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에도아르도 만자로티(Edoardo Mangiarotti에도아르도 만자로티이탈리아어, 1919년 4월 7일 ~ 2012년 5월 25일)는 이탈리아의 전 펜싱 선수이자 체육 행정가, 스포츠 기자이다. 그는 펜싱 역사상 가장 위대한 선수 중 한 명으로 평가받으며, 올림픽과 세계 선수권 대회를 통틀어 총 39개의 메달을 획득하여 이 분야에서 전무후무한 기록을 세웠다. 특히 올림픽에서는 개인전 금메달 1개와 단체전 금메달 5개를 포함한 금메달 6개, 은메달 5개, 동메달 2개를 포함해 총 13개의 메달을 획득하며 역대 이탈리아 올림픽 선수 중 가장 많은 메달을 획득한 선수로 기록되었다. 만자로티는 주로 에페와 플뢰레 종목에서 활약하며 25년간의 선수 경력을 통해 국제 무대에서 압도적인 기량을 선보였다.
2. 어린 시절과 가족 배경

만자로티는 1919년 4월 7일 롬바르디아주 레나테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밀라노 출신의 저명한 펜싱 마스터이자 이탈리아 선수권 대회 에페 부문에서 17회 우승을 차지했던 주세페 만자로티였다. 주세페는 에도아르도의 펜싱 경력을 직접 설계하고 지도했으며, 아들이 자연스러운 오른손잡이였음에도 불구하고 상대를 더욱 어렵게 만드는 왼손잡이로 훈련시켜 독특한 경기 스타일을 갖추도록 만들었다. 에도아르도의 형인 다리오 만자로티 또한 펜싱 선수로 활동하며 1949년 세계 선수권 대회에서 우승하고 올림픽에서 금메달 1개와 은메달 2개를 획득한 바 있다. 그의 또 다른 형인 마리오 만자로티 역시 펜싱 선수였다.
2.1. 어린 시절과 초기 펜싱 입문
에도아르도 만자로티는 어린 시절부터 뛰어난 펜싱 재능을 보였다. 그는 11세의 나이에 이탈리아 주니어 플뢰레 선수권 대회에서 우승하며 일찍이 두각을 나타냈다. 16세가 되던 1935년에는 이탈리아 성인 국가대표팀에 발탁되어 세계 선수권 대회에 참가하기 시작했다. 그의 초기 훈련은 아버지 주세페의 세심한 지도 아래 이루어졌으며, 이는 훗날 그가 국제 무대에서 성공하는 데 결정적인 기반이 되었다.
3. 선수 경력
에도아르도 만자로티의 선수 경력은 제2차 세계 대전을 기점으로 크게 두 시기로 나눌 수 있으며, 각 시기마다 놀라운 성과를 거두며 펜싱 역사에 큰 족적을 남겼다. 그는 국제 대회에서 득실점 기준으로 펜싱 역사상 가장 성공적인 선수로 평가받으며, 에페 종목에서는 꾸준히 우승을 차지했고 플뢰레 종목에서는 전문가 크리스티앙 도리올라에 이어 2인자 자리를 지켰다.
3.1. 제2차 세계 대전 이전 경력
만자로티는 1935년 16세의 나이로 이탈리아 국가대표팀에 데뷔한 이후, 이듬해인 1936년 8월 독일 베를린에서 열린 1936년 하계 올림픽에 참가하며 첫 올림픽 무대를 밟았다. 이 대회에서 그는 잔카를로 코르나자메디치, 사베리오 라뇨, 프란코 리카르디, 잔카를로 브루사티, 알프레도 페차와 함께 에페 단체전에서 스웨덴팀을 꺾고 금메달을 획득하며 아버지의 헌신적인 지도에 보답했다. 1936년 올림픽에서는 에페 종목에 전자 채점 장비가 도입되었으며, 만자로티는 이탈리아 팀 동료들과 함께 금메달을 획득하며 새로운 기술 도입 시기에도 뛰어난 기량을 입증했다.
이후 1937년 7월 프랑스 파리에서 개최된 제1회 세계 펜싱 선수권 대회에서는 남자 에페 단체전에서 금메달을 추가했다. 이듬해인 1938년 5월 체코슬로바키아의 피에슈탸니에서 열린 1938년 세계 선수권 대회에서는 에페 개인전 은메달과 에페 단체전 동메달을 획득했다. 이 대회 이후 제2차 세계 대전의 발발로 인해 전 세계의 펜싱 대회가 중단되면서 그의 선수 활동도 잠시 중단되었다.
