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말리 공화국은 서아프리카에 위치한 내륙국이다. 아프리카에서 8번째로 큰 나라이며, 북쪽으로 알제리, 동쪽으로 니제르, 남쪽으로 부르키나파소와 코트디부아르, 남서쪽으로 기니, 서쪽으로 세네갈과 모리타니와 국경을 접한다. 국토 면적은 124.02 만 km2이며, 인구는 약 2,329만 명(2024년 추산)이다. 수도이자 최대 도시는 바마코이다.
말리는 13개의 공용어를 지정하고 있으며, 그중 밤바라어가 가장 널리 사용된다. 국토의 북부는 사하라 사막 깊숙이 뻗어 있으며, 대다수 주민이 거주하는 남부 지역은 수단 사바나 지대로 니제르강과 세네갈강이 흐른다. 말리의 경제는 농업과 광업에 크게 의존하며, 주요 천연자원으로는 금(아프리카 3위 생산국)과 소금이 있다.
역사적으로 말리는 가나 제국, 말리 제국, 송가이 제국 등 세 개의 강력한 서아프리카 제국의 일부였으며, 이들 제국은 사하라 횡단 무역을 통제했다. 14세기 말리 제국의 만사 무사 황제는 역사상 가장 부유한 인물 중 한 명으로 알려져 있다. 19세기 말 프랑스의 식민지가 되어 프랑스령 수단의 일부가 되었다. 1960년 세네갈과 함께 말리 연방으로 독립했으나 곧 해체되었고, 말리 공화국이 수립되었다. 오랜 일당제 통치 후 1991년 쿠데타로 새 헌법이 제정되고 다당제 민주주의 국가가 되었다.
2012년 1월, 북부 말리에서 투아레그족 반란을 시작으로 분쟁이 발발하여 아자와드 독립 선언으로 이어졌으나, 이슬람 극단주의 세력의 개입으로 상황이 복잡해졌다. 프랑스의 군사 개입(세르발 작전) 등으로 북부 대부분을 탈환했으나 분쟁은 지속되었다. 2020년대 초, 아시미 고이타가 이끄는 군부가 두 차례의 쿠데타를 일으켜 현재 군정이 통치하고 있다. 이로 인해 민정 이양 지연, 국제 사회와의 관계 변화, 인권 및 민주주의 상황 악화 등의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 말리는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 중 하나이며, 인구의 절반 가량이 국제 빈곤선 이하의 생활을 하고 있다.
2. 국호
말리라는 국명은 과거 이 지역에 존재했던 강력한 제국인 말리 제국에서 유래했다. '말리'라는 단어는 "왕이 사는 곳"을 의미하며 힘을 상징하는 함의를 지닌다. 14세기 마그레브의 여행가 이븐 바투타는 말리 제국의 수도가 말리라고 불렸다고 기록했다.
만딩카족의 한 전승에 따르면, 전설적인 초대 황제 순디아타 케이타는 죽은 후 산카라니강에서 하마로 변신했으며, 이 강 유역에서 "옛 말리"라고 불리는 마을들을 찾을 수 있었다고 한다. 말리 속담 연구에 따르면, 옛 말리에는 "새로운 말리"를 의미하는 말리코마(Malikoma말리코마밤바라어)라는 마을이 있으며, '말리'는 원래 도시의 이름이었을 가능성이 있다.
또 다른 학설은 '말리'가 풀라어로 만데인을 지칭하는 발음에서 유래했다는 것이다. 풀라어에서 치경음 /nd/가 /l/로 바뀌고 끝 모음이 비음화되지 않고 높아지면서 "만덴(Manden만덴만데어)"이 /mali/로 변했다는 주장이다.
프랑스 식민지 시기에는 '프랑스령 수단'(Soudan Français수당 프랑세프랑스어)으로 불렸으나, 1960년 독립하면서 현재의 국명인 말리 공화국으로 변경되었다. 이는 과거 말리 제국의 영광과 정체성을 계승하려는 의지를 반영한 것이다.
3. 역사
말리 지역은 선사 시대부터 인류가 거주했으며, 고대 및 중세에는 강력한 서아프리카 제국들이 흥망성쇠를 거듭했다. 이후 프랑스 식민 통치를 거쳐 독립했으나, 최근에는 쿠데타와 분쟁으로 정치적 불안정을 겪고 있다.
3.1. 식민지 이전 시대

사하라 사막의 암각화는 사하라가 비옥하고 야생동물이 풍부했던 기원전 10,000년경부터 말리 북부 지역에 사람이 거주했음을 시사한다. 초기 도자기는 말리 중부 운주구(Ounjougou운주구프랑스어) 유적지에서 기원전 9,400년경의 것으로 발견되었으며, 이 지역에서 독자적으로 도자기 제작이 발명된 사례로 여겨진다. 농경은 기원전 5000년경에 시작되었고, 철은 기원전 500년경부터 사용되었다.
기원전 제1천년기에는 소닝케족과 관련된 만데계 민족들이 말리 중부의 니제르강 중류를 따라 초기 도시와 마을을 건설했다. 기원전 900년경부터 시작되어 기원전 600년경에 절정에 달했던 디아(Dia)와 기원전 300년경부터 서기 900년까지 지속된 젠네-제노가 대표적이다. 서기 6세기경에는 금, 소금, 노예를 거래하는 수익성 높은 사하라 횡단 무역이 시작되어 서아프리카 대제국들의 부상을 촉진했다.
초기 이슬람 문헌에는 말리에 대한 몇몇 언급이 있다. 알바크리는 1068년 저작에서 "페네(Pene페네아랍어)"와 "말랄(Malal말랄아랍어)"을 언급했고, 이븐 할둔(1397년경)은 바르만다나(Barmandana바르만다나아랍어)로 알려진 초기 통치자의 개종 이야기를 전했으며, 알이드리시의 저작에는 약간의 지리적 세부 사항이 기록되어 있다.
말리는 한때 금, 소금, 기타 귀중품, 그리고 주로 만사 무사(재위 약 1312년~1337년) 통치 기간 동안 노예를 대상으로 한 사하라 횡단 무역을 통제했던 세 개의 유명한 서아프리카 제국의 일부였다. 이 사헬 왕국들은 엄격한 지정학적 경계나 민족적 정체성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이들 제국 중 가장 오래된 것은 소닝케족이 지배했던 가나 제국이었다. 가나 제국은 8세기부터 서아프리카 전역으로 확장되었으나, 1078년 무라비트 왕조에 의해 정복당했다.
1235년 키리나 전투에서 망명 왕자 순디아타 케이타가 이끄는 만딩카족이 승리하면서 소소 제국은 멸망했다.


이후 니제르강 상류에 말리 제국이 형성되었고, 14세기에 세력의 절정에 달했다. 말리 제국 시대에 고대 도시 젠네와 팀북투는 무역과 이슬람 학문의 중심지였다. 말리 제국은 이후 내부의 음모로 인해 쇠퇴했고, 결국 송가이 제국에 의해 대체되었다. 송가이족은 오랫동안 말리 제국의 지배를 받는 서아프리카의 주요 세력이었다.
14세기 말, 송가이는 점차 말리 제국으로부터 독립하여 확장했고, 결국 말리 제국의 동부 전체를 흡수했다. 송가이 제국의 몰락은 주로 주다르 파샤가 지휘한 1591년 모로코의 침공의 결과였다. 송가이 제국의 몰락은 이 지역이 교역의 교차로로서의 역할을 마감했음을 의미했다. 유럽 열강에 의한 해상 교역로 개척 이후, 사하라 횡단 무역로는 중요성을 잃었다. 당시 말리 제국은 풍부한 부를 바탕으로 소금과 금의 상업적 자산을 확장했다.
이 지역 역사상 최악의 기근 중 하나가 18세기에 발생했다. 역사학자 존 일리페에 따르면, "최악의 위기는 1680년대로, 기근이 세네감비아 해안에서 상류 나일강까지 확산되어 '많은 사람이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스스로를 노예로 팔았다'. 특히 1738년~1756년에는 가뭄과 메뚜기로 인해 서아프리카 역사상 가장 큰 식량 위기가 발생하여 팀북투 인구의 절반이 사망한 것으로 보고되었다."
3.2. 프랑스 식민 통치

