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부르키나파소는 서아프리카에 위치한 내륙국으로, 북쪽으로는 말리, 동쪽으로는 니제르, 남동쪽으로는 베냉과 토고, 남쪽으로는 가나, 남서쪽으로는 코트디부아르와 국경을 접하고 있다. 국토 면적은 약 27.42 만 km2이며, 2024년 추정 인구는 약 2,328만 명이다. 수도이자 최대 도시는 와가두구이다. 과거 오트볼타 공화국으로 불렸으나, 1984년 토마스 상카라 대통령에 의해 "정직한 사람들의 땅"이라는 의미의 부르키나파소로 국명이 변경되었다. 국민은 부르키나베로 불린다.
부르키나파소의 최대 민족은 11세기에서 13세기 사이에 이 지역에 정착한 모시족이다. 모시족은 와가두구, 텐코도고, 야텡가 등 강력한 모시 왕국들을 건설했다. 19세기 말 프랑스에 의해 식민지화되어 프랑스령 서아프리카의 일부가 되었고, 1958년 프랑스 공동체 내 자치 공화국이 되었다. 1960년 모리스 야메오고를 초대 대통령으로 하여 완전 독립을 달성했다. 독립 이후 국가는 불안정, 가뭄, 기근, 부패에 시달렸으며, 1966년, 1980년, 1982년, 1983년, 1987년, 그리고 2022년에 두 차례(1월과 9월) 등 여러 차례의 쿠데타가 발생했다. 1989년, 2015년, 2023년에는 미수에 그친 쿠데타 시도도 있었다.
토마스 상카라는 1983년 쿠데타 성공 이후 집권하여 전국적인 문해 운동, 농민에게 토지 재분배, 200만 명 이상의 아동 예방 접종, 철도 및 도로 건설, 교육 접근성 평등화, 여성 할례·강제 결혼·일부다처제 금지 등 야심 찬 사회경제적 개혁을 단행했다. 그는 1987년 블레즈 콩파오레가 이끈 쿠데타로 축출되고 암살될 때까지 대통령으로 재임했으며, 콩파오레는 2014년 10월 31일 축출될 때까지 대통령으로 국가를 통치했다.
2010년대 중반부터 부르키나파소는 사헬 지역의 반란 확산으로 심각한 영향을 받고 있다. 이슬람 국가(IS) 또는 알카에다와 부분적으로 연계된 여러 민병대가 부르키나파소 및 국경 너머 말리와 니제르에서 활동하고 있다. 2,100만 명의 인구 중 100만 명 이상이 국내 실향민이다. 부르키나파소 군대는 2022년 1월 23~24일 쿠데타로 로크 마르크 크리스티앙 카보레 대통령을 축출하고 권력을 장악했다. 1월 31일, 군사 정권은 헌법을 복원하고 폴앙리 산다오고 다미바를 임시 대통령으로 임명했으나, 그 역시 9월 30일 두 번째 쿠데타로 축출되고 군 대위 이브라힘 트라오레로 교체되었다.
부르키나파소는 2022년 GDP 162.26 억 USD으로 세계 최빈국 중 하나로 남아 있다. 인구의 약 63.8%가 이슬람교를, 26.3%가 기독교를 믿는다. 이전에는 프랑스어가 정부 및 비즈니스 언어였으나, 2024년 1월 헌법 개정안 비준으로 영어와 함께 "실무 언어"로 지위가 격하되었다. 부르키나베 정부는 60개의 토착어를 공식적으로 인정하며, 가장 일반적인 모레어는 인구의 절반 이상이 사용한다.
부르키나파소의 영토는 지리적으로 생물 다양성이 풍부하며, 금, 망간, 구리, 석회석 등의 매장량이 풍부하다. 다문화적 구성으로 인해 부르키나파소 예술은 풍부하고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으며, 정통적인 스타일로 세계적으로 유명하다. 국가는 행정부, 입법부, 사법부 권력을 갖춘 반대통령제 공화국으로 통치된다. 유엔, 프랑코포니, 이슬람 협력 기구의 회원국이다. 2024년 1월 18일, 부르키나파소는 ECOWAS와 아프리카 연합 탈퇴를 발표했다.
2. 국호
부르키나파소의 원래 국명은 오트볼타 공화국(République de Haute-Volta레퓌블리크 드 오트볼타프랑스어)이었는데, 이는 볼타강 상류에 위치한 프랑스 식민지였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볼타강은 흑볼타강, 적볼타강, 백볼타강의 세 지류로 이루어져 있다.
1984년 8월 4일, 당시 대통령이었던 토마스 상카라는 국명을 부르키나파소로 변경했다. '부르키나'(Burkina)는 모레어 (모시족의 언어)로 "고결한", "정직한"을 의미하며, 사람들이 자신의 청렴함을 자랑스러워함을 나타낸다. '파소'(Faso)는 줄라어 (응코 문자로는 ߝߊ߬ߛߏ߫파소듈라어)로 "조국"(글자 그대로는 "아버지의 집")을 의미한다. 따라서 부르키나파소는 "정직한 사람들의 땅" 또는 "고결한 사람들의 나라"로 해석될 수 있다. 국명에 붙는 접미사 '-베'(-bè)는 풀라어로 "여성 또는 남성"을 의미하여, 국민을 지칭하는 '부르키나베'(Burkinabè)가 된다. 미국 중앙정보국(CIA)은 이 국명의 어원을 "정직한 (부패하지 않은) 사람들의 땅"으로 요약한다.
3. 역사
부르키나파소 지역은 선사 시대부터 인류가 거주해 왔으며, 모시 왕국들의 형성, 프랑스 식민 통치, 독립 이후의 정치적 변동과 사회 발전을 거쳐 현대에 이르고 있다. 특히 토마스 상카라의 혁명적 개혁과 그 이후의 장기 집권, 그리고 최근의 지하디스트 반란과 연쇄 쿠데타는 부르키나파소 현대사에 큰 영향을 미쳤다.
3.1. 초기 역사와 모시 왕국
현재 부르키나파소 북서부 지역에는 기원전 14,000년에서 5,000년 전까지 수렵채집인들이 거주했다. 이들의 도구인 긁개, 끌, 화살촉 등은 1973년 고고학 발굴을 통해 발견되었다. 농경 정착은 기원전 3600년에서 2600년 사이에 이루어졌으며, 비교적 영구적인 구조물의 흔적을 남겼다.
철기 시대는 기원전 1200년경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에서 도구나 무기를 제련하고 단조하는 철강 산업이 발전하면서 시작되었다. 부르키나파소에서 발견된 가장 오래된 철 제련 증거는 기원전 800년에서 700년 사이의 것으로, 유네스코 세계유산인 부르키나파소의 고대 제철 유적지의 일부를 형성한다. 기원후 3세기부터 13세기까지 현재 부르키나파소 남동부와 니제르 남서부 지역에는 철기 시대의 부라 문화가 존재했다.
모시인, 풀라니인, 줄라인 등 현재 부르키나파소를 구성하는 여러 민족 집단은 8세기에서 15세기 사이에 연이어 이주해 왔다. 도곤족은 15세기 또는 16세기까지 부르키나파소 북부 및 북서부 지역에 거주했다. 11세기부터 모시인들은 텐코도고, 야텡가, 잔도마, 그리고 가장 강력했던 와가두구를 포함한 여러 독립된 모시 왕국들을 건설했다. 이들은 11세기에 이슬람교를 받아들였다. 사모족은 15세기경에 도착했다.

중세 시대에 모시 왕국들은 번성했으며, 1328년에서 1338년 사이에 모시 전사들은 팀북투를 습격하기도 했다. 그러나 1483년 말리의 코비 전투에서 송가이 제국의 손니 알리에게 패배했다. 16세기 초, 송가이 제국은 현재의 부르키나파소 지역으로 여러 차례 노예 습격을 감행했다. 18세기에 들어서는 보보디울라소에 귀리코 제국이 세워졌고, 디안족, 로비족, 비리포르족 등이 무운강(흑볼타강)을 따라 정착했다.
3.2. 프랑스 식민 통치

1890년대 초 유럽의 아프리카 분할이 시작되면서, 여러 유럽 군 장교들이 현재 부르키나파소 지역의 일부를 차지하려 시도했다. 이 식민주의자들과 그들의 군대는 때로는 현지 주민들과 싸웠고, 때로는 그들과 동맹을 맺고 조약을 체결했다. 식민주의 장교들과 본국 정부는 또한 서로 조약을 맺었다. 부르키나파소 영토는 프랑스 제3공화국에 의해 침략당했고, 1896년에 프랑스 식민제국의 보호령이 되었다.
강력한 통치자 사모리 투레의 군대와의 대치로 상황이 복잡했던 동부 및 서부 지역은 1897년 프랑스 점령 하에 들어갔다. 1898년까지 부르키나파소에 해당하는 영토의 대부분은 명목상 정복되었으나, 여러 지역에 대한 프랑스의 통제는 불확실했다. 1898년 6월 14일의 영불 협정은 이 나라의 현대적인 국경을 만들었다. 프랑스 영토 내에서는 현지 공동체와 정치 세력에 대한 정복 전쟁이 약 5년간 계속되었다. 1904년, 볼타강 유역의 대체로 평정된 영토는 프랑스령 서아프리카 식민제국 재편의 일환으로 프랑스령 서아프리카의 오트세네갈 니제르 식민지에 통합되었으며, 수도는 바마코에 두었다.

