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초기 생애 및 교육
세타 타위신은 1962년 2월 15일 태국 방콕에서 태어났다. 그의 어린 시절과 학업 경력은 그가 사업가 및 정치인으로서 성장하는 데 중요한 기반이 되었다.
1.1. 어린 시절 및 가족 배경
세타 타위신은 암누아이 타위신 대위와 촛처이 주트라꾼의 외동아들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그가 세 살이던 1966년에 사망했으며, 촛처이는 홀로 세타를 키웠다. 그의 가족 혈통은 태국의 저명한 다섯 태국 화교 사업가 가문인 입인초이(Yip in Tsoi), 차카팍(Chakkapak), 주트라꾼(Jutrakul), 람삼(Lamsam), 부라나시리(Buranasiri)와 연결되어 있다.
1.2. 교육
세타는 방콕의 스리나카린위롯 대학교 부속 프라사른밋 시범학교에서 중등 교육을 마쳤다. 이후 학업을 계속하여 쭐랄롱꼰 대학교에서 토목공학 학사 학위를 취득했다. 이어서 매사추세츠 대학교 애머스트에서 경제학 학사 학위를 받았고, 클레어몬트 대학원 대학교에서 재무학을 전공하여 경영학 석사 학위를 취득했다.
2. 사업 경력
세타 타위신은 학업을 마친 후 다국적 기업에서 경력을 시작했으며, 이후 부동산 사업에 뛰어들어 태국 최고의 부동산 재벌 중 한 명으로 자리매김했다.
2.1. 부동산 사업
1986년 클레어몬트 대학원 대학교를 졸업한 세타는 프록터 앤드 갬블에서 4년간 보조 제품 관리자로 근무하며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1988년 그는 부동산 업계에 뛰어들어 산시리를 공동 설립했으며, 이 회사는 태국 최고의 부동산 개발사 중 하나로 성장했다. 그의 리더십 아래 산시리는 400개 이상의 주거 프로젝트를 성공적으로 개발했다.
2013년 잉락 친나왓 총리는 3월 12일 차엥 왓타나 정부청사에서 '태국 2020: 태국의 새로운 도약' 세계 엑스포를 개막했다. 이 엑스포는 정부가 제안한 2.00 조 THB 규모의 투자를 선보였다. 세타는 인근 주거 프로젝트를 시찰한 후 엑스포를 방문하여 부동산 부문에 미칠 잠재적 영향력을 인식하고 산시리 동료들에게도 방문을 권유했다. 프로젝트의 자금 조달 및 잠재적 부채 영향에 대한 대중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세타는 지지를 표명했다. 2019년 초, 그는 2020 엑스포에 대해 긍정적인 글을 썼는데, 이는 그가 총리 재임 중 추진한 디지털 지갑 사업에 대한 옹호와 유사한 맥락이었다.
세타의 리더십은 코로나19 범유행과 같은 어려운 시기에도 산시리의 성장에 기여했다. 2020년 그는 방콕 룸피니 공원 근처 사라신 도로 모퉁이에 있는 토지를 매입했는데, 이 토지는 평방 와당 390.00 만 THB에 달하여 태국 역사상 가장 비싼 토지 매입 중 하나로 기록되었다. 같은 해 그는 XSpring 캐피털 공개 회사 지분 15%를 인수하기도 했다.
2023년 그가 선거 정치에 참여하기로 결정하면서 그의 사업 경력은 잠시 중단되었다. 태국 선거법 규정상 선출직 공무원이 회사 주식을 소유하거나 보유하는 것이 금지되어 있었기 때문에, 세타는 2023년 3월 8일 산시리 지분 4.4%를 포함한 모든 주식을 딸 차난다 타위신에게 양도했다.
