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중앙아프리카 공화국은 아프리카 대륙 중앙부에 위치한 내륙국으로, 광활한 영토와 다양한 천연자원을 보유하고 있으나 오랜 기간 정치적 불안정과 내전으로 인해 경제 발전이 저해되고 국민 다수가 심각한 빈곤과 인도주의적 위기에 직면해 있다. 국토의 대부분은 고원 지대로 이루어져 있으며, 남부에는 열대 우림이, 중북부에는 사바나 기후가 나타난다. 선사 시대부터 인류가 거주했으며, 19세기 말부터 프랑스의 식민 지배를 받다가 1960년 독립했다. 독립 이후 다비드 다코, 장베델 보카사 황제, 앙드레 콜링바, 앙주펠릭스 파타세, 프랑수아 보지제, 미셸 조토디아, 그리고 현재의 포스탱아르샹주 투아데라 대통령에 이르기까지 잦은 쿠데타와 정권 교체, 그리고 지속적인 내전으로 점철된 현대사를 겪었다. 이러한 정치적 혼란은 국가 경제의 피폐를 가져왔으며, 특히 다이아몬드, 금, 목재 등 주요 자원의 불법 채굴과 밀거래가 만연하여 국가 재정 확보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사회적으로는 다민족 국가로서 다양한 부족 문화가 공존하지만, 최근에는 종교적 갈등이 심화되어 심각한 인권 침해와 대규모 난민 발생의 원인이 되고 있다. 국제 사회는 평화 유지 활동과 인도적 지원을 통해 중앙아프리카 공화국의 안정과 발전을 돕기 위해 노력하고 있으나, 국가 재건과 지속 가능한 발전은 여전히 큰 과제로 남아 있다.
2. 국명
중앙아프리카 공화국의 공식 국명은 프랑스어로 République centrafricaine레퓌블리크 상트라프리켄프랑스어, 상고어로는 Ködörösêse tî Bêafrîka코도로세세 티 베아프리카상고어이다. 일상적으로는 프랑스어로 Centrafrique상트라프리크프랑스어, 상고어로는 Bêafrîka베아프리카상고어로 불린다. 영어로는 Central African Republic센트럴 아프리칸 리퍼블릭영어이며, 약자로는 CAR로 표기한다.
국명은 아프리카 대륙의 중앙부에 위치한 지리적 특성과 공화국이라는 정치 체제를 반영하여 지어졌다. 이 명칭은 독립 운동가이자 초대 총리였던 바르텔레미 보간다가 선호했던 이름으로, 그는 당시 우방기샤리라는 식민지명 대신 이 명칭을 채택하며 중앙아프리카 지역 국가들의 더 큰 연합을 구상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프랑스 식민지 시절에는 이 지역을 흐르는 주요 강인 우방기강과 샤리강의 이름을 따서 우방기샤리(Oubangui-Chari우방기샤리프랑스어)라고 불렸다. 1976년부터 1979년까지 장베델 보카사 황제의 통치 하에서는 국명이 중앙아프리카 제국으로 변경되기도 하였다.
3. 역사
중앙아프리카 공화국의 역사는 선사 시대의 초기 정착부터 시작하여 다양한 부족 사회의 형성과 외부 세력의 침투, 프랑스 식민 통치, 그리고 독립 이후 계속되는 정치적 격변과 내전으로 점철되어 있다. 각 시대별 주요 사건과 발전 과정은 다음과 같다.
3.1. 초기 역사와 부족 사회

중앙아프리카 공화국 지역에는 약 10,000년 전 사막화로 인해 수렵채집인들이 남쪽으로 이동하여 북부 중앙아프리카의 사헬 지역으로 밀려왔으며, 이들 중 일부가 정착했다. 신석기 혁명의 일환으로 농경이 시작되었으며, 처음에는 흰색 참마 재배가 이루어졌고 이후 기장과 수수로 발전했다. 기원전 3000년 이전에 기름야자의 재배는 이들 집단의 영양 상태를 개선하고 지역 인구 팽창을 가능하게 했다. 이러한 농업 혁명은 어업이 시작되고 배가 사용되기 시작한 "어패류 스튜 혁명"과 결합하여 물품 수송을 가능하게 했다. 생산품은 종종 토기에 담겨 옮겨졌다.
국토 서부 지역의 부아르 거석군은 신석기 시대 후기(기원전 약 3500년-2700년)로 거슬러 올라가는 선진적인 거주 수준을 나타낸다. 철기 제작은 기원전 1000년경 이 지역에서 발전했다.
오늘날 중앙아프리카 공화국 중부 및 동부 지역에는 우방기족이 우방기강을 따라 정착했으며, 일부 반투족은 카메룬 남서부에서 이주해 왔다. 바나나는 기원전 첫 천년기 동안 이 지역에 도입되어 식단에 중요한 탄수화물 공급원을 추가했으며, 알코올 음료 생산에도 사용되었다. 구리, 소금, 건어물, 직물 생산이 중앙아프리카 지역의 경제 교역을 주도했다.
3.2. 16세기 ~ 19세기: 외부 세력의 침투와 노예 무역

16세기와 17세기에 노예 무역상들은 사하라 및 나일강 노예 교역로 확장 과정의 일환으로 이 지역을 습격하기 시작했다. 포로들은 노예가 되어 지중해 연안, 유럽, 아라비아, 서반구 또는 서아프리카와 북아프리카 해안, 혹은 남쪽으로 우방기강과 콩고강을 따라 있는 노예 항구 및 집결지로 보내졌다. 18세기에는 반디아-은자카라 아잔데족이 우방기강을 따라 방가수 왕국을 세웠다. 19세기 중반, 보방기족은 주요 노예 무역상이 되어 우방기강을 이용해 포로들을 해안으로 보내 아메리카 대륙에 팔았다.
17세기 이후 차드호 주변 지역에 자리 잡은 카넴-보르누 제국이나 바기르미 왕국, 그리고 그 동쪽에 있는 와다이 왕국과 다르푸르 술탄국 같은 나라들은 아랍인 노예 무역에서 사하라 이남 지역의 주요 노예 공급지였던 우방기강 유역으로 반복적으로 침공했다. 한편, 19세기에는 이들 국가의 인접 지역에서 전투와 노예 사냥을 피해 우방기강 유역으로 인구가 유입되었는데, 북쪽에서는 반다족이, 서쪽에서는 풀라니 전쟁을 피해 바야족이 이주해 왔다. 또한 남동부에는 아잔데족이 이주했다.
1875년, 수단 술탄 라비흐 아즈주바이르가 현재의 중앙아프리카 공화국을 포함한 우방기 상류 지역을 통치했다.
3.3. 프랑스 식민 시대 (우방기샤리)

중앙아프리카 영토에 대한 유럽의 침략은 19세기 후반 아프리카 분할 과정에서 시작되었다. 주로 프랑스인, 독일인, 벨기에인 등 유럽인들이 1885년에 이 지역에 도착했다. 프랑스는 1894년에 우방기샤리 영토를 점령하고 식민지화했다. 1887년 프랑스는 벨기에 국왕 레오폴 2세와 협정을 맺고 우방기강 우안을 자국 영토로 인정받았다. 1889년에는 전초기지(현재의 방기)를 건설했다. 1911년 페즈 조약에서 프랑스는 상가강과 로바예강 유역의 약 30.00 만 km2에 달하는 지역을 독일 제국에 할양했고, 독일은 그 대가로 현재의 차드에 해당하는 더 작은 지역을 프랑스에 할양했다. 제1차 세계 대전 후 프랑스는 이 영토를 다시 병합했다. 콩고 자유국의 레오폴 2세 모델을 따라, 민간 회사들에게 이 지역의 자산을 가능한 한 빠르고 저렴하게 착취한 후 이익의 일부를 프랑스 재무부에 납부하도록 하는 특허권이 주어졌다. 이 특허 회사들은 현지인들에게 무보수로 고무, 커피 및 기타 상품을 수확하도록 강요했고, 할당량을 채울 때까지 그들의 가족을 인질로 잡았다.
1910년 우방기샤리는 프랑스령 콩고, 프랑스령 가봉과 함께 프랑스령 적도 아프리카를 구성하게 되었고, 브라자빌에서 관리되었다. 1920년대와 1930년대에 프랑스는 의무적인 면화 재배 정책을 도입했고, 도로망이 건설되었으며, 아프리카 수면병 퇴치 시도와 개신교 선교단 파견을 통해 기독교를 전파하려 했다. 새로운 형태의 강제 노동도 도입되어 많은 우방기인들이 콩고-대양 철도 건설에 동원되었다. 1934년 건설 완료 시까지 계속된 기간 동안, 철도 건설 노동자들 사이에서 산업 재해와 말라리아를 포함한 질병으로 인해 총 17,000명 이상이 사망한 것으로 추정된다. 1928년, 서부 우방기샤리에서 대규모 봉기인 콩고-와라 반란(괭이자루 전쟁)이 발발하여 수년간 지속되었다. 이 봉기는 양차 대전 사이 아프리카에서 가장 큰 반식민 반란 중 하나였을 가능성이 있지만, 프랑스 식민 통치와 강제 노동에 대한 강력한 반대를 보여주는 증거였기 때문에 프랑스 대중에게 그 규모가 신중하게 은폐되었다. 우방기샤리에 대한 프랑스의 식민 통치는 프랑스 식민 제국 중 가장 잔혹했던 것으로 평가된다.
1940년 9월, 제2차 세계 대전 중 샤를 드골을 지지하는 프랑스 장교들이 우방기샤리를 장악했고, 르클레르 장군은 방기에 자유 프랑스군 본부를 설치했다. 1946년 바르텔레미 보간다는 9,000표를 얻어 프랑스 국회 의원으로 선출되어 중앙아프리카 공화국 최초의 프랑스 정부 대표가 되었다. 보간다는 인종차별과 식민체제에 반대하는 정치적 입장을 유지했지만, 점차 프랑스 정치 시스템에 환멸을 느끼고 중앙아프리카 공화국으로 돌아와 1950년 흑아프리카 사회진화운동(MESAN)을 설립했다.
3.4. 독립 이후
1957년 우방기샤리 영토 의회 선거에서 흑아프리카 사회진화운동(MESAN)은 총 356,000표 중 347,000표를 획득하여 모든 의석을 차지했고, 이는 보간다가 프랑스령 적도 아프리카 대평의회 의장 및 우방기샤리 정부위원회 부의장으로 선출되는 결과로 이어졌다. 1년 안에 그는 중앙아프리카 공화국 설립을 선언하고 초대 총리로 재임했다. MESAN은 계속 존재했지만 그 역할은 제한적이었다. 중앙아프리카 공화국은 1958년 12월 1일 프랑스 공동체 내에서 자치권을 부여받았으며, 이는 여전히 아프리카의 프랑스 제국 일부로 간주됨을 의미했다.
1959년 3월 29일 비행기 사고로 보간다가 사망한 후, 그의 사촌인 다비드 다코가 MESAN을 장악했다. 1960년 8월 13일 자정, 중앙아프리카 공화국이 프랑스로부터 공식적으로 독립하면서 다코는 초대 대통령이 되었으며, 이 날은 국가의 독립기념일로 기념된다. 다코는 전 총리이자 중앙아프리카 민주진화운동(MEDAC)의 지도자인 아벨 굼바를 포함한 정치적 경쟁자들을 축출하고 프랑스로 망명시켰다. 1962년 11월까지 모든 야당이 탄압되면서 다코는 MESAN을 국가의 공식 정당으로 선언했다.
3.4.1. 다코 제1공화국과 보카사 제국 (1960년~1979년)