식민 행정과 학교 교육 언어는 프랑스어가 되었다. 공교육 제도는 미미하게 시작되었으며, 식민지 기간 동안 고등 교육은 다년간 다카르에서 제공되었다. 원주민 인구는 심하게 차별받았다. 예를 들어, 아프리카 어린이들은 자전거를 타거나 나무에서 과일을 따는 것이 허용되지 않았으며, 이는 식민지 주민 자녀들에게만 허용된 "특권"이었다. 이러한 규정을 위반하면 부모가 감옥에 갈 수도 있었다.
이 지역 출신 징집병들은 제1차 세계 대전의 유럽 전선에 세네갈 저격병 대대의 일원으로 참전했다. 1915년에서 1916년 사이에 현재 부르키나파소 서부 지역과 말리 동부 접경 지역은 식민 정부에 대한 가장 중요한 무장 반대 운동 중 하나인 볼타-바니 전쟁의 무대가 되었다. 프랑스 정부는 패배를 겪은 후에야 마침내 이 운동을 진압했다. 또한 반란을 진압하기 위해 식민 역사상 가장 큰 원정군을 이 나라에 파견해야 했다. 사헬 북부에서는 투아레그족과 도리 지역의 동맹 집단이 정부와의 휴전을 끝내면서 무장 반대가 격렬해졌다.
프랑스령 오트볼타는 1919년 3월 1일에 설립되었다. 프랑스는 무장 봉기의 재발을 두려워했고 관련된 경제적 고려 사항이 있었다. 행정을 강화하기 위해 식민 정부는 현재 부르키나파소 영토를 오트세네갈 니제르에서 분리했다. 새로운 식민지는 볼타강 상류(흑볼타강, 적볼타강, 백볼타강)에 위치하여 '오트볼타'로 명명되었고, 프랑수아 샤를 알렉시 에두아르 에슬링이 초대 총독이 되었다. 에슬링은 기반 시설 개선을 위해 야심 찬 도로 건설 프로그램을 시작하고 수출용 면화 재배를 장려했다. 강압에 기반한 면화 정책은 실패했고, 식민지에서 발생하는 수입은 정체되었다. 식민지는 1932년 9월 5일에 해체되어 프랑스 식민지인 코트디부아르, 프랑스령 수단, 니제르 사이에 분할되었다. 코트디부아르가 가장 큰 부분을 차지했는데, 여기에는 인구 대부분과 와가두구 및 보보디울라소 시가 포함되었다.
프랑스는 제2차 세계 대전 종전 후 격렬한 반식민 운동 기간 동안 이러한 변화를 되돌렸다. 1947년 9월 4일, 이전 국경을 가진 오트볼타 식민지를 프랑스 연합의 일부로 부활시켰다. 프랑스는 식민지를 유럽 대륙의 프랑스 본토의 데파르트망으로 지정했다.
1958년 12월 11일, 식민지는 오트볼타 공화국으로 자치 정부를 이루었고, 프랑스-아프리카 공동체에 가입했다. 프랑스 해외 영토 조직 개편은 1956년 7월 23일 기본법(Loi Cadre) 통과로 시작되었다. 이 법은 1957년 초 프랑스 의회가 승인한 개편 조치로 이어져 개별 영토에 상당한 정도의 자치권을 보장했다. 오트볼타는 1958년 12월 11일 프랑스 공동체 내 자치 공화국이 되었다. 1960년 프랑스로부터 완전 독립을 달성했다.
3.3. 오트볼타 공화국 (1958년~1984년)
오트볼타 공화국(République de Haute-Volta레퓌블리크 드 오트볼타프랑스어)은 1958년 12월 11일 프랑스 공동체 내의 자치 식민지로 수립되었다. 국명 '오트볼타'는 볼타강 상류에 위치한 것에서 유래했으며, 강의 세 지류인 흑볼타강, 백볼타강, 적볼타강은 구 국기의 세 가지 색으로 표현되었다. 자치권을 얻기 전에는 프랑스령 오트볼타였으며 프랑스 연합의 일부였다. 1960년 8월 5일, 프랑스 제4공화국으로부터 완전 독립을 달성했다. 이 시기 부르키나파소는 독립 초기 정치적 불안정과 연이은 쿠데타를 경험했으며, 토마스 상카라의 등장과 함께 혁명적 변화기를 맞이했다.
3.3.1. 독립 초기와 정치적 불안정

초대 대통령 모리스 야메오고는 볼타 민주 연합(UDV)의 지도자였다. 1960년 헌법은 보통 선거를 통해 대통령과 국회의원을 5년 임기로 선출하도록 규정했다. 집권 직후 야메오고는 UDV를 제외한 모든 정당을 금지했다. 그의 정부는 1966년까지 지속되었으나, 학생, 노동조합, 공무원들의 대규모 시위와 파업을 포함한 많은 소요 사태 이후 군부가 개입했다.
1966년 군사 쿠데타는 야메오고를 축출하고 헌법을 정지시켰으며 국회를 해산하고, 상굴레 라미자나 중령을 육군 고위 장교들로 구성된 정부의 수장으로 앉혔다. 군부는 4년간 집권했다. 1976년 6월 14일, 볼타 국민들은 완전한 민정 이양을 위한 4년간의 과도기를 설정하는 새 헌법을 비준했다. 라미자나는 1970년대 내내 군사 정부 또는 민군 혼합 정부의 대통령으로 권력을 유지했다. 라미자나의 통치는 오트볼타와 주변 국가에 파괴적인 영향을 미친 사헬 가뭄과 기근의 시작과 일치했다. 1976년 헌법에 대한 갈등 이후, 1977년에 새 헌법이 작성되고 승인되었다. 라미자나는 1978년 공개 선거에서 재선되었다.
라미자나 정부는 국가의 전통적으로 강력한 노동조합과의 문제에 직면했고, 1980년 11월 25일, 사예 제르보 대령이 무혈 쿠데타로 라미자나 대통령을 축출했다. 제르보 대령은 국가 진보 회복 군사위원회를 최고 정부 기관으로 설립하여 1977년 헌법을 폐지했다.
제르보 대령 또한 노동조합의 저항에 부딪혔고, 2년 후 장바티스트 우에드라오고 소령과 인민구제평의회(CSP)에 의해 1982년 오트볼타 쿠데타로 축출되었다. CSP는 계속해서 정당과 조직을 금지했지만, 민정 이양과 새 헌법을 약속했다.
3.3.2. 토마스 상카라와 혁명 (1983년~1987년)
인민구제평의회(CSP) 내 우파와 좌파 간의 내분이 발생했다. 좌파 지도자인 토마스 상카라 대위는 1983년 1월 총리로 임명되었으나 이후 체포되었다. 블레즈 콩파오레 대위가 주도한 그의 석방 노력은 1983년 8월 4일 군사 쿠데타로 이어졌다.
쿠데타는 상카라를 집권시켰고, 그의 정부는 대규모 예방 접종, 기반 시설 개선, 여성 권리 확대, 국내 농산물 소비 장려, 사막화 방지 사업 등 일련의 혁명적 프로그램을 시행하기 시작했다. 그의 통치는 부르키나파소 사회에 급진적인 변화를 가져왔으며, 1984년 8월 2일에는 국명을 '오트볼타'에서 '부르키나파소' 즉, "정직한 사람들의 땅"으로 변경하는 대통령령을 발표했고, 이는 8월 4일 국회에서 확정되었다. 상카라는 전국적인 문해 운동, 농민에게 토지 재분배, 철도 및 도로 건설, 여성 할례, 강제 결혼, 일부다처제 금지 등 야심 찬 사회경제적 프로그램을 시작했다. 그의 외교 정책은 반제국주의에 중점을 두었으며, 정부는 모든 해외 원조를 거부하고, 부채 탕감을 추진하며, 모든 토지와 광물 자원을 국유화하고, 국제 통화 기금(IMF)과 세계 은행의 영향력을 막았다. 또한, 그는 사헬 지역의 사막화 확산을 막기 위해 1,000만 그루 이상의 나무를 심도록 했으며, 모든 마을에 의료 시설을 건설하고 350개 이상의 공동체가 자체 노동력으로 학교를 짓도록 독려했다. 1980년대 생태학적 인식이 매우 낮았던 시기에도 상카라는 환경 보호를 우선 과제로 여긴 소수의 아프리카 지도자 중 한 명이었다. 그의 노력으로 곡물 생산량은 1983년 이전 11억 톤에서 1987년 16억 톤으로 증가할 것으로 예상되었으며, 장 지글러 전 유엔 식량권 특별보고관은 부르키나파소가 "식량 자급자족 국가가 되었다"고 평가했다. 상카라는 대중적 지지가 높았으며 "아프리카의 체 게바라"로 불리기도 했다.
3.4. 부르키나파소 (1984년~현재)
1984년 국명 변경 이후 부르키나파소는 토마스 상카라의 혁명적 통치, 블레즈 콩파오레의 장기 집권과 그의 실각, 민주주의 이행 시도의 어려움, 그리고 최근 심화되고 있는 지하디스트 반란과 안보 위기, 연이은 군사 쿠데타 등 격동의 시기를 겪고 있다.
3.4.1. 블레즈 콩파오레 장기 집권 (1987년~2014년)

1987년 10월 15일, 토마스 상카라와 12명의 정부 관료들이 상카라의 전 동료였던 블레즈 콩파오레가 조직한 쿠데타로 암살당했고, 콩파오레가 부르키나파소의 대통령이 되었다. 그는 2014년 10월까지 이 직위를 유지했다. 쿠데타 이후 상카라가 사망한 것으로 알려졌음에도 불구하고 일부 혁명수호위원회(CDR)는 며칠 동안 군에 무장 저항을 벌였다. 다수의 부르키나베 시민들은 프랑스 외무부가 쿠데타 조직에 관여했다고 여기며, 프랑스의 쿠데타 지원에 대한 일부 증거도 존재한다.
콩파오레는 이웃 국가들과의 관계 악화를 쿠데타의 이유 중 하나로 들었다. 그는 상카라가 이전 식민 강국인 프랑스 및 이웃 국가 코트디부아르와의 외교 관계를 위태롭게 했다고 주장했다. 쿠데타 이후 콩파오레는 즉시 국유화를 되돌리고 상카라의 거의 모든 정책을 뒤집었으며, 국가를 다시 IMF의 영향권으로 돌려놓고 궁극적으로 상카라의 유산을 대부분 거부했다. 1989년 쿠데타 시도 혐의 이후, 콩파오레는 1990년에 제한적인 민주 개혁을 도입했다. 1991년 새 헌법에 따라 콩파오레는 1991년 12월 반대 없이 재선되었다. 1998년 콩파오레는 압도적인 표차로 선거에서 승리했다. 2004년에는 13명이 콩파오레 대통령에 대한 쿠데타 음모 혐의로 재판을 받았고, 쿠데타의 주모자로 지목된 인물은 종신형을 선고받았다.
2000년, 대통령 임기를 5년으로 줄이고 연임을 두 번으로 제한하여 연속 재선을 막는 헌법 개정이 이루어졌다. 이 개정안은 2005년 선거부터 효력을 발휘했다. 만약 그 이전에 통과되었다면 콩파오레의 재선을 막았을 것이다. 다른 대선 후보들은 선거 결과에 이의를 제기했다. 그러나 2005년 10월, 헌법위원회는 콩파오레가 2000년 당시 현직 대통령이었기 때문에 개정안은 그의 두 번째 임기가 끝날 때까지 그에게 적용되지 않는다고 판결했다. 이로써 2005년 선거 출마의 길이 열렸다. 2005년 11월 13일, 그는 분열된 정치 야당 덕분에 압도적인 표차로 재선되었다.
2010년 대선에서도 콩파오레는 재선되었다. 총인구의 10분의 1에도 못 미치는 160만 명의 부르키나베만이 투표에 참여했다. 2011년 2월, 한 남학생의 죽음은 2011년 부르키나베 시위를 촉발시켰는데, 이는 콩파오레의 사임, 민주 개혁, 군인 및 공무원 임금 인상, 경제적 자유를 요구하는 일련의 대중 시위와 군 반란, 판사 파업이 결합된 것이었다. 그 결과 주지사들이 교체되고 공무원 임금이 인상되었다. 2011년 4월에는 군 반란이 있었고, 대통령은 새로운 참모총장을 임명했으며 와가두구에 통행금지령이 내려졌다.
콩파오레 정부는 2010년~2011년 코트디부아르 위기, 토고 내부 대화(2007년), 2012년 말리 쿠데타 등 여러 서아프리카 분쟁에서 협상가 역할을 수행했다. 2014년 기준, 부르키나파소는 여전히 세계 최빈국 중 하나였다.
3.4.2. 2014년 봉기와 과도 정부