2.2. 사업 관련 논란
세타의 사업 활동은 몇 가지 논란에 휩싸였다. 2012년 2월 17일, 세타는 잉락 친나왓 총리 및 키티랏 나 라농 부총리와 함께 포시즌스 호텔에서 태국의 재정 상황에 대해 논의했다고 인정했다. 이 회의는 아케윳 안찬붓이 탁신을 위해 일하는 사람에게 공격당했다고 주장하면서 논란이 되었다. 이 회의는 세타와 잉락 모두에게 스캔들을 야기했다. 당시 야당인 민주당은 회의에 대한 조사를 요구했으며, 민주당 대변인 차바논 인타라코말야수트는 잉락이 세타에게 홍수 예방 프로젝트에 대해 알려주었다고 비난했다. 또한 부대변인 말리카 분미트라꾼은 태국 국가부패방지위원회에 세타의 자산 조사를 요청했다.
2023년 8월 17일, 추윗 카몬위싯은 세타의 2019년 방콕 토지 매입에 대한 조사를 요청하며 경찰 부총감 수라차테 학판에게 진정서를 제출했다. 추윗은 세타와 산시리가 탈세를 저질렀다고 비난했다. 이에 대해 세타는 추윗을 상대로 8월 3일 기자회견에서 한 발언에 대해 5.00 억 THB 규모의 명예훼손 소송을 제기했다.
3. 정치 경력
세타 타위신은 사업가로서의 성공을 뒤로하고 정치에 입문하여 태국 정치의 주요 인물로 부상했다.
3.1. 정치 입문 및 초기 활동
2013년에서 2014년 사이의 태국 정치 위기는 태국에 상당한 정치적 불안정을 가져온 시기였다. 이 기간 동안 세타는 인민민주개혁위원회에 반대 입장을 표명했다. 2014년 태국 쿠데타 이후, 그는 국가평화질서위원회의 소환에 응하여 태국 육군 강당에 출두했다.
세타는 탁신 친나왓과 잉락 친나왓 전 총리들과 정치적 관계를 유지했다. 2023년 태국 총선에서 그는 프아타이당의 총리 후보 중 한 명이었다. 다른 후보로는 탁신의 막내딸인 패통탄 친나왓과 전 법무부 장관인 차이카셈 니티시리가 있었다.
3.2. 2023년 총선 캠페인


2022년 11월, 세타는 프아타이당에 입당할 의사를 밝혔다. 2023년 4월 5일, 그는 당의 세 명의 총리 후보 중 한 명으로 지명되었다. 캠페인 기간 내내 여론조사에서는 그가 총리 선호도에서 패통탄에게 뒤처지는 것으로 자주 나타났다.
세타는 방콕 클롱 토이 지역에서 선거 운동을 시작했으며, 피찟주에서 첫 캠페인 연설을 했다. 이후 4월 중순 르이주에서의 연설에서 그는 팔랑쁘라차랏당과 연합태국국가당이 2014년 태국 쿠데타에 관여했음을 이유로 이들과의 연립 정부 구성은 고려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5월 14일 총선 이후, 프아타이당은 전진당에 이어 두 번째로 많은 의석을 확보했다. 이후 프아타이당은 전진당 및 6개 다른 정당과 연립 정부를 구성했다. 그러나 7월 13일 의회 투표 1차에서 전진당 대표 피타 림짜른랏은 충분한 표를 얻지 못했다. 이어서 7월 19일, 피타의 두 번째 총리 지명은 절차상의 이유로 저지되었다.
전진당이 정부 구성에 실패하자, 프아타이당이 정부 구성 시도를 주도하게 되었다. 이 연립 정부는 처음에는 전진당만을 배제했으나, 8월 7일 품짜이타이당을 포함하도록 확대되었다. 이전에 선거에서 약속했던 입장과는 달리, 연립 정부는 팔랑쁘라차랏당과 연합태국국가당을 추가로 포함했다. 세타는 이러한 확대를 이전 선거 공약과 모순되는 "필요한 전략적 움직임"으로 설명했다.
이후 태국 헌법재판소는 피타 림짜른랏의 총리 지명 거부가 헌법에 위배되는지 여부를 심리해달라는 옴부즈맨의 청원을 기각했다. 새로운 의회 투표는 8월 22일로 예정되었다. 이 회의에서 세타는 태국 국회에 연설하여 자신이 총리가 될 경우의 비전과 목표를 설명했으며, 국회의원과 상원의원들의 질문에 답했다. 그의 총리 후보 지명은 탁신 친나왓의 지지를 받았다.
