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에스와티니는 아프리카 남부에 위치한 내륙국으로, 모잠비크와 남아프리카 공화국에 둘러싸여 있다. 국토 면적은 작지만 고지대(하이벨트)의 시원한 산악 지형부터 저지대(로벨트)의 덥고 건조한 초원 지대까지 다양한 기후와 지형을 보인다. 인구의 대다수는 스와티인이며, 주로 스와티어를 사용한다. 18세기 중반 응와네 3세에 의해 왕국이 세워졌으며, 국명과 민족명은 19세기 국토를 확장하고 통일한 음스와티 2세 국왕의 이름에서 유래했다. 1903년부터 영국의 보호령이었으나 1968년 9월 6일 독립하였고, 2018년 국호를 스와질란드에서 에스와티니로 변경하였다.
에스와티니는 개발도상국으로 분류되며, 주요 교역 상대국은 남아프리카 공화국이다. 통화인 릴랑게니는 남아프리카 공화국 랜드에 고정되어 있다. 농업과 제조업이 주요 고용 부문이며, 남아프리카 개발 공동체(SADC), 아프리카 연합(AU), 영연방, 국제 연합(UN)의 회원국이다. 정치 체제는 아프리카의 마지막 절대 군주제 국가로, 1986년부터 음스와티 3세 국왕이 통치하고 있다. 5년마다 의회 선거가 치러지지만 정당 활동은 금지되어 있다. 전통 문화 행사로는 움랑가(리드 댄스)와 잉크왈라(왕권 의식)가 중요하다. 주요 보건 문제로는 HIV/AIDS와 결핵이 있으며, 특히 HIV 감염률이 세계적으로 매우 높은 수준이다. 이로 인해 평균 수명이 낮고, 인구 구조는 젊은 층이 많은 특징을 보인다. 2021년부터 2023년까지 민주화 요구 시위가 발생하는 등 정치적 변화에 대한 요구도 존재한다.
2. 국명
에스와티니의 정식 국명은 에스와티니 왕국(Umbuso weSwatini움부소 웨스와티니스와티어, Kingdom of Eswatini킹덤 오브 에스와티니영어)이다. 통칭은 에스와티니(eSwatini에스와티니스와티어)이다. 이전의 공식 국명은 스와질란드 왕국(Kingdom of Swaziland킹덤 오브 스와질란드영어)이었다.
1968년 9월 6일 영국으로부터 독립할 당시 국명은 스와질란드 왕국이었는데, 이는 "스와티인의 땅"이라는 의미이다. '스와질란드'라는 국명은 현지어인 '스와티'와 영단어 '랜드(land)'를 결합한 것이었으나, 일부 국민들 사이에서는 식민 통치의 잔재로 여겨져 불만이 있었다. 이러한 배경 속에서 2015년부터 에스와티니 의회에서 국명 변경에 대한 논의가 진행되었다.
2018년 4월 19일, 음스와티 3세 국왕은 만지니에서 열린 독립 50주년 기념식 연설에서 "나는 이 나라의 이름을 원래대로 되돌린다"고 선언하며, 국명을 현지 스와티어에 따라 '에스와티니 왕국'으로 변경한다고 발표했다. '에스와티니'는 스와티어로 "스와티인의 장소" 또는 "스와티인의 땅"을 의미한다. 국명 변경의 또 다른 이유로는 기존 영문 국명 'Swaziland'가 스위스(Switzerland)와 혼동되는 경우가 잦았기 때문이기도 하다. 변경된 국명은 2018년 5월 30일 국제 연합에서 공식적으로 승인되었다.
3. 역사
에스와티니의 역사는 선사 시대 인류의 거주 흔적으로부터 시작하여, 여러 부족의 이주와 정착, 스와지 왕국의 형성과 발전, 영국의 식민 통치, 그리고 독립 이후 현대 국가로 이어지는 과정을 거쳤다. 특히 절대 군주제 하에서의 민주화 요구와 사회적 변화는 현대 에스와티니 역사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
3.1. 고대 및 부족 형성
에스와티니 지역에서는 약 20만 년 전 초기 석기 시대의 인류 활동을 보여주는 유물이 발견되었다. 또한, 약 2만 7천 년 전부터 19세기에 이르는 선사 시대의 암각화가 전국 각지에서 발견된다. 이 지역의 가장 오래된 거주민은 코이산족 수렵채집인으로 알려져 있다. 이후 반투족 대이동 과정에서 응구니족을 포함한 여러 반투족 계열 부족들이 동아프리카와 중앙아프리카의 아프리카 대호수 지역에서 이주해 오면서 코이산족을 대체하였다. 약 4세기경부터는 농경과 철기 사용의 증거가 나타난다. 현재의 소토어 및 응구니어 계통 언어를 사용하는 부족들은 늦어도 11세기경부터 이 지역에 정착하기 시작했다.
스와티인은 18세기까지 응구니족에서 명확히 분화되지 않았으며, 현재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콰줄루나탈주 지역에 거주하며 스스로를 '응와네인'이라 불렀다. 이들은 퐁골라강 유역에 정착하였고, 그 이전에는 현재 모잠비크 마푸투 인근의 템베강 지역에 거주하였다.
3.2. 스와지 왕국의 성립과 확장

18세기 말에서 19세기 초, 남쪽의 은드완드웨족과의 계속된 충돌로 인해 응와네인들은 북쪽으로 밀려났다. 당시 지도자였던 응와네 3세는 오늘날 에스와티니 남부 시셀웨니 지역의 음로셰니 언덕 기슭에 수도를 정했다. 그의 아들인 소부자 1세 (응와네 4세라고도 불림) 치세에 응와네인들은 현재 에스와티니 중심부의 좀보제에 수도를 확립하고, 이 과정에서 기존에 이 지역에 거주하던 여러 부족(스와티인들에게 '에마칸자빌리', 즉 '먼저 발견된 자들'로 알려짐)들을 정복하거나 통합했다. 소부자 1세는 비옥하고 강우량이 풍부한 이 지역에 정착하였고, 남쪽 줄루 왕국의 음페카네(대혼란)라 불리는 침략 전쟁을 피하는 데 성공하며 세력을 확장했다.
소부자 1세의 아들인 음스와티 2세의 통치기에 응와네는 전성기를 맞이했으며, 이때부터 민족명도 음스와티 2세의 이름을 따 '스와티인'으로 불리게 되었다. 국명 '에스와티니' 또한 음스와티 2세의 이름에서 유래했으며, 왕가의 성씨는 계속 '응코시 들라미니'로 남았다. '카응와네'는 응와네 3세의 이름을 딴 에스와티니의 또 다른 이름이다. 음스와티 2세는 에스와티니의 가장 위대한 전투 군주로 평가받으며, 국토를 현재의 두 배 크기로 확장했다. 초기에 에마칸자빌리 부족들은 상당한 자치권을 인정받으며 왕국에 통합되었으나, 음스와티 2세는 1850년대에 이들 중 일부를 공격하고 복속시켜 그들의 자치권을 크게 축소했다. 동시에 그는 정복이나 피난민 수용을 통해 더 많은 부족들을 왕국에 편입시켰는데, 이들은 '에마피카무바'(나중에 온 자들)로 불렸다.
19세기와 20세기 초, 스와지 국가의 자치권은 남아프리카 지역에서의 영국과 네덜란드계 보어인 세력의 영향을 받았다. 이 시기 스와지 왕국은 줄루 왕국을 공동의 적으로 둔 보어인의 트란스발 공화국 및 영국인의 나탈 식민지와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했다. 1881년, 영국 정부는 당시 아프리카 분할이 진행 중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스와티인의 독립을 인정하는 협약을 체결했으며, 이는 1884년 런던 협약에서도 재확인되었다.
그러나 1875년 음스와티 2세가 사망하고 음반제니 국왕이 즉위한 후, 1879년 줄루 전쟁으로 줄루 왕국이 멸망하자 상황이 변했다. 더 이상 스와지 왕국을 완충 지대로 활용할 필요가 없어진 유럽인들은 급속도로 진출하여 각종 이권을 장악하기 시작했다. 음반제니 국왕은 유럽인들에게 농업, 목축, 광물 채굴 등에 대한 많은 이권(콘세션)을 부여했는데, 이는 복잡한 토지 소유 구조를 야기했다. 이러한 이권 부여는 대부분 왕의 주권을 유보하는 형태였고 이권 보유자들이 해당 토지에 거주하는 스와티인의 권리를 침해하는 것을 허용하지는 않았으나, 실질적으로 스와티인의 독립은 유명무실해졌다. 1890년 음반제니 국왕 사후, 이권 관련 분쟁을 해결하기 위해 영국, 네덜란드계 공화국들, 스와티인을 대표하는 3자 행정위원회가 구성되었고, 같은 해 스와질란드 협약을 통해 주요 재판소가 설립되었다. 1894년에는 협약을 통해 스와질란드가 남아프리카 공화국(트란스발)의 보호국으로 편입되었으며, 이러한 상황은 응와네 5세 통치하에 1899년 10월 제2차 보어 전쟁이 발발할 때까지 지속되었다.

응와네 5세는 제2차 보어 전쟁 발발 직후인 1899년 12월, 잉크왈라 의식 중에 사망했다. 그의 후계자인 소부자 2세는 당시 생후 4개월이었다. 전쟁 기간 동안 스와질란드는 영국군과 보어인 간의 소규모 교전이 발생하는 등 간접적으로 전쟁에 휘말렸다.
