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캐나다는 북아메리카 대륙 북부에 위치한 연방제 입헌군주제 국가이다. 10개의 주와 3개의 준주로 구성되어 있으며, 세계에서 두 번째로 넓은 국토 면적과 가장 긴 해안선을 가지고 있다. 수도는 오타와이며, 토론토, 몬트리올, 밴쿠버가 주요 대도시이다. 영어와 프랑스어를 공용어로 사용하며, 다문화주의를 국가 정책으로 채택하여 다양한 민족과 문화가 공존하는 이민 국가이다.
수천 년 전부터 원주민이 거주해왔으며, 16세기 이후 영국과 프랑스의 탐험 및 정착이 시작되었다. 오랜 경쟁과 전쟁 끝에 1763년 프랑스가 북미 식민지를 영국에 할양하였고, 1867년 영국령 북아메리카의 3개 식민지가 연합하여 캐나다 자치령을 형성하며 캐나다 연방이 시작되었다. 이후 점진적으로 자치권을 확대하여 1931년 웨스트민스터 헌장과 1982년 캐나다법을 통해 영국 의회로부터 완전한 입법적 독립을 이루었다.
캐나다는 웨스트민스터 체제에 기반한 의원내각제를 채택하고 있으며, 영국의 군주가 캐나다의 군주로서 국가원수를 겸하고, 이를 대리하는 총독이 총리를 임명한다. G7, G20, NATO, OECD, WTO, APEC, 영연방, 프랑코포니 등 다수의 국제기구 회원국으로 활동하며, 중견국으로서 국제 평화 유지와 개발 협력에 기여하고 있다. 풍부한 천연자원과 발달된 무역 네트워크를 기반으로 높은 1인당 국민소득과 인간 개발 지수를 기록하는 선진국이며, 정부 투명성, 삶의 질, 경제 경쟁력, 교육, 인권 등 다양한 국제 지표에서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미국과의 길고 복잡한 관계는 캐나다의 역사, 경제, 문화 전반에 걸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2. 어원
캐나다라는 국명의 어원에 대해서는 여러 설이 제기되어 왔으나, 현재 가장 널리 받아들여지는 설은 세인트로렌스강 유역에 거주하던 이로쿼이족의 언어에서 "마을" 또는 "정착지"를 의미하는 단어 kanata카나타lre에서 유래했다는 것이다. 1535년, 현재의 퀘벡 시 지역 원주민들이 프랑스 탐험가 자크 카르티에에게 스타다코나(Stadacona) 마을을 가리키며 이 단어를 사용했다고 전해진다. 카르티에는 이후 '캐나다'라는 단어를 특정 마을뿐만 아니라 스타다코나의 추장 도나코나(Donnacona)가 다스리는 전체 지역을 지칭하는 말로 사용하기 시작했다. 1545년경부터 유럽의 책과 지도에서는 세인트로렌스강을 따라 형성된 이 작은 지역을 '캐나다'로 표기하기 시작했다.
16세기부터 18세기 초까지 '캐나다'는 세인트로렌스강을 따라 펼쳐진 누벨프랑스의 일부 지역을 가리키는 명칭이었다. 영국이 누벨프랑스를 정복한 후, 이 지역은 1763년부터 1791년까지 퀘벡주로 불렸다. 1791년, 이 지역은 영국 식민지인 어퍼캐나다(Upper Canada)와 로어캐나다(Lower Canada)로 분리되었고, 이 두 식민지는 1841년 영국의 캐나다주(Province of Canada)로 통합될 때까지 집합적으로 '더 캐나다스(The Canadas)'라고 불렸다.
1867년 캐나다 연방이 결성될 당시, 런던 회의에서 '캐나다'가 새로운 국가의 법적 명칭으로 채택되었고, '자치령(Dominion)'이라는 칭호가 부여되었다. 이에 따라 '캐나다 자치령(Dominion of Canada)'이라는 명칭이 공식적으로 사용되었다. 그러나 1950년대 이후 영국은 캐나다를 '영연방 왕국(Realm of the Commonwealth)'으로 간주하며 '캐나다 자치령'이라는 용어를 점차 사용하지 않게 되었다. 캐나다의 헌법을 완전히 캐나다의 통제 하에 두게 한 1982년 캐나다법(Canada Act 1982)에서는 오직 '캐나다'라는 국명만을 사용하였으며, 같은 해 국경일의 명칭도 '자치령의 날(Dominion Day)'에서 '캐나다의 날(Canada Day)'로 변경되었다.
3. 역사
캐나다의 역사는 수천 년 전 원주민의 정착에서 시작되어 유럽 열강의 식민지화, 자치령 형성, 완전한 독립 국가로의 발전 과정을 거쳤다. 이 과정에서 다양한 문화적, 정치적, 사회적 변화를 겪으며 오늘날의 다문화 국가 캐나다를 이루었다.
3.1. 선주민
최소 약 14,000년 전, 인류는 시베리아에서 베링 육교를 건너 현재의 북아메리카, 즉 캐나다 지역으로 이주하기 시작했다. 캐나다에서 가장 오래된 인류 거주 유적지로는 유콘 준주의 올드 크로우 플랫과 블루피시 동굴 등이 있다. 이들 초기 정착민들은 고대 인디언(Paleo-Indian)으로 불린다.
유럽인 도착 이전의 캐나다 원주민 사회는 영구 정착촌, 농업, 복잡한 사회 계층, 그리고 광범위한 무역 네트워크를 특징으로 했다. 이들 문화 중 일부는 15세기 말에서 16세기 초 유럽 탐험가들이 도착할 무렵 이미 쇠퇴했거나 사라졌으며, 고고학적 조사를 통해 그 존재가 확인되고 있다. 현재 캐나다의 원주민은 퍼스트 네이션(First Nations), 이누이트(Inuit), 그리고 메티스(Métis)로 구성된다. 메티스는 17세기 중반 퍼스트 네이션과 유럽 정착민 간의 혼혈을 통해 형성된 독자적인 정체성을 가진 집단이다.
유럽인 최초 정착 당시 원주민 인구는 20만 명에서 200만 명 사이로 추정되며, 캐나다 왕립 원주민 위원회는 50만 명으로 추산한다. 유럽인의 식민화 과정에서 원주민들은 유럽에서 유입된 질병(천연두, 홍역 등)에 대한 면역력 부재, 모피 무역을 둘러싼 갈등, 식민 당국 및 정착민과의 충돌, 토지 상실 등으로 인해 인구가 40%에서 80%까지 급감했다.
유럽계 캐나다인과 퍼스트 네이션 및 이누이트 간의 초기 관계는 갈등이 없지 않았으나 비교적 평화로운 편이었다. 퍼스트 네이션과 메티스는 유럽인들의 북미 대륙 탐험, 특히 북아메리카 모피 무역에서 쿠뢰르 데 부아(coureurs des bois, 숲의 나그네)와 보야저(voyageurs, 여행자)를 돕는 등 유럽 식민지 발전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 그러나 이러한 관계는 점차 우호적인 조약에서 원주민 토지 수탈로 변질되었다. 18세기 후반부터 유럽계 캐나다인들은 원주민들에게 서구 사회로의 동화를 강요했다. 이러한 정착민 식민주의는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에 절정에 달했으며, 이 시기에는 캐나다 원주민 기숙학교 운영과 같은 강압적인 동화 정책이 시행되었다. 2008년 캐나다 정부는 진실과 화해 위원회를 설립하여 과거의 잘못을 인정하고 문화적 학살에 대한 사과, 인디언 기숙학교 합의 등을 포함한 보상과 화해 노력을 시작했으며, 실종 및 살해된 원주민 여성 문제 해결과 같은 인종 차별 문제 개선에도 힘쓰고 있다.
3.2. 유럽 식민지화
캐나다 동부 해안을 최초로 탐험한 유럽인은 노르드인 탐험가 레이프 에이릭손으로 알려져 있다. 약 1000년경, 노르드인들은 뉴펀들랜드 북단 랑스 오 메도즈에 잠시 야영지를 건설했으나, 약 20년간 간헐적으로만 사용된 후 버려졌다. 이후 한동안 유럽인의 탐험은 없다가, 1497년 이탈리아 항해사 존 캐벗(본명 조반니 카보토)이 잉글랜드의 헨리 7세를 위해 캐나다 대서양 연안을 탐험하고 영유권을 주장했다. 1534년에는 프랑스 탐험가 자크 카르티에가 세인트로렌스만을 탐험하고, 7월 24일 높이 10 m의 십자가를 세워 프랑스 국왕 프랑수아 1세의 이름으로 누벨프랑스 영토를 선포했다.
16세기 초, 바스크인과 포르투갈인들은 발전된 항해 기술을 바탕으로 대서양 연안에 계절별 고래잡이 및 어업 기지를 건설했다. 그러나 이 시기 정착지들은 혹독한 기후, 교역로 확보의 어려움, 스칸디나비아 경쟁자들의 등장 등으로 인해 대부분 단명했다.
1583년, 험프리 길버트 경은 엘리자베스 1세 여왕의 왕실 특허를 받아 뉴펀들랜드의 세인트존스에 북아메리카 최초의 영국 계절 캠프를 설립했다. 1600년, 프랑스는 세인트로렌스강을 따라 태두삭에 첫 계절 교역소를 세웠다. 1603년 프랑스 탐험가 사뮈엘 드 샹플랭이 도착하여 1605년 아카디아의 포르루아얄과 1608년 퀘벡 시에 유럽인의 영구 정착지를 최초로 건설했다. 누벨프랑스의 프랑스인 정착민 중 '카나디앵'은 세인트로렌스강 계곡에 광범위하게 정착했고, '아카디아인'은 현재의 연해주 지역에 정착했다. 모피 교역상과 가톨릭 선교사들은 오대호, 허드슨만, 미시시피강 유역을 거쳐 루이지애나까지 탐험했다. 17세기 중반에는 북미 모피 무역의 지배권을 둘러싸고 비버 전쟁이 발발했다.
영국은 1610년 뉴펀들랜드섬에 추가 정착지를 건설하고, 남쪽으로는 13개 식민지를 개척했다. 1689년부터 1763년까지 식민지 북아메리카에서는 프랑스-인디언 전쟁으로 알려진 네 차례의 전쟁이 벌어졌으며, 후반기 전쟁은 7년 전쟁의 북미 전역이 되었다. 1713년 위트레흐트 조약으로 노바스코샤 본토가 영국령이 되었고, 7년 전쟁 후인 1763년에는 캐나다와 누벨프랑스 대부분이 영국령으로 넘어갔다.
3.3. 영국령 북아메리카

