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역사
현재 르완다 지역에 현생 인류가 정착한 것은 적어도 마지막 빙하기 이후, 즉 기원전 8000년경의 신석기 시대 또는 그 이후 기원전 3000년경까지 이어진 신석기 아습윤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고고학적 발굴을 통해 후기 석기 시대 수렵채집인들의 드문 정착 증거와 함께, 이후에는 움푹 팬 토기와 철기를 생산했던 초기 철기 시대 정착민들의 더 많은 인구 증거가 발견되었다. 이 초기 거주민들은 오늘날 르완다에 남아있는 토착 피그미족인 트와족의 조상이다. 기원전 3000년경부터 중앙수단어족 및 쿨리악어족 농경민과 목축민이 르완다에 정착하기 시작했고, 기원전 2000년경에는 남쿠시어족 목축민이 뒤를 이었다. 숲에 거주하던 트와족은 서식지를 많이 잃고 산비탈로 이주했다. 기원전 800년에서 서기 1500년 사이에 여러 반투족 집단이 르완다로 이주하여 농경을 위해 삼림을 개간했다. 역사학자들은 반투족 이주의 성격에 대해 여러 이론을 제시한다. 한 이론은 초기 정착민이 후투족이었고, 투치족은 나중에 이주하여 별개의 인종 집단을 형성했으며, 아마도 나일-함족 계통일 것이라고 본다. 다른 이론은 이주가 점진적이고 꾸준했으며, 들어오는 집단이 기존 사회를 정복하기보다는 통합되었다는 것이다. 이 이론에 따르면 후투족과 투치족의 구분은 나중에 발생했으며 인종적 구분이라기보다는 계급적 구분이었다. 이 시기 동안 르완다 지역의 사회 구조, 정치 체제, 문화적 발전은 점진적으로 이루어졌으며, 이는 이후 르완다 왕국의 성립과 발전에 중요한 기반이 되었다.
1.1. 르완다 왕국

이 지역 최초의 사회 조직 형태는 씨족( ubwoko우브워코르완다어 )이었다. 씨족은 혈통적 계보나 지리적 영역에 국한되지 않았으며, 대부분 후투족, 투치족, 트와족을 포함했다. 15세기부터 씨족들은 왕국으로 통합되기 시작했다. 기항가 왕이 이끄는 한 왕국은 주변의 여러 영토를 통합하여 르완다 왕국을 세웠다. 1700년경에는 현재의 르완다 지역에 약 8개의 왕국이 존재했다. 이 중 투치족 니기냐 씨족이 통치하던 르완다 왕국은 18세기 중반부터 점차 지배력을 강화해 나갔다. 왕국은 19세기 키겔리 4세 르와부기리 왕의 통치하에 가장 넓은 영토를 확보했다. 르와부기리는 여러 소규모 국가를 정복하고 왕국을 서쪽과 북쪽으로 확장했으며, 행정 개혁을 단행했다. 이러한 개혁에는 투치족 후원자가 후투족 또는 투치족 신하에게 경제적, 개인적 봉사를 대가로 소와 특권적 지위를 양도하는 ubuhake우부하케르완다어 제도와 후투족이 투치족 족장을 위해 강제 노동을 해야 했던 uburetwa우부레트와르완다어라는 부역 제도가 포함되었다. 르와부기리의 변화는 후투족과 투치족 인구 사이에 균열을 심화시켰다. 트와족은 왕국 이전 시대보다 형편이 나아져 일부는 왕궁의 무용수가 되기도 했지만, 그 수는 계속 감소했다.
1.2. 식민지 시대
유럽 열강의 아프리카 분할 과정에서 르완다는 식민 통치를 받게 되었다. 이는 르완다 사회에 큰 변화를 가져왔으며, 전통적인 정치 구조와 사회 질서가 재편되는 계기가 되었다. 식민 통치 시기 동안 도입된 정책들은 이후 르완다의 역사 전개에 깊은 영향을 미쳤다.
1.2.1. 독일의 통치
1884년 베를린 회담에서 이 지역은 독일 제국에 할당되었고, 독일은 이 지역을 독일령 동아프리카의 일부로 선언했다. 1894년 탐험가 구스타프 아돌프 폰 괴첸은 르완다 전역을 횡단한 최초의 유럽인이었다. 그는 남동쪽에서 키부호까지 건너가 왕을 만났다. 1897년 독일은 왕과의 동맹을 통해 르완다에 주둔하며 식민지 시대를 열었다. 독일은 국가의 사회 구조를 크게 바꾸지는 않았지만, 왕과 기존 계층을 지원하고 지역 족장에게 권력을 위임함으로써 영향력을 행사했다.
1.2.2. 벨기에의 통치
제1차 세계 대전 중인 1916년, 벨기에 군대가 르완다와 부룬디를 침공했고, 이후 1922년 국제 연맹의 위임통치령으로 루안다-우룬디라는 이름 하에 두 지역을 통치하기 시작하며 보다 직접적인 식민 통치 시기를 열었다. 벨기에는 권력 구조를 단순화하고 중앙집권화했으며, 교육, 보건, 공공 사업, 농업 감독 분야에서 대규모 사업을 도입했다. 여기에는 기근 발생을 줄이기 위한 새로운 작물 도입과 농업 기술 개선 등이 포함되었다. 신제국주의의 흐름 속에서 독일과 벨기에 양국 모두 투치족 우월주의를 조장하며 후투족과 투치족을 서로 다른 인종으로 간주했다. 1935년 벨기에는 각 개인을 투치족, 후투족, 트와족 또는 귀화인으로 분류하는 신분증 제도를 도입했다. 이전에는 부유한 후투족이 명예 투치족이 될 수 있었지만, 신분증 제도는 계층 간의 이동을 더 이상 불가능하게 만들었다.
벨기에는 제2차 세계 대전 이후에도 루안다-우룬디(르완다는 북부 지역)를 유엔 신탁통치령으로 계속 통치하며 궁극적인 독립을 감독할 의무를 가졌다. 조기 독립을 선호하는 투치족과 후투족 해방 운동 사이의 긴장이 고조되어 1959년 르완다 혁명으로 절정에 달했다. 후투족 활동가들은 투치족을 살해하고 그들의 집을 파괴하기 시작하여 10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주변국으로 피난을 가야 했다. 1961년, 갑자기 친후투로 돌아선 벨기에는 국민투표를 실시했고, 그 결과 군주제가 폐지되었다.
1.3. 독립과 초기 공화국
르완다는 부룬디와 분리되어 1962년 7월 1일 독립을 쟁취했으며, 이날은 국경일인 독립기념일로 기념된다. 그렉와르 카이리반다가 초대 대통령으로 취임했으나, 독립 이후에도 폭력의 악순환이 이어졌다. 주변국에서 망명한 투치족들이 공격을 감행했고, 이에 후투족은 대규모 학살과 투치족에 대한 탄압으로 보복했다. 초기 공화국 시기에는 이러한 정치적 불안정과 사회적 갈등이 지속되었으며, 이는 훗날 더 큰 비극의 씨앗이 되었다.
1.4. 하비아리마나 정권과 사회적 긴장

1973년, 쥐베날 하비아리마나가 군사 쿠데타로 정권을 장악했다. 친후투 차별은 계속되었지만, 경제적 번영은 이전보다 나아졌고 투치족에 대한 폭력은 다소 감소했다. 그러나 트와족은 여전히 소외되었고, 1990년에는 정부에 의해 거의 모든 숲에서 쫓겨나 많은 이들이 구걸하며 살게 되었다. 르완다의 인구는 1934년 160만 명에서 1989년 710만 명으로 증가하여 토지 경쟁이 심화되었다. 이러한 사회적 긴장과 민족 갈등은 르완다 내전의 중요한 배경이 되었다.
1.5. 르완다 내전과 집단학살

1990년 르완다 애국전선(RPF)의 북부 침공으로 시작된 르완다 내전은 1993년 아루샤 협정에도 불구하고 1994년 하비아리마나 대통령 암살을 계기로 르완다 집단학살로 격화되었습니다. 국제 사회의 소극적인 대응 속에 RPF가 군사적으로 승리하며 집단학살은 종식되었으나, 이 사건은 대호수 지역 난민 위기를 초래하는 등 주변국에도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1990년, 우간다에 기반을 둔 투치족 난민으로 구성된 반군 단체인 르완다 애국전선(RPF)이 르완다 북부를 침공하면서 르완다 내전이 시작되었다. RPF는 후투족 중심 정부가 민주화에 실패하고 난민들이 직면한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다고 비난했다. 전쟁에서 어느 쪽도 결정적인 우위를 점하지 못했지만, 1992년까지 하비아리마나의 권위는 약화되었다. 대규모 시위로 인해 그는 국내 반대파와 연립정부를 구성하고 결국 1993년 RPF와 아루샤 협정을 체결해야 했다.
1.5.1. 르완다 집단학살
1994년 4월 6일, 하비아리마나 대통령이 탑승한 비행기가 키갈리 공항 근처에서 격추되어 그가 사망하면서 휴전은 끝났다. 이 비행기 격추 사건은 몇 시간 안에 시작된 르완다 집단학살의 촉매제가 되었다. 약 100일 동안 임시 정부의 명령에 따라 잘 계획된 공격으로 50만에서 100만 명 사이의 투치족과 정치적으로 온건한 후투족이 살해되었다. 많은 트와족 또한 직접적인 표적은 아니었지만 살해되었다.
투치족 RPF는 공세를 재개하여 체계적으로 국가를 장악했고, 7월 중순까지 전국을 통제하게 되었다.
1.5.2. 국제 사회의 대응과 주변국 영향
르완다 집단학살에 대한 국제 사회의 대응은 제한적이었으며, 주요 강대국들은 이미 과도하게 확장된 유엔 르완다 지원단(UNAMIR) 평화유지군을 강화하는 것을 꺼렸다. RPF가 정권을 장악하자 약 200만 명의 후투족이 보복을 두려워하여 주변국, 특히 자이르로 피난했다. 또한 RPF가 이끄는 군대는 제1차 콩고 전쟁과 제2차 콩고 전쟁의 주요 교전 당사자였다. 이러한 주변국으로의 영향은 콩고 전쟁을 비롯한 지역 분쟁을 심화시키는 결과를 초래했다.
1.6. 카가메 정부와 국가 재건
르완다 애국전선(RPF)의 군사적 승리 이후, 폴 카가메를 중심으로 한 새 정부가 수립되었다. 카가메 정부는 집단학살로 황폐해진 국가를 재건하고 국민적 화합을 이루기 위한 노력을 시작했다. 이 과정에서 르완다 국제형사재판소(ICTR)가 설립되었고, 전통적인 마을 법정 시스템인 가차차가 부활하여 집단학살 용의자들의 재판을 신속하게 처리하고자 했다. 2000년부터 르완다의 경제, 관광객 수, 인간 개발 지수는 빠르게 성장했다. 2006년에서 2011년 사이 빈곤율은 57%에서 45%로 감소했고, 평균 수명은 2000년 46.6세에서 2021년 65.4세로 증가했다. 국가 발전 전략인 '비전 2020'과 같은 정책들을 통해 경제 발전을 추진했으나, 권위주의적 통치 방식과 인권 문제 등 정치적 과제 또한 안고 있다. 2009년 르완다는 영연방에 가입했는데, 이는 르완다가 영국 제국의 일부였던 적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이루어진 일이다.
2025년 1월 25일, 르완다는 콩고 민주 공화국과의 외교 관계 단절을 발표했는데, 이는 르완다가 3·23 운동을 포함한 콩고 내 반군 단체에 대한 지원을 계속하고 있다는 콩고 측의 주장에 따른 긴장 고조의 결과로 알려졌다.
2. 정치