3.3. 영국 보호령 시기 (1906년~1968년)
1902년 제2차 보어 전쟁에서 영국이 승리한 후, 1903년 스와질란드는 영국의 "남아프리카 고등판무관 관할구역" 중 하나가 되었다. 다른 관할구역으로는 바수톨란드(현 레소토)와 베추아날란드 보호령(현 보츠와나)이 있었다. 그러나 당시 스와티족 섭정 여왕이었던 라보치베니 음들룰리와 조건이 합의되지 않아 공식적인 보호령 선포는 이루어지지 않았다. 1904년 스와질란드 행정 포고령에 따라 모든 이권을 조사하고 경계를 확정하는 임무를 맡은 위원회가 설립되었다. 이 작업은 1907년에 완료되었고, 스와질란드 이권 분할 포고령(1907년 제28호)은 스와티족 전용 사용 및 거주 지역을 설정할 이권 분할 위원을 임명하도록 규정했다. 이 위원은 각 이권의 최대 3분의 1까지 보상 없이 수용할 권한을 가졌으나, 3분의 1을 초과하는 경우 보상이 이루어져야 했다. 1910년, 위원은 작업을 완료하고 스와질란드 면적의 약 38%에 해당하는 1,639,687 에이커를 스와티족에게 할당했다. 이후 섭정 여왕은 스와티인들에게 트란스발에서 일하여 유럽인들로부터 더 많은 토지를 구입할 자금을 마련하도록 장려했다.
영토 초기 행정의 상당 부분(예: 우편 서비스)은 1906년까지 남아프리카에서 수행되었고, 그해 트란스발 식민지가 자치 정부를 수립했다. 영국 고등판무관이 총독의 일부 기능을 수행했지만, 스와티인들은 자신들의 보호구역 내에서 자치를 유지했으며, 영토는 영국의 소유로 간주되지 않았다.
소부자 2세는 라보치베니 섭정 이후 1921년 12월 공식적으로 국왕으로 즉위했다. 1922년 그는 토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영국 런던의 추밀원 사법위원회에 대표단을 이끌고 갔으나 성공하지 못했다. 1923년부터 1963년까지 소부자 2세는 스와티인 보호구역 내 소규모 사업체에 면허를 부여하는 '스와티 상업 아마도다'를 설립하고, 선교 교육의 지배에 맞서기 위해 스와티 국립학교를 세웠다. 그의 위상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높아졌고, 스와티 왕실 지도부는 영국 행정부의 권력 약화 시도와 스와질란드를 남아프리카 연방에 통합하려는 가능성에 성공적으로 저항했다.
1963년 11월, 영국은 독립 스와질란드를 위한 헌법을 공포했고, 이에 따라 입법 평의회와 행정 평의회가 설립되었다. 이러한 움직임은 국왕의 자문 기구인 스와티 국가 평의회(리코코)의 반대에 부딪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거가 실시되어 1964년 9월 9일 첫 입법 평의회가 구성되었다. 1964년까지 스와티인이 거주하도록 지정된 국토 면적은 56%로 증가했다. 입법 평의회가 제안한 기존 헌법 개정안은 영국에 의해 수용되었고, 하원과 상원을 규정하는 새 헌법이 마련되었다. 이 헌법에 따른 선거는 1967년에 치러졌다. 1967년 선거 이후 스와질란드는 1968년 완전한 독립을 되찾을 때까지 영국의 보호국 상태를 유지했다.
3.4. 독립 이후 (1968년~현재)
1968년 9월 6일, 스와질란드는 소부자 2세 국왕의 영도 하에 영연방 내 독립 왕국으로 주권을 회복했다. 독립 직후에는 웨스트민스터 체제를 따른 헌법이 시행되었으나, 1973년 소부자 2세는 이 헌법을 정지시키고 모든 행정권, 사법권, 입법권을 장악하는 칙령을 발표하며 절대 군주제를 확립했다. 그는 정당 활동을 금지하고, 전통적인 부족 회의인 틴쿤들라를 통해 통치했다. 소부자 2세는 1982년 사망할 때까지 약 83년간 통치하여 역사상 가장 오래 재위한 군주 중 한 명으로 기록되었다. 그의 통치 기간 동안 백인으로부터 토지를 회수하고 산업 개발을 추진하여 경제는 어느 정도 발전을 이루었다.
소부자 2세 사후, 왕위 계승을 둘러싼 권력 다툼이 벌어졌다. 제리웨 숑궤 왕비가 잠시 섭정을 맡았으나, 1984년 리코코에 의해 축출되고 은톰비 트왈라 왕대비가 새로운 섭정이 되었다. 1986년, 은톰비 왕대비의 아들인 마코세티베 왕자가 음스와티 3세로 즉위하여 현재까지 에스와티니를 통치하고 있다.
1982년,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아파르트헤이트 정부는 자국의 반투스탄이었던 카응와네와 콰줄루의 일부 지역을 스와질란드에 할양하려 시도했다. 이는 내륙국인 스와질란드에게 인도양으로의 출구를 제공하고, 남아프리카 공화국에게는 모잠비크로부터의 아프리카 민족회의(ANC) 게릴라 침투를 막는 완충 지대를 확보하려는 목적이 있었다. 소부자 2세는 이 영토가 전통적인 스와지 군주의 영역이라고 주장했으나, 할양 대상 지역 주민들의 강력한 반대로 인해 이 계획은 무산되었다.
1990년대 들어 학생과 노동자들을 중심으로 국왕에게 개혁을 요구하는 시위가 증가했다. 이에 따라 헌법 개혁 논의가 시작되었고, 정치 운동가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2005년 현행 헌법이 공포되었다. 그러나 이 헌법은 정당의 지위를 명확히 규정하지 않아 사실상 정당 활동은 계속 금지된 상태로 남아있다. 2008년 새 헌법 하의 첫 총선이 치러졌으며, 55개 선거구(틴쿤들라)에서 선출된 의원들은 2013년까지 5년 임기를 수행했다.
2011년, 에스와티니는 남아프리카 관세동맹(SACU)으로부터의 수입 감소로 인해 심각한 경제 위기를 겪었다. 정부는 이웃 국가인 남아프리카 공화국에 구제 금융을 요청했으나, 남아공이 제시한 정치 개혁 등의 조건을 수용하지 않아 협상은 결렬되었다. 이 기간 동안 시민 단체와 노동조합의 공공 시위가 더욱 빈번해지는 등 정부에 대한 개혁 압력은 더욱 커졌다. 2012년부터 SACU 수입이 개선되면서 재정 압박은 다소 완화되었고, 2013년 새 의회가 선출되었다. 국왕은 바르나바스 시부시소 들라미니를 세 번째로 총리로 재임명했다.
3.4.1. 2018년 국명 변경
2018년 4월 19일, 음스와티 3세 국왕은 독립 50주년 기념식에서 기존 국명인 '스와질란드 왕국'(Kingdom of Swaziland)을 '에스와티니 왕국'(Kingdom of Eswatini)으로 변경한다고 선언했다. '에스와티니'는 스와티어로 "스와티인의 땅" 또는 "스와티인의 장소"를 의미하며, 이는 현지에서 일반적으로 사용되던 국명이기도 했다. 국명 변경의 주요 이유 중 하나는 영어 국명 'Swaziland'가 유럽 국가인 스위스(Switzerland)와 자주 혼동되었기 때문이다. 또한, 식민지 시대의 잔재인 영어식 국명 대신 고유의 언어를 사용한 국명을 사용하려는 의도도 있었다. 변경된 국명은 2018년 5월 18일 공식화되었고, 국제 연합에서도 5월 30일 이를 승인하였다. 이러한 국명 변경은 국가 정체성을 강화하고 국제 사회에서 에스와티니 고유의 이미지를 확립하려는 노력의 일환으로 평가된다.
3.4.2. 2021년~2023년 민주화 시위
2018년 9월, 저임금에 항의하는 에스와티니 노동자들이 에스와티니 노동조합 총연맹(TUCOSWA)의 주도로 3일간 파업을 벌여 전국적으로 큰 혼란이 발생했다. 이후 민주화에 대한 요구는 계속되었다.
2021년 5월, 법학도였던 타바니 응코몬예(Thabani Nkomonye)의 시신이 만지니 외곽에서 발견되면서 민주화 시위의 불씨가 당겨졌다. 경찰은 이를 교통사고로 발표했으나, 학생들은 경찰이 그의 죽음에 연루되었다고 주장하며 "#JusticeforThabani"라는 해시태그를 사용한 시위를 시작했다. 이 시위는 점차 민주화를 요구하는 운동으로 확산되었다.
6월 24일, 음스와티 3세 국왕이 국민들이 국회의원에게 민주화 요구 청원을 제출하는 것을 금지하자 시위는 더욱 격화되었다. 6월 말부터 전국적으로 시위가 확산되어 폭동, 약탈, 경찰 및 군대와의 충돌이 발생했다. 수년간 의미 있는 개혁이 부재했던 것에 대한 분노와 청원 제출 금지가 주요 원인이었다. 시위대는 음스와티 3세 국왕과 관련된 것으로 알려진 다수의 건물을 방화했고, 경찰은 정치적 반대자들을 폭행하고 체포한 것으로 보고되었다. 뉴욕 타임스는 이 사태를 "독립 53년 만의 가장 폭발적인 시민 불안"이라고 칭했다.
정부의 강경 대응으로 최소 20명 이상(일부 보고에서는 28명 이상)이 보안군에 의해 사망하고 수십 명이 부상 및 구금되었다. 정부는 MTN과 에스와티니 모바일 등 통신 사업자들의 협조를 얻어 인터넷을 차단하여 외부로의 정보 유출을 막으려 했다. 국왕이 국외로 피신했다는 설도 있었으나 정부 관계자들은 이를 부인하며 시위 중단을 촉구했다. 당시 임시 총리였던 템바 마수쿠는 "국가 중요 시설 보호 및 코로나19 규정 준수를 위해 군대를 동원했으며, 이는 계엄령이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시위가 격화되면서 도시 지역에서는 폭력 진압에 대한 우려로 시위가 다소 진정되었으나, 농촌 지역으로 확산되는 양상을 보였다. 7월 4일에는 남아프리카 공화국 '뉴프레임(New Frame)' 소속 기자 2명이 시위 취재 중 구금되어 폭행과 고문을 당했다는 보도가 나오기도 했다. 이러한 정부의 강경 대응과 인권 침해 상황에 대해 국제 사회의 우려가 제기되었다.
