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상투메 프린시페 민주공화국(República Democrática de São Tomé e Príncipe헤푸블리카 데모크라티카 드 상투메 이 프린시프포르투갈어), 약칭 상투메 프린시페(São Tomé e Príncipe상투메 이 프린시프포르투갈어)는 아프리카 중앙아프리카의 기니만에 위치한 섬나라이다. 국토는 대서양 적도 부근에 있는 상투메섬과 프린시페섬이라는 두 개의 주요 섬과 그 주변의 작은 섬들로 이루어져 있으며, 수도는 상투메섬에 있는 상투메이다.
이 섬들은 1470년경 포르투갈 탐험가들이 발견하기 전까지 무인도였다. 이후 포르투갈의 식민지로 편입되어 16세기에는 사탕수수 재배와 노예 무역의 중요한 중심지 역할을 했다. 풍부한 화산 토양 덕분에 후기에는 커피와 카카오와 같은 환금 작물 재배지로도 활용되었다. 수탈적인 플랜테이션 경제는 아프리카에서 강제 동원된 노예 노동력에 크게 의존했으며, 이는 여러 차례의 사회적 불안과 경제적 불안정으로 이어졌다. 19세기와 20세기를 거치며 1953년 바테파 학살과 같은 비극을 겪은 후, 1975년 7월 12일 평화적으로 독립을 달성했다. 독립 이후 상투메 프린시페는 아프리카에서 비교적 안정적이고 민주적인 국가 중 하나로 평가받고 있다.
지리적으로 상투메 프린시페는 카메룬 화산선의 일부를 이루는 화산섬으로, 열대 우림이 우거져 있으며 상투메 따오기, 자이언트 선버드 등 다수의 고유 생물종이 서식하는 풍부한 생물 다양성을 자랑한다. 정치적으로는 대통령제와 의원내각제 요소가 혼합된 준대통령제 공화국이며, 다당제 민주주의를 채택하고 있다.
경제는 전통적으로 카카오와 같은 농업에 크게 의존해 왔으나, 최근에는 기니만 해역의 석유 탐사 및 개발과 관광업 육성에 기대를 걸고 있다. 그러나 제한된 노동력과 작은 내수 시장, 국제 원조 의존성 등 여러 경제적 과제에 직면해 있다. 사회적으로는 아프리카계와 메스티소 후손들이 주를 이루며, 대부분 기독교를 믿는다. 포르투갈어가 공용어이며, 다양한 크레올어도 사용된다. 포르투갈 통치의 유산은 국가의 문화, 관습, 음악 등에서 유럽과 아프리카의 영향이 융합된 형태로 나타난다. 상투메 프린시페는 포르투갈어 사용국 공동체(CPLP)의 창립 회원국이다.
2. 역사
상투메 프린시페의 역사는 지질학적 형성부터 시작하여 포르투갈인들의 도래, 식민 통치, 독립, 그리고 현대 국가로의 발전에 이르는 과정을 포함한다. 초기에는 무인도였던 이 섬들은 포르투갈에 의해 발견된 후 사탕수수와 노예 무역의 중심지로 변모했으며, 이후 커피와 카카오 재배지로 경제 구조가 바뀌었다. 식민 통치 기간 동안 여러 차례의 노예 반란과 사회적 갈등을 겪었으며, 20세기 중반 민족 해방 운동을 거쳐 독립을 이루었다. 독립 이후에는 민주화 과정과 정치적 안정을 위한 노력이 이어지고 있다.
2.1. 초기 역사 및 유럽인 도래

상투메 프린시페를 이루는 섬들은 약 3천만 년 전 카메룬 화산선을 따라 심해에서 발생한 화산 활동으로 형성되었다. 오랜 시간 동안 해수와의 상호작용과 분출 기간을 거치며 섬에는 다양한 종류의 화성암과 화산암이 복잡한 광물 조합을 이루며 생성되었다.
상투메섬과 프린시페섬은 1470년경 포르투갈인들이 도착했을 당시 무인도였다. 이 섬에 처음으로 상륙한 유럽인은 주앙 드 산타렝과 페루 에스코바르였다. 포르투갈 항해사들은 이 섬들을 탐험하고 본토와의 교역 기지로 적합하다고 판단했다.
유럽인의 도래 시기는 상투메섬의 경우 1471년 12월 21일(사도 토마스의 축일), 프린시페섬의 경우 1472년 1월 17일(성 안토니우스의 축일)로 알려져 있으나, 다른 자료에서는 이 시기 전후의 다른 연도를 언급하기도 한다. 프린시페섬은 처음에 '산투 안타우'(Santo Antão산투 안탕포르투갈어, 성 안토니우스)로 명명되었으나, 1502년 '일랴 두 프린시페'(Ilha do Príncipe일랴 두 프린시프포르투갈어, 왕자의 섬)로 이름이 변경되었는데, 이는 섬의 사탕수수 작물에 대한 관세가 포르투갈 왕자에게 지불되었기 때문이다.
1493년 알바루 카미냐가 왕실로부터 토지를 하사받아 상투메섬에 최초의 성공적인 정착촌을 건설했다. 프린시페섬은 1500년 비슷한 방식으로 정착이 이루어졌다. 그러나 정착민을 유치하는 것은 어려웠고, 초기 거주민 대부분은 포르투갈에서 보내진 "바람직하지 않은 자들", 주로 세파르디 유대인들이었다. 8세 이하의 유대인 어린이 2,000명이 이베리아반도에서 사탕수수 농장 노동을 위해 끌려왔다. 시간이 지나면서 이 정착민들은 이 지역의 화산 토양이 농업, 특히 설탕 재배에 적합하다는 것을 발견했다.
2.2. 포르투갈 식민 시대
포르투갈 식민 시대의 상투메 프린시페는 설탕 생산과 대서양 노예 무역의 중심지로 부상했으나, 이는 수많은 아프리카인들의 희생을 바탕으로 이루어졌다. 이 시기에는 노예들의 저항과 반란이 끊이지 않았으며, 19세기 이후 사탕수수 산업이 쇠퇴하면서 커피와 카카오 재배로 경제 구조가 전환되었지만 강제 노동은 지속되었다.
2.2.1. 설탕과 노예 무역 (16세기)
1515년경 상투메 프린시페는 엘미나를 중심으로 한 해안 노예 무역의 노예 집하소가 되었다. 사탕수수 재배는 노동 집약적인 과정이었고, 포르투갈인들은 아프리카 대륙에서 수많은 아프리카인들을 노예로 데려오기 시작했다. 설탕 경작 초기에는 섬의 토지 가치가 낮았고, 지역 소비를 위한 농업이 주를 이루었으며 경제는 주로 노예 중계 무역에 의존했고, 이미 많은 식량이 수입되고 있었다. 1504년 지역 지주 알바루 보르헤스가 사망했을 때, 그의 개간된 땅과 가축은 노예 세 명 가격 정도인 13,000 헤이스에 팔렸다. 1506년경 발렌팀 페르난드스에 따르면, 상투메는 마데이라보다 더 많은 사탕수수밭을 가지고 있었고 "이미 당밀을 생산하고 있었다"고 하지만, 섬에는 산업적 설탕 생산 시설이 부족했다.
상투메는 1515년 물을 동력으로 하는 설탕 공장이 도입되면서 경제적으로 중요해졌고, 이는 곧 대량의 설탕 재배로 이어졌다. "밭이 넓어지고 설탕 공장도 늘어나고 있다. 현재 이곳에는 설탕 공장이 두 개뿐이지만, 계약자들의 큰 공장을 포함하여 세 개가 더 건설 중이다. 마찬가지로 하천과 목재 같은 필요한 조건들이 갖추어져 있어 더 많은 공장을 지을 수 있다. 그리고 이곳의 [설탕] 사탕수수는 내가 평생 본 것 중 가장 크다." 노예 노동으로 조직된 사탕수수 농장 덕분에 16세기 중반까지 포르투갈 정착민들은 이 섬들을 아프리카 최고의 설탕 수출지로 만들었다.