르완다는 1994년 내전 종식 이후 르완다 애국전선(RPF)과 폴 카가메 대통령이 사실상 일당제로 통치하고 있습니다. 공식적으로는 대통령 중심의 다당제 공화국이며 의회와 사법부가 존재하지만, 야당 활동 제한과 인권 문제에 대한 비판이 제기됩니다. 본 장에서는 르완다의 정부 구조, 정당 및 선거, 그리고 인권 상황에 대해 자세히 살펴봅니다. 르완다는 1994년 내전 종식 이후 르완다 애국전선(RPF)과 그 지도자인 폴 카가메에 의해 지속적으로 통치되어 온 사실상의 일당제 국가이다. 르완다는 명목상 민주주의 국가이지만, 야당 금지, 비판 세력 체포 또는 암살, 선거 부정 등 다양한 방식으로 선거가 조작된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RPF는 투치족 중심 정당이지만 다른 공동체의 지지도 받고 있다. 르완다는 식민지 이전부터 중앙집권적 권위주의 정부의 통치를 받아왔다. 주변국에 비해 부패 수준은 낮지만, 정부 투명성, 시민 자유, 삶의 질에 대한 국제적 평가에서는 낮은 순위를 기록하고 있다. 인권 상황에 대해서는 정부의 정치적 탄압, 불법적이거나 자의적인 구금, 협박, 실종, 정치적 동기에 의한 재판, 평화 시위 민간인 학살 등에 대한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2.1. 정부 구조
르완다의 헌법은 2003년 국민투표를 거쳐 채택되었으며, 1994년부터 시행되어 온 과도기 헌법을 대체했다. 헌법은 다당제 정부를 규정하며, 정치는 민주주의와 선거에 기반한다.
르완다의 대통령은 국가 원수로서, 내각과 협력하여 정책을 수립하고, 군대를 지휘하며, 조약을 협상 및 비준하고, 대통령령에 서명하며, 전쟁 또는 국가 비상사태를 선포하는 등 광범위한 권한을 가진다. 대통령은 4년마다 선출되며, 총리와 내각의 모든 구성원을 임명한다.
르완다 의회는 양원제로 구성된다. 의회는 입법권을 가지며, 헌법에 따라 대통령과 내각의 활동을 감독할 권한을 갖는다. 하원은 대의원으로, 80명의 의원으로 구성되며 임기는 5년이다. 이 중 24석은 여성에게 할당되어 지방 정부 공무원 합동회의를 통해 선출되고, 3석은 청년 및 장애인 대표에게 할당되며, 나머지 53석은 비례대표제에 따른 보통선거로 선출된다. 2008년 선거 이후 여성 의원이 45명으로, 르완다는 세계에서 유일하게 여성 의원이 과반수를 차지하는 국가가 되었다. 상원은 26석으로 구성되며, 다양한 기관에서 선출된 의원들로 이루어진다. 상원 의원의 최소 30%는 여성이어야 하며, 임기는 8년이다.

