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덴마크는 북유럽에 위치한 입헌군주제 국가로, 율란 반도와 여러 섬으로 이루어져 있다. 스칸디나비아 국가 중 가장 남쪽에 있으며, 남쪽으로는 독일과 국경을 접하고, 스웨덴, 노르웨이와는 해상으로 마주한다. 수도는 셸란섬에 위치한 코펜하겐이다. 그린란드와 페로 제도는 덴마크 왕국의 자치령이다.
덴마크는 바이킹 시대를 거쳐 중세에는 칼마르 동맹의 중심 국가였으며, 근세에는 절대왕정을 경험했다. 1849년 입헌군주국으로 전환하며 근대화를 이루었고, 양차 세계 대전을 겪은 후에는 유럽 연합(EU)에 가입하는 등 국제 사회의 일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정치적으로는 안정된 의회민주주의 체제를 유지하고 있으며, 폴케팅이라는 단원제 의회를 중심으로 입법, 행정, 사법의 삼권 분립이 이루어져 있다. 경제적으로는 높은 국민 소득과 포괄적인 사회 복지 제도를 갖춘 선진 혼합 경제 국가로 평가받는다. 주요 산업으로는 풍력 에너지, 제약, 해운, 농축산업 등이 있으며, 특히 노동 시장의 유연안정성 모델은 국제적으로 주목받는다.
사회적으로는 높은 수준의 삶의 질, 양성평등, 소수자 권리 보호 등을 특징으로 하며, 교육과 보건 시스템 또한 잘 발달되어 있다. 문화적으로는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의 동화, 쇠렌 키르케고르의 철학, 그리고 현대의 덴마크 디자인과 영화 등으로 세계에 알려져 있다.
2. 국명
덴마크의 공식 국명은 덴마크 왕국(Kongeriget Danmark콩에리게트 단마르크덴마크어)이며, 일반적으로 덴마크(Danmark단마르크덴마크어)로 불린다. '덴마크'라는 이름의 어원은 고대 노르드어로 "데인인의 땅" 또는 "데인인의 변경 지역"을 의미하는 '단뫼르크(Danmörk)'에서 유래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여기서 '단(Dan)'은 고대 게르만족의 일파인 데인족(Dani)을 지칭하며, '마르크(mark)'는 변경 지역 또는 숲이 우거진 땅을 의미한다. 이는 역사적으로 덴마크 남부 슐레스비히 지역의 국경 숲과 관련이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덴마크 내에서 '덴마크(Danmark)'라는 단어가 기록된 최초의 사례는 옐링 스톤에서 발견된다. 이 두 개의 룬석은 각각 고름 디 감레(Gorm den Gamle, 955년경)와 그의 아들 하랄 블라톤(Harald Blåtand, 965년경)에 의해 세워진 것으로 여겨진다. 이 중 큰 돌에는 목적격 형태로 tanmaurk탄마우르크노르드어 (고대) ([danmɒrk])라고 새겨져 있으며, 작은 돌에는 소유격 형태로 tanmarkar탄마르카르노르드어 (고대) ([danmarkaɽ])라고 새겨져 있다. 동시대에 만들어진 스키붐 돌(Skivum stone)에서는 여격 형태인 tąnmarku탄마르쿠노르드어 (고대) ([danmarkʊ])가 발견된다. 이 비석들에서 덴마크 주민들은 목적격으로 tani타니덴마크어 또는 "데인인"으로 불렸다.
국명의 어원, '데인인'과 '덴마크' 간의 관계, 그리고 통일 왕국으로서 덴마크의 출현은 학자들 사이에서 지속적인 논쟁의 주제이다. 주로 '단(Dan)'이라는 형태소에 초점이 맞춰지는데, 이것이 데인족을 지칭하는지, 아니면 역사적 인물인 단 왕(Dan)을 지칭하는지, 그리고 '마르크(-mark)' 어미의 정확한 의미에 대한 논의가 이루어지고 있다.
3. 역사
덴마크의 역사는 선사 시대부터 시작되어 바이킹 시대, 중세, 근세, 근대를 거쳐 현대에 이른다. 각 시대마다 중요한 사건과 변화를 겪으며 오늘날의 덴마크를 형성하였다. 초기에는 소규모 부족 사회였으나 점차 통일 왕국으로 발전하였고, 한때 북해를 중심으로 강력한 해상 제국을 건설하기도 했다. 이후 주변 국가들과의 관계 속에서 영토 변화와 정치 체제 변혁을 경험하며 근대 국가로 성장했고, 양차 세계 대전을 겪은 후에는 국제 사회의 주요 일원이 되었다.
3.1. 선사 시대


덴마크 지역에서 가장 오래된 고고학적 발견은 에미안 간빙기(Eemian interglacial period)로 거슬러 올라가며, 이는 기원전 130,000년에서 110,000년 사이의 시기에 해당한다. 덴마크에는 기원전 12,500년경부터 인류가 거주하기 시작했으며, 농업의 흔적은 기원전 3900년경부터 나타난다. 북유럽 청동기 시대(기원전 1800년-600년)는 고분(burial mounds)으로 특징지어지며, 이 시기의 유물로는 루르(lurs)와 트룬드홀름 태양마차(Trundholm sun chariot) 등이 풍부하게 발견되었다.
로마 이전 철기 시대(기원전 500년 - 서기 1년) 동안, 토착 집단들은 남쪽으로 이주하기 시작했고, 최초의 데인족(Danes) 부족은 로마 이전 철기 시대와 게르만 철기 시대 사이, 즉 로마 철기 시대(서기 1년-400년)에 덴마크에 도착했다. 로마의 속주들은 덴마크의 토착 부족들과 무역로를 유지하고 관계를 맺었으며, 덴마크에서는 로마 동전들이 발견되기도 했다. 이 시기 덴마크와 북서 유럽 대부분 지역에서는 강력한 켈트 문화의 영향이 나타나는데, 이는 군데스트루프 가마솥(Gundestrup cauldron)의 발견 등에서 잘 드러난다.
데인족 부족은 동쪽의 덴마크 제도(셸란섬)와 스카니아에서 왔으며, 초기 형태의 북게르만어군 언어를 사용했다. 역사학자들은 이들의 도착 이전에 율란 반도 대부분과 인근 섬들에는 유트족(Jutes) 부족이 정착해 있었다고 본다. 전설에 따르면, 많은 유트족은 브리튼족 왕 보티건의 용병으로 그레이트브리튼섬으로 이주하여 켄트, 와이트섬 등 남동부 지역에 정착지를 형성했다. 이들은 나중에 침입한 앵글족과 색슨족에게 흡수되거나 민족적으로 청소되어 앵글로색슨족을 형성했다. 율란 반도에 남아있던 유트족 인구는 정착한 데인족에게 동화되었다.
역사가 요르다네스의 저서 《게티카》에 있는 다니(Dani)에 대한 짧은 언급은 데인족에 대한 초기 기록으로 여겨지며, 이들은 현대 덴마크인의 조상이 된 민족 집단 중 하나이다. 다네비르케(Danevirke) 방어 구조물은 3세기부터 단계적으로 건설되었으며, 서기 737년의 대규모 건설 노력은 덴마크 왕의 출현에 기인한 것으로 여겨진다. 같은 시기에 신 푸타르크 룬 문자가 처음 사용되었고, 덴마크에서 가장 오래된 도시인 리베는 서기 700년경에 건설되었다.
3.2. 바이킹 시대와 중세

8세기부터 10세기까지 광범위한 스칸디나비아 지역은 바이킹의 근거지였다. 그들은 유럽 전역에서 식민지를 건설하고, 약탈하며, 교역 활동을 벌였다. 덴마크 바이킹은 주로 브리튼 제도 동부 및 남부와 서유럽에서 활동했다. 그들은 1013년 스벤 튜구스케그 왕의 지휘 아래 잉글랜드 일부 지역(데인로)에 정착했으며, 프랑스에서는 롤로를 초대 통치자로 하여 프랑스의 로베르 1세에게 충성을 맹세하는 대가로 노르망디가 될 지역에 덴마크인과 노르웨이인이 정착하도록 허용받았다. 이 시기의 일부 앵글로색슨 페니 동전이 덴마크에서 발견되기도 했다.


덴마크는 8세기 말까지 대체로 통합되었으며, 그 통치자들은 프랑크 사료에서 지속적으로 왕(reges)으로 언급된다. 804년 고프레드의 통치 하에 덴마크 왕국은 보른홀름섬을 제외한 율란 반도, 스카니아 및 덴마크 제도 전역을 포함했을 수 있다.
현존하는 덴마크 군주제는 10세기 초에 통치를 확립한 고름 디 감레에게 그 뿌리를 두고 있다. 옐링 스톤에 기록된 바와 같이, 데인족은 965년경 고름과 튀라의 아들인 하랄 1세 블라톤에 의해 기독교화되었다. 덴마크가 기독교화된 것은 신성 로마 제국의 침략을 피하기 위한 정치적 이유 때문으로 여겨진다. 당시 유럽의 신흥 기독교 세력이었던 신성 로마 제국은 데인족의 중요한 교역 상대였다. 이러한 위협에 대한 억지력으로 하랄은 덴마크 주변에 트렐레보르그라는 6개의 바이킹 원형 요새를 건설하고 다네비르케를 추가로 건설했다. 11세기 초, 크누트 대왕은 스칸디나비아 군대를 이끌고 거의 30년 동안 덴마크, 잉글랜드, 노르웨이를 통합하여 통치했다.
중세 성기와 중세 후기 동안 덴마크는 현재 스웨덴 남부에 있는 스카니아, 할란드, 블레킹에 지역을 포함하는 스코넬란드(Skåneland)와 덴마크령 에스토니아뿐만 아니라 슐레스비히 공국과 홀슈타인 공국도 통치했다. 이들 공국 대부분은 현재 독일 북부의 슐레스비히홀슈타인주를 형성하고 있다.
1397년, 덴마크는 마르그레테 1세 여왕 아래 통합된 노르웨이, 스웨덴과 칼마르 동맹이라는 동군연합을 맺었다. 이 동맹에서 세 나라는 동등하게 취급될 예정이었으나, 처음부터 마르그레테는 덴마크를 명백한 "상위" 파트너로 여겼을 수 있다. 따라서 이후 125년간의 스칸디나비아 역사는 이 동맹을 중심으로 전개되었으며, 스웨덴은 반복적으로 이탈했다가 재정복되곤 했다. 이 문제는 1523년 6월 17일 스웨덴의 구스타브 1세 국왕이 스톡홀름 시를 정복하면서 실질적으로 해결되었다. 종교 개혁은 1530년대에 스칸디나비아로 확산되었고, 백작 전쟁이라는 내전 이후 덴마크는 1536년에 루터교로 개종했다. 그해 말, 덴마크는 노르웨이와 연합을 맺었다.
3.3. 근세와 절대왕정
스웨덴이 동군연합에서 영구적으로 이탈한 후, 덴마크는 여러 차례 이웃 국가에 대한 통제권을 다시 주장하려 시도했다. 크리스티안 4세 국왕은 1611년-1613년 칼마르 전쟁에서 스웨덴을 공격했지만, 스웨덴을 연합으로 복귀시키려는 주요 목표를 달성하지 못했다. 전쟁은 영토 변화를 가져오지 않았지만, 스웨덴은 덴마크에 100만 은화 릭스달레르의 전쟁 배상금을 지불해야 했는데, 이 금액은 엘브스보리 몸값으로 알려져 있다. 크리스티안 왕은 이 돈을 사용하여 여러 도시와 요새를 건설했는데, 특히 함부르크의 경쟁 도시로 건설된 글뤽슈타트와 크리스티아니아가 유명하다. 네덜란드 동인도 회사에서 영감을 받아 유사한 덴마크 동인도 회사를 설립하고 실론을 식민지로 삼으려 했지만, 회사는 인도의 코로만델 해안에 있는 트랑케바르만을 확보하는 데 그쳤다. 덴마크의 광대한 식민지 야망에는 아프리카와 인도의 몇몇 주요 교역소가 포함되었다. 인도의 덴마크 교역소는 미미했지만, 가나 오수의 크리스티안스보르 요새에 있는 교역소를 통해 150만 명의 노예가 거래되는 등 매우 수익성이 높은 대서양 노예 무역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다. 덴마크 식민 제국은 다른 주요 강대국과의 무역과 플랜테이션으로 유지되었지만, 궁극적으로 자원 부족으로 인해 침체되었다.