말리는 19세기 말 아프리카 분할 과정에서 프랑스의 지배하에 들어갔다. 1905년까지 이 지역 대부분은 프랑스령 수단의 일부로서 프랑스의 확고한 통제하에 있었다.
1915년 11월, 현재의 말리와 부르키나파소 지역의 부족들 사이에서 대규모 반프랑스 봉기가 일어났다. 마지막 저항은 1916년 9월에야 진압되었다. 봉기 진압 과정에서 100개 이상의 마을이 프랑스 식민 군대에 의해 파괴되었다.
1958년 11월 24일, 프랑스령 수단(이후 수단 공화국으로 개칭)은 프랑스 공동체 내의 자치 공화국이 되었다. 1959년 1월, 말리와 세네갈은 연합하여 말리 연방을 결성했다.
3.3. 독립
말리 연방은 1960년 6월 20일 프랑스로부터 독립했다. 세네갈은 1960년 8월 연방에서 탈퇴했고, 이로써 수단 공화국은 1960년 9월 22일 독립된 말리 공화국이 되었으며, 이 날은 현재 말리의 독립기념일이다.
모디보 케이타가 초대 대통령으로 선출되었다. 그는 곧 일당제를 확립하고, 동구권과 긴밀한 관계를 맺는 독립적인 아프리카 사회주의 노선을 채택했으며, 경제 자원의 광범위한 국유화를 시행했다. 1960년 말리의 인구는 약 4.1 M명으로 보고되었다. 1968년 11월 19일, 점진적인 경제 쇠퇴에 따라 케이타 정권은 무사 트라오레가 이끄는 무혈 군사 쿠데타로 전복되었으며, 이 날은 현재 해방의 날로 기념된다.
3.4. 모디보 케이타 정권과 사회주의
초대 대통령 모디보 케이타는 집권 후 독립적인 아프리카 사회주의 노선을 채택했다. 그의 정책은 경제 자원의 광범위한 국유화, 일당제 확립, 동구권 국가들과의 긴밀한 관계 수립 등을 특징으로 했다. 케이타 정권은 농업 집단화와 산업 국유화를 통해 경제 발전을 추구했으나, 이러한 정책은 경제적 어려움을 초래하기도 했다. 대외적으로는 비동맹 운동에 적극 참여하며 아프리카의 단결을 주장했다. 그러나 점진적인 경제 쇠퇴와 내부 불만으로 인해 1968년 군사 쿠데타로 실각했다.
3.5. 무사 트라오레 군사 정권

1968년 쿠데타 이후 무사 트라오레가 대통령이 되어 군사 정권을 수립했다. 트라오레 정권은 경제 개혁을 시도했으나, 정치적 혼란과 1968년부터 1974년까지 이어진 파괴적인 사헬 가뭄으로 인해 어려움을 겪었으며, 이 가뭄으로 수천 명이 기근으로 사망했다. 트라오레 정권은 1970년대 후반부터 학생들의 소요와 세 차례의 쿠데타 시도에 직면했다. 트라오레 정권은 1980년대 후반까지 모든 반대 세력을 억압했다.
부패하고 독재적인 무사 트라오레 정권에 대한 반대는 1980년대에 커졌다. 이 기간 동안 국제 통화 기금(IMF)의 요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부과된 엄격한 프로그램들은 국민들의 어려움을 가중시켰고, 반면 정부와 가까운 엘리트들은 부를 축적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는 계속해서 경제 개혁을 시도했지만, 국민들의 불만은 점점 커져갔다. 다당제 민주주의에 대한 요구가 커지자, 트라오레 정권은 1980년대 후반 일부 제한적인 정치적 자유화를 허용했지만, 완전한 민주주의 체제로의 전환은 거부했다.
1990년, 응집력 있는 반대 운동이 나타나기 시작했고, 가뭄 동안 알제리와 리비아로 이주했던 많은 투아레그족이 귀환한 후 북부에서 민족 폭력이 격화되면서 상황은 더욱 복잡해졌다. 1991년 1월 평화적인 학생 시위는 잔혹하게 진압되었고, 지도자와 참가자들이 대량으로 체포되고 고문당했다. 산발적인 폭동과 공공건물 파괴 행위가 뒤따랐지만, 반체제 인사들의 대부분의 행동은 비폭력적으로 유지되었다.
1991년 3월 22일부터 26일까지 도시와 농촌 지역사회에서 대규모 민주화 시위와 전국적인 파업이 벌어졌는데, 이는 "사건들"(les événements레 제베느망프랑스어) 또는 3월 혁명으로 알려지게 되었다. 바마코에서는 대학생들이 조직하고 이후 노동조합원 등이 합류한 대규모 시위에 대응하여 군인들이 비폭력 시위대에게 무차별 총격을 가했다. 총격 이후 잠시 폭동이 일어났다. 바리케이드와 도로 차단이 설치되었고 트라오레는 비상사태를 선포하고 야간 통행금지를 실시했다. 나흘 동안 약 300명이 사망했음에도 불구하고, 비폭력 시위대는 매일 바마코로 돌아와 독재 대통령의 사임과 민주 정책의 시행을 요구했다.
1991년 3월 26일은 군인들과 평화 시위 학생들 간의 충돌이 트라오레의 명령에 따라 수십 명이 학살되는 절정에 이른 날이다. 그와 세 명의 측근은 나중에 그날의 의사 결정에 참여한 혐의로 재판을 받고 사형을 선고받았다. 오늘날 이 날은 비극적인 사건과 희생된 사람들을 기리기 위한 국경일이다. 이 쿠데타는 말리의 1991년 3월 혁명으로 기억된다.
3월 26일까지, 대체로 비폭력적인 시위 군중에게 발포하기를 거부하는 군인들이 늘어나면서 전면적인 소요로 번졌고, 수천 명의 군인들이 무기를 버리고 민주화 운동에 합류했다. 그날 오후, 아마두 투마니 투레 중령은 라디오를 통해 독재 대통령 무사 트라오레를 체포했다고 발표했다.
한편, 말리와 부르키나파소 사이에는 아가셰 지대(Agacher Strip)를 둘러싼 영토 분쟁이 있었다. 이 지역은 천연가스 매장 가능성이 제기되면서 양국 간 긴장이 고조되었고, 1974년과 1985년에 두 차례 무력 충돌이 발생했다. 1985년의 크리스마스 전쟁으로 알려진 두 번째 충돌 이후, 국제사법재판소(ICJ)의 중재로 1986년 아가셰 지대는 양국에 분할되었다.
3.6. 민주화 이행
반대 정당들이 합법화되었고, 과도 정부가 구성되었으며, 시민 및 정치 단체들의 전국 회의가 열려 국민투표로 승인될 새로운 민주 헌법 초안을 작성했다. 1992년, 알파 우마르 코나레는 말리 최초의 민주적 다당제 대통령 선거에서 승리했고, 1997년 헌법상 마지막으로 허용된 두 번째 임기에 재선되었다. 1991년 민주 봉기의 군사적 측면을 이끌었던 퇴역 장군 아마두 투마니 투레는 2002년에 대통령으로 선출되었다. 이 민주주의 기간 동안 말리는 아프리카에서 가장 정치적, 사회적으로 안정된 국가 중 하나로 여겨졌다.
오늘날 말리에서는 최대 20만 명이 주인에게 직접 예속된 현대판 노예제가 지속되고 있다. 2012년 투아레그 반란 당시, 옛 노예들은 취약한 인구 집단이었으며, 일부 노예들이 이전 주인에게 다시 붙잡혔다는 보고도 있었다.
3.7. 21세기 분쟁과 정치 불안
2000년대 이후 말리는 북부 지역의 분리주의 운동, 이슬람 극단주의 세력의 확산, 그리고 연이은 군사 쿠데타로 인해 심각한 정치적 불안정을 겪고 있다. 이러한 상황은 국가 발전을 저해하고 인도주의적 위기를 초래하고 있다.
3.7.1. 말리 북부 분쟁 (2012년~)