1965년 12월 31일, 다코는 생실베스트르 쿠데타로 장베델 보카사 대령에게 축출되었다. 보카사는 헌법을 정지시키고 국회를 해산했다. 보카사 대통령은 1972년 자신을 종신 대통령으로 선언했고, 1976년 12월 4일에는 국명을 중앙아프리카 제국으로 변경하고 자신을 황제 보카사 1세로 칭했다. 1년 후, 보카사 황제는 호화로운 대관식을 거행하며 스스로 왕위에 올랐다. 이 대관식에는 약 2천만 달러(당시 국가 예산의 4분의 1)가 소요되어 많은 비판을 받았다.
1979년 1월, 보카사가 자신의 부인 중 한 명이 소유한 회사에서 모든 학생이 교복을 구매해야 한다는 칙령에 항의하는 어린 학생들이 시위를 벌였다. 정부는 이 시위를 폭력적으로 진압하여 100명의 어린이와 청소년을 살해했다. 보카사 자신이 일부 살해에 개인적으로 관여했을 가능성도 있다. 같은 해 4월에는 학생들의 반대 시위에 군이 발포하여 다수의 사상자를 내는 등 보카사의 폭정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커져만 갔다.
1979년 9월, 카반 작전을 통해 프랑스가 보카사를 축출하고 다코를 다시 권좌에 앉혔으며, 국명도 중앙아프리카 공화국으로, 정부도 원래대로 복원했다.
3.4.2. 다코 제2공화국과 콜링바 군사정권 (1979년~1993년)
복귀한 다코는 신헌법 제정과 복수정당제 도입 등을 추진했고, 1981년 3월 선거에서 앙주펠릭스 파타세 등에게 신승하여 대통령에 취임했다. 그러나 야당 후보 지지파들의 반정부 시위가 빈발하여 곧 비상사태가 선포되었고, 다코 정권은 다시 독재를 강화해 나갔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1981년 9월 1일, 앙드레 콜링바 국군참모총장이 쿠데타를 일으켜 다코를 다시 축출했다.
콜링바는 헌법을 정지시키고 1985년까지 군사정권으로 통치했다. 그는 1986년 새 헌법을 도입하여 전국민 투표로 채택했다. 그의 신당인 중앙아프리카 민주연합(RDC) 가입은 자율적이었다. 1987년과 1988년에는 준자유 의회 선거가 열렸지만, 콜링바의 주요 정치적 반대자인 아벨 굼바와 앙주펠릭스 파타세는 참여할 수 없었다.
1990년경, 베를린 장벽 붕괴에 영감을 받은 민주화 운동이 일어났다. 미국, 프랑스 및 GIBAFOR(프랑스, 미국, 독일, 일본, EU, 세계은행, 유엔)라고 불리는 현지 대표 국가 및 기관 그룹의 압력으로 콜링바는 마침내 1992년 10월 유엔 선거 사무국의 도움을 받아 자유 선거를 실시하는 데 원칙적으로 동의했다. 선거 결과의 불규칙성을 구실로 삼아 권력을 유지하려던 콜링바 대통령은 GIBAFOR로부터 "공화국 임시 국가정치위원회"(CNPPR)를 설립하고 모든 정당 대표를 포함하는 "혼합선거위원회"를 구성하라는 강력한 압력을 받았다.
3.4.3. 파타세 민주정부와 정정 불안 (1993년~2003년)
1993년, GIBAFOR가 조정한 국제사회의 도움으로 두 번째 선거가 마침내 열렸을 때, 앙주펠릭스 파타세가 2차 투표에서 53%의 득표율로 승리했고, 아벨 굼바는 45.6%를 얻었다. 파타세의 정당인 중앙아프리카 인민해방운동(MLPC)은 의회에서 상대다수 의석은 확보했지만 절대다수는 확보하지 못해 연립 파트너가 필요했다.
파타세는 정부에서 많은 콜링바 세력을 숙청했고, 콜링바 지지자들은 파타세 정부가 야코마족에 대한 "마녀사냥"을 벌이고 있다고 비난했다. 1994년 12월 28일 새 헌법이 승인되었지만, 국가 정치에 거의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 1996년-1997년, 정부의 변덕스러운 행동에 대한 대중의 신뢰가 꾸준히 감소함을 반영하여 파타세 행정부에 대한 세 차례의 반란이 광범위한 재산 파괴와 민족 갈등 고조와 함께 발생했다. 이 시기(1996년)에 평화봉사단은 모든 자원봉사자를 이웃 카메룬으로 철수시켰다. 현재까지 평화봉사단은 중앙아프리카 공화국으로 복귀하지 않았다. 1997년 1월에 체결된 방기 협정은 중앙아프리카 공화국에 아프리카 국가 간 군사 임무단 파견과 1997년 4월 7일 전 반란군의 정부 복귀를 규정했다. 아프리카 국가 간 군사 임무단은 나중에 유엔 평화유지군(MINURCA)으로 대체되었다. 1997년 이래로 이 나라는 거의 12차례의 평화유지 개입을 받아 "평화유지 세계 챔피언"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1998년 의회 선거에서 콜링바의 RDC는 109석 중 20석을 얻었다. 그러나 다음 해, 부패한 통치에 대한 도시 중심부의 광범위한 대중적 분노에도 불구하고 파타세는 대통령 선거에서 재선에 성공했다.
2001년 5월 28일, 반란군이 쿠데타 시도로 방기의 전략적 건물을 습격했지만 실패했다. 육군 참모총장 아벨 아브루와 프랑수아 은자데르 베다야 장군이 사망했지만, 파타세는 콩고 민주 공화국 반군 지도자 장피에르 벰바의 군대 최소 300명과 리비아 군인들을 동원하여 우위를 되찾았다.
쿠데타 시도 실패 이후 파타세에 충성하는 민병대들은 방기의 여러 지역에서 반란군에 대한 복수를 감행했고, 많은 정치적 반대자 살해를 포함한 불안을 야기했다. 결국 파타세는 프랑수아 보지제 장군이 자신에 대한 또 다른 쿠데타 시도에 연루되었다고 의심하게 되었고, 이로 인해 보지제는 충성스러운 군대와 함께 차드로 도주했다. 2003년 3월, 보지제는 해외에 있던 파타세에 대한 기습 공격을 감행했다. 리비아 군대와 벰바의 콩고 반군 조직 약 1,000명은 반란군을 막지 못했고, 보지제의 군대는 파타세를 축출하는 데 성공했다.
3.4.4. 보지제 정권과 부시 전쟁 (2003년~2013년)

