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파라과이 공화국은 남아메리카 중앙부에 위치한 내륙국으로, 파라과이강을 중심으로 국토가 동서로 나뉜다. 동쪽과 북동쪽으로는 브라질, 남쪽과 남서쪽으로는 아르헨티나, 북서쪽으로는 볼리비아와 국경을 접하고 있다. 수도는 아순시온이며, 인구의 대부분은 수도권과 동부 파라네냐 지역에 집중되어 있다.
파라과이는 스페인 식민 지배 이전에는 과라니족을 비롯한 여러 원주민 부족이 거주하던 지역이었다. 16세기 초 유럽인이 도래한 이후 스페인의 식민 통치를 받았으며, 이 시기 예수회 선교단의 활동은 파라과이 사회와 문화에 큰 영향을 미쳤다. 1811년 스페인으로부터 독립하였으나, 이후 호세 가스파르 로드리게스 데 프란시아와 로페스 가문의 독재, 그리고 삼국 동맹 전쟁과 차코 전쟁 등 크고 작은 전쟁과 정치적 혼란을 겪었다. 20세기 중반 이후 알프레도 스트로에스네르의 장기 군사 독재 정권을 거쳐 1989년 민주화되었으며, 현재는 대통령 중심의 공화제를 채택하고 있다.
경제는 전통적으로 농업과 목축업에 기반을 두고 있으며, 대두, 면화, 사탕수수, 육우 등이 주요 생산품이다. 이타이푸 댐과 하시에레타 댐을 통한 수력 발전은 국가 에너지의 핵심이며, 잉여 전력을 주변국에 수출하기도 한다. 최근에는 제조업과 서비스업 육성을 통한 경제 다변화를 모색하고 있으나, 여전히 소득 불평등과 빈곤 문제가 주요 과제로 남아있다.
파라과이 사회는 스페인 문화와 과라니 원주민 문화가 융합된 독특한 특징을 지닌다. 스페인어와 함께 과라니어가 공용어로 사용되며, 인구의 대다수는 메스티소이다. 로마 가톨릭이 주요 종교이며, 축구는 가장 인기 있는 스포츠이다. 냔두티 레이스, 아오포이 자수와 같은 전통 공예와 파라과이 하프(아르파)를 중심으로 한 음악도 파라과이 문화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
2. 국명 유래
파라과이라는 국명은 나라의 중심부를 북에서 남으로 가로지르는 파라과이강에서 유래했다. 이 강 이름의 기원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학설이 존재한다. 가장 유력한 설은 과라니어에서 유래했다는 것으로, "파라(Para)"는 "큰 강" 또는 "바다", "구아(Gua)"는 "~에서 온" 또는 "~에 속하는", "이(Y)"는 "물" 또는 "강"을 의미하여, 전체적으로 "큰 강에서 온 물" 또는 "바다로 흘러드는 강"으로 해석될 수 있다. 여기서 큰 강은 파라나강을 지칭하는 것으로 여겨진다.
다른 학설로는 과라니어 "파라과(paraguá)"는 "깃털 왕관"을, "이(y)"는 "물"을 의미하여 "물의 깃털 왕관"이라는 뜻이라는 설명도 있다. 또한, 16세기 스페인의 군인이자 과학자인 펠릭스 데 아사라(Félix de Azara스페인어)는 두 가지 설을 제시했는데, 하나는 파야과(Payaguá)라는 원주민 부족의 이름에서 유래하여 "파야과족의 강"이라는 의미라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파라과요(Paraguayo)"라는 위대한 추장의 이름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이다. 안토니오 루이스 데 몬토야(Antonio Ruiz de Montoya스페인어) 신부는 "파라과(Paraguá)"가 "혼잡한" 또는 "변화무쌍한"을 의미한다고 보아 "변화무쌍한 강"으로 해석하기도 했다. 이처럼 다양한 어원 설이 있으나, 주로 과라니어에서 파생된 의미로 이해되고 있다.
3. 역사
파라과이의 역사는 선콜럼버스 시대의 원주민 문화에서 시작하여 스페인 식민 통치, 독립과 국가 형성, 독재 정권, 그리고 민주화 과정을 거쳐 현대에 이르고 있다. 이 과정에서 파라과이는 여러 차례의 전쟁과 정치적 격변을 경험하며 오늘날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3.1. 선콜럼버스 시대와 초기 역사
스페인인이 도래하기 수천 년 전부터 현재의 파라과이 지역에는 다양한 원주민 집단이 거주하고 있었다. 이 중 가장 두드러진 존재는 동부 파라과이 지역에 최소 천 년 이상 거주해 온 농경민인 과라니족이었다. 과라니족은 주로 파라과이강 동쪽에 정착하여 마을을 이루고 옥수수, 카사바, 호박 등을 재배하며 생활했다. 그들은 정교한 사회 구조와 풍부한 신화 체계를 가진 문화를 발전시켰으며, 뛰어난 도예 기술과 직조 기술을 보유했다.
반면, 파라과이강 서쪽의 그란차코 지역은 건조하고 척박한 환경으로 인해 유목 또는 반유목 생활을 하는 여러 부족의 터전이었다. 이들 중 가장 강력한 세력은 과이쿠루(Guaycuru과라니어)계 부족들이었으며, 이들은 뛰어난 전사 집단으로 알려져 19세기 후반까지도 스페인 정착민과 이후 파라과이 정부에 저항했다.
이 지역의 원주민 부족들은 크게 다섯 개의 어족으로 분류되며, 이는 주요 부족 집단을 나누는 기준이 되었다. 서로 다른 언어를 사용하는 집단들은 자원과 영토를 두고 경쟁하는 관계에 놓여 있었다. 이들은 다시 각 어족 내에서 세부적인 언어 분파에 따라 여러 부족으로 나뉘었다. 현재 파라과이에는 17개의 고유한 언어-민족 집단이 남아 있다. 타완틴수유(잉카 제국)의 영향력은 이 지역까지 미치지 못했으며, 대부분의 원주민 공동체는 유럽인 도래 이전까지 독자적인 생활 방식을 유지했다. 16세기 초, 유럽인들이 라플라타강을 거슬러 이 지역에 도달하기 시작하면서 원주민 사회는 큰 변화를 맞이하게 된다.
3.2. 스페인 식민 시대

16세기 초, 유럽인들이 남아메리카 대륙에 도달하면서 파라과이 지역의 역사도 새로운 국면을 맞이했다. 1516년경 스페인 탐험가들이 처음 이 지역에 발을 들였으며, 1524년에는 알레호 가르시아(Aleixo Garcia스페인어)가 포르투갈 탐험대의 일원으로 파라과이 내륙을 탐험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본격적인 식민지화는 1536년부터 시작되었다.
1537년 8월 15일, 스페인 탐험가 후안 데 살라사르 데 에스피노사는 현재 파라과이의 수도인 아순시온을 건설했다. 아순시온은 라플라타강 유역에서 내륙으로 진출하여 전설 속의 "은의 산(Sierra de la Plata스페인어)"을 찾고, 알토페루(現 볼리비아)로 가는 통로를 확보하기 위한 전략적 거점이었다. 또한 포르투갈의 남하를 견제하는 전초기지 역할도 수행했다. 아순시온은 곧 리오데라플라타 총독부의 첫 번째 수도가 되었으며, 남아메리카 내륙 지역 스페인 식민지 행정의 중심지로 발전했다.
스페인 정착민들은 상대적으로 농경 생활에 익숙하고 우호적이었던 과라니족과 동맹을 맺어 다른 적대적인 원주민 부족에 대항했다. 이 과정에서 스페인 남성과 과라니 여성 간의 통혼이 광범위하게 이루어졌고, 이는 메스티소 인구 형성의 기반이 되었다. 1617년, 아순시온을 중심으로 한 파라과이 총독령(Gobernación del Paraguay스페인어)에서 부에노스아이레스를 중심으로 한 리오데라플라타 총독령과 투쿠만 총독령이 분리되었다. 1776년에는 페루 부왕령으로부터 리오데라플라타 부왕령이 신설되면서 파라과이는 이에 편입되었다. 식민지 시대 동안 파라과이는 주변 지역에 비해 상대적으로 고립되어 발전이 더디었으나, 예수회 선교단의 활동은 이 지역 사회와 문화에 독특한 영향을 미쳤다.
3.2.1. 예수회 선교단 활동
17세기부터 18세기 중반까지 파라과이와 인접 지역에서는 예수회 선교사들의 활동이 두드러졌다. 예수회는 스페인 왕실의 지원을 받아 원주민, 특히 과라니족을 대상으로 가톨릭 포교 활동을 전개했다. 이들은 "리덕션(reducción)"이라 불리는 독자적인 공동체 마을을 건설하여 과라니족을 외부의 위협으로부터 보호하고 교화하고자 했다.
리덕션은 예수회 신부들의 지도하에 과라니족이 집단으로 거주하며 농업, 목축, 공예 등 경제 활동을 영위하는 자치적인 형태로 운영되었다. 예수회는 과라니족에게 유럽의 농업 기술, 건축 기술, 음악, 미술 등을 전수하는 한편, 과라니 문화를 존중하여 과라니어로 미사를 집전하고 교육을 실시하기도 했다. 리덕션은 브라질 상파울루에서 노예를 찾아 습격해오던 포르투갈계 노예 사냥꾼인 반데이란치스(반데이란테)로부터 과라니족을 보호하는 중요한 역할을 했다. 예수회는 과라니족으로 구성된 민병대를 조직하여 반데이란치스의 공격을 여러 차례 격퇴했으며, 이는 스페인 식민지의 변경을 방어하는 데 기여했다.
이러한 예수회 리덕션은 경제적으로도 자립하여 상당한 부를 축적했으며, 마테차와 같은 특산물을 유럽으로 수출하기도 했다. 일부 학자들은 리덕션을 일종의 "사회주의 공화국" 또는 "기독교 공산주의" 공동체로 평가하기도 한다. 그러나 예수회의 독자적인 세력 확장과 경제적 성공은 스페인 왕실과 식민지 지주층의 견제를 받게 되었다. 결국 1767년, 스페인 국왕 카를로스 3세는 아메리카 대륙을 포함한 스페인 영토 전역에서 예수회를 추방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이로 인해 150여 년간 번성했던 파라과이의 예수회 리덕션은 해체되었고, 그곳에 거주하던 과라니족은 흩어지거나 스페인 식민 당국의 직접적인 통치하에 놓이게 되었다. 예수회 추방은 파라과이 사회와 경제에 큰 변화를 가져왔으며, 과라니족의 생활 기반을 약화시키는 결과를 초래했다. 현재 파라과이에는 당시 예수회 리덕션의 유적인 라 산티시마 트리니다드 데 파라나와 헤수스 데 타바랑게 예수회 선교단 시설이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되어 있다.
서부 파라과이의 그란차코 지역에서는 유목 생활을 하는 과이쿠루족과 다른 부족들이 16세기부터 스페인의 정착과 기독교 전파에 강력하게 저항했다. 이들 대부분은 18세기와 19세기에 걸쳐 메스티소 인구에 흡수되었다.
3.3. 독립과 국가 형성

19세기 초, 나폴레옹 전쟁으로 스페인 본국이 약화되자 아메리카 식민지 전역에서 독립 움직임이 확산되었다. 1810년 5월 25일,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5월 혁명이 일어나 라플라타 부왕령의 자치를 선언했을 때, 파라과이 주는 부에노스아이레스 중심의 독립 움직임에 동조하지 않았다. 부에노스아이레스 정부는 마누엘 벨그라노 장군을 파견하여 파라과이를 복속시키려 했으나, 파라과이 민병대는 이를 격퇴했다.
1811년 5월 14일, 파라과이의 크리오요(식민지 태생 스페인인) 지도자들은 아순시온에서 봉기하여 스페인 총독을 축출하고 독립을 선언했다. 이로써 파라과이는 라틴아메리카에서 가장 먼저 실질적인 독립을 쟁취한 국가 중 하나가 되었다. 초기에는 여러 지도자가 참여하는 공동 통치 체제가 수립되었으나, 곧 강력한 지도력을 지닌 인물들이 등장하며 정치적 혼란을 겪었다.
이러한 혼란 속에서 호세 가스파르 로드리게스 데 프란시아 박사가 점차 정치적 영향력을 확대해 나갔다. 그는 1814년 최고 통치자로 선출되었고, 1816년에는 종신 독재관의 지위에 올랐다. 프란시아 정권 하에서 파라과이는 국가의 기틀을 마련하고 안정을 유지하려 했으나, 동시에 고립주의와 강력한 중앙집권 통치라는 특징을 보이게 된다. 독립 초기 파라과이는 주변 국가들의 간섭과 영토 분쟁 위협에 직면했으며, 국가의 생존과 발전을 위한 독자적인 길을 모색해야 했다.
3.3.1. 호세 가스파르 로드리게스 데 프란시아 통치
호세 가스파르 로드리게스 데 프란시아는 1814년부터 1840년 사망할 때까지 파라과이를 통치한 초대 독재자로, "El Supremo엘 수프레모스페인어" (최고 통치자)라는 별칭으로도 불렸다. 법학자 출신인 그는 파라과이 독립 운동의 핵심 인물이었으며, 독립 후에는 강력한 중앙집권적 통치 체제를 구축했다.
프란시아는 국가의 완전한 자립과 외세의 간섭 배제를 목표로 극단적인 고립주의 정책을 펼쳤다. 그는 외국과의 교역을 엄격히 통제하고 국경을 봉쇄하여 외부 세계와의 접촉을 최소화했다. 이러한 정책은 파라과이를 주변국의 정치적 혼란과 경제적 종속으로부터 보호하려는 의도였으나, 동시에 국가 발전의 정체를 초래하기도 했다.
내부적으로 프란시아는 가톨릭교회와 전통적인 크리오요 엘리트 세력의 영향력을 약화시키기 위해 노력했다. 그는 교회의 재산을 몰수하고 국가 통제하에 두었으며, 크리오요 간의 결혼을 금지하고 대신 메스티소, 흑인, 원주민과의 결혼을 장려하여 식민 시대 엘리트의 힘을 약화시키고 혼혈 사회를 만들려 했다. 이를 통해 농민과 하층민의 지지를 확보하고자 했다. 또한, 토지의 국유화를 추진하여 국가가 경제 전반을 통제하는 시스템을 만들었다. 그의 통치 기간 동안 파라과이는 대외 부채 없이 자급자족 경제를 유지했으며, 기초 교육 보급에도 힘썼다는 긍정적인 평가도 있다.
그러나 프란시아의 통치는 철권 통치였으며, 반대파에 대해서는 가혹한 탄압을 가했다. 1820년, 풀헨시오 예그로스를 비롯한 독립 초기 지도자들이 프란시아에 대항하는 쿠데타를 계획했으나, 사전에 발각되어 주동자들은 처형되거나 종신형에 처해졌다. 언론과 정치 활동의 자유는 극도로 제한되었으며, 그의 통치에 대한 평가는 여전히 논쟁적이다. 한편으로는 국가의 자주성을 지키고 사회 안정을 이룩했다는 긍정적 측면이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폐쇄적이고 억압적인 독재로 인해 민주주의 발전이 저해되었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그의 고립주의와 강력한 통제는 파라과이 사회에 깊은 영향을 미쳤으며, 이후 파라과이 역사 전개에 중요한 배경이 되었다.
3.3.2. 로페스 가문 통치