상투메의 노예들은 서아프리카 노예 해안, 니제르강 삼각주, 페르난두포섬, 그리고 나중에는 콩고와 앙골라에서 끌려왔다. 16세기에는 노예들이 포르투갈, 엘미나, 콩고 왕국, 앙골라, 스페인령 아메리카로 수출입되었다. 1510년 포르투갈은 10,000명에서 12,000명의 노예를 수입했다고 보고된다. 1516년 상투메는 재수출을 목적으로 4,072명의 노예를 받았다. 1519년부터 1540년까지 이 섬은 엘미나와 니제르 삼각주 사이의 노예 무역 중심지였다. 16세기 초중반에 걸쳐 상투메는 앙골라 및 콩고 왕국과 간헐적으로 노예를 거래했다. 1525년 상투메는 주로 카리브해와 브라질 등 스페인령 아메리카로 노예를 인신매매하기 시작했다. 1532년부터 1536년까지 상투메는 연평균 342명의 노예를 앤틸리스로 보냈다. 1580년 이전까지 이 섬은 브라질 수입품의 75%를 차지했으며, 대부분 노예였다. 노예 무역은 1600년 이후까지 상투메 경제의 초석으로 남아 있었다.
16세기 상투메의 권력 구조는 놀라울 정도로 다양하여 자유 물라토와 흑인 시민들이 통치에 참여했다. 자발적인 식민지 개척자들은 질병과 식량 부족 때문에 상투메를 기피했으므로, 포르투갈 왕실은 죄수들을 섬으로 추방하고 식민지를 확보하기 위해 인종 간 관계를 장려했다. 노예제 또한 영구적이지 않았는데, 이는 1515년 백인 정착민의 아프리카인 아내와 그들의 혼혈 자녀에게 해방을 부여한 왕령을 통해 알 수 있다. 1517년에는 또 다른 법령으로 최초의 식민지 개척자들과 함께 섬에 도착했던 남성 노예들을 해방시켰다. 1520년 이후 왕실 칙허는 재산을 소유하고 결혼한 자유 물라토들이 공직을 맡을 수 있도록 허용했다. 이어 1546년에는 이 자격을 갖춘 물라토들과 백인 정착민들 간의 시민적 평등을 확립하는 법령이 내려져, 자유 물라토들과 흑인 시민들에게 사회적 상승과 지역 정치 및 사업 참여 기회가 주어졌다. 사회적 분열은 식민지 시의회 내에서 그리고 총독 및 주교와의 잦은 분쟁으로 이어졌으며, 정치적 불안정이 지속되었다.
처음에 상투메의 노예제는 덜 엄격했다. 16세기 중반, 익명의 포르투갈 조종사는 노예들이 부부 단위로 고용되어 자신들의 숙소를 짓고, 일주일에 한 번씩 자신들의 식량 공급을 위한 경작 작업을 자율적으로 수행했다고 기록했다. 그러나 이러한 완화된 노예 제도는 플랜테이션 도입 이후 오래가지 못했다. 그 기간 동안 노예들은 종종 섬 내부의 척박한 산악림으로 도망쳤다.
2.2.2. 노예 반란
노예 반란의 첫 징후는 1530년대에 나타났으며, 마룬 집단이 플랜테이션을 공격하기 위해 조직되었고 일부 플랜테이션은 버려졌다. 1531년 지역 포르투갈 당국은 공격으로 너무 많은 정착민과 흑인 시민들이 살해당하고 있으며,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섬을 잃게 될 것이라고 한탄하는 공식적인 불만을 제기했다. 1533년 '부시 전쟁'에서 '부시 캡틴'은 마룬을 진압하기 위해 민병대를 이끌었다. 마룬의 자유를 위한 투쟁에서 중요한 사건은 1549년에 발생했는데, 자유 태생이라고 주장하는 두 남자가 부유한 물라토 농장주인 아나 드 샤베스에 의해 마쿤부스(도망 노예들의 정착지)에서 데려와졌다. 드 샤베스의 지원으로 두 남자는 왕에게 자유를 선언해 달라고 청원했고, 요청은 승인되었다. 가장 많은 마룬 인구는 플랜테이션에 노예가 넘쳐났던 16세기 중반 설탕 경작 호황기와 일치했다. 1587년과 1590년 사이에 많은 도망 노예들이 또 다른 부시 전쟁에서 패배했다. 1593년까지 총독은 마룬 세력이 거의 완전히 소멸되었다고 선언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룬 인구는 정착민들이 남부 및 서부 지역에 접근하지 못하게 했다.
가장 큰 노예 반란은 1595년 7월에 발생했는데, 이때 정부는 주교와 총독 간의 분쟁으로 약화된 상태였다. 아마도르라는 토착 노예가 5,000명의 노예를 모집하여 플랜테이션, 설탕 공장, 정착민 가옥을 습격하고 파괴했다. 아마도르의 반란군은 마을을 세 차례 습격하고 섬의 85개 설탕 공장 중 60개를 파괴했으나, 3주 후 민병대에게 패배했다. 200명의 노예가 전투에서 사망했고, 아마도르와 다른 반란 지도자들은 처형되었으며, 나머지 노예들은 사면을 받고 플랜테이션으로 돌아갔다. 17세기와 18세기에도 소규모 노예 반란이 뒤따랐다.
2.2.3. 18~20세기 전환기

결국, 서반구의 설탕 생산 식민지들과의 경쟁은 섬들에 타격을 주기 시작했다. 많은 노예 인구 또한 통제하기 어려웠고, 포르투갈은 그 노력에 많은 자원을 투자할 수 없었다. 따라서 설탕 재배는 이후 100년 동안 감소했고, 17세기 중반까지 상투메는 주로 아프리카 대륙과 아메리카 대륙 간의 노예 무역에 종사하는 선박들의 경유지가 되었다.
19세기 초, 커피와 카카오라는 두 가지 새로운 환금 작물이 도입되었다. 1908년까지 상투메는 세계 최대의 카카오 생산국이 되었으며, 이는 여전히 이 나라의 가장 중요한 작물이다.
플랜테이션 관리자에게 높은 권한을 부여했던 로사스(roças호사스포르투갈어) 제도는 아프리카 농장 노동자들에 대한 학대로 이어졌다. 포르투갈이 1876년 공식적으로 노예제를 폐지했지만, 강제 유급 노동 관행은 계속되었다. Scientific American사이언티픽 아메리칸영어지는 1897년 3월 13일 자에서 상투메에서 노예가 계속 사용되고 있음을 글과 사진으로 기록했다.
1919년 5월 29일 프린시페섬에서 아서 에딩턴 경이 관측한 일식은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의 일반 상대성 이론을 최초로 성공적으로 검증한 사례 중 하나를 제공했다.
20세기 초, 앙골라 계약 노동자들이 강제 노동과 불만족스러운 노동 조건에 처해 있다는 비난으로 국제적으로 논란이 일었다. 산발적인 노동 불안과 불만은 20세기까지 계속되었고, 1953년 바테파 학살로 절정에 달했는데, 이 사건에서 수백 명의 아프리카 노동자들이 포르투갈 통치자들과의 충돌로 사망했다. 이 "바테파 학살" 기념일은 정부에 의해 공식적으로 추모되고 있다.
2.3. 독립 과정

