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Early life and background
마에조노 마사키요는 유년기부터 축구에 대한 깊은 열정을 보였으며, 이는 학창 시절 뛰어난 기량으로 이어졌다. 그의 어린 시절 환경과 초기 경력은 훗날 그가 일본 축구를 대표하는 선수로 성장하는 데 중요한 기반이 되었다.
1.1. Childhood and education
마에조노 마사키요는 1973년 10월 29일, 일본 가고시마현 사쓰마센다이시에서 태어났다. 그의 부모는 기독교인이었지만, 그는 종교를 가지고 있지 않다. 네 살 연상인 형의 영향으로 초등학교에 들어가기 전부터 축구와 친해졌으며, 사쓰마센다이 시립 도고 소학교 2학년 때 '도고 소년 축구단'에 입단했다. 5학년 때는 현 대회 4강에 진출하기도 했다. 디에고 마라도나의 플레이를 담은 비디오를 접한 후 그를 동경하며, 비디오를 반복해서 보며 드리블 연습에 몰두하는 나날을 보냈다.
이후 사쓰마센다이 시립 도고 중학교에 입학했으나 축구부가 없어서 처음에는 육상부에 소속되었다. 그러다 2학년 3학기에 축구부가 창설되었고, 3학년 때는 현 선발팀에 발탁될 정도로 뛰어난 기량을 선보였다.
가고시마 실업고등학교로 진학해서는 1학년 때부터 주전으로 자리 잡았고, 전국 고등학교 축구 선수권 대회에 3년 연속으로 출전했다. 2학년 때인 69회 대회에서는 준우승을 차지하는 등 팀의 핵심 선수로 활약했다. 고교 시절 동기로는 엔도 타쿠야, 후지야마 류지, 니타오 히로유키 등이 있었고, 2년 후배로는 훗날 애틀랜타 올림픽 일본 대표팀에서 팀 동료가 되는 조 쇼지와 엔도 아키히로가 있었다.
2. Club career
마에조노는 1992년 J리그의 요코하마 플뤼겔스에 입단하며 프로 경력을 시작했다. 그는 이 팀에서 자신의 전성기를 보내며 일본 축구계에 이름을 알렸다. 이후 여러 팀을 거치며 다양한 리그 경험을 쌓았으며, 대한민국 K리그에서도 활약하는 등 폭넓은 클럽 경력을 이어갔다.
2.1. Yokohama Flügels
1992년, 요코하마 플뤼겔스에 입단한 마에조노는 첫 해 가모 슈 감독이 추구하는 존 프레스 축구에 적응하는 데 어려움을 겪으며 위성 팀에서 한 해를 보냈다. 그러나 1993년 J리그 개막을 앞둔 상반기에는 아르헨티나 힘나시아 라플라타로 2개월간 단기 유학을 다녀오며 경험을 쌓았다.
1993년 6월 5일, J리그 베르디 가와사키전에서 연장 후반 4분 교체 투입되어 공식 경기에 데뷔했다. 같은 해 7월 10일, 요코하마 마리노스와의 경기에서 J리그 데뷔골이자 결승골을 기록했다. 1993년 시즌에는 24경기에 출전하여 2골을 기록했고, 제73회 천황배 결승전에서는 선발 출전하여 드리블 돌파로 페널티 킥을 얻어내는 등 활약하며 팀의 첫 메이저 대회 우승을 이끌었다.
1994년에는 리그 8골을 기록하며 팀의 주전 선수로 완전히 자리매김했다. 1995년에도 주축 선수로 활약하며 3월 22일, 쇼난 벨마레와의 가나가와 더비에서 절묘한 발리 슛으로 결승골을 넣었는데, 상대 골키퍼 고지마 노부유키는 이 골을 자신의 커리어에서 실점한 슈퍼골 중 4위로 꼽았다. 4월 15일 세레소 오사카와의 경기에서는 상대 수비수 2명과 골키퍼를 제치고 골을 넣었는데, 이 골은 마에조노 본인이 자신의 커리어 베스트 골로 꼽았으며 J리그 30주년 베스트 골 기술 부문 후보에도 올랐다. 이 시즌 40경기에 출전하여 7골을 기록했다.
1996년에는 J리그가 처음으로 단일 시즌제를 채택했는데, 브라질 삼총사(지뉴, 삼파이오, 에바이르)와 야마구치 모토히로, 미우라 아쓰히로 등과 함께 팀을 이끌며 개막 8연승을 달성했다. 전반기를 1위로 마쳤으나, 후반기에는 기세를 이어가지 못해 리그 3위로 시즌을 마쳤다. 마에조노는 이 시즌 리그와 컵 대회를 포함해 총 15골을 기록하며 맹활약했고, 같은 해 J리그 베스트 11에도 선정되었다. 1996년 6월에는 스페인 세비야 FC 관계자가 일본을 방문하여 요코하마 플뤼겔스에 마에조노 영입을 타진하기도 했다.