3.2.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경력 (1945-1951)
제2차 세계 대전 종전 후 만자로티는 다시 국제 무대에 복귀하여 1950년대에 걸쳐 에페와 플뢰레 두 종목에서 다른 국제 경쟁자들과 차별화되는 강한 투지와 개성을 선보였다. 1947년 6월 포르투갈 리스본에서 열린 1947년 세계 선수권 대회에서 그는 개인 플뢰레와 단체 에페에서 각각 동메달을 획득했다. 이듬해인 1948년 런던에서 개최된 1948년 하계 올림픽에서는 에페 개인전 동메달, 플뢰레 단체전 은메달, 에페 단체전 은메달을 획득했다. 특히 에페 단체전에서는 형인 다리오와 함께 출전하여 메달 획득에 기여했다. 당시 다리오는 부상으로 플뢰레 단체전에는 출전하지 못했다.
1949년 4월 이집트 카이로에서 열린 1949년 세계 선수권 대회에서 만자로티는 에페 단체전과 플뢰레 단체전에서 모두 금메달을 획득했으며, 플뢰레 개인전에서는 동메달을 받았다. 이 대회에서 형 다리오는 에페 개인전 세계 선수권 타이틀을 획득했다. 이후 1950년 7월 모나코 몬테카를로에서 열린 1950년 세계 선수권 대회에서는 에페 단체전과 플뢰레 단체전에서 우승하며 2관왕에 올랐다. 1951년 6월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열린 1951년 세계 선수권 대회에서는 에페 개인전과 플뢰레 단체전에서 금메달을, 에페 단체전과 플뢰레 개인전에서 은메달을 획득했다.
또한, 만자로티는 지중해 경기 대회에서도 활약했다. 1951년 알렉산드리아 대회에서는 에페 단체전과 플뢰레 단체전에서 금메달을, 플뢰레 개인전에서 동메달을 획득했다. 1955년 바르셀로나 대회에서는 에페 단체전, 플뢰레 개인전, 플뢰레 단체전에서 각각 은메달을 추가했다.
4. 주요 올림픽 참가
만자로티는 1936년부터 1960년까지 총 다섯 번의 하계 올림픽에 참가하여 펜싱 역사에 길이 남을 기록들을 세웠다.
4.1. 1952년 하계 올림픽 (헬싱키)
1952년 7월 핀란드 헬싱키에서 개최된 1952년 하계 올림픽은 만자로티 형제에게 최고의 영광을 안겨준 대회였다. 에도아르도 만자로티는 이 대회 에페 개인전에서 76명의 경쟁자들을 제치고 압도적인 스타일로 금메달을 획득했다. 결승전에서 다소 불안한 출발을 보였지만, 7번의 승리를 거두며 최종 우승을 차지했다. 이 경기에서 그의 형 다리오는 은메달을 획득했고, 지난 올림픽에서 에도아르도를 꺾었던 스위스의 오스발트 차펠리는 동메달을 차지했다.
만자로티는 이 대회에서 에페 단체전 금메달, 플뢰레 개인전 은메달, 플뢰레 단체전 은메달을 추가하며 총 2개의 금메달과 2개의 은메달을 획득했다. 형 다리오 역시 에페 단체전 금메달과 개인전 은메달을 획득하여, 만자로티 형제는 이 대회에서 총 6개의 메달을 획득하는 경이로운 기록을 세웠다. 이는 1920년 올림픽에서 네도 나디와 알도 나디 형제가 획득한 9개의 메달(금 8개, 은 1개)에 버금가는 성과로 평가된다. 만자로티의 활약은 이탈리아 펜싱 대표팀이 1952년 올림픽 펜싱 메달 순위 1위를 달성하는 데 크게 기여했다.