호세 가스파르 로드리게스 데 프란시아 사망 후, 파라과이는 잠시 정치적 혼란을 겪었으나 1841년 카를로스 안토니오 로페스(프란시아의 조카로 알려짐)가 권력을 장악하면서 안정을 되찾았다. 그는 1844년 대통령으로 취임하여 1862년 사망할 때까지 파라과이를 통치했다. 카를로스 안토니오 로페스는 프란시아의 고립주의 정책에서 벗어나 점진적인 개방 정책을 추진하며 국가 근대화에 힘썼다. 그는 외국과의 교역을 확대하고, 유럽 기술자들을 초빙하여 철도, 조선소, 제철소, 무기 공장 등을 건설했다. 또한 교육을 장려하고 아순시온에 국립대학교를 설립하는 등 인재 양성에도 관심을 기울였다. 1842년에는 아르헨티나와 불가침 조약을 맺고 공식적으로 파라과이의 독립을 선언했으며, 1844년에는 노예제를 폐지하는 새로운 헌법을 제정했다. 그의 통치 하에 파라과이는 경제적으로 발전하고 국방력도 강화되었으나, 여전히 로페스 가문 중심의 권위주의적 통치 방식은 지속되었다.
1862년 카를로스 안토니오 로페스가 사망하자, 그의 장남인 프란시스코 솔라노 로페스가 대통령직을 계승했다. 프란시스코 솔라노 로페스는 아버지의 정책을 이어받아 국가 발전과 군비 증강에 더욱 박차를 가했다. 그는 유럽에서 최신 무기를 도입하고 군사 훈련을 강화하여 파라과이군을 남미에서 손꼽히는 강력한 군대로 만들고자 했다. 유바이(Ybycuí스페인어) 제철소에서는 대포, 박격포, 총알 등을 생산했으며, 아순시온 조선소에서는 하천용 군함을 건조했다. 또한 아파강과 그란차코 지역을 따라 요새를 구축하는 등 국방력 강화에 주력했다.
로페스 가문의 통치 기간 동안 파라과이는 생산과 분배에서 강력한 중앙집권적 통제가 이루어졌으며, 공적 영역과 사적 영역의 구분이 모호하여 로페스 가문이 국가를 거대한 사유지처럼 운영한다는 비판도 있었다. 정부는 모든 수출품을 통제했으며, 특히 마테차와 고급 목재 수출은 국가 재정의 중요한 부분을 차지했다. 파라과이 정부는 극단적인 보호무역주의를 채택하여 외국으로부터 차관을 받지 않았고 수입품에 높은 관세를 부과했다. 이러한 정책은 파라과이 사회의 자급자족을 가능하게 했고, 아르헨티나나 브라질이 겪었던 부채 문제를 피할 수 있게 했다.
사회경제적 발전 측면에서, 당시 영국의 판사이자 정치인이었던 로버트 필리모어 경은 파라과이를 "남미에서 가장 발전된 공화국"이라고 평가하기도 했다. 전쟁 전후 파라과이군 공병 중령이었던 조지 톰슨은 로페스 정부가 파라과이에 비교적 좋은 정부였다고 평가하며, 범죄가 거의 없고 국민 대다수가 생계를 위해 거의 일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행복했다고 기술했다. 그러나 이러한 발전 이면에는 권위주의적 통치와 잠재적인 대외 갈등 요인이 존재했으며, 이는 결국 파멸적인 삼국 동맹 전쟁으로 이어지게 된다.
3.4. 삼국 동맹 전쟁

1864년부터 1870년까지 파라과이는 브라질 제국, 아르헨티나, 그리고 브라질과 아르헨티나의 지원을 받는 우루과이의 콜로라도당 반군으로 구성된 삼국 동맹과 처절한 전쟁을 치렀다. 이 전쟁은 남아메리카 역사상 가장 피비린내 나는 국제 분쟁으로 기록되어 있으며, 파라과이에게는 재앙적인 결과를 초래했다.
전쟁의 원인은 복합적이었으나, 주요 요인으로는 파라과이의 급속한 성장과 독자 노선에 대한 주변 강대국들의 견제, 라플라타강 유역의 패권 다툼, 그리고 우루과이 내정 문제에 대한 파라과이와 브라질의 개입 등이 꼽힌다. 1864년 10월, 브라질이 우루과이의 블랑코당 정부를 전복시키기 위해 침공하자, 블랑코당과 동맹 관계였던 파라과이의 프란시스코 솔라노 로페스 대통령은 이를 자국에 대한 위협으로 간주했다. 파라과이는 브라질의 침공 중단을 요구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자, 1864년 12월 브라질의 마투그로수 지역을 공격하며 전쟁이 시작되었다. 이후 1865년 3월에는 아르헨티나 영토 통과를 거부당하자 아르헨티나에도 선전포고했다. 1865년 5월 1일, 브라질, 아르헨티나, 그리고 새로 수립된 우루과이의 콜로라도당 정부는 파라과이에 대항하는 비밀 삼국 동맹 조약을 체결했다.
전쟁 초기 파라과이군은 용맹하게 싸웠으나, 압도적인 병력과 자원을 동원한 삼국 동맹군에 점차 밀리기 시작했다. 주요 전투로는 1866년 5월 24일의 투유티 전투가 있으며, 이 전투에서 파라과이군은 막대한 사상자를 냈다. 파라과이 국민들은 로페스 대통령의 지휘 아래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처절하게 저항했으나, 전쟁은 장기화되었고 기아와 질병까지 만연했다.
1869년 아순시온이 함락되었고, 브라질 제국군은 파라과이 국립 문서기록소의 많은 자료를 리우데자네이루로 약탈해갔다. 이 자료들 중 일부는 "리우 브랑쿠 컬렉션"으로 알려져 현재 아순시온 국립 문서기록소에 반환되었으나, 브라질의 전쟁 관련 기록은 여전히 기밀로 분류되어 있어 식민 시대와 초기 파라과이 역사 연구에 어려움을 주고 있다.
전쟁은 1870년 3월 1일, 세로코라 전투에서 프란시스코 솔라노 로페스 대통령이 항복을 거부하고 전사하면서 끝났다. 전쟁의 결과는 파라과이에게 참혹했다. 국토의 약 25~33%를 아르헨티나와 브라질에 할양해야 했으며, 막대한 전쟁 배상금을 물어야 했다. 무엇보다 인명 피해가 극심하여, 전쟁 전 인구의 절반 이상(일부 추산에 따르면 성인 남성의 90% 포함)이 사망한 것으로 추정된다. 한 추정에 따르면 전쟁 전 45만에서 90만 명 사이였던 인구가 전쟁 후 22만 명으로 줄었고, 이 중 성인 남성은 2만 8천 명에 불과했다고 한다.
삼국 동맹 전쟁은 파라과이의 경제 기반을 완전히 파괴했으며, 정치적·사회적으로도 깊은 상처를 남겼다. 국가 재건은 더디게 진행되었고, 이후 파라과이는 장기간 정치적 불안정과 경제적 어려움에 시달리게 되었다. 전쟁의 책임과 원인에 대해서는 오늘날까지도 다양한 시각이 존재하며, 관련국들 사이에서 논쟁이 계속되고 있다.
3.5. 20세기 초반
삼국 동맹 전쟁의 참혹한 패배 이후, 파라과이는 국가 재건이라는 어려운 과제에 직면했다. 인구는 급감했고 경제는 파탄났으며, 정치적 불안정은 계속되었다. 전쟁 배상금 문제와 영토 상실은 국민들에게 큰 상실감을 안겨주었다. 이 시기 파라과이는 아르헨티나와 브라질의 경제적, 정치적 영향력 하에 놓이게 되었다.
1870년대 후반부터 외국 자본이 유입되고 이민이 장려되었으나, 국가 발전은 더디었다. 1880년대에는 파라과이의 주요 정당인 자유당과 콜로라도당이 창당되었다. 이 두 정당은 이후 파라과이 정치를 양분하며 때로는 격렬하게 대립했다. 20세기 초반까지 양당 간의 권력 다툼과 잦은 쿠데타로 인해 정치적 혼란이 지속되었다. 부정 선거가 만연했고, 민주주의는 제대로 정착되지 못했다.
1904년에는 콜로라도당의 통치에 반대하는 자유당의 혁명이 일어나 자유당이 집권했으나, 자유당 내부의 파벌 싸움으로 인해 정치적 불안정은 더욱 심화되었다. 1904년부터 1954년까지 파라과이에는 31명의 대통령이 있었으며, 이들 대부분은 무력으로 축출되었다. 이러한 정치적 불안은 사회 경제 발전을 저해하는 주요 요인이 되었다. 1922년에는 자유당 내 파벌 간의 갈등이 1922년 파라과이 내전으로 이어지기도 했다. 이러한 혼란 속에서도 국토의 미개척지였던 그란차코 지역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이 지역의 영유권을 둘러싸고 볼리비아와의 갈등이 점차 고조되었다.
3.5.1. 차코 전쟁

1932년부터 1935년까지 파라과이는 이웃 국가인 볼리비아와 그란차코 지역의 영유권을 두고 차코 전쟁을 벌였다. 그란차코 지역은 건조하고 인구가 희박한 광대한 평원이었으나, 석유 매장 가능성이 제기되면서 양국 간의 오랜 영토 분쟁이 격화되었다. 또한, 볼리비아는 1879년 태평양 전쟁에서 칠레에게 패배하여 태평양 연안을 상실한 후, 파라과이강을 통해 대서양으로 진출할 수 있는 통로를 확보하고자 차코 지역에 대한 영유권을 주장했다.
전쟁은 1932년 9월, 볼리비아군의 차코 지역 내 파라과이 요새 공격으로 본격화되었다. 초기에는 군사력과 장비 면에서 우세했던 볼리비아가 공세를 펼쳤으나, 파라과이군은 호세 펠릭스 에스티가리비아 장군의 지휘 아래 차코 지역의 지형과 기후에 더 잘 적응하며 효과적으로 방어하고 반격했다. 파라과이군은 과라니어를 사용하여 통신함으로써 볼리비아군의 정보 해독을 어렵게 만들기도 했다. 양측 모두 막대한 인명 피해와 물자 손실을 겪었으며, 전쟁은 매우 치열하게 전개되었다.
국제 사회의 중재 노력 끝에 1935년 6월 휴전이 성립되었고, 1938년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평화 조약이 체결되었다. 이 조약에 따라 파라과이는 분쟁 지역이었던 차코 보레알(Chaco Boreal스페인어)의 약 4분의 3을 차지하게 되어 실질적인 승리를 거두었다.
차코 전쟁에서의 승리는 파라과이 국민들에게 국가적 자부심을 고취시켰으나, 전쟁으로 인한 경제적 타격과 약 4만 명에 달하는 인명 손실은 파라과이 사회를 더욱 피폐하게 만들었다. 전쟁 후, 자유당 정치인들에 대한 국민적 불만이 고조되면서 군 장교들이 정치 전면에 나서게 되었다. 1936년 2월에는 라파엘 프랑코 대령이 페브레로 혁명을 일으켜 집권하는 등, 파라과이는 또다시 정치적 불안정기에 접어들었다. 차코 전쟁의 결과는 파라과이의 영토를 확장시켰지만, 동시에 20세기 중반 군사 독재 정권 등장의 배경이 되기도 했다.
3.5.2. 1947년 내전
1947년 파라과이에서는 격렬한 내전이 발생했다. 이 내전은 이히니오 모리니고 장군의 권위주의적 통치에 대한 불만과 주요 정치 세력 간의 갈등이 폭발하면서 일어났다. 모리니고 정권은 1940년부터 1948년까지 지속되었으며, 제2차 세계대전 동안에는 연합국 측에 가담했으나 국내적으로는 민주적 요구를 억압했다.
내전의 주요 대립 세력은 모리니고 정부를 지지하는 콜로라도당의 일부 파벌과 군부, 그리고 이에 반대하는 자유당, 파라과이 공산당, 그리고 당시 사회주의 성향의 혁명적 페브레리스타당(Partido Revolucionario Febrerista스페인어) 연합이었다. 반정부 연합 세력은 민주주의 회복과 모리니고 정권 타도를 목표로 봉기했다.
내전은 약 6개월간 지속되었으며, 치열한 전투 끝에 모리니고 정부군이 반란을 진압하고 승리했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수많은 사상자가 발생했으며, 약 20만 명 이상의 파라과이인이 정치적 박해를 피해 국외로 망명하는 등 사회적으로 큰 혼란과 분열을 야기했다.
1947년 내전은 파라과이 정치 지형에 중대한 영향을 미쳤다. 콜로라도당은 내전 승리를 통해 정치적 헤게모니를 강화했으며, 이는 이후 알프레도 스트로에스네르의 장기 독재 정권 수립의 발판이 되었다. 반면, 자유당을 비롯한 야당 세력은 크게 약화되었고, 파라과이 사회의 민주주의 발전은 더욱 요원해졌다. 내전의 상처는 오랫동안 파라과이 사회에 남아 정치적 갈등의 요인이 되기도 했다.
3.6. 스트로에스네르 독재 정권
1954년 5월 4일, 알프레도 스트로에스네르 장군은 군사 쿠데타를 통해 페데리코 차베스 대통령을 축출하고 권력을 장악했다. 이로써 파라과이는 1989년까지 35년간 지속된 길고 어두운 군사 독재 시대로 접어들었다. 스트로에스네르는 콜로라도당을 자신의 통치 기반으로 삼아 일당 독재 체제를 구축했으며, 군부의 강력한 지지를 바탕으로 철권 통치를 펼쳤다.
스트로에스네르 정권은 반공주의를 국시로 내세우며 미국을 비롯한 서방 국가들과 긴밀한 관계를 유지했다. 특히 냉전 시기 미국의 대(對)라틴아메리카 정책에 적극 협조하며, 콘도르 작전과 같은 역내 반공 군사 작전에도 참여했다. 경제적으로는 외국 자본 유치와 이타이푸 댐 건설과 같은 대규모 인프라 사업을 통해 어느 정도의 경제 성장을 이루었으나, 그 이익은 소수의 측근과 지지 세력에게 집중되었고, 부정부패가 만연했다.
그러나 스트로에스네르 통치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극심한 인권 탄압이었다. 정권에 반대하는 정치인, 노동 운동가, 학생, 지식인, 원주민 등은 무자비하게 탄압받았다. 비밀경찰을 동원한 감시, 불법 체포, 고문, 살해, 강제 실종 등이 일상적으로 자행되었으며, 언론과 집회·결사의 자유는 철저히 억압되었다. 수많은 파라과이인이 정치적 박해를 피해 국외로 망명해야 했다. 정권은 부정선거를 통해 7차례나 재집권하며 장기 독재를 이어갔다.
1980년대 후반, 스트로에스네르의 고령화, 정권 내부의 균열, 경제 침체, 그리고 국제 사회의 비판이 고조되면서 독재 체제는 흔들리기 시작했다. 1988년 총선을 앞두고 야당의 시위와 반정부 성명이 이어졌으나, 스트로에스네르는 89%의 득표율로 재선되었다고 발표했다.
결국 1989년 2월 3일, 스트로에스네르의 최측근이었던 안드레스 로드리게스 장군이 주도한 군사 쿠데타로 스트로에스네르 정권은 막을 내렸다. 스트로에스네르는 브라질로 망명했으며, 그곳에서 2006년 사망했다. 그의 장기 독재는 파라과이 사회에 깊은 상처를 남겼으며, 민주주의와 인권 발전에 심각한 부정적 영향을 미쳤다. 독재 기간 동안의 인권 유린 실태는 이후 진실 규명과 과거사 청산의 중요한 과제가 되었다.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파라과이는 전쟁 범죄로 기소된 나치 전범들의 은신처가 되기도 했다.
3.7. 민주화와 현대
1989년 2월 3일, 알프레도 스트로에스네르의 35년간의 독재 정권은 그의 사돈이자 최측근이었던 안드레스 로드리게스 장군이 이끈 군사 쿠데타로 막을 내렸다. 로드리게스는 임시 대통령으로 취임하여 정치, 법률, 경제 개혁을 단행하고 국제 사회와의 관계 개선을 시작했다. 농촌 빈민층의 토지에 대한 깊은 갈망을 반영하듯, 수백 명이 즉시 스트로에스네르와 그의 측근들이 소유했던 미사용 토지 수천 에이커를 점거했다. 1990년 중반까지 19,000가구가 34.00 만 acre를 점유했다. 당시 총인구 410만 명 중 절반 이상인 206만 명이 농촌 지역에 거주했으며, 대부분은 토지가 없었다.
1992년 6월, 새로운 파라과이 헌법이 제정되어 민주적 통치 체제를 확립하고 기본적 인권을 대폭 향상시켰다. 1993년 5월, 콜로라도당 후보 후안 카를로스 와스모시가 국제 참관단이 자유롭고 공정하다고 평가한 선거에서 거의 40년 만에 파라과이 최초의 민간인 대통령으로 선출되었다.
미국, 미주 기구(OAS), 그리고 역내 다른 국가들의 지원으로 파라과이 국민들은 1996년 4월 당시 육군 총장이던 리노 오비에도 장군이 와스모시 대통령을 축출하려던 시도를 거부했다.
오비에도는 1998년 대선에서 콜로라도당 후보로 지명되었다. 그러나 대법원이 1996년 쿠데타 시도 관련 혐의에 대한 그의 유죄 판결을 4월에 확정하면서 그는 출마할 수 없었고 감옥에 수감되었다. 그의 전 러닝메이트였던 라울 쿠바스 그라우가 콜로라도당 후보가 되어 5월에 국제 참관단이 자유롭고 공정하다고 평가한 선거에서 당선되었다. 쿠바스가 8월에 취임한 후 가장 먼저 한 일 중 하나는 오비에도의 형을 감형하고 석방한 것이었다. 1998년 12월, 파라과이 대법원은 이러한 조치가 위헌이라고 선언했다. 이러한 긴장된 분위기 속에서, 1999년 3월 23일 부통령이자 오랜 오비에도의 경쟁자였던 루이스 마리아 아르가냐가 암살되자 하원은 다음 날 쿠바스를 탄핵했다. 3월 26일, 8명의 학생 반정부 시위대가 살해되었는데, 이는 오비에도 지지자들에 의해 자행된 것으로 널리 알려졌다. 이로 인해 쿠바스에 대한 반대가 커졌고, 그는 3월 28일 사임했다. 쿠바스의 반대파였던 상원의장 루이스 앙헬 곤살레스 마치가 같은 날 평화적으로 대통령에 취임했다.