르완다의 법체계는 주로 독일법과 벨기에법의 대륙법 체계 및 관습법에 기반한다. 사법부는 행정부로부터 독립되어 있지만, 대통령과 상원이 대법원 판사 임명에 관여한다. 휴먼 라이츠 워치는 사형제 폐지 등 사법 정의 실현에 있어 르완다 정부의 진전을 높이 평가했지만, 정부 구성원들의 사법 시스템 개입, 정치적 동기에 의한 판사 임명, 검찰권 남용, 특정 결정에 대한 판사 압력 등을 지적하기도 했다. 헌법은 일반 법원과 전문 법원의 두 가지 유형의 법원을 규정한다. 일반 법원은 르완다 대법원, 르완다 고등법원, 지방 법원이며, 전문 법원은 군사 법원과 2011년에 상업 소송을 신속하게 처리하기 위해 설립된 상업 법원 시스템이다. 2004년부터 2012년까지는 가차차(Gacaca) 법정 시스템이 운영되었다. 가차차는 마을과 공동체가 운영하는 르완다 전통 법정으로, 집단학살 용의자 재판을 신속히 처리하기 위해 부활했다. 이 법정은 집단학살 사건의 적체를 해소하는 데 성공했지만, 인권 단체들은 공정한 법적 기준을 충족하지 못한다고 비판했다.
르완다는 대부분의 다른 아프리카 국가에 비해 부패 수준이 낮다. 2014년 국제투명성기구는 르완다를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 47개국 중 5번째, 세계 175개국 중 55번째로 청렴한 국가로 평가했다. 헌법은 부패 예방 및 척결을 임무로 하는 옴부즈맨 제도를 규정하고 있다. 대통령을 포함한 공직자는 헌법에 따라 재산을 옴부즈맨과 대중에게 신고해야 하며, 이를 준수하지 않는 공직자는 직무가 정지된다.
2.2. 정당 및 선거
르완다 애국전선(RPF)은 1994년 이후 르완다 정치에서 지배적인 정당이다. 명목상 다당제를 채택하고 있으나, RPF가 대통령직과 의회 다수석을 장악하고 있으며, 선거에서 압도적인 지지를 받는 경향이 있다. RPF는 투치족 중심 정당으로 인식되지만, 다른 민족 집단의 지지도 받고 있으며, 평화 유지, 안정, 경제 성장에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러나 국제앰네스티나 프리덤 하우스와 같은 인권 단체들은 정부가 야당 후보를 친정부 성향으로 제한하고, 시위를 진압하며, 야당 지도자와 언론인을 체포하는 등 야당의 활동을 억압한다고 비판한다.
주요 야당으로는 사회민주당, 자유당 등이 있으나, 그 세력은 미미한 편이다. 선거는 대통령 선거와 의회 선거(하원)가 정기적으로 실시된다. 그러나 선거 과정의 공정성에 대해서는 국제 사회의 비판이 지속적으로 제기되고 있다.
2.3. 인권
르완다의 인권 상황은 복합적인 평가를 받고 있다. 정부는 집단학살 이후 국가 재건과 안정 유지에 큰 성과를 거두었으며, 특히 여성 권익 향상과 부패 방지 노력은 긍정적으로 평가된다. 그러나 표현의 자유, 집회의 자유 등 시민적, 정치적 권리에 대한 제약과 반대파에 대한 탄압은 심각한 문제로 지적된다.
2.3.1. 시민적 자유와 정치적 상황
르완다 정부는 집단학살 이데올로기 처벌법 등을 통해 비판적인 목소리를 억압하고 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이 법은 집단학살을 부정하거나 정당화하는 행위를 처벌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지만, 실제로는 정부 비판이나 반대 의견 표명을 제한하는 데 사용된다는 우려가 있다. 야당 활동가, 언론인, 인권 운동가들이 자의적인 체포, 구금, 실종 위협에 직면하는 사례가 보고되고 있으며, 이는 정치적 다원주의와 시민적 자유를 위축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국제앰네스티와 휴먼 라이츠 워치 등 국제 인권 단체들은 르완다 정부의 이러한 인권 침해 사례에 대해 지속적으로 우려를 표명하고 있다.
2.3.2. 여성의 지위와 권리
르완다는 여성의 정치 참여 수준이 세계적으로 매우 높은 국가 중 하나이다. 2003년 헌법은 의회 의석의 최소 30%를 여성에게 할당하도록 규정했으며, 2008년 선거에서는 여성 의원이 과반수를 차지하는 세계 최초의 국가가 되었다. 이후에도 여성 의원 비율은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정부는 여성의 교육 기회 확대, 경제 활동 참여 증진, 폭력 예방 등 여성 권익 향상을 위한 다양한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집단학살 이후 많은 여성이 가장이 되면서 사회경제적 역할이 증대되었고, 이는 여성의 지위 변화에 영향을 미쳤다. 그러나 관습적인 성차별이나 가정 폭력 문제는 여전히 과제로 남아있다.
2.3.3. 성소수자 인권
르완다에서 동성애는 일반적으로 금기시되는 주제이며, 이에 대한 공개적인 논의는 거의 이루어지지 않는다. 일부 레즈비언, 게이, 양성애자, 트랜스젠더(LGBT) 르완다인들은 괴롭힘과 협박을 당했다고 보고했다. 르완다에서 동성 간의 성행위는 특별히 불법은 아니다. 일부 내각 수준의 정부 관리들은 LGBT 인권에 대한 지지를 표명하기도 했지만, LGBT를 위한 특별한 법적 보호 장치는 마련되어 있지 않으며, 공공질서 및 도덕과 관련된 다양한 법률에 따라 경찰에 의해 체포될 수 있다. 동성결혼은 국가에서 인정되지 않으며, 르완다 헌법은 "남성과 여성 간의 일처일부제 시민 결혼만이 인정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2006년 이후 휴먼 라이츠 워치는 르완다 당국이 노숙 아동, 노점상, 성 노동자, 노숙자, 걸인 등을 검거하고 구금하는 사례를 기록했다. 또한 군사 캠프, 과 가치냐, 기콘도 교도소와 같은 시설에서의 고문 사용도 기록했다.
3. 대외 관계
르완다는 내전과 집단학살 이후 국제사회의 지원을 바탕으로 국가 재건에 힘쓰는 한편, 적극적인 외교 정책을 펼치고 있다. 주요 외교 기조는 경제 발전과 국가 안보 강화에 중점을 두고 있으며, 아프리카 역내 협력과 서방 주요국과의 관계를 중요시한다.
3.1. 주변국과의 관계
르완다는 우간다, 콩고 민주 공화국, 부룬디, 탄자니아와 국경을 접하고 있다. 이들 국가와의 관계는 역사적, 정치적, 경제적 요인으로 인해 복잡한 양상을 띤다.
- 우간다: 역사적으로 투치족 난민 문제와 관련하여 깊은 관계를 맺어왔으며, 르완다 애국전선(RPF)의 주요 근거지이기도 했다. 양국 관계는 제2차 콩고 전쟁 당시에는 긴장 관계였으나, 이후 경제 협력을 중심으로 관계가 개선되는 모습을 보였다. 그러나 2019년 국경 폐쇄 등 다시 긴장이 고조되기도 했다.
- 콩고 민주 공화국: 르완다는 자국의 안보를 이유로 콩고 동부 지역의 분쟁에 개입해왔으며, 이는 양국 관계에 지속적인 긴장 요인이 되고 있다. 특히 3·23 운동(M23)과 같은 반군 단체 지원 의혹으로 인해 관계가 악화되기도 했다. 2010년 유엔은 제1차 및 제2차 콩고 전쟁 중 르완다군이 콩고 민주 공화국에서 광범위한 인권 침해와 반인도적 범죄를 저질렀다고 비난하는 보고서를 발표했으나 르완다 정부는 이를 부인했다. 2025년 1월, 르완다가 M23 반군을 지원했다는 이유로 콩고 민주 공화국은 르완다와의 외교 관계를 단절했다.
- 부룬디: 후투족과 투치족 간의 민족 구성 및 갈등의 역사가 유사하여 양국 관계는 민감하다. 부룬디의 정치적 불안정이 르완다에 영향을 미치기도 하며, 상호 난민 문제도 발생한다.
- 탄자니아: 동아프리카 공동체(EAC) 회원국으로서 경제 협력 관계를 유지하고 있으며, 르완다의 주요 교역 통로 중 하나이다.
3.2. 주요국과의 관계
- 프랑스: 식민지배국이었던 벨기에와 함께 하비아리마나 정권 시절 긴밀한 관계를 유지했으나, 집단학살 당시 프랑스의 역할에 대한 논란으로 RPF 정부 수립 이후 관계가 악화되었다. 2006년 프랑스 판사가 르완다 관리들을 기소하자 외교 관계가 단절되었다가 2010년 복원되었으나, 양국 관계는 여전히 긴장 상태를 유지하고 있다.
- 벨기에: 과거 식민 종주국으로, 독립 이후에도 개발 협력 등 다양한 분야에서 관계를 이어오고 있다.
- 미국: 집단학살 이후 르완다의 국가 재건과 경제 발전에 중요한 지원을 제공해왔으며, 안보 및 대테러 협력도 이루어지고 있다.
- 영국: 르완다가 2009년 영연방에 가입하면서 관계가 강화되었으며, 개발 협력 및 투자 유치에 있어 중요한 파트너 국가이다.
- 중국: 인프라 건설, 투자 등 경제 분야를 중심으로 관계가 급속도로 발전하고 있다. 중국은 르완다의 주요 개발 파트너 중 하나이다.
3.3. 국제기구 가입 현황
르완다는 다양한 국제 및 지역 기구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 유엔(UN): 1962년 독립과 함께 가입하여 활동 중이다.
- 아프리카 연합(AU): 아프리카 대륙의 평화, 안보, 발전을 위한 핵심 기구로서 적극 참여하고 있다. 폴 카가메 대통령은 AU 의장을 역임하기도 했다.
- 영연방: 2009년 가입. 영국 식민지 경험이 없는 국가로는 모잠비크에 이어 두 번째로 가입했다.
- 동아프리카 공동체(EAC): 2007년 가입하여 역내 경제 통합과 공동 시장 형성에 참여하고 있다.
- 프랑코포니(Organisation internationale de la Francophonie): 프랑스어권 국가들의 국제기구로, 영어 사용 확대 정책에도 불구하고 회원국으로 남아있다.
- 동남아프리카 공동시장(COMESA) 회원국이다.
3.4. 대한민국과의 관계
대한민국과 르완다는 1963년 10월 21일 외교 관계를 수립하였다. 대한민국은 2008년 키갈리에 주르완다 대한민국 대사관을 개설하였고, 르완다는 2009년 서울에 주한 르완다 대사관을 개설하였다. 양국은 경제, 문화, 개발 협력 등 다양한 분야에서 교류를 확대하고 있다. 특히 KOICA를 통한 개발 협력 사업이 활발하며, ICT, 교육, 농업 분야 등에서 협력이 이루어지고 있다. 르완다는 대한민국의 발전 경험을 모델로 삼아 경제 성장을 추진하려는 의지를 보이기도 한다.
4. 군사
르완다 국방군(RDF, Rwanda Defence Force)은 국가 방위, 영토 보전, 국민 보호를 주요 임무로 하는 르완다의 정규군이다. RDF는 육군, 공군, 예비군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대통령이 총사령관을 맡는다. 2020년 기준 총 병력은 약 33,000명(육군 32,000명, 공군 1,000명, 예비군 2,000명)으로 추산된다. 국방 예산은 2020년 기준 약 1.02 억 USD이다.
르완다 국방군은 르완다 내전과 집단학살 이후 르완다 애국전선(RPF)의 군사 조직을 기반으로 재편되었다. RDF는 국가 안정 유지와 재건 과정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했으며, 이후 전문적인 군대로 발전하기 위한 노력을 지속하고 있다.
RDF는 국내 안보 유지 외에도 아프리카 연합(AU) 및 유엔(UN) 평화 유지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특히 수단의 다르푸르, 남수단, 중앙아프리카 공화국 등 아프리카 내 분쟁 지역에 파병되어 평화 유지 및 안정화 작전에 기여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는 르완다가 국제 사회에서 책임 있는 역할을 수행하려는 의지를 보여주는 동시에, 자국의 군사적 역량을 강화하고 국제적 위상을 높이는 데에도 기여하고 있다.
그러나 르완다 국방군은 이웃 국가인 콩고 민주 공화국 동부 지역의 분쟁에 개입하고 있다는 의혹과 비판을 받기도 한다. 이러한 개입은 지역 안정을 저해하고 인권 침해 논란을 야기한다는 지적이 있다.
5. 행정 구역

르완다는 식민지화 이전에도 어느 정도 정치적 다원주의와 권력 분점의 요소를 가진 정부 체제를 가지고 있었다. 엄격한 위계질서가 존재했음에도 불구하고, 식민지 이전 시스템은 "중앙집권적 권력과 분산된 자치 단위"가 결합된 확립된 체제를 이루었다. 군주(mwami므와미르완다어) 아래 선출된 족장이 여러 구역으로 나뉜 주를 다스렸다. 임명된 두 명의 다른 관리가 구역을 통치했는데, 한 관리는 토지에 대한 권한을, 다른 관리는 가축을 감독했다. 왕은 주(province), 구(district), 언덕(hill), 이웃(neighborhood) 시스템을 통해 통치를 행사했다.
2003년 헌법에 따라 르완다는 주(intara인타라르완다어), 구(uturere우투레레르완다어), 시, 지방 자치체, 읍, 면(imirenge이미렌게르완다어), 동(utugari우투가리르완다어), 리(imidugudu이미두구두르완다어)로 나뉘며, 더 큰 단위와 그 경계는 의회에서 정한다.
2006년 1월, 르완다는 12개 주를 5개로 통합하고 106개 구를 30개로 통합하는 행정 구역 개편을 단행했다. 2006년에 그려진 현재의 경계는 권력 분산과 구체제 및 집단학살과의 연관성을 제거하는 것을 목표로 했다. 주요 도시와 관련된 이전의 12개 주 구조는 주로 지리에 기반한 5개의 주로 대체되었다. 이는 다음과 같다:
- 북부주
- 남부주
- 동부주
- 서부주
- 중앙의 키갈리시
5개 주는 국가 정책이 구 수준에서 시행되도록 국가 정부와 해당 구 사이의 중개자 역할을 한다. 지방 정부부가 개발한 르완다 지방 분권화 전략 프레임워크는 주에 "주 내 거버넌스 문제 조정 및 모니터링 및 평가" 책임을 할당한다. 각 주는 대통령이 임명하고 상원이 승인하는 주지사가 이끈다. 구는 공공 서비스 제공 및 경제 발전을 조정할 책임이 있다. 구는 섹터로 나뉘며, 섹터는 구에서 위임한 공공 서비스 제공을 담당한다. 구와 섹터에는 직접 선출된 의회가 있으며, 해당 의회에서 선출된 집행위원회가 운영한다. 셀과 마을은 가장 작은 정치 단위로, 주민과 섹터를 연결한다. 모든 성인 거주 시민은 지역 셀 의회의 구성원이며, 이 중에서 집행위원회가 선출된다. 키갈리시는 주 수준의 권한을 가지며, 시 내 도시 계획을 조정한다.
6. 지리

