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Early life and youth career
엔도 야스히토는 프로 선수로 데뷔하기 전 유년기부터 축구에 대한 깊은 애정을 보이며 성장했고, 형들의 영향 아래 꾸준히 기량을 발전시켜 나갔다.
1.1. Childhood and education
엔도 야스히토는 1980년 1월 28일, 가고시마현가고시마군사쿠라지마정(현 가고시마시)에서 세 형제 중 막내로 태어났다。여섯 살 많은 첫째 형인 다쿠야와 네 살 많은 둘째 형인 엔도 아키히로의 영향을 받아, 어릴 적부터 집 마당에서 공을 차며 시간을 보냈고, 고교 축구 선수권 대회나 FIFA 월드컵 비디오를 보며 마음에 드는 플레이를 흉내 내곤 했다.
엔도의 형제들 또한 축구계에서 두각을 나타냈다. 첫째 형 다쿠야는 가고시마 실업고에서 마에조노 마사키요와 동기였으며, 등번호 10번을 달고 전국 고등학교 축구 선수권 대회에서 두 차례(2학년, 3학년) 우수 선수로 선정되었다. 이후 대학 선발팀과 실업팀(교세라 센다이 축구부)에서 활약했다. 둘째 형 아키히로는 요코하마 FM과 비셀 고베에서 뛰었으며, 1996년 애틀랜타 올림픽 축구에서는 등번호 10번을 달기도 했다. 이들은 '엔도 삼형제'로 불리며 축구계에서 유명했다. 엔도의 부인은 고등학교 동창이며, 두 딸과 두 아들 총 네 자녀를 두고 있다.
1.2. Early football development
엔도는 1995년부터 1997년까지 가고시마 실업고등학교에서 축구 선수로 활약했다. 1학년이었던 1995년에는 제74회 전국 고등학교 축구 선수권 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했고, 2학년이었던 1996년에는 다카마도노미야컵 전일본 유스 U-18 축구 선수권 대회에서 우승을 거두었다. 같은 해 제75회 전국 고등학교 축구 선수권 대회에서는 8강에서 승부차기 끝에 패했음에도 불구하고 대회 우수 선수로 선정되었다. 또한 U-18 일본 축구 국가대표팀에도 발탁되었다. 2학년 때는 당시 가고시마 실업고 축구부를 지도하던 브라질인 코치 조제 카를루스 두 나시멘투의 권유로 한 달간 브라질로 단기 유학을 다녀왔으며, 상파울루주의 EC 상벤투 훈련에 참여하기도 했다.
2. Club career
엔도 선수의 프로 클럽 경력은 요코하마 플뤼겔스에서 시작하여 교토 퍼플상가를 거쳐 감바 오사카에서 전성기를 보내고 주빌로 이와타에서 은퇴하기까지 일본 국내 리그에 전념하며 수많은 기록과 업적을 남겼다.
2.1. Yokohama Flügels
고등학교 졸업 후, 엔도는 1998년 J1리그의 요코하마 플뤼겔스에 입단했다. 당시 카를로스 레샤크 감독은 그의 재능을 높이 평가했고, 3월 1998년 J리그 개막전인 요코하마 마리노스와의 경기에서 곧바로 프로 데뷔를 치렀다. 8월 1일 가시마 앤틀러스와의 경기에서 프로 데뷔골을 기록했으며, 1년 차에 리그 16경기에 출전하는 등 순조로운 출발을 보였다. 주로 중앙 미드필더로 활약하며 팀의 1998년 천황배 우승에 기여했다. 그러나 구단은 재정난으로 인해 그 해를 끝으로 해체되었고 요코하마 마리노스와 합병되었다.
2.2. Kyoto Purple Sanga
1999년, 엔도는 테시마 가즈키, 오시마 히데오 등과 함께 교토 퍼플상가로 이적했다. 그는 주전 선수로 자리매김하며 많은 경기에 출전했다. 당시 팀 동료로는 미우라 가즈요시, 박지성, 마쓰이 다이스케 등이 있었다. 그러나 팀은 2000년 시즌이 끝난 후 J2리그로 강등되었다.
2.3. Gamba Osaka

2001년, 엔도는 J1 클럽인 감바 오사카로 완전 이적했다. 그는 니시노 아키라 감독 체제(2002~2011년)에서 오랫동안 팀의 핵심 선수로 활약했다. 그는 2003년 J리그부터 2012년 J리그까지 10년 연속 J리그 베스트 일레븐에 선정되는 전례 없는 기록을 세웠다.

2005년, 감바 오사카는 클럽 역사상 처음으로 J1리그 우승을 차지했다. 엔도는 이 해에 개인 통산 첫 두 자릿수 득점을 기록했으며, 리그 최종전인 가와사키 프론탈레와의 경기에서 페널티킥을 성공시키며 감바 오사카의 첫 J리그 우승에 기여했다. 이는 그에게도 첫 J리그 우승 경험이었다.
2006년부터는 후타가와 다카히로, 하시모토 히데오, 그리고 그 해 새로 영입된 묘진 도모카즈와 함께 '황금 미드필더'로 불리는 압도적인 패스워크를 구축하며 감바 오사카의 공격을 이끌었다. 그러나 10월 일본 축구 국가대표팀 인도 원정 중 발열로 인해 컨디션이 악화되었고, 이후 바이러스성 간염 진단을 받으며 한 달 이상 경기에 출전하지 못했다. 12월 2일 리그 최종전인 우라와 레드 다이아몬즈와의 경기에서 복귀했지만, 팀은 패하며 리그 2연패에 실패했다. 2007년에는 시즌 내내 큰 건강 문제 없이 리그 전 34경기에 풀타임 출전하며 나비스코컵 우승에도 기여했다.
2008년 6월 말에는 바이러스성 감염증으로 다시 한 달 이상 경기에 나설 수 없게 되었고, 베이징 올림픽 축구 와일드카드로의 합류가 유력했지만 이를 고사해야 했다. 엔도 이탈 후 감바 오사카는 리그에서 부진에 빠졌다. 그러나 복귀 후 AFC 챔피언스리그(ACL)에서 연이은 도움을 기록하며, 특히 준결승 우라와 레드 다이아몬즈와의 두 경기에서 총 2골 2도움으로 모든 득점에 관여하며 팀의 첫 아시아 제패에 크게 기여했고, 대회 MVP로 선정되었다. 같은 해 11월, 잉글랜드 2부 리그의 플리머스 아가일 FC로부터 영입 제안을 받았으나, 가족 문제 등을 고려하여 감바 오사카에 남았다. 12월 일본에서 개최된 2008년 FIFA 클럽 월드컵에서는 8강 애들레이드 유나이티드 FC와의 경기에서 결승골을 넣었고, 준결승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와의 경기에서는 팀은 패했지만 경기 막판 페널티킥으로 골을 넣는 등 공수 양면에서 활약했다. 이러한 활약으로 우승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알렉스 퍼거슨 감독으로부터 "LDU 키토(결승 상대였던 남미 챔피언)에는 엔도와 같은 수준의 선수가 없었다"는 찬사를 받았다. 또한 같은 해 천황배 우승에도 기여했으며, 감바 오사카에서는 2005년의 아라우조 이후 처음으로 일본 연간 최우수 선수상을 수상했다.
