서만 법률을 제정할 수 있지만, 연방법은 모순되는 범위 내에서 주법보다 우선한다. 연방 결성 이후, 명시된 연방 권한에 대한 해석이 점점 더 넓어지고 주들이 연방 보조금에 대한 재정적 의존도가 높아짐에 따라 연방의 주에 대한 권한은 상당히 증가했다.
각 주와 주요 본토 준주는 자체적인 의회를 가지고 있다. 노던 준주, ACT, 퀸즐랜드는 단원제이며, 나머지 주는 양원제이다. 하원은 입법 의회(사우스오스트레일리아와 태즈메이니아에서는 하원 (오스트레일리아))로 알려져 있고, 상원은 입법 평의회로 알려져 있다. 각 주의 정부 수반은 주 총리이며, 각 준주의 수반은 준주 수석장관이다. 국왕은 각 주에서 주지사로 대표된다. 연방 차원에서 국왕의 대표는 총독이다.
연방 정부는 내부 저비스베이 준주와 외부 영토인 애시모어 카르티에 제도, 산호해 제도, 허드섬 및 맥도널드 제도, 인도양 영토(크리스마스섬 및 코코스 (킬링) 제도), 노퍽섬(이전에는 자치적이었으나 2015년에 자치권이 철회됨), 그리고 오스트레일리아령 남극 지역(이 남극 영유권 주장은 뉴질랜드, 영국, 프랑스, 노르웨이만 인정함)을 직접 관리한다. 외딴 매쿼리섬과 로드하우섬은 각각 태즈메이니아와 뉴사우스웨일스의 일부이다.
6.2. 주요 도시
오스트레일리아는 해안선을 따라 인구가 밀집된 고도로 도시화된 국가이다. 주요 대도시는 각 주의 경제, 문화, 행정 중심지 역할을 하며, 국가 발전에 중요한 기여를 한다.
순위 | 도시 | 주/준주 | 인구 |
---|---|---|---|
1 | 시드니 | NSW | 5,450,496 |
2 | 멜버른 | VIC | 5,207,145 |
3 | 브리즈번 | QLD | 2,706,966 |
4 | 퍼스 | WA | 2,309,338 |
5 | 애들레이드 | SA | 1,446,380 |
6 | 골드코스트-트위드헤즈 | QLD/NSW | 735,213 |
7 | 뉴캐슬-메이틀랜드 | NSW | 526,515 |
8 | 캔버라-퀸비언 | ACT/NSW | 503,402 |
9 | 선샤인코스트 | QLD | 407,859 |
10 | 울런공 | NSW | 313,745 |
11 | 절롱 | VIC | 302,046 |
12 | 호바트 | TAS | 253,654 |
13 | 타운즈빌 | QLD | 186,734 |
14 | 케언스 | QLD | 160,933 |
15 | 다윈 | NT | 150,736 |
위 도시들은 오스트레일리아의 경제, 문화, 교육, 관광의 중심지로서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특히 시드니와 멜버른은 국제적인 금융 및 문화 허브로 기능하며, 다양한 국적의 이민자들이 모여 사는 다문화 도시의 특징을 보인다. 브리즈번과 퍼스는 각각 동부와 서부의 경제 성장을 이끄는 주요 도시이며, 애들레이드는 문화 예술 및 교육 도시로 알려져 있다.
7. 대외 관계

오스트레일리아는 중견국으로, 외교 관계는 미국과의 동맹, 인도-태평양 지역과의 관계 강화, 그리고 국제 기구, 규칙 및 협력 지원이라는 세 가지 핵심적인 초당적 기둥을 가지고 있다. ANZUS 협정과 주요 비NATO 동맹국 지위를 통해 오스트레일리아는 강력한 국방, 안보 및 무역 관계를 포함하는 미국과의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인도-태평양 지역에서는 기존의 규칙 기반 질서를 지지함으로써 중국의 영향력 증대를 관리하는 동시에 무역 및 자본의 자유로운 흐름을 통해 무역 관계를 증진하고자 한다. 지역적으로는 태평양 제도 포럼, 태평양 공동체, 아세안+6 메커니즘, 동아시아 정상회의의 회원국이다. 국제적으로는 국제 연합(창립 회원국), 영연방, OECD, G20의 회원국이다. 이는 일반적으로 다자주의에 대한 국가의 강력한 의지를 반영한다.
오스트레일리아는 미국, 영국, 캐나다, 뉴질랜드와의 정보 동맹인 파이브 아이즈; 미국 및 뉴질랜드와의 ANZUS 동맹; 미국 및 영국과의 AUKUS 안보 조약; 미국, 인도, 일본과의 쿼드안보대화; 뉴질랜드, 영국, 말레이시아, 싱가포르와의 5개국 방위 협정; 일본과의 상호 접근 국방 및 안보 협정 등 여러 국방, 정보 및 안보 그룹의 회원국이다.

오스트레일리아는 국제 무역 자유화를 추구해왔다. 케언스 그룹과 APEC 창설을 주도했으며, OECD와 WTO의 회원국이다. 2000년대부터 오스트레일리아는 포괄적·점진적 환태평양 경제 동반자 협정(CPTPP)과 RCEP 다자간 자유 무역 협정, 그리고 미국, 중국, 일본, 대한민국, 인도네시아, 영국, 뉴질랜드와의 양자간 자유 무역 협정을 체결했으며, 가장 최근에는 2023년 영국과 협정을 체결했다.
오스트레일리아는 트랜스-태즈먼 여행 협정에 따른 양국 시민의 자유로운 이동과 긴밀한 경제 관계 협정에 따른 자유 무역을 통해 이웃 국가인 뉴질랜드와 매우 통합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2021년 오스트레일리아 국민이 가장 호의적으로 보는 국가는 뉴질랜드, 영국, 일본, 독일, 대만, 태국, 미국, 대한민국 등이다. 또한 약 75개국이 지원을 받는 국제 원조 프로그램을 유지하고 있다. 오스트레일리아는 2021년 세계 개발 센터의 개발 공약 지수에서 4위를 차지했다.