2021년 8월 23일, 에스와티니 국방군(Umbutfo Eswatini Defence Force) 총사령관 제프리 샤발랄라가 시위대에 대한 발포 책임을 지고 사임했다. 민주화 요구 시위는 2022년과 2023년에도 간헐적으로 이어졌으며, 에스와티니 사회에 정치 개혁과 민주주의에 대한 지속적인 열망이 존재함을 보여주었다. 정부는 일부 대화 시도와 함께 여전히 강경한 입장을 유지하고 있어, 에스와티니의 정치적 긴장 상태는 계속되고 있다.
4. 지리
에스와티니는 남아프리카 공화국과 모잠비크 사이에 위치한 내륙국으로, 면적은 1.74 만 km2이다. 국토는 남북으로 약 200 km, 동서로 약 130 km에 달하며, 아프리카 대륙에서 가장 작은 나라 중 하나이다. 작은 면적에도 불구하고 다양한 지형과 기후를 보인다.
4.1. 지형

에스와티니는 해발고도에 따라 서쪽에서 동쪽으로 크게 4개의 지형구로 나뉜다.
- 하이벨트 (Highveld): 서부 국경 지역에 위치하며, 평균 해발고도는 1200 m에 이르는 고지대이다. 드라켄즈버그산맥의 일부를 이루며, 시원하고 산이 많은 지형이다. 수도 음바바네가 이 지역에 위치한다. 에스와티니의 최고봉인 엠렘베산(1862 m)도 하이벨트에 있다.
- 미들벨트 (Middleveld): 하이벨트 동쪽에 위치하며, 평균 해발고도는 약 700 m이다. 구릉과 계곡이 발달했으며, 하이벨트보다 강수량이 적지만 인구 밀도가 가장 높은 지역이다. 주요 상공업 도시인 만지니가 이 지역에 있다.
- 로벨트 (Lowveld): 미들벨트 동쪽에 위치한 저지대로, 평균 해발고도는 약 250 m이다. 다른 지역보다 인구가 적으며, 가시나무와 초원으로 이루어진 전형적인 아프리카 부시벨트 지형을 보인다. 덥고 건조한 기후가 특징이다.
- 루봄보 산맥 (Lubombo Mountains): 동쪽 국경을 따라 모잠비크와 접하며 남북으로 길게 뻗어 있는 산맥이다. 평균 해발고도는 약 600 m이며, 산맥은 응와부마강, 마푸투강(대 우수투강), 음불루지강 등 3개 하천의 협곡에 의해 끊어진다.
주요 하천으로는 북쪽에서 남쪽으로 코마티강, 음불루지강, 우수투강(마푸투강), 응와부마강이 동쪽으로 흘러 인도양으로 유입된다. 이 강들은 국토를 관통하며 농업과 생활에 중요한 수자원을 제공한다.
에스와티니는 3개의 주요 생태 지역을 포함한다: 마푸탈란드 해안 산림 모자이크, 잠베지강 및 모파네 삼림지, 그리고 드라켄즈버그 산지 초원 및 관목지이다. 2018년 산림 경관 보전 지수 평균 점수는 4.21/10으로, 172개국 중 142위를 기록했다.
4.2. 기후 및 기후 변화

에스와티니는 하이벨트, 미들벨트, 로벨트, 루봄보 고원의 4개 기후 지역으로 나뉜다. 일반적으로 우기는 여름철(12월~3월)이며, 주로 뇌우 형태로 비가 내린다. 겨울(6월~8월)은 건기이다. 연간 강수량은 서부 하이벨트 지역이 1000 mm에서 2000 mm 사이로 가장 많다. 동쪽으로 갈수록 강수량은 줄어들어, 로벨트 지역은 연간 500 mm에서 900 mm를 기록한다.
기온 변화 역시 각 지역의 고도와 관련이 있다. 하이벨트의 기온은 온화하며 혹서가 드문 반면, 로벨트 지역은 여름에 기온이 40 °C까지 오를 수 있다.
수도 음바바네의 계절별 평균 기온은 다음과 같다:
봄 (9월~10월) | 18 °C |
여름 (11월~3월) | 20 °C |
가을 (4월~5월) | 17 °C |
겨울 (6월~8월) | 13 °C |
에스와티니 정부는 기후 변화가 빈곤, 높은 HIV 유병률, 식량 불안정과 같은 기존의 사회적 문제를 악화시키고 있으며, 국가 발전 능력(비전 2022)을 심각하게 제한할 것이라는 우려를 표명했다. 경제적으로 기후 변화는 이미 에스와티니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 예를 들어, 2015-16년 가뭄은 에스와티니의 주요 수출품인 설탕과 음료 농축액 생산 및 수출을 감소시켰다. 에스와티니의 주요 수출품 대부분은 농산물 원료이므로 변화하는 기후에 취약하다.
4.3. 생물 다양성 및 보전

에스와티니는 풍부한 생물 다양성을 보호하기 위한 공식 및 비공식 보전 지역을 보유하고 있으며, 이들 지역은 국토 면적의 약 5%를 차지한다. 에스와티니에는 820종 이상의 척추동물과 2400종 이상의 식물이 서식하며, 많은 고유종이 포함되어 있어 생물 다양성 보전에 있어 세계적으로 중요한 지역으로 평가된다. 그러나 플랜테이션 농업(합법 및 불법), 산림 개간, 외래 침입 식물의 확산, 지속 불가능한 자원 채취 등 토지 황폐화와 다른 용도로의 토지 전환이 생물 다양성의 주요 위협 요인이 되고 있으며, 심각한 토지 분절화 현상도 나타나고 있다.
에스와티니는 생물 다양성 협약, 멸종위기에 처한 야생동식물종의 국제거래에 관한 협약(CITES), 기후 변화에 관한 유엔 기본 협약의 서명국이다. 국가 생물 다양성 관리를 담당하는 주요 정부 부처로는 에스와티니 국가 신탁 위원회(Eswatini National Trust Commission, SNTC), 에스와티니 환경청(Eswatini Environment Authority, EEA), 농업협동조합부(Ministry of Agriculture and Cooperatives, MOAC)가 있다. 또한, 민간 단체인 빅 게임 파크(Big Game Parks, BGP)는 야생동물 및 CITES를 규제하는 게임법(Game Act) 관리를 위임받고 있다.
에스와티니에는 6개의 공식 보호구역과 10개 이상의 비공식 보호구역이 있다. 공식적으로 지정된 보호구역으로는 말로로차 자연보호구역, 만텡가 자연보호구역, 믈라울라 자연보호구역, 믈릴와네 야생동물 보호구역, 음카야 동물보호구역, 그리고 흘라네 왕립 국립공원이 있다. 이 외에도 돔베야 동물보호구역, 음불루지 동물보호구역, 셰울라 자연보호구역, 포폰야네 폭포 자연보호구역, 로열 조지니, 이니스(Inyoni Yami), 응웨피시 야생보호구역, 시베베 바위 등 많은 사설 및 공동체 자연보호구역이 있으며, 일부는 혼합된 관리 구조를 가지고 있다. 또한 믈로싱가 보호구역과 루봄보 보호구역 등 2개의 컨서번시가 있으며, 에스와티니 자연사 협회, 에스와티니 게임 랜처스 협회 등도 보전 활동에 참여하고 있다.
2014년부터 2021년까지 에스와티니는 "국립 보호지역 시스템 강화"(SNPAS) 프로젝트에 참여하여 전국적으로 생물 다양성 보전 성과와 범위를 확대하고자 노력했다. 2018년 유엔 개발 계획(UNDP)은 비공식 또는 미지정 보전 지역에 대한 새로운 범주로 OECM(Other Effective Conservation Measures, 기타 효과적인 보전 조치)을 설정했으며, SNPAS 프로젝트는 이 용어를 채택하여 2021년부터 에스와티니의 비공식 보전 지역을 인증하기 시작했다.
에스와티니에는 507종의 조류가 서식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이 중 11종은 세계적으로 멸종 위기에 처해 있고 4종은 외래종이다. 또한 107종의 포유류가 서식하며, 이 중에는 심각한 멸종 위기에 처한 남중부 검은코뿔소와 7종의 기타 멸종 위기 또는 취약종이 포함된다. 조류로는 아프리카흰등독수리, 흰머리독수리, 귀
5. 정치
에스와티니는 국왕과 국모(은들로부카티)가 공동으로 국가를 대표하는 절대 군주제 국가이다. 의회는 존재하지만 국왕이 입법, 사법, 행정 전반에 걸쳐 절대적인 권력을 행사하며, 정당 활동은 금지되어 있다. 최근 민주화 요구 시위가 발생하는 등 정치적 변화에 대한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5.1. 정부 형태와 군주제

에스와티니는 헌법 조항과 스와티 법 및 관습에 따른 절대 군주제 국가이다. 국가 원수는 국왕 또는 응웨냐마(문자 그대로 '사자'를 의미)이며, 현재 국왕은 1982년 부친 소부자 2세 국왕 서거와 섭정 기간을 거쳐 1986년에 즉위한 음스와티 3세이다. 국가 헌법에 따르면, 응웨냐마는 스와티 국가의 통일과 영속성의 상징이다. 전통적으로 국왕은 그의 어머니(또는 의례적 대리인)인 은들로부카티(문자 그대로 '암코끼리'를 의미)와 함께 통치한다. 과거에는 국왕이 행정 수반으로, 은들로부카티는 정신적·국가적 수반으로 여겨져 국왕의 권력을 견제하는 실질적인 힘을 가졌으나, 소부자 2세의 오랜 통치 기간 동안 은들로부카티의 역할은 상징적인 것으로 변화했다.
국왕은 의회에서 총리를 임명하며, 자문위원회의 도움을 받아 상원의원 과반수와 하원의원 소수를 임명한다. 헌법은 국왕에게 특별한 이익을 대표하기 위해 일부 의원을 임명할 수 있도록 허용하고 있다. 이러한 특별 이익 집단은 선거에서 낙선했거나 후보로 출마하지 않았을 수 있는 시민들로 구성될 수 있다. 이는 의회 내 다양한 견해의 균형을 맞추기 위한 것이다. 특별 이익 집단에는 특정 성별이나 인종, 장애인, 재계의 주요 인사, 시민 사회, 학자, 추장 등이 포함될 수 있다.