2009년 11월에는 AFC로부터 아시아 올해의 축구 선수상을 수상했다. 이는 일본인으로는 1993년 미우라 가즈요시, 1995년 이하라 마사미, 1997년, 1998년 나카타 히데토시, 2002년 오노 신지에 이어 다섯 번째 선수이자 여섯 번째 수상이었다. 리그에서는 5년 만에 두 자릿수 득점을 기록했으며, 2010년 1월 1일 개최된 천황배 결승 나고야 그램퍼스 에이트와의 경기에서 2골 1도움의 압도적인 활약을 펼치며 감바 오사카의 천황배 2연패에 크게 기여했다. 이 무렵부터 그는 볼란치 포지션으로 전환하기 시작했다.
2010년에는 대표팀과의 과밀한 일정으로 시즌 초반부터 컨디션이 불안정했다. 2월 27일 후지 제록스 슈퍼컵 가시마 앤틀러스전에서는 승부차기에서 실축하는 아쉬움을 보였고, 그의 부진과 비례하듯 팀도 리그에서 부진을 겪었다。그러나 월드컵 이후 복귀전인 우라와 레드 다이아몬즈전에서 경기 막판 결승골을 넣으며 팀을 승리로 이끌었다.
2011년, J리그 개막전 세레소 오사카와의 오사카 더비에서 프로 14년 만에 처음으로 개막전 골을 기록했다. 7월에는 3경기 연속 득점을 기록하는 등 우승 경쟁을 이어가던 팀을 이끌었지만, 8월 이후 오른쪽 내전근 통증으로 플레이킥을 제대로 차지 못하는 상태가 지속되었고, 클럽과 대표팀의 과밀 일정으로 충분한 휴식을 취하지 못한 채 강행군을 이어갔다. 결국 발열로 결장한 1경기를 제외하고 리그 33경기에 출전했지만 시즌 막판까지 완치되지 않았다. 11월 26일, J1 33라운드 베갈타 센다이전에서 역대 7번째로 J1 통산 400경기 출장을 달성했다.
2012년, 전년에 이적한 야마구치 사토시를 대신해 감바 오사카의 부주장이 되었다. 6월 23일 J1 15라운드 홋카이도 콘사돌레 삿포로전에서 미우라 아쓰히로의 기록을 넘어 당시 J리그 역대 1위인 통산 16번째 직접 프리킥 득점을 기록했다. 7월 21일 가시마 스타디움에서 열린 동일본 대지진 부흥 지원 자선 경기에서는 서포터 투표에서 최다 득표를 얻어 J리그 선발팀의 일원으로 출전했다. 이 해 감바는 극심한 부진에 빠졌고, 엔도 자신은 대표팀과의 과밀 일정에도 불구하고 5년 만에 리그 전 경기에 출전했지만, 교토 시절 이후 처음으로 J2로 강등되었다.

2013년, J2로 강등된 감바 오사카에 잔류했다. 또한 묘진 도모카즈로부터 주장을 물려받아 프로 데뷔 이래 처음으로 주장직을 수행했다. 그에게 첫 J2에서의 플레이가 된 이 해, 일본 축구 국가대표팀과의 병행 일정으로 리그 경기의 약 4분의 1가량을 결장했지만, 시종일관 안정적인 플레이를 선보이며 감바 오사카의 J2 우승과 1년 만의 J1 복귀에 기여했다. 시즌 막바지에는 포워드로서 다소 높은 위치에서 플레이하며 팀 최다 득점을 기록한 우사미 다카시를 지원하는 역할을 맡았다. 시즌 종료 후 J리그 어워즈에서는 서포터 투표로 선정되는 J2 최우수 선수상인 'J2 Most Exciting Player'를 수상했다.
2014년, 시즌 초반에는 전년 후반과 마찬가지로 최전방에서 기용되었으나 4월 이후에는 콘노 야스유키와 함께 더블 볼란치를 형성했다. 그러나 개막 초반에는 실수가 눈에 띄어 팀도 전반기에는 극심한 부진에 빠졌고, 브라질 월드컵으로 인한 리그 중단 전에는 강등권인 16위에 머물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단 기간의 휴식을 거쳐 후반기에는 컨디션을 회복하여 공격의 시발점이 되어 많은 도움을 기록했으며, 전반기에 부진했던 콘노의 회복도 지원하며 팀의 후반기 약진을 가속화했다. 11월 나비스코컵 결승 산프레체 히로시마전에서는 전반 35분 2점 차 리드를 허용하는 어려운 상황에서도 3분 뒤 파트릭의 득점을 도우며 후반 역전극을 이끌어 7년 만의 나비스코컵 우승을 달성했다. 시즌 막바지에는 컵 대회도 승리하며 과밀한 일정을 소화했음에도 불구하고, 리그에서는 필드 플레이어 중 유일하게 전 경기에 출전했으며, 프리킥과 페널티킥 득점에서는 각각 J1 최다 기록과 타이를 이루었다. 선발 명단에 많은 젊은 선수들이 이름을 올리게 된 가운데서도 변함없는 침착함으로 팀을 이끌었고, J1 승격 첫 해에 9년 만의 2번째 리그 우승을 차지했으며, 나아가 클럽 사상 첫 국내 3관왕(J1 리그, J리그컵, 천황배)을 달성했다. J리그 어워즈에서는 11번째 베스트 일레븐과 개인 첫 J리그 최우수 선수상을 수상했다.
2015년 4월 18일, J1 1st 스테이지 6라운드 쇼난 벨마레전에서 J1 통산 페널티킥 27골을 기록하여 후쿠다 마사히로를 넘어 PK 득점 단독 선두에 올랐다. 10월 17일 J1 2nd 스테이지 14라운드 우라와 레드 다이아몬즈전에서 J리그 역대 최연소로 J1 통산 500경기 출장을 달성했다. 이 해에도 리그 전 경기에 풀타임 출전했다. 2015년 J리그 챔피언십 준결승 우라와전에서는 연장 후반 프리킥으로 우라와 수비의 허를 찌르며 파트릭의 쐐기골을 도왔다. 결승 산프레체 히로시마전에서는 1차전, 2차전 모두 세트피스에서 콘노 야스유키의 골을 도왔지만, 모두 승리에는 연결되지 않아 리그 2연패를 아쉽게 놓쳤다. 2015년 시즌 마지막 우승이 걸린 천황배 결승 우라와전에서는 후반 코너킥으로 파트릭의 결승골을 도우며 천황배 2연패에 기여했다. 우승 세리머니에서는 그 해를 끝으로 이적한 묘진 도모카즈의 유니폼을 입고 시상대에 올라 오랫동안 함께 뛰었던 묘진에게 감사를 표했다.
2016년 10월 29일, 2nd 스테이지 16라운드 알비렉스 니가타전에서 역대 13번째, 미드필더 등록 선수로는 후지타 도시야에 이어 두 번째로 J1 통산 100득점을 달성했다.