1950년대 후반, 아프리카 대륙의 다른 신생 국가들이 독립을 요구할 때, 소수의 상투메인들이 상투메 프린시페 해방운동(MLSTP)을 결성했고, 결국 인근 가봉에 기반을 마련했다. 1960년대에 탄력을 받은 독립 운동은 1974년 4월 포르투갈에서 카에타누 독재 정권이 전복된 후 급속히 진행되었다.
새로운 포르투갈 정권은 해외 식민지 해체에 전념했다. 1974년 11월, 포르투갈 대표단은 알제에서 MLSTP와 만나 주권 이양에 관한 협정을 체결했다. 과도 정부 기간을 거쳐 상투메 프린시페는 1975년 7월 12일 독립을 달성했고, MLSTP 사무총장 마누엘 핀투 다 코스타를 초대 대통령으로 선출했다.
1990년 상투메는 아프리카에서 민주 개혁을 겪은 최초의 국가 중 하나가 되었으며, 야당 합법화를 포함한 헌법 개정은 1991년 비폭력적이고 자유로우며 투명한 선거로 이어졌다. 1986년부터 망명 중이던 전 총리 미겔 트로보아다가 무소속 후보로 귀국하여 대통령으로 당선되었다. 트로보아다는 1996년 상투메의 두 번째 다당제 대통령 선거에서 재선되었다.
민주집중당-숙고그룹(PCD-GR)은 국민의회에서 과반수 의석을 차지했고, MLSTP는 중요하고 목소리 큰 소수당이 되었다. 1992년 말 지방 선거가 이어졌고, MLSTP는 7개 지역 의회 중 5개에서 과반수 의석을 차지했다. 1994년 10월 조기 총선에서 MLSTP는 의회에서 복수 의석을 차지했다. 1998년 11월 선거에서는 과반수 의석을 되찾았다.
2.4. 21세기 이후
2001년 대통령 선거에서는 독립민주행동(ADI)당이 지지한 후보 프라디크 드 메네제스가 1차 투표에서 당선되어 9월 3일 취임했다. 2002년 3월에는 의회 선거가 치러졌다. 이후 4년 동안 단명한 야당 주도 정부가 연이어 구성되었다.
2003년 7월, 군부는 부패와 향후 석유 수입이 공정하게 분배되지 않을 것이라는 불만을 제기하며 일주일 동안 권력을 장악했다. 협상을 통해 드 메네제스 대통령이 복귀했다. 2006년 3월, 친대통령 연합이 국민의회 선거에서 새 정부를 구성할 수 있을 만큼 충분한 의석을 확보하면서 동거 정부 기간이 끝났다.
2006년 7월 30일 대통령 선거에서 프라디크 드 메네제스는 다른 두 후보인 파트리스 트로보아다(전 대통령 미겔 트로보아다의 아들)와 무소속 닐루 기마랑이스를 물리치고 두 번째 5년 임기를 쉽게 확보했다. 1992년 이후 첫 지방 선거는 2006년 8월 27일에 치러졌으며, 여당 연합 소속 의원들이 주도했다. 2009년 2월 12일, 프라디크 드 메네제스 대통령을 전복시키려는 쿠데타 시도가 있었다. 음모자들은 투옥되었으나 나중에 드 메네제스 대통령으로부터 사면을 받았다.
2016년 대통령 선거에서는 에바리istu 카르발류가 현직 대통령 마누엘 핀투 다 코스타를 누르고 대통령으로 당선되었다. 카르발류 대통령은 독립민주행동(ADI)의 부총재이기도 하다. 파트리스 트로보아다는 2014년에 총리가 되었으며, 그 역시 독립민주행동(ADI)의 지도자이다. 2018년 12월, 상투메 프린시페 해방운동-사회민주당(MLSTP-PSD)의 지도자인 조르즈 봄 제주스가 새 총리로 취임했다.
2021년 9월, 중도 우파 야당인 독립민주행동(ADI)의 후보 카를루스 빌라 노바가 대통령 선거에서 승리했다. 2022년 9월, 전 총리 파트리스 트로보아다가 이끄는 야당 독립민주행동(ADI)이 조르즈 봄 제주스 총리가 이끄는 집권 상투메 프린시페 해방운동/사회민주당(MLSTP/PSD)을 누르고 총선에서 승리했다. 같은 해 11월, 카를루스 빌라 노바 대통령이 파트리스 트로보아다를 총리로 임명한 후, 정부와 군부는 쿠데타 시도를 저지했다.
3. 지리
상투메 프린시페는 아프리카에서 두 번째로 작은 나라로, 적도 부근 대서양의 기니만에 위치하며 두 개의 주요 섬과 여러 작은 섬들로 구성된다. 이 섬들은 카메룬 화산선의 일부로, 화산 활동으로 형성된 산악 지형과 풍부한 화산 토양을 특징으로 한다.
3.1. 지형 및 지질

상투메섬과 프린시페섬은 각각 가봉 북서쪽 해안에서 약 300 km와 250 km 떨어진 적도 대서양과 기니만에 위치하며, 아프리카에서 두 번째로 작은 나라이다. 두 섬 모두 남서쪽의 안노본섬, 북동쪽의 비오코섬(모두 적도 기니 영토), 그리고 기니만 연안의 카메룬산을 포함하는 카메룬 화산선의 일부이다. 두 섬 모두 약 3천만 년 전 올리고세 시대에 카메룬 화산선을 따라 심해에서 발생한 화산 활동으로 형성되었다. 3백만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현무암과 포놀라이트의 화산 토양은 식민지 시대부터 플랜테이션 작물 재배에 사용되어 왔다.
상투메섬은 길이 50 km, 너비 30 km이며 두 섬 중 더 산이 많다. 가장 높은 지점인 피쿠 드 상투메는 해발 2024 m이다. 프린시페섬은 길이 약 30 km, 너비 약 6 km이다. 가장 높은 지점인 피쿠 드 프린시페는 해발 948 m에 이른다. 적도는 상투메섬 바로 남쪽에 있으며, 작은 섬인 일례우 다스 홀라스를 지난다.
피쿠 캉 그란드(Pico Cão Grande, 큰 개 봉우리)는 상투메 남부의 랜드마크인 화산 플러그 봉우리이다. 주변 지형보다 300 m 이상 솟아 있으며 정상은 해발 663 m이다.
3.2. 기후

상투메 프린시페의 기후는 본질적으로 지리적 위치에 의해 결정되며, 적도 저기압의 계절적 이동, 남쪽에서 불어오는 계절풍, 따뜻한 기니 해류, 그리고 지형의 영향을 받는다.
해수면에서의 기후는 열대성으로 덥고 습하며 연평균 기온은 약 26 °C이고 일교차는 거의 없다. 기온은 좀처럼 32 °C를 넘지 않는다. 내륙 고지대의 연평균 기온은 20 °C이며 밤에는 대체로 시원하다. 연 강수량은 고지대 운무림에서는 7000 mm에 달하는 반면 북부 저지대에서는 800 mm에 불과하다. 우기는 10월부터 5월까지이다.
3.3. 생물 다양성