2014년 10월 28일부터 시위대는 와가두구에서 27년간의 통치를 연장하기 위해 헌법 개정을 준비하는 것으로 보이는 콩파오레 대통령에 반대하여 행진하고 시위를 벌이기 시작했다. 10월 30일 일부 시위대는 국회 의사당에 불을 지르고 국영 TV 본부를 점거했다. 와가두구 국제공항은 폐쇄되었고 국회의원들은 헌법 개정안(2015년 콩파오레의 재선을 허용했을 변경안)에 대한 표결을 중단했다. 이날 오후, 군대는 모든 정부 기관을 해산하고 통행금지령을 내렸다.
2014년 10월 31일, 콩파오레는 사임했다. 이삭 지다 중령은 계획된 2015년 부르키나베 총선 이전 과도기 동안 국가를 이끌 것이라고 말했지만, 전 대통령과의 긴밀한 관계에 대한 우려가 있었다. 2014년 11월 야당, 시민 사회 단체, 종교 지도자들은 부르키나파소를 선거로 이끌 과도기 당국 계획을 채택했다. 이 계획에 따라 미셸 카판도가 과도 대통령이 되었고, 지다 중령은 총리 대행 겸 국방장관이 되었다.
3.4.3. 민주주의 이행 시도와 불안정 (2015년~2021년)
2015년 9월 16일, 대통령 경호 연대(RSP)는 쿠데타를 일으켜 대통령과 총리를 억류한 후 민주주의를 위한 국민위원회를 새 국가 정부로 선포했다. 그러나 2015년 9월 22일, 쿠데타 지도자인 질베르 디앵데레는 사과하고 민간 정부 복원을 약속했다. 2015년 9월 23일 총리와 임시 대통령이 권력을 되찾았다.
2015년 부르키나베 총선은 2015년 11월 29일에 실시되었다. 로크 마르크 크리스티앙 카보레는 1차 투표에서 53.5%의 득표율로 사업가 제피랭 디아브레(29.7%)를 누르고 당선되었다. 카보레는 2015년 12월 29일 대통령으로 취임했다. 카보레는 2020년 11월 22일 총선에서 재선되었으나, 그의 정당인 진보를 위한 인민 운동(MPP)은 의회 과반수 확보에 실패하여 총 127석 중 56석을 확보하는 데 그쳤다. 전 대통령 블레즈 콩파오레의 정당인 민주주의와 진보를 위한 의회(CDP)는 20석으로 2위를 차지했다. 이 시기부터 지하디스트 반란이 본격화되며 부르키나파소는 심각한 안보 위기에 직면하게 된다.
3.4.4. 지하디스트 반란과 안보 위기


부르키나파소의 지하디스트 반란은 사헬 지역의 이슬람 반란의 일환으로 2015년 8월에 시작되었다. 2015년 8월부터 2016년 10월 사이, 전국적으로 7개의 다른 초소가 공격을 받았다. 2016년 1월 15일, 테러리스트들이 수도 와가두구를 공격하여 30명이 사망했다. 그때까지 주로 이웃 말리에서 활동하던 이슬람 마그레브 알카에다 지부(AQIM)와 알무라비툰이 이 공격의 책임을 주장했다.
2016년, 이맘 이브라힘 말람 디코가 이끄는 새로운 단체 안사룰 이슬람이 창설된 후 공격이 증가했다. 이 단체의 공격은 특히 숨주에 집중되었으며, 12월 16일 나숨부 공격에서 수십 명을 살해했다.
2017년 3월 27일부터 4월 10일까지 말리, 프랑스, 부르키나파소 정부는 안사룰 이슬람의 성역으로 여겨지는 부르키나파소-말리 국경 근처 페로 숲에서 세 나라 군인 1,300명이 참여한 "팡가 작전"이라는 합동 작전을 개시했다. 안사룰 이슬람의 수장 이브라힘 말람 디코는 2017년 6월에 사망했고 자파르 디코가 지도자가 되었다.
2018년 3월 2일, 자마트 누스라트 알이슬람 왈무슬리민(JNIM)이 와가두구의 프랑스 대사관과 부르키나베 군 참모본부를 공격했다. 군인 8명과 공격자 8명이 사망했고, 군인 61명과 민간인 24명이 추가로 부상당했다. 반란은 국가 동부로 확산되었고, 2018년 10월 초 부르키나파소군은 프랑스군의 지원을 받아 국가 동부에서 대규모 군사 작전을 개시했다. 휴먼 라이츠 워치에 따르면, 2018년 중반부터 2019년 2월까지 지하디스트에 의해 최소 42명이 살해되었고, 대부분 풀라니족 민간인 최소 116명이 군 병력에 의해 재판 없이 살해되었다. 공격은 2019년에 크게 증가했다. 무력 분쟁 지역 및 사건 자료 프로젝트(ACLED)에 따르면, 2019년 부르키나파소의 무력 폭력은 174% 급증하여 거의 1,300명의 민간인이 사망하고 86만 명이 실향민이 되었다. 지하디스트 단체들은 또한 부르키나파소의 기독교 신자들을 구체적으로 표적으로 삼기 시작했다.
2020년 7월 8일, 미국은 휴먼 라이츠 워치 보고서가 군인들이 지하디스트와 싸우던 부르키나파소 북부에서 최소 180구의 시신이 담긴 집단 무덤이 발견되었다고 밝힌 후 우려를 표명했다. 2021년 6월 4일, AP 통신은 부르키나파소 정부에 따르면 무장 괴한들이 니제르 국경 근처 북부 부르키나파소 솔한 마을에서 최소 100명을 살해했다고 보도했다. 현지 시장과 여러 가옥도 불탔다. 정부 대변인은 지하디스트를 비난했다. ACLED의 선임 연구원 헤니 은사이비아는 이것이 지하디스트 반란 시작 이후 부르키나파소에서 기록된 가장 치명적인 공격이라고 말했다.
2021년 6월 4일~5일, 정체불명의 무장 세력이 솔한과 타다랴트 마을에서 170명 이상을 학살했다. 8월 20일 지하디스트들이 고르가지에서 80명을 살해했다. 11월 14일, JNIM이 이나타의 헌병대를 공격하여 군인 53명을 살해했는데, 이는 반란 중 부르키나베 군의 가장 큰 인명 손실이자 국가의 주요 사기 저하였다. 12월 이슬람주의자들이 매복 공격으로 41명을 살해했으며, 여기에는 이슬람주의자들과의 투쟁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했던 친정부 민병대 국토방위 자원봉사대(VDP)의 인기 있는 자경단 지도자 라지 요로도 포함되었다.
2023년, 반군에 의한 가톨릭 신부 살해 직후 도리 교구의 로랑 다비레 주교는 가톨릭 자선단체 고통받는 교회 돕기와의 인터뷰에서 국가의 약 50%가 이슬람주의자들의 손에 넘어갔다고 주장했다.
3.4.5. 2022년 연쇄 쿠데타와 군사 정권
2022년 1월 24일 성공적인 쿠데타에서, 반란 군인들은 총격전 끝에 로크 마르크 크리스티앙 카보레 대통령을 체포하고 축출했다. 군부가 지원하는 애국 수호와 회복 운동(MPSR)은 폴앙리 산다오고 다미바 중령이 이끄는 권력을 장악했다고 선언했다. 1월 31일, 군사 정권은 헌법을 복원하고 다미바를 임시 대통령으로 임명했다. 쿠데타 이후 서아프리카 경제 공동체(ECOWAS)와 아프리카 연합은 부르키나파소의 회원 자격을 정지했다. 2월 10일, 헌법위원회는 다미바를 대통령으로 선언했고, 그는 2월 16일에 대통령으로 취임했다. 2022년 3월 1일, 정권은 3년간의 군 주도 과도기를 허용하는 헌장을 승인했다. 이 헌장은 과도기 과정 이후 선거를 치르도록 규정하고 있다. 군사 정권이 권력을 장악한 이후 구금되어 있던 카보레 대통령은 2022년 4월 6일에 석방되었다.
쿠데타 이후에도 반란은 계속되었으며, 국토의 약 60%만이 정부 통제 하에 있었다. 지보 포위전은 2022년 2월에 시작되어 2023년 6월 현재까지 계속되고 있다. 2022년 6월 12일~13일, 세이텡가군 세노주에서 100~165명이 살해되었고 약 16,000명이 집을 떠나 피난했다. 2022년 6월, 정부는 민간인들이 대피하여 군대와 보안군이 아무런 "방해" 없이 반군과 싸울 수 있도록 "군사 구역"을 설정한다고 발표했다.
2022년 9월 30일, 이브라힘 트라오레 대위가 이끄는 군사 쿠데타로 다미바가 축출되었다. 이는 다미바가 권력을 장악한 지 8개월 만이었다. 트라오레가 쿠데타의 이유로 내세운 것은 폴앙리 산다오고 다미바가 이슬람 반란에 대처하지 못했다는 주장이었다. 다미바는 사임하고 국외로 떠났다. 2022년 10월 6일, 이브라힘 트라오레 대위가 공식적으로 대통령으로 임명되었다. 아폴리네르 조아킴 키엘렘 드 탐벨라는 2022년 10월 21일 임시 총리로 임명되었다.
2023년 4월 13일, 부르키나파소 당국은 테러리즘과 싸우고 이슬람 반군으로부터 국토의 40%를 탈환하기 위한 "모든 조치를 위한 법적 틀"을 마련하기 위해 국가 총동원령을 선포했다. 4월 20일, 신속개입여단은 카르마 학살을 저질러 민간인들을 집단으로 모아 처형했다. 60명에서 156명의 민간인이 살해되었다.
2024년 5월, 이슬람 과격파의 활동으로 인한 치안 악화를 이유로 군정은 5년 연장되어 2029년 7월까지로 설정되었다. 2024년 8월 25일, JNIM은 다시 바르살로고군 지역에서 대규모 공격을 감행하여 최소 400명을 살해했다.
4. 지리
부르키나파소는 서아프리카의 내륙국으로, 국토 대부분은 평탄한 고원 지대이며 남서부에 사암 산맥이 발달해 있다. 열대 기후대에 속하며 건기와 우기가 뚜렷하고, 세 개의 주요 강이 국토를 가로지른다. 금, 망간 등 광물 자원이 풍부하며, 사헬 아카시아 사바나와 서수단 사바나 등 다양한 생태계를 보유하고 있다.
4.1. 지형과 지질


부르키나파소는 대부분 북위 9도에서 15도 사이(일부 북위 15도 북쪽 지역 포함), 서경 6도에서 동경 3도 사이에 위치한다.
국토는 크게 두 가지 유형의 지형으로 이루어진다. 국토의 대부분은 준평원으로 덮여 있으며, 완만하게 기복이 있는 지형을 이루고 일부 지역에는 고립된 언덕들이 있는데, 이는 선캄브리아 시대 산괴의 마지막 잔존물이다. 반면, 국토 남서부는 사암 산괴를 이루며, 이곳에 최고봉인 테나코루산(해발 749 m)이 위치한다. 이 산괴는 최대 150 m 높이의 가파른 절벽으로 둘러싸여 있다. 부르키나파소의 평균 고도는 400 m이며, 가장 높은 지형과 가장 낮은 지형의 차이는 600 m를 넘지 않는다. 따라서 부르키나파소는 비교적 평탄한 국가이다.
4.2. 기후