2017년 4월 ACL 장쑤 쑤닝전에서의 실점 관여 실수나 애들레이드 유나이티드 FC전에서의 페널티킥 실축 등으로 부진이 이어지며 4월 30일 열린 9라운드 요코하마 F. 마리노스전에서는 프로 데뷔 첫 해 이후 19년 만에 벤치에 들었지만 출전 없이 경기를 마쳤다. 그러나 5월 5일 열린 10라운드 시미즈 에스펄스전에서는 팀이 지고 있는 상황에서 교체 출전하여 존재감을 과시하며 팀을 무승부로 이끌었다. 8월 9일, 21라운드 산프레체 히로시마전에서는 20년 연속 득점을 기록하여 후지타 도시야를 넘어 미드필더 등록 선수로 역대 최다 득점을 기록했다.
2018년 2월 23일, 개막전 나고야 그램퍼스 에이트전에서 득점을 기록하며 21년 연속 득점을 달성했다. 11월 10일, 32라운드 쇼난 벨마레전에서는 필드 플레이어 역사상 최초로 J1리그 통산 600경기 출장을 달성했다. 또한 시즌 종료 후 방영된 TBS '슈퍼 사커' (2019년 2월 10일 방송)에서 자체 통계한 J리그 통산 도움 랭킹 1위에 올랐다.
2019년 시즌 개막전에 선발 출전하여 J리그(J1, J2 포함) 역사상 최초의 20년 연속 개막전 선발이라는 단독 기록을 세웠다. 4월 20일, 8라운드 오이타 트리니타전에서 22년 연속 득점을 달성했다. 8월 2일, 21라운드 비셀 고베전에서 일본인 선수로는 처음으로 공식전 1,000경기를 달성했다.
2020년 7월 4일, 2라운드 세레소 오사카전에서 J1 역사상 최다인 632경기에 출전했다. 경기 후 그는 "선수로서 선발로 뛰고 싶다. 항상 어필하고 싶다"고 말했지만, J1리그 20라운드 종료 시점에서 출전은 J1리그 11경기 363분, 르방컵 2경기 100분으로 제한되었고, J1리그 개막전에는 풀타임 출전했지만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인한 중단 이후 재개된 경기에서는 선발 출전한 리그 2경기와 르방컵 1경기를 포함하여 모두 교체 출전에 그쳤으며, J1리그 12라운드와 13라운드에서는 2경기 연속으로 벤치에도 들지 못하는 경험을 했다.
2.4. Júbilo Iwata
2020년 10월 5일, 출전 기회를 찾아 당시 J2리그 13위에 머물던 주빌로 이와타로 임대 이적했다. 10월 10일, 이적 후 첫 경기인 25라운드 마쓰모토 야마가 FC전에서 선발 풀타임 출전했으며, 10월 25일 29라운드 더스파 구사쓰 군마전에서 공식전 5년 만에 직접 프리킥 골을 성공시키며 이적 후 첫 득점을 기록했다. 그의 합류 후 15경기에 선발 출전하며 팀은 18경기에서 단 3패만을 기록하며 최종적으로 6위까지 순위를 끌어올리는 데 기여하며 침체되었던 팀을 활성화시켰다.
2021년 5월 15일, 14라운드 더스파 구사쓰 군마전에서 결승골을 넣으며 자신이 보유한 J리그 시즌 연속 득점 기록을 24년으로 경신했다. 이는 1998년 프로 데뷔 이래 매 시즌 득점을 기록한 것으로, 득점을 기록한 시즌 수 또한 역대 1위인 24년이 되어 2위인 미우라 가즈요시의 23년을 넘어섰다. 시즌 내내 주력 선수로 활약하며 팀의 J1 승격과 J2 우승에 크게 기여했다. 12월 27일, 2022년 시즌부터 이와타로 완전 이적하는 것이 발표되었다.
2022년 3월 12일, 이적 후 첫 친정팀 감바 오사카와의 대결에서는 감바 오사카 출신 팀 동료인 스즈키 유토, 오모리 고타로와의 연계로 선제골을 이끌어냈다. 10월 29일 감바 오사카와의 경기에서는 감바 오사카의 홈 구장인 파나소닉 스타디움 스이타의 잔디를 이적 후 처음 밟았다. 팀은 감바 오사카에 패하여 J2 강등이 확정되었다. 공교롭게도 감바 오사카는 이 경기 후 잔류를 확정했고, 엔도는 옛 홈 구장에서 강등을 맛보게 되었다. 경기 후에는 경기장을 한 바퀴 돌며 옛 팬들에게 인사를 전했다. 엔도는 이후 1년 더 프로 생활을 이어간 뒤 은퇴했으므로, 결과적으로 이 경기가 그의 현역 마지막 파나소닉 스타디움 경기가 되었다. 시즌 내내 선발로 출전했지만, 그는 개인 통산 첫 시즌 무득점을 기록했고, 팀도 단 1년 만에 J2로 강등되었다.
2023년에는 시즌 초반까지는 선발로 많은 경기에 출전했지만, 시즌 중반 이후부터는 선발에서 제외되거나 벤치에서 경기를 시작하거나 명단에서 제외되는 경우가 많아졌다. 그럼에도 팀은 최종전에서 도치기 SC를 꺾고 자동 승격을 다투던 라이벌 2위 시미즈 에스펄스를 제치고 리그 2위에 오르며 1년 만에 J1 복귀를 확정했다.
2024년 1월 9일, 2023 시즌을 끝으로 현역에서 은퇴한다고 발표했다. 그는 J리그 기록인 672경기를 뛰었다. 엔도의 은퇴로 요코하마 플뤼겔스에 재적했던 선수들이 모두 은퇴하게 되었다.
3. International career
엔도 야스히토는 일본 국가대표팀의 핵심 미드필더로서 청소년 대표팀부터 성인 국가대표팀까지 폭넓은 경력을 쌓으며 일본 축구 역사에 굵직한 발자취를 남겼다.
3.1. Youth national teams
엔도는 1999년 U-20 일본 축구 국가대표팀의 일원으로 나이지리아에서 개최된 1999년 FIFA 세계 청소년 축구 선수권 대회에 출전하여, 결승에서 스페인에 패했지만 일본 대표팀의 준우승에 기여했다. 이 대표팀 멤버들은 후에 J리그와 성인 국가대표팀의 주축이 되는 선수들이 많아 '황금 세대'로 불린다. 같은 해 시드니 올림픽 예선을 위한 U-23 일본 축구 국가대표팀에도 선발되어 아시아 1차 예선과 최종 예선에서 선발 멤버로 뛰었다. 그러나 2000년 시드니 올림픽 축구 본선에서는 예비 등록 선수로 선발되었지만 출전 기회는 없었다.