1763년 왕립 선언은 원주민의 조약상 권리를 인정하고, 옛 누벨프랑스 지역에 퀘벡주를 신설했으며, 케이프브레턴섬을 노바스코샤에 병합했다. 세인트존스섬(현재의 프린스에드워드아일랜드)은 1769년에 별도의 식민지가 되었다. 퀘벡에서의 분쟁을 피하기 위해 영국 의회는 1774년 퀘벡법을 통과시켜 퀘벡의 영토를 오대호와 오하이오 계곡까지 확장했다. 더 중요한 것은, 퀘벡법이 13개 식민지가 영국 통치에 대한 불만을 점점 더 표출하던 시기에 퀘벡에 특별한 자치권과 행정권을 부여했다는 점이다. 이 법은 프랑스어, 가톨릭 신앙, 프랑스 민법을 퀘벡에서 재확립하여 13개 식민지와는 대조적으로 독립 운동의 성장을 억제했다. 반대로, 왕립 선언과 퀘벡법은 13개 식민지의 많은 주민들을 격분시켜 미국 독립 전쟁 이전 몇 년 동안 반(反)영국 감정을 더욱 부추겼다.
성공적인 미국 독립 전쟁 이후, 1783년 파리 조약은 새로 형성된 미국의 독립을 인정하고 평화 조건을 설정하여, 오대호 남쪽과 미시시피강 동쪽의 영국령 북아메리카 영토를 신생 국가에 할양했다. 미국 독립 전쟁은 또한 미국 독립에 반대하여 싸웠던 정착민인 왕당파의 대규모 이주를 야기했다. 많은 이들이 캐나다, 특히 연해주로 이주하여 기존 영토의 인구 분포를 변화시켰다. 뉴브런즈윅은 연해주 왕당파 정착촌 재편의 일환으로 노바스코샤에서 분리되었고, 이는 캐나다 최초의 도시인 세인트존의 통합으로 이어졌다. 캐나다 중부로 유입되는 영어 사용 왕당파를 수용하기 위해, 1791년 입헌법은 캐나다주를 프랑스어 사용 지역인 로어캐나다(후일의 퀘벡)와 영어 사용 지역인 어퍼캐나다(후일의 온타리오)로 분할하고, 각 지역에 자체적으로 선출된 입법 의회를 부여했다.

캐나다의 두 지방은 미국과 영국 간의 1812년 전쟁에서 주요 전선이 되었다. 1815년에 평화가 찾아왔으나 국경에는 변화가 없었다. 이민이 더 높은 수준으로 재개되어, 1815년에서 1850년 사이에 96만 명 이상의 영국인이 캐나다로 이주했다. 새로운 이민자 중에는 아일랜드 대기근을 피해 온 피난민들과 스코틀랜드 게일어를 사용하는 스코틀랜드인들로, 이들은 하이랜드 개간으로 인해 고향을 떠나야 했다. 1891년 이전에 캐나다로 이주한 유럽인 중 25~33%가 전염병으로 사망했다.
책임정부에 대한 열망은 1837년 반란을 초래했으나 실패로 끝났다. 이후 더럼 보고서는 책임정부 수립과 프랑스계 캐나다인의 영국 문화로의 동화를 권고했다. 1840년 연합법은 캐나다의 두 지방을 통합하여 캐나다주를 형성했고, 1855년까지 슈피리어호 동쪽의 모든 영국령 북아메리카 주에 책임정부가 수립되었다. 1846년 영국과 미국이 오리건 조약에 서명하면서 오리건 국경 분쟁이 종식되었고, 국경이 북위 49도를 따라 서쪽으로 확장되었다. 이는 밴쿠버섬 식민지(1849년)와 브리티시컬럼비아(1858년)에 영국 식민지가 들어서는 기반을 마련했다. 영러 간의 1825년 상트페테르부르크 조약은 태평양 연안을 따라 국경을 확정했지만, 1867년 미국의 알래스카 매매 이후에도 알래스카-유콘 및 알래스카-브리티시컬럼비아 국경의 정확한 경계 설정에 대한 분쟁은 계속되었다.
3.4. 캐나다 연방 결성과 영토 확장

세 차례의 헌법 회의를 거쳐, 1867년 1867년 영국령 북아메리카 법은 1867년 7월 1일 공식적으로 캐나다 연방을 선포했으며, 초기에는 온타리오, 퀘벡, 노바스코샤, 뉴브런즈윅의 4개 주로 구성되었다. 캐나다는 루퍼츠랜드와 노스웨스턴 준주를 장악하여 노스웨스트 준주를 형성했는데, 이곳에서 메티스들의 불만이 레드리버 반란을 촉발했고, 1870년 7월 매니토바주가 창설되었다. 브리티시컬럼비아와 밴쿠버섬(1866년에 통합)은 10년 내에 빅토리아까지 이어지는 대륙 횡단 철도 건설 약속을 조건으로 1871년에 연방에 가입했고, 프린스에드워드아일랜드는 1873년에 가입했다. 1898년 노스웨스트 준주에서 클론다이크 골드러시가 한창일 때 의회는 유콘 준주를 창설했다. 앨버타와 서스캐처원은 1905년에 주로 승격되었다. 1871년에서 1896년 사이에 캐나다 인구의 거의 4분의 1이 미국 남부로 이주했다.
캐나다 서부를 개방하고 유럽 이민을 장려하기 위해 캐나다 정부는 세 개의 대륙 횡단 철도 건설(그중 하나가 캐나다 태평양 철도)을 후원하고, 정착을 규제하기 위해 자치령 토지법을 통과시켰으며, 영토에 대한 권위를 주장하기 위해 노스웨스트 기마경찰대를 창설했다. 이 서부 확장 및 국가 건설 시기에는 캐나다 프레리의 많은 평원 인디언들이 "인디언 보호구역"으로 이주하게 되었고, 이는 유럽계 민족의 블록 정착을 위한 길을 열었다. 이로 인해 캐나다 서부의 평원 들소가 멸종 위기에 처했고, 유럽식 소 목장과 밀밭이 토지를 지배하게 되었다. 원주민들은 들소와 전통 사냥터의 상실로 인해 광범위한 기근과 질병을 겪었다. 연방 정부는 원주민들이 보호구역으로 이주하는 조건으로 긴급 구호를 제공했다. 이 시기에 캐나다는 인디언법을 도입하여 교육, 정부, 법적 권리에 대한 퍼스트 네이션의 통제권을 확대했다.
3.5. 20세기 초
1918년 캐나다 전쟁 채권 포스터는 말 대신 쟁기를 끄는 세 명의 프랑스 여성을 묘사하고 있다.


1867년 영국령 북아메리카 법에 따라 영국이 여전히 캐나다의 외교권을 통제했기 때문에, 1914년 영국의 선전포고는 자동으로 캐나다를 제1차 세계 대전에 참전시켰다. 서부 전선으로 파견된 자원병들은 나중에 캐나다 군단의 일부가 되었으며, 이들은 비미 리지 전투와 전쟁의 다른 주요 교전에서 상당한 역할을 수행했다. 1917년 징병 위기는 연합당 내각이 군대의 줄어드는 현역 병력을 징병제로 보충하자는 제안이 프랑스어권 퀘벡 주민들의 격렬한 반대에 부딪히면서 발발했다. 1919년 캐나다는 영국과 독립적으로 국제 연맹에 가입했고, 1931년 웨스트민스터 헌장은 캐나다의 독립을 확인했다.
1930년대 초 캐나다의 대공황은 경제 침체를 겪으며 전국적으로 어려움을 겪었다. 경기 침체에 대응하여 서스캐처원 주의 협동연방당(CCF)은 1940년대와 1950년대에 토미 더글러스가 개척한 복지 국가의 많은 요소를 도입했다. 윌리엄 라이언 매켄지 킹 총리의 조언에 따라, 영국보다 7일 늦은 1939년 9월 10일 조지 6세 국왕에 의해 독일에 대한 전쟁이 선포되었다. 이러한 지연은 캐나다의 독립성을 강조했다.
최초의 캐나다 육군 부대는 1939년 12월 영국에 도착했다. 제2차 세계 대전 동안 총 백만 명이 넘는 캐나다인이 군대에 복무했다. 캐나다군은 1942년 실패한 디에프 기습, 연합군의 이탈리아 침공, 노르망디 상륙, 노르망디 전투, 1944년 스헬더강 전투 등 전쟁의 많은 주요 전투에서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다. 캐나다는 네덜란드가 점령당하는 동안 네덜란드 왕실에 망명을 제공했으며, 나치 독일로부터의 해방에 주요하게 기여한 것으로 네덜란드로부터 공로를 인정받고 있다.
캐나다 경제는 전쟁 중 캐나다, 영국, 중국, 소련을 위한 군수품을 산업체에서 제조하면서 호황을 누렸다. 1944년 퀘벡에서 또 다른 징병 위기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캐나다는 전쟁을 대규모 군대와 강력한 경제로 마무리했다.
3.6. 현대
대공황의 금융 위기로 인해 뉴펀들랜드 자치령은 1934년 책임 정부를 포기하고 영국 총독이 통치하는 왕령식민지가 되었다. 두 차례의 주민투표 끝에 뉴펀들랜드 주민들은 1949년 캐나다에 주로 가입하기로 투표했다.
전후 캐나다의 경제 성장과 연이은 자유당 정부의 정책은 새로운 캐나다 정체성의 출현으로 이어졌으며, 이는 1965년 단풍잎 국기 채택, 1969년 공식 이중언어(영어와 프랑스어) 정책 시행, 1971년 공식 다문화주의 제도화로 특징지어진다. 사회민주주의 프로그램도 도입되었는데, 메디케어, 캐나다 연금 계획, 캐나다 학생 융자 등이 그것이다. 다만, 특히 퀘벡주와 앨버타주 같은 주 정부들은 이러한 프로그램 중 다수를 자신들의 관할권 침해로 간주하여 반대했다.