부르키나파소는 주로 두 개의 매우 뚜렷한 계절을 가진 열대 기후를 나타낸다. 우기에는 600 mm에서 900 mm 사이의 강우량을 기록하며, 건기에는 사하라 사막에서 불어오는 뜨겁고 건조한 바람인 하르마탄이 분다. 우기는 대략 4개월간 지속되며, 5월/6월부터 9월까지 이어지지만 북부 지역에서는 더 짧다. 세 가지 기후대로 구분할 수 있다: 사헬 지대, 수단-사헬 지대, 수단-기니 지대. 북부의 사헬 지대는 일반적으로 연간 강우량이 600 mm 미만이며, 기온이 5 °C에서 47 °C 사이로 높다.
상대적으로 건조한 열대 사바나인 사헬 지대는 부르키나파소 국경 너머 아프리카의 뿔에서 대서양까지 뻗어 있으며, 북쪽으로는 사하라 사막, 남쪽으로는 비옥한 수단 지역과 접한다. 북위 11° 3′에서 13° 5′ 사이에 위치한 수단-사헬 지역은 강우량과 기온에 관한 과도기적 지대이다. 더 남쪽으로 가면 수단-기니 지대는 연간 900 mm 이상의 비가 내리고 평균 기온이 더 낮다.
지리와 환경은 부르키나파소의 식량 불안정에 기여한다. 이 나라는 사헬 지대에 위치해 있어 극심한 홍수에서 극심한 가뭄에 이르기까지 세계에서 가장 급격한 기후 변화를 겪고 있다. 예측 불가능한 기후 충격은 부르키나파소 시민들이 농업에 의존하고 번영하기 매우 어렵게 만들 수 있다.
부르키나파소의 기후는 또한 농작물을 메뚜기와 귀뚜라미를 포함한 해충 공격에 취약하게 만들어 농작물을 파괴하고 식량 생산을 더욱 저해한다. 부르키나파소 인구의 대부분은 소득원으로 농업에 의존할 뿐만 아니라, 가계를 직접 먹여 살릴 식량을 위해 농업 부문에 의존한다. 농업의 취약성으로 인해 점점 더 많은 가족들이 농업 외 소득원을 찾아야 하며, 종종 일자리를 찾기 위해 지역을 벗어나 이동해야 한다.
4.3. 수계
부르키나파소의 옛 국명인 오트볼타는 국토를 가로지르는 세 개의 강, 즉 무운강(Mouhoun, 과거 흑볼타강), 나캄베강(Nakambé, 백볼타강), 나지농강(Nazinon, 적볼타강)에서 유래했다. 무운강은 이 나라에서 유일하게 연중 물이 흐르는 두 강 중 하나이며, 다른 하나는 남서쪽으로 흐르는 코모에강이다. 니제르강 유역 또한 국토 표면의 27%를 배수한다.
니제르강의 지류들인 벨리강, 고루올강, 구데보강, 다르골강은 계절천으로, 일 년 중 4~6개월 동안만 흐른다. 그러나 이 강들은 여전히 범람하여 넘칠 수 있다. 이 나라에는 또한 수많은 호수가 있는데, 주요 호수로는 팅그렐라호, 밤호, 뎀호 등이 있다. 또한 우르시호, 벨리호, 욤볼리호, 마르코예호와 같은 큰 연못들도 있다. 물 부족은 특히 나라 북부에서 자주 문제가 된다.
4.4. 자연 자원과 생태계
부르키나파소의 천연자원으로는 금, 망간, 석회암, 대리석, 인광석, 부석, 암염 등이 있다.
부르키나파소는 두 개의 육상 생태 지역 내에 위치한다: 사헬 아카시아 사바나와 서수단 사바나.
2020년 부르키나파소의 산림 피복은 총 육지 면적의 약 23%로, 6,216,400헥타르(ha)에 해당하며, 이는 1990년의 7,716,600헥타르(ha)에서 감소한 수치이다. 2020년에는 자연 재생림이 6,039,300헥타르(ha)를, 인공림이 177,100헥타르(ha)를 차지했다. 자연 재생림 중 0%가 원시림(인간 활동의 명확한 징후가 없는 토종 수종으로 구성)으로 보고되었으며, 산림 면적의 약 16%가 보호 지역 내에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2015년에는 산림 면적의 100%가 공공 소유로 보고되었다.
부르키나파소에는 서아프리카의 많은 나라보다 더 많은 수의 코끼리가 서식한다. 사자, 표범, 물소도 이곳에서 발견되며, 여기에는 더 작고 붉은 갈색을 띠며 짧은 다리를 가진 사나운 소처럼 보이는 난쟁이 또는 붉은 물소도 포함된다. 부르키나파소에는 치타, 카라칼 또는 아프리카 스라소니, 점박이하이에나, 그리고 아프리카 대륙에서 가장 멸종 위기에 처한 종 중 하나인 아프리카들개와 같은 다른 대형 포식자들도 서식한다.
부르키나파소의 동식물은 4개의 국립공원에서 보호받고 있다:
- 동부의 W 국립공원 (부르키나파소, 베냉, 니제르에 걸쳐 있음)
- 아를리 국립공원 (동부)
- 서부의 레라바-코모에 분류 삼림 및 야생동물 부분 보호구역
- 서부의 마르 오 이포포탐 (하마의 늪)
그 외에도 여러 보호구역이 있다.
5. 정치
부르키나파소는 반대통령제 공화국 체제를 채택하고 있으나, 2022년 연이은 쿠데타 이후 군사 정권이 집권하며 헌정이 중단되거나 변경되는 등 정치적 불안정이 지속되고 있다. 다당제가 명목상 존재하나 군정 하에서는 정당 활동이 제한적이며, 인권 상황 또한 언론 탄압, 정치적 억압 등으로 인해 열악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5.1. 정부 구조와 헌법

1991년 6월 2일 제정된 부르키나파소 헌법은 반대통령제 정부를 수립했다. 이에 따라 대통령은 7년 임기로 선출되며 의회를 해산할 수 있었다. 2000년에는 헌법이 개정되어 대통령 임기가 5년으로 단축되고 연임은 2회로 제한되어 연속 재선이 불가능해졌다. 이 개정안은 2005년 선거부터 효력을 발휘했다.
의회는 국민의회로 알려진 단원제로 구성되었으며, 의석은 111석(이후 127석으로 변경)으로 의원들은 5년 임기로 선출되었다. 10명으로 구성된 헌법재판소와 순전히 자문 역할을 하는 경제사회이사회가 있었다. 1991년 헌법은 양원제 의회를 만들었으나, 상원(대표자회의)은 2002년에 폐지되었다.
콩파오레 행정부는 일부 권한을 지방 및 시 당국에 이양하여 권력 분산을 추진했다. 그러나 정치인에 대한 광범위한 불신과 많은 주민들의 정치 참여 부족으로 이 과정은 복잡했다. 비평가들은 이를 혼합형 분권화라고 묘사했다.
부르키나파소에서는 정치적 자유가 심각하게 제한되었다. 인권 단체들은 콩파오레 행정부가 언론인 및 기타 정치 활동가들에 대해 국가가 후원하는 수많은 폭력 행위를 저질렀다고 비판했다.
2015년, 카보레 대통령은 1991년 헌법 개정을 약속했고, 개정은 2018년에 완료되었다. 한 가지 조건은 어떤 개인도 연속적이든 간헐적이든 10년 이상 대통령직을 수행할 수 없도록 하고 대통령 탄핵 방법을 제공하는 것이었다. 제5공화국 헌법에 대한 국민투표는 2019년 3월 24일로 예정되어 있었다. 개정된 문구에는 식수 접근권, 적절한 주거 접근권, 시민 불복종 권리 인정 등 특정 권리도 명시되었다. 야당이 제안된 안을 승인하기를 거부했기 때문에 국민투표가 필요했다.
2022년 1월 쿠데타 이후 군부는 의회, 정부, 헌법을 해산했다. 1월 31일, 군사 정권은 헌법을 복원했으나, 2022년 9월 쿠데타 이후 다시 정지되었다.
총리는 정부 수반이며, 국회의 승인을 받아 대통령이 임명한다. 총리는 대통령이 임명할 내각을 추천할 책임이 있다. 2022년 쿠데타 이후 이러한 정부 구조는 사실상 중단되었으며, 군사 정권이 실권을 장악하고 있다.
5.2. 주요 정당과 선거
부르키나파소는 명목상 다당제를 채택하고 있으나, 2022년 연쇄 쿠데타 이후 군사 정권 하에서 정당 활동은 크게 위축되었다. 쿠데타 이전 주요 정당으로는 로크 마르크 크리스티앙 카보레 전 대통령이 이끌었던 진보를 위한 인민 운동(MPP), 진보와 개혁을 위한 연합(UPC), 그리고 블레즈 콩파오레 전 대통령의 여당이었던 민주주의와 진보를 위한 의회(CDP) 등이 있었다.
2015년 총선에서는 MPP가 55석을 얻어 제1당이 되었고, 2020년 총선에서는 56석을 확보했으나 과반에는 미치지 못했다. 대통령 선거는 1991년부터 2010년까지 블레즈 콩파오레가 연이어 당선되었으며, 2014년 그의 실각 이후 2015년과 2020년에는 로크 마르크 크리스티앙 카보레가 당선되었다. 그러나 2022년 쿠데타로 카보레 대통령이 축출되면서 선거를 통한 민주적 정권 교체는 중단된 상태이다. 현재 군사 정권은 3년의 과도기를 거쳐 선거를 실시할 것을 약속했으나, 2024년 5월에는 이슬람 과격파 활동으로 인한 치안 악화를 이유로 민정 이양을 5년 연기하여 2029년 7월로 설정했다.
5.3. 인권
부르키나파소의 인권 상황은 심각한 수준으로 평가된다. 특히 2010년대 중반부터 시작된 지하디스트 반란과 연이은 군사 쿠데타로 인해 정치적 불안정이 심화되면서 인권 침해 사례가 빈번하게 보고되고 있다.
과거 블레즈 콩파오레 장기 집권 시절부터 언론인과 정치 활동가에 대한 국가 주도의 폭력과 탄압이 자행되었다는 비판이 제기되어 왔다. 대표적인 사례로 1998년 탐사보도 전문기자 노르베르 종고 암살 사건은 여전히 미해결 상태로 남아 있으며, 언론의 자유를 위축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최근에는 지하디스트 세력과 정부군 양측에 의한 민간인 대상 폭력과 살해가 심각한 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2020년 7월 휴먼 라이츠 워치는 정부군이 지하디스트와 교전 중이던 북부 지역에서 최소 180구의 시신이 담긴 집단 매장지를 발견했다고 보고했으며, 2023년 4월에는 정부군 신속개입여단에 의한 카르마 학살로 다수의 민간인이 희생되었다.
여성 및 아동 인권 문제도 심각하다. 여성 할례(FGM)와 아동 강제 결혼 풍습이 여전히 남아 있으며, 분쟁 지역에서는 여성과 아동이 폭력과 착취에 더욱 취약한 상황이다. 지하디스트 반란으로 인해 수많은 국내 실향민이 발생하면서 이들에 대한 인도주의적 지원과 보호 또한 중요한 과제로 떠오르고 있다.
군사 정권 하에서는 정치적 자유가 더욱 제한되고 있으며, 정부의 반인권적 행위에 대한 비판과 감시가 어려운 상황이다. 국제사회는 부르키나파소의 인권 상황 개선을 위해 지속적인 관심과 노력을 기울이고 있으나, 근본적인 해결에는 많은 어려움이 따르고 있다.
6. 행정 구역