르완다는 '천 개의 언덕의 땅'으로 불릴 만큼 산이 많은 고지대 국가로, 나일강과 콩고강의 중요한 분수계가 국토를 가로지릅니다. 다양한 호수와 강이 분포하며, 고도에 따른 온화한 열대 고원 기후가 특징입니다. 이러한 지리적 환경은 알베르틴 지구대를 중심으로 풍부한 생물 다양성을 형성하였으며, 여러 국립공원을 통해 보존 노력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면적 2.63 만 km2의 르완다는 세계에서 149번째로 큰 나라이며, 아프리카 본토에서는 감비아, 에스와티니, 지부티 다음으로 네 번째로 작은 나라이다. 크기는 부룬디, 아이티, 알바니아와 비슷하다. 국토 전체가 고지대에 위치하며, 가장 낮은 지점은 해발 950 m의 루지지강이다. 르완다는 중앙/동아프리카에 위치하며, 서쪽으로는 콩고 민주 공화국, 북쪽으로는 우간다, 동쪽으로는 탄자니아, 남쪽으로는 부룬디와 국경을 접한다. 적도에서 남쪽으로 몇 도 떨어져 있으며 내륙국이다. 수도 키갈리는 르완다 중앙 근처에 위치한다.
6.1. 지형과 수계

주요 콩고강 유역과 나일강 유역 사이의 분수계는 르완다를 남북으로 가로지르며, 국토의 약 80%가 나일강으로, 20%가 루지지강과 탕가니카호를 통해 콩고강으로 흘러 들어간다. 르완다에서 가장 긴 강은 냐바롱고강으로, 남서부에서 발원하여 북쪽, 동쪽, 남동쪽으로 흐르다가 루부부강과 합류하여 카게라강을 형성한다. 카게라강은 탄자니아와의 동쪽 국경을 따라 북쪽으로 흐른다. 냐바롱고-카게라강은 결국 빅토리아호로 흘러 들어가며, 뉴룽웨숲에 있는 그 발원지는 아직 명확히 밝혀지지 않은 나일강 전체 수원의 유력한 후보지 중 하나이다. 르완다에는 많은 호수가 있으며, 가장 큰 호수는 키부호이다. 이 호수는 르완다 서쪽 국경의 대부분을 따라 알베르틴 지구대 바닥을 차지하고 있으며, 최대 수심은 480 m로 세계에서 가장 깊은 20개 호수 중 하나이다. 다른 큰 호수로는 부레라호, 루혼도호, 무하지호, 르웨루호, 이헤마호 등이 있으며, 이 중 이헤마호는 아카게라 국립공원 동부 평야에 있는 여러 호수 중 가장 크다.
중부와 서부 르완다는 산지가 우세하며, 이 나라는 프랑스어로 "천 개의 언덕의 땅"(Pays des mille collines페이 데 밀 콜린프랑스어)이라고도 불린다. 이 산들은 르완다 서쪽 국경을 따라 남북으로 뻗어 있는 동아프리카 지구대의 알베르틴 지구대를 둘러싸고 있는 알베르틴 지구대 산맥의 일부이다. 가장 높은 봉우리는 북서부의 비룽가 산맥 화산군에 있으며, 여기에는 르완다 최고봉인 해발 4507 m의 카리심비산이 포함된다. 국토의 서부 지역은 알베르틴 지구대 산지림 생태지역에 속하며, 해발 고도는 1500 m에서 2500 m 사이이다. 국토 중앙부는 주로 완만한 구릉지대이며, 동쪽 국경 지역은 사바나, 평원, 습지로 이루어져 있다.
6.2. 기후
르완다는 고도가 높아 적도 국가들의 전형적인 기온보다 낮은 온화한 열대 고원 기후를 나타낸다. 국토 중앙에 위치한 키갈리의 일일 평균 기온은 15 °C에서 28 °C 사이이며, 연중 변화가 거의 없다. 전국적으로 약간의 기온 차이가 있는데, 산악 지대인 서부와 북부는 저지대인 동부보다 일반적으로 더 시원하다. 연중 두 번의 우기가 있다. 첫 번째 우기는 2월부터 6월까지이고, 두 번째 우기는 9월부터 12월까지이다. 이 사이에는 두 번의 건기가 있는데, 6월부터 9월까지의 주요 건기에는 비가 전혀 오지 않는 경우가 많으며, 12월부터 2월까지는 더 짧고 덜 심한 건기가 있다. 강수량은 지역에 따라 다르며, 서부와 북서부가 동부와 남동부보다 연간 강수량이 더 많다. 지구 온난화는 우기 패턴의 변화를 야기했다. 전략 예측 그룹(Strategic Foresight Group)의 보고서에 따르면, 기후 변화로 인해 연간 강우 일수는 줄었지만 폭우의 빈도는 증가했다. 이러한 두 가지 변화는 농부들에게 어려움을 초래하여 생산성을 감소시켰다. 전략 예측 그룹은 또한 르완다를 빠르게 온난화되는 국가로 규정하며, 50년 동안 평균 기온이 0.7 °C에서 0.9 °C 사이로 상승했다고 밝혔다.
월 | 1월 | 2월 | 3월 | 4월 | 5월 | 6월 | 7월 | 8월 | 9월 | 10월 | 11월 | 12월 | 연평균 |
---|---|---|---|---|---|---|---|---|---|---|---|---|---|
평균 최고 기온 (°C) | 26.9 | 27.4 | 26.9 | 26.2 | 25.9 | 26.4 | 27.1 | 28.0 | 28.2 | 27.2 | 26.1 | 26.4 | 26.7 |
평균 최저 기온 (°C) | 15.6 | 15.8 | 15.7 | 16.1 | 16.2 | 15.3 | 15.0 | 16.0 | 16.0 | 15.9 | 15.5 | 15.6 | 15.7 |
평균 강수량 (mm) | 76.9 | 91.0 | 114.2 | 154.2 | 88.1 | 18.6 | 11.4 | 31.1 | 69.6 | 105.7 | 112.7 | 77.4 | 950.9 |
평균 강수일수 (≥ 0.1 mm) | 11 | 11 | 15 | 18 | 13 | 2 | 1 | 4 | 10 | 17 | 17 | 14 | 133 |
6.3. 생물 다양성과 국립공원

선사 시대에는 현재 르완다 영토의 3분의 1이 산지림으로 덮여 있었다. 현재 자연적으로 발생하는 식생은 주로 세 곳의 국립공원에 국한되어 있으며, 나머지 지역은 계단식 농업이 지배적이다. 가장 큰 잔존 삼림 지역인 뉴룽웨숲에는 200종의 나무와 난초, 베고니아가 서식한다. 화산 국립공원의 식생은 주로 대나무와 황무지이며, 일부 지역에만 숲이 있다. 반면, 아카게라는 아카시아가 식생의 주를 이루는 사바나 생태계를 가지고 있다. 아카게라에는 마르카미아 루테아와 에울로피아 기니엔시스를 포함한 여러 희귀하거나 멸종 위기에 처한 식물 종이 있다.
대형 포유류의 가장 큰 다양성은 보전 지역으로 지정된 세 국립공원에서 발견된다. 아카게라는 기린과 코끼리와 같은 전형적인 사바나 동물을 보유하고 있으며, 화산 국립공원은 전 세계 산악고릴라 개체수의 약 3분의 1이 서식하는 곳이다. 뉴룽웨숲은 침팬지와 루웬조리콜로부스 나무 원숭이를 포함한 13종의 영장류를 자랑한다. 루웬조리콜로부스는 최대 400마리 규모의 무리를 지어 이동하는데, 이는 아프리카 영장류 중 가장 큰 규모의 무리이다.

1994년 집단학살 이후, 국립공원이 피난민 캠프로 변하고 남은 동물들이 목축업자들에 의해 독살되면서 르완다의 사자 개체군은 파괴되었다. 2015년 6월,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두 공원에서 7마리의 사자를 아카게라 국립공원에 기증하여 르완다에 사자 개체군을 재건했다. 사자들은 처음에는 공원 내 울타리 구역에 수용되었다가 한 달 후 목걸이를 채우고 야생으로 방사되었다.
2017년에는 멸종 위기에 처한 검은코뿔소 18마리가 남아프리카 공화국에서 르완다로 옮겨졌다. 긍정적인 결과에 힘입어 2019년에는 유럽 전역의 동물원에서 5마리의 검은코뿔소가 추가로 아카게라 국립공원으로 이송되었다.
마찬가지로, 흰코뿔소 개체군도 르완다에서 증가하고 있다. 2021년 르완다는 아카게라를 멸종 위기종인 흰코뿔소의 안전한 번식지로 만들기 위해 남아프리카 공화국으로부터 30마리의 흰코뿔소를 받았다.
르완다에는 670종의 조류가 서식하며, 동부와 서부 간에 차이가 있다. 서부의 뉴룽웨숲에는 280종이 기록되어 있으며, 그중 26종은 알베르틴 지구대 고유종이다. 고유종으로는 루웬조리투라코와 핸섬스퍼파울이 있다. 반면, 르완다 동부에는 검은머리곤놀렉과 같은 사바나 조류와 황새, 두루미 등 습지 및 호수와 관련된 조류가 서식한다.
최근 국내 곤충학 연구 결과, 새로운 종인 디스탁타 티그리프루텍스(일명 "부시 타이거 사마귀")를 포함하여 풍부한 다양성의 사마귀가 밝혀졌다.
르완다에는 알베르틴 지구대 산지림, 빅토리아 분지 삼림-사바나 모자이크, 루웬조리-비룽가 산지 황무지 등 세 가지 육상 생태 지역이 있다. 르완다는 2019년 삼림 경관 보전 지수 평균 점수가 3.85/10으로, 172개국 중 139위를 차지했다.
7. 경제
르완다 경제는 1994년 집단학살 기간 동안 심각한 타격을 입었다. 광범위한 인명 손실, 기반 시설 유지 실패, 약탈, 주요 환금 작물 방치 등으로 인해 GDP가 크게 감소하고 민간 및 외부 투자 유치 능력이 파괴되었다. 이후 경제는 강화되어, 1인당 명목 GDP는 1994년 미화 127 USD에서 2022년 미화 909.9 USD로 추정된다. 2019/20년 최근 조사에 따르면, 인구의 48.8%가 여전히 다차원적 빈곤의 영향을 받고 있으며, 추가로 22.7%가 이에 취약하다. 주요 수출 시장은 중국, 독일, 미국이다. 경제는 중앙 르완다 국립 은행에 의해 관리되며 통화는 르완다 프랑이다. 2023년 12월 환율은 미국 달러 1달러당 1250 프랑이었다. 르완다는 2007년 동아프리카 공동체에 가입했으며, 7개 회원국 간의 통화 동맹 계획을 비준했는데, 이는 궁극적으로 공동 동아프리카 실링으로 이어질 수 있다.
7.1. 경제 현황과 과제
르완다는 천연자원이 부족한 국가이며, 경제는 주로 지역 농부들이 간단한 도구를 사용하는 자급 농업에 기반을 두고 있다. 노동 인구의 약 90%가 농업에 종사하며, 2014년 농업은 GDP의 32.5%를 차지했다. 농업 기술은 기초적이며, 작은 토지와 가파른 경사면에서 이루어진다. 1980년대 중반 이후, 부분적으로는 피난민 재정착으로 인해 농장 규모와 식량 생산량이 감소하고 있다. 르완다의 비옥한 생태계에도 불구하고 식량 생산은 종종 인구 증가를 따라가지 못하여 식량 수입이 필요하다. 그러나 최근 몇 년 동안 농업 성장과 함께 상황이 개선되었다. '비전 2020', '비전 2050'과 같은 국가 발전 전략을 통해 '아프리카의 기적'으로 불리는 경제 성장을 이루었으나, 지속 가능성 확보와 빈곤율 감소는 여전히 중요한 과제로 남아있다.
7.2. 주요 산업
르완다 경제는 전통적인 농업 중심에서 벗어나 관광업, 광업, 정보통신기술(ICT) 산업 등 다양한 분야로 확장하려는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이러한 산업 다각화는 경제 안정성과 지속 가능한 성장을 위한 핵심 전략이다.
7.2.1. 농업

