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인 정보

무함마드 틀릴리 벤 압달라 가무디는 1938년 2월 11일 튀니지 시디 아이슈에서 태어났다. 그의 국적은 튀니지이며, 키는 172 cm, 몸무게는 60 kg이다. 그는 AS 밀리테르 튀니스 클럽 소속으로 활동했다.
1.1. 출생 및 초기 생애
가무디는 1938년 2월 11일 튀니지의 시디 아이슈에서 태어났다. 그는 20세기 후반 스포츠의 판도를 바꾼 아프리카 장거리 육상 혁명의 개척자 중 한 명으로 일찍부터 두각을 나타냈다.
2. 선수 경력
무함마드 가무디는 1960년대 초부터 1970년대 초까지 국제 육상 무대에서 맹활약하며 다양한 대회에서 뛰어난 성과를 거두었다. 그의 선수 경력은 특히 올림픽과 지중해 경기 대회에서의 눈부신 활약으로 특징지어진다.
2.1. 지중해 경기 대회
가무디는 지중해 경기 대회에서 뛰어난 기량을 선보였다. 1963년 이탈리아 나폴리에서 열린 대회에서 5000m와 10000m 종목에서 모두 금메달을 획득하며 국제 무대에 처음으로 이름을 알렸다. 1967년 튀니지 튀니스에서 개최된 대회에서도 5000m와 10000m 타이틀을 성공적으로 방어하며 다시 두 종목에서 금메달을 차지했다. 그러나 1971년 튀르키예 이즈미르에서 열린 다음 대회에서는 5000m에서 은메달에 그쳤고, 10000m에서는 경기를 완주하지 못했다.
2.2. 올림픽 참가
가무디는 세 차례의 하계 올림픽에 참가하여 튀니지에 총 4개의 메달을 안겨주었다. 그의 올림픽 경력은 1964년 도쿄에서 시작하여 1968년 멕시코시티, 그리고 1972년 뮌헨까지 이어졌다.
2.2.1. 1964년 도쿄 올림픽
1964년 도쿄 올림픽에 참가할 당시 가무디는 국제적으로 거의 알려지지 않은 선수였다. 그러나 그는 전년도에 열린 프레올림픽 격인 도쿄 국제 스포츠 대회에 갑작스럽게 참가하여 10000m에서 3위, 5000m에서 4위를 기록하며 잠재력을 보여주었다.
도쿄 올림픽 10000m 결승에서는 세계 기록 보유자인 오스트레일리아의 론 클라크가 강력한 우승 후보로 꼽혔다. 38명의 선수가 출전한 이 경기에서 클라크는 레이스 내내 빠른 페이스를 유지하며 선두 그룹을 이끌었다. 마지막 한 바퀴를 남기고 클라크는 가무디와 미국의 빌리 밀스를 제외한 모든 경쟁자들을 따돌렸다. 결승선을 향하는 직선 주로에서 밀스, 클라크, 가무디는 서로 선두를 주고받는 치열한 접전을 펼쳤다. 결승선 50미터를 남기고 가무디가 선두를 달렸으나, 밀스가 막판 스퍼트로 그를 제치고 금메달을 획득했다. 가무디는 은메달을 차지했으며, 이는 튀니지 역사상 첫 올림픽 메달이었다. 그의 기록인 28분 24.8초는 당시 세계 역대 4위에 해당하는 뛰어난 기록이었다.

이틀 후 가무디는 5000m 예선에도 출전하여 예선 C조에서 1위를 차지하며 결승에 진출했다. 이 조에는 본선에서 우승한 로버트 슐과 준우승한 하랄트 노르포트 등 강자들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가무디는 이들을 제치고 가장 먼저 결승선을 통과했다. 그러나 발에 생긴 물집 때문에 그는 아쉽게도 5000m 결승에는 불참했다.