부르키나파소는 13개 지방(레지옹), 45개 주(프로뱅스), 그리고 301개 군(데파르트망)으로 구성된 행정 구역 체계를 가지고 있다. 각 지방은 주지사가 관리한다.
주요 도시로는 수도인 와가두구를 비롯하여 보보디울라소, 쿠두구, 와히구야, 카야, 반포라 등이 있다.
- 부클뒤무운주
- 카스카드주
- 상트르주
- 상트르에스트주
- 상트르노르주
- 상트르웨스트주
- 상트르쉬드주
- 에스트주
- 오바생주
- 노르주
- 플라토상트랄주
- 사엘주
- 쉬드웨스트주
7. 군사 및 치안
부르키나파소 군대는 육군, 공군, 그리고 과거에는 인민 민병대로 구성되었다. 육군은 약 6,000명의 자원 복무 병력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25세에서 35세 사이의 민간인으로 구성된 파트타임 국가 인민 민병대가 이를 보강했었다. 제인스 센티널 국가 위험 평가에 따르면, 부르키나파소 육군은 병력 구조에 비해 인력이 부족하고 장비가 열악하지만, 바퀴 달린 경장갑 차량을 보유하고 있으며 라이베리아 및 아프리카의 다른 지역에서의 개입을 통해 유용한 전투 전문 지식을 개발했을 가능성이 있다. 공군은 약 19대의 작전 항공기를 보유하고 있으나, 내륙국이기 때문에 해군은 없다. 군사비 지출은 국가 GDP의 약 1.2%를 차지한다. 과거에는 정예 대통령 경호 연대(RSP)가 있었으나 2015년 쿠데타 이후 해체되었다. 최근 2022년 1월과 9월에 연이어 발생한 군사 쿠데타는 군부의 정치적 영향력을 보여준다.
경찰 조직으로는 군사 조직을 모델로 한 국가 헌병대(주로 농촌 지역과 국경 담당, 국방부 소속), 시경찰(지방행정부 소속), 국가경찰(보안부 소속) 등이 있다. 모든 경찰은 행정경찰(공공질서 및 보안)과 사법경찰(범죄 수사) 기능으로 나뉜다.
부르키나파소의 국내 치안 상황은 지하디스트 반란으로 인해 극도로 불안정하다. 2015년부터 이슬람 국가(IS) 또는 알카에다와 연계된 무장 단체들의 활동이 격화되면서 국가 대부분 지역에서 테러, 납치, 민간인 공격이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다. 이로 인해 수많은 국내 실향민이 발생했으며, 정부의 통제력이 미치지 못하는 지역이 상당하다. 민족 간 갈등과 일반 범죄(절도, 강도 등) 또한 치안 불안을 가중시키는 요인이다.
8. 대외 관계
부르키나파소는 전통적으로 비동맹 중립 노선을 표방하며 여러 국제기구에 참여해왔으나, 최근 몇 년간의 정치적 격변과 안보 상황 악화로 인해 국제 관계에 큰 변화를 겪고 있다.
부르키나파소는 국제 연합(UN), 이슬람 협력 기구(OIC), 프랑코포니(La Francophonie)의 회원국이다. 그러나 2022년 연쇄 쿠데타 이후 서아프리카 경제 공동체(ECOWAS)와 아프리카 연합(AU)으로부터 회원 자격이 정지된 상태이다. 또한 2023년 12월에는 니제르, 말리와 함께 지역 안보 협력체인 G5 사헬에서 탈퇴했다.
과거 식민 종주국이었던 프랑스와는 독립 이후에도 긴밀한 관계를 유지해왔으나, 최근 군사 정권 수립 이후 관계가 급격히 악화되었다. 부르키나파소 정부는 프랑스군 철수를 요구하고 군사 협력 협정을 종료하는 등 탈프랑스 행보를 보이고 있다. 대신 러시아, 말리, 니제르와의 관계를 강화하며 새로운 외교적 활로를 모색하고 있으며, 이들 국가와 사헬 국가 연합을 결성하기도 했다.
중화인민공화국과 중화민국(대만) 사이에서는 수교와 단교를 반복해왔다. 1961년부터 1973년까지 중화민국과, 1973년부터 1994년까지 중화인민공화국과 국교를 맺었다. 이후 다시 중화민국과 복교했으나, 2018년 5월 26일 중화민국과 단교하고 중화인민공화국과 재수교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대한민국과는 1962년 오트볼타 시절 수교한 이래 외교 관계를 유지하고 있으며, 주코트디부아르 대사관이 겸임하고 있다. 양국 간에는 의료 기술 및 무역 협정이 체결되어 있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과도 오트볼타 시절 수교했으며, 국명 변경 후에도 외교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과거 블레즈 콩파오레 정권 시절에는 서아프리카 지역 분쟁에서 중재자 역할을 수행하기도 했으나, 현재는 국내 문제에 집중하는 양상이다.
9. 경제
부르키나파소는 세계 최빈국 중 하나로, 농업에 크게 의존하는 경제 구조를 가지고 있으며 높은 빈곤율과 국제 원조 의존도를 특징으로 한다. 최근 몇 년간 금 생산 증가와 기반 시설 투자로 어느 정도 경제 성장을 이루었으나, 정치적 불안정, 기후 변화, 외부 충격 등으로 인해 여전히 많은 도전에 직면해 있다. 2022년 국내 총생산(GDP)은 약 1622.60 억 USD 수준이었다.
9.1. 경제 구조와 동향
부르키나파소 경제의 핵심은 농업으로, 전체 GDP의 약 32%를 차지하고 노동 인구의 80%가 종사하고 있다. 대부분 자급 농업 형태이며, 주요 현금 작물은 면화이다. 그러나 불규칙한 강우 패턴, 척박한 토양, 미흡한 통신 및 기타 기반 시설은 경제를 외부 충격에 취약하게 만드는 요인이다.
2014년 기준 빈곤율은 40.1%로, 2009년의 46%에 비해 다소 하락했으나 여전히 높은 수준이다. 국제 원조에 대한 의존도가 높으며, 많은 경제 활동이 국제 원조로 자금을 조달받고 있다. 인플레이션은 2017년 0.4%로 낮게 유지되었으나, 공공 부채는 GDP의 7.7%로 증가했다. 정부는 부채를 해결하기 위해 양허성 원조와 지역 시장 차입을 병행하고 있다.
최근 몇 년간 금 탐사, 생산 및 수출이 증가하면서 2017년에는 6.4%의 경제 성장률을 기록했다. 임금 상승과 연계된 소비 증가 또한 경제 성장을 뒷받침했다. 그러나 유가 상승(수입), 금과 면화 가격 하락(수출), 테러 위협, 노동 파업 등은 경제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위험 요인으로 남아 있다.
부르키나파소는 서아프리카 경제 통화 연합(UEMOA)의 회원국이며 서아프리카 CFA 프랑을 사용한다. 또한 아프리카 비즈니스 법률 조화 기구(OHADA), 국제 연합, 국제 통화 기금, 세계 은행, 세계 무역 기구의 회원국이기도 하다. 이웃 국가로의 노동 이주가 활발하며, 특히 코트디부아르로 많은 인구가 이주하여 노동에 종사하고 이들이 보내는 송금은 국가 경제에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
9.2. 주요 산업
부르키나파소 경제는 농업 및 목축업, 광업을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다. 제조업 기반은 취약하며, 서비스업 또한 아직 발전이 미흡한 상태이다.
9.2.1. 농업 및 목축업
농업은 부르키나파소 경제의 근간으로, 노동 인구의 대다수가 종사하며 GDP의 상당 부분을 차지한다. 주요 식량 작물로는 수수, 기장, 옥수수, 땅콩, 쌀 등이 생산된다. 특히 수수와 기장은 주식으로 널리 재배된다. 주요 환금 작물은 면화로, 수출에서 중요한 비중을 차지한다. 참깨 또한 세계 7위의 생산량을 자랑하며 주요 수출품 중 하나이다.
목축업 역시 중요한 산업으로, 소, 양, 염소 등을 사육하여 국내 소비 및 수출에 기여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농업은 관개 시설이 부족하여 강우에 의존하는 천수 농업 형태이며, 척박한 라테라이트 토양으로 인해 생산성이 낮다. 최근에는 기후 변화로 인한 잦은 가뭄과 홍수, 그리고 지하디스트 반란으로 인한 안보 불안이 농업 생산에 심각한 타격을 주고 있다.
9.2.2. 광업

부르키나파소는 금, 망간, 아연, 구리, 철, 주석석(주석 광석), 인광석, 니켈, 석회석 등 다양한 광물 자원을 보유하고 있다. 이 중 가장 중요한 광물은 금으로, 국가의 핵심 수출품목이다. 금 생산량은 2008년 5톤에서 2014년 36톤, 2015년 36톤으로 크게 증가했으며, 2011년에는 아프리카에서 남아프리카 공화국, 말리, 가나에 이어 4번째로 큰 금 생산국이 되었다. 2018년에는 55톤의 금 생산이 예상되기도 했다.
그러나 광업 발전에는 여러 문제점이 따르고 있다. 많은 광산이 영세한 규모로 운영되며, 안전 시설 미비로 인한 사고 위험이 높다. 아동 노동 또한 심각한 문제로 지적되고 있으며, 광산 개발 과정에서의 환경 오염 문제도 제기된다. 정부는 금 이외의 망간, 아연, 구리 등 다른 광물 자원 개발을 통해 생산 다각화를 추진하려 하고 있다.
9.3. 기반 시설
부르키나파소의 국가 발전을 위한 사회기반시설은 전반적으로 낙후되어 있으며, 특히 교통, 에너지, 물 관리 분야에서 많은 개선이 요구된다.
9.3.1. 교통

부르키나파소의 교통 인프라는 상대적으로 미개발 상태이다. 2014년 6월 기준, 주요 국제공항인 와가두구 국제공항은 서아프리카 여러 목적지와 파리, 브뤼셀, 이스탄불 등으로 정기 항공편을 운항했다. 또 다른 국제공항인 보보디울라소 공항은 와가두구와 아비장으로 항공편을 운항한다. 그 외 여러 소규모 공항이 존재한다. 에르 부르키나가 국영 항공사로 와가두구를 허브 공항으로 이용한다.
철도는 카야에서 와가두구, 쿠두구, 보보디울라소, 반포라를 거쳐 코트디부아르의 아비장까지 이어지는 단일 노선(아비장-니제르 철도)이 있다. 시타레일(Sitarail)이 이 노선에서 주 3회 여객 열차를 운행한다. 이 철도는 1954년에 개통되었고 1991년에 카야까지 연장되었으나, 주로 화물 운송에 중점을 두고 있으며 시설 노후화 문제도 있다.
도로망은 총 1.50 만 km이며, 이 중 포장도로는 2500 km에 불과하다 (2014년 기준). 열악한 도로 사정은 물류 이동과 경제 발전에 큰 제약이 되고 있다.
9.3.2. 에너지
부르키나파소는 전력 생산 및 공급에 있어 수입 의존도가 높으며, 불안정한 에너지 공급은 국가 발전에 큰 걸림돌이 되고 있다. 정부는 2030년까지 전체 전력 수요의 30%를 태양광 발전으로 충당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으며, 재생 에너지 개발에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대표적인 예로, 2017년 11월 수도 와가두구 인근 자그툴리에 33MW(메가와트) 규모의 태양광 발전소가 가동을 시작했다. 이는 건설 당시 서아프리카 최대 규모의 태양광 발전 시설이었다. 그러나 여전히 만성적인 전력 부족 문제 해결에는 더 많은 투자와 노력이 필요한 상황이다.
9.3.3. 물 관리와 위생

