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동티모르 민주공화국은 동남아시아에 위치한 섬나라로, 티모르섬의 동쪽 절반과 섬 북서쪽 해안의 오엑쿠시 월경지, 그리고 인접한 아타우루섬과 자쿠섬으로 구성되어 있다. 남쪽으로는 티모르해를 사이에 두고 오스트레일리아와 마주하며, 수도는 북부 해안에 위치한 딜리이다. 국토 면적은 약 1.50 만 km2이다. 동티모르의 역사는 다양한 파푸아계 민족과 오스트로네시아계 민족의 정착으로 시작되었으며, 이로 인해 동남아시아와 멜라네시아 문화가 혼합된 독특한 문화와 언어가 형성되었다. 16세기부터 포르투갈의 영향을 받아 1975년까지 식민 지배를 받았으며, 이후 인도네시아의 침공과 점령을 겪었다. 이 점령 기간 동안 고문과 학살 등 극심한 인권 유린이 자행되었으며, 이는 동티모르 집단학살로 명명된 일련의 사건들로 이어졌다. 인도네시아 통치 기간 내내 저항 운동이 지속되었고, 1999년 유엔의 지원 하에 실시된 주민 투표를 통해 인도네시아는 영토 통제권을 포기했다. 2002년 5월 20일, 동티모르는 21세기 최초의 신생 독립국으로 탄생했다. 같은 해 인도네시아와 국교를 수립하고 정상화했으며, 인도네시아는 동티모르의 아세안(ASEAN) 가입을 지지하고 있다.
동티모르의 정치 체제는 이원집정부제이며, 국민 직선으로 선출된 대통령이 국회에서 임명한 총리와 권력 분담을 한다. 권력은 중앙 정부에 집중되어 있으나, 많은 지역 지도자들이 비공식적인 영향력을 행사한다. 동티모르는 국제 협력 정책을 유지하며, 포르투갈어 사용국 공동체(CPLP) 회원국이고, 태평양 제도 포럼의 옵서버이며, 아세안 가입을 신청한 상태이다. 경제는 석유 등 천연자원과 외국 원조에 크게 의존하고 있으며, 상대적으로 빈곤한 상태이다. 2022년 인구 조사 기준 총인구는 134만 명 이상이며, 높은 출산율로 인해 젊은층 인구 비율이 매우 높다. 교육 발전으로 지난 반세기 동안 문해율이 증가했으며, 특히 공용어인 포르투갈어와 테툼어 사용이 늘었다. 약 30개의 토착어가 사용될 만큼 민족적, 언어적 다양성이 높다. 인구 대다수는 가톨릭 신자이며, 특히 농촌 지역에서는 강력한 지역 전통 및 신앙과 공존하고 있다.
2. 국명
동티모르의 공식 국명은 영어로 Democratic Republic of Timor-Leste영어이며, 포르투갈어로는 República Democrática de Timor-Leste헤푸블리카 데모크라티카 드 티모르 레스트포르투갈어([reˈpublikɐ dɨmuˈkɾatikɐ dɨ tiˈmoɾ ˈlɛʃtɨ]), 테툼어로는 Repúblika Demokrátika Timór-Lorosa'e테툼어이다. 공식 약칭은 Timor-Leste영어이며, ISO 3166-1 국가 코드는 TLS 및 TL을 사용한다.
"티모르(Timor)"라는 이름은 말레이어로 "동쪽"을 의미하는 timur티무르말레이어에서 유래했다. 이로 인해 "동티모르"라는 국명은 어원적으로 "동쪽 동쪽"이라는 동어 반복 지명이 된다. 인도네시아어로는 이전에 사실상의 인도네시아 지방이었던 Timor Timur티모르 티무르인도네시아어라고 불렸으나, 현재 국가를 지칭할 때는 Timor Leste티모르 레스테인도네시아어를 사용한다. 포르투GAL어로 Leste레스치포르투갈어는 "동쪽"을 의미한다. 테툼어로는 Timór Lorosa'e티모르 로로사에테툼어라고 하며, 여기서 Lorosa'e로로사에테툼어는 문자 그대로 "해가 뜨는 곳"으로 번역될 수 있다.
대한민국에서는 일반적으로 동티모르로 불리며, "티모르"는 간혹 "치모르"로 표기되기도 했으나 최근에는 "티모르" 표기가 일반적이다.
3. 역사
동티모르의 역사는 선사 시대 인류 정착부터 시작하여 여러 토착 왕국의 형성과 발전을 거쳐, 16세기 포르투갈의 식민 통치 시대를 맞이한다. 1975년 포르투갈로부터 일방적으로 독립을 선언했으나, 곧이어 인도네시아의 침공과 점령을 겪으며 오랜 기간 인권 유린과 저항 운동이 이어졌다. 1999년 유엔 주관의 주민 투표를 통해 독립을 결정한 후, 혼란과 유엔 잠정 통치를 거쳐 2002년 공식적으로 독립 국가가 되었다. 독립 이후에는 국가 건설 과정에서 여러 정치적, 사회경제적 도전에 직면했으며, 2006년에는 심각한 국내 위기를 겪기도 했다.
3.1. 선사 시대와 초기 왕국
티모르섬 동부 끝에 위치한 제리말라이 유적지에서 발견된 문화 유물은 약 42,000년 전의 것으로 추정된다. 최초의 거주민들은 오스트레일리아-멜라네시아인 이동 경로를 통해 이 지역에 도착했으며, 오늘날 파푸아 제어의 조상 격인 언어를 가져온 것으로 보인다. 이후 오스트로아시아어족 화자들이 이주해 온 것으로 추정되지만, 현재 이 언어들은 남아있지 않다. 오스트로네시아족의 도래는 새로운 언어를 가져왔고, 섬의 기존 문화와 융합되었다. 티모르 기원 신화에 따르면 정착민들은 섬의 동쪽 끝을 돌아 남쪽에 상륙했다고 전해지며, 이들은 때때로 말레이반도나 수마트라섬의 미낭카바우족 고지대에서 온 것으로 언급된다. 오스트로네시아인의 티모르 이주는 섬의 농업 발달과 관련이 있을 수 있다.
이 시기 티모르의 정치 체제에 대한 정보는 제한적이지만, 섬은 관습법에 의해 통치되는 상호 연결된 여러 정치체로 발전했다. 특정 성스러운 집(우마 루릭)을 중심으로 한 작은 공동체들은 더 넓은 수코(공국)의 일부였으며, 이 수코들은 다시 리우라이(왕)가 이끄는 더 큰 왕국의 일부를 이루었다. 이 왕국들 내의 권위는 두 개인에게 있었는데, 리우라이의 세속적 권력은 일반적으로 왕국의 주요 성스러운 집과 관련된 라이 나인(영적 지도자)의 영적 권력과 균형을 이루었다. 이러한 정치체들은 수가 많았고 동맹과 관계가 변동했지만, 많은 정치체들은 16세기 유럽인들의 초기 기록부터 포르투갈 식민 통치 말기까지 살아남을 만큼 안정적이었다.
아마도 13세기부터 이 섬은 백단향을 수출했으며, 이는 공예품 제작과 향수의 원료로서 가치가 있었다. 티모르는 14세기까지 동남아시아, 중국, 인도 무역망에 포함되어 백단향, 꿀, 밀랍을 수출했다. 이 섬은 마자파힛 제국에 공물을 바치는 곳으로 기록되었다. 16세기 초 유럽 탐험가들을 이 섬으로 이끈 것은 바로 백단향이었다. 초기 유럽인들의 존재는 무역에 국한되었으며, 최초의 포르투갈 정착지는 인근 솔로르섬에 있었다.
3.2. 포르투갈 식민 시대

포르투갈령 티모르 시기는 16세기 포르투갈인들의 도래로 시작되어 1975년까지 이어졌다. 초기 포르투갈의 티모르 주둔은 매우 제한적이었으며, 무역은 인근 섬의 포르투갈 정착지를 통해 이루어졌다. 17세기에 이르러서야 네덜란드에 의해 다른 섬들에서 쫓겨난 결과로 섬에 보다 직접적인 주둔지를 마련하게 되었다. 1613년 솔로르섬을 잃은 후, 포르투갈인들은 플로레스섬으로 이동했다. 1646년에는 수도를 티모르 서부의 쿠팡으로 옮겼으나, 1652년 쿠팡마저 네덜란드에 빼앗겼다. 이후 포르투갈인들은 현재 동티모르의 오엑쿠시 월경지에 있는 리파우로 이전했다. 섬 동부에서의 실질적인 유럽인 점령은 1769년 딜리 시가 건설되면서 시작되었으나, 실제 통제는 매우 제한적이었다. 네덜란드령과 포르투갈령 티모르섬 사이의 최종 국경은 1914년 상설중재재판소에 의해 확정되었으며, 이는 각각 후계 국가인 인도네시아와 동티모르 간의 국제 경계로 남아 있다.
포르투갈에게 동티모르는 19세기 후반까지 인프라와 교육에 대한 투자가 거의 없는 방치된 교역소에 불과했다. 포르투갈이 식민지 내륙에 대한 실질적인 통제권을 확립했을 때조차 투자는 미미했다. 백단향은 계속해서 주요 수출 작물이었고, 커피 수출은 19세기 중반에 중요해졌다.
20세기 초, 국내 경제 침체로 포르투갈은 식민지로부터 더 많은 부를 착취하려 했고, 이는 동티모르인들의 저항에 부딪혔다. 식민지는 대공황 시기에 경제적 부담으로 여겨졌고 포르투갈로부터 거의 지원이나 관리를 받지 못했다.
제2차 세계 대전 중 딜리는 1941년 연합군에게, 이후 1942년부터 일본군에게 점령당했다. 식민지의 산악 내륙 지역은 티모르 전투로 알려진 유격전의 현장이 되었다. 동티모르 자원병들과 연합군이 일본군에 맞서 벌인 이 전투로 인해 동티모르 민간인 4만에서 7만 명이 사망했다. 일본군은 결국 1943년 초 마지막 오스트레일리아 및 연합군을 몰아냈다. 그러나 제2차 세계 대전 종전 후 일본이 항복하면서 포르투갈의 통치가 재개되었다.
포르투갈은 1950년대에 식민지에 투자를 시작하여 교육을 지원하고 커피 수출을 장려했지만, 경제는 실질적으로 개선되지 않았고 인프라 개선도 제한적이었다. 연간 성장률은 2%에 가까운 낮은 수준에 머물렀다. 1974년 포르투갈 혁명 이후 포르투갈은 사실상 티모르 식민지를 포기했고, 1975년 동티모르 정당 간의 내전이 발발했다.
