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게리 윈스턴 리네커(Gary Winston Lineker게리 윈스턴 리네커영어, 1960년 11월 30일 출생)는 은퇴한 영국의 축구 선수이자 현재 스포츠 해설가 겸 방송인이다. 그는 스트라이커로 활약하며 레스터 시티, 에버턴, 토트넘 홋스퍼 등 세 클럽에서 잉글랜드 최상위 리그 득점왕을 차지한 유일한 선수이다. 또한 바르셀로나에서도 뛰었으며, 잉글랜드 국가대표팀에서 80경기에 출전했다. 그는 1986년 FIFA 월드컵에서 6골로 골든 부트를 수상했고, 1990년 월드컵에서도 4골을 기록하며 잉글랜드의 준결승 진출에 크게 기여했다. 리네커는 선수 경력 동안 단 한 번의 옐로카드나 레드카드도 받지 않아 '그라운드의 신사'로 불리며 1990년 FIFA 페어플레이상을 수상했다.
선수 은퇴 후 그는 BBC의 대표적인 축구 프로그램인 《매치 오브 더 데이》를 1990년대 후반부터 진행하며 역대 최장수 진행자가 되었다. 리네커는 또한 난민 정책 비판 등 자신의 중도 좌파적 정치적 견해를 적극적으로 표명해 왔으며, 특히 2023년 영국 정부의 이민 정책에 대한 비판 트윗으로 인해 BBC 출연 정지 논란에 휩싸이기도 했다. 이 사건은 축구계와 언론계에 큰 파장을 일으켰으나, 결국 그는 복귀하여 현재까지 활발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2. 어린 시절 및 배경
게리 윈스턴 리네커는 1960년 11월 30일 영국 레스터에서 마가렛 P. (앱스)와 배리 리네커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의 중간 이름인 윈스턴은 같은 날 태어난 윈스턴 처칠을 기리기 위해 붙여졌다. 그에게는 두 살 어린 동생 웨인이 있다. 리네커는 가족과 함께 레스터에서 성장했으며, 동생 웨인과 함께 축구를 하며 어린 시절을 보냈다. 그의 아버지와 할아버지 윌리엄, 증조할아버지 조지는 모두 레스터에서 청과상인이었다. 배리 리네커는 레스터 시장에서 리네커의 과일 및 채소 가판대를 운영했고, 어린 시절부터 젊은 선수 시절까지 게리는 이 가판대에서 정기적으로 일을 도왔다. 그는 어린 시절 어두운 피부색 때문에 인종차별적 욕설을 받기도 했다.
2.1. 어린 시절과 교육
리네커는 레스터 브라운스톤의 칼데코트 로드 학교(칼데코트 주니어스)를 시작으로, 이후 이빙턴에 있는 레스터 시티 남자 그래머 스쿨(현재 레스터 시티 칼리지)에 다녔다. 이는 그가 집 근처 대부분의 학교에서 주 스포츠였던 럭비보다 축구를 더 선호했기 때문이다. 리네커는 축구와 크리켓 모두에 재능이 있었다. 11세부터 16세까지 그는 레스터셔 학교 크리켓 팀의 주장을 맡았으며, 당시에는 축구보다 크리켓에서 성공할 가능성이 더 높다고 생각했다. 그는 훗날 《그것이 전부라고 생각하나》에서 십대 시절 레스터셔에서 뛰었던 전 잉글랜드 주장 데이비드 가워를 우상으로 여겼다고 밝혔다. 어린 시절에는 에일스톤 파크 유스 팀에서 뛰었으며, 훗날 이 클럽의 회장이 되었다.
리네커는 4개의 O 레벨을 취득하고 학교를 떠났다. 그의 한 선생님은 그의 성적표에 그가 "축구에 너무 많이 집중한다"며 "그것으로 먹고 살 수 없을 것"이라고 적었다. 그러나 그는 1976년 레스터 시티 유소년 아카데미에 입단하며 축구 선수로서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2.2. 초기 경력 형성
리네커의 초기 직업 경력은 그의 유소년 클럽인 레스터 시티에서 시작되었다. 1976년 레스터 시티 유소년 아카데미에 입단한 후, 1977년 학교를 졸업하고 1978-79 시즌에 프로로 전향했다. 1979년 1월 1일 필버트 스트리트에서 열린 올덤 애슬레틱과의 풋볼 리그 2부 경기에서 성인 무대에 데뷔했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그는 전문 축구 선수로서의 초기 경력을 형성했다.
3. 클럽 경력
게리 리네커는 고향 팀인 레스터 시티에서 프로 경력을 시작하여, 에버턴, 바르셀로나, 토트넘 홋스퍼 등 유럽 주요 리그에서 활약했으며, 마지막으로 J리그의 나고야 그램퍼스 에이트에서 선수 생활을 마감했다.
3.1. 레스터 시티 (1978-1985)
리네커는 1977년 학교를 졸업한 후 고향 팀인 레스터 시티에서 선수 생활을 시작했다. 1978-79 시즌에 프로로 전향했으며, 1979년 1월 1일 필버트 스트리트에서 열린 올덤 애슬레틱과의 풋볼 리그 2부 경기에서 성인 무대에 데뷔하여 2대0 승리에 기여했다. 이듬해 19경기 출전으로 2부 리그 우승 메달을 획득했으나, 1980-81 시즌에는 레스터가 곧바로 강등되면서 리그 9경기 출전에 그쳤다.
1981-82 시즌부터 리네커는 정규 선수로 자리매김하며 모든 대회를 통틀어 19골을 기록했다. 레스터는 승격에는 실패했지만 FA컵 준결승에 진출하는 성과를 거두었다. 이듬해 리네커는 2부 리그에서 26골을 터뜨리며 팀의 승격을 이끌었다. 1983-84 시즌에는 처음으로 풋볼 리그 1부에서 활약하며 22골로 리그 득점 2위를 기록했다. 1984-85 시즌에는 24골로 1부 리그 공동 득점왕에 올랐고, 앨런 스미스와 함께 막강한 공격 파트너십을 구축했다. 이 시기에 그는 더 큰 클럽들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고, 필버트 스트리트를 떠나는 것이 기정사실화되었다.
3.2. 에버턴 (1985-1986)
1985년 시즌 종료 후, 전 시즌 리그 챔피언인 에버턴은 리네커를 80.00 만 GBP에 영입했다. 그는 새로운 팀에서 1985-86 시즌 동안 57경기에 출전하여 40골을 기록하는 폭발적인 활약을 펼쳤다. 에버턴에서의 첫 경기는 공교롭게도 친정팀 레스터 시티와의 원정 경기였는데, 하프타임에 실수로 레스터 라커룸으로 들어가기도 했다.
