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비르길리유스 알레크나(Virgilijus Alekna리투아니아어, 1972년 2월 13일~)는 리투아니아의 은퇴한 원반던지기 선수이자 정치인이다. 그는 1990년대 후반부터 2010년대 초반까지 세계 육상계에서 가장 지배적인 원반던지기 선수 중 한 명으로 평가받으며, 두 차례의 올림픽 금메달과 한 차례의 동메달, 두 차례의 세계 육상 선수권 대회 금메달을 획득하는 등 뛰어난 업적을 남겼다. 알레크나의 개인 최고 기록은 73.88 m로, 이는 1986년 당시 세계 기록 보유자인 위르겐 슐트의 74.08 m에 이어 역대 두 번째로 좋은 기록이었다.
선수 경력 은퇴 후 그는 리투아니아 내무부에서 체육 고문으로 활동했으며, 이후 자유 운동 소속으로 세이마스 의원에 당선되며 정치인으로서 새로운 경력을 시작했다. 그의 두 아들인 마르티나스와 미콜라스 역시 원반던지기 선수로 활동하며 아버지의 뒤를 잇고 있으며, 특히 아들 미콜라스는 2024년 아버지의 올림픽 기록을 경신하고 (위르겐 슐트의) 오랜 세계 기록까지 넘어서는 등 뛰어난 재능을 보이며 알레크나 가문이 리투아니아 육상계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알레크나는 유네스코 스포츠 앰버서더로 활동하고 리투아니아 대공 게디미나스 훈장 등 다수의 국가적 영예를 받았다.
2. 어린 시절과 교육
비르길리유스 알레크나는 1972년 2월 13일 파네베지스주 쿠피슈키스구의 테르페이캬이 마을에서 태어났다. 그의 어린 시절에 대한 구체적인 정보는 많지 않지만, 그는 일찍부터 체육에 재능을 보였다.
2.1. 출생과 유년 시절
알레크나는 1972년 2월 13일 리투아니아의 작은 마을인 테르페이캬이에서 태어났다. 그는 루코니 초등학교와 수바차스 중학교를 졸업하며 학업을 이어갔다.
2.2. 교육
알레크나는 1987년부터 1990년까지 파네베지스 체육 고등학교에서 전문적인 체육 교육을 받았다. 이후 빌뉴스에 위치한 리투아니아 교육과학 대학교에 진학하여 체육학을 전공하며 육상 선수로서의 기틀을 다졌다. 이러한 학업 배경은 그가 선수 생활을 이어가는 데 중요한 영향을 미쳤다.
3. 육상 경력
알레크나는 1990년부터 원반던지기 선수 생활을 시작했으며, 1994년에 리투아니아 국가대표로 발탁된 이래 20여 년간 세계 최정상급 원반던지기 선수로 활약했다. 그는 올림픽, 세계 육상 선수권 대회, 유럽 육상 선수권 대회 등 주요 국제 대회에서 수많은 메달을 획득하며 리투아니아 육상계의 상징적인 인물이 되었다.
3.1. 초기 경력과 국가대표 데뷔
알레크나는 1990년 원반던지기 선수 경력을 시작했으며, 1994년 리투아니아 국가대표 선수로 발탁되었다. 같은 해 8월 핀란드 헬싱키에서 열린 1994년 유럽 육상 선수권 대회에서 56.38 m를 기록하며 17위에 올랐다. 이듬해인 1995년 8월 스웨덴 예테보리에서 열린 1995년 세계 육상 선수권 대회에서는 59.2 m의 기록으로 19위를 차지했다.
1996년 5월 독일 레데에서 열린 레데 국제 육상 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했고, 같은 달 독일 예나 국제 대항전에서 3위에 올랐다. 7월에는 노르웨이 오슬로에서 열린 비슬레트 게임에서 동메달을 획득했으며, 미국 애틀랜타에서 열린 1996년 하계 올림픽에 처음으로 참가하여 65.3 m를 기록하며 5위에 올랐다. 이듬해인 1997년 3월에는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1997년 세계 실내 육상 선수권 대회 포환던지기 종목에 참가하여 18.9 m의 기록으로 17위를 기록했다. 5월에는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에서 열린 육상 그랑프리와 스페인 세비야에서 열린 그란 프레미오 디푸타시온 대회에서 우승했으며, 6월에는 이탈리아 로마의 골든 갈라, 슬로바키아 브라티슬라바의 브라티슬라바 국제 대회, 독일 뉘른베르크의 뉘른베르크 국제 대회에서 준우승에 올랐다. 7월에는 리투아니아 카우나스에서 열린 1997년 발트해 경기 대회에서 65.26 m의 기록으로 은메달을 획득했다.