동티모르 독립혁명전선(FRETILIN, 프레틸린)은 1975년 8월 티모르 민주연합(UDT)의 쿠데타 시도에 저항했고, 1975년 11월 28일 일방적으로 독립을 선언했다. 인도네시아 군도는 공산주의 국가의 출현을 우려하여, 1975년 12월 7일 동티모르를 침공했다. 인도네시아는 1976년 7월 17일 동티모르를 27번째 주로 선포했다. 유엔 안전 보장 이사회는 침공에 반대했고, 유엔에서 이 영토의 명목상 지위는 "포르투갈 행정 하의 비자치 지역"으로 남았다.
3.3. 인도네시아의 침공과 점령

프레틸린은 처음에는 군대로서 저항하여 1978년 11월까지 영토를 장악했고, 그 후에는 게릴라 저항운동을 펼쳤다. 인도네시아의 동티모르 점령은 폭력과 잔혹 행위로 점철되었다. 동티모르 진실수용화해위원회를 위해 준비된 상세 통계 보고서에 따르면, 1974년부터 1999년까지 최소 102,800명의 분쟁 관련 사망자가 발생했으며, 이 중 약 18,600명은 살해되었고 84,200명은 기아와 질병으로 인한 초과 사망자였다. 데이터 부족으로 이 기간 동안의 총 분쟁 관련 사망자 수를 정확히 파악하기는 어렵다. 포르투갈, 인도네시아, 가톨릭 교회 자료를 바탕으로 한 추정치에 따르면 최대 20만 명에 이를 수도 있다. 억압과 규제는 보건 및 교육 인프라와 서비스 개선 효과를 상쇄시켜 생활 수준의 전반적인 개선은 거의 없었으며, 경제 성장은 주로 인도네시아 다른 지역에서 온 이민자들에게 혜택을 주었다. 대규모 교육 확대는 개발 목적만큼이나 인도네시아어 사용 증진과 내부 안보 강화를 의도한 것이었다.
1991년 인도네시아 군에 의한 200명 이상의 시위대 학살 사건인 산타크루스 학살은 독립 운동의 전환점이 되었고, 인도네시아에 대한 국제적 압력을 가중시켰다. 인도네시아 대통령 수하르토의 사임 이후, 존 하워드 오스트레일리아 총리의 서한에 자극받은 신임 대통령 B. J. 하비비는 독립에 관한 주민 투표를 실시하기로 결정했다. 인도네시아와 포르투갈 간의 유엔 후원 협정은 1999년 8월 유엔 감독 하의 주민 투표를 허용했다. 명확한 독립 찬성 투표 결과는 인도네시아 군부의 지원을 받는 동티모르 친인도네시아 민병대에 의한 보복적인 폭력 캠페인으로 이어졌다. 이에 대응하여 인도네시아 정부는 다국적 평화유지군인 동티모르 국제군(INTERFET)이 질서를 회복하고 동티모르 난민과 국내 실향민을 지원하는 것을 허용했다. 1999년 10월 25일, 유엔 동티모르 잠정 통치 기구(UNTAET)를 통해 유엔이 동티모르 행정권을 인수했다. INTERFET 파병은 2000년 2월 군 지휘권이 유엔으로 이양되면서 종료되었다.
3.4. 독립 과정과 유엔 잠정 통치
1999년 8월 30일, 인도네시아로부터의 독립 여부를 묻는 주민 투표가 유엔의 주관 하에 실시되었다. 투표 결과, 압도적인 다수(78.5%)가 독립을 찬성했다. 그러나 투표 직후, 인도네시아 군부의 지원을 받는 친(親)인도네시아 민병대들이 폭력 사태를 일으켜 수많은 사상자와 난민이 발생하고 기반 시설이 파괴되는 혼란이 뒤따랐다. 이에 국제 사회가 개입하여 오스트레일리아를 주축으로 한 동티모르 국제군(INTERFET)이 파견되어 치안을 회복했다.
1999년 10월, 유엔 안전 보장 이사회 결의 제1272호에 따라 유엔 동티모르 잠정 통치 기구(UNTAET)가 설립되어, 독립 국가 수립까지 동티모르의 행정을 담당했다. UNTAET는 국가 재건, 민주적 제도 구축, 공무원 양성 등 광범위한 과제를 수행했다.
2001년 8월 30일, 동티모르인들은 제헌의회 의원을 선출하기 위한 첫 선거에 참여했다. 2002년 3월 22일, 제헌의회는 헌법을 승인했다.
3.5. 독립 이후
2002년 5월 20일, 동티모르는 공식적으로 독립을 선포하고, 샤나나 구스망이 초대 대통령으로, 마리 알카티리가 초대 총리로 취임했다. 독립 직후 동티모르는 국가 건설, 경제 발전, 사회 안정 등 여러 도전에 직면했다. 석유와 천연가스 자원이 주요 수입원이 되었으나, 경제 다각화와 빈곤 퇴치가 중요한 과제로 남았다. 정치적으로는 신생 민주주의 국가로서 제도를 정착시키는 과정에서 여러 어려움을 겪었다. 2002년 9월 27일 유엔 회원국이 되었다.
3.5.1. 2006년 위기
2006년, 동티모르에서는 군인들의 처우 개선 요구 시위가 대규모 정치적, 사회적 위기로 번졌다. 군 내부의 동서 지역 출신 간 갈등, 해고된 군인들의 불만, 경찰과 군의 충돌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수도 딜리를 중심으로 폭력 사태가 발생했다. 이로 인해 약 15만 5천 명의 이재민이 발생하고 사회 질서가 마비되었다. 샤나나 구스망 당시 대통령은 마리 알카티리 총리의 사임을 요구했고, 결국 알카티리 총리가 사임한 후 조제 하무스오르타가 총리로 임명되었다. 국제 사회는 위기 해결을 위해 오스트레일리아 주도의 국제안정군(ISF)을 파견했고, 유엔은 유엔 동티모르 통합 임무단(UNMIT)을 설립하여 치안 유지와 정치적 안정을 지원했다. 이 위기는 신생 독립국의 취약성과 내부 갈등 해결의 어려움을 드러냈으며, 국가 통합과 제도 강화의 필요성을 부각시켰다.
3.5.2. 최근 정세
2006년 위기 이후 동티모르는 정치적 안정을 회복하고 국가 발전을 위한 노력을 지속해왔다. 샤나나 구스망은 2007년 총선에서 승리하여 총리가 되었고, 조제 하무스오르타는 2007년 대통령으로 선출되었다. 2008년에는 하무스오르타 대통령과 구스망 총리에 대한 암살 시도가 있었으나 실패로 돌아갔다. 국제 사회의 지원 속에 치안은 점차 안정되었고, 유엔 평화유지 임무는 2012년 말 종료되었다.
정치적으로는 프레틸린(FRETILIN)과 동티모르 재건국민회의(CNRT) 등 주요 정당 간의 경쟁과 연립 정부 구성이 반복되었다. 2017년 프란시스쿠 구테흐스(프레틸린 소속)가 대통령으로 당선되었으나, 이후 구성된 소수 정부가 의회에서 예산안을 통과시키지 못하면서 2018년 조기 총선이 실시되었다. 이 선거 결과 타우르 마탄 루악이 총리로 취임했다. 2022년 대선에서는 조제 하무스오르타가 프란시스쿠 구테흐스를 누르고 다시 대통령으로 당선되었다. 2023년 총선 이후 샤나나 구스망이 다시 총리로 취임하였다.
경제적으로는 석유 및 가스 수입에 대한 의존도를 줄이고 경제를 다각화하려는 노력이 계속되고 있으며, 인프라 개발, 교육 및 보건 개선, 빈곤 퇴치 등이 주요 과제로 남아있다. 동티모르는 아세안(ASEAN) 가입을 추진하고 있으며, 2022년 원칙적으로 가입이 승인되어 정식 회원국이 되기 위한 절차를 밟고 있다.
4. 정치
동티모르는 이원집정부제에 기반한 대통령제 공화국으로, 행정부, 입법부, 사법부 간의 삼권분립 원칙을 채택하고 있으며, 다당제 민주주의를 표방한다. 헌법은 대통령과 총리 간의 행정 권력 분립과 더불어 행정, 입법, 사법부 간의 권력 분립을 명시하고 있다. 개인은 입법부와 행정부에 동시에 참여할 수 없다. 입법부는 행정부를 견제하도록 의도되었으나, 실제로는 모든 정당 하에서 행정부가 입법부를 통제해왔으며, 이는 정당 및 연립 내 개별 지도자들의 우위를 반영한다. 행정부는 각료회의를 통해 일부 공식적인 입법 권한도 보유한다. 사법부는 독립적으로 운영되지만, 행정부의 간섭 사례도 일부 존재한다. 정치적 수사에도 불구하고, 정치인들은 헌법과 민주적 제도를 준수해왔으며, 정부 교체는 평화적으로 이루어진다. 선거는 독립적인 기관에 의해 운영되며, 투표율은 약 70%에서 85%로 높은 편이다. 정치 체제는 광범위한 대중적 수용성을 가지고 있다.
4.1. 정부 구조


동티모르의 국가원수는 대통령으로, 국민 직접 선거를 통해 5년 임기로 선출되며 최대 2회 연임할 수 있다. 공식적으로 직접 선출된 대통령은 유사한 체제의 대통령에 비해 상대적으로 제한된 권한을 가지며, 총리 및 각료회의의 임명 및 해임에 대한 권한이 없다. 그러나 직접 선출되기 때문에 과거 대통령들은 큰 비공식적 권력과 영향력을 행사해왔다. 대통령은 정부 입법에 대한 거부권, 국민투표 발의권, 정부 구성이나 예산 통과 불능 시 의회 해산권을 가진다. 대통령이 입법 조치를 거부하면 의회는 3분의 2 다수결로 거부권을 번복할 수 있다.
총리는 국회에서 선출되며, 대통령은 다수당 또는 연립의 지도자를 총리로 임명하고, 총리의 제안에 따라 내각을 임명한다. 정부수반으로서 총리는 내각을 주재한다. 국회는 단원제이며, 의원은 국민 직접 선거를 통해 5년 임기로 선출된다. 의석 수는 최소 52석에서 최대 65석까지 다양할 수 있다. 정당은 의회에 진출하기 위해 3%의 득표율을 달성해야 하며, 자격이 있는 정당에 대한 의석은 동트 방식을 사용하여 배분된다.