2003년에는 니카노르 두아르테 프루토스가 대통령으로 선출되었다. 2008년 총선에서는 콜로라도당이 여론 조사에서 우세했다. 그들의 후보는 파라과이 역사상 처음으로 주요 정당 후보로 지명된 여성인 교육부 장관 블랑카 오벨라르였다. 60년간의 콜로라도당 통치 끝에 유권자들은 전 로마 가톨릭 주교이자 시민 정부의 전문 정치인이 아니었던 페르난도 루고를 선택했다. 그는 파라과이 최대 야당인 정통급진자유당 소속이었으며, 해방신학의 지지자였다. 루고는 파라과이 대통령 선거에서 역사적인 승리를 거두며 여당 후보를 물리치고 61년간의 보수 통치를 종식시켰다. 루고는 거의 41%의 득표율을 얻었고, 콜로라도당의 블랑카 오벨라르는 거의 31%를 얻었다. 퇴임하는 니카노르 두아르테 프루토스 대통령은 이 순간을 국가 역사상 처음으로 정부가 헌법적이고 평화로운 방식으로 야당 세력에게 권력을 이양한 때라고 칭송했다.
루고는 2008년 8월 15일 취임했다. 루고 행정부는 부패 감소와 경제적 불평등 해소를 두 가지 주요 우선 과제로 설정했다. 루고 대통령 당선 이후의 정치적 불안정과 내각 내 분쟁은 콜로라도당에 대한 대중의 지지 일부를 회복시키는 데 기여했다. 보도에 따르면 사업가 오라시오 카르테스가 분쟁 속에서 새로운 정치 인물로 부상했다. 미국 마약단속국(DEA)이 마약 밀매와 관련하여 카르테스를 강력히 비난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정치 무대에서 계속 지지자를 모았다.
2012년 6월 21일, 루고 대통령에 대한 탄핵 절차가 야당이 장악한 하원에서 시작되었다. 루고는 절차 준비에 24시간도 채 주어지지 않았고 변호에는 단 2시간만 허용되었다. 탄핵은 신속히 승인되었고, 역시 야당이 장악한 상원에서의 재판 결과 루고는 대통령직에서 해임되었고 페데리코 프랑코 부통령이 대통령직을 맡게 되었다. 루고의 경쟁자들은 농촌 무단 점유자에 대한 퇴거 명령을 집행하던 중 경찰이 무장 농민들의 매복 공격을 받아 경찰관 8명과 농민 9명 등 17명이 사망한 무력 충돌에 대해 그를 비난했다. 루고의 지지자들은 의회 밖에서 이 결정을 "정치적 동기가 있는 쿠데타"라며 항의했다. 2012년 6월 22일 루고의 대통령직 해임은 남미 국가 연합(UNASUR)과 다른 이웃 국가들, 특히 당시 좌파 지도자들이 집권하고 있던 국가들에 의해 쿠데타로 간주되었다. 그러나 정보를 수집하기 위해 파라과이에 사절단을 파견한 미주 기구는 탄핵 절차가 파라과이 헌법에 따라 수행되었으므로 쿠데타가 아니라고 결론 내렸다.
2013년 8월부터 2018년 8월 15일까지 오라시오 카르테스가 파라과이 대통령을 역임했다. 2018년 8월 15일부터 마리오 아브도 베니테스가 대통령직을 수행했다. 두 사람 모두 보수적인 콜로라도당 소속이다. 마리오 아브도 대통령은 브라질의 극우 대통령(2019-2022년 재임) 자이르 보우소나루와 긴밀한 관계를 누렸다. 2019년 2월, 마리오 아브도 베니테스 대통령은 보우소나루 대통령이 파라과이 군사 독재자 알프레도 스트로에스네르를 "비전을 가진 사람"이라고 칭찬할 때 그의 곁에 있었다.
2023년 5월, 오랜 집권당인 콜로라도당의 산티아고 페냐가 2023년 파라과이 총선에서 승리하여 마리오 아브도의 뒤를 이어 차기 파라과이 대통령이 되었다. 2023년 8월 15일, 산티아고 페냐가 파라과이의 새 대통령으로 취임했다.
4. 지리
파라과이는 파라과이강에 의해 지리적으로 뚜렷하게 구분되는 두 지역으로 나뉜다. 동부 지역(Región Oriental스페인어)과 서부 지역(Región Occidental스페인어, 또는 차코(Chaco스페인어)라고도 불리며 그란차코의 일부)이다. 국토는 남위 19도에서 28도, 서경 54도에서 63도 사이에 위치한다. 파라과이는 볼리비아와 함께 남아메리카의 두 내륙국 중 하나이지만, 파라나-파라과이 수로를 통해 대서양으로 접근할 수 있는 항구를 보유하고 있다.
4.1. 지형 및 지역 구분
파라과이의 국토는 중앙을 흐르는 파라과이강을 기준으로 크게 두 지역으로 나뉜다.
동부 파라과이 (파라네냐, Región Oriental스페인어 또는 Paraneña스페인어)는 국토 면적의 약 40%를 차지하지만, 전체 인구의 97% 이상이 이곳에 거주한다. 지형은 대부분 초원과 수풀이 우거진 구릉지로 이루어져 있으며, 토양이 비옥하여 농업이 발달했다. 브라질 국경을 따라 아만바이 산맥(Amambay Mountains스페인어)과 음바라카유 산맥(Mbaracayú Mountains스페인어)이 뻗어 있다. 이 지역에는 알토파라나 대서양림, 세하두, 판타나우, 파라나 침수 사바나 등 다양한 생태 지역이 포함된다. 주요 도시인 아순시온, 시우다드델에스테, 엥카르나시온 등이 모두 이 지역에 위치한다.
서부 파라과이 (차코, Región Occidental스페인어 또는 Chaco스페인어)는 국토 면적의 약 60%를 차지하지만, 인구는 전체의 4% 미만으로 매우 희박하다. 그란차코 평원의 일부로, 지형은 대부분 낮고 평평하며 건조하거나 반건조한 기후를 보인다. 일부 지역은 습지 평야로 이루어져 있다. 차코 전쟁의 주요 무대였던 이 지역은 석유 매장 가능성이 제기되기도 했으며, 전통적으로 메노파 이주민 공동체와 일부 원주민 부족들이 거주하고 있다. 주요 생태 지역으로는 차코와 습윤 차코가 있다.
파라과이는 6개의 육상 생태 지역을 포함한다: 알토파라나 대서양림, 그란차코, 세하두, 습윤 차코, 판타나우, 파라나 침수 사바나. 2019년 산림 경관 보전 지수(Forest Landscape Integrity Index영어) 평균 점수는 6.39/10으로, 전 세계 172개국 중 74위를 기록했다. 과라니 대수층은 이 지역에 중요한 외류 유역이다. 파라과이는 내륙국이지만 주목할 만한 호숫가 해변이 다수 존재한다.
4.2. 기후
파라과이의 기후는 전반적으로 아열대 기후에서 열대 기후에 걸쳐 나타난다. 이 지역 대부분의 육지처럼 파라과이도 우기와 건기만을 가지고 있다. 바람은 파라과이 날씨에 큰 영향을 미치는데, 10월에서 3월 사이에는 북쪽의 아마존 분지에서 따뜻한 바람이 불어오고, 5월에서 8월 사이에는 안데스 산맥에서 차가운 바람이 불어온다.
자연적인 장벽 역할을 할 산맥이 없어 바람은 시속 161 km/h까지 발달할 수 있다. 이는 또한 단기간에 상당한 기온 변화를 야기하기도 한다. 4월에서 9월 사이에는 기온이 영하로 떨어질 때도 있다. 1월이 가장 더운 여름 달로, 일평균 기온은 28.9 °C이다.
강수량은 전국적으로 극적인 차이를 보이는데, 동부 지역에는 상당한 양의 비가 내리는 반면, 서부 끝 지역은 반건조 상태이다. 동쪽 끝의 삼림 지대는 연평균 170 cm의 비가 내리지만, 서부 차코 지역은 연평균 50 cm를 넘지 않는다. 서부 지역의 비는 불규칙하고 빠르게 증발하여 이 지역의 건조함에 기여한다.
4.3. 주요 강과 수자원
파라과이는 내륙국이지만 풍부한 수자원을 보유하고 있으며, 주요 강들은 국가의 생명선 역할을 한다.
가장 중요한 강은 국토를 동서로 가르는 파라과이강이다. 이 강은 북쪽의 판타나우 습지에서 발원하여 남쪽으로 흘러 아르헨티나에서 파라나강과 합류한다. 파라과이강은 수운의 중심 통로이며, 수도 아순시온을 비롯한 주요 도시들이 강 유역에 발달해 있다. 또한 농업용수 공급과 어업에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
또 다른 주요 강은 파라나강으로, 브라질고원에서 발원하여 파라과이의 남동부 국경을 따라 흐르다가 아르헨티나로 들어간다. 파라나강은 세계적으로도 유량이 풍부한 강 중 하나이며, 파라과이의 수력 발전 잠재력에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
파라과이는 이 두 강을 이용하여 대규모 수력 발전소를 운영하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브라질과 공동으로 건설하고 운영하는 이타이푸 댐이다. 파라나강에 위치한 이타이푸 댐은 한때 세계 최대의 수력 발전소였으며, 파라과이 전체 전력 수요를 충당하고도 남아 잉여 전력을 브라질에 수출한다. 또한, 파라나강에는 아르헨티나와 공동으로 운영하는 하시에레타 댐도 있어 중요한 전력 공급원이다.
이 외에도 필코마요강(Pilcomayo River스페인어)은 서부 차코 지역에서 아르헨티나와의 국경을 이루며 흐르고, 아파강(Apa River스페인어)은 북부에서 브라질과의 국경 일부를 형성한다. 이러한 강들은 파라과이의 지리, 경제, 생태계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4.4. 동식물