마지막으로, 또 다른 일련의 헌법 회의는 1982년 캐나다법 제정으로 이어졌으며, 이는 영국으로부터 캐나다 헌법을 송환하는 것과 동시에 캐나다 권리와 자유 헌장을 창설하는 것이었다. 캐나다는 자체 군주제 하에 독립 국가로서 완전한 주권을 확립했다. 1999년, 누나부트는 연방 정부와의 일련의 협상 끝에 캐나다의 세 번째 준주가 되었다.
동시에, 퀘벡은 1960년대의 조용한 혁명을 통해 심오한 사회적, 경제적 변화를 겪으며 세속적인 민족주의 운동을 탄생시켰다. 급진적인 퀘벡 해방 전선(FLQ)은 1970년 일련의 폭탄 테러와 납치 사건으로 10월 위기를 촉발시켰고, 주권주의자 퀘벡당은 1976년에 집권하여 1980년 주권-연합에 대한 주민투표를 조직했으나 실패했다. 미치 레이크 협정을 통해 퀘벡 민족주의를 헌법적으로 수용하려는 시도는 1990년에 실패했다. 이로 인해 퀘벡에서는 블록 퀘벡당이 창당되었고, 서부에서는 캐나다 개혁당이 활력을 얻었다. 1995년에는 두 번째 주민투표가 실시되었고, 주권은 50.6% 대 49.4%라는 근소한 차이로 부결되었다. 1997년, 캐나다 대법원은 주의 일방적인 분리 독립은 위헌이라고 판결했으며, 의회는 명료법을 통과시켜 연방 탈퇴 협상 조건을 명시했다.
퀘벡 주권 문제 외에도, 1980년대 후반과 1990년대 초반에 여러 위기가 캐나다 사회를 뒤흔들었다. 여기에는 1985년 캐나다 역사상 최대 규모의 대량 살인 사건인 에어 인디아 182편 폭파 사건, 여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대학교 총기 난사 사건인 1989년 에콜 폴리테크니크 학살, 그리고 1990년 오카 위기가 포함된다. 오카 위기는 주 정부와 원주민 단체 간의 여러 폭력적 대립 중 첫 번째 사건이었다. 캐나다는 1990년 걸프 전쟁에 참전했으며, 1990년대에는 유고슬라비아 전쟁 중과 이후의 발칸 반도 작전, 그리고 "캐나다군 역사상 가장 어두운 시대"로 묘사되는 소말리아에서의 작전을 포함한 여러 평화유지 임무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캐나다는 2001년 아프가니스탄에 군대를 파견했으며, 이는 1950년대 초 한국 전쟁 이후 단일 군사 임무로는 가장 많은 캐나다인 사망자를 낸 사건이었다.
2011년 캐나다군은 리비아 내전에 대한 NATO 주도 개입에 참여했으며, 2010년대 중반에는 이라크에서의 이슬람 국가 반란 퇴치에도 관여했다. 캐나다는 2017년 건국 150주년을 기념했으며, 이는 캐나다의 코로나19 범유행이 2020년 1월 27일 시작되어 광범위한 사회적, 경제적 혼란을 야기하기 3년 전이었다. 2021년에는 옛 캐나다 원주민 기숙학교 부지 근처에서 수백 명의 원주민 유해가 발견될 가능성이 제기되었다. 1828년부터 1997년까지 다양한 기독교 교회가 관리하고 캐나다 정부가 자금을 지원한 이 기숙학교들은 원주민 아동들을 유럽-캐나다 문화에 동화시키려 했다.
4. 지리
캐나다의 지리는 광대한 영토에 걸쳐 다양한 기후대와 풍부한 생물 다양성을 포함한다. 북극에서 온대에 이르는 기후적 특징과, 여러 생태 지역에 걸친 동식물 분포는 캐나다 자연환경의 중요한 요소이다.

캐나다는 수자원을 포함한 총면적에서 세계에서 두 번째로 큰 나라이다. 육지 면적만으로는 세계 4위인데, 이는 세계에서 가장 넓은 담수호 지역을 보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동쪽의 대서양에서 북쪽의 북극해를 거쳐 서쪽의 태평양에 이르는 캐나다의 영토는 998.47 만 km2에 달한다. 캐나다는 또한 광대한 해양 영토를 가지고 있으며, 세계에서 가장 긴 39107 만 m (24.30 만 mile)의 해안선을 보유하고 있다. 미국과의 세계에서 가장 긴 육상 국경(8891 0)을 공유하는 것 외에도, 캐나다는 북동쪽으로 한스섬에서 그린란드(즉, 덴마크 왕국)와 육상 국경을 접하며, 남동쪽으로는 프랑스의 해외 공동체인 생피에르 미클롱과 해상 경계를 공유한다. 캐나다는 또한 세계 최북단 정착지인 엘즈미어섬 북단(북위 82.5도)에 위치한 캐나다군 기지 얼러트(Alert)의 본거지이며, 이곳은 북극점에서 1314831 m (817 mile) 떨어져 있다. 위도상으로 캐나다 최북단 육지는 누나부트의 컬럼비아곶(북위 83도 6분 41초)이며, 최남단은 이리호의 미들아일랜드(북위 41도 40분 53초)이다. 경도상으로 캐나다 육지는 뉴펀들랜드의 스피어곶(서경 52도 37분)에서 유콘 준주의 세인트일라이어스산(서경 141도)까지 뻗어 있다.
캐나다는 캐나다 순상지, 내륙 평원, 오대호-세인트로렌스 저지대, 애팔래치아 지역, 서부 코르디예라, 허드슨만 저지대, 북극 군도의 7개 지형구로 나눌 수 있다. 국토 전역에 아한대림이 우세하며, 북극 북부 지역과 로키산맥을 통틀어 얼음이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남서부의 비교적 평탄한 캐나다 프레리는 생산적인 농업을 가능하게 한다. 오대호는 남동쪽의 세인트로렌스강으로 흘러들어가며, 이곳의 저지대는 캐나다 경제 생산량의 많은 부분을 차지한다. 캐나다는 200만 개가 넘는 호수(그중 563개는 100 0보다 큼)를 보유하고 있으며, 이는 세계 담수량의 많은 부분을 차지한다. 캐나다 로키산맥, 해안산맥, 북극 코르디예라에도 담수 빙하가 있다. 캐나다는 지질학적으로 활발하며, 많은 지진과 잠재적으로 활동적인 화산이 있다.
4.1. 기후
캐나다 전역의 평균 겨울 및 여름 최고 기온은 지역마다 다르다. 겨울은 국토의 많은 지역, 특히 대륙성 기후를 경험하는 내륙 및 프레리 주에서 혹독할 수 있으며, 이곳의 일일 평균 기온은 영하 -15 °C에 가깝지만, 극심한 풍속냉각으로 인해 -40 °C 아래로 떨어질 수 있다. 해안이 아닌 지역에서는 눈이 거의 6개월 동안 땅을 덮을 수 있으며, 북부 일부 지역에서는 눈이 일 년 내내 남아 있을 수 있다. 해안가 브리티시컬럼비아는 온화한 기후로 겨울이 온화하고 비가 많이 온다. 동부 및 서부 해안의 평균 최고 기온은 일반적으로 20°C대 초반이며, 해안 사이 지역의 평균 여름 최고 기온은 25 °C에서 30 °C 사이 범위이며, 일부 내륙 지역에서는 때때로 기온이 40 °C를 초과하기도 한다.
캐나다 북부의 많은 지역은 얼음과 영구동토로 덮여 있다. 영구동토의 미래는 불확실한데, 이는 북극이 캐나다의 기후 변화의 결과로 지구 평균보다 세 배 빠른 속도로 온난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1948년 이후 캐나다 육지의 연평균 기온은 1.7 °C 상승했으며, 지역에 따라 1.1 °C에서 2.3 °C 사이 범위의 변화를 보였다. 온난화 속도는 북부와 프레리 지역에서 더 높았다. 캐나다 남부 지역에서는 캐나다와 미국 양국에서 발생하는 대기 오염(금속 제련, 발전을 위한 석탄 연소, 차량 배기가스 등으로 인한)으로 인해 산성비가 발생하여 수로, 산림 성장, 농업 생산성에 심각한 영향을 미쳤다. 캐나다는 세계적으로 온실가스 배출량이 많은 국가 중 하나이며, 1990년에서 2022년 사이에 배출량이 16.5% 증가했다.
4.2. 생물 다양성

캐나다는 15개의 육상 생태 지역과 5개의 해양 생태 지역으로 나뉜다. 이 생태 지역들은 80,000종이 넘는 분류된 캐나다 야생동물을 포함하며, 아직 공식적으로 인정되거나 발견되지 않은 동등한 수의 종들이 있다. 캐나다는 다른 나라에 비해 고유종의 비율이 낮지만, 인간 활동, 침입종, 그리고 국내 환경 문제로 인해 현재 800종 이상의 종들이 멸종 위기에 처해있다. 캐나다 거주 종의 약 65%는 "안전한" 것으로 간주된다. 캐나다 국토의 절반 이상은 인간 개발로부터 손상되지 않고 비교적 온전하게 보존되어 있다. 캐나다의 아한대림은 약 300.00 만 km2가 도로, 도시 또는 산업에 의해 방해받지 않은, 지구상에서 가장 큰 온전한 산림으로 여겨진다. 마지막 빙하기가 끝난 이후, 캐나다는 8개의 뚜렷한 산림 지역으로 구성되어 있다.
국토 및 담수 면적의 약 12.1%가 보전 지역이며, 이 중 11.4%가 보호 지역으로 지정되어 있다. 영해의 약 13.8%가 보전되며, 이 중 8.9%가 보호 지역으로 지정되어 있다. 캐나다 최초의 국립공원인 밴프 국립공원은 1885년에 설립되었으며 면적은 6641 km2이다. 캐나다에서 가장 오래된 주립공원인 앨곤퀸 주립공원은 1893년에 설립되었으며 면적은 7653.45 km2이다. 슈피리어호 국립 해양 보전 지역은 약 1.00 만 km2에 달하는 세계에서 가장 큰 담수 보호 지역이다. 캐나다에서 가장 큰 국립 야생동물 지역은 스콧 제도 해양 국립 야생동물 보호구역으로 면적은 1.16 만 km2이다.
5. 정부와 정치
캐나다의 정부와 정치는 입헌군주제 하의 의원내각제를 기반으로 하며, 연방제 국가로서 연방 정부와 주 정부 간의 권력 분립이 특징이다. 법치주의 원칙, 복잡한 국내외 관계, 그리고 국방 정책이 국가 운영의 핵심을 이룬다.

캐나다는 자유주의 전통을 가진 "완전한 민주주의 국가"로 묘사되며, 평등주의적이고 온건한 정치 이념을 가지고 있다. 사회 정의에 대한 강조는 캐나다 정치 문화의 두드러진 요소였다. "평화, 질서, 좋은 정부"는 묵시적 권리장전과 함께 캐나다 연방주의의 기본 원칙이다.
연방 차원에서 캐나다는 "중개 정치"를 실행하는 비교적 중도적인 두 정당에 의해 지배되어 왔다: 중도좌파 성향의 캐나다 자유당과 중도우파 성향의 캐나다 보수당(또는 그 이전 정당들). 역사적으로 우세했던 자유당은 정치적 스펙트럼의 중앙에 위치한다. 2021년 선거에서는 5개 정당이 의회에 대표를 선출했다 - 소수 정부를 구성한 자유당; 공식 야당이 된 보수당; 좌파를 점유하는 신민주당; 블록 퀘벡당; 그리고 녹색당. 극우 및 극좌 정치는 캐나다 사회에서 두드러진 세력이었던 적이 없다.
캐나다는 입헌군주제의 맥락에서 의원내각제를 채택하고 있으며, 캐나다 군주제는 행정, 입법, 사법부의 기초이다. 현재 군주는 14개 다른 주권 영연방 국가의 군주이기도 하며, 캐나다의 10개 주의 군주이기도 하다. 군주는 총리의 조언에 따라 대표자인 총독을 임명하여 대부분의 의례적인 왕실 업무를 수행한다.


군주제는 캐나다에서 주권과 권위의 원천이다. 그러나 총독이나 군주는 드문 위기 상황에서 장관의 조언 없이 자신의 권한을 행사할 수 있지만, 행정권(또는 왕권)의 사용은 그 외에는 선출된 하원에 책임을 지고 총리가 선택하고 이끄는 내각, 즉 왕실 장관 위원회에 의해 지시된다.

