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자메이카는 카리브해에 위치한 섬나라이자 영연방 왕국의 일원으로, 입헌군주제를 채택하고 있다. 수도는 킹스턴이다. 면적은 1.10 만 km2로 대앤틸리스 제도에서 쿠바, 히스파니올라에 이어 세 번째로 큰 섬이다. 중앙아메리카 본토에서 동쪽으로 약 635 km, 쿠바에서 남쪽으로 약 145 km, 아이티와 도미니카 공화국이 있는 히스파니올라섬에서 서쪽으로 약 191 km 떨어져 있다. 자메이카의 역사는 타이노인과 아라와크인 같은 원주민의 정착에서 시작되어 스페인과 영국의 식민 지배를 거쳐 1962년 독립을 이루었다. 독립 이후 자메이카는 경제 성장과 사회적 변화를 겪었으나, 동시에 여러 도전 과제에도 직면해왔다. 자메이카의 경제는 관광업, 보크사이트/알루미나 채굴 및 가공업, 농업 등에 크게 의존하며, 레게 음악과 같은 독특한 문화는 전 세계적으로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사회적으로는 다양한 민족 구성과 함께 자메이카 파트와라는 크리올어가 널리 사용되며, 라스타파리 운동과 같은 독특한 종교 문화도 발전했다.
2. 국명
자메이카의 공식 국명은 영어로 Jamaica자메이카영어이다. 이 이름은 섬의 원주민이었던 타이노인들이 사용하던 언어인 타이노어에서 유래했으며, 그들이 섬을 지칭하던 'Xaymaca자이마카기타 언어'라는 단어에서 비롯되었다. '자이마카'는 "나무와 물의 땅" 또는 "샘의 땅"을 의미한다. 크리스토퍼 콜럼버스가 기록한 초기 타이노어 명칭으로 '야마예(Yamaye)'가 제시되기도 했다.
1494년 콜럼버스가 자메이카에 도착한 이후 스페인의 식민지가 되면서, 섬의 이름은 스페인어 철자법에 따라 'Jamaica하마이카스페인어'로 표기되었고, 당시에는 '산티아고(Santiago)'라는 이름으로 불렸다. 1655년 영국이 섬을 점령한 후에도 스페인어 철자 'Jamaica'는 유지되었으나, 발음은 영어식으로 바뀌어 현재의 '자메이카'가 되었다.
현지에서는 자메이카 파트와어로 'Jumieka주미에카jam' 또는 'Jomieka조미에카jam' 등으로 불리기도 한다. 자메이카인들은 자신들의 섬을 "야드(yaad)"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이는 집을 의미하는 파트와어 단어이다. 또한 "잼록(Jamrock)", "잼다운(Jamdown)" 또는 "자(Ja)"와 같은 비공식적인 별칭도 널리 사용된다.
3. 역사
자메이카의 역사는 선사 시대 원주민들의 정착으로부터 시작하여 유럽 열강의 식민 지배와 노예제, 그리고 독립과 현대 국가로의 발전에 이르는 과정을 포함한다. 각 시대는 자메이카의 사회, 문화, 경제에 깊은 영향을 미쳤다.
3.1. 선사 시대와 원주민
자메이카에 인간이 거주하기 시작한 증거는 기원후 500년경까지는 발견되지 않았다. 이후 "레드웨어 사람들(Redware people)"로 알려진 집단이 그들의 토기를 따서 명명되었으며, 이들은 대략 600년경에 도착했다. 그 후 약 800년경에는 남아메리카에서 온 것으로 추정되는 타이노인(Taíno)이 정착했다. 타이노인들은 농경과 어업을 기반으로 한 사회를 이루었으며, 전성기에는 약 6만 명의 인구가 200여 개의 마을에 나뉘어 살았고, 각 마을은 '카시케'(cacique)라 불리는 족장이 다스렸다. 특히 현재의 올드하버(Old Harbour) 지역을 포함한 자메이카 남부 해안에 인구가 밀집되어 있었다.
유럽인과의 접촉 이후 타이노인들이 멸종했다고 알려져 있지만, 사실 1655년 영국이 섬을 점령했을 때에도 타이노인들은 여전히 자메이카에 거주하고 있었다. 일부는 내륙 지역으로 피신하여 아프리카계 마룬(Maroon) 공동체와 융화되었다. 자메이카 국립 유산 트러스트(Jamaican National Heritage Trust)는 타이노인의 잔존 증거를 찾아 문서화하려는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3.2. 스페인 식민 시대

1494년 크리스토퍼 콜럼버스는 그의 두 번째 아메리카 항해 중 자메이카에 상륙하여 이 섬을 스페인의 영토로 선언한 최초의 유럽인이 되었다. 그의 상륙 지점은 현재의 디스커버리 베이(Discovery Bay)로 추정되며, 세인트앤스베이는 콜럼버스에 의해 "산타 글로리아(Santa Gloria)"로 명명되었다. 그는 1503년에 다시 돌아왔으나 난파되어 구조될 때까지 1년 동안 자메이카에서 생활해야 했다.
1509년 후안 데 에스키벨은 세인트앤스베이에서 서쪽으로 약 1.5 km 떨어진 곳에 섬 최초의 스페인 정착지인 세비야 라 누에바(Sevilla la Nueva)를 건설했으나, 비위생적인 환경으로 인해 1524년경 버려졌다. 수도는 1534년경 '산티아고 데 라 베가(St. Jago de la Vega)'로 불리던 현재의 스패니시타운으로 옮겨졌다.
스페인 통치 하에서 타이노 원주민들은 유럽에서 유입된 질병과 스페인인들의 노예화로 인해 급격히 사망했다. 이에 따라 스페인인들은 아프리카에서 노예들을 수입하기 시작했다. 많은 노예들은 탈출하여 자메이카 내륙의 외지고 방어하기 쉬운 지역에 자치 공동체를 형성했고, 남아있던 타이노인들과 섞여 이들은 마룬(Maroons)으로 알려지게 되었다. 또한, 많은 유대인들이 스페인 종교재판을 피해 섬으로 이주했다. 이들은 콘베르소(강제 개종자)로 살아가며 종종 스페인 통치자들의 박해를 받았고, 일부는 스페인 제국의 선박을 대상으로 한 해적 활동에 가담하기도 했다. 17세기 초, 자메이카의 인구는 2,500명에서 3,000명 정도로 추산되었다.
3.3. 영국 식민 시대
영국은 자메이카 섬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고, 이스파니올라섬의 산토도밍고 정복 시도가 실패한 후, 윌리엄 펜 제독과 로버트 베너블스 장군이 1655년 자메이카 침공을 이끌었다. 영국은 자메이카를 점령하고 점차 식민 통치를 확립했다. 이 시기에는 설탕 산업이 번성하며 아프리카에서 강제로 이주된 노예들의 노동력에 크게 의존했다. 노예들의 저항과 마룬 공동체의 형성은 영국 통치에 대한 지속적인 도전이었으며, 결국 1838년 노예제가 완전히 폐지되었다.
3.3.1. 초기 영국 통치와 해적의 시대

영국이 자메이카를 점령하자 대부분의 스페인 식민지 주민들은 스페인계 유대인들을 제외하고 도망쳤는데, 이들은 남기로 결정했다. 스페인 노예 소유주들은 떠나기 전에 노예들을 해방시켰다. 많은 노예들이 산으로 흩어져 이미 형성된 마룬 공동체에 합류했다. 1657년 오초리오스 전투와 1658년 리오누에보 전투에서 스페인은 패배했다. 1660년, 후안 데 볼라스의 지도 하에 있던 마룬 공동체는 스페인 편에서 영국 편으로 돌아섰고, 이들의 도움으로 스페인의 패배는 확정되었다. 1661년 영국 민간 정부가 수립되었다.
수 세기 동안의 노예제 하에서, 자메이카 마룬들은 자메이카 내륙 산악 지역에 자유 공동체를 건설했고, 후안 데 세라스와 같은 마룬 지도자들의 지휘 아래 여러 세대에 걸쳐 자유와 독립을 유지했다. 한편, 스페인은 섬을 되찾기 위해 여러 차례 시도했고, 이로 인해 영국은 카리브해에서 스페인 선박을 공격하는 해적들을 지원하게 되었다. 결과적으로 해적 행위가 자메이카에서 만연하게 되었고, 포트로열은 무법 도시로 악명이 높았다. 스페인은 이후 1670년 마드리드 조약으로 영국의 섬 소유를 인정했다. 그 후 영국 당국은 해적들의 과도한 행위를 억제하고자 했다.
1660년 자메이카의 인구는 백인 약 4,500명, 흑인 약 1,500명이었다. 1670년대 초, 영국이 대규모 노예 노동에 의존하는 사탕수수 농장을 개발하면서 아프리카 흑인들이 인구의 대다수를 차지하게 되었다. 아일랜드인 또한 섬 초기 인구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여, 17세기 후반 섬의 백인 인구의 3분의 2를 구성했는데, 이는 영국인 인구의 두 배였다. 그들은 1655년 정복 이후 계약 노동자 및 군인으로 들어왔다. 대다수의 아일랜드인은 삼왕국 전쟁의 결과로 아일랜드에서 정치범으로 강제 이송되었다. 18세기까지 많은 아일랜드인이 섬으로 이주했다.
제한된 형태의 지방 정부가 1664년 자메이카 의회 설립과 함께 도입되었으나, 이는 소수의 부유한 농장주들만을 대표했다. 1692년 식민지는 지진으로 큰 타격을 입어 수천 명이 사망하고 포트로열이 거의 완전히 파괴되었다.
3.3.2. 18~19세기: 설탕 경제와 노예제


1700년대 동안 경제는 주로 설탕과 커피, 목화, 인디고와 같은 수출용 작물에 기반하여 호황을 누렸다. 이 모든 작물은 흑인 노예들에 의해 경작되었으며, 이들은 짧고 종종 잔인한 삶을 살았고 아무런 권리도 없이 소수의 농장주 계급의 재산으로 취급받았다. 18세기에는 점점 더 많은 노예들이 도망쳐 마룬 공동체에 합류했으며, 이는 제1차 마룬 전쟁(1728년-1739/40년)으로 이어졌고 교착 상태로 끝났다. 영국 정부는 평화를 모색했고, 1739년 커조와 아콤퐁이 이끄는 리워드 마룬들과, 1740년 콰오와 그래니 내니가 이끄는 윈드워드 마룬들과 조약을 체결했다.
1760년에는 태키의 전쟁으로 알려진 대규모 노예 반란이 일어났으나 영국과 그들의 마룬 동맹군에 의해 진압되었다. 1795년부터 1796년까지 이어진 제2차 마룬 전쟁 이후, 커조스 타운(트렐로니 타ウン)의 많은 마룬들이 노바스코샤로, 나중에는 시에라리온으로 추방되었다.
19세기 초까지 자메이카의 노예 노동과 플랜테이션 경제에 대한 의존은 흑인이 백인을 거의 20대 1의 비율로 압도하는 결과를 낳았다. 영국은 노예 수입을 불법화했지만, 일부는 여전히 스페인 식민지와 아프리카에서 직접 밀수되었다. 노예제 폐지를 계획하면서 영국 의회는 노예들의 조건을 개선하기 위한 법률을 통과시켰다. 들판에서 채찍 사용과 여성 채찍질을 금지했고, 농장주들에게 노예들에게 종교 교육을 허용하도록 알렸으며, 노예들이 자신들의 생산물을 팔 수 있도록 매주 하루의 자유일을 요구했고, 노예들이 교회에 출석할 수 있도록 일요일 시장을 금지했다. 자메이카 의회는 새로운 법에 분개하고 저항했다. 당시 유럽계 자메이카인으로 제한되었던 의원들은 노예들이 만족하고 있으며 의회가 섬 문제에 간섭하는 것에 반대한다고 주장했다. 노예 소유주들은 조건이 완화될 경우 반란이 일어날 가능성을 두려워했다.
영국은 1807년 노예무역법으로 노예 무역을 폐지했지만, 제도 자체는 폐지하지 않았다. 1831년에는 침례교 설교자 새뮤얼 샤프가 이끈 뱁티스트 전쟁으로 알려진 대규모 노예 반란이 일어났다. 이 반란은 수백 명의 사망자와 많은 농장의 파괴를 초래했고, 농장주 계급의 잔혹한 보복으로 이어졌다. 이러한 반란들과 노예제 폐지론자들의 노력의 결과로, 영국은 1834년 제국 내에서 노예제를 불법화했고, 1838년에는 동산 노예제로부터의 완전한 해방을 선언했다. 1834년 인구는 371,070명이었으며, 이 중 백인은 15,000명, 자유 흑인은 5,000명, "유색인" 또는 자유 유색인(혼혈)은 40,000명, 노예는 311,070명이었다. 결과적인 노동력 부족은 영국이 노동력을 보충하기 위해 계약 노동자를 "수입"하기 시작하게 만들었는데, 많은 해방된 노예들이 농장에서 일하는 것을 거부했기 때문이다. 인도에서 모집된 노동자들이 1845년에 도착하기 시작했고, 중국인 노동자들은 1854년에 도착했다. 많은 자메이카인들은 남아시아인과 중국인의 후손이다.
그 후 20년 동안 콜레라, 성홍열, 천연두와 같은 여러 전염병이 섬을 강타하여 거의 60,000명(하루 약 10명)이 사망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871년 인구 조사에서는 506,154명의 인구가 기록되었으며, 이 중 남성은 246,573명, 여성은 259,581명이었다. 인종별로는 백인 13,101명, 유색인(브라우닝 계층으로 알려짐) 100,346명, 흑인 392,707명이었다. 이 시기에는 경제 침체가 있었고, 많은 자메이카인들이 빈곤 속에서 살았다. 이에 대한 불만과 흑인 다수에 대한 지속적인 인종 차별 및 소외는 1865년 폴 보글이 이끈 모랜트만 반란의 발발로 이어졌고, 이는 총독 존 에어에 의해 너무나 잔인하게 진압되어 그는 직위에서 해임되었다. 그의 후임자인 존 피터 그랜트는 섬에 대한 영국의 확고한 통치를 유지하면서 일련의 사회적, 재정적, 정치적 개혁을 단행했고, 섬은 1866년 왕령 식민지가 되었다. 1872년 수도는 스패니시타운에서 킹스턴으로 이전되었다.
3.3.3. 20세기 초: 자치 운동과 사회 변화