3.2. Senior national team debut and early years
2002년, 당시 일본 대표팀 감독이었던 지쿠에 의해 성인 대표팀에 처음으로 발탁되었고, 11월 20일 키린 챌린지컵 아르헨티나전에서 데뷔전을 치르며 이후 대표팀의 주전 자리를 꿰찼다. 이듬해인 2003년에는 2003년 FIFA 컨페더레이션스컵 전 경기에 선발 출전했다. 같은 해 8월 20일 나이지리아전에서 감격적인 대표팀 데뷔골을 기록했다. 당시 볼란치 포지션은 동기인 오노 신지와 이나모토 준이치, 나카타 코지 등 해외파를 비롯해 국내파인 후쿠니시 다카시 등이 있어 치열한 경쟁 구도였지만, 2004년 아시안컵에서는 주전으로 활약하며 일본 대표팀의 우승에 기여했다. 이듬해 나카타 히데토시가 볼란치로 포지션 전환을 요청하면서 엔도는 다시 교체 선수로 밀려났고, 2006년 독일 월드컵에서는 골키퍼를 제외한 필드 플레이어 중 유일하게 단 한 경기도 피치를 밟지 못했다.
3.3. Major tournament appearances

독일 월드컵 이후, 새로운 감독 이비차 오심의 지도를 받으며 플레이 스타일에 한층 더 기량을 갈고닦았고, 대표팀의 핵심 선수로 성장했다. 독일 월드컵을 끝으로 은퇴한 나카타의 등번호 7번을 물려받았다. 오심 재팬에서는 볼란치보다는 공격형 미드필더로 기용되는 경우가 많았는데, 이는 감바 오사카에서는 흔한 기용법이었지만 일본 대표팀에서는 주로 볼란치로 기용되었던 것과 차이점이었다.
2007년 12월, 오심 감독이 병으로 쓰러져 물러나고 오카다 다케시 감독이 급히 부임했다. 오카다 감독은 처음에는 오심의 팀을 계승하는 입장이었기 때문에 엔도도 오심 시절과 마찬가지로 공격형 미드필더로 많이 기용되었다. 그러나 오카다 감독이 "나의 방식으로 하겠다"고 선언한 2008년 남아프리카 공화국 월드컵 아시아 3차 예선부터는 하세베 마코토와 함께 더블 볼란치를 형성했다. 수비진과 공격진의 연결고리 역할을 하며 남아프리카 공화국 월드컵 예선 통과에 기여했고, 오카다 감독으로부터 "팀의 심장"이라는 찬사를 받았다. 이후에도 대표팀 주전 자리를 굳건히 지켰지만, 월드컵 직전 리그 경기와 ACL, 그리고 일본 대표팀 경기 등 연이은 강행군으로 컨디션이 크게 저하되었다. 2010년 2월 동아시아 선수권과 세르비아와의 친선 경기에서는 부진한 모습을 보였고, 소속팀에 복귀해서도 몇 경기는 휴식을 취해야 할 정도로 피로에 시달렸다.
2010년 5월 10일 남아프리카 공화국 월드컵 대표팀에 선출되었고, 6월 본선에서는 조별 리그 3경기와 결선 토너먼트 1경기 등 모든 경기에 사령탑으로서 선발 출전했다. 6월 25일 조별 리그 3차전 덴마크와의 경기에서는 직접 프리킥으로 월드컵 첫 득점을 기록하며, 4경기 총합 팀 내 최다인 47.02 km의 활동량을 기록하는 등 일본 대표팀의 첫 원정 16강 진출에 크게 기여했다. 이 프리킥에 대해 엔도 본인은 "(혼다 게이스케가 차기를 원했지만) 케이스케는 1번 득점했으니, 나에게 차게 해달라고 했다"고 말했다. 당시 공식구가 무회전 슛에 특화된 '자블라니'였기 때문에 많은 커브 킥 전문 선수들이 고전했지만, 엔도는 자블라니를 자유자재로 다루며 프리킥 외에도 카메룬전 혼다의 골과 덴마크전 오카자키의 골을 만드는 기점 역할을 했다. 오카다 감독이 "이 팀의 심장"이라고 평한 그대로의 활약을 보이며 기대에 부응했다. 월드컵에서 한 경기 2개의 프리킥 성공은 44년 만의 기록이었다.
2010년 10월 12일, 친선 경기 한국전에서 이하라 마사미, 가와구치 요시카쓰, 나카자와 유지에 이어 네 번째로, 골키퍼와 수비수를 제외한 포지션에서는 처음으로 국제 A매치 100경기 출장을 달성했다.
남아프리카 공화국 월드컵 이후 일본 대표팀 감독으로 부임한 알베르토 자케로니에게서도 주전으로 기용되어, 2011년 1월 개최된 아시안컵에서는 전 6경기에 선발 출전했다. 팀 최고령, 팀 최다 출장 선수로서 젊은 팀을 이끌었고, 중원 후방에서 결정적인 패스를 수없이 공급하며 경기를 지배하는 맹활약으로 일본 대표팀의 2대회 만의 아시아 제패에 크게 기여했다. 대회 MVP를 차지한 혼다 게이스케는 MVP 소감에 대해 "개인적으로는 야토상(엔도)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사람이 없었다면 승패는 종이 한 장 차이였을 것"이라며 엔도를 칭찬했다.
2011년 3월 29일에 개최된 자선 경기 '동일본 대지진 부흥 지원 자선 경기 힘내라 일본!'에서는 선제골이 되는 프리킥을 성공시켰다.
2012년 10월 12일, 프랑스와의 국제 친선 경기에 풀타임 출전하며 이하라 마사미가 보유했던 일본 대표팀 국제 A매치 최다 출전 기록인 122경기에 동률을 이뤘고, 이어 16일 브라질전에도 출전하여 13년 만에 최다 출전 기록을 경신했다. 그의 이 경기 출전은 국가대표팀 123번째 경기였다. 이듬해 2013년 9월 10일 가나전 출전으로, 당시 동아시아 국가들의 국제 A매치 최다 출전 기록을 가지고 있던 한국의 홍명보(136경기)와 동률을 이뤘고, 10월 11일 세르비아와의 유럽 원정 1차전에 출전하여 137경기째를 기록하며 동아시아 최다 출전 기록을 경신했다.
2014년 5월, 브라질 월드컵 대표팀에 선발되어, 일본 대표팀에서는 유일하게 독일 대회부터 3대회 연속 선출되었다. 본선에서는 소속팀에서 컨디션이 좋지 않았던 탓에 직전에 주전에서 밀렸고, 1차전 코트디부아르전, 2차전 그리스전 모두 하세베 마코토를 대신해 후반 교체 출전했다. 3차전 콜롬비아전에는 출전 기회가 없었고, 팀도 패하여 조별 리그에서 탈락했다.
브라질 월드컵 이후 하비에르 아기레 감독 체제에서는 대표팀에서 제외되었으나 11월 대표팀에 복귀했다. 같은 해 12월, AFC 아시안컵 2015 대표팀 멤버로 선출되어 일본 대표팀으로는 첫 아시안컵 4대회 연속 선출 기록을 세웠다. 조별 리그 1차전 팔레스타인전에서는 선발 출전하여 선제골을 기록했고, 미우라 가즈요시가 보유했던 아시안컵 일본 대표팀 최고령 득점 기록(29세 9개월)을 34세 11개월로 경신했다. 또한 아시안컵 출전 수 역시 통산 최다 기록을 세웠다. 이어진 2차전 이라크전에도 선발 출전하여 국제 A매치 150경기 출장을 달성했다. 그러나 일본 대표팀은 8강에서 아랍에미리트에 승부차기 끝에 패하며 탈락했다.