5.2. 입법부 (의회)
에스와티니의 양원제 의회, 또는 리반들라(Libandla)는 상원(30석, 하원에서 10명 임명, 국왕이 20명 임명, 임기 5년)과 하원(65석, 국왕이 10명 임명, 직접 선거로 55명 선출, 임기 5년)으로 구성된다. 선거는 국왕이 의회를 해산한 후 5년마다 실시된다. 마지막 선거는 2023년 9월 29일에 열렸다. 투표는 초당파적 방식으로 진행되며, 모든 선거 절차는 선거경계위원회가 감독한다.
1968년 9월 6일 스와질란드가 독립했을 때, 스와질란드는 웨스트민스터 체제의 헌법을 채택했다. 1973년 4월 12일, 소부자 2세 국왕은 칙령으로 헌법을 폐지하고 행정, 사법, 입법 모든 문제에서 최고 권력을 장악했다. 하원의 첫 비정당 선거는 1978년에 열렸으며, 국왕이 결정한 선거구인 인쿤들라(Tinkhundla) 체제 하에 실시되었고, 국왕이 임명한 선거위원회가 선거를 감독했다.
1993년 선거까지 투표는 비밀이 아니었고, 유권자는 등록되지 않았으며, 대표를 직접 선출하지도 않았다. 대신, 유권자들은 자신이 선택한 후보를 위해 지정된 문을 통과하는 방식으로 선거인단을 선출했고, 관리들이 이를 계수했다. 이후 1996년 7월 음스와티 3세 국왕은 추장, 정치 운동가, 노동조합원으로 구성된 헌법 검토 위원회를 임명하여 대중의 의견을 수렴하고 새 헌법 초안을 작성하도록 했다. 초안은 1999년 5월과 2000년 11월에 공개되었으나, 스와질란드 내 시민 사회 단체와 국제 인권 단체로부터 강력한 비판을 받았다. 2001년 12월에는 새 헌법 초안 작성을 위한 15명으로 구성된 팀이 발표되었는데, 이 팀의 여러 구성원이 왕실과 가까운 인물로 알려졌다.
5.3. 사법부
에스와티니의 사법 시스템은 이중 구조이다. 2005년 헌법은 4개의 지역 치안 법원, 고등 법원, 항소 법원(최고 법원)으로 구성된 서양 모델 기반의 법원 시스템을 확립했으며, 이들은 국왕의 통제로부터 독립적이다. 또한, 전통 법원(스와티 법원 또는 관습 법원)은 경미한 범죄와 전통적인 스와티 법 및 관습 위반을 다룬다. 판사는 국왕이 임명하며, 대개 남아프리카 공화국 출신의 외국인이다. 최고 법원은 대법원장과 최소 4명의 다른 최고 법원 판사로 구성된다. 고등 법원은 대법원장과 최소 4명의 고등 법원 판사로 구성된다.
역대 대법원장은 다음과 같다:
- 1967-1970: 아이서도어 빅터 엘간 경
- 1970-1972: 필립 파이크 경
- 1972-1973-?: 롤랜드 힐
- ?-1974-1983-?: 찰스 네이선
- 1985-1991: 니콜라스 로빈 해나
- 1998-2002: 스탠리 사피르
- 2002-2007: 야코부스 아난데일 (대행)
- 2007-2010: 리처드 반다
- 2010-2015: 마이클 라모디베디
- 2015-현재: 베키 마팔랄라
5.4. 선거와 정당
에스와티니의 선거는 틴쿤들라(Tinkhundla)라고 불리는 전통적인 지역 공동체 단위로 이루어진다. 후보 지명은 각 추장 관할 구역(chiefdom)에서 이루어진다. 지명일에는 후보자의 이름이 거수로 제기되며, 후보자는 지명을 수락하거나 거부할 수 있다. 수락할 경우, 해당 후보자는 해당 추장 관할 구역 구성원 최소 10명의 지지를 받아야 한다. 지명은 국회의원, 지역구 대표(Indvuna), 지역구 집행위원회(Bucopho) 직위를 대상으로 한다. 최소 후보자 수는 4명, 최대는 10명이다.
1차 선거 또한 추장 관할 구역 수준에서 비밀 투표로 진행된다. 1차 선거에서 유권자들은 해당 추장 관할 구역의 집행위원회(Bucopho) 위원을 선출할 기회를 갖는다. 국회의원 후보와 지역구 대표 후보도 각 추장 관할 구역에서 선출된다. 2차 및 최종 선거는 인쿤들라(Inkhundla) 또는 선거구라고 불리는 다양한 지역에서 열린다. 추장 관할 구역에서 1차 선거를 통과한 후보자들은 인쿤들라 또는 선거구 수준의 2차 선거 후보로 간주된다. 과반수 득표를 한 후보자가 당선되어 국회의원 또는 지역구 대표가 된다.
2005년 제정된 현행 헌법은 정당의 지위를 명확히 다루고 있지 않아, 사실상 정당 활동은 금지되어 있다. 이로 인해 모든 후보는 무소속으로 출마해야 한다. 그러나 푸데모(PUDEMO, 인민통일민주운동)와 같은 비공식적 정치 단체들이 존재하며, 이들은 민주주의 확대와 다당제 도입을 요구하며 활동하고 있다. 이러한 단체들은 정부의 탄압을 받기도 한다. 2023년 V-Dem 민주주의 지수에 따르면 에스와티니는 전 세계에서 9번째로 낮은 순위를 기록했으며, 아프리카에서는 2번째로 낮은 선거 민주주의 국가로 평가되었다.
6. 행정 구역

에스와티니는 4개의 주(Region)로 구성되어 있다. 각 주는 지역 행정관에 의해 관리되며, 각 인쿤들라(Inkhundla, 전통적 지역 공동체)에서 선출된 구성원들의 도움을 받는다. 지방 정부는 해당 지역의 발전 수준에 따라 다르게 구조화된 농촌 및 도시 협의회로 나뉜다. 도시 협의회는 시(municipality)의 형태를 띠고, 농촌 협의회는 틴쿤들라(Tinkhundla)이다. 에스와티니에는 12개의 시와 55개의 틴쿤들라가 있다. 각 인쿤들라에는 해당 지역의 여러 추장 관할 구역에서 5년 임기로 선출된 개발 위원회(bucopho)가 있다. 부코포는 각 추장 관할 구역의 모든 관심사와 우려 사항을 인쿤들라에 전달하고, 인쿤들라의 결정을 다시 추장 관할 구역에 전달한다. 부코포 의장은 인쿤들라에서 선출되며 '인드부나 예 인쿤들라(indvuna ye nkhundla)'라고 불린다.
도시 지역에는 시의회, 읍의회, 읍위원회 등 3단계의 정부가 있으며, 이는 도시 또는 마을의 크기에 따라 다르다. 농촌 지역에도 지역 행정, 틴쿤들라, 추장 관할 구역 등 3단계가 있다. 결정은 다양한 소위원회의 권고에 따라 전체 협의회에서 이루어진다. 각 지방 협의회 또는 읍위원회의 최고 자문관은 읍서기이다. 에스와티니에는 2개의 시의회, 3개의 읍의회, 7개의 읍위원회 등 12개의 선언된 도시 지역이 있다. 주요 도시이자 각 주의 주도인 곳은 만지니, 음바바네, 냥가노, 시테키이다.
주 번호 | 주 명칭 | 주도 | 면적 (km2) | 인구 (2017년 인구 조사) |
---|---|---|---|---|
1 | 호호(Hhohho) | 음바바네 | 3,625.17 | 320,651 |
2 | 만지니(Manzini) | 만지니 | 4,093.59 | 355,945 |
3 | 루봄보(Lubombo) | 시테키 | 5,849.11 | 212,531 |
4 | 시셀웨니(Shiselweni) | 냥가노 | 3,786.71 | 204,111 |
7. 국방

에스와티니의 군대인 움부초 에스와티니 국방군(Umbutfo Eswatini Defence Force, UEDF)은 주로 국내 시위 진압에 사용되며, 일부 국경 및 관세 업무도 수행한다. 에스와티니 군은 외국의 분쟁에 연루된 적이 없다. 국왕은 국방군의 최고통수권자이자 국방부의 실질적인 장관이다. 국방군 병력은 약 3,000명이며, 육군이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한다. 소규모 공군도 보유하고 있으며, 주로 국왕 수송, 화물 및 인원 수송, 국토 측량, 수색 및 구조 임무, 국가 비상사태 시 동원 등의 역할을 수행한다.
8. 대외 관계
에스와티니는 국제 연합, 영연방, 아프리카 연합, 동남아프리카 공동시장(COMESA), 남아프리카 개발 공동체(SADC)의 회원국이다. 기본적인 외교 정책은 비동맹주의를 표방하나, 서방 국가들과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특히 경제적으로 남아프리카 공화국에 대한 의존도가 높다.
8.1. 대한민국과의 관계
대한민국과 에스와티니는 1968년 11월 6일 외교 관계를 수립했다. 초기에는 주케냐 대한민국 대사관이 겸임하다가 1993년 에스와티니에 상주 공관이 개설되었으나, 이후 예산 문제 등으로 폐쇄되었다. 현재는 주남아프리카 공화국 대한민국 대사관이 에스와티니 관련 업무를 겸임하고 있다. 에스와티니는 주말레이시아 대사관이 대한민국 관련 업무를 겸임한다. 양국 간 교역 규모는 크지 않지만, 대한민국은 에스와티니에 대한 개발 원조를 제공하고 있으며, 농업, 교육, 보건 분야에서 협력이 이루어지고 있다. 북한과는 미수교 상태이다.