르완다의 농업은 여전히 경제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며, 대부분의 인구가 생계를 의존하고 있다. 주요 식량 작물로는 국토의 3분의 1 이상을 차지하는 마토케(녹색 바나나), 감자, 콩, 고구마, 카사바, 밀, 옥수수 등이 있다. 커피와 차는 주요 수출용 환금 작물로, 높은 고도, 가파른 경사, 화산성 토양이 유리한 조건을 제공한다. 40만 명 이상의 르완다인이 커피 농장에서 생계를 유지하는 것으로 보고되었다. 그러나 농산물 수출에 대한 의존은 가격 변동에 취약하게 만든다. 르완다에서 사육되는 동물로는 소, 염소, 양, 돼지, 닭, 토끼 등이 있으며, 각 동물의 수는 지역에 따라 다르다. 생산 시스템은 대부분 전통적이지만, 키갈리 주변에는 소수의 집약적 낙농장이 있다. 토지와 물 부족, 사료 부족 및 품질 저하, 불충분한 수의 서비스와 함께 정기적인 질병 발생은 생산량을 제한하는 주요 제약 요인이다. 호수에서는 어업이 이루어지지만, 어족 자원이 매우 고갈되어 산업 부흥을 위해 활어를 수입하고 있다.
7.2.2. 광업
르완다의 광업은 중요한 기여를 하며, 2008년에는 미화 9300.00 만 USD를 창출했다. 채굴되는 광물에는 석석, 철망간중석, 금, 그리고 휴대폰과 같은 전자 및 통신 장치 제조에 사용되는 콜탄이 포함된다. 이러한 광물 자원은 국가 경제에 중요한 수입원이지만, 채굴 과정에서의 환경 문제와 노동 조건에 대한 우려도 제기되고 있다.
7.2.3. 관광업
관광업은 가장 빠르게 성장하는 경제 자원 중 하나이며, 2007년에는 국가의 주요 외화 수입원이 되었다. 집단학살의 유산에도 불구하고, 르완다는 국제적으로 안전한 여행지로 점점 더 인식되고 있다. 2013년 관광객 수는 864,000명으로, 2010년 504,000명에서 증가했다. 2014년 관광 수입은 미화 3.03 억 USD로, 2000년 미화 6200.00 만 USD에서 크게 증가했다. 이 수입에 가장 크게 기여한 것은 화산 국립공원에서의 산악고릴라 트레킹이었다. 르완다는 산악고릴라를 안전하게 방문할 수 있는 세계 세 나라 중 하나이며, 고릴라는 매년 수천 명의 방문객을 유치하고 있으며, 이들은 허가증에 높은 가격을 지불할 의향이 있다. 다른 명소로는 침팬지, 루웬조리콜로부스 및 기타 영장류가 서식하는 뉴룽웨숲, 키부호의 리조트, 그리고 국가 동부의 작은 사바나 보호구역인 아카게라가 있다. 르완다는 2024년 세계혁신지수에서 104위를 차지했다.
7.2.4. 정보통신기술(ICT) 산업
르완다 정부는 국가 발전 전략의 핵심 분야로 정보통신기술(ICT) 산업을 적극적으로 육성하고 있다. '비전 2020' 및 후속 계획들을 통해 ICT 인프라 구축, 인력 양성, 관련 규제 환경 개선 등에 많은 투자를 해왔다. 전국적인 광섬유 네트워크 구축, 공공 서비스의 디지털화, 기술 스타트업 지원 등을 통해 '아프리카의 실리콘밸리'를 목표로 하고 있다. 키갈리 혁신 도시(Kigali Innovation City) 프로젝트는 이러한 노력의 대표적인 예이다. ICT 산업은 경제 다각화와 고용 창출에 기여하며, 교육, 보건, 금융 등 다른 산업의 발전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 2019년 10월, 마라 코퍼레이션은 르완다에서 최초의 아프리카산 스마트폰을 출시했다. 2024년 출시 이후, 에어텔 르완다는 르완다 정부와 협력하여 세계에서 가장 저렴한 스마트폰인 에어텔 이매진 4G를 출시했다. 이 전화기는 ConnectRwanda 2.0 이니셔티브의 일환으로 소개되었으며, 가격은 단 2.00 만 RWF (약 14.49 USD)이다.
7.3. 기반 시설
르완다는 국가 경제 활동과 국민 생활에 필수적인 교통, 에너지, 수자원, 통신 및 미디어 등 기반 시설 확충에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특히 집단학살 이후 재건 과정에서 기반 시설 복구와 현대화가 중요한 과제로 인식되어 왔다.
7.3.1. 교통