30년 전쟁에서 크리스티안은 독일의 루터교 국가들의 지도자가 되려 했으나, 루터 전투에서 참패했다. 그 결과 알브레히트 폰 발렌슈타인 휘하의 가톨릭 군대가 율란 반도를 침공, 점령, 약탈하여 덴마크는 전쟁에서 철수해야 했다. 덴마크는 영토 할양은 피했지만, 스웨덴의 구스타브 2세 아돌프 국왕의 독일 개입은 스웨덴의 군사력이 부상하고 있는 반면, 이 지역에서 덴마크의 영향력은 쇠퇴하고 있다는 신호로 여겨졌다. 스웨덴 군대는 1643년 율란 반도를 침공했고, 1644년 스카니아를 점령했다. 1645년 브룀세브로 조약에서 덴마크는 할란드, 고틀란드, 덴마크령 에스토니아의 마지막 일부, 그리고 노르웨이의 여러 주를 할양했다.
브룀세브로 조약을 파기할 기회를 엿보던 프레데리크 3세 국왕은 1657년, 제2차 북방 전쟁(1655년-1660년)에 깊이 관여하고 있던 스웨덴에 선전포고하고 브레멘-페르덴으로 진군했다. 이는 덴마크의 대패로 이어졌고, 스웨덴의 칼 10세 구스타브 국왕의 군대가 율란 반도를 정복하고, 얼어붙은 덴마크 해협을 가로지르는 스웨덴의 행진 이후 퓐섬과 셸란섬 대부분을 점령한 후 1658년 2월 로스킬레 평화 조약을 체결하여 스웨덴은 스카니아, 블레킹에, 보후슬렌, 트뢰넬라그, 보른홀름섬을 장악하게 되었다. 칼 10세 구스타브는 덴마크를 완전히 파괴하지 않은 것을 곧 후회했고, 1658년 8월 덴마크에 대한 두 번째 공격을 감행하여 덴마크 제도 대부분을 정복하고 2년간의 코펜하겐 공방전을 시작했다. 프레데리크 3세 국왕은 적극적으로 도시 방어를 지휘하며 시민들을 규합하여 무기를 들게 했고, 스웨덴의 공격을 격퇴했다. 공방전은 1660년 칼 10세 구스타브의 사망 이후 끝났다. 이어진 평화 협정에서 덴마크는 독립을 유지하고 트뢰넬라그와 보른홀름섬에 대한 통제권을 되찾았다. 전쟁 후 큰 인기를 얻은 프레데리크 3세는 이를 이용하여 선거군주제를 해체하고 절대군주제를 도입했는데, 이는 덴마크에서 1848년까지 지속되었다.
덴마크는 스카니아 전쟁(1675년-1679년)에서 스카니아에 대한 통제권을 되찾으려 했으나 실패했다. 대북방 전쟁(1700년-1721년) 이후, 덴마크는 각각 1720년 프레데릭스보르 조약과 1773년 차르스코예 셀로 조약을 통해 홀슈타인-고토르프 가문이 통치하던 슐레스비히 공국과 홀슈타인 공국 일부에 대한 통제권을 되찾았다. 덴마크는 18세기 마지막 수십 년 동안 중립적 지위 덕분에 당시 많은 전쟁에서 양측과 교역할 수 있어 크게 번영했다. 나폴레옹 전쟁에서 덴마크는 프랑스 및 영국과 모두 교역했으며, 러시아, 스웨덴, 프로이센과 함께 제2차 무장 중립 동맹에 가입했다. 덴마크-노르웨이가 프랑스와 동맹을 맺을 것이라는 영국의 우려는 1801년과 1807년 코펜하겐의 덴마크 목표물에 대한 두 차례의 공격으로 이어졌다. 이 공격으로 영국은 덴마크-노르웨이 해군의 대부분을 나포했고, 함포 전쟁이 발발했다. 덴마크와 노르웨이 사이의 수로에 대한 영국의 통제는 연합 왕국의 경제에 치명적이었고, 1813년 덴마크-노르웨이는 파산했다.
1814년 킬 조약에 의해 연합은 해체되었고, 덴마크 군주제는 스웨덴 국왕을 위해 노르웨이 왕국에 대한 주장을 "불가역적이고 영원히" 포기했다. 덴마크는 수세기 동안 노르웨이가 통치해왔던 아이슬란드(1944년까지 덴마크 군주제를 유지), 페로 제도, 그린란드의 영유권을 유지했다. 북유럽 식민지 외에도 덴마크는 1620년부터 1869년까지 덴마크령 인도, 1658년부터 1850년까지 덴마크령 골드코스트(가나), 1671년부터 1917년까지 덴마크령 서인도 제도를 계속 통치했다.
3.4. 입헌군주국 수립과 근대화

덴마크의 신생 자유주의 및 민족주의 운동은 1830년대에 탄력을 받았다. 유럽의 1848년 혁명 이후, 덴마크는 1849년 6월 5일 평화적으로 입헌군주국이 되었다. 새로운 헌법은 양원제 의회인 릭스다겐을 설립했다. 덴마크는 프로이센 및 오스트리아 제국과 제2차 슐레스비히 전쟁으로 알려진 전쟁에 직면했으며, 이 전쟁은 1864년 2월부터 10월까지 지속되었다. 덴마크는 패배하여 슐레스비히와 홀슈타인을 프로이센에 할양해야 했다. 이 패배는 17세기에 시작된 오랜 패배와 영토 손실의 연속에서 가장 최근의 것이었다. 이러한 사건 이후 덴마크는 유럽에서 중립 정책을 추구했다.
산업화는 19세기 후반에 덴마크에 도래했다. 덴마크 최초의 철도는 1850년대에 건설되었으며, 개선된 통신과 해외 무역은 덴마크의 천연자원 부족에도 불구하고 산업 발전을 가능하게 했다. 노동조합은 1870년대부터 발전했다. 농촌에서 도시로 상당한 인구 이동이 있었고, 덴마크 농업은 유제품 및 육류 제품 수출을 중심으로 이루어졌다.
3.5. 양차 세계 대전과 전후 현대

덴마크는 제1차 세계 대전 동안 중립적 입장을 유지했다. 독일의 패배 후, 베르사유 연합국은 슐레스비히-홀슈타인 지역을 덴마크에 반환할 것을 제안했다. 독일의 실지회복주의를 두려워한 덴마크는 국민 투표 없이는 이 지역의 반환을 고려하기를 거부했다. 두 차례의 슐레스비히 국민 투표는 각각 1920년 2월 10일과 3월 14일에 실시되었다. 1920년 7월 10일, 북슐레스비히는 덴마크에 회복되어 약 163,600명의 주민과 3984 km2의 영토가 추가되었다. 덴마크 최초의 사회민주주의 정부는 1924년에 집권했다.
1939년 덴마크는 나치 독일과 10년간의 불가침 조약을 체결했다. 그러나 독일은 1940년 4월 9일 덴마크를 침공했고, 덴마크 정부는 신속히 항복했다. 제2차 세계 대전 중 덴마크는 1943년까지 독일과의 경제 협력으로 특징지어졌는데, 1943년 덴마크 정부는 추가 협력을 거부하고 덴마크 왕립 해군은 대부분의 함선을 자침시키고 많은 장교를 중립국이었던 스웨덴으로 보냈다. 덴마크 저항 운동은 독일군이 유대인과 그 가족들을 죽음의 수용소로 보내기 전에 수천 명을 스웨덴으로 안전하게 대피시키는 덴마크 유대인 구조 작전을 수행했다. 일부 덴마크인들은 덴마크 나치당에 가입하거나 덴마크 자유군단의 일원으로 독일에 자원하여 싸움으로써 나치즘을 지지했다. 아이슬란드는 덴마크와의 관계를 단절하고 1944년 독립 공화국이 되었으며, 독일은 1945년 5월 항복했다. 1948년 페로 제도는 자치권을 획득했다. 1949년 덴마크는 NATO의 창립 회원국이 되었다.
덴마크는 유럽 자유 무역 연합(EFTA)의 창립 회원국이었다. 1960년대에 EFTA 국가들은 당시 유럽 경제 공동체(EEC)의 "이너 식스(Inner Six)"와 대조적으로 "아우터 세븐(Outer Seven)"으로 불리곤 했다. 1973년 영국, 아일랜드와 함께 덴마크는 국민 투표 후 유럽 경제 공동체(현재의 유럽 연합)에 가입했다. 추가적인 유럽 통합을 포함하는 마스트리흐트 조약은 1992년 덴마크 국민에 의해 거부되었으며, 정책으로부터 네 가지 옵트아웃을 규정한 1993년 두 번째 국민 투표 후에야 수락되었다. 덴마크인들은 2000년 국민 투표에서 유로화를 국가 통화로 채택하는 것을 거부했다. 그린란드는 1979년 자치권을 획득했고 2009년 자결권을 부여받았다. 페로 제도와 그린란드 모두 유럽 연합 회원국이 아니며, 페로 제도는 1973년 EEC 가입을 거부했고 그린란드는 1986년 어업 정책 때문에 거부했다.
1953년 헌법 개정으로 비례대표제로 선출되는 단원제 의회, 덴마크 왕위 계승에 대한 여성의 승인, 그린란드가 덴마크의 완전한 일부가 되는 결과가 나왔다. 중도좌파 사회민주당은 20세기 후반 대부분 동안 연립 정부를 이끌며 북유럽 복지 모델을 도입했다. 자유당과 보수국민당 또한 중도우파 정부를 이끌었다.
4. 지리


북유럽에 위치한 덴마크는 율란 반도 북부와 406개의 섬으로 이루어진 군도로 구성된다. 이 중 가장 큰 섬은 수도 코펜하겐이 위치한 셸란섬이며, 그 다음으로는 북윌란섬, 퓐섬, 롤란섬 순이다. 보른홀름섬은 본토에서 동쪽으로 약 150 km 떨어진 발트해에 위치한다. 많은 큰 섬들은 다리로 연결되어 있다. 외레순 대교 터널은 셸란섬과 스웨덴을 연결하고, 스토레벨트 대교는 퓐섬과 셸란섬을, 릴레벨트 다리는 율란 반도와 퓐섬을 연결한다. 작은 섬들은 페리나 소형 항공기로 연결된다. 인구 10만 명이 넘는 4대 도시는 셸란섬의 수도 코펜하겐, 율란 반도의 오르후스와 올보르, 퓐섬의 오덴세이다.

덴마크 본토의 총 면적은 4.29 만 km2이다. 내수면 면적은 43 km2이다. 해안선 침식과 매립, 그리고 빙하 후퇴 후 지반 반등 현상(북부와 동부에서 연간 1 cm 미만 상승)으로 인해 국토 면적은 정확히 명시하기 어렵다. 덴마크와 같은 면적을 가진 원은 직경이 234 km, 둘레가 736 km (육지 면적만: 각각 232.33 km, 730 km)이다. 남쪽으로 독일과 68 km의 국경을 공유하며, 그 외에는 8750 km의 조간대 해안선(작은 만과 후미 포함)으로 둘러싸여 있다. 덴마크 내 어느 지점도 해안에서 52 km 이상 떨어져 있지 않다. 율란 반도 남서부 해안의 조수 간만의 차는 1 m와 2 m 사이이며, 조수선은 10 km 구간에서 바깥쪽과 안쪽으로 이동한다. 덴마크의 영해는 총 10.50 만 km2이다.
덴마크의 최북단은 스카겐 지점(스카우 북쪽 해변)으로 북위 57° 45' 7"이며, 최남단은 게세르 지점(팔스터 남쪽 끝)으로 북위 54° 33' 35"이다. 최서단은 블로반슈크로 동경 8° 4' 22"이며, 최동단은 외스테르셰르로 동경 15° 11' 55"이다. 이는 보른홀름 북동쪽으로 18 km 떨어진 작은 에르톨메네 군도에 있다. 동서 길이는 452 km, 남북 길이는 368 km이다.
덴마크 본토는 고도가 낮고 평탄하며, 해발 고도 평균 31 m이다. 가장 높은 자연 지점은 묄레회이로 170.86 m이다. 이는 북유럽 국가 중 가장 낮은 최고점이며 스웨덴 남부 최고점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지만, 덴마크 내륙의 일반적인 고도는 해수면 상승으로부터 안전한 수준이다. 덴마크 지형의 상당 부분은 완만한 평야로 이루어져 있으며, 해안선은 모래사장이고 북부 율란 반도에는 큰 사구가 있다. 한때 광범위하게 숲이 우거졌으나, 오늘날 덴마크는 대부분 경작지로 이루어져 있다. 12개 정도의 강이 흐르며, 가장 중요한 강으로는 구데노강, 오덴세강, 스켸른강, 수소강, 그리고 독일과의 남쪽 국경을 따라 흐르는 비도강이 있다. 덴마크에는 1008개의 호수가 있으며, 그 중 16개는 면적이 500 ha 이상이다. 코펜하겐 북서쪽에 위치한 아레쇠호가 가장 큰 호수이다.
덴마크 왕국에는 덴마크 서쪽에 위치한 두 개의 해외 영토가 있다: 세계에서 가장 큰 섬인 그린란드와 북대서양의 페로 제도이다. 이들 영토는 자체 의회(뢰그팅 및 이나치사르투트) 하에 자치하며, 덴마크 본토와 함께 덴마크 왕국 공동체의 일부를 구성한다.
4.1. 기후
덴마크는 온대 기후로, 겨울은 서늘하거나 추우며 1월 평균 기온은 1.5 °C이고, 여름은 온화하며 8월 평균 기온은 17.2 °C이다. 1874년 기록 시작 이후 덴마크에서 기록된 최고 기온은 1975년 36.4 °C, 최저 기온은 1982년 -31.2 °C였다. 덴마크는 연평균 179일 동안 비가 내리며, 연평균 총 강수량은 765 mm이다. 가을이 가장 습한 계절이고 봄이 가장 건조한 계절이다. 대륙과 해양 사이에 위치하여 날씨가 종종 불안정하다.
덴마크의 북쪽에 위치하기 때문에 일조량에 계절적 변화가 크다. 겨울에는 해가 짧아 오전 8시 45분경에 해가 뜨고 오후 3시 45분경(표준시)에 지며, 여름에는 해가 길어 오전 4시 30분에 해가 뜨고 오후 10시(일광 절약 시간제)에 진다.
월 | 1월 | 2월 | 3월 | 4월 | 5월 | 6월 | 7월 | 8월 | 9월 | 10월 | 11월 | 12월 | 연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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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균 최고 기온 (°C) | 3.3 | 3.3 | 6.1 | 11.5 | 15.5 | 18.5 | 21.6 | 21.2 | 17.5 | 12.3 | 7.9 | 4.2 | 11.9 |
일평균 기온 (°C) | 1.5 | 1.2 | 3.0 | 7.5 | 11.4 | 14.6 | 17.4 | 17.2 | 13.8 | 9.4 | 5.7 | 2.2 | 8.8 |
평균 최저 기온 (°C) | -0.8 | -1.3 | -0.2 | 3.6 | 7.4 | 10.6 | 13.4 | 13.5 | 10.2 | 6.2 | 3.2 | -0.3 | 5.5 |
평균 강수량 (mm) | 66 | 50 | 43 | 37 | 53 | 68 | 77 | 91 | 62 | 83 | 75 | 61 | 765 |
평균 강수일수 (≥ 1mm) | 18 | 15 | 13 | 11 | 13 | 13 | 14 | 16 | 14 | 17 | 20 | 17 | 179 |
월평균 일조시간 | 47 | 71 | 146 | 198 | 235 | 239 | 232 | 196 | 162 | 111 | 58 | 45 | 1739 |
4.2. 자연 환경