외교 정책에 대한 권한은 총리와 국가안보위원회에 고도로 집중되어 있으며, 2003년 이라크 침공 참전과 같은 주요 결정은 내각의 사전 승인 없이 이루어졌다. 마찬가지로 의회는 외교 정책에서 공식적인 역할을 하지 않으며, 전쟁 선포 권한은 오직 행정부에만 있다. 오스트레일리아 외교통상부는 행정부의 정책 결정을 지원한다.
8. 군사

오스트레일리아 군대의 관리에 관여하는 두 주요 기관은 오스트레일리아 방위군(ADF)과 국방부이며, 이 둘을 합쳐 "국방조직"이라고 한다. 오스트레일리아 방위군은 국방군 총사령관이 지휘하는 군사 부문이며, 왕립해군, 육군, 왕립공군의 세 가지 부서로 구성된다. 2021년 기준으로 현역 군인 수는 84,865명(정규군 60,286명, 예비군 24,581명)이다. 국방부는 국방장관이 이끄는 민간 부문이다. 이 두 지도자는 국방조직을 이원 체제로 공동 관리하며, 책임을 공유하고 합동으로 수행한다. 명목상의 총사령관 역할은 총독이 맡지만, 실제 지휘권은 국방군 총사령관에게 있다. 연방 정부 행정부는 내각과 국가안보위원회의 결정을 따르는 국방장관을 통해 군대를 총괄적으로 통제한다. 주요 오스트레일리아 정보기관으로는 오스트레일리아 비밀정보국(해외 정보), 오스트레일리아 통신전자국(신호 정보), 오스트레일리아 안보정보원(국내 안보)이 있다.
2022년 국방비 지출은 GDP의 1.9%로, 세계에서 13번째로 큰 국방 예산을 기록했다. 2024년 기준으로 ADF는 중동과 인도-태평양 지역(안보 및 원조 제공 포함)에서 현역 작전을 수행하고 있으며, 남수단, 시리아-이스라엘 평화 유지, 북한 관련 UN군에 기여하고 있다. 국내적으로는 망명 신청자의 입국을 막고 자연재해 구호 활동을 지원하고 있다.
9. 경제
오스트레일리아 경제는 서비스업이 주도하며 광업, 농축산업 등 주요 산업이 발달해 있습니다. 또한 활발한 국제 무역, 에너지 자원의 효율적 관리 및 신재생 에너지로의 전환 노력, 그리고 지속적인 과학 기술 연구 개발을 통해 경제 성장을 이루고 있습니다.
9.1. 경제 전반

오스트레일리아의 고소득 혼합 시장 경제는 천연자원이 풍부하다. 명목상으로는 세계 14위, PPP 기준으로는 18위이다. 2021년 현재 성인 1인당 자산은 룩셈부르크에 이어 두 번째로 많으며, 1인당 금융 자산은 13번째로 많다. 오스트레일리아의 노동력은 약 1,350만 명이며, 2022년 6월 기준 실업률은 3.5%이다. 오스트레일리아 사회복지협의회에 따르면, 오스트레일리아의 빈곤율은 인구의 13.6%를 초과하며 320만 명에 이른다. 또한 15세 미만 아동 774,000명(17.7%)이 상대적 빈곤 상태에 있는 것으로 추정했다. 오스트레일리아 달러는 국가 통화이며, 태평양의 세 섬나라인 키리바시, 나우루, 투발루에서도 사용된다.
오스트레일리아 정부 부채는 2022년 6월 기준 약 9,630억 달러로 국가 총 GDP의 45.1%를 초과하며, 세계에서 8번째로 높다. 오스트레일리아는 2020년 스위스에 이어 세계에서 두 번째로 높은 수준의 가계 부채를 기록했다. 주택 가격은 특히 대도시 지역에서 세계에서 가장 높은 수준에 속한다. 대규모 서비스 부문이 총 GDP의 약 71.2%를 차지하고, 산업 부문(25.3%)이 그 뒤를 잇고 있으며, 농업 부문은 총 GDP의 3.6%에 불과하여 가장 작다. 오스트레일리아는 세계 21위 수출국이자 24위 수입국이다. 중국은 오스트레일리아의 최대 교역 상대국으로, 국가 수출의 약 40%와 수입의 17.6%를 차지한다. 다른 주요 수출 시장으로는 일본, 미국, 대한민국이 있다.
오스트레일리아는 경쟁력과 경제적 자유도가 높으며, 2022년 인간 개발 지수에서 10위를 차지했다. 2022년 현재 경제자유지수에서는 12위, 세계 경쟁력 보고서에서는 19위를 기록하고 있다. 2019년에는 950만 명의 해외 관광객을 유치했으며, 2019년 아시아 태평양 국가 중 해외 관광객 유치 부문에서 13위를 차지했다. 2021년 여행 및 관광 경쟁력 보고서는 오스트레일리아를 117개국 중 세계 7위로 평가했다. 2019년 국제 관광 수입은 457억 달러에 달했다.
9.2. 주요 산업
오스트레일리아 경제는 다양한 산업 분야로 구성되어 있으며, 특히 광업, 농축산업, 서비스업이 국가 경제에 크게 기여하고 있다. 풍부한 천연자원과 발달된 기술력을 바탕으로 여러 산업에서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추고 있다.
- 광업: 오스트레일리아는 철광석, 석탄, 보크사이트, 금, 우라늄, 천연가스 등 풍부한 광물 자원을 보유한 세계적인 광업 국가이다. 특히 철광석과 석탄은 주요 수출품목으로 국가 경제에 막대한 수입을 가져다준다. 웨스턴오스트레일리아주는 철광석 생산의 중심지이며, 퀸즐랜드주와 뉴사우스웨일스주는 석탄 생산이 활발하다.