르완다 정부는 1994년 집단학살 이후 미국, 유럽 연합, 일본 등의 원조를 받아 르완다 교통 기반 시설에 대한 투자를 늘렸다. 교통 시스템은 주로 도로망으로 구성되며, 키갈리와 국내 대부분의 주요 도시 및 마을 사이에 포장도로가 있다. 르완다는 우간다, 탄자니아, 부룬디, 케냐 등 동아프리카 공동체 국가들과 도로로 연결되어 있으며, 콩고 동부 도시인 고마와 부카부와도 연결된다. 국가의 가장 중요한 무역로는 캄팔라와 나이로비를 거쳐 몸바사항으로 가는 도로로, 북부 회랑으로 알려져 있다. 국내 주요 대중교통 수단은 미니버스로, 전체 여객 수송 능력의 절반 이상을 차지한다. 일부 미니버스, 특히 키갈리에서는 합승 택시 시스템 하에 비정기적으로 운행되며, 다른 미니버스들은 주요 도시 간 급행 노선을 제공하며 정기적으로 운행한다. 대형 버스는 소수이며, 전국적으로 정기 운행한다. 주요 개인 임대 차량은 오토바이 택시이다. 2013년 르완다에는 등록된 오토바이 택시가 9,609대 있었던 반면, 택시는 579대에 불과했다. 인접 국가의 다양한 목적지로 가는 코치 서비스도 이용 가능하다. 르완다에는 여러 국제 목적지로 운항하는 키갈리 국제공항이 있으며, 가장 분주한 노선은 나이로비와 엔테베 국제공항행 노선이다. 국내선은 키갈리와 치앙구구 근처의 카멤베 공항 간 한 노선이 있다. 2017년, 키갈리 남쪽에 부가세라 국제공항 건설이 시작되었으며, 개항 시 기존 키갈리 공항을 보완하는 국내 최대 공항이 될 것이다. 국영 항공사는 르완다에어이며, 7개의 외국 항공사가 운항하고 있다. 2015년 기준, 르완다에는 철도가 없지만, 탄자니아, 부룬디와 협력하여 탄자니아 중앙선을 르완다까지 연장하는 프로젝트가 진행 중이다. 세 국가는 이 계획을 위한 민관협력 파트너십을 구성하기 위해 민간 기업들의 참여 의향서를 요청했다. 키부호의 항구 도시 간 공공 수상 교통은 없지만, 제한적인 민간 서비스가 존재하며 정부는 완전한 서비스 개발 프로그램을 시작했다. 르완다 기반시설부는 아카게라강을 이용한 운송을 통해 르완다를 빅토리아호와 연결하는 타당성도 조사하고 있다.
7.3.2. 에너지
르완다의 전력 공급은 2000년대 초까지 거의 전적으로 수력 발전에 의존했다. 부레라호와 루혼도호의 발전소가 국가 전력의 90%를 공급했다. 평균 이하의 강우량과 경작 및 방목을 위한 루게지 습지 배수 등 인간 활동의 복합적인 영향으로 1990년부터 두 호수의 수위가 낮아졌다. 2004년까지 수위는 50% 감소하여 발전소 생산량이 급격히 줄었다. 이는 경제 성장과 함께 수요 증가와 맞물려 2004년 전력 부족과 광범위한 부하 차단을 초래했다. 비상 대책으로 정부는 키갈리 북쪽에 디젤 발전기를 설치했다. 2006년까지 이 발전기는 국가 전력의 56%를 공급했지만 매우 비용이 많이 들었다. 정부는 이 문제를 완화하기 위해 루게지 습지 복원(부레라호와 루혼도호에 물을 공급), 키부호에서 메탄가스를 추출하는 계획에 투자하는 등 여러 조치를 시행했으며, 1단계에서 국가 발전량을 40% 증가시킬 것으로 예상된다. 2012년 인구의 18%만이 전기를 이용할 수 있었지만, 이는 2009년 10.8%에서 증가한 수치이다. 정부의 2013-18년 경제 개발 및 빈곤 감소 전략은 2017년까지 가구의 70%에 전기를 공급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7.3.3. 물 공급 및 위생
르완다 정부는 2000년대 동안 물 공급 개발 자금 지원을 우선시하여 국가 예산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크게 늘렸다. 이러한 자금 지원과 기부자들의 지원으로 안전한 물 접근성이 급격히 증가했다. 2015년에는 인구의 74%가 안전한 물을 이용할 수 있게 되었으며, 이는 2005년 약 55%에서 증가한 수치이다. 정부는 이를 2017년까지 100%로 늘리겠다고 약속했다. 국가의 물 기반 시설은 주로 농촌 지역의 공동 수도꼭지와 도시 지역의 개인 연결을 통해 대중에게 물을 공급하는 도시 및 농촌 시스템으로 구성된다. 이러한 시스템이 제공되지 않는 지역에서는 수동 펌프와 관리되는 샘을 사용한다. 대부분의 지역에서 연간 강우량이 750 mm를 초과함에도 불구하고 빗물 수확은 거의 이루어지지 않으며, 주민들은 다른 아프리카 국가에 비해 물을 매우 아껴 써야 한다. 위생 시설 접근성은 여전히 낮다. 유엔은 2006년에 도시 거주자의 34%와 농촌 거주자의 20%가 개선된 위생 시설에 접근할 수 있었다고 추정했으며, 이 통계는 2022년에는 전체 인구의 92%(도시 95%, 농촌 91%)로 증가했다. 키갈리는 아프리카에서 가장 깨끗한 도시 중 하나이다. 위생 개선을 위한 정부 정책 조치는 제한적이며 주로 도시 지역에 집중되어 있다. 도시와 농촌 모두 인구의 대다수가 공용 구덩이 화장실을 사용한다.
7.3.4. 통신 및 미디어
가장 큰 라디오 및 텔레비전 방송국은 국영이며, 대다수 신문은 정부 소유이다. 대부분의 르완다인은 라디오에 접근할 수 있다. 1994년 집단학살 당시 라디오 방송국 천 개의 언덕 자유 라디오 텔레비전(Radio Télévision Libre des Mille Collines)은 전국에 방송되었으며, 반투치 선전을 통해 학살을 부추기는 데 일조했다. 2015년 기준, 국영 라디오 르완다는 가장 큰 방송국이자 전국 뉴스의 주요 공급원이었다. 텔레비전 접근성은 제한적이었으며, 대부분의 가정에는 자체 수상기가 없었다. 정부는 2014년 디지털 텔레비전을 출시했으며, 1년 후에는 2014년 이전 아날로그 시대의 단일 방송국에서 7개의 전국 방송국이 운영되었다. 언론은 엄격하게 통제되며, 신문은 정부의 보복을 피하기 위해 일상적으로 자체 검열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키냐르완다어, 영어, 프랑스어로 된 정부 비판적인 출판물이 키갈리에서 널리 이용 가능하다. 2010년 르완다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규제가 강화되어, 독립 신문 두 곳인 우무세소(Umuseso)와 우무부기지(Umuvugizi)가 르완다 고등 언론 위원회에 의해 6개월간 정간되었다.
르완다에서 가장 오래된 통신 그룹인 르완다텔은 리비아 회사 LAP 그린이 80%를 소유하고 있었으나 2011년에 청산되었다. 이 회사는 2013년 동부 및 남부 아프리카 전역에 통신 및 광섬유 네트워크를 제공하는 회사인 리퀴드 텔레콤에 인수되었다. 2015년, 리퀴드 텔레콤은 30,968명의 가입자에게 유선전화 서비스를 제공했으며, 이동통신 사업자 MTN 르완다는 추가로 15,497명의 유선전화 가입자에게 서비스를 제공했다. 유선전화는 주로 정부 기관, 은행, NGO, 대사관에서 사용되며, 개인 가입 수준은 낮다. 2015년, 르완다의 휴대전화 보급률은 72.6%로, 2011년 41.6%에서 증가했다. MTN 르완다가 3,957,986명의 가입자로 선두를 달리고 있으며, 티고가 2,887,328명, 바르티 에어텔이 1,336,679명으로 그 뒤를 잇고 있다. 르완다텔도 이전에 휴대전화 네트워크를 운영했지만, 투자 약속을 이행하지 못하자 2011년 4월 규제 당국으로부터 라이선스를 취소당했다. 인터넷 보급률은 낮지만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2015년에는 100명당 12.8명의 인터넷 사용자가 있었으며, 이는 2007년 2.1명에서 증가한 수치이다. 2011년, 광대역 서비스 제공 및 전자 상거래 촉진을 목적으로 하는 2300 km 길이의 광섬유 통신망이 완공되었다. 이 네트워크는 남부 및 동부 아프리카 통신 사업자를 연결하는 해저 통신 케이블인 SEACOM에 연결되어 있다. 르완다 내에서는 케이블이 주요 도로를 따라 설치되어 전국 도시를 연결한다. 이동통신 사업자 MTN은 또한 선불 가입을 통해 키갈리 대부분 지역에서 접속 가능한 무선 인터넷 서비스를 운영하고 있다. 2024년 기준, 가장 큰 인터넷 공급업체는 MTN과 에어텔이다. MTN 르완다는 가입자 기반에서 인상적인 성장을 보였다. 2024년 1분기 기준, MTN 르완다는 약 740만 명의 이동통신 가입자를 보유하고 있다. (또한, 모바일 머니 플랫폼인 MoMo는 약 510만 명의 사용자를 보유하고 있다.) 이에 비해 에어텔 르완다는 5,792,046명의 활성 이동통신 전화 가입자를 보유하고 있다.
7.4. 기아 문제
르완다는 식량 안보 상황이 취약하며, 기아 문제가 지속적으로 제기되어 왔다. 주요 원인으로는 높은 인구 밀도에 비해 부족한 경작지, 기후 변화로 인한 잦은 가뭄과 홍수, 전통적인 농업 방식, 농업 생산성 저하 등이 꼽힌다. 1994년 집단학살은 농업 기반을 황폐화시켜 식량 생산에 큰 타격을 주었으며, 이후에도 만성적인 식량 부족 문제를 겪고 있다.
정부는 농업 생산성 향상, 관개 시설 확충, 작물 다양화, 식량 저장 시설 개선 등 식량 안보 강화를 위한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국제기구 및 NGO와의 협력을 통해 취약 계층에 대한 식량 지원 프로그램도 운영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특히 농촌 지역과 취약 계층을 중심으로 영양 부족과 발육 부진 문제는 여전히 심각한 수준이다. 2016년 세계 기아 지수(GHI)에 따르면 르완다는 조사 대상 118개 개발도상국 중 91위로 '심각한' 기아 수준을 보였다. 최근 경제 성장과 농업 발전 노력으로 다소 개선되는 추세이지만, 기후 변화의 영향과 높은 인구 증가율은 여전히 식량 안보에 대한 도전 과제로 남아있다.
8. 사회
르완다 사회는 집단학살이라는 비극적인 역사를 겪었지만, 이후 국민 화합과 사회 통합을 위한 노력을 지속해왔다. 인구 구성, 민족 및 언어, 종교, 교육, 보건 등 사회 전반에 걸쳐 다양한 특징과 변화를 보이고 있다.
8.1. 인구

2015년 르완다 국립 통계 연구소는 르완다 인구를 11,262,564명으로 추산했으며, 2022년 예상 인구는 13,246,394명이었다. 2012년 인구 조사에서는 10,515,973명을 기록했다. 인구는 젊은 편으로, 2012년 인구 조사에서 15세 이하 인구가 43.3%, 16세에서 64세 사이 인구가 53.4%를 차지했다. CIA 월드 팩트북에 따르면, 2015년 연간 출생률은 1,000명당 40.2명, 사망률은 14.9명으로 추정된다. 평균 수명은 67.67세(여성 69.27세, 남성 67.11세)로, 224개 국가 및 영토 중 26번째로 낮다. 국가 전체 성비는 여성 100명당 남성 95.9명이다.
km²당 445명의 인구 밀도를 가진 르완다는 아프리카에서 가장 인구 밀도가 높은 국가 중 하나이다. 제라르 프루니에와 같은 역사학자들은 1994년 집단학살이 부분적으로 인구 밀도 때문일 수 있다고 믿는다. 인구는 주로 농촌에 거주하며, 몇몇 큰 도시가 있다. 주거지는 전국에 고르게 분포되어 있다. 인구가 희박한 유일한 지역은 이전 우무타라주의 사바나 지역과 동부의 아카게라 국립공원이다. 키갈리는 약 100만 명의 인구를 가진 가장 큰 도시이다. 빠르게 증가하는 인구는 기반 시설 개발에 어려움을 주고 있다. 2012년 인구 조사에 따르면 두 번째로 큰 도시는 기세니로, 키부호와 콩고 도시 고마에 인접해 있으며 인구는 126,000명이다. 다른 주요 도시로는 루헹게리, 부타레, 무항가가 있으며, 모두 인구가 10만 명 미만이다. 도시 인구는 1990년 인구의 6%에서 2006년 16.6%로 증가했으나, 2011년에는 약간 감소하여 14.8%가 되었다.
8.2. 민족과 언어
르완다는 식민지 이전부터 통일된 국가였으며, 인구는 단일 문화 및 언어 집단인 바냐르완다인에서 유래한다. 이는 국경이 식민 세력에 의해 그려져 민족 경계나 식민지 이전 왕국과 일치하지 않았던 대부분의 현대 아프리카 국가와는 대조적이다. 바냐르완다인 내에는 후투족, 투치족, 트와족이라는 세 개의 개별 집단이 있다. CIA 월드 팩트북은 2009년 인구 중 후투족이 84%, 투치족이 15%, 트와족이 1%를 차지했다고 추정한다. 트와족은 르완다 초기 거주민의 후손인 피그미족이지만, 학자들은 후투족과 투치족의 기원과 차이점에 대해 의견이 일치하지 않는다. 인류학자 장 이에르노는 투치족이 "길고 좁은 머리, 얼굴, 코"를 가진 경향이 있는 별개의 인종이라고 주장하는 반면, 빌리아 제프레모바스와 같은 다른 학자들은 식별 가능한 신체적 차이가 없으며 이러한 범주는 역사적으로 엄격하지 않았다고 믿는다. 식민지 이전 르완다에서 투치족은 왕과 대다수 족장이 유래한 지배 계급이었고, 후투족은 농민이었다. 현재 르완다 정부는 후투/투치/트와 구분을 권장하지 않으며, 신분증에서 이러한 분류를 삭제했다. 2002년 인구 조사는 1933년 이후 처음으로 르완다 인구를 세 집단으로 분류하지 않았다.
르완다의 국어이자 주요 언어는 사실상 전국민(98%)이 사용하는 키냐르완다어이다. 식민지 시대의 주요 유럽 언어는 독일어(결코 가르치거나 널리 사용되지는 않았음)였고, 그 다음은 1916년 벨기에에 의해 도입되어 1962년 독립 이후에도 공식적이고 널리 사용된 언어인 프랑스어였다. 네덜란드어도 사용되었다. 1990년대 영어 사용 르완다 난민들의 귀환은 국가의 언어 정책에 새로운 차원을 더했으며, 이후 르완다가 동아프리카 공동체 회원국으로 재편되면서 영어의 중요성이 커졌다. 2008년 교육 매체는 프랑스어에서 영어로 전환되었다. 키냐르완다어, 영어, 프랑스어, 스와힐리어는 모두 공식 언어이다. 키냐르완다어는 국어이며, 영어는 중등 및 고등 교육의 주요 교육 매체이다. 동아프리카 공동체의 링구아 프랑카인 스와힐리어는 특히 우간다, 케냐, 탄자니아, 콩고 민주 공화국(DRC)에서 돌아온 난민들과 DRC와의 국경을 따라 사는 사람들이 제2언어로 사용하기도 한다. 2015년 스와힐리어는 중등학교 필수 과목으로 도입되었다. 르완다 콤보섬 주민들은 키냐르완다어와 밀접하게 관련된 언어인 마시어를 사용한다.
2012년 인구 조사와 프랑코포니 국제 기구에 따르면 프랑스어 사용자는 인구의 6% 미만이었다. 2009년 보고서에 따르면 영어 사용자는 인구의 15%로 보고되었지만, 같은 보고서에서는 프랑스어 사용자 비율이 68%로 나타났다. 스와힐리어 사용자는 1% 미만이다.
8.3. 종교