리네커는 30골(3개의 해트트릭 포함)로 다시 한 번 풋볼 리그 1부 득점왕에 올랐으며, 에버턴이 리그 2위를 차지하는 데 기여했다. 에버턴은 3년 연속 FA컵 결승에 진출했으나, 리네커가 앨런 핸슨을 제치고 선제골을 넣었음에도 불구하고 리버풀에 1대3으로 패배했다. 리그에서도 리버풀이 에버턴을 단 2점 차이로 따돌리고 우승을 차지했다. 그는 머지사이드에서 짧은 시간(총 9~10개월)을 보냈지만, 개인적으로는 행복했고 프로 경력상 가장 성공적인 시기 중 하나였다고 회상하며 에버턴에 대한 애착을 드러냈다.
그는 에버턴에서 3번의 해트트릭을 기록했다. 1985년 8월 31일 버밍엄 시티와의 홈 리그 경기에서 4대1 승리를 거둘 때, 1986년 2월 11일 맨체스터 시티와의 홈 경기에서 4대0 승리를 거둘 때, 그리고 1986년 5월 3일 사우샘프턴과의 시즌 마지막 리그 경기에서 6대1 승리를 거둘 때였다. 그는 마지막 리그 경기에서 웨스트햄 유나이티드를 상대로 3대1 승리에서 두 골을 넣었다. 은퇴 후 리네커는 이 에버턴 팀이 자신이 뛰었던 클럽 팀 중 최고였다고 평가했다.
3.3. 바르셀로나 (1986-1989)
1986년 FIFA 월드컵에서 골든 부트를 수상한 후, 리네커는 바르셀로나로 280.00 만 GBP에 이적했다. 당시 바르셀로나는 전 퀸즈 파크 레인저스 감독이었던 테리 베너블스가 지휘봉을 잡고 있었고,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 웨일스의 스트라이커 마크 휴즈도 영입되었다. 레스터 시절 유럽 대회에 진출한 적이 없었고, 에버턴은 헤이젤 참사로 인한 잉글랜드 클럽의 유럽 대회 출전 금지 조치로 인해 1985-86 시즌 유러피언컵 출전이 좌절되었기 때문에 바르셀로나는 리네커에게 유럽 무대에서 뛸 첫 기회를 제공했다.
월드컵에서의 골든 부트 수상 활약은 캄 노우에서의 성공에 대한 큰 기대를 불러일으켰다. 그는 첫 시즌 41경기에서 21골을 기록했으며, 특히 숙적 레알 마드리드와의 경기에서 해트트릭을 포함해 3대2 승리를 이끌었다. 리네커는 라싱 산탄데르와의 바르셀로나 데뷔전에서 두 골을 넣었다. 바르셀로나는 1988년 코파 델 레이와 1989년 UEFA 컵위너스컵에서 우승을 차지했다. 리네커는 바르셀로나가 던디 유나이티드에 충격적인 홈 및 원정 패배를 당한 경기에도 출전했다. 요한 크루이프 감독이 바르셀로나에 부임한 후, 그는 리네커를 미드필드의 오른쪽에 기용하기 시작했고, 결국 그는 팀의 주전으로 자동적으로 선택되지 못하게 되었다.
리네커는 라리가 103경기에 출전하여 42골을 기록하며 이 대회에서 가장 많은 골을 넣은 영국 선수가 되었으나, 2016년 3월 가레스 베일에 의해 기록이 경신되었다.
3.4. 토트넘 홋스퍼 (1989-1992)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알렉스 퍼거슨 감독은 리네커를 그의 전 바르셀로나 팀 동료인 마크 휴즈의 공격 파트너로 영입하려 했으나, 리네커는 대신 1989년 7월 110.00 만 GBP에 토트넘 홋스퍼와 계약했다. 그는 토트넘에서 세 시즌 동안 105번의 리그 경기에 출전하여 67골을 기록했으며, FA컵 우승을 차지했다. 1989-90 시즌에는 24골로 풋볼 리그 1부 득점왕에 올랐고, 토트넘은 리그 3위를 기록했다.
리네커는 1991년 토트넘과 함께 FA컵 우승을 차지하며 마침내 잉글랜드 트로피를 손에 넣었다. 이 경기에서 토트넘은 노팅엄 포리스트를 2대1로 꺾었다. 이 경기에서 리네커의 골은 논란의 여지가 있는 오프사이드 판정으로 취소되었고, 마크 크로슬리 골키퍼에게 페널티킥을 막히기도 했다. 리네커는 토트넘의 결승 진출에 기여했다. 특히 준결승전에서는 북런던 라이벌 아스널과의 경기에서 두 골을 넣으며 3대1 승리를 이끌었다.
1991-92 시즌에는 35경기에서 28골을 기록하며 이언 라이트의 29골에 이어 리그 득점 2위에 올랐다. 리네커의 개인적인 활약에도 불구하고, 토트넘은 이 프리미어리그 창설 이전 마지막 시즌을 15위로 마쳤다. 그의 잉글랜드 축구 마지막 골은 시즌 마지막 날 올드 트래퍼드에서 열린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의 경기에서 3대1 패배를 당할 때 나왔다.
3.5. 나고야 그램퍼스 에이트 (1992-1994)
1991년 11월, 리네커는 J리그 클럽 나고야 그램퍼스 에이트로부터 2년 계약 제안을 수락했다. 토트넘 홋스퍼에 지불된 이적료는 200.00 만 GBP였다. 그는 1992년 5월 2일 토트넘에서 마지막 경기를 치른 후 나고야 그램퍼스 에이트에 공식적으로 합류했으며, 이 경기에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 3대1로 패배할 때 만회골을 기록했다. 나고야 그램퍼스 에이트의 제안을 수락하기 직전, 토트넘은 철강 재벌 잭 워커가 최근 인수한 블랙번 로버스의 제안을 거절한 바 있었다.
나고야 그램퍼스 에이트에서 두 시즌 동안 부상에 시달리며 23경기에 출전해 9골을 기록한 후, 1994년 9월 은퇴를 발표했다. 당시 잉글랜드 언론은 그가 미들즈브러나 사우샘프턴에서 선수 경력을 마무리하기 위해 잉글랜드로 돌아올 것이라고 보도한 바 있었다.