- 농축산업: 광활한 국토를 바탕으로 밀, 보리, 사탕수수 등 다양한 농작물이 재배되며, 특히 밀은 주요 수출 농산물이다. 목축업 또한 발달하여 소고기와 양모는 세계 시장에서 높은 품질을 인정받고 있다. 낙농업과 포도주 산업도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
- 서비스업: 오스트레일리아 경제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산업 분야이다. 금융, 교육, 관광, 보건, 정보통신기술(ICT) 등 다양한 분야가 발달해 있다. 특히 교육 서비스는 많은 유학생을 유치하며 국가 경제에 기여하고 있으며, 아름다운 자연환경과 다양한 문화 체험을 제공하는 관광 산업 또한 중요한 외화 수입원이다. 시드니와 멜버른은 국제적인 금융 중심지로서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이 외에도 제조업, 건설업, 운송업 등이 국가 경제 발전에 기여하고 있으며, 정부는 지속적인 산업 구조 고도화와 혁신을 통해 경제 성장을 도모하고 있다.
9.3. 무역
오스트레일리아는 개방경제 체제를 바탕으로 활발한 국제 무역 활동을 펼치고 있는 국가이다. 풍부한 천연자원과 고품질의 농축산물을 기반으로 한 수출과 함께, 다양한 공산품 및 서비스를 수입하며 글로벌 경제 네트워크에서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주요 수출품으로는 철광석, 석탄, 천연가스, 금과 같은 광물 자원이 큰 비중을 차지한다. 또한, 밀, 소고기, 양모 등 농축산물도 중요한 수출 품목이다. 최근에는 교육 서비스와 관광 산업이 주요 서비스 수출 분야로 성장하고 있다.
주요 수입품으로는 기계류, 자동차, 석유제품, 전자기기, 의약품 등이 있다. 소비재와 자본재 수입을 통해 국내 산업 생산과 국민 생활 수준 향상에 기여하고 있다.
주요 교역 상대국은 지리적 인접성과 경제적 관계에 따라 다양하게 분포되어 있다. 중국은 오스트레일리아의 최대 교역 상대국으로, 수출과 수입 모두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한다. 그 외 주요 교역국으로는 일본, 미국, 대한민국, 뉴질랜드, 싱가포르, 영국 등이 있다.
오스트레일리아는 적극적으로 자유 무역 협정(FTA)을 체결하여 무역 관계를 확대하고 있다. 미국, 중국, 일본, 대한민국, 뉴질랜드, 아세안 국가들과의 FTA를 비롯하여, 포괄적·점진적 환태평양 경제 동반자 협정(CPTPP)과 역내 포괄적 경제 동반자 협정(RCEP) 등 다자간 무역 협정에도 참여하고 있다. 이러한 FTA 네트워크는 오스트레일리아 기업의 해외 시장 접근성을 높이고, 외국인 투자를 유치하며, 경제 성장을 촉진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정부는 지속적인 무역 자유화 정책과 함께 수출 시장 다변화, 고부가가치 산업 육성을 통해 국제 무역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9.4. 에너지
오스트레일리아는 풍부한 에너지 자원을 보유하고 있으며, 전통적으로 석탄과 천연가스가 주요 에너지 공급원 역할을 해왔다. 그러나 최근 기후 변화 대응 및 지속 가능한 에너지 시스템 구축을 위해 신재생 에너지로의 전환을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2021-22년 기준, 오스트레일리아의 전력 생산원은 흑탄(37.2%), 갈탄(12%), 천연가스(18.8%), 수력(6.5%), 풍력(11.1%), 태양광(13.3%), 바이오에너지(1.2%), 기타(1.7%)로 구성되었다. 같은 기간 총 에너지 소비원은 석탄(28.4%), 석유(37.3%), 가스(27.4%), 신재생 에너지(7%)였다. 2012년부터 2022년까지 신재생 에너지로부터 얻는 에너지원은 5.7% 증가한 반면, 석탄으로부터 얻는 에너지원은 2.6% 감소했다. 가스 사용량은 1.5% 증가했고, 석유 사용량은 0.2% 감소하며 비교적 안정적인 수준을 유지했다.
2020년, 오스트레일리아는 신재생 에너지원에서 전력의 27.7%를 생산하여, 2009년 연방 정부가 설정한 2020년까지 신재생 에너지 20% 목표를 초과 달성했다. 2022년에는 2030년까지 신재생 에너지 82%라는 새로운 목표가 설정되었으며, 2021년에는 2050년까지 탄소 중립 목표가 설정되었다.
오스트레일리아 정부는 에너지 안보, 경제성, 환경 지속 가능성을 고려한 균형 잡힌 에너지 정책을 추진하고 있으며, 에너지 효율 향상, 청정 에너지 기술 개발 투자, 국제 에너지 협력 강화 등을 통해 미래 에너지 시스템을 구축해 나가고 있다.
9.5. 과학 기술
오스트레일리아는 과학 기술 연구 개발(R&D)에 지속적으로 투자하며 다양한 분야에서 주목할 만한 성과를 거두고 있다. 정부, 대학, 연구기관, 기업 간의 협력을 통해 혁신 생태계를 구축하고 있으며, 이는 국가 경쟁력 강화와 경제 성장에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2019년 오스트레일리아는 연구 개발에 356억 달러를 지출했으며, 이는 GDP의 약 1.79%에 해당한다. 액센추어가 테크 카운실을 위해 실시한 2022년 연구에 따르면, 오스트레일리아 기술 부문은 연간 1,670억 달러를 경제에 기여하며 861,000명을 고용하고 있다. 또한 최근 시드니와 멜버른의 스타트업 생태계는 총 340억 달러 규모로 평가된다. 오스트레일리아는 2024년 세계 혁신 지수에서 23위를 차지했다.