세타는 프아타이당의 지명에 따라 태국의 제30대 총리로 선출되었다. 태국 하원과 태국 상원의 특별 합동 회의에서 그는 728표 중 482표를 얻었다.
3.3. 총리 재임 (2023-2024)
세타 타위신은 2023년 8월 22일부터 2024년 8월 14일까지 태국 총리로 재임하며 다양한 국내외 정책을 추진했다.
3.3.1. 정부 구성
세타는 2023년 8월 22일 의회 합동 회의에서 태국의 차기 총리로 선출되었다. 그의 즉각적인 책임에는 세타 내각 구성과 향후 4년간의 정책을 의회에 제시하는 것이 포함되었다. 다음 날, 라마 10세 국왕은 세타를 태국의 제30대 총리로 공식 임명했다.
9월 5일, 세타는 방콕 두싯 궁전의 암폰 사탄 주거 홀에서 국왕에 의해 총리 겸 재무부 장관으로 취임 선서를 했다. 세타가 구성한 새 내각은 집권 연립 정부 내 6개 정당을 대표하는 34명의 장관으로 구성되었다. 여기에는 이전 쁘라윳 짠오차 행정부에서 근무했던 여러 장관들도 포함되었다.
세타는 2024년 4월 내각 개편 중 재무부 장관직에서 물러났다. 그의 후임으로는 그의 고문이자 전 에너지 분야 경영자인 피차이 춘하와치라가 임명되었다.
3.3.2. 국내 정책
세타 총리 재임 기간 동안 태국 경제 활성화와 사회 문제 해결을 위한 다양한 국내 정책이 추진되었다.
3.3.3. 외교 정책 및 국제 관계
세타 총리는 태국의 국제적 위상을 높이고 해외 투자를 유치하기 위해 적극적인 외교 활동을 펼쳤다.


9월 21일, 세타는 뉴욕에서 일론 머스크와 가상 회의를 진행했다. 이 회의는 전기차 산업과 태국에 대한 테슬라의 잠재적 투자에 초점을 맞췄다. 또한 세타는 에스티 로더, 구글, 마이크로소프트와 같은 주요 기업 대표들과 만나 태국에 대한 외국인 투자를 늘리는 방안을 논의했다. 이 회의에서 세타는 자유 무역 협정 측면에서 태국의 위치를 베트남과 비교하며 언급했다. 9월 24일, 세타는 구글, 마이크로소프트, 테슬라로부터 약 50.00 억 USD의 투자를 유치할 것으로 예상한다고 발표했다. 이 성명은 태국에 대한 외국인 투자를 늘리기 위한 그의 노력의 일환으로 이루어졌다.
세타는 또한 9월 22일 뉴욕에서 열린 유엔 총회 제78차 회의에서 첫 연설을 했다. 그의 연설은 다른 국가들과의 협력 및 태국의 민주주의 강화를 강조했다. 같은 날, 그는 뉴욕 증권 거래소 임원들과 만나 정부의 경제 정책을 논의했으며, 거래 세션을 시작하는 전통적인 종 울리기 의식에 참여하며 방문을 마쳤다.
또한 세타는 2025년부터 2027년까지 유엔 인권 이사회의 아세안 후보가 되기 위한 태국의 노력을 적극적으로 이끌었다.
10월 9일, 그는 홍콩 방문을 시작하여 존 리 카치우 홍콩 행정장관을 만났다. 그의 홍콩 방문은 태국에 대한 투자를 장려하기 위한 순방의 일환이었다. 이어서 10월 10일, 세타는 브루나이를 방문하여 이스타나 누룰 이만 궁전에서 하사날 볼키아 술탄의 영접을 받았으며, 양측은 브루나이-태국 관계 강화를 논의했다. 그들은 또한 식량 안보 분야에서의 양국 협력을 논의했으며, 태국은 브루나이에 대한 식량 수출을 늘릴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후 그는 쿠알라룸푸르로 이동하여 안와르 이브라힘 말레이시아 총리와 투자, 무역, 식량, 관광 및 안보에 대한 양자 회담을 가졌으며, 하마스에 억류된 태국인 인질 석방 문제도 논의했다. 10월 12일에는 싱가포르를 방문하여 리셴룽 총리와 재생 에너지, 투자, 식량 안보에 대해 논의했다.