2015년 1월 23일, 2015년 아시안컵의 불운한 결과 이후, 엔도 야스히토는 13년간의 국가대표 생활을 공식적으로 은퇴했다. 그는 총 152회 국가대표로 출전하여 15골을 기록했다.
바히드 할릴호지치 감독 체제 이후로는 대표팀에 선발되지 않았다. 할릴호지치 감독은 첫 대표팀 발표 자리에서 그 이유를 "엔도는 일본 축구의 수준을 끌어올렸다. 하지만 명단에는 없다. 나는 러시아 월드컵 준비를 위해 일본에 왔다. 멤버는 기존 명단을 중심으로 나의 생각을 더해 작성하고 있다. 엔도는 지금까지 일본을 위해 공헌했다. 존경을 표하고 싶다"며 러시아 월드컵 당시 그의 나이를 고려하여 선발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2013년 9월 6일 과테말라전에서 엔도가 프리킥으로 득점을 기록한 이후, 일본 대표팀은 하라구치 겐키가 2018년 11월 득점하기까지 약 5년 동안 직접 프리킥으로 득점을 기록하지 못했다.
3.4. National team records and milestones
엔도 야스히토는 일본 축구 국가대표팀에서 여러 중요한 기록과 이정표를 세웠다.
- 2010년 10월 12일, 대한민국과의 친선 경기에서 100번째 국제 A매치 출전을 기록했다. 이는 이하라 마사미, 가와구치 요시카쓰, 나카자와 유지에 이어 역대 4번째이며, 골키퍼나 수비수가 아닌 포지션의 선수로는 최초였다.
- 2012년 10월 16일, 브라질과의 친선 경기에서 그의 123번째 출전을 기록하며, 이하라 마사미의 122경기 기록을 넘어 일본 남자 축구 국가대표팀 역대 최다 출전 선수로 등극했다.
- 2013년 9월 10일 가나와의 경기에서 137번째 출전을 기록하며, 홍명보가 보유하고 있던 동아시아 국가 출신 선수 A매치 최다 출전 기록(136경기)을 경신했다.
- 총 152경기 출전 15골(2015년까지)을 기록하며 일본 남자 축구 국가대표팀 역대 최다 출전 기록 보유자가 되었다.
- 2015년 아시안컵 팔레스타인전에서 34세 11개월의 나이로 득점하며, 미우라 가즈요시가 가지고 있던 아시안컵 일본 대표팀 최고령 득점 기록(29세 9개월)을 경신했다. 또한 아시안컵 출전 수에서도 통산 최다 기록을 세웠다.
4. Playing style
엔도 야스히토는 독특한 플레이 스타일과 기술적 능력으로 일본 축구계에 큰 족적을 남겼다. 그의 강점은 넓은 시야, 정확한 패스, 그리고 경기를 조율하는 능력에 있었다.
4.1. Characteristics and skills
엔도 야스히토는 감바 오사카와 일본 축구 국가대표팀 팬들 사이에서 컬트 히어로로 여겨진다. 이는 그가 프로 선수로서 오랫동안 활약했으며, 뛰어난 기술력, 리더십, 그리고 득점 능력을 갖추었기 때문이다. 그는 또한 프리킥의 정확성이 매우 뛰어나며, 동료들과 상대방을 모두 제어하는 능력과 뛰어난 축구 지성을 바탕으로 일본에서 가장 창의적인 미드필더이자 그의 세대에서 가장 재능 있는 플레이메이커 중 한 명으로 존경받는다. 그의 모든 선수 경력이 일본 국내에서 이루어졌음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평가를 받았다.
그는 볼 키핑이 능숙하고 경기 운영에 있어 '템포 조절'을 잘했다. 정확한 패스를 뿌리는 게임 메이커로서, 단거리에서 중간 정도 길이의 띄워주는 패스에 능했으며, 중앙에서의 볼 배급은 상대방의 무게중심과 반대 방향으로 패스하여 가로채기 어렵게 만들 정도로 일본 최고 수준의 정확도를 자랑했다. 감바 오사카의 전술상 중장거리 패스를 많이 사용하지는 않았지만, 이 역시 매우 높은 정확성을 가졌다.
주요 포지션은 공격형 미드필더와 중앙 미드필더였다. 스피드나 신체 능력에 의존하는 플레이나 헤딩은 특기로 하지 않았지만, 세트피스의 정확성이 매우 높아 직접 득점하거나 어시스트하는 장면이 자주 나왔다. 프로 초창기에는 직접 프리킥을 많이 차지 않았으나, 일본 대표팀에 선발된 후 지쿠 감독의 제안으로 프리킥을 전담하게 되면서 클럽과 대표팀에서 프리킥을 담당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강한 회전이 걸리는 슈팅을 선호했으며, 페널티 에어리어 바깥쪽에서도 골문을 정확하게 노릴 수 있는 고정밀 미들 슛을 구사했다. 또한 기술적인 유형의 선수였지만 몸싸움에도 능했다.
원래 엔도는 운동량이 그리 많지 않은, 중원 후방에서 경기를 조율하는 균형 잡힌 유형의 선수였다. 그러나 2006년 일본 대표팀 감독으로 부임한 이비차 오심이 "팀을 위해 뛰어라"고 지시한 이후, 직접 드리블 돌파나 골문 앞에서의 원투 패스를 통한 침투 등 공격적인 움직임이 두드러지기 시작했으며, 공격적인 역할을 더 많이 수행하게 되었다. 오심 감독의 지도로 풍부한 활동량 또한 엔도의 강점이 되었다. 남아프리카 공화국 월드컵에서 측정된 4경기 389분 동안 그의 활동량은 47.02 km로, 같은 대회에 출전한 일본 대표팀 선수들 중 혼다 게이스케(45.48 km), 나가토모 유토(45.43 km)를 제치고 최장 거리를 기록했다. 또한 상황 판단력도 뛰어나 패스를 공급하는 위치와 타이밍을 자유자재로 파악하는 넓은 시야와 전술안을 겸비하고 있었으며, 그의 침착한 성격 덕분에 어떤 상황에서도 당황하지 않고 플레이할 수 있는 등 정신력도 강했다.
4.2. "Korokoro PK"
엔도는 페널티킥을 찰 때 종종 느린 속도로 공을 차는 경우가 있었다. 공이 피치 위를 '데굴데굴' 굴러가며 골문으로 향하는 모습에서 미디어와 팬들은 이를 '코로코로 PK'라고 불렀다. 그는 긴 스텝을 밟고 천천히 공에 다가가며, 공을 전혀 보지 않고 상대 골키퍼의 움직임을 끝까지 살핀다. 이를 통해 상대방의 무게중심 이동을 간파하고, 골키퍼가 움직인 방향의 반대쪽으로 인사이드 킥으로 공을 굴리듯 찬다. 만약 골키퍼가 움직이지 않는다면 강하게 옆쪽으로 찬다. 최근에는 이 기술의 비밀이 널리 알려지면서 이러한 방식의 킥은 자주 구사하지 않는다.