정치와 행정은 수도 딜리에 집중되어 있으며, 국가 정부가 대부분의 공공 서비스를 책임진다. 인도네시아 영토로 둘러싸여 본토와 분리된 오엑쿠시는 일부 자치권을 가진 특별 행정구역이다. 동티모르 국가경찰과 동티모르 국방군은 2008년 이후 폭력의 독점을 유지하고 있으며, 이들 조직 외에는 총기가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권력 남용 혐의가 있지만, 경찰에 대한 사법적 감독이 일부 이루어지고 있으며 경찰에 대한 대중의 신뢰도도 높아졌다. 활발한 시민 사회는 정부로부터 독립적으로 기능하며, 언론 매체도 마찬가지이다. 시민 사회 단체는 학생 단체를 포함하여 수도에 집중되어 있다. 경제 구조로 인해 강력한 노동조합은 없다. 가톨릭 교회는 국가에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한다.
4.2. 주요 정당 및 선거
동티모르는 경쟁적인 다당제 하에서 선거가 치러진다. 독립 시에는 인도네시아 침공 직전에 결성되어 저항을 이끌었던 프레틸린(FRETILIN, 동티모르 독립혁명전선)이 권력을 장악했다. 프레틸린은 역사적 배경으로 인해 스스로를 당연한 집권 정당으로 여겼으며, 우위정당제 발전을 예상하며 다당제를 지지했다. 독립 전후 유엔과 국제사회의 지원은 2006년 동티모르 위기와 같은 충격에도 불구하고 신생 정치 체제가 생존할 수 있도록 했다.
의회 선거 후보자들은 단일 전국 선거구에서 정당 명부제로 출마한다. 정당이 제시하는 모든 후보자 중 3분의 1은 여성이어야 한다. 이 제도는 다양한 정당의 출현을 촉진하지만, 유권자들이 각 정당이 선택한 개별 후보자에 대해 거의 영향을 미치지 못하게 한다. 여성은 의회 의석의 3분의 1 이상을 차지하며, 정당은 법적으로 여성 후보를 공천해야 하지만, 다른 직위나 정당 지도부에서는 여성의 존재감이 덜하다.
정치적 분열은 계급 노선과 지리적 노선에 따라 존재한다. 인도네시아 통치 하에서 발생한 차이에서 비롯된 동부 지역과 서부 지역 간의 광범위한 분열이 있다. 특히 프레틸린은 동부 지역과 강하게 연결되어 있다. 정당들은 이념보다는 저명한 인물들과 더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동티모르 재건국민회의(CNRT)는 샤나나 구스망이 2007년 국회의원 선거에서 총리로 출마할 수 있도록 창당된 이후 프레틸린의 주요 반대 세력이 되었다. 두 주요 정당은 비교적 안정적이지만, 여전히 인도네시아에 대한 저항 운동 시기에 두각을 나타낸 "구세대" 인물들이 이끌고 있다.
5. 대외 관계 및 군사
동티모르는 국제 협력을 중시하며, 석유 수입이 이를 대체하기 전까지는 기부금이 예산의 80%를 차지했다. 국제군은 1999년부터 5개의 유엔 임무를 통해 안보를 제공했으며, 마지막 임무인 유엔 동티모르 통합 임무단(UNMIT)은 2006년 동티모르 위기 이후 시작되어 2012년에 종료되었다. 동티모르는 아세안(ASEAN) 가입을 위해 2011년 공식 신청했으며, 2022년 11월 원칙적으로 가입이 승인되어 옵서버 지위를 부여받았다. 아세안 가입은 경제 및 안보상의 이유, 특히 인도네시아와의 관계 개선을 위해 추진되었으나, 일부 아세안 국가들의 지지 부족으로 과정이 더디게 진행되었다. 이와 함께 동티모르는 태평양 제도 포럼과 멜라네시아 선봉 그룹의 옵서버 국가이다. 또한, 취약국 모임인 G7+의 주도국이며, 포르투갈어 사용국 공동체(CPLP) 회원국이다.
5.1. 대외 관계
동티모르는 오스트레일리아, 포르투갈, 독일, 일본 등으로부터 지속적인 양자 원조를 받고 있으며, 기부금을 효과적이고 투명하게 사용하는 것으로 평가받는다. 오스트레일리아 및 인도네시아와의 우호 관계는 역사적 및 최근의 긴장에도 불구하고 정부의 주요 정책 목표이다. 이들 국가는 중요한 경제 파트너이며 동티모르로의 대부분 교통망을 제공한다. 중국 또한 딜리의 인프라 건설에 기여하며 영향력을 확대하고 있다.
오스트레일리아와의 관계는 독립 이전부터 양국 간 해양의 티모르갭 천연자원 분쟁으로 인해 지배되어 왔으며, 상호 합의된 국경 설정에 어려움을 겪었다. 오스트레일리아의 하드 파워 우위에 맞서 동티모르는 공공외교와 국제법 포럼을 활용하여 자국의 입장을 관철하려 했다. 이 분쟁은 2018년 상설중재재판소의 조정 절차를 거쳐 양국이 해상 경계를 설정하고 천연자원 수입에 합의하는 조약을 체결함으로써 해결되었다.
5.1.1. 주요 국가와의 관계
5.1.2. 국제기구 활동
동티모르는 독립 이후 국제 사회의 일원으로 적극적인 활동을 펼치고 있다. 2002년 9월 27일 국제 연합(UN)의 191번째 회원국으로 가입했으며, 다양한 유엔 기구 및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있다. 또한, 포르투갈어 사용국 공동체(CPLP)의 정회원국으로서 포르투갈어권 국가들과의 정치, 경제, 문화적 유대를 강화하고 있다.
동티모르는 아세안(ASEAN) 가입을 국가적 목표로 추진해 왔으며, 2011년 공식 가입 신청서를 제출했다. 오랜 노력 끝에 2022년 11월 아세안 정상회의에서 원칙적으로 가입이 승인되었고, 현재 정식 회원국이 되기 위한 로드맵을 이행 중이다. 아세안의 모든 회의에 옵서버로 참석하고 있다.
이 외에도 동티모르는 태평양 제도 포럼(PIF)의 옵서버 국가이며, 개발도상국 및 취약국 그룹인 G7+의 창립 멤버이자 주도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또한 비동맹 운동, 세계무역기구(WTO, 2024년 2월 가입) 등 여러 국제기구 및 협의체에 참여하며 국제 무대에서 목소리를 내고 있다.
5.2. 군사
동티모르 국방군(Falintil-FDTL, F-FDTL)은 2001년 창설되었으며, 이전의 독립 투쟁 군사 조직인 팔린틸(FALINTIL)을 대체했다. 2006년 위기 이후 재편 과정을 거쳤다. F-FDTL은 외부 위협으로부터 국가를 방어하는 임무뿐만 아니라, 동티모르 국가경찰(PNTL)과 함께 강력 범죄를 다루는 역할도 수행한다. 병력 규모는 작아서 정규군 약 2,200명과 해군 소속 약 80명으로 구성된다. 장비로는 단일 항공기(세스나 172)와 7척의 순찰정을 운용하고 있으며, 해군력 증강 계획이 있다. 국방 정책은 주로 영토 방위와 내부 안보 유지에 초점을 맞추고 있으며, 오스트레일리아, 포르투갈, 미국 등과 군사 협력을 진행하고 있다.
6. 행정 구역

동티모르는 14개 지방 자치체(municipality)로 구성되며, 이는 다시 64개 행정 구역(administrative post), 442개 수코(suco, 마을), 2,225개 알데이아(aldeia, 작은 마을)로 세분된다. 기존의 지방 자치체 및 행정 구역 체계는 포르투갈 통치 기간에 수립되었다. 헌법에는 지방 분권이 언급되어 있지만, 행정 권한은 대체로 딜리에 있는 중앙 정부에 집중되어 있다. 독립 시 지방 분권 실행 방안에 대한 논의가 있었으며, 다양한 제안 모델은 수코와 중앙 정부 사이에 다른 수준의 행정 단위를 만드는 것이었다. 대부분의 제안에서 수코 수준의 거버넌스에 대한 구체적인 규정은 없었고, 주로 전통적인 공간으로 남아 시민 행정의 일부라기보다는 공동체를 식별하는 역할을 할 것으로 예상되었다. 결국 기존의 현(district)은 유지되어 2009년 지방 자치체(municipality)로 명칭이 변경되었고, 매우 적은 권한만을 부여받았다.
2016년 변경 사항으로 각 지방 자치체는 중앙 정부가 임명한 공무원이 이끌게 되었으며, 이 공무원은 지역에서 선출된 지도자들의 자문을 받는다. 본토에서 인도네시아 영토로 분리되어 고립된 오엑쿠시 지방 자치체는 2002년 헌법 제5조와 제71조에 따라 특별 행정 정책 및 경제 체제로 운영되도록 명시되어 있다. 2014년 6월 18일 법률 제3/2014호가 이 헌법 조항을 시행하여 2015년 1월부터 오엑쿠시는 특별 행정구역(Special Administrative Region)으로 전환되었고, 2015년 6월 자체 공무원 제도를 운영하기 시작했다. 2022년 1월, 이전에는 딜리 지방 자치체의 행정 구역이었던 아타우루섬이 자체 지방 자치체로 승격되었다. 정부는 아타우루의 인구가 지방 의회를 선출하기에 부족하다고 밝히며, 오엑쿠시와 유사한 특별 경제 구역으로 전환할 계획이다.
동티모르 행정 체계의 최하위 단위인 알데이아와 수코의 행정은 대체로 전통 관습을 반영하며, 지역 공동체의 정체성과 지역 가구 간의 관계를 나타낸다. 수코는 일반적으로 2,000명에서 3,000명의 주민으로 구성된다. 수코의 오랜 지속성과 지역 거버넌스와의 연관성 때문에, 수코는 상위 행정 단위보다는 공동체의 정체성과 연결된 정부 수준이다. 그러나 이러한 관계는 토지 자체보다는 해당 토지 내 친족 집단과 특별히 연관된다. 수코 간의 관계 또한 관습적 관행을 반영하며, 예를 들어 지역 사업에 대한 상호 지원 교환을 통해 이루어진다. 2004년에 통과된 법률은 일부 수코 공무원의 선출을 규정했지만, 이 직위에는 공식적인 권한을 부여하지 않았다. 2009년 개정된 법률은 이 직위의 예상 권한 범위를 설정했지만, 여전히 공식적인 국가 시스템 외부로 남겨두어 공식 행정 및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지방 자치 정부에 의존하게 했다. 2016년 추가적인 명확화가 이루어져 수코와 알데이아를 공식적인 행정 단위라기보다는 공동체로 취급하는 경향이 강화되었다. 국가와의 공식적인 연관성이 부족함에도 불구하고, 수코 지도자들은 큰 영향력을 행사하며 종종 지역 사회에서 국가의 대표자로 간주되어 시민 행정과 관련된 책임을 맡는다.