세타는 10월 16일부터 19일까지 중국을 방문하여 베이징에서 열린 일대일로 국제협력 정상포럼에 참석했다. 10월 17일 포럼의 부대 행사에서 그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을 만났다. 그들은 러시아와 태국 간의 무역 및 문화 교류 증진에 대해 논의했다. 세타는 푸틴에게 2024년에 태국을 방문해 달라고 초청하며 "푸틴 대통령은 푸켓을 좋아하고 자주 여행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라고 말했다. 방콕 포스트에 따르면 푸틴은 이 초청을 수락했다. 태국은 국제형사재판소에 관한 로마 규정의 비준국이 아니므로, 2023년 3월 17일 국제형사재판소가 발부한 푸틴에 대한 체포 영장에 따라 푸틴을 체포할 의무가 없다.
10월 29일 라오스 방문 중, 세타는 라오스와 태국 간의 양자 무역을 2025년까지 110.00 억 USD로 늘리는 것을 목표로 하는 논의에 참여했다. 무역 외에도 이 협력의 중요한 측면은 특히 운송 분야의 인프라 개발이다. 핵심 프로젝트는 메콩강을 가로지르는 새로운 철도 건설로, 최소 2026년까지 완료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와 함께 세타와 소넥사이 시판돈 라오스 총리는 새로운 철도 노선의 핵심 구성 요소인 캄사바트 역을 개통했으며, 이 노선은 2024년까지 운영될 예정이어서 국경 간 연결성을 더욱 촉진할 것이다. 세타 행정부의 라오스와의 양자 관계 및 협력 강화를 위한 전략에 따라, 라오스 철도 시스템 개발을 위한 기술 지원에 초점을 맞춘 양해각서가 체결되었다. 이와 함께 세타는 라오스로부터의 청정 에너지 구매를 늘리는 데 관심을 표명했다. 또한 양국은 여섯 번째 우정의 다리를 건설하기로 합의하여 협력 노력을 더욱 공고히 했다.
12월 14일부터 18일까지 일본 공식 방문 중, 세타는 아세안-일본 기념 정상회의에 참석했다. 사업 관계를 증진하기 위해 그는 일본인 사업 여행객에 대한 비자 요건을 일시적으로 면제했다. 일본 정부와의 논의에서는 태국과 일본 간의 협력 강화에 초점이 맞춰졌다. 세타는 아시아 제로 배출 커뮤니티(AZEC) 및 아세안 기후 및 환경 전략 프로그램과 같은 이니셔티브에 대한 지지를 표명했다. 그는 또한 지리적 근접성을 고려하여 미얀마의 평화를 보장하는 데 태국이 주도적인 역할을 할 준비가 되어 있다고 밝혔다.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와의 별도 회의에서는 전기차 부문에서의 잠재적 협력에 대한 논의가 이루어졌다. 이 논의는 한 달 전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린 회의에서 양국 지도자들이 양자 관계를 심화하겠다는 이전 의사를 계속 이어간 것이었다.