덴마크는 북방 식물 왕국에 속하며, 대서양 혼합림과 발트 혼합림이라는 두 개의 생태 지역으로 세분화될 수 있다. 덴마크의 원시 온대림은 지난 수천 년 동안 주로 농업적 목적으로 거의 전부 파괴되거나 단편화되었다. 이러한 삼림 벌채는 광대한 황야와 파괴적인 모래 날림을 야기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덴마크에는 여러 개의 넓은 이차림이 있으며, 총 토지 면적의 12.9%가 현재 삼림으로 덮여 있다. 가문비나무는 가장 널리 퍼져 있는 나무(2017년 기준)이며, 크리스마스 트리 생산에서 중요한 나무이다. 덴마크는 삼림 경관 보전 지수 평균 점수가 0.5/10으로, 172개국 중 171위를 차지하여 산마리노 다음으로 낮다.
노루는 시골 지역에서 점차 그 수가 증가하고 있으며, 율란 반도의 드문드문한 삼림 지대에서는 큰 뿔을 가진 붉은사슴을 볼 수 있다. 덴마크에는 유럽족제비, 산토끼, 고슴도치와 같은 작은 포유류도 서식한다. 약 400종의 새가 덴마크에 서식하며, 그중 약 160종이 덴마크에서 번식한다. 주요 해양 포유류로는 건강한 개체군의 쇠돌고래, 증가하는 기각류 개체군, 그리고 가끔 방문하는 고래류(흰긴수염고래, 범고래 포함)가 있다. 대구, 청어, 가자미는 덴마크 해역에서 풍부한 식용 어류이며, 대규모 어업의 기반을 형성한다.
덴마크는 역사적으로 환경 보전에 대해 진보적인 입장을 취해왔다. 1971년 덴마크 환경부를 설립했고, 1973년 세계 최초로 환경법을 시행했다. 토지 및 수질 오염은 덴마크의 가장 중요한 환경 문제 중 두 가지이지만, 현재 대부분의 생활 및 산업 폐기물은 점점 더 여과되고 때로는 재활용된다. 덴마크는 온실가스 배출량 감축을 위한 교토 의정서 서명국이다. 그러나 국가 생태발자국은 1인당 8.26 글로벌 헥타르로, 2010년 세계 평균 1.7에 비해 매우 높다. 기여 요인으로는 경작지 및 방목지에 대한 예외적으로 높은 가치, 아마도 상당히 높은 육류 생산량(1인당 연간 115.8 kg의 육류)과 육류 및 유제품 산업의 경제적 규모 때문일 것이다.
상대적으로 높은 배출량에도 불구하고, 덴마크는 효과적인 기후 보호 정책 시행으로 2015년 기후 변화 성과 지수에서 1위를 차지했다. 2020년 이후 지속적으로 1위를 유지하고 있다. 덴마크는 환경 성과 지수에서 10위를 차지했으며, 이는 기후 변화 완화, 생태계 활력 보호, 환경 보건 증진의 진전을 측정한다. 2021년, 덴마크는 코스타리카와 함께 화석 연료 사용 중단을 위한 "석유 및 가스 동맹 그 이상(Beyond Oil and Gas alliance)"을 출범시켰다. 덴마크 정부는 2020년 12월 석유 및 가스 추출에 대한 신규 허가 발급을 중단했다.
덴마크의 영토인 그린란드와 페로 제도는 연간 약 650마리의 고래를 포획한다. 그린란드의 고래 포획 할당량은 국제포경위원회(IWC)의 권고에 따라 결정되며, IWC는 할당량 결정 권한을 가진다.
5. 정치
덴마크의 정치는 덴마크 헌법에 규정된 틀 안에서 운영된다. 1849년에 처음 제정된 이 헌법은 입헌군주제 형태의 주권 국가를 확립하며, 대표적인 단원제 의원내각제를 채택하고 있다. 군주는 공식적으로 행정권을 보유하며 국무회의(추밀원)를 주재한다. 실제로는 군주의 직무는 엄격히 대표적이고 의전적인 것으로, 총리 및 기타 정부 장관의 공식적인 임명 및 해임과 같은 역할을 한다. 군주는 자신의 행동에 대해 책임을 지지 않으며, 그의 인격은 신성불가침이다. 세습 군주인 프레데리크 10세 국왕이 2024년 1월 14일부터 국가 원수를 맡고 있다.
덴마크의 정치는 입헌군주제와 의회민주주의에 기반한 통치 구조와 삼권분립 원칙을 특징으로 한다. 입법부는 단원제 의회인 폴케팅이 담당하며, 행정부는 국왕이 임명하는 총리를 중심으로 하는 내각이, 사법부는 독립적인 법원 조직이 맡고 있다. 다당제 환경 속에서 여러 정당이 활동하며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한다. 또한, 본토 외에 자치령인 그린란드와 페로 제도는 광범위한 자치권을 누리며 본토와 독특한 정치적 관계를 맺고 있다.


5.1. 정부 형태


덴마크는 입헌군주제와 의회민주주의를 기반으로 하는 국가이다. 덴마크 헌법은 국가의 통치 구조를 규정하며, 국가원수는 군주이지만 실질적인 정치 권력은 의회와 정부에 있다. 삼권분립 원칙에 따라 입법권은 의회인 폴케팅(Folketing)에, 행정권은 총리가 이끄는 내각에, 사법권은 독립된 법원에 속한다. 군주는 상징적 역할을 수행하며, 총리 임명, 법률 공포 등 형식적인 권한을 행사한다. 정부는 의회에 대해 책임을 지며, 의회의 신임을 얻지 못하면 사퇴해야 한다. 이러한 제도를 통해 권력의 집중을 막고 국민의 주권을 실현하고자 한다.
5.2. 입법부
덴마크 의회는 단원제이며 폴케팅(Folketinget폴케팅에트덴마크어)이라고 불린다. 폴케팅은 덴마크 왕국의 입법부로서 덴마크 본토와 그린란드 및 페로 제도에 적용되는 법률을 통과시킨다. 또한 폴케팅은 국가 예산 채택, 국가 회계 승인, 정부 임명 및 통제, 국제 협력 참여를 담당한다. 법안은 정부 또는 국회의원에 의해 발의될 수 있다. 통과된 모든 법안은 법률로 효력을 발생하기 위해 30일 이내에 국무회의에 제출되어 국왕의 재가를 받아야 한다.
덴마크는 보통선거를 통한 대의민주주의 국가이다. 폴케팅 의원직은 비례대표제에 기반하며, 2%의 봉쇄 조항이 있다. 덴마크 본토에서 175명의 의원을 선출하고, 그린란드와 페로 제도에서 각각 2명의 의원을 추가로 선출하여 총 179명의 의원으로 구성된다. 의회 선거는 최소 4년마다 실시되지만, 임기가 만료되기 전에 총리가 군주에게 선거를 요청할 권한이 있다. 불신임 결의에 따라 폴케팅은 특정 장관이나 정부 전체의 사임을 강제할 수 있다.
5.3. 행정부
덴마크 정부는 내각책임제로 운영되며, 행정권은 공식적으로 군주를 대신하여 총리와 각 부처를 이끄는 다른 내각 장관들에 의해 행사된다. 행정부로서 내각은 법안과 예산안 제안, 법률 집행, 덴마크의 외교 및 내정 정책 지도를 담당한다. 총리직은 폴케팅에서 과반수의 신임을 얻을 가능성이 가장 높은 사람에게 속하며, 이는 종종 최대 정당의 현 지도자이거나, 더 효과적으로는 정당 간 연립을 통해 이루어진다. 단일 정당이 의석 수 측면에서 단독으로 내각을 구성할 만큼의 정치력을 갖는 경우는 드물며, 덴마크는 종종 연립 정부에 의해 통치되어 왔고, 이들 연립 정부 자체도 대개 비정부 정당에 의존하는 소수 정부였다.
2022년 덴마크 총선 이후, 현직 총리이자 사회민주당 대표인 메테 프레데릭센은 2022년 12월, 당시 주요 야당이었던 좌파당 및 최근 창당된 온건당과 함께 현 프레데릭센 2기 내각이라는 연립 정부를 구성했다.
5.4. 사법부
덴마크는 대륙법계를 따르며, 일부 게르만법의 요소도 참조한다. 덴마크는 노르웨이, 스웨덴과 마찬가지로 영미법이나 미국법과 같은 판례법 체계를 발전시키지 않았으며, 프랑스법이나 독일법과 같은 포괄적인 법전도 없다. 법의 많은 부분이 관습법에 기반한다.
덴마크의 사법 제도는 일반 민사 및 형사법 관할 법원과 개인과 공공 행정 기관 간의 소송을 관할하는 행정 법원으로 나뉜다. 헌법 제62조와 제64조는 판사가 법률, 법규, 관행만을 따라야 한다고 규정함으로써 정부와 의회로부터의 사법부 독립을 보장한다. 덴마크 왕국에는 단일 통합 사법 체계가 없다. 덴마크, 그린란드, 페로 제도는 각각 별도의 사법 체계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그린란드와 페로 제도의 최고 법원 결정은 덴마크 고등 법원에 상소할 수 있다. 덴마크 대법원은 왕국 내 사법 행정을 담당하는 최고 민사 및 형사 법원이다.
5.5. 주요 정당
덴마크는 다당제 국가로, 다양한 이념과 정책을 가진 정당들이 활동하고 있다. 주요 정당으로는 중도좌파 성향의 사회민주당(Socialdemokratiet), 중도우파 성향의 좌파당(Venstre), 보수주의 정당인 보수인민당(Det Konservative Folkeparti) 등이 전통적으로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해왔다. 최근에는 덴마크 인민당(Dansk Folkeparti)과 같은 우익 포퓰리즘 정당이나 적녹동맹(Enhedslisten)과 같은 좌파 정당, 그리고 중도 성향의 사회자유당(Radikale Venstre) 등도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정당들은 선거 결과에 따라 연립 정부를 구성하거나 정책 협상을 통해 국정에 참여한다. 각 정당은 고유의 이념적 기반 위에서 경제, 사회 복지, 이민, 환경 등 다양한 현안에 대해 각기 다른 정책 방향을 제시하며 경쟁하고 있다. 최근 창당된 온건당(Moderaterne)도 정치 지형에 새로운 변수로 작용하고 있다.
5.6. 덴마크 왕국 공동체