일본 소스에 따르면, 당시 그의 연봉은 J리그 최고액인 약 3.00 억 JPY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되었다. 그는 1993년 J리그 컵에는 출전하지 않았지만, 코린치앙스와의 친선 경기에서 나고야 그램퍼스 선수로 처음 출전했다. 1993년 J리그 개막을 앞두고 크루이프 감독의 팀에 대한 기대를 모았으며, 개막 전 프리시즌 경기에서 라치오를 상대로 결승골을 넣고 그레미우전에서도 2경기 연속 골을 넣는 등 좋은 컨디션을 유지했다. J리그 개막전은 지쿠가 이끄는 가시마 앤틀러스와의 경기로, 스타 플레이어 간의 대결로 큰 주목을 받았으나 0대5로 대패했고 리네커는 득점하지 못했다. 전기 2라운드 우라와 레즈전에서는 모리야마 야스유키의 골을 어시스트하며 첫 어시스트를 기록했고, J리그 첫 승리에 기여했다. 5월 26일 전기 4라운드 요코하마 플뤼겔스전에서 J리그 첫 골을 넣었으나, 부상으로 인해 제대로 출전하지 못했고, 조르지뉴와의 호흡도 맞지 않아 1년차 리그전에서의 유일한 골이 되었다. 리그 컵에서는 9월 10일 시미즈 에스펄스전에서 1골, 9월 25일 요코하마 마리노스전에서 2골을 기록했다.
1994년 시즌, 리네커는 1차 스테이지를 거의 통째로 결장했지만, 최종 라운드 산프레체 히로시마전에서 교체 출전하며 복귀했다. 2차 스테이지부터 합류한 스토이코비치와의 활약이 기대되었으나, 2차 스테이지 개막전인 산프레체 히로시마전에서 함께 선발 출전했음에도 스토이코비치는 옐로카드 2장으로 퇴장당하는 등 팀에 적응하지 못했고 14경기 출장에 그쳤다. 리네커 자신도 부상으로 인해 상시 출전할 수 없었기에, 두 선수가 함께 뛴 경기는 단 4경기에 불과했다. 8월 13일 주빌로 이와타전에서 시즌 첫 골을 넣어 승리에 기여했고, 9월 3일 가시마 앤틀러스전, 9월 7일 베르디 가와사키전에서 2경기 연속 골을 기록했다. 그러나 이후로도 꾸준히 출전하지 못했고, 시즌 최종전인 산프레체 히로시마전에서는 선발 출전하여 51분까지 뛰었지만 득점하지 못했다. 베르디전 골이 그의 현역 생활 마지막 골이 되었다. 그는 같은 해 은퇴를 선언했으며, 리그전 통산 18경기 출전 4골을 기록했다. 리네커의 둘째 아들은 나고야에서 태어났는데, 그는 2023년 현재에도 일본에 대해 친밀감을 가지고 있다고 밝히기도 했다.
4. 국가대표팀 경력
게리 리네커는 잉글랜드 국가대표팀에서 8년 동안 활약하며 80번의 출전과 48골을 기록했으며, 특히 두 번의 FIFA 월드컵에서 뛰어난 득점력을 보여주었다.
4.1. 초기 국가대표팀 경력 및 1986년 FIFA 월드컵
리네커는 1984년 잉글랜드 B 국가대표팀에서 뉴질랜드 B팀과의 경기에서 한 차례 출전했으며, 1984년 스코틀랜드와의 경기를 통해 정식 잉글랜드 국가대표팀에 데뷔했다. 그는 1986년 FIFA 월드컵에 5경기에 출전하여 대회 득점왕(골든 부트 수상)에 올랐으며, 이는 잉글랜드 선수로는 최초의 기록이다. 그는 폴란드를 상대로 월드컵 역사상 두 번째로 빠른 해트트릭을 기록했고, 이는 잉글랜드 선수로서 월드컵에서 해트트릭을 기록한 두 번째 사례이기도 하다. 또한 16강전에서는 파라과이를 상대로 두 골을 기록했다. 그는 대회 대부분을 가벼운 팔뚝 캐스트를 착용한 채 뛰었다. 리네커는 아르헨티나와의 월드컵 8강전에서 잉글랜드의 골을 넣었으나, 디에고 마라도나가 두 골(첫 번째는 '신의 손' 핸드볼, 두 번째는 '세기의 골')을 넣으며 경기는 패배로 끝났다. 1988년 UEFA 유로 1988에 출전했으나, 잉글랜드가 조별리그 세 경기를 모두 패하면서 득점을 기록하지 못했다. 훗날 그가 간염을 앓고 있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4.2. 1990년 FIFA 월드컵 및 주장 활동
1990년 FIFA 월드컵에서 리네커는 4골을 추가하여 잉글랜드가 준결승에 진출하는 데 기여했다. 그는 대회 기간 동안 컨디션이 좋지 않았으며, 아일랜드와의 조별리그 첫 경기 도중 실수로 반바지에 배변을 하기도 했다. 준결승전에서 안드레아스 브레메의 골로 잉글랜드가 1대0으로 뒤진 상황에서, 리네커는 폴 파커의 패스를 받아 서독 수비수 두 명을 따돌리고 동점골을 터뜨렸다. 그러나 서독은 승부차기에서 승리하여 결승에 진출했고, 결국 우승을 차지했다. 훗날 리네커는 "축구는 단순한 게임이다. 22명이 90분 동안 공을 쫓고, 결국에는 독일이 이긴다"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리네커의 동점골은 잉글랜드 국가대표팀의 인기 응원가인 "쓰리 라이언스"의 가사("리네커가 골을 넣었을 때")에도 등장한다.
4.3. 국가대표팀 은퇴
리네커는 잉글랜드 국가대표팀에서 80경기에 출전하여 48골을 기록하며 은퇴했다. 이는 보비 찰턴 경의 잉글랜드 최다 득점 기록(106경기 49골)에 단 한 골 못 미치는 기록이었다. 그의 마지막 잉글랜드 경기는 UEFA 유로 1992 스웨덴전이었는데, 당시 잉글랜드 감독 그레이엄 테일러는 그를 앨런 스미스와 교체하며 찰턴의 기록을 동률로 만들거나 경신할 기회를 박탈했다. 그는 이에 앞서 대회 전 브라질과의 친선 경기에서 찰턴의 기록과 동률을 이룰 수 있었던 페널티킥을 실축하기도 했다. 교체될 때 리네커는 테일러 감독을 쳐다보지 않고 벤치로 향하는 등 노골적으로 불만을 드러냈다.
그는 잉글랜드 대표팀 경기에서 두 차례에 걸쳐 네 골을 기록했으며, 어떤 종류의 경기에서도 옐로카드나 레드카드를 한 번도 받지 않은 매우 드문 선수 중 한 명이다.
5. 은퇴 후 활동
선수 은퇴 후 게리 리네커는 다양한 미디어 활동과 자선 활동을 통해 사회에 기여하며 큰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
5.1. 미디어 활동
리네커는 프로 축구 선수 은퇴 후 미디어 분야에서 경력을 쌓기 시작했으며, 처음에는 BBC 라디오 5 라이브에서 축구 해설가로 활동했다.