1907년 자메이카는 지진으로 타격을 입었고, 이어진 화재와 함께 킹스턴에 상당한 파괴를 초래하고 800명에서 1,000명 사이의 사망자를 냈다.
실업과 빈곤은 많은 자메이카인들에게 여전히 문제였다. 그 결과 다양한 정치 변화를 추구하는 운동이 일어났는데, 가장 주목할 만한 것은 1917년 마커스 가비가 설립한 만국 흑인 진보 연합(UNIA)이었다. 노동자들의 더 큰 정치적 권리와 조건 개선을 추구하는 것 외에도, 가비는 저명한 범아프리카주의자이자 아프리카 귀환 운동의 지지자였다. 그는 또한 1930년대 자메이카에서 창시된 종교인 라스타파리의 주요 영감 중 하나였으며, 이 종교는 기독교와 에티오피아 황제 하일레 셀라시에의 인물에 초점을 맞춘 아프리카 중심적 신학을 결합했다. 간헐적인 박해에도 불구하고 라스타파리는 섬에서 확립된 신앙으로 성장했고, 나중에는 해외로 퍼져나갔다.
1930년대 대공황은 자메이카에 큰 타격을 입혔다. 1934년부터 1939년까지 이어진 영국령 서인도 제도 노동 불안의 일환으로 자메이카에서는 수많은 파업이 발생했으며, 1938년에는 폭동으로 번진 파업이 절정에 달했다. 그 결과 영국 정부는 소요의 원인을 조사하기 위해 위원회를 설립했고, 그 보고서는 영국 카리브해 식민지의 정치적, 경제적 개혁을 권고했다. 1944년 보통 성인 참정권에 의해 선출된 새로운 하원이 설립되었다. 이 시기에 알렉산더 버스타만테가 이끄는 자메이카 노동당(JLP)과 노먼 맨리가 이끄는 인민민족당(PNP)이 창설되면서 자메이카의 양당제가 등장했다.
자메이카는 영국으로부터 점차 자치권을 획득했다. 1958년에는 영국의 여러 카리브해 식민지 연방인 서인도 연방의 주가 되었다. 그러나 연방 가입은 분열을 야기했고, 이 문제에 대한 국민투표에서는 근소한 과반수가 탈퇴에 투표했다. 연방을 탈퇴한 후, 자메이카는 1962년 8월 6일 완전한 독립을 달성했다. 그러나 새로운 국가는 영연방(영국 군주를 국가 원수로 함) 회원국 자격을 유지했으며 웨스트민스터식 의회 제도를 채택했다. 78세의 버스타만테는 자메이카의 초대 총리가 되었다.
3.4. 독립 이후
보수적인 자메이카 노동당(JLP) 정부 하에서 독립 후 첫 10년 동안 연평균 약 6%의 강력한 경제 성장이 이루어졌으며, 이 기간 동안 알렉산더 버스타만테, 도널드 생스터(취임 2개월 만에 자연사), 휴 시어러가 연이어 총리를 역임했다. 이러한 성장은 보크사이트/알루미나, 관광업, 제조업, 그리고 농업 부문에 대한 높은 수준의 민간 투자에 의해 촉진되었다. 1967년 자메이카 총선에서 JLP는 다시 승리하여 53석 중 33석을 차지했고, 인민민족당(PNP)은 20석을 차지했다.
외교 정책 측면에서 자메이카는 비동맹 운동의 회원국이 되었으며, 영국 및 미국과의 강력한 유대 관계를 유지하는 동시에 쿠바와 같은 공산주의 국가들과도 관계를 발전시키고자 했다.
첫 10년간의 낙관론은 많은 아프리카계 자메이카인들 사이에서 불평등감이 커지고, 성장의 혜택이 도시 빈민들에게 공유되지 않는다는 우려와 함께 나타났다. 이들 중 다수는 킹스턴의 범죄가 만연한 빈민가에 살게 되었다. 이로 인해 유권자들은 1972년 자메이카 총선에서 마이클 맨리가 이끄는 PNP를 선출했다. PNP는 37석을, JLP는 16석을 차지했다.
맨리 정부는 최저 임금 인상, 토지 개혁, 여성 평등 법안, 주택 건설 확대, 교육 제공 확대와 같은 다양한 사회 개혁을 단행했다. 국제적으로 그는 공산권과의 관계를 개선하고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아파르트헤이트 정권에 격렬히 반대했다.
1976년, PNP는 다시 압승을 거두어 47석을 차지했고 JLP는 13석을 차지했다. 투표율은 85%로 매우 높았다. 그러나 이 시기 경제는 석유 파동과 같은 내부 및 외부 요인의 조합으로 인해 흔들렸다. JLP와 PNP 간의 경쟁은 치열해졌고, 이 시기에 정치 및 조직 폭력과 관련된 폭력이 크게 증가했다.
1980년까지 자메이카의 국민 총생산은 1972년 수준보다 약 25% 감소했다. 변화를 모색하던 자메이카인들은 1980년 자메이카 총선에서 JLP를 다시 선출했고, 에드워드 시가가 이끄는 JLP는 51석을, PNP는 9석을 차지했다. 확고한 반공주의자였던 시가는 쿠바와의 관계를 단절하고 1983년 미국의 그레나다 침공을 지원하기 위해 군대를 파견했다. 그러나 경제 악화는 1980년대 중반까지 계속되었고, 여러 요인으로 인해 더욱 악화되었다. 가장 큰 알루미나 생산 업체인 알파트와 알코아가 문을 닫았고, 두 번째로 큰 생산 업체인 알칸의 생산량도 크게 감소했다. 레이놀즈 자메이카 광산(Reynolds Jamaica Mines, Ltd.)은 자메이카 산업에서 철수했다. 경제에 중요한 관광업도 쇠퇴했다. 외국 및 국내 부채 증가와 막대한 재정 적자로 인해 정부는 국제 통화 기금(IMF)의 자금 지원을 모색했고, 이는 다양한 긴축 조치를 시행하는 조건이었다. 이로 인해 1985년 파업이 발생했고, 1988년 허리케인 길버트로 인한 피해에 대한 정부의 대응에 대한 비판과 함께 시가 정부에 대한 지지율이 하락했다. 사회주의를 더 이상 강조하지 않고 보다 중도적인 입장을 채택한 마이클 맨리와 PNP는 1989년 자메이카 총선에서 재선되어 45석을, JLP는 15석을 차지했다.
PNP는 마이클 맨리(1989년~1992년), P. J. 패터슨(1992년~2005년), 포샤 심슨밀러(2005년~2007년) 총리 하에서 연이어 선거에서 승리했다. 1993년 자메이카 총선에서 패터슨은 PNP를 이끌고 승리하여 52석을, JLP는 8석을 차지했다. 패터슨은 1997년 자메이카 총선에서도 압도적인 차이로 승리하여 50석을, JLP는 10석을 차지했다. 패터슨의 세 번째 연속 승리는 2002년 자메이카 총선에서 이루어졌으며, PNP는 의석 과반수가 34석 대 26석으로 줄어들었지만 정권을 유지했다. 패터슨은 2006년 2월 26일 사임했고, 자메이카 최초의 여성 총리인 포샤 심슨밀러가 그 자리를 계승했다. 이 기간 동안 투표율은 1993년 67.4%에서 2002년 59.1%로 서서히 감소했다.
이 기간 동안 금융 부문 규제 완화와 자메이카 달러 변동환율제 도입, 사회 기반 시설 투자 확대 등 다양한 경제 개혁이 도입되었으며, 강력한 사회 안전망도 유지되었다. 이전 두 십년 동안 만연했던 정치 폭력은 크게 감소했다.
2007년 PNP는 JLP에 32석 대 28석의 근소한 차이로 패배했으며, 투표율은 61.46%였다. 이 선거로 18년간의 PNP 통치가 끝나고 브루스 골딩이 새로운 총리가 되었다. 골딩의 임기(2007년~2010년)는 세계 금융 위기의 영향과 2010년 자메이카 경찰과 군대가 마약왕 크리스토퍼 코크를 체포하려다 폭력 사태로 번져 70명 이상이 사망한 사건의 여파로 점철되었다. 이 사건의 결과로 골딩은 사임했고, 2011년 앤드루 홀니스가 그 자리를 계승했다.
독립은 자메이카에서 널리 기념되었지만, 21세기 초에는 의문이 제기되었다. 2011년 한 조사에 따르면 자메이카인의 약 60%가 영국 식민지로 남았더라면 국가가 더 나았을 것이라고 믿었으며, 단 17%만이 더 나빴을 것이라고 믿었다. 그들은 수년간의 사회적, 재정적 부실 관리를 문제로 꼽았다. 홀니스와 JLP는 2011년 자메이카 총선에서 패배했고, 포샤 심슨밀러와 PNP가 다시 정권을 잡았다. 의석수는 63석으로 늘어났고, PNP는 42석을, JLP는 21석을 차지하며 압승을 거두었다. 투표율은 53.17%였다.
홀니스의 JLP는 2016년 총선에서 근소한 차이로 승리하여 심슨밀러의 PNP를 물리쳤다. PNP는 31석, JLP는 32석을 차지했다. 그 결과 심슨밀러는 두 번째로 야당 대표가 되었다. 투표율은 처음으로 50% 아래로 떨어져 48.37%를 기록했다.
2020년 총선에서 앤드루 홀니스는 자메이카 노동당의 2회 연속 승리를 이끌며 역사를 만들었으며, 피터 필립스가 이끄는 PNP가 14석을 차지한 반면 JLP는 49석을 차지했다. JLP가 연속으로 승리한 것은 1980년 이후 처음이었다. 그러나 이번 선거의 투표율은 37%에 불과했는데, 이는 코로나바이러스 팬데믹의 영향을 받았을 가능성이 있다.
4. 지리


