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세인트루시아는 카리브해 동쪽에 위치한 섬나라로, 윈드워드 제도에 속한다. 수도는 캐스트리스이며, 국토 면적은 약 617 km2이고, 인구는 2018년 기준 약 18만 명이다. 화산섬의 지형적 특성을 지녀 산지가 많으며, 피톤즈는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으로 지정되어 있다. 열대성 해양성 기후로 연중 온화하며, 건기와 우기가 뚜렷하다.
역사적으로는 아라와크족과 카리브족 원주민이 거주했으며, 이후 유럽 열강, 특히 프랑스와 영국의 치열한 쟁탈전 끝에 1814년 영국의 식민지가 되었다. 1979년 2월 22일 영연방의 일원으로 독립하였으며, 입헌군주제와 의원내각제를 채택하고 있다. 국가원수는 영국 국왕이며, 총독이 이를 대리한다.
경제는 전통적으로 바나나와 같은 농업에 의존했으나, 현재는 관광업이 주요 수입원이다. 영어가 공용어이지만, 프랑스어 기반의 세인트루시아 크레올어(파투아)가 널리 사용된다. 주민의 대다수는 아프리카계이며, 로마 가톨릭이 주요 종교이다. 노벨상 수상자인 아서 루이스(경제학)와 데릭 월컷(문학)을 배출한 국가이기도 하다.
2. 어원
세인트루시아라는 국가명은 기독교의 성인인 시라쿠사의 성 루치아(Saint Lucy of Syracuse, 283년경 ~ 304년경)의 이름에서 유래했다. 전설에 따르면, 프랑스 선원들이 성 루치아의 축일인 12월 13일에 이 섬에 난파하여 그녀를 기리기 위해 섬 이름을 지었다고 한다. 세인트루시아는 여성의 이름으로 명명된 두 개의 주권 국가 중 하나이며(다른 하나는 아일랜드로, 여신의 이름을 땄다), 역사적 실존 여성의 이름을 딴 유일한 국가이다.
그러나 1520년 바티칸에 있는 지구본에는 이 섬이 '산크타 루시아'(Sancta Lucia)로 표시되어 있어, 초기 스페인 탐험가들이 명명했을 가능성도 제기된다.
유럽인 도착 이전, 원주민들은 이 섬을 다르게 불렀다. 서기 200년경 아라와크족은 이 섬을 '이과나의 섬'이라는 뜻의 '루아날라오'(Louanalao루아날라오아라와크어)라고 불렀다. 이후 서기 800년경 도착한 카리브족은 '이과나가 있는 곳'이라는 뜻의 '헤와노라'(Hewanorra헤와노라카리브어)라고 불렀다.
3. 역사
세인트루시아의 역사는 원주민의 정착에서 시작하여 유럽 열강의 식민 통치, 그리고 독립과 현대 국가로의 발전을 거쳐왔다. 이 과정에서 프랑스와 영국 간의 반복적인 영유권 다툼이 섬의 정체성 형성에 큰 영향을 미쳤다.
3.1. 콜럼버스 이전 시기
세인트루시아에 처음으로 정착한 것으로 입증된 주민은 아라와크족으로, 이들은 기원후 200년에서 400년경 남아메리카 북부에서 건너온 것으로 추정된다. 섬 곳곳에서 발견되는 그들의 토기 유물들이 이를 뒷받침한다. 아라와크족은 평화로운 농경 민족이었다.
그러나 기원후 800년경, 보다 호전적인 카리브족(칼리나고족)이 섬에 도착하여 아라와크족 남성들을 살해하고 여성들을 흡수하며 섬을 장악했다. 카리브족은 뛰어난 항해술과 전투 기술을 바탕으로 소앤틸리스 제도 여러 섬에 걸쳐 세력을 확장했다. 유럽인들이 도착했을 당시 세인트루시아의 주된 거주민은 이들 카리브족이었다.
3.2. 유럽인의 탐험과 식민지화 초기
크리스토퍼 콜럼버스가 1502년 그의 네 번째 항해 중 세인트루시아 섬을 목격했을 가능성이 있으나, 그의 항해일지에는 섬에 대한 언급이 없다. 후안 데 라 코사는 1500년 자신의 지도에 이 섬을 '엘 팔콘'(El Falcon엘 팔콘스페인어)으로, 남쪽의 다른 섬을 '라스 아구하스'(Las Agujas라스 아구하스스페인어)로 표기했다. 1511년 스페인의 왕령(cédula)에는 이 섬이 스페인 영토 내에 언급되어 있으며, 1520년 바티칸에서 제작된 지구본에는 '산크타 루시아'로 표시되어 있다.
1550년대 후반, 프랑스 해적 프랑수아 르 클레르(나무 다리 때문에 '잠브 드 부아'Jambe de Bois잠브 드 부아프랑스어로 알려짐)는 피전섬에 캠프를 차리고 지나가는 스페인 선박을 공격했다. 1605년, 영국 선박 '올리프 블로섬'(Oliphe Blossome올리프 블로섬영어)호가 가이아나로 가던 중 항로를 이탈하여 세인트루시아에 도착했고, 67명의 영국인 식민지 개척자들이 처음에는 카리브족 추장 안토니의 환영을 받으며 정착을 시작했다. 그러나 카리브족 추장 아우그라우마트의 계속된 공격으로 1605년 9월 26일까지 단 19명만이 살아남았고, 생존자들은 섬을 떠났다. 영국은 1638년 다시 정착을 시도했으나 카리브족의 적대감은 여전했다. 결국 1650년 프랑스가 성공적으로 섬의 영유권을 주장했고, 1660년 카리브족과 조약을 체결했다. 1664년, 세인트키츠 주지사 토머스 워너 경의 아들 토머스 워너가 영국을 위해 세인트루시아를 점령했으나, 영국인들은 1666년 다시 도주했고, 브레다 조약 체결 후 프랑스가 섬의 완전한 통제권을 얻었다. 세인트루시아는 1674년 마르티니크의 속령으로서 공식적인 프랑스 왕령 식민지가 되었다.
3.3. 18~19세기
노예제를 기반으로 한 설탕 산업이 발전하면서 영국과 프랑스 모두에게 세인트루시아는 매력적인 섬이 되었다. 18세기 동안 섬의 소유권은 12번이나 바뀌거나 중립 지역으로 선포되었지만, 프랑스인 정착촌은 그대로 남아 18세기 내내 사실상 프랑스 식민지였다.