2024년 1월 15일부터 19일까지 스위스 다보스에서 열린 2024년 세계 경제 포럼 회의에서 세타는 정부를 대표하여 육교 메가 프로젝트를 홍보했다. 그는 수리야 쭝룽루앙낏 교통부 장관과 판프리 바히타누카라 외교부 장관과 동행했다. 1월 17일, 세타는 '원활한 아세안' 개념을 소개하며, 향후 5~10년 이내에 통일된 관광 목적지를 구상했다. 다보스에서의 세타의 활동에는 아다니 그룹과의 논의가 포함되었으며, 그는 이 그룹이 프로젝트에 상당한 관심을 보였다고 소셜 미디어에 공유했다. 또한 그는 마이크로소프트 공동 창업자 빌 게이츠와 별도 회의를 갖고 태국에 마이크로소프트 데이터 센터를 설립할 가능성을 모색했다. 또 다른 주목할 만한 회의는 두바이 항만 세계 (DP World)의 회장 겸 CEO인 술탄 아흐메드 빈 술라옘과의 만남이었다. 세타는 DP World의 CEO가 육교 프로젝트에 깊은 관심을 표명했으며, 추가 논의 및 현장 조사를 위해 태국에 대표를 파견할 것을 약속했다고 보고했다. 태국으로 돌아온 세타는 회의에서의 만남과 상호 작용이 성공적이었다고 평가하며, 정부 이니셔티브에 대한 긍정적인 국제적 반응을 시사했다.
2024년 1월 25일, 세타는 프랑크발터 슈타인마이어 독일 대통령을 환영하며 그의 행정부에서 중요한 행사를 기록했다. 이 방문은 독일 대통령이 22년 만에 태국을 방문한 것이라는 점에서 주목할 만했다. 1월 24일부터 26일까지 이어진 방문은 무역, 투자, 기후 변화, 직업 교육과 같은 핵심 문제에 초점을 맞췄다. 이 방문 동안 슈타인마이어 대통령은 태국의 민주적 절차를 강화하기 위한 태국 민간 정부의 노력을 칭찬했다. 그는 행정부 출범 초기에는 상당한 변화를 기대할 수 없지만, 초기 발전은 유망하다고 인정했다. 또한 슈타인마이어 대통령은 태국의 전기차 산업에 대한 투자를 늘리겠다는 의지를 표명하며, 태국이 이 부문의 지역 허브가 될 수 있다고 제안했다.
세타는 2024년 2월 4일 스리랑카 콜롬보의 갈레 페이스 그린에서 열린 스리랑카 독립 기념일 행사에 참석했다. 이 방문은 스리랑카 경제 위기로 어려운 시기를 겪고 있는 스리랑카가 태국에 경제 활성화를 위한 지원을 요청한 것에 대한 응답이었다. 스리랑카 대통령 라닐 위크레마싱하와 함께 명예 손님으로 참석한 그는 경제 협력을 촉진하기 위한 자유 무역 협정 (FTA)을 마무리했다. 1950년 이전 협정을 대체하는 이 FTA는 무역 장벽을 줄이고 항공 서비스 분야의 협력을 촉진하는 데 중점을 둔다. 태국에 예상되는 이점으로는 자동차 부품, 섬유, 가전제품, 기계류, 철강 제품, 종이, 가공 식품, 사료 수출 증대가 포함된다. 또한 태국 국립 보석 및 주얼리 당국과 스리랑카 보석 및 주얼리 연구 훈련원 간의 협력을 촉진하기 위한 양해각서가 체결되었다. 태국으로 돌아온 세타는 PTT 공개 회사의 CEO 및 이사회 의장과 논의를 갖고, 태국 스타트업 지원 및 스리랑카 부유식 태양광 발전소 투자에 대한 그들의 지지를 독려했다.
2024년 2월 7일, 훈 마넷 캄보디아 총리가 태국을 방문하여 운송, 무역, 투자, 그리고 오랫동안 교착 상태에 있던 해상 경계 분쟁 지역 내 천연자원 공동 개발에 대한 공식 논의를 가졌다. 이는 훈 마넷의 첫 국가 정상 방문으로, 양국 간의 오랜 유대 관계를 강화하는 것을 목표로 했다. 세타는 양자 회담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며, 태국 내 캄보디아 노동자들에게 공정한 대우와 적절한 경제적 안전망을 보장하겠다는 태국의 약속을 강조했다. 특히 최근 사건에서는 훈 마넷 정부 하에서 체포를 피하기 위해 태국으로 피신했던 캄보디아 야당 인사들과 정부 비판자들이 방콕에서 구금된 사실이 드러났는데, 이는 훈 마넷에 대한 시위를 막으려는 노력의 일환일 수 있다. 훈 마넷은 태국이 자국 문제에 대한 외부 간섭의 기지로 사용되는 것을 막아준 세타에게 감사를 표했다. 공동 기자회견에서 세타와 훈 마넷은 양자 무역액을 2023년 80.00 억 THB에서 다음 해까지 150.00 억 THB로 늘리겠다는 공동 목표를 발표했다. 태국이 수입 에너지에 의존하고 있음을 감안할 때, 태국만의 분쟁 지역 개발을 위해 캄보디아와 협상을 진행하는 데 큰 관심이 있었다. 이 지역에는 약 0.3 조 m3 (11.00 조 ft3)에 달하는 상당한 양의 천연가스와 석유 매장량이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또한 훈 마넷은 라마 10세 국왕을 만나고 태국-캄보디아 비즈니스 포럼에 참여할 계획이었다. 태국과 캄보디아는 5개의 양해각서를 체결했다.