2012년 1월, 아자와드 해방국민운동(MNLA)이 이끄는 투아레그 반란이 말리 북부에서 시작되었다. 3월, 군 장교 아마두 사노고는 투레 대통령이 반란을 진압하는 데 실패했다고 비난하며 쿠데타로 정권을 장악했고, 이로 인해 서아프리카 경제 공동체(ECOWAS)로부터 제재와 금수 조치를 받았다. MNLA는 빠르게 북부를 장악하고 아자와드의 독립을 선언했다. 그러나 MNLA가 정부를 물리치는 데 도움을 주었던 안사르딘과 이슬람 마그레브 알카에다(AQIM)를 포함한 이슬람 단체들이 투아레그를 배반하고 북부를 장악하여 말리에 샤리아를 시행하려 했다.
2013년 1월 11일, 프랑스군은 디온쿤다 트라오레 임시 대통령 정부의 요청에 따라 세르발 작전에 개입했다. 1월 30일, 프랑스와 말리군의 협동 작전으로 이슬람 세력의 마지막 남은 거점인 키달을 탈환했다고 주장했으며, 키달은 북부 3개 주도 중 마지막으로 남은 곳이기도 했다. 2월 2일, 프랑스 대통령 프랑수아 올랑드는 최근 탈환한 팀북투에서 디온쿤다 트라오레와 함께 공개석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2013년 8월, 2013년 말리 대통령 선거 결선 투표에서 이브라임 부바카르 케이타가 새로운 말리 대통령으로 선출되었다.
3.7.2. 중부 지역 분쟁
말리 중부 몹티주에서는 2015년 이후 도곤족, 밤바라족과 같은 농경 민족과 목축을 하는 풀라니족 간의 갈등이 격화되었다. 역사적으로 두 집단은 토지와 물 접근권을 두고 다투어 왔으며, 풀라니족이 새로운 지역으로 이동하면서 기후 변화로 인해 이러한 요인들이 더욱 악화되었다. 도곤족과 밤바라족 공동체는 풀라니족에 맞서기 위해 "자위대"를 결성했다. 그들은 풀라니족이 알카에다와 연계된 무장 이슬람주의자들과 협력하고 있다고 비난한다. 일부 풀라니족이 이슬람 단체에 가담했지만, 휴먼 라이츠 워치는 이러한 연관성이 "기회주의적 목적을 위해 다른 행위자들에 의해 과장되고 이용되었다"고 보고했다.
한 말리 고위 군 지휘관은 다음과 같이 덧붙였다:
> "나는 커져가는 폭력에 대해 나의 지휘관들과 모든 측의 마을 족장들과 논의했다. 물론, 이 지역에는 지하디스트들이 있지만, 진짜 문제는 도적 행위, 가축 절도, 보복이다. 사람들은 테러리스트와의 싸움을 구실로 삼아 자신들의 부를 축적하고 있다."
이 분쟁으로 인해 도곤족과 밤바라족 민병대가 창설되고 성장했다. 말리 정부는 말리 북부 분쟁에서 이슬람주의자들과의 전쟁에서 대리인 역할을 한다는 명목으로 이러한 단체들 중 일부를 지원하고 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정부는 이를 부인한다. 이러한 민병대 중 하나는 2016년에 창설된 도곤족 단체 단 나 암바사구이다.

2018년 말리 대통령 선거는 2018년 7월 29일에 치러졌으며, 1차 투표에서 과반수 득표자가 나오지 않았다. 2018년 8월 12일에 현직 대통령인 말리 집회당의 이브라임 부바카르 케이타와 공화국과 민주주의를 위한 연합의 수마일라 시세 간에 결선 투표가 치러졌고, 케이타가 67%의 득표율로 재선되었다.
2018년 9월, 인도주의적 대화를 위한 센터(Centre for Humanitarian Dialogue)는 "말리 중부에서 다른 공동체 무장 단체들과 대립하는 분쟁 상황에서" 단 나 암바사구와 일방적인 휴전을 협상했다. 그러나 이 단체는 2019년 3월 24일 풀라니족 마을 주민 160명 학살의 배후로 지목받고 있다. 이 단체는 공격을 부인했지만, 이후 말리 대통령 케이타는 이 단체의 해체를 명령했다. 유엔 대량학살방지 특별자문관 아다마 디엥은 분쟁의 민족화가 심화되고 있다고 경고했다. 2020년까지 말리 분쟁으로 60만 명 이상이 난민이 되었다. 유엔은 2019년 상반기 분쟁으로 사망한 아동 수가 2018년 전체 사망자 수의 두 배라고 보고했다. 많은 아동이 민족 민병대에 의한 공동체 간 공격으로 사망했으며, 대부분의 공격은 몹티 주변에서 발생했다. 약 900개의 학교가 문을 닫았고 무장 민병대가 아동을 모집하고 있는 것으로 보고되었다.
2019년 10월 첫째 주, 불리케시와 몬도로 마을에서 두 차례의 지하디스트 공격으로 부르키나파소 국경 근처에서 말리 군인 25명 이상이 사망했다. 케이타 대통령은 "말리에서는 어떤 군사 쿠데타도 성공하지 못할 것"이라며 "전혀 의제에 없으며 우리를 걱정시킬 수 없다"고 말했다. 2019년 11월 1일, IS-GS 무장세력이 말리 메나카주에서 발생한 2019년 인델리마네 공격으로 최소 50명의 군인을 살해했다. 2020년 2월, 휴먼 라이츠 워치는 말리 중부 민간인에 대한 잔학 행위를 기록했으며, 2019년 1월부터 11월까지 최소 456명의 민간인이 살해되고 수백 명이 부상당했다고 밝혔다.
3.7.3. 2020년대 군사 쿠데타와 군정

2020년 3월과 4월 국회의원 선거 부정, 야당 지도자 수마일라 시세 납치 사건 등에 대한 분노가 이어지면서 2020년 6월 5일 민중 봉기가 시작되었다. 6월 10일부터 13일까지 이어진 시위로 11명에서 23명이 사망했다. 7월, 케이타 대통령은 헌법재판소를 해산했다.
쿨리코로주 카티의 아시미 고이타 대령과 이스마엘 와게 대령이 이끄는 군인들이 2020년 8월 18일 반란을 일으켰다. 이브라임 부바카르 케이타 대통령과 부부 시세 총리가 체포되었고, 자정 직후 케이타는 유혈 사태를 원치 않는다며 사임을 발표했다. 와게는 국민구제위원회(CNSP) 결성을 발표하고 장래에 선거를 약속했다. 통행금지가 시작되었고 바마코 거리는 조용했다. 서아프리카 경제 공동체(ECOWAS)는 쿠데타를 규탄하고 케이타의 대통령 복귀를 요구했다.
2020년 9월 12일, CNSP는 18개월간의 민간 통치로의 정치적 전환에 합의했다. 곧이어 바 은다우가 17명의 선거인단에 의해 임시 대통령으로 임명되었고, 고이타는 부통령으로 임명되었다. 정부는 2020년 9월 25일에 출범했다. 2021년 1월 18일, 과도 정부는 초기 합의에 따라 약속된 지 거의 4개월 만에 CNSP가 해체되었다고 발표했다.
2020년 9월 정권 이양 이후 민간 과도 정부와 군부 간의 긴장이 고조되었다. 2021년 5월 24일 내각 개편 후 긴장이 극에 달했는데, 2020년 군사 쿠데타의 두 지도자인 사디오 카마라와 모디보 코네가 은다우 행정부에 의해 교체되었기 때문이다. 그날 늦게 기자들은 은다우 대통령, 모크타르 우안 총리, 술레이만 두쿠레 국방장관 등 세 명의 주요 민간 지도자들이 바마코 외곽 카티의 군 기지에 구금되어 있다고 보도했다. 2021년 6월 7일, 말리 군 사령관 아시미 고이타가 새로운 임시 대통령으로 취임했다.
2022년과 2023년, 대사하라 이슬람 국가는 말리 전쟁에서 큰 성과를 거두어 말리 남동부의 광대한 영토를 점령했다. 안송고와 티데르멘도 이 단체에 의해 점령되었다. 2023년 중반까지 이 무장 단체는 이전 정부 전복 및 군정 수립 이후 통제 영토를 두 배로 늘렸다.
2022년 1월 10일, 말리는 선거를 4년간 연기한 것에 대한 제재에 대응하여 국경을 폐쇄하고 ECOWAS 국가 주재 대사 여러 명을 소환한다고 발표했다. 2월 4일, 프랑스 대사가 추방되었다. 휴먼 라이츠 워치에 따르면, 말리 군대와 바그너 그룹 소속으로 의심되는 러시아 용병들이 2022년 3월 말리 중부에서 약 300명의 민간인 남성을 처형했다. 프랑스는 2022년 2월 말리에서 프랑스군 철수를 시작하여 바르칸 작전의 종료를 알렸다. 5월 2일, 군정부는 2013년 프랑스와 체결한 국방 협정을 파기한다고 발표하여 말리-프랑스 관계 악화에 한 걸음 더 나아갔다. 이 최근 발표는 프랑스 당국의 비판을 받았으며 "불법적"으로 간주되었다. 유엔 조사단은 2022년 첫 3개월 동안 543명의 민간인이 사망하고 269명이 부상했다고 보고했으며, 정부와 독립 지지 단체 간의 2015년 평화 협정이 5년 만에 처음으로 대립 위험에 처해 위협받고 있다고 경고했다. 이 보고서는 또한 전년도에 비해 인도적 지원이 필요한 사람들의 수가 급격히 증가했다고 지적했다.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무장관은 2023년 2월 7일 바마코를 방문하여 모스크바가 말리의 군사력 향상을 계속 지원할 것이라고 말했다.
2023년 6월, 말리는 군정이 실시한 국민투표에서 유권자 97%의 찬성으로 새 헌법을 승인하면서 이전 식민지배국의 언어인 프랑스어를 공용어에서 제외했다.
2023년 9월 7일, 알카에다 연계 단체인 자마트 누스랏 알이슬람 왈무슬리민(JNIM) 무장세력이 니제르강의 선박을 공격하여 최소 154명의 민간인을 살해했다.
2024년 7월, CSP-DPA 반군과 JNIM 무장세력은 틴자우아텐 전투에서 수십 명의 러시아 용병과 말리 정부군을 사살했다. 2024년 8월 5일, 말리 공화국은 우크라이나와의 외교 관계 단절을 발표했다.
2024년 9월 17일, 알카에다 연계 JNIM 무장세력이 바마코 전역의 여러 장소를 공격하여 최소 77명이 사망하고 255명이 부상했다.
4. 지리
말리는 서아프리카의 내륙국으로, 알제리의 남서쪽에 위치한다. 북위 10도에서 25도, 서경 13도에서 동경 5도 사이에 놓여 있다. 북동쪽으로는 알제리, 동쪽으로는 니제르, 남동쪽으로는 부르키나파소, 남쪽으로는 코트디부아르, 남서쪽으로는 기니, 서쪽으로는 세네갈, 북서쪽으로는 모리타니와 국경을 접한다.
4.1. 지형과 기후