프랑수아 보지제는 헌법을 정지시키고 대부분의 야당을 포함하는 새 내각을 구성했다. 아벨 굼바가 부통령으로 임명되었다. 보지제는 새 헌법 초안 작성을 위해 광범위한 기반의 국가과도위원회를 설립하고, 새 헌법이 승인되면 사임하고 출마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2004년, 보지제에 반대하는 세력들이 그의 정부에 대항하여 무장 봉기하면서 중앙아프리카 공화국 부시 전쟁이 시작되었다. 2005년 5월, 보지제는 파타세를 제외한 대통령 선거에서 승리했고, 2006년에는 정부와 반군 간의 전투가 계속되었다. 2006년 11월, 보지제 정부는 북부 지역의 마을들을 장악한 반군을 격퇴하기 위해 프랑스에 군사 지원을 요청했다. 초기 공개된 합의 내용은 물류 및 정보 지원에 관한 것이었지만, 12월에는 프랑스의 지원에 다소 미라주 2000 전투기를 이용한 반군 진지에 대한 공습이 포함되었다.
2007년 2월 시르테 협정과 4월 비라오 평화 협정은 적대 행위 중단, 중앙아프리카 인민민주전선(FDPC) 전투원의 숙영 및 중앙아프리카 공화국군(FACA)과의 통합, 정치범 석방, FDPC의 정부 참여, 통일을 위한 민주세력연합(UFDR)에 대한 사면, 정당 인정 및 전투원의 국군 통합을 요구했다. 여러 단체가 계속 싸웠지만 다른 단체들은 정부와 합의 또는 유사한 합의에 서명했다(예: UFR, 2008년 12월 15일). 당시 합의에 서명하지 않은 유일한 주요 단체는 정의와 평화를 위한 애국자 협약(CPJP)이었으며, 이들은 활동을 계속하다가 2012년 8월 25일 정부와 평화 협정을 체결했다.
2011년, 보지제는 광범위하게 부정선거로 간주되는 선거에서 재선되었다.
3.4.5. 셀레카 반란과 과도 정부 (2013년~2016년)

2012년 11월, 반군 연합인 셀레카가 국가 북부 및 중부 지역의 마을들을 점령했다. 이들 단체는 결국 2013년 1월 보지제 정부와 권력 분점을 포함하는 평화 협정을 맺었다. 이 협정은 나중에 파기되었고, 반군은 2013년 3월 수도를 점령했으며 보지제는 국외로 도피했다.
미셸 조토디아가 대통령직을 인수했다. 니콜라 티앙가예 총리는 유엔 안전 보장 이사회에 유엔 평화유지군 파병을 요청했고, 5월 31일 전 대통령 보지제는 반인도적 범죄 및 집단학살 선동 혐의로 기소되었다. 연말까지 "집단학살"에 대한 국제적 경고가 있었고, 전투는 주로 셀레카의 이슬람교도 전투원들과 "안티발라카"로 불리는 기독교 민병대 간의 민간인에 대한 보복 공격 양상으로 전개되었다. 2013년 8월까지 20만 명 이상의 국내실향민(IDP)이 발생했다는 보고가 있었다.
프랑스 대통령 프랑수아 올랑드는 유엔 안전 보장 이사회와 아프리카 연합에 국가 안정화를 위한 노력을 강화할 것을 촉구했다. 2014년 2월 18일,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은 유엔 안전 보장 이사회에 이미 주둔 중인 아프리카 연합군 6,000명과 프랑스군 2,000명에 더해 3,000명의 병력을 즉시 파병하여 대량 학살되는 민간인을 보호할 것을 촉구했다. 셀레카 정부는 분열된 것으로 알려졌고, 2013년 9월 조토디아는 공식적으로 셀레카를 해산했지만 많은 반군이 무장 해제를 거부하고 전(前)셀레카로 알려지면서 정부 통제에서 더욱 벗어났다. 초기 무장 해제 노력이 셀레카에만 집중되면서 의도치 않게 안티발라카에게 우위를 점하게 하여 방기 및 중앙아프리카 공화국 서부에서 안티발라카에 의한 무슬림 민간인의 강제 이주를 초래했다는 주장이 제기된다.
2014년 1월 11일, 미셸 조토디아와 니콜라 티앙가예는 이웃 국가 차드에서 열린 지역 정상회담에서 협상된 합의의 일환으로 사임했다. 카트린 삼바판자는 국가과도위원회에서 임시 대통령으로 선출되어 중앙아프리카 공화국 최초의 여성 대통령이 되었다. 2014년 7월 23일, 콩고의 중재 노력에 따라 셀레카와 안티발라카 대표는 브라자빌에서 휴전 협정에 서명했다. 2014년 말까지 국가는 사실상 남서부의 안티발라카와 북동부의 전(前)셀레카로 분할되었다. 2015년 3월, 서맨사 파워 유엔 주재 미국 대사는 국내 436개 모스크 중 417개가 파괴되었고, 무슬림 여성들은 공공장소에 나가는 것을 너무 두려워하여 병원 대신 집에서 출산하고 있다고 말했다. 2015년 12월 14일, 셀레카 반군 지도자들은 독립적인 로곤 공화국을 선포했다.
3.4.6. 투아데라 정권과 지속되는 내전 (2016년~현재)
2015-16년 중앙아프리카 공화국 총선이 2015년 12월에 치러졌다. 어떤 후보도 50% 이상의 득표율을 얻지 못하여 2016년 2월 14일에 2차 선거가 열렸고, 2016년 3월 31일에 결선 투표가 진행되었다. 2차 투표에서 전 총리 포스탱아르샹주 투아데라가 63%의 득표율로 승리하여, 또 다른 전 총리이자 중앙아프리카 부흥연합 후보인 아니세조르주 돌로겔레를 물리쳤다. 많은 유권자가 다른 나라로 피난하여 투표에 참여하지 못하는 등 선거에 어려움이 있었지만, 광범위한 폭력 사태에 대한 우려는 결국 현실화되지 않았고, 아프리카 연합은 이 선거를 성공적으로 평가했다.
투아데라는 2016년 3월 30일에 취임했다. 이후 구성된 정부에는 셀레카 반군 단체나 "안티발라카" 민병대 대표가 포함되지 않았다.
투아데라의 첫 임기가 끝난 후, 2020-21년 중앙아프리카 공화국 총선이 2020년 12월 27일에 치러졌고, 2021년 2월 14일에 가능한 2차 투표가 예정되어 있었다. 전 대통령 프랑수아 보지제는 2020년 7월 25일에 후보 출마를 선언했지만, 국가 헌법재판소는 보지제가 후보자에 대한 "선량한 도덕성" 요건을 충족하지 못한다며 거부했다. 이는 그에 대한 국제 영장과 암살, 고문 및 기타 범죄 혐의로 인한 유엔 제재 때문이었다.
당시 국가의 많은 지역이 무장 단체에 의해 통제되고 있었기 때문에, 많은 지역에서 선거를 치를 수 없었다. 전국 투표소 약 800곳, 즉 전체의 14%가 폭력 사태로 인해 폐쇄되었다. 선거를 앞두고 부룬디 평화유지군 3명이 사망하고 추가로 2명이 부상당했다. 포스탱아르샹주 투아데라 대통령은 2020년 12월 1차 투표에서 재선되었다.
바그너 그룹 소속 러시아 용병들은 반군과의 전투에서 포스탱아르샹주 투아데라 대통령을 지원해왔다. 러시아의 바그너 그룹은 민간인을 괴롭히고 위협했다는 비난을 받고 있다. 2022년 12월, 로저 코언은 뉴욕 타임스에 "바그너 충격 부대는 투아데라 씨의 친위대를 형성하며, 그는 르완다 군대의 보호도 받고 있으며, 그 대가로 중앙아프리카 공화국의 자원을 세금 없이 착취하고 수출할 수 있는 허가를 받았다"고 썼고, "한 서방 대사는 중앙아프리카 공화국을... 크렘린의 '속국'이라고 불렀다"고 전했다.
4. 지리