전 세계 인구의 0.3%에 불과하지만, 오스트레일리아는 2020년 세계 학술 연구 출판물의 4.1%를 기여하여 세계 10대 연구 기여국 중 하나로 자리매김했다. 오스트레일리아 국립 과학 기관인 CSIRO는 국내 전체 연구의 10%를 기여하며, 나머지는 대학에서 수행된다. 가장 주목할 만한 기여로는 원자 흡수 분광법 발명, 와이파이 기술의 핵심 구성 요소 개발, 최초의 상업적으로 성공한 폴리머 지폐 개발 등이 있다. 2024년까지 13명의 오스트레일리아 과학자가 물리학, 화학 또는 의학 분야에서 노벨상을 수상했으며, 2명은 필즈상을 수상했다.
오스트레일리아는 우주 탐사 지원의 핵심 역할을 하고 있다. 스퀘어 킬로미터 어레이 및 오스트레일리아 콤팩트 어레이 망원경과 같은 전파 망원경, 사이딩 스프링 천문대와 같은 망원경, 캔버라 심우주 통신 단지와 같은 지상국 시설은 주로 NASA의 심우주 탐사 임무에 큰 도움을 주고 있다.
정부는 연구 개발 투자 확대, 고급 인력 양성, 국제 공동 연구 강화, 혁신 기업 지원 등을 통해 과학 기술 경쟁력을 지속적으로 강화하고 있으며, 이는 미래 성장 동력 확보 및 삶의 질 향상에 기여할 것으로 기대된다.
10. 사회
오스트레일리아 사회는 원주민 문화, 영국계 정착민의 유산, 그리고 다양한 국가 출신 이민자들의 문화가 어우러진 다문화주의를 특징으로 한다. 높은 도시화율과 함께 교육, 보건, 인권 등 여러 사회 지표에서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으나, 동시에 사회적 과제들도 안고 있다.
10.1. 인구
오스트레일리아는 총 토지 면적당 인구 밀도가 평방 킬로미터당 3.4명으로, 세계에서 가장 인구 밀도가 낮은 국가 중 하나이다. 인구는 동부 해안, 특히 사우스이스트 퀸즐랜드에서 북동쪽, 애들레이드에서 남서쪽 사이의 남동부 지역에 집중되어 있다.
오스트레일리아는 또한 고도로 도시화되어 있으며, 2018년 기준으로 인구의 67%가 그레이터 캐피털 시티 통계 지역(주 및 본토 준주 수도의 대도시권)에 거주하고 있다. 인구 100만 명 이상의 대도시권은 시드니, 멜버른, 브리즈번, 퍼스, 애들레이드이다.
많은 다른 선진국과 마찬가지로 오스트레일리아는 은퇴자 수가 더 많고 노동 연령 인구가 더 적은 고령화 인구로의 인구 통계학적 변화를 겪고 있다. 2021년 인구의 평균 연령은 39세였다.
10.2. 민족과 이민
1788년부터 제2차 세계 대전까지 대다수의 정착민과 이민자는 영국 제도(주로 잉글랜드, 아일랜드, 스코틀랜드) 출신이었으나, 19세기에는 중국과 독일로부터 상당한 이민이 있었다. 1901년 연방 결성 이후, 백호주의가 강화되어 이들 지역으로부터의 추가 이민이 제한되었다. 그러나 이 정책은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완화되었고, 이후 수십 년 동안 오스트레일리아는 유럽 전역에서 대규모 이민 물결을 받아들였으며, 이전 수십 년보다 남유럽과 동유럽에서 훨씬 더 많은 이민자가 도착했다. 모든 노골적인 인종 차별은 1973년에 종식되었고, 다문화주의가 공식 정책이 되었다. 그 후, 전 세계에서 대규모의 지속적인 이민 물결이 있었으며, 21세기에는 아시아가 이민자의 가장 큰 출신 지역이 되었다.
오늘날 오스트레일리아는 세계에서 8번째로 큰 이민자 인구를 보유하고 있으며, 이민자가 인구의 30%를 차지하여 주요 서구 국가 중 가장 높은 비율을 기록하고 있다. 2022-23년에는 212,789명의 영주 이민자가 오스트레일리아에 입국했으며, 비영주 거주자를 포함하여 순 이민 인구는 518,000명 증가했다. 대부분은 기술 비자로 입국했으나, 이민 프로그램은 가족 구성원과 난민을 위한 비자도 제공한다.
오스트레일리아 통계청은 각 인구 조사마다 모든 오스트레일리아 거주자에게 최대 두 개의 조상을 지명하도록 요청하며, 응답은 광범위한 조상 그룹으로 분류된다. 2021년 인구 조사에서 총인구 대비 가장 일반적으로 지명된 조상 그룹은 다음과 같다: 57.2% 유럽계(46% 북서 유럽계 및 11.2% 남유럽 및 동유럽계 포함), 33.8% 오세아니아계(자신의 조상을 "오스트레일리아인"으로 지명한 사람 포함. 오스트레일리아 통계청은 "오스트레일리아인"으로 지명한 대부분의 사람들이 적어도 부분적으로 앵글로-켈트 유럽계 조상을 가지고 있다고 밝혔다.), 17.4% 아시아계(6.5% 남아시아 및 중앙아시아계, 6.4% 북동아시아계, 4.5% 동남아시아계 포함), 3.2% 북아프리카 및 중동계, 1.4% 아메리카 대륙 민족, 1.3%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계. 2021년 인구 조사에서 총인구 대비 가장 일반적으로 지명된 개별 조상은 다음과 같다(각 개인은 하나 이상의 조상을 지명할 수 있으므로 총합은 100%를 초과할 수 있음):
- 잉글랜드계 (33%)
- 오스트레일리아인 (29.9%)(오스트레일리아 통계청은 "오스트레일리아인"으로 지명한 대부분의 사람들이 적어도 부분적으로 앵글로-켈트 유럽계 조상을 가지고 있다고 밝혔다.)