파라과이는 다양한 지형과 기후 조건 덕분에 풍부한 동식물상을 자랑한다. 국토는 크게 동부의 습윤한 파라네냐 지역과 서부의 건조하거나 반건조한 차코 지역으로 나뉘며, 각 지역은 독특한 생태계를 형성하고 있다.
동물상
파라과이에는 수많은 포유류, 조류, 파충류, 양서류, 어류가 서식한다. 대표적인 포유류로는 재규어, 퓨마, 오셀롯과 같은 고양잇과 동물과 늪사슴, 남미맥, 큰개미핥기, 카피바라, 아르마딜로, 다양한 종류의 원숭이와 뉴트리아 등이 있다. 차코 지역에는 페커리와 같은 동물이 흔하며, 안데스 콘도르를 비롯한 다양한 조류도 관찰된다. 강과 습지에는 카이만과 수많은 어종이 서식하고 있다.
식물상
동부 파라네냐 지역은 과거 아열대 우림으로 덮여 있었으나, 농경지 확장으로 인해 많은 부분이 파괴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다양한 수종과 식물들이 남아 있다. 대표적인 나무로는 라파초(Lapacho) 나무가 있으며, 이는 파라과이의 국목(國木)이기도 하다. 마테차의 원료가 되는 예르바 마테 나무도 이 지역에서 자생한다. 서부 차코 지역은 가시덤불 숲과 초원, 건조림이 주를 이룬다. 극한 환경에 적응한 케브라초 나무와 같은 독특한 식생을 볼 수 있다.
보호구역 및 환경 보전 노력
파라과이 정부는 생물 다양성 보전을 위해 여러 국립공원과 보호구역을 지정하여 관리하고 있다. 대표적인 국립공원으로는 냐쿤다이 국립공원(Ñacunday National Park), 세로 코라 국립공원(Cerro Corá National Park), 데펜소레스 델 차코 국립공원(Defensores del Chaco National Park) 등이 있다. 이들 보호구역은 멸종 위기에 처한 동식물의 서식지를 제공하고 생태계 연구 및 교육의 장으로 활용된다.
그러나 삼림 벌채, 농경지 확장, 불법 밀렵 등은 여전히 파라과이 생태계를 위협하는 주요 요인이다. 정부와 비정부기구(NGO)들은 환경 보전의 중요성을 알리고 지속 가능한 발전을 위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으나, 경제 발전의 압력 속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기도 하다.
5. 정치
파라과이는 입헌 공화국으로, 삼권 분립에 기초한 대통령제를 채택하고 있다. 현행 헌법은 1992년에 제정되었으며, 다당제 민주주의를 표방한다.
5.1. 정부 구조
파라과이의 정부 구조는 행정부, 입법부, 사법부의 세 개 부문으로 구성된다.
- 행정부: 행정부의 수반은 대통령이다. 대통령은 국가원수이자 정부수반으로서 직접 선거를 통해 선출되며, 임기는 5년 단임이다. 대통령은 국무회의를 주재하고 각료를 임명하며, 법률안 거부권 등의 권한을 행사한다. 부통령도 대통령과 함께 선출되며, 대통령 유고 시 대통령직을 승계한다.
- 입법부: 입법부는 양원제인 국민의회(Congreso Nacional)로 구성된다. 상원(Cámara de Senadores스페인어)은 45명의 의원으로, 하원(Cámara de Diputados스페인어)은 80명의 의원으로 구성된다. 상원 의원은 전국 단일 선거구에서 비례대표제로, 하원 의원은 각 주(departamento스페인어)별 비례대표제로 선출된다. 양원 의원의 임기는 모두 5년이며, 대통령 선거와 동시에 실시된다. 의회는 법률 제정, 예산 심의, 정부 견제 등의 기능을 수행한다.
- 사법부: 사법부는 대법원(Corte Suprema de Justicia스페인어)을 최고 법원으로 하여 여러 하급 법원들로 구성된다. 대법원은 9명의 판사로 구성되며, 이들은 상원의 동의를 얻어 대통령이 임명한다. 사법부는 법률의 해석과 적용, 헌법 수호, 사법 정의 실현을 담당하며 행정부와 입법부로부터 독립되어 운영된다.
1947년 내전 이후, 파라과이 정치는 보수적인 콜로라도당이 지배해 왔다.
5.2. 주요 정당
파라과이의 정치 지형은 역사적으로 소수의 주요 정당들에 의해 주도되어 왔다. 그중 가장 영향력 있는 정당은 다음과 같다.
- 콜로라도당 (Asociación Nacional Republicana - Partido ColoradoANR-PC스페인어): 1887년에 창당된 파라과이의 가장 오래되고 규모가 큰 정당 중 하나이다. 전통적으로 보수주의 이념을 표방하며, 20세기 중반 이후 알프레도 스트로에스네르 독재 정권을 포함하여 오랜 기간 집권했다. 농촌 지역과 기득권층에 강한 지지 기반을 가지고 있으며, 파라과이 정치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해 왔다. 2008년 대선에서 페르난도 루고에게 패배하여 잠시 정권을 내주었으나, 2013년 오라시오 카르테스, 2018년 마리오 아브도 베니테스, 2023년 산티아고 페냐가 연이어 대통령에 당선되며 다시 집권당의 지위를 유지하고 있다.
- 정통급진자유당 (Partido Liberal Radical AuténticoPLRA스페인어): 콜로라도당의 주요 경쟁 정당으로, 1978년에 창당되었으나 그 뿌리는 1887년에 설립된 역사적인 자유당에 두고 있다. 중도 또는 중도좌파 성향을 보이며, 민주주의와 사회 정의를 강조한다. 스트로에스네르 독재 정권 시절 주요 야당 역할을 했으며, 2008년에는 페르난도 루고 전 대통령을 중심으로 한 정치 연합의 핵심 세력이 되어 집권에 성공하기도 했다. 주로 도시 지역과 지식인층의 지지를 받고 있다.
- 기타 정당: 위 두 거대 정당 외에도 여러 군소 정당들이 활동하고 있다. 예를 들어, 국민연합윤리시민당(Partido Unión Nacional de Ciudadanos ÉticosUNACE스페인어), 사랑하는조국당(Partido Patria QueridaPPQ스페인어), 과수 전선(Frente Guasú스페인어) 등이 있으며, 이들은 선거에서 연합하거나 독자적으로 후보를 내며 정치적 영향력을 확대하려 노력한다. 최근에는 새로운 정치 세력들도 등장하고 있다.
파라과이의 정당들은 선거를 통해 대통령, 국회의원, 지방자치단체장 등을 선출하며, 선거 결과에 따라 정치 지형이 변화하기도 한다. 그러나 콜로라도당의 오랜 지배와 두 거대 정당 중심의 정치 구도는 여전히 파라과이 정치의 주요 특징으로 남아 있다.
5.3. 군사
파라과이군은 육군, 해군(해군 항공대 및 해병대 포함), 공군으로 구성된다. 파라과이 헌법은 대통령을 군 최고사령관으로 규정하고 있다.
파라과이는 징병제를 시행하고 있으며, 모든 18세 남성 및 18세가 되는 해의 17세 남성은 1년간의 현역 복무 의무가 있다. 헌법은 양심적 병역 거부를 허용하고 있으나, 아직 이를 시행하기 위한 법률은 승인되지 않았다.
파라과이는 아르헨티나, 브라질, 미국과 함께 지역적 대테러 및 마약 퇴치 노력에 협력해 왔다. 2005년 7월, 미국 특수부대가 파라과이의 마리스칼 에스티가리비아 공군 기지에 도착하여 합동 훈련 및 인도주의적 작전을 지원했다. 2019년 아순시온에서는 "삼국 국경" 지역의 초국가적 범죄와 테러리즘에 대처하기 위해 파라과이, 아르헨티나, 브라질, 미국 간의 협력을 증진하는 지역 안보 메커니즘(RSM)의 첫 회의가 개최되었다.
2024년 세계 평화 지수에 따르면 파라과이는 세계에서 73번째로 평화로운 국가이다. 국방 예산은 국가 경제 규모에 비해 크지 않은 편이며, 주요 임무는 국경 수비, 내부 치안 유지 지원, 재난 구호 활동 등이다. 해군은 내륙국임에도 불구하고 파라과이강과 파라나강 등 주요 하천에서의 활동을 담당한다. 국제 평화 유지 활동에도 간헐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6. 행정 구역
파라과이는 17개의 주(departamento스페인어)와 1개의 수도 지구(distrito capital스페인어)로 구성된다. 국토는 또한 "서부 지역" 또는 차코(보케론, 알토파라과이, 프레시덴테아예스)와 "동부 지역"(그 외 주들과 수도 지구)의 두 지역으로 나뉜다.
다음은 각 주와 수도, 인구, 면적, 지구(distrito스페인어) 수이다.
ISO 3166-2:PY | 주 | 주도 | 인구 (2022년 인구 조사) | 면적 (km2) | 지구 수 |
---|---|---|---|---|---|
ASU | 수도 지구 | 아순시온 | 462,241 | 117 | 1 |
1 | 콘셉시온 | 콘셉시온 | 206,181 | 18,057 | 14 |
2 | 산페드로 | 산페드로데이크만디유 | 355,175 | 20,007 | 23 |
3 | 코르디예라 | 카쿠페 | 268,037 | 4,953 | 20 |
4 | 과이라 | 비야리카 | 179,555 | 3,991 | 18 |
5 | 카과수 | 코로넬오비에도 | 431,519 | 11,479 | 22 |
6 | 카사파 | 카사파 | 139,479 | 9,503 | 11 |
7 | 이타푸아 | 엥카르나시온 | 449,642 | 16,536 | 30 |
8 | 미시오네스 | 산후안바우티스타 | 111,142 | 9,568 | 10 |
9 | 파라과리 | 파라과리 | 200,472 | 8,710 | 18 |
10 | 알토파라나 | 시우다드델에스테 | 763,702 | 14,898 | 22 |
11 | 센트랄 | 아레과 | 1,883,927 | 2,665 | 19 |
12 | 녬부쿠 | 필라르 | 76,719 | 12,155 | 16 |
13 | 아맘바이 | 페드로후안카바예로 | 179,412 | 12,935 | 6 |
14 | 카닌데유 | 살토델과이라 | 191,114 | 14,677 | 16 |
15 | 프레시덴테아예스 | 비야아예스 | 123,313 | 72,917 | 10 |
16 | 알토파라과이 | 푸에르테올림포 | 17,195 | 82,394 | 4 |
17 | 보케론 | 필라델피아 | 71,078 | 91,676 | 4 |
- | 파라과이 | 아순시온 | 6,109,903 | 406,796 | 273 |
6.1. 주요 도시
파라과이의 주요 도시는 대부분 동부 파라네냐 지역에 집중되어 있으며, 정치, 경제, 문화의 중심지 역할을 한다.
- 아순시온 (Asunción): 파라과이의 수도이자 최대 도시이다. 파라과이강 동쪽 연안에 위치하며, 국가의 정치, 경제, 문화의 중심지이다. 1537년에 건설된 남아메리카에서 가장 오래된 도시 중 하나로, 식민지 시대의 건축물과 현대적인 건물이 공존한다. 인구는 약 50만 명이며, 주변 위성도시를 포함한 대도시권(그란 아순시온)의 인구는 230만 명에 달한다. 정부기관, 주요 기업, 금융기관, 교육기관 등이 밀집해 있다.
- 시우다드델에스테 (Ciudad del Este): 파라과이 동부, 브라질 및 아르헨티나와의 국경인 삼국 국경 지대에 위치한 도시이다. 알토파라나주의 주도이며, 파라과이 제2의 도시이다. 인구는 약 32만 명이다. 1957년 건설 당시에는 푸에르토 프레시덴테 스트로에스네르(Puerto Presidente Stroessner스페인어)로 불렸으나, 1989년 스트로에스네르 독재 정권 붕괴 후 현재의 이름으로 변경되었다. 이타이푸 댐 건설과 함께 성장했으며, 브라질과의 국경 무역과 상업이 발달하여 "남미의 홍콩"으로 불리기도 한다. 거대한 쇼핑센터와 시장이 있으며, 많은 관광객과 상인들이 방문한다.
- 엥카르나시온 (Encarnación): 파라과이 남동부, 파라나강 연안에 위치하며 아르헨티나의 포사다스시와 마주보고 있다. 이타푸아주의 주도이며, 인구는 약 10만 명이다. 1615년 예수회 선교사들에 의해 건설되었으며, 파라과이에서 가장 오래된 도시 중 하나이다. 농산물 집산지이자 상업 중심지 역할을 하며, 아름다운 강변과 해변으로 유명하여 "남부의 진주"로 불리기도 한다. 매년 여름 열리는 카니발 축제는 파라과이에서 가장 큰 규모를 자랑한다.
이 외에도 루케(Luque), 산로렌소, 카피아타, 페드로후안카바예로 등이 주요 도시로 꼽힌다. 이들 도시는 각 지역의 행정, 경제, 교통의 중심지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7. 대외 관계
파라과이는 전통적으로 반공주의 및 자유주의 국가들과의 관계 강화를 기본 외교 정책으로 삼아왔다. 특히 메르코수르(남미공동시장) 회원국으로서 브라질, 아르헨티나, 우루과이 등 역내 국가들과의 경제 협력을 중시한다. 1989년 민주화 이후에는 구 공산권 국가들을 포함하여 보다 폭넓은 외교 관계를 추구하고 있다.
7.1. 주변국과의 관계
파라과이는 지리적으로 브라질, 아르헨티나, 볼리비아 세 나라에 둘러싸인 내륙국으로, 이들 주변국과의 관계는 파라과이의 정치, 경제, 사회에 큰 영향을 미친다.
- 브라질과의 관계: 브라질은 파라과이의 가장 중요한 교역 상대국 중 하나이며, 특히 에너지 분야에서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다. 세계 최대 규모의 수력 발전소 중 하나인 이타이푸 댐은 파라과이와 브라질이 공동으로 건설하고 운영하며, 파라과이는 잉여 전력을 브라질에 판매한다. 그러나 댐 운영 수익 배분 문제, 국경 지역에서의 브라질인 농장주(소위 "브라시과이오스")와 현지 주민 간의 갈등, 마약 및 밀수품 밀거래 문제 등 해결해야 할 과제도 안고 있다. 역사적으로 삼국 동맹 전쟁 당시 브라질은 파라과이에 맞서 싸웠으나, 현대에 와서는 경제 협력을 중심으로 관계를 발전시키고 있다.
- 아르헨티나와의 관계: 아르헨티나 역시 파라과이의 주요 교역 상대국이며, 파라나강과 필코마요강을 따라 긴 국경을 접하고 있다. 양국은 하시에레타 댐을 공동 운영하고 있으며, 경제, 사회, 문화 교류가 활발하다. 많은 파라과이인이 아르헨티나에서 일하거나 거주하고 있으며, 아르헨티나 역시 파라과이 출신 이민자들을 상당수 받아들였다. 과거 삼국 동맹 전쟁과 차코 전쟁 당시 아르헨티나는 파라과이와 복잡한 관계를 맺었으나, 현재는 우호적인 협력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국경을 통한 인적, 물적 교류가 빈번하지만, 동시에 밀수, 불법 이민 등의 문제도 발생한다.
- 볼리비아와의 관계: 파라과이와 볼리비아는 1930년대 차코 전쟁이라는 격렬한 영토 분쟁을 겪었다. 전쟁은 파라과이의 승리로 끝났고, 현재의 국경선이 확정되었다. 전쟁의 상처는 양국 관계에 오랫동안 영향을 미쳤으나, 현재는 외교 관계를 정상화하고 경제 협력 및 국경 지역 개발을 위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특히 천연가스 등 에너지 자원 협력과 양국을 잇는 교통 인프라 구축에 대한 논의가 진행되고 있다.
파라과이는 주변국들과의 관계에서 국경 관리, 수자원 공동 이용, 경제 협력, 초국경 범죄 방지 등의 현안에 대해 지속적으로 협의하고 있으며, 메르코수르 등 지역 협력체를 통해 공동의 이익을 추구하고 있다. 각 관계에서 주요 쟁점은 존재하지만, 전반적으로 평화롭고 안정적인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7.2. 대한민국과의 관계
대한민국과 파라과이는 1962년 6월 12일 공식적으로 외교 관계를 수립했다. 이후 양국은 정치, 경제, 문화 등 다양한 분야에서 우호 협력 관계를 발전시켜왔다. 파라과이는 전통적으로 국제 무대에서 대한민국의 입장을 지지해 온 국가 중 하나이며,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과는 수교하지 않았다.
수도 아순시온에 주파라과이 대한민국 대사관이, 서울에 주한 파라과이 대사관이 각각 설치되어 운영되고 있다. 양국 간에는 문화협정(1973년), 과학·기술협력협정(1975년), 무역협정(1981년), 사증면제협정(1982년), 투자보장협정(1992년), 범죄인 인도협정(1996년) 등 다수의 협정이 체결되어 교류와 협력의 제도적 기반을 마련했다.
경제 교류는 꾸준히 이루어지고 있으며, 대한민국은 파라과이에 자동차, 전자제품, 기계류 등을 수출하고, 파라과이로부터는 농산물, 목재 등을 수입한다. 대한민국의 대(對)파라과이 직접 투자도 이루어지고 있으며, 특히 제조업 분야에서의 협력 가능성이 모색되고 있다. 파라과이는 대한민국의 경제 발전 경험에 큰 관심을 보이며, 자국의 경제 발전을 위한 모델로 삼고자 하는 경향이 있다.
문화 교류도 활발하여, K-pop, 한국 드라마 등 한류가 파라과이 젊은층 사이에서 인기를 얻고 있으며, 태권도 보급도 활발하다. 파라과이에는 1960년대부터 한인 이민이 시작되어 현재 약 5,000여 명의 한인 동포가 거주하며 현지 사회 발전에 기여하고 있다. 이들은 주로 상업, 농업 등에 종사하며 한인 사회를 형성하고 있다.
대한민국 정부는 파라과이에 대한 공적개발원조(ODA) 사업을 통해 교육, 보건, 농업, 인프라 구축 등 다양한 분야에서 파라과이의 지속 가능한 발전을 지원하고 있다. 양국은 고위급 인사 교류를 포함한 정치적 대화도 지속하며, 국제 문제에 대한 협력을 강화해 나가고 있다.
7.3. 일본과의 관계
일본과 파라과이는 1919년 외교 관계를 수립했으나, 제2차 세계 대전으로 인해 단절되었다가 1953년에 재개되었다. 양국은 전통적으로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해오고 있다.
파라과이에는 일본계 파라과이인 공동체가 형성되어 있으며, 이는 양국 관계의 중요한 기반이 된다. 일본인의 파라과이 이민은 1936년에 처음 시작되었으며, 특히 1950년대와 1960년대에 일본 정부의 이민 장려 정책에 따라 많은 일본인이 파라과이로 이주하여 농업 분야를 중심으로 정착했다. 현재 약 1만 명의 일본계 파라과이인이 거주하며, 이들은 현지 사회에서 농업 기술 발전과 경제 성장에 기여했을 뿐만 아니라 일본 문화를 소개하는 역할도 하고 있다. 이과수시, 라 콜메나, 피라포 등은 대표적인 일본인 이주 지역이다.
일본은 파라과이에 대한 주요 공적개발원조(ODA) 공여국 중 하나로, 교육, 보건, 농업, 인프라 등 다양한 분야에서 파라과이의 발전을 지원해왔다. 특히 농업 기술 지원과 지역 개발 사업은 파라과이 현지에서 긍정적인 평가를 받고 있다.
경제적으로 양국 간 교역 규모는 크지 않지만, 일본 기업들이 파라과이에 투자하고 있으며, 특히 제조업 분야에서 야자키 총업, 쓰네이시 조선, 스미토모 전장 등이 진출해 있다. 파라과이는 저렴한 인건비, 단순한 세제, 메르코수르 회원국으로서 브라질, 아르헨티나 등 주변국 시장으로의 무관세 수출 가능성 등의 이점을 내세워 일본 기업의 투자를 유치하려 하고 있다.
문화 교류도 꾸준히 이루어지고 있으며, 파라과이 내 일본 학교(NIHON GAKKO)가 운영되고 있고, 일본 문화 행사들이 개최된다. 2011년 동일본 대지진 당시 파라과이 일본계 농가를 중심으로 "100만 정 두부 프로젝트"를 통해 일본에 원료 대두와 가공비를 지원하기도 했다. 2016년에는 일본인 파라과이 이주 80주년 기념행사가 열렸으며, 일본 왕실의 마코 공주가 참석하기도 했다. 2018년에는 아베 신조 당시 일본 총리가 일본 총리로는 처음으로 파라과이를 방문하여 양국 관계 강화 방안을 논의했다.
7.4. 중화민국(대만)과의 관계
파라과이는 남아메리카 대륙에서 유일하게 중화민국(대만)과 공식 외교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국가이다. 양국은 1957년 7월 12일 외교 관계를 수립한 이래, 반공주의라는 공동의 이념적 기반 위에서 긴밀한 우호 협력 관계를 이어오고 있다. 특히 파라과이의 알프레도 스트로에스네르 독재 정권 시절부터 이러한 관계는 공고히 유지되었다.
국제 사회에서 중화인민공화국이 "하나의 중국" 원칙을 내세우며 중화민국의 외교적 고립을 심화시키는 상황에서도 파라과이는 중화민국과의 외교 관계를 지속하고 있다. 이는 중화민국에게 있어 중요한 외교적 자산으로 여겨진다. 양국은 정치, 경제, 문화, 군사 등 다양한 분야에서 교류와 협력을 이어가고 있다.
중화민국은 파라과이에 대해 경제 원조, 기술 지원, 인도주의적 지원 등을 제공하며 양국 관계를 관리하고 있다. 특히 농업 기술, 인프라 건설, 교육, 보건 분야에서의 지원이 이루어지고 있으며, 파라과이 학생들에게 대만 유학 장학금을 제공하기도 한다. 파라과이 역시 국제 기구 등에서 중화민국의 참여를 지지하는 발언을 하는 등 상호 지지 관계를 보여주고 있다.
최근 몇 년간 중화인민공화국의 경제적 영향력이 커지면서 파라과이 내부에서도 중화인민공화국과의 수교를 통해 경제적 이익을 추구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기도 했다. 특히 농축산물 수출 시장 확대에 대한 기대감 때문에 일부 정치인과 경제계 인사들이 중국과의 관계 개선을 주장하기도 한다. 그러나 파라과이 정부는 전통적인 우방인 중화민국과의 관계를 중시하며 기존의 외교 정책을 유지하고 있다. 2023년 취임한 산티아고 페냐 대통령 역시 중화민국과의 관계를 지속할 것임을 분명히 했다.
수도 아순시온에는 주파라과이 중화민국 대사관이, 타이베이에는 주중화민국 파라과이 대사관이 각각 설치되어 운영 중이다. 중화민국은 수교국 중 면적 기준으로 파라과이가 가장 큰 국가이다.
7.5. 미국과의 관계
파라과이와 미국의 관계는 역사적으로 여러 변화를 겪어왔으며, 정치, 경제, 군사 등 다양한 분야에서 협력이 이루어지고 있다.
냉전 시기, 특히 알프레도 스트로에스네르의 장기 독재 정권(1954-1989) 동안 파라과이는 강력한 반공 노선을 표방하며 미국과 긴밀한 관계를 유지했다. 미국은 파라과이를 라틴아메리카의 반공 보루 중 하나로 간주하고 군사 및 경제 원조를 제공했다. 그러나 스트로에스네르 정권의 인권 탄압 문제가 심각해지면서 1970년대 후반부터 미국은 파라과이에 대한 비판적인 입장을 취하기도 했다.
1989년 스트로에스네르 정권이 붕괴되고 파라과이가 민주화 과정을 밟기 시작하면서 양국 관계는 새로운 국면을 맞이했다. 미국은 파라과이의 민주주의 정착과 제도 개혁을 지원했으며, 마약 퇴치, 테러 방지, 인권 증진, 법치주의 강화 등 다양한 분야에서 협력을 확대했다.
경제적으로 미국은 파라과이의 주요 교역 상대국 중 하나이며, 투자도 이루어지고 있다. 파라과이는 미국의 일반특혜관세제도(GSP) 수혜국으로, 특정 품목에 대해 무관세 또는 저율 관세로 미국 시장에 수출할 수 있는 혜택을 받고 있다.
군사 및 안보 분야에서도 협력이 지속되고 있다. 양국은 합동 군사 훈련을 실시하고 있으며, 미국은 파라과이 군의 현대화와 역량 강화를 지원하고 있다. 특히 국경 지역의 안보 강화와 초국가적 범죄 조직 소탕을 위한 협력이 이루어지고 있다. 2005년에는 파라과이의 마리스칼 에스티가리비아 공군 기지에 미군이 주둔하여 합동 훈련 및 인도주의적 작전을 지원한 바 있으며, 이는 주변국의 우려를 낳기도 했다.
현재 양국은 민주주의 가치 공유, 경제 협력 증진, 안보 위협 공동 대응 등을 목표로 관계를 발전시켜 나가고 있다. 그러나 파라과이 내의 부패 문제, 사법 시스템의 취약성 등은 양국 관계의 잠재적인 걸림돌로 지적되기도 한다.
7.6. 국제 기구 회원국
파라과이는 다수의 주요 국제 기구 회원국으로 활동하며 다자외교를 펼치고 있다. 이러한 활동을 통해 국가 이익을 증진하고 국제 사회의 현안 해결에 기여하고자 한다.
- 국제 연합 (UN, United Nations): 파라과이는 1945년 10월 24일 UN 창립 회원국으로 가입했다. UN 총회, 안전보장이사회 비상임이사국(과거 수임), 경제사회이사회 등 다양한 UN 기구 및 전문기구 활동에 참여하며, 국제 평화와 안보, 개발, 인권 증진을 위한 국제적 노력에 동참하고 있다.
- 미주 기구 (OAS, Organization of American States): 파라과이는 미주 지역의 평화와 안보, 민주주의 증진, 인권 보호, 경제 및 사회 발전을 목표로 하는 OAS의 창립 회원국이다. OAS를 통해 역내 국가들과의 협력을 강화하고, 미주 지역의 공동 문제 해결에 참여한다.
- 메르코수르 (MERCOSUR, 남미공동시장): 파라과이는 1991년 아르헨티나, 브라질, 우루과이와 함께 메르코수르를 창설한 핵심 회원국이다. 메르코수르는 회원국 간 무역 장벽 철폐, 공동 외부 관세 설정, 경제 정책 조율 등을 통해 경제 통합을 추구하는 블록이다. 파라과이는 메르코수르를 통해 역내 시장 접근성을 높이고 경제 발전을 도모하고 있으나, 회원국 간 경제 규모 불균형 등으로 인한 어려움도 겪고 있다.
- 비동맹 운동 (NAM, Non-Aligned Movement): 파라과이는 특정 강대국 블록에 편향되지 않고 독자적인 외교 노선을 추구하는 비동맹 운동의 회원국이다.
- 리마 그룹 (Lima Group): 베네수엘라의 민주주의 위기 해결을 위해 결성된 리마 그룹의 창립 멤버로 참여했었다.
이 외에도 파라과이는 세계 은행(World Bank), 국제 통화 기금(IMF), 세계무역기구(WTO), 라틴아메리카 통합 연합(ALADI), 이베로-아메리카 공동체(Ibero-American Community of Nations) 등 다양한 국제 및 지역 기구의 회원국으로 활동하고 있다. 이러한 다자외교를 통해 파라과이는 국제 사회에서 자국의 목소리를 내고, 경제 발전과 국가 안보를 위한 국제적 지원과 협력을 확보하려 노력한다.
8. 경제
파라과이의 경제는 전통적으로 농업과 목축업에 크게 의존해 왔으며, 최근 몇 년간 꾸준한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2010년대에는 평균 4%의 경제 성장률을 기록했으나, 여전히 빈곤과 소득 불평등 문제가 심각한 과제로 남아있다. 2022년 기준 1인당 GDP(PPP)는 남아메리카에서 7번째로 높은 수준이지만, 부의 분배는 매우 불균등하다. 2022년 기준 인간 개발 지수(HDI)는 105위로 개발도상국으로 분류된다.
오랫동안 파라과이는 전자제품, 무기, 마약 등의 불법 거래와 연관된 이미지를 가지고 있었으나, 2000년대 들어 대두, 옥수수, 소고기 등 합법적인 산업 생산이 증가하면서 이러한 이미지는 변화하기 시작했다. 파라과이 중앙은행(BCP) 자료에 따르면, 2006년 삼각 무역(중국-파라과이-브라질) 관련 수출(브라질에서는 대부분 밀수 및 횡령으로 간주)이 GDP의 22%를 차지했으나, 2016년에는 이 비율이 12%로 감소했다. 합법적인 고용을 통한 세수 증가는 낙후되었던 사회 기반 시설 개선에 기여하고 있다.
파라과이의 경제 개발 정책은 수출에 기반을 두고 있으며 브라질 시장에 대한 의존도가 높다. 삼각 무역은 본질적으로 중국산 제품을 브라질을 주요 목적지로 수출하는 것이다. 수출되는 에너지는 주로 이타이푸 수력 발전소에서 생산된 잉여 수력 전기로, 브라질이 주요 구매자이다. 또한 브라질 투자자들이 주를 이루는 마킬라도라(수출자유가공) 산업 역시 브라질을 주요 소비 시장으로 두고 있다. 따라서 이러한 파라과이 개발 전략의 세 기둥은 재수출이라는 두드러진 특징을 지닌다. 농산물의 경우 파라과이산 제품 수출이 이루어진다.
세계 은행에 따르면 2019년 파라과이의 제조업 생산액은 69.00 억 USD로 세계 79위를 기록했다. 파라과이는 2024년 세계 혁신 지수에서 93위를 차지했다.
8.1. 경제 구조 및 특징
파라과이 경제는 전통적으로 농업과 목축업이 중심이었으나, 최근 수십 년간 다변화를 추구하며 변화를 겪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농업 부문은 여전히 국내총생산(GDP)과 고용에서 상당한 비중을 차지한다.
주요 특징은 다음과 같다.
- 농업 의존도: 대두, 옥수수, 사탕수수, 면화, 쌀, 밀, 오렌지, 마테차, 수수 등이 주요 농산물이며, 특히 대두는 세계적인 생산국 중 하나이다. 목축업, 특히 육우 사육도 중요한 수출 산업이다. 그러나 농업은 기후 변화와 국제 원자재 가격 변동에 취약하다는 단점이 있다.
- 비공식 경제 규모: 파라과이 경제의 상당 부분이 비공식 부문에 의존하고 있다. 이는 주로 주변국으로의 수입 소비재 재수출, 수천 개의 소규모 기업 및 도시 노점상 활동 등을 포함한다. 비공식 경제는 고용 창출에 기여하지만, 세수 확보의 어려움과 노동 조건의 불안정성 등의 문제를 야기한다.
- 수출입 동향: 주요 수출품은 대두, 육류, 전력, 목재, 가죽 등이며, 주요 수입품은 기계류, 석유제품, 자동차, 화학제품, 소비재 등이다. 주요 교역 상대국은 브라질, 아르헨티나, 중국, 미국 등이다.
- 수력 발전 중심의 에너지: 이타이푸 댐과 하시에레타 댐을 통해 생산되는 수력 전기는 국내 수요를 충당하고도 남아 브라질, 아르헨티나 등 주변국에 수출된다. 이는 파라과이의 중요한 외화 수입원 중 하나이다.
- 마킬라도라 산업: 수출자유가공구역(마킬라도라)을 통해 외국인 투자를 유치하고 제조업을 육성하려는 노력이 이루어지고 있다. 주로 의류, 자동차 부품 등이 생산되어 수출된다.
- 높은 토지 소유 집중도: 농경지의 약 85%를 2.6%의 지주가 소유하고 있는 등 토지 소유의 불평등이 심각하다. 이는 농촌 지역의 빈곤과 사회 갈등의 주요 원인 중 하나로 지적된다.
- 소득 불평등과 빈곤: 경제 성장에도 불구하고 소득 불평등이 심하며, 빈곤율 또한 높은 수준이다. 특히 농촌 지역과 원주민 사회의 빈곤 문제가 심각하다.
- 지리적 제약: 내륙국이라는 지리적 특성상 물류 비용이 높고, 파라과이강과 파라나강을 통한 수운에 대한 의존도가 크다.
파라과이 경제는 원자재 수출 중심에서 벗어나 산업 구조를 다변화하고, 비공식 경제를 제도권으로 편입하며, 소득 불평등을 완화하는 것이 주요 과제로 남아있다.
8.2. 주요 산업
파라과이 경제는 전통적인 농업 및 목축업과 함께 최근 성장하고 있는 제조업, 에너지 산업 등으로 구성된다.
8.2.1. 농업 및 목축업
농업과 목축업은 파라과이 경제의 전통적인 기반이자 여전히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 국토의 상당 부분이 농경과 목축에 적합한 자연환경을 갖추고 있다.
- 주요 농산물:
- 대두 (Soybean): 파라과이는 세계적인 대두 생산국이자 수출국 중 하나이다. 광대한 농지에서 대규모로 재배되며, 주요 수출품목으로 외화 획득에 크게 기여한다. 주로 가공되지 않은 형태로 수출되거나 대두유, 대두박 등으로 가공되어 수출된다. 대두 생산은 브라질 출신 농업인(소위 "브라시과이오스")들이 주도하는 경우가 많다.
- 옥수수 (Maize/Corn): 대두와 함께 주요 곡물 작물로, 국내 소비 및 사료용으로 널리 재배된다.
- 사탕수수 (Sugarcane): 설탕 및 에탄올 생산의 원료로 재배된다. 파라과이는 세계 21위의 사탕수수 생산국이다.
- 면화 (Cotton): 과거 중요한 수출 작물이었으나, 최근에는 대두 등 다른 작물과의 경쟁으로 생산량이 다소 감소했다.
- 기타 작물: 카사바(만디오카), 쌀, 밀, 오렌지, 마테차(예르바 마테), 수수 등도 중요한 농산물이다. 특히 마테차는 파라과이의 전통 음료로 국내 소비뿐 아니라 수출도 이루어진다. 파라과이는 스테비아의 세계 2위 생산국이기도 하다.
- 목축업 (Livestock):
- 육우 (Beef Cattle): 파라과이 목축업의 핵심으로, 광활한 초지에서 방목 형태로 사육된다. 파라과이산 소고기는 품질이 우수하다는 평가를 받으며, 주요 수출품 중 하나이다. 2020년 기준 파라과이는 세계 26위의 소고기 생산국이며, 9번째로 큰 소고기 수출국이다.
- 기타: 돼지, 가금류 사육도 이루어지지만 육우에 비해 규모는 작다.
농업 및 목축업은 파라과이 GDP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고 많은 고용을 창출하지만, 국제 원자재 가격 변동, 기상 이변, 토지 소유 불균형, 삼림 벌채와 환경 오염(특히 대규모 대두 재배와 관련된 살충제 사용) 등의 문제에 직면해 있다. 농경지의 80% 이상이 2.6%의 지주에게 집중되어 있으며, 이는 농촌 지역 빈곤의 주요 원인이 되고 있다.
8.2.2. 제조업 및 공업
파라과이의 제조업 및 공업 부문은 전통적으로 농축산물 가공업을 중심으로 발전해 왔으며, 최근에는 정부의 투자 유치 노력에 힘입어 다변화를 모색하고 있다. 그러나 여전히 국가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농업이나 서비스업에 비해 상대적으로 작은 편이다.
- 주요 제조업 분야:
- 식품 가공업: 농축산물이 풍부하여 육류 가공(소고기, 돼지고기 등), 대두유 및 대두박 생산, 설탕 정제, 유제품, 음료 등의 식품 가공업이 발달해 있다. 이는 국내 소비뿐 아니라 수출에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
- 섬유 및 의류 산업: 면화 생산을 기반으로 한 섬유 산업과 의류 제조업이 이루어지며, 특히 마킬라도라(수출자유가공) 제도를 통해 외국 자본이 투자된 의류 공장들이 운영되고 있다.
- 시멘트 및 비금속 광물 제품 제조업: 건설 산업 발달과 함께 시멘트, 벽돌, 타일 등 건축 자재 생산이 이루어진다.
- 철강 및 금속 가공업: 소규모이기는 하나 철강 제품 생산과 금속 가공업이 존재한다.
- 목재 가공업: 풍부한 산림 자원을 바탕으로 제재목, 가구 등의 목재 가공업이 이루어지지만, 지속 가능한 산림 관리의 중요성이 강조되고 있다.
- 제지 및 인쇄 산업: 소규모로 운영된다.
- 제약 산업: 최근 성장세를 보이며, 국내 수요의 상당 부분을 충족하고 일부 수출도 이루어지고 있다.
- 마킬라도라 산업: 파라과이 정부는 외국인 투자 유치와 수출 증대를 위해 마킬라도라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이는 수입 원자재나 부품을 가공·조립하여 재수출하는 경우 세금 감면 등의 혜택을 주는 제도로, 주로 의류, 자동차 부품, 플라스틱 제품 등의 분야에서 활용되고 있다. 브라질 등 주변국 시장을 겨냥한 생산 기지 역할을 한다.
파라과이의 제조업 발전을 위한 과제로는 기술력 향상, 인프라 개선(특히 물류), 안정적인 에너지 공급, 숙련된 노동력 양성, 행정 절차 간소화 등이 꼽힌다. 2019년 기준, 파라과이는 제조업 생산액 기준으로 세계은행 목록에서 79번째로 가치 있는 산업을 보유하고 있다(69.00 억 USD).
8.2.3. 에너지