2.2.2. 1968년 멕시코시티 올림픽
1968년 멕시코시티 올림픽은 고지대에서 열리는 대회였기 때문에 얇은 산소가 장거리 선수들에게 미칠 영향에 대한 관심이 높았다. 고지대 출신 선수들에게는 유리했지만, 가무디는 고지대 출신이 아니었기에 대회를 앞두고 고지 순응 훈련을 실시했다. 그는 전년도에 열린 프레올림픽 격인 멕시코 국제 스포츠 대회에서 10000m와 5000m 모두 우승하며 좋은 컨디션을 보였다.
멕시코시티 올림픽 10000m 결승에서는 여러 차례 선두가 바뀌는 가운데, 속도는 조절되며 긴 선수 그룹이 레이스 후반까지 유지되었다. 마지막 한 바퀴를 알리는 벨이 울렸을 때, 케냐의 나프탈리 테무, 에티오피아의 마모 월데, 그리고 가무디 세 명의 선수가 선두에 남았다. 홈 스트레이트에서 테무와 월데 두 선수가 맹렬한 스퍼트를 시작했고, 가무디는 이들에게 뒤처지며 3위로 결승선을 통과하여 동메달을 획득했다. 테무는 29분 27.4초, 월데는 29분 28초를 기록했고, 가무디는 29분 34초를 기록했다.
10000m 결승 이틀 후 가무디는 5000m 예선에 출전하여 키프초게 케이노에 이어 2위로 결승에 진출했다. 다시 이틀 후 열린 5000m 결승에서는 마지막 두 바퀴를 남기고 선두를 달리던 오스트레일리아의 론 클라크를 제치고 가무디가 선두로 나섰다. 케이노와 나프탈리 테무 두 명의 케냐 선수가 가무디를 뒤쫓으며 마지막 한 바퀴는 세 선수가 남는 치열한 양상으로 전개되었다. 두 케냐 선수는 가무디를 추월하려 했으나, 테무가 마지막 코너에서 뒤처졌고, 케이노는 계속해서 속도를 올렸다. 마지막 직선 주로에서는 케이노와 가무디의 일대일 대결이 펼쳐졌으나, 가무디는 선두를 내주지 않고 마지막 한 바퀴를 54.8초라는 맹렬한 속도로 질주하며 금메달을 획득했다.
2.2.3. 1972년 뮌헨 올림픽
1972년 뮌헨 올림픽에서 가무디는 10000m 예선에 출전하며 대회를 시작했다. 34세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그는 이 예선에서 개인 최고 기록인 27분 54.8초를 기록하며 예선 2조 1위로 결승에 올랐다. 결승에서는 영국의 데이비드 베드퍼드가 엄청난 하이 페이스로 레이스를 이끌어 4600m 지점까지 세계 기록을 상회하는 페이스로 진행되었다. 그러나 갑자기 핀란드의 라세 비렌이 백 스트레이트에서 넘어졌고, 가무디는 그 위에 걸려 넘어지는 불운을 겪었다. 비렌은 곧바로 일어나 레이스를 계속하여 금메달을 획득했지만, 가무디는 다시 일어서는 데 훨씬 더 오랜 시간이 걸렸다. 선두 그룹과의 100m 간격을 좁히기 위해 한 바퀴 반을 더 달렸지만, 결국 그는 레이스를 포기하고 탈락했다.
나흘 후 가무디는 5000m 예선에 출전하여 데이비드 베드퍼드와 치열한 경쟁 끝에 동타임으로 예선 1조 1위를 차지하며 결승에 진출했다. 사흘 후 열린 5000m 결승은 10000m와는 달리 매우 느린 페이스로 시작되었다. 첫 3000m까지는 가무디를 포함한 선수 그룹이 밀집된 상태를 유지했다. 9바퀴째부터 미국의 스티브 프리폰테인이 선두로 나서며 점차 페이스를 올리기 시작했고, 마지막 2000m에서는 비렌과 프리폰테인이 선두 그룹에서 벗어나며 속도가 상당히 빨라졌다. 마지막 한 바퀴를 남기고 비렌, 프리폰테인, 그리고 가무디 세 선수가 선두에 남았고, 그 뒤에는 영국의 이언 스튜어트가 있었다. 백 스트레이트에서 프리폰테인과 가무디의 치열한 경쟁 끝에 가무디가 선두로 나섰으나, 마지막 코너를 돌면서 비렌이 스퍼트를 시작했다. 비렌은 마지막 직선 주로에서 가무디를 약 10m 차이로 따돌리고 금메달을 획득했다. 가무디는 아쉽게도 은메달에 그쳤지만, 이 경기에서 개인 최고 기록인 13분 27.4초를 기록하며 3회 연속 올림픽 메달 획득이라는 위업을 달성했다. 이 경기는 가무디의 마지막 주요 국제 대회 출전이었다.