정부의 안정을 보장하기 위해 총독은 일반적으로 하원에서 다수 의원의 신임을 얻을 수 있는 정당의 현재 지도자를 총리로 임명한다. 총리실(PMO)은 정부에서 가장 강력한 기관 중 하나로, 의회 승인을 위한 대부분의 법안을 발의하고 왕실이 임명할 총독, 부총독, 상원의원, 연방 법원 판사, 국영 기업 및 정부 기관의 장을 선택한다. 두 번째로 많은 의석을 가진 정당의 지도자는 일반적으로 공식 야당 대표가 되며, 정부를 견제하기 위한 적대적인 의회 시스템의 일부이다.

캐나다 의회는 모든 연방 법규를 통과시킨다. 의회는 군주, 하원, 상원으로 구성된다. 캐나다는 영국의 의회 주권 개념을 물려받았지만, 이는 나중에 1982년 헌법 제정과 함께 미국의 법의 우위 개념으로 거의 완전히 대체되었다.
하원의 338명의 국회의원 각각은 선거구 또는 라이딩에서 단순 다수결로 선출된다. 1982년 캐나다 헌법은 선거 사이에 5년 이상 경과하지 않도록 요구하지만, 캐나다 선거법은 이를 10월에 "고정된" 선거일로 4년으로 제한한다. 총선거는 여전히 총독이 소집해야 하며, 총리의 조언이나 하원의 불신임 결의로 촉발될 수 있다. 상원의 105명 의원은 지역별로 의석이 배분되며, 75세까지 임기를 수행한다.
캐나다 연방주의는 정부 책임을 연방 정부와 10개 주 사이에 분담한다. 주 의회는 단원제이며 하원과 유사한 의회 방식으로 운영된다. 캐나다의 3개 준주에도 의회가 있지만, 이들은 주권이 없으며 주보다 헌법적 책임이 적고, 구조적으로 주의회와 다르다.
5.1. 법
캐나다의 헌법은 국가의 최고법이며, 성문법과 불문 관습으로 구성된다. 1867년 헌법법(1982년 이전에는 영국령 북아메리카 법으로 알려짐)은 의회 관행에 기반한 통치를 확인하고 연방 정부와 주 정부 간의 권한을 분할했다. 1931년 웨스트민스터 헌장은 완전한 자치권을 부여했으며, 1982년 1982년 캐나다 헌법은 영국과의 모든 입법적 관계를 종식시키고 헌법 개정 공식과 캐나다 권리와 자유 헌장을 추가했다. 이 헌장은 일반적으로 어떤 정부도 침해할 수 없는 기본 권리와 자유를 보장한다. 단서 조항은 의회와 주 의회가 헌장의 특정 조항을 5년 동안 무효화할 수 있도록 허용한다.

캐나다의 사법부는 법을 해석하고 헌법을 위반하는 의회법을 무효화할 권한을 가진다. 캐나다 대법원은 최고 법원이자 최종 중재자이며, 2017년부터 캐나다 대법원장인 리처드 와그너가 이끌고 있다. 대법원의 9명 판사는 총리와 법무장관의 조언에 따라 총독이 임명한다. 연방 내각은 또한 주 및 준주 관할 구역의 상급 법원 판사를 임명한다.
보통법은 퀘벡을 제외한 모든 지역에서 우세하며, 퀘벡에서는 대륙법이 우세하다. 형법은 전적으로 연방 책임이며 캐나다 전역에서 통일되어 있다. 형사 법원을 포함한 법 집행은 공식적으로 주의 책임이며, 주 및 시 경찰에 의해 수행된다. 대부분의 농촌 지역과 일부 도시 지역에서는 치안 책임이 연방 왕립 캐나다 기마경찰에 위탁된다.
캐나다 원주민법은 캐나다 원주민 집단에게 토지 및 전통 관행에 대한 특정 헌법상 인정된 권리를 제공한다. 유럽인과 많은 원주민 집단 간의 관계를 중재하기 위해 다양한 조약과 판례법이 제정되었다. 원주민법의 역할과 그들이 지지하는 권리는 1982년 헌법 제35조에 의해 재확인되었다. 이러한 권리에는 인디언 보건 이전 정책을 통한 의료 서비스 제공 및 세금 면제 등이 포함될 수 있다.
5.2. 주와 준주
캐나다는 주(province)라고 불리는 10개의 연방 구성주와 3개의 연방 준주로 구성된 연방 국가이다. 이들은 4개의 주요 지역으로 분류될 수 있다: 캐나다 서부, 캐나다 중부, 캐나다 대서양, 캐나다 북부 (캐나다 동부는 캐나다 중부와 캐나다 대서양을 함께 지칭한다). 주와 준주는 의료, 교육, 사회 프로그램과 같은 사회 프로그램 및 사법 행정(형법 제외)에 대한 책임을 진다. 주 정부는 연방 정부보다 더 많은 세수를 징수하지만, 부유한 주와 가난한 주 사이에 합리적으로 균일한 서비스 및 과세 기준이 유지되도록 연방 정부가 재정 조정 교부금을 지급한다.
캐나다의 주와 준주의 주요 차이점은 주가 왕실로부터 주권을 받고 1867년 헌법으로부터 권력과 권한을 받는 반면, 준주 정부는 캐나다 의회로부터 권한을 위임받고 위원은 군주를 직접 대표하는 것이 아니라 연방 평의회에서의 왕을 대표한다는 것이다. 1867년 헌법에서 비롯된 권한은 연방 정부와 주 정부 간에 배타적으로 행사하도록 분할되어 있으며, 이러한 조정에 대한 변경은 헌법 개정을 필요로 하는 반면, 준주의 역할과 권한 변경은 캐나다 의회가 일방적으로 수행할 수 있다.
5.3. 외교 관계

캐나다는 다자주의와 국제주의적 해결책을 추구하는 경향을 가진 세계 문제에서의 역할로 인해 중견국으로 인정받고 있다. 캐나다는 국제 평화와 안보에 대한 헌신, 갈등 중재자로서의 역할, 그리고 개발도상국에 대한 원조 제공으로 유명하다.
캐나다와 미국은 길고 복잡한 관계를 맺고 있으며, 긴밀한 동맹국으로서 군사 작전과 인도주의적 노력에서 정기적으로 협력한다. 캐나다는 또한 영국 연방과 Organisation internationale de la Francophonie프랑코포니 국제 기구프랑스어 회원국으로서 영국 및 프랑스, 그리고 양국의 이전 식민지들과 역사적, 전통적 유대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캐나다는 제2차 세계 대전 중 네덜란드 해방에 기여한 덕분에 네덜란드와 긍정적인 관계를 맺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캐나다는 약 180개 외국에 270개 이상의 외교 및 영사 사무소를 두고 있다.
캐나다는 다양한 국제기구 및 포럼의 회원국이다. 캐나다는 1945년 유엔(UN)의 창립 회원국이었으며, 1958년 미국과 함께 북미항공우주방위사령부를 창설했다. 캐나다는 세계무역기구, 파이브 아이즈, G7,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회원국이다. 캐나다는 1989년 아시아 태평양 경제협력체(APEC) 포럼의 창립 회원국이었으며, 1990년 미주 기구(OAS)에 가입했다. 캐나다는 1948년 세계 인권 선언(UDHR)을 비준했으며, 이후 7개의 주요 UN 인권 협약 및 규약을 비준했다.
5.4. 군사

많은 국내 의무와 함께, 3,000명 이상의 캐나다군(CAF) 인원이 여러 해외 군사 작전에 파견되어 있다. 캐나다 통합군은 왕립 캐나다 해군, 캐나다 육군, 왕립 캐나다 공군으로 구성된다. 국가는 약 68,000명의 현역 인원과 27,000명의 예비군으로 구성된 전문 직업군을 고용하고 있으며, "강하고, 안전하며, 참여하는" 정책 하에 각각 71,500명과 30,000명으로 증가할 예정이다. 이 중 약 5,000명은 캐나다 레인저스의 하위 구성원이다. 2022년 캐나다의 군사 지출은 약 269.00 억 USD로, 국가 국내총생산(GDP)의 약 1.2%에 해당하며, 군비 지출 국가 순위에서 14위를 차지했다.
20세기 동안 평화유지 활동 개발과 주요 평화유지 계획 참여에서 캐나다의 역할은 긍정적인 국제적 이미지 형성에 중요한 역할을 해왔다. 평화유지는 캐나다 문화에 깊이 뿌리내리고 있으며, 캐나다인들이 자국의 외교 정책을 미국과 구별 짓는 특징적인 요소로 여긴다. 캐나다는 베트남 전쟁이나 2003년 이라크 침공과 같이 유엔의 승인을 받지 않은 군사 작전에 참여하는 것을 오랫동안 꺼려왔다. 21세기 이후, 유엔 평화유지 노력에 대한 캐나다의 직접적인 참여는 크게 감소했다. 이러한 대규모 감소는 캐나다가 유엔을 직접 통하는 대신 북대서양 조약 기구를 통해 유엔이 승인한 군사 작전에 참여하는 방향으로 전환했기 때문이다. 북대서양 조약 기구를 통한 참여로의 변화는 전통적인 평화유지 임무보다는 더 군사화되고 치명적인 임무로의 전환을 초래했다.
6. 경제
캐나다 경제는 풍부한 천연자원과 발달된 서비스업을 바탕으로 하며, 과학 기술 혁신과 광범위한 교통 인프라가 경제 성장을 뒷받침한다.