파라과이는 풍부한 수자원을 활용한 수력 발전이 에너지 공급의 핵심을 이루고 있으며, 세계적으로도 청정에너지 생산 비율이 매우 높은 국가 중 하나이다.
- 주요 수력 발전소:
- 이타이푸 댐 (Itaipu Dam): 브라질과 공동으로 건설하고 운영하는 세계 최대 규모의 수력 발전소 중 하나이다. 파라나강에 위치하며, 1984년부터 발전을 시작했다. 총 발전 용량은 14,000 MW에 달하며, 양국이 각각 50%의 권리를 갖는다. 파라과이는 이타이푸 댐에서 생산되는 전력의 극히 일부만을 국내에서 소비하고, 대부분의 잉여 전력을 브라질에 판매하여 중요한 외화 수입원으로 활용하고 있다.
- 하시에레타 댐 (Yacyretá Dam): 아르헨티나와 공동으로 파라나강에 건설한 대규모 수력 발전소이다. 이타이푸 댐보다는 규모가 작지만, 역시 파라과이의 중요한 전력 공급원이며 잉여 전력은 아르헨티나에 판매된다.
- 전력 생산 및 수출: 파라과이의 전체 전력 생산량은 국내 소비량을 훨씬 초과한다. 2016년 기준 파라과이의 설비된 전력 생산 능력은 8,110 MW이며, 연간 630억 kWh를 생산했다. 국내 소비는 150억 kWh에 불과하여, 초과 생산된 전력은 브라질, 아르헨티나, 우루과이에 판매되어 파라과이는 세계 최대의 전력 수출국이 되었다. 100% 수력 발전을 통해 전기를 생산하여 세계에서 가장 깨끗한 에너지 공급국 중 하나로 꼽힌다.
- 재생 에너지 개발 노력: 수력 발전 외에도 태양광, 바이오매스 등 다른 재생 에너지원의 개발 가능성도 모색되고 있으나, 아직은 수력 발전 의존도가 절대적으로 높다.
파라과이의 에너지 부문은 국가 경제에 크게 기여하고 있지만, 댐 운영과 관련된 주변국과의 협상, 환경 문제, 그리고 국내 전력망 현대화 및 효율성 증대 등의 과제를 안고 있다. 2021년, 파라과이는 100% 재생 가능 에너지 공급으로 전기를 생산하는 남미 최초의 국가가 되었다.
8.3. 사회 기반 시설
파라과이의 경제 발전을 지원하는 주요 사회 기반 시설은 교통망과 통신 분야를 중심으로 점진적으로 개선되고 있으나, 여전히 발전의 여지가 많은 상황이다.
8.3.1. 교통망