3.4. 총리직 파면
2024년 5월, 군부가 임명한 상원의원 40명은 헌법 제170조 4항 및 5항(내각 장관의 윤리 관련)에 따라 세타와 피찟 추엔반의 해임을 요청하는 사건을 태국 헌법재판소에 제출했으며, 헌법재판소는 이를 수리했다. 이 사건은 세타가 이전에 대법원 관리에게 뇌물을 주려다 징역형을 선고받은 적이 있는 피찟을 총리실 장관으로 임명한 것에 대한 것이었다.
피찟은 5월 21일 사임했다. 8월 14일, 헌법재판소는 세타가 중대한 윤리 위반을 저질렀다는 이유로 그를 해임했다. 세타는 16년 만에 법원에 의해 해임된 네 번째 태국 총리이다. 세타는 이 결정에 놀라움을 표했지만, "존중하겠다"고 말했다.
4. 정치적 입장 및 이념
세타 타위신은 그의 정치적 신념과 이념적 기반을 통해 태국의 주요 사회 문제에 대한 입장을 명확히 했다.
4.1. 사회 문제
세타는 2006년 태국 쿠데타로 해임된 탁신 친나왓 전 총리를 지지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러한 지지는 2010년 그가 로열 방콕 폴로 클럽 축구팀의 수장으로 임명될 당시 탁신의 얼굴이 새겨진 붉은 셔츠를 입고 나타난 것에서 특히 두드러졌다. 세타의 정치적 입장은 당시 쁘라윳 짠오차 총리의 코로나19 범유행 관리 방식에 대한 비판에서도 명백히 드러났다. 또한 그는 2020년부터 2021년까지 발생한 민주화 시위를 지지하며, 유니세프에 정부가 시위대에 대한 폭력을 피하도록 촉구할 것을 요청했다. 2023년 총선 캠페인 동안 세타는 연합태국국가당 및 팔랑쁘라차랏당과의 연립 정부 구성에 대한 꺼림칙함을 공개적으로 표명했다. 그러나 그가 총리로 취임하자 연립 내각에는 이들 정당의 구성원들이 포함되었다.
사회 문제 측면에서 세타는 문화적 자유주의자로 분류된다. 그는 징병제에 반대 입장을 표명했으며, 환경 지속가능성과 성소수자 인권의 옹호자였다. 이러한 진보적인 입장에도 불구하고, 세타는 태국 왕실모독죄 법률(태국 군주에 대한 명예훼손, 모욕, 위협을 범죄화하는 법률) 변경 제안에 대해 꺼려하는 모습을 보였는데, 이는 프아타이당이 다른 정당들과 형성한 연립 정부 내에서 지지를 유지하기 위한 결정으로 해석된다. 그는 또한 2024년 대마초를 다시 범죄화하기로 결정했다.
4.2. 경제 철학
2023년 FAROSE와의 인터뷰에서 세타는 경제 문제에 대한 자신의 입장을 명확히 했다. 그는 "공감하는 자본주의"를 신봉한다고 밝혔다. 최근 정치에 입문한 전 CEO이자 사업가로서, 그는 자본주의와 빈곤층에 대한 공감이 함께 갈 수 있다고 믿는다. 그는 "경제적 격차와 사회적 불평등에서 비롯되는 다양한 문제들은 공감과 이해를 바탕으로 논의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프아타이당과 함께 그는 최저 임금 인상과 1.00 만 THB '디지털 지갑' 사업 시행을 통해 경제를 활성화하고 빈곤과 싸우겠다고 약속했다.