8.2. 남아프리카 공화국과의 관계
에스와티니는 지리적으로 남아프리카 공화국에 둘러싸여 있으며, 경제적으로도 남아공에 크게 의존하고 있다. 양국은 역사적으로 깊은 관계를 맺어왔으며, 남아프리카 관세동맹(SACU) 회원국으로서 긴밀한 경제 협력을 유지하고 있다. 에스와티니의 통화인 릴랑게니는 남아공 랜드에 고정되어 있다. 남아공은 에스와티니의 최대 교역국이자 주요 투자국이다. 그러나 에스와티니의 절대 군주제와 인권 문제에 대해 남아공 내 시민 사회와 일부 정치권에서 비판의 목소리가 나오기도 하며, 이는 양국 관계의 잠재적인 갈등 요소로 작용할 수 있다.
8.3. 중화민국(대만)과의 관계
에스와티니는 2024년 기준으로 아프리카에서 유일하게 중화민국(대만)과 공식 외교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국가이다. 이는 하나의 중국 원칙을 내세우는 중화인민공화국의 외교적 압력에도 불구하고 지속되고 있는 관계이다. 에스와티니는 1968년 독립 직후부터 중화민국과 수교했으며, 양국은 농업 기술, 의료, 교육, 인프라 건설 등 다양한 분야에서 협력해왔다. 중화민국은 에스와티니에 대한 주요 원조 제공국 중 하나이며, 에스와티니는 국제 사회에서 중화민국의 참여를 지지하는 입장을 표명하고 있다. 이러한 관계는 에스와티니의 외교 정책에서 중요한 특징 중 하나로 간주된다.
8.4. 기타 국가 및 국제기구와의 관계
에스와티니는 미국, 유럽 연합 등 주요 서방 국가들과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고 있으나, 절대 군주제 하에서의 인권 상황과 민주주의 부족 문제로 인해 비판을 받기도 한다. 미국은 아프리카 성장 기회법(AGOA)을 통해 에스와티니에 무역 특혜를 제공했지만, 노동권 문제 등으로 인해 일시적으로 자격이 정지되기도 했다. 유럽 연합 또한 주요 교역 상대국이자 원조 제공처이다.
에스와티니는 국제 연합(UN), 아프리카 연합(AU), 남아프리카 개발 공동체(SADC), 영연방 등 다양한 국제기구의 회원국으로 활동하며 다자외교를 펼치고 있다. SADC 내에서는 지역 통합과 경제 발전을 위한 노력에 동참하고 있으며, AU를 통해서는 아프리카 대륙의 평화와 안보, 개발 문제에 관여하고 있다. 영연방 회원국으로서 다른 회원국들과 정치, 경제, 사회, 문화적 교류를 이어가고 있다.
9. 경제
에스와티니의 경제는 농업, 임업, 광업이 국내총생산(GDP)의 약 13%를 차지하며, 제조업(섬유 및 설탕 관련 가공업)이 37%, 정부 서비스를 중심으로 한 서비스업이 50%를 구성하는 다각화된 구조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남아프리카 공화국 경제에 대한 의존도가 매우 높으며, 높은 빈곤율과 실업률, 소득 불평등이 주요 문제점으로 지적된다.
9.1. 경제 구조 및 현황
에스와티니의 국내총생산(GDP)은 2022년 기준 약 49.00 억 USD이며, 1인당 국민소득은 2023년 기준 약 3860 USD로 저중소득국으로 분류된다. 경제는 남아프리카 공화국과 매우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으며, 수입의 90% 이상을 남아공에서 들여오고 수출의 약 70%를 남아공으로 보낸다. 에스와티니는 남아프리카 관세동맹(SACU)의 회원국으로, 관세 수입은 정부 재정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 통화인 릴랑게니(복수형: 에마랑게니)는 남아프리카 공화국 랜드와 등가로 고정되어 있어, 사실상 에스와티니의 통화 정책은 남아공의 영향을 받는다.

토지 소유권 증서 토지(Title Deed Lands, TDLs)에서는 설탕, 임업, 감귤류와 같은 고부가가치 작물이 주로 재배되며, 높은 수준의 투자, 관개 시설, 그리고 높은 생산성을 특징으로 한다. 반면, 인구의 약 75%는 스와티 국유지(Swazi Nation Land, SNL)에서 자급 농업에 종사하는데, 이곳은 낮은 생산성과 투자 부족 문제를 겪고 있다. 이러한 이중적 경제 구조는 전반적인 성장 둔화, 높은 불평등, 그리고 실업의 원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
에스와티니의 주요 해외 교역 상대국은 미국(아프리카 성장 기회법에 의거)과 유럽 연합이며, 이들로부터 의류(미국) 및 설탕(EU) 수출에 대한 무역 특혜를 받아왔다. 이러한 협정 하에 의류와 설탕 수출은 급성장하고 외국인 직접 투자도 활발했으나, 최근 섬유에 대한 무역 특혜 철폐, 동아시아 국가들에 대한 유사한 특혜 부여, EU 시장 설탕 우대 가격 단계적 폐지 등으로 인해 수출 부문의 지속적인 활력이 위협받고 있다. 투자 환경 평가에 따르면 에스와티니 기업들은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에서 생산성이 높은 편에 속하지만, 다른 지역의 가장 생산적인 중소득 국가 기업들보다는 생산성이 낮다. 거버넌스 및 인프라 부족이 발전을 저해하는 요인으로 지적된다.
9.2. 주요 산업
에스와티니 경제는 농업, 제조업, 서비스업을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각 부문은 국가 경제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9.2.1. 농업 및 임업
농업은 에스와티니 경제의 핵심 부문 중 하나이다. 주요 농산물은 사탕수수로, 설탕은 국가의 주요 수출품이다. 사탕수수 재배는 대규모 플랜테이션에서 이루어지며, 주로 저지대에서 관개를 통해 경작된다. 그러나 사탕수수 재배 과정에서 농촌 공동체의 강제 이주, 아동 노동, 장시간 노동 등의 문제가 제기되기도 했다. 국제 노동조합 총연맹은 "힘들고 건강에 해로운 노동 조건, 비참한 임금, 노동조합 결성 시도에 대한 폭력적 탄압"을 지적한 바 있다.
감귤류(오렌지, 자몽, 레몬 등)와 파인애플 또한 중요한 수출용 작물로, 주로 미들벨트 지역에서 재배된다. 대부분의 농민은 자급 농업에 종사하며, 옥수수가 전국적으로 재배되고 미들벨트에서는 수수도 재배된다. 담배와 목화도 일부 지역에서 상업적으로 재배된다.
임업 또한 중요한 산업으로, 특히 하이벨트 지역을 중심으로 세계적으로 손꼽히는 규모의 인공 조림지가 조성되어 있다. 주요 수종은 소나무와 유칼립투스이며, 목재 및 펄프 생산에 활용된다.
9.2.2. 광업
과거 에스와티니의 광업은 국가 경제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으나, 현재는 그 중요성이 크게 감소했다. 북서부 응궤냐에는 한때 철광석 광산이 있어 연간 100만에서 300만 톤의 철광석을 생산하며 경제의 한 축을 담당했으나, 1970년대 말 자원 고갈로 폐광되었다. 또한, 북서부 지역에는 대규모 석면 광상이 존재하여 1959년에는 총수출의 47%를 차지할 정도로 주요 수출품이었으나, 건강 문제로 인해 전 세계적으로 석면 사용이 급감하면서 생산량도 크게 줄었다. 현재는 소규모 석탄 채굴이 이루어지고 있는 정도이다.
9.2.3. 제조업
에스와티니의 제조업은 아프리카 국가 중에서는 비교적 발달한 편으로, 노동 인구의 상당 부분이 이 분야에 종사하고 있다. 제조업 발전은 과거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아파르트헤이트 정책에 대한 국제 사회의 경제 제재를 회피하기 위해 남아공 기업들이 에스와티니로 진출하여 생산 및 무역 활동을 벌인 역사와 관련이 깊다. 아파르트헤이트 철폐 이후에도 제조업은 성장을 지속했다.
초기에는 자국의 농업 자원을 활용한 제당업 등 식품 가공업과 펄프 공업이 중심이었으나, 이후 음료 공업과 섬유 공업도 중요한 분야로 성장했다. 특히 섬유 산업은 아프리카 성장 기회법(AGOA)과 같은 무역 특혜를 통해 미국 시장 등으로 수출하며 발전했으나, 최근에는 국제 경쟁 심화와 특혜 축소 등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설탕 가공업은 여전히 중요한 제조업 분야로 남아있다.
9.2.4. 서비스업
서비스업은 에스와티니 GDP의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며, 정부 서비스 부문이 주도적인 역할을 한다. 이 외에 금융, 통신, 관광, 도소매업 등이 서비스업을 구성하는 주요 분야이다. 금융 부문은 에스와티니 중앙은행을 중심으로 은행, 보험 등의 서비스가 제공되고 있으나, 아직 발전 초기 단계에 머물러 있다. 통신 부문은 유선 및 이동통신 서비스가 제공되지만, 인프라 확충이 필요한 상황이다. 관광업은 에스와티니의 풍부한 자연환경과 독특한 문화를 바탕으로 성장 잠재력이 있는 분야로 평가받고 있다. 그러나 전반적으로 공공 서비스는 미흡한 수준으로 평가되며, 국가 발전을 위한 서비스업의 질적 향상이 요구된다.
9.3. 경제 문제와 과제
에스와티니는 여러 심각한 경제 문제에 직면해 있다. 가장 두드러진 문제점은 높은 빈곤율과 실업률이다. 국민의 상당수가 하루 1.9 USD 미만으로 생활하는 극빈층이며, 특히 청년 실업률이 매우 높아 사회적 불안 요인이 되고 있다. 소득 불평등 또한 심각하여, 국부의 상당 부분이 왕실과 소수 엘리트층에 집중되어 있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세계적으로 가장 높은 수준의 HIV/AIDS 유병률은 노동력 감소, 의료비 부담 증가, 평균 수명 단축 등 경제 전반에 걸쳐 막대한 부정적 영향을 미치고 있다. 반복되는 가뭄과 같은 기후 변화의 영향으로 농업 생산성이 저하되어 식량 안보 문제도 심각하다.