3.2. 주요 국제 대회 성과
알레크나는 1990년대 후반부터 2010년대 초반까지 세계 육상계에서 꾸준히 최고 수준의 기량을 선보였다.
3.2.1. 올림픽 성과
알레크나는 세 차례의 하계 올림픽에서 메달을 획득했다.
- 2000년 시드니 올림픽**: 2000년 9월 오스트레일리아 시드니에서 열린 올림픽에서 69.3 m를 기록하며 독일의 라르스 리델과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프란츠 크루거를 제치고 생애 첫 금메달을 획득했다.
- 2004년 아테네 올림픽**: 2004년 그리스 아테네에서 열린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획득하며 대회 2연패를 달성했다. 이 대회에서는 원래 헝가리 선수인 로베르트 파제카시가 올림픽 신기록을 세우며 1위를 차지했으나, 경기 후 도핑 검사에서 소변 샘플 제출을 거부하며 실격 처리되었다. 이에 따라 알레크나가 금메달을 승계했으며, 그의 우승 기록인 69.89 m가 새로운 올림픽 기록으로 인정받았다.
- 2008년 베이징 올림픽**: 2008년 중화인민공화국 베이징에서 열린 올림픽에서는 마지막 시도에서 67.79 m를 기록하며 동메달을 획득했다.
2024년 파리 올림픽에서 그의 아들 미콜라스 알레크나가 69.97 m를 던져 아버지의 69.89 m 올림픽 기록을 경신했으며, 이후 자메이카의 로제이 스토나가 70 m를 던져 다시 경신했다.
3.2.2. 세계 육상 선수권 대회 및 유럽 육상 선수권 대회
알레크나는 세계 육상 선수권 대회와 유럽 육상 선수권 대회에서도 다수의 메달을 획득했다.
- 1997년 세계 선수권 대회**: 8월 그리스 아테네에서 열린 1997년 세계 육상 선수권 대회에서 66.7 m를 기록하며 독일의 라르스 리델의 뒤를 이어 은메달을 획득했다.
- 1998년 유럽 선수권 대회**: 8월 헝가리 부다페스트에서 열린 1998년 유럽 육상 선수권 대회에서 66.46 m를 기록하며 독일의 리델과 위르겐 슐트의 뒤를 이어 동메달을 획득했다. 같은 해 9월에는 남아프리카 공화국 케이프타운에서 열린 IAAF 월드컵에서 우승을 차지했다.
- 2001년 세계 선수권 대회**: 8월 캐나다 에드먼턴에서 열린 2001년 세계 육상 선수권 대회에서 69.4 m의 기록으로 리델의 뒤를 이어 은메달을 획득했다.
- 2003년 세계 선수권 대회**: 8월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2003년 세계 육상 선수권 대회에서 69.69 m를 기록하며 금메달을 획득했다. 같은 해 9월 모나코 몬테카를로에서 열린 IAAF 월드 애슬레틱 파이널에서도 우승했다.
- 2005년 세계 선수권 대회**: 8월 핀란드 헬싱키에서 열린 2005년 세계 육상 선수권 대회에서 70.17 m를 기록하며 금메달을 획득하며 세계 선수권 2연패를 달성했다. 같은 해 9월 몬테카를로에서 열린 IAAF 월드 애슬레틱 파이널에서도 우승했다.
- 2006년 유럽 선수권 대회**: 8월 스웨덴 예테보리에서 열린 2006년 유럽 육상 선수권 대회에서 68.67 m를 기록하며 우승을 차지했다. 9월 독일 슈투트가르트에서 열린 IAAF 월드 애슬레틱 파이널과 그리스 아테네에서 열린 IAAF 월드컵에서도 우승했다.
- 2009년 세계 육상 선수권 대회**: 8월 독일 베를린에서 열린 2009년 세계 육상 선수권 대회에서 4위를 기록했으며, 9월 그리스 테살로니키에서 열린 IAAF 월드 애슬레틱 파이널에서 우승했다.