지방 자치체 | 수도 | 인구 (2022년) |
---|---|---|
1. 아이레우 (Aileu) | 아이레우 (Aileu) | 54,631 |
2. 아이나루 (Ainaro) | 아이나루 (Ainaro) | 72,989 |
3. 아타우루 (Atauro) | 빌라 마우메타 (Vila Maumeta) | 10,302 |
4. 바우카우 (Baucau) | 바우카우 (Baucau) | 133,881 |
5. 보보나루 (Bobonaro) | 말리아나 (Maliana) | 106,543 |
6. 코바리마 (Cova Lima) | 수아이 (Suai) | 73,909 |
7. 딜리 (Dili) | 딜리 (Dili) | 324,269 |
8. 에르메라 (Ermera) | 글레누 (Gleno) | 138,080 |
9. 라우템 (Lautém) | 로스팔루스 (Lospalos) | 69,836 |
10. 리키사 (Liquiçá) | 리키사 (Liquiçá) | 83,689 |
11. 마나투투 (Manatuto) | 마나투투 (Manatuto) | 50,989 |
12. 마누파이 (Manufahi) | 사므 (Same) | 60,536 |
13. 오엑쿠시 (Oecusse) | 판트마카사르 (Pante Macassar) | 80,726 |
14. 비케케 (Viqueque) | 비케케 (Viqueque) | 80,054 |
동티모르 전체 | 딜리 | 1,340,434 |
7. 지리
동티모르는 동남아시아와 남태평양 사이에 위치하며, 티모르섬은 말레이 제도 내 소순다 열도 중 가장 큰 섬이다. 이처럼 티모르섬은 소순다 열도, 술라웨시섬, 말루쿠 제도와 함께 아시아와 오세아니아의 경계 지역인 월레이시아 지역의 일부를 형성한다. 이 섬은 북쪽으로는 거친 반다해의 옴바이 해협과 웨타르 해협에, 남쪽으로는 잔잔한 티모르해에 둘러싸여 있다. 동티모르는 인도네시아와 섬을 공유하며, 인도네시아 영토가 오엑쿠시 월경지를 나머지 지역과 분리한다. 아타우루섬은 본토 북쪽에 위치하며, 네 번째 지역은 작은 자쿠섬이다. 사부해는 오엑쿠시 북쪽에 있다. 국토는 약 265 km 길이에 97 km 너비이며, 총 육지 면적은 1.49 만 km2이다. 이 영토는 남위 8도 15분 ~ 10도 30분, 동경 125도 50분 ~ 127도 30분 사이에 위치한다. 국토의 해안선은 약 700 km에 달하며, 인도네시아와의 주요 육지 국경은 125 km, 오엑쿠시 육지 국경은 약 100 km이다. 해상 국경은 남쪽으로는 오스트레일리아와, 그 외 지역에서는 인도네시아와 접한다. 동티모르의 배타적 경제 수역(EEZ)은 7.71 만 km2이다.
7.1. 자연 환경


동티모르 내륙은 산악 지형으로, 비활화산 산맥이 섬을 따라 뻗어 있다. 국토의 거의 절반이 최소 40%의 경사도를 가지고 있다. 남부는 산이 약간 적고 해안선 근처에 일부 평야가 있다. 가장 높은 지점은 타타마일라우산(라마라우산으로도 알려짐)으로 해발 2963 m이다. 대부분의 강은 건기에는 최소한 부분적으로 마른다. 일부 해안 지역과 강 계곡을 제외하고 토양은 얕고 침식되기 쉬우며 품질이 낮다. 수도이자 가장 큰 도시는 딜리이다. 두 번째로 큰 도시는 동부의 바우카우이다.
7.2. 기후
기후는 열대성이며 연중 기온이 비교적 안정적이다. 우기는 전국적으로 12월부터 5월까지 지속되며, 남부와 내륙에서는 오스트레일리아에서 불어오는 몬순의 영향으로 약간 더 길다. 이 기간 동안 강우량은 월 222 mm에서 252 mm에 이를 수 있다. 건기에는 월 12 mm에서 18 mm로 감소한다. 동티모르는 폭우로 인한 홍수와 산사태에 취약하며, 특히 라니냐 현상으로 강우량이 증가할 때 더욱 그렇다. 산악 내륙 지역은 해안보다 시원하다. 해안 지역은 지하수에 크게 의존하며, 지하수는 관리 부실, 삼림 벌채, 기후 변화로 인해 압박을 받고 있다. 기후 변화로 인해 기온이 약간 상승한 것으로 생각되지만, 연간 강우량에는 거의 변화가 없었다.
7.3. 생태계와 생물 다양성
국가 주변의 해안 생태계는 다양하며, 북부와 남부 해안선 사이, 그리고 동쪽 끝과 서쪽 지역 사이에서 공간적으로 다양하다. 이러한 생태계에는 산호초가 포함되는데, 이는 동티모르 해역이 산호 삼각지대 생물 다양성 핵심 지역의 일부이기 때문이다. 동티모르의 가장 동쪽 지역은 파이트차우 산맥과 이라랄라루호 지역으로 구성되며, 이곳에는 동티모르 최초의 보호 구역인 니누 코니스 산타나 국립공원이 있다. 이 공원은 국내에 남아 있는 마지막 열대 건조림 지역을 포함하고 있다. 이곳에는 여러 고유 동식물종이 서식하며 인구 밀도가 낮다. 북부 해안은 위험에 처한 것으로 판단된 여러 산호초 시스템이 특징이다.
동티모르에는 약 41,000종의 육상 식물종이 있다. 2010년대 중반 삼림은 동티모르 국토의 35%를 덮고 있었다. 북부 해안, 중앙 고지대, 남부 해안의 숲은 뚜렷한 특징을 보인다. 동티모르는 티모르 및 웨타르 낙엽수림 생태 지역의 서식지이다. 법적으로 환경 보호 규정이 일부 있지만, 정부의 우선순위는 아니었다. 기후 변화 외에도 지역 생태계는 삼림 벌채, 토지 황폐화, 남획, 오염으로 위협받고 있다.
동티모르의 동물군은 다양하며 수많은 고유종 및 멸종 위기종을 포함하고 있다. 섬 전체를 덮고 있는 티모르 및 웨타르 낙엽수림 지역에는 38종의 포유류가 서식한다. 동티모르의 두 고유 포유류 종은 티모르땃쥐와 티모르관박쥐이다. 동티모르와 이 지역에서 가장 큰 포유류인 자와사슴과 유일한 토종 유대류인 북부쿠스쿠스는 모두 선사 시대에 각각 소순다 열도와 뉴기니섬에서 온 정착민들에 의해 섬으로 유입된 것으로 여겨진다. 동티모르에서 발견되는 다른 포유류로는 필리핀원숭이, 수많은 종류의 박쥐, 그리고 수생 포유류인 듀공이 있다. 동티모르에는 또한 고유의 말 품종인 티모르조랑말이 있다.
동티모르의 육상 생물 다양성은 토종 조류 종에서 가장 두드러진다. 2022년 현재 동티모르에서는 총 289종의 조류가 발견된다. 심각하게 위협받는 조류 종에는 멸종 위기종인 티모르녹색비둘기와 웨타르땅비둘기, 그리고 심각한 멸종 위기종인 노란갓유황앵무가 포함된다. 동티모르에는 무지개앵무의 고유 아종인 S. i. rubripileum이 서식한다.
솔로몬 제도, 파푸아뉴기니, 필리핀,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오스트레일리아와 함께 동티모르는 세계에서 가장 다양한 산호초가 서식하는 산호 삼각지대에 위치한 국가 중 하나이다. 특히 아타우루섬의 산호초는 조사된 모든 지역 중 평균 어류 생물 다양성이 가장 높은 것으로 인정받았으며, 아타우루섬 연안의 산호초 지역은 평균 253종의 다양한 어종을 보유하고 있다. 동티모르의 단일 지역에서 기록된 가장 많은 어종 수는 642종으로, 인도네시아의 라자암팟 제도에 이어 조사된 지역 중 2위를 차지했다.
또한, 이 산호초들은 산호 삼각지대의 다른 지역에 비해 산호 백화 현상과 해수 온도 상승으로 인한 피해가 제한적인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비교적 원시 상태임에도 불구하고, 산호초는 여전히 기후 변화와 서식지 파괴, 특히 폭발물을 이용한 어업(blast fishing)으로 위협받고 있다. 이는 특히 상어와 같은 대형 해양 생물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것으로 여겨진다. 산호초의 다양성에도 불구하고 2016년 조사에서는 상어가 현저히 부족한 것으로 기록되었다.
동티모르의 고립성과 관광객 부족이 산호초 보존에 도움이 된 것으로 여겨지며, 이는 발리와 같이 관광객이 많은 지역과는 대조적이다. 발리에서는 관광객 과잉이 산호초 건강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동티모르 정부와 아타우루섬 주민들은 지역 주민 교육, 해로운 개발 프로젝트 거부, 자연 보존에 대한 전통법인 타라 반두(Tara Bandu) 강조 등을 통해 산호초를 보존하려는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8. 경제

동티모르의 경제는 시장 경제 체제를 따르지만, 소수 품목 수출에 의존하고 공공 부문이 큰 비중을 차지한다. 국내적으로는 광범위한 빈곤으로 인해 시장 운영이 제한적이다. 국가는 미국 달러를 사용하며, 소액 거래를 용이하게 하기 위해 자체 주화를 생산한다. 경제는 일반적으로 외국인 투자에 개방되어 있지만, 외국인의 토지 소유 금지로 인해 많은 경우 현지 파트너가 필요하다. 경쟁은 정부 장벽보다는 경제 규모가 작기 때문에 제한된다. 수출보다 수입이 훨씬 많으며, 상품 가격은 종종 인근 국가보다 높다. 인플레이션은 정부 지출에 크게 영향을 받는다. 2011년부터 2021년까지 연평균 성장률은 2.5%에 불과했다.