캐나다는 선진국으로서 고도로 발달된 혼합 시장 경제를 가지고 있으며, 2023년 기준으로 세계 9위의 경제 규모를 자랑하며, 명목 GDP는 약 2.22 조 USD에 달한다. 세계에서 가장 큰 무역국 중 하나이며, 고도로 세계화된 경제를 가지고 있다. 2021년 캐나다의 상품 및 서비스 무역액은 2.02 조 USD에 달했다. 캐나다의 수출액은 총 6370.00 억 USD 이상이었고, 수입품 가치는 6310.00 억 USD 이상이었으며, 이 중 약 3910.00 억 USD가 미국에서 수입되었다. 2018년 캐나다는 상품 무역에서 220.00 억 USD의 적자를, 서비스 무역에서 250.00 억 USD의 적자를 기록했다. 토론토 증권거래소는 시가총액 기준으로 세계에서 9번째로 큰 증권거래소이며, 1,500개 이상의 기업이 상장되어 있고 총 시가총액은 2.00 조 USD를 넘는다.
캐나다 은행은 국가의 중앙은행이다. 재무장관과 혁신과학산업부 장관은 캐나다 통계청의 데이터를 사용하여 재정 계획을 수립하고 경제 정책을 개발한다. 캐나다는 강력한 협동조합 은행 부문을 보유하고 있으며, 신용협동조합 1인당 회원 수가 세계에서 가장 높다. 부패 인식 지수에서 낮은 순위(2023년 14위)를 기록하며 "세계에서 가장 부패가 적은 국가 중 하나로 널리 알려져 있다". 세계 경쟁력 보고서에서는 높은 순위(2024년 19위)를 기록하고 있다. 캐나다 경제는 헤리티지 재단의 경제자유지수에서 대부분의 서양 국가보다 높은 순위를 차지하며, 상대적으로 낮은 수준의 소득 불균형을 경험한다. 국가의 평균 가구 1인당 가처분 소득은 OECD 평균보다 "훨씬 높다". 캐나다는 주택 구입 능력과 외국인 직접 투자 부문에서 가장 발전된 국가 중 낮은 순위에 속한다.
20세기 초 이래로 캐나다의 제조업, 광업, 서비스 부문의 성장은 국가를 주로 농촌 경제에서 도시화된 산업 경제로 변화시켰다. 캐나다 경제는 서비스 산업이 지배하며, 국가 노동력의 약 4분의 3을 고용하고 있다. 캐나다는 특이하게도 중요한 1차 산업 부문을 가지고 있으며, 그중 임업과 석유 산업이 가장 두드러진 구성 요소이다. 농업이 어려운 캐나다 북부의 많은 마을은 인근 광산이나 목재 자원으로 유지된다.
미국과의 경제 통합은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크게 증가했다. 1988년 캐나다-미국 자유 무역 협정(FTA)은 양국 간의 관세를 철폐했으며,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은 1994년 멕시코를 포함하여 자유 무역 지대를 확장했다(이후 미국-멕시코-캐나다 협정으로 대체됨). 2023년 기준, 캐나다는 51개국과 15개의 자유 무역 협정을 체결했다.
캐나다는 에너지 순수출국인 몇 안 되는 선진국 중 하나이다. 캐나다 대서양 연안은 막대한 천연가스 매장량을 보유하고 있으며, 앨버타는 세계 4위의 석유 매장량을 자랑한다. 방대한 애서배스카 오일샌드 및 기타 석유 매장량은 캐나다에 전 세계 석유 매장량의 13%를 제공하며, 이는 세계 3위 또는 4위에 해당한다. 캐나다는 또한 세계 최대 농산물 공급국 중 하나이며, 캐나다 프레리 지역은 밀, 카놀라, 기타 곡물의 가장 중요한 세계 생산지 중 하나이다. 캐나다는 아연, 우라늄, 금, 니켈, 백금족, 알루미늄, 철강, 철광석, 코크스, 납, 구리, 몰리브덴, 코발트, 카드뮴의 주요 수출국이다. 캐나다는 남부 온타리오와 퀘벡에 중심을 둔 상당한 규모의 제조업 부문을 보유하고 있으며, 자동차와 항공우주 산업이 특히 중요한 산업이다. 어업 또한 경제에 중요한 기여를 하고 있다.
6.1. 과학 기술
2020년 캐나다는 국내 연구 개발에 약 419억 달러를 지출했으며, 2022년 추가 추정치는 432억 달러이다. 2023년 기준, 캐나다는 물리학, 화학, 의학 분야에서 15명의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했다. 네이처 인덱스에 따르면, 캐나다는 과학 학술지에 게재된 논문 점유율에서 세계 7위를 차지하며, 다수의 글로벌 기술 기업 본사가 위치해 있다. 캐나다는 세계에서 인터넷 접속 수준이 가장 높은 국가 중 하나로, 총인구의 약 94%에 해당하는 3,300만 명 이상의 사용자를 보유하고 있다.

캐나다의 과학 기술 분야 주요 성과로는 현대식 알카라인 전지 개발, 인슐린 발견, 소아마비 백신 개발, 원자핵 내부 구조에 대한 발견 등이 있다. 그 외 캐나다의 주요 과학적 기여로는 인공 심박조율기, 시각 피질 지도 작성, 전자 현미경 개발, 판 구조론, 딥 러닝, 멀티터치 기술, 최초의 블랙홀인 백조자리 X-1 발견 등이 있다. 캐나다는 줄기 세포, 부위 지정 돌연변이 유도, T세포 수용체를 포함한 유전학 분야에서 오랜 발견의 역사를 가지고 있으며, 판코니 빈혈, 낭포성 섬유증, 조기 발병 알츠하이머병 등 수많은 질병의 원인이 되는 유전자를 규명했다.
캐나다 우주국은 심우주, 행성, 항공 연구와 로켓 및 위성에 중점을 둔 활발한 우주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캐나다는 1962년 첫 번째 위성인 알루엣 1호를 발사했다. 캐나다는 국제 우주 정거장에 기여하고 있으며, 여러 개의 캐나다암과 같은 로봇 도구로 유명하다. 캐나다는 레이더샛 위성 시리즈와 블랙 브랜트 로켓 시리즈를 포함한 많은 장기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6.2. 교통
캐나다는 광활한 국토를 연결하는 광범위한 교통 인프라를 갖추고 있다. 주요 도로망은 동서를 횡단하며 도시와 농촌 지역을 연결하고, 특히 미국과의 국경을 따라 집중되어 있다. 캐나다 횡단 고속도로는 세계에서 가장 긴 국도 시스템 중 하나이다.
철도 시스템은 여객 및 화물 운송 모두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VIA 철도는 전국적인 여객 철도 서비스를 제공하며, 캐나다 내셔널 철도(CN)와 캐나다 태평양 철도(CP)는 북미 전역에 걸쳐 광범위한 화물 운송 네트워크를 운영한다.
항공 운송은 캐나다의 넓은 국토와 외딴 지역 접근성을 고려할 때 매우 중요하다. 주요 국제공항으로는 토론토 피어슨 국제공항, 밴쿠버 국제공항, 몬트리올 피에르 엘리오트 트뤼도 국제공항 등이 있으며, 에어 캐나다가 국영 항공사이다.
항만 및 해운 또한 캐나다 경제에 필수적이다. 밴쿠버항은 북미에서 가장 분주한 항구 중 하나이며, 세인트로렌스 수로는 오대호와 대서양을 연결하는 중요한 내륙 수로이다. 이 외에도 핼리팩스항과 몬트리올항 등이 주요 국제 무역항으로 기능한다.
7. 인구
캐나다의 인구는 높은 이민율로 인해 다민족, 다문화 사회를 이루고 있으며, 영어와 프랑스어의 공용어 사용 및 다양한 종교적 신념 공존이 특징이다.

왼쪽 상단: 퀘벡-윈저 회랑은 가장 인구 밀도가 높고 산업화된 지역이다. 캐나다 인구의 대부분은 미국 국경 근처와 주요 도시에 집중되어 있다.
2021년 캐나다 인구 조사에서는 총인구가 36,991,981명으로 집계되었으며, 이는 2016년 수치보다 약 5.2% 증가한 것이다. 2023년에는 캐나다 인구가 4,000만 명을 넘어선 것으로 추정된다. 인구 성장의 주요 동인은 이민이며, 그보다는 적은 정도로 자연 증가이다. 캐나다는 경제 정책과 가족 재결합에 의해 주로 주도되는, 세계에서 1인당 이민율이 가장 높은 국가 중 하나이다. 2021년에는 기록적인 405,000명의 이민자가 입국했다. 캐나다는 난민 재정착 분야에서 세계를 선도하며, 2022년에는 47,600명 이상을 재정착시켰다. 새로운 이민자들은 주로 주요 도시 지역인 토론토, 몬트리올, 밴쿠버에 정착한다.
캐나다의 인구 밀도는 4.2 PD/km2로 세계에서 가장 낮은 수준이며, 인구의 약 95%가 북위 55도 남쪽에 거주한다. 인구의 약 80%가 미국 본토와의 국경에서 241401 m (150 mile) 이내에 거주한다. 캐나다는 고도로 도시화되어 인구의 80% 이상이 도시 중심지에 거주한다. 캐나다인의 대다수(70% 이상)는 북위 49도 아래에 거주하며, 캐나다인의 50%는 북위 45도 42분(북위 45.7도) 남쪽에 거주한다. 국가에서 가장 인구 밀도가 높은 지역은 오대호와 세인트로렌스강을 따라 있는 남부 퀘벡과 남부 온타리오의 퀘벡-윈저 회랑이다.
캐나다인의 대다수(81.1%)는 가족 가구에 거주하며, 12.1%는 혼자 거주한다고 보고했고, 6.8%는 다른 친척이나 관련 없는 사람들과 함께 거주한다. 가구의 51%는 자녀가 있거나 없는 부부이며, 8.7%는 한부모 가구, 2.9%는 다세대 가구, 29.3%는 1인 가구이다.
순위 | 광역 도시권 | 주 | 인구 |
---|---|---|---|
1 | 토론토 | 온타리오 | 6,202,225 |
2 | 몬트리올 | 퀘벡 | 4,291,732 |
3 | 밴쿠버 | 브리티시컬럼비아 | 2,642,825 |
4 | 오타와-가티노 | 온타리오-퀘벡 | 1,488,307 |
5 | 캘거리 | 앨버타 | 1,481,806 |
6 | 에드먼턴 | 앨버타 | 1,418,118 |
7 | 퀘벡시 | 퀘벡 | 839,311 |
8 | 위니펙 | 매니토바 | 834,678 |
9 | 해밀턴 | 온타리오 | 785,184 |
10 | 워털루 지역 | 온타리오 | 575,847 |
11 | 런던 | 온타리오 | 543,551 |
12 | 핼리팩스 | 노바스코샤 | 465,703 |
13 | 나이아가라 지역 | 온타리오 | 433,604 |
14 | 윈저 | 온타리오 | 422,630 |
15 | 오샤와 | 온타리오 | 415,311 |
16 | 빅토리아 | 브리티시컬럼비아 | 397,237 |
17 | 새스커툰 | 서스캐처원 | 317,480 |
18 | 리자이나 | 서스캐처원 | 249,217 |
19 | 셔브룩 | 퀘벡 | 227,398 |
20 | 킬로나 | 브리티시컬럼비아 | 222,162 |
7.1. 민족 구성
2021년 캐나다 인구조사 응답자들은 450개 이상의 "민족적 또는 문화적 기원"을 자가 보고했다. 선택된 주요 범민족 그룹은 다음과 같다: 유럽계 (19,062,115명, 약 52.5%), 북아메리카계 (8,329,945명, 약 22.9%), 아시아계 (7,013,835명, 약 19.3%), 북미 원주민 (2,204,475명, 약 6.1%), 아프리카계 (1,394,170명, 약 3.8%), 라틴, 중앙 및 남아메리카계 (900,495명, 약 2.5%), 카리브해계 (774,515명, 약 2.1%), 오세아니아계 (105,010명, 약 0.3%), 그리고 기타 (2,163,380명, 약 5.9%). 캐나다인의 60% 이상이 단일 기원을 보고했으며, 36%는 복수 민족 기원을 보고하여 전체 합계는 100%를 초과한다. (주: 백분율은 민족 기원을 보고한 총 응답자 36,328,475명을 기준으로 계산됨)