주요 대회 기록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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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도 | 대회 | 장소 | 종목 | 결과 | 기록 (미터) |
1994 | 유럽 선수권 | 헬싱키 (핀란드) | 원반던지기 | 17위 | 56.38 m |
1995 | 세계 선수권 | 예테보리 (스웨덴) | 원반던지기 | 19위 | 59.2 m |
1996 | 하계 올림픽 | 애틀랜타 (미국) | 원반던지기 | 5위 | 65.3 m |
1997 | 세계 선수권 | 아테네 (그리스) | 원반던지기 | 2위 | 66.7 m |
1997 | IAAF 그랑프리 파이널 | 후쿠오카 (일본) | 원반던지기 | 5위 | 63.76 m |
1998 | 유럽 선수권 | 부다페스트 (헝가리) | 원반던지기 | 3위 | 66.46 m |
1998 | IAAF 월드컵 | 요하네스버그 (남아프리카 공화국) | 원반던지기 | 1위 | 69.66 m |
1999 | 세계 선수권 | 세비야 (스페인) | 원반던지기 | 4위 | 67.53 m |
1999 | IAAF 그랑프리 파이널 | 뮌헨 (독일) | 원반던지기 | 2위 | 66.65 m |
2000 | 리투아니아 선수권 | 원반던지기 | 1위 | 73.88 m (국가 기록) | |
2000 | 하계 올림픽 | 시드니 (오스트레일리아) | 원반던지기 | 1위 | 69.3 m |
2001 | 세계 선수권 | 에드먼턴 (캐나다) | 원반던지기 | 2위 | 69.4 m |
2001 | IAAF 그랑프리 파이널 | 멜버른 (오스트레일리아) | 원반던지기 | 1위 | 64.42 m |
2002 | 유럽 선수권 | 뮌헨 (독일) | 원반던지기 | 2위 | 66.62 m |
2003 | 세계 선수권 | 파리 (프랑스) | 원반던지기 | 1위 | 69.69 m |
2003 | 월드 애슬레틱 파이널 | 몬테카를로 (모나코) | 원반던지기 | 1위 | 68.3 m |
2004 | 하계 올림픽 | 아테네 (그리스) | 원반던지기 | 1위 | 69.89 m (올림픽 기록) |
2004 | 월드 애슬레틱 파이널 | 몬테카를로 (모나코) | 원반던지기 | 4위 | 63.64 m |
2005 | 세계 선수권 | 헬싱키 (핀란드) | 원반던지기 | 1위 | 70.17 m |
2005 | 월드 애슬레틱 파이널 | 몬테카를로 (모나코) | 원반던지기 | 1위 | 67.64 m |
2006 | 유럽 선수권 | 예테보리 (스웨덴) | 원반던지기 | 1위 | 68.67 m |
2006 | 월드 애슬레틱 파이널 | 슈투트가르트 (독일) | 원반던지기 | 1위 | 68.63 m |
2006 | IAAF 월드컵 | 아테네 (그리스) | 원반던지기 | 1위 | 67.19 m |
2007 | 세계 선수권 | 오사카 (일본) | 원반던지기 | 4위 | 65.24 m |
2007 | 월드 애슬레틱 파이널 | 슈투트가르트 (독일) | 원반던지기 | 2위 | 65.94 m |
2008 | 하계 올림픽 | 베이징 (중국) | 원반던지기 | 3위 | 67.79 m |
2008 | 월드 애슬레틱 파이널 | 슈투트가르트 (독일) | 원반던지기 | 8위 | 61.03 m |
2009 | 세계 선수권 | 베를린 (독일) | 원반던지기 | 4위 | 66.36 m |
2009 | 월드 애슬레틱 파이널 | 테살로니키 (그리스) | 원반던지기 | 1위 | 67.63 m |
2010 | 유럽 선수권 | 바르셀로나 (스페인) | 원반던지기 | 5위 | 64.64 m |
2011 | 세계 선수권 | 대구 (대한민국) | 원반던지기 | 6위 | 64.06 m |
2012 | 하계 올림픽 | 런던 (영국) | 원반던지기 | 4위 | 67.38 m |
2013 | 세계 선수권 | 모스크바 (러시아) | 원반던지기 | 16위 | 61.91 m |
2014 | 유럽 선수권 | 취리히 (스위스) | 원반던지기 | 21위 | 59.35 m |
3.3. 기록과 신체적 특징
알레크나의 개인 최고 기록은 2000년 8월 3일 리투아니아 육상 선수권 대회에서 세운 73.88 m이다. 이는 당시 위르겐 슐트가 1986년에 세운 세계 기록인 74.08 m에 이어 역대 2위 기록에 해당했다. 이후 2024년 4월 14일, 그의 아들 미콜라스 알레크나가 74.35 m를 던져 새로운 세계 기록을 수립하며 아버지의 기록을 넘어섰다. 알레크나의 2004년 아테네 올림픽 우승 기록인 69.89 m는 2024년 파리 올림픽에서 그의 아들 미콜라스(69.97m)와 로제이 스토나(70.0m)에 의해 경신되기 전까지 20년간 올림픽 기록으로 남아 있었다.
알레크나는 신장 2.02 m의 장신으로, 특히 팔 길이가 비정상적으로 길었다. 그의 팔 길이는 2.24 m에 달했으며, 이는 원반던지기에 매우 유리한 신체적 조건이었다. 그는 버스의 양쪽 창문에 동시에 지문을 남길 수 있을 정도로 긴 팔을 가지고 있었다고 한다.