말리의 면적은 124.02 만 km2으로 세계에서 24번째, 아프리카에서 8번째로 큰 나라이다. 국토의 대부분은 남부 사하라 사막에 속하며, 극도로 덥고 먼지가 많은 수단 사바나 지대를 형성한다. 말리는 대부분 평탄하며, 북부 평원은 모래로 덮인 완만한 구릉지이다. 북동부에는 아드라르 데 이포가스 산맥이 있다.
말리는 열대에 속하며 세계에서 가장 더운 나라 중 하나이다. 연평균 일일 기온을 기준으로 지구상에서 연중 가장 더운 지점을 나타내는 열적도가 이 나라를 가로지른다. 말리 대부분 지역은 강수량이 미미하며 가뭄이 매우 잦다. 최남단 지역은 4월 말부터 10월 초까지가 우기이다. 이 기간 동안 니제르강의 범람이 흔하며, 니제르 내륙 삼각주를 형성한다. 말리의 광활한 북부 사막 지역은 길고 극도로 더운 여름과 북쪽으로 갈수록 강수량이 줄어드는 고온 사막 기후(쾨펜의 기후 구분 BWh)를 보인다. 중앙 지역은 연중 매우 높은 기온, 길고 강렬한 건기, 짧고 불규칙한 우기를 특징으로 하는 고온 반건조 기후(쾨펜의 기후 구분 BSh)이다. 남부 지역은 열대 사바나 기후(쾨펜의 기후 구분 Aw)이다. 종합적으로 말리의 기후는 열대성이며, 3월부터 5월까지는 덥고 건조한 계절이다. 6월부터 10월까지는 비가 내리고 습하며 온화하다. 11월부터 2월까지는 시원하고 건조한 계절이다.
니제르강은 말리의 생명줄과도 같은 강으로, 국토 중앙부를 관통하며 흐른다. 이 강은 농업용수, 식수, 교통로를 제공하며, 특히 니제르 내륙 삼각주 지역은 풍부한 어장을 형성하고 비옥한 농경지를 만들어낸다.
4.2. 천연자원
말리는 상당한 천연자원을 보유하고 있으며, 금, 우라늄, 인광석, 고령석, 소금, 석회암 등이 가장 널리 채굴된다. 말리는 17,400톤 이상의 우라늄(측정+표시+추정)을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2012년에는 북쪽에 추가적인 우라늄 광물화 지대가 확인되었다.
4.3. 환경과 생물 다양성
말리는 사막화, 삼림 벌채, 토양 침식, 그리고 식수 공급 부족 등 수많은 환경 문제에 직면해 있다.
말리 국경 내에는 사헬 아카시아 사바나, 서수단 사바나, 니제르 내륙 삼각주 범람 사바나, 남사하라 스텝 및 삼림지, 서사하라 산지 건조 삼림지 등 5개의 육상 생태지역이 존재한다. 2019년 산림경관 완전성 지수 평균 점수는 7.16/10으로, 172개국 중 세계 51위를 차지했다.
5. 정치
말리는 대통령 중심제 공화국으로, 2012년 군사 쿠데타와 이후 이어진 정치적 불안정으로 인해 민주주의 체제가 위협받고 있다. 현재는 군정이 국가를 통치하고 있으며, 민정 이양 과정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다. 대외적으로는 지역 안보 문제와 국제 사회와의 관계 재정립이 중요한 과제로 남아 있다.
5.1. 정부 구조

2012년 3월 22일 군사 쿠데타 이전까지 말리는 1992년 1월 12일 제정되고 1999년에 개정된 헌법에 따라 통치되는 입헌 민주주의 국가였다. 헌법은 행정부, 입법부, 사법부 간의 삼권분립을 규정하고 있다. 정부 체제는 "반대통령제"로 설명될 수 있다. 행정권은 보통선거를 통해 5년 임기로 선출되며 연임이 제한되는 대통령에게 부여된다.
대통령은 국가원수이자 총사령관 역할을 한다. 대통령이 임명한 총리가 정부 수반 역할을 하며, 다시 각료회의를 임명한다. 단원제인 국민의회는 말리의 유일한 입법 기관으로, 5년 임기의 의원들로 구성된다. 2007년 선거 이후 민주주의와 진보를 위한 동맹이 의회 160석 중 113석을 차지했다. 의회는 매년 두 차례 정기 회기를 열어 의원이나 정부가 제출한 법안을 심의하고 표결한다.
말리 헌법은 독립적인 사법부를 규정하고 있으나, 행정부는 판사 임명권과 사법 기능 및 법 집행 감독권을 통해 사법부에 계속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말리의 최고 법원은 사법권과 행정권을 모두 가진 대법원과, 입법 행위에 대한 사법 심사를 제공하고 선거 중재자 역할을 하는 별도의 헌법재판소가 있다. 다양한 하급 법원이 존재하지만, 농촌 지역에서는 대부분의 지역 분쟁을 촌장과 원로들이 해결한다.
과도 정부는 당초 2022년 2월로 예정되었던 새 선거 일정을 2024년 2월로 연기했다. 정부의 2024년 선거 약속에 대한 대가로 서아프리카 경제 공동체(ECOWAS)는 말리에 대한 제재를 해제하기로 합의했다.
5.2. 최근 정치 상황
2020년과 2021년 연이은 군사 쿠데타 이후, 아시미 고이타 대령이 이끄는 군정이 말리를 통치하고 있다. 군정은 민정 이양을 약속했으나, 선거 일정 지연 등으로 인해 국내외적으로 비판을 받고 있다. 이러한 정치적 불안정은 경제난, 안보 위협, 인도주의적 문제 등을 심화시키고 있다. 주요 정치 세력으로는 군정과 그 지지 세력, 그리고 민주주의 회복을 요구하는 야당 및 시민 사회 단체들이 있다. 정당 활동은 제한적이며, 정치적 불확실성이 지속되고 있다.
5.3. 대외 관계