리그 경기에서의 페널티킥 성공률은 90% 이상이었으며, J1리그 통산 페널티킥 득점(30골, 2015년 시즌 종료 기준)은 J1 최다 기록이다. 또한 2008년 FIFA 클럽 월드컵 준결승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와의 경기에서는 코로코로 PK로 전 네덜란드 국가대표 골키퍼 에트빈 판 데르 사르에게서 골을 뽑아냈으며, 2010년 FIFA 월드컵 결선 토너먼트 1라운드 파라과이와의 경기에서도 첫 번째 키커로 나서 성공시키는 등(단, 이 때는 자블라니 공이 코로코로 PK에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옆으로 강하게 찼다), 대표팀 경기 및 국제 대회에서도 높은 성공률을 보였다.
4.3. Coach and expert evaluations
이비차 오심 감독은 엔도에 대해 "항상 자신을 제어하고, 팀 동료와 상대편도 제어한다. 그의 지성은 팀에 큰 플러스 알파를 가져다준다. 그가 있으면 감독은 필요 없다"고 극찬했다. 엔도 야스히토는 소속 클럽과 일본 국가대표팀 양쪽에서 없어서는 안 될 존재로 여겨졌으며, 다양한 시각에서 '엔도 야스히토의 부재'가 큰 불안 요소로 지적되기도 했다. 일본 대표팀에서 엔도의 후계자로 시바사키 가쿠, 오기하라 다카히로, 이에나가 아키히로, 가시와기 요스케, 다카하시 히데토 등이 거론되었지만, 모두 후보에 그쳤을 뿐 '포스트 엔도'라는 평가를 얻기에는 미치지 못했다.
2020년 4월, 영국 언론이 선정한 '21세기 일본 대표팀 베스트 11'에 선정되었는데, 해외 경험이 없는 선수 중에서는 두 명만 이 명단에 포함되었다.
5. Post-retirement career
엔도 야스히토는 현역 은퇴 발표와 동시에 감바 오사카의 최고위급 코치로 취임하는 것이 발표되었다. 그는 이제 지도자로서 새로운 축구 경력을 시작하게 되었다.
6. Personal life and public image
엔도 야스히토는 축구장에서의 뛰어난 기량뿐만 아니라, 개인적인 삶의 면모와 대중적인 이미지에서도 팬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았다.
6.1. Family and interests
엔도는 '가장 동경하는 선수'를 묻는 질문에 "두 형"을 꼽았다고 한다. 특히 여섯 살 위의 첫째 형 다쿠야는 둘째 형보다 더 동경의 대상이었다고 한다. 그의 부인은 고등학교 동창으로, 두 딸과 두 아들, 총 네 자녀를 두고 있다. 2010년 FIFA 월드컵 당시 부인과 장남이 남아프리카 공화국에 동행했는데, 장남이 "골 넣어줘"라고 말한 후, 아버지는 실제로 덴마크전에서 골을 넣었다.
가장 좋아하는 음식은 간천엽이다. 골프가 취미이며, 시간이 더 있다면 더 빠져들었을지도 모른다고 말한다. 또한 스포츠 전반에 관심이 많아 골프 외에도 야구에도 흥미를 보인다. 축구 선수가 되지 않았다면 어부가 되었을지도 모른다고 인터뷰에서 답했으며, 예전에는 낚시를 위해 바다로 자주 나갔다고 한다.
성격은 마이페이스적이고 느긋한 면이 있으며, 본인 말로는 너무 느긋할 때도 있어 그것이 자신의 약점일 수 있다고 언급했다. 가고시마 실업 고등학교 시절 은사였던 마쓰자와 류지 감독에 따르면 "운동 능력이 뛰어나고, 지구력 달리기에서는 1등을 할 수 있는 실력이 있었음에도 항상 3~4등이었다"고 하며, 그다지 눈에 띄려 하지 않는 타입이었다. 친한 친구인 나카무라 슌스케는 "압박을 줘도 천천히 한다"고 말했다. 본인은 "긴장하지 않고, 당황하는 일도 없다. 스트레스는 잘 느끼지 않는 편이다. 남의 이야기를 잘 듣지 않는 점이 단점"이라고 자평했다.
취미는 경마다. 2008년 스프린터스 스테이크스 우승마인 '슬리플레스 나이트'의 마주 중 한 명이었다. 또한 기수 후쿠나가 유이치와도 친분이 있다.
6.2. Media appearances and collaborations
엔도 야스히토는 후지 TV의 어린이 프로그램 '퐁키키즈'의 마스코트 '가챠핀'과 외모가 매우 닮은 것으로 유명하다. 경기장에서는 가챠핀의 그림이나 인형을 들고 응원하는 서포터들도 많았다. 2005년 9월 24일 방송된 '퐁키키즈'에 출연하여 실제 가챠핀과 함께 나왔으며, "저와 닮았다고들 하시죠?"라는 질문에 "옛날에는 많이 닮았다고 들었습니다"라고 답했다. 2010년에는 소속팀 감바 오사카와 후지 TV 키즈에서 엔도와 가챠핀의 협업 상품이 출시되기도 했다. 2010년 9월 8일에는 가챠핀이 감바의 홈 구장인 반파쿠 기념 경기장을 방문했고, 2011년 9월 25일에는 감바의 연습장을 찾은 가챠핀에게 축구를 가르치기도 했다. 2011년 12월 4일 반파쿠 기념공원에서 열린 팬 감사 행사에서는 직접 가챠핀 인형 옷을 입고 등장하여 "진짜입니다", "(닮았다는 말에) 기쁩니다"라고 말해 팬들을 즐겁게 했다.
2010년 남아프리카 공화국 월드컵에서의 활약으로 세리에 A의 제노아가 그를 영입하려 한다는 현지 언론 보도가 있었으나, 본인은 "높은 수준의 리그에서 뛰고 싶은 마음은 있지만, 이탈리아의 (수비적인) 스타일은 싫다"고 쓴웃음을 지었다고 한다.
2011년 3월 6일, 아메바 블로그에 엔도를 사칭한 가짜 블로그가 게재되는 소동이 벌어졌다. 8일 감바 오사카 측이 엔도 본인의 블로그가 아님을 공표했고, 같은 날 블로그는 폐쇄되었다. 2014년 1월 15일, 아메바에 공식 블로그가 개설되었으며, 2016년 4월부터는 라인 블로그로 이전했다.
2012년 4월 13일 방송된 '우리들의 음악'에서는 축구 광팬인 가수 모리야마 나오타로와 대담을 나누었다.
2012년 4월 14일 개봉한 극장판 애니메이션 '명탐정 코난: 11번째 스트라이커'에서 성우로 처음 도전했다. 엔도는 주인공 에도가와 코난에게 프리킥의 요령을 전수하는 역할로 미우라 가즈요시, 나라자키 세이고, 나카무라 겐고, 콘노 야스유키와 함께 출연했다. 엔도는 코난의 팬이었으며, 그의 가족 역시 코난 팬이라고 한다. 팸플릿 독점 인터뷰에서도 "국민 애니메이션인 코난에 출연하게 되어 매우 긴장했다"고 언급했다.