- 아일랜드계 (9.5%)
- 스코틀랜드계 (8.6%)
- 중국계 (5.5%)
- 이탈리아계 (4.4%)
- 독일계 (4%)
- 인도계 (3.1%)
- 애버리지널 (2.9%)(자신의 조상을 "오스트레일리아 애버리지널"로 지명한 사람. 토레스 해협 제도인은 포함되지 않음. 이는 조상 지명과 관련된 것이며, 원주민(애버리지널 또는 토레스 해협 제도인)으로 식별하는 사람과는 별개의 질문임.)
- 그리스계 (1.7%)
- 필리핀계 (1.6%)
- 네덜란드계 (1.5%)
- 베트남계 (1.3%)
- 레바논계 (1%)
2021년 인구 조사에서 오스트레일리아 인구의 3.8%가 원주민(애버리지널 및 토레스 해협 제도민)으로 식별되었다. (원주민 식별은 오스트레일리아 인구 조사의 조상 질문과 별개이며, 애버리지널 또는 토레스 해협 제도인으로 식별하는 사람은 어떤 조상이든 식별할 수 있다.)
10.3. 언어
오스트레일리아에서 법적으로 공용어는 없지만, 영어가 사실상의 공용어이자 국어이다. 오스트레일리아 영어는 독특한 억양과 어휘를 가진 주요 영어 변종이며, 문법과 철자법에서 다른 영어 변종과 약간의 차이가 있다. 일반 오스트레일리아 영어가 표준 방언 역할을 한다. 오스트레일리아 수화인 오슬랜은 2021년 인구 조사 당시 16,242명이 가정에서 사용했다.
2021년 인구 조사에서 인구의 72%가 가정에서 영어만을 사용했다. 가정에서 다음으로 많이 사용되는 언어는 만다린 중국어(2.7%), 아랍어(1.4%), 베트남어(1.3%), 광둥어(1.2%), 펀자브어(0.9%)였다.
최초의 유럽인 접촉 당시 250개 이상의 오스트레일리아 원주민 언어가 존재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2018-19년 국립 원주민 언어 조사(NILS)에 따르면 120개 이상의 원주민 언어 변종이 사용 중이거나 부활 중이었지만, 사용 중인 언어 중 70개는 소멸 위기에 처해 있었다. 2021년 인구 조사에서는 76,978명의 원주민이 가정에서 167개의 원주민 언어를 사용했으며, 윰플라톡(토레스 해협 크리올), 잠바르푸잉우(욜룽우어), 피찬차차라(서부 사막어)가 가장 널리 사용되는 언어 중 하나였다. NILS와 오스트레일리아 통계청은 원주민 언어에 대해 서로 다른 분류를 사용한다.
10.4. 종교

오스트레일리아는 국교가 없으며, 오스트레일리아 헌법 제116조는 연방 정부가 어떤 종교를 수립하거나, 종교적 의식을 강요하거나, 어떤 종교의 자유로운 행사를 금지하는 법률을 제정하는 것을 금지한다. 그러나 주는 여전히 종교적으로 차별적인 법률을 통과시킬 권한을 보유하고 있다.
2021년 인구 조사에서 인구의 38.9%가 무종교라고 밝혔으며, 이는 2001년의 15.5%에서 증가한 수치이다. 가장 큰 종교는 기독교(인구의 43.9%)이다. 가장 큰 기독교 교파는 로마 가톨릭 교회(인구의 20%)와 오스트레일리아 성공회(9.8%)이다.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비영국계 이민으로 인해 비기독교 종교가 성장했으며, 그중 가장 큰 종교는 이슬람교(3.2%), 힌두교(2.7%), 불교(2.4%), 시크교(0.8%), 유대교(0.4%)이다.
2021년에는 8,000명 미만의 사람들이 전통적인 원주민 종교를 믿는다고 밝혔다. 오스트레일리아 원주민 신화와 오스트레일리아 원주민에서 발달한 애니미즘 체계에서 몽환시는 조상 토템 영적 존재들이 창조를 형성한 신성한 시대이다. 몽환시는 사회의 법과 구조, 그리고 삶과 땅의 연속성을 보장하기 위해 수행되는 의식을 확립했다.
10.5. 교육

학교 출석 또는 홈스쿨링 등록은 오스트레일리아 전역에서 의무이다. 교육은 주로 각 주와 준주의 책임이지만, 연방 정부는 자금 지원 협정을 통해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한다. 2014년부터 연방 정부가 개발한 국가 교육과정이 주와 준주에서 시행되고 있다. 출석 규정은 주마다 다르지만, 일반적으로 어린이는 약 5세부터 약 16세까지 학교에 다녀야 한다. 일부 주(웨스턴오스트레일리아, 노던 준주, 뉴사우스웨일스)에서는 16~17세 청소년이 학교에 다니거나 견습과 같은 직업 훈련에 참여해야 한다. 2022년 PISA 평가에 따르면 오스트레일리아 15세 학생들은 OECD 국가 중 읽기와 과학에서 9위, 수학에서 10위를 차지했다. 그러나 오스트레일리아 학생의 60% 미만이 국가 숙련도 기준(수학 51%, 과학 58%, 읽기 57%)을 달성했다.
오스트레일리아의 성인 문해율은 2003년에 99%로 추정되었다. 그러나 오스트레일리아 통계청의 2011-2012년 보고서에 따르면 인구의 44%가 높은 문해력과 수리력을 갖추지 못했으며, 이는 다른 사람들이 "일상생활에 필요한 기술"이 없다고 해석하기도 한다.