중앙아프리카 공화국은 아프리카 대륙 내륙에 위치한 내륙국이다. 카메룬, 차드, 수단, 남수단, 콩고 민주 공화국, 콩고 공화국과 국경을 접하고 있다. 국토는 북위 2°와 11° 사이, 동경 14°와 28° 사이에 위치한다.
국토의 대부분은 해발 약 500 m 높이의 평평하거나 완만한 고원 사바나로 이루어져 있다. 중앙아프리카 공화국 북동부의 페르티트 구릉 외에도 남서부 지역에 흩어져 있는 언덕들이 있다. 북서쪽에는 해발 약 348 m의 화강암 고원인 야데 산괴가 있다. 중앙아프리카 공화국에는 북동 콩고 저지대 숲, 북서 콩고 저지대 숲, 서콩고 습지림, 동수단 사바나, 북콩고 삼림-사바나 모자이크, 사헬 아카시아 사바나 등 6개의 육상 생태지역이 있다.
면적 62.30 만 km2의 중앙아프리카 공화국은 세계에서 44번째로 큰 나라이다. 남쪽 국경의 상당 부분은 콩고강의 지류들로 형성되어 있다. 동쪽의 음보무강은 우엘레강과 합류하여 우방기강을 이루며, 이 강 또한 남쪽 국경의 일부를 구성한다. 상가강은 국토 서부 지역 일부를 흐르며, 동쪽 국경은 나일강 유역의 가장자리를 따라 놓여 있다.
국토의 약 8%가 숲으로 덮여 있는 것으로 추정되며, 가장 울창한 지역은 일반적으로 남부 지역에 위치한다. 숲은 매우 다양하며 상업적으로 중요한 아요스, 사펠리, 시포 등의 수종을 포함한다. 삼림 벌채율은 연간 약 0.4%이며, 불법 벌채가 만연하다. 중앙아프리카 공화국은 2018년 산림경관 완전성 지수(FLII) 평균 점수 10점 만점에 9.28점을 받아 172개국 중 세계 7위를 차지했다. 2008년 중앙아프리카 공화국은 세계에서 광공해가 가장 적은 나라였다. 중앙아프리카 공화국은 지구상에서 가장 큰 자기 이상 중 하나인 방기 자기 이상의 중심점이다.
4.1. 지형 및 수계
국토의 대부분은 해발 600 m 정도의 완만한 고원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국토 중앙부를 동서로 가로지르는 분수계가 특징이다. 이 분수계의 북쪽은 넓은 의미에서 차드 분지에 속하며, 샤리강 수계가 형성되어 있다. 샤리강은 국토 중앙부에서 발원하여 북쪽으로 흘러 차드호로 유입되며, 이 수계에 속하는 로곤강 등 여러 지류도 유사하게 북쪽으로 흐른다. 분수계의 남쪽은 콩고강 수계로, 넓은 의미에서 콩고 분지에 속한다. 콩고강의 가장 큰 지류인 우방기강은 콩고 민주 공화국과의 국경을 이루는 동시에, 수도 방기까지 대형 선박이 운항할 수 있어 중요한 교통로 역할을 한다. 이 두 강(우방기강, 샤리강)은 중앙아프리카 공화국에 매우 중요하며, 식민지 시대의 국명인 '우방기샤리'는 이 두 강에서 유래했다. 그 외에도 서부에는 콩고강의 또 다른 지류인 상가강이 흐르고 있다.
북동부에는 봉고 산맥이 솟아 있으며, 북서부에도 산지가 존재한다. 카메룬과의 국경에 위치한 응가위산(해발 1410 m)은 중앙아프리카 공화국의 최고봉이다.
4.2. 기후
중앙아프리카 공화국의 기후는 대체로 열대 기후이며, 북부 지역에서는 6월부터 9월까지, 남부 지역에서는 5월부터 10월까지 우기가 지속된다. 우기 동안에는 거의 매일 폭우가 내리며, 이른 아침에는 안개가 자주 발생한다. 연간 최대 강수량은 우방기 상류 지역에서 약 1800 mm에 이른다. 위도에 따라 강수량이 거의 비례하며, 남부로 갈수록 강수량이 많고 북부로 갈수록 건조해진다. 국토의 대부분은 사바나 기후(Aw)에 속한다. 그러나 국토 남단 우방기강 유역과 남서부 일부 지역은 열대 몬순 기후(Am)를 나타내며, 가장 건조한 북동단은 스텝 기후(BS)에 해당한다.
북부 지역은 2월부터 5월까지 덥고 습하지만, 하르마탄으로 알려진 뜨겁고 건조하며 먼지가 많은 무역풍의 영향을 받을 수 있다. 남부 지역은 적도에 가까운 기후를 보이지만 사막화의 영향을 받고 있으며, 국토의 극북동 지역은 스텝 지대이다.
4.3. 생물 다양성 및 환경 문제

남서부에는 열대 우림 지역에 장가상가 국립공원이 위치해 있다. 이 나라는 숲코끼리와 서부저지대고릴라 개체수로 유명하다. 북부에는 마노보-궁다 생 플로리스 국립공원이 표범, 사자, 치타, 코뿔소 등 야생동물이 풍부하게 서식하고 있으며, 바밍기-방고란 국립공원은 중앙아프리카 공화국 북동부에 위치한다. 이 공원들은 지난 20년 동안 특히 수단에서 온 밀렵꾼들의 활동으로 심각한 피해를 입었다.
중앙아프리카 공화국의 삼림 면적은 2020년 기준 총 국토 면적의 약 36%로, 2,230만 3천 헥타르(ha)에 해당하며, 이는 1990년의 2,320만 3천 헥타르에서 감소한 수치이다. 2020년 기준으로 자연 재생림은 2,230만 1천 헥타르, 조림지는 2천 헥타르였다. 자연 재생림 중 9%는 인간 활동의 명확한 징후가 없는 토종 수종으로 구성된 원시림으로 보고되었다. 2015년 기준, 삼림 면적의 91%는 공공 소유, 9%는 사유로 보고되었다. 2021년 중앙아프리카 공화국의 삼림 벌채율은 71% 증가했다.
5. 정치

중앙아프리카 공화국의 정치는 공식적으로 대통령제 공화국의 틀 안에서 이루어진다. 이 체제에서 대통령은 국가원수이며, 총리는 정부수반이다. 행정권은 정부가 행사한다. 입법권은 정부와 의회 모두에게 부여되어 있다. 최근 몇 년간 정부 변화는 폭력, 협상, 선거라는 세 가지 방법을 통해 발생했다. 2004년 12월 5일 국민투표에서 새 헌법이 유권자들에 의해 승인되었다. 정부는 1991년부터 2001년까지, 그리고 2004년부터 2013년까지 '부분적 자유'로 평가받았다.
2013년 3월, 셀레카의 수도 진공으로 처음으로 이슬람 정권이 탄생했다. 같은 해 2004년에 제정된 헌법은 폐지되었고, 2015년까지 유효한 잠정 헌법이 공포되었다. 의회도 해산되었고, 새로운 의회로 잠정평의회, 그 다음으로 국민과도위원회(135석)가 설치되었다. 평의회는 대통령을 선출하는 기능을 가지고 있으며, 2014년 2월에는 회의 내 선거를 통해 삼바판자를 새로운 대통령으로 선출했다.
2016년 민정 복귀 이후, 중앙아프리카 공화국은 공화제, 대통령제를 채택한 입헌 국가이다. 현행 헌법은 민정 복귀와 함께 채택된 것이다. 2016년 2월에는 포스탱아르샹주 투아데라를 새로운 대통령으로 선출했다. 2019년 2월 정부와 14개 무장 단체 간의 평화 협정이 체결되었다. CPC의 공격적인 활동은 여전히 계속되고 있지만, 투아데라 대통령은 2022년 12월에 2019년 평화 협정에 서명한 4개 무장 단체의 해체식을 개최했다. 또한 2023년 4월에는 협정에 서명한 무장 단체를 포함한 5개 무장 단체의 해체식을 개최했다.
2023년 7월 신헌법 초안에 대한 국민투표가 실시되었고, 헌법재판소는 국민투표에서의 찬성 다수로 채택을 선언했다. 신헌법에서는 대통령 임기를 5년에서 7년으로 변경, 부통령직 신설, 국민의회에 의한 단원제 등이 규정되어 있다.
5.1. 정부 구조
중앙아프리카 공화국은 대통령 중심제 공화국으로, 행정부, 입법부, 사법부 간의 권력 분립 원칙을 따른다. 그러나 2018년 현재 공식 정부는 반군 단체들이 지배하는 국토의 많은 부분을 통제하지 못하고 있다.
5.1.1. 행정부
대통령은 국민투표로 6년 임기로 선출되며, 총리는 대통령이 임명한다. 대통령은 또한 법률을 발의하고 정부 운영을 감독하는 각료회의를 임명하고 주재한다. 2016년 4월부터 현직 대통령은 포스탱아르샹주 투아데라이며, 그는 카트린 삼바판자 임시 대통령과 앙드레 은자파예케 임시 총리가 이끌던 과도 정부의 뒤를 이었다.
5.1.2. 입법부
국회(Assemblée Nationale)는 140명의 의원으로 구성되며, 결선투표제를 사용하여 5년 임기로 선출된다.
5.1.3. 사법부
다른 많은 구 프랑스 식민지와 마찬가지로 중앙아프리카 공화국의 법률 체계는 프랑스법에 기반을 두고 있다. 대법원(Cour Suprême)은 대통령이 임명한 판사들로 구성된다. 헌법재판소도 있으며, 그 판사들 또한 대통령이 임명한다.
5.2. 주요 정당 및 정치 세력
보지제 전 대통령 정권의 사실상 여당이었던 국민집합 크와 나 크와(KNK, 보지제 자신은 당원이 아닌 무소속)와 파타세 전 대통령이 속했던 중앙아프리카 인민해방운동(MLPC), 콜링바 전 대통령이 이끌었던 중앙아프리카 민주연합(RDC)이 주요 정당으로 꼽힌다. 그 외에는 사회민주당(PSD), 진보애국전선(FPP), 민주진보동맹(ADP), 신진보동맹(NDP) 등의 군소 정당이 있다.
반정부 무장 세력으로는 주로 북부를 거점으로 활동하는 "민주회복인민군"(APRD) 등이 있으며, 2012년 이후로는 셀레카, 안티발라카 등 다수의 무장 단체들이 국내 정치에 큰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5.3. 인권