이 나라의 영토는 상투메 프린시페 안노본 습윤 저지대림 생태지역의 일부이다. 2019년 산림 경관 보전 지수 평균 점수는 6.64/10으로, 전 세계 172개국 중 68위를 차지했다.
상투메 프린시페에는 토종 포유류가 많지 않지만(상투메 땃쥐와 여러 박쥐 종은 고유종이다), 세계에서 가장 작은 따오기(상투메 따오기), 세계에서 가장 큰 태양새(자이언트 선버드), 희귀한 상투메 때까치, 그리고 여러 거대한 종의 베고니아를 포함하여 더 많은 수의 고유 조류와 식물이 서식하고 있다.
상투메 프린시페는 매부리바다거북(학명: Eretmochelys imbricata)을 포함한 중요한 바다거북 산란지이다.
4. 정치

상투메 프린시페는 대통령 중심제와 의원내각제적 요소가 혼합된 반 대통령제를 채택하고 있으며, 행정부, 입법부, 사법부 간의 권력 분립을 기반으로 한 다당제 민주주의 국가이다. 주요 정당으로는 상투메 프린시페 해방운동-사회민주당(MLSTP/PSD)과 독립민주행동(ADI) 등이 있으며, 이들 정당을 중심으로 여러 차례의 선거를 통해 정치 지형이 변화해왔다. 헌법상 인권과 언론의 자유가 보장되어 있으나, 부패 문제 등 민주주의 발전에 있어 도전 과제도 안고 있다.
4.1. 정부 구조
대통령은 직접 보통 선거와 비밀 투표를 통해 5년 임기로 선출되며, 당선되려면 과반수 득표를 해야 한다. 대통령은 연임하여 최대 두 번의 임기를 수행할 수 있다. 총리는 대통령이 임명하며, 14명의 내각 구성원은 총리가 선택한다.
국가 최고 기관이자 최고 입법 기관인 국민의회는 55명의 의원으로 구성되며, 4년 임기로 선출되고 반기별로 회의를 개최한다. 사법은 최고 수준에서 대법원에 의해 집행된다. 사법부는 현행 헌법에 따라 독립적이다.
상투메 프린시페는 1990년부터 다당제로 운영되고 있다. 인권과 관련하여 언론의 자유와 야당 결성의 자유가 보장된다. 이 나라는 아프리카의 거버넌스 표준을 종합적으로 분석한 2010년 이브라힘 아프리카 거버넌스 지수에서 아프리카 국가 중 11위를 차지했다.
상투메 프린시페는 언론의 자유가 매우 높고, 정치적 자유가 높으며 경제적 자유는 평균 수준인 자유 국가로 간주된다. 2023년 V-Dem 민주주의 지수에서 이 나라는 전 세계 선거 민주주의 국가 중 56위, 아프리카에서는 5위를 차지했다. 부패 수준은 평균적이지만 최근 몇 년 동안 감소하고 있다. 관광 측면에서 위험도는 낮으며, 프랑스 방문 위험도와 동일하다.
4.2. 주요 정당 및 선거
상투메 프린시페의 주요 정당으로는 역사적으로 독립 운동을 이끌었던 상투메 프린시페 해방운동-사회민주당(MLSTP/PSD)과 중도 성향의 독립민주행동(ADI)이 있다. 이 외에도 민주집중당-숙고그룹(PCD-GR) 등이 활동하고 있다. 1990년 다당제 도입 이후 여러 차례의 대통령 선거와 의회 선거가 치러졌으며, 이 과정에서 MLSTP/PSD와 ADI가 번갈아 집권하거나 연립 정부를 구성하는 등 정치 지형에 변화가 있었다.
- 1991년: PCD-GR이 의회 다수당이 되었고, PCD-GR의 지지를 받은 무소속 미겔 트로보아다가 대통령으로 당선되었다.
- 1994년: 조기 총선에서 MLSTP/PSD가 제1당이 되었다.
- 1998년: MLSTP/PSD가 총선에서 과반수 의석을 확보했다.
- 2001년: ADI의 지지를 받은 프라디크 드 메네제스가 대통령으로 당선되었다.
- 2006년: 친대통령 연합이 총선에서 승리했으며, 드 메네제스 대통령이 재선되었다.
- 2011년: 마누엘 핀투 다 코스타(MLSTP/PSD)가 대통령으로 당선되며 정치에 복귀했다.
- 2016년: ADI 소속의 에바리istu 카르발류가 대통령으로 당선되었고, 파트리스 트로보아다(ADI)가 총리를 맡았다.
- 2018년: MLSTP/PSD가 포함된 연정이 총선에서 승리하여 조르즈 봄 제주스(MLSTP/PSD)가 총리가 되었다.
- 2021년: ADI 소속의 카를루스 빌라 노바가 대통령으로 당선되었다.
- 2022년: ADI가 총선에서 승리하여 파트리스 트로보아다가 다시 총리가 되었다.
선거는 대체로 자유롭고 공정하게 치러지는 것으로 평가받지만, 때때로 정치적 긴장이나 쿠데타 시도와 같은 불안정한 상황이 발생하기도 했다.
4.3. 인권 및 민주주의 현황
상투메 프린시페 헌법은 기본적인 인권과 자유를 보장하고 있으며, 여기에는 언론의 자유, 집회의 자유, 결사의 자유 등이 포함된다. 1990년 다당제 민주주의로 전환한 이후, 비교적 자유로운 정치 환경을 유지해오고 있다. 여러 국제 평가기관들은 상투메 프린시페의 민주주의 수준을 아프리카 국가들 중에서는 양호한 편으로 평가한다. 예를 들어, 2010년 이브라힘 아프리카 거버넌스 지수에서는 아프리카 53개국 중 11위를 기록했으며, 2023년 V-Dem 민주주의 지수에서는 전 세계 선거 민주주의 국가 중 56위, 아프리카에서는 5위로 평가되었다.
그러나 부패는 여전히 해결해야 할 과제로 남아있다. 국제투명성기구의 부패인식지수(CPI)에서 상투메 프린시페는 종종 낮은 점수를 기록하지만, 최근 몇 년간 약간의 개선 추세를 보이기도 했다. 언론 환경은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편으로, 다양한 의견이 표출될 수 있는 통로가 마련되어 있다. 사법부의 독립성 강화를 위한 노력도 지속되고 있다.
4.4. 대외 관계
상투메 프린시페는 독립 이후 비동맹 중립 외교 노선을 기본으로 하며, 모든 국가와의 우호 협력 관계를 추구한다. 주요 외교 파트너로는 옛 식민 종주국인 포르투갈, 주요 경제 협력국인 앙골라, 그리고 미국, 중화인민공화국 등이 있다. 국제적으로는 유엔, 아프리카 연합, 포르투갈어 사용국 공동체(CPLP) 등 다양한 국제기구의 회원국으로 활동하며 국제 사회와의 연대를 강화하고 있다.
4.4.1. 포르투갈과의 관계
포르투갈은 상투메 프린시페의 옛 식민 종주국으로서 역사적, 문화적, 경제적으로 깊은 유대 관계를 맺고 있다. 독립 이후에도 포르투갈은 상투메 프린시페의 주요 개발 파트너이자 최대 투자국 중 하나이다. 상투메 프린시페는 리스본에 대사관을, 포르투와 코임브라에 영사관을 두고 있으며, 포르투갈은 상투메에 대사관을 운영하고 있다. 양국은 경제, 교육, 국방 등 다양한 분야에서 긴밀하게 협력하고 있다. 특히 포르투갈은 상투메 프린시페의 해안 경비 및 안보 강화에 협력하며, 포르투갈 해군 함정이 상투메 프린시페 연안에 주둔하기도 한다. 또한 포르투갈은 상투메 프린시페 국립대학교 설립을 지원하는 등 교육 분야 발전에도 기여하고 있다. 2022년 9월에는 국방 분야에서의 훈련 및 해상 안보 강화를 위한 새로운 협력 협정을 체결했다.
4.4.2. 앙골라와의 관계
앙골라는 상투메 프린시페의 주요 사업 파트너로, 특히 에너지 자원 분야에서 중요한 관계를 맺고 있다. 앙골라는 상투메 프린시페에 석유 및 천연가스를 공급하는 주요 국가이다. 또한, 매년 수백 명의 앙골라 관광객이 상투메 프린시페를 방문하여 지역 경제에 기여하고 있으며, 상투메 프린시페에는 상당 규모의 앙골라인 공동체가 형성되어 있다. 양국은 수도에 각각 대사관을 두고 있으며, 역사적으로 노예무역 시기부터 독립 이후 우호 관계까지 깊은 관계를 유지해왔다.
4.4.3. 미국과의 관계