2012년 이전까지 말리의 외교 정책 방향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점점 더 실용적이고 친서방적으로 변해왔다. 2002년 민주 정부 수립 이후 말리와 서방 세계, 특히 미국과의 관계는 크게 개선되었다. 말리는 옛 식민 통치국이었던 프랑스와 오랫동안 애증의 관계를 유지해왔다. 말리는 2012년 쿠데타로 자격이 정지될 때까지 아프리카 연합과 같은 지역 기구에서 활발히 활동했다.
코트디부아르, 라이베리아, 시에라리온 등 지역 분쟁을 통제하고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은 말리의 주요 외교 정책 목표 중 하나이다. 말리는 이웃 국가들의 분쟁 파급 가능성에 위협을 느끼며, 이들 국가와의 관계는 종종 불안정하다. 국경을 넘나드는 산적 행위와 테러리즘을 포함한 북부 국경 지역의 전반적인 불안정은 지역 관계에서 여전히 골치 아픈 문제로 남아 있다.
2019년 초, 알카에다는 말리의 유엔 기지에 대한 공격으로 차드 출신 평화유지군 10명이 사망한 사건에 대해 책임을 주장했다. 이 공격으로 25명이 부상당한 것으로 보고되었다. 알카에다가 공격 이유로 밝힌 것은 차드가 이스라엘과 외교 관계를 재개했기 때문이었다. 이 기지는 특히 불안정한 지역인 앙겔혹 마을에서 공격을 받았다.
군사 쿠데타 이후 말리 군정은 전통적인 우방국이었던 프랑스와의 관계가 급격히 악화되었으며, 프랑스군과 유럽 연합(EU) 군대가 철수했다. 대신 러시아와의 군사 및 정치적 협력을 강화하고 있으며, 러시아 바그너 그룹 용병이 말리 내전에 개입하고 있다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이러한 변화는 서아프리카 경제 공동체(ECOWAS) 등 역내 기구 및 서방 국가들과의 갈등을 심화시키고 있다. ECOWAS는 말리에 대해 제재를 가하기도 했으나, 민정 이양 일정 합의 후 일부 해제되었다. 말리는 2024년 1월 니제르, 부르키나파소와 함께 ECOWAS 탈퇴를 선언했다.
5.4. 군사
말리군은 육군(지상군 및 공군 포함)과 준군사조직인 헌병대 및 공화국 수비대로 구성되며, 이들 모두 민간인이 수장인 말리 국방 및 퇴역군인부의 통제를 받는다.
6. 행정 구역

2016년부터 말리는 10개의 주와 바마코 구로 나뉘었다. 각 주에는 주지사가 있다. 가장 최근에 신설된 두 주인 타우데니트주(이전에는 통북투주의 일부)와 메나카주(이전에는 가오주의 메나카 세르클)의 시행은 2016년 1월부터 진행 중이며, 두 주 모두 주지사와 과도 위원회가 임명되었다.
2023년부터 말리는 행정 구조에 9개의 새로운 주를 추가하여 총 19개의 주와 바마코 구로 구성된다. 이러한 재편성은 거버넌스를 개선하고 공공 서비스를 지역 주민들에게 더 가깝게 제공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이 구상은 2016년 타우데니트주와 메나카주를 창설하면서 시작된 지방 분권화 노력을 이어가는 것이다. 19개 주는 다시 159개의 세르클과 815개의 코뮌으로 세분화된다.
주와 수도 구역은 다음과 같다:
번호 | 주 이름 | 면적 (km2) | 인구 2023년 인구 조사 |
---|---|---|---|
00 | 바마코 수도 구역 | 252 | 4,227,569 |
01 | 케스 | 62,914 | 1,840,329 |
02 | 쿨리코로 | 71,178 | 2,255,157 |
03 | 시카소 | 21,378 | 1,533,123 |
04 | 세구 | 31,996 | 2,455,263 |
05 | 몹티 | 49,077 | 935,579 |
06 | 통북투 | 180,781 | 974,278 |
07 | 가오 | 89,532 | 727,517 |
08 | 키달 | 151,430 | 83,192 |
09 | 타우데니트 | 323,326 | 100,358 |
10 | 메나카 | 81,040 | 318,876 |
11 | 부구니 | 41,052 | 1,570,979 |
12 | 디오일라 | 12,984 | 675,965 |
13 | 니오로 | 24,179 | 678,061 |
14 | 쿠티알라 | 14,739 | 1,169,882 |
15 | 키타 | 44,175 | 681,671 |
16 | 나라 | 26,213 | 307,777 |
17 | 반디아가라 | 25,709 | 868,916 |
18 | 산 | 15,516 | 820,807 |
19 | 두엔차 | 63,515 | 170,189 |
총계 | 1,240,192 | 22,395,489 |
6.1. 주요 도시
말리의 주요 도시들은 대부분 국토 남부의 사바나 지대와 니제르강 유역에 집중되어 있다.
- 바마코: 말리의 수도이자 최대 도시로, 정치, 경제, 문화의 중심지이다. 니제르강 연안에 위치하며, 인구는 약 423만 명(2023년 인구 조사)이다.
- 시카소: 남부 농업 지대의 중심 도시로, 코트디부아르로 향하는 주요 무역로에 위치하여 목화 등의 집산지로 번영하고 있다.
- 세구: 니제르강 중류에 위치하며, 18세기부터 여러 왕국의 수도였고, 현재는 관개를 통한 농업이 발달한 지역의 중심지이다.
- 몹티: 니제르강과 바니강 합류점에 건설된 도시로, 니제르 내륙 삼각주의 중심 도시이자 중요한 하천 교통의 요지이다.
- 팀북투: 과거 사하라 횡단 무역의 중심지로 번영했던 역사적인 도시이다. 현재는 작은 도시이지만,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된 이슬람 건축물과 고문서들로 유명하다.
- 가오: 말리 북동부 니제르강변에 위치한 도시로, 과거 송가이 제국의 수도였으며 현재 말리 북부에서 가장 큰 도시이다.
이 외에도 역사적으로 중요한 도시나 지역 중심지들이 각 주에 분포하고 있다.
7. 경제
말리는 세계 최빈국 중 하나로, 국내총생산(GDP) 규모가 작고 1인당 소득도 매우 낮습니다. 경제 구조는 농업과 광업에 크게 의존하며, 정치적 불안정은 경제 발전에 큰 장애 요인이 되고 있습니다. 주요 산업으로는 농업(특히 목화), 목축업, 광업(특히 금), 어업 등이 있으며, 에너지 부문은 수력 발전에 의존하나 공급이 불안정하고, 교통 및 통신 기반 시설은 아직 미흡한 수준입니다. 정부는 국제기구와 협력하여 경제 개혁을 추진해왔으나, 여전히 높은 빈곤율과 실업률 등의 과제를 안고 있습니다.