2021년 캐나다에서 가장 많이 보고된 10대 민족 또는 문화적 기원은 캐나다인(인구의 15.6% 차지)이며, 그 뒤를 영국계(14.7%), 아일랜드계(12.1%), 스코틀랜드계(12.1%), 프랑스계(11.0%), 독일계(8.1%), 중국계(4.7%), 이탈리아계(4.3%), 인도계(3.7%), 우크라이나계(3.5%)가 이었다.
2021년에 집계된 3,630만 명 중 약 2,450만 명이 자신을 "백인"으로 보고했으며, 이는 인구의 67.4%에 해당한다. 5% 또는 180만 명에 해당하는 원주민 인구는 2016년에서 2021년 사이에 비원주민 인구(5.3% 증가)에 비해 9.4% 증가했다. 캐나다인 4명 중 1명 또는 인구의 26.5%가 비백인 및 비원주민 유색인종 소수 집단에 속했으며, 2021년 가장 큰 집단은 남아시아계(260만 명; 7.1%), 중국계(170만 명; 4.7%), 흑인(150만 명; 4.3%), 필리핀계(96만 명; 2.6%), 아랍계(69만 명; 1.9%), 라틴 아메리카계(58만 명; 1.6%), 동남아시아계(39만 명; 1.1%), 서아시아계(36만 명; 1.0%), 한국계(22만 명; 0.6%), 일본계(9만 9천 명; 0.3%) 순이었다.
2011년에서 2016년 사이에 유색인종 소수 집단 인구는 18.4% 증가했다. 1961년에는 약 30만 명, 즉 캐나다 인구의 2% 미만이 유색인종 소수 집단에 속했다. 2021년 인구 조사에 따르면 830만 명, 즉 인구의 거의 4분의 1(23.0%)이 캐나다에서 이민자 또는 영주권자였거나 현재 그렇다고 보고했으며, 이는 1921년 인구 조사의 이전 기록인 22.3%를 상회하는 수치이다. 2021년 캐나다로 이주한 이민자들의 상위 3개 출신 국가는 인도, 중국, 필리핀이었다.
7.2. 언어

캐나다인들은 다양한 언어를 사용하며, 영어와 프랑스어(공식 언어)는 각각 캐나다인의 약 54%와 19%의 모국어이다. 캐나다의 공식 이중언어 정책은 시민들에게 연방 정부 서비스를 영어 또는 프랑스어로 받을 권리를 부여하며, 공식 소수 언어 사용자는 모든 주와 준주에서 자신들의 학교를 보장받는다.
퀘벡의 1974년 공식 언어법은 프랑스어를 주의 유일한 공식 언어로 지정했다. 프랑스어를 사용하는 캐나다인의 82% 이상이 퀘벡에 거주하지만, 뉴브런즈윅, 앨버타, 매니토바에도 상당한 프랑스어권 인구가 있으며, 온타리오는 퀘벡 외 지역에서 가장 많은 프랑스어 사용 인구를 보유하고 있다. 유일하게 공식적으로 이중 언어 주(州)인 뉴브런즈윅에는 아카디아 프랑스어를 사용하는 소수 민족이 인구의 33%를 차지한다. 노바스코샤 남서부, 케이프브레턴섬, 프린스에드워드아일랜드 중서부에도 아카디아인 집단이 있다.
다른 주들은 공식 언어가 없지만, 프랑스어는 영어 외에 법원, 기타 정부 서비스에서 교육 언어로 사용된다. 매니토바, 온타리오, 퀘벡에서는 주 의회에서 영어와 프랑스어를 모두 사용할 수 있도록 허용하며 법률은 두 언어로 제정된다. 온타리오에서는 프랑스어가 일부 법적 지위를 가지지만 완전히 공동 공식 언어는 아니다. 65개 이상의 서로 다른 언어와 방언으로 구성된 11개의 원주민 언어 그룹이 있다. 여러 원주민 언어는 노스웨스트 준주에서 공식 지위를 가진다. 이누크티투트어는 누나부트에서 다수 언어이며 해당 준주의 세 가지 공식 언어 중 하나이다.
2021년 인구 조사 기준으로 780만 명이 넘는 캐나다인이 비공식 언어를 모국어로 등록했다. 가장 일반적인 비공식 모국어로는 북경어(679,255명), 펀자브어(666,585명), 광둥어(553,380명), 스페인어(538,870명), 아랍어(508,410명), 타갈로그어(461,150명), 이탈리아어(319,505명), 독일어(272,865명), 타밀어(237,890명) 등이 있다. 캐나다에는 또한 많은 수화가 있으며, 그중 일부는 원주민 언어이다. 미국 수화(ASL)는 초등학교 및 중등학교에서 ASL이 널리 보급되어 전국적으로 사용된다. 퀘벡 수화(LSQ)는 주로 퀘벡에서 사용된다.
7.3. 종교

캐나다는 다양한 신앙과 관습을 포괄하는 종교적으로 다양한 국가이다. 캐나다 헌법은 신을 언급하지만, 캐나다에는 공식적인 국교가 없으며 정부는 공식적으로 종교 다원주의를 지지한다. 캐나다의 종교의 자유는 헌법으로 보호되는 권리이다.
종교적 신앙심 비율은 1970년대 이후 꾸준히 감소해 왔다. 한때 캐나다 문화와 일상생활의 중심이었던 기독교가 쇠퇴하면서, 캐나다는 탈기독교화되고 세속적인 국가가 되었다. 대다수의 캐나다인이 종교를 일상생활에서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하지만, 여전히 신을 믿는다. 종교 활동은 일반적으로 사적인 문제로 간주된다.
2021년 인구 조사에 따르면, 기독교는 캐나다에서 가장 큰 종교이며, 로마 가톨릭교도가 인구의 29.9%로 가장 많은 신자를 보유하고 있다. 전체적으로 기독교도는 인구의 53.3%를 차지하며, 7.6%는 단순히 "기독교인"으로 자신을 밝혔다. 무종교 또는 종교가 없다고 보고한 사람은 34.6%였다. 다른 신앙으로는 이슬람교(4.9%), 힌두교(2.3%), 시크교(2.1%), 불교(1.0%), 유대교(0.9%), 원주민 영성(0.2%) 등이 있다. 캐나다는 인도 다음으로 세계에서 두 번째로 큰 시크교도 인구를 보유하고 있다.
8. 보건
캐나다의 의료 서비스는 비공식적으로 메디케어라고 불리는 주 및 준주별 공공 기금 지원 의료 시스템을 통해 제공된다. 이는 1984년 캐나다 보건법 조항에 따라 운영되며 보편적이다. 공공 기금 지원 의료 서비스에 대한 보편적 접근은 "국가 내 어디에 거주하든 모든 사람에게 국민 건강 보험을 보장하는 기본적인 가치로 캐나다인들에게 종종 간주된다." 캐나다 의료비의 약 30%는 민간 부문을 통해 지불된다. 이는 주로 처방약, 치과 및 검안과 같이 메디케어가 보장하지 않거나 부분적으로 보장하는 서비스에 지불된다. 캐나다인의 약 65~75%가 일종의 보충 건강 보험에 가입되어 있으며, 많은 사람들이 고용주를 통해 이를 받거나 이차 사회 복지 프로그램에 접근한다.
다른 많은 선진국과 마찬가지로 캐나다는 은퇴자가 더 많고 근로 연령 인구가 더 적은 고령 인구로의 인구 구조 변화로 인해 의료비 지출이 증가하고 있다. 2021년 캐나다의 평균 연령은 41.9세였다. 기대 수명은 81.1세이다. 캐나다 공중보건 최고 책임자의 2016년 보고서에 따르면, 캐나다인의 88%(G7 국가 중 가장 높은 인구 비율 중 하나)가 "건강 상태가 좋거나 매우 좋다"고 응답했다. 캐나다 성인의 80%가 만성 질환의 주요 위험 요인(흡연, 신체 활동 부족, 건강에 해로운 식습관, CRTC의 어린이 대상 정크 푸드 광고 금지 등)을 하나 이상 가지고 있다고 자가 보고했다. 캐나다는 OECD 국가 중 성인 비만율이 가장 높은 국가 중 하나이며, 약 270만 명의 당뇨병 환자가 있다. 4가지 만성 질환(암(주요 사망 원인), 심혈관계 질환, 호흡기 질환, 당뇨병)이 캐나다 사망 원인의 65%를 차지한다. 캐나다에는 15세 이상 인구 중 약 800만 명이 하나 이상의 장애를 가지고 있다.
2021년 캐나다 보건 정보 연구소는 의료 지출이 3,080억 달러에 달했으며, 이는 해당 연도 캐나다 GDP의 12.7%에 해당한다고 보고했다. 2022년 캐나다의 1인당 의료비 지출은 OECD 의료 시스템 중 12위를 차지했다. 캐나다는 2000년대 초부터 대부분의 OECD 건강 지표에서 평균에 가깝거나 그 이상을 기록했으며, 대기 시간 및 의료 접근성에 대한 OECD 지표에서 평균 이상을 기록했고, 의료의 질 및 자원 사용에 대해서는 평균 점수를 받았다. 커먼웰스 펀드의 2021년 보고서는 11개 최선진국의 의료 시스템을 비교하여 캐나다를 뒤에서 두 번째로 평가했다. 확인된 약점으로는 상대적으로 높은 영아 사망률, 만성 질환 유병률, 긴 대기 시간, 시간 외 진료의 낮은 이용 가능성, 처방약 및 치과 보험 적용 범위 부족 등이 있었다. 캐나다 보건 시스템의 증가하는 문제점은 의료 전문가 부족과 병원 수용 능력 부족이다.
9. 교육