미국은 1975년 상투메 프린시페의 독립 이후 관계를 맺어왔으며, 수백만 달러 규모의 재정 지원 패키지를 제공하여 국가 기반 시설 개발 및 재정, 세무, 관세 행정 개선을 지원했다. 최근 몇 년간 미국 해안경비대 선박이 상투메 프린시페를 방문하여 군인들에게 의료 및 군사 훈련을 제공하기도 했다. 1992년, 미국 연방 정부 방송사인 미국의 소리(VOA)는 상투메에 중계 방송국을 설립하기 위한 장기 협정을 체결했으며, 현재 이 시설을 통해 아프리카 대부분 지역으로 방송을 송출하고 있다. 2002년 미국은 상투메섬에 소규모 군사 기지를 건설할 계획을 세웠고 상투메 프린시페도 이를 수락했으나, 미국의 정치적, 재정적 문제로 계획은 취소되었다.
4.4.4. 중화인민공화국과의 관계
상투메 프린시페는 1975년 독립 당시 중화인민공화국을 승인했으나, 1997년 5월 중화민국(대만)과 수교하면서 중화인민공화국과의 관계가 단절되었다. 그러나 2016년 12월 20일 중화민국과의 외교 관계를 단절하고, 같은 해 12월 26일 중화인민공화국과 국교를 재개했다. 국교 재개 이후 중화인민공화국은 도로 및 항만 건설 등 일부 기반 시설 프로젝트에 투자해왔다.
4.4.5. 기타 국가 및 국제기구와의 관계
상투메 프린시페는 카보베르데, 브라질, 그리고 이웃 국가인 가봉, 카메룬, 콩고 공화국과도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카보베르데 관광객들은 지역 경제에 기여하며, 브라질은 보건 및 교육 시스템 개선에 도움을 주고 있다. 프랑스어를 사용하는 가봉, 카메룬, 콩고 공화국은 중요한 사업 파트너이며, 이들 국가와의 교류로 인해 프랑스어가 상투메 프린시페의 사업 분야에서 중요한 언어가 되었다. 최근에는 폴란드, 독일과의 상업 관계가 증대되었으며, 인도는 농업 분야에 투자하고 있다.
국제적으로 상투메 프린시페는 포르투갈어 사용국 공동체(CPLP)의 창립 회원국이며, 아프리카 연합(AU)의 회원국이다. 또한 프랑코포니(국제프랑스어사용국기구)의 준회원국으로 활동하며 다양한 국가 및 국제기구와의 협력을 모색하고 있다.
4.5. 군사
상투메 프린시페의 군대는 규모가 작으며, 육군(Exército에제르시투포르투갈어), 해안경비대(Guarda Costeira과르다 코스테이라포르투갈어, 해군으로도 불림), 대통령 경호대(Guarda Presidencial과르다 프레지덴시알포르투갈어), 그리고 국가 방위군(National Guard)의 네 개 부서로 구성된다. 1995년 기준 총 병력은 약 600명 수준이었으며, 2001년 국방비 지출은 약 40만 달러로 GDP의 0.8%에 해당했다.
2017년, 상투메 프린시페는 유엔의 핵무기금지조약에 서명했다.
4.6. 행정 구역

상투메 프린시페는 1977년 독립 2년 후 2개 주(상투메주, 프린시페주)와 6개 현으로 나뉘었다. 1990년 새 헌법이 채택된 이후 주는 폐지되었고, 현(district)이 유일한 행정 구역 단위가 되었다. 1995년 4월 29일부터 프린시페섬은 파게현과 동일한 구역을 관할하는 자치주(프린시페 자치주)가 되었다. 더 큰 섬인 상투메섬은 6개 현으로, 프린시페섬은 1개 현(자치주)으로 나뉜다.
상투메섬
- 아구아그란드현 (Água Grande) - 수도: 상투메
- 칸타갈루현 (Cantagalo) - 수도: 산타나
- 카우에현 (Caué) - 수도: 상주앙두장골라르스
- 렘바현 (Lembá) - 수도: 네베스
- 로바타현 (Lobata) - 수도: 과달루페
- 메조시현 (Mé-Zóchi) - 수도: 트린다드
프린시페섬
- 파게현 (Pagué) - 수도: 산투안토니우 (프린시페 자치주)
5. 경제
상투메 프린시페의 경제는 역사적으로 플랜테이션 농업에 기반을 두어 왔으며, 특히 카카오가 주요 수출품이다. 독립 이후 경제 다변화를 모색하고 있으나, 여전히 농업 의존도가 높고 대외 원조와 외국인 투자에 크게 기대고 있다. 최근에는 기니만 해역에서의 석유 탐사와 관광업 개발에 대한 기대가 크지만, 제한된 노동력, 작은 내수 시장, 기후 변화 취약성 등 여러 경제적 어려움에 직면해 있다.
5.1. 경제 구조 및 주요 산업
19세기 이래로 상투메 프린시페의 경제는 플랜테이션 농업에 기반을 두어 왔다. 독립 당시 포르투갈인이 소유한 플랜테이션이 경작지의 90%를 차지했다. 독립 후 이들 플랜테이션의 통제권은 다양한 국영 농업 기업으로 넘어갔다. 상투메의 주요 작물은 카카오로, 농산물 수출의 약 54%를 차지한다. 1900년대 초, 상투메 프린시페는 세계 최대의 카카오 수출국이었으며 "초콜릿 섬"으로 널리 알려졌다. 기타 수출 작물로는 코프라, 팜핵, 커피 등이 있다.
국내 식량 작물 생산은 현지 소비를 충족시키기에 부족하여, 국가는 대부분의 식량을 수입한다. 1997년 기준으로 국가 식량 수요의 약 90%가 수입을 통해 충족된 것으로 추정된다. 최근 몇 년간 정부는 식량 생산 확대를 위해 노력해 왔으며, 주로 외국 원조로 자금을 조달하는 여러 프로젝트가 진행되었다.
농업 외의 주요 경제 활동은 어업과 지역 농산물을 가공하고 일부 기본 소비재를 생산하는 소규모 산업 부문이다. 경치가 아름다운 섬들은 관광 잠재력이 있으며, 정부는 초보적인 관광 산업 기반 시설을 개선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정부 부문은 고용의 약 11%를 차지한다.
독립 후, 국가는 대부분의 생산 수단이 국가에 의해 소유되고 통제되는 중앙 집권적 경제 체제를 가졌다. 원래 헌법은 민간 소유 협동조합과 공공 소유 재산 및 생산 수단이 결합된 혼합 경제를 보장했다.
5.1.1. 우표 발행