2.2. Verdy Kawasaki and Brazil loan spells
1996년 애틀랜타 올림픽을 경험한 후 마에조노의 해외 진출 의지는 더욱 강해졌다. 1996년 시즌 후 계약 갱신에서는 일본 축구계 최초로 에이전트를 통해 계약 협상에 나섰다. 전례가 없었기 때문에 당시에는 에이전트를 고용한 것에 대한 비난도 받았지만, 요코하마 플뤼겔스 구단은 이적료 전액인 3.50 억 JPY가 지급될 경우에만 해외 이적을 허용한다는 입장을 고수했고, 협상은 교착 상태에 빠졌다. 세비야 외에도 여러 클럽이 요코하마 플뤼겔스에 접촉했지만, 이 사실이 마에조노 본인에게 전혀 전달되지 않은 것이 밝혀지면서 마에조노는 구단에 대한 불신을 키워갔다.
"플뤼겔스에 남을 생각은 없었고, 하물며 J리그의 다른 팀으로 가는 것은 전혀 생각하지 않았다"고 회고했지만, 미우라 가즈요시의 해외 이적을 허용한 전례가 있는 베르디 가와사키가 영입 의사를 표명하면서 이적 협상 기한 마지막 날인 1997년 1월 31일 베르디 가와사키로의 이적이 발표되었다. 베르디 가와사키가 요코하마 플뤼겔스에 지불한 이적료는 당시 J리그 최고액인 추정 3.50 억 JPY로 보도되었으나, 축구 작가 도쓰카 케이에 따르면 실제로는 구단 간 협상으로 대폭 감액되어 약 2.00 억 JPY에서 2.50 억 JPY 정도에 합의되었다고 한다. 마에조노는 이적 기자회견에서 베르디 가와사키가 해외 이적을 용인했다는 점을 이적 이유 중 하나로 꼽았다. 베르디 가와사키의 신임 감독 가토 히사시는 JFA 강화위원장 시절 올림픽 대표팀을 지원하며 마에조노를 잘 알고 있었고, 선수로서 그를 높이 평가했다.
큰 화제를 모으며 이적했지만, 경기에서는 투지가 전혀 느껴지지 않았고 부진한 모습을 보이며 점차 선발 명단에서 제외되고 교체 출전하는 경기가 늘어났다. 이 시기 많은 TV 광고에 출연했던 것 때문에 큰 비판을 받기도 했다. 베르디 가와사키는 1997년 개막부터 부상 선수도 많았고, 기대했던 마에조노마저 부진이 이어지면서 팀 성적이 부진했고, 1st 스테이지 도중에 가토 히사시 감독은 해임되었다. 마에조노는 이 시기의 부진에 대해 꿈이었던 스페인 이적이 좌절되면서 마음이 끊어졌고, 정신적인 부진이 플레이 전체에 악영향을 미쳤다고 회고했다. 당시에는 이적 소동으로 인해 인간 불신에 빠지기도 했다고 한다.
1998년 10월, 마에조노는 3개월간의 임대 이적으로 브라질 상파울루주의 명문 클럽 산투스 FC에 입단했다. 원래는 넬시뉴 감독이 이끄는 상파울루 FC로의 이적이 추진되었으나, 넬시뉴 감독이 해임되면서 무산되었고, 대신 에메르손 레앙이 감독을 맡고 있던 산투스로 이적하게 되었다. 10월 18일, 브라질 전국 선수권 포르투게자전에서 65분 교체 출전하여 직후인 66분에 데뷔골을 기록했다. 그러나 이후 출전 경기 수와 시간은 적었고, 공식전 5경기 출전 1득점에 그쳤다. 하지만 마에조노 본인은 산투스 시절에 대해 "풀 타임으로 뛴 경기는 하나도 없었지만, 벤치에만 있어도 매우 설렜다. 축구를 하고 있다는 충만감이 있었다"고 회고했다.
1999년에도 임대 이적 기간을 연장하여 산투스에서 뛸 예정이었으나, 스가와라 사토시를 영입하기로 결정한 산투스는 "일본인은 두 명이나 필요 없다"며 마에조노와의 계약을 보류했다. 1월 25일, 고이아스주의 강호 클럽 고이아스 EC로의 임대 이적이 발표되었다. 고이아스에서는 3월 3일 데뷔전에서 선발 풀타임 출전하여 1개의 어시스트를 기록했다. 이적 초에는 꾸준히 출전했으나, 아우도스 감독의 팀 구상에 맞지 않아 점차 출전 기회를 잃었고, 계약 만료 전에 귀국했다.
이후 이적을 전제로 포르투갈 비토리아 기마랑이스와 그리스 PAOK 살로니카에서 훈련에 참가했지만, 결국 정식 계약에는 이르지 못했다. 기마랑이스에서는 베르디 가와사키가 요구했던 1.00 억 JPY의 이적료가 협상의 걸림돌이 되었다고 한다.
2.3. Return to J.League
2000년, 가토 히사시 감독의 요청으로 J2리그로 강등된 쇼난 벨마레에 임대 이적하며 J리그로 복귀했다. 쇼난의 J1리그 재승격을 위한 핵심 선수로 기대를 모았으며, 9월 3일 제31회 베갈타 센다이전에서는 프로 데뷔 후 첫 해트트릭을 기록하는 등 활약을 펼쳤지만, 팀은 8위에 그쳐 재승격에는 실패했다. 그러나 마에조노는 은퇴 후 이 시즌에 대해 "팀으로서도, 나 개인으로서도 결과를 내지는 못했지만, 40경기 가까이 뛰면서 컨디션을 되찾을 수 있었다. 그게 없었으면 선수 수명은 더 짧았을 것"이라고 회고했다.