덴마크 왕국은 덴마크 본토 외에 북대서양에 위치한 두 개의 자치령인 페로 제도와 그린란드를 포함하는 단일 국가이다. 이들 지역은 18세기부터 덴마크 왕국의 통합된 부분이었으나, 독자적인 역사와 문화적 정체성으로 인해 광범위한 정치적 권한을 가지며 상당수 분야에서 입법 및 행정 책임을 맡고 있다. 페로 제도는 1948년에, 그린란드는 1979년에 각각 자치권을 부여받았으며, 이전에는 덴마크의 주(county)와 같은 지위였다.
페로 제도와 그린란드는 자체적인 자치 정부와 의회를 가지고 있으며, 사법 제도와 통화 정책을 제외한 국내 문제에 관해서는 사실상 자치를 시행하고 있다. 고등판무관(Rigsombudsmand)은 페로 제도 의회(뢰그팅)와 그린란드 의회에서 덴마크 정부의 대표 역할을 하지만 투표권은 없다. 페로 자치 정부는 덴마크 중앙 정부와 동등한 파트너로 규정되며, 그린란드인은 자결권을 가진 별개의 민족으로 규정된다.
자치령 | 인구 (2020년) | 총면적 | 수도 | 지방 의회 | 총리 |
---|---|---|---|---|---|
페로 제도 (Færøerne덴마크어, Føroyar페로어) | 52,110 | 1399 km2 | 토르스하운 | 뢰그팅 | 악셀 V. 요하네센 |
그린란드 (Grønland덴마크어, Kalaallit Nunaat그린란드어) | 56,081 | 216.61 만 km2 | 누크 | 이나치사르투트 | 무테 부르오프 에게데 |
6. 행정 구역
덴마크는 2007년 행정 구역 개편을 통해 5개 지역(Regioner)으로 재편되었으며, 이 지역들은 다시 98개의 지방 자치체(Kommuner)로 나뉜다. 각 지역은 주로 보건 의료 서비스를 담당하며, 지방 자치체는 교육, 사회 복지, 지역 개발 등 주민 생활과 밀접한 다양한 공공 서비스를 제공한다. 수도인 코펜하겐을 비롯한 주요 도시들은 각 지역의 행정, 경제, 문화 중심지 역할을 한다.
6.1. 지역 및 지방 자치체
덴마크는 5개의 지역(Regioner)으로 구성되며, 각 지역은 그 하위 단위인 지방 자치체(Kommuner)들로 이루어진다. 지역은 주로 국민 보건 서비스, 사회 서비스 및 지역 개발을 책임진다. 이전의 주(amt)와 달리 지역은 세금을 부과할 수 없으며, 보건 서비스는 부분적으로 2018년까지 국가 보건 기여금(sundhedsbidrag순헤드스비드라그덴마크어)으로, 부분적으로는 정부와 지방 자치체의 기금으로 재원을 조달했다. 2019년 1월 1일부터 이 기여금은 폐지되고 소득세 인상으로 대체되었다.
각 지역의 면적과 인구는 다양하다. 예를 들어, 수도 지역은 북윌란 지역보다 인구가 세 배 더 많다. 이전 주 체제에서는 코펜하겐시나 프레데릭스베르시와 같이 인구가 밀집된 특정 지방 자치체에 주와 동등한 지위가 부여되어 1차 행정 구역으로 기능했다. 이러한 특별 지위의 지방 자치체들은 2007년 개혁에 따라 새로운 지역에 통합되었다.
지방 자치체는 교육(유치원, 초등학교, 중학교), 사회 복지 서비스(노인 돌봄, 장애인 지원 등), 지역 계획, 환경 관리, 문화 시설 운영 등 주민 생활과 가장 밀접한 공공 서비스를 담당한다. 각 지방 자치체는 직접 선거로 선출되는 지방 의회와 시장에 의해 운영되며, 상당한 자치권을 가지고 지역 특성에 맞는 정책을 추진한다.
덴마크어 명칭 | 한국어 명칭 | 행정 중심지 | 최대 도시 (인구순) | 인구 (2021년 4월) | 총 면적 (km2) |
---|---|---|---|---|---|
Hovedstaden덴마크어 | 덴마크 수도 지역 | 힐레뢰드 | 코펜하겐 | 1,856,061 | 2,568.29 |
Midtjylland덴마크어 | 중앙윌란 지역 | 비보르 | 오르후스 | 1,333,245 | 13,095.80 |
Nordjylland덴마크어 | 북윌란 지역 | 올보르 | 올보르 | 590,322 | 7,907.09 |
Sjælland덴마크어 | 셸란 지역 | 소뢰 | 로스킬레 | 839,619 | 7,268.75 |
Syddanmark덴마크어 | 남덴마크 지역 | 바일레 | 오덴세 | 1,224,100 | 12,132.21 |
6.2. 주요 도시
덴마크의 주요 도시들은 각기 독특한 역사와 문화를 지니고 있으며, 국가의 경제 및 사회 발전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 코펜하겐 (København): 덴마크의 수도이자 가장 큰 도시로, 셸란섬 동부에 위치한다. 정치, 경제, 문화의 중심지이며, 아말리엔보르 궁전, 뉘하운, 인어공주 동상, 티볼리 공원 등 유명 관광지가 많다. 인구는 약 65만 명(도시권 약 130만 명)이다. 국제적인 금융, 무역, 디자인, 관광의 허브 역할을 한다.
- 오르후스 (Aarhus): 덴마크 제2의 도시로, 율란 반도 동부에 위치한다. 주요 항구 도시이자 대학 도시로, 젊은층 인구가 많고 활기찬 분위기를 자랑한다. 덴 감레 비, ARoS 오르후스 미술관 등이 유명하다. 인구는 약 29만 명(도시권 약 36만 명)이다. 정보 기술, 연구 개발, 교육의 중심지이다.
- 오덴세 (Odense): 덴마크 제3의 도시로, 퓐섬에 위치한다. 동화 작가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의 출생지로 유명하며, 그의 생가와 박물관이 있다. 인구는 약 18만 명(도시권 약 20만 명)이다. 로봇 공학 및 첨단 기술 산업의 중심지로 부상하고 있다.
- 올보르 (Aalborg): 덴마크 제4의 도시로, 율란 반도 북부에 위치한다. 역사적인 건축물과 현대적인 문화 시설이 조화를 이루고 있으며, 올보르후스 성, 우트존 센터 등이 있다. 인구는 약 12만 명(도시권 약 22만 명)이다. 통신 기술, 에너지, 물류 산업이 발달했다.
이 외에도 에스비에르, 라네르스, 콜링, 호르센스, 바일레, 로스킬레 등이 각 지역의 중요한 도시로 기능하고 있다.
7. 대외 관계

덴마크는 국제 사회에서 적극적인 역할을 수행하며, 유럽 연합(EU), 북대서양 조약 기구(NATO), 국제 연합(UN), 북유럽 이사회 등 주요 국제기구의 회원국으로서 다자주의 외교를 펼치고 있다. 전통적으로 인권, 민주주의, 법치주의 등 보편적 가치를 중시하며, 국제 평화 유지와 개발 협력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한다. 특히 환경 문제와 기후 변화 대응에 있어 선도적인 역할을 하고자 노력한다. 그린란드와 페로 제도의 자치령은 외교 문제에 있어 덴마크 본토와 긴밀히 협력하면서도 독자적인 목소리를 내기도 한다.
7.1. 유럽 연합과의 관계
덴마크는 1973년 유럽 경제 공동체(EEC, 현 유럽 연합)에 가입했다. 이는 경제적 이익과 안보 협력 강화를 주요 배경으로 이루어졌다. 회원국으로서 덴마크는 EU의 정책 결정 과정에 참여하며, 단일 시장의 혜택을 누리고 있다. 그러나 덴마크는 EU 통합에 대해 일부 유보적인 입장을 취하며, 마스트리흐트 조약과 관련하여 특정 분야에서 옵트아웃(opt-out, 적용 예외)을 확보했다. 대표적으로 유로화를 채택하지 않고 자국 통화인 덴마크 크로네를 유지하고 있으며, 사법 및 내무, 국방 정책 분야에서도 일부 EU 공동 정책에 참여하지 않는다. 이러한 특수한 입장은 국민 투표를 통해 결정되었으며, 덴마크 국민들의 EU에 대한 신중한 태도를 반영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덴마크는 EU의 핵심 회원국으로서 경제, 환경, 안보 등 다양한 분야에서 협력하고 있으며, 주기적으로 EU 이사회 의장국을 수임하며 리더십을 발휘하기도 한다.
7.2. 북유럽 국가들과의 관계
덴마크는 스웨덴, 노르웨이, 핀란드, 아이슬란드 등 다른 북유럽 국가들과 역사적, 문화적, 언어적으로 깊은 유대감을 공유하며 매우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이러한 협력의 중심에는 1952년에 설립된 북유럽 이사회와 1971년에 설립된 북유럽 각료이사회가 있다. 이들 기구를 통해 북유럽 국가들은 정치, 경제, 사회, 문화, 환경, 법률 등 광범위한 분야에서 정책을 조율하고 공동 프로젝트를 추진한다. 대표적인 예로, 북유럽 시민들은 다른 북유럽 국가에서 자유롭게 거주하고 일할 수 있으며, 사회 보장 제도의 상호 인정, 교육 및 연구 협력 등이 활발하게 이루어진다. 덴마크는 북유럽 협력의 적극적인 참여국으로서, 역내 공동 번영과 안정, 그리고 국제 사회에서 북유럽의 공동 이익을 증진하는 데 기여하고 있다.
7.3. 대한민국과의 관계
덴마크와 대한민국은 1959년 3월 11일 공식적으로 외교 관계를 수립했다. 6.25 전쟁 당시 덴마크는 의료지원선 MS 유틀란디아호를 파견하여 대한민국을 지원했으며, 이는 양국 우호 관계의 중요한 상징으로 남아있다. 전후에는 국립중앙의료원 설립에 기여하는 등 한국의 보건 의료 발전에 도움을 주었다. 현재 양국은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다양한 분야에서 우호 협력 관계를 발전시켜 나가고 있다.
경제적으로는 교역과 투자가 꾸준히 증가하고 있으며, 특히 덴마크의 강점 분야인 신재생에너지(풍력 등), 해운, 디자인, 낙농업 등에서 협력이 활발하다. 2011년에는 양국 간 '녹색성장동맹'을 체결하여 환경 및 지속가능발전 분야에서의 협력을 강화하기로 합의했다. 문화적으로는 디자인, 영화, 음악 등 다양한 분야에서 교류가 이루어지고 있으며, 양국 국민 간의 이해를 높이기 위한 노력이 지속되고 있다. 덴마크에는 코펜하겐에 대한민국 대사관이, 대한민국에는 서울에 주한 덴마크 대사관이 각각 설치되어 양국 관계 발전을 위한 외교 활동을 펼치고 있다.
8. 군사
덴마크 국방군(Forsvaret포르스바레트덴마크어)은 덴마크 육군, 덴마크 왕립 해군, 덴마크 왕립 공군, 그리고 덴마크 향토방위군으로 구성된다. 국방부 장관이 국방군의 총사령관이며, 해외에서는 주요 외교관 역할을 수행한다. 평시 국방부에는 약 33,000명이 근무한다. 주요 군 조직에는 약 27,000명이 소속되어 있으며, 이 중 육군에 15,460명, 해군에 5,300명, 공군에 6,050명(모두 징집병 포함)이 복무한다. 덴마크 긴급 관리청에는 2,000명(징집병 포함)이 근무하며, 약 4,000명은 덴마크 국방 사령부 및 덴마크 국방 정보국과 같은 특정 군종에 속하지 않는 부서에서 복무한다. 또한 약 44,500명이 덴마크 향토방위군에서 자원 봉사자로 활동한다.
덴마크는 오랜 기간 국제 평화유지활동을 지원해왔으나, 1999년 나토의 유고슬라비아 공습과 2001년 아프가니스탄 전쟁 이후, 여러 전쟁과 침공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며 교전 국가로서의 새로운 역할을 맡게 되었다. 이러한 비교적 새로운 상황은 일부 내부 비판을 불러일으켰으나, 덴마크 국민들은 특히 아프가니스탄 전쟁에 대해 대체로 매우 지지적인 태도를 보였다. 덴마크 국방군은 NATO SNMCMG1에 대한 상시 기여를 제외하고 약 1,400명의 병력을 국제 임무에 파견하고 있다. 덴마크군은 구 유고슬라비아에서 유엔 보호군(UNPROFOR), IFOR, 그리고 현재 SFOR에 깊이 관여했다. 2003년에서 2007년 사이에는 약 450명의 덴마크 군인이 이라크에 주둔했다. 덴마크는 또한 아프가니스탄에서의 미국 작전을 강력히 지원했으며, ISAF에 재정적, 물질적으로 기여했다. 이러한 활동들은 종종 당국에 의해 덴마크의 새로운 "적극적 외교 정책"의 일부로 묘사된다.
9. 경제
덴마크는 선진국형 혼합 경제 체제를 가지고 있으며, 세계은행에 의해 고소득 경제 국가로 분류된다. 2017년 기준으로 1인당 국민 총소득(PPP)은 세계 16위, 명목 GNI는 세계 10위를 기록했다. 덴마크 경제는 경제자유지수와 세계 경제자유지수에서 가장 자유로운 경제 중 하나로 평가받는다. 세계 경제 포럼의 2018년 세계 경쟁력 보고서에 따르면, 덴마크는 세계에서 10번째, 유럽에서 6번째로 경쟁력 있는 경제를 보유하고 있다. 주요 산업으로는 풍력 터빈, 제약, 의료 장비, 기계 및 운송 장비, 식품 가공, 건설업 등이 있다. 총 수출액의 약 60%는 상품 수출에서, 나머지 40%는 주로 해상 운송을 포함한 서비스 수출에서 발생한다.
9.1. 경제 구조와 정책

덴마크는 혼합 경제 모델을 채택하고 있으며, 이는 자유 시장 자본주의와 포괄적인 사회 복지 제도, 강력한 노동자 보호를 결합한 북유럽 모델을 특징으로 한다. 높은 국민 소득 수준을 유지하고 있으며, 1인당 GDP는 세계 최상위권에 속한다. 정부는 안정적인 거시 경제 운영을 중시하며, 낮은 실업률과 물가상승률을 목표로 한다. 주요 거시 경제 정책으로는 유연하면서도 안정성을 중시하는 노동 시장 정책(유연안정성), 높은 수준의 조세를 통한 공공 서비스 재원 확보, 그리고 균형 잡힌 재정 정책 등이 있다. 덴마크는 전통적으로 자유 무역을 지지하며, 유럽 연합 단일 시장의 일원으로서 경제 활동을 영위한다. 유로화를 사용하지 않고 자국 통화인 덴마크 크로네를 유지하고 있으나, 유럽 환율 메커니즘(ERM II)을 통해 유로화에 안정적으로 페그되어 있다. 경제적 성과는 꾸준하며, 삶의 질, 사회적 평등, 환경 지속가능성 등 다양한 지표에서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9.2. 주요 산업