3.4. 육상 선수로서의 은퇴
알레크나는 2012년 9월 IAAF 다이아몬드 리그 최종전인 메모리얼 판 담을 마지막으로 현역에서 은퇴할 예정이었으나, 이 결정을 철회하고 2013년에도 계속해서 경기에 출전했다. 최종적으로 그는 2014년 8월 31일 독일 베를린에서 열린 ISTAF 대회를 끝으로 공식적으로 선수 생활에서 은퇴했다.
2007년 세계 육상 선수권 대회 당시 부상을 입은 상태에서도 출전했으며, 8월 20일 부상을 입었음에도 8월 28일 예선에 참여했다. 이 부상으로 인해 지난 2년간 이어오던 37회 연속 우승 기록이 깨지기도 했다.
4. 정치 경력
선수 생활 은퇴 후 비르길리유스 알레크나는 리투아니아의 정치계에 진출했다.
2011년부터 2016년까지 리투아니아 내무부에서 체육 고문으로 활동했다. 2016년 5월 알레크나는 자유 운동의 당원이 되지는 않았으나, 같은 해 10월 열리는 세이마스 선거에 자유 운동의 선거 목록에 포함되어 참여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그는 빌뉴스 나우야미에스티스 지역구 단일 의석 선거에서 결선 투표에서 패배했지만, 자유 운동의 비례대표 명단에서 2위로 당선되어 제12대 세이마스 의원으로 활동하게 되었다. 이후 2020년에도 당선되어 제13대 세이마스 의원으로 재직 중이다.
5. 개인사
비르길리유스 알레크나는 전 멀리뛰기 선수인 크리스티나 사블로우스키테-알레크니에네와 결혼했다. 그들은 두 아들 마르티나스와 미콜라스, 그리고 딸 가브리엘레 알레크나이테를 두었다. 그의 두 아들인 마르티나스와 미콜라스는 아버지의 뒤를 이어 모두 원반던지기 선수로 활동하고 있으며, 특히 미콜라스는 세계 최정상급 선수로 성장했다.
알레크나는 2007년 유네스코 스포츠 앰버서더로 임명되어 스포츠를 통한 교육 및 문화 활동을 지원하는 역할을 수행했다. 또한 그는 1995년부터 2011년까지 16년간 리투아니아 총리실의 경호원으로 재직하며 국가에 봉사했다.
6. 수상 및 영예
알레크나는 뛰어난 선수 경력과 사회 활동을 통해 다양한 상과 영예를 받았다.
- 리투아니아 대공 게디미나스 훈장: 리투아니아 정부로부터 여러 차례 이 훈장을 받았다.
- 1등급: 2003년 8월 28일
- 2등급: 2001년 8월 24일
- 3등급: 1997년 8월 28일
- 5등급: 1996년 8월 12일
1등급 리투아니아 대공 게디미나스 훈장 2등급 리투아니아 대공 게디미나스 훈장 3등급 리투아니아 대공 게디미나스 훈장 5등급 리투아니아 대공 게디미나스 훈장 - 트랙 & 필드 올해의 육상 선수: 2000년 트랙 & 필드가 선정한 올해의 육상 선수로 선정되었다.
- 리투아니아 올해의 스포츠인: 리투아니아에서 4차례(2000년, 2004년, 2005년, 2006년) 올해의 스포츠인으로 선정되는 영예를 안았다.
- 유럽 육상 연맹 평생 공로상: 2017년 유럽 육상 연맹으로부터 평생 공로상을 수상하며 그의 육상 경력과 업적을 인정받았다.
- 올림픽 기수: 2012년 런던 하계 올림픽 개막식에서 리투아니아 선수단의 기수를 맡았다.
7. 유산과 영향력
비르길리유스 알레크나는 리투아니아 육상계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으며, 특히 그의 두 아들인 마르티나스와 미콜라스 알레크나가 그의 뒤를 이어 세계적인 원반던지기 선수로 성장하면서 그의 유산은 계속 이어지고 있다. 특히 아들 미콜라스는 2024년에 알레크나의 오랜 올림픽 기록과 전 세계 기록을 경신하며 '원반던지기의 왕조'를 형성하는 데 기여했다. 이는 리투아나아 스포츠 역사상 드문 사례로, 알레크나 가문은 리투아니아 원반던지기의 명맥을 잇는 상징적인 존재가 되었다.
알레크나는 단순히 뛰어난 선수에 그치지 않고, 유네스코 스포츠 앰버서더로서 스포츠의 사회적 가치를 알리는 데 기여했으며, 리투아니아 의회 의원으로서 정치 분야에서도 활동하며 사회 전반에 걸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고자 노력했다. 그의 업적과 영향력은 리투아니아 스포츠계의 자부심이자 미래 세대에게 영감을 주는 본보기가 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