오스트레일리아에는 37개의 정부 지원 대학과 3개의 사립 대학, 그리고 고등 교육 수준에서 승인된 과정을 제공하는 여러 전문 기관이 있다. OECD는 오스트레일리아를 대학 등록금이 가장 비싼 국가 중 하나로 분류한다. 주 기반의 직업 훈련 시스템인 TAFE가 있으며, 많은 직종에서 신규 기술자를 양성하기 위한 견습 제도를 운영한다. 25세에서 64세 사이의 오스트레일리아인 중 약 58%가 직업 또는 고등 교육 자격을 보유하고 있으며, 고등 교육 졸업률은 49%로 OECD 국가 중 가장 높다. 오스트레일리아 인구의 30.9%가 고등 교육 자격을 취득했으며, 이는 세계에서 가장 높은 비율 중 하나이다.
오스트레일리아는 인구 대비 유학생 비율이 세계에서 가장 높으며, 2019년에는 812,000명의 유학생이 국내 대학 및 직업 교육 기관에 등록했다. 따라서 2019년 유학생은 오스트레일리아 대학생의 평균 26.7%를 차지했다. 국제 교육은 따라서 국가의 가장 큰 수출품 중 하나이며, 상당수의 유학생이 졸업 후 다양한 기술 및 취업 비자로 오스트레일리아에 남아 국가 인구 구성에 뚜렷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교육은 철광석과 석탄에 이어 오스트레일리아의 세 번째로 큰 수출품이며, 2016-17 회계연도에 경제에 280억 달러 이상을 기여했다.
10.6. 보건
오스트레일리아의 기대 수명은 83세(남성 81세, 여성 85세)로 세계에서 5번째로 높다. 세계에서 피부암 발병률이 가장 높으며, 담배 흡연은 예방 가능한 사망 및 질병의 가장 큰 원인으로 전체 사망 및 질병의 7.8%를 차지한다. 예방 가능한 원인 중 2위는 7.6%의 고혈압이며, 3위는 7.5%의 비만이다. 오스트레일리아는 2012년 비만 여성 비율에서 세계 35위를 차지했으며, 선진국 중 성인 비만 비율에서 최상위권에 속하며, 성인 인구의 63%가 과체중 또는 비만이다.
오스트레일리아는 2021년 총 GDP의 약 9.91%를 의료에 지출했다. 1975년 국민 건강 보험 제도를 도입했다. 이 제도는 접근이 제한되었던 시기를 거쳐 1981년 메디케어라는 이름으로 다시 보편적 제도가 되었다. 이 프로그램은 현재 2%인 메디케어 부담금이라는 소득세 부가금으로 명목상 자금을 조달한다. 주는 병원 및 부속 외래 환자 서비스를 관리하고, 연방 정부는 의약품 혜택 제도(의약품 비용 보조) 및 일반 진료에 자금을 지원한다.
10.7. 인권
오스트레일리아는 일반적으로 시민적 및 정치적 권리에 대한 강력한 보호 장치를 갖추고 있으며, 광범위한 국제 인권 조약에 가입했다. 인권 보호를 위한 중요한 문서로는 헌법, 1975년 인종차별금지법, 1984년 성차별금지법, 1992년 장애인차별금지법, 2004년 연령차별금지법 등이 있다. 동성결혼은 2017년부터 합법화되었다. 다른 유사한 서구 민주주의 국가들과 달리, 오스트레일리아는 헌법이나 법률에 단일 연방 권리장전을 가지고 있지 않다. 그러나 ACT, 빅토리아, 퀸즐랜드에는 주 기반의 권리장전이 있다.
휴먼 라이츠 워치 및 국제앰네스티와 같은 국제기구들은 망명 신청자 정책, 오스트레일리아 원주민 구금 중 사망, 확고한 권리 보호 부재, 시위 제한법 등의 분야에서 우려를 표명했다.
11. 문화

현대 오스트레일리아 문화는 다양하며, 국가의 원주민 전통, 앵글로-켈트 유산, 그리고 1945년 이후 다문화 이민의 역사를 반영한다. 미국 문화 또한 영향력이 있었다. 영국 식민화 이후 오스트레일리아 문화의 진화는 독특한 문화적 특성을 낳았다.
많은 오스트레일리아인들은 평등주의, 동료애, 불손함, 형식주의의 부재를 그들의 국가 정체성의 일부로 여긴다. 이러한 특징들은 종종 건조하고, 불손하며, 아이러니컬하다고 특징지어지는 오스트레일리아 속어와 오스트레일리아 유머에서 표현된다. 새로운 시민과 비자 소지자는 내무부가 개인의 자유 존중, 법치주의 인정, 인종, 성별 및 종교 차별 반대, 그리고 모든 사람을 위한 기회 평등과 어려움에 처한 사람들에 대한 연민을 포괄한다고 말하는 "공정한 기회" 이해를 포함하는 "오스트레일리아 가치"에 헌신해야 한다. 이러한 가치가 무엇을 의미하며, 오스트레일리아인들이 이를 지지하는지 여부는 연방 이전부터 논쟁의 대상이었다.