자메이카는 카리브해에서 세 번째로 큰 섬이다. 북위 17도에서 19도, 서경 76도에서 79도 사이에 위치한다. 산악 지형이 내륙을 지배하며, 서쪽에는 돈 피게레로(Don Figuerero), 산타크루스(Santa Cruz), 메이데이(May Day) 산맥이, 중앙에는 드라이하버 산맥이, 동쪽에는 존 크로우 산맥과 블루마운틴 산맥이 있다. 블루마운틴 산맥에는 자메이카 최고봉인 블루마운틴봉(해발 2256 m)이 솟아 있다. 이들 산맥은 좁은 해안 평야로 둘러싸여 있다. 자메이카에는 두 개의 주요 도시가 있는데, 첫 번째는 남쪽 해안에 위치한 수도이자 비즈니스 중심지인 킹스턴이고, 두 번째는 북쪽 해안에 위치한 카리브해 관광 명소로 잘 알려진 몬테고베이이다. 킹스턴항은 세계에서 일곱 번째로 큰 천연 항구로, 1872년 킹스턴이 수도로 지정되는 데 기여했다. 그 외 주목할 만한 도시로는 포트모어, 스패니시타운, 사바나라마르, 맨더빌 및 휴양 도시인 오초리오스, 포트안토니오, 네그릴 등이 있다.
주요 관광 명소로는 세인트앤구의 던스리버 폭포, 세인트엘리자베스구의 YS 폭포, 포틀랜드구의 블루라군(화산 분화구) 및 1692년 대지진으로 섬의 팔리세이도스 육계사주 형성에 기여한 포트로열 등이 있다.
4.1. 지형과 환경
자메이카는 건조 및 습윤 석회암 숲, 열대우림, 하천변 삼림지, 습지, 동굴, 강, 해초층, 산호초 등 다양한 육상, 수생 및 해양 생태계를 보유하고 있다. 당국은 환경의 엄청난 중요성과 잠재력을 인식하고 일부 "비옥한" 지역을 "보호 구역"으로 지정했다. 섬의 보호 구역으로는 코크핏 컨트리, 헬셔 힐스, 리치필드 삼림 보호 구역 등이 있다. 1992년 자메이카 최초의 해양 공원이 몬테고베이에 약 15 km2 규모로 설립되었다. 포틀랜드 바이트 보호구역은 1999년에 지정되었다. 이듬해 블루 앤드 존 크로우 산맥 국립공원이 조성되어 약 776996433 m2 (300 mile2)의 야생 지역을 포함하며, 수천 종의 나무와 양치류, 희귀 동물을 보호하고 있다.
자메이카 해안에는 몇몇 작은 섬들이 있으며, 특히 포틀랜드 바이트에 있는 피전섬, 솔트섬, 돌핀섬, 롱아일랜드, 그레이트고트섬, 리틀고트섬 등이 대표적이며, 더 동쪽에는 라임케이가 있다. 남쪽 해안에서 약 50~80km 떨어진 곳에는 매우 작은 모랜트암초와 페드로암초가 있다.
4.2. 기후
자메이카의 기후는 열대성으로 덥고 습하지만, 내륙 고지대는 더 온화하다. 남부 해안의 일부 지역, 예를 들어 리과네아 평원(Liguanea Plain)과 페드로 평원(Pedro Plains)은 비교적 건조한 비그늘 지역이다.
자메이카는 대서양 열대 저기압 활동의 주요 발달 지역 내에 위치해 있어 때때로 심각한 폭풍 피해를 입는다. 1951년 허리케인 찰리와 1988년 허리케인 길버트는 각각 1951년과 1988년에 자메이카를 직접 강타하여 큰 피해와 많은 사망자를 발생시켰다. 2000년대에는 허리케인 아이반, 2007년 허리케인 딘, 허리케인 구스타브도 섬에 악천후를 몰고 왔다.
4.3. 동식물


자메이카의 기후는 열대성이며, 풍부한 동식물을 가진 다양한 생태계를 지원한다. 식물상은 수세기에 걸쳐 상당히 변화했다. 1494년 스페인인들이 도착했을 때, 작은 농경지를 제외하고는 국토가 깊은 숲으로 덮여 있었다. 유럽 정착민들은 건물과 선박 용품을 위해 거대한 목재 나무를 베어냈고, 집약적인 농업 재배를 위해 평야, 사바나, 산비탈을 개간했다. 사탕수수, 바나나, 감귤류 나무 등 많은 새로운 식물이 도입되었다.
자메이카에는 약 3,000종의 자생 현화식물(이 중 1,000종 이상이 고유종이고 200종이 난초과 식물), 수천 종의 비현화 식물군, 그리고 약 20개의 식물원이 있으며, 그중 일부는 수백 년 된 곳도 있다. 강우량이 많은 지역에는 대나무, 양치류, 흑단, 마호가니, 로즈우드 군락도 있다. 선인장과 유사한 건조 지역 식물은 남부 및 남서부 해안 지역에서 발견된다. 서부 및 남서부 일부는 넓은 초원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나무들이 드문드문 서 있다. 자메이카는 자메이카 습윤림, 자메이카 건조림, 대앤틸리스 맹그로브라는 세 개의 육상 생태지역의 본고장이다.
자메이카의 동물상은 카리브해 지역의 전형적인 특징을 보이며, 많은 고유종을 포함한 매우 다양한 야생동물을 포함한다. 다른 해양 섬들과 마찬가지로, 육상 포유류는 대부분 여러 종의 박쥐로 이루어져 있으며, 이 중 최소 3종의 고유종은 코크핏 컨트리에서만 발견되고 그중 하나는 위험에 처해 있다. 다른 박쥐 종으로는 자메이카무화과먹는박쥐와 털꼬리박쥐속이 있다. 자메이카에 현존하는 박쥐가 아닌 유일한 토종 포유류는 현지에서 코니(coney)로 알려진 자메이카후티아이다. 멧돼지와 작은아시아몽구스와 같은 도입된 포유류도 흔하다. 자메이카에는 약 50종의 파충류도 서식하며, 그중 가장 큰 것은 미국악어이지만, 블랙리버(Black River)와 일부 다른 지역에서만 존재한다. 아놀도마뱀, 이구아나와 같은 도마뱀과 레이서 및 자메이카보아(섬에서 가장 큰 뱀)와 같은 뱀은 코크핏 컨트리와 같은 지역에서 흔하다. 자메이카의 8종의 토종 뱀 중 독이 있는 종은 없다.
자메이카에는 약 289종의 조류가 서식하며, 이 중 27종은 고유종으로, 멸종 위기에 처한 검은부리청동아마존앵무와 자메이카검은새를 포함하며, 이 두 종 모두 코크핏 컨트리에서만 발견된다. 또한 벌새 4종(그중 3종은 세계 어디에도 없음)의 토종 서식지이기도 하다: 검은부리스트림꼬리벌새, 자메이카망고벌새, 버베인벌새, 붉은부리스트림꼬리벌새. 현지에서 "닥터 버드(doctor bird)"로 알려진 붉은부리스트림꼬리벌새는 자메이카의 국가 상징이다. 다른 주목할 만한 종으로는 자메이카토디새와 큰홍학이 있다.
자메이카에는 자메이카슬라이더거북이라는 한 종의 민물 거북이 서식한다. 이 거북은 자메이카와 바하마의 몇몇 섬에서만 발견된다. 또한, 특히 청개구리과를 비롯한 많은 종류의 개구리가 섬에 흔하다.

자메이카 해역에는 상당한 양의 담수 및 해수 어류 자원이 있다. 주요 해수 어류 종류로는 왕고등어, 전갱이과, 고등어, 화이팅, 다랑어, 참치 등이 있다. 때때로 담수 및 하구 환경으로 들어오는 어류로는 스눅, 이타자라바리, 맹그로브퉁돔, 숭어 등이 있다. 자메이카의 담수에서 대부분의 생애를 보내는 어류로는 많은 종의 난태생송사리과, 송사리과, 민물 망둑어, 산숭어, 미국뱀장어 등이 있다. 틸라피아는 양식을 위해 아프리카에서 도입되었으며 매우 흔하다. 자메이카 주변 해역에서는 돌고래, 비늘돔, 멸종 위기에 처한 서인도제도매너티도 볼 수 있다.
세계에서 가장 큰 지네인 아마존왕지네를 포함하여 곤충 및 기타 무척추동물이 풍부하다. 자메이카에는 약 150종의 나비와 나방이 서식하며, 이 중 35종은 토종이고 22종은 아종이다. 또한 서반구에서 가장 큰 나비인 호메루스제비나비의 토종 서식지이기도 하다.
산호초 생태계는 생계, 식량, 휴양, 의약품 화합물의 원천을 제공하고 그들이 사는 땅을 보호하기 때문에 중요하다. 자메이카는 발전을 위해 바다와 그 생태계에 의존한다. 그러나 자메이카의 해양 생물도 영향을 받고 있다. 해양 생물의 건강이 최상이 아닌 데에는 여러 요인이 있을 수 있다. 자메이카의 지질학적 기원, 지형적 특징 및 계절적 폭우로 인해 해안 및 해양 환경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다양한 자연재해에 취약하다. 여기에는 폭풍 해일, 사면 붕괴(산사태), 지진, 홍수 및 허리케인이 포함된다. 자메이카 네그릴 해양 공원(NMP)의 산호초는 주요 관광지로 수십 년간 집중 개발된 후 영양 오염과 대형 조류 번성으로 점점 더 많은 영향을 받고 있다.

자메이카 관광 산업은 총 고용의 32%, 국가 GDP의 36%를 차지하며 주로 태양, 바다, 모래에 기반을 두고 있으며, 마지막 두 가지 속성은 건강한 산호초 생태계에 의존한다. 자메이카의 관광 때문에, 그들은 관광객들이 자메이카만으로는 해양 생태계를 관리할 수 없기 때문에 재정적으로 도움을 줄 의향이 있는지 알아보기 위한 연구를 개발했다. OECD에 따르면, 해양은 전체 경제에 연간 1조 5천억 달러의 부가가치를 기여한다. 섬에 있는 개발도상국은 해양에서 수입의 대부분을 얻을 것이다.
4.4. 환경 문제
오염은 유출수, 하수 시스템, 쓰레기에서 비롯된다. 그러나 이것은 일반적으로 비나 홍수 후에 바다로 흘러 들어간다. 물에 들어가는 모든 것은 바다의 질과 균형을 변화시킨다. 열악한 연안 수질은 어업, 관광 및 해양 양식업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쳤으며, 해양 및 연안 서식지의 생물 자원의 생물학적 지속 가능성을 약화시켰다. 자메이카는 해상을 통해 많은 물품을 수입하고 수출한다. 자메이카로 들어가는 수입품 중 일부는 석유 및 석유 제품을 포함한다. 문제에는 해상 사고, 석유 및 석유 제품의 국내외 운송을 통한 유출 위험이 포함된다. 기름 유출은 바다에 일반적으로 발견되지 않는 화학 물질로 해양 생물을 교란시킬 수 있다. 자메이카에서는 다른 형태의 오염도 발생한다. 자메이카의 고형 폐기물 처리 메커니즘은 현재 부적절하다. 고형 폐기물은 강우력을 통해 물로 들어간다. 고형 폐기물은 또한 야생 동물, 특히 물 표면에서 먹이를 먹고 떠다니는 잔해를 음식으로 착각하는 새, 물고기, 거북이에게 해롭다. 예를 들어, 플라스틱은 새와 거북이의 목에 걸려 먹고 숨쉬기 어렵게 만들 수 있으며, 자라면서 플라스틱이 목을 더 조이게 된다. 플라스틱, 금속, 유리 조각은 물고기가 먹는 음식으로 착각될 수 있다. 각 자메이카인은 하루에 1 kg의 폐기물을 발생시키며, 이 중 70%만이 국립 고형 폐기물 관리국(NSWMA)에 의해 수거되고 나머지 30%는 소각되거나 수로나 배수로에 버려진다.
바다와 수중 생물을 보존하기 위한 정책이 시행되고 있다. 통합 연안 지역 관리(ICZM)의 목표는 연안 자원에 의존하는 인간 공동체의 삶의 질을 개선하는 동시에 연안 생태계의 생물 다양성과 생산성을 유지하는 것이다. 저개발국을 개발하는 것은 국가를 개발하기 위해 수행될 모든 건설 작업으로 인해 해양 생태계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강력한 시장력과 인구 일부 계층의 빈곤으로 인한 과도한 건설과 파괴적인 착취는 해양 및 연안 자원의 감소에 기여한다. 사람들의 삶뿐만 아니라 해양과 그 생태계의 생명에도 기여할 개발 관행. 이러한 관행 중 일부는 지속 가능한 어업 관행 개발, 지속 가능한 해양 양식 기술 및 관행 보장, 해운의 지속 가능한 관리, 지속 가능한 관광 관행 촉진 등을 포함한다.
5. 정치