르완다에서 가장 큰 종교는 가톨릭이지만, 집단학살 이후 국가의 종교 인구 구성에 상당한 변화가 있었으며, 많은 사람들이 복음주의 기독교와, 그보다 적은 정도로 이슬람교로 개종했다. 2012년 인구 조사에 따르면, 가톨릭 신자가 인구의 43.7%, 개신교(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회 제외) 신자가 37.7%,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회 신자가 11.8%, 무슬림이 2.0%였다. 0.2%는 종교가 없다고 답했으며, 1.3%는 종교를 밝히지 않았다. 공식적으로 인구의 0.1%만이 따르는 전통 종교는 여전히 영향력을 유지하고 있다. 많은 르완다인들은 기독교의 하나님을 전통적인 르완다 신 이마나와 동일시한다. 종교의 자유는 헌법으로 보장되며, 종교는 사회생활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8.4. 교육
2012년 이전까지 르완다 정부는 국영 학교에서 9년간 무상 교육을 제공했다: 초등학교 6년, 공통 중등 과정 3년. 2012년부터 이는 12년으로 확대되기 시작했다. 2015년 연구에 따르면 초등학교 취학률은 "거의 보편적"이지만, 수료율은 낮고 유급률은 높다. 수업료는 무료이지만, 학부모는 자녀에게 학용품을 제공하고, 교사 발전을 지원하며, 학교 건설에 기여함으로써 자녀 교육 비용에 기여해야 한다는 기대가 있다. 정부에 따르면 이러한 비용이 아동을 교육에서 배제하는 근거가 되어서는 안 된다. 전국에는 많은 사립학교가 있으며, 일부는 교회에서 운영하며 동일한 교육과정을 따르지만 수업료를 부과한다. 1994년부터 2009년까지 중등 교육은 프랑스어 또는 영어로 제공되었다. 국가가 동아프리카 공동체 및 영연방과 관계를 강화함에 따라 현재는 영어 교육과정만 제공된다. 르완다에는 여러 고등 교육기관이 있다. 2013년, 이전의 르완다 국립 대학교와 국내 다른 공립 고등 교육기관을 통합하여 공립 르완다 대학교(UR)가 설립되었다. 2013년 르완다의 고등 교육 총 취학률은 7.9%로, 2006년 3.6%에서 증가했다. 15세 이상 읽고 쓸 수 있는 인구로 정의되는 국가의 문해율은 2022년 78.8%로, 2009년 71%, 1991년 58%, 1978년 38%에서 증가했다.
8.5. 보건 및 의료

르완다의 의료 서비스 질은 1994년 집단학살 이전과 직후 모두 역사적으로 매우 낮았다. 1998년에는 다섯 명 중 한 명 이상의 어린이가 다섯 번째 생일 전에 사망했으며, 주로 말라리아 때문이었다.
카가메 대통령은 비전 2020 개발 프로그램의 우선 과제 중 하나로 의료를 삼았으며, 2013년 의료 지출을 국가 국내총생산의 6.5%로 늘렸다. 이는 1996년 1.9%에 비해 증가한 수치이다. 정부는 뮈튈 드 상테(mutuelles de santé)라는 건강 보험 공급자 시스템을 통해 의료 재정 및 관리를 지역 사회에 이양했다. 뮈튈은 1999년에 시범 운영되었으며, 국제 개발 파트너의 지원을 받아 2000년대 중반까지 전국적으로 이용 가능하게 되었다. 이 제도의 보험료는 처음에는 연간 미화 2 USD였으나, 2011년부터는 차등 요금제로 변경되어 가장 가난한 사람은 무료이며, 최대 보험료는 성인 1인당 미화 8 USD까지 인상되었다. 2014년 기준, 인구의 90% 이상이 이 제도에 가입했다. 정부는 또한 1997년에 설립되어 현재 르완다 대학교의 일부가 된 키갈리 보건 연구소(KHI)를 포함한 훈련 기관을 설립했다. 2005년, 카가메 대통령은 '대통령 말라리아 이니셔티브'라는 프로그램도 시작했다. 이 이니셔티브는 모기장과 의약품과 같이 말라리아 예방에 가장 필요한 물품을 르완다의 가장 외진 지역에 보급하는 것을 목표로 했다.
최근 몇 년 동안 르완다는 여러 주요 보건 지표에서 개선을 보였다. 2005년에서 2013년 사이에 평균 수명은 55.2세에서 64.0세로 증가했고, 5세 미만 사망률은 출생 1,000명당 106.4명에서 52.0명으로 감소했으며, 결핵 발병률은 10만 명당 101명에서 69명으로 감소했다. 국가의 의료 발전은 국제 언론과 자선 단체에 의해 언급되었다. 디 애틀랜틱은 "르완다의 역사적인 보건 회복"에 관한 기사를 실었다. 파트너스 인 헬스는 보건 성과를 "지난 50년 동안 세계에서 가장 극적인 성과 중 하나"라고 설명했다.
이러한 개선에도 불구하고, 국가의 보건 프로필은 여전히 전염병이 지배적이며, 미국 국제개발처는 "상당한 보건 과제"를 언급하며, 산모 사망률을 "용납할 수 없을 정도로 높다"고 설명하고 지속적인 HIV/AIDS 유행을 지적했다.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에 따르면, 르완다 여행자는 말라리아 예방약을 복용하고 황열병과 같은 백신을 최신 상태로 유지하는 것이 강력히 권장된다.
르완다는 또한 의료 전문가 부족 문제를 겪고 있으며, 주민 1,000명당 의사, 간호사, 조산사는 0.84명에 불과하다. 유엔 개발 계획(UNDP)은 의료와 관련된 새천년 개발 목표 4-6에 대한 국가의 보건 진행 상황을 모니터링하고 있다. 2015년 중반 UNDP 보고서에 따르면, 영아 사망률이 "극적으로 감소"했음에도 불구하고 국가는 영아 사망률에 관한 목표 4를 달성하지 못하고 있다. 국가는 산모 사망률을 4분의 3으로 줄이는 목표 5를 향해 "좋은 진전을 보이고 있으며", HIV 유병률이 감소하기 시작하지 않아 목표 6은 아직 달성되지 않았다.
8.6. 결혼과 가족
르완다의 결혼 풍습은 전통적인 요소와 현대적인 변화가 혼재되어 나타난다. 전통적으로 결혼은 두 가족 간의 결합을 의미하며, 신부값(주로 소)을 지불하는 관습이 있었다. 일부다처제가 존재하기도 했으나 현재는 법적으로 금지되어 있다. 현대에는 도시를 중심으로 서구식 결혼 문화의 영향도 받고 있으며, 법적 등록 결혼이 일반적이다.
가족 구조는 대가족 중심에서 핵가족으로 변화하는 추세이지만, 여전히 가족 간의 유대감이 강하고 공동체 의식이 중시된다. 집단학살 이후 많은 여성이 가장이 되거나 고아가 발생하면서 가족 구조에 큰 변화가 있었으며, 이는 사회적 지원 시스템의 중요성을 부각시켰다. 관련 법률은 남녀평등과 아동 권리 보호를 강조하는 방향으로 개정되고 있다.
9. 문화
르완다는 풍부하고 독특한 문화유산을 가지고 있으며, 전통 음악, 춤, 예술, 공예, 문학, 음식, 스포츠 등 다양한 형태로 나타난다. 특히 집단학살 이후 문화는 상처 치유와 국민 통합의 중요한 매개체 역할을 하고 있다.
9.1. 음악, 춤, 공연 예술