2001년, 소유권을 가진 J1 도쿄 베르디에 6개월 계약으로 3년 만에 복귀했다. 7월 마쓰키 야스타로 감독이 해임되고 오미 유키타카가 감독으로 부임하자, 마에조노는 이전보다 더 중용되었다. 9월 15일, 2nd 스테이지 제5절 요코하마 F. 마리노스전 전반 35분, 골문으로 돌진하다가 요코하마 F. 마리노스 골키퍼 가와구치 요시카쓰와의 충돌을 피하려다 왼쪽 발이 잔디에 걸려 발목 골절을 당했다. 장기 이탈하게 되었고, 그대로 2001년 시즌을 마감했으며, 결과적으로 이 경기가 그의 J리그 마지막 경기가 되었다.
2002년 7월, 마에조노, 니시다 요시히로, 이시즈카 케이지 세 선수가 로리 파울루 산드리 감독의 구상에서 제외되면서 전력 외 통보를 받았다는 사실이 언론에 보도되었다. 스포츠 신문에는 이전부터 세 선수의 훈련 태도에 불만을 품었던 로리 감독이 그들에게 개선을 요구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아 전력 외가 되었다는 도쿄 베르디 관계자의 담화가 게재되었다. 그러나 마에조노는 이 처우에 대해 "신문에는 그렇게 나왔지만, 저로서는 명확한 이유나 납득할 만한 설명도 없었어요. 훈련 태도라고 해도, 저는 재활 중이었기 때문에 로리 감독이 부임한 이후 계속 훈련에 참가할 수 없었죠. 그런데도 '이제 쓸 생각 없으니, 따로 훈련하라'고 갑자기 말하더니, 세 명이서 훈련했어요. (...) 도대체 뭐가 문제였는지, 지금도 전혀 모르겠어요"라고 반박했다.
2.4. K League career
도쿄 베르디를 떠난 후, 마에조노는 지인을 통해 대한민국 K리그 클럽으로의 이적을 모색했다. 먼저 훈련에 참가한 성남 일화 천마에서는 "체력적인 문제"로 계약이 무산되었지만, 다음 팀인 안양 LG 치타스에서는 조광래 감독의 높은 평가를 받아 계약에 성공했다. 안양에서는 리그 개막전부터 10경기 연속 선발 출전을 기록하는 등 초반에는 팀의 주축으로 활약했으나, 시즌 중반 이후에는 주전에서 밀려나게 되었다.
2004년에는 K리그 신생 클럽인 인천 유나이티드와 계약했다. 마에조노는 주로 컵대회에서 기용되었으며, 8월 1일 FC 서울과의 경기에서 페널티 킥으로 한국 공식 경기 첫 골이자 이 경기의 결승골을 기록했다. 그러나 왼쪽 새끼발가락 골절로 3개월 이상 전열에서 이탈했고, 11월에야 복귀했다. 2004년 말에 계약이 해지되었다.
2.5. Retirement
2005년에는 세르비아 몬테네그로 1부 리그의 OFK 베오그라드에서 한 달간 훈련에 참가했으나, 정식 계약에는 이르지 못했다. 결국 2005년 5월 19일 공식적으로 선수 은퇴를 선언하며 긴 프로 축구 선수 생활을 마감했다.
3. International career
마에조노 마사키요는 일본 축구 국가대표팀의 중요한 일원으로서 국가대표 경력을 쌓았다. 특히 올림픽과 AFC 아시안컵 등 주요 국제 대회에서 팀의 핵심 선수로 활약하며 인상적인 성과를 남겼다.
3.1. Olympic national team
1994년 1월, 니시노 아키라 감독이 이끄는 애틀랜타 올림픽 출전을 목표로 하는 U-21 일본 대표팀의 1차 합숙에 소집되었다. 1995년 1월, 호주 국제 토너먼트 참가 시 니시노 감독의 지명을 받아 팀의 주장이 되었다. 마에조노는 이전까지 축구 인생에서 주장을 맡은 경험이 없었으며, 니시노 감독 또한 그의 성격이 리더 타입은 아니라고 분석했지만, 때때로 독단적인 플레이를 하는 마에조노에게 주장을 맡김으로써 팀 전체를 의식하는 플레이를 하도록 의도했다고 한다.
마에조노는 이미 성인 국가대표팀에도 소집되어 두 대표팀을 겸하고 있었으나, 1995년 3월 마에조노 본인의 의사를 반영하여 올림픽 대표팀을 우선하는 방침이 결정되었다. 1995년 5월부터 6월까지 태국과 일본에서 열린 애틀랜타 올림픽 아시아 1차 예선에 출전하여 일본은 4전 전승으로 다음 해 최종 예선 진출을 확정했다. 1996년 3월, 말레이시아에서 열린 애틀랜타 올림픽 아시아 최종 예선에 출전했다. 3월 24일, 준결승 사우디아라비아전에서 2골을 기록하며 승리에 기여했고, 일본을 1968년 멕시코시티 올림픽 이후 7개 대회(28년) 만에 올림픽 본선 진출로 이끌었다.