자메이카는 의원내각제에 기반한 민주주의 국가이자 입헌군주제 국가이다. 국가 원수는 자메이카의 군주(현재 찰스 3세)이며, 자메이카 총독이 그를 대리한다. 총독은 자메이카 총리와 내각 전체의 지명을 받아 군주가 공식적으로 임명한다. 내각의 모든 구성원은 총리의 조언에 따라 총독이 임명한다. 군주와 총독은 특정 헌법적 위기 상황에서 사용할 수 있는 예비 권력을 제외하고는 주로 의례적인 역할을 수행한다. 군주의 지위는 자메이카에서 수년 동안 지속적인 논쟁의 대상이었으며, 현재 주요 정당들은 대통령을 국가 원수로 하는 공화국으로의 전환을 약속하고 있다.
자메이카의 현행 헌법은 1962년 자메이카 의회의 초당적 공동위원회에 의해 기초가 마련되었다. 이 헌법은 영국 의회가 통과시킨 1962년 자메이카 독립법과 함께 발효되어 자메이카에 독립을 부여했다.
자메이카 의회는 양원제로, 하원(House of Representatives)과 상원(Senate)으로 구성된다. 하원 의원(Members of Parliament 또는 MPs로 알려짐)은 직접 선출되며, 총독의 판단에 따라 하원 의원 과반수의 신임을 가장 잘 얻을 수 있는 하원 의원이 총독에 의해 총리로 임명된다. 상원 의원은 총리와 의회 야당 대표가 공동으로 지명한 후 총독이 임명한다.
자메이카 사법부는 영미법과 영연방 판례에서 파생된 보통법 체제로 운영된다. 최종 항소 법원은 추밀원 사법위원회이지만, 2000년대에 의회는 이를 카리브 사법재판소로 대체하려고 시도했다.
5.1. 정부 구조
자메이카는 영국 국왕을 국가원수로 하는 입헌군주제를 채택하고 있으며, 자메이카 총독이 국왕을 대행한다. 행정부는 의원내각제에 기반하며, 자메이카 총리가 정부 수반으로서 행정부를 이끈다. 총리는 의회 다수당의 대표가 맡는 것이 일반적이다.
5.2. 의회와 정당
자메이카 의회는 양원제(상원, 하원)로 구성된다. 상원은 총 21석으로 총리가 13명, 야당 대표가 8명을 추천하여 총독이 임명한다. 하원은 총 63석으로, 국민의 직접 선거를 통해 선출되며 임기는 5년이다.
주요 정당으로는 자메이카 노동당(Jamaica Labour Party, JLP)과 인민민족당(People's National Party, PNP)이 있으며, 이 두 정당이 자메이카 정치를 주도하는 양당 체제를 이루고 있다. JLP는 중도 보수 성향을, PNP는 민주사회주의 이념을 표방한다. 그 외에도 국민민주운동(NDM)과 같은 군소 정당들이 존재하지만, 의회에서 의석을 확보하지는 못하고 있다. 2020년 총선 이후 현재 집권당은 자메이카 노동당이다.
5.3. 군사

자메이카 국방군(Jamaica Defence Force, JDF)은 자메이카의 작지만 전문적인 군사력이다. JDF는 영국 군사 모델을 기반으로 하며 유사한 조직, 훈련, 무기 및 전통을 가지고 있다. 장교 후보생으로 선발되면 병과에 따라 영국 또는 캐나다의 여러 기본 장교 과정 중 하나로 파견된다. 사병들은 세인트앤드루에 있는 업파크 캠프(Up Park Camp) 또는 JDF 훈련소 뉴캐슬(Newcastle)에서 기본 훈련을 받는다. 영국 모델과 마찬가지로 부사관들은 계급이 올라감에 따라 여러 단계의 전문 훈련을 받는다. 캐나다, 미국, 영국에서 전문 훈련을 위한 추가 군사 학교가 있다.
JDF는 식민지 시대에 창설된 영국 육군의 서인도 연대에서 직접 유래했다. 서인도 연대는 1795년부터 1926년까지 제국 전역에서 제국을 치안하는 데 광범위하게 사용되었다. JDF 유산의 다른 부대로는 초기 식민지 자메이카 민병대, 제1차 세계 대전의 킹스턴 보병 자원대, 제2차 세계 대전에서 재편성된 자메이카 보병 자원대가 있다. 서인도 연대는 1958년 서인도 연방의 일부로 개편되었으며, 연방 해체 후 JDF가 창설되었다.
자메이카 국방군은 보병 연대 및 예비군, 항공대, 해안 경비대 함대 및 지원 공병 부대로 구성된다. 보병 연대는 제1, 제2, 제3(국가 예비군) 대대를 포함한다. JDF 항공대는 3개의 비행 부대, 훈련 부대, 지원 부대 및 JDF 항공대(국가 예비군)로 나뉜다. 해안 경비대는 해상 안전 및 해상 법 집행뿐만 아니라 국방 관련 작전을 수행하는 해상 승무원과 지원 승무원으로 나뉜다.
지원 대대의 역할은 전투에서 병력을 증강하고 역량 훈련을 제공하여 부대의 준비 태세를 갖추도록 지원하는 것이다. 제1 공병 연대는 군사 공병에 대한 수요 증가로 창설되었으며, 그들의 역할은 필요할 때마다 어디에서나 공병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다. JDF 본부에는 JDF 사령관, 지휘 참모뿐만 아니라 정보, 법무관실, 행정 및 조달 부서가 있다.
최근 몇 년 동안 JDF는 마약 밀매와 세계에서 가장 높은 살인율 중 하나를 포함하는 증가하는 범죄율과 싸우기 위해 국가 경찰인 자메이카 경찰청(JCF)을 지원하도록 요청받았다. JDF 부대는 범죄율이 높은 지역과 알려진 갱단 구역에서 JCF와 함께 무장 순찰을 적극적으로 수행한다. 이 JDF 역할에 대한 논란과 지지가 있었다. 2005년 초, 야당 지도자인 에드워드 시가는 JDF와 JCF의 합병을 요구했다. 이는 어느 조직에서도 또는 대다수의 시민들 사이에서도 지지를 얻지 못했다. 2017년 자메이카는 유엔 핵무기금지조약에 서명했다.
5.4. 행정 구역
자메이카는 행정적으로 아무런 의미가 없는 3개의 역사적인 군(county)으로 분류되며, 이 군들은 다시 14개의 주(parish)로 나뉜다.
지방 정부의 맥락에서 주는 "지방 자치 단체(Local Authorities)"로 지정된다. 이러한 지방 자치 단체는 다시 "지방 자치 법인(Municipal Corporations)"으로 불리며, 이는 시 자치체 또는 읍 자치체이다. 새로운 시 자치체는 최소 50,000명의 인구를 가져야 하며, 읍 자치체는 지방 정부 장관이 정한 수를 가져야 한다. 현재 읍 자치체는 없다.
킹스턴주와 세인트앤드루주의 지방 정부는 킹스턴 & 세인트앤드루 지방 자치 법인이라는 시 자치체로 통합되어 있다. 가장 최근의 시 자치체는 2003년에 만들어진 포트모어 자치체이다. 지리적으로 세인트캐서린주 내에 위치하지만 독립적으로 통치된다.
콘월군 | 주도 | 면적 (km2) | 미들섹스군 | 주도 | 면적 (km2) | 서리군 | 주도 | 면적 (km2) | |||
---|---|---|---|---|---|---|---|---|---|---|---|
1 | 해노버구 | 루시아 | 450 | 6 | 클래런던구 | 메이펜 | 1,196 | 11 | 킹스턴구 | 킹스턴 | 25 |
2 | 세인트엘리자베스구 | 블랙리버 | 1,212 | 7 | 맨체스터구 | 맨더빌 | 830 | 12 | 포틀랜드구 | 포트안토니오 | 814 |
3 | 세인트제임스구 | 몬테고베이 | 595 | 8 | 세인트앤구 | 세인트앤스베이 | 1,213 | 13 | 세인트앤드루구 | 해프웨이트리 | 453 |
4 | 트렐로니구 | 팰머스 | 875 | 9 | 세인트캐서린구 | 스패니시타운 | 1,192 | 14 | 세인트토머스구 | 모랜트베이 | 743 |
5 | 웨스트모얼랜드구 | 사바나라마르 | 807 | 10 | 세인트메리구 | 포트마리아 | 611 |
5.4.1. 주요 도시
수도인 킹스턴은 자메이카의 정치, 경제, 문화의 중심지이다. 인구 약 66만 명(2011년 기준)으로 자메이카 최대 도시이며, 세계에서 7번째로 큰 자연항인 킹스턴항을 끼고 있다. 몬테고베이는 북부 해안에 위치한 대표적인 관광 도시로, 아름다운 해변과 리조트로 유명하며, 섬에서 두 번째로 큰 도시이다. 스패니시타운은 과거 스페인 식민 시대와 영국 초기 식민 시대의 수도였으며, 역사적인 건축물들이 남아있다. 그 외 주요 도시로는 포트모어, 메이펜, 맨더빌, 오초리오스, 사바나라마르, 린스테드, 포트안토니오 등이 있다.
5.5. 대외 관계
자메이카는 비동맹 운동의 회원국이며, 전통적으로 영국, 미국, 캐나다와 긴밀한 관계를 유지해왔다. 동시에 쿠바를 비롯한 카리브해 국가들과의 관계도 중시하며, 카리브 공동체(CARICOM)의 적극적인 회원국이다. 자메이카는 국제 사회에서 개발도상국의 입장을 대변하며, 기후 변화, 경제 발전, 인권 등의 문제에 대해 목소리를 내고 있다.
5.5.1. 대한민국과의 관계
자메이카는 1962년 8월 독립과 동시에 대한민국과 외교 관계를 수립했다. 대한민국은 주 자메이카 대사관을 킹스턴에 두고 있으며, 자메이카는 주 일본 대사관이 대한민국 관련 업무를 겸임하고 있다. 양국은 정치, 경제, 문화 등 다양한 분야에서 교류를 이어오고 있으며, 특히 개발 협력 분야에서 한국국제협력단(KOICA)을 통한 지원 사업이 이루어지고 있다.
5.6. 공화국 전환 논의
자메이카는 현재 영국 국왕을 국가원수로 하는 입헌군주제를 채택하고 있으나, 공화국으로의 정치 체제 전환에 대한 논의가 오랫동안 지속되어 왔다. 2012년 당시 총리였던 포샤 심슨밀러는 독립 50주년을 맞아 공화국으로 전환할 계획을 발표했으며, 2016년에는 패트릭 앨런 총독이 국가원수를 국왕에서 상징적 대통령으로 변경하는 헌법 개정안을 의회에 제안하기도 했다. 2021년 12월, 앤드루 홀니스 총리는 바베이도스의 공화국 전환에 영향을 받아 독립 60주년인 2022년 8월 6일까지 공화국으로 전환할 계획을 발표했으나, 헌법 절차 완료를 위한 시간 부족으로 일정이 재검토되었다. 현재까지 공화국 전환은 이루어지지 않았으나, 주요 정당들은 공화국 전환에 대해 대체로 긍정적인 입장을 보이고 있다.
6. 경제
자메이카는 국영 기업과 민간 부문 기업이 공존하는 혼합 경제 체제를 가지고 있다. 자메이카 경제의 주요 부문에는 농업, 광업, 제조업, 관광업, 석유 정제, 금융업 및 보험업이 포함된다. 관광업과 광업은 주요 외화 수입원이다. 자메이카 경제의 절반은 서비스업에 의존하며, 소득의 절반은 관광업과 같은 서비스에서 나온다. 매년 약 430만 명의 외국인 관광객이 자메이카를 방문하는 것으로 추산된다. 세계은행에 따르면 자메이카는 카리브해 이웃 국가들과 마찬가지로 기후 변화, 홍수, 허리케인의 영향에 취약한 중상위 소득 국가이다. 2018년 자메이카는 G20 및 G7 연례 회의에서 카리브 공동체(CARICOM)를 대표했다. 2019년 자메이카는 50년 만에 최저 실업률을 기록했다.
다자간 금융 기관의 지원을 받아 자메이카는 1980년대 초부터 민간 부문 활동을 촉진하고 자원 배분에서 시장의 역할을 증대시키는 것을 목표로 하는 구조 개혁을 추진해 왔다. 1991년 이래로 정부는 외환 통제 철폐, 환율 변동, 관세 인하, 자메이카 달러 안정화, 인플레이션 감소, 외국인 직접 투자에 대한 제한 철폐 등을 통해 경제 자유화 및 안정화 프로그램을 추진해 왔다. 엄격한 재정 규율 유지, 무역 및 금융 흐름에 대한 개방 확대, 시장 자유화 및 정부 규모 축소에 중점을 두었다. 이 기간 동안 경제의 상당 부분이 민영화 및 사유화 프로그램을 통해 민간 부문 소유로 돌아갔다. 킹스턴, 몬테고베이, 스패니시타운의 자유 무역 지대는 무관세 수입, 비과세 이익 및 수출 수익의 자유로운 본국 송금을 허용한다.
자메이카 경제는 독립 후 몇 년간 강력하게 성장했으나, 1980년대에는 보크사이트 가격의 급락과 농산물 가격 변동으로 인해 침체되었다. 금융 부문은 1994년에 어려움을 겪었고, 많은 은행과 보험 회사가 막대한 손실과 유동성 문제에 시달렸다. 영연방 사무국에 따르면, "정부는 1997년 1월 금융 부문 조정 회사(Finsac)를 설립하여 이러한 은행과 회사를 지원하고, 지분 مقابل 자금을 제공했으며, 은행, 보험 회사 및 관련 회사에 상당한 지분을 확보했다..." 그러나 이는 문제를 악화시키고 국가를 막대한 외채에 빠뜨렸다. 2001년부터 Finsac은 이러한 은행과 회사를 재정적으로 건전하게 회복시킨 후 매각했다. 자메이카 정부는 인플레이션을 낮추는 데 계속 전념하고 있으며, 장기적으로 주요 교역 상대국의 인플레이션 수준에 맞추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1996년과 1997년에는 주로 금융 부문의 심각한 문제와 1997년 섬 전체에 걸친 심각한 가뭄(70년 만에 최악) 및 허리케인으로 인해 농업 생산이 급격히 감소하면서 GDP가 감소했다. 1997년과 1998년 명목 GDP는 GDP의 약 8%로 높았으나, 1999년과 2000년에는 GDP의 4.5%로 낮아졌다. 1997년 경제는 수입 증가율이 낮고, 민간 자본 유입이 많았으며, 외환 시장이 비교적 안정적인 것이 특징이었다.
최근 경제 성과는 자메이카 경제가 회복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성장의 중요한 동력인 농업 생산은 2000년 동기 대비 2001년에 5.5% 증가하여 1997년 1월 이후 처음으로 해당 부문에서 긍정적인 성장률을 기록했다. 2018년 자메이카는 옥수수 7.9% 증가, 플랜틴 6.1% 증가, 바나나 10.4% 증가, 파인애플 2.2% 증가, 타로 13.3% 증가, 코코넛 24.9% 증가, 전체 우유 생산량 10.6% 증가를 보고했다. 보크사이트 및 알루미나 생산은 1998년 1월부터 12월까지 1997년 동기 대비 5.5% 증가했다. 1998년 1월 보크사이트 생산량은 1998년 1월 대비 7.1% 증가했으며, 알코아는 2009년까지 알루미나 생산을 지속적으로 확대할 계획이다. 자메이카는 호주, 중국, 브라질, 기니에 이어 세계 5위의 보크사이트 수출국이다. 또한 막대한 매장량을 보유한 석회암도 수출한다. 정부는 현재 추출량을 늘리기 위한 계획을 시행하고 있다.
캐나다 회사인 카루브 코퍼레이션(Carube Copper Corp)은 세인트캐서린주에서 최소 7개의 중요한 구리/금 반암 시스템의 존재를 발견하고 확인했다. 그들은 벨라스 게이트에서 발견된 반암 분포가 2013년 중국에 8.20 억 USD에 매각된 호주 뉴사우스웨일스주의 노스파크스 광산 지역에서 발견된 것과 유사하다고 추정했다. 카루브는 자메이카의 지질학이 "칠레, 아르헨티나, 도미니카 공화국과 유사하며 모두 생산적인 광산 관할 구역"이라고 언급했다. 해당 지역의 채굴은 2017년에 시작되었다.