덴마크는 다양한 분야에서 국제 경쟁력을 갖춘 주요 산업을 보유하고 있다.
- 풍력 에너지: 덴마크는 세계적인 풍력 발전 기술 선도국으로, 베스타스와 같은 주요 풍력 터빈 제조업체를 보유하고 있으며, 국내 전력 생산에서 풍력 발전이 차지하는 비중이 매우 높다. 해상풍력발전 분야에서도 기술력과 경험을 축적하고 있다.
- 제약 및 생명 과학: 노보 노디스크와 같은 글로벌 제약 회사를 중심으로 강력한 제약 산업을 구축하고 있으며, 특히 당뇨병 치료제 분야에서 세계적인 명성을 얻고 있다. 생명 과학 연구 개발 또한 활발하며, 메디콘 밸리는 스웨덴과의 협력을 통해 유럽의 주요 생명 과학 클러스터로 성장했다.
- 해운업: A.P. 몰러-머스크와 같은 세계 최대의 컨테이너 선사를 보유한 해운 강국이다. 지리적 이점을 활용하여 국제 무역과 물류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 농축산업: 효율적인 농업 시스템을 바탕으로 고품질의 농축산물을 생산하며, 특히 돼지고기와 유제품(치즈, 버터 등)은 주요 수출품이다. 높은 수준의 식품 안전 기준과 동물 복지에도 신경 쓰고 있다.
- 가구 및 디자인: 덴마크 디자인은 기능성과 미니멀리즘을 특징으로 하며, 가구, 조명, 생활용품 등에서 세계적으로 인정받고 있다. 아르네 야콥센, 한스 웨그너 등 유명 디자이너를 배출했으며, 관련 산업이 꾸준히 발전하고 있다.
- 기타 산업: 이 외에도 식품 가공, 기계 및 장비, 정보 통신 기술(ICT), 해양 기술, 환경 기술 등 다양한 분야에서 경쟁력 있는 기업들이 활동하고 있다.
9.3. 노동 시장

덴마크의 노동 시장은 '유연안정성(Flexicurity)' 모델로 잘 알려져 있다. 이 모델은 세 가지 핵심 요소로 구성된다. 첫째, 유연성(Flexibility)으로, 고용주가 비교적 쉽게 노동자를 고용하고 해고할 수 있도록 하여 기업이 시장 변화에 신속하게 대응할 수 있게 한다. 둘째, 안정성(Security)으로, 실업자들이 재정적 어려움 없이 새로운 일자리를 찾을 수 있도록 높은 수준의 실업 급여와 적극적인 노동 시장 정책(재교육, 직업 알선 등)을 제공한다. 셋째, 적극적 노동 시장 정책(Active Labor Market Policies)으로, 실업자들이 가능한 한 빨리 노동 시장에 복귀할 수 있도록 맞춤형 지원을 제공한다.
덴마크는 높은 고용률을 유지하고 있으며, 실업률은 상대적으로 낮은 수준이다. 노동조합 가입률이 높고, 노사 관계는 전통적으로 협력적이며, 임금 및 근로 조건은 주로 단체 협약을 통해 결정된다. 국제 통화 기금(IMF)에 따르면 덴마크는 세계에서 가장 높은 최저 임금 수준을 가지고 있는데, 이는 법정 최저 임금 제도가 없지만 강력한 노동조합의 힘 덕분이다. 예를 들어, 3F 노동조합과 사용자 단체 호레스타 간의 단체 협약 결과로 맥도날드와 같은 패스트푸드 체인점의 근로자들은 시간당 약 20 USD에 해당하는 임금을 받으며, 이는 미국 동종 업계 근로자 임금의 두 배 이상이고 유급 휴가, 육아 휴직, 연금 제도의 혜택도 누린다. 2015년 노동조합 가입률은 68%였다. 이러한 유연안정성 모델은 덴마크 경제의 경쟁력과 사회적 안정을 동시에 달성하는 데 기여한 것으로 평가받지만, 세계화와 기술 변화에 따른 새로운 도전 과제에도 직면하고 있다.
9.4. 에너지

덴마크는 북해에 상당한 양의 석유와 천연가스 매장량을 보유하고 있으며, 원유 순수출국 중 세계 32위이다. 2009년에는 하루 259,980 배럴의 원유를 생산했다. 덴마크는 오랫동안 풍력 발전 분야의 선두 주자였다. 2015년에는 풍력 터빈이 총 전력 소비량의 42.1%를 공급했다. 2011년 5월 기준으로 덴마크는 국내 총생산(GDP)의 3.1%(약 65억 유로 또는 94억 달러)를 재생 가능 에너지(청정) 기술과 에너지 효율에서 얻었다. 덴마크는 다른 유럽 국가들과 송전선으로 연결되어 있다.
덴마크의 전력 부문은 풍력 발전과 같은 에너지원을 국가 전력망에 통합했다. 덴마크는 현재 운송 부문에서 지능형 배터리 시스템(V2G)과 플러그인 자동차에 중점을 두고 있다. 덴마크는 국제 재생 에너지 기구(IRENA) 회원국이다.
2018년 덴마크는 약 4억 6천만 GJ의 에너지를 수출했다.
2023년 덴마크 정부는 에너지 거래상에 대한 세금 인상 방안에 집중했다.
9.5. 교통


덴마크 내 지역 간 도로 및 철도 연결망 구축에 상당한 투자가 이루어졌으며, 특히 셸란섬과 퓐섬을 연결하는 스토레벨트 대교가 대표적이다. 현재 율란 반도 북부의 프레데릭스하운에서 셸란섬 동부의 코펜하겐까지 고속도로를 벗어나지 않고 운전할 수 있다. 주요 철도 운영사는 여객 서비스의 경우 DSB, 화물 열차의 경우 DB 카고이다. 철로 유지는 반에단마르크가 담당한다. 북해와 발트해는 다양한 국제 페리 노선으로 연결되어 있다. 덴마크와 독일을 두 번째로 연결하는 페마른벨트 고정 연결로 건설은 2021년에 시작되었다. 코펜하겐에는 고속 대중교통 시스템인 지하철과 광범위한 전철화된 교외 철도망인 S-트레인이 있다. 4대 도시인 코펜하겐, 오르후스, 오덴세, 올보르에는 2020년경부터 경전철 시스템이 운영될 계획이다.
덴마크에서의 자전거 타기는 특히 젊은층과 도시 거주자들에게 매우 일반적인 교통수단이다. 1.20 만 km가 넘는 자전거 도로망과 약 7000 km의 분리된 전용 자전거 도로 및 차선을 갖춘 덴마크는 견고한 자전거 인프라를 보유하고 있다.
개인 차량은 점점 더 많이 교통수단으로 이용되고 있다. 높은 등록세(150%), 부가가치세(25%), 그리고 세계에서 가장 높은 소득세율 때문에 새 차는 매우 비싸다. 이 세금의 목적은 자동차 소유를 억제하는 것이다.
2007년 정부는 연비가 높은 차량에 대한 세금을 약간 감면하여 환경 친화적인 자동차를 장려하려는 시도를 했다. 그러나 이는 거의 효과가 없었고, 2008년 덴마크는 연비가 낮은 구형 자동차 수입이 증가했는데, 이는 구형 자동차의 비용(세금 포함)이 많은 덴마크인의 예산 범위 내에 있기 때문이다.
2011년 기준 평균 자동차 연식은 9.2년이다.
노르웨이, 스웨덴과 함께 덴마크는 스칸디나비아 항공 국영 항공사의 일부이다. 코펜하겐 공항은 스칸디나비아에서 가장 승객이 많은 공항으로, 2014년에 2,500만 명 이상의 승객을 처리했다. 기타 주목할 만한 공항으로는 빌룬 공항, 올보르 공항, 오르후스 공항이 있다.
9.6. 관광
덴마크는 풍부한 역사 유적, 아름다운 자연경관, 독특한 문화로 매력적인 관광 목적지이다. 수도 코펜하겐은 뉘하운의 다채로운 건물, 인어공주 동상, 티볼리 공원, 아말리엔보르 궁전 등 상징적인 명소로 유명하다.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의 고향인 오덴세는 그의 발자취를 따라 동화 같은 분위기를 느낄 수 있는 곳이다. 바이킹 시대의 유적지인 옐링 스톤과 로스킬레 대성당은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되어 역사적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덴마크의 해안선은 길고 아름다운 해변을 자랑하며, 여름철에는 해수욕과 다양한 해양 스포츠를 즐기려는 관광객들로 붐빈다. 스카겐 지역의 독특한 빛과 풍경은 많은 예술가에게 영감을 주었으며, 오늘날에도 인기 있는 휴양지이다. 자전거 도로망이 잘 발달되어 있어 자전거를 이용한 국토 여행도 인기가 높다. 또한, 레고랜드 빌룬은 전 세계 어린이와 가족 단위 관광객들에게 사랑받는 테마파크이다.
덴마크 관광 산업은 경제에 중요한 기여를 하고 있으며, 정부는 지속 가능한 관광 발전을 위한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최근에는 음식 문화를 통한 관광객 유치 노력도 활발하며, 특히 뉴 노르딕 퀴진은 세계 미식가들의 주목을 받고 있다.
10. 사회
덴마크 사회는 높은 수준의 삶의 질, 포괄적인 사회 복지 제도, 그리고 강한 공동체 의식을 특징으로 한다. 인구 구성은 비교적 동질적이었으나 최근 이민 증가로 다문화 사회로 변화하고 있다. 공용어는 덴마크어이며, 영어 구사 능력이 전반적으로 높다. 덴마크 국교회(복음주의 루터교)가 국교이지만 종교의 자유가 보장되며 세속화 경향도 나타난다. 교육은 무상 의무 교육을 포함하여 높은 수준을 자랑하며, 평생 학습 시스템도 잘 갖추어져 있다. 공공 의료 서비스와 보편적 사회 복지 제도는 국민들의 안정적인 삶을 뒷받침한다. 인권 존중과 양성평등 수준이 높으며, 언론의 자유 또한 잘 보장되어 있다.
10.1. 인구
2020년 4월 기준, 덴마크 통계청에 등록된 덴마크의 인구는 582만 5천 명이다. 덴마크는 세계에서 가장 고령화된 인구 구조를 가진 국가 중 하나로, 평균 연령은 41.9세이며 여성 1명당 남성은 0.97명이다. 낮은 출산율에도 불구하고 순이민과 기대수명 증가로 인해 인구는 연평균 0.59%의 성장률을 보이고 있다. 세계 행복 보고서는 덴마크 인구를 세계에서 가장 행복한 인구로 자주 평가한다. 이는 높은 평가를 받는 교육 및 의료 시스템, 그리고 낮은 수준의 소득 불평등 덕분으로 여겨진다. 덴마크 국민들은 사회 복지에 대한 책임감을 느끼며, 세계 최고 수준의 세율(소득의 절반에 달할 수 있음)을 부담하지만 대부분의 의료 서비스와 대학 교육비를 무상으로 제공받고 학생들은 보조금을 받으며, 보육 시설 지원 및 노인 연금과 돌봄 도우미 제도가 마련되어 있다.
2020년 덴마크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덴마크 인구의 86.1%가 덴마크인 혈통(페로인 및 그린란드인 포함)이며, 이는 부모 중 적어도 한 명이 덴마크 왕국에서 태어나 덴마크 국적을 가진 경우로 정의된다. 나머지 13.89%는 외국 배경을 가진 사람들로, 이민자 또는 최근 이민자의 후손으로 정의된다. 동일한 정의에 따르면, 가장 일반적인 출신 국가는 터키, 폴란드인, 시리아인, 독일인, 이라크인, 루마니아인, 레바논, 파키스탄인,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소말리아인 순이다. 덴마크의 소수 민족으로는 터키인, 폴란드인, 시리아인, 독일인, 이라크인, 루마니아인 및 구 유고슬라비아 출신 사람들이 있다. 그 외 아시아 및 아프리카 인구도 존재한다. 소수의 로마인과 헝가리인이 덴마크에 거주하며, 소규모 유대인 인구도 있다.
덴마크의 민족 구성은 덴마크인이 약 91%를 차지하며, 기타 민족이 약 9%이다.
10.2. 민족 및 이민
덴마크는 역사적으로 비교적 동질적인 국가였으나, 다른 스칸디나비아 국가들과 마찬가지로 최근 제2차 세계 대전 이전까지 순유출 국가에서 순유입 국가로 변화했다. 오늘날 거주 허가는 주로 다른 EU 국가 출신 이민자에게 발급된다(2017년 전체 비스칸디나비아 이민자의 54%). 나머지 거주 허가의 31%는 학업 또는 취업 관련이었고, 4%는 난민 신청자에게, 10%는 가족 부양자로 입국한 사람들에게 발급되었다. 전반적으로 2017년 순이주율은 인구 1,000명당 2.1명으로 영국 및 기타 북유럽 국가보다 다소 낮았다.
덴마크 정부는 특정 사회 주택 지구가 낮은 고용률, 낮은 학교 출석률, 상대적으로 낮은 소득, 낮은 교육 수준 또는 상대적으로 많은 유죄 판결 주민이라는 특정 통계 기준을 충족하는 경우 공식적으로 취약 주거 지역으로 지정한다. 경우에 따라 해당 지역의 대다수는 비서구 이민자와 그 후손으로 구성된다. 수년에 걸쳐 이러한 지역의 통합을 촉진하고 도시 황폐화에 대응하기 위한 여러 정부 계획이 수립되었다. 이러한 주요 계획은 1994년과 2000년 포울 뉘루프 라스무센 정부, 2004년 아네르스 포그 라스무센 1기 내각, 2010년 라르스 뢰케 라스무센 1기 내각, 2013년 헬레 토르닝슈미트 1기 내각, 2018년 라르스 뢰케 라스무센 3기 내각, 2021년 메테 프레데릭센 1기 내각에 의해 제시되었다. 일부 정책은 '법 앞의 평등'을 저해하고 이민자, 특히 무슬림 이민자를 부정적으로 묘사한다는 비판을 받았다.
2010년부터 2021년까지 "게토"라는 용어가 일부 또는 모든 취약 지역을 지칭하기 위해 공식적으로 사용되었다. 그러나 이 용어는 논란의 여지가 있었고 2021년에 삭제되었다. 덴마크는 21세기에 특정 주거 지역을 지칭하기 위해 '게토'라는 단어를 공식적으로 사용한 유일한 국가이다. 2021년부터는 주민 소득 수준, 고용 상태, 교육 수준, 범죄 유죄 판결 및 출신(부모의 지리적 출생지 및 시민권에 기반한 통계 기준)에 따라 4개의 다른 목록이 게시된다. 2023년 현재 덴마크에는 19개의 취약 주거 지역이 있다. 이러한 정책들은 이민자 통합과 사회적 평등 문제에 대한 덴마크 사회의 고민과 논쟁을 반영한다.
10.3. 언어
덴마크어가 덴마크의 사실상 국어이다. 페로어와 그린란드어는 각각 페로 제도와 그린란드의 공식 언어이다. 독일어는 과거 남윌란주(현재 남덴마크 지역의 일부) 지역에서 공인된 소수 언어이며, 이 지역은 베르사유 조약 이전에는 독일 제국의 일부였다. 덴마크어와 페로어는 아이슬란드어, 노르웨이어, 스웨덴어와 함께 인도유럽어족의 북게르만어군(노르드어)에 속한다. 덴마크어, 노르웨이어, 스웨덴어 사이에는 어느 정도 상호 의사소통성이 존재한다. 덴마크어는 서게르만어군에 속하는 독일어와는 상대적으로 거리가 멀다. 그린란드어 또는 "칼랄리숫(Kalaallisut)"은 이누이트어족 언어로, 덴마크어와는 전혀 관련이 없지만 숫자 단어를 포함하여 많은 덴마크어 차용어를 받아들였다.
덴마크인의 대다수(86%)는 영어를 제2언어로 구사하며, 일반적으로 높은 수준의 언어 능력을 갖추고 있다. 독일어는 두 번째로 많이 사용되는 외국어로, 47%가 일상 회화 수준의 능숙도를 보고했다. 2007년 덴마크에는 25,900명의 독일어 모국어 화자가 있었으며, 대부분 남윌란 지역에 거주한다.
10.4. 종교