1722년, 영국 조지 1세는 세인트루시아와 세인트빈센트를 제2대 몬태규 공작에게 하사했다. 몬태규 공작은 상선 선장이자 모험가인 너새니얼 유링을 부총독으로 임명했다. 유링은 7척의 배를 이끌고 섬으로 가 프티 카레나주에 정착지를 건설했으나, 영국 군함의 충분한 지원을 받지 못해 그와 새로운 식민지 주민들은 곧 프랑스군에 의해 쫓겨났다.
7년 전쟁 중 영국은 세인트루시아를 1년간 점령했지만, 1763년 파리 조약에 따라 프랑스에 반환했다. 다른 섬의 영국인이나 네덜란드인처럼, 1765년 프랑스인들은 대규모 플랜테이션에서 사탕수수를 상품 작물로 재배하기 시작했다. 영국은 1778년 다시 섬을 점령했다.
1782년부터 1803년까지 섬의 통제권은 여러 차례 바뀌었다. 1791년 1월, 프랑스 혁명 중 국민의회는 혁명 철학을 전파하기 위해 4명의 '국민위원'(commissaires)을 세인트루시아에 파견했다. 1791년 8월, 노예들이 농장을 버리기 시작했고 장조제프 수르바데르 드 지마 총독은 도주했다. 1792년 12월, 장바티스트 레몽 드 라크로스 중위가 혁명 전단지를 가지고 도착했고, 가난한 백인들과 유색인 자유민들은 '애국자'(patriots)로서 무장하기 시작했다. 1793년 2월 1일, 프랑스는 영국과 네덜란드에 선전포고했고, 니콜라 자비에 드 리카르 장군이 총독으로 부임했다. 국민공회는 1794년 2월 4일 노예제를 폐지했다. 1794년 4월 1일, 세인트루시아는 존 저비스 부제독이 이끄는 영국 원정군에 의해 점령되었다. 모른포춘은 '포트 샬럿'으로 개명되었다. 곧, 프랑스 혁명군 병사들과 마룬들의 연합군인 '숲 속의 프랑스군'(L'Armée Française dans les Bois라르메 프랑세즈 당 레 부아프랑스어)이 반격을 시작하여 제1차 브리건드 전쟁(First Brigand War)이 발발했다.
얼마 후, 최근 발발한 프랑스와의 전쟁의 일환으로 영국이 섬을 침공했다. 1795년 2월 21일, 명목상 빅토르 위그의 지휘 하에 있던 프랑스군은 뷰포트와 라봇에서 영국군 1개 대대를 격파했다. 1796년, 분쟁의 일환으로 캐스트리스가 불탔다. 제27 이니스킬링 보병연대를 이끈 존 무어 장군은 이틀간의 격전 끝에 1796년 포트 샬럿을 탈환했다. 영예의 표시로, 이니스킬링 연대의 군기는 유니언 잭으로 교체되기 전 한 시간 동안 모른포춘의 점령된 요새 깃대에 게양되었다. 요새 점령 후, 무어의 상관인 랠프 애버크롬비는 섬을 떠나 무어에게 영국 주둔군 지휘를 맡겼다. 무어는 황열병에 걸려 1798년 이전에 영국으로 돌아갈 때까지 이 직책을 유지했다.
1803년 영국은 섬의 통제권을 되찾았다. '숲 속의 프랑스군'의 많은 구성원들은 빽빽한 열대우림으로 도망쳐 포획을 피하고 마룬 공동체를 설립했다.
섬에서의 노예제는 잠시 지속되었으나, 영국 내에서는 반노예제 정서가 고조되고 있었다. 영국은 1807년 노예무역법으로 노예무역을 폐지하면서 백인이든 유색인이든 누구든 노예 수입을 중단시켰다.
프랑스와 영국은 나폴레옹 전쟁을 종식시킨 1814년 파리 조약의 일환으로 영국이 세인트루시아를 확보할 때까지 계속해서 영유권을 다투었다. 그 후 세인트루시아는 영국령 윈드워드 제도 식민지 중 하나로 간주되었다.
섬의 노예제는 대영제국 전역에서와 마찬가지로 1833년 노예제 폐지법에 따라 1834년에 폐지되었다. 폐지 후 모든 이전 노예들은 자유라는 개념에 익숙해지도록 4년간의 "견습" 기간을 거쳐야 했다. 이 기간 동안 그들은 이전 주인들을 위해 주당 근무 시간의 최소 4분의 3을 일했다. 완전한 자유는 1838년 영국에 의해 정식으로 부여되었다. 이때까지 아프리카계 민족이 유럽계 배경의 사람들보다 훨씬 많았다. 카리브계 후손들도 섬에서 소수 민족을 구성했다.
3.4. 20세기
세인트루시아 최초의 대의 정부는 1924년에 도입되었고, 첫 선거는 1925년에 실시되었다. 많은 세인트루시아인들이 제2차 세계 대전에 참전했으며, 1942년 3월 9일 독일 U보트가 캐스트리스 항구에서 영국 선박 두 척을 공격하여 침몰시킨 카리브해 전투 중에는 전쟁이 섬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기도 했다. 미국은 전쟁 중 이 섬을 군사 거점으로 사용했으며, 그로스이슬렛에 제2 해군 기지를 건설하고 현재의 헤와노라 국제공항을 미국 공군 기지로 사용했다.
보통선거권은 1951년에 도입되었고 같은 해에 선거가 치러졌다. 1958년 세인트루시아는 서인도 연방에 가입했지만, 이 연방은 불과 몇 년 후인 1962년에 해체되었다. 1967년 세인트루시아는 서인도 연합주의 6개 회원국 중 하나가 되어 내부 자치권을 갖게 되었다. 1979년 2월 22일 존 콤프턴 경이 이끄는 통일노동자당 하에 평화적으로 독립을 달성했으며, 섬은 영연방 왕국 내에 남아 당시 여왕 엘리자베스 2세를 군주로, 현지에서는 총독이 대표하는 체제를 유지했다.