가장 큰 외화 수입원인 관광업도 개선을 보였다. 1999년 총 방문객 수는 200만 명으로 전년 대비 10만 명 증가했다. 2017년 이후 자메이카의 관광업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여 연평균 관광객 수가 430만 명에 달했다. 자메이카의 가장 큰 관광 시장은 북미, 남미, 유럽이다. 2017년 자메이카는 남유럽 및 서유럽からの 체류 방문객이 91.3% 증가했으며(2017년 1월부터 9월까지 체류 도착객 수는 전년 동기 대비 41% 증가), 독일, 포르투갈, 스페인이 가장 높은 증가율을 기록했다. 2018년 자메이카는 포르투갈에서 열린 여러 월드 트래블 어워드에서 "글로벌 관광 혁신 회장상", "카리브해 최고 관광청", "최고 신혼여행지", "최고 요리 관광지", "세계 최고의 해변 관광지", "세계 최고의 크루즈 관광지"를 수상했다. 두 달 후 뉴욕에서 열린 트래비 관광 어워드에서는 자메이카 관광부 장관 에드먼드 바틀렛에게 "글로벌 관광 회복력 및 위기 관리 센터(GTRCM) 개발을 위한 글로벌 관광 혁신" 부문 초대 회장상을 수여했다. 바틀렛은 또한 독일에서 열린 태평양 여행 작가 협회상에서 "2018년 올해의 최고 관광부 장관"상을 수상했다.
자메이카의 국영이자 유일한 석유 정제소인 페트로잼(Petrojam)은 베네수엘라 정부와 공동 소유하고 있다. 페트로잼은 하루 3.50 만 oilbbl 규모의 하이드로스키밍 정제소를 운영하여 자동차용 경유, 중유, 등유/제트 연료, 액화석유가스(LPG), 아스팔트, 휘발유를 생산한다. 고객으로는 전력 산업, 항공기 급유업체, 국내 마케팅 회사 등이 있다. 2019년 2월 20일 자메이카 정부는 베네수엘라 지분 49%를 회수하기로 의결했다.
자메이카의 농산물 수출품은 설탕, 바나나, 카카오, 코코넛, 당밀, 오렌지, 라임, 자몽, 럼, 얌, 올스파이스(세계 최대 수출국이자 "가장 우수한 품질"을 자랑함), 그리고 세계적으로 유명한 고급 브랜드로 여겨지는 블루마운틴 커피이다.
자메이카에는 다양한 산업 및 상업 활동이 있다. 항공 산업은 대규모 구조 수리를 제외한 대부분의 일상적인 항공기 정비를 수행할 수 있다. 운송 및 농업 항공을 위한 상당한 기술 지원이 있다. 자메이카에는 금속 가공, 금속 지붕, 가구 제조업을 포함한 상당한 양의 산업 공학, 경공업이 있다. 식품 및 음료 가공, 유리 제품 제조, 소프트웨어 및 데이터 처리, 인쇄 및 출판, 보험 인수, 음악 및 녹음, 고급 교육 활동은 대도시 지역에서 찾아볼 수 있다. 자메이카 건설 산업은 전문적인 기술 표준과 지침을 갖추고 완전히 자급자족한다.
2006년 1분기 이후 자메이카 경제는 견고한 성장기를 겪었다. 2006년 연간 인플레이션은 6.0%로 하락하고 실업률은 8.9%로 낮아지면서 명목 GDP는 전례 없는 2.9% 성장했다. 섬 교통 및 유틸리티 인프라 투자 프로그램과 관광, 광업, 서비스 부문의 성장이 이 수치에 기여했다. 2007년의 모든 전망은 도시 범죄와 공공 정책에 의해서만 저해되는 3.0% 이상의 경제 성장 잠재력을 보여주었다. 2024년 자메이카는 글로벌 혁신 지수에서 79위를 차지했다.
2006년 자메이카는 창립 멤버 중 하나로 카리브 공동체 단일 시장 경제(CSME)에 참여했다.
세계 경제 침체는 2007년부터 2009년까지 자메이카 경제에 상당한 영향을 미쳐 마이너스 경제 성장을 초래했다. 정부는 2010년 1월 14일 새로운 부채 관리 이니셔티브인 자메이카 부채 교환(JDX)을 시행했다. 이 이니셔티브는 자메이카 정부(GOJ) 채권 보유자들이 고금리 상품을 수익률이 낮고 만기가 긴 채권으로 교환하는 것을 골자로 했다. 이 제안은 국내 금융 기관의 95% 이상이 수용했으며 정부는 성공적이라고 평가했다.
JDX 프로그램의 성공으로 브루스 골딩이 이끄는 정부는 2010년 2월 4일 IMF와 12억 7천만 달러 규모의 차관 협정을 체결하는 데 성공했다. 차관 협정 기간은 3년이다.
2014년 4월, 자메이카와 중국 정부는 자메이카 물류 허브(JLH)의 1단계 예비 협정을 체결했다. 이 이니셔티브는 킹스턴을 로테르담, 두바이, 싱가포르에 이어 세계 물류망의 네 번째 허브로 자리매셔 아메리카 대륙에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이 프로젝트가 완료되면 자메이카인들에게 많은 일자리를 제공하고, 다국적 기업을 위한 경제 구역을 조성하며, 국가의 과도한 GDP 대비 부채 비율을 완화하는 데 필요한 경제 성장을 가져올 것으로 예상된다. IMF의 재융자 프로그램에 대한 엄격한 준수와 JLH 준비는 3대 신용 평가 기관으로부터 자메이카의 신용 등급과 전망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2018년 무디스와 스탠더드 앤드 푸어스는 자메이카의 신용 등급을 각각 "안정적" 및 "긍정적"으로 상향 조정했다.
6.1. 주요 산업
자메이카 경제의 핵심을 이루는 산업은 관광업, 보크사이트/알루미나 채굴 및 가공업, 농업(설탕, 바나나, 커피 등), 제조업, 금융 서비스업 등이다. 특히 관광업은 연간 수백만 명의 관광객을 유치하며 외화 수입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 보크사이트와 알루미나 산업은 세계적인 생산량을 자랑하며 국가 경제에 크게 기여한다. 농업 부문에서는 전통적으로 설탕과 바나나가 주요 수출품이었으며, 최근에는 블루마운틴 커피와 같은 고부가가치 작물도 중요성이 커지고 있다.
6.2. 무역 및 투자
자메이카의 주요 수출품은 보크사이트, 알루미나, 설탕, 럼, 커피, 농산물 등이며, 주요 수입품은 석유 제품, 기계류, 운송 장비, 식료품 등이다. 주요 교역 상대국은 미국, 캐나다, 영국, 네덜란드 등이다. 자메이카 정부는 외국인 직접 투자(FDI) 유치를 위해 다양한 정책을 시행하고 있으며, 특히 관광, 물류, 정보통신기술(ICT) 분야에서의 투자를 장려하고 있다.
6.3. 경제 동향 및 과제
자메이카 경제는 최근 몇 년간 완만한 성장세를 보이고 있으나, 여전히 높은 국가 부채, 빈곤 문제, 소득 불균형, 높은 범죄율 등의 도전 과제에 직면해 있다. 정부는 국제통화기금(IMF)과의 협력을 통해 재정 건전성을 확보하고 구조 개혁을 추진하려는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실업률, 특히 청년 실업률은 여전히 높은 수준이며, 경제 성장의 혜택이 모든 계층에 고르게 분배되지 않는다는 점도 문제로 지적된다. 기후 변화로 인한 자연재해의 빈번한 발생 또한 경제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요인이다.
6.4. 과학기술
자메이카의 과학기술 분야에 대한 투자는 주로 정부 주도로 이루어지며, 주요 연구 기관으로는 서인도제도 대학교와 자메이카 과학연구위원회(SRC) 등이 있다. 중점 육성 기술 분야는 농업 기술, 재생 에너지, 정보통신 기술(ICT), 생명공학 등이다. 특히 농업 생산성 향상과 기후 변화 대응을 위한 기술 개발에 관심이 높다. 그러나 연구개발(R&D) 투자 규모가 전반적으로 부족하고, 연구 성과가 산업 현장으로 이어지는 데 어려움이 있어 과학기술이 경제 발전에 미치는 영향은 아직 제한적이다. 정부는 최근 재정 여건 개선에 따라 R&D 지출을 늘릴 것을 약속했다. 자메이카 출신 과학자들은 콰시오커 발견, 소아 겸상 적혈구 빈혈 치료법 개척, 다양한 우주선 지원 시스템 발명 등 주목할 만한 과학 및 의료 분야 기여를 했다.
6.5. 사회 기반 시설
자메이카의 사회 기반 시설은 국가 발전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교통, 에너지, 통신 등의 분야에서 지속적인 발전과 개선이 이루어지고 있다.
6.5.1. 교통