정부 재정 건전성 또한 주요 과제이다. 남아프리카 관세동맹(SACU)으로부터의 수입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 국제 경제 상황 변화에 취약하며, 공무원 임금 비중이 과도하게 크고 공기업 운영의 비효율성도 문제로 지적된다. 정부는 외국인 직접 투자 유치 환경을 개선하려 노력하고 있으나, 정치적 불안정성과 거버넌스 부족이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 전반적으로 공공 서비스의 질이 낮아, 교육, 의료, 사회 기반 시설 확충이 시급한 과제로 남아있다.
10. 교통
에스와티니의 교통망은 주로 도로와 철도로 구성되어 있으며, 국제공항을 통해 항공 교통도 이루어진다. 내륙국이라는 지리적 특성상 해상 운송은 불가능하다.
10.1. 도로 및 철도
에스와티니의 도로망은 비교적 잘 발달되어 있으나, 일부 농촌 지역은 비포장도로가 많다. 주요 도시와 지역을 연결하는 간선도로는 대부분 포장되어 있으며, 남아프리카 공화국 및 모잠비크와의 국경을 통해 국제 도로망과 연결된다. 대중교통은 주로 미니버스 택시(콤비)가 담당한다.
철도는 주로 화물 운송에 이용되며, 총연장은 약 301 km이다. 남북을 종단하는 노선은 남아프리카 공화국 북부 트란스발 지역에서 더반항으로 이어지는 단축 노선 역할을 하여 남아공의 통과 화물 운송량이 많다. 동쪽으로는 모잠비크 국경을 넘어 마푸투항과 연결되는 노선이 있으며, 중앙부 마차파 공업 지대까지 이어지는 지선도 있다. 여객 운송은 제한적으로 이루어진다.
10.2. 항공
에스와티니의 주요 국제공항은 2014년에 개항한 킹 음스와티 3세 국제공항(IATA: SHO, ICAO: FDSK)이다. 이 공항은 수도 음바바네에서 동쪽으로 약 58 km 떨어진 음푸말랑가 지역에 위치하며, 기존의 마차파 국제공항을 대체하여 주요 항공 관문 역할을 하고 있다. 에스와티니 국영 항공사인 에스와티니 에어가 이 공항을 허브로 하여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요하네스버그 등 일부 국제선 노선을 운항하고 있다. 그러나 공항 건설 당시 예상 수요에 비해 과도한 투자라는 비판이 제기되기도 했다. 마차파 국제공항은 현재 주로 국내선 및 비정기 항공편에 이용된다.
11. 사회
에스와티니 사회는 스와티족 중심의 전통 문화와 현대적 요소가 혼재되어 있다. 높은 HIV/AIDS 유병률과 빈곤 문제는 심각한 사회 문제로 남아 있으며, 교육과 보건 시스템 개선이 중요한 과제로 인식된다.
11.1. 인구
2023년 기준 에스와티니의 총인구는 약 120만 명으로 추산된다. 인구 증가율은 비교적 높은 편이었으나, 높은 HIV/AIDS 유병률로 인해 사망률이 증가하고 평균 수명이 단축되면서 증가세가 다소 둔화되었다. 연령 구조는 젊은 층이 매우 많은 피라미드형 구조를 보인다. 2018년 기준, 14세 이하 인구가 전체의 35%를 차지했으며, 중위 연령은 22세였다. 인구 밀도는 약 68.2명/km{{sup|2}} (2020년 기준)이다. 도시화가 진행 중이지만, 여전히 많은 인구가 농촌 지역에 거주하고 있다.
11.1.1. 주요 도시
에스와티니의 주요 도시는 다음과 같다.
- 음바바네 (Mbabane): 행정 수도로, 호호주에 위치한다. 해발고도 약 1200 m의 하이벨트 지역에 자리 잡고 있으며, 정부 주요 부처와 외국 공관들이 밀집해 있다. 인구는 약 7만 6천 명(2017년 기준)이다.
- 만지니 (Manzini): 에스와티니 최대 도시이자 경제 및 상공업 중심지로, 만지니주에 위치한다. '에스와티니의 허브'로 불리며, 교통의 요충지이기도 하다. 인구는 약 11만 명(2017년 기준)으로, 음바바네보다 많다.
- 냥가노 (Nhlangano): 시셀웨니주의 주도로, 에스와티니 남부에 위치한다. 농업이 발달한 지역의 중심지 역할을 한다. 인구는 약 9천 명(2005년 추정)이다.
- 시테키 (Siteki): 루봄보주의 주도로, 루봄보 산맥에 위치한다. 비교적 작은 도시이지만, 지역 행정 및 상업의 중심지이다. 인구는 약 6천 명(2005년 추정)이다.
- 로밤바 (Lobamba): 전통적인 왕정 수도이자 입법 수도로, 호호주와 만지니주 사이에 위치한다. 국왕의 거처인 로지타 왕궁과 국회의사당, 국립 박물관 등이 있다. 인구는 약 4천 5백 명(2005년 추정)이다.
- 빅벤드 (Big Bend): 루봄보주에 위치하며, 대규모 사탕수수 농장 지대의 중심지이다.
- 말케른스 (Malkerns): 만지니주에 위치하며, 농업과 수공예품 생산으로 유명하다.
- 믈루메 (Mhlume): 루봄보주에 위치하며, 설탕 산업과 관련된 주요 정착지이다.
- 피그스피크 (Piggs Peak): 호호주 북부에 위치하며, 과거 금광 채굴로 번성했던 곳이다. 현재는 임업과 관광이 주요 산업이다.
11.2. 민족 구성
에스와티니의 인구 대다수(약 84%)는 스와티인으로 구성되어 있다. 스와티인은 반투족 계열의 응구니족에 속하며, 고유한 언어와 문화를 가지고 있다. 소수 민족으로는 줄루족(약 10%)이 있으며, 이들은 주로 남아프리카 공화국과의 국경 지역에 거주한다. 그 외에 총가족, 인도인, 파키스탄인, 그리고 백인 아프리카인(주로 영국계 및 아프리카너 후손) 등이 소수 존재한다. 과거 모잠비크로부터 포르투갈인 정착민과 아프리카 난민들이 유입되기도 했다.
11.3. 언어
에스와티니의 공용어는 스와티어(siSwati)와 영어이다. 스와티어는 응구니어군에 속하는 반투어로, 일상생활에서 널리 사용되며 학교에서도 교육된다. 약 250만 명이 사용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영어는 정부, 행정, 교육, 비즈니스, 언론 등 공식적인 분야에서 주로 사용되는 의사소통 수단이다.
국민의 약 76,000명은 줄루어를 사용하며, 총가어 사용자도 약 19,000명 있다. 아프리카너 후손 중 일부는 아프리칸스어를 사용하기도 한다. 모잠비크에서 온 포르투갈어 사용자 공동체의 영향으로 학교에서 포르투갈어가 제3언어로 도입되기도 했다.
11.4. 종교
에스와티니 인구의 약 83%에서 88%가 기독교를 신봉한다. 이 중 성공회, 개신교 및 아프리카 토착 교회(특히 아프리카 시온주의 교회가 약 40% 차지)가 다수를 이루며, 로마 가톨릭 신자는 인구의 약 6~20%를 차지한다. 2012년 7월 18일, 엘리나 와무코야가 에스와티니 성공회 주교로 선출되어 아프리카 최초의 여성 주교가 되었으며, 2021년 사망할 때까지 그 직을 수행했다. 인구의 약 10~15%는 아프리카 토착 신앙을 따른다. 그 외 소수 종교로는 이슬람교(약 2%), 바하이 신앙(0.5%), 힌두교(0.2%) 등이 있다. 2013년 기준으로 14가구의 유대인 가정이 있는 것으로 보고되었다. 에스와티니 왕국은 이슬람식 결혼 계약과 같은 비시민적 결혼을 인정하지 않는다. 전통 신앙은 기독교 신앙과 혼합되어 나타나기도 하며, 많은 전통주의자들은 군주에게 특별한 영적 역할을 부여한다고 믿는다.
11.5. 교육
에스와티니의 교육은 유아 교육, 초등, 중등, 고등학교 과정의 일반 교육 및 훈련, 그리고 대학 및 전문대학 수준의 고등 교육으로 구성된다. 유아 교육은 보통 5세 이하 아동을 대상으로 하며, 이후 전국 어디에서나 초등학교에 입학할 수 있다. 유아 보육 및 교육 센터는 유치원 또는 지역사회 돌봄센터 형태로 운영된다. 미취학 아동의 21.6%가 유아 교육을 받고 있다. 초등 교육은 6세에 시작되며, 7년 과정으로 7학년 말에 학교를 통해 시험위원회가 관리하는 지역 기반 평가인 초등학교 졸업 시험으로 마무리된다.
중등 및 고등학교 교육 과정은 5년 프로그램으로, 3년의 중학교 과정과 2년의 고등학교 과정으로 나뉜다. 중학교 과정이 끝나면 학습자가 고등학교 과정으로 진학하기 위해 통과해야 하는 외부 공인 시험(중학교 졸업 증명서)이 있다. 에스와티니 시험위원회가 이 시험을 관리한다. 고등학교 과정이 끝나면 학습자들은 공인 시험인 스와질란드 일반 중등 교육 수료증(SGCSE) 및 국제 일반 중등 교육 수료증(IGCSE) 시험을 치르며, 이는 케임브리지 국제 시험 위원회에서 인증한다. 일부 학교에서는 고급 과정(AS) 프로그램을 제공하기도 한다.