5. 개인 생활
세타 타위신은 그의 별명, 신장, 가족 관계, 재산 규모, 그리고 소셜 미디어 활동 등 다양한 개인적인 면모를 가지고 있다.
5.1. 가족 및 결혼
세타의 별명은 '닛'(นิด닛태국어)이다. 그는 팍피라이 타위신과 결혼했으며, 그녀는 사업가이다. 그들에게는 나팟 타위신과 와랏 타위신이라는 두 아들과 차난다 타위신이라는 딸이 있다. 그의 어머니 촛처이는 2024년 7월 21일에 사망했으며, 7월 30일 국왕 라마 10세의 왕실 후원 목욕 의례가 거행되었고, 장례식은 8월 6일에 치러졌다.
5.2. 취미 및 관심사
그는 루이비통과 같은 고전적인 여행 트렁크 수집가이다. 세타는 또한 리버풀 FC의 서포터이며, 태국에서 축구 선수들을 훈련시키는 산시리 아카데미에 기여하고 있다. 세타는 X (구 트위터)를 포함한 소셜 미디어를 자주 사용하며, 자신의 계정을 통해 활발하게 소식을 게시한다.
5.3. 재산 및 소득
2023년 12월 28일, 태국 국가부패방지위원회 (NACC)는 그의 재산이 약 6.59 억 THB에 달하며, 5000.00 만 THB 상당의 1963년식 애스턴 마틴 DB5를 소유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의 연간 수입은 약 1.53 억 THB였다.
6. 훈장 및 표창
세타 타위신은 태국 정부로부터 다음과 같은 훈장을 수여받았다.
최고 영예 코끼리 훈장 특급 가장 고귀한 왕관 훈장 특급 - 2024년: 최고 영예 코끼리 훈장 특급 (Knight Grand Cordon of the Most Exalted Order of the White Elephant)
- 2024년: 가장 고귀한 왕관 훈장 특급 (Knight Grand Cordon of the Most Noble Order of the Crown of Thailand)
7. 평가 및 논란
세타 타위신은 총리 재임 기간 동안 여러 긍정적인 평가를 받았으나, 동시에 다양한 비판과 논란에 직면하기도 했다.
7.1. 긍정적 평가
세타는 태국 경제를 활성화하고 국민의 삶의 질을 향상시키기 위한 노력을 인정받았다. 특히 그의 정부는 관광 산업 활성화에 주력하여, 중국, 카자흐스탄, 러시아, 인도, 대만 등 여러 국가에 대한 비자 면제를 확대함으로써 팬데믹 이후 항공편 도착률을 2019년 수준의 80% 이상으로 회복시키는 데 기여했다. 또한 그는 태국을 콘서트의 지역 허브로 만들겠다고 공언하며 문화 산업 육성 의지를 보였다.
경제 정책 면에서는 '공감하는 자본주의'를 표방하며 경제 불평등 해소와 빈곤 퇴치를 위한 디지털 지갑 사업과 최저 임금 인상을 추진했다. 전기차 산업 육성에도 적극적으로 나서 테슬라, 프로톤, 지리 등 해외 기업의 투자를 유치하고 태국 내 리튬 광상 발견을 통해 전기차 생산 허브로서의 잠재력을 높였다.
외교적으로는 유엔 총회에서 태국의 민주주의 강화와 국제 협력을 강조하며 국제 사회에서의 위상을 높였다. 미국, 중국, 일본, 독일 등 주요국 정상 및 기업인들과 만나 투자 유치와 양자 관계 강화에 힘썼으며, 아세안 국가들과의 무역 및 인프라 협력도 활발히 추진했다. 특히 스리랑카와의 자유 무역 협정 체결은 경제 외교의 성과로 평가된다.