5.1.1. 스포츠 진행자 활동
그는 1995년부터 2003년까지 스포츠 게임 쇼 《그것이 전부라고 생각하나》의 팀 주장으로 출연했다. 1997년 그랜드 내셔널 경마장이 폭탄 위협으로 폐쇄되었을 때, 당시 진행자였던 데스몬드 라이넘이 에인트리에 있는 동안 그는 런던 스튜디오에서 《그랜드스탠드》를 진행하기도 했다. 1999년에는 라이넘의 뒤를 이어 BBC 축구 중계의 앵커맨이 되었으며, 주력 축구 TV 프로그램인 《매치 오브 더 데이》를 진행하며 BBC 스포츠에서 가장 높은 연봉을 받는 진행자가 되었다.
2005년 스티브 라이더가 BBC를 떠난 후, 핸디캡 4의 열정적인 아마추어 골퍼인 리네커는 BBC의 골프 중계 새 진행자가 되었다. 동료들의 일부 비판에도 불구하고, 그는 마스터스와 오픈 중계를 계속 진행했다. 2005년, 리네커는 자신의 《더 선데이 텔레그래프》 칼럼에서 해리 큐얼의 리즈 유나이티드에서 리버풀로의 이적에 대해 언급한 내용으로 인해 큐얼에게 명예훼손 소송을 당했다. 그러나 배심원단은 평결에 이르지 못했다. 이 사건 과정에서 해당 기사가 리네커와의 전화 인터뷰 후 《더 선데이 텔레그래프》의 기자가 사실상 대필한 것임이 밝혀졌다.
2010년 5월, 리네커는 로드 트라이스만을 상대로 한 비밀 작전(그가 스페인과 러시아가 2010년 월드컵에서 심판을 매수할 계획이라고 주장했다는 비밀 녹취록 공개)에 항의하며 《더 메일 온 선데이》의 칼럼니스트 직을 사임했다. 그는 이후 알 자지라 스포츠의 영어 축구 중계 앵커로 일하기 시작했으나, 2012년 이 카타르 기반 네트워크를 떠났다.
2013년, 리네커는 NBCSN에서 프리미어리그 중계의 일환으로 일하기 시작했으며, 미국판 《매치 오브 더 데이》에도 기여했다. 2015년 6월 9일, 리네커는 BT 스포츠의 UEFA 챔피언스리그 중계의 주요 진행자로 발표되었다. 2016년 8월 13일, 리네커는 2016-17 시즌 첫 《매치 오브 더 데이》를 복서 쇼츠만 입은 채 진행했다. 그는 2015년 12월 트윗에서 레스터 시티가 프리미어리그에서 우승하면 "속옷만 입고 매치 오브 더 데이를 진행하겠다"고 약속한 바 있었다. 당시 그는 레스터의 우승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다.
2022년 7월 기준으로, 리네커는 수년간 BBC에서 가장 높은 연봉을 받는 진행자였다. 2016년부터 2020년까지 매년 약 175.00 만 GBP에서 176.00 만 GBP를 받았으며, 2020-21년에는 약 135.00 만 GBP를 받았다. 그의 연봉은 줄리언 나이트 디지털, 문화, 미디어 및 스포츠 특별위원회 위원장과 에스더 랜천 여사로부터 비판을 받았다. 그러나 BBC의 팀 데이비 이사는 리네커의 연봉이 "시청자에게 제공하는 분석 가치" 때문에 정당하다고 옹호했다.
2023년 3월, 리네커는 트위터에서 영국 정부의 이민 정책을 비판한 것과 관련하여 논란이 발생하여 3일 동안 BBC 진행 활동에서 물러나야 했다. 그는 1999년부터 진행해 온 《매치 오브 더 데이》 진행자 자리에서 2024-25 프리미어리그 시즌이 끝나는 2025년 5월에 하차할 것이라고 2024년 11월 11일 발표했다. 또한 2026년 FIFA 월드컵과 2025-26 FA컵 중계를 끝으로 BBC를 떠날 예정이다.
5.1.2. 광고 활동
리네커는 레스터에 본사를 둔 스낵 회사 워커스의 TV 광고에 출연해 왔다. 1994년 20.00 만 GBP 계약을 맺고, 1995년 '웰컴 홈' 광고(리네커가 일본에서 뛰다 잉글랜드로 돌아온 직후)를 시작으로 워커스의 대표 얼굴이 되었다. 1990년대 후반 워커스는 잠시 자사의 소금 & 식초 감자칩을 '솔트 & 리네커'로 이름 붙이기도 했다. 2000년, 리네커의 워커스 광고는 채널 4의 "가장 위대한 TV 광고 100선" 설문조사에서 9위에 올랐다.
5.1.3. 그 외 미디어 출연
리네커는 1987년 에드워드 왕자의 자선 TV 특집 프로그램 《그랜드 녹아웃 토너먼트》에 참여했다. 그는 또한 1991년 아서 스미스와 크리스 잉글랜드의 연극 《게리 리네커와 함께하는 저녁》에도 출연했으며, 이 연극은 1994년에 TV로 각색되었다. 1998년에는 BBC에서 로이드 스탠튼이 연출한 6부작 TV 시리즈 《골든 부츠》를 다른 축구 유명인사들과 함께 진행했다. 이 프로그램은 '골든 부츠'(득점왕)에 초점을 맞춘 월드컵의 방대한 역사를 다루었다.
2006년, 리네커는 BBC 어린이 채널 CBeebies의 《언더그라운드 어니》에서 목소리 연기 역할을 맡았다. 2008년 12월, 리네커는 ITV1 TV 프로그램 《누가 백만장자가 되고 싶어 하는가?》에 출연하여 잉글랜드 럭비 선수 오스틴 힐리와 함께 니콜스 척수 손상 재단을 위해 5.00 만 GBP를 따냈다. 2009년, 리네커와 그의 아내 다니엘은 BBC의 《노던 익스포저》 시리즈를 진행하며 전년도 로렌스 르웰린-보웬의 뒤를 이어 북아일랜드 전역의 장소들을 방문하고 소개했다.
리네커는 2002년 영화 《슈팅 라이크 베컴》, 2014년 BBC TV 영화 《마블러스》, 그리고 애플 TV+ 축구 코미디 TV 시리즈 《테드 래소》에 여러 차례 카메오로 출연했다. 2013년에는 족보 프로그램인 《당신은 누구라고 생각하나요?》에 참여하여 밀렵꾼이었던 조상과 법률 서기였던 조상을 발견했다. 2021년에는 ITV 게임 쇼 《시팅 온 어 포춘》의 진행을 시작했다.
