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생애
프란시스코 아쿠냐 데 피게로아의 생애는 그의 출생과 유년기, 교육 배경, 그리고 초기 사회 활동 및 정치적 입장을 통해 형성되었다.
1.1. 출생과 유년기
프란시스코 아쿠냐 데 피게로아는 1791년 9월 3일 몬테비데오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인 하신토 아쿠냐 데 피게로아는 스페인 왕실 재무부의 재무관을 역임한 인물이었다. 이러한 배경은 그의 유년기에 영향을 미쳤으며, 비교적 안정된 환경에서 성장할 수 있었다.
1.2. 교육
아쿠냐의 아버지는 그를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로 유학을 보냈다. 그는 산 베르나르디노 수도원에서 초등 교육을 받았고, 부에노스아이레스의 산 카를로스 왕립 대학에서 학업을 마쳤다. 1810년 도시 침공으로 인해 학업을 중단하고 몬테비데오로 돌아오기 전까지 예술 분야를 공부했다.
1.3. 초기 활동과 정치적 입장
몬테비데오로 돌아온 아쿠냐는 아버지의 일을 도우며 시를 썼다. 당시 몬테비데오에는 인쇄소가 없었기 때문에 그의 작품은 즉시 출판되지 못했다. 그는 독립 운동에 동참하지 않고, 프란시스코 하비에르 엘리오와 가스파르 데 비고데트의 식민 정부에 충성을 유지했다. 1814년 몬테비데오가 함락된 후, 25세의 나이에 리우데자네이루의 포르투갈 궁정으로 망명하여 스페인을 위한 외교 업무를 수행했다. 반면 그의 아버지는 몬테비데오에 남아 새로운 정부로부터 재무관 직위를 인정받았다. 호세 아르티가스가 몰락하고 몬테비데오가 포르투갈의 지배하에 놓인 1818년, 아쿠냐는 몬테비데오로 돌아왔다.
2. 공직 경력
아쿠냐 데 피게로아는 문학 활동 외에도 여러 공직을 역임하며 사회에 기여했다. 그는 아버지의 뒤를 이어 국고 재무관을 지냈으며, 1846년에는 연극 작품 검열 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했다. 또한 1840년부터 1847년까지 공공 도서관 및 박물관의 관장을 역임하며 문화 행정 분야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다.
3. 주요 저작
아쿠냐 데 피게로아는 방대한 문학 작품을 남겼으며, 특히 국가 가사 작사자로서 큰 명성을 얻었다. 그의 작품은 주로 시와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으며, 독특한 문체적 특징을 보인다.
3.1. 국가 가사 작사
아쿠냐 데 피게로아는 우루과이의 국가와 파라과이의 국가의 가사를 작사한 것으로 가장 잘 알려져 있다. 우루과이의 국가인 '동방인들이여, 자유? 죽음!'은 1833년에 작사되었으며, 이는 우루과이의 독립과 민족 정신을 상징하는 중요한 작품으로 자리매김했다. 또한 그는 파라과이의 국가인 '파라과이인들이여, 자유? 죽음!'의 가사도 작사하여, 두 라틴 아메리카 국가의 정체성 확립에 기여했다.
3.2. 문학 작품과 문체
아쿠냐의 시집은 1857년에 처음 출판되었다. 그는 1848년에 자신의 광범위한 문학 작품들을 직접 편집했으며, 이 작품들은 그의 사후인 1890년에 '완전 작품집'이라는 총서명으로 12권에 걸쳐 출판되었다. 이 작품집에는 수많은 시와 이야기 등이 포함되어 있다. 그의 많은 작품은 강한 풍자적 어조를 띠고 있어, 당시 사회와 정치에 대한 그의 비판적인 시각을 엿볼 수 있다. 1965년에는 아르티가스 도서관의 우루과이 고전 컬렉션으로 그의 시 선집이 출판되기도 했다.
3.3. 살베 물티포르메
그의 가장 흥미로운 시 중 하나는 '살베 물티포르메'(Salve Multiforme스페인어, 다형 살베)이다. 작가는 이 시에 대해 두 가지 적용, 즉 두 가지 다른 목적이 있다고 설명했다. 첫 번째이자 가장 본질적이고 구체적인 목적은 순전히 종교적인 것이며, 두 번째는 세속적이거나 정치적인 적용을 가진다. 첫 번째 관점에서 이 시는 하늘의 신성한 여왕에게 바치는 끊임없는 숭배와 찬사의 헌사이며, 거의 무한한 방식으로 제시되고 재현될 수 있는 '살베' 기도의 형태이다. 작가는 이 기도의 가능한 모든 의역을 완성하는 데 수백만 년의 지속적이고 끊임없는 독서로도 충분하지 않을 정도로 많은 형태를 만들어낼 수 있다고 언급했다.
아쿠냐는 '살베'를 44개의 단편으로 나누어 각각 1번부터 44번까지 번호가 매겨진 44개의 열에 순서대로 배치했다. 각 단편은 해당 열에 26개의 자체 의역 또는 유사한 관련 단어를 포함하며, 이전 및 이후 열의 27개 단편 중 어느 것과도 결합될 수 있다. 이 과정에서 '살베'의 의미는 깨지지 않고 문법적 구문은 항상 유지되며, 전체 '살베' 내에서 이미 사용된 단편은 반복되지 않는다. 따라서 1열에서 임의의 단편을 선택하고, 2열에서 다른 단편을, 3열에서 또 다른 단편을 선택하는 식으로 44열까지 계속하면, 항상 완전한 '살베'의 의역이 형성된다. 이는 우아할 수도, 미약할 수도 있지만, 의미상 부적절하거나 일관성이 없는 경우는 결코 없었다.
따라서 1열에 27개의 단편이 있고, 이들이 다음 27개와 자유롭게 결합되고, 이들이 다시 다음 열과 점진적으로 상호 결합되므로, 수백만 개의 '살베'가 다소 다르게, 즉 단편들 간에 더 많거나 적은 차이를 가지고 결합되고 융합될 수 있다는 것이 분명하다. 44열에 도달하면 마지막 또는 보충 열에 있는 '아멘'이라는 단어가 추가되어 각 기도가 적절하게 끝난다.
[http://www.escaner.cl/escaner41/acorreo.html 살베 물티포르메 - 프란시스코 아쿠냐 데 피게로아의 미로 시]
4. 사망
프란시스코 아쿠냐 데 피게로아는 1862년 10월 6일 그의 고향인 몬테비데오에서 사망했다.
5. 유산과 평가
프란시스코 아쿠냐 데 피게로아는 우루과이와 파라과이 양국에서 국가 가사를 작사한 유일한 인물로서 독특한 역사적 위치를 차지한다. 비록 그가 식민 정부에 충성하는 등 보수적인 정치적 입장을 취했지만, 그의 문학적 업적, 특히 국가 가사들은 해당 국가들의 독립과 민족적 자부심을 상징하는 핵심적인 문화 유산으로 자리 잡았다. 이는 그의 정치적 신념을 초월하여 그의 예술적 재능이 국가적 정체성 형성에 기여했음을 보여준다. 그의 풍자적인 작품들은 당시 사회에 대한 통찰력 있는 비판을 담고 있으며, '살베 물티포르메'와 같은 실험적인 시는 그의 창의성과 문학적 깊이를 증명한다. 아쿠냐 데 피게로아는 단순한 작가를 넘어, 격동의 시대 속에서 문학을 통해 국가의 정신적 기반을 다지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 인물로 평가받고 있다.
6. 같이 보기
- 우루과이의 국가
- 우루과이 작가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