4.2. 1956년 하계 올림픽 (멜버른)
1954년 6월 룩셈부르크 룩셈부르크시티에서 열린 1954년 세계 선수권 대회에서 3관왕에 올랐던 만자로티는 2년 후인 1956년 11월 오스트레일리아 멜버른에서 열린 1956년 하계 올림픽에 참가하며 자신의 4번째 올림픽 출전을 기록했다. 이 대회 에페 개인전에서는 극적인 결승전이 펼쳐졌다. 만자로티, 카를로 파베시, 주세페 델피노 등 세 명의 이탈리아 선수가 각각 5승 2패로 동률을 이루어 메달 결정을 위한 플레이오프(바라지)를 치러야 했다. 첫 번째 플레이오프에서 세 선수 모두 1승 1패를 기록하며 접전이 이어졌으나, 자정 무렵 만자로티는 지친 기색을 보이며 두 경기를 모두 패배했고 결국 동메달을 차지했다. 파베시가 델피노를 꺾고 금메달을 획득하면서 이탈리아 선수들이 에페 개인전 메달을 모두 휩쓸었다. 만자로티는 개인전 동메달을 보상이라도 하듯 에페 단체전과 플뢰레 단체전에서 모두 금메달을 획득하며 팀의 우승을 이끌었다.
4.3. 1960년 하계 올림픽 (로마)
만자로티는 1954년 룩셈부르크 세계 선수권 대회 이후 한동안 세계 선수권 대회에 참가하지 않다가, 1958년 8월 미국 필라델피아에서 열린 1958년 세계 선수권 대회에 참가하여 플뢰레 단체전에서 동메달을 획득했다.
그가 41세가 되던 1960년, 모국 이탈리아의 수도 로마에서 1960년 하계 올림픽이 개최되었다. 만자로티는 이탈리아 펜싱 국가대표팀 선수들 중 피오렌초 마리니(당시 48세) 다음으로 나이가 많았음에도 불구하고 팀의 주축으로 활약했다. 이탈리아팀은 플뢰레 단체전 결승전에서 개인전 챔피언 빅토르 자다노비치가 이끄는 소련팀에게 패하여 은메달을 획득했다. 그러나 남자 에페 단체전에서는 만자로티와 델피노가 주축이 된 이탈리아팀이 1958년 세계 선수권 대회 우승자인 빌 호킨스가 이끄는 영국팀을 결승에서 꺾고 금메달을 획득했다. 이 금메달은 만자로티가 올림픽에서 획득한 마지막 금메달이었다.
이 대회를 끝으로 만자로티는 올림픽에 더 이상 참가하지 않았다. 그는 다섯 번의 올림픽에서 금메달 6개, 은메달 5개, 동메달 2개를 포함하여 총 13개의 메달을 획득했다. 이는 1928년 암스테르담 올림픽에서 핀란드의 육상 선수 파보 누르미가 세운 최다 올림픽 메달 기록(12개)을 갱신하는 것이었다. 만자로티의 이 기록은 1964년 도쿄 올림픽에서 소련의 체조 선수 라리사 라티니나가 18번째 메달을 획득할 때까지 유지되었으며, 라티니나의 기록 또한 2012년 7월 31일 2012년 하계 올림픽에서 미국의 수영 선수 마이클 펠프스에 의해 갱신되었다.
5. 주요 업적 및 기록
에도아르도 만자로티의 선수 경력은 올림픽과 세계 선수권 대회에서 거둔 전례 없는 메달 수와 기록들로 요약된다. 그는 펜싱 역사상 가장 위대한 선수 중 한 명으로 인정받고 있다.
5.1. 세계 선수권 대회 성과
만자로티는 세계 펜싱 선수권 대회에서 총 27개의 메달을 획득했으며, 그 중 13개가 금메달이었다. 그의 세계 선수권 대회 메달 현황은 다음과 같다.