국민 대부분이 매우 가난하며, 40% 이상이 국가 빈곤선 이하의 생활을 하고 있다. 이러한 빈곤은 특히 농촌 지역에서 심각하며, 많은 사람들이 자급자족 농업이나 어업에 종사한다. 도시 지역에서도 대다수가 가난하다. 전반적으로 여성은 남성보다 가난하며, 종종 저임금 직종에 고용된다. 영양실조가 흔하며, 어린이의 절반 이상이 성장 부진을 보인다. 2016년 기준 기혼 근로 연령(15-49세) 남성의 91%가 고용된 반면, 기혼 근로 연령 여성은 43%만 고용되었다. 주택 및 토지 소유, 은행 계좌 보유 측면에서 남성에게 유리한 약간의 불균형이 있다. 인구의 약 4분의 1이 거주하는 동부 3개 지방 자치체는 인구의 50%가 거주하는 서부 지역보다 빈곤이 덜하다.
가구의 66%가 자급자족 활동으로 일부 생계를 유지하지만, 국가 전체적으로는 자급자족할 만큼 충분한 식량을 생산하지 못하여 수입에 의존한다. 농업 노동은 빈곤을 의미하며, 이 부문은 정부로부터 거의 투자를 받지 못한다. 국내 어획량의 94%는 해양, 특히 연안 어업에서 나온다. 수도 딜리 주민들은 평균적으로 형편이 낫지만, 국제 기준으로 보면 여전히 가난하다. 민간 부문의 규모가 작아 정부가 종종 공기업의 고객이 된다. 전국 인구의 4분의 1이 비공식 경제에 종사하며, 공식 공공 및 민간 부문은 각각 9%를 고용한다. 근로 연령 인구 중 약 23%가 공식 부문에, 21%가 학생, 27%가 자급자족 농어민이다. 경제는 주로 현금 기반이며, 은행에서 상업 신용을 거의 이용할 수 없다. 해외 근로자 송금액은 연간 약 1.00 억 USD에 달한다.
이러한 빈곤은 천연자원 측면에서 상당한 부를 감추고 있으며, 독립 당시 1인당 가치는 중상위 소득 국가의 부에 해당했다. 이 중 절반 이상이 석유였고, 4분의 1 이상이 천연가스였다. 동티모르 석유 기금은 2005년 이러한 비재생 자원을 보다 지속 가능한 형태의 부로 전환하기 위해 설립되었다. 2005년부터 2021년까지 석유 판매로 벌어들인 230.00 억 USD가 기금에 유입되었다. 투자로 80.00 억 USD가 창출되었고, 120.00 억 USD가 지출되었다. 석유 및 가스 매장량 감소로 2010년부터 인간 개발 지수(HDI)가 하락하기 시작했다. 정부 지출의 80%가 이 기금에서 나오며, 2021년 기준 190.00 억 USD로 국가 예산 규모의 10배에 달한다. 석유 수입이 감소함에 따라 기금 고갈 위험이 있으며, 2009년 이후 거의 매년 인출액이 지속 가능한 수준을 초과했다. 바유운단 유전 내 자원은 곧 고갈될 것으로 예상되며, 아직 개발되지 않은 그레이터 선라이즈 유전 내 자원 추출은 기술적, 정치적으로 어려운 것으로 입증되었다. 남아있는 잠재 매장량 또한 석유와 가스가 덜 선호되는 에너지원이 됨에 따라 가치가 하락하고 있다.
동티모르 경제는 정부 지출과 그보다 적은 정도로 외국 원조에 의존한다. 정부 지출은 2012년부터 감소하기 시작했으며, 이는 이후 몇 년간 민간 부문에 연쇄적인 영향을 미쳤다. 정부와 국영 석유 회사는 종종 대규모 민간 프로젝트에 투자한다. 정부 지출 감소는 GDP 성장률 감소와 일치했다. 석유 기금 다음으로 정부 수입의 두 번째로 큰 원천은 세금이다. 세수는 GDP의 8% 미만으로, 이 지역의 다른 많은 국가나 유사한 규모의 경제보다 낮다. 다른 정부 수입은 항만 당국, 인프라 회사, 동티모르 국립대학교 등을 포함한 23개 "자치 기관"에서 나온다. 전반적으로 정부 지출은 세계에서 가장 높은 수준 중 하나이지만, 교육, 보건, 수도 인프라 투자는 미미하다.
민간 부문 발전은 인적 자본 부족, 인프라 취약성, 불완전한 법률 시스템, 비효율적인 규제 환경으로 인해 뒤처져 있다. 재산권은 포르투갈 및 인도네시아 통치 시대의 상충되는 소유권과 전통적인 관습적 권리를 수용해야 하는 필요성으로 인해 여전히 불분명하다. 2010년 기준 도시 가구(321,043명)의 87.7%와 농촌 가구(821,459명)의 18.9%가 전기를 사용하며, 전체 평균은 38.2%이다. 민간 부문은 노동 연령 인구 증가에도 불구하고 2014년에서 2018년 사이에 위축되었다. 농업과 제조업은 독립 당시보다 1인당 생산성이 낮다. 비석유 경제 부문은 발전하지 못했으며, 건설 및 행정 부문의 성장은 석유 수입에 의존한다. 석유 의존은 자원의 저주의 일부 측면을 보여준다. 2013년부터 2019년까지 커피는 전체 비화석 연료 수출의 90%를 차지했으며, 이러한 모든 수출은 연간 약 2000.00 만 USD에 달했다. 2017년에는 75,000명의 관광객이 이 나라를 방문했다.
8.1. 주요 산업
동티모르의 주요 산업은 석유 및 천연가스, 농업, 어업, 관광업이다.
- 석유 및 천연가스: 경제의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며, 티모르해의 유전에서 생산된다. 바유운단 유전과 그레이터 선라이즈 유전이 주요 유전이며, 수익은 동티모르 석유 기금을 통해 관리된다. 그러나 매장량 고갈과 국제 유가 변동성에 대한 우려가 크다.
- 농업: 인구의 대다수가 종사하지만, 주로 자급자족적 성격이 강하다. 주요 작물은 쌀, 옥수수, 커피, 카카오 등이다. 특히 동티모르 커피는 유기농 및 공정무역 커피로 국제 시장에서 인지도를 얻고 있다. 그러나 생산성이 낮고 기후 변화에 취약하다.
- 어업: 긴 해안선을 가지고 있어 잠재력이 크지만, 아직 소규모 연안 어업 중심이다. 상업적 어업 기반 시설과 기술이 부족하여 개발이 더딘 편이다.
- 관광업: 아름다운 자연환경(산호초, 해변, 산악 지형)과 독특한 문화를 바탕으로 성장 잠재력이 있는 분야로 여겨진다. 특히 아타우루섬의 산호초는 세계적인 다이빙 명소로 주목받고 있다. 그러나 아직 인프라가 부족하고 접근성이 낮아 본격적인 발전에는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8.2. 개발 과제와 전망
동티모르 경제는 석유 수입 의존도를 줄이고 지속 가능한 발전을 이루기 위해 여러 과제에 직면해 있다. 주요 과제는 다음과 같다.
- 경제 다각화: 석유 및 가스 부문 외에 농업, 어업, 관광업 등 다른 산업을 육성하여 안정적인 경제 구조를 만드는 것이 시급하다.
- 인프라 개발: 도로, 항만, 공항, 전력, 통신 등 기본적인 인프라가 여전히 부족하여 경제 활동과 주민 생활에 어려움을 주고 있다.
- 인적 자원 개발: 교육 수준 향상과 직업 훈련 강화를 통해 숙련된 노동력을 양성하는 것이 중요하다. 높은 청년 실업률도 해결해야 할 문제이다.
- 빈곤 퇴치 및 사회 개발: 여전히 높은 빈곤율을 낮추고, 보건 의료 서비스 개선, 식량 안보 확보 등 국민들의 삶의 질을 높이는 노력이 필요하다.
- 제도 개선 및 거버넌스 강화: 법치주의 확립, 투명하고 효율적인 행정 시스템 구축, 부정부패 방지 등이 경제 발전을 위한 중요한 토대이다.
향후 동티모르 경제는 석유 기금의 효과적인 관리와 비석유 부문의 성장에 따라 좌우될 것이다. 아세안(ASEAN) 가입을 통해 역내 경제 협력을 강화하고 외국인 투자를 유치하려는 노력도 중요한 변수이다. 국제사회의 지속적인 지원과 함께 동티모르 자체의 개혁 노력이 성공한다면 장기적으로 안정적인 성장을 이룰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9. 교통

동티모르의 교통 인프라는 아직 발전 초기 단계에 있으며, 국가의 빈곤 문제, 취약한 기반 시설, 부족한 통신망 등으로 인해 어려움을 겪고 있다.
주요 교통수단은 도로 교통이며, 수도 딜리를 중심으로 각 지방 자치체로 연결되는 도로망이 있으나, 많은 도로가 비포장이거나 상태가 좋지 않아 우기에는 통행이 어려운 경우가 많다. 대중교통으로는 소형 버스인 "미크로렛(microlet)"이 주요 도시와 지역 간을 운행하며, 택시와 오토바이 택시(ojek)도 이용된다.
항공 교통의 경우, 딜리에 위치한 프레지덴트 니콜라우 로바투 국제공항이 유일한 국제공항으로, 인도네시아, 오스트레일리아, 싱가포르 등과 연결되는 항공편이 운항 중이다. 바우카우와 오엑쿠시에도 소규모 공항이 있어 국내선 운항에 이용되지만, 딜리 공항의 활주로는 대형 항공기의 이착륙에는 제한이 있다.
해상 교통은 섬나라인 동티모르에게 중요하며, 딜리항이 주요 국제항구 역할을 한다. 최근에는 딜리 인근에 티바르만 심해항이 건설되어 물류 처리 능력이 향상될 것으로 기대된다. 연안 해운은 섬 지역 간 이동 및 물자 수송에 이용된다.
정부는 도로망 개선, 항만 현대화, 공항 시설 확충 등 교통 인프라 개선을 위해 노력하고 있으나, 재정적 제약과 기술 부족으로 인해 점진적으로 진행되고 있다.
10. 사회
동티모르 사회는 젊은 인구 구조, 다양한 민족 및 언어 구성, 높은 로마 가톨릭 신자 비율, 교육 및 보건 의료 수준 향상을 위한 노력, 그리고 독립 과정에서 겪었던 인권 문제 해결 및 사회 통합 과제 등으로 특징지어진다. 언론은 발전하고 있으나 여러 제약에 직면해 있다.