5.1.4. 골행거 필름 및 팟캐스트
2014년 5월, 리네커는 전 ITV 컨트롤러 토니 패스터와 함께 자신의 제작사인 '골행거 필름스'를 설립했다. 2014년 FIFA 월드컵 기간 동안, 리네커는 골행거 필름스에서 제작한 여러 편의 짧은 동영상을 《블라질》이라는 제목으로 유튜브에 공개했다. 2015년 5월, 이 회사는 리네커가 진행하는 60분짜리 다큐멘터리 《게리 리네커, FA컵 영광의 길》을 BBC를 위해 제작했다.
그는 또한 '골행거 팟캐스트'를 운영하며 《리딩》, 《더 레스트 이즈 히스토리》, 《더 레스트 이즈 폴리틱스》를 제작하고 있으며, 그 자신은 앨런 시어러 및 마이카 리처즈와 함께 자신의 팟캐스트인 《더 레스트 이즈 풋볼》을 진행하고 있다.
5.2. 자선 활동 및 지역 사회 기여
1991년 11월, 리네커의 장남은 유아 시절 희귀 백혈병을 앓았으나 런던의 그레이트 오몬드 스트리트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살아남았다. 리네커는 현재 아동 암 자선 단체인 CLIC 서전트를 후원하며 헌혈을 장려하는 홍보 영상에도 출연했다. 리네커는 1994년부터 2005년까지 게리와 미셸이 후원자로 활동했던 백혈병 퇴치 운동가와 같은 다른 암 자선 단체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해왔다. 그는 또한 '생명을 위한 싸움'과 암 연구 UK 자선 단체에도 참여했다.
1995년 리네커는 레스터 시티의 명예 명예 시민이 되었으며, "레스터의 가장 사랑받는 아들"로 불리기도 했다. 2002년 10월, 리네커는 재정난에 처한 친정팀 레스터 시티를 구제하기 위한 500.00 만 GBP 규모의 입찰을 지지하며, 자신의 참여를 "자선"이지 "자아도취"가 아니라고 설명했다. 그는 자신이 6자리 숫자의 금액을 투자하고, 그의 컨소시엄의 다른 구성원들도 비슷한 금액을 투자할 것이라고 밝혔다. 리네커는 팬 단체들과 만나 자신의 친정팀을 구제하기 위한 모금 활동을 설득했다. 결국 클럽은 청산 위기에서 벗어났다. 그는 현재 레스터 시티 FC의 명예 부회장이다.
6. 개인 생활
게리 리네커의 개인 생활은 언론의 주목을 받았으며, 그의 가족 관계, 재정적 이슈, 그리고 사회적 관심사에 대한 참여를 포함한다.
6.1. 가족 및 관계

리네커는 1986년 미셸 콕케인과 결혼했다. 2006년 5월, 콕케인은 남편의 "불합리한 행동"을 이유로 이혼 소송을 제기했으며, 법원에 제출된 서류에는 리네커의 행동이 결혼 생활에 "스트레스와 불안"을 유발했다고 명시되어 있었다. 리네커와 콕케인은 4명의 아들을 두었다. 이후 부부는 상황이 원만하게 해결되었다고 밝혔다.
리네커는 2009년 9월 2일 이탈리아 라벨로에서 다니엘 벅스와 결혼했다. 2016년 1월 13일, 리네커와 벅스는 6년간의 결혼 생활 끝에 이혼을 발표했는데, 그 이유는 게리가 더 이상 자녀를 원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1985년, 리네커는 스누커 선수 윌리 손의 결혼식에서 신랑 들러리를 섰으며, 두 사람의 친밀한 우정은 VHS 제작물인 《베스트 오브 프렌즈 - 게리 리네커 & 윌리 손의 공식 이야기》의 주제가 되기도 했다.
6.2. 기타 개인적 측면
2017년 11월, 리네커는 파라다이스 페이퍼스에 이름이 오르내렸는데, 이는 바베이도스에 소유한 부동산과 영국령 버진아일랜드에 설립된 회사와 관련된 조세 회피 계획 때문이었다.
리네커는 바르셀로나에서 뛰던 시절 스페인어를 배웠으며, 학교에서의 외국어 교육을 옹호하는 지지자이다. 그는 일본어도 구사할 수 있다고 한다.
2020년 4월, 코로나19 팬데믹 기간 동안 리네커는 바이러스 연구를 위해 영국 적십자에 14.00 만 GBP를 기부한다고 발표했다.
2023년 3월 28일, 그는 영국 국세청을 상대로 총 490.00 만 GBP에 달하는 세금 고지서에 대한 항소에서 승소했다. 국세청은 그가 2013-14년부터 2017-18년까지 BBC와 BT 스포츠로부터 받은 수입에 대해 당시 두 조직의 직원이라는 이유로 세금을 추징했으나, 판사는 그가 프리랜서이며 두 방송사와 계약을 맺었다고 판결했다.
그는 크리켓의 열렬한 팬이며, 골프도 즐겨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11세부터 16세까지 레스터셔 스쿨즈 크리켓 팀의 주장을 맡았을 때, 당시에는 축구보다 크리켓에서 프로로 성공할 가능성이 더 높다고 생각했다.
7. 정치적 견해 및 논란
리네커는 트위터를 통해 자신의 정치적 견해를 표명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2016년 12월, 바이스 뉴스의 앵거스 해리슨은 그를 "영국 좌파의 가장 큰 목소리"라고 묘사하며, "확고한 자유주의자이자 자신의 견해를 드러내는 것을 전혀 두려워하지 않는" 인물로 평가했다. 리네커는 축구 비유를 들어 자신의 이념적 입장을 "나는 오른쪽보다 왼쪽으로 더 많이 달렸지만, 윙에서는 결코 편안함을 느끼지 못했다"고 정의했다。2017년 영국 총선 이후, 그는 "다른 누군가 정치적으로 갈 곳이 없다고 느끼는가? 모든 것이 극우 아니면 극좌처럼 보인다. 합리적으로 중도적인 것이 매력적일 수도 있지 않을까?"라고 썼다.
리네커는 2016년 브렉시트 국민투표에서 잔류를 지지했다. 2018년 7월에는 영국과 유럽 연합 간의 최종 브렉시트 합의에 대한 국민투표를 요구하는 캠페인 그룹인 피플스 보트에 대한 지지를 표명했다.
7.1. 난민 정책 및 BBC 중립성 논쟁
2016년 10월 18일, 리네커는 데이비드 데이비스 의원의 발언(영국에 입국하는 난민은 나이 확인을 위해 치과 검진을 받아야 한다고 제안)에 대해 "이 어린 난민들에 대한 일부의 처우는 끔찍하게 인종차별적이고 utterly heartless하다. 우리나라는 어떻게 되고 있는가?"라고 트윗했다. 이로 인해 《더 선》은 리네커가 BBC의 공정성 지침을 위반했다며 그를 《매치 오브 더 데이》에서 해고하라고 촉구했다.