자메이카의 교통 인프라는 도로, 철도, 항공 운송으로 구성되며, 도로가 섬 내부 교통 시스템의 중추를 이룬다.
6.5.2. 에너지
자메이카는 국가 에너지 수요를 충족시키기 위해 석유 수입에 의존한다. 석유 탐사를 위해 많은 시험장이 조사되었지만 상업적으로 실행 가능한 양은 발견되지 않았다. 수입 석유 및 자동차 연료(경유, 휘발유, 제트 연료)의 가장 편리한 공급원은 멕시코와 베네수엘라이다.
자메이카의 전력은 올드하버에 위치한 디젤(벙커유) 발전기에서 생산된다. 이 시설에는 액화천연가스(LNG) 설비와 저장 시설이 추가로 갖춰져 있다. 섬의 전력망을 지원하는 다른 소규모 발전소(대부분 자메이카 공공 서비스 회사 소유)에는 헌츠베이 발전소, 세인트제임스구의 보그 발전소, 세인트앤드루구의 록포트 발전소, 그리고 화이트 리버, 리오 부에노, 모랜트 리버, 블랙 리버(매고티), 로어링 리버에 있는 소규모 수력 발전소가 포함된다. 자메이카 석유 공사 소유의 풍력 발전 단지가 맨체스터구 위그턴에 설립되었다.
자메이카는 1980년대 초부터 20kW 용량의 SLOWPOKE-2 핵 연구로를 성공적으로 운영해 왔다.
2024년, 정부는 국가 에너지 믹스에 소형 모듈 원자로(SMR)를 추가하기로 약속했으며, 캐나다 원자력공사(AECL) 및 캐나다 국립 연구소와 자메이카에서의 원자력 도입 촉진을 위한 양해각서(MOU)를 체결했다.
자메이카는 아스팔트 및 윤활유 제품을 포함하여 하루 약 8.00 만 oilbbl의 석유 에너지 제품을 수입한다. 수입 연료의 20%만이 도로 교통에 사용되며, 나머지는 보크사이트 산업, 발전, 항공에 사용된다. 하루 3.00 만 oilbbl의 원유 수입품은 킹스턴의 페트로잼 정유소에서 다양한 자동차 연료와 아스팔트로 가공된다.
자메이카는 막대한 양의 음용 알코올(최소 5% 수분 함량)을 생산하며, 대부분 음료로 소비되는 것으로 보이며 자동차 연료로는 사용되지 않는다. 함수 에탄올 원료를 무수 에탄올(0% 수분 함량)으로 정제하는 시설이 존재하지만, 2007년 현재 이 공정은 비경제적인 것으로 보이며 생산 공장은 가동되지 않았다. 이 시설은 이후 웨스트 인디즈 페트롤리엄(West Indies Petroleum Ltd.)에 인수되어 석유 증류 제품 생산용으로 용도가 변경되었다.
6.5.3. 통신
자메이카는 이동통신 보급률이 95% 이상인 완전 디지털 전화 통신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
자메이카의 두 이동통신 사업자인 플로우 자메이카(구 LIME, bMobile, Cable and Wireless Jamaica)와 디지셀 자메이카는 네트워크 업그레이드와 확장에 수백만 달러를 투자했다. 가장 최근의 사업자인 디지셀은 2001년, 이전에는 현존하는 플로우(당시 Cable and Wireless Jamaica) 독점 시장이었던 자유화된 통신 시장에서 이동통신 서비스를 운영할 수 있는 라이선스를 부여받았다. 디지셀은 더 널리 사용되는 GSM 무선 시스템을 선택한 반면, 과거 사업자인 오셔닉(Oceanic, 이후 클라로 자메이카(Claro Jamaica)가 되었고 2011년 디지셀 자메이카와 합병)은 CDMA 표준을 선택했다. 플로우(구 "LIME" - 콜럼버스 커뮤니케이션스 합병 이전)는 TDMA 표준으로 시작하여 2002년 GSM으로 업그레이드했고, 2006년 TDMA를 중단했으며, LIME이 3G 네트워크를 출시한 2009년까지 해당 표준만 사용했다. 두 사업자 모두 현재 HSPA+(3G) 기술로 섬 전체 커버리지를 제공한다. 현재 디지셀만이 고객에게 LTE를 제공하는 반면, 플로우 자메이카는 디지셀의 LTE 네트워크가 현재 유일하게 제공되는 킹스턴과 몬테고베이시에 곧 LTE를 출시하기로 약속했다.
자메이카 통신 시장의 새로운 진입자인 플로우 자메이카는 자메이카와 미국을 연결하는 새로운 해저 통신 케이블을 부설했다. 이 새로운 케이블은 자메이카를 나머지 세계와 연결하는 해저 케이블의 총 수를 4개로 늘렸다. 케이블 앤 와이어리스 커뮤니케이션스(LIME의 모회사)는 2014년 말 이 회사를 인수하고 자사의 LIME 브랜드를 플로우로 교체했다. 플로우 자메이카는 현재 섬에서 가장 많은 광대역 및 케이블 가입자를 보유하고 있으며, 100만 명의 이동통신 가입자를 보유하고 있어 디지셀(최고조일 때 네트워크에 200만 명 이상의 이동통신 가입자 보유)에 이어 두 번째이다.
디지셀은 2010년 가입자당 최대 6Mbit/s의 속도를 낼 수 있는 WiMAX 광대역을 제공하며 광대역 시장에 진출했다. 2014년 LIME/FLOW 합병 이후 광대역 점유율을 더욱 높이기 위해 디지셀 플레이(Digicel Play)라는 새로운 광대역 서비스를 도입했는데, 이는 자메이카에서 두 번째 FTTH 서비스이다(2011년 일부 지역에 LIME이 구축한 후). 현재 킹스턴, 포트모어, 세인트앤드루구에서만 이용 가능하며, 순수 광섬유 네트워크를 통해 최대 200Mbit/s 다운로드, 100Mbit/s 업로드 속도를 제공한다. 디지셀의 경쟁사인 플로우 자메이카는 ADSL, 동축 케이블, 광섬유(LIME에서 상속)로 구성된 네트워크를 보유하고 있으며 최대 100Mbit/s의 속도만 제공한다. 플로우는 시장에 진입한 디지셀에 대항하기 위해 더 많은 지역으로 광섬유 서비스를 확장하기로 약속했다.
2016년 1월, 공공요금 규제국(OUR), 과학기술에너지광업부(MSTEM), 주파수 관리국(SMA)이 또 다른 이동통신 사업자 라이선스를 승인했다고 발표되었다. 이 진입자의 정체는 2016년 5월 20일 자메이카 정부가 새로운 통신사를 카리셀이라는 이름으로 운영하는 심비오트 인베스트먼트(Symbiote Investments Limited)로 지명하면서 확인되었다. 이 회사는 4G LTE 데이터 서비스에 중점을 둘 것이며, 킹스턴 대도시 지역에서 먼저 서비스를 시작한 후 자메이카 전역으로 확대할 예정이다.
7. 사회
자메이카의 사회는 다양한 민족과 문화가 혼합된 독특한 특징을 지닌다. 아프리카계가 인구의 대다수를 차지하지만, 유럽, 인도, 중국 등 다양한 지역에서 온 이민자들의 후손들도 함께 살아가며 "다수로부터 하나로 (Out of Many, One People)"라는 국가 표어를 만들어냈다.
7.1. 인구 및 민족

2018년 7월 기준 자메이카의 인구는 약 281만 2천 명으로 추산된다. 인구의 대부분은 아프리카계 또는 부분적으로 아프리카계 혈통을 가지고 있으며, 많은 사람들이 현재의 가나와 나이지리아와 같은 서아프리카 국가에 기원을 두고 있다. 다른 주요 조상 지역은 유럽, 남아시아, 동아시아이다. 자메이카인들이 미국과 같은 다른 나라에서 두드러지는 것처럼 인종으로 자신을 식별하는 것은 드문 일이며, 대부분의 자메이카인들은 자메이카 국적을 그 자체로 정체성으로 보고 민족에 관계없이 단순히 "자메이카인"으로 식별한다. 한 연구에 따르면 섬의 평균 혼혈 비율은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인 78.3%, 유럽인 16.0%, 동아시아인 5.7%였다.
서인도 대학교의 2011년 인구 조사 응답 분석에 따르면, 자메이카 인구는 아프리카계 또는 흑인이 76.3%, 아프리카-유럽계(현지에서는 브라운 맨 또는 브라우닝 계층이라고 함)가 15.1%, 동인도인 및 아프리카-동인도인이 3.4%, 백인이 3.2%, 중국인이 1.2%, 기타가 0.8%이다.
아콤퐁 및 기타 정착지의 자메이카 마룬들은 농장을 탈출하여 내륙으로 피신하여 자신들만의 자치 공동체를 세운 아프리카 노예들의 후손이다. 많은 마룬들은 여전히 자신들의 전통을 유지하고 있으며, 현지에서 크로만티어로 알려진 자신들의 언어를 사용한다.
아시아계는 (노예제 기간 동안의 물라토 후손 및 해방 이후의 기타 인종 간 혼혈인 브라우닝 계층 다음으로) 세 번째로 큰 집단을 형성하며, 인도계 자메이카인과 중국계 자메이카인을 포함한다. 대부분은 1838년 노예제 폐지 이후 노동력 부족을 메우기 위해 영국 식민 정부가 데려온 계약 노동자들의 후손이다. 인도계와 마찬가지로 중국계 자메이카인들도 자메이카 공동체와 역사에서 중요한 역할을 해왔다.
레바논 및 시리아 혈통을 가진 자메이카인은 약 20,000명이다. 대부분은 19세기 초 오스만 제국의 레바논 점령을 피해 온 기독교 이민자들이었다. 결국 그들의 후손들은 매우 성공적인 정치인과 사업가가 되었다.
최초의 영국 이민자들은 1655년 스페인을 정복한 후 섬에 도착했으며, 역사적으로 지배적인 집단이었다. 최초의 아일랜드 이민자들은 1600년대에 전쟁 포로로, 나중에는 계약 노동자로 자메이카에 왔다. 스코틀랜드인들도 섬에 상당한 영향을 미쳤다. 스코틀랜드 헤럴드 신문에 따르면, 자메이카에는 스코틀랜드 자체 인구보다 캠벨 성을 사용하는 사람이 더 많으며, 스코틀랜드 이외 지역에서 스코틀랜드 성의 비율이 가장 높다. 스코틀랜드 성은 자메이카 전화번호부의 약 60%를 차지한다. 스코틀랜드 출신의 최초 자메이카 거주자들은 추방된 "반란군"이었다. 그 후 야심 찬 사업가들이 뒤를 이었고, 이들은 스코틀랜드의 대규모 시골 저택과 섬 사이를 오가며 시간을 보냈다. 그 결과 섬의 많은 노예 소유 농장은 스코틀랜드인들이 소유하게 되었고, 이는 스코틀랜드 혈통을 가진 많은 혼혈 자메이카인으로 이어졌다. 스코틀랜드로부터의 대규모 이민은 독립 이후에도 계속되었다.