같은 해 7월, 미국에서 개최된 애틀랜타 올림픽 본선에 출전했다. 일본은 조별 리그 첫 경기에서 금메달 후보인 브라질을 꺾는 대이변을 일으켰는데, 이는 '마이애미의 기적'으로 알려져 있다. 마에조노는 이 경기에서 뛰어난 활약을 펼쳤다. 조별 리그 3번째 경기인 헝가리전에서는 마에조노가 2골을 기록하며 3-2 승리를 이끌었다. 일본은 나이지리아와 브라질과 함께 승점 6점을 기록했으나, 골득실차에서 밀려 아쉽게 결선 토너먼트 진출에는 실패했다. 그는 올림픽에서 총 3경기에 출전하여 2골을 기록했다.
3.2. Senior national team
파울루 호베르투 파우캉 일본 대표팀 감독의 발탁으로, 1994년 5월 22일 기린컵 오스트레일리아전에서 국제 A매치 데뷔전을 치렀다. 같은 해 10월 히로시마 아시안 게임에서도 모든 경기에 풀타임 출전했다. 이후 한동안 올림픽 대표팀에 집중하기 위해 대표팀을 사퇴했다.
1996년 8월 25일, 애틀랜타 올림픽 출전을 마친 후 성인 대표팀 복귀 첫 경기인 우루과이전에서 프리킥으로 일본 대표팀 첫 골을 기록했다. 12월에는 AFC 아시안컵 아랍에미리트 대회에 출전하여 조별 리그 2차전 우즈베키스탄전에서는 직접 프리킥으로 골을 넣었고, 이어서 절묘한 볼 컨트롤로 상대를 제치고 골을 성공시켰다. 그러나 8강 쿠웨이트전에서는 부진한 모습을 보이며 전반전만 뛰고 교체되었고, 일본은 0-2로 패하며 8강에서 탈락했다.
1997년에는 이적 문제로 인해 부진에 빠지면서 프랑스 월드컵 아시아 1차 예선 오만 라운드 멤버에 소집되었으나, 출전 기회를 얻지 못했고 이후 일본 대표팀에서 제외되었다. 그의 일본 대표팀 마지막 출전 경기는 1997년 3월 15일 방콕에서 열린 태국과의 친선 경기(1-3 일본 패배)였다. 그는 1997년까지 일본 대표팀에서 총 19경기에 출전하여 4골을 기록했다. 흥미롭게도 그가 대표팀에서 멀어지면서 나카타 히데토시가 대표팀에 합류하는 형태가 되어, 두 선수는 성인 대표팀에서 함께 뛰는 일은 없었다.
4. Beach soccer career
선수 은퇴 후 마에조노는 새로운 도전을 위해 비치 사커 선수로 활동했다. 그는 일본 비치 사커 국가대표팀에 합류하여 국제 대회에서도 좋은 성과를 거두었다.
은퇴 후 마에조노는 베르디 가와사키 시절 팀 동료였던 하무스 루이 감독의 부름을 받아 일본 비치 사커 국가대표팀에 발탁되었다. 2009년 AFC 비치 사커 챔피언십에서 일본은 우승을 차지했고, 마에조노는 2009년 비치 사커 월드컵에도 참가했다. 2009년 10월에는 포르투갈과의 친선 경기에 2경기 출전하기도 했다. 이를 통해 그는 축구와는 또 다른 형태로 월드컵에 출전하는 경험을 하게 되었다.
5. Post-retirement activities
선수 은퇴 후 마에조노는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며 새로운 삶을 시작했다. 스포츠 관련 활동은 물론, 방송과 연예계에서도 활발하게 모습을 드러내며 대중적 인기를 유지하고 있다. 또한, 사회 공헌 활동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하며 긍정적인 영향력을 펼치고 있지만, 과거의 논란으로 인해 비판을 받기도 했다.
5.1. Sports commentary and coaching
마에조노는 은퇴 후 축구 해설가로서 TV 도쿄, 닛폰 TV의 전국 고등학교 축구 선수권 대회 중계 등에 출연하며 활약하고 있다. 또한, 유소년 축구 보급 활동에도 참여하고 있는데, 2006년 8월에는 축구 보급 활동의 일환으로 유치원생부터 초등학생까지를 대상으로 하는 "ZONO 축구 스쿨"을 설립했다. 2007년부터는 JFA 앰버서더로도 활동하며 일본 축구 발전에 기여하고 있다. 2008년에는 나카타 히데토시가 창설한 은퇴 축구 선수들로 구성된 축구팀 "TAKE ACTION FC."의 일원이 되었다.
2012년에는 JFA 공인 S급 코치 라이선스를 취득하며 지도자로서의 자격도 갖추었다. 2016년에는 남자 농구 리그 "B리그"의 특명 홍보부장으로 취임하며 스포츠 분야에서의 활동 영역을 넓혔다.