파라과이의 교통망은 도로, 하천 수운, 항공을 중심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철도는 그 역할이 매우 미미하다.
- 도로: 도로망은 파라과이 국내 교통의 핵심이다. 2019년 공식 자료에 따르면 총 도로 연장은 약 7.89 만 km이며, 이 중 포장도로는 약 1.04 만 km이다. 주요 도시는 국도를 통해 연결되어 있으나, 지방 도로나 농촌 지역 도로는 비포장 상태인 경우가 많아 우기에는 통행에 어려움을 겪기도 한다. 최근 몇 년간 주요 간선도로 현대화 및 확충 사업이 진행 중이다. 대표적으로 루타 2번 국도(아순시온-시우다드델에스테)의 복선화 사업과, 파라과이 북부를 횡단하여 브라질과 아르헨티나를 연결하고 칠레 및 브라질 항구로의 접근성을 높이는 태평양 횡단 도로(Bioceanic Corridor) 건설 사업이 중요한 투자로 꼽힌다. 2022년 2월, 태평양 횡단 도로의 첫 번째 구간인 카르멜로 페랄타(브라질 국경) - 로마 플라타 구간(275 km)이 개통되었다.
- 하천 수운: 내륙국인 파라과이에게 파라과이강과 파라나강은 대서양으로 나아가는 중요한 수로 역할을 한다. 총 1600 km에 달하는 항행 가능 수로는 아르헨티나의 부에노스아이레스 항구를 통해 해상으로 연결된다. 수도 아순시온은 파라과이강의 주요 하항이며, 이 외에도 빌레타, 엥카르나시온 등이 주요 하항으로 기능한다. 농산물, 목재 등 대량 화물 운송에 주로 이용된다.
- 항공: 국제 항공 교통은 수도 아순시온 인근의 실비오 페티로시 국제공항(ASU)과 시우다드델에스테의 과라니 국제공항(AGT)을 중심으로 이루어진다. 실비오 페티로시 국제공항은 국제선 여객 운송의 중심지이며, 과라니 국제공항은 국제 항공 화물 허브로서의 역할을 하고 있다. 국내선 항공망은 제한적이다.
- 철도: 과거에는 아순시온과 엥카르나시온을 잇는 철도가 있었으나, 현재는 노후화와 운영상의 어려움으로 대부분 운행이 중단된 상태이며, 관광용으로 일부 구간만 간헐적으로 운영되는 실정이다.
교통 인프라 개선은 파라과이 경제 발전의 중요한 과제 중 하나이며, 특히 도로망 확충과 현대화, 하천 수운의 효율성 증대, 물류 시스템 개선 등이 요구되고 있다.
8.3.2. 통신
파라과이의 정보통신기술(ICT) 인프라는 지속적으로 발전하고 있으나, 여전히 개선의 여지가 많다.
- 유선 통신: 전통적인 유선 전화망은 국영 통신사인 코파코(COPACO)가 주로 담당하고 있다. 그러나 최근 몇 년간 유선 전화 가입자 수는 정체되거나 감소하는 추세이며, 광케이블망 보급은 주로 도시 지역을 중심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 무선 통신: 휴대전화 보급률은 매우 높아 유선 전화의 역할을 상당 부분 대체하고 있다. 여러 민간 이동통신 사업자들이 경쟁하며 3G, 4G LTE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으며, 5G 서비스 도입도 준비 중이다. 스마트폰 보급 확산과 함께 모바일 인터넷 사용이 급증하고 있다.
- 인터넷: 인터넷 보급률은 꾸준히 증가하고 있으나, 여전히 남아메리카 평균에 비해 낮은 수준이다. ADSL, 케이블 인터넷, 광대역 무선 접속(WLL), 위성 인터넷 등 다양한 접속 방식이 사용되고 있다. 도시 지역과 농촌 지역 간의 인터넷 접근성 격차가 존재하며, 인터넷 속도와 요금 또한 개선이 필요한 부분으로 지적된다. 정부는 국가 광대역 통신망 구축 계획 등을 통해 인터넷 보급 확대와 품질 향상을 추진하고 있다.
- 방송: 다수의 지상파 및 케이블 TV 방송국과 라디오 방송국이 운영되고 있으며, 다양한 국내외 프로그램을 제공한다.
파라과이 정부는 통신 인프라 현대화와 디지털 격차 해소를 중요한 정책 과제로 인식하고 있으며, 관련 분야에 대한 투자 확대와 규제 개선을 통해 정보통신기술(ICT) 발전을 촉진하려 하고 있다.
8.4. 무역 및 외국인 투자
파라과이 경제는 국제 무역, 특히 주변국과의 교역에 크게 의존하며, 외국인 직접 투자(FDI) 유치를 통해 경제 성장을 도모하고 있다.
- 주요 무역 상대국:
메르코수르(남미공동시장) 회원국으로서 역내 교역이 활발하며, 특히 브라질과 아르헨티나는 파라과이의 가장 중요한 무역 파트너이다.
- 수출입 품목:
- 주요 수출품: 대두 및 대두 제품(대두유, 대두박), 소고기, 옥수수, 전력(수력 발전 잉여분), 목재, 가죽, 의류(마킬라도라 생산품) 등이 있다.
- 주요 수입품: 기계류, 자동차 및 부품, 석유제품, 화학제품, 전자제품, 소비재 등이 있다.
- 무역 특징:
- 내륙국이라는 지리적 한계로 인해 물류 비용이 높은 편이며, 파라과이강과 파라나강을 통한 하천 수운 의존도가 높다.
- 시우다드델에스테는 브라질, 아르헨티나와의 삼국 국경 지대에 위치한 자유무역지대로, 재수출 중심의 상업 활동이 활발하다. 한때는 세계 3대 자유무역지대 중 하나로 꼽히기도 했다.
- 비공식적인 국경 무역(밀수 등)도 상당한 규모를 차지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 외국인 직접 투자(FDI):
- 파라과이 정부는 외국인 투자 유치를 위해 다양한 인센티브를 제공하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마킬라도라 제도로, 수출용 제품을 생산하는 기업에 대해 세금 감면 등의 혜택을 부여한다.
- 주요 투자 분야는 농업, 제조업(특히 자동차 부품, 의류), 에너지, 서비스업 등이다.
- 투자 유치국은 브라질, 아르헨티나, 미국, 스페인 등 다양하며, 최근에는 아시아 국가들의 투자 관심도 증가하고 있다.
- 그러나 정치적 불안정성, 관료주의, 법적 안정성 부족 등은 외국인 투자 유치의 저해 요인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파라과이는 수출 시장 다변화, 고부가가치 상품 수출 확대, 투자 환경 개선 등을 통해 무역 구조를 개선하고 외국인 투자를 더욱 적극적으로 유치하려는 노력을 지속하고 있다.
- 수출입 품목:
8.5. 경제적 과제 및 빈곤 문제
파라과이는 최근 몇 년간 비교적 안정적인 경제 성장을 이루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심각한 경제적 과제와 빈곤 문제에 직면해 있다.
- 소득 불평등: 파라과이는 남아메리카에서 소득 불평등이 가장 심한 국가 중 하나이다. 소수의 부유층이 국가 전체 부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반면, 다수의 국민은 낮은 소득 수준에 머물러 있다. 2022년 기준 지니 계수는 45.1로 높은 수준을 나타낸다. 이러한 불평등은 사회적 갈등의 잠재적 요인이 되며, 지속 가능한 발전을 저해한다.
- 빈곤율: 공식 통계에 따르면 2018년 기준 전체 인구의 26% 이상이 빈곤선 이하의 생활을 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농촌 지역과 원주민 사회의 빈곤 문제가 심각하다. 농촌 지역에서는 토지 소유의 불균형(소수 지주에게 농경지 집중)이 빈곤의 주요 원인 중 하나로 작용하며, 많은 농민이 생계유지 수준의 농업에 의존하고 있다. 도시 지역에서는 실업과 저임금, 비공식 부문 종사자의 불안정한 소득 등이 빈곤을 심화시킨다.
- 실업 문제: 공식적인 실업률 외에도 청년 실업과 불완전 고용이 심각한 문제로 지적된다. 양질의 일자리 부족은 청년층의 해외 이주를 부추기기도 한다.
- 비공식 경제: 경제의 상당 부분이 비공식 부문에 의존하고 있어, 정부의 세수 확보에 어려움을 주고 노동자 보호가 미흡한 경우가 많다.
- 토지 문제: 농촌 지역의 토지 소유 불균형은 오랫동안 지속된 문제이다. 소수의 대지주가 광대한 토지를 소유하고 있는 반면, 다수의 농민은 토지가 없거나 소규모 경작에 의존하고 있다. 이는 농업 생산성 저하와 농촌 빈곤의 악순환을 초래하며, 때로는 토지 분쟁과 사회적 긴장을 유발한다. 알프레도 스트로에스네르 독재 정권 시절 불법적으로 정권 지지자들에게 분배된 토지 문제 해결도 지지부진하다.
- 부패: 부패는 파라과이 경제 발전의 심각한 저해 요인으로 꼽힌다. 공공 부문의 비효율성과 투명성 부족은 외국인 투자를 위축시키고 국가 경쟁력을 약화시킨다.
파라과이 정부는 이러한 경제적 과제 해결과 빈곤 퇴치를 위해 사회 프로그램 확대, 교육 및 직업 훈련 강화, 중소기업 지원, 투자 유치 환경 개선 등의 정책을 추진하고 있으나, 구조적인 문제 해결에는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9. 사회
파라과이 사회는 메스티소가 주를 이루는 인구 구성, 스페인어와 과라니어의 이중 언어 사용, 그리고 가톨릭 중심의 종교적 특징을 보인다. 역사적으로 이민을 많이 받아들였으며, 원주민 사회 문제와 빈곤, 불평등이 주요 사회 문제로 남아있다.
9.1. 인구 구성

파라과이의 인구는 2024년 추산 약 622만 명이다. 인구 분포는 국토 전체에 고르게 퍼져 있지 않으며, 대부분의 인구가 수도 아순시온을 포함한 동부 파라네냐 지역에 집중되어 있다. 국토의 약 60%를 차지하는 서부 그란차코 지역에는 전체 인구의 4% 미만이 거주하고 있다.
- 총인구 및 인구 밀도: 2022년 인구 조사 기준 총인구는 6,109,903명이었다. 국토 면적은 40.68 만 km2로, 인구 밀도는 상대적으로 낮은 편이다.
- 연령 구조: 파라과이는 젊은 인구 구조를 가지고 있으나, 점차 고령화가 진행될 것으로 예상된다.
- 도시화율: 약 63%의 인구가 도시 지역에 거주하고 있어, 남아메리카 국가 중에서는 도시화율이 상대적으로 낮은 편에 속한다. 수도 아순시온과 그 주변 대도시권에 인구가 집중되는 현상이 두드러진다.
- 인구 성장률: 인구 성장률은 과거에 비해 다소 둔화되었으나 여전히 증가 추세에 있다.
- 인구 분포: 국토의 약 10%를 차지하는 수도 아순시온과 그 주변 지역에 전체 인구의 상당수가 밀집해 있다.
역사적으로 파라과이는 특히 삼국 동맹 전쟁으로 인한 인구 급감 이후 낮은 인구 밀도로 인해 이민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여 왔다.
9.2. 민족