부르키나파소의 물 관리 및 위생 시설은 개선이 시급한 분야이다. 국영 기업인 국가수도위생청(ONEA)은 상업적 원칙에 따라 운영되며, 아프리카에서 가장 우수한 공익 기업 중 하나로 평가받고 있다. ONEA는 높은 수준의 자율성과 숙련된 경영진을 바탕으로 깨끗한 물 생산 및 접근성 향상에 기여해왔다.
2000년 이후 전국 4개 주요 도시 중심지에서 약 200만 명이 추가로 물 공급 혜택을 받았으며, 높은 수준의 기반 시설 품질(누수율 18% 미만,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 최저 수준)을 유지하고 재무 보고를 개선하여 연평균 12%의 매출 증가를 달성했다. 그러나 일부 주민들의 서비스 요금 지불 어려움, 기반 시설 확충을 위한 국제 원조 의존 등의 과제가 남아있다.
유니세프에 따르면 식수 접근성은 지난 28년간 꾸준히 개선되어, 1990년부터 2015년 사이 농촌 지역에서는 39%에서 76%로, 도시 지역에서는 75%에서 97%로 증가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특히 농촌 지역의 위생 시설 부족은 여전히 심각한 문제로 남아있다.
9.4. 과학 기술
부르키나파소는 과학 기술 발전을 위한 투자가 미흡한 편이나, 정부 차원에서 관련 정책 수립 및 기관 설립을 통해 개선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2009년 기준, 연구 개발(R&D) 지출은 GDP의 0.20%로 서아프리카에서 가장 낮은 수준 중 하나였다. 2010년 인구 백만 명당 연구원 수는 48명으로,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 평균(2013년 20명)보다는 높았으나 세네갈(361명) 등 다른 국가에 비해서는 낮은 수치이다. 연구 분야별로는 보건(46%), 공학(16%), 자연과학(13%), 농업과학(9%), 인문학(7%), 사회과학(4%) 순이었다.
2011년 1월, 정부는 과학연구혁신부를 신설하여 과학 기술 및 혁신 관리를 강화했다. 2012년에는 연구 개발 촉진 및 연구 결과의 응용·상업화를 목표로 하는 '국가 과학기술 연구 정책'을 채택했다. 이 정책의 주요 우선순위는 농업 및 환경 과학 역량 강화를 통한 식량 안보 및 자급자족 개선과 혁신적이고 효과적이며 접근 가능한 보건 시스템 개발이다. 2014년에는 세계은행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와가두구 국제 물·환경 공학 연구소에 우수 연구 센터가 설립되어 이러한 우선 분야의 역량 강화에 필요한 자금을 지원하고 있다.
또한 정부는 '기술·발명·혁신 대중화 국가 전략'(2012년)과 '국가 혁신 전략'(2014년)을 마련했으며, '중등 및 고등 교육·과학 연구 정책'(2010년), '국가 식량·영양 안보 정책'(2014년), '국가 농촌 부문 프로그램'(2011년) 등 다른 정책에도 과학 기술 요소가 통합되어 있다. 2013년에는 연구 및 혁신 자금 지원을 위한 세 가지 메커니즘(국립 교육 연구 기금, 국립 개발 연구 혁신 기금, 과학 연구 기술 혁신 포럼)을 수립하는 '과학, 기술 및 혁신법'을 통과시켰다.
세계 지식 재산권 기구(WIPO)가 발표하는 글로벌 혁신 지수에서 부르키나파소는 2024년 129위를 기록했다.
10. 사회
부르키나파소는 높은 인구 성장률과 젊은 인구 구조를 특징으로 하며, 다양한 민족 집단이 공존하고 있다. 다수의 공용어와 실무 언어가 사용되며, 이슬람교가 가장 우세한 종교이다. 교육 및 보건 의료 시스템은 여전히 많은 개선이 필요하며, 만성적인 식량 부족 문제 또한 심각한 사회 문제로 남아있다.
10.1. 인구


2024년 국제 연합 추정에 따르면 부르키나파소의 총인구는 약 2,328만 6천 명이다. 인구는 주로 남부와 중부 지역에 집중되어 있으며, 일부 지역에서는 인구 밀도가 48 명/km2를 초과하기도 한다. 수백만 명의 부르키나베인들이 주로 계절 농업 노동을 위해 코트디부아르와 가나로 정기적으로 이주한다. 이러한 노동력 이동은 외부 사건의 영향을 받는데, 예를 들어 2002년 9월 코트디부아르 쿠데타 시도와 그에 따른 분쟁으로 수십만 명의 부르키나베인들이 귀국하여 지역 경제가 어려움을 겪었다.
부르키나파소의 합계출산율은 2014년 기준 여성 1명당 5.93명으로 추정되어 세계에서 여섯 번째로 높았다. 2014년 주민의 중위 연령은 17세였고, 추정 인구 성장률은 3.05%였다.
2009년 미국 국무부의 '인신매매 보고서'는 부르키나파소에 노예제가 계속 존재하며 부르키나베 어린이들이 종종 희생자가 된다고 보고했다. 사헬 지대 국가들의 노예제는 사하라 횡단 노예 무역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오랜 역사를 가진 뿌리 깊은 제도이다. 2018년 국제노예지수에 따르면 약 82,000명이 "현대 노예" 상태로 살고 있는 것으로 추정되었다.
2019년 인구 조사에 따르면 주요 도시 인구는 다음과 같다:
- 와가두구: 2,415,266명
- 보보디울라소: 904,920명
- 쿠두구: 160,239명
- 사바: 136,011명
- 와히구야: 124,587명
- 카야: 121,970명
- 반포라: 117,452명
- 푸이텡가: 96,469명
- 운데: 87,151명
- 파다응구르마: 73,200명
부르키나파소 인구 변화 | |
---|---|
연도 | 인구 (백만 명) |
1950 | 4.3 |
2000 | 11.6 |
2021 | 21.9 |
10.2. 민족
부르키나파소의 약 2,300만 명 인구는 크게 두 주요 서아프리카 문화 집단인 볼타어족과 만데어족(공용어는 줄라어)에 속한다. 볼타어족의 모시인이 인구의 약 절반(40~50%)을 차지한다. 모시인은 서기 1100년경 현재의 가나 북부에서 현재의 부르키나파소로 이주한 전사들의 후손이라고 주장한다. 그들은 800년 이상 지속된 제국을 세웠다. 주로 농민인 모시 왕국은 와가두구에 궁정을 둔 모고 나바가 이끈다.
그 외 주요 민족 집단으로는 풀라니인(풀족), 구르마체인, 구룬시족, 보보족, 로비족, 만데족, 비사족, 사모족, 마르카족, 세누포족 등이 있다. 이들 민족은 각각 고유한 문화와 전통을 가지고 있으며, 국가의 다채로운 문화적 다양성에 기여한다.
10.3. 언어
부르키나파소는 다언어 국가이다. 2023년 12월, 부르키나파소 정부는 기존의 공용어였던 프랑스어의 지위를 영어와 함께 "실무 언어"로 변경하고, 국민어인 모레어, 비사어, 줄라어, 풀라어를 새로운 공용어로 지정했다. 이는 프랑스와의 관계 악화 및 국가 정체성 강화 노력의 일환으로 해석된다.
전체적으로 약 69개의 언어가 사용되며, 이 중 약 60개는 토착어이다. 모레어(모시족 언어)는 인구의 약 절반(40.5%)이 사용하는 가장 널리 쓰이는 언어로, 주로 수도 와가두구를 중심으로 한 중부 지역에서 사용된다.
2006년 인구 조사에 따르면, 모국어로 가장 많이 사용되는 언어는 모레어(40.5%)이며, 풀라어(9.3%), 구르마체어(6.1%), 밤바라어(4.9%), 비사어(3.2%) 등이 그 뒤를 잇는다. 그 외에도 브와무어(2.1%), 다가라어(2.0%), 산어(1.9%), 로비리어(1.8%), 리엘레어(1.7%), 보보어(1.4%), 세누포어(1.4%), 누니어(1.2%), 다핑어(1.1%), 타마셰크어(1.0%), 카셈어(0.7%), 구인어(0.4%), 도곤어(0.3%), 송가이어(0.3%), 구룬시어(0.3%), 코어(0.1%), 쿠사세어(0.1%), 셈블라어(0.1%), 시아무어(0.1%) 등이 각 민족 집단에 의해 사용된다. 기타 국어가 5.0%, 기타 아프리카어가 0.2%, 프랑스어는 약 1.3%가 모국어로 사용하며, 기타 비토착어가 0.1%를 차지한다.
프랑스어는 과거 공용어였으며, 현재도 행정, 교육, 비즈니스 분야에서 여전히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학교 교육의 주요 언어이기도 하다. 문해율은 낮은 편이며, 정부는 국민어 교육 증진 및 공식화를 위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10.4. 종교