5.2. Media and entertainment activities
마에조노는 스포츠 분야 외에도 다양한 미디어 및 엔터테인먼트 활동을 통해 대중과 소통하고 있다. 그는 후지 TV의 '와이드 나 쇼'에 2014년 6월 22일부터 정규 출연하며 축구 관련 프로그램 외에는 처음으로 고정 출연자가 되었다. 이 프로그램에서 마쓰모토 히토시 등에게 음주 문제나 사생활에 대해 종종 놀림을 받기도 하지만, 매회 지나치게 긴장하는 모습 때문에 엉뚱한 답변을 하는 경우가 많아 이를 계기로 버라이어티 프로그램 출연이 늘었다.
그는 TV 도쿄 '네오 스포츠'(체포 후 출연 자제), 마이니치 방송 '싸워라! 스포츠 내각'(준레귤러), NHK BS1 '축구의 정원', NHK 마쓰야마의 '마에조노 마사키요 자전거 순례 여행', '마에조노 마사키요 시코쿠 절경 여행', '마에조노 마사키요 시코쿠 친구 여행' 등 다양한 TV 프로그램에 출연했다. 라디오 프로그램으로는 재팬 에프엠 네트워크의 '미라클 워즈!', '시노소노 음악당', '마루소노 음악당' 등에서 진행을 맡았다.
또한, 2015년 2월 19일 후지 TV 드라마 '문제 있는 레스토랑' 6화에 본인 역으로 출연했고, 2016년 극장판 애니메이션 '앵그리 버드' 일본어 더빙판에서 조니/피그 세븐 역을 맡으며 성우로도 데뷔했다.
그는 나이키, 부르봉, 닛신식품 '닛신 라오'(1996년, 나카타 히데토시와 공동 출연), AC 재팬(1996년), 다이쇼 제약 '리포비탄D'(1996년), 아스텔 도쿄(1996년), 맨덤(1997년), 일본 스포츠 진흥 센터 'toto(2011년, 2012년)', 오야마 주조(2015년), 콜로플 '하얀고양이 프로젝트(2015년-2016년)', 스퀘어 에닉스 스마트폰 게임 '별의 드래곤 퀘스트(2017년)', 유니버설 홈(2019년), J리그(2021년, 온라인 이지메 방지 캠페인) 등 다수의 광고에도 출연하며 활발한 활동을 이어갔다.
5.3. Social contributions and controversies
마에조노는 은퇴 후 JFA 앰버서더 및 유소년 축구 보급 활동을 통해 축구계에 기여하는 것은 물론, 사회적 문제에 대한 인식 개선 활동에도 참여하며 긍정적인 영향력을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과거의 논란들로 인해 대중의 비판을 받기도 했으며, 이에 대한 사과와 회복 노력을 통해 사회적 책임을 다하려는 모습을 보였다.
5.3.1. Social contributions
마에조노는 JFA 앰버서더로서 활동하며 축구 보급 활동에 힘쓰고 있다. 특히, 1996년에는 AC 재팬 (당시 공공 광고 기구)의 이지메 방지 캠페인에 전적으로 협력했다. 이 캠페인에서 그는 준비된 대사가 아닌 자신의 말로 "이지메는 가장 추한 짓이다. 부끄러운 짓이다"라고 말하며 이지메라는 행위를 추하고 부끄러운 것으로 규정하는 시점에서 캠페인을 기획하여 사회적 메시지를 전달했다.
5.3.2. Public controversies and recovery
2013년 10월 13일, 마에조노는 술에 취해 택시 운전사를 폭행한 혐의로 체포되는 사건이 발생했다. 10월 14일에는 처분 보류로 석방되었고, 같은 날 사죄 기자회견을 열어 TV 도쿄 '네오 스포츠' 등 TV 프로그램 출연 자제를 표명했다. 10월 15일, JFA의 'JFA 마음의 프로젝트' 활동 정지 처분을 받았다. 11월 15일에는 자신의 고향인 가고시마현 사쓰마센다이시의 스포츠 대사 직을 사임하며 사건에 대한 책임을 졌다.
이 사건을 계기로 마에조노는 알코올 의존증 등으로부터의 회복을 목표로 하는 자조 모임에 협력하고 계몽 활동에 참여하고 있다. 그는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술 문제의 심각성을 알리고 회복을 위한 노력을 대중에게 공유하며 사회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려 노력하고 있다.
2014년 후지 TV '와이드 나 쇼' 출연을 계기로 다시 연예 활동을 시작했다. 2016년에는 '베스트 훈도시 어워드 2015' 특별상을 수상했고, 2월 말에는 사쓰마센다이시가 그를 '관광 대사'로 재임명했다(스포츠 대사직을 한 번 사임했기 때문). 2015년 7월에는 2015년 FIFA 여자 월드컵에서 나데시코 재팬이 우승하지 못하면 머리를 삭발하겠다고 공언했고, 결과는 준우승이었기 때문에 7월 12일 '와이드 나 쇼' 방송에서 삭발한 모습을 선보였다.
6. Personal life and episodes
마에조노의 사생활은 비교적 잘 알려져 있으며, 특히 그의 개성을 잘 보여주는 몇몇 흥미로운 일화들이 있다.
6.1. Personal life
마에조노는 2017년 12월 24일, 10년간 교제해 온 34세의 댄서와의 결혼을 발표했다. 그의 혈액형은 O형이다. 그의 이름 '마사키요(真聖)'는 부모님이 기독교인이었기 때문에 붙여졌지만, 본인 스스로는 기독교인이 아니라고 밝혔다.