3.5. 독립 이후
나라를 독립으로 이끌었음에도 불구하고, 콤프턴의 초대 총리 임기는 불과 몇 달 만에 끝났으며, 1979년 세인트루시아 총선에서 앨런 루이지가 이끄는 세인트루시아 노동당(SLP)에 패배했다. 1980년 허리케인 앨런이 섬을 강타하여 많은 기반 시설을 파괴하고 경제 성장을 저해했다. 노동당 정부 임기 동안 많은 불안정 끝에 1982년 세인트루시아 총선 이후 콤프턴이 다시 집권했다. 콤프턴의 두 번째 총리 임기 동안 바나나 수출이 크게 증가하여 국가의 주요 수입원이 되었다. 기반 시설이 개선되었고 교육이 농촌 지역으로 확대되었다. 세인트루시아는 미국의 그레나다 침공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
1990년대와 2000년대에는 케니 앤서니의 지도 하에 국가 경제가 농업에서 관광업으로 전환되기 시작했다. 2001년 미국의 9·11 테러로 세인트루시아인 2명이 사망했고 경제 침체를 야기했지만, 대침체까지는 완만한 성장이 지속되었다. 대침체와 2010년 허리케인 토머스의 상륙은 2010년대 초반 경제 성장을 둔화시켰으나, 2010년대 후반에는 경제가 회복되어 코로나19 범유행이 전 세계적으로 주요 경제 문제를 일으킨 2020년까지 위축을 피했다.
2016년 6월, 앨런 채스터넷이 이끄는 통일노동자당(UWP)은 2016년 세인트루시아 총선에서 17석 중 11석을 차지하여 현직 총리 케니 앤서니의 세인트루시아 노동당(SLP)을 축출했다. 그러나 세인트루시아 노동당은 2021년 7월 2021년 세인트루시아 총선에서 승리하여 당수인 필립 J. 피에르가 독립 이후 세인트루시아의 아홉 번째 총리가 되었다.
4. 지리
세인트루시아는 카리브해 동부에 위치한 화산섬으로, 윈드워드 제도의 일부를 이룬다. 북쪽으로는 마르티니크, 남쪽으로는 세인트빈센트 그레나딘, 북서쪽으로는 바베이도스와 마주하고 있다. 국토 면적은 617 km2이다.

화산섬인 세인트루시아는 매우 산이 많으며, 가장 높은 지점은 해발 950 m의 기미산이다. 두 개의 산악 화산 플러그인 피톤즈는 섬의 가장 유명한 랜드마크를 형성한다. 세인트루시아는 또한 세계 유일의 드라이브인 화산인 술퍼 스프링스의 본고장이기도 하다. 해안에서 떨어진 곳에는 여러 작은 섬들이 있으며, 그 중 가장 큰 것은 섬의 남동쪽에 위치한 마리아 제도이다.
세인트루시아는 북위 14도, 서경 61도에 위치한다. 인구는 해안가에 집중되는 경향이 있으며, 내륙은 빽빽한 숲으로 인해 인구 밀도가 낮다. 도마뱀의 일종인 아놀리스 루시아에와 보아과 뱀의 일종인 보아 오로피아스를 포함한 많은 종이 이 섬의 고유종이다.
세인트루시아에는 윈드워드 제도 습윤림, 리워드 제도 건조림, 윈드워드 제도 건조림, 윈드워드 제도 건조 관목림, 소앤틸리스 맹그로브 등 5개의 육상 생태 지역이 있다. 2019년 산림 경관 보전 지수 평균 점수는 6.17/10점으로, 172개국 중 세계 84위를 차지했다.
4.1. 기후
세인트루시아는 열대 기후, 구체적으로는 쾨펜 기후 구분 상 열대 우림 기후(Af)를 가지고 있으며, 북동 무역풍에 의해 완화된다. 건기는 12월 1일부터 5월 31일까지이며, 우기는 6월 1일부터 11월 30일까지이다. 현지인들은 우기를 허리케인 시즌이라고도 부른다.
평균 낮 기온은 약 30 °C이고, 밤 기온은 약 24 °C이다. 적도에 상당히 가깝기 때문에 섬의 기온은 겨울과 여름 사이에 크게 변동하지 않는다. 연평균 강수량은 해안가에서는 1300 mm에서 산악 열대우림에서는 3810 mm에 이른다.
월 | 1월 | 2월 | 3월 | 4월 | 5월 | 6월 | 7월 | 8월 | 9월 | 10월 | 11월 | 12월 | 연간 |
---|---|---|---|---|---|---|---|---|---|---|---|---|---|
평균 최고 기온 (°C) | 29 | 29 | 29 | 30 | 31 | 31 | 31 | 31 | 31 | 31 | 30 | 29 | 30.2 |
일평균 기온 (°C) | 26 | 26 | 26 | 27 | 28 | 28 | 28 | 28 | 28 | 28 | 27 | 26 | 27.2 |
평균 최저 기온 (°C) | 23 | 23 | 24 | 24 | 25 | 25 | 25 | 25 | 25 | 25 | 24 | 24 | 24.3 |
평균 강수량 (mm) | 125 | 95 | 75 | 90 | 125 | 200 | 245 | 205 | 225 | 260 | 215 | 160 | 2,020 |
평균 강수일수 | 14 | 9 | 10 | 10 | 11 | 15 | 18 | 16 | 17 | 20 | 18 | 16 | 174 |
월평균 일조시간 | 248 | 226 | 248 | 240 | 248 | 240 | 248 | 248 | 240 | 217 | 240 | 248 | 2,891 |
4.2. 지질


세인트루시아의 지질은 크게 세 지역으로 나눌 수 있다. 가장 오래된 1,600만~1,800만 년 전의 화산암은 캐스트리스에서 북쪽으로 노출되어 있으며, 침식된 현무암과 안산암 중심부로 구성되어 있다. 섬의 중앙 고지대는 1,040만~100만 년 전의 분리된 안산암 중심부로 이루어져 있으며, 섬의 남서부 저지대에는 술프리에르 화산 중심부(SVC)의 최근 활동이 나타난다. 이 SVC는 콸리부 칼데라 함몰지를 중심으로 하며, 화쇄류 퇴적물, 용암류, 돔, 암괴-화산재류 퇴적물, 폭발 분화구를 포함한다. 이 함몰지의 경계에는 술프리에르 마을, 타박산, 기미산, 모르네 보닌, 그로스 피톤이 포함된다. 직경은 10 km이며, 서쪽 부분은 그레나다 분지를 향해 열려 있고, 함몰지는 최근 10만 년 전에 형성되었다. 이 함몰지는 특히 술퍼 스프링스와 술프리에르 이스테이츠의 지열 활동, 1776년의 수증기 폭발, 최근의 지진 활동(2000년~2001년)으로 유명하다.