1970년대 상투메 프린시페는 외화 획득 수단으로 우표 발행을 활용했으며, 일부 아랍에미리트 토후국들과 유사하게 자국과 관련 없는 기념우표(토후국 우표)를 남발하여 우표상을 통해 수집가들에게 판매했다. 세계적으로 권위 있는 미국의 스콧 카탈로그에는 "일부는 정부가 발행한 것이 아닐 가능성이 있다"는 주의 문구가 있는 우표도 존재하며, 이는 국외 에이전트와 협력하여 우표를 남발했음을 시사한다. 2010년대에 들어서도 우표 발행 건수는 많아, 2014년에는 소형 시트 약 200종(낱장 기준 약 500종)을 발행했다. 또한, 실제로는 상투메 프린시페가 발행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동국 국명을 사용한 위조 우표(불법 우표)가 시장에 유통되고 있다.
5.1.2. 농업
주요 수출품인 카카오는 상투메 프린시페 농업의 중심이다. 2015년 카카오콩 수출은 총수출의 82.6%를 차지했으며, 1997년에는 경작지의 39%에서 카카오가 재배되었고 농업 생산액의 20% 이상을 차지하는 등 카카오 단일 경작 경제에 가까운 구조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카카오 생산량 자체는 독립 당시의 혼란으로 인해 급감하여, 독립 직전인 1975년 약 10,000톤이었던 것이 2014년에는 3,200톤으로 약 3분의 1 수준으로 감소했다.
카카오 외에도 커피, 코프라, 팜유 등이 생산된다. 기타 농산물로는 코코넛(2.9만 톤), 타로(2.8만 톤), 바나나(2.7만 톤), 카사바(6천 톤) 등이 있으나, 이는 주로 자급용 작물이며 다른 농산물의 수출액은 2% 미만이다. 식량 자급 문제가 심각하여 대부분의 식량을 수입에 의존하고 있다.
5.1.3. 석유 탐사 및 개발

세계적으로 원유 매장량이 풍부한 기니만에 위치한 상투메 프린시페는 나이지리아 삼각주 지질구의 석유 탐사에 대한 잠재력이 주목받아 왔다. 2001년, 상투메 프린시페는 나이지리아와 양국이 영유권을 주장하는 해역에서의 석유 공동 탐사 협정을 체결했다. 오랜 협상 끝에 2003년 4월, 공동개발구역(JDZ)이 국제 석유 회사들의 입찰에 개방되었다. JDZ는 9개 블록으로 나뉘었으며, 2004년 4월 1번 블록의 낙찰자로 셰브론텍사코, 엑슨모빌, 단고테 그룹이 발표되었다. 이 입찰에서 상투메 프린시페는 입찰액 1.23 억 USD의 40%를, 나이지리아는 나머지 60%를 가져가기로 했다. 상투메 프린시페는 석유 부문 개발을 위해 은행으로부터 200.00 만 USD 이상을 지원받았다. 석유 생산은 경제 상황을 극적으로 변화시킬 것으로 기대되었으나, 생산 시작이 지연되거나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경우도 있었다.
5.1.4. 관광업

상투메 프린시페의 아름다운 자연환경은 관광 산업 발전의 큰 잠재력을 제공한다. 정부는 국가 경제 다변화의 한 축으로서 관광업을 육성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으며, 외국인 투자 유치를 통해 관광 기반 시설을 개선하고 있다. 이미 해변가에는 대형 리조트들이 건설되었으며, 생태 관광, 해양 스포츠 등 다양한 관광 상품 개발이 시도되고 있다. 그러나 아직까지는 관광 인프라가 초보적인 수준에 머물러 있으며, 제한된 항공편과 마케팅 부족 등이 관광 산업 성장의 제약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5.2. 경제 정책 및 개혁
1980년대와 1990년대 상투메 프린시페 경제는 심각한 어려움에 직면했다. 경제 성장은 정체되었고, 주요 수출품인 카카오 수출은 가치와 물량 모두에서 급감하여 막대한 국제수지 적자를 야기했다. 플랜테이션 토지가 압류되면서 카카오 생산은 완전히 붕괴되었고, 동시에 국제 카카오 가격도 폭락했다.
이러한 경제 침체에 대응하여 정부는 광범위한 경제 개혁을 단행했다. 1987년, 정부는 국제 통화 기금(IMF)의 구조 조정 프로그램을 시행하고, 국영 기업뿐만 아니라 농업, 상업, 은행, 관광 부문에 대한 민간 참여 확대를 추진했다. 1990년대 초부터 경제 개혁의 초점은 특히 국영 농업 및 산업 부문의 광범위한 민영화에 맞춰졌다.
상투메 프린시페 정부는 전통적으로 유엔 개발 계획(UNDP), 세계은행, 유럽 연합, 포르투갈, 대만(역사적으로), 아프리카 개발 은행 등 다양한 원조 공여국으로부터 해외 원조를 받아왔다. 2000년 4월, IMF는 상투메 프린시페 중앙은행과 협력하여 상투메 프린시페를 위한 빈곤 감소 및 성장 지원 프로그램을 승인했으며, 이는 2001년 인플레이션을 3%로 낮추고 이상적인 성장률을 4%로 높이며 재정 적자를 줄이는 것을 목표로 했다.
2000년 말, 상투메 프린시페는 IMF-세계은행의 과다채무빈곤국(HIPC) 구상을 통해 상당한 규모의 부채 탕감 자격을 얻었다. 그러나 2003년 7월 쿠데타 시도와 그에 따른 긴급 지출로 인해 IMF는 부채 탕감 규모를 재평가했다. 휴전 이후 IMF는 상투메 프린시페의 거시경제 상태를 평가하기 위해 사절단을 파견했다.
5.3. 대외 무역 및 투자

상투메 프린시페의 대외 무역은 주로 농산물 수출과 공산품 및 식량 수입으로 이루어진다. 주요 수출품은 카카오콩(2018년 기준 전체 수출의 약 50%)이며, 그 외에 전기 기계, 항공기 부품, 자동차 부품, 철, 플라스틱, 후추, 견과류 등도 수출된다. 2018년 총 수출액은 약 2400.00 만 EUR로, 5년 전인 2013년의 1100.00 만 EUR에 비해 118% 증가했다. 주요 수출 대상국은 네덜란드(19%), 포르투갈(14%), 폴란드(13%), 프랑스(7%), 독일(6%) 등 유럽 국가들이며, 이 외에 싱가포르, 일본, 브라질, 미국 등도 중요한 구매국이다.
2018년 총 수입액은 약 1.61 억 USD로, 2013년의 1.67 억 EUR에 비해 다소 감소했다. 주요 수입품은 정제유(주로 앙골라에서 수입, 전체 수입의 약 20%)이며, 자동차, 쌀, 곡물, 와인, 전자기기, 화학제품, 의류, 육류, 의료 장비, 목재 등도 수입된다. 주요 수입 상대국은 포르투갈(51%)이며, 앙골라(20%), 중국(6%), 미국(4%), 브라질(4%), 가봉(2%), 프랑스(2%) 등이 그 뒤를 잇는다. 지난 10년간 포르투갈, 앙골라, 중국으로부터의 수입액이 가장 많이 증가했으며, 태국, 이탈리아, 나이지리아로부터의 수입은 급감했다.
상투메 프린시페는 주로 발전기 및 컴퓨터와 같은 기계류와 와인, 밀, 쌀, 우유, 대두유와 같은 식품을 포르투갈에서 수입한다. 또한 상당량의 자동차, 비누, 철강 제품도 포르투갈에서 수입한다. 포르투갈은 주로 고철, 구리, 카카오, 의류 등을 상투메 프린시페에서 구매한다. 국제 원조와 부채 문제는 여전히 중요한 경제 현안으로 남아 있다.
5.4. 교통 및 통신