2.3. 국제 크로스컨트리 선수권 대회
가무디는 크로스컨트리 종목에서도 뛰어난 실력을 발휘했다. 1965년 벨기에 오스텐더에서 열린 국제 크로스컨트리 선수권 대회에서 3위를 차지하며 동메달을 획득했다. 이후 1968년에는 자신의 모국인 튀니지 튀니스에서 열린 이 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하며, 이 타이틀을 획득한 세 번째 아프리카 선수가 되었다. 그는 1962년 대회에서 48위(12.0km, 46분 52초), 1963년 대회에서 7위(12.1km, 38분 11.6초)를 기록하기도 했다. 1969년 영국 클라이드뱅크에서 열린 대회에서는 경기를 완주하지 못했다.
3. 주요 성과 및 기록
무함마드 가무디는 그의 선수 경력 동안 올림픽을 비롯한 다양한 국제 대회에서 수많은 메달을 획득하고 개인 최고 기록을 경신하며 세계적인 장거리 육상 선수로서의 위상을 확립했다.
3.1. 메달 기록
가무디가 주요 국제 대회에서 획득한 메달 기록은 다음과 같다.
대회 | 금메달 | 은메달 | 동메달 | 총계 |
---|---|---|---|---|
올림픽 | 1 | 2 | 1 | 4 |
지중해 경기 대회 | 4 | 1 | 0 | 5 |
국제 크로스컨트리 선수권 대회 | 1 | 0 | 1 | 2 |
마그레브 육상 선수권 대회 | 4 | 0 | 0 | 4 |
합계 | 10 | 3 | 2 | 15 |
- 올림픽**:
- 금메달: 1968년 멕시코시티 (5000m)
- 은메달: 1964년 도쿄 (10000m), 1972년 뮌헨 (5000m)
- 동메달: 1968년 멕시코시티 (10000m)
- 지중해 경기 대회**:
- 금메달: 1963년 나폴리 (5000m, 10000m), 1967년 튀니스 (5000m, 10000m)
- 은메달: 1971년 이즈미르 (5000m)
- 국제 크로스컨트리 선수권 대회**:
- 금메달: 1968년 튀니스 (12.1km)
- 동메달: 1965년 오스텐더 (12.1km)
- 마그레브 육상 선수권 대회**:
- 금메달: 1969년 트리폴리 (5000m, 10000m), 1971년 카사블랑카 (5000m, 10000m)
3.2. 개인 최고 기록
가무디의 각 종목별 개인 최고 기록은 다음과 같다.
- 800m: 1분 51.2초
- 1500m: 3분 41.9초
- 3000m: 7분 50.2초
- 5000m: 13분 27.33초
- 10000m: 27분 54.59초
4. 평가 및 영향
무함마드 가무디는 아프리카 장거리 육상 발전의 선구자 중 한 명으로 평가받는다. 20세기 후반 스포츠계의 판도를 바꾼 아프리카 장거리 육상 혁명의 초석을 다진 인물로, 그의 올림픽 메달 획득은 아프리카 대륙, 특히 북아프리카 선수들에게 큰 영감을 주었다. 그는 고지대 훈련과 같은 새로운 접근 방식을 통해 장거리 달리기에서 아프리카 선수들의 잠재력을 증명했으며, 이는 이후 수많은 아프리카 선수들이 국제 무대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데 기여했다. 가무디의 성공은 육상 스포츠의 지형을 변화시키고 아프리카 장거리 육상의 황금기를 여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