대회 | 종목 | 메달 |
---|---|---|
1937년 파리 | 단체 에페 | 금 |
1938년 피에슈탸니 | 개인 에페 | 은 |
1938년 피에슈탸니 | 단체 에페 | 동 |
1947년 리스본 | 개인 플뢰레 | 동 |
1947년 리스본 | 단체 에페 | 동 |
1949년 카이로 | 단체 에페 | 금 |
1949년 카이로 | 단체 플뢰레 | 금 |
1949년 카이로 | 개인 플뢰레 | 동 |
1950년 몬테카를로 | 단체 에페 | 금 |
1950년 몬테카를로 | 단체 플뢰레 | 금 |
1951년 스톡홀름 | 개인 에페 | 금 |
1951년 스톡홀름 | 단체 플뢰레 | 금 |
1951년 스톡홀름 | 단체 에페 | 은 |
1951년 스톡홀름 | 개인 플뢰레 | 은 |
1953년 브뤼셀 | 단체 에페 | 금 |
1953년 브뤼셀 | 개인 플뢰레 | 은 |
1953년 브뤼셀 | 단체 플뢰레 | 은 |
1954년 룩셈부르크 | 개인 에페 | 금 |
1954년 룩셈부르크 | 단체 에페 | 금 |
1954년 룩셈부르크 | 단체 플뢰레 | 금 |
1954년 룩셈부르크 | 개인 플뢰레 | 은 |
1955년 로마 | 단체 에페 | 금 |
1955년 로마 | 단체 플뢰레 | 금 |
1958년 필라델피아 | 개인 에페 | 은 |
1958년 필라델피아 | 단체 플뢰레 | 동 |
5.2. 올림픽 및 통산 기록
만자로티는 올림픽에서 총 13개의 메달(금 6개, 은 5개, 동 2개)을 획득하여 이탈리아 올림픽 역사상 가장 많은 메달을 획득한 선수로 기록되었다. 또한, 그는 당시 기준으로 역대 올림픽 선수 중 10번째로 많은 메달을 획득한 선수이기도 했다. 1960년 로마 올림픽에서 13번째 메달을 획득하며 파보 누르미의 종전 최다 올림픽 메달 기록(12개)을 경신했다. 그의 이 기록은 1964년 라리사 라티니나가 18개의 메달을 획득하며 경신하기 전까지 유지되었고, 라티니나의 기록 또한 2012년 마이클 펠프스에 의해 다시 경신되었다.
올림픽 메달과 세계 선수권 대회 메달을 합산하면 만자로티는 총 39개의 메달을 획득했다. 이는 펜싱 역사상 어떤 선수보다도 많은 메달 수이며, 그가 에페와 플뢰레 두 종목에서 모두 최고 수준의 기량을 유지했음을 보여주는 증거이다.
5.3. 국제 올림픽 위원회(IOC) 수상
만자로티는 펜싱 역사에 남긴 위대한 업적을 인정받아 2003년 국제 올림픽 위원회(IOC)로부터 특별한 영예인 '플래티넘 화환'(Platinum Wreath)을 수여받았다. IOC는 그에게 수여한 문서에서 "에도아르도 만자로티가 올림픽 및 세계 펜싱 선수권 대회에서 획득한 총 39개의 금, 은, 동메달은 그에게 해당 스포츠 역사상 가장 위대한 펜싱 선수라는 영예를 안겨주었다"고 명시하며 그의 업적을 공식적으로 기렸다. 그는 1977년에도 올림픽 훈장 동장을 수여받은 바 있다.
6. 은퇴 후 활동 및 말년
만자로티는 1961년에 현역 선수 생활에서 은퇴하며, 에페와 플뢰레 두 종목을 통틀어 세계 역사상 가장 위대한 펜싱 선수로 평가받으며 올림픽 무대를 떠났다. 그의 선수 경력은 25년간 이어졌으며, 이 기간 동안 올림픽과 세계 선수권 대회에서 총 39번의 3위 이내 입상을 기록했다.
은퇴 후 그는 1972년까지 이탈리아의 유명 스포츠 신문인 《가체타 델로 스포르트》의 펜싱 전문 스포츠 기자로 활동했다. 1966년에는 알도 체르키아리와 함께 펜싱 입문서인 《검술에 대한 진실》(La vera scherma이탈리아어)을 공동 저술하여 출판하기도 했다. 또한, 그는 1980년부터 1984년까지 이탈리아 펜싱 연맹과 국제 펜싱 연맹의 위원을 역임하며 스포츠 행정 분야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다. 그의 딸인 카롤라 만자로티 또한 펜싱 선수로 활동했으며, 1976년 몬트리올 올림픽과 1980년 모스크바 올림픽에 참가한 바 있다.
7. 사망
에도아르도 만자로티는 2012년 5월 25일, 향년 93세의 나이로 밀라노의 자택에서 사망했다.
8. 유산
에도아르도 만자로티는 펜싱 역사에 지울 수 없는 위대한 유산을 남겼다. 그는 올림픽과 세계 선수권 대회를 통틀어 가장 많은 메달을 획득한 선수로서 '가장 위대한 펜싱 선수'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의 꾸준함과 압도적인 기량은 25년간의 선수 경력 동안 에페와 플뢰레 두 종목에서 모두 최고 수준을 유지하며 빛을 발했다. 만자로티의 업적은 펜싱 스포츠의 발전과 대중화에 크게 기여했으며, 그의 이름은 여전히 전 세계 펜싱 선수들과 팬들에게 영감의 원천으로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