음악과 춤은 르완다의 의식, 축제, 사교 모임, 이야기 전달에 필수적인 부분이다. 가장 유명한 전통 춤은 세 가지 요소로 구성된 고도로 안무된 일상적인 춤이다: 여성이 추는 우무샤기리로(umushagiriro우무샤기리로르완다어) 또는 소 춤, 남성이 추는 인토레(intore인토레르완다어) 또는 영웅의 춤, 그리고 전통적으로 남성이 인고마(ingoma인고마르완다어)라고 불리는 북으로 연주하는 북 연주이다. 가장 잘 알려진 무용단은 르완다 국립 발레단이다. 이 발레단은 1974년 하비아리마나 대통령에 의해 설립되었으며, 국내외에서 공연한다. 전통적으로 음악은 구전으로 전승되며, 사회 집단에 따라 스타일이 다양하다. 북은 매우 중요하며, 왕실 북 연주자들은 왕(Mwami므와미르완다어)의 궁정 내에서 높은 지위를 누렸다. 북 연주자들은 다양한 크기의 그룹으로 함께 연주하며, 보통 7명에서 9명 사이이다. 르완다는 아프리카 대호수 지역, 콩고, 미국 음악의 영향을 받은 성장하는 대중음악 산업을 가지고 있다. 가장 인기 있는 장르는 힙합이며, 댄스홀, 랩, 래거, R&B, 댄스 팝이 혼합되어 있다.
9.2. 전통 예술과 공예

전통 예술과 공예품은 전국에서 생산되지만, 대부분 순전히 장식용이라기보다는 기능적인 물품으로 시작되었다. 특히 짠 바구니와 그릇이 흔하며, 아가세케(Agaseke) 스타일의 바구니가 유명하다. 독특한 소똥 예술인 이미공고(Imigongo)는 르완다 남동부에서 생산되며, 이 지역이 독립된 기사카 왕국의 일부였던 시기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역사를 가지고 있다. 소똥을 다양한 색상의 천연 흙과 섞어 기하학적 모양을 이루는 패턴화된 능선으로 칠한다. 다른 공예품으로는 도자기와 목각이 있다. 전통적인 주택 양식은 현지에서 구할 수 있는 재료를 사용한다. 풀로 엮은 지붕을 얹은 원형 또는 직사각형의 진흙집(nyakatsi냐카치르완다어라고 함)이 가장 흔하다. 정부는 이를 골함석과 같은 보다 현대적인 재료로 대체하는 프로그램을 시작했다.
9.3. 문학과 구전 전통
르완다는 문자로 기록된 문학의 역사가 길지 않지만, 시에서부터 민담에 이르기까지 강력한 구전 전통이 있다. 국가의 많은 도덕적 가치와 역사의 세부 사항이 여러 세대에 걸쳐 전해져 내려왔다. 가장 유명한 르완다 문학가는 알렉시 카가메(1912-1981)로, 그는 구전 전통에 대한 연구를 수행하고 발표했을 뿐만 아니라 자신의 시도 썼다. 르완다 집단학살은 벤자민 세헤네와 프레드 음푸란지마와 같은 새로운 세대의 작가들에 의한 증언, 에세이, 소설 문학의 출현을 야기했다. 르완다 집단학살에 관한 여러 영화가 제작되었는데, 골든 글로브상 후보에 오른 호텔 르완다, 100 데이즈, 악마와 악수하다, 썸타임즈 인 에이프릴, 그리고 슈팅 독스가 있으며, 마지막 네 편은 르완다에서 촬영되었고 생존자들이 출연진으로 참여했다.
9.4. 음식 문화

르완다 요리는 바나나, 플랜틴( ibitoke이비토케르완다어 라고 함), 맥류, 고구마, 콩, 카사바(마니옥)와 같은 자급 농업으로 생산되는 현지 주요 식재료를 기반으로 한다. 많은 르완다인들은 한 달에 몇 번 이상 고기를 먹지 않는다. 호수 근처에 살고 생선을 구할 수 있는 사람들에게는 틸라피아가 인기 있다. 독일과 벨기에 식민주의자들에 의해 르완다에 도입된 것으로 생각되는 감자는 매우 인기가 있다. 우갈리(현지에서는 Ubugari우부가리르완다어 또는 umutsima우무치마르완다어라고 함)는 흔한 음식으로, 카사바나 옥수수와 물로 만들어 죽과 같은 농도를 내며 아프리카 대호수 지역 전역에서 먹는다. 이솜베(Isombe)는 으깬 카사바 잎으로 만들어지며 말린 생선, 밥, 우갈리, 감자 등과 함께 제공될 수 있다. 점심은 보통 위에서 언급한 주요 음식과 때로는 고기로 구성된 멜랑주(mélange)라고 불리는 뷔페이다. 브로셰트는 저녁 외식 시 가장 인기 있는 음식으로, 보통 염소고기로 만들지만 때로는 내장, 소고기, 또는 생선으로 만들기도 한다.
시골 지역의 많은 술집에는 염소를 돌보고 도축하며, 고기를 꼬치에 꿰어 바비큐하고 구운 바나나와 함께 제공하는 브로셰트 판매상이 있다. 우유, 특히 이키부구토(ikivuguto)라고 불리는 발효 요구르트 형태의 우유는 전국적으로 흔한 음료이다. 다른 음료로는 수수로 만든 전통 맥주인 이키가게(Ikigage이키가게르완다어)와 바나나로 만든 우르와과(urwagwa), 그리고 바나나 주스인 우무토베(Umutobe우무토베르완다어)라는 청량음료가 있으며, 이러한 인기 음료는 전통 의식과 행사에 등장한다. 르완다의 주요 음료 제조업체는 1950년대에 설립된 하이네켄 파트너인 브라리르와(Bralirwa)이며, 현재 르완다 증권거래소에 상장되어 있다. 브라리르와는 코카콜라 컴퍼니로부터 라이선스를 받아 코카콜라, 환타, 스프라이트 등 청량음료 제품과 프리머스, 뮈치히, 암스텔, 터보 킹 등 다양한 맥주를 제조한다. 2009년에는 새로운 양조장인 브라세리 데 밀 콜린(BMC)이 문을 열어 스콜 맥주와 스콜 가타누라는 현지 버전을 제조했으며, BMC는 현재 벨기에 회사 유니브라가 소유하고 있다. 동아프리카 양조 또한 르완다에서 기네스, 터스커, 벨 맥주뿐만 아니라 위스키와 증류주를 수입하여 운영하고 있다.
9.5. 스포츠

르완다 정부는 스포츠 개발 정책을 통해 스포츠를 "개발과 평화 구축"을 위한 강력한 수단으로 장려하고 있으며, 교육을 포함한 다양한 개발 목표를 위해 스포츠 활용을 증진하겠다는 약속을 했다. 르완다에서 가장 인기 있는 스포츠는 축구, 배구, 농구, 육상 경기, 패럴림픽 스포츠이다. 크리켓은 케냐에서 돌아온 난민들이 경기를 배웠던 결과로 인기가 높아지고 있다. 전통적으로 르완다에서 주로 교통수단으로 여겨졌던 자전거 타기 또한 스포츠로서의 인기가 높아지고 있으며, 르완다 팀은 두 번째 기회의 땅: 르완다 사이클링 팀의 불가능한 부상이라는 책과 재에서 일어나다라는 영화의 주제가 되었다.

르완다인들은 1984년부터 올림픽에, 2004년부터 패럴림픽에 참가해왔다. 르완다는 런던에서 열린 2012년 하계 올림픽에 육상, 수영, 산악자전거, 유도 종목에 7명의 선수를 파견했으며, 런던 하계 패럴림픽에는 육상, 역도, 좌식 배구 종목에 15명의 선수를 파견했다. 또한 2009년 영연방에 가입한 이후 코먼웰스 게임에도 참가해왔다. 르완다 농구 국가대표팀은 2000년대 중반 이후 두각을 나타내고 있으며, 남자팀은 2007년 이후 아프리카 농구 선수권 대회 본선에 4회 연속 진출했다. 르완다는 2013년 대회 유치에 실패했다. 르완다 축구 국가대표팀은 아프리카 네이션스컵에 2004년 대회에 한 번 출전했지만 조별 리그를 통과하지 못했다. 그 이후로는 대회에 진출하지 못했으며, FIFA 월드컵에는 한 번도 진출하지 못했다. 르완다의 최상위 국내 축구 리그는 르완다 내셔널 풋볼 리그이며, 2015년 기준 APR FC가 지난 17번의 선수권 대회 중 13번을 우승하며 지배적인 팀이다. 르완다 클럽들은 2002년부터 카가메 대통령이 후원하는 중앙 및 동아프리카 팀들을 위한 카가메 인터클럽컵에 참가한다.
9.6. 공휴일과 사회 관습
르완다에서는 연중 14개의 정기 국경일이 지켜지며, 때때로 정부에 의해 다른 날들이 추가되기도 한다. 4월 7일 집단학살 추모일 다음 주는 공식적인 애도 주간으로 지정된다. RPF가 후투 극단주의자들을 상대로 승리한 날은 7월 4일 해방의 날로 기념된다. 매월 마지막 토요일은 우무간다(Umuganda)로, 오전 8시부터 11시까지 의무적인 지역사회 봉사의 날이며, 이 기간 동안 18세에서 65세 사이의 모든 건강한 사람들은 거리 청소나 취약 계층을 위한 집짓기와 같은 지역사회 활동을 수행해야 한다. 대부분의 정상적인 서비스는 우무간다 기간 동안 중단되며 대중교통도 제한된다.
9.7. 세계유산
르완다는 풍부한 자연 및 문화유산을 보유하고 있으며, 이 중 일부는 그 가치를 인정받아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되었다. 2023년 기준으로 르완다에는 2건의 세계유산이 등재되어 있다.
- 뉴룽웨 국립공원: 2023년에 등재된 자연유산으로, 아프리카에서 가장 오래되고 잘 보존된 산지림 중 하나이다. 다양한 영장류를 포함한 풍부한 생물 다양성을 자랑한다.
- 르완다 집단학살 추모지: 냐마타, 무람비, 기소지, 비세세로: 2023년에 등재된 문화유산으로, 1994년 르완다 집단학살의 비극을 기억하고 추모하기 위한 장소들이다. 이 유산들은 인류에게 중요한 교훈을 전달하는 역할을 한다.
이 외에도 르완다 정부는 잠정목록에 여러 유산을 등재하여 추가적인 세계유산 등재를 추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