함몰지 북동쪽에 있는 침식된 안산암질 성층화산에는 기미산, 피톤 세인트 에스프리, 그랑 마가쟁산 등이 있으며, 모두 100만 년 이상 된 것이다. 이 화산들에서 나온 안산암질 및 데사이트질 화쇄류는 모르네 타박 돔(53만 2천 년 전), 모르네 보닌 돔(27만 3천 년 전), 벨뷰(26만 4천 년 전)에서 발견된다. 콸리부 함몰지 형성으로 인한 산사태 퇴적물은 근해와 라봇, 플레장스, 쿠바릴의 거대한 암괴에서 발견된다. 프티 피톤(10만 9천 년 전)과 그로스 피톤(7만 1천 년 전)의 데사이트질 돔은 이후 함몰지 바닥으로 분출되었으며, 앙스 존(10만 4천 년 전)과 라 푸앵트(5만 9천8백 년 전) 화쇄류가 동반되었다. 이후의 화쇄류에는 부석이 풍부한 벨퐁과 앙스 누아르(2만 년 전)가 포함된다. 마지막으로, 테르 블랑슈(1만 5천3백 년 전)와 벨퐁(1만 3천6백 년 전)의 데사이트질 돔이 함몰지 내에 형성되었다.
4.3. 동식물
세인트루시아는 다양한 생태계를 보유하고 있으며, 대표적인 고유종으로는 도마뱀의 일종인 아놀리스 루시아에(Anolis luciae)와 보아뱀과에 속하는 세인트루시아 보아(Boa orophias) 등이 있다. 섬의 약 77%는 숲으로 덮여 있으며, 윈드워드 제도 습윤림, 리워드 제도 건조림, 윈드워드 제도 건조림, 윈드워드 제도 건생 관목림, 소앤틸리스 맹그로브 등 다섯 가지 주요 육상 생태지역으로 구분된다. 해안가에는 맹그로브 숲, 해초 군락, 산호초가 발달해 있으며, 특히 남동부 해안의 사반 만(Savannes Bay)과 남부의 만코테 맹그로브(Mankòtè Mangrove) 지역은 국제적으로 중요한 습지로서 람사르 협약에 등록되어 보호받고 있다. 이들 해역에는 미국가재(Panulirus argus) 등이 서식한다. 자연보호구역으로는 피존섬 국립공원, 마리아 제도 자연보호구역 등이 있으며, 이들은 세인트루시아의 독특한 생물 다양성 보전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2019년 산림경관 완전성 지수(Forest Landscape Integrity Index)에서 세인트루시아는 평균 6.17/10점을 받아 172개국 중 84위를 기록했다.
5. 정치


세인트루시아는 대부분의 카리브해 국가들과 마찬가지로 단일 국가이며 의원내각제를 채택하고 있다. 영연방 왕국이자 입헌군주제 국가로, 현재 국왕은 찰스 3세이며, 섬에서는 총독(현재 에롤 찰스)이 국왕을 대리한다. 총리(현재 필립 J. 피에르)는 행정부 수반이자 내각의 수장이며, 일반적으로 하원에서 다수당의 대표가 맡는다. 의회는 상원과 하원의 양원제로 구성된다.

5.1. 행정부
세인트루시아의 행정부는 영국 국왕을 국가원수로 하며, 국왕을 대리하는 총독이 임명된다. 총독은 의례적인 역할을 수행하며, 실질적인 행정권은 총리가 이끄는 내각에 있다. 총리는 하원 선거에서 다수석을 차지한 정당의 대표가 총독에 의해 임명되며, 각료들은 총리의 제청으로 총독이 임명한다. 현재 총독은 에롤 찰스이며, 총리는 필립 J. 피에르이다.
5.2. 입법부
세인트루시아의 입법부는 양원제로, 상원(Senate)과 하원(House of Assembly)으로 구성된다. 상원은 총 11석으로, 총독이 6석, 야당 대표가 3석, 종교계 및 재계 등 사회단체의 추천으로 2석을 임명한다. 하원은 총 17석으로, 소선거구제를 통해 직접선거로 선출된다. 상원과 하원 모두 임기는 5년이다. 입법 과정은 하원에서 법안이 발의되어 통과된 후 상원의 심의를 거쳐 총독의 재가를 받으면 법률로 공포된다. 의회는 법률 제정, 예산 심의 및 승인, 정부 감독 등의 주요 권한을 가진다. 주요 정당으로는 보수 성향의 통일노동자당(UWP)과 사회민주주의 성향의 세인트루시아 노동당(SLP)이 있으며, 이 두 정당이 정치를 주도하는 양당제 형태를 보인다.
5.3. 사법부
세인트루시아의 사법 시스템은 동카리브 대법원(Eastern Caribbean Supreme Court, ECSC)을 중심으로 구성된다. 동카리브 대법원은 동카리브 국가 기구(OECS) 회원국들의 공동 상소 법원으로, 세인트루시아를 포함한 6개의 독립 국가와 3개의 영국 해외 영토를 관할한다. 세인트루시아 내에는 치안 법원(Magistrate's Court), 고등 법원(High Court), 항소 법원(Court of Appeal)이 있으며, 이들은 ECSC의 일부이다. 법률 체계는 영미법(보통법)과 대륙법(민법)의 요소를 결합한 혼합 법체계를 특징으로 한다. 이는 프랑스 식민 통치 시기에 도입된 민법전(1867년 세인트루시아 민법전은 1866년 퀘벡 민법전에 기초)과 이후 영국 통치 시기 도입된 영미법의 영향을 모두 받았기 때문이다. 최종 상소 법원은 과거 영국 추밀원 사법위원회였으나, 2023년 헌법 개정을 통해 카리브 사법재판소(Caribbean Court of Justice, CCJ)로 변경되었다.