10.1. 인구 구성
동티모르는 2015년 인구 조사에서 1,183,643명을 기록했으며, 2022년 인구 조사에서는 1,341,737명으로 증가했다. 인구는 주로 모든 도시 지역이 위치한 해안선을 따라 거주한다. 도시 지역 주민들은 일반적으로 정규 교육, 고용 전망, 의료 서비스 측면에서 더 나은 편이다. 전국적으로 강력한 성별 격차가 존재하지만, 도시 수도에서는 덜 심각하다. 부유한 소수는 종종 건강, 교육 및 기타 목적으로 해외로 나간다. 인구는 젊으며, 중위 연령은 20세 미만이다. 특히 14세 이상 남성 인구의 상당 부분(2015년 거의 45%)이 15세에서 24세 사이로, 세계에서 세 번째로 큰 남성 '청년층 팽창'을 보이고 있다.
동티모르 정부 웹사이트에는 동티모르인의 영어식 명칭이 티모르인(Timorese)으로 기재되어 있다. 다른 참고 자료에는 동티모르인(East Timorese)으로 기재되어 있다. 포르투갈인들이 토착 동티모르인을 지칭하고 종종 문맹자나 교육받지 못한 사람과 동의어로 사용했던 마우베레(Maubere마우베레포르투갈어)라는 단어는 프레틸린에 의해 자부심의 용어로 채택되었다.
1990년부터 2019년까지 기대 수명은 48.5세에서 69.5세로 증가했다. 예상 교육 연수는 2000년에서 2010년 사이에 9.8년에서 12.4년으로 증가했고, 평균 교육 연수는 2.8년에서 4.4년으로 증가했다. 이에 대한 2010년 이후의 진전은 제한적이었다. 1인당 국민 총소득도 2010년에 정점을 찍은 후 감소했다. 2016년 기준 동티모르인의 45.8%가 다면적 빈곤 지수에 따라 빈곤하며, 16.3%는 심각한 빈곤 상태이다. 독립 당시 세계에서 가장 높았던 출산율(7.8명)은 2016년까지 4.2명으로 감소했다. 농촌 지역과 가난하고 문해율이 낮은 가구에서 상대적으로 높다. 2016년 기준 평균 가구 규모는 5.3명이었고, 인구의 41%가 15세 미만이었으며, 가구의 18%가 여성이 가장이었다. 영아 사망률은 2003년 1,000명당 60명에서 1,000명당 30명으로 감소했다. 5세 미만 어린이의 46%가 성장 부진을 보였으며, 이는 2010년 58%에서 감소한 수치이다. 같은 기간 동안 근로 연령 성인 비만은 5%에서 10%로 증가했다. 2016년 기준 어린이의 40%, 여성의 23%, 남성의 13%가 빈혈을 앓고 있었다.
도시 | 지방 자치체 | 인구 |
---|---|---|
딜리 | 딜리 | 244,584 |
바우카우 | 바우카우 | 17,357 |
말리아나 | 보보나루 | 12,787 |
로스팔루스 | 라우템 | 12,471 |
판트마카사르 | 오엑쿠시 | 12,421 |
수아이 | 코바리마 | 9,130 |
에르메라 | 에르메라 | 8,045 |
사므 | 마누파이 | 7,332 |
비케케 | 비케케 | 6,530 |
아이나루 | 아이나루 | 6,250 |
10.2. 언어

티모르 공동체는 민족적 배경이나 언어 집단으로 엄격하게 정의되지 않는다. 서로 다른 공동체가 민족이나 언어를 공유할 수 있으며, 많은 지역에서 민족 및 언어 집단 간의 중첩과 혼합이 나타난다. 가족 관계와 혈통은 성스러운 집(우마 루릭) 소속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으며, 정체성의 더 중요한 지표이다. 각 가족 집단은 일반적으로 단일 언어 또는 방언과 동일시된다. 이러한 엄청난 지역적 차이를 염두에 두고 볼 때, 동부(바우카우, 라우템, 비케케 지방 자치체)와 국가 서부 사이에는 광범위한 문화적, 정체성적 구분이 존재하며, 이는 언어적, 민족적 차이보다는 역사적 산물이다. 이는 두 언어 그룹과 매우 느슨하게 연관되어 있다. 포르투갈인과 현지인 혼혈인 소수의 메스티소 인구가 있다. 또한 소수의 중국계 소수 민족이 있으며, 대부분이 객가인이다. 많은 중국인들이 1970년대 중반에 떠났는데, 이는 인도네시아 점령 기간 동안 많은 중국인들이 불균형적으로 표적이 되었기 때문이지만, 인도네시아 점령이 끝난 후 상당수가 동티모르로 돌아왔다. 동티모르에는 고아인 혈통의 인도계 티모르인 소규모 공동체가 있으며, 아프리카와 예멘에서 온 역사적 이민도 있다. 이러한 이민 소수 집단의 구성원들은 동티모르 역사에서 중요한 역할을 해왔다. 노벨 평화상 수상자이자 전 총리이며 현 대통령인 조제 하무스오르타와 현 총리이자 전 대통령인 샤나나 구스망은 모두 포르투갈-티모르계 메스티소 배경이며, 전 총리이자 프레틸린 사무총장이었던 마리 알카티리는 예멘 출신 조상을 둔 하드라미 아랍인이다.
섬의 다양한 민족언어학적 집단의 혼합된 기원을 반영하듯, 토착어는 오스트로네시아어족과 파푸아 제어라는 두 어족으로 나뉜다. 분류 방식에 따라 최대 19개의 토착어와 최대 30개의 방언이 존재한다. 테툼어를 제외하고, 에스놀로그는 아다베어, 바이케노어, 부낙어, 파탈루쿠어, 갈롤리어, 하분어, 이다테어, 카이루이-미디키어, 케막어, 라칼레이어, 마카사이어, 마쿠바어, 맘바이어, 나우에테어, 투쿠데데어, 와이마아어 등 토착어를 열거한다. 세계 위험 언어 지도에 따르면 동티모르에는 아다베어, 하부어, 카이루이-미디키어, 마쿠아어, 나우에티어, 와이마아어 등 6개의 소멸 위기 언어가 있다. 가장 큰 말레이-폴리네시아인 그룹은 테툼족이며, 주로 딜리 주변이나 서부 국경에 거주한다. 40,000명 이상의 원어민을 가진 다른 말레이-폴리네시아어로는 딜리 남쪽 중앙 산맥의 맘바이어, 오엑쿠시의 바이케노어, 북서부 내륙의 케막어, 북서부 해안의 토코데데어가 있다. 주요 파푸아 제어로는 티모르 중앙, 특히 보보나루현의 부낙어, 동부 바우카우현과 비케케현의 마카사이어, 동부 라우템현의 파탈루쿠어가 있다. 2015년 인구 조사에 따르면 가장 일반적으로 사용되는 모어는 테툼 프라사(인구의 30.6%가 모어), 맘바이어(16.6%), 마카사이어(10.5%), 테툼 테릭(6.05%), 바이케누어(5.87%), 케막어(5.85%), 부낙어(5.48%), 토코데데어(3.97%), 파탈루쿠어(3.52%)였다. 기타 토착어는 10.47%를 차지했으며, 인구의 1.09%는 외국어를 모어로 사용했다. 소멸된 포르투갈 크리올어인 비다우 크리올 포르투갈어는 딜리 교외 비다우, 나인 페토에서 포르투갈-티모르 메스티소 인구가 사용했으며, 1960년대에 소멸되었다. 딜리 말레이어로 불리는 말레이 기반 현지 크리올 방언은 수도 딜리의 여러 주민들이 사용한다.
동티모르의 두 공용어는 포르투갈어와 테툼어이다. 또한 영어와 인도네시아어는 헌법에 의해 "실무어"로 지정되어 있다. 이는 최종 및 과도 규정 내에 있으며, 최종 날짜를 설정하지 않는다. 2012년에는 35%가 포르투갈어를 말하고, 읽고, 쓸 수 있었는데, 이는 2006년 유엔 개발 보고서의 5% 미만에서 크게 증가한 수치이다. 포르투갈어는 현재 동티모르의 주요 공용어로 지정되어 대부분의 학교에서 가르치고 있어 회복되고 있다. 정부 정보 및 법원 시스템에서 포르투갈어를 사용하는 것은 이를 사용하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접근 장벽을 제공한다. 테툼어 또한 국가의 모든 사람이 이해하는 것은 아니다. 포르투갈어 관측소에 따르면 동티모르의 문해율은 테툼어 77.8%, 인도네시아어 55.6%, 포르투갈어 39.3%였으며, 초등 문해율은 2009년 73%에서 2012년 83%로 증가했다. 2015년 인구 조사에 따르면 14세에서 24세 사이 인구의 50%가 포르투갈어를 말하고 이해할 수 있다. 2015년 인구 조사에서는 5세 이상 인구의 약 15%가 영어에 능통한 것으로 나타났다.
10.3. 종교

동티모르 헌법은 종교의 자유와 정교분리 원칙을 보장하지만, 제45조 제1항은 전문에서 "국가 해방 과정에서 가톨릭 교회의 참여"를 인정한다. 독립 후 동티모르는 필리핀과 함께 아시아에서 가톨릭이 다수인 두 국가 중 하나가 되었지만, 인도네시아 동부의 플로레스나 서뉴기니 일부 지역에도 가톨릭 다수 지역이 있다.
2022년 인구 조사에 따르면 인구의 97.6%가 가톨릭 신자이며, 1.979%는 개신교, 0.24%는 이슬람교, 0.08%는 전통 신앙, 0.05%는 불교, 0.02%는 힌두교, 0.08%는 기타 종교를 믿는다. 2016년 인구 보건 조사 프로그램에서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가톨릭 신자가 인구의 98.3%, 개신교 신자가 1.2%, 이슬람교 신자가 0.3%를 차지했다.