11.1. 예술

오스트레일리아에는 10만 개가 넘는 원주민 암각화 유적지가 있으며, 전통적인 디자인, 패턴, 이야기는 비평가 로버트 휴스에 따르면 "20세기의 마지막 위대한 예술 운동"인 현대 원주민 예술에 스며들어 있다. 그 대표적인 작가로는 에밀리 카메 킁와레예가 있다. 초기 식민지 예술가들은 낯선 땅에 대한 매혹을 보였다. 19세기 인상주의 화가 아서 스트리턴, 톰 로버츠 및 기타 하이델베르크파 회원들(서양 미술에서 최초의 "독특한 오스트레일리아" 운동)의 작품은 연방 결성을 앞두고 민족주의적 정서를 표현했다. 이 학파는 1900년대까지 영향력을 유지했지만, 마거릿 프레스턴과 클래리스 베켓과 같은 모더니스트와 나중에는 시드니 놀런이 새로운 예술 경향을 탐구했다. 풍경은 원주민 수채화가 앨버트 나마치라와 프레드 윌리엄스, 브렛 휘틀리 및 기타 전후 예술가들의 작품에서 중심적인 역할을 계속했으며, 이들의 작품은 양식적으로는 절충적이지만 독특하게 오스트레일리아적이며, 구상과 추상 사이를 오갔다.
오스트레일리아 문학은 유럽 정착 이후 수십 년 동안 느리게 성장했지만, 그보다 훨씬 오래된 원주민 구전 전통 중 다수는 이후 문자로 기록되었다. 19세기에는 헨리 로슨과 밴조 패터슨이 독특한 오스트레일리아 어휘를 사용하여 아웃백의 경험을 포착했다. 그들의 작품은 여전히 인기가 있으며, 패터슨의 부시 시 "왈칭 마틸다"(1895)는 오스트레일리아의 비공식 국가로 간주된다. 마일즈 프랭클린은 오스트레일리아에서 가장 권위 있는 문학상인 마일즈 프랭클린상의 이름이 되었으며, 이 상은 매년 오스트레일리아 생활에 관한 최고의 소설에 수여된다. 첫 수상자인 패트릭 화이트는 1973년 노벨 문학상을 수상했다. 오스트레일리아의 부커상 수상자로는 피터 캐리, 토머스 케닐리, 리처드 플래너건이 있다. 오스트레일리아의 공공 지식인들도 각자의 분야에서 중요한 저작을 썼는데, 페미니스트 저메인 그리어와 철학자 피터 싱어가 그 예이다.

공연 예술 분야에서 원주민들은 종종 코로보리에서 공연되는 종교적 및 세속적 노래, 춤, 리듬 음악 전통을 가지고 있다. 20세기 초, 넬리 멜바는 세계 최고의 오페라 가수 중 한 명이었으며, 이후 비지스, AC/DC, INXS, 카일리 미노그와 같은 대중음악가들이 국제적인 인정을 받았다. 오스트레일리아의 많은 공연 예술 단체들은 오스트레일리아 정부의 오스트레일리아 예술위원회를 통해 자금을 지원받는다. 각 주에는 교향악단이 있으며, 국가 오페라단인 오페라 오스트레일리아는 유명한 소프라노 조앤 서덜랜드로 잘 알려져 있다. 발레와 무용은 오스트레일리아 발레단과 다양한 주립 무용단에 의해 대표된다. 각 주에는 공공 기금으로 운영되는 극단이 있다.
11.2. 대중 매체

세계 최초의 장편 서사 영화인 켈리 갱의 이야기(1906)는 무성 영화 시대에 오스트레일리아 영화의 호황을 이끌었다. 제1차 세계 대전 이후 할리우드가 산업을 독점했고, 1960년대에는 오스트레일리아 영화 제작이 사실상 중단되었다. 정부 지원의 혜택으로 1970년대 오스트레일리아 뉴웨이브는 도발적이고 성공적인 영화들을 가져왔으며, 그중 다수는 행잉록에서의 소풍, 웨이크 인 프라이트, 갈리폴리와 같이 국가 정체성을 주제로 탐구했다. 반면 크로커다일 던디와 오즈플로이테이션 운동의 매드 맥스 시리즈는 국제적인 블록버스터가 되었다. 외국 콘텐츠가 넘쳐나는 영화 시장에서 오스트레일리아 영화는 2015년 현지 박스오피스 점유율 7.7%를 기록했다. AACTA는 오스트레일리아 최고의 영화 및 텔레비전 시상식이며, 오스트레일리아 출신 아카데미상 수상자로는 제프리 러시, 니콜 키드먼, 케이트 블란쳇, 히스 레저 등이 있다.
오스트레일리아에는 두 개의 공영 방송사(ABC와 다문화 SBS), 세 개의 상업 셔널 텔레비전 네트워크, 여러 유료 TV 서비스, 그리고 수많은 공공, 비영리 텔레비전 및 라디오 방송국이 있다. 각 주요 도시에는 최소한 하나의 일간 신문이 있으며, 두 개의 전국 일간 신문인 디 오스트레일리언과 오스트레일리언 파이낸셜 리뷰가 있다. 2024년 국경 없는 기자회는 오스트레일리아를 언론 자유 순위 180개국 중 39위로 평가했으며, 이는 뉴질랜드(19위)와 영국(23위)보다는 낮지만 미국(55위)보다는 높은 순위이다. 이러한 비교적 낮은 순위는 주로 오스트레일리아 상업 미디어 소유 구조의 제한된 다양성 때문이다. 대부분의 인쇄 매체는 뉴스 코프 오스트레일리아(59%)와 나인 엔터테인먼트(23%)의 통제 하에 있다.
11.3. 음식

대부분의 오스트레일리아 원주민 집단은 토착 동식물로 이루어진 식단, 즉 부시 터커로 생계를 유지했다. 1970년대 이후 비원주민 오스트레일리아인들 사이에서 인기가 높아졌으며, 레몬 머틀, 마카다미아 견과류, 캥거루 고기와 같은 예는 현재 널리 이용 가능하다.
최초의 식민지 주민들은 영국 및 아일랜드 요리를 대륙에 도입했다. 이러한 영향은 피시 앤드 칩스와 같은 요리 및 영국의 스테이크 파이와 관련된 오스트레일리아 미트파이에서 볼 수 있다. 또한 식민지 시대 동안 중국 이민자들은 독특한 오스트레일리아 중국 요리의 길을 열었다.