캐나다의 교육은 대부분 공공에서 제공되며, 연방, 주, 지방 정부에서 자금을 지원하고 감독한다. 교육은 주 관할이며, 주의 교육 과정은 해당 주 정부에서 감독한다. 캐나다의 교육은 일반적으로 초등 교육, 그 다음 중등 교육, 그리고 고등 교육으로 나뉜다. 캐나다 대부분의 지역에서 영어와 프랑스어로 교육을 받을 수 있다. 캐나다에는 수많은 대학교가 있으며, 거의 모든 대학교가 공공 기금을 지원받는다. 1663년에 설립된 Université Laval라발 대학교프랑스어는 캐나다에서 가장 오래된 고등 교육 기관이다. 국가의 상위 3개 대학은 토론토 대학교, 맥길, 브리티시컬럼비아 대학교이다. 가장 큰 대학은 85,000명 이상의 학생을 보유한 토론토 대학교이다.
OECD의 2022년 보고서에 따르면, 캐나다는 세계에서 가장 교육 수준이 높은 국가 중 하나이다. 캐나다는 고등 교육을 받은 성인 비율에서 세계 1위를 차지하며, 캐나다 성인의 56% 이상이 최소한 학부 대학 또는 대학교 학위를 취득했다. 캐나다는 GDP의 평균 5.3%를 교육에 지출한다. 국가는 고등 교육에 막대한 투자를 한다(학생 1인당 2.00 만 USD 이상). 2022년 기준, 25세에서 64세 사이 성인의 89%가 고등학교 졸업장과 동등한 학력을 취득했으며, 이는 OECD 평균인 75%와 비교된다.
의무 교육 연령은 5~7세에서 16~18세 사이이며, 이는 성인 문해율 99%에 기여한다. 2016년 기준 약 60,000명 이상의 어린이가 홈스쿨링을 받고 있다. 캐나다는 읽기, 수학, 과학 분야에서 OECD 우수 성과 국가이며, 2015년 평균 학생 점수는 523.7점으로 OECD 평균인 493점과 비교된다.
10. 인권 및 사회 문제
캐나다는 인권 보호와 다양성 존중을 국가의 핵심 가치로 삼고 있으며, 이는 헌법과 여러 법률을 통해 보장된다. 캐나다 권리와 자유 헌장은 표현의 자유, 종교의 자유, 평등권 등 기본적인 인권을 명시하고 있다. 다문화주의는 캐나다 사회의 중요한 특징으로, 다양한 민족과 문화가 공존하며 서로의 문화를 존중하는 것을 장려한다.
그러나 캐나다 사회 역시 여러 가지 사회 문제에 직면해 있다. 원주민에 대한 과거의 차별과 불평등 문제는 여전히 중요한 과제로 남아 있으며, 진실과 화해 위원회의 권고 사항 이행을 포함한 지속적인 노력이 요구된다. 캐나다 원주민 기숙학교 문제와 실종 및 살해된 원주민 여성 문제는 이러한 역사적 과오의 심각성을 보여준다.
소수자 권리 보호 또한 중요한 사회적 관심사이다. 성소수자(LGBTQ2S+)의 권리는 법적으로 보장되며, 동성결혼은 2005년부터 전국적으로 합법화되었다. 인종 차별, 성 차별 등 다양한 형태의 차별에 반대하는 목소리가 높으며, 사회적 평등을 증진하기 위한 정책들이 시행되고 있다.
경제적 불평등과 빈곤 문제도 존재한다. 특히 도시 지역의 노숙자 문제와 일부 취약 계층의 경제적 어려움은 사회적 과제로 남아 있다. 정부는 사회 복지 프로그램과 최저 임금제 등을 통해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려 노력하고 있다. 지역 갈등, 특히 퀘벡의 분리 독립 문제와 같은 정치적 긴장감도 과거에 비해 완화되었으나 여전히 잠재적인 사회 문제로 남아 있다.
정부와 시민 사회는 이러한 인권 및 사회 문제 해결을 위해 다양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으며, 인권 단체와 시민 운동 또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캐나다는 국제적으로도 인권 증진을 위한 목소리를 내고 있으며, 국제 인권 규범을 준수하려 노력한다.
11. 문화
캐나다 문화는 원주민, 영국, 프랑스 전통과 이민자 문화가 융합된 다채로운 양상을 보이며, 국가적 상징, 예술, 스포츠, 생활 양식 등 다양한 영역에서 그 특색이 드러난다.

캐나다 문화는 영국, 프랑스, 그리고 원주민의 전통과 문화가 오랜 기간 영향을 미치며 형성되었다. 20세기 이후로는 아프리카, 카리브해, 아시아 등 다양한 지역 출신 이민자들의 문화가 더해지면서 더욱 풍부하고 다층적인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이러한 문화적 다양성은 캐나다 사회의 중요한 특징이자 정체성의 핵심 요소로 여겨진다.
캐나다는 헌법을 통해 다문화주의를 보호하고 장려하며, 모든 시민이 자신의 문화적 배경을 존중받고 유지할 수 있도록 지원한다. 퀘벡 지역은 특히 강력한 프랑스계 문화적 정체성을 가지고 있으며, 이는 영어권 캐나다 문화와는 뚜렷한 차이를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캐나다는 전체적으로 각 지역의 민족적 하위문화들이 공존하는 "문화 모자이크"를 형성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캐나다의 문화 정책은 보편적 의료보험, 부의 재분배를 위한 높은 세율, 사형제 폐지, 빈곤 퇴치 노력, 엄격한 총기 규제, 여성 권리(임신 중절 포함) 및 성소수자 권리에 대한 사회적 자유주의 태도, 그리고 합법화된 안락사와 대마초 사용 등 캐나다의 정치적, 문화적 가치를 반영한다. 캐나다인들은 또한 국가의 대외 원조 정책, 평화 유지 역할, 국립공원 시스템, 캐나다 권리와 자유 헌장 등을 통해 자신들의 정체성을 확인한다.
11.1. 상징

자연, 개척자, 덫 사냥꾼, 상인이라는 주제는 캐나다 상징주의 초기 발전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 현대의 상징들은 국가의 지리, 추운 기후, 생활 방식, 그리고 전통적인 유럽 및 원주민 상징의 캐나다화를 강조한다. 단풍잎을 캐나다의 상징으로 사용한 것은 18세기 초로 거슬러 올라간다. 단풍잎은 캐나다의 현재 및 이전 국기, 그리고 국장에 묘사되어 있다. "단풍잎 타탄"으로 알려진 캐나다의 공식 타탄은 계절에 따른 단풍잎의 색깔(봄의 녹색, 초가을의 금색, 첫 서리의 붉은색, 낙엽 후의 갈색)을 반영한다. 캐나다 국장은 영국의 국장을 매우 유사하게 모델로 삼았으며, 영국 버전에서 파생된 요소에 프랑스 및 독특한 캐나다 요소가 대체되거나 추가되었다.
다른 주요 상징으로는 국가 표어인 "{{lang|la|A mari usque ad mare|아 마리 우스케 아드 마레|italics=on}}"("바다에서 바다로"), 아이스하키와 라크로스 스포츠, 비버, 캐나다기러기, 아비새, 캐나다산 말, 왕립 캐나다 기마경찰, 캐나다 로키산맥, 그리고 더 최근에는 토템폴과 이눅숙이 있다. 캐나다 맥주, 메이플 시럽, 투크, 카누, 나나이모 바, 버터 타르트, 푸틴은 독특하게 캐나다적인 것으로 정의된다. 캐나다 동전에는 이러한 상징들이 많이 등장한다: 1달러 동전에는 아비새, 50센트 동전에는 캐나다 국장, 니켈 동전에는 비버가 새겨져 있다. 군주의 이미지는 20달러 지폐와 동전 앞면에 나타난다.
11.2. 문학
캐나다 문학은 종종 프랑스어권 문학과 영어권 문학으로 나뉘는데, 이는 각각 프랑스와 영국의 문학적 전통에 뿌리를 두고 있다. 가장 초기의 캐나다 서사들은 여행과 탐험에 관한 것이었다. 이는 역사적인 캐나다 문학의 세 가지 주요 주제인 자연, 변경 생활, 그리고 세계 속에서 캐나다의 위치로 발전했으며, 이 모든 것은 요새 정신과 관련이 있다. 최근 수십 년 동안 캐나다 문학은 전 세계 이민자들의 강한 영향을 받았다. 1990년대까지 캐나다 문학은 세계 최고 수준 중 하나로 여겨졌다.
수많은 캐나다 작가들은 국제 문학상을 수상했으며, 그중에는 소설가, 시인, 문학 평론가인 마거릿 애트우드(두 차례 부커상 수상), 노벨 문학상 수상자이자 영어 단편소설 최고의 생존 작가로 불리는 앨리스 먼로, 그리고 소설 《잉글리시 페이션트》로 부커상을 수상하고 이 소설이 아카데미 작품상을 수상한 동명의 영화로 각색된 마이클 온다체 등이 있다. 루시 모드 몽고메리는 1908년 《빨강머리 앤》을 시작으로 일련의 아동 소설을 발표했다.
11.3. 미디어

캐나다의 미디어는 매우 자율적이며, 검열되지 않고, 다양하며, 매우 지역화되어 있다. 방송법은 "시스템은 캐나다의 문화적, 정치적, 사회적, 경제적 구조를 보호하고, 풍요롭게 하며, 강화하는 데 기여해야 한다"고 선언한다. 캐나다는 잘 발달된 미디어 부문을 가지고 있지만, 문화적 산출물, 특히 영어 영화, 텔레비전 쇼, 잡지는 종종 미국으로부터의 수입품에 의해 가려진다. 결과적으로, 독특한 캐나다 문화의 보존은 캐나다 방송 협회(CBC), 캐나다 국립 영화 위원회(NFB), 캐나다 라디오-텔레비전 통신 위원회(CRTC)와 같은 연방 정부 프로그램, 법률 및 기관에 의해 지원된다.
캐나다 대중 매체는 인쇄 및 디지털 모두, 그리고 두 공식 언어 모두에서 주로 "소수의 기업"에 의해 지배된다. 이러한 기업 중 가장 큰 기업은 국가 공영 방송사인 캐나다 방송 협회(CBC)이며, CBC는 또한 국내 문화 콘텐츠 제작에 중요한 역할을 하며 영어와 프랑스어 모두에서 자체 라디오 및 TV 네트워크를 운영한다. CBC 외에도 일부 주 정부는 TV온타리오 및 텔레퀘벡과 같은 자체 공공 교육 TV 방송 서비스도 제공한다.
캐나다의 비뉴스 미디어 콘텐츠(영화 및 텔레비전 포함)는 현지 제작자뿐만 아니라 미국, 영국, 호주, 프랑스로부터의 수입품에 의해서도 영향을 받는다. 외국 제작 미디어의 양을 줄이기 위한 노력으로, 텔레비전 방송에 대한 정부 개입에는 콘텐츠 규제와 공공 자금 지원이 모두 포함될 수 있다. 캐나다 세법은 잡지 광고에서 외국 경쟁을 제한한다.
11.4. 시각 예술

캐나다의 예술은 수천 년 동안 원주민들이 거주해 온 역사를 반영하며, 후대 예술가들은 영국, 프랑스, 원주민, 미국의 예술 전통을 결합하여 유럽 스타일을 수용하는 동시에 민족주의를 고취하는 작품 활동을 해왔다. 캐나다 예술의 본질은 이러한 다양한 기원을 반영하며, 예술가들은 자신들의 전통을 바탕으로 이러한 영향들을 캐나다에서의 삶의 현실을 반영하도록 각색해왔다.
캐나다 현대 회화는 수년에 걸쳐 등장한 여러 주요 운동의 큰 영향을 받았다. 가장 두드러진 운동 중 하나는 1920년에 창립된 그룹 오브 세븐으로, 그들의 작품에 황야를 담아내고자 했다. 이 그룹과 관련된 인물로는 풍경화와 태평양 북서부 해안의 원주민을 묘사한 것으로 유명한 에밀리 카가 있다. 20세기 중반에는 캐나다에서 추상 미술이 부상했으며, 장폴 리오펠과 폴에밀 보르뒤아와 같은 예술가들이 활동했다. 1960년대와 1970년대에는 마이클 스노우와 이언 카-해리스와 같은 예술가들과 함께 개념 미술이 등장했다. 이 시대에는 또한 전통적인 원주민 기법과 현대 미술 양식을 결합한 노발 모리소와 같은 원주민 예술가들도 등장했다. 최근 몇 년 동안 현대 미술에서는 켄트 몽크먼과 슈비나이 아슈나와 같은 예술가들과 함께 구상 미술이 부활했다.
11.5. 음악
캐나다 음악은 다양한 지역적 특색을 반영한다. 캐나다는 교회 홀, 실내악 홀, 음악원, 아카데미, 공연 예술 센터, 음반 회사, 라디오 방송국, 텔레비전 뮤직 비디오 채널을 포함하는 방대한 음악 인프라를 개발했다. 캐나다 음악 기금과 같은 정부 지원 프로그램은 독창적이고 다양한 캐나다 음악을 창작, 제작, 마케팅하는 광범위한 음악가와 기업가를 지원한다. 문화적 중요성뿐만 아니라 정부의 계획과 규제로 인해 캐나다 음악 산업은 세계에서 가장 큰 산업 중 하나이며, 국제적으로 유명한 작곡가, 음악가, 앙상블을 배출하고 있다. 국내 음악 방송은 CRTC의 규제를 받는다. 캐나다 음반 예술 과학 아카데미는 캐나다 음악 산업상인 주노상을 수여한다. 캐나다 음악 명예의 전당은 평생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캐나다 음악가들을 기린다.
캐나다의 애국 음악은 200년 이상 거슬러 올라간다. 캐나다 최초의 애국 음악 작품인 "용감한 캐나다인"은 1812년에 작곡되었다. 1866년에 작곡된 "단풍잎 영원히"는 영어권 캐나다 전역에서 인기 있는 애국가였으며, 수년 동안 비공식 국가로 사용되었다. "오 캐나다" 또한 20세기 대부분 동안 비공식 국가로 사용되었으며 1980년에 공식 국가로 채택되었다.
11.6. 스포츠