또한 주로 세파르딤 유대인 혈통인 포르투갈계 자메이카인 인구가 상당수 존재한다. 최초의 유대인들은 추방과 기독교로의 개종 사이에서 선택을 강요받은 후 15세기에 스페인에서 탐험가로 도착했다. 소수는 노예 소유주나 해적이 되었다. 유대교는 결국 자메이카에서 매우 영향력이 커졌으며 오늘날 전국에 많은 유대인 묘지가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홀로코스트 기간 동안 자메이카는 유럽에서 박해를 피해 온 유대인들의 피난처가 되었다.
2015년까지 이민은 주로 중국, 아이티, 쿠바, 콜롬비아, 라틴 아메리카에서 증가했으며, 20,000명의 라틴 아메리카인이 자메이카에 거주했다. 2016년 앤드루 홀니스 총리는 스페인어를 자메이카의 두 번째 공용어로 지정할 것을 제안했다. 약 7,000명의 미국인이 자메이카에 거주한다.
7.2. 언어
자메이카는 인구의 두 가지 주요 언어가 사용되는 이중 언어 국가로 간주된다. 공식 언어는 정부, 법률 시스템, 미디어, 교육을 포함한 "공공 생활의 모든 영역에서 사용되는" 자메이카 영어이다. 그러나 주요 구어는 자메이카 파트와(또는 파트와)라는 영어 기반 크리올어이다. 이 두 언어는 방언 연속체에 존재하며, 화자는 상황과 대화 상대에 따라 다른 어법을 사용한다. "순수" 파트와는 때때로 단순히 영어의 특히 일탈적인 방언으로 인식되기도 하지만, 본질적으로 표준 영어와 상호 이해가 불가능하며 언어학자들은 이를 별개의 언어로 간주하지만, 대부분의 어휘는 원래 영어에서 파생되었다. 자메이카 언어 연구소의 2007년 조사에 따르면 인구의 17.1%가 자메이카 표준 영어(JSE) 단일 언어 사용자였고, 36.5%는 파트와 단일 언어 사용자였으며, 46.4%는 이중 언어 사용자였지만, 이전 조사에서는 이중 언어 사용 정도가 더 높게(최대 90%) 나타났다. 자메이카 교육 시스템은 약 2015년에야 JSE를 "공식 교육 언어"로 유지하면서 파트와에 대한 공식 교육을 제공하기 시작했다.
또한, 일부 자메이카인들은 자메이카 수화(JSL), 미국 수화(ASL) 또는 점점 줄어들고 있는 토착 자메이카 시골 수화(콘크리 사인) 중 하나 이상을 사용한다. JSL과 ASL은 여러 가지 이유로 콘크리 사인을 빠르게 대체하고 있다.
7.3. 종교

기독교는 자메이카에서 가장 널리 믿어지는 종교이다. 인구의 약 70%가 개신교이며, 로마 가톨릭 신자는 인구의 2%에 불과하다. 2001년 인구 조사에 따르면, 자메이카에서 가장 큰 개신교 교파는 하나님의 교회 (앤더슨)(24%),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회(11%), 오순절교회(10%), 침례교 (7%), 성공회 (4%), 연합 교회 (2%), 감리교 (2%), 모라비아 교회 (1%) 및 플리머스 형제단 (1%)이다. 베드워디즘(Bedwardism)은 섬 고유의 기독교 형태로, 때로는 별개의 신앙으로 간주되기도 한다. 기독교 신앙은 영국 기독교 폐지론자들과 침례교 선교사들이 교육받은 전 노예들과 함께 노예제에 맞서 싸우면서 수용되었다.
2011년 인구 조사에 따르면, 라스타파리 운동 신자는 29,026명으로, 남성 25,325명, 여성 3,701명이다. 이 신앙은 1930년대 자메이카에서 시작되었으며, 기독교에 뿌리를 두고 있지만 자메이카 흑인 민족주의자 마커스 가비와 전 에티오피아 황제 하일레 셀라시에와 같은 인물을 숭배하는 등 아프리카 중심적인 초점을 강하게 띤다. 라스타파리는 이후 전 세계, 특히 흑인이나 아프리카 디아스포라가 많은 지역으로 퍼져나갔다.
아프리카에서 유래된 다양한 신앙과 전통 종교 관습이 섬에서 행해지고 있으며, 특히 쿠미나, 컨빈스, 미알, 오베아 등이 유명하다.
자메이카의 다른 종교로는 여호와의 증인(인구의 2%), 약 8,000명의 신자를 가진 바하이 신앙과 21개의 지역 영적 총회, 몰몬교, 불교, 힌두교 등이 있다. 힌두교의 디왈리 축제는 매년 인도계 자메이카인 공동체 사이에서 기념된다.
또한 약 200명의 소규모 유대교 인구가 있으며, 이들은 자신들을 자유-보수주의자로 묘사한다. 자메이카 최초의 유대인들은 15세기 초 스페인과 포르투갈에 뿌리를 두고 있다. 카할 카도쉬 샤아레 샬롬으로도 알려진 연합 이스라엘 회중은 킹스턴 시에 위치한 역사적인 유대교 회당이다. 원래 1912년에 지어졌으며, 섬에 남아있는 유일한 공식 유대교 예배 장소이다. 한때 풍부했던 유대인 인구는 시간이 지남에 따라 자발적으로 기독교로 개종했다. 샤아레 샬롬은 바닥에 모래가 깔린 세계 몇 안 되는 유대교 회당 중 하나이며 인기 있는 관광지이다.

다른 소규모 그룹으로는 5,000명의 신자를 주장하는 무슬림이 있다. 아슈라(현지에서는 후세이 또는 호세이로 알려짐)와 이드와 같은 이슬람 휴일은 수백 년 동안 섬 전체에서 기념되어 왔다. 과거에는 각 주의 모든 농장에서 호세이를 기념했다. 오늘날에는 인도 카니발로 불리며, 매년 8월에 기념되는 클래런던에서 가장 잘 알려져 있을 것이다. 모든 종교의 사람들이 상호 존중을 보이며 이 행사에 참석한다.
7.4. 교육
노예 해방은 대중을 위한 교육 시스템 구축의 시작을 알렸다. 해방 이전에는 현지인 교육을 위한 학교가 거의 없었고 많은 사람들이 양질의 교육을 받기 위해 자녀를 영국으로 보냈다. 해방 이후 서인도 위원회는 현재 All Age Schools로 알려진 초등학교 설립을 위해 일정 금액을 지원했다. 이러한 학교 대부분은 교회에 의해 설립되었다. 이것이 현대 자메이카 학교 시스템의 시초였다.
현재 다음과 같은 범주의 학교가 존재한다:
- 유아 교육 - 기초, 유아 및 사립 유치원. 연령대: 2~5세.
- 초등 교육 - 공립 및 사립 (사립은 예비 학교라고 함). 연령: 3~12세.
- 중등 교육 - 공립 및 사립. 연령: 10~19세. 자메이카의 고등학교는 단성 또는 남녀공학일 수 있으며, 많은 학교가 영국령 서인도 제도 전역에서 사용되는 전통적인 영국 그래머 스쿨 모델을 따른다.
- 고등 교육 - 커뮤니티 칼리지; 교사 양성 대학 (1836년에 설립된 미코 교사 대학(현재 MICO 유니버시티 칼리지)이 가장 오래됨); 쇼트우드 교사 대학 (한때 여교사 양성 기관이었음); 직업 훈련 센터, 단과 대학 및 종합 대학, 공립 및 사립. 현지에는 5개의 대학이 있다: 서인도제도 대학교(모나 캠퍼스); 자메이카 공과대학교(구 예술 과학 기술 대학, CAST); 북카리브 대학교(구 서인도 대학); 커먼웰스 캐리비안 대학교(구 카리브해 대학); 국제 카리브 대학교.
또한 많은 커뮤니티 및 교사 양성 대학이 있다.
교육은 유아 교육부터 중등 교육까지 무상으로 제공된다. 또한 직업 분야에서 추가 교육을 받을 여유가 없는 사람들을 위해 인적 고용 및 자원 훈련-국가 훈련 기관(HEART Trust-NTA) 프로그램을 통해 기회가 제공되며, 이 프로그램은 모든 근로 연령의 국민에게 열려 있고, 다양한 대학을 위한 광범위한 장학금 네트워크를 통해서도 기회가 제공된다.
7.5. 이민과 디아스포라
역사적으로 영국, 미국, 캐나다 등지로 자메이카인들의 해외 이주가 이루어졌다. 이러한 이주의 배경에는 경제적 기회 추구, 교육, 정치적 불안정 등 다양한 요인이 작용했다. 특히 1950년대와 1960년대 영국으로의 대규모 이주가 있었으며, 이후 미국과 캐나다로도 많은 자메이카인들이 이주했다. 현재 전 세계에 분포한 자메이카인 디아스포라 공동체는 수백만 명에 이를 것으로 추산되며, 이들은 모국의 경제와 문화에 중요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뉴욕, 토론토, 런던 등 주요 도시에는 대규모 자메이카인 커뮤니티가 형성되어 있다. 에티오피아의 샤샤만네(Shashamane)에는 라스타파리 운동의 영향으로 이주한 소규모 자메이카인 공동체가 존재한다.
7.6. 범죄 및 공공 안전
자메이카는 높은 범죄율, 특히 살인, 강도 등 강력 범죄 문제에 직면해 있다. 갱단 관련 폭력은 심각한 사회 문제로, 특히 킹스턴, 몬테고베이 등 일부 도시 지역에서 공공 안전을 위협하고 있다. 관광객 안전 문제 또한 중요한 과제이며, 정부는 치안 강화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
자메이카는 LGBT 및 간성인에 대한 사회적 적대감이 높은 편이며, 동성애자들에 대한 폭력 사건이 보고되기도 한다. 동성애는 법적으로 금지되어 있으며 징역형에 처해질 수 있다. 이러한 상황은 인권 단체들의 우려를 낳고 있으며, LGBT 인권 옹호 단체들이 활동하고 있다.
자메이카가 1962년 독립했을 때 살인율은 인구 10만 명당 3.9명으로 세계에서 가장 낮은 수준 중 하나였다. 2009년에는 이 비율이 인구 10만 명당 62명으로 세계에서 가장 높은 수준 중 하나가 되었다. 자메이카 파시 또는 "야디"를 중심으로 한 조직 범죄와 함께 갱 폭력이 심각한 문제가 되었다. 유엔 추정에 따르면 자메이카는 수년 동안 세계에서 가장 높은 살인율을 기록한 국가 중 하나였다. 킹스턴, 몬테고베이 및 기타 지역의 가난한 지역을 중심으로 높은 수준의 범죄와 폭력이 발생한다.
그러나 2009년에는 1,683건, 2010년에는 1,447건의 살인이 보고되었다. 2011년 이후 전략적 프로그램이 시작된 후 2010년의 하락 추세를 따라 살인율은 계속 하락했다. 2012년 국가 안보부는 살인 사건이 30% 감소했다고 보고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017년에는 살인 사건이 전년 대비 22% 증가했다.
7.7. 보건 및 의료
자메이카는 공공 및 민간 보건의료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 주요 질병으로는 당뇨병, 고혈압, 심혈관 질환 등 만성 질환과 함께 HIV/AIDS, 뎅기열과 같은 감염병이 문제로 지적된다. 평균 수명은 남성 약 71세, 여성 약 76세(2021년 추정)이며, 영유아 사망률은 출생 1,000명당 약 11명(2023년 추정)이다. 의료 서비스 접근성은 지역별, 소득 계층별로 차이가 있으며, 특히 농촌 지역과 저소득층의 의료 서비스 이용에 어려움이 있다. 정부는 공공 보건의료 시스템 강화를 위해 노력하고 있으나, 의료 인력 부족과 재정적 제약이 과제로 남아 있다.
7.8. 언론 및 미디어
자메이카에는 다양한 신문, 방송사(TV, 라디오), 온라인 미디어가 활동하고 있다. 주요 일간지로는 "더 글리너(The Gleaner)"와 "자메이카 옵서버(Jamaica Observer)"가 있으며, 이들은 오랜 역사와 높은 영향력을 가지고 있다. 다수의 라디오 방송국과 여러 개의 TV 채널이 운영되고 있으며, 최근에는 온라인 뉴스 포털과 소셜 미디어의 영향력도 커지고 있다. 언론의 자유는 대체로 보장되는 편이지만, 일부 언론사는 정치적 또는 경제적 영향력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는 비판도 있다.
8. 문화
자메이카 문화는 전 세계적으로 강력한 존재감을 가지고 있다. 음악, 문학, 영화, 요리 등 다양한 분야에서 독특한 특징을 보여주며, 특히 레게 음악은 자메이카를 대표하는 문화 아이콘으로 자리 잡았다.
8.1. 음악