2018년 12월, 리네커는 트위터에서 자신의 정치적 견해를 표명한 것에 대해 BBC의 크리켓 특파원 조나단 애그뉴로부터 비판을 받았다. 애그뉴는 "당신은 BBC 스포츠의 얼굴이다. BBC 편집 지침을 준수하고 정치적 견해를 무엇이든, 어떤 주제든 혼자만 간직해달라. 당신의 전례를 따른다면 나는 해고될 것이다"라고 말했다. BBC 대변인은 "게리는 BBC의 어떤 뉴스나 정치적 제작물에도 관여하지 않으며, 따라서 그의 개인적인 정치적 견해 표명은 BBC의 공정성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고 밝혔다.
2022년 10월, 리네커가 보수당에 대한 기부금을 언급한 트윗에 대한 민원이 BBC에 의해 받아들여졌는데, 이는 소셜 미디어 사용 지침을 위반하고 공정성에 대한 편집 기준을 충족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2022년 FIFA 월드컵 기간 동안, 카타르 변호사 하산 알-타와디는 리네커가 다른 개최국에 대해서는 그러한 문제를 언급하지 않았다며 카타르의 인권 침해를 다룬 리네커를 비판했다. 이에 대해 리네커는 《더 뉴스 에이전츠》 팟캐스트에서 다른 개최국에서도 문제를 다뤘다고 반박하며, 2026년 FIFA 월드컵 공동 개최국 중 하나인 미국을 "극도로 인종차별적인 국가"라고 묘사했다. 2023년 1월, 문화·미디어·스포츠부 장관 미셸 도넬란은 그의 미국에 대한 발언을 "매우 비난적이고 의문스러운 발언"이라고 비판했다.
7.2. 2023년 '매치 오브 더 데이' 출연 정지 논란
2023년 3월, 리네커는 트위터를 통해 영국 정부의 망명 정책을 비판했다. 내무부 장관 수에라 브레이버먼의 소형 보트로 영국 해협을 건너는 이민자들을 막는 것에 대한 영상 메시지에 대해 그는 "끔찍함을 넘어선다"고 말했으며, 정부의 정책을 "가장 취약한 사람들을 대상으로 하는 헤아릴 수 없이 잔인한 정책이며, 1930년대 독일에서 사용된 언어와 다르지 않다"고 비판했다. 이 발언은 브레이버먼 자신을 포함한 일부 보수당 정치인들의 비난을 받았고, 노동당 대표 키어 스타머의 대변인도 1930년대 독일과의 비교가 "항상 최선의 방법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리네커는 더브스 남작, 앨러스테어 캠벨, 앤젤라 레이너 등 다른 정치인들로부터 지지를 받았다. BBC 소식통은 공사가 이 문제를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으며 리네커와 "솔직한 대화"를 나눌 것이라고 밝혔다. BBC의 문화 및 미디어 담당 편집자 케이티 라잘은 "점점 양극화되는 시대에 영국에서 가장 면밀히 검토되는 언론 기관으로서, 게리 리네커의 최근 트윗이 BBC에 어려움을 초래한다고 말하는 것은 understatement이다"라고 썼다. 리네커는 자신의 발언을 옹호했으며 BBC에서의 정직을 두려워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3월 10일, BBC는 리네커가 "최근의 소셜 미디어 활동이 우리 지침을 위반했다고 판단"하여 《매치 오브 더 데이》 진행자 자리에서 물러날 것이라고 발표했다. BBC는 "리네커가 소셜 미디어 사용에 대한 합의되고 명확한 입장이 정해질 때까지 《매치 오브 더 데이》를 진행하지 않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리네커의 BBC 스포츠 동료들인 이언 라이트, 앨런 시어러, 스티브 윌슨, 코너 맥나마라, 로빈 코웬, 스티븐 와이어스, 알렉스 스콧, 제이슨 모하메드, 마크 채프먼, 저메인 제나스, 다이온 더블린, 저메인 데포는 모두 그에 대한 연대 의사를 표명하며 몇 시간 안에 각자의 BBC 프로그램 역할에서 물러났다. 그 결과, BBC는 3월 11일과 12일의 스포츠 관련 방송 일정을 단축해야 했고, 《매치 오브 더 데이》는 진행자나 스튜디오 프레젠테이션 없이 경기 영상만 방영되었다. 이는 또한 BBC 월드 서비스의 영어 프로그램인 《스포츠월드》에도 영향을 미쳐 그날 방송되지 않고 다른 프로그램으로 대체되었다. BBC와 리네커는 3월 13일에 공동 성명을 발표했다. 리네커의 출연 정지는 해제되었고, BBC는 뉴스 부문 외 프리랜서에게 소셜 미디어 지침이 어떻게 적용되는지에 대한 독립적인 검토를 시작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BBC의 팀 데이비 이사는 리네커가 해당 지침에 대한 검토가 완료될 때까지 공사의 편집 지침을 준수하기로 합의했다고 밝혔다.
7.3. 계속되는 정치적 논평
논란 이후에도 리네커는 트위터를 통해 정치적 문제에 대해 계속해서 언급하고 있다. 2023년 11월 21일, 그는 "누구에게나 13분은 가치 있다"는 트윗을 올렸다. 이 트윗에는 오언 존스와 라즈 시걸의 인터뷰 링크가 첨부되어 있었는데, 시걸은 인터뷰에서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에서의 이스라엘의 행동이 "대량학살의 교과서적인 사례"라고 주장했다. 리네커의 트윗은 일부에서 시걸의 견해에 대한 지지로 해석되었다.
2023년 12월, 리네커는 망명 신청자들을 르완다로 보내려는 정부의 제안을 비판하는 공개 서한에 서명했다. 국방부 장관 그랜트 샵스, 보수당 부의장 리 앤더슨, 그리고 조나단 걸리스는 그가 공정성을 위반했다며 BBC에 불만을 제기했다.
8. 플레이 스타일 및 평가
게리 리네커는 뛰어난 골 결정력과 독특한 플레이 스타일로 알려져 있다. 그는 위치 선정과 예리한 골 감각 덕분에 잉글랜드 축구 역사상 가장 뛰어난 스트라이커 중 한 명으로 평가받는다.
리네커는 현역 시절 단 한 번도 옐로카드나 레드카드를 받지 않은 것으로 유명하다. 이러한 그의 깔끔한 플레이 덕분에 그는 '그라운드의 신사'라는 별명을 얻었으며, 1990년 FIFA 페어플레이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2004년, 펠레는 그를 세계 축구 역사상 가장 위대한 125명의 생존 선수 명단에 포함시키기도 했다.