캐나다의 공식 국기는 아이스하키와 라크로스이다. 다른 주요 프로 경기에는 컬링, 농구, 야구, 축구, 캐나다식 축구가 있다. 캐나다 스포츠의 위대한 업적은 캐나다 스포츠 명예의 전당과 같은 수많은 "명예의 전당"과 박물관에서 인정받고 있다.
캐나다는 미국과 여러 주요 프로 스포츠 리그를 공유한다. 이러한 리그의 캐나다 팀에는 내셔널 하키 리그 7개 프랜차이즈, 메이저 리그 사커 3개 팀,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 및 전미 농구 협회 각각 1개 팀이 포함된다. 다른 인기 있는 프로 대회로는 캐나다 풋볼 리그, 내셔널 라크로스 리그, 캐나다 프리미어리그, 컬링 캐나다가 주최하는 컬링 토너먼트 등이 있다.
참여도 측면에서, 2023년 캐나다인 3분의 1 이상(35%)이 가장 많이 참여한 스포츠는 수영이었다. 그 뒤를 사이클링(33%)과 달리기(27%)가 바짝 쫓았다. 특정 스포츠의 인기는 다양하다. 일반적으로 캐나다 태생 인구는 아이스하키(가장 인기 있는 청년 팀 스포츠), 스케이팅, 스키, 스노보드와 같은 겨울 스포츠에 더 많이 참여하는 경향이 있는 반면, 이민자들은 축구(가장 인기 있는 청소년 팀 스포츠), 테니스 또는 농구에 더 많이 참여하는 경향이 있었다. 골프, 배구, 배드민턴, 볼링, 무술과 같은 스포츠 또한 청소년 및 아마추어 수준에서 널리 즐겨지고 있다.
캐나다는 동계 올림픽과 하계 올림픽 모두에서 성공을 거두었으며, 특히 "겨울 스포츠 국가"로서 동계 올림픽에서 두각을 나타냈다. 또한 1976년 하계 올림픽, 1988년 동계 올림픽, 2010년 동계 올림픽, 2015년 FIFA 여자 월드컵, 2015년 팬아메리칸 게임 및 2015년 패럴림픽 팬아메리칸 게임과 같은 유명 국제 스포츠 행사를 개최했다. 캐나다는 멕시코, 미국과 함께 2026년 FIFA 월드컵을 공동 개최할 예정이다.
11.7. 음식 문화
캐나다 음식 문화는 광대한 국토와 다양한 민족 구성만큼이나 다채롭다. 전통적으로 원주민의 식재료와 조리법, 영국과 프랑스계 이민자들의 요리 전통이 바탕을 이루었으며, 이후 세계 각국에서 온 이민자들의 영향으로 더욱 풍부해졌다.
대표적인 캐나다 음식으로는 푸틴(감자튀김에 치즈 커드와 그레이비 소스를 곁들인 요리), 메이플 시럽(단풍나무 수액으로 만든 시럽으로 팬케이크, 와플 등에 사용), 나나이모 바(초콜릿, 커스터드, 코코넛 등으로 만든 디저트 바), 버터 타르트(버터, 설탕, 달걀 등으로 속을 채운 작은 타르트) 등이 잘 알려져 있다. 해안 지역에서는 신선한 해산물 요리가 발달했고, 내륙 지역에서는 사냥 고기나 베리류를 활용한 음식이 특징적이다.
다문화 사회의 영향은 캐나다 음식 문화 곳곳에서 찾아볼 수 있다. 중국, 인도, 이탈리아, 베트남 등 다양한 국가의 음식들이 캐나다인의 일상적인 식탁에 오르며, 각 문화의 특색을 살리면서도 캐나다 현지 입맛에 맞게 변형된 퓨전 요리도 인기가 높다. 특히 대도시를 중심으로 세계 각국의 음식을 맛볼 수 있는 레스토랑이 즐비하며, 다양한 음식 축제도 연중 열린다. 지역별 특산물을 활용한 로컬 푸드 운동과 건강을 중시하는 식문화 경향도 나타나고 있다.
11.8. 건축
캐나다의 건축은 초기 원주민들의 전통적인 주거 양식에서부터 시작하여 유럽 정착민들이 가져온 다양한 건축 양식, 그리고 현대적인 건축 동향에 이르기까지 다채로운 역사를 가지고 있다. 기후적 특성과 다문화적 배경은 캐나다 건축에 독특한 영향을 미쳤다.
초기 원주민 건축은 지역의 자연환경과 생활 방식에 따라 티피, 롱하우스, 이글루 등 다양한 형태를 보였다. 유럽 식민지 시대에는 프랑스와 영국의 건축 양식이 도입되어, 퀘벡 시의 구시가지나 루이스버그 요새와 같은 역사적인 건축물에서 그 흔적을 찾아볼 수 있다. 특히 프랑스 양식은 석조 건물과 경사진 지붕이 특징이며, 영국 양식은 벽돌 건물과 대칭적인 디자인이 두드러진다.
19세기에는 신고전주의와 고딕 부흥 양식이 유행했으며, 오타와의 국회의사당은 대표적인 고딕 부흥 양식 건축물이다. 20세기 들어서는 아르 데코, 모더니즘 등 국제적인 건축 사조가 캐나다 건축에도 영향을 미쳤다. 토론토의 CN 타워는 현대 건축 기술의 상징적인 예이다.
현대 캐나다 건축은 지속 가능성과 친환경 디자인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에너지 효율적인 건물과 자연 친화적인 소재를 활용하는 경향이 나타나고 있다. 또한, 다문화 사회를 반영하여 다양한 문화적 요소가 융합된 건축 디자인도 시도되고 있다. 도시 경관은 고층 빌딩과 역사적인 건축물이 조화를 이루며, 각 도시의 독특한 분위기를 형성한다.
11.9. 세계유산
캐나다에는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유산이 다수 존재하며, 이들은 캐나다의 풍부한 자연환경과 다채로운 문화 및 역사를 증명한다. 캐나다의 세계유산은 문화유산, 자연유산, 그리고 문화유산과 자연유산의 가치를 모두 지닌 복합유산으로 분류된다.
대표적인 자연유산으로는 캐나다 로키산맥 공원군이 있으며, 이곳은 웅장한 산악 경관, 빙하, 호수, 다양한 야생동물의 서식지로 유명하다. 나하니 국립공원은 깊은 협곡과 폭포, 독특한 지형을 자랑하며, 우드 버팔로 국립공원은 세계에서 가장 큰 아메리카들소 무리의 서식지이자 광대한 아한대 평원을 포함한다. 미과샤 국립공원은 고대 어류 화석이 다량 발견되어 고생물학적으로 중요한 가치를 지닌다.
문화유산으로는 퀘벡 역사 지구가 있으며, 북미에서 가장 오래된 유럽 정착지 중 하나로 독특한 프랑스풍 건축물과 도시 경관을 보존하고 있다. 루넌버그 옛 시가지는 18세기 영국 식민 도시의 전형적인 모습을 잘 간직하고 있으며, SGang Gwaay는 하이다 원주민의 뛰어난 목조 예술과 마을 유적을 보여준다. 헤드-스매쉬드-인 버펄로 점프는 수천 년 동안 이어진 원주민의 들소 사냥 방식을 보여주는 고고학 유적지이다.
복합유산은 현재 캐나다에 등재되어 있지 않으나, 많은 유산들이 자연과 문화의 상호작용을 보여주는 중요한 가치를 지니고 있다. 이러한 세계유산들은 캐나다의 정체성을 구성하는 중요한 요소이며, 전 세계적으로 그 가치를 인정받아 보호 및 관리되고 있다.
11.10. 공휴일
캐나다는 연방 공휴일과 각 주 및 준주에서 지정한 공휴일이 함께 운영된다. 연방 공휴일은 전국적으로 적용되지만, 일부 주는 추가적인 공휴일을 지정하거나 연방 공휴일을 다르게 기념하기도 한다.
주요 연방 공휴일은 다음과 같다:
- 새해 첫날 (New Year's Day): 1월 1일
- 성금요일 (Good Friday): 부활절 전 금요일 (날짜 변동)
- 부활절 월요일 (Easter Monday): 부활절 다음 월요일 (날짜 변동, 일부 지역에서만 공휴일)
- 빅토리아의 날 (Victoria Day): 5월 25일 이전의 마지막 월요일 (군주의 생일을 기념)
- 캐나다의 날 (Canada Day): 7월 1일 (캐나다 연방 결성 기념일)
- 노동절 (Labour Day): 9월 첫째 월요일
- 추수감사절 (Thanksgiving Day): 10월 둘째 월요일 (미국의 추수감사절과 날짜가 다름)
- 현충일 (Remembrance Day): 11월 11일 (제1차 세계 대전 종전 기념일)
- 크리스마스 (Christmas Day): 12월 25일
- 박싱 데이 (Boxing Day): 12월 26일
이 외에도 각 주에서는 가족의 날(Family Day, 2월 셋째 월요일, 일부 주), 시민의 날(Civic Holiday, 8월 첫째 월요일, 일부 주), 퀘벡 국경일(Fête nationale du Québec, 6월 24일) 등 자체적인 공휴일을 운영한다. 공휴일에는 대부분의 관공서, 학교, 은행 등이 문을 닫으며, 상점의 영업시간도 단축되거나 휴업하는 경우가 많다. 이러한 공휴일들은 캐나다의 역사, 문화, 종교적 배경을 반영하며, 국민들에게 휴식과 기념의 의미를 제공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