2009년 미국 국무부의 인권 보고서에 따르면 중앙아프리카 공화국의 인권 상황은 열악하며 수많은 정부 학대에 대한 우려가 표명되었다. 미국 국무부는 보안군에 의한 초법적 살인, 용의자 및 수감자에 대한 고문, 구타, 강간과 같은 주요 인권 침해가 처벌 없이 발생했다고 주장했다. 또한 교도소 및 구금 시설의 열악하고 생명을 위협하는 환경, 자의적 체포 및 구금, 장기적인 미결 구금 및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 거부, 이동의 자유 제한, 공무원 부패, 노동권 제한 등을 지적했다.
국무부 보고서는 또한 광범위한 폭력 사태, 여성 성기 절제의 만연, 여성 및 피그미족에 대한 차별, 인신매매, 강제 노동, 아동 노동을 언급한다. "국가 보안군, 무장 강도 및 기타 비국가 무장 단체의 행동으로 인해" 북부 지역의 이동의 자유가 제한되고 있으며, 정부군과 반정부군 간의 전투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국내실향민이 되었다.
주술 혐의와 관련된 아동 및 여성에 대한 폭력 또한 이 나라의 심각한 문제로 지적되었다. 주술은 형법상 범죄 행위이다.
언론의 자유는 국가 https://www.constituteproject.org/constitution/Central_African_Republic_2013?lang=en#67 헌법에 명시되어 있지만, 정부가 언론을 위협한 사건들이 있었다. 국제 연구 교류 위원회(IREX)의 미디어 지속 가능성 지수 보고서에 따르면 "이 나라는 법률 시스템과 정부의 일부가 자유로운 미디어 시스템에 반대하는 등 목표를 최소한으로만 충족했다"고 언급했다.
여아의 약 68%가 18세 이전에 결혼하며, 유엔의 인간 개발 지수는 조사 대상 188개국 중 이 나라를 188위로 평가했다. 국제노동사무국은 또한 최근판 아동 노동 또는 강제 노동으로 생산된 상품 목록에서 이 나라를 언급했다.
5.4. 최근 정세 및 과제
중앙아프리카 공화국은 지속적인 내전 상황에 놓여 있으며, 정부의 국가 통제력은 수도 방기를 포함한 일부 지역에 국한되어 있다. 다수의 무장 단체가 각 지역을 장악하고 있으며, 이들 간의 충돌과 민간인에 대한 공격이 빈번하게 발생하여 심각한 인도주의적 위기를 초래하고 있다. 국제 사회는 MINUSCA(국제 연합 중앙아프리카 다각적 통합 안정화 임무단)를 중심으로 평화 유지 활동을 전개하고 있으나, 상황 개선에는 한계가 있다.
주요 과제로는 ▲무장 단체 해체 및 군축, 제대, 사회복귀(DDR) 프로그램의 실질적 이행 ▲국가 전반의 치안 확보 및 정부 통제력 회복 ▲종교 및 부족 간 갈등 해소와 국민 화합 ▲만성적인 빈곤과 기아 문제 해결을 위한 경제 개발 ▲부정부패 척결 및 국가 시스템 정상화 등이 있다. 특히, 다이아몬드, 금 등 천연자원의 불법 유통을 차단하고 이를 국가 재건에 활용하는 것이 시급한 과제로 지적된다. 러시아 바그너 그룹의 활동 등 외부 세력의 개입 또한 정세를 복잡하게 만드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6. 행정 구역

2021년 1월 이후 중앙아프리카 공화국은 20개의 주(préfectures)로 나뉘어 있으며, 이 주는 다시 84개의 군(sous-préfectures)으로 세분된다. 20개 주 중 2개는 경제주(préfectures économiques)이며, 수도 방기는 자치현(commune autonome)의 지위를 가진다.
- 바밍기방고랑주 (Bamingui-Bangoran)
- 방기 (Bangui) - 자치현
- 바스코토주 (Basse-Kotto)
- 오트코토주 (Haute-Kotto)
- 오트음보무주 (Haut-Mbomou)
- 케모주 (Kémo)
- 림펜데주 (Lim-Pendé)
- 로바예주 (Lobaye)
- 맘베레주 (Mambéré)
- 맘베레카데이주 (Mambéré-Kadéï)
- 음보무주 (Mbomou)
- 나나그레비지주 (Nana-Grébizi) - 경제주
- 나나맘베레주 (Nana-Mambéré)
- 옴벨라음포코주 (Ombella-M'Poko)
- 와카주 (Ouaka)
- 우암주 (Ouham)
- 우암파파주 (Ouham-Fafa)
- 우암펜데주 (Ouham-Pendé)
- 상가음바에레주 (Sangha-Mbaéré) - 경제주
- 바카가주 (Vakaga)
6.1. 주요 도시

중앙아프리카 공화국에서 가장 큰 도시는 수도인 방기이다. 방기는 우방기강의 항해 가능 한계점에 위치하며 정치, 경제의 중심지이자 대규모 하천 항구를 통해 무역도 활발하여, 서쪽의 빔보 등 위성 도시를 포함한 도시권 인구는 2015년 기준 79만 명에 달한다. 방기시의 규모는 국내에서 두드러지며, 인구 10만 명이 넘는 다른 도시는 존재하지 않는다.
아래는 중앙아프리카 공화국의 주요 도시 목록이다 (2003년 인구 조사 기준):
순위 | 도시명 | 주 | 인구 (2003년) |
---|---|---|---|
1 | 방기 | 방기 자치현 | 622,771 |
2 | 빔보 | 옴벨라음포코주 | 124,176 |
3 | 베르베라티 | 맘베레카데이주 | 76,918 |
4 | 카르노 | 맘베레카데이주 | 45,421 |
5 | 밤바리 | 와카주 | 41,356 |
6 | 부아르 | 나나맘베레주 | 40,353 |
7 | 보상고아 | 우암주 | 36,478 |
8 | 브리아 | 오트코토주 | 35,204 |
9 | 방가수 | 음보무주 | 31,553 |
10 | 놀라 | 상가음바에레주 | 29,181 |
11 | 카가방도로 | 나나그레비지주 | 24,661 |
12 | 시부트 | 케모주 | 22,419 |
13 | 음바이키 | 로바예주 | 22,166 |
14 | 보줌 | 우암펜데주 | 20,665 |
15 | 파와 | 우암펜데주 | 17,370 |
16 | 바탕가포 | 우암주 | 16,420 |
17 | 카보 | 우암주 | 16,279 |
18 | 보카랑가 | 우암펜데주 | 15,744 |
19 | 이피 | 와카주 | 15,196 |
20 | 알린다오 | 바스코토주 | 14,401 |
7. 군사
중앙아프리카 공화국 군대(FACA)는 지상군(항공 부대 포함), 헌병대, 국가 경찰로 구성되어 있다. 선발적 징병제를 채택하고 있으며, 복무 기간은 2년이다. 그러나 오랜 내전과 정치적 불안정으로 인해 군대의 실질적인 통제력과 전투 능력은 매우 취약한 상태이다. 장비는 노후화되었고, 병력 또한 부족하며 훈련 수준도 낮다.
국방 정책은 주로 국내 안보 유지와 국경 통제에 초점을 맞추고 있으나, 정부군이 전국토를 효과적으로 통제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국제 연합 중앙아프리카 다각적 통합 안정화 임무단(MINUSCA)을 비롯한 국제 평화유지군이 국가 안정화와 민간인 보호를 위해 주둔하고 있으며, 프랑스군과 최근에는 러시아군(주로 바그너 그룹 용병)도 군사적 지원 및 훈련을 제공하며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지속적인 내전으로 인해 다양한 반군 세력과 무장 단체가 활동하고 있어 국가 안보에 심각한 위협이 되고 있다.
8. 대외 관계
중앙아프리카 공화국은 외국 원조에 크게 의존하고 있으며, 수많은 비정부 기구(NGO)가 정부가 제공하지 못하는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프랑수아 보지제 대통령은 국제 사회의 원조를 받는 것을 우선순위에 두었다. 2019년에는 미화 1.00 억 USD 이상의 외국 원조가 주로 인도적 지원에 사용되었다. 중앙아프리카 공화국은 유엔, 아프리카 연합, 중앙아프리카 국가 경제 공동체, 프랑코포니 (La Francophonie라 프랑코포니프랑스어), 비동맹 운동의 회원국이다. 2017년, 중앙아프리카 공화국은 유엔 핵무기금지조약에 서명했다.
8.1. 주요 국가와의 관계
중앙아프리카 공화국은 역사적, 지리적, 경제적 요인으로 인해 여러 주요 국가들과 다양한 관계를 맺고 있다.
8.1.1. 프랑스와의 관계
프랑스는 중앙아프리카 공화국의 옛 식민 종주국으로서 독립 이후에도 정치, 경제, 군사적으로 깊은 관계를 유지해왔다. 프랑스는 중앙아프리카 공화국의 주요 교역 상대국이자 원조 제공국이며, 여러 차례 군사적 개입을 통해 정권 안정에 영향을 미쳐왔다. 그러나 최근에는 프랑스의 영향력이 다소 축소되고 있는 양상도 나타나고 있다.
8.1.2. 러시아와의 관계