9. 수상 및 영예
게리 리네커는 선수 경력 동안과 은퇴 후 다양한 클럽, 국제 대회, 개인적인 수상과 영예를 얻었다.
9.1. 클럽 수상
- 레스터 시티
- 풋볼 리그 2부: 1979-80
- 에버턴
- 채리티 실드: 1985
- 바르셀로나
- 코파 델 레이: 1987-88
- UEFA 컵위너스컵: 1988-89
- 토트넘 홋스퍼
- FA컵: 1990-91
- 채리티 실드: 1991 (공동 우승)
9.2. 국제 대회 수상
- 잉글랜드 국가대표팀
- FIFA 월드컵 4위: 1990
9.3. 개인 수상
- 발롱도르 2위: 1986
- FIFA 올해의 선수 3위: 1991
- 풋볼 리그 2부 득점왕: 1982-83
- 풋볼 리그 1부 득점왕: 1984-85, 1985-86, 1989-90
- PFA 올해의 선수: 1985-86
- PFA 올해의 팀: 1989-90 1부 리그, 1991-92 1부 리그
- FWA 올해의 선수: 1985-86, 1991-92
- FIFA 월드컵 골든 부트: 1986
- FIFA 월드컵 올스타팀: 1986
- 옹즈 드 브롱즈: 1986
- 옹즈 몽디알: 1986, 1987
- 월드 XI: 1986, 1987
- FIFA 페어플레이상: 1990
- FWA 공로상: 1997
- 잉글랜드 축구 명예의 전당: 2003
- FIFA 100 선정
- PFA 세기의 팀 (1977-1996): 2007
리네커는 또한 1992년 러프버러 대학교에서 명예 예술학 석사 학위를 받았으며, 2020년에는 옥스퍼드 대학교 레이디 마가렛 홀의 방문 연구원으로 임명되었다.
10. 경력 통계
게리 리네커의 클럽 및 국가대표팀 경기에 대한 상세 통계는 다음과 같다.
10.1. 클럽 통계
클럽 | 시즌 | 리그 | 국내 컵 | 리그 컵 | 대륙 대회 | 기타 | 합계 | |||||||
---|---|---|---|---|---|---|---|---|---|---|---|---|---|---|
디비전 | 출전 | 득점 | 출전 | 득점 | 출전 | 득점 | 출전 | 득점 | 출전 | 득점 | 출전 | 득점 | ||
레스터 시티 | 1978-79 | 풋볼 리그 2부 | 7 | 1 | - | - | - | - | 7 | 1 | ||||
1979-80 | 2부 리그 | 19 | 3 | 1 | 0 | - | - | - | 20 | 3 | ||||
1980-81 | 풋볼 리그 1부 | 9 | 2 | 1 | 1 | - | - | - | 10 | 3 | ||||
1981-82 | 2부 리그 | 39 | 17 | 5 | 2 | 3 | 0 | - | - | 47 | 19 | |||
1982-83 | 2부 리그 | 40 | 26 | 1 | 0 | 2 | 0 | - | - | 43 | 26 | |||
1983-84 | 1부 리그 | 39 | 22 | 1 | 0 | 1 | 0 | - | - | 41 | 22 | |||
1984-85 | 1부 리그 | 41 | 24 | 4 | 3 | 3 | 2 | - | - | 48 | 29 | |||
총합 | 194 | 95 | 13 | 6 | 9 | 2 | - | - | 216 | 103 | ||||
에버턴 | 1985-86 | 1부 리그 | 41 | 30 | 6 | 5 | 5 | 3 | - | 5 | 2 | 57 | 40 | |
바르셀로나 | 1986-87 | 라리가 | 41 | 20 | 1 | 1 | - | 8 | 0 | - | 50 | 21 | ||
1987-88 | 라리가 | 36 | 16 | 5 | 2 | - | 8 | 2 | - | 49 | 20 | |||
1988-89 | 라리가 | 26 | 6 | 4 | 1 | - | 8 | 4 | 1 | 0 | 38 | 11 | ||
총합 | 103 | 42 | 10 | 4 | - | 24 | 6 | 1 | 0 | 138 | 52 | |||
토트넘 홋스퍼 | 1989-90 | 1부 리그 | 38 | 24 | 1 | 0 | 6 | 2 | - | - | 45 | 26 | ||
1990-91 | 1부 리그 | 32 | 15 | 6 | 3 | 5 | 1 | - | - | 43 | 19 | |||
1991-92 | 1부 리그 | 35 | 28 | 2 | 0 | 4 | 5 | 8 | 2 | 1 | 0 | 50 | 35 | |
총합 | 105 | 67 | 9 | 3 | 15 | 8 | 8 | 2 | 1 | 0 | 138 | 80 | ||
나고야 그램퍼스 에이트 | 1993 | J1리그 | 7 | 1 | 0 | 0 | 5 | 4 | - | - | 12 | 5 | ||
1994 | J1리그 | 11 | 3 | 0 | 0 | 1 | 0 | - | - | 12 | 3 | |||
총합 | 18 | 4 | 0 | 0 | 6 | 4 | - | - | 24 | 8 | ||||
총 통계 | 461 | 238 | 38 | 18 | 35 | 17 | 32 | 8 | 7 | 2 | 573 | 283 |
10.2. 국가대표팀 통계
국가대표팀 | 연도 | 출전 | 득점 |
---|---|---|---|
잉글랜드 | 1984 | 1 | 0 |
1985 | 9 | 6 | |
1986 | 10 | 8 | |
1987 | 7 | 9 | |
1988 | 10 | 3 | |
1989 | 9 | 3 | |
1990 | 15 | 8 | |
1991 | 11 | 9 | |
1992 | 8 | 2 | |
총합 | 80 | 48 |
리네커는 1984년 스코틀랜드와의 경기에서 잉글랜드 국가대표팀 데뷔전을 치렀다. 그는 1992년 UEFA 유로 1992 조별 리그 스웨덴과의 2대1 패배 경기에서 잉글랜드 대표팀 마지막 경기를 치렀다. 그는 대회 전 브라질과의 친선 경기에서 보비 찰턴이 당시 보유하고 있던 잉글랜드 역대 최다 득점 기록과 동률을 이룰 수 있었던 페널티킥을 실축하며 찰턴의 기록에 한 골 차로 미치지 못했다. 찰턴의 기록은 2015년 웨인 루니에 의해 경신되었다.
10.2.1. 국가대표팀 득점 목록
잉글랜드의 득점이 먼저 표시되며, 점수 칸은 리네커의 각 득점 후의 점수를 나타낸다.