전국에는 초등, 중등, 고등학교를 포함하여 830개의 공립학교가 있으며, 34개의 인가된 사립학교와 14개의 미인가 사립학교가 있다. 학교 수는 호호주에 가장 많다. 초등 교육은 주로 1학년부터 4학년까지 무상으로 제공되며, 고아 및 취약 계층 아동에게도 무상 교육이 제공되지만 의무 교육은 아니다. 1996년 초등학교 순 취학률은 90.8%였으며, 초등 교육 수준에서 성별 격차는 거의 없었다. 1998년에는 아동의 80.5%가 5학년까지 진학했다.
1963년, 남아프리카 최초의 다인종 학교인 워터퍼드 스쿨(이후 워터퍼드 캄흘라바 남아프리카 연합 세계 대학으로 개명)이 설립되었다. 1981년 워터퍼드 캄흘라바는 아프리카 대륙 최초의 연합 세계 대학(UWC)으로 UWC 운동에 참여했으며, 2019년 탄자니아의 UWC 동아프리카가 합류하기 전까지 유일한 아프리카 UWC였다.
11.5.1. 고등 교육

에스와티니의 주요 고등 교육기관으로는 에스와티니 대학교(University of Eswatini), 남아프리카 나자렌 대학교(Southern African Nazarene University), 에스와티니 의과 기독 대학교(Eswatini Medical Christian University) 등이 있다. 림콕윙 창조기술대학교의 캠퍼스도 음바바네 교외 시드와시니에 위치해 있다. 응와네 사범대학과 윌리엄 피처 대학은 교원 양성 기관이다. 시테키의 선한 목자 병원(Good Shepherd Hospital)에는 간호조무사 대학이 있다.
에스와티니 대학교는 1982년 의회법에 의해 설립된 국립 대학교로, 콸루세니에 본부를 두고 음바바네와 루옌고에 추가 캠퍼스를 운영하고 있다. 남아프리카 나자렌 대학교는 2010년 나자렌 간호대학, 신학대학, 나자렌 사범대학을 통합하여 설립되었으며, 만지니에 위치한다. 의학 교육에 중점을 둔 에스와티니 의과 기독 대학교는 2012년에 설립된 가장 최근의 대학으로 음바바네에 있다. 림콕윙 대학교 캠퍼스는 2012년 음바바네 시드와시니에 개교했다.
기술 훈련의 주요 중심지는 에스와티니 공과대학(Eswatini College of Technology, SCOT)이다. 기타 기술 및 직업 교육기관으로는 마차파의 그와밀레 직업상업훈련원, 만지니의 만지니 산업훈련센터, 냥가노 농업기술훈련센터, 시테키 산업훈련센터 등이 있다.
이 외에도 에스와티니 경영행정연구소(SIMPA)와 개발경영연구소(IDM)가 있다. SIMPA는 정부 소유의 경영 및 개발 연구소이며, IDM은 보츠와나, 레소토, 에스와티니에 있는 지역기구로 경영 분야의 훈련, 컨설팅, 연구를 제공한다. 마낭가 경영센터는 1972년 에줄위니 계곡에 마낭가 농업경영센터로 설립되어 중견 및 고위 관리자를 위한 국제 경영 개발 센터로 운영되고 있다.
11.6. 보건
에스와티니는 심각한 보건 문제에 직면해 있으며, 특히 HIV/AIDS 유병률이 세계적으로 가장 높은 수준이다. 2019년 기준, 15세에서 49세 사이 인구의 HIV 유병률은 27.1%에 달했다. 이는 국가 경제, 사회, 인구 구조 전반에 걸쳐 막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평균 수명은 2018년 기준 약 58세로 세계 최저 수준이며, 영아 사망률 또한 높다.
주요 질병으로는 HIV/AIDS 외에도 결핵이 있으며, 이 두 질병의 동시 감염 사례도 많다. 정부와 국제기구들은 HIV/AIDS 예방, 치료, 관리 프로그램을 시행하고 있으나, 여전히 많은 과제가 남아있다. 의료 시설은 도시 지역에 집중되어 있으며, 농촌 지역은 의료 접근성이 낮다. 숙련된 의료 인력 부족과 의약품 공급 불안정도 문제점으로 지적된다. 에스와티니는 2024년 세계 기아 지수에서 15.7점을 기록하여 74위를 차지했다.
11.6.1. HIV/AIDS 현황
에스와티니는 세계에서 성인 HIV/AIDS 유병률이 가장 높은 국가 중 하나이다. 2019년 기준 15~49세 인구의 27.1%가 HIV에 감염된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국가 보건 시스템에 엄청난 부담을 주고 있으며, 노동력 감소, 고아 증가, 평균 수명 단축 등 심각한 사회경제적 영향을 초래하고 있다. 높은 유병률의 원인으로는 빈곤, 성 불평등, 낮은 교육 수준, 전통적인 일부 관습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는 것으로 분석된다.
에스와티니 정부는 국제기구 및 비정부기구(NGO)와 협력하여 HIV/AIDS 예방, 검사, 치료 및 관리 프로그램을 적극적으로 시행하고 있다. 항레트로바이러스 치료(ART) 보급 확대를 통해 감염인의 건강을 개선하고 바이러스 전파를 줄이려는 노력이 이루어지고 있으며, 모자 감염 예방 프로그램, 콘돔 사용 캠페인, 자발적 남성 포경수술 장려 등 다양한 예방 활동도 전개되고 있다. 그러나 여전히 사회적 낙인, 의료 서비스 접근성 부족, 약물 내성 문제 등 해결해야 할 과제가 많다. HIV/AIDS는 에스와티니의 지속 가능한 발전에 큰 도전 과제로 남아 있으며, 국가적 차원의 지속적인 관심과 투자가 요구된다.
12. 인권
에스와티니의 인권 상황은 절대 군주제라는 정치 체제 하에서 심각한 우려를 낳고 있다. 국왕은 입법, 사법, 행정 전반에 걸쳐 절대적인 권력을 행사하며, 이는 시민적 및 정치적 자유에 대한 심각한 제한으로 이어진다. 헌법은 존재하지만, 국왕의 권력을 견제하는 데 실질적인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이 많다.
정치적 자유는 극도로 제한되어 있다. 정당 활동은 사실상 금지되어 있으며, 모든 의원은 개인 자격으로 출마해야 한다. 정부에 비판적인 목소리를 내는 개인이나 단체는 탄압의 대상이 되기 쉽다. 집회 및 결사의 자유 또한 엄격히 통제되며, 평화적인 시위조차 강제 해산되거나 폭력적으로 진압되는 경우가 빈번하다. 특히 2021년부터 2023년까지 발생한 민주화 요구 시위 과정에서 정부 보안군에 의한 과도한 무력 사용, 임의 체포 및 구금, 고문 의혹 등이 제기되어 국제 사회의 큰 비판을 받았다.
언론의 자유도 심각하게 위축되어 있다. 국영 언론은 정부의 입장을 대변하는 경향이 강하며, 민간 언론 또한 자기 검열을 하거나 정부의 압력에 직면하는 경우가 많다. 국왕이나 왕실을 비판하는 보도는 금기시된다.
사법부의 독립성에 대한 의문도 지속적으로 제기된다. 국왕이 판사 임명에 직접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며, 정치적으로 민감한 사안에 대해서는 공정한 재판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평가가 있다.
이 외에도 여성에 대한 차별, LGBT 권리 불인정, 노동권 침해 등 다양한 인권 문제가 존재한다. 국제앰네스티, 휴먼 라이츠 워치 등 국제 인권 단체들은 에스와티니의 인권 상황에 대해 지속적으로 우려를 표명하며 정부에 개선을 촉구하고 있다. 그러나 에스와티니 정부는 이러한 비판에 대해 내정 간섭이라며 반발하거나 소극적인 태도를 보이는 경우가 많아, 실질적인 인권 개선은 더딘 상황이다.
13. 치안
에스와티니의 전반적인 치안 상태는 비교적 안정적인 편으로 평가되지만, 남아프리카 공화국이나 모잠비크와 같은 주변국에 비해 범죄율이 높은 편에 속한다. 이는 국경을 접하고 있는 이들 국가로부터의 범죄 유입 가능성 때문으로 분석된다. 특히 국경 지대에서는 마약 밀매, 불법 총기 소지, 차량 절도 등의 조직 범죄가 문제 되고 있으며, 이들 국가의 마약 범죄 중계 지점으로 이용되기도 한다.
도시 지역에서는 강도, 빈집털이, 폭행, 성범죄 등에 대한 주의가 필요하다. 야간 주거 침입 강도 사건이 발생하여 폭력 피해를 입는 사례도 보고되고 있다. 여행객을 대상으로 한 소매치기나 차량털이도 발생하므로, 귀중품 관리와 차량 보안에 신경 써야 한다.
최근 몇 년간 민주화 요구 시위와 관련된 사회 불안이 증가하면서, 대규모 집회나 시위가 발생할 경우 치안 상황이 악화될 수 있다. 2018년 9월 임금 인상 및 공적 연금 기금 관리 개혁을 요구하는 대규모 시위가 발생하여 일부 경찰과 충돌하는 사건이 있었으며, 2021년부터 2023년까지 이어진 민주화 시위 과정에서는 더욱 격렬한 충돌과 정부의 강경 진압이 있었다. 이러한 시위는 주로 정부의 단속으로 진정되었으나, 최근에는 폭력적인 양상을 띠며 치안 당국과 충돌하는 경우도 있어 주의가 요구된다. 군중이 모이는 장소는 예기치 않은 시위나 집회로 변질될 가능성이 있으므로 가급적 피하는 것이 좋다.
14. 문화
에스와티니 문화는 전통적인 스와티족의 사회 구조와 관습이 깊이 뿌리내리고 있으며, 화려한 축제와 독특한 예술, 공예품 등으로 대표된다. 현대 사회의 변화 속에서도 전통문화를 보존하고 계승하려는 노력이 이어지고 있다.