기독교는 덴마크의 지배적인 종교이다. 2024년 기준으로 덴마크 인구의 71.2%가 덴마크 국교회( Den Danske Folkekirke덴 단스케 폴케키르케덴마크어)의 신자이다. 덴마크 국교회는 공식적으로 설립된 국교이며, 분류상 개신교이고 교리상 루터교이다. 신자 비율은 1970년대 이후 꾸준히 감소하고 있는데, 주로 신생아 세례 감소 때문이다. 인구의 3%만이 정기적으로 일요일 예배에 참석하며, 덴마크인의 19%만이 종교를 삶의 중요한 부분으로 여긴다.
덴마크 헌법은 군주가 루터교 신앙을 가져야 한다고 규정하지만, 나머지 인구는 다른 신앙을 자유롭게 따를 수 있다. 1682년 국가는 국교회와 다른 세 종교 집단인 로마 가톨릭교, 개혁교회, 유대교를 제한적으로 인정했지만, 처음에는 이들 집단으로의 개종이 불법이었다. 1970년대까지 국가는 칙령으로 "종교 단체"를 공식적으로 인정했다. 오늘날 종교 단체는 공식적인 정부 인정 없이도 결혼식 및 기타 의식을 거행할 권리를 부여받을 수 있다. 덴마크의 무슬림은 인구의 약 4.4%를 차지하며, 국내에서 두 번째로 큰 종교 공동체이자 가장 큰 소수 종교이다. 덴마크 외무부는 다른 종교 집단이 각각 인구의 1% 미만, 모두 합쳐 약 2%를 차지한다고 추정한다. 덴마크 인구의 약 20%는 자신을 무신론자로 여긴다.
2010년 유로바로미터 설문 조사에 따르면, 조사에 참여한 덴마크 국민의 28%는 "신이 존재한다고 믿는다", 47%는 "일종의 영이나 생명력이 존재한다고 믿는다", 24%는 "어떤 종류의 영, 신 또는 생명력도 존재하지 않는다고 믿는다"고 답변했다. 2009년에 실시된 또 다른 설문 조사에서는 덴마크인의 25%가 예수를 신의 아들이라고 믿고, 18%는 그를 세상의 구세주라고 믿는 것으로 나타났다.
2024년 프리덤 하우스의 세계 자유 보고서는 덴마크의 종교의 자유를 4점 만점에 4점으로 평가했다.
10.5. 교육

덴마크의 모든 교육 프로그램은 교육부에 의해 규제되며 지방 자치 단체에서 관리한다. 폴케스콜레(Folkeskole)는 초등 교육과 전기 중등 교육을 포함하는 의무 교육 전 기간을 포괄한다. 대부분의 아동은 6세부터 16세까지 10년 동안 폴케스콜레에 다닌다. 최종 시험은 없지만, 학생들은 9학년(14~15세)을 마칠 때 시험을 치를 수 있다. 추가 교육을 받으려면 이 시험이 필수이다. 또는 학생들은 독립 학교( friskole프리스콜레덴마크어)나 사립학교( privatskole프리바트스콜레덴마크어), 예를 들어 기독교 학교나 발도르프 학교에 다닐 수 있다.
의무 교육을 마친 후에는 여러 가지 계속 교육 기회가 있다. 김나지움(STX)은 인문학과 과학의 혼합 교육을 중시하며, 고등 기술 시험 프로그램(HTX)은 과학 과목에 중점을 두고, 고등 상업 시험 프로그램은 경제학 과목을 강조한다. 고등 예비 시험(HF)은 김나지움(STX)과 유사하지만 1년 더 짧다. 특정 직업의 경우, 교육과 견습을 결합하여 특정 직종에서 일할 젊은이들을 훈련시키는 직업 교육이 있다.
정부는 고등학교 졸업률을 95%, 고등 교육 등록 및 졸업률을 60%로 기록하고 있다. 덴마크의 모든 대학교 및 대학(고등 교육) 교육은 무료이며, 과정 등록에 수업료가 없다. 18세 이상의 학생은 국가 교육 지원 보조금(Statens Uddannelsesstøtte, SU)을 신청할 수 있으며, 이는 매월 지급되는 고정 재정 지원을 제공한다. 덴마크 대학은 유학생에게 덴마크에서 국제적으로 인정받는 자격을 취득할 수 있는 다양한 기회를 제공한다. 많은 프로그램이 학사 학위, 석사 학위, 박사 학위 및 학생 교환 프로그램에서 학문적 링구아 프랑카인 영어로 진행될 수 있다.
10.6. 보건과 복지

2015년 기준, 덴마크의 출생 시 기대수명은 80.6세(남성 78.6세, 여성 82.5세)로, 2000년의 76.9세에서 증가했다. 이는 193개국 중 27위이며, 다른 북유럽 국가들보다는 뒤처진다. 남덴마크 대학교 국립 공중보건 연구소는 덴마크인의 기대수명 저하에 기여하는 19가지 주요 위험 요인을 계산했는데, 여기에는 흡연, 음주, 약물 남용, 신체 활동 부족 등이 포함된다. 비만율은 북미 및 대부분의 다른 유럽 국가보다 낮지만, 많은 과체중 덴마크인으로 인해 의료 시스템에서 연간 162.50 억 DKK의 추가 소비가 발생한다. 2012년 연구에서 덴마크는 국제 암 연구 기금(World Cancer Research Fund International)이 선정한 모든 국가 중 암 발병률이 가장 높았다. 연구자들은 그 이유로 더 나은 보고 시스템뿐만 아니라 과도한 음주, 흡연, 신체 활동 부족과 같은 생활 방식 요인을 제시한다.
덴마크는 보편적 의료보장 시스템을 갖추고 있으며, 세금을 통해 공공 재정을 조달하고 대부분의 서비스는 지방 당국이 직접 운영하는 것이 특징이다. 소득원 중 하나는 국가 의료 기여금(sundhedsbidrag순헤드스비드라그덴마크어)이었으나(2007-11년: 8%; '12년: 7%; '13년: 6%; '14년: 5%; '15년: 4%; '16년: 3%; '17년: 2%; '18년: 1%; '19년: 0%), 2019년 1월부터 소득세로 대체되면서 단계적으로 폐지되었다. 이는 대부분의 의료 서비스 제공이 모든 거주자에게 무료로 제공됨을 의미한다. 또한, 약 5명 중 2명은 물리 치료와 같이 국가에서 완전히 보장하지 않는 서비스를 보장하기 위해 보충적인 민간 보험에 가입하고 있다. 2012년 기준, 덴마크는 GDP의 11.2%를 의료에 지출하며, 이는 2007년의 9.8%(1인당 3512 USD)에서 증가한 수치이다. 이는 덴마크를 OECD 평균 및 다른 북유럽 국가들보다 높은 수준에 위치시킨다.
덴마크는 높은 수준의 보편적 사회 복지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노령 연금, 실업 수당, 아동 수당 등 다양한 현금 급여와 함께, 보육, 노인 돌봄, 장애인 지원 등 광범위한 사회 서비스를 제공한다. 이러한 복지 제도는 국민의 삶의 질을 높이고 사회적 평등을 증진하는 데 기여하며, "요람에서 무덤까지"라는 말로 표현되기도 한다. 재원은 주로 높은 조세 부담을 통해 마련된다.
10.7. 인권
덴마크는 일반적으로 진보적인 국가로 여겨지며, 여성 권리, 소수자 권리, 성소수자 권리를 지원하기 위한 입법 및 정책을 채택해왔다. 덴마크의 인권은 왕국 헌법(Danmarks Riges Grundlov)에 의해 보호되며, 덴마크 본토, 그린란드, 페로 제도에 동등하게 적용되고 국제 인권 조약의 비준을 통해 보장된다. 덴마크는 유럽 인권 조약 채택과 유럽 인권 재판소(ECHR) 설립 모두에서 중요한 역할을 해왔다. 1987년 왕국 의회(Folketinget)는 국가 인권 기구인 덴마크 인권 센터를 설립했으며, 현재는 덴마크 인권 연구소이다.
2009년, 덴마크 왕위 계승법 변경에 대한 국민 투표가 실시되어 성별에 관계없이 장자가 왕위 계승 우선권을 갖는 절대적 장자 상속제가 덴마크 왕위에 부여되었다. 소급 적용되지 않았기 때문에 현재 왕위 계승자는 국왕의 장자가 아닌 장녀이다. 덴마크 헌법 제2조는 "군주제는 남성과 여성에 의해 계승된다"고 명시하고 있다.
이누이트족은 수십 년 동안 유럽에서 온 지배적인 식민주의자들에 의해 차별과 학대의 대상이 되어왔으며, 이들 국가는 이누이트 땅에 대한 소유권을 주장했다. 이누이트족은 이누이트 단일 지역의 단일 공동체였던 적이 없다. 18세기부터 1970년대까지 덴마크 정부(1814년까지 덴마크-노르웨이)는 그린란드의 원주민인 그린란드 이누이트족을 동화시키려 했으며, 그들이 다수 언어, 문화, 종교를 채택하도록 장려했다. 덴마크는 그린란드 공동체로부터 덴마크화(1950년대와 1960년대) 정책과 국가 원주민에 대한 차별에 대해 큰 비판을 받아왔다. 비이누이트 노동자에게 현지인보다 높은 임금을 지급하고, 전체 가족을 전통적인 땅에서 정착지로 이전시키며, 자녀를 부모와 분리하여 덴마크로 학교에 보내는 등의 비판적인 대우가 자행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덴마크는 1996년 유엔이 권고한 원주민에 관한 ILO 협약 169호를 비준하여 인정했다.
덴마크는 1989년 등록 동반자 관계 형태로 동성 결합을 법적으로 인정한 세계 최초의 국가였다. 2012년 6월 7일, 이 법은 2012년 6월 15일에 발효된 새로운 동성 결혼법으로 대체되었다. 그린란드와 페로 제도는 각각 2016년 4월과 2017년 7월에 동성 결혼을 합법화했다. 2016년 1월, 덴마크 의회는 성전환자 정체성을 정신 건강 상태로 분류하는 것을 막는 결의안을 시행했다. 그렇게 함으로써 덴마크는 2018년 6월까지 성전환자 정체성을 정신 건강 문제로 분류했던 세계보건기구(WHO) 기준에 반하는 유럽 최초의 국가가 되었다.
2024년 프리덤 하우스의 세계 자유 보고서는 덴마크를 100점 만점에 97점으로 "자유로운" 국가로 평가했다.
10.8. 언론
덴마크의 대중 매체는 1540년대 손으로 쓴 전단지가 뉴스를 보도하면서 시작되었다. 1666년 덴마크 저널리즘의 아버지인 안데르스 보르딩이 국영 신문을 창간했다. 1834년 최초의 자유주의적 사실 보도 신문이 등장했고, 1849년 헌법은 지속적인 언론의 자유를 확립했다.
현대 덴마크의 대중 매체와 뉴스 프로그램은 소수의 대기업이 지배하고 있다. 인쇄 매체에서는 JP/폴리티켄스 후스와 베를링스케 미디어가 주요 신문인 폴리티켄, 베를링스케 티덴데, 윌란스 포스텐과 주요 타블로이드 신문인 B.T., 엑스트라 블라데트를 장악하고 있다. 텔레비전 방송에서는 공영 방송사인 DR과 TV 2가 높은 시청률을 차지하고 있다. 특히 DR은 외국 방송사에 자주 판매되는 고품질 TV 시리즈로 유명하며, 종종 시세 바베트 크누센이나 소피에 그로뵐과 같은 세계적으로 유명한 여배우가 주연을 맡는다. 라디오 방송에서는 DR이 거의 독점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으며, 현재 전국적으로 이용 가능한 모든 FM 채널에서 방송하며 지역 방송국과만 경쟁하고 있다.
11. 과학 기술