상투메 프린시페의 주요 항구는 상투메섬의 상투메시와 네베스에 있으며, 이들 항구는 2014년 현대화되기 전까지 매우 낙후된 상태였다. 상투메시 인근에는 상투메 국제공항이 확장 및 현대화되어 운영 중이며, 프린시페 공항도 프린시페섬의 항공 교통을 담당한다. 현재까지 철도는 존재하지 않는다.
도로망과 전화 시스템은 아프리카 기준으로 양호한 편이다. 휴대폰 사용이 보편화되었으며 통신 환경은 개선되고 있다. 인터넷 서비스는 도시 지역을 중심으로 널리 보급되어 있다. 미국의 소리(VOA) 중계소는 상투메섬의 핀헤이라에 위치해 있다.
5.5. 은행업

상투메 프린시페 중앙은행(Banco Central de São Tomé e Príncipe)은 국가의 중앙은행으로서 통화 정책 수립 및 은행 감독 업무를 담당한다. 국내에는 6개의 은행이 운영 중이며, 가장 크고 오래된 은행은 포르투갈 국영은행인 카이샤 제랄 드 데포지투스(Caixa Geral de Depósitos)의 자회사인 상투메 프린시페 국제은행(Banco Internacional de São Tomé e Príncipe, BISTP)이다. BISTP는 2003년 은행법 개정으로 다른 은행들이 진입하기 전까지 상업 은행 업무를 독점했었다.
5.6. 경제적 과제와 전망
상투메 프린시페 경제는 제한된 노동력, 군도라는 지리적 특성, 작은 내수 시장, 기후 변화와 지구 온난화에 대한 취약성, 부족한 외교 자원, 그리고 빈곤 등 여러 가지 도전에 직면해 있다. 지난 몇 년간 농업, 관광, 외국인 투자에 힘입어 경제가 성장했지만, 주로 외국 차관에 의한 정부 지출 증가가 성장을 주도했다. 2009년에서 2017년 사이 국내총생산(GDP)은 연평균 5.5% 성장했으나, 2014년 이후 성장세가 둔화되었다. 이는 외국 차관 감소와 정부 세수 감소로 인한 정부 지출 축소 때문이었다.
장기적인 경제 성장을 위해 정부는 다양한 경제 부문을 활성화하고, 경제를 다변화하며, 정부 지출을 삭감하고, 민간 부문과 외국인 투자를 장려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긍정적인 측면으로는 상투메 프린시페가 인간 개발 지수(HDI)에서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 평균을 상회하며, 대부분의 사회 지표에서 큰 진전을 이루었다는 점이다. 모든 어린이가 교육 시스템에 등록되어 있고, 기대 수명은 70세로 증가했으며, 영아 사망률은 크게 감소했고, 대다수 인구가 수도 시설과 전기를 이용할 수 있게 되었다. 사업 환경 측면에서 정부는 민간 기업 설립과 외국인 투자를 용이하게 하는 여러 법률을 통과시켰다. 2015년에서 2019년 사이에 기업 및 소규모 사업체 수가 크게 증가하여 실업률 감소, 수출 증가, 여러 제조업체 탄생으로 이어졌다. 향후 몇 년 동안 상당한 경제 개선이 기대된다는 낙관적인 전망도 있다.
6. 사회
상투메 프린시페의 사회는 다양한 민족 집단의 역사적 배경과 공용어인 포르투갈어 및 여러 크레올어 사용, 그리고 로마 가톨릭 중심의 종교 분포를 특징으로 한다. 교육 및 보건 시스템은 꾸준히 발전해왔으나 여전히 개선의 여지가 있다.
6.1. 인구


2018년 5월 정부 기관의 공식 추산에 따르면 총인구는 201,800명이었다. 이 중 약 193,380명이 상투메섬에, 8,420명이 프린시페섬에 거주한다. 자연 인구 증가는 연간 약 4,000명이다.
거의 모든 시민은 1470년 이후 포르투갈인에 의해 섬으로 끌려온 여러 나라 출신 사람들의 후손이다. 1970년대에는 두 가지 중요한 인구 이동이 있었는데, 하나는 약 4,000명의 포르투갈 거주민 대부분의 탈출이었고, 다른 하나는 앙골라에서 온 수백 명의 상투메 난민 유입이었다. 인구는 1960년 63,000명에서 1986년 11만 명, 2017년에는 20만 4천 명으로 꾸준히 증가해왔다.
6.2. 민족 구성
상투메 프린시페의 주요 민족 집단은 다음과 같다:
- 메스티수 (Mestiços) 또는 루소-아프리칸(Luso-Africans): 포르투갈 식민지 개척자들과 초기 정착 시기 베냉, 가봉, 콩고 공화국, 콩고 민주 공화국, 앙골라 등지에서 끌려온 아프리카 노예들의 혼혈 후손이다. 이들은 '땅의 자식들'이라는 의미의 필류스 다 테하(filhos da terra필류스 다 테라포르투갈어)로도 알려져 있다.
- 앙골라르 (Angolares): 1540년 난파선에서 살아남은 앙골라 노예들의 후손으로 알려져 있으며, 현재는 주로 어업으로 생계를 유지한다. 상투메섬 남단에 주로 거주한다.
- 포루 (Forros): 노예제가 폐지될 때 해방된 노예들의 후손이다.
- 세르비사이스 (Serviçais): 앙골라, 모잠비크, 카보베르데 출신의 계약 노동자들로, 섬에 일시적으로 거주한다.
- 통가스 (Tongas): 섬에서 태어난 세르비사이스의 자녀들이다.
- 유럽인 (Europeans): 주로 포르투갈인이다.
- 아시아인 (Asians): 대부분 중국인이며, 마카오에서 온 포르투갈-중국 혼혈인 마카오인도 포함된다.
6.3. 언어
포르투갈어는 상투메 프린시페의 공식어이자 사실상의 국어이며, 인구의 약 98.4%가 사용하고 상당수가 모국어로 사용한다. 포르투갈어는 15세기 말부터 이 섬들에서 사용되어 왔다. 포르투갈어 기반의 크레올어도 사용되는데, 포루 크레올어(포루어, 36.2%), 카보베르데 크레올어(8.5%), 앙골라르 크레올어(앙골라르어, 6.6%), 프린시페 크레올어(프린시페어, 1%) 등이 있다. 프랑스어(6.8%)와 영어(4.9%)는 학교에서 가르치는 외국어이다. 이로 인해 상투메 프린시페는 프랑코포니(국제프랑스어사용국기구)의 정회원국이기도 하다.
6.4. 종교