그는 또한 엄브로, AC 재팬, 스카이퍼펙TV, 젠쇼쿠의 '덴', 일본가스 주식회사의 '위드 가스 주택', '대화식 진학 학원 1대1 네츠', 사이버드의 '바코드 풋볼러', 니시카와 산교의 '에어', 라이온의 '소프란' 캠페인 캐릭터 등 다양한 광고와 홍보 활동에 참여했다.
관련 서적으로는 2009년 '자연체~자신의 축구를 관철하면 길이 열린다', 2010년 '내일 하자면 바보야', 2011년 '신뢰하는 힘 재팬 약진의 진실과 과제', 2012년 콘노 야스유키와 공저한 '관찰안', 2013년 니시베 켄지와 공저한 '안술전', 2014년 '바꾸는 용기' 등이 있다. 2010년 3월에는 그의 플레이를 담은 DVD '엔도 야스히토 얏토 스타일'이 발매되었다.
7. Achievements and honours
엔도 야스히토는 선수 경력 전반에 걸쳐 수많은 중요한 우승 타이틀, 개인상, 그리고 인정을 받았다.
7.1. Club honours
- 가고시마 실업고
- 전국 고교 선수권: 1회 (1995년)
- 다카마도노미야컵 전일본 유스 선수권: 1회 (1996년)
- 요코하마 플뤼겔스
- 천황배: 1회 (1998년)
- 감바 오사카
- J1리그: 2회 (2005년, 2014년)
- J2리그: 1회 (2013년)
- J리그컵: 2회 (2007년, 2014년)
- 천황배: 4회 (2008년, 2009년, 2014년, 2015년)
- 후지 제록스 슈퍼컵: 2회 (2007년, 2015년)
- AFC 챔피언스리그: 1회 (2008년)
- 팬퍼시픽 챔피언십: 1회 (2008년)
- FIFA 클럽 월드컵: 3위 (2008년)
- 주빌로 이와타
- J2리그: 1회 (2021년)
7.2. International honours
- 일본
- AFC 아시안컵: 2회 (2004년, 2011년)
- 아프로-아시안 네이션스컵: 1회 (2007년)
- 기린 챌린지컵: 4회 (2004년, 2007년, 2008년, 2009년, 2011년)
7.3. Individual awards
- 아시아 올해의 축구 선수: 2009년
- AFC 챔피언스리그 MVP: 2008년
- J리그 MVP: 2014년
- 일본 올해의 축구 선수: 2008년, 2014년
- J리그 베스트 일레븐: 2003년, 2004년, 2005년, 2006년, 2007년, 2008년, 2009년, 2010년, 2011년, 2012년, 2014년, 2015년 (역대 최다 12회)
- J리그 20주년 기념팀
- J리그 30주년 기념팀
- J리그 30주년 MVP: 2023년
- J2 Most Exciting Player: 2013년
7.4. Other distinctions
- 주간 사커 매거진 연간 최우수 선수상(크리스탈 어워드상): 2008년
- 호치 프로 스포츠 대상 J리그 부문: 2008년
- TV 아사히 제43회 빅 스포츠 대상 '야베치 FC ~일본 축구 응원 선언! 야베치 F.C.상(축구 프로젝트상)': 2008년
- 간사이 스포츠상 특별상: 2009년
- 감동 오사카 대상(지사 표창): 2010년
- 간사이 베스트 파더상(스포츠 부문): 2012년
- 제71회 미나미니혼 문화상 특별상: 2020년
8. Career statistics
엔도 야스히토는 그의 프로 축구 경력 동안 클럽과 국가대표팀에서 일관된 활약을 펼치며 수많은 경기 출전과 득점 기록을 세웠다.
8.1. Club statistics
클럽 | 시즌 | 리그 | 천황배 | J리그컵 | AFC | 기타 | 합계 | ||||||
---|---|---|---|---|---|---|---|---|---|---|---|---|---|
경기 | 득점 | 경기 | 득점 | 경기 | 득점 | 경기 | 득점 | 경기 | 득점 | 경기 | 득점 | ||
가고시마 실업고 | 1997 | - | 1 | 0 | - | - | - | 1 | 0 | ||||
요코하마 플뤼겔스 | 1998 | 16 | 1 | 0 | 0 | 4 | 0 | - | - | 20 | 1 | ||
교토 퍼플상가 | 1999 | 24 | 4 | 1 | 0 | 2 | 0 | - | - | 27 | 4 | ||
2000 | 29 | 5 | 0 | 0 | 6 | 1 | - | - | 35 | 6 | |||
합계 | 53 | 9 | 1 | 0 | 8 | 1 | - | - | 62 | 10 | |||
감바 오사카 | 2001 | 29 | 4 | 3 | 1 | 4 | 0 | - | - | 36 | 5 | ||
2002 | 30 | 5 | 1 | 0 | 8 | 1 | - | - | 39 | 6 | |||
2003 | 30 | 4 | 2 | 0 | 6 | 0 | - | - | 38 | 4 | |||
2004 | 29 | 9 | 3 | 0 | 0 | 0 | - | - | 32 | 9 | |||
2005 | 33 | 10 | 2 | 0 | 4 | 0 | - | - | 39 | 10 | |||
2006 | 25 | 9 | 4 | 1 | 0 | 0 | 5 | 3 | 4 | 1 | 38 | 14 | |
2007 | 34 | 8 | 4 | 0 | 8 | 1 | - | 1 | 0 | 47 | 9 | ||
2008 | 27 | 6 | 3 | 0 | 1 | 0 | 10 | 3 | 3 | 2 | 44 | 11 | |
2009 | 32 | 10 | 4 | 3 | 2 | 0 | 6 | 1 | 1 | 0 | 45 | 14 | |
2010 | 30 | 3 | 2 | 2 | 0 | 0 | 3 | 0 | 1 | 0 | 36 | 5 | |
2011 | 33 | 4 | 0 | 0 | 0 | 0 | 7 | 1 | - | 40 | 5 | ||
2012 | 34 | 5 | 4 | 3 | 2 | 0 | 4 | 1 | - | 44 | 9 | ||
2013 | 33 | 5 | 0 | 0 | - | - | - | 33 | 5 | ||||
2014 | 34 | 6 | 5 | 0 | 6 | 0 | - | - | 45 | 6 | |||
2015 | 34 | 5 | 4 | 0 | 3 | 1 | 12 | 0 | 5 | 0 | 58 | 6 | |
2016 | 34 | 2 | 2 | 0 | 3 | 1 | 5 | 1 | 1 | 0 | 45 | 4 | |
2017 | 31 | 1 | 1 | 0 | 4 | 0 | 7 | 0 | - | 43 | 1 | ||
2018 | 34 | 1 | 1 | 0 | 6 | 0 | - | - | 41 | 1 | |||
2019 | 28 | 1 | 1 | 0 | 5 | 0 | - | - | 34 | 1 | |||
2020 | 11 | 0 | 0 | 0 | 2 | 0 | - | - | 13 | 0 | |||
합계 | 605 | 98 | 46 | 10 | 64 | 4 | 59 | 10 | 16 | 3 | 790 | 125 | |
주빌로 이와타 | 2020 (임대) | 15 | 2 | - | - | - | - | 15 | 2 | ||||
2021 (임대) | 35 | 3 | - | - | - | - | 35 | 3 | |||||
2022 | 31 | 0 | - | 1 | 0 | - | - | 32 | 0 | ||||
2023 | 20 | 0 | 2 | 0 | 1 | 0 | - | - | 23 | 0 | |||
총 통산 | 775 | 113 | 50 | 10 | 78 | 5 | 59 | 10 | 16 | 3 | 978 | 141 |
주석: '기타' 열에는 일본 슈퍼컵, A3 챔피언스컵, FIFA 클럽 월드컵, J리그 챔피언십, 수루가 뱅크 챔피언십 출전 기록이 포함된다.