전후 이민자들은 그들의 요리 전통을 가져와 새로운 퓨전 요리에 기여함으로써 오스트레일리아 요리를 변화시켰다. 이탈리아인들은 에스프레소 커피를 도입했고, 그리스인들과 함께 플랫 화이트와 아보카도 토스트가 현재 오스트레일리아의 대표 음식으로 여겨지는 오스트레일리아의 카페 문화를 발전시키는 데 도움을 주었다. 파블로바, 래밍턴, 베지마이트, 안작 비스킷 또한 종종 상징적인 오스트레일리아 음식으로 불린다.
오스트레일리아는 포도주의 주요 수출국이자 소비국이다. 오스트레일리아 포도주는 주로 국토 남부의 서늘한 지역에서 생산된다. 오스트레일리아는 또한 맥주 소비량에서 높은 순위를 차지하며, 각 주와 준주에는 수많은 양조장이 있다.
11.4. 스포츠

오스트레일리아에서 성인 참여율이 가장 높은 스포츠는 수영, 육상, 사이클링, 축구, 골프, 테니스, 농구, 서핑, 넷볼, 크리켓이다.
오스트레일리아는 현대 하계 올림픽에 모두 참가한 5개국 중 하나이며, 멜버른(1956년)과 시드니(2000년)에서 두 차례 올림픽을 개최했다. 또한 브리즈번에서 2032년 올림픽을 개최할 예정이다. 오스트레일리아는 모든 코먼웰스 게임에도 참가했으며, 1938년, 1962년, 1982년, 2006년, 2018년에 대회를 개최했다.
오스트레일리아 크리켓 국가대표팀은 첫 번째 테스트 경기(1877년)와 첫 번째 원데이 인터내셔널(1971년)에서 잉글랜드와, 첫 번째 트웬티20 인터내셔널(2004년)에서 뉴질랜드와 경기를 치러 세 경기 모두 승리했다. 또한 남자 크리켓 월드컵에서 역대 최다인 6회 우승을 차지했다.
오스트레일리아에는 네 가지 축구 규약의 프로 리그가 있으며, 그 상대적 인기는 지리적으로 나뉜다. 1850년대 멜버른에서 시작된 오지 풋볼은 뉴사우스웨일스와 퀸즐랜드를 제외한 모든 주에서 가장 많은 텔레비전 시청자를 끌어모으고 있으며, 이 두 주에서는 럭비 리그가 우세하고 그 뒤를 럭비 유니언이 잇는다. 축구는 텔레비전 시청자와 자원 면에서 4위를 차지하지만, 전체 참여율은 가장 높다.
서프 인명 구조 운동은 20세기 초 오스트레일리아 해변에서의 주간 수영 금지법이 완화된 후 오스트레일리아에서 시작되었다. 자원봉사 인명 구조원은 국가의 상징 중 하나이다.
11.5. 상징
오스트레일리아를 대표하는 주요 상징물들은 국가의 정체성, 역사, 자연환경을 반영한다.
- 국기: 현재의 국기는 1901년 연방 결성 이후 디자인 공모를 통해 선정된 것을 기반으로 하며, 파란 바탕에 유니언 잭, 연방별, 남십자자리로 구성된다. 유니언 잭은 영국과의 역사적 연관성을, 연방별은 6개 주와 준주를 상징하는 7각 별이며, 남십자자리는 남반구에 위치한 오스트레일리아를 나타낸다.
- 국가: "어드밴스 오스트레일리아 페어"(Advance Australia Fair어드밴스 오스트레일리아 페어영어)가 공식 국가이다. 1984년에 채택되었으며, 이전에는 "천 명의 여왕을 구하소서"(God Save the Queen/King갓 세이브 더 퀸/킹영어)가 국가로 사용되었다. "어드밴스 오스트레일리아 페어"는 오스트레일리아의 아름다움, 풍요로움, 자유, 단결 등을 노래한다. 왕실 관련 행사에서는 "천 명의 여왕을 구하소서"가 왕실 국가로 연주되기도 한다.
- 국장: 방패를 중심으로 캥거루와 에뮤가 좌우를 지지하고 있으며, 방패 안에는 6개 주의 상징이 그려져 있다. 방패 위에는 푸른색과 금색 화환 위에 7각의 연방별이 있고, 국장 아래에는 "오스트레일리아"(Australia오스트레일리아영어)라는 국명이 적힌 두루마리가 있다. 캥거루와 에뮤는 오스트레일리아 고유 동물로, 뒤로 가지 않고 앞으로만 나아가는 특성 때문에 국가의 발전을 상징하는 것으로 여겨진다.
- 국화: 골든와틀(Golden Wattle골든와틀영어, 아카시아 피크난타)이 공식 국화이다. 1988년 오스트레일리아 건국 200주년을 기념하여 지정되었으며, 밝은 노란색 꽃은 국가의 희망과 단결을 상징한다. 매년 9월 1일은 "와틀 데이"로 기념된다.
- 국가 동물: 공식적으로 지정된 국가 동물은 없으나, 국장에 등장하는 붉은캥거루와 에뮤가 사실상 국가를 대표하는 동물로 널리 인식된다.
- 국가색: 녹색과 금색이 오스트레일리아의 공식 국가색이다. 1984년에 지정되었으며, 국화인 골든와틀의 잎(녹색)과 꽃(금색)에서 유래되었다. 각종 스포츠 국가대표팀 유니폼 등에서 널리 사용된다.
- 국가 보석: 오팔이 오스트레일리아의 국가 보석이다. 세계적인 오팔 생산지로서의 위상을 반영한다.
이러한 상징물들은 오스트레일리아의 역사, 문화, 자연을 함축적으로 나타내며 국민적 자긍심을 고취하는 데 기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