7.1. 경제 현황, 정책 및 대외 협력
서아프리카 국가 중앙은행이 말리를 비롯한 서아프리카 경제 공동체 회원국의 금융 업무를 담당한다. 말리는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 중 하나로 여겨진다. 노동자의 연평균 급여는 약 1500 USD이다.
말리는 1988년 세계은행 및 국제 통화 기금(IMF)과 협정을 체결하면서 경제 개혁을 시작했다. 1988년부터 1996년까지 말리 정부는 주로 공기업을 개혁했다. 협정 이후 16개 기업이 민영화되었고, 12개 기업이 부분 민영화되었으며, 20개 기업이 청산되었다. 2005년 말리 정부는 철도 회사를 새비지 코퍼레이션(Savage Corporation)에 양도했다. 주요 기업인 말리 통신공사(SOTELMA)와 목화 조면 회사(CMDT)는 2008년에 민영화될 예정이었다.
1992년부터 1995년까지 말리는 경제 조정 프로그램을 시행하여 경제 성장과 재정 불균형 감소를 이끌어냈다. 이 프로그램은 사회경제적 조건을 개선시켰고, 말리는 1995년 5월 31일 세계무역기구(WTO)에 가입했다.
말리는 또한 아프리카 사업법 조화 기구(OHADA)의 회원국이다. 국내총생산(GDP)은 이후 증가했다. 2002년 GDP는 34.00 억 USD였고, 2005년에는 58.00 억 USD로 증가하여 연평균 약 17.6%의 성장률을 기록했다. 2023년 명목 GDP는 약 213.09 억 USD, 1인당 명목 GDP는 약 912 USD로 추정된다. 구매력 평가(PPP) 기준 GDP는 약 616.25 억 USD, 1인당 PPP GDP는 약 2639 USD이다.
말리는 "프랑 존"(Zone Franc)의 일부로, CFA 프랑을 사용한다. 말리는 1962년 BCEAO 창설 이후 프랑스 정부와 협정을 맺고 있다. 현재 BCEAO의 7개국(말리 포함) 모두 프랑스 중앙은행과 연결되어 있다.
2020년 8월 쿠데타 이전, 미국의 대말리 원조는 2020 회계연도에 1.35 억 USD를 초과했으며, 취약한 평화, 민주적 거버넌스 및 지역 안보를 강화하는 동시에 사회경제적 취약성을 해결하는 것을 목표로 했다. 쿠데타 이후에는 미국 법에 따라 원조가 제한되지만, 진행 중인 프로그램은 안정, 정부에 대한 대중의 신뢰, 지역사회 회복력 및 사회경제적 번영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2024년 세계 혁신 지수에서 말리는 139개국 중 136위를 차지했다.
7.2. 주요 산업
말리의 핵심 산업은 농업, 목축업, 광업, 어업 등이다.
- 농업: 노동 인구의 약 80%가 농업에 종사한다. 주요 작물은 목화, 쌀, 수수, 기장, 옥수수, 채소, 담배 등이다. 특히 목화는 주요 수출품 중 하나이다. 니제르강 유역과 남부 사바나 지역이 주요 농경지대이며, 관개 시설이 부족하여 기후 변화와 가뭄에 취약하다.
- 목축업: 소, 양, 염소 등을 사육하며, 북부 건조 지대에서는 유목이 이루어진다. 가축 역시 주요 수출품이다.
- 광업: 금 생산이 매우 중요하며, 아프리카에서 세 번째로 큰 금 생산국이다. 금은 말리 수출의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한다. 이 외에도 우라늄, 인광석, 고령석, 소금, 석회암 등이 채굴된다.
- 어업: 니제르강, 특히 니제르 내륙 삼각주는 풍부한 어장을 제공하며, 내수용 및 수출용으로 어업이 활발하다. 보조족과 소모노족 등 어업을 전문으로 하는 민족도 존재한다.
7.3. 에너지
말리의 전력 생산은 수력 발전에 크게 의존하며, 전체 전력의 절반 이상을 차지한다. 2002년에는 700 GWh의 수력 전기가 생산되었다. 주요 수력 발전소는 니제르강 유역에 위치한다. 그러나 전력 공급은 여전히 불안정하며, 특히 농촌 지역의 전력 접근성은 매우 낮다. 도시 지역에서도 정전이 잦은 편이다. 에너지 뒤 말리(Energie du Mali, EDM)가 전력 공급을 담당하고 있으나, 도시 인구의 약 55%만이 EDM의 전기를 공급받고 있다. 화석 연료 수입 의존도가 높아 에너지 안보 문제도 안고 있다.
7.4. 교통 및 기반 시설
말리는 내륙국으로 교통망 발달이 중요하나, 기반 시설은 아직 미흡한 수준이다.
- 도로: 주요 도시 간 도로는 포장되어 있으나, 농촌 지역 도로는 비포장 상태가 많아 우기에는 통행이 어렵다.
- 철도: 가장 중요한 철도는 다카르-니제르 철도로, 수도 바마코와 세네갈의 다카르항을 연결하여 말리의 주요 수출입 경로 역할을 한다. 그러나 시설 노후화와 운영 문제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 항공: 바마코-세누 국제공항이 주요 국제공항이며, 국내선 항공망도 일부 운영되고 있다. 총 29개의 공항이 있으며, 그중 8개는 포장 활주로를 갖추고 있다.
- 수운: 니제르강은 특히 내륙 운송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증수기에는 바마코에서 가오까지 약 2000 km 구간에서 대형 선박 운항이 가능하나, 건기에는 수위가 낮아져 항행이 제한된다.
- 통신: 유선 통신망은 부족하며, 이동통신이 빠르게 보급되고 있다. 인터넷 보급률은 낮은 편이다.
도시 지역에서는 녹색과 흰색 택시가 많이 운행되며, 상당수 인구가 대중교통에 의존한다.
8. 사회
말리 사회는 다양한 민족 구성, 높은 인구 증가율, 낮은 교육 수준, 열악한 보건 환경 등 여러 특징과 과제를 안고 있다. 이슬람교가 지배적인 종교이며, 프랑스어가 실무 언어로 사용되지만 다수의 국민 언어가 공용어로 지정되어 있다.
8.1. 인구

연도 | 백만 명 |
---|---|
1950 | 4.7 |
2000 | 11 |
2024 | 23.29 |
2024년 기준 말리의 총인구는 약 2,329만 명으로 추산된다. 인구는 주로 농촌(2002년 68%)에 거주하며, 말리인 중 5~10%는 유목민이다. 인구의 90% 이상이 남부 지역, 특히 2백만 명 이상의 주민이 거주하는 바마코에 살고 있다.
2024년 기준, 말리 인구의 약 47%가 14세 이하, 50%가 15~64세, 3%가 65세 이상이다. 중위 연령은 16.4세이다. 2024년 출생률은 1,000명당 40명이고, 2024년 합계출산율은 여성 1명당 5.35명이다. 2024년 사망률은 1,000명당 8.1명이다. 기대 수명은 총 63.2세(남성 60.9세, 여성 65.6세)이다. 말리는 세계에서 영아 사망률이 가장 높은 국가 중 하나로, 2024년에는 1,000명 생존 출생아당 57.4명이 사망했다.
8.2. 민족
말리 인구는 다수의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 민족 집단으로 구성된다. 밤바라족이 인구의 3분의 1을 차지하며 가장 큰 단일 민족 집단이다. 주요 민족 구성은 밤바라족(33.3%), 풀라니족(Peuhl, 13.3%), 사라콜레족/소닝케족/마르카족(9.8%), 세누포족/마니안카족(9.6%), 말링케족(8.8%), 도곤족(8.7%), 송가이족(5.9%), 보보족(2.1%), 투아레그족/벨라족(1.7%), 기타 말리인(6%), 서아프리카 경제 공동체 회원국 출신(0.4%), 기타(0.3%) (2018년 추정)이다. 말리와 니제르에서는 무어족이 사하라의 아자와그 지역 이름을 딴 아자와그 아랍인으로도 알려져 있다. 그들은 주로 지역 아랍어 변종 중 하나인 하사니아 아랍어를 사용한다.

극북부 지역에서는 역사적으로 이 지역에 퍼져 있던 노예제로 인해 베르베르족 계통의 투아레그족 유목민과 피부색이 더 어두운 벨라족 또는 타마셰크족 사이에 구분이 있다. 말리에서 약 80만 명이 노예의 후손으로 추정된다. 말리에서는 수 세기 동안 노예제가 지속되었다. 아랍 인구는 20세기 중반 프랑스 당국에 의해 노예제가 억압될 때까지 20세기까지 노예를 유지했다. 특정 세습적 예속 관계가 여전히 존재하며, 일부 추정에 따르면 오늘날에도 약 20만 명의 말리인이 여전히 노예 상태에 있다.