최근 몇 년 사이 러시아는 중앙아프리카 공화국에 대한 정치적, 군사적 영향력을 급격히 확대하고 있다. 특히 바그너 그룹과 같은 러시아 민간군사기업(PMC)이 대통령 경호, 정부군 훈련, 광물 자원 개발 등에 깊숙이 관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러한 러시아의 영향력 확대는 서방 국가들과의 관계에 긴장을 유발하고 있으며, 국제 사회의 우려를 낳고 있다. 2018년 7월 31일에는 바그너 그룹을 조사하던 러시아 기자 3명이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하기도 했다. 2022년 2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3월 3일 유엔 긴급 특별 총회에서 채택된 러시아 규탄 결의안(ES-11/1) 표결에서 중앙아프리카 공화국은 기권했다. 또한 러시아 국영 통신사 리아 노보스티는 투아데라 대통령이 러시아의 도네츠크 인민공화국 및 루간스크 인민공화국 국가 승인을 지지했다고 보도했다.
8.1.3. 주변국과의 관계
중앙아프리카 공화국은 차드, 수단, 남수단, 콩고 민주 공화국, 콩고 공화국, 카메룬 등 다수의 국가와 국경을 접하고 있다. 이들 주변국과의 관계는 국경 지역의 불안정, 난민 문제, 자원 밀거래 등으로 인해 복잡한 양상을 띤다. 특히 차드와 수단은 과거 중앙아프리카 공화국의 내정에 개입하거나 반군 세력을 지원했다는 의혹을 받기도 했다. 콩고 민주 공화국과의 국경 지대에서는 무장 단체의 활동과 난민 유입이 문제가 되고 있다. 한편, 2005년 선거 당시 콩고 공화국의 대통령 드니 사수응게소는 프랑수아 보지제를 공개적으로 지지했으며, 중앙아프리카 공화국에 주둔하는 다국적군(FOMUC)에는 콩고 공화국 군대도 포함되어 있었다.
8.1.4. 대한민국과의 관계
대한민국과 중앙아프리카 공화국은 1963년 9월에 외교 관계를 수립했다. 1988년 88 서울 올림픽에는 선수단을 파견했다. 2008년 9월 재개설된 주 카메룬 대한민국 대사관이 중앙아프리카 공화국 관련 업무를 겸임하고 있다. 2010년 12월 기준으로 20명의 한민족(재외국민 20명, 시민권자 0명)이 중앙아프리카 공화국에 거주하고 있었다.
8.1.5. 기타 국가와의 관계
중화인민공화국과는 1964년 중화민국과 단교하고 1976년에 수교했다. 중국은 경제적 지원과 투자를 통해 영향력을 확대하려 하고 있다. 미국은 민주주의 및 인권 문제에 관심을 가지며 인도적 지원을 제공하고 있으나, 직접적인 정치적 개입은 제한적이다. 유럽 연합(EU)은 주요 원조 제공자로서 평화 구축과 인도주의적 지원에 참여하고 있다.
덴마크는 방기에 명예 영사관(상위 기관은 주부르키나파소(와가두구 소재) 대사관)을 두고 있으며, 중앙아프리카 공화국은 주벨기에 대사관(브뤼셀 소재)이 주덴마크 대사관을 겸임하고 있다.
8.2. 국제 기구와의 관계 및 국제 원조
중앙아프리카 공화국은 유엔(UN), 아프리카 연합(AU), 중앙아프리카 국가 경제 공동체(ECCAS), 프랑코포니(OIF) 등 다수의 국제기구 회원국으로 활동하고 있다. 그러나 오랜 내전과 정치 불안으로 인해 국제 사회로부터 막대한 규모의 인도적 지원 및 개발 원조를 받고 있다. 2006년, 계속되는 폭력 사태로 인해 북서부 지역 주민 5만 명 이상이 기아 위기에 처했으나, 유엔의 지원으로 위기를 모면했다. 2008년 1월 8일,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은 중앙아프리카 공화국이 평화구축기금 지원 대상국임을 선언했다. 세 가지 우선 분야로 안보 부문 개혁, 좋은 거버넌스 및 법치주의 증진, 분쟁 피해 지역사회 활성화가 확인되었다. 2008년 6월 12일, 중앙아프리카 공화국은 2005년 분쟁에서 벗어난 국가들이 다시 전쟁이나 혼란에 빠지지 않도록 돕기 위해 설립된 유엔 평화구축위원회에 지원을 요청했다.
8.3. 인도주의적 문제 및 국제사회 지원
계속되는 분쟁으로 인해 중앙아프리카 공화국은 심각한 인도주의적 위기에 직면해 있다. 수많은 국내실향민과 난민이 발생했으며, 이들은 식량 부족, 깨끗한 물과 위생 시설 부족, 의료 서비스 접근 제한 등 열악한 환경에 처해 있다. 만성적인 식량 위기와 영양실조는 아동 사망률을 높이는 주요 원인이 되고 있으며, 말라리아, HIV/AIDS 등 질병 확산도 심각한 문제이다.
국제 사회는 유엔 난민 기구(UNHCR), 세계 식량 계획(WFP), 유니세프(UNICEF), 국경 없는 의사회 등 다양한 국제기구와 비정부기구(NGO)를 통해 식량, 의료, 교육, 보호 등 긴급 구호 및 인도적 지원 활동을 펼치고 있다. 잠재적인 집단 학살 우려에 대응하여 2013년 12월 평화유지군인 중앙아프리카 공화국 국제지원임무단(MISCA)이 승인되었다. 이 아프리카 연합군 6,000명은 프랑스의 상가리스 작전과 함께 활동했다.
9. 경제


중앙아프리카 공화국의 1인당 국민소득은 연간 약 400 USD로 세계 최저 수준 중 하나로 자주 언급되지만, 이 수치는 주로 보고된 수출 판매액을 기반으로 하며, 등록되지 않은 식료품, 현지 생산 알코올 음료, 다이아몬드, 상아, 부시미트, 전통 의학의 판매는 대부분 무시한다.
중앙아프리카 공화국의 통화는 중앙아프리카 CFA 프랑이며, 이는 구 프랑스령 서아프리카 국가들 전역에서 통용되고 유로에 고정 환율로 거래된다. 다이아몬드는 국가의 가장 중요한 수출품으로 수출 수익의 40~55%를 차지하지만, 매년 생산되는 다이아몬드의 30~50%가 비밀리에 국외로 유출되는 것으로 추정된다. 2022년 4월 27일, 비트코인(BTC)이 추가 법정 통화로 채택되었다. 의원들은 만장일치로 비트코인을 CFA 프랑과 함께 법정 통화로 만들고 암호화폐 사용을 합법화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포스탱아르샹주 투아데라 대통령이 이 법안에 서명했다고 그의 비서실장 오베드 남시오가 밝혔다. 그러나 2022년 5월 6일 임시 총회 이후, 중앙아프리카 은행위원회(COBAC)는 암호화폐 사용을 금지하는 결정 D-071-2022를 발표했고, 이후 비트코인의 법정 통화 지위는 철회되었다.
농업은 카사바, 땅콩, 옥수수, 수수, 기장, 참깨, 플랜틴과 같은 식량 작물의 재배 및 판매가 주를 이룬다. 실질 GDP의 연간 성장률은 3%를 약간 웃돈다. 수출용 환금 작물보다 식량 작물의 중요성은 대부분의 중앙아프리카인의 주식인 카사바의 총 생산량이 연간 20만~30만 톤에 달하는 반면, 주요 수출 환금 작물인 목화의 생산량은 연간 2만 5천~4만 5천 톤에 불과하다는 사실에서 알 수 있다. 식량 작물은 대량으로 수출되지는 않지만, 중앙아프리카인들이 목화나 커피와 같은 수출 환금 작물보다 잉여 식량 작물의 주기적인 판매로부터 훨씬 더 많은 소득을 얻기 때문에 여전히 국가의 주요 환금 작물을 구성한다. 국토의 많은 부분이 식량 작물 자급자족이 가능하지만, 가축 개발은 체체파리의 존재로 인해 방해받고 있다.
공화국의 주요 수입 상대국은 프랑스(17.1%)이다. 기타 수입국은 미국(12.3%), 인도(11.5%), 중국(8.2%)이다. 최대 수출 상대국은 프랑스(31.2%)이며, 그 다음은 부룬디(16.2%), 중국(12.5%), 카메룬(9.6%), 오스트리아(7.8%)이다.
중앙아프리카 공화국은 아프리카 사업법 조화 기구(OHADA)의 회원국이다. 2009년 세계은행 그룹의 두잉 비즈니스 보고서에서 사업 활동을 '향상시키는' 규제와 '제한하는' 규제를 모두 고려한 복합 지수인 '사업 용이성' 측면에서 183개국 중 183위로 평가되었다.
정부 세입 부족으로 1990년대부터 정부 공무원의 임금 체불이 만성화되어 정부 기능 부전과 잦은 쿠데타의 한 원인이 되고 있다.
9.1. 경제 구조 및 주요 산업
중앙아프리카 공화국의 경제는 농업, 임업, 광업 등 1차 산업에 크게 의존하고 있다. 국내 총생산(GDP) 규모는 매우 작으며, 1인당 GDP 또한 세계 최저 수준이다. 제조업 기반은 미약하며, 대부분의 공산품을 수입에 의존한다. 주요 산업 부문의 비중과 특징은 다음과 같다.
9.1.1. 농업 및 임업
농업은 국민 대다수의 생계를 책임지는 핵심 산업으로, 주로 카사바, 참마, 땅콩, 옥수수, 기장, 수수 등의 자급자족용 식량 작물과 목화, 커피, 담배 등의 환금 작물이 재배된다. 그러나 낙후된 농업 기술, 부족한 관개 시설, 그리고 지속적인 내전으로 인한 생산성 저하와 유통망 파괴로 인해 만성적인 식량 부족 문제를 겪고 있다. 임업 또한 중요한 산업으로, 남부 열대림 지역을 중심으로 목재가 생산되어 주요 수출품 중 하나이다. 그러나 불법 벌채와 지속 불가능한 산림 관리로 인해 환경 파괴 문제도 심각하다.
9.1.2. 광업 (다이아몬드 등)
중앙아프리카 공화국은 다이아몬드, 금, 우라늄 등 풍부한 광물 자원을 보유하고 있다. 특히 다이아몬드는 전통적으로 국가의 주요 수출품이었으며, 수출 수익의 상당 부분을 차지했다. 그러나 2013년 이후 내전이 격화되면서 다이아몬드 광산 대부분이 반군 세력의 통제하에 들어가 분쟁 광물 문제가 대두되었고, 킴벌리 프로세스에 의해 한때 수출이 전면 금지되기도 했다. 현재 일부 지역에서 생산된 다이아몬드에 한해 수출이 허용되고 있으나, 여전히 불법 채굴과 밀거래가 성행하여 국가 재정으로 제대로 귀속되지 못하고 있다. 금 또한 중요한 광물 자원이지만, 대부분 소규모 수작업 형태로 채굴되어 정확한 생산량 파악과 관리가 어려운 실정이다. 우라늄 광산도 존재하나 개발은 미미한 수준이다.
9.2. 경제 현황 및 과제
중앙아프리카 공화국의 경제는 극심한 어려움에 처해 있다. 1인당 GDP는 세계 최저 수준이며, 국민 대다수가 절대 빈곤 상태에 놓여 있다. 높은 빈곤율, 만성적인 식량 부족, 열악한 보건 및 교육 환경은 국가 발전의 큰 걸림돌이다. 외채 문제 또한 심각하며, 정부의 재정은 극도로 취약하다. 부정부패가 만연하고 국가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아 경제 회복을 더욱 어렵게 만들고 있다.
지속 가능한 발전을 위해서는 ▲정치적 안정과 국가 통제력 회복 ▲치안 확보를 통한 경제 활동 정상화 ▲부정부패 척결 및 투명한 경제 시스템 구축 ▲농업 생산성 향상과 식량 안보 확보 ▲광물 자원의 합법적이고 투명한 관리 및 국가 재정 기여도 제고 ▲도로, 통신, 에너지 등 기반 시설 확충 ▲교육 및 직업 훈련을 통한 인적 자원 개발 등이 시급한 과제로 남아있다.
9.3. 기반 시설
국가 경제 활동과 국민 생활에 필수적인 기반 시설은 매우 열악한 상태이다. 오랜 내전과 투자 부족으로 인해 교통, 통신, 에너지 등 대부분의 분야에서 심각한 문제를 겪고 있다.
9.3.1. 교통 및 통신