5.4. 행정 구역
세인트루시아는 10개의 쿼터(quarter) 또는 행정구로 구성된다. 이 구역들은 프랑스 식민 통치 시절에 설정되고 명명되었으며, 영국은 그 명칭을 영어식으로 바꾸어 유지했다. 면적과 인구 모두에서 가장 큰 쿼터는 수도 캐스트리스가 위치한 캐스트리스 쿼터이다. 10개 쿼터는 다음과 같다 (알파벳 순):
- 앙스라레(Anse la Raye Quarter)
- 캐너리스(Canaries Quarter)
- 캐스트리스(Castries Quarter)
- 슈아절(Choiseul Quarter)
- 데네리(Dennery Quarter)
- 그로스이슬렛(Gros Islet Quarter)
- 라보리(Laborie Quarter)
- 미쿠드(Micoud Quarter)
- 술프리에르(Soufrière Quarter)
- 뷰포트(Vieux Fort Quarter)
수도 캐스트리스는 국가의 주요 항구이자 상업 중심지이며, 정부 청사와 주요 금융 기관들이 밀집해 있다. 그로스이슬렛 쿼터는 관광지로 유명하며, 특히 로드니베이 지역에 리조트와 마리나가 발달해 있다. 술프리에르 쿼터는 피톤즈와 술퍼 스프링스 등 주요 자연 명소가 위치한 곳이다. 뷰포트 쿼터에는 헤와노라 국제공항이 있어 국가의 관문 역할을 한다.
5.5. 법률 및 치안
세인트루시아는 민법과 영미법 요소가 혼합된 법체계를 가지고 있다. 1867년의 세인트루시아 민법은 1866년 퀘벡 민법에 기초하며, 영국 보통법 스타일의 입법으로 보완되었다. 주요 형사법 및 민사법 관련 사항은 영국법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최근 몇 년간 세인트루시아의 살인율은 기록적으로 높은 수준에 도달했다. 2021년에는 75건의 살인 사건이 발생하여 2020년의 55건에 비해 34.5% 증가했다. 2021년은 역사상 가장 많은 살인 사건과 가장 높은 살인율(인구 10만 명당 40건)을 기록한 해였다. 일본 외무성 자료에 따르면, 세인트루시아의 치안은 카리브해 국가 중 비교적 양호한 편으로 평가되지만, 일본에 비하면 범죄 발생률이 높으며 특히 강도 등 절도 사건이 많이 발생한다. 최근에는 흉악 범죄 증가가 우려되며, 특히 총기 확산으로 강도 및 성범죄에 총기가 사용되는 비율이 늘고 있어 현지 경찰이 경계를 강화하고 있다. 또한, 불법 약물 및 총기 관련 범죄로 검거되는 사례가 증가하고 있으며, 해질녘 해변이나 인적이 드문 곳에 흉기를 소지한 약물 중독자가 출몰하는 경우도 있어 주의가 요구된다.
경찰 조직은 왕립 세인트루시아 경찰대(Royal Saint Lucia Police Force, RSLPF)가 치안 유지를 담당하며, 이 안에는 특수임무부대(SSU)와 해안경비대가 포함되어 있다.
5.6. 대외 관계
세인트루시아는 카리브 공동체(CARICOM), 동카리브 국가 기구(OECS), 미주 기구(OAS), 프랑코포니의 정회원국이다. 또한 1979년 9월 18일 국제 연합(UN)의 152번째 회원국이 되었다.
영연방 왕국으로서 영국, 캐나다와 비교적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프랑스는 세인트루시아가 마르티니크와 국경을 접하고 있어 주요 동맹국 중 하나이다. 미국은 섬의 가장 큰 무역 파트너이며, 세인트루시아는 1983년 미국의 그레나다 침공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했고, 침공을 규탄하는 결의안에 반대표를 던졌다.
세인트루시아는 2007년 중화민국(대만)과 외교 관계를 복원하고 중화인민공화국과는 단교하였다. 대한민국과는 1979년에 수교하였으며,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과도 같은 해에 수교하여 남북한 동시 수교국이다. 주 도미니카 공화국 대한민국 대사관이 세인트루시아를 겸임하고 있다.
5.7. 군사
세인트루시아는 정규군을 보유하고 있지 않다. 국가 방위 및 안보는 왕립 세인트루시아 경찰대(Royal Saint Lucia Police Force) 내의 특수부대인 특수임무부대(Special Service Unit, SSU)와 해안경비대(Coast Guard)가 담당한다. 이들은 내부 치안 유지뿐 아니라 국경 수비, 마약 밀수 단속, 수색 및 구조 임무 등 준군사적 역할을 수행한다. 세인트루시아는 1982년 설립된 지역안보체제(Regional Security System, RSS)의 창립 회원국으로, 동카리브해 지역의 안보 협력에 참여하고 있다. 2018년에는 유엔 핵무기금지조약에 서명했다.
6. 경제
세인트루시아는 소도서 개발도상국(Small Island Developing State, SIDS)으로 분류되며, 이는 섬이라는 특성상 일반적인 개발도상국과는 다른 어려움을 겪는 국가군을 의미한다. 경제 구조는 서비스업이 주도하며, 2020년 기준 국내총생산(GDP)의 86.9%를 차지했다. 그 뒤를 이어 공업(10.9%)과 농업(2.2%) 순이다.
교육받은 노동력과 도로, 통신, 상하수도, 항만 시설 개선 덕분에 외국 기업 및 투자 유치에 성공적인 편이다. 대부분의 작은 섬나라와 마찬가지로 관광업과 역외 금융이 주요 수입원이다. 과거에는 바나나 산업을 중심으로 한 농업이 경제의 가장 큰 비중을 차지했으나, 그 중요성은 크게 감소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플라스틱과 같은 제품이 대규모로 생산되는 등 제조업 부문은 동카리브해 지역에서 가장 다양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세인트루시아의 통화는 동카리브 달러(XCD)로, 동카리브 통화 연맹(ECCU) 회원국들이 공유하는 지역 통화이다. 주요 무역 상대국은 미국, 영국, 유럽 연합 및 기타 CARICOM 국가들이다.
6.1. 관광업

관광업은 세인트루시아 경제에 가장 크게 기여하는 핵심 산업이다. 관광객 수는 건기(1월~4월), 흔히 관광 시즌으로 불리는 기간에 더 많은 경향이 있다. 세인트루시아의 열대 기후, 아름다운 자연 경관, 해변, 리조트 등은 이곳을 인기 있는 관광지로 만들었으며, 2019년에는 129만 명의 관광객이 방문했다.