스페인, 프랑스, 아일랜드, 이탈리아, 포르투갈 출신 무슬림의 혼혈 유럽/아프리카 후손 일부가 말리에 거주하며, 이들은 아르마족(국민의 1%)으로 알려져 있다.
말리는 오랜 공존의 역사에 기반한 비교적 양호한 민족 간 관계를 누려왔지만, 일부 세습적 예속 관계와 속박 관계가 존재하며, 북부의 정착민 송가이족과 유목민 투아레그족 간의 민족적 긴장도 있다. 독립 후 북부 인구에 대한 반발로 인해, 말리는 현재 양측 모두 상대방으로부터 차별을 받고 있다고 불평하는 상황에 처해 있다. 이 갈등은 또한 투아레그족과 말리 정부, 그리고 투아레그족과 샤리아 법을 확립하려는 급진 이슬람주의자들 간의 긴장이 존재하는 지속적인 말리 북부 분쟁에서도 역할을 한다.
8.3. 언어
2022년 1월, 말리와 프랑스 정부 간의 관계 악화로 인해 말리 정부는 밤바라어를 공식 언어로 지정한다고 발표했다. 2023년 7월, 프랑스어는 공식 언어에서 제외되고 실무 언어가 되었다. 동시에 밤바라어, 보보어, 보조어, 도곤어, 풀라어, 하사니아 아랍어, 카손케어, 마닝카어, 미냥카어, 세누포어, 송가이·코이라보로 센니어, 소닝케어, 타마셰크어 등 13개 국민 언어가 공식 언어가 되었다. 말리의 링구아 프랑카는 주로 밤바라어이며, 인구의 약 80%가 이를 통해 의사소통할 수 있다. 그 외 40개 이상의 아프리카 언어가 말리의 다양한 민족 집단에 의해 사용된다.
2009년 인구 조사에 따르면, 말리에서 모국어로 사용되는 언어는 밤바라어(51.5%), 풀라어(8.3%), 도곤어(6.6%), 소닝케어(5.7%), 송가이어(5.3%), 만딩카어(5.2%), 미냥카어(3.8%), 타마셰크어(3.2%), 세누포어(2%), 보보어(1.9%), 티에약소 보조어(1.6%), 카손케어(1.1%), 마우레어(1%), 다핑어(마르카어, 0.4%), 사모고어(0.4%), 아랍어(하사니아, 0.3%), 기타 말리 언어(0.5%), 기타 아프리카 언어(0.2%), 기타 비아프리카 언어(0.2%)였으며, 0.7%는 모국어를 밝히지 않았다.
8.4. 종교

이슬람교는 11세기에 서아프리카에 도입되었으며 이 지역 대부분에서 지배적인 종교로 남아 있다. 말리인의 약 90%가 무슬림(대부분 수니파)이며, 약 5%는 기독교인(약 3분의 2는 로마 가톨릭, 3분의 1은 개신교)이고 나머지 5%는 도곤교와 같은 아프리카 토착 종교를 따른다. 무신론과 불가지론은 말리인들 사이에서는 드문 것으로 여겨지며, 대부분 매일 종교 활동을 한다.
헌법은 정교분리 국가를 규정하고 종교의 자유를 보장하며, 정부는 대체로 이 권리를 존중한다.
역사적으로 말리에서 행해져 온 이슬람교는 유연하고 지역 조건에 적응해 왔으며, 무슬림과 소수 종교 신자들 간의 관계는 대체로 우호적이었다. 그러나 2012년 북부 지역에 샤리아 통치가 시행된 이후, 말리는 오픈 도어스가 발표한 기독교 박해 지수에서 높은 순위(7위)에 올랐으며, 북부의 박해는 심각한 수준으로 묘사되었다.
8.5. 교육

말리의 공교육은 원칙적으로 무상이며 7세부터 16세까지 9년간 의무 교육이다. 교육 시스템은 7세에 시작하는 6년간의 초등 교육과 그 뒤를 잇는 6년간의 중등 교육으로 구성된다. 그러나 말리의 실제 초등학교 취학률은 낮은데, 이는 주로 가정이 교복, 책, 학용품 및 기타 학교 출석에 필요한 비용을 감당할 수 없기 때문이다.
2017년 초등학교 취학률은 61%(남학생 65%, 여학생 58%)였다. 1990년대 후반 중학교 취학률은 15%(남학생 20%, 여학생 10%)였다. 교육 시스템은 농촌 지역의 학교 부족과 교사 및 기자재 부족 문제에 시달리고 있다.
말리의 식자율 추정치는 27~30%에서 46.4% 사이이며, 여성의 식자율은 남성보다 현저히 낮다. 4개의 구성 대학을 포함하는 바마코 대학교는 말리에서 가장 큰 대학이며 약 60,000명의 학부생과 대학원생이 재학 중이다.
8.6. 보건

말리는 빈곤, 영양실조, 부적절한 위생 및 공중위생과 관련된 수많은 건강 문제에 직면해 있다. 말리의 건강 및 개발 지표는 세계 최악 수준이다. 2024년 출생 시 기대 수명은 63.2세로 추정된다. 2000년에는 인구의 62~65%가 안전한 식수에 접근할 수 있었고, 단 69%만이 어떤 형태로든 위생 서비스에 접근할 수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2001년 정부의 보건 지출 총액은 평균 환율로 1인당 약 4 USD였다.
영양 개선 및 관련 건강 문제 감소를 위해 여성들에게 현지 요리법의 영양가 있는 버전을 만들도록 장려하는 노력이 이루어졌다. 예를 들어, 국제반건조열대작물연구소(ICRISAT)와 아가 칸 재단은 여성 단체들에게 전통 요리법 '디-데게'(땅콩버터, 꿀, 기장 또는 쌀가루로 구성)의 건강하고 영양가 있는 버전인 '에퀴넛'을 만들도록 훈련시켰다. 목표는 여성들이 만들고 판매할 수 있으며, 현지 유산 때문에 지역 사회에서 받아들여질 수 있는 제품을 생산함으로써 영양과 생계를 증진하는 것이었다.
말리의 의료 시설은 매우 제한적이며 의약품 공급이 부족하다. 말라리아 및 기타 절지동물 매개 질병이 말리에 널리 퍼져 있으며, 콜레라 및 결핵과 같은 여러 전염병도 마찬가지이다. 말리 인구는 또한 아동 영양실조율이 높고 예방 접종률이 낮다. 성인 및 아동 인구의 약 1.9%가 HIV/AIDS에 감염된 것으로 추정되며(연도 불명확), 이는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에서 가장 낮은 비율 중 하나이다. 말리 소녀 및 여성의 약 85~91%가 여성 성기 절제(2006년 및 2001년 자료)를 경험했다.
2024년, 말리에서는 380만 명 이상의 아동을 포함하여 약 710만 명이 분쟁 격화와 기후 위기로 인해 긴급한 인도적 지원을 필요로 한다. 유니세프는 건강, 교육, 보호와 같은 필수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한 노력을 강화하고 있으며, 이러한 필요를 해결하기 위해 1.33 억 USD를 호소하고 있다. 522,000명 이상의 아동이 교육을 받지 못하고 있으며, 인도적 지원 자금 부족 속에서 수백만 명이 영양실조 위험에 처해 있는 등 상황이 심각하다. 말리의 취약 계층에 대한 폭력, 불안정, 기후 변화의 영향을 완화하기 위한 긴급한 조치가 필요하다.
8.7. 인권 및 사회 문제
말리의 인권 상황은 2012년 북부 분쟁과 연이은 군사 쿠데타 이후 크게 악화되었다. 군정에 의한 언론의 자유 탄압, 반정부 시위 강경 진압, 자의적 구금 등이 보고되고 있다. 북부 및 중부 지역에서는 무장 단체들에 의한 민간인 학살, 납치, 성폭력 등 심각한 인권 침해가 지속되고 있다.
아동 노동 문제도 심각하며, 특히 금광 등 위험한 환경에서 일하는 아동들이 많다. 국제 노동 기구(ILO)에 따르면 말리는 아동 노동 비율이 높은 국가 중 하나이다. 또한, 일부 지역에서는 전통적인 카스트 제도에 기반한 현대판 노예제가 여전히 존재하며, 특정 집단이 다른 집단에 예속되어 강제 노동과 착취를 당하는 사례가 보고된다.
젠더 평등 문제도 중요한 사회 문제이다. 여성에 대한 폭력, 조혼, 여성 성기 절제(FGM) 관행이 널리 퍼져 있다. 여성의 교육 기회와 정치·경제 참여는 남성에 비해 매우 제한적이다. 2017년 UNDP의 성 불평등 지수에서 말리는 160개국 중 157위를 기록했다. 말리 헌법은 여성의 권리를 보호한다고 명시하고 있지만, 여성을 차별하는 많은 법률이 존재한다. 결혼 후 여성의 의사 결정권이 제한되며, 남편이 아내보다 우월한 지위를 갖게 된다. 여성들은 남편의 외모를 제대로 관리하지 못했다거나 자녀가 잘못 행동하면 비난받는데, 이는 여성이 남성보다 열등하다는 문화적 태도를 조장한다. 정치에 대한 여성의 참여 부족은 정치가 남성과 연관되어 있으며 여성은 이 분야를 피해야 한다는 생각 때문이다. 교육 또한 남성이 지배하는 분야인데, 이는 부모에게 더 나은 투자이기 때문이다. 전통적인 가치와 관행이 말리의 성 불평등에 기여한 반면, 분쟁과 무법 상태 또한 성 기반 폭력을 통해 성별 격차를 심화시켰다. 말리의 불안정한 정부로 인해 USAID와 같은 조직들은 주로 여성과 소녀들의 권리 향상을 통해 국가 발전을 재개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종교, 가부장적 규범, 성 기반 폭력은 말리 여성의 삶을 형성하는 주요 부정적 요인이다. 가부장적 규범은 심각한 성 불평등을 야기하고 가정 내 남성 지배를 초래한다. 소녀들은 어릴 때부터 집안일, 요리, 육아 등을 배우고 평생 동안 가사 노동의 주요 책임을 져야 한다. 이는 여성의 정규 노동 시장 진입을 방해하고 소녀들의 교육 부족으로 이어진다. 말리의 성 기반 폭력은 국가 차원과 가족 차원 모두에서 발생한다. 국가 차원에서는 2012년 북부 분쟁으로 납치와 강간 사건이 증가했다. 분쟁은 또한 여성의 자원, 경제, 기회 접근을 감소시켰다. 가정 차원에서 말리 여성들은 가정 폭력, 강제 결혼, 부부 강간을 통해 성 기반 폭력에 직면한다. 2013년 말리 인구 건강 조사에 따르면 여성의 76%와 남성의 54%가 여성이 음식을 태우거나, 말대꾸하거나, 남편에게 알리지 않고 외출하거나, 남편과의 성관계를 거부할 경우 여성에 대한 신체적 학대가 용납될 수 있다고 믿었다. 2024년, 말리 관리들은 동성 간의 동성애 관계를 범죄화하는 법안을 승인했다.
치안 상황 역시 매우 불안정하다. 북부와 중부 지역은 물론, 수도 바마코를 포함한 남부 지역에서도 무장 강도, 납치 등 강력 범죄가 빈번하게 발생한다.
국제 사회 및 국내 인권 단체들은 말리 정부와 군정에 인권 상황 개선을 지속적으로 요구하고 있으나, 분쟁과 정치적 불안정으로 인해 실질적인 진전은 더딘 상황이다.
9. 문화