부르키나파소의 주요 종교는 이슬람교, 기독교, 그리고 토착 신앙이다. 2019년 정부 인구 조사에 따르면, 인구의 63.8%가 이슬람교를 믿으며, 이들 대다수는 수니파에 속하고 소수는 시아파를 따른다. 수니파 무슬림 중 상당수는 티자니야 수피 교단에 속한다.
같은 조사에서 인구의 26.3%는 기독교 신자로, 이 중 20.1%가 가톨릭 신자이고 6.2%가 개신교 교파에 속한다. 9.0%는 도곤교와 같은 토착 신앙을 따르며, 0.2%는 기타 종교를, 0.7%는 종교가 없다고 응답했다.
애니미즘 신자는 국가의 남서부 지역에서 가장 큰 종교 집단으로, 해당 지역 전체 인구의 48.1%를 차지한다. 과거 1960년에는 토착 신앙이 68.7%로 가장 우세했으나, 독립 이후 급격한 이슬람화가 진행되었다. 많은 경우 이슬람교와 기독교는 현지 토착 신앙과 함께 신봉되기도 한다. 부르키나파소 헌법은 종교의 자유를 보장하며, 대체로 다양한 종교 집단 간의 관계는 평화로운 편이다.
10.5. 교육
부르키나파소의 교육은 초등, 중등, 고등 교육으로 나뉜다. 교육 제도는 초등학교 6년, 중학교 4년, 고등학교 3년, 대학교 4년으로 구성되며, 초등학교와 중학교의 10년 과정이 의무 교육이다. 수업은 주로 프랑스어로 진행된다.
그러나 높은 학비는 많은 부르키나베 가정에 큰 부담이 된다. 고등학교 학비는 연간 약 25,000 서아프리카 CFA 프랑(미화 50 USD)으로, 대부분 가정의 경제적 능력을 훨씬 뛰어넘는다. 전통적으로 남학생이 학교 교육에서 우선시되었으나, 정부가 여학생 학비 감면 및 장학금 확대 정책을 시행하면서 여학생의 취학률과 문해율이 점차 증가하고 있다.
초등학교에서 중학교, 중학교에서 고등학교, 또는 고등학교에서 대학교로 진학하기 위해서는 국가 시험을 통과해야 한다. 주요 고등 교육 기관으로는 와가두구 대학교, 보보디울라소 폴리테크닉 대학교, 그리고 교사 양성 기관이기도 한 쿠두구 대학교 등이 있다. 수도 와가두구에는 소수의 사립 대학도 있으나, 소수만이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이다. 와가두구 국제학교(ISO)는 미국 기반의 사립학교이다.
2008년 유엔 개발 계획 보고서에 따르면, 부르키나파소는 1990년 12.8%에서 2008년 25.3%로 문해율을 두 배로 높이려는 노력에도 불구하고 세계에서 문해율이 가장 낮은 국가로 평가되었다. 2003년 추정치에 따르면 15세 이상 국민의 문해율은 21.8%(남성 29.4%, 여성 15.2%)였다. 2010년 교육 지출은 GDP의 4%였다. 낮은 문해율과 교육 접근성의 불평등은 국가 발전에 큰 장애물로 작용하고 있다.
10.6. 보건 의료
부르키나파소의 보건 의료 상황은 여러 도전 과제에 직면해 있다. 2016년 기준 평균 기대 수명은 남성 60세, 여성 61세였다. 2018년 5세 미만 아동 사망률과 영아 사망률은 출생 1,000명당 76명이었다. 2014년 주민의 중위 연령은 17세였다.
2011년 보건 지출은 GDP의 6.5%였으며, 2001년 중앙 정부의 보건 지출은 3%였다. 2010년 기준 모성 사망비는 출생 100,000명당 300명으로 추정되었고, 의사 밀도는 2010년 인구 1,000명당 0.05명(또는 100,000명당 10명)에 불과했다. 2009년 연구에 따르면 간호사는 100,000명당 41명, 조산사는 13명이었다.
2012년 성인(15-49세) HIV 유병률은 1.0%로 추정되었으며, 2011년 UNAIDS 보고서에 따르면 산전 진료를 받는 임산부 사이에서 HIV 유병률이 감소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말라리아, 뎅기열과 같은 전염병도 주요 공중 보건 문제이다. 2016년에는 뎅기열 발병으로 20명이 사망했으며, 와가두구 모든 지역에서 환자가 보고되었다.
여성 할례(FGM)는 심각한 문제로 남아 있으며, 2005년 세계 보건 기구 보고서에 따르면 부르키나파소 소녀와 여성의 약 72.5%가 전통 의식에 따라 FGM을 경험한 것으로 추정되었다. 인구 보건 조사(Demographic and Health Surveys)는 1993년 이후 부르키나파소에서 세 차례 조사를 완료했으며 2009년에도 추가 조사를 실시했다.
2024년 세계 기아 지수(GHI)에서 부르키나파소는 127개국 중 98위를 차지했으며, 점수는 24.6점으로 "심각한" 수준의 기아 상태를 나타냈다.
10.7. 식량 문제
부르키나파소는 만성적인 식량 부족 문제에 직면해 있으며, 이는 국민 건강과 국가 발전에 심각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세계 기아 지수에 따르면 2013년 부르키나파소는 78개국 중 65위를 기록했다. 현재 150만 명 이상의 어린이가 식량 불안정 위험에 처해 있으며, 약 35만 명의 어린이가 응급 의료 지원이 필요한 것으로 추정되지만, 이들 중 약 3분의 1만이 적절한 의료 지원을 받을 수 있다. 2세 미만 어린이 중 일일 권장 식사 횟수를 충족하는 비율은 11.4%에 불과하다.
식량 불안정으로 인한 발육 부진은 심각한 문제로, 2008년부터 2012년까지 인구의 최소 3분의 1에 영향을 미쳤다. 발육 부진 아동은 평균적으로 정상 발육 아동보다 학업을 덜 마치게 되어, 부르키나파소 인구의 낮은 교육 수준에 더욱 기여한다. 미량 영양소 결핍률 또한 높다. 인구 보건 조사(DHS 2010)에 따르면 여성의 49%와 5세 미만 어린이의 88%가 빈혈을 앓고 있다. 영아 사망의 40%는 영양실조에 기인하며, 이러한 영아 사망률은 부르키나파소 전체 노동력을 13.6% 감소시켜 식량 안보가 건강 이외의 삶의 여러 측면에 영향을 미침을 보여준다.
이러한 높은 식량 불안정률과 그에 따른 영향은 농촌 인구에서 도시 인구에 비해 더욱 두드러지는데, 이는 농촌 지역의 의료 서비스 접근성이 훨씬 제한적이고 어린이 영양 요구에 대한 인식과 교육 수준이 낮기 때문이다.
2018년 10월 USAID 보고서에 따르면 가뭄과 홍수가 여전히 문제이며, "폭력과 불안정은 부르키나파소 북부 및 동부 일부 지역의 시장, 무역, 생계 활동을 방해하고 있다"고 밝혔다. 보고서는 954,300명 이상이 식량 안보 지원이 필요하며, 유니세프에 따르면 "약 187,200명의 5세 미만 어린이가 심각한 급성 영양실조를 겪을 것"으로 추정했다. 당시 지원을 제공한 기관에는 USAID의 평화 식량 사무국(FFP)이 유엔 세계 식량 계획(WFP), NGO 옥스팜 인터몬, ACDI/VOCA와 협력하여 활동했다.
- 식량 안보 개선 노력**
- 유엔 세계 식량 계획(WFP): WFP는 부르키나파소의 식량 안보 증진을 목표로 하는 프로그램을 운영해왔다. '장기 구호 및 회복 작전 200509'(PRRO)는 2012년 식량 및 영양 위기 이후 높은 수준의 영양실조에 대응하기 위해 구성되었다. 이 프로젝트의 노력은 주로 영양실조 치료 및 예방에 중점을 두며, 영양실조 치료를 받는 어린이 보호자를 위한 가정 배급을 포함한다. 또한, 이 작전의 활동은 가족들이 미래의 식량 위기에 대처할 수 있는 능력을 향상시키는 데 기여한다. 가장 취약한 두 그룹인 어린 아이들과 임산부의 영양 개선은 가뭄과 같은 식량 안보가 위협받는 시기에 더 잘 대응할 수 있도록 준비시킨다. '국가 프로그램'(CP)은 HIV/AIDS 감염자를 위한 식량 및 영양 지원과 사헬 지역 모든 초등학교를 위한 학교 급식 프로그램 두 부분으로 구성된다. HIV/AIDS 영양 프로그램은 HIV/AIDS 감염자의 영양 회복을 개선하고 위험에 처한 어린이와 고아를 영양실조와 식량 불안정으로부터 보호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학교 급식 구성 요소의 일환으로, 국가 프로그램의 목표는 전국 평균보다 낮은 취학률을 보이는 사헬 지역 학교의 취학률과 출석률을 높이는 것이다. 또한, 이 프로그램은 초등학교 마지막 2년간 출석률이 높은 여학생들에게 곡물 가정 배급을 제공하여 가정이 여학생을 학교에 보내도록 장려함으로써 이들 학교의 성별 균형률 개선을 목표로 한다. WFP는 2018년 8월 "민주적이고 통일되며 단결된 국가, 경제 구조를 변화시키고 지속 가능한 소비 및 생산 패턴을 통해 강력하고 포괄적인 성장을 달성하는 국가"라는 정부 비전을 지원하기 위한 계획을 수립하고 승인했다.
- 세계 은행: 세계 은행 그룹은 2030년까지 극심한 빈곤을 종식시키고 모든 국가 하위 40%의 소득 성장을 촉진하여 공동 번영을 증진하는 것을 공동 목표로 하는 다섯 개 기관으로 구성된다. 세계 은행이 부르키나파소의 식량 불안정을 줄이기 위해 노력하는 주요 프로젝트 중 하나는 '농업 생산성 및 식량 안보 프로젝트'이다. 세계 은행에 따르면, 이 프로젝트의 목표는 "빈곤 생산자들이 식량 생산을 늘리고 농촌 시장에서 식량 제품의 가용성을 개선할 수 있는 역량을 향상시키는 것"이다. 농업 생산성 및 식량 안보 프로젝트는 세 가지 주요 부분으로 구성된다. 첫 번째 구성 요소는 보조금 지원 및 현금 기여가 불가능한 가구를 위한 '노동 바우처' 프로그램 제공을 포함하여 식량 생산 개선을 위해 노력하는 것이다. 프로젝트의 다음 구성 요소는 특히 농촌 지역에서 식량 제품의 가용성을 개선하는 것이다. 여기에는 식량 제품 마케팅 지원이 포함되며, 이해 관계자들이 지역 및 국가 차원에서 식량 제품 및 공급 변동성을 통제할 수 있는 역량을 강화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마지막으로, 이 프로젝트의 세 번째 구성 요소는 제도 개발 및 역량 강화에 중점을 둔다. 목표는 프로젝트 실행에 특별히 관여하는 서비스 제공업체 및 기관의 역량을 강화하는 것이다.
2018년 12월 세계 은행 보고서에 따르면 빈곤율은 2009년과 2014년 사이에 46%에서 여전히 높은 40.1%로 약간 하락했다. 보고서는 국가의 개발 과제에 대해 다음과 같이 요약했다: "부르키나파소는 강우 패턴 변화와 관련된 기후 충격 및 세계 시장에서 수출 상품 가격 변동에 여전히 취약하다. 경제 및 사회 발전은 어느 정도 국가 및 하위 지역의 정치적 안정, 국제 무역 개방성, 수출 다변화에 달려 있을 것이다."
11. 문화
부르키나파소는 다양한 민족 집단의 전통이 어우러진 풍부한 문화를 자랑한다. 가면 예술과 춤은 중요한 문화적 요소이며, 구전 문학의 전통 또한 강하게 남아있다. 와가두구 범아프리카 영화제(FESPACO)를 중심으로 한 영화 산업은 아프리카 영화계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으며, 다양한 공예품과 음악, 음식 문화 또한 독특한 매력을 지니고 있다.
11.1. 예술과 공예


부르키나파소는 여러 민족의 풍부한 전통 예술 유산 외에도, 특히 와가두구에 대규모 예술가 공동체가 존재한다. 생산되는 공예품의 상당 부분은 성장하는 관광 산업을 위한 것이다.
가면, 조각, 직물 등 다양한 민족의 전통 예술과 공예품은 각각 독특한 특징을 지니고 있으며, 현대 미술 또한 활발하게 발전하고 있다. 부르키나파소는 또한 와가두구 국제 공예 박람회(SIAO, Le Salon International de l'Artisanat de Ouagadougou르 살롱 앵테르나시오날 드 라르티자나 드 와가두구프랑스어)를 개최한다. 이는 아프리카에서 가장 중요한 수공예 박람회 중 하나로, 2년마다 10월 말에서 11월 초(짝수 해)에 열린다.
또한 2년마다 우브리텡가주의 와가두구에서 약 35 km 떨어진 곳에 위치한 장소에서 라옹고 화강암 조각 심포지엄이 열린다.
11.2. 음악
부르키나파소의 음악은 60여 개 민족 집단의 다채로운 민속 음악을 포함한다. 수도 와가두구를 중심으로 한 중부 지역의 모시인이 인구의 40%를 차지하며, 남부에는 구룬시인, 구르마인, 다가바인, 로비인 등이 거주하며 모시어와 밀접하게 관련된 구르어군 언어를 사용한다. 북부와 동부에는 사헬 지대의 풀라니인이 우세하며, 남부와 서부에는 만데어가 일반적이다. 사모어, 비사족, 보보족, 세누포족, 마르카족 등이 이에 해당한다. 부르키나 전통 음악은 계속해서 번성하고 있으며 음악적 산출물은 여전히 매우 다양하다. 대중음악은 주로 프랑스어로 되어 있으며, 부르키나파소는 아직 범아프리카적인 큰 성공을 거둔 사례는 없다.
11.3. 문학