도로망은 대부분 비포장 상태이며, 특히 우기에는 통행이 불가능한 구간이 많아 물류 이동에 큰 제약을 받고 있다. 철도는 존재하지 않는다. 우방기강을 이용한 하천 운송이 일부 이루어지지만, 제한적이다. 항공 교통은 수도 방기에 위치한 방기 음포코 국제공항이 유일한 국제공항으로 기능하고 있으나, 운항 노선과 빈도가 적다.
통신 시설 또한 매우 부족하여, 유선 전화 보급률은 극히 낮고, 무선 통신(휴대폰) 서비스는 도시 지역을 중심으로 일부 제공되고 있으나 통신망 커버리지가 넓지 않다. 인터넷 보급률은 아프리카 대륙에서도 최저 수준에 머물러 있다. 소카텔이 인터넷 및 이동통신 분야의 주요 공급자이다.
9.3.2. 에너지
주요 에너지원은 수력 발전이지만, 발전 용량이 부족하고 송배전 시설이 노후화되어 만성적인 전력 부족에 시달리고 있다. 국민 대다수는 전기를 이용하지 못하고 있으며, 주로 목탄이나 장작을 취사 및 난방 연료로 사용하고 있어 삼림 파괴를 가중시키는 요인이 되고 있다. 전력 접근성은 전체 인구의 15.6%에 불과하며, 도시 지역은 34.6%, 농촌 지역은 1.5%만이 전기를 이용할 수 있다.
10. 사회
중앙아프리카 공화국의 사회는 오랜 내전과 정치적 불안정으로 인해 극심한 혼란을 겪고 있으며, 다양한 사회 문제가 산적해 있다. 다민족, 다종교 국가로서 전통적으로는 비교적 평화롭게 공존해왔으나, 최근 몇 년간 특정 종교 및 민족 집단 간의 갈등이 격화되면서 사회 통합에 심각한 균열이 발생했다.
10.1. 공공질서 및 치안
내전과 다수의 무장 단체 활동으로 인해 공공질서와 치안은 극도로 불안정한 상태이다. 수도 방기를 포함한 일부 도시를 제외한 대부분의 지역에서 정부의 통제력이 미치지 못하고 있으며, 무장 단체에 의한 살인, 약탈, 납치, 성폭력 등 각종 범죄가 만연하여 주민들의 생명과 안전이 심각하게 위협받고 있다. 정부는 국제 연합 중앙아프리카 다각적 통합 안정화 임무단(MINUSCA) 등 국제사회의 지원을 받아 치안 유지 노력을 기울이고 있으나, 역부족인 상황이다. 2008년에만 북부 지역에서 계속되는 내전으로 최소 12만 5천 명의 난민이 발생했으며, 2019년 12월에는 민병 조직과 상인 간의 충돌로 30명이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하는 등 치안 부재 상황이 지속되고 있다.
10.2. 기아 및 빈곤 문제
만성적인 식량 부족과 영양실조는 중앙아프리카 공화국이 직면한 가장 심각한 사회 문제 중 하나이다. 농업 생산 기반이 취약하고 내전으로 인해 농경지가 황폐화되었으며, 유통망마저 붕괴되어 국민 대다수가 기아에 허덕이고 있다. 특히 아동들의 영양실조는 발육 부진과 높은 사망률로 이어지고 있다. 빈곤율 또한 매우 높아, 인구의 절대다수가 하루 2 USD 미만으로 생활하는 극빈층에 속한다. 국제 구호 단체들의 식량 지원에 크게 의존하고 있으나, 근본적인 문제 해결에는 이르지 못하고 있다. 2016년 세계 기아 지수(GHI)에 따르면 중앙아프리카 공화국은 118개 개발도상국 중 118위로, 세계에서 가장 심각한 기아 상태를 보이는 국가로 평가되었다.
11. 인구와 주민

중앙아프리카 공화국의 인구는 독립 이후 거의 4배로 증가했다. 1960년 인구는 1,232,000명이었으며, 2024년 유엔 추정치에 따르면 약 5,357,744명이다. 2020년 기준으로는 약 530만 명으로 추정되었으나, 2022년 중앙아프리카 통계경제사회연구소(ICASEES)가 실시한 디지털 매핑 결과(일부 지역 제외)로는 총인구가 6,091,097명으로 나타나 실제 인구가 추정치보다 훨씬 많을 가능성을 시사했다. 그러나 오랜 내전과 불안정한 상황으로 정확한 인구 통계 파악에는 어려움이 있다.
11.1. 인구 구성 및 통계
2024년 기준 총인구는 약 5,357,744명으로 추산된다. 인구 성장률은 비교적 높은 편이나, 높은 사망률(특히 영유아 사망률)과 낮은 평균 수명으로 인해 인구 구조는 젊은 층이 매우 두터운 피라미드 형태를 보인다. 2010년 기준 15세 미만 인구 비율은 40.4%, 15세에서 65세 사이는 55.6%, 65세 이상은 4%였다. 도시화율은 낮은 편으로, 인구의 절반 이상(55% 이상)이 농촌 지역에 거주한다. 주요 도시로는 수도 방기가 있으며, 그 외 빔보, 베르베라티 등이 있다. 평균 수명은 남성 약 45.1세, 여성 약 48.2세(2007년 기준)로 매우 낮다.
11.2. 민족
중앙아프리카 공화국은 80개가 넘는 다양한 민족 집단으로 구성된 다민족 국가이다. 주요 민족으로는 아다마와-우방기어군 계열 언어를 사용하는 민족들이 중심을 이루며, 그중 바야족(Gbaya, 약 33%), 반다족(Banda, 약 27%), 만자족(Mandja, 약 13%), 사라족(Sara, 약 10%), 음붐족(Mboum, 약 7%), 음바카족(M'Baka, 약 4%), 야코마족(Yakoma, 약 4%) 등이 인구의 다수를 차지한다. 그 외에도 풀라족, 바카족, 아랍계 바가라족 등이 거주하며, 소수의 프랑스계 유럽인도 있다. 각 민족은 고유한 언어와 문화를 가지고 있다.
11.3. 언어
중앙아프리카 공화국의 공용어는 프랑스어와 상고어이다. 상고어는 현지 응반디어를 기반으로 형성된 크리올어로, 민족 간 의사소통을 위한 링구아 프랑카 역할을 하며 일상생활에서 널리 사용된다. 중앙아프리카 공화국은 아프리카 언어를 공식 지위로 인정한 몇 안 되는 아프리카 국가 중 하나이다. 출판물은 대부분 프랑스어로 작성된 후 일부가 상고어로 번역되는 경우가 많으며, 상고어 어휘의 약 51%는 프랑스어와 동일하다. 그 외에도 각 민족 고유의 언어들이 사용되며, 일부 지역에서는 스와힐리어나 아랍어도 사용된다. 중앙아프리카 공화국은 프랑코포니(국제프랑스어사용국기구) 정회원국이다.
11.4. 종교