자메이카는 레게, 스카, 멘토, 록스테디, 덥, 그리고 최근에는 댄스홀과 라가와 같은 다양한 음악 장르의 발상지이다. 이러한 장르들은 섬의 활기차고 대중적인 도시 음반 산업에서 탄생했다. 이 음악들은 펑크 록(레게와 스카를 통해), 덥 포이트리, 뉴 웨이브, 투톤, 러버스 록, 레게톤, 정글, 드럼 앤 베이스, 덥스텝, 그라임, 미국의 랩 음악 등 수많은 다른 장르에 영향을 미쳤다. 노토리어스 B.I.G., 버스타 라임스, 헤비 D와 같은 일부 래퍼들은 자메이카 혈통이다.
밥 말리는 아마도 가장 잘 알려진 자메이카 음악가일 것이다. 그의 밴드 더 웨일러스와 함께 그는 1960년대부터 70년대까지 연이은 히트곡을 냈고, 국제적으로 레게를 대중화했으며 수백만 장의 음반을 판매했다. 투츠 히버트, 밀리 스몰, 리 "스크래치" 페리, 그레고리 아이작스, 하프 파인트, 프로토제, 피터 토시, 버니 웨일러, 빅 유스, 지미 클리프, 데니스 브라운, 데스몬드 데커, 베레스 해먼드, 비니 맨, 섀기, 그레이스 존스, 샤바 랭크스, 슈퍼 캣, 부주 밴턴, 숀 폴, 아이 웨인, 바운티 킬러 등 국제적으로 유명한 많은 아티스트들이 자메이카에서 태어났다. 자메이카 출신 밴드로는 블랙 우후루, 서드 월드 밴드, 이너 서클, 챌리스 레게 밴드, 컬처, 팹 파이브, 모건 헤리티지 등이 있다.
8.2. 문학
저널리스트이자 작가인 H. G. 드 리서(1878년-1944년)는 자신의 많은 소설의 배경으로 고국을 사용했다. 자메이카 팰머스에서 태어난 드 리서는 어린 나이에 자메이카 타임스의 기자로 일했고 1920년에 잡지 플랜터스 펀치를 발간하기 시작했다. 로즈홀의 하얀 마녀는 그의 더 잘 알려진 소설 중 하나이다. 그는 자메이카 언론 협회의 명예 회장으로 임명되었으며, 평생 동안 자메이카 설탕 산업을 홍보하기 위해 일했다.
저널리스트, 시인, 극작가인 로저 메이스(1905년-1955년)는 언덕은 함께 즐거웠다(1953년), 형제 인간(1954년), 검은 번개(1955년)를 포함한 많은 단편 소설, 희곡, 소설을 썼다.
자메이카에 집을 두고 상당한 시간을 보냈던 이언 플레밍은 죽느냐 사느냐, 닥터 노, "포 유어 아이스 온리", 황금총을 가진 사나이, 옥토퍼시와 리빙 데이라이츠를 포함한 그의 제임스 본드 소설에서 반복적으로 섬을 배경으로 사용했다.
소설가 말론 제임스(1970년생)는 세 편의 소설을 출판했다: 존 크로우의 악마(2005년), 밤의 여인들의 책(2009년), 그리고 2015년 맨부커상 수상작인 일곱 살인의 짧은 역사(2014년).
8.3. 영화
자메이카는 1960년대 초부터 영화 산업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 자메이카의 비행 청소년을 다룬 1970년대 뮤지컬 범죄 영화 하더 데이 컴은 좌절한 (그리고 정신병적) 레게 음악가이자 살인적인 범죄를 저지르는 주인공으로 지미 클리프가 출연한다. 다른 주목할 만한 자메이카 영화로는 컨트리맨, 로커스, 댄스홀 퀸, 원 러브, 샤타스, 아웃 더 게이트, 서드 월드 캅, 킹스턴 파라다이스 등이 있다. 자메이카는 또한 007 살인번호(1962년), 스티브 맥퀸 주연의 빠삐용(1973년), 톰 크루즈 주연의 칵테일(1988년), 그리고 쿨러닝(1993년)과 같은 영화의 촬영지로도 자주 사용된다. 쿨러닝은 동계 올림픽에 출전하려는 자메이카 최초의 봅슬레이 팀의 실화를 바탕으로 한 디즈니 코미디 영화이다.
8.4. 미술 및 건축
자메이카의 미술은 원주민 타이노족의 전통 예술에서 시작하여 아프리카, 유럽의 영향을 받으며 발전했다. 현대 미술에서는 에드나 맨리, 칼 애브러햄스와 같은 작가들이 국제적으로 알려져 있다. 자메이카 국립미술관은 자메이카 미술의 중요한 소장처이자 연구 기관이다. 건축은 식민지 시대의 조지아 양식 건물부터 현대적인 건축물까지 다양하며, 스패니시타운의 구 왕궁과 킹스턴의 데번 하우스 등이 대표적인 예이다.
8.5. 요리

자메이카는 저크(Jerk) 방식의 조리법으로 유명하며, 이는 향신료에 재운 고기를 천천히 훈제하거나 굽는 방식이다. 커리 요리 또한 인도 이민자들의 영향으로 널리 퍼져 있으며, 특히 염소고기 커리가 인기 있다. 국가 요리로 불리는 아키와 솔트피시(Ackee and Saltfish)는 아키 열매와 소금에 절인 대구를 함께 볶은 음식이다. 라이스 앤 피스(Rice and Peas)는 쌀과 완두콩(주로 강낭콩)을 코코넛 밀크와 함께 지은 밥으로, 다양한 요리에 곁들여 먹는다. 음료로는 레드 스트라이프 맥주와 세계적으로 유명한 블루마운틴 커피가 있다.
8.6. 국가 상징
- 국가 표어: "다수로부터 하나로 (Out of Many, One People)"
- 국조: 붉은부리스트림꼬리벌새 (Red-billed Streamertail, 학명: Trochilus polytmus), 일명 닥터 버드(Doctor Bird)
- 국화: 유창목 (Lignum Vitae, 학명: Guiacum officinale)
- 국목: 블루마호 (Blue Mahoe, 학명: Hibiscus elatus)
- 국가 과일: 아키 (Ackee, 학명: Blighia sapida)
- 국장
- 국기

8.7. 스포츠

스포츠는 자메이카 국민 생활의 중요한 부분이며, 섬의 선수들은 일반적으로 작은 나라에서 기대할 수 있는 수준을 훨씬 뛰어넘는 성과를 내는 경향이 있다. 가장 인기 있는 지역 스포츠는 크리켓이지만, 국제 무대에서 자메이카인들은 특히 육상 경기에서 뛰어난 성적을 거두는 경향이 있다.
자메이카는 2007년 크리켓 월드컵 개최지 중 하나였으며, 서인도 제도 크리켓 대표팀은 국제 테스트 크리켓에 참가하는 12개 ICC 정회원 팀 중 하나이다. 자메이카 국가 크리켓팀은 지역적으로 경쟁하며 서인도 제도 팀에 선수들을 제공하기도 한다. 사비나 파크는 섬의 유일한 테스트 경기장이지만, 그린필드 스타디움도 크리켓 경기에 사용된다.
독립 이후 자메이카는 꾸준히 세계적인 육상 선수를 배출해 왔다. 지난 60년 동안 자메이카는 올림픽 및 세계 선수권 대회 챔피언 우사인 볼트(남자 100m 9.58초, 남자 200m 19.19초 세계 기록 보유자)를 포함하여 수십 명의 세계적인 단거리 선수를 배출했다. 그 외 주목할 만한 자메이카 단거리 선수로는 자메이카 최초의 올림픽 금메달리스트인 아서 윈트, 도널드 쿼리, 리우 2016 올림픽 100m 및 200m 2관왕인 일레인 톰슨, 올림픽 챔피언이자 전 200m 세계 기록 보유자, 국제 올림픽 위원회 위원인 로이 앤서니 브리지, 멀린 오티, 델로린 에니스런던, 전 세계 및 2회 올림픽 100m 챔피언인 셸리앤 프레이저프라이스, 케런 스튜어트, 알린 베일리, 3회 올림픽 금메달리스트 줄리엣 커스버트, 버로니카 캠벨브라운, 셰론 심슨, 브리짓 포스터힐턴, 요한 블레이크, 허브 매켄리, 올림픽 금메달리스트 조지 로든, 올림픽 금메달리스트 디온 헤밍스, 그리고 전 100m 세계 기록 보유자이자 2회 100m 올림픽 결선 진출자 겸 2008년 올림픽 남자 4x100m 계주 금메달리스트인 아사파 파월 등이 있다. 미국 올림픽 우승자인 사냐 리처즈로스도 자메이카에서 태어났다.
축구와 경마는 자메이카에서 인기 있는 다른 스포츠이다. 자메이카 축구 국가대표팀은 1998년 FIFA 월드컵 본선에 진출했다. 경마는 자메이카 최초의 스포츠였다. 오늘날 경마는 말 사육사, 마부, 조련사를 포함하여 약 20,000명에게 일자리를 제공한다. 또한, 리처드 드패스(한때 하루 최다승 기네스 세계 기록 보유자), 캐나다 수상 경력자 조지 호생, 미국 수상 경력자 찰리 허시, 앤드루 램지트, 배링턴 하비 등 여러 자메이카인들이 경마에서의 성공으로 국제적으로 알려져 있다.
자동차 경주는 자메이카에서 인기 있는 스포츠로, 전국에 여러 자동차 경주 트랙과 경주 협회가 있다.
자메이카 국가 봅슬레이팀은 한때 동계 올림픽에서 강력한 경쟁자였으며, 많은 기존 팀들을 이겼다. 체스와 농구는 자메이카에서 널리 행해지며 각각 자메이카 체스 연맹(JCF)과 자메이카 농구 연맹(JBF)의 지원을 받는다. 넷볼 또한 섬에서 매우 인기가 있으며, 자메이카 국가 넷볼팀인 선샤인 걸스(Sunshine Girls)는 지속적으로 세계 상위 5위 안에 든다.
럭비 리그는 2006년부터 자메이카에서 행해지고 있다. 자메이카 국가 럭비 리그팀은 자메이카에서 뛰는 선수들과 영국 기반 프로 및 세미 프로 클럽(특히 슈퍼리그 및 챔피언십) 출신 선수들로 구성된다. 2018년 11월, 자메이카 럭비 리그팀은 미국 및 캐나다 국가 럭비 리그팀을 물리치고 사상 처음으로 럭비 리그 월드컵 본선에 진출했다. 자메이카는 잉글랜드에서 열리는 2021년 럭비 리그 월드컵에 참가했다.
ESPN에 따르면, 2011년 가장 높은 연봉을 받은 자메이카 프로 운동선수는 미국 클리블랜드 인디언스 야구팀의 선발 투수인 저스틴 매스터슨이었다.
8.8. 축제 및 공휴일
자메이카는 독립 기념일(8월 6일)을 가장 중요한 국가 공휴일로 기념하며, 이때 다채로운 퍼레이드와 문화 행사가 열린다. 해방 기념일(8월 1일)은 노예 해방을 기념하는 날이다. 그 외에도 크리스마스, 부활절과 같은 기독교 축일과 노동절, 국민 영웅의 날 등이 공휴일로 지정되어 있다. 전통 축제로는 아프리카 전통에 뿌리를 둔 존코누(Jonkonnu) 축제가 있으며, 크리스마스 시즌에 다채로운 가면과 의상을 입고 춤을 추는 형태로 이어진다. 인도계 이민자들은 디왈리(Diwali)와 호세이(Hosay, 이슬람 시아파의 아슈라에서 유래) 축제를 기념한다.
8.9. 세계유산
자메이카에는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곳이 1곳 있다. 블루 앤드 존 크로우 산맥은 2015년 문화 및 자연 복합유산으로 등재되었다. 이 지역은 뛰어난 생물 다양성을 자랑하며, 특히 조류와 양치류의 중요한 서식지이다. 또한, 과거 도망 노예였던 마룬들의 피난처이자 저항의 역사적 장소로서 문화적 가치도 인정받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