말리인의 다양한 일상 문화는 국가의 민족적, 지리적 다양성을 반영한다. 대부분의 말리인은 서아프리카의 전형적인 흐르는 듯한 다채로운 예복인 부부를 입는다. 말리인들은 전통 축제, 춤, 의식에 자주 참여한다.
9.1. 음악

말리의 음악 전통은 "기억의 수호자"로 알려진 그리오에서 유래한다. 말리 음악은 다양하며 여러 장르가 있다. 음악에 영향을 준 유명한 말리인으로는 코라 거장 음악가 투마니 디아바테, 전기 젤리 응고니의 거장 바세쿠 쿠야테와 함께하는 응고니, 후기 루츠 및 블루스 기타리스트 알리 파르카 투레, 투아레그족 밴드 티나리웬, 카이라 아르비, 그리고 살리프 케이타, 듀오 아마두 & 마리암, 우무 상가레, 파투마타 디아와라, 로키아 트라오레, 하비브 코이테와 같은 여러 아프로팝 아티스트들이 있다. 춤 또한 말리 문화에서 큰 역할을 한다. 춤 파티는 친구들 사이에서 흔한 행사이며, 전통 가면춤은 의례 행사에서 공연된다.
9.2. 문학
말리의 문학은 음악만큼 유명하지는 않지만, 말리는 항상 아프리카에서 가장 활기찬 지적 중심지 중 하나였다. 말리의 문학 전통은 주로 구전으로 전해지며, 잘리들이 마음속으로 알고 있는 역사와 이야기를 낭송하거나 노래한다. 말리에서 가장 잘 알려진 역사학자인 아마두 암파테 바는 세계가 기억하도록 이러한 구전 전통을 기록하는 데 평생을 바쳤다.
말리 작가의 가장 잘 알려진 소설은 얌보 울로겜의 폭력의 의무로, 1968년 르노도상을 수상했지만 표절 혐의로 그 명성이 퇴색되었다. 다른 잘 알려진 말리 작가로는 바바 트라오레, 모디보 순칼로 케이타, 마사 마칸 디아바테, 무사 코나테, 필리 다보 시소코 등이 있다.
9.3. 음식
쌀과 기장은 곡물에 크게 의존하는 말리 요리의 주식이다. 곡물은 일반적으로 시금치나 바오밥과 같은 식용 잎으로 만든 소스, 토마토 땅콩 소스와 함께 준비되며, 구운 고기(일반적으로 닭고기, 양고기, 쇠고기 또는 염소고기) 조각이 곁들여질 수 있다. 말리 요리는 지역마다 다르다. 다른 인기 있는 요리로는 푸푸, 졸로프 라이스, 마페 등이 있다.
9.4. 스포츠

말리에서 가장 인기 있는 스포츠는 축구이며, 말리가 2002년 아프리카 네이션스컵을 개최한 후 더욱 두드러졌다. 대부분의 마을과 도시에는 정기적인 경기가 있으며, 전국적으로 가장 인기 있는 팀은 수도에 기반을 둔 졸리바 AC, 스타드 말리앵, 레알 바마코이다. 청소년들은 종종 헝겊 뭉치를 공으로 사용하여 비공식 경기를 한다.
농구도 주요 스포츠이다. 하므체투 마이가가 이끄는 말리 여자 농구 국가대표팀은 2008년 베이징 올림픽에 출전했다. 전통 레슬링(라 뤼트)도 다소 흔하지만 최근 몇 년 동안 인기가 감소했다. 만칼라 변형 게임인 오와레는 흔한 여가 활동이다.
말리는 2018-2020 CAVB 비치발리볼 컨티넨털컵에 출전한 남자 국가대표 비치발리볼팀을 보유하고 있다.
9.5. 대중 매체
말리에는 레 제코, 레소르, 인포 마탱, 누벨 오리종, 르 레퓌블리캥과 같은 여러 신문이 있다. 말리 라디오텔레비전 방송국(ORTM)은 국영 방송사이다. 말리의 통신에는 869,600대의 휴대폰, 45,000대의 텔레비전, 414,985명의 인터넷 사용자가 포함된다.
언론 환경은 정치적 불안정과 분쟁으로 인해 위축되어 있으며, 특히 북부 및 중부 지역에서는 언론인에 대한 위협과 폭력 사건이 발생하기도 한다. 국경 없는 기자회가 발표하는 세계 언론 자유 지수에서 말리는 낮은 순위를 기록하고 있다.
9.6. 세계유산




말리에는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문화 및 자연 유산이 여러 곳 있다. 이들 유산은 말리의 풍부한 역사와 다양한 문화를 보여준다.
- 젠네 구 시가지 (1988년, 문화유산): 세계 최대의 진흙 건축물인 젠네 대모스크를 포함한 역사적인 도시이다. 독특한 수단-사헬 양식의 건축물들이 잘 보존되어 있다.
- 팀북투 (1988년, 문화유산): 과거 사하라 횡단 무역과 이슬람 학문의 중심지로 번영했던 도시이다. 진게레베르 모스크, 산코레 마드라사 등 역사적인 건축물과 귀중한 고문서들이 남아 있다.
- 반디아가라 절벽 (도곤인의 땅) (1989년, 복합유산): 독특한 절벽 거주지와 풍부한 전통문화를 가진 도곤족의 생활 터전이다. 자연경관과 문화경관이 어우러진 곳이다.
- 아스키아의 무덤 (2004년, 문화유산): 가오에 위치한 송가이 제국의 황제 아스키아 무hammad마드 1세의 무덤으로 추정되는 피라미드형 진흙 건축물이다. 서아프리카 이슬람 건축의 중요한 사례이다.
이들 세계유산은 말리의 중요한 관광 자원이지만, 최근 북부 지역의 분쟁과 이슬람 극단주의 세력의 위협으로 인해 일부 유산이 파괴되거나 손상될 위험에 처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