6.2. Notable episodes
1996년 AFC 아시안컵 원정에 마에조노는 당시 광고 모델로 활동하던 닛신식품의 '닛신 라오' 라면을 대량으로 가져갔다. 당시 해외 원정에서는 식사 등 선수 지원이 부족하여 낯선 음식에 지쳐있던 선수들은 저녁 식사 후 늘 마에조노의 방으로 몰려들어 그의 라면을 서로 차지하려 했다. 훗날 나나미 히로시는 "식사가 힘들었다. 조노의 라면 덕분에 겨우 버틸 수 있었다. 정말 그만큼 힘들었다"고 회고했다. 이 대회에서의 참패를 계기로 이후 일본 대표팀의 해외 원정 지원 체제는 일본인 셰프 동반 등 크게 개선되었다.
2006년 호놀룰루 마라톤에 참가하여 5시간 43분 만에 완주하는 기록을 세웠다.
선수 시절에는 경기 후 상대 선수와 유니폼을 교환한 후, 유니폼에 땀이나 냄새가 배어 있어 집에 가져가지 않고 라커룸에 두고 갔다고 언급했다. 심지어 1996년 애틀랜타 올림픽 축구 브라질전에서도 경기 종료 후 호베르투 카를루스와 유니폼을 교환했지만, 마찬가지로 라커룸에 유니폼을 두고 돌아왔다고 한다.
NHK BS에서 방영된 '더 시코쿠 "마에조노 마사키요 자전거 순례 여행 감사 방문편"'에서 고야산 단상가람을 방문했을 때, 삼고저(三鈷杵)에 빗대어 행운을 상징하는 것으로 알려진 삼고송(三鈷松)에서 떨어진 세 갈래 소나무 잎을 연달아 두 개나 발견하여 안내하던 스님으로부터 "최속"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7. Awards and honors
마에조노 마사키요는 선수 시절 및 은퇴 후 다양한 개인 및 팀 단위의 상을 수상하며 그의 업적을 인정받았다.
- 개인
- J리그 베스트 11: 1996
- 클럽
- 요코하마 플뤼겔스
- 천황배: 1993
- 아시안 컵 위너스컵: 1994-95
- 고이아스 EC
- 캄페오나투 고이아누: 1999 (우승 확정 시점에는 퇴단)
- 요코하마 플뤼겔스
- 일본 대표팀
- 일본 비치 사커 국가대표팀
- AFC 비치 사커 챔피언십: 2009
- 일본 축구 국가대표팀
- 다이너스티컵: 1995 (결승전은 경고 누적으로 출전 정지, 올림픽 대표팀 합류를 위해 귀국했으나 팀은 우승)
- 일본 비치 사커 국가대표팀
8. Career statistics
마에조노 마사키요의 클럽 및 국가대표팀 경력에 대한 상세한 통계 자료는 다음과 같다.
8.1. Club statistics
클럽 성적 | 리그 | 컵 | 리그 컵 | 총계 | ||||||
---|---|---|---|---|---|---|---|---|---|---|
시즌 | 클럽 | 리그 | 출장 | 득점 | 출장 | 득점 | 출장 | 득점 | 출장 | 득점 |
일본 | 리그 | 천황배 | J리그컵 | 총계 | ||||||
1992 | 요코하마 플뤼겔스 | J1리그 | - | 0 | 0 | 0 | 0 | 0 | 0 | |
1993 | 24 | 2 | 5 | 1 | 5 | 0 | 34 | 3 | ||
1994 | 38 | 8 | 2 | 0 | 2 | 0 | 42 | 8 | ||
1995 | 40 | 7 | 2 | 0 | - | 42 | 7 | |||
1996 | 26 | 8 | 2 | 0 | 11 | 7 | 39 | 15 | ||
1997 | 베르디 가와사키 | J1리그 | 28 | 5 | 2 | 0 | 0 | 0 | 30 | 5 |
1998 | 22 | 3 | 0 | 0 | 2 | 1 | 24 | 4 | ||
브라질 | 리그 | 코파 두 브라질 | 리그 컵 | 총계 | ||||||
1998 | 산투스 | 세리이 A | 5 | 1 | 5 | 1 | ||||
1999 | 고이아스 | 고이아스 주 선수권 | 8 | 1 | 3 | 0 | 11 | 1 | ||
일본 | 리그 | 천황배 | J리그컵 | 총계 | ||||||
2000 | 쇼난 벨마레 | J2리그 | 38 | 11 | 3 | 2 | 2 | 0 | 43 | 13 |
2001 | 도쿄 베르디 | J1리그 | 13 | 1 | 0 | 0 | 2 | 0 | 15 | 1 |
2002 | 0 | 0 | 0 | 0 | 0 | 0 | 0 | 0 | ||
대한민국 | 리그 | FA컵 | 리그컵 | 총계 | ||||||
2003 | 안양 LG 치타스 | K리그 | 16 | 0 | 0 | 0 | 0 | 0 | 16 | 0 |
2004 | 인천 유나이티드 | K리그 | 4 | 0 | 0 | 0 | 9 | 1 | 13 | 1 |
국가별 총계 | 리그 | 컵 | 리그 컵 | 총계 | ||||||
일본 | 229 | 45 | 16 | 3 | 24 | 8 | 269 | 56 | ||
브라질 | 13 | 2 | 3 | 0 | 0 | 0 | 16 | 2 | ||