2003년 국가 인구 조사에 따르면 인구의 80.3%가 기독교인(개신교 51.4%, 로마 가톨릭 28.9%), 10%가 이슬람교인, 4.5%가 기타 종교 집단, 5.5%가 무교였다. 2010년 퓨 리서치 센터의 추정에 따르면 기독교인이 인구의 89.8%(개신교 60.7%, 가톨릭 28.5%), 이슬람교인이 8.9%를 차지했다. 가톨릭 교회는 150만 명 이상의 신자를 보유하고 있으며, 이는 인구의 약 3분의 1에 해당한다. 토착 신앙(애니미즘) 또한 행해지며, 많은 토착 신앙이 기독교 및 이슬람교 관습에 통합되어 있다.
루터교, 침례교, 가톨릭, 그레이스 브레드런 교회, 여호와의 증인 등 많은 선교 단체가 활동하고 있다. 이들 선교사는 주로 미국, 프랑스, 이탈리아, 스페인 출신이지만, 나이지리아, 콩고 민주 공화국 및 기타 아프리카 국가 출신도 많다. 2002-2003년 반군과 정부군 간의 전투가 발발했을 때 많은 선교사가 나라를 떠났지만, 현재는 상당수가 돌아와 활동을 계속하고 있다.
11.4.1. 종교 갈등 문제
전통적으로 다양한 종교가 비교적 평화롭게 공존해왔으나, 2012년 이후 이슬람교를 주로 믿는 셀레카 반군 연합의 등장과 이에 대항하는 기독교계 민병대인 안티발라카의 결성으로 종교 간 갈등이 급격히 심화되었다. 셀레카는 기독교도 주민을 박해하고 이슬람교도를 보호하는 양상을 보였으며, 안티발라카는 이에 맞서 기독교도를 보호하고 이슬람교도를 공격하면서 양측 간의 폭력 사태가 빈번하게 발생했다. 이러한 종교 갈등은 수많은 사상자와 난민을 발생시켰으며, 국가 전체의 불안정을 심화시키는 주요 원인이 되었다. 유엔 국장은 무슬림과 기독교인 간의 종교적 긴장이 높다고 설명했다. 위기 상황에서 종교 지도자들은 공동체와 무장 단체 간의 중재 역할을 하기도 했으며, 피난처를 찾는 사람들에게 안식처를 제공하기도 했다.
11.5. 교육

중앙아프리카 공화국의 공교육은 무상이며, 6세부터 14세까지 의무 교육이다. 그러나 성인 인구의 약 절반이 문맹이다. 교육 제도는 옛 종주국이었던 프랑스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2015년 기준 문해율은 36.8%로 매우 낮은 수준이다. 오랜 내전과 정정 불안으로 인해 교육 시스템은 심각한 타격을 입었다. 2013년 이후 내전이 격화되면서 아동의 70%가 통학이 불가능해졌으며, 2017년 기준으로도 학교의 20%가 휴교 상태에 놓여 있었다. 교사 부족, 교육 시설 및 교재 부족, 낮은 취학률과 높은 중퇴율 등 교육 환경 전반이 매우 열악하다.
고등 교육 기관으로는 수도 방기에 위치한 국립 방기 대학교(의과대학 포함)와 국제 대학교인 유클리드 대학교가 있다.
11.6. 보건

중앙아프리카 공화국의 보건 의료 환경은 매우 열악하다. 말라리아, 호흡기 감염, 설사병 등이 주요 질병이며, HIV/AIDS 유병률 또한 높은 편이다. 2009년 추정에 따르면 성인 인구(15-49세)의 약 4.7%가 HIV에 감염되어 있다. 이는 2016년 유엔 추정치 약 4%와 대체로 일치한다. 항레트로바이러스 치료를 받을 수 있는 비율은 3%에 불과하며, 이는 이웃 국가인 차드(17%)와 콩고 공화국(17%)에 비해 현저히 낮은 수치이다.
평균 수명은 세계 최저 수준이며(2007년 기준 여성 48.2세, 남성 45.1세), 영아사망률과 산모사망률은 매우 높다(2010년 기준 세계에서 4번째로 높은 산모사망률). 의료 시설과 인력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며, 특히 농촌 지역의 의료 서비스 접근성은 극히 제한적이다. 2009년 기준 의사 1인당 인구는 약 20,000명이었다. 정부의 보건 지출은 2006년 1인당 미화 20달러(PPP 기준)였으며, 같은 해 총 정부 지출의 10.9%를 차지했다. 많은 출산이 정식 교육을 거의 또는 전혀 받지 않은 전통 조산사에 의해 이루어진다.
여성 건강은 특히 열악하여, 여성의 약 25%가 여성 성기 절제를 경험했다. 세계보건기구(WHO) 회원국으로서 백신 지원 등을 받고 있으며, 2014년에는 홍역 유행 예방을 위한 개입이 있었다. 수도 방기 지역에 가장 큰 병원들이 위치해 있다.
12. 문화

중앙아프리카 공화국은 80개 이상의 다양한 민족 집단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각 민족은 고유한 언어와 문화를 가지고 있다. 이러한 다양성은 음악, 춤, 구전 문학, 공예 등 풍부한 전통 문화로 나타난다. 그러나 오랜 정치적 불안정과 내전으로 인해 문화유산 보존과 발전에는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
12.1. 전통 문화 및 생활 양식
각 민족은 고유한 전통 관습, 사회 구조, 통과 의례 등을 유지하고 있다. 예를 들어, 바카족과 같은 피그미족은 숲에서의 수렵 채집 생활과 관련된 독특한 문화와 음악을 가지고 있다. 농경 민족들은 파종과 수확에 관련된 의례를 중시하며, 공동체적 생활 양식을 유지하는 경우가 많다. 결혼, 장례 등과 관련된 전통 의식도 중요한 사회적 기능을 한다. 현대에 들어서면서 도시화와 외부 문화의 영향으로 전통적인 생활 양식에도 변화가 나타나고 있지만, 여전히 많은 사람들에게 전통 문화는 정체성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
12.2. 음식 문화
주식은 카사바, 참마, 플랜틴, 기장, 수수 등이며, 이를 가루로 만들어 죽이나 빵처럼 조리해 먹는다. 다양한 종류의 채소와 땅콩, 콩 등을 활용한 스튜도 흔히 볼 수 있다. 내륙국이지만 강에서 잡히는 생선을 이용한 요리도 있으며, 일부 지역에서는 부시미트(야생동물 고기)도 식용으로 한다. 기름야자에서 얻는 팜유가 요리에 널리 사용된다. 전통 음료로는 기장이나 수수를 발효시켜 만든 술 등이 있다.
12.3. 문학 및 예술
구전 문학 전통이 풍부하여, 각 민족의 신화, 전설, 설화 등이 입에서 입으로 전해져 내려온다. 현대 문학은 프랑스어의 영향을 많이 받았으며, 에티엔 고예미드와 같은 소설가 겸 시인을 배출했다. 시각 예술 분야에서는 목각, 토기, 바구니 공예 등이 발달했으며, 각 민족의 고유한 문양과 형태를 특징으로 한다. 전통 악기 제작 또한 중요한 예술 분야 중 하나이다.
12.4. 음악
음악과 춤은 중앙아프리카 공화국 문화에서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며, 일상생활과 의례에 깊숙이 연관되어 있다. 각 민족은 고유한 전통 음악과 악기, 춤을 가지고 있으며, 북, 실로폰, 하프와 유사한 악기 등이 널리 사용된다. 현대 대중음악은 전통 리듬과 서양 음악의 요소가 결합된 형태를 보이며, 룸바, 수쿠스 등 인접 국가의 음악 스타일의 영향도 받았다.
12.5. 스포츠
중앙아프리카 공화국에서 가장 인기 있는 스포츠는 축구이다. 중앙아프리카 공화국 축구 국가대표팀은 중앙아프리카 축구 연맹이 관리하며, 바르텔레미 보간다 경기장에서 경기를 치른다. 그러나 국가대표팀은 아직 FIFA 월드컵이나 아프리카 네이션스컵 본선에 진출한 경험은 없다.
농구 또한 인기 있는 스포츠로, 중앙아프리카 공화국 농구 국가대표팀은 아프로바스켓에서 두 차례 우승했으며,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 팀으로는 최초로 1974년 농구 월드컵에 출전한 바 있다.
12.6. 세계유산
중앙아프리카 공화국에는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자연유산이 2건 있다.
- 마노보-궁다 생 플로리스 국립공원 (1988년 등재): 사바나 생태계와 풍부한 야생동물로 유명하다.
- 산가강 삼국 유역 (2012년 등재): 카메룬, 콩고 공화국과 공유하는 열대 우림 지역으로, 중앙아프리카 공화국은 이 중 장가-은도키 국립공원을 포함한다.
12.7. 공휴일
날짜 | 한국어 표기 | 프랑스어 표기 | 비고 |
---|---|---|---|
1월 1일 | 설날 | Nouvel an | |
3월 29일 | 독립의 아버지 바르텔레미 보간다 서거일 | Décès du Fondateur Barthélemy Boganda | |
8월 13일 | 독립기념일 | Fête de l'Indépendance | |
12월 1일 | 국경일 | Fête nationale, jour de défilé sur l'Avenue des Martyrs | 국가 퍼레이드의 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