파라과이는 메스티소(Mestizo, 유럽계와 원주민의 혼혈)가 인구의 절대다수(약 95% 이상)를 차지하는 매우 동질적인 민족 구성을 가진 국가로 평가받는다. 이는 스페인 식민 초기부터 스페인 남성과 과라니족 여성 간의 통혼이 광범위하게 이루어진 역사적 배경에 기인한다.
- 메스티소: 파라과이 사회의 주류를 이루며, 스페인 문화와 과라니 문화가 융합된 독특한 정체성을 가지고 있다.
- 원주민: 2022년 인구 조사 기준으로 전체 인구의 약 2.3%를 차지한다. 과라니족이 가장 큰 집단이며, 이 외에도 여러 소수 원주민 부족(총 17개의 고유 언어-민족 집단)이 존재한다. 이들은 주로 차코 지역과 동부의 외곽 지역에 거주하며, 고유의 언어와 문화를 유지하려 노력하고 있으나, 토지 문제, 빈곤, 사회적 차별 등 여러 어려움에 직면해 있다.
- 이민자 집단: 파라과이는 역사적으로 다양한 국가로부터 이민을 받아들였다.
- 유럽계: 독일계, 이탈리아계, 스페인인, 러시아인, 우크라이나인, 폴란드인 등이 있으며, 특히 독일계는 메노파 공동체를 중심으로 차코 지역에 정착하여 독자적인 생활 방식을 유지하고 있다. 호에나우, 필라델피아, 노일란트, 누에바 헤르마니아 등은 독일 이민자들이 건설한 대표적인 도시다. 파라과이 인구의 5~7%가 독일계 혈통이라는 비공식적 주장도 있다. 1920년대와 1930년대에는 슬라브계 이민자들이 아순시온과 남부 지역(이타푸아주, 미시오네스주, 녬부쿠주)에 정착했다.
- 아시아계: 일본계, 한국계, 중국계, 대만계 이민자들이 있으며, 주로 상업에 종사한다. 일본계는 1930년대부터 농업 이민을 중심으로 정착하여 현지 농업 발전에 기여했다.
- 아랍계: 레바논 등 중동 지역 출신 이민자들도 소수 존재한다.
- 주변국 출신: 브라질인(특히 "브라시과이오스"로 불리는 농업 이주민), 아르헨티나인, 볼리비아인, 칠레인, 우루과이인 등 주변 라틴아메리카 국가 출신 이민자들도 상당수 거주하고 있다. 특히 브라질 이민자들은 약 40만 명에 달하는 가장 큰 이민자 집단이다.
- 기타: 미국인, 베네수엘라인, 멕시코인 등도 소수 존재한다.
- 아프리카계 파라과이인: 약 63,000명(인구의 1%)으로 추정된다.
이민자 집단들은 파라과이 사회의 다양성을 더하고 경제 발전에 기여하고 있으나, 때로는 사회적 통합 문제가 발생하기도 한다. 파라과이 정부는 공식적인 인종 및 민족 구성을 조사하지는 않지만, 원주민 인구에 대해서는 통계를 관리한다.
9.2.1. 원주민 사회 문제
파라과이의 원주민 사회는 역사적으로 소외와 차별을 경험해 왔으며, 오늘날에도 심각한 사회경제적 문제에 직면해 있다. 이는 인권과 밀접하게 관련된 중요한 현안이다.
- 사회경제적 지위: 파라과이 원주민은 국가 전체 인구 중 가장 빈곤하고 취약한 집단에 속한다. 교육 수준이 낮고, 양질의 일자리를 얻기 어려우며, 보건 및 의료 서비스에 대한 접근성도 매우 낮다. 문해율은 2002년 인구 조사 기준 일반 인구의 51%에 비해 원주민은 7.1%로 극히 낮았다. 2002년 기준으로 깨끗한 식수에 접근할 수 있는 원주민은 2.5%, 전기를 사용하는 원주민은 9.5%에 불과했다.
- 토지권 문제: 원주민에게 가장 심각하고 근본적인 문제는 토지권이다. 역사적으로 이들은 전통적인 생활 터전이었던 토지에서 강제로 축출당하거나 권리를 인정받지 못했다. 농경지 확장, 목축업 확대, 삼림 벌채 등으로 인해 원주민 공동체는 생존 기반을 위협받고 있다. 정부가 원주민 토지 반환이나 소유권 인정을 위한 법적 장치를 마련하고는 있으나, 실제 이행은 더디고 많은 어려움에 부딪히고 있다. 토지 분쟁은 종종 원주민 공동체와 지주, 기업 간의 폭력적인 충돌로 이어지기도 한다.
- 문화 보존 노력: 각 원주민 집단은 고유의 언어와 전통문화를 가지고 있으나, 주류 사회의 동화 압력과 사회경제적 어려움으로 인해 문화 계승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원주민 언어 사용이 줄어들고 있으며, 전통적인 생활 방식도 점차 사라지고 있다. 원주민 단체와 일부 NGO들이 문화 보존과 교육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 교육 및 보건 서비스 접근성: 원주민 아동의 학교 중퇴율이 높고, 교육의 질도 낮은 편이다. 원주민 언어로 된 교육 자료나 교사가 부족한 경우도 많다. 보건 시설은 주로 도시에 집중되어 있어 외딴 지역에 거주하는 원주민들은 의료 서비스를 제대로 받기 어렵다. 영양실조, 전염병 등에 취약한 상황이다.
- 정부 정책 및 인권 상황: 파라과이 헌법은 원주민의 권리를 인정하고 있으나, 실제 정책 이행은 미흡하다는 비판이 많다. 원주민 관련 정부 부처가 존재하지만, 예산과 인력이 부족하여 실질적인 지원에는 한계가 있다. 국제 인권 단체들은 파라과이 원주민의 인권 상황에 대해 지속적으로 우려를 표명하고 있으며, 특히 토지권 보장, 차별 철폐, 기본적인 사회 서비스 접근성 향상을 촉구하고 있다. 2019년 유엔 인권위원회는 대규모 농약 살포와 주민 중독 사건에 대한 조사를 파라과이에 촉구하기도 했다.
파라과이 원주민 사회 문제는 단순히 소수 집단의 문제를 넘어, 국가 전체의 사회 통합과 정의 실현이라는 차원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9.3. 언어
파라과이는 공식적으로 스페인어(Español)와 과라니어(Guaraní)를 공용어로 사용하는 독특한 이중언어 사회이다. 이는 남미에서 원주민 언어가 공용어의 지위를 가지며 광범위하게 사용되는 드문 사례 중 하나이다.
- 스페인어: 식민 지배의 영향으로 도입되었으며, 정부, 행정, 교육, 비즈니스, 미디어 등 공식적인 영역에서 주로 사용된다. 2015년 기준 인구의 약 87%가 스페인어를 구사할 수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 과라니어: 파라과이의 원주민인 과라니족의 언어로, 국민 대다수가 일상생활에서 사용하는 언어이다. 인구의 90% 이상, 즉 580만 명 이상이 과라니어를 구사하며, 특히 농촌 지역에서는 과라니어가 제1언어인 경우가 많다. 농촌 인구의 52%는 과라니어에 능통한 이중언어 사용자이다. 과라니어는 파라과이 국민의 정체성과 문화를 상징하는 중요한 요소로 여겨진다. 스페인어의 영향을 받아 변형된 형태인 호파라(Jopara과라니어, 과라니어와 스페인어의 혼합)도 널리 사용된다.
- 이중언어 사용 현황: 대부분의 파라과이인은 스페인어와 과라니어를 모두 이해하거나 구사할 수 있는 이중언어 사용자이다. 공식적인 자리에서는 스페인어가 우대받는 경향이 있지만, 일상 대화나 비공식적인 상황에서는 과라니어가 활발하게 사용된다.
- 기타 원주민 언어: 과라니어 외에도 약 19개의 다른 원주민 언어가 존재하나, 대부분 소수 집단에 의해 사용되며 많은 언어가 소멸 위기에 처해 있다. 과나(Guana과라니어), 아요레오(Ayoreo과라니어), 이쉬르(Ishir과라니어, 차마코코) 등이 위기 언어로 간주된다.
- 이민자 언어: 독일어(특히 메노파 공동체), 일본어, 한국어, 포르투갈어(브라질 이민자) 등 이민자 집단에 의해 그들의 모국어가 일부 사용되기도 한다.
파라과이 정부는 과라니어의 보존과 진흥을 위해 노력하고 있으며, 학교 교육에서도 과라니어 교육을 실시하고 있다. 과라니어는 단순한 의사소통 수단을 넘어 파라과이의 문화적 다양성과 국가적 자부심을 나타내는 상징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9.4. 종교

파라과이는 전통적으로 로마 가톨릭이 압도적인 다수를 차지하는 국가이다. 종교의 자유는 헌법으로 보장된다.
- 로마 가톨릭: 2002년 인구 조사에 따르면 인구의 89.9%가 가톨릭 신자였으며, 2018년 라티노바로메트로 조사에서는 88.3%로 나타났다. 가톨릭은 파라과이의 역사, 문화, 사회 전반에 깊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 주요 도시와 마을에는 성당이 있으며, 종교 축일은 공휴일로 지정되어 있다. 특히 매년 12월 8일 카쿠페(Caacupé스페인어)의 성모 축일에는 많은 순례자가 모인다.
- 개신교: 2002년 조사에서는 6.2%, 2018년 조사에서는 약 7.8%로 나타나 점차 증가하는 추세이다. 복음주의 계열 교단이 주를 이루며, 오순절교회, 침례교, 메노나이트 등이 활동하고 있다. 특히 메노나이트는 차코 지역에 집단 거주하며 독자적인 신앙 공동체를 유지하고 있다.
- 기타 기독교 종파: 예수 그리스도 후기 성도 교회(몰몬교), 제7일 안식일 예수 재림교회, 여호와의 증인 등도 소수 활동하고 있다. 2002년 조사에서 기타 기독교 종파는 1.1%를 차지했다.
- 무종교 및 기타: 종교가 없거나 불가지론을 표방하는 인구는 2018년 기준 약 2.6%로 소수이다. 이슬람교(주로 알토파라나주의 레바논계 이민자 공동체), 유대교, 불교, 바하이 신앙 등도 극소수 존재하며, 원주민 전통 신앙을 따르는 이들도 일부 있다.
다음은 2002년 인구 조사를 기반으로 한 파라과이의 종교 분포표이다. (1992년 자료와 비교)
종교 | 2002년 신자 수 | 2002년 비율 | 1992년 신자 수 | 1992년 비율 | 1992년-2002년 변화 |
---|---|---|---|---|---|
가톨릭교회 | 3,488,086 | 89.61% | 2,749,888 | 93.25% | -3.64% |
기타 전통 기독교(가톨릭 제외)* | 21,133 | 0.54% | 14,497 | 0.49% | +0.05% |
16세기 이후 기독교 교파들** | 264,233 | 6.78% | 138,573 | 4.70% | +2.08% |
유대교 | 1,100 | 0.03% | 952 | 0.03% | - |
이슬람교 | 872 | 0.02% | 1,200 | 0.04% | -0.02% |
"동양 및 문화 종교"(이슬람 제외)*** | 2,566 | 0.07% | 2,811 | 0.10% | -0.03% |
원주민 종교 | 23,741 | 0.61% | 해당 없음 | 해당 없음 | 해당 없음 |
기타 명시되지 않은 종교**** | 31,668 | 0.81% | 8,152 | 0.28% | +0.53% |
무종교 | 44,334 | 1.14% | 23,236 | 0.78% | +0.36% |
무응답 | 37,206 | 0.96% | 9,790 | 0.33% | +0.63% |
총 조사 참여자 | 3,892,603 | 100% | 2,949,099 | 100% | - |
주:
- 전통 기독교에는 독립 가톨릭 교회, 정교회, 성공회, 루터교, 장로교, 메노나이트 등이 포함될 수 있음.
- 16세기 이후 기독교 교파들은 주로 복음주의 및 오순절 계열, 후기 성도 교회, 여호와의 증인 등을 포함함.
- 동양 및 문화 종교에는 힌두교, 불교, 신토, 바하이 신앙 등이 포함될 수 있음.
- 1992년 인구 조사에서 이전에 언급되지 않은 기타 종교.
- 동양 및 문화 종교에는 힌두교, 불교, 신토, 바하이 신앙 등이 포함될 수 있음.
- 16세기 이후 기독교 교파들은 주로 복음주의 및 오순절 계열, 후기 성도 교회, 여호와의 증인 등을 포함함.
9.5. 교육
파라과이의 교육 시스템은 공립과 사립으로 나뉘며, 정부는 교육 기회 확대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 그러나 여전히 교육의 질과 접근성 면에서 개선이 필요한 부분이 많다.
- 학제: 파라과이의 기본 학제는 초등교육(Educación Escolar BásicaEEB스페인어) 9년과 중등교육(Educación Media스페인어) 3년으로 구성된다. 초등교육은 다시 1-6학년(1, 2주기)과 7-9학년(3주기)으로 나뉜다. 중등교육을 마치면 대학 입학 자격이 주어진다.
- 의무 교육: 초등교육 9년은 의무 교육이며 무상으로 제공된다. 그러나 교재비나 기타 비용은 가계에 부담이 될 수 있다.
- 주요 교육 지표:
- 문해율: 2003년 추산 15세 이상 국민의 문해율은 94%로 비교적 높은 편이다. 유네스코의 2008년 교육 개발 지수에 따르면 문해율은 약 93.6%였으며, 5학년까지 마치는 비율은 87.7%였다. 성별에 따른 문해율 차이는 크지 않다.
- 취학률: 최근 연구에 따르면 6세에서 12세 사이 아동의 초등학교 취학률은 약 98%에 달한다. 순 초등 취학률은 2005년 기준 88%였다. 그러나 중등교육으로의 진학률은 상대적으로 낮고, 학업 중단율도 문제로 지적된다.
- 고등 교육 기관:
- 주요 대학으로는 1889년에 설립된 국립 아순시온 대학교(Universidad Nacional de Asunción, UNA)가 가장 오래되고 규모가 크다.
- 사립 대학으로는 아순시온 자치 대학교(Universidad Autónoma de Asunción, UAA, 1979년 설립), 가톨릭 교회가 운영하는 아순시온 가톨릭 대학교(Universidad Católica Nuestra Señora de la Asunción, UCA), 아메리카나 대학교(Universidad Americana), 파시피코 대학교(Universidad del Pacífico, 1991년 설립) 등이 있다.
- 대부분의 주요 대학은 수도 아순시온에 집중되어 있다.
- 교육 시스템의 과제:
- 교육의 질적 수준 향상: 교사 양성 및 재교육, 교육 과정 현대화, 교육 시설 개선 등이 필요하다.
- 지역 간 교육 격차: 도시와 농촌 간, 그리고 부유층과 빈곤층 간의 교육 기회 및 교육의 질에서 격차가 존재한다.
- 원주민 교육: 원주민 아동을 위한 양질의 교육 제공과 문화적 특성을 고려한 교육 프로그램 개발이 필요하다.
- 낮은 공교육 투자: 2000년대 초반 교육에 대한 공공 지출은 GDP의 약 4.3% 수준이었다.
파라과이 정부는 교육 개혁을 통해 이러한 문제들을 해결하고, 국가 경쟁력 강화와 사회 발전을 위한 인재 양성에 힘쓰고 있다.
9.6. 보건 및 복지
파라과이의 보건 및 복지 시스템은 점진적으로 개선되고 있으나, 여전히 많은 과제를 안고 있다. 특히 도시와 농촌 간, 소득 계층 간 의료 서비스 접근성 격차가 크다.
- 주요 보건 지표:
- 평균 수명: 2006년 기준 평균 수명은 75세로, 경제 수준에 비해 비교적 높은 편이며, 이는 아르헨티나와 비슷한 수준으로 세계보건기구(WHO)에 따르면 아메리카 대륙에서 8번째로 높다.
- 영아 사망률: 2005년 기준 출생아 1,000명당 20명이었다.
- 모성 사망률: 2000년 기준 출생아 10만 명당 150명이었다. 세계은행은 파라과이 정부가 모성 및 영아 사망률을 줄이는 데 도움을 주었다. '모자 기본 건강 보험 프로젝트'는 특정 지역에서 가임기 여성과 6세 미만 아동이 국가의 모자 기본 건강 보험 프로그램(MCBI)에 포함된 생명 구조 서비스를 더 많이 이용하도록 하여 사망률 감소에 기여하는 것을 목표로 했다. 이를 위해 이 프로젝트는 특정 지역 내 보건 서비스 네트워크의 질과 효율성을 개선하고, 공중보건사회복지부(MSPandBS)의 관리 능력을 향상시키는 것도 목표로 삼았다.
- 의료 서비스 접근성: 공공 의료 시스템이 존재하지만, 재정 부족과 인력 부족으로 인해 양질의 서비스를 제공하는 데 한계가 있다. 양질의 병원은 주로 수도 아순시온 등 대도시에 집중되어 있어, 농촌 지역 주민들은 의료 서비스 접근에 어려움을 겪는다. 민간 의료기관도 있으나 비용이 높아 저소득층에게는 부담이 된다.
- 주요 질병: 뎅기열, 치쿤구니야열, 지카 바이러스 감염증과 같은 모기 매개 질병이 주요 공중 보건 문제 중 하나이다. 또한, 샤가스병(빈추가 벌레에 의해 전파)도 일부 지역에서 발생한다. 만성 질환으로는 심혈관계 질환, 당뇨병 등이 증가하는 추세이다.
- 사회 보장 제도:
- 연금 제도: 공공 부문 종사자와 민간 부문 근로자를 위한 별도의 연금 제도가 운영되고 있으나, 가입률이 낮고(2005년 IMF에 따르면 근로자의 10% 미만) 제도의 지속 가능성에 대한 우려가 있다. 연금 시스템의 95%는 두 기관에서 관리한다. 두 기관 모두 근로자 기여금으로 운영되는 부과식 연금 제도로 운영된다. 첫 번째 기관인 사회보장연구소(Instituto de Previsión Social스페인어)는 민간 부문 근로자를 위한 것이고, 국고(caja fiscal스페인어)는 공무원(대학교수, 교사, 사법부 직원, 군 장교, 경찰관 포함)과 차코 전쟁 참전 용사(또는 그 후손)를 위한 것이다.
- 건강 보험: 공공 건강 보험이 존재하지만 보장 범위가 제한적이며, 많은 국민이 민간 보험에 가입하거나 의료비를 직접 부담해야 한다.
- 기타 사회 복지: 빈곤층, 노인, 장애인 등을 위한 사회 지원 프로그램이 있으나, 충분하지 않다는 평가가 많다.
파라과이 정부는 의료 인프라 확충, 의료 인력 양성, 건강 보험 적용 범위 확대, 질병 예방 및 관리 강화 등을 통해 국민 보건 수준을 향상시키고 사회 안전망을 강화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10. 문화