대한민국 | 20 | 0 | 0 | 0 | 9 | 1 | 29 | 1 | ||
총 통계 | 262 | 47 | 36 | 9 | 16 | 3 | 314 | 59 |
- J리그 첫 출전: 1993년 6월 5일 J리그 산토리 시리즈 제7절 베르디 가와사키 1-1 (PK5-4) 요코하마 플뤼겔스 (교체 출전)
- J리그 첫 득점: 1993년 7월 10일 J리그 산토리 시리즈 제17절 요코하마 플뤼겔스 1-0 요코하마 마리노스
- 기타 공식전
- 1990년 전국 고등학교 축구 선수권 대회 2경기 2득점
- 1991년 전국 고등학교 축구 선수권 대회 6경기 4득점 (PK 1)
- 1992년 전국 고등학교 축구 선수권 대회 3경기 2득점
- 1994년 제록스 슈퍼컵 1경기 0득점
- 1997년 제록스 슈퍼컵 1경기 0득점
- 올스타전
- 1995년 10월 10일 JOMO CUP J리그 드림 매치 JAPAN DREAMS 3-1 WORLD DREAMS
- 1996년 10월 10일 JOMO CUP J리그 드림 매치 JAPAN DREAMS 1-2 WORLD DREAMS (1득점)
- 해트트릭
- 1995년 5월 28일 애틀랜타 올림픽 아시아 1차 예선 일본 4-1 중화 타이베이 (44분, 50분 PK, 61분)
- 2000년 9월 3일 J리그 디비전 2 제31절 베갈타 센다이 2-6 쇼난 벨마레 (16분, 54분, 62분)
8.2. National team statistics
일본 국가대표팀 | ||
---|---|---|
연도 | 출장 | 득점 |
1994 | 6 | 0 |
1995 | 4 | 0 |
1996 | 7 | 4 |
1997 | 2 | 0 |
총계 | 19 | 4 |
8.3. National team goals
결과 목록은 일본의 득점부터 나열된다.
# | 날짜 | 경기장 | 상대팀 | 득점 | 결과 | 대회 | |
---|---|---|---|---|---|---|---|
1 | 1996년 8월 25일 | 오사카 | 나가이 육상 경기장 | 우루과이 | 1골 | 5-3 | 친선 경기 |
2 | 1996년 10월 13일 | 고베 | 고베 종합운동공원 유니버 기념 경기장 | 튀니지 | 1골 | 1-0 | 푸마 컵 |
3 | 1996년 12월 9일 | 알아인 | 우즈베키스탄 | 2골 | 4-0 | 1996년 AFC 아시안컵 | |
4 |
9. Affiliated clubs
- 1992년 ~ 1996년 요코하마 플뤼겔스
- 1997년 ~ 2002년 베르디 가와사키 / 도쿄 베르디
- 1998년 중간 ~ 1998년 말 산투스 FC (임대)
- 1999년 고이아스 EC (임대)
- 2000년 쇼난 벨마레 (임대)
- 2003년 안양 LG 치타스
- 2004년 인천 유나이티드
10. Selected statements
- "모두의 힘과 응원해준 모든 이들 덕분이라고 생각합니다. 정말로 감사하고 있습니다."
"여기까지 쭉, 팀의 모든 사람, 스태프를 포함해 하나 되어 지탱해 주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정말로 감사하고 있습니다."
"매우 괴로웠지만, 응원해준 모든 이들과 팀의 모든 사람 덕분이라고 생각합니다."
- 1996년 3월 24일, 올림픽 아시아 최종 예선 사우디아라비아전 후 인터뷰.
- "이지메 문제 말인데. 굳이 모두 틀에 박힐 필요는 없고, 멋을 부려도 좋다고 생각해. 나도 그랬어. 하지만 난 이지메 같은 건 한 적 없었잖아. 왜냐면 부끄럽잖아. 누군가를 울리는 거. 옛날부터 멋없게 행동하는 것만은 하고 싶지 않았고. 이지메는 최악이야. 멋없어."
- 1996년 공공 광고 기구(현: AC 재팬)의 이지메 방지 캠페인에 전면 협력했을 때의 발언. 준비된 대사가 아닌 본인의 말이었다. 이지메를 당하는 아이를 위로하거나 포용하는 형태가 아니라, 이지메라는 행위를 추하고 부끄러운 것으로 파악하여 기획되었다.
11. Publications
마에조노 마사키요가 직접 저술하거나 참여한 서적은 다음과 같다.
- 『DVD로 잘해지는! 소년 축구 - 기본・연습・지도법』 ({{2008년}} 5월, 사이토사, ISBN 9784791614738)
- 『개인의 능력을 키우는! 축구의 기술과 사고방식 (DVD 포함)』 ({{2008년}} 10월, 이케다 쇼텐, ISBN 9784262163178)
- 『본격 드리블러 양성 강좌 - 프로도 틀리는 「드리블」의 기본』 ({{2015년}} 5월, 토호 출판, ISBN 9784809413049)
12. Main appearances
마에조노 마사키요가 출연한 주요 방송 프로그램, 라디오 프로그램, 드라마, 애니메이션, 광고 등의 목록은 다음과 같다.