덴마크는 과학 기술 발명 및 참여의 오랜 전통을 가지고 있으며, 과학 혁명 초기부터 국제적으로 관여해왔다. 현재 덴마크는 CERN, ITER, ESA, ISS, E-ELT 등 다수의 저명한 국제 과학 기술 프로젝트에 참여하고 있다. 덴마크는 2024년 세계 혁신 지수에서 10위를 차지했으며, 이는 2020년 6위, 2019년 7위에서 하락한 수치이다.
20세기에 덴마크인들은 기술 분야의 여러 부문에서 혁신을 이루었다. 덴마크 기업들은 세계에서 가장 크고 에너지 효율적인 컨테이너선인 머스크 트리플 E급 설계로 해운 산업에 영향력을 행사했으며, 덴마크 엔지니어들은 MAN 디젤 엔진 설계에 기여했다. 소프트웨어 및 전자 분야에서 덴마크는 노르딕 이동 전화 설계 및 제조에 기여했으며, 현재는 존재하지 않는 덴마크 회사 단콜은 GSM 휴대폰을 개발한 최초의 기업 중 하나였다.
생명 과학은 광범위한 연구 개발 활동이 이루어지는 핵심 분야이다. 덴마크 엔지니어들은 노보 노디스크의 당뇨병 관리 장비 및 의약품 제공 분야에서 세계를 선도하고 있으며, 2000년부터 덴마크 생명공학 기업 노보자임스는 1세대 전분 기반 바이오에탄올용 효소 시장의 세계 선두 주자로서 폐기물을 셀룰로오스 에탄올로 전환하는 효소 개발을 개척해왔다. 셸란섬과 스웨덴 사이의 외레순 지역에 걸쳐 있는 메디콘 밸리는 유럽 최대의 생명 과학 클러스터 중 하나이다.
덴마크 출신 컴퓨터 과학자 및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들은 세계 주요 프로그래밍 언어 개발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해왔다. 아네르스 하일스베르 (터보 파스칼, 델파이, C#), 라스무스 러도프 (PHP), 비야네 스트롭스트룹 (C++), 데이비드 하이네마이어 한손 (루비 온 레일즈), 라스 바크(V8, 자바 VM, 다트) 등이 대표적이다. 물리학자 레네 베스테르고르 하우는 빛을 멈추게 한 최초의 인물로, 양자 컴퓨팅, 나노스케일 공학, 선형 광학 발전에 기여했다.
12. 문화
덴마크는 스칸디나비아 이웃 국가인 스웨덴, 노르웨이와 강력한 문화적, 역사적 유대감을 공유한다. 역사적으로 세계에서 가장 사회적으로 진보적인 문화 중 하나였다. 1969년 덴마크는 포르노그래피를 합법화한 최초의 국가였으며, 2012년에는 1989년에 처음 도입했던 "등록 동반자 관계" 법을 성중립적 결혼으로 대체하고 동성 결혼이 국교회에서 거행될 수 있도록 허용했다. 겸손과 사회 평등은 덴마크 문화의 중요한 부분이다. 63개국의 공감 점수를 비교한 2016년 연구에서 덴마크는 조사 대상 유럽 국가 중 가장 높은 공감 능력을 보이며 세계 4위를 차지했다.
티코 브라헤의 천문학적 발견, 루드비히 A. 콜딩의 간과되었던 에너지 보존 법칙 명료화, 닐스 보어의 원자 물리학에 대한 기여는 덴마크 과학 성과의 범위를 보여준다.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의 동화, 쇠렌 키르케고르의 철학적 에세이, 카렌 블릭센(필명 아이작 디네센)의 단편 소설, 루드비 홀베르의 희곡, 피에트 하인의 밀도 높고 경구적인 시는 카를 닐센의 교향곡과 마찬가지로 국제적인 인정을 받았다. 1990년대 중반부터 덴마크 영화는 국제적인 주목을 받았으며, 특히 라스 폰 트리에와 토마스 빈터베르의 영화와 같이 도그마 95와 관련된 영화들이 주목받았다.
덴마크 문화의 주요 특징은 율(덴마크 크리스마스)이다. 이 휴일은 12월 내내 다양한 전통과 함께 기념되며, 대림절 시작이나 12월 1일에 시작하여 크리스마스 이브 저녁 식사로 절정을 이룬다.
크리스티안스펠트, 모라비아 교회 정착지, 옐링 고분군(룬석과 교회), 크론보르 성, 로스킬레 대성당, 북셸란 파 포스 수렵 경관 등 7개의 유적지가 유네스코 북유럽 세계 문화유산 목록에 등재되어 있으며, 일룰리사트 얼음 피오르, 아시비수이트-니피사트, 쿠야타 등 3곳은 북아메리카 세계 문화유산 목록에 덴마크 왕국 내 유산으로 등재되어 있다.

12.1. 문학 및 철학


알려진 최초의 덴마크 문학은 10세기와 11세기의 신화와 민담이다. 일반적으로 최초의 덴마크 작가로 여겨지는 삭소 그라마티쿠스는 덴마크 역사인 《게스타 다노룸》(Gesta Danorum게스타 다노룸라틴어)를 집필했다. 중세의 다른 덴마크 문학에 대해서는 거의 알려진 바가 없다. 계몽주의 시대에는 루드비 홀베르가 등장했으며, 그의 희극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공연되고 있다.
19세기 후반, 문학은 사회에 영향을 미치는 수단으로 여겨졌다. 근대적 전환으로 알려진 이 운동은 게오르그 브란데스,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헨리크 폰토피단, 그리고 J. P. 야콥센이 주도했다. 낭만주의는 그의 이야기와 동화로 유명한 저명한 작가이자 시인인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에게 영향을 미쳤다. 예를 들어 미운 오리 새끼, 인어 공주, 눈의 여왕 등이 있다. 최근 역사에서 요하네스 빌헬름 옌센 또한 노벨 문학상을 수상했다. 카렌 블릭센은 그녀의 소설과 단편 소설로 유명하다. 다른 중요한 덴마크 작가로는 헤르만 방, 구스타우 비트, 빌리암 헤이네센, 마르틴 안데르센 넥쇠, 피에트 하인, 한스 셰르피, 클라우스 리프비에르, 단 투렐, 토베 디틀레우센, 잉게르 크리스텐센, 페테르 회가 있다.
덴마크 철학은 서양 철학의 일부로서 오랜 전통을 가지고 있다. 아마도 가장 영향력 있는 덴마크 철학자는 기독교 실존주의의 창시자인 쇠렌 키르케고르였을 것이다. 키르케고르에게는 몇몇 덴마크 추종자가 있었는데, 그중에는 말년에 실증주의 운동에 합류한 하랄 회프딩도 포함된다. 주목할 만한 또 다른 덴마크 철학자로는 그룬트비가 있으며, 그의 철학은 덴마크에서 새로운 형태의 비공격적인 민족주의를 탄생시켰고, 신학 및 역사 저술로도 영향력이 있다.
12.2. 예술
덴마크의 예술은 회화, 조각, 음악, 영화 등 다양한 분야에 걸쳐 풍부한 역사와 전통을 가지고 있다. 초기에는 교회 프레스코화가 주를 이루었으며, 19세기 덴마크 황금기에는 크리스토페르 빌헬름 에케르스베르를 중심으로 사실주의와 낭만주의가 결합된 독자적인 화풍이 발전했다. 스카겐 화가들은 자연주의와 사실주의를 추구하며 북유럽 예술에 큰 영향을 미쳤다. 현대에 이르러서는 다양한 국제 사조의 영향을 받으면서도 덴마크 특유의 감성을 담은 작품들이 창작되고 있으며, 코브라 그룹이나 플럭서스와 같은 전위적인 예술 운동에도 참여했다. 조각 분야에서는 베르텔 토르발센이 신고전주의 양식으로 국제적인 명성을 얻었으며, 음악에서는 카를 닐센이 국민 작곡가로 추앙받는다. 영화 분야에서는 도그마 95 운동을 통해 세계 영화계에 새로운 바람을 일으켰고, 라스 폰 트리에와 같은 감독들이 국제적으로 인정받고 있다.
12.2.1. 음악
덴마크와 그 외곽의 여러 섬들은 광범위한 민속 전통을 가지고 있다. 덴마크의 가장 유명한 클래식 작곡가는 카를 닐센(1865년-1931년)으로, 특히 그의 6개의 교향곡과 목관 오중주로 기억된다. 덴마크 왕립 발레단은 덴마크 안무가 아우구스트 부르농빌의 작품을 전문으로 한다. 덴마크 왕립 관현악단은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오케스트라 중 하나이다. 덴마크인들은 재즈 음악가로서 두각을 나타냈으며, 코펜하겐 재즈 페스티벌은 국제적인 인정을 받았다.
현대 팝과 록 음악계에서는 아쿠아, 알파비트, D-A-D, 킹 다이아몬드, 캐시미르, 루카스 그레이엄, 뮤, 마이클 런스 투 록, 뫼, 오 랜드, 더 레이보네츠, 볼비트 등 국제적으로 유명한 몇몇 이름들을 배출했다. 밴드 메탈리카의 드러머인 라스 울리히는 로큰롤 명예의 전당에 헌액된 최초의 덴마크 음악가가 되었다.
코펜하겐 인근의 로스킬레 페스티벌은 1971년부터 북유럽에서 가장 큰 음악 축제이며, 덴마크에는 오르후스 국제 재즈 페스티벌, 스카네르보르 페스티벌, 올보르의 블루 페스티벌, 에스비에르 국제 실내악 페스티벌, 스카겐 페스티벌 등 모든 장르의 수많은 음악 축제가 정기적으로 열린다.
덴마크는 1957년부터 유로비전 송 콘테스트에 참가해왔으며, 1963년, 2000년, 2013년에 세 차례 우승했다.
12.2.2. 영화

덴마크 영화는 1897년으로 거슬러 올라가며, 1980년대 이후 주로 국영 덴마크 영화 연구소의 자금 지원 덕분에 꾸준한 작품 제작을 유지해왔다. 덴마크 영화에는 국제적으로 중요한 세 가지 큰 흐름이 있었다: 무성 영화 시대의 에로틱 멜로드라마, 1960년대와 1970년대의 점점 더 노골적인 성애 영화, 그리고 마지막으로 1990년대 후반의 도그마 95 운동으로, 감독들은 종종 대규모 스튜디오에 대한 의식적인 반발로 역동적인 효과를 위해 핸드헬드 카메라를 사용했다. 덴마크 영화는 사실주의, 종교 및 도덕적 주제, 성적 솔직함, 기술 혁신으로 주목받아 왔다. 덴마크 영화감독 칼 Th. 드레이어는 초기 영화의 위대한 감독 중 한 명으로 여겨진다.
주목할 만한 다른 덴마크 영화감독으로는 인기 있는 올센 반덴 영화의 창시자인 에리크 발링, 1987년 바베트의 만찬으로 오스카상을 수상한 가브리엘 악셀, 1988년 정복자 펠레로 오스카상, 황금종려상 (Palme d'Or팔름도르프랑스어), 골든 글로브상을 수상한 빌 어거스트가 있다. 현대에는 토마스 빈터베르와 함께 도그마 95 운동을 공동 창시한 라스 폰 트리에와 다수의 상을 수상한 수잔 비에르, 니콜라스 빈딩 레픈 등이 주목할 만한 영화감독이다. 매즈 미켈슨은 니콜라이 코스테르 발다우와 마찬가지로 세계적으로 유명한 덴마크 배우이다.
12.2.3. 미술 및 사진

덴마크 미술은 수세기에 걸쳐 독일과 네덜란드의 경향에 영향을 받았지만, 15세기와 16세기의 교회 프레스코화는 덴마크 토착 화가들의 전형적인 양식으로 그려졌기 때문에 특히 흥미롭다. 이 프레스코화는 덴마크의 여러 오래된 교회에서 볼 수 있다.
19세기 전반에 시작된 덴마크 황금기는 역사 화가 니콜라이 아빌고르에 의해 전 세기 후반에 전형적으로 나타난 새로운 민족주의와 낭만주의 감각에 의해 영감을 받았다. 크리스토페르 빌헬름 에케르스베르는 다작 예술가였을 뿐만 아니라 덴마크 왕립 미술 아카데미에서 가르쳤으며, 그의 제자로는 빌헬름 벤츠, 크리스텐 쾨브케, 마르티누스 뢰르뷔에, 콘스탄틴 한센, 빌헬름 마르스트란 등이 있다.
1871년, 홀게르 드라크만과 카를 마센은 율란 반도 북쪽 끝의 스카겐을 방문하여 스칸디나비아에서 가장 성공적인 예술가 집단 중 하나를 빠르게 형성했으며, 이들은 아카데미가 선호하는 전통적인 접근 방식보다는 자연주의와 사실주의를 전문으로 했다. 미카엘과 그의 아내 아나의 주최로 곧 P.S. 크뢰위에르, 카를 로케르, 라우리츠 툭센이 합류했다. 모두 주변 자연과 지역 주민들을 그리는 데 참여했다. 비슷한 경향이 퓐섬에서는 요하네스 라르센, 프리츠 쉬베르, 페테르 한센을 포함하는 퓐보에르네와 함께 발전했으며, 보른홀름섬에서는 닐스 레르고르, 크레스텐 이베르센, 올루프 회스트를 포함하는 보른홀름 화파와 함께 발전했다.
회화는 덴마크 문화에서 예술적 표현의 두드러진 형태로 계속되어 왔으며, 이 분야의 주요 국제적 흐름에 영감을 주고 영향을 미치기도 했다. 여기에는 인상주의와 표현주의, 추상화, 초현실주의와 같은 모더니즘 양식이 포함된다. 국제 협력과 활동은 거의 항상 덴마크 예술계에 필수적이었지만, 확고한 덴마크 기반을 가진 영향력 있는 예술 집단으로는 데 트레텐(1909년-1912년), 리니엔(1930년대와 1940년대), 코브라(1948년-1951년), 플럭서스(1960년대와 1970년대), 데 웅에 빌데(1980년대), 그리고 최근에는 수퍼플렉스(1993년 설립)가 있다. 다양한 미술 사조를 대표하는 현대의 주목할 만한 덴마크 화가로는 테오도르 필립센(인상주의와 자연주의), 아나 클린트 쇠렌센(표현주의), 프란시스카 클라우센(신즉물주의, 입체주의, 초현실주의 등), 헨리 헤루프(소박주의), 로베르트 야콥센(추상화), 카를 헤닝 페데르센(추상화), 아스게르 요른(상황주의, 추상화), 비외른 빈블라드(아르데코, 오리엔탈리즘), 페르 키르케뷔(신표현주의, 추상화), 페르 아르놀디(팝 아트), 미카엘 크비움(신초현실주의)이 있다.
덴마크 사진은 1839년 사진 예술 초창기부터 강력한 참여와 관심을 바탕으로 발전해왔다. 마스 알스트루프와 게오르그 에밀 한센과 같은 선구자들은 19세기 후반에 급성장하는 직업의 길을 열었다. 오늘날 아스트리드 크루세 옌센과 야코브 아우에 소볼과 같은 덴마크 사진작가들은 전 세계 주요 전시회에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12.3. 건축 및 디자인