세인트루시아의 주요 관광 자원으로는 세계 유일의 드라이브인 화산인 술퍼 스프링스, 세인트루시아 식물원, 역사 유적지인 피전섬 국립공원, 그리고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인 피톤즈가 있다. 이 외에도 열대우림 탐험, 다양한 해양 스포츠, 요트 투어 등도 관광객들에게 인기가 많다. 정부는 관광 산업 진흥을 위해 인프라 개발과 마케팅에 지속적으로 투자하고 있다.
6.2. 농업
농업 부문은 과거 세인트루시아 경제의 주요 기여자였으며, 특히 바나나 수출이 중심이었다. 그러나 남미 국가들과의 바나나 산업 경쟁 심화 등으로 인해 경제에서의 중요성은 크게 감소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농업은 여전히 국가 경제의 중요한 부분으로, 2021년 기준 고용의 7.9%를 차지하고 GDP의 2.2%에 기여했다.
토지의 약 18%가 농업에 이용된다. 바나나는 여전히 세인트루시아의 주요 농산물이며, 이 외에도 코코넛, 카카오 열매, 망고, 아보카도, 채소, 감귤류 과일, 그리고 참마와 고구마 같은 뿌리작물이 재배된다. 세인트루시아는 또한 가금류가 주를 이루는 소규모 축산업 부문도 보유하고 있다. 섬은 계란 생산에서 자급자족하며, 가금류와 돼지고기 생산량도 최근 몇 년간 증가했다. 어업 또한 국가 경제에 상당한 중요성을 지니고 있다. 세인트루시아 정부는 '세인트루시아의 맛'(Taste of Saint Lucia) 브랜드를 통해 꿀, 럼, 초콜릿, 코코넛 오일, 그래놀라, 모기 퇴치제 등의 수출 확대를 목표로 하고 있다.
6.3. 기반 시설
세인트루시아는 섬 대부분을 연결하는 광범위한 공공 버스망을 갖추고 있다. 버스는 개인 사업자가 소유하며, 정부는 노선 설정 및 허브 관리를 담당한다. 도로망은 섬 대부분을 포괄하지만, 일부 농촌 지역은 아직 제대로 된 도로 접근성이 부족하다.
섬에는 두 개의 공항이 있으며, 그 중 하나는 국제공항인 헤와노라 국제공항이다. 크루즈 및 요트 산업은 국가 경제에 매우 중요하며, 주요 항구는 캐스트리스에 위치하고, 주요 마리나는 세인트루시아 요트 클럽이 있는 로드니베이에 있다. 한편, 국가의 주요 정유 시설은 벡슨(Bexon)에 위치한다.
세인트루시아의 주요 전력원은 유일한 발전소인 컬드삭 발전소(Cul De Sac Power Station)를 통한 원유 발전이지만, 태양 에너지 또한 주요 공급원이다. 섬에 지열 에너지와 풍력 에너지를 도입하려는 시도도 있었다.
7. 사회
세인트루시아의 사회는 아프리카계 주민이 다수를 이루며, 영어와 크레올어가 공존하고, 로마 가톨릭이 주요 종교인 특징을 보인다. 교육과 보건 시스템은 정부와 민간 부문이 함께 담당하고 있다.
7.1. 인구
세인트루시아는 보통 10년마다 인구 조사를 실시한다. 2010년 인구 조사에서 세인트루시아의 인구는 165,595명, 가구 수는 58,920가구로 보고되었다. 이는 2001년 이전 조사에서 기록된 157,490명보다 5.1% 증가한 수치이다. 0~14세 인구는 전체의 24.1%를 차지했으며, 65세 이상 인구는 8.6%였다. 섬 인구의 거의 40%가 수도 캐스트리스가 위치한 캐스트리스 쿼터에 거주했다.
2021년 세인트루시아의 합계출산율은 여성 1인당 1.4명으로, 아메리카 대륙에서 가장 낮았다. 이는 1990년의 3.4명, 그리고 출산율이 정점에 달했던 1959년의 6.98명보다 훨씬 낮은 수치이다. 세인트루시아에서 해외로 이주하는 인구는 주로 영어권 국가로 향하며, 영국에는 거의 1만 명의 세인트루시아 태생 시민이 거주하고, 3만 명 이상이 세인트루시아계이다. 미국은 특히 마이애미와 뉴욕 같은 지역에 많은 세인트루시아인이 거주하고 있다. 캐나다 역시 많은 세인트루시아인이 거주하며, 특히 프랑스어권 주인 퀘벡주의 몬트리올에 많이 살고 있다. 2021년 세인트루시아인의 중위연령은 33.1세였다.
순위 | 쿼터 | 인구 |
---|---|---|
1 | 캐스트리스 | 60,263 |
2 | 그로스이슬렛 | 22,647 |
3 | 뷰포트 | 14,632 |
4 | 미쿠드 | 14,480 |
5 | 데네리 | 11,874 |
6 | 술프리에르 | 7,747 |
7 | 라보리 | 6,507 |
8 | 앙스라레 | 6,033 |
9 | 슈아절 | 5,766 |
10 | 캐너리스 | 1,915 |
7.2. 민족
세인트루시아는 원래 아메리카 원주민이 거주하던 곳이었으나, 유럽의 식민화로 인해 원주민 인구가 크게 감소했다. 초기에는 백인 플랜테이션 소유주들이 섬 주민의 다수를 이루었지만, 유럽인들이 데려온 아프리카 노예와 계약노동자들이 결국 그 수를 능가하게 되었다. 이로 인해 세인트루시아의 인구는 주로 아프리카계 및 혼혈 후손으로 구성되어 있다.
2010년 기준으로 인구의 85.3%가 흑인이며, 10.9%는 다인종 혼혈이다. 다른 집단으로는 인도-카리브인(2.2%), 백인(0.6%), 원주민(0.6%)이 있다. 소수의 칼리나고족이 슈아절 지역과 서해안의 다른 마을에 거주하고 있다. 또한 소규모의 레바논 및 시리아계 인구도 존재한다.
7.3. 언어
세인트루시아의 공용어는 영어이지만, 대부분의 인구가 일상생활에서 세인트루시아 프랑스 크레올어(Kwéyòl, 퀘욜)를 널리 사용한다. 구어체로 '파투아'(Patois파트와프랑스어)라고도 불리는 이 언어는 인구의 대다수가 사용한다. 이는 앤틸리스 크레올의 한 방언이며 아이티 크레올과도 관련이 있지만, 아이티 크레올과는 몇 가지 독특한 특징을 가지고 있다. 크레올어는 초기 프랑스 식민지 시대에 발달했으며, 주로 프랑스어와 서아프리카 언어에서 파생되었다. 이 언어를 공용어로 지정하려는 시도가 있었으나 아직 성공하지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인트루시아 크레올어는 문학과 음악에 사용되며 공식적인 인정을 받고 있다. 세인트루시아는 프랑코포니(Organisation internationale de la Francophonie)의 정회원국이다.