12.1. 스포츠 프로그램
- 메가 스포츠 → neo sports (TV 도쿄)
- toto&J리그TV (스카파! 프리미엄 서비스)
- 싸워라! 스포츠 내각 (마이니치 방송, 2016년 10월 5일 ~ ) - 축구 대신 (준레귤러)
- 풋볼 타임라인 (스카파!)
- 축구의 정원 ~궁극의 원 플레이~ (NHK BS1)
12.2. 정보 프로그램
- 와이드 나 쇼 (후지 TV, 2014년 6월 22일 ~ )
- 히메폰! 내 코너, 마에조노 마사키요의 자전거 순례 여행 (NHK 마쓰야마, 2017년 5월 31일 ~ 2018년도)
- 마에조노 마사키요 시코쿠 절경 여행 (NHK 마쓰야마, 2019년도 ~ 2021년도)
- 마에조노 마사키요 시코쿠 친구 여행 (NHK 마쓰야마, 2022년도 ~ )
12.3. 버라이어티 프로그램
- 안녕 닌자대 갓차맨 → 마징가 ZIP! → 굿 모닝!!! 드론조 (닛폰 TV) - 본인 역 (목소리 출연)
- 바이킹 (후지 TV, 2015년 1월 16일 ~ 2015년 2월 6일) - 금요일 코너 레귤러
- 기쿠치 아미의 여자력 향상 위원회 (TOKYO MX, 2015년 4월 ~ ) - 레귤러
- SPA! 감수 비밀의 조노 (NOTTV, 2015년 7월 ~ 2016년 3월) - 사회
- 바라이로 단디 (TOKYO MX, 2016년 4월 ~ ) - 목요일 격주 레귤러
12.4. 교육 프로그램
- 여행을 위한 스페인어 (2022년 10월 ~ , NHK E텔레) - 여행자
12.5. 라디오 프로그램
- 미라클 워즈! (재팬 에프엠 네트워크)
- 시노소노 음악당 (JFN, 2016년 10월 ~ 2019년 3월)
- 마루소노 음악당 (JFN, 2019년 4월 ~ )
12.6. 텔레비전 드라마
- 문제 있는 레스토랑 제6화 (2015년 2월 19일, 후지 TV) - 본인 역
12.7. 극장 애니메이션
- 앵그리 버드 (2016년, 일본어 더빙판) - 조니 / 피그 세븐 역
12.8. 기타 프로그램
- 네프 리그 (2014년 10월 27일・12월 1일・15일・2015년 2월 16일・4월 13일, 2016년 1월 18일)
- 우리는 만화로 강해졌다 ~SPORTS×MANGA~ (2017년 11월 24일 NHK BS1) - 게스트 출연
- 카미우사기 로페 (2017년 10월 6일 후지 TV) '헤이헤이패스 아저씨' 종이 멧돼지 역
12.9. CM
- 나이키 「축구 유신」 ({{오구라 다카시}}, 기타자와 쓰요시, 나카니시 에이스케와 공동 출연)
- 나이키 (단독 출연)
- 부르봉 「DEWA 워터, ION 워터」
- 부르봉 「트위스터」
- 닛신식품 「닛신 라오」 (1996년) (나카타 히데토시와 공동 출연)
- AC 재팬 (1996년) (공공 광고 기구 시절 출연)
- 다이쇼 제약 「리포비탄D」 (1996년)
- 아스텔 도쿄 「PHS」 (1996년) (BEGIN과 공동 출연)
- 맨덤 「ASI's」 (1997년)
- 일본 스포츠 진흥 센터 「toto」 (2011년, 2012년) (나카니시 에이스케, 나라하시 아키라와 공동 출연)
- 2011년 - toto 백작과 OB 편
- 2012년 - Singing Soccer 편
- 오야마 주조 합자회사 「이사 다이센」 (2015년 6월)
- 콜로플 「하얀고양이 프로젝트」 (2015년 7월 ~ ) (마쓰키 야스타로, 후쿠다 마사히로, 준이치 데이비드슨, 사쿠라이 히나코와 공동 출연)
- 2015년 - 우리의 방과 후 편 (7월) / 사랑보다 우정 편 (7월) / 나의 여름방학 편 (8월) / 학원제・하얀고양이 야키소바 편 (10월) / 학원제・카페 편 (10월) / 할로윈 편 (10월) / 1년 전 편 (12월) / 모두의 하얀고양이 (연말) 편 (12월)
- 2016년 - 모두의 하얀고양이 (연초) 편 (1월) / 동료가 늘었다 편 (2월)
- 스퀘어 에닉스 스마트폰 게임 「별의 드래곤 퀘스트」 (2017년 5월) (하무스 루이, 기타자와 쓰요시, 오노 신지와 공동 출연)
- 서곡 대합창 편
- 환희의 순간 편
- 유니버설 홈 (2019년 1월 ~ ) 바닥 댄디 역
- J리그 (2021년 3월 4일 ~ ) 「온라인 이지메, 멋없다.」 (YouTube 한정)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