부르키나파소 문학은 중요한 구전 전통에 기반을 두고 있다. 1934년 프랑스 점령기에 딤돌롭솜 우에드라오고는 모시인의 구전 역사를 기록한 『모시 격언, 사상, 수수께끼』(Maximes, pensées et devinettes mossi막심, 팡세 에 드비네트 모시프랑스어)를 출판했다.
구전 전통은 1960년대 독립 이후 부르키나파소 작가들인 나지 보니와 로제 니키에마 등에게 계속해서 영향을 미쳤다. 1960년대에는 희곡 작가들의 출판이 증가했다. 1970년대 이후 부르키나파소 문학은 더욱 발전하여 많은 작가들이 작품을 발표하고 있다.
최근에는 슬램 시(Slam poetry)가 시인 말리카 와타라(Malika Ouattara) 등의 노력에 힘입어 인기를 얻고 있다. 그녀는 자신의 재능을 활용하여 헌혈, 알비니즘, 코로나19의 영향과 같은 문제에 대한 인식을 높이고 있다.
11.4. 영화
부르키나파소의 영화는 서아프리카 영화 산업 및 아프리카 영화 전체에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 부르키나파소의 아프리카 영화에 대한 기여는 1969년 영화제로 시작된 와가두구 범아프리카 영화제(FESPACO)의 설립과 함께 시작되었다. 이 영화제는 아프리카 대륙에서 가장 큰 아프리카 영화제로, 격년으로 홀수 해 2월에 개최된다.
많은 부르키나파소 영화 제작자들이 국제적으로 알려져 있으며 국제상을 수상했다. 수년 동안 범아프리카 영화제작자 연맹(FEPACI) 본부가 와가두구에 있었으며, 1983년 토마스 상카라 대통령의 열정적인 지원과 자금 지원으로 침체기에서 벗어났다. (2006년 FEPACI 사무국은 남아프리카 공화국으로 이전했지만, 조직 본부는 여전히 와가두구에 있다.) 부르키나파소 출신의 가장 잘 알려진 감독으로는 가스통 카보레, 이드리사 우에드라오고, 다니 쿠야테 등이 있다.
부르키나파소는 레 보보디우프(Les Bobodiouf레 보보디우프프랑스어)와 같은 인기 TV 시리즈를 제작한다. 우에드라오고, 카보레, 야메오고, 쿠야테와 같은 국제적으로 알려진 영화 제작자들은 인기 있는 TV 시리즈를 만든다.
11.5. 언론

부르키나파소의 주요 언론 매체는 국영 텔레비전 및 라디오 서비스인 부르키나 방송(RTB, Radio Télévision du Burkina라디오 텔레비지옹 뒤 부르키나프랑스어)이다. RTB는 중파(AM) 두 채널과 여러 FM 주파수로 방송한다. RTB 외에도 민영 스포츠, 문화, 음악, 종교 FM 라디오 방송국이 있다. RTB는 수도 와가두구에서 100kW 송신기를 사용하여 4.815MHz 및 5.030MHz로 프랑스어로 전 세계 단파 뉴스 방송(라디오 나시오날 부르키나, Radio Nationale Burkina라디오 나시오날 부르키나프랑스어)을 유지하고 있다.
부르키나파소에서 독립 언론 및 미디어를 개발하려는 시도는 간헐적이었다. 1998년 탐사보도 전문기자 노르베르 종고, 그의 형제 에르네스트, 운전사, 그리고 다른 한 남자가 정체불명의 괴한들에게 암살당하고 시신이 불태워졌다. 이 범죄는 해결되지 않았다. 그러나 이후 독립 조사위원회는 노르베르 종고가 대통령 블레즈 콩파오레의 동생인 프랑수아 콩파오레의 운전사였던 다비드 우에드라오고의 죽음에 대한 탐사보도 때문에 정치적인 이유로 살해되었다고 결론 내렸다.
1999년 1월, 프랑수아 콩파오레는 1998년 1월 고문으로 사망한 다비드 우에드라오고 살해 혐의로 기소되었다. 이 혐의는 이후 군사재판소에서 항소 후 기각되었다. 2000년 8월, 대통령 경호실(Régiment de la Sécurité Présidentielle, RSP) 소속 5명이 우에드라오고 살해 혐의로 기소되었다. 노르베르 종고 암살 사건 용의자로 조사받았던 RSP 대원 마르셀 카판도, 에드몽 코아마, 우세니 야로는 우에드라오고 사건에서 유죄 판결을 받고 장기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노르베르 종고 사망 이후, 종고 수사 및 언론인 처우에 관한 여러 시위가 정부 경찰과 보안군에 의해 저지되거나 해산되었다. 2007년 4월, 정부의 부당함과 부패 혐의에 대한 비판적인 논평과 함께 레게 노래를 트는 프로그램으로 인기를 얻은 라디오 레게 진행자 카림 사마는 여러 차례 살해 협박을 받았다. 이후 사마의 개인 차량이 민영 라디오 방송국 와가 FM 밖에서 정체불명의 괴한들에 의해 불태워졌다. 이에 대응하여 언론인 보호 위원회(CPJ)는 콩파오레 대통령에게 정부를 비판하는 부르키나파소 언론인 및 라디오 해설가들에게 이메일 살해 협박을 보낸 사건을 조사해 달라는 서한을 보냈다. 2008년 12월, 와가두구 경찰은 미해결된 종고 암살 사건 재수사를 요구하는 시위 행진 지도자들을 심문했다. 행진 참가자 중에는 부르키나파소 언론인 협회 회장인 장클로드 메다도 있었다.
11.6. 음식


서아프리카 요리의 전형적인 특징을 보이는 부르키나파소 음식은 수수, 기장, 쌀, 옥수수, 땅콩, 감자, 콩, 얌, 오크라와 같은 주식을 기반으로 한다. 가장 흔한 동물성 단백질 공급원은 닭고기, 달걀, 민물고기이다.
대표적인 부르키나베 음료로는 발효된 야자 수액인 반지(Banji) 또는 야자술, 그리고 부르키나파소의 국민 음료로 알려진 줌쿰(Zoom-kom) 또는 "곡물 물"이 있다. 줌쿰은 우유처럼 희끄무레하며 물과 곡물을 기본으로 하며, 얼음과 함께 마시는 것이 가장 좋다. 더 시골 지역에서는 발효된 기장으로 만든 음료인 돌로(Dolo)를 맛볼 수 있다. 또한 주식으로 사용되는 토(Tô)는 수수, 기장 또는 옥수수 가루로 만든 뻑뻑한 죽이며, 푸푸 역시 즐겨 먹는 음식이다.
위기 상황에서는 부르키나파소 고유의 콩과 식물인 잠네(Zamnè)가 주요 요리나 소스로 제공될 수 있다.
11.7. 스포츠

부르키나파소에서 스포츠는 널리 행해지며, 축구, 농구, 사이클, 럭비 유니언, 핸드볼, 테니스, 권투, 무술 등이 포함된다. 축구는 부르키나파소에서 가장 인기 있는 스포츠로, 전국적으로 도시와 마을에서 프로와 아마추어 형태로 즐겨진다. 국가대표팀은 옌넹가 공주의 전설적인 말을 참조하여 "레탈롱"(Les Étalons, 수말들)이라는 별명으로 불린다.
1998년, 부르키나파소는 아프리카 네이션스컵을 개최했으며, 이를 위해 보보디울라소에 옴니스포츠 경기장이 건설되었다. 부르키나파소는 남아프리카 공화국에서 열린 2013년 아프리카 네이션스컵 본선에 진출하여 결승까지 올랐으나, 나이지리아에 0-1로 패했다. FIFA 월드컵 본선에는 한 번도 진출하지 못했다. 일본 J리그에서는 윌프리드 사누 선수가 2010년부터 2013년까지 우라와 레드 다이아몬즈와 교토 상가 FC에서 활약했다.
농구는 남녀 모두에게 큰 인기를 누리는 또 다른 스포츠이다. 남자 국가대표팀은 2013년에 아프리카 대륙 최고의 농구 행사인 아프로바스켓 본선에 진출하며 가장 성공적인 해를 보냈다.
2020년 하계 올림픽에서는 육상 선수 위그 파브리스 장고가 남자 세단뛰기에서 동메달을 획득하여 부르키나파소 최초의 올림픽 메달을 안겼다. 크리켓 또한 부르키나파소에서 인기를 얻고 있으며, 크리켓 부르키나파소는 10개 클럽 리그를 운영하고 있다. 2015년에는 산포 라시나 선수가 일본 독립 리그인 시코쿠 아일랜드 리그 플러스의 고치 파이팅 독스와 선수 계약을 맺으며 부르키나파소 최초의 프로 야구 선수가 되었다.
11.8. 축제 및 공휴일
부르키나파소는 다양한 국가 공휴일과 문화 축제를 기념한다. 주요 국가 공휴일은 다음과 같다:
- 1월 1일: 새해 첫날
- 1월 3일: 1966년 봉기 기념일 (역사적 사건 기념일, 현재 공휴일 여부 확인 필요)
- 3월 8일: 세계 여성의 날
- 부활절: 춘분 이후 첫 번째 보름달 다음 일요일 (날짜 변동)
- 5월 1일: 노동절
- 주님 승천일: 부활절로부터 40일 후 (날짜 변동)
- 오순절: 부활절로부터 50일 후 (날짜 변동)
- 8월 4일: 인민 공화국 발족 기념일 (상카라 시대 기념일, 현재 공휴일 여부 확인 필요)
- 8월 5일: 독립 기념일
- 8월 15일: 성모 승천 대축일
- 10월 15일: 국가 개선 운동의 날 (콩파오레 시대 기념일, 현재 공휴일 여부 확인 필요)
- 11월 1일: 모든 성인 대축일
- 12월 11일: 공화국 선포 기념일 (국경일)
- 12월 25일: 크리스마스
이슬람교 관련 공휴일(날짜 변동):
- 예언자 탄생일 (Mouloud)
- 라마단 종료를 기념하는 이드 알피트르 (Eid al-Fitr)
- 이드 알아드하 (Tabaski, Eid el-Kebir): 라마단 종료 후 약 70일 뒤
대표적인 문화 축제:
- 와가두구 범아프리카 영화제 (FESPACO): 와가두구에서 격년(홀수 해 2월)으로 열리는 아프리카 최대 영화제.
- 와가두구 국제 공예 박람회 (SIAO): 와가두구에서 격년(짝수 해 10월 말~11월 초)으로 열리는 아프리카 중요 예술 및 수공예품 교역 박람회.
- 부르키나파소 국가 문화 주간 (SNC, La Semaine Nationale de la Culture라 스멘 나시오날 드 라 퀼튀르프랑스어): 보보디울라소에서 격년으로 열리는 주요 문화 행사.
- 국제 가면 예술 축제 (FESTIMA, Festival International des Masques et des Arts페스티발 앵테르나시오날 데 마스크 에 데 자르프랑스어): 데두구에서 격년으로 열리는 전통 가면 축제.
- 라옹고 화강암 조각 심포지엄: 와가두구에서 약 35 km 떨어진 라옹고에서 격년으로 열리는 조각 행사.
11.9. 세계유산
부르키나파소에는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유산이 총 3건 있다. 이는 문화유산 2건과 자연유산 1건으로 구성된다.
- 로로페니 유적 (문화유산, 2009년 등재): 부르키나파소 남서부에 위치한 고대 요새화된 정착지 유적으로, 사하라 종단 무역과 관련된 금 채굴 및 교역의 중심지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1,000년 이상 된 것으로 보이는 이 유적은 서아프리카 지역의 잘 보존된 요새 건축의 중요한 사례이다.
- W・아를리・펜드자리 복합유산군 (자연유산, 2017년 등재): 니제르, 베냉과 공유하는 국경 초월 연속유산으로, 부르키나파소의 아를리 국립공원과 W 국립공원 일부를 포함한다. 이 지역은 서아프리카에서 가장 넓고 중요한 연속 사바나 생태계 중 하나로, 다양한 야생동물의 서식지이며 특히 코끼리, 사자, 치타 등 멸종 위기종에게 중요한 피난처를 제공한다.
- 부르키나파소의 고대 제철 유적지 (문화유산, 2019년 등재): 부르키나파소 여러 지역에 흩어져 있는 고대 철 생산 유적군으로, 최소 기원전 8세기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아프리카에서 가장 오래된 야금 증거 중 일부를 포함한다. 이 유적들은 철 생산 기술의 초기 확산과 아프리카 사회 발전에 있어 철의 중요성을 보여주는 고고학적 증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