14.1. 전통 사회와 생활

스와티족의 기본적인 사회 단위는 홈스테드(homestead)로, 전통적인 벌집 모양의 오두막(beehive hut)은 마른 풀로 지붕을 엮어 만든다. 일부다처제가 허용되는 홈스테드에서는 각 아내가 자신만의 오두막과 갈대 울타리로 둘러싸인 마당을 가진다. 일반적으로 잠자는 공간, 요리하는 공간, 그리고 맥주 등을 보관하는 저장 공간 등 세 개의 구조물로 이루어진다. 규모가 큰 홈스테드에는 미혼 남성들의 숙소나 손님맞이용 공간이 추가되기도 한다.
전통 홈스테드의 중심에는 소 외양간(cattle byre)이 있으며, 이는 통나무와 나뭇가지로 둥글게 울타리를 친 공간이다. 소 외양간은 부를 저장하고 위신을 상징하는 의례적 중요성과 함께 실용적인 의미도 지닌다. 이곳에는 봉인된 곡물 저장 구덩이가 있다. 소 외양간 맞은편에는 가장(headman)의 어머니가 거주하는 큰 오두막(great hut)이 있다. 가장은 홈스테드의 모든 일에 중심적인 역할을 하며, 종종 여러 아내를 둔다. 그는 모범을 보이며 아내들에게 가정의 모든 사회적 문제에 대해 조언하고 가족의 안녕을 돌본다. 또한 아들이나 가까운 친척인 어린 소년들과 시간을 보내며 성장과 남성성에 대한 기대를 가르친다.
상고마(sangoma)는 특정 가문의 조상들에 의해 선택된 전통적인 점술가 또는 치료사이다. 상고마가 되기 위한 훈련 과정을 '퀘트파사(kwetfwasa)'라고 하며, 훈련이 끝나면 모든 지역 상고마들이 모여 잔치를 벌이고 춤을 추는 졸업 의식이 열린다. 사람들은 질병이나 죽음의 원인을 밝히는 등 다양한 이유로 상고마를 찾는다. 상고마의 진단은 황홀경 상태에서 초자연적인 힘과 소통하는 과정인 '쿠불라(kubhula)'를 통해 이루어진다. 서양 의학의 의료 및 약학 전문가에 해당하는 '이냥가(inyanga)'는 질병의 원인을 파악하는 데 사용되는 뼈 던지기 기술('쿠샤야 에마참보')을 가지고 있다.
14.2. 주요 축제
에스와티니에서 가장 중요한 문화 행사는 다음과 같다.
- 잉크왈라 (Incwala): 왕권 의식으로도 알려져 있으며, 매년 12월 말에서 1월 초 사이, 동지(12월 21일)에 가장 가까운 보름달이 뜬 후 넷째 날에 개최된다. 종종 '첫 수확물 의식'으로 번역되기도 하지만, 국왕이 새 수확물을 맛보는 것은 이 긴 축제의 여러 측면 중 하나일 뿐이다. 잉크왈라는 "왕권 의식"으로 번역하는 것이 가장 적절하며, 국왕이 없으면 잉크왈라도 없다. 다른 사람이 잉크왈라를 여는 것은 범죄로 간주된다. 모든 스와티인은 잉크왈라의 공개 행사에 참여할 수 있다. 행사의 절정은 대(大) 잉크왈라의 넷째 날이다. 주요 인물은 국왕, 국모, 왕비와 자녀들, 왕실 총독(인두나), 추장들, 연령별 연대, 그리고 "베만티" 또는 "물의 사람들"이다.
- 움랑가 (Umhlanga): 리드 댄스(Reed Dance)로 널리 알려져 있으며, 에스와티니에서 가장 유명한 문화 행사 중 하나이다. 매년 8월 말이나 9월 초에 8일간 열린다. 이 축제에는 아이가 없고 미혼인 소녀들만 참여할 수 있다. 소녀들은 갈대를 베어 국모에게 바친 후, 상반신을 드러낸 채 춤을 춘다. 이 의식의 목적은 소녀들의 순결을 지키고, 국모에게 노동력을 제공하며, 공동 작업을 통해 연대감을 고취하는 것이다. 왕실은 평민 처녀 한 명을 소녀들의 "인두나"(캡틴)로 임명하며, 그녀는 라디오를 통해 연례 의식의 날짜를 발표한다. 선택된 인두나는 춤 전문가이자 왕실 의례에 정통해야 한다. 국왕의 딸 중 한 명이 의식 동안 그녀의 상대역을 맡는다. 오늘날의 리드 댄스는 고대 의식이 아니라 오래된 "움츠와쇼(umchwasho)" 관습이 발전한 형태이다. "움츠와쇼"에서는 모든 어린 소녀들이 여성 연령 연대에 배치되었다. 만약 어떤 소녀가 혼외 임신을 하면, 그녀의 가족은 지역 추장에게 소 한 마리의 벌금을 지불했다. 몇 년 후, 소녀들이 결혼 적령기에 도달하면 국모를 위해 노동 봉사를 하고, 춤과 잔치로 마무리했다. 에스와티니는 2005년까지 "움츠와쇼" 의례를 따랐다.
14.3. 예술과 공예
에스와티니는 수공예 산업이 발달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공식적인 수공예 사업체들은 2,500명 이상을 고용하고 있으며, 이들 중 다수는 여성이다. 에스와티니의 수공예품은 독특하며 국가의 문화를 반영한다. 제품 범위는 생활용품에서부터 예술 장식품, 복잡한 유리, 돌 또는 나무 공예품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전통 음악과 춤 또한 에스와티니 문화의 중요한 부분으로, 다양한 의식과 축제에서 공연된다. 현대 문학 및 예술 활동도 점차 발전하고 있으며, 국내외에서 활동하는 예술가들이 등장하고 있다.
14.4. 스포츠
에스와티니에서 가장 인기 있는 스포츠는 축구이다. 국내에는 에스와티니 프리미어리그가 운영되고 있으며, 에스와티니 축구 국가대표팀은 국제 대회에 참가하고 있으나 아직 FIFA 월드컵이나 아프리카 네이션스컵 본선 진출 경험은 없다. 솜흘롤로 국립 경기장이 가장 큰 스포츠 경기장이다.
에스와티니는 1972년부터 하계 올림픽에 선수단을 파견해왔으나 아직 메달을 획득하지는 못했다. 코먼웰스 게임에서는 권투와 마라톤 종목에서 메달을 획득한 바 있다. 축구 외에 크리켓과 럭비 유니언도 일부 인기를 얻고 있다.
15. 관광

에스와티니는 풍부한 자연 경관, 독특한 문화 유적, 그리고 다양한 야생동물을 관찰할 수 있는 국립공원 등 매력적인 관광 자원을 보유하고 있다. 주요 관광 명소로는 말로로차 국립공원, 믈릴와네 야생동물 보호구역, 흘라네 왕립 국립공원 등이 있으며, 이곳에서는 코뿔소, 코끼리, 사자 등 다양한 야생동물을 볼 수 있다. 또한, 움랑가(리드 댄스)나 잉크왈라와 같은 전통 축제는 에스와티니의 문화를 체험할 수 있는 좋은 기회를 제공한다.
관광 산업은 에스와티니 경제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며, 정부는 관광 산업 발전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과거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아파르트헤이트 시절에는 남아공과 다른 정책(예: 도박 허용, 다른 TV 프로그램)으로 인해 많은 관광객을 유치했다. 1972년 89,015명이었던 관광객 수는 1989년 257,997명으로 증가했다. 아파르트헤이트 종식 이후에는 주변 국가들이 더 매력적인 관광지로 부상하면서 성장세가 둔화되었다. 현재 에스와티니는 전통 문화와 아프리카 마지막 군주제 국가라는 점을 강조하여 관광객을 유치하고 있다. 2003년에 설립된 에스와티니 관광청은 왕실 행사와 국립공원을 적극적으로 홍보하고 있다. 2006년에는 남아프리카 공화국, 모잠비크와 함께 루봄보 루트(Lubombo Route) 협정에 참여하여 단일 비자로 국경을 넘나들 수 있도록 했다.
주요 관광 활동으로는 사파리, 하이킹, 문화 체험, 전통 수공예품 쇼핑 등이 있다. 스와티족의 전통 가옥인 벌집 오두막을 방문하거나, 전통 치료사인 상고마를 만나는 것도 독특한 경험이 될 수 있다. 관광 인프라는 계속 개선되고 있으나, 일부 지역은 아직 개발이 필요한 상황이다.
16. 대중매체
에스와티니의 대중매체는 신문, 방송(라디오 및 텔레비전), 그리고 인터넷으로 구성된다. 그러나 절대 군주제 국가의 특성상 언론의 자유는 상당한 제약을 받고 있으며, 정부의 통제 수준이 높은 편이다.
주요 신문으로는 국영 일간지인 '에스와티니 옵서버(Eswatini Observer)'와 민간 일간지인 '타임스 오브 에스와티니(Times of Eswatini)'가 있다. 이들 신문은 국내외 뉴스를 다루지만, 정부나 왕실에 비판적인 내용은 찾아보기 어렵다는 평가를 받는다.
방송 부문에서는 국영 라디오 방송국인 에스와티니 방송정보서비스(EBIS)와 국영 텔레비전 방송국인 에스와티니 TV(Eswatini TV, 이전 Swazi TV)가 주요 역할을 한다. 민간 라디오 방송국도 소수 존재하나, 그 영향력은 제한적이다. 방송 내용 역시 정부의 입장을 반영하는 경우가 많다.
인터넷 사용은 점차 확산되고 있으나, 보급률은 아프리카 평균에 비해 낮은 편이다. 소셜 미디어를 통해 다양한 정보가 유통되기도 하지만, 정부는 인터넷에 대한 통제를 강화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기도 한다. 특히 2021년 민주화 시위 당시에는 정부가 인터넷 접속을 차단하여 정보 흐름을 통제하려 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국제 언론 감시 단체들은 에스와티니의 언론 자유 수준을 낮게 평가하며, 정부의 검열과 언론인에 대한 압력, 자기 검열 등이 만연하다고 지적한다. 이러한 환경은 국민의 알 권리를 제약하고 민주적인 담론 형성을 어렵게 만드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