거주민 대다수는 로마 가톨릭교회 현지 교구에 속하며, 이 교구는 포르투갈 교회와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상당수의 개신교 소수 집단으로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회 신자와 기타 복음주의 개신교 신자들이 있으며, 소수이지만 점차 증가하는 이슬람 인구도 존재한다. 2001년 조사에 따르면 가톨릭이 70.3%, 복음주의가 3.4%, 새사도교회가 2%, 재림교가 1.8%, 기타가 3.1%, 무종교가 19.4%를 차지했다.
6.5. 교육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 국가들 중에서 상투메 프린시페는 가장 높은 문해율을 가진 국가 중 하나이다. 2018년 CIA 월드 팩트북에 따르면, 상투메 프린시페의 15세 이상 인구 중 92.8%(남성 96.2%, 여성 89.5%)가 각각 글을 읽고 쓸 수 있었다. 인권 측정 이니셔티브(HRMI)는 상투메 프린시페가 국가 소득 수준을 기준으로 교육권에 대한 기대 약속의 83.8%만을 이행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HRMI는 교육권을 초등 교육과 중등 교육 모두에 대한 권리로 나누어 분석하는데, 상투메 프린시페의 소득 수준을 고려할 때 초등 교육에서는 자원(소득)을 기준으로 가능한 것의 90.4%를 달성하고 있지만 중등 교육에서는 77.2%에 불과하다.
상투메 프린시페의 의무 교육은 6년이다. 2001년 현재 상투메 프린시페의 초등학교 등록률 및 출석률 데이터는 제공되지 않았다.
교육 시스템은 교실 부족, 불충분하게 훈련되고 저임금을 받는 교사, 부적절한 교과서 및 자료, 높은 유급률, 열악한 교육 계획 및 관리, 학교 관리에 대한 지역 사회 참여 부족 등의 문제를 안고 있다. 학교 시스템에 대한 국내 자금 지원이 부족하여 시스템은 외국 자금 지원에 크게 의존하고 있다.
고등 교육 기관으로는 국립 리세움(Liceu Nacional)과 상투메 프린시페 대학교(Universidade de São Tomé e Príncipe, USTP)가 있다.
6.6. 보건 및 복지
상투메 프린시페는 보건 및 복지 분야에서 상당한 진전을 이루었으나 여전히 도전 과제가 남아 있다. 기대 수명은 약 70세로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 평균보다 높으며, 영아 사망률은 크게 감소했다. 대다수 인구가 수도 시설과 전기를 이용할 수 있게 되었다. 주요 사망 원인으로는 말라리아, 호흡기 감염, 설사병 등이 있다. 정부는 국제기구 및 비정부기구(NGO)와의 협력을 통해 의료 서비스 접근성 향상과 질병 예방 및 통제 프로그램을 강화하고 있다. 그러나 의료 인력과 시설 부족, 의약품 공급의 불안정성 등은 여전히 해결해야 할 문제이다. 사회 복지 시스템은 제한적이며, 주로 노령 연금과 일부 취약 계층에 대한 지원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7. 문화

상투메 프린시페의 문화는 아프리카와 포르투갈 문화가 혼합된 독특한 특징을 지닌다. 오랜 포르투갈 식민 통치의 영향으로 언어, 종교, 건축 등에서 포르투갈 문화의 요소가 깊이 뿌리내렸지만, 아프리카 고유의 전통 또한 음악, 춤, 구전 문학 등을 통해 생생하게 이어져 내려오고 있다.
7.1. 음악과 춤
상투메인들은 우수아(ússua우수아포르투갈어)와 소코페(socopé소코페포르투갈어) 리듬으로 유명하며, 프린시페섬은 데샤(dêxa데샤포르투갈어) 비트의 본고장이다. 포르투갈의 사교춤이 이러한 리듬과 관련 춤의 발전에 중요한 역할을 했을 가능성이 있다.
칠롤리(Tchiloli칠롤리포르투갈어)는 극적인 이야기를 전달하는 음악 무용 공연이다. 단수-콩고(Danço-Congo단수-콩고포르투갈어) 역시 음악, 춤, 연극이 결합된 형태이다.
7.2. 문학
상투메 프린시페의 포르투갈어 문학과 시는 루소폰 아프리카에서 가장 풍부한 것 중 하나로 간주된다. 그 외에도 포루어, 영어, 카우에 크레올어로 쓰인 문학 작품들이 있다. 프란시스쿠 주제 테레이루는 이 나라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작가 중 한 명으로 여겨진다. 다른 주목할 만한 문학가로는 마누엘라 마르가리두, 알다 이스피리투 산투, 올린다 베자, 콘세이샹 리마 등이 있다.
7.3. 요리
주식으로는 생선, 해산물, 콩, 옥수수, 빵나무 열매, 조리된 바나나 등이 있다. 파인애플, 아보카도, 바나나와 같은 열대 과일은 요리의 중요한 구성 요소이다. 상투메 요리에는 매운 향신료 사용이 두드러진다. 커피는 다양한 요리에 향신료나 조미료로 사용된다. 아침 식사는 종종 전날 저녁 식사의 남은 음식을 데워 먹으며, 오믈렛이 인기가 있다.
7.4. 스포츠
축구는 상투메 프린시페에서 가장 인기 있는 스포츠이다. 상투메 프린시페 축구 국가대표팀은 상투메 프린시페의 국가대표팀이며 상투메 프린시페 축구 연맹에 의해 관리된다. 이 팀은 아프리카 축구 연맹(CAF)과 FIFA의 회원이다.
상투메 프린시페는 1996년 애틀랜타 올림픽에 처음 참가한 이래 모든 하계 올림픽에 선수단을 파견했지만 아직 메달을 획득하지는 못했다. 동계 올림픽에는 참가한 적이 없다. 축구 국가대표팀은 FIFA 월드컵이나 아프리카 네이션스컵 본선에 진출한 경험이 없으며, 2003년부터 2011년까지 A매치가 없어 FIFA 랭킹에서 제외되기도 했다.
7.5. 공휴일
상투메 프린시페의 주요 국가 공휴일은 다음과 같다.
날짜 | 한국어 표기 | 현지어 표기 | 비고 |
---|---|---|---|
1월 1일 | 새해 첫날 | Ano Novo아누 노부포르투갈어 | |
1월 4일 | 아마도르 왕 기념일 | Rei Amador헤이 아마도르포르투갈어 | |
2월 3일 | 해방 순교자의 날 | Martires da Liberdade마르티르스 다 리베르다드포르투갈어 | 바테파 학살 추모 |
변동 | 사육제 | Carnaval카르나발포르투갈어 | |
변동 | 부활절 | Páscoa파스코아포르투갈어 | |
5월 1일 | 노동절 | Dia Internacional do Trabalhador지아 인테르나시오날 두 트라발랴도르포르투갈어 | |
7월 12일 | 독립기념일 | Dia Nacional지아 나시오날포르투갈어 | |
9월 6일 | 군대의 날 | Forças Armadas포르사스 아르마다스포르투갈어 | |
9월 30일 | 국유화의 날 (농업개혁일) | Nacionalizações / Dia da Reforma Agrária나시오날리자송이스 / 지아 다 헤포르마 아그라리아포르투갈어 | |
11월 1일 | 모든 성인의 날 | Todos os Santos토두스 우스 산투스포르투갈어 | |
11월 2일 | 위령의 날 | Dia dos Finados지아 두스 피나두스포르투갈어 | 2일이 일요일이면 3일 |
12월 21일 | 알제 협정일 | Acordo de Argel아코르두 드 아르젤포르투갈어 | |
12월 25일 | 크리스마스 | Natal / Dia da Família나탈 / 지아 다 파밀리아포르투갈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