7.4. 종교
2010년 인구 조사에서 세인트루시아인의 대다수는 기독교 신자로 확인되었다. 이는 프랑스와 영국 정착민에 의한 국가 식민지화의 역사에 기인한다. 프랑스의 강력한 영향으로 인해 섬의 기독교인 대부분은 로마 가톨릭 신자이며, 주민의 61.5%가 자신을 가톨릭 신자라고 밝혔다. (일부 자료는 62.5% 또는 90%로 표기하나, 2010년 센서스 기반 CIA 팩트북 자료는 61.5%로 기재). 주민의 25.5%는 개신교 신자이다 (세부적으로 제7일 안식일 예수 재림교회 10.4%, 오순절교회 8.9%, 침례교 2.2%, 성공회 1.6%, 하나님의 교회 1.5%, 기타 개신교 0.9%). 또한 인구의 1.9%는 라스타파리 운동 신자, 1.4%는 힌두교를 신봉한다고 밝혔다. 종교가 없다고 밝힌 주민은 2010년 기준 5.9%였다.
세인트루시아에는 국교가 없다. 국가 헌법은 종교의 자유를 보장하며, 개인이 따르지 않는 종교에 대해 선서하도록 강요하는 것을 금지한다. 종교 단체 또한 교육 장소를 설립할 자유를 보장받는다.
7.5. 교육
세인트루시아의 대부분의 초등 및 중등 학교는 정부에서 운영한다. 교육은 5세에서 15세까지의 어린이에게 무상 의무 교육으로 제공된다. 이는 7년간의 초등학교 과정과 3년에서 5년간의 중등학교 과정을 포함한다. 중등학교 마지막 2년 동안 학생들은 지역 카리브 시험 위원회(Caribbean Examinations Council, CSEC) 시험을 준비하기 위해 원하는 과목을 선택할 수 있다. 2020년 교육에 대한 공공 지출은 GDP의 3.6%였다.
섬의 고등 교육 기관은 일반적으로 사립 기관이다. 여기에는 먼로 칼리지(Monroe College)와 국제 아메리칸 대학교 의과대학(International American University - College of Medicine)이 포함된다. 그러나 아서 루이스 경 커뮤니티 칼리지(Sir Arthur Lewis Community College)와 서인도 대학교(University of the West Indies) 오픈 캠퍼스 등 몇몇 공립 기관도 있다. 저명한 교육자로는 서인도 대학교 설립에 큰 역할을 한 아서 루이스가 있다.
7.6. 보건
세인트루시아의 보건 서비스는 정부와 민간 기관이 분담하여 제공한다. 섬에는 2개의 공립 병원과 다수의 보건소가 있으며, 대부분의 치과 및 안과 서비스는 민간 부문에서 제공된다. 2019년 보건에 대한 공공 지출은 GDP의 2.1%였다.
2021년 평균 수명은 71.1세(남성 67.8세, 여성 74.7세)였다. 이는 2019년의 73.4세에 비해 감소한 수치로, 주로 코로나19 범유행의 영향으로 분석된다. 주요 공공 병원으로는 캐스트리스의 빅토리아 병원(현재는 OKEU 병원으로 대체됨)과 뷰포트의 세인트주드 병원(St. Jude Hospital)이 있다. 국민 보건 수준 향상과 의료 서비스 시스템 개선을 위한 노력이 지속되고 있다.
8. 문화
세인트루시아의 문화는 아프리카, 동인도, 프랑스, 영국 유산의 영향을 받았다. 섬의 주요 제2언어는 대부분의 인구가 사용하는 프랑스 기반 크리올어인 세인트루시아 크레올어(Kwéyòl, 퀘욜)이다. 세인트루시아는 인구 대비 노벨상 수상자 비율이 세계에서 가장 높은 주권 국가 중 하나이다. 세인트루시아 출신의 노벨상 수상자는 두 명으로, 1979년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한 아서 루이스 경과 1992년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시인 데릭 월컷이다.
8.1. 음식
세인트루시아 요리는 아프리카, 유럽, 인도, 카리브해 요리가 혼합된 형태를 띤다. 현지 식재료를 활용한 음식 문화가 발달했으며, 대표적인 전통 요리로는 그린피그와 염장생선(green figs and saltfish그린피그와 염장생선영어)이 국가 요리로 꼽힌다. 그린피그는 익지 않은 녹색 바나나를 의미하며, 이를 삶아 소금에 절인 대구나 다른 생선과 함께 조리한다.
흔한 요리로는 마카로니 파이, 스튜 치킨, 라이스 앤 피스, 로티(인도식 플랫브레드), 신선한 현지 채소를 듬뿍 넣은 수프 등이 있다. 모든 주류 육류와 가금류가 소비되며, 고기와 해산물은 보통 스튜로 만들거나 갈색으로 졸여 진한 그레이비를 만들어 "그라운드 프로비전"(채소)이나 쌀밥 위에 얹어 먹는다. "베이크"라고도 알려진 조니 케이크 또한 흔하며, 염장생선과 같은 다양한 반찬과 함께 제공된다. 열대 과일과 해산물도 풍부하게 사용된다.
8.2. 음악
세인트루시아의 음악은 특히 리듬 면에서 아프리카 음악 요소의 강한 영향을 받았다. 가장 인기 있는 음악 장르는 칼립소, 소카, 댄스홀, 레게, 주크 및 민요이다. 앙골라의 쿠두로, 세인트루시아 솔로 음악, 댄스홀의 영향을 받은 장르인 데너리 세그먼트(Dennery Segment데너리 세그먼트영어)가 이 섬에서 발전했다. 국제적으로 유명한 세인트루시아 재즈 페스티벌은 매년 개최되며, 이 축제는 국가 경제의 주요 수입원이다. 이 축제는 전 세계의 재즈 애호가들과 유명 뮤지션들을 끌어모은다.