사회 문제에 대한 그의 입장도 긍정적으로 평가된다. 그는 교육 불평등 해소와 중도 탈락 학생 수 감소를 위한 정책을 추진했으며, 환경 문제 해결을 위해 저탄소 사회로의 전환과 미세먼지 문제 해결을 위한 노력을 기울였다. 징병제 반대, 성소수자 인권 지지 등 진보적인 사회적 입장을 표명하기도 했다.
7.2. 비판 및 논란
세타의 사업 및 정치 경력 전반에 걸쳐 여러 비판과 논란이 제기되었다. 사업가 시절, 2012년 잉락 친나왓 총리와의 비공식 회동은 정치적 유착 의혹을 낳았으며, 2019년 토지 매입과 관련해서는 탈세 의혹이 제기되어 명예훼손 소송으로 이어지기도 했다.
정치적으로는 2023년 총선 이전 군부 관련 정당과의 연립 정부 구성을 배제하겠다고 공언했으나, 실제로는 이들 정당을 포함한 연립 정부를 구성하여 지지자들로부터 비판을 받았다. 그는 이를 "필요한 전략적 움직임"이라고 설명했지만, 이는 정치적 신뢰도에 타격을 주었다.
총리 재임 중 추진한 디지털 지갑 사업은 막대한 재원 조달 방식(특히 5000.00 억 THB 차입 계획)과 경제적 효과에 대한 전문가들의 회의적인 시각으로 인해 논란의 중심에 섰다. 또한 태국 중앙은행과의 금리 인하를 둘러싼 갈등은 정부와 중앙은행 간의 정책 조율 문제점을 드러냈다.
대마초 정책에 있어서는 비범죄화를 추진했던 이전 정부와 달리, 의료용을 제외한 전면적인 재범죄화를 추진하며 기존 입장을 번복하여 사회적 논쟁과 연립 정부 내 갈등을 야기했다. 환경 분야에서는 치앙마이 행정 법원으로부터 전년도 PM2.5 미세먼지 문제에 대한 정부의 부주의한 대응으로 유죄 판결을 받기도 했다.
결정적으로, 2024년 8월 14일 헌법재판소는 그가 피찟 추엔반을 총리실 장관으로 임명하는 과정에서 헌법상 윤리 규정을 위반했다고 판단하여 총리직에서 해임했다. 이는 그가 총리로서의 윤리적 책임에 대한 비판을 피할 수 없게 만들었다.
8. 영향력
세타 타위신은 태국의 경제, 사회, 정치 전반에 걸쳐 다양한 영향을 미쳤다.
8.1. 후대에 미친 영향
세타는 태국 경제의 활성화와 국제적 위상 제고에 기여하고자 노력했다. 그의 재임 기간 동안 추진된 관광 활성화 정책, 전기차 산업 육성, 인프라 투자 유치 노력 등은 태국의 미래 경제 성장 동력을 마련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특히 동남아시아 지역 내에서 태국의 경제적 리더십을 강화하려는 그의 시도는 향후 태국의 대외 관계 및 경제 정책 방향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또한 그는 '공감하는 자본주의'라는 경제 철학을 제시하며 경제 불평등 해소와 서민층 지원에 대한 관심을 표명했다. 이는 단순히 경제 성장을 넘어 사회적 포용을 강조하는 새로운 정책 방향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비록 디지털 지갑 사업이 논란에 휩싸였지만, 대규모 현금 지급을 통한 경기 부양 시도 자체는 향후 태국 정부의 복지 및 경제 정책 논의에 중요한 선례를 남겼다.
정치적으로는 군부와 연립 정부를 구성하게 된 과정에서 정치적 타협의 현실을 보여주었지만, 한편으로는 민주화 시위를 지지하고 징병제 반대, 성소수자 인권 옹호 등 진보적인 사회적 입장을 표명하며 태국 사회의 다양한 목소리를 대변하려는 노력을 보였다. 그의 총리직 파면은 태국 정치에서 법적, 윤리적 기준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부각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9. 관련 항목
- 태국의 총리
- 프아타이당
- 산시리
- 태국 총선
- 세타 내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