교회 수는 1974년 100개에서 1994년 800개 이상으로 증가했으며, 인도네시아의 국가 이념인 판차실라가 모든 시민에게 신에 대한 믿음을 요구하고 역사적으로 전통 신앙을 인정하지 않았기 때문에 인도네시아 통치 하에서 교회 신자 수가 크게 증가했다. 동티모르의 애니미즘 신앙 체계는 인도네시아 헌법의 일신교와 맞지 않아 기독교로의 대규모 개종이 이루어졌다. 포르투갈 성직자들은 인도네시아 사제들로 대체되었고, 라틴어와 포르투갈어 미사는 인도네시아어 미사로 대체되었다. 1975년 침공 당시 동티모르인의 20%만이 자신을 가톨릭 신자라고 밝혔지만, 침공 후 첫 10년이 끝날 무렵에는 그 수치가 95%에 달했다. 가톨릭 교회는 동티모르를 딜리 대교구, 바우카우 교구, 말리아나 교구의 세 교구로 나눈다. 농촌 지역에서는 가톨릭이 종종 현지 애니미즘 신앙과 혼합된다.
티모르 개신교도와 이슬람교도의 수는 1999년 9월 이후 크게 감소했는데, 이는 이들 그룹이 인도네시아와의 통합 지지자들 사이에서 불균형적으로 많이 대표되었기 때문이다. 1999년 9월 이후 이전 개신교 회중의 절반 미만만이 존재했으며, 많은 개신교도들이 서티모르에 남아 있던 사람들 중에 있었다.
10.4. 교육

2021년 기준 동티모르의 성인 문해율은 68%였으며, 15-24세 사이에서는 84%였다. 여성의 문해율이 남성보다 약간 높다. 남학생보다 여학생이 더 많이 학교에 다니지만, 일부는 사춘기에 접어들면서 중퇴한다. 2016년 기준 근로 연령 여성(15-49세)의 22%와 근로 연령 남성의 19%가 교육을 받지 못했으며, 여성의 15%와 남성의 18%가 초등 교육을 일부 받았고, 여성의 52%와 남성의 51%가 중등 교육을 일부 받았으며, 여성의 11%와 남성의 12%가 고등 교육을 받았다. 전반적으로 여성의 75%와 남성의 82%가 문맹이 아니었다. 초등학교는 전국에 있지만, 교재와 교사의 질은 종종 열악하다. 중등학교는 일반적으로 지방 자치체의 수도에 제한되어 있다. 교육은 국가 예산의 10%를 차지한다. 동티모르의 주요 대학은 동티모르 국립대학교이다. 4개의 전문대학도 있다.
독립 이후 인도네시아어와 테툼어는 교수 언어로서의 입지를 잃었고, 포르투갈어는 증가했다. 2001년에는 초등학생의 8.4%와 중등학생의 6.8%만이 포르투갈어 매체 학교에 다녔지만, 2005년에는 초등학교 81.6%, 중등학교 46.3%로 증가했다. 인도네시아어는 이전에 교육에서 상당한 역할을 했으며, 모든 중등학생의 73.7%가 교수 언어로 사용했지만, 2005년에는 바우카우, 마나투투 및 수도 지역의 대부분 학교에서 포르투갈어가 사용되었다. 포르투갈은 동티모르 공립학교의 약 3%를 지원하며, 도시 지역 학교에 중점을 두어 포르투갈어 사용을 더욱 장려하고 있다.
10.5. 보건 의료
동티모르는 2021년 국가 예산의 6%를 의료에 할당했다. 1990년부터 2019년까지 기대수명은 48.5세에서 69.5세로 증가했다. 예상 교육 연수는 2000년에서 2010년 사이에 9.8년에서 12.4년으로, 평균 교육 연수는 2.8년에서 4.4년으로 증가했으나, 2010년 이후 진전은 제한적이었다. 1인당 국민총소득도 2010년에 정점을 찍은 후 감소했다. 2016년 기준, 동티모르인의 45.8%가 다면적 빈곤 지수에 따라 빈곤 상태였으며, 그중 16.3%는 극심한 빈곤을 겪고 있었다. 독립 당시 세계 최고 수준이었던 합계출산율(여성 1명당 7.8명)은 2016년 4.2명으로 감소했다. 출산율은 농촌 지역과 빈곤층 및 문해율이 낮은 가구에서 상대적으로 더 높게 나타났다. 2016년 기준 평균 가구 규모는 5.3명이었고, 인구의 41%가 15세 미만이었으며, 가구주의 18%가 여성이었다. 영아사망률은 2003년 1,000명당 60명에서 30명으로 감소했다. 5세 미만 아동의 46%가 발육 부진을 보였으며, 이는 2010년 58%에서 감소한 수치이다. 같은 기간 근로 연령 성인의 비만율은 5%에서 10%로 증가했다. 2016년 기준 아동의 40%, 여성의 23%, 남성의 13%가 빈혈을 앓고 있었다.
10.6. 인권 상황
동티모르는 독립 이후 인권 상황 개선을 위해 노력해 왔으나, 여전히 여러 도전 과제에 직면해 있다. 과거 인도네시아 점령기의 인권 침해에 대한 진실 규명과 책임자 처벌 문제는 중요한 과제로 남아 있으며, 동티모르 진실수용화해위원회(CAVR)의 권고 이행이 더디다는 지적이 있다.
현재 주요 인권 문제로는 사법 시스템의 취약성, 경찰력에 의한 과도한 공권력 사용 및 불처벌 관행, 표현의 자유와 언론의 자유에 대한 간접적인 제약, 여성 및 아동에 대한 폭력, 성소수자(LGBTQ+)에 대한 차별 등이 보고되고 있다. 특히 가정 폭력과 아동 학대는 심각한 사회 문제로 인식되며, 이에 대한 정부의 대응과 사회적 인식 개선 노력이 요구된다.
정부는 인권 개선을 위해 법률 개혁, 사법 시스템 강화, 인권 교육 프로그램 등을 추진하고 있으나, 자원 부족과 제도적 역량 미흡으로 인해 실질적인 변화를 이끌어내는 데 한계가 있다는 평가도 있다. 국제 인권 단체들은 동티모르 정부에 과거사 청산, 사법 정의 실현, 인권 보호 메커니즘 강화 등을 지속적으로 촉구하고 있다.
10.7. 치안
동티모르의 치안은 전반적으로 안정적인 편이나, 간헐적으로 사회적 불안 요소가 나타나기도 한다. 동티모르 국가경찰(PNTL)이 주요 치안 유지 기관이며, 동티모르 국방군(F-FDTL)은 국방 및 일부 내부 안보 지원 역할을 담당한다. 2006년 위기 이후 국제 사회의 지원으로 경찰력 강화 및 제도 개선이 이루어졌으나, 여전히 인력 부족, 장비 노후, 전문성 부족 등의 문제가 지적된다.
주요 범죄 유형으로는 절도, 강도, 폭행 등 일반 형사 범죄가 있으며, 특히 청년 실업과 빈곤이 범죄 발생의 한 원인으로 꼽힌다. 과거에는 정치적 불안정과 맞물려 폭력 사태가 발생하기도 했으나, 최근에는 비교적 안정된 상황을 유지하고 있다. 그러나 격투기 집단(martial arts groups) 간의 충돌이나 지역 사회 내 갈등이 폭력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있어 주의가 요구된다. 수도 딜리를 제외한 지방의 경우 치안 인프라가 더욱 취약할 수 있다.
정부는 경찰력 현대화, 지역사회 경찰 활동 강화, 사법 시스템과의 연계 강화를 통해 치안 유지 역량을 높이려 노력하고 있다. 관광객을 대상으로 한 강력 범죄는 드문 편이나, 소지품 도난 등 경범죄에 대한 주의는 필요하다.
10.8. 언론
동티모르의 언론 환경은 독립 이후 점진적으로 발전해왔으나, 여전히 여러 도전에 직면해 있다. 헌법은 표현의 자유와 언론의 자유를 보장하고 있다.
주요 언론 매체로는 국영 방송인 라디오 텔레비전 동티모르(RTTL)가 있으며, TV와 라디오 채널을 운영한다. 민간 라디오 방송국과 소수의 신문(주로 수도 딜리에서 발행)도 활동하고 있다. 온라인 매체와 소셜 미디어의 영향력도 점차 커지고 있다.
언어 문제(테툼어, 포르투갈어, 인도네시아어 등 다양한 언어 사용), 재정적 어려움, 언론인들의 전문성 부족, 제한적인 인프라(특히 지방의 경우) 등이 언론 발전을 저해하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정부의 간접적인 압력이나 자기 검열에 대한 우려도 제기되기도 한다.
국제 언론 자유 지수에서 동티모르는 비교적 양호한 평가를 받는 편이지만, 명예훼손법 등이 언론 활동을 위축시킬 수 있다는 비판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동티모르 언론은 사회적 이슈를 제기하고 정부를 감시하는 역할을 수행하려 노력하고 있다. 2022년 기준, 인구의 37%가 인터넷 사용자이다.
11. 문화

동티모르의 다양한 문화는 현재 인구를 형성한 여러 차례의 오스트로네시아족과 멜라네시아인 이주 물결에서 비롯되었으며, 각 소왕국 내에서 독특한 정체성과 전통이 발전했다. 포르투갈 당국은 전통 구조 위에 포르투갈의 영향을 기존 정치 및 사회 시스템에 혼합했다. 가톨릭 교회의 존재는 완전한 개종이 제한적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다양한 민족 집단 간의 공통점을 만들었다. 포르투갈어 또한 직접적인 포르투갈의 영향이 제한적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공통적인 연결고리를 제공했다. 인도네시아 통치 하에서는 저항 운동이 가톨릭과 포르투갈어에 대한 문화적 연결을 강화했다. 동시에 학교와 행정을 통해 인도네시아 문화의 영향이 확산되었다.
인도네시아의 억압 시도에 맞서 전통 신앙을 보존하는 것은 국가 정체성 형성과 연결되었다. 이러한 국가 정체성은 포르투갈 통치 말기에야 나타나기 시작했고, 인도네시아 통치 기간 동안 더욱 발전했다. 독립 이후에는 시민적 정체성이 발전하기 시작했다. 이는 국가 차원의 민주주의에 대한 열의를 통해 가장 명확하게 표현되었으며, 정치적으로는 저항 서사에서 개발 서사로의 전환으로 반영되었다. 수도는 보다 국제적인 문화를 발전시켰고, 농촌 지역은 더 강력한 전통 관습을 유지하고 있다. 특히 딜리를 중심으로 한 도시 지역으로의 국내 이주는 이들 지역과 농촌 배후지 간의 문화적 연결을 만든다. 도시 지역 주민들은 딜리에서 여러 세대가 태어난 경우에도 특정 농촌 지역과 계속해서 정체성을 동일시하는 경우가 많다.