8.2. International statistics
국가대표팀 | 연도 | 경기 | 득점 |
---|---|---|---|
일본 | 2002 | 1 | 0 |
2003 | 11 | 1 | |
2004 | 16 | 2 | |
2005 | 8 | 0 | |
2006 | 8 | 0 | |
2007 | 13 | 1 | |
2008 | 16 | 3 | |
2009 | 12 | 0 | |
2010 | 15 | 2 | |
2011 | 13 | 0 | |
2012 | 11 | 1 | |
2013 | 16 | 2 | |
2014 | 8 | 2 | |
2015 | 4 | 1 | |
합계 | 152 | 15 |
국제 경기 득점 목록
# | 날짜 | 경기장 | 상대팀 | 득점 | 결과 | 대회 |
---|---|---|---|---|---|---|
1 | 2003년 8월 20일 | 국립 올림픽 스타디움, 도쿄, 일본 | 나이지리아 | 3-0 | 3-0 | 친선 경기 |
2 | 2004년 2월 7일 | 가시마 스타디움, 가시마시, 일본 | 말레이시아 | 4-0 | 4-0 | 친선 경기 |
3 | 2004년 7월 7일 | 요코하마 국제 종합 경기장, 요코하마시, 일본 | 세르비아 몬테네그로 | 1-0 | 1-0 | 기린컵 축구 |
4 | 2007년 7월 16일 | 미딘 국립경기장, 하노이, 베트남 | 베트남 | 2-1 | 4-1 | 2007년 AFC 아시안컵 |
5 | 2008년 2월 6일 | 사이타마 스타디움 2002, 사이타마시, 일본 | 태국 | 1-0 | 4-1 | 2010년 FIFA 월드컵 아시아 지역 3차 예선 |
6 | 2008년 6월 7일 | 로열 오만 경찰 스타디움, 무스카트, 오만 | 오만 | 1-1 | 1-1 | 2010년 FIFA 월드컵 아시아 지역 3차 예선 |
7 | 2008년 9월 6일 | 바레인 국립경기장, 리파, 바레인 | 바레인 | 2-0 | 3-2 | 2010년 FIFA 월드컵 아시아 지역 4차 예선 |
8 | 2010년 2월 14일 | 국립 올림픽 스타디움, 도쿄, 일본 | 대한민국 | 1-0 | 1-3 | 2010년 동아시아 축구 선수권 대회 |
9 | 2010년 6월 24일 | 로열 바포켕 스타디움, 루스텐버그, 남아프리카 공화국 | 덴마크 | 2-0 | 3-1 | 2010년 FIFA 월드컵 |
10 | 2012년 8월 15일 | 삿포로 돔, 삿포로시, 일본 | 베네수엘라 | 1-0 | 1-1 | 친선 경기 |
11 | 2013년 9월 6일 | 오사카 나가이 스타디움, 오사카시, 일본 | 과테말라 | 3-0 | 3-0 | 친선 경기 |
12 | 2013년 9월 10일 | 요코하마 국제 종합 경기장, 요코하마, 일본 | 가나 | 2-1 | 3-1 | 친선 경기 |
13 | 2014년 6월 2일 | 레이먼드 제임스 스타디움, 탬파, 미국 | 코스타리카 | 1-1 | 3-1 | 친선 경기 |
14 | 2014년 11월 14일 | 도요타 스타디움, 도요타시, 일본 | 온두라스 | 3-0 | 6-0 | 친선 경기 |
15 | 2015년 1월 12일 | 뉴캐슬 스타디움, 뉴캐슬, 오스트레일리아 | 팔레스타인 | 1-0 | 4-0 | 2015년 AFC 아시안컵 |
9. Legacy and influence
엔도 야스히토는 일본 축구 역사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인물로 평가받으며, 그의 위상은 단순히 뛰어난 선수 그 이상이다.
그는 일본 남자 축구 국가대표팀 역사상 최다 출전 기록(152경기)을 보유하고 있으며, 1,100회가 넘는 공식 경기 출전과 J리그 최다 출전(672경기)이라는 전례 없는 기록을 세웠다. 이러한 경이로운 활동 수명은 그의 꾸준함과 자기 관리 능력을 증명한다.
엔도는 감바 오사카와 일본 국가대표팀 팬들 사이에서 '컬트 히어로'로 추앙받는다. 그의 기술적인 능력, 경기장 안팎에서의 리더십, 그리고 결정적인 순간에 득점을 올리는 능력은 팬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특히 그의 뛰어난 프리킥 정확성과 독창적인 '코로코로 PK'는 그의 시그니처로 남아 수많은 골키퍼를 좌절시켰다. 그는 일본에서 가장 창의적인 미드필더이자 그의 세대에서 가장 재능 있는 플레이메이커 중 한 명으로 널리 인정받는다.
이비차 오심 감독과 같은 존경받는 지도자들로부터 "그가 있으면 감독은 필요 없다"는 극찬을 들었을 만큼, 엔도는 오랫동안 소속팀과 국가대표팀에서 없어서는 안 될 핵심 선수였다. 그의 부재는 항상 팀의 불안 요소로 여겨졌으며, 일본 축구계는 오랫동안 '포스트 엔도'를 찾기 위해 노력했지만, 그의 역할을 완전히 대체할 만한 선수를 발굴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 이는 그의 영향력과 독보적인 존재감을 여실히 보여주는 대목이다.
엔도 야스히토는 단순히 뛰어난 축구 선수를 넘어, 일본 축구의 한 시대를 정의한 상징적인 인물로서 후배 선수들에게 귀감이 되고 있으며, 그의 업적과 플레이 스타일은 앞으로도 오랫동안 회자될 것이다. 은퇴 후에도 감바 오사카의 코치로서 일본 축구 발전에 기여하고 있다.
10. See also
- A매치 100경기 이상 출전한 축구 선수 명단
- 공식 경기 1000경기 이상 출전한 축구 선수 명단
- J리그
- 감바 오사카
- 일본 축구 국가대표팀
- 황금 세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