No. | 날짜 | 장소 | 캡 | 상대팀 | 점수 | 결과 | 대회 |
---|---|---|---|---|---|---|---|
1 | 1985년 3월 26일 | 웸블리 스타디움, 런던, 잉글랜드 | 2 | 아일랜드 | 2-1 | 2-1 | 친선 경기 |
2 | 1985년 6월 16일 | 로스앤젤레스 메모리얼 콜리세움, 로스앤젤레스, 미국 | 7 | 미국 | 1-0 | 5-0 | 친선 경기 |
3 | 3-0 | ||||||
4 | 1985년 10월 16일 | 웸블리 스타디움, 런던, 잉글랜드 | 9 | 튀르키예 | 2-0 | 5-0 | 1986년 FIFA 월드컵 예선 |
5 | 4-0 | ||||||
6 | 5-0 | ||||||
7 | 1986년 6월 11일 | 에스타디오 테크놀로지코, 몬테레이, 멕시코 | 16 | 폴란드 | 1-0 | 3-0 | 1986년 FIFA 월드컵 |
8 | 2-0 | ||||||
9 | 3-0 | ||||||
10 | 1986년 6월 18일 | 에스타디오 아스테카, 멕시코시티, 멕시코 | 17 | 파라과이 | 1-0 | 3-0 | 1986년 FIFA 월드컵 |
11 | 3-0 | ||||||
12 | 1986년 6월 22일 | 에스타디오 아스테카, 멕시코시티, 멕시코 | 18 | 아르헨티나 | 1-2 | 1-2 | 1986년 FIFA 월드컵 |
13 | 1986년 10월 15일 | 웸블리 스타디움, 런던, 잉글랜드 | 19 | 북아일랜드 | 1-0 | 3-0 | UEFA 유로 1988 예선 |
14 | 3-0 | ||||||
15 | 1987년 2월 18일 | 산티아고 베르나베우 스타디움, 마드리드, 스페인 | 21 | 스페인 | 1-1 | 4-2 | 친선 경기 |
16 | 2-1 | ||||||
17 | 3-1 | ||||||
18 | 4-1 | ||||||
19 | 1987년 5월 19일 | 웸블리 스타디움, 런던, 잉글랜드 | 24 | 브라질 | 1-1 | 1-1 | 1987년 루스컵 |
20 | 1987년 9월 9일 | 라인슈타디온, 뒤셀도르프, 독일 | 25 | 서독 | 1-2 | 1-3 | 친선 경기 |
21 | 1987년 10월 14일 | 웸블리 스타디움, 런던, 잉글랜드 | 26 | 튀르키예 | 2-0 | 8-0 | UEFA 유로 1988 예선 |
22 | 4-0 | ||||||
23 | 7-0 | ||||||
24 | 1988년 3월 23일 | 웸블리 스타디움, 런던, 잉글랜드 | 28 | 네덜란드 | 1-0 | 2-2 | 친선 경기 |
25 | 1988년 5월 24일 | 웸블리 스타디움, 런던, 잉글랜드 | 31 | 콜롬비아 | 1-0 | 1-1 | 1988년 루스컵 |
26 | 1988년 9월 7일 | 스타드 올랭피크 드 라 퐁테즈, 로잔, 스위스 | 32 | 스위스 | 1-0 | 1-0 | 친선 경기 |
27 | 1989년 4월 26일 | 웸블리 스타디움, 런던, 잉글랜드 | 40 | 알바니아 | 2-0 | 5-0 | 1990년 FIFA 월드컵 예선 |
28 | 1989년 6월 3일 | 웸블리 스타디움, 런던, 잉글랜드 | 41 | 폴란드 | 1-0 | 3-0 | 1990년 FIFA 월드컵 예선 |
29 | 1989년 7월 7일 | 쾨벤하운스 이드레츠파르크, 코펜하겐, 덴마크 | 42 | 덴마크 | 1-0 | 1-1 | 친선 경기 |
30 | 1990년 3월 28일 | 웸블리 스타디움, 런던, 잉글랜드 | 47 | 브라질 | 1-0 | 1-0 | 친선 경기 |
31 | 1990년 5월 15일 | 49 | 덴마크 | 1-0 | 1-0 | 친선 경기 | |
32 | 1990년 6월 11일 | 스타디오 산텔리아, 칼리아리, 이탈리아 | 52 | 아일랜드 | 1-0 | 1-1 | 1990년 FIFA 월드컵 |
33 | 1990년 7월 1일 | 스타디오 산 파올로, 나폴리, 이탈리아 | 56 | 카메룬 | 2-2 | 3-2 (연장) | 1990년 FIFA 월드컵 |
34 | 3-2 | ||||||
35 | 1990년 7월 4일 | 스타디오 델레 알피, 토리노, 이탈리아 | 57 | 서독 | 1-1 | 1-1 (승부차기 3-4) | 1990년 FIFA 월드컵 |
36 | 1990년 9월 22일 | 웸블리 스타디움, 런던, 잉글랜드 | 59 | 헝가리 | 1-0 | 1-0 | 친선 경기 |
37 | 1990년 10월 17일 | 웸블리 스타디움, 런던, 잉글랜드 | 60 | 폴란드 | 1-0 | 2-0 | UEFA 유로 1992 예선 |
38 | 1991년 2월 6일 | 웸블리 스타디움, 런던, 잉글랜드 | 62 | 카메룬 | 1-0 | 2-0 | 친선 경기 |
39 | 2-0 | ||||||
40 | 1991년 5월 25일 | 웸블리 스타디움, 런던, 잉글랜드 | 65 | 아르헨티나 | 1-0 | 2-2 | 1991년 잉글랜드 챌린지컵 |
41 | 1991년 6월 3일 | 마운트 스마트 스타디움, 오클랜드, 뉴질랜드 | 67 | 뉴질랜드 | 1-0 | 1-0 | 친선 경기 |
42 | 1991년 6월 12일 | 스타디움 메르데카, 쿠알라룸푸르, 말레이시아 | 68 | 말레이시아 | 1-0 | 4-2 | 친선 경기 |
43 | 2-0 | ||||||
44 | 3-0 | ||||||
45 | 4-1 | ||||||
46 | 1991년 11월 13일 | 포즈난 시립경기장, 포즈난, 폴란드 | 71 | 폴란드 | 1-1 | 1-1 | UEFA 유로 1992 예선 |
47 | 1992년 2월 19일 | 웸블리 스타디움, 런던, 잉글랜드 | 72 | 프랑스 | 2-0 | 2-0 | 친선 경기 |
48 | 1992년 4월 29일 | 루즈니키 스타디움, 모스크바, CIS | 74 | CIS | 1-0 | 2-2 | 친선 경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