수많은 민족 및 언어 집단의 존재는 문화적 관습이 전국적으로 다양함을 의미한다. 이러한 관습은 정치 지도자들이 영적 힘을 가졌다고 여겨졌던 역사적 사회 구조와 관행을 반영한다. 조상은 문화적 관습의 중요한 부분이었고 부분적으로 리더십을 의미했다. 지도자들은 종종 토지 이용에 영향을 미쳤으며, 이러한 지도자들은 오늘날에도 토지 분쟁 및 기타 지역 사회 관행 측면에서 비공식적인 역할을 계속하고 있다. 중요한 전통 개념은 루릭(lulik), 즉 신성함이다. 일부 루릭 의식은 예를 들어 전국적으로 다양한 점술 의식을 통해 애니미즘 신앙을 계속 반영한다. 신성한 지위는 가족 내에서 전해 내려오는 포르투갈 국기와 같은 물건과도 연관될 수 있다.

공동체 생활은 각 공동체의 대표적인 상징이자 식별자인 물리적 구조물인 신성한 집(우마 루릭, Uma Lulik)을 중심으로 이루어진다. 이 집들의 건축 양식은 나라의 여러 지역마다 다르지만, 인도네시아 군대에 의해 광범위하게 파괴된 후 많은 집들이 값싼 현대 자재로 재건되었다. 집이라는 개념은 물리적 대상을 넘어 주변 공동체로 확장된다. 친족 체계는 집 안과 집 사이에 존재한다. 역사적으로 중요한 가문에서 비롯된 전통 지도자들은 공동체마다 다른 방법을 통해 정의를 집행하고 분쟁을 해결하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유지한다. 이러한 지도자들은 종종 공식적인 지도자 직책에 선출되어 문화적, 역사적 지위를 현대 정치적 지위와 통합한다. 공동 주택의 일부라는 개념은 국가로 확장되어 국회가 국가의 신성한 집 역할을 한다.
예술 양식은 섬의 다양한 민족언어학적 집단에 따라 다양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큰 동물과 특정 기하학적 패턴과 같은 유사한 예술적 모티프가 전체적으로 존재한다. 일부 예술은 전통적으로 특정 성별과 관련이 있다. 예를 들어, 섬 전체의 전통 생활에서 광범위한 역할을 하는 타이스 직물은 전통적으로 여성들이 손으로 짠다. 서로 다른 타이스 패턴은 서로 다른 공동체와 연관되며, 더 넓게는 언어 집단과 연관된다. 딜리 중심부의 많은 건물은 역사적인 포르투갈 건축 양식을 유지하고 있다.
전통 의식은 여전히 중요하며, 종종 더 현대적인 측면과 혼합된다. 강력한 구전 역사는 긴 이야기나 시를 암송할 수 있는 개인들에게서 두드러진다. 이 역사, 또는 리아 나인(Lia nain)은 전통 지식을 전수한다. 시의 강력한 전통이 남아 있다. 예를 들어, 샤나나 구스망 총리는 저명한 시인으로 "시인 전사"라는 별명을 얻었다.
영화 분야에서 동티모르는 2013년 시대 스릴러 영화 베아트리스의 전쟁이라는 첫 장편 영화를 개봉했다. 한정된 예산으로 현지 영화 제작자와 자원봉사 오스트레일리아 영화 제작진이 혼합하여 촬영한 이 영화는 1970년대 인도네시아 점령 하의 동티모르 생활을 묘사했으며, 프로듀서 루르드스 피르스는 진실 추구와 정의에 대한 이야기를 함으로써 과거 분쟁에 대한 정부의 "우정과 용서" 정책에서 벗어나려는 목표를 인정했다.
11.1. 전통과 생활 양식
동티모르의 전통 문화는 다양한 민족 집단의 고유한 관습과 생활 양식이 어우러져 형성되었다. 대표적인 전통 가옥 형태는 우마 루릭(Uma Lulik)으로 불리는 신성한 집으로, 공동체의 중심 역할을 하며 영적인 의미를 지닌다. 건축 양식은 지역마다 차이가 있지만, 대체로 높고 뾰족한 지붕을 가진 고상 가옥 형태가 많다.
전통 직물인 타이스(Tais)는 동티모르 문화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여성들이 손으로 짜는 이 직물은 다양한 문양과 색상으로 제작되며, 의례, 축제, 일상생활에서 널리 사용된다. 타이스의 문양은 각 지역이나 부족의 정체성을 나타내기도 한다.
구전 문학은 동티모르의 역사, 신화, 전통 지식을 다음 세대로 전달하는 중요한 수단이다. 시, 노래, 이야기 등이 구전으로 전해지며, 리아 나인(Lia Nain)으로 불리는 이야기꾼들은 공동체 내에서 존경받는 존재이다.
관습법은 공식적인 법 체계와 함께 여전히 많은 지역 사회에서 분쟁 해결 및 사회 질서 유지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전통적인 의례와 축제는 공동체의 결속을 다지고 조상과의 연결을 확인하는 중요한 행사로 여겨진다. 이러한 전통 문화는 가톨릭 신앙과 결합되어 독특한 형태로 나타나기도 한다. 일상생활에서는 농경 중심의 생활 방식이 보편적이며, 가족과 공동체 중심의 가치관이 강하게 남아 있다.
11.2. 예술
동티모르의 예술은 전통적인 형태와 현대적인 표현이 공존하며 발전하고 있다.
- 음악과 춤: 전통 음악은 주로 타악기와 현악기를 사용하며, 공동체 의례나 축제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다양한 전통 춤이 각 지역의 특색을 담아 전해 내려오고 있다. 현대 음악에서는 포르투갈, 인도네시아, 그리고 서양 대중음악의 영향을 받은 다양한 장르가 시도되고 있다.
- 문학: 구전 문학의 전통이 강하며, 시와 이야기가 주요 장르이다. 샤나나 구스망과 같이 저명한 시인들이 있으며, 독립 이후에는 테툼어와 포르투갈어로 창작 활동을 하는 작가들이 등장하고 있다.
- 시각 예술: 전통 직물인 타이스는 그 자체로 중요한 예술 형태이며, 복잡한 문양과 색채가 특징이다. 목각, 조각 등 전통 공예도 존재한다. 현대 미술 분야는 아직 초기 단계이지만, 젊은 예술가들을 중심으로 회화, 조각, 설치 미술 등 다양한 시도가 이루어지고 있다.
- 영화: 동티모르 영화 산업은 아직 초기 단계이다. 2013년 개봉한 베아트리스의 전쟁은 동티모르 최초의 장편 극영화로, 인도네시아 점령기를 배경으로 하여 국제적으로 주목받았다. 이후에도 독립과 관련된 다큐멘터리나 단편 영화들이 제작되고 있다.
11.3. 스포츠

동티모르에서 가장 인기 있는 스포츠는 축구이다. 포르투갈과 인도네시아의 통치를 받은 역사적 배경으로 인해 축구는 국민 스포츠로 자리 잡았다. 동티모르 축구 연맹(FFTL)은 2002년에 설립되었으며, 동티모르 축구 국가대표팀은 FIFA 월드컵 예선과 AFC 아시안컵 예선, 아세안 축구 선수권 대회(AFF 챔피언십) 등 국제 대회에 참가하고 있다. 2015년에는 국내 리그인 리가 푸테볼 아마도라가 출범했다.
올림픽에는 2000년 시드니 올림픽에 개인 자격으로 선수들이 참가한 것을 시작으로, 2004년 아테네 올림픽부터 정식으로 동티모르 선수단이 참가하고 있다. 주로 육상, 복싱, 태권도, 수영 등의 종목에 출전하며, 아직 메달 획득은 없다.
동남아시아 경기 대회(SEA Games)에도 꾸준히 참가하고 있으며, 격투기 종목 등에서 메달을 획득하기도 했다. 전통 무술이나 격투 스포츠 또한 일부 지역에서 행해지고 있다. 배구, 농구 등 다른 구기 종목도 인기를 얻고 있으나, 전반적으로 스포츠 인프라와 지원은 아직 부족한 실정이다.
11.4. 공휴일
동티모르는 독립 투쟁과 관련된 역사적 사건을 기념하는 국경일과 가톨릭 및 이슬람교 관련 종교 공휴일을 지킨다. 다음은 주요 공휴일이다.
날짜 | 한국어 표기 | 현지어 표기 (포르투갈어/테툼어) | 비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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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1일 | 새해 첫날 | Ano Novo / Tinan Foun | |
3월~4월 중 | 성금요일 | Sexta-feira Santa / Sesta-Feira Santa | 부활절 전 금요일, 날짜 변동 |
5월 1일 | 노동절 | Dia do Trabalhador / Loron Traballadór Nian | |
5월 20일 | 독립 기념일 (독립 복원일) | Dia da Restauração da Independência / Loron Restaurasaun Independénsia Nian | 2002년 독립 선포 |
5월~6월 중 | 그리스도의 성체 성혈 대축일 | Corpo de Deus / Festa Kristaun Espesial | 부활절 후 60일째 목요일, 날짜 변동 |
8월 30일 | 민중 협의의 날 (주민 투표일) | Dia da Consulta Popular / Loron Konsulta Populár Nian | 1999년 독립 주민 투표 |
11월 1일 | 모든 성인 대축일 | Todos os Santos / Loron Santu Hotu-Hotu Nian | |
11월 2일 | 위령의 날 | Dia dos Finados / Loron Matebian Nian | |
11월 12일 | 전국 청년의 날 (산타크루스 학살 추모일) | Dia Nacional da Juventude / Loron Nasionál Juventude Nian | 1991년 산타크루스 학살 |
11월 28일 | 독립 선언일 | Dia da Proclamação da Independência / Loron Proklamasaun Independénsia Nian | 1975년 일방적 독립 선언 |
12월 7일 | 전국 영웅의 날 | Dia dos Heróis Nacionais / Loron Erói Nasionál Nian | 1975년 인도네시아 침공일 추모 |
12월 8일 | 원죄 없이 잉태되신 동정 마리아 대축일 | Imaculada Conceição / Imakulada Konseisaun | |
12월 25일 | 크리스마스 | Natal / Natál | |
날짜 변동 | 이드 알아드하 (희생제) | Eid al-Adha / Idul Adha | 이슬람력에 따름 |
날짜 변동 | 이드 알피트르 (라마단 종료 축제) | Eid al-Fitr / Idul Fitri | 이슬람력에 따름 |
이 외에도 정부가 지정하는 추가 공휴일이나 기념일이 있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