덴마크의 건축은 중세에 처음 로마네스크 양식, 그 후 고딕 양식의 교회와 대성당이 전국에 생겨나면서 확고히 자리를 잡았다. 16세기부터 네덜란드와 플랑드르 디자이너들이 덴마크로 초빙되었는데, 처음에는 국가의 요새를 개선하기 위해서였지만 점차 르네상스 양식의 웅장한 왕궁과 궁전을 짓기 위해서였다.
17세기에는 수도와 지방 모두에서 바로크 양식의 인상적인 건물들이 많이 지어졌다. 프랑스의 신고전주의는 건축 양식 정의에 점점 더 많이 참여하게 된 토착 덴마크 건축가들에 의해 서서히 채택되었다. 역사주의의 생산적인 시기는 궁극적으로 19세기 국민낭만주의 양식으로 통합되었다.
20세기는 표현주의를 포함한 새로운 건축 양식을 가져왔는데, 이는 스칸디나비아 벽돌 고딕 전통에 크게 의존한 건축가 페데르 빌헬름 옌센클린트의 디자인에서 가장 잘 예시된다. 또한 북유럽 고전주의는 세기 초반 수십 년 동안 잠시 인기를 누렸다. 1960년대에 이르러 아르네 야콥센과 같은 덴마크 건축가들이 매우 성공적인 기능주의 건축으로 세계 무대에 등장했다. 이는 다시 외른 우촌의 시드니 오페라 하우스와 요한 오토 폰 슈프레켈센의 파리 그랑드 아르슈와 같은 최근의 세계적 걸작으로 발전하여, 비야르케 잉겔스와 같은 다수의 현대 덴마크 디자이너들이 국내외에서 우수성을 인정받는 길을 열었다.
덴마크 디자인은 20세기 중반에 덴마크에서 시작되어 발전한 기능주의적 디자인 및 건축 양식을 설명하는 데 자주 사용되는 용어이다. 덴마크 디자인은 일반적으로 산업 디자인, 가구 및 가정용품에 적용되며, 많은 국제 상을 수상했다. 왕립 도자기 공장은 도자기의 품질로 유명하다. 덴마크 디자인은 또한 뵈르게 모겐센, 핀 율, 한스 웨그너, 아르네 야콥센, 폴 헤닝센, 베르너 팬톤과 같은 세계적으로 유명한 20세기 디자이너 및 건축가와 자주 연관되는 잘 알려진 브랜드이다. 주목할 만한 다른 디자이너로는 산업 디자인 분야의 크리스티안 솔메르 베델, 주방 가구 및 도구 분야의 옌스 크비스트고르, 가구 디자인에 고전적인 접근 방식을 취했던 올레 반셰르 등이 있다.
12.4. 음식


덴마크의 전통 요리는 다른 북유럽 국가 및 북부 독일 요리와 마찬가지로 주로 고기, 생선, 감자로 구성된다. 덴마크 요리는 국가의 농업적 과거, 지리, 길고 추운 겨울 기후에서 비롯되어 계절성이 매우 강하다.
호밀빵 위에 재료를 올려 먹는 오픈 샌드위치인 스뫼르브뢰(smørrebrød)는 덴마크의 대표적인 국민 음식으로 간주될 수 있다. 따뜻한 식사는 전통적으로 프리카델레르(frikadeller, 송아지고기와 돼지고기로 만든 미트볼)나 하케뵈프(hakkebøf, 다진 쇠고기 패티)와 같은 다진 고기 요리, 또는 플레스크스테그(flæskesteg, 껍질째 구운 돼지고기)나 겨자 소스를 곁들인 코크트 토르스크(kogt torsk, 데친 대구)와 같이 더 푸짐한 고기 및 생선 요리로 구성된다. 덴마크는 칼스버그와 투보르 맥주, 그리고 아콰비트와 비터스로 유명하다.
1970년경부터 덴마크 전역의 요리사와 레스토랑들은 주로 프랑스 요리의 영향을 받은 고급 요리를 선보이기 시작했다. 또한 대륙의 관행에서 영감을 받아, 덴마크 요리사들은 최근 고품질 현지 농산물을 기반으로 한 혁신적인 새로운 요리와 일련의 고급 요리인 뉴 노르딕 퀴진을 개발했다. 이러한 발전의 결과로, 덴마크는 현재 상당수의 국제적으로 호평받는 레스토랑을 보유하고 있으며, 그중 몇몇은 미슐랭 별을 받았다. 여기에는 코펜하겐의 제라늄과 노마가 포함된다.
12.5. 스포츠

스포츠는 덴마크에서 인기가 있으며, 시민들은 다양한 스포츠에 참여하고 관람한다. 국민 스포츠는 축구로, 1600개 이상의 클럽에 32만 명 이상의 선수가 소속되어 있다. 덴마크는 1984년부터 2004년까지 6회 연속 유럽 선수권 대회에 출전했으며, 1992년에는 유럽 챔피언이 되었다. 기타 중요한 업적으로는 1995년 컨페더레이션스컵 우승과 1998년 월드컵 8강 진출이 있다.
덴마크 여자 핸드볼 국가대표팀은 1990년대에 큰 성공을 거두었으며, 총 13개의 메달(1994년, 1996년(2회), 1997년, 2000년, 2002년, 2004년 금메달 7개, 1962년, 1993년, 1998년, 2004년 은메달 4개, 1995년, 2013년 동메달 2개)을 획득했다. 남자 대표팀은 총 12개의 메달(2008년, 2012년, 2016년, 2019년 금메달 4개, 1967년, 2011년, 2013년, 2014년 은메달 4개, 2002년, 2004년, 2006년, 2007년 동메달 4개)을 획득했으며, 이는 유럽 핸드볼 선수권 대회 역사상 한 팀이 획득한 최다 메달 기록이다. 2019년 덴마크 남자 핸드볼 국가대표팀은 첫 세계 선수권 대회 우승을 차지했다.
최근 몇 년 동안 덴마크는 강력한 사이클링 국가로 자리매김했으며, 미카엘 라스무센은 2005년과 2006년 투르 드 프랑스에서 산악왕 지위를 획득했다. 기타 인기 있는 스포츠로는 주로 노년층 사이에서 인기 있는 골프, 프로 수준에서 성공을 거두고 있는 테니스, 1951년 국제 관리 기구 FIBA에 가입한 농구, 1950년에 설립된 럭비, 남자 세계 선수권 대회 상위권에 자주 출전하는 아이스하키, 경량급 조정에서 특히 두각을 나타내며 경량급 무타포어에서 6개의 세계 선수권 대회 금메달과 2개의 은메달, 3개의 올림픽 금메달과 2개의 동메달을 획득한 조정, 그리고 배드민턴, 탁구, 체조 등 여러 실내 스포츠가 있으며, 각 종목에서 덴마크는 세계 선수권 대회 및 올림픽 메달을 보유하고 있다.
12.6. 축제 및 공휴일
덴마크는 다양한 전통 축제와 국경일, 공휴일을 통해 그들의 문화와 역사를 기념한다. 가장 중요한 축제 중 하나는 율(Jul)로 알려진 크리스마스이다. 12월 내내 크리스마스 분위기가 이어지며, 강림절 또는 12월 1일부터 다양한 전통 행사와 함께 시작되어 크리스마스 이브 저녁 식사로 절정을 이룬다.
주요 국경일로는 덴마크 제헌절(Grundlovsdag, 6월 5일)이 있으며, 이는 1849년 덴마크 최초의 민주 헌법이 제정된 날을 기념한다. 이 날은 공휴일이기도 하다. 그 외 공휴일로는 새해 첫날(1월 1일), 성목요일, 성금요일, 부활절 월요일, 주님 승천 대축일, 성령 강림 대축일 월요일 등이 있다. 또한, 대기도일(Store Bededag, 부활절 후 넷째 금요일)은 여러 작은 기독교 성일을 하나로 모아 기념하는 독특한 공휴일이었으나, 국방비 증액을 위한 노동시간 연장을 목적으로 2024년부터 폐지될 예정이다. 이러한 축제와 공휴일은 덴마크인들의 공동체 의식을 강화하고 전통을 이어가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날짜 | 한국어 표기 | 현지어 표기 | 비고 |
---|---|---|---|
1월 1일 | 새해 첫날 | Nytårsdag | |
부활절 전 목요일 | 성목요일 | Skærtorsdag | |
부활절 전 금요일 | 성금요일 | Langfredag | |
3월/4월 | 부활절 | Påskedag | |
부활절 다음날 | 이스터 먼데이 | 2. Påskedag | |
부활절 후 넷째 금요일 | 대기도일 (일반 기도일) | Store Bededag | 여러 작은 기독교 성일을 하나로 모은 날. 국방비 증액을 위한 노동 시간 연장으로 2024년부터 공휴일에서 제외됨. |
부활절 40일 후 | 주님 승천 대축일 | Kristi Himmelfartsdag | |
부활절 7주 후 | 오순절 | Pinsedag | 일요일. 덴마크인들은 성령 강림절 이틀을 기념한다. |
부활절 7주 1일 후 | 휘트 먼데이 | 2. Pinsedag | 월요일. 덴마크인들은 성령 강림절 이틀을 기념한다. |
12월 25일 | 크리스마스 첫째 날 | Juledag / 1. juledag | 덴마크인들은 12월 24일 저녁부터 시작하여 크리스마스 3일을 기념한다. |
12월 26일 | 크리스마스 둘째 날 | 2. juledag |
12.7. 세계유산
덴마크에는 역사적, 문화적, 자연적 가치를 인정받아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된 여러 유산이 있다. 본토에는 다음과 같은 유산들이 있다:
- 옐링의 고분, 룬석, 교회 (1994년 등재): 10세기 바이킹 시대 덴마크 왕국의 탄생과 기독교로의 개종을 상징하는 중요한 유적이다.
- 로스킬레 대성당 (1995년 등재): 덴마크 왕실의 주요 매장지이자 스칸디나비아 최초의 고딕 양식 대성당으로, 건축사적으로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 크론보르 성 (2000년 등재): 헬싱외르에 위치하며, 셰익스피어의 희곡 《햄릿》의 배경인 엘시노어 성으로 유명하다. 북유럽 르네상스 건축의 걸작으로 평가받는다.
- 일룰리사트 얼음 피오르 (2004년 등재): 그린란드에 위치한 자연유산으로, 세계에서 가장 활발하게 움직이는 빙하 중 하나인 야콥스하븐 빙하(Sermeq Kujalleq)를 포함한다. (덴마크 왕국 공동체)
- 바덴해 (2009년, 2014년 확장 등재): 독일, 네덜란드와 공유하는 자연유산으로, 독특한 갯벌 생태계를 자랑한다. 덴마크 부분은 2014년에 포함되었다.
- 크리스티안스펠트, 모라비아 교회의 정착촌 (2015년 등재): 18세기에 모라비아 교도들이 건설한 계획도시로, 독특한 도시 계획과 건축 양식을 보존하고 있다.
- 북셸란의 파 포스 사냥 경관 (2015년 등재): 17~18세기 덴마크 왕들이 바로크 양식으로 조성한 사냥용 숲과 도로망으로, 당시의 조경 디자인과 사냥 문화를 보여준다.
- 쿠야타 그린란드: 이누이트와 노르드인의 농경 (2017년 등재): 그린란드 남부에 위치하며, 노르드인과 이누이트족의 농경 및 목축 문화를 보여주는 고고학적 유적지이다. (덴마크 왕국 공동체)
- 아시비수이트 - 니피사트. 해안과 빙하 사이의 이누이트 사냥터 (2018년 등재): 그린란드 서부에 위치하며, 4,200년 이상 지속된 이누이트족의 해양 및 육상 사냥 문화를 보여주는 고고학적 유적과 자연 경관을 포함한다. (덴마크 왕국 공동체)
이러한 세계유산들은 덴마크의 풍부한 역사와 문화를 증명하며, 전 세계 방문객들에게 중요한 교육적, 문화적 가치를 제공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