8.3. 문학 및 예술
세인트루시아는 두 명의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한 국가로, 특히 문학 분야에서 국제적인 명성을 얻었다. 시인이자 극작가인 데릭 월컷은 1992년 노벨 문학상을 수상했으며, 그의 작품은 카리브해의 정체성과 역사, 탈식민주의적 주제를 깊이 있게 다루었다. 경제학자 아서 루이스 경은 1979년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한 개발경제학의 선구자로, 문학가는 아니지만 세인트루시아의 지성적 성취를 상징하는 인물이다.
시각 예술 분야에서는 전통 공예, 회화 등이 있으며, 아프리카, 유럽, 카리브해의 문화적 요소가 혼합된 독특한 스타일을 보여준다. 예술가 본스키 아뇨(Bongskie Agno)는 세인트루시아 국기 도안을 디자인한 인물로 알려져 있으며, "카리브해의 미켈란젤로"로 칭송받기도 했다.
8.4. 스포츠

대부분의 카리브해 국가와 마찬가지로 크리켓이 세인트루시아에서 가장 인기 있는 스포츠이다. 윈드워드 제도 크리켓팀은 세인트루시아 출신 선수들을 포함하며, 서인도 제도 지역 토너먼트인 리저널 포 데이 컴피티션에 참가한다. 대런 새미는 2007년 데뷔하여 서인도 제도 크리켓 대표팀을 대표한 최초의 세인트루시아인이 되었으며, 2010년에는 주장이 되었다. 세인트루시아 킹스는 이 섬나라를 기반으로 하는 캐리비안 프리미어 리그에 참가하는 T20 프랜차이즈 팀이다.
요트 또한 세인트루시아의 주요 스포츠로, 카나리아 제도에서 시작하여 이 섬에서 끝나는 애틀랜틱 랠리 포 크루저스(ARC) 경기가 열린다. 그 외 인기 있는 스포츠로는 축구, 농구, 테니스, 골프, 배구 등이 있다. 최근 몇 년간 가라테와 권투의 인기도 증가했다.
줄리엔 앨프리드는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2024년 하계 올림픽 여자 100미터 달리기에서 10.72초의 기록으로 우승하여 국가 최초의 올림픽 메달(금메달)을 획득했으며, 여자 200미터 달리기에서도 은메달을 획득했다.
8.5. 축제
세인트루시아에는 아프리카, 프랑스, 영국 문화의 영향이 혼합된 다채로운 축제들이 열린다. 가장 중요한 축제 중 하나는 매년 여름(주로 7월 또는 8월)에 열리는 세인트루시아 카니발이다. 화려한 의상, 음악(특히 칼립소와 소카), 거리 행진, 춤이 특징이며, 섬 전체가 축제 분위기로 들썩인다.
또한, 세인트루시아에는 독특한 두 가지 꽃 축제가 있다:
- 라 로즈(La Rose라 로즈프랑스어): 매년 8월 30일에 열리는 장미꽃 축제로, 장미 협회 회원들이 전통 의상을 입고 노래와 춤을 선보인다.
- 라 마르그리트(La Marguerite라 마르그리트프랑스어): 매년 10월 17일에 열리는 데이지꽃 축제로, 마르그리트 협회 회원들이 비슷한 방식으로 축제를 기념한다.
이 두 꽃 축제는 프랑스 식민지 시대의 역사적 경쟁 관계를 반영하는 전통적인 행사이다. 이 외에도 국제적으로 유명한 세인트루시아 재즈 페스티벌이 매년 5월경에 개최되어 전 세계의 음악가들과 관광객들을 끌어모은다.
8.6. 세계유산
세인트루시아에는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한 곳의 자연유산이 있다.
- 피톤즈 관리 지역 (Pitons Management Area): 2004년에 세계자연유산으로 등재되었다. 이 지역은 섬의 남서부 해안에 위치하며, 두 개의 극적인 화산 봉우리인 그로스 피톤(Gros Piton그로스 피톤프랑스어, 798 m)과 프티 피톤(Petit Piton프티 피톤프랑스어, 743 m)을 포함한다. 이 피톤즈는 바다에서 거의 수직으로 솟아 있으며, 주변에는 지열 지대(유황 온천 포함)와 다양한 산호초, 해양 생물이 서식하는 해역이 펼쳐져 있다. 이 지역의 독특한 지질학적 특징과 뛰어난 자연경관, 그리고 생물 다양성이 그 가치를 인정받았다.
9. 저명한 인물
세인트루시아는 인구에 비해 주목할 만한 국제적 인물들을 배출했다. 특히 두 명의 노벨상 수상자가 유명하다.
- 아서 루이스 경 (Sir Arthur Lewis, 1915년 ~ 1991년): 경제학자로, 1979년 노벨 경제학상을 공동 수상했다. 개발도상국의 경제 발전에 관한 연구, 특히 "이중 경제 모델"로 잘 알려져 있으며, 흑인 최초의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이다. 그는 서인도 대학교 부총장을 역임하기도 했다.
- 데릭 월컷 (Derek Walcott, 1930년 ~ 2017년): 시인이자 극작가로, 1992년 노벨 문학상을 수상했다. 그의 작품은 카리브해의 역사, 문화, 정체성을 탐구하며, 영어와 크레올어를 혼합한 독특한 문체로 유명하다. 대표작으로는 서사시 "오메로스"(Omeros오메로스영어)가 있다.
기타 분야의 저명한 인물:
- 대런 새미 (Daren Sammy, 1983년 ~ ): 전 서인도 제도 크리켓 대표팀 주장으로, 팀을 두 차례의 ICC 월드 트웬티20 우승(2012년, 2016년)으로 이끌었다. 세인트루시아의 국립 크리켓 경기장은 그의 이름을 따 명명되었다.
- 줄리엔 앨프리드 (Julien Alfred, 2001년 ~ ): 육상 단거리 선수로, 2024년 하계 올림픽 여자 100m에서 금메달, 여자 200m에서 은메달을 획득하여 세인트루시아에 사상 최초의 올림픽 메달을 안겼다.
- 레버른 스펜서 (Levern Spencer, 1984년 ~ ): 여자 높이뛰기 선수로, 팬아메리칸 게임과 코먼웰스 게임에서 다수의 메달을 획득했다.
- 존 콤프턴 경 (Sir John Compton, 1925년 ~ 2007년): 세인트루시아의 초대 총리이자 "국부"로 여겨지며, 독립을 이끌고 오랫동안 국가 발전에 기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