파라과이 문화는 스페인 정착민과 원주민인 과라니족 여성 간의 광범위한 통혼에 뿌리를 두고 있다. 문화는 스페인을 포함한 다양한 유럽 국가들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따라서 파라과이 문화는 유럽 문화와 남부 과라니 문화라는 두 문화와 전통의 융합체이다. 이는 전국적으로 공통적이지만, 아티라, 토바티, 알토스와 같은 도시 주변에서 더 두드러진다. 파라과이인의 93% 이상이 메스티소로, 파라과이는 라틴 아메리카에서 가장 동질적인 국가 중 하나이다. 이러한 문화 융합의 특징은 오늘날까지 광범위하게 나타나는 이중 언어 사용이다. 파라과이인의 80% 이상이 스페인어와 원주민 언어인 과라니어를 모두 사용한다. 과라니어와 스페인어가 혼합된 호파라(Jopara과라니어)도 널리 사용된다.
이러한 문화적 융합은 자수(아오 포이, ao po'í과라니어)와 냔두티 레이스(ñandutí과라니어) 같은 예술에서 표현된다. 경쾌한 폴카, 활기찬 갈로파(galopas스페인어), 나른한 과라니아로 구성된 파라과이의 음악은 토종 하프로 연주된다. 파라과이의 요리 유산 또한 이러한 문화적 융합의 깊은 영향을 받았다. 몇몇 인기 있는 요리에는 남서부 미국과 멕시코에서 발견되는 유카(yuca스페인어) 또는 카사바 뿌리와 유사한 현지 주요 작물인 카사바(만디오카)와 기타 토착 재료가 포함된다. 인기 있는 요리로는 두꺼운 콘브레드와 유사한 소파 파라과야(sopa paraguaya)가 있다. 또 다른 주목할 만한 음식은 옥수숫가루, 카사바, 치즈로 만든 베이글과 유사한 빵인 치파(chipa)이다. 다른 많은 요리는 다양한 종류의 치즈, 양파, 피망, 코티지 치즈, 옥수숫가루, 우유, 조미료, 버터, 달걀, 신선한 옥수수 알갱이로 구성된다.
1950년대와 1960년대는 호세 리카르도 마소, 로케 바예호스, 그리고 노벨상 후보였던 아우구스토 로아 바스토스와 같은 파라과이 소설가와 시인의 새로운 세대가 탄생한 시기였다. 여러 편의 파라과이 영화가 제작되었다.
가족 내에서는 보수적인 가치가 지배적이다. 하층 계급에서는 대부모(godparents스페인어)가 가족과 특별한 관계를 맺는데, 이는 일반적으로 자녀에게 추가적인 안정을 제공하기 위해 유리한 사회적 지위 때문에 선택되기 때문이다. 그들에게 특별한 존경심을 표하는 대가로 가족은 보호와 후원을 기대할 수 있다.
파라과이 음악에서 가장 인기 있는 악기는 하프와 기타이다. 토착 장르는 파라과이 폴카와 과라니아로, 1920년대경 호세 아순시온 플로레스가 발전시킨 느린 노래가 특징이다.
10.1. 전통 문화

파라과이의 전통 문화는 스페인 식민 시대의 유산과 토착 과라니 문화가 독특하게 융합된 형태를 보여준다. 이는 복식, 공예, 민속 축제 등 생활양식 전반에 걸쳐 나타난다.
- 복식: 전통 의상으로는 여성들이 입는 티포이(Typói과라니어)가 있다. 이는 주로 면으로 만들어지며, 아오포이(Ao Po'i과라니어) 자수 등으로 아름답게 장식된다. 남성들은 봄바차(Bombacha스페인어)라는 헐렁한 바지와 셔츠를 입고, 판초(Poncho스페인어)를 걸치기도 한다. 축제나 특별한 행사에서는 이러한 전통 의상을 착용한 모습을 볼 수 있다.
- 공예: 파라과이는 독특하고 정교한 수공예품으로 유명하다.
- 냔두티 레이스 (Ñandutí Lace과라니어): "거미줄"을 의미하는 과라니어에서 유래한 이름처럼, 섬세하고 아름다운 방사형 무늬가 특징인 레이스 공예품이다. 주로 이타우과(Itauguá과라니어) 지역에서 생산되며, 테이블보, 의류 장식, 액세서리 등 다양하게 활용된다.
- 아오포이 자수 (Ao Po'i Embroidery과라니어): "섬세한 옷감"을 의미하는 과라니어에서 유래한 자수 기법이다. 면직물에 기하학적 무늬나 자연을 모티브로 한 그림을 수놓아 만들며, 주로 셔츠, 블라우스, 드레스 등 의류에 사용된다. 과이라(Guairá스페인어) 지역이 중심지이다.
- 가죽 공예: 말 안장, 가방, 신발 등 다양한 가죽 제품이 생산된다.
- 목공예: 나무를 깎아 만든 조각품이나 생활용품도 찾아볼 수 있다.
- 도자기: 과라니 전통의 영향을 받은 소박하고 독특한 형태의 도자기가 생산된다.
- 민속 축제: 파라과이에서는 가톨릭 종교 축일과 전통적인 민속 축제가 함께 열린다.
- 카쿠페 성모 축일 (Virgin of Caacupé스페인어): 매년 12월 8일, 파라과이의 수호성인인 카쿠페의 성모를 기리는 축제로, 전국 각지에서 수많은 순례자가 카쿠페 대성당으로 모여든다.
- 산 후안 축제 (Fiesta de San Juan스페인어): 매년 6월 말에 열리는 전통 축제로, 모닥불을 피우고 전통 음식과 게임을 즐긴다. 유럽의 하지 축제와 유사한 성격을 띤다.
- 카니발: 특히 엥카르나시온에서 열리는 카니발이 유명하며, 화려한 의상과 퍼레이드, 음악과 춤이 어우러진다.
이러한 전통 문화는 파라과이 국민의 정체성을 형성하는 중요한 요소이며, 세대를 거쳐 계승되고 있다.
10.2. 음식
파라과이 음식 문화는 과라니 원주민의 전통적인 식재료와 조리법에 스페인 식민 시대의 영향이 결합된 독특한 특징을 지닌다. 주식으로는 옥수수와 만디오카(카사바)가 널리 사용되며, 육류 소비도 많은 편이다.
- 대표적인 전통 음식:
- 소파 파라과야 (Sopa Paraguaya): 이름은 "파라과이 수프"라는 뜻이지만, 실제로는 수프가 아니라 옥수숫가루, 치즈, 양파, 우유 등을 넣어 구운 스펀지 케이크 또는 콘브레드와 유사한 고형 음식이다. 파라과이를 대표하는 국민 음식으로 꼽힌다.
- 치파 (Chipa): 만디오카 전분, 옥수숫가루, 아니스, 치즈, 달걀 등으로 만든 빵의 일종이다. 다양한 모양과 크기로 만들어지며, 특히 부활절 기간에 많이 먹는다. 길거리나 시장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대중적인 간식이다.
- 보리보리 (Vori Vori): 옥수숫가루와 치즈로 만든 작은 경단을 넣어 끓인 닭고기 또는 소고기 수프이다. 든든하고 영양가 있는 음식으로 여겨진다.
- 음베후 (Mbejú): 만디오카 전분, 돼지기름, 치즈 등을 섞어 팬에 구운 팬케이크와 유사한 음식이다. 아침 식사나 간식으로 즐겨 먹는다.
- 아사도 (Asado): 소고기, 돼지고기, 닭고기 등을 숯불에 구워 먹는 바비큐 요리로, 아르헨티나 등 주변 남미 국가에서도 즐겨 먹지만 파라과이에서도 매우 인기 있는 음식이다. 가족이나 친구들과 함께 모여 아사도를 즐기는 것은 중요한 사교 활동 중 하나이다.
- 파예과 마스카다 (Payagua Mascada): 다진 소고기와 만디오카를 섞어 튀긴 패티와 유사한 음식이다.
- 대표적인 음료:
- 테레레 (Tereré): 마테차(Yerba Mate) 잎을 차가운 물이나 약초를 우린 물에 타서 마시는 음료이다. 과라니 원주민으로부터 유래된 전통으로, 파라과이의 국민 음료로 불릴 만큼 일상생활에서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더운 날씨에 갈증을 해소하고 원기를 회복하는 데 도움을 준다고 여겨지며, 친구나 가족과 함께 마시며 담소를 나누는 중요한 사교의 매개체이다. 휴대용 물통(termo스페인어)과 마테차를 담는 잔(guampa스페인어), 그리고 차를 마시는 금속 빨대(bombilla스페인어)는 파라과이 사람들이 항상 지니고 다니는 필수품이다.
- 마테 (Mate): 테레레와 동일한 마테차 잎을 사용하지만, 뜨거운 물에 우려 마시는 방식이다. 아르헨티나나 우루과이에서 더 보편적이지만, 파라과이에서도 추운 날씨에는 마테를 즐겨 마신다.
- 모스토 (Mosto): 사탕수수즙을 발효시키지 않고 만든 달콤한 음료이다.
파라과이 음식은 소박하지만 영양가가 높고, 공동체적인 식문화를 중시하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10.3. 음악 및 예술

파라과이의 음악과 예술은 토착 과라니 문화와 스페인 식민 시대의 유럽 문화가 융합되어 독특한 색채를 띤다.
- 음악:
- 파라과이 하프 (Arpa Paraguaya): 파라과이를 대표하는 악기로, 일반적인 하프보다 크기가 작고 현의 수가 적은 것이 특징이다. 맑고 청아한 소리를 내며, 주로 민속 음악 연주에 사용된다. 펠릭스 페레스 카르도소(Félix Pérez Cardozo스페인어)는 파라과이 하프 음악을 세계에 알린 유명한 연주가이자 작곡가이다.
- 과라니아 (Guarania): 1920년대 호세 아순시온 플로레스(José Asunción Flores스페인어)에 의해 창시된 파라과이 고유의 음악 장르이다. 느리고 서정적인 멜로디가 특징이며, 주로 사랑, 향수, 자연의 아름다움 등을 노래한다. 파라과이인의 정서를 잘 나타내는 음악으로 평가받는다.
- 파라과이 폴카 (Polca Paraguaya스페인어): 유럽의 폴카에서 유래했으나 파라과이 특유의 리듬과 선율로 변형된 경쾌하고 활기찬 음악 장르이다. 춤곡으로도 많이 사용된다.
- 기타 민속 음악: 전통적인 기타 연주와 노래도 활발하며, 다양한 축제와 행사에서 민속 음악 공연을 접할 수 있다.
- 예술:
- 전통 춤: 파라과이 폴카나 과라니아 음악에 맞춰 추는 민속춤이 발달해 있다. 여성들은 병이나 항아리를 머리에 이고 균형을 잡으며 추는 "병 춤(Danza de la Botella스페인어)"이 유명하다. 화려한 전통 의상을 입고 추는 군무도 있다.
- 미술: 식민 시대에는 종교 미술이 주를 이루었으나, 근현대에 들어서는 다양한 양식의 회화와 조각이 발전했다. 카를로스 콜롬비노(Carlos Colombino스페인어), 리카르도 미요(Ricardo Migliorisi스페인어) 등이 국제적으로 알려진 현대 미술가이다. 토착 과라니 문화의 영향을 받은 작품들도 있다.
- 공예: 냔두티 레이스, 아오포이 자수, 목공예, 도자기 등 수공예품이 발달하여 예술적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전통 문화 섹션 참고)
파라과이의 음악과 예술은 국가 정체성의 중요한 부분을 이루며, 국내외에서 그 독창성과 아름다움을 인정받고 있다.
10.4. 문학
파라과이 문학은 스페인어와 과라니어로 쓰인 작품들을 아우르며, 국가의 역사적 경험과 사회적 현실, 그리고 토착 문화의 영향을 반영하고 있다. 다른 라틴아메리카 국가들에 비해 국제적으로 널리 알려진 작가나 작품이 많지는 않지만, 독자적인 문학적 전통을 이어오고 있다.
- 초기 문학: 식민지 시대와 독립 초기에는 주로 역사 기록이나 정치적 저술이 주를 이루었다. 문학적인 작품 활동은 상대적으로 미미했다.
- 20세기 전반: 이 시기에는 시와 단편 소설을 중심으로 문학 활동이 이루어지기 시작했다. 그러나 정치적 불안정과 독재 정권 하에서의 검열 등으로 인해 문학 발전이 순탄치만은 않았다.
- 아우구스토 로아 바스토스 (Augusto Roa Bastos, 1917-2005): 파라과이를 대표하는 가장 중요한 작가로, 라틴아메리카 문학의 "붐(Boom)" 세대 작가들과 함께 언급되기도 한다. 그의 작품은 파라과이의 역사, 특히 독재와 권력의 문제를 깊이 있게 다루며, 과라니어의 요소와 신화적 상상력을 결합한 독특한 문체로 유명하다. 대표작으로는 『인간의 아들』(Hijo de Hombre스페인어, 1960), 『나는 지고의 존재』(Yo el Supremo스페인어, 1974) 등이 있으며, 1989년에는 스페인어권 최고의 문학상인 세르반테스상을 수상했다. 그의 작품은 파라과이 문학을 세계에 알리는 데 크게 기여했다.
- 기타 주요 작가 및 경향:
- 가브리엘 카사시아 (Gabriel Casaccia, 1907-1980): 로아 바스토스와 함께 20세기 파라과이 소설을 대표하는 작가로, 사회 비판적인 사실주의 작품을 주로 썼다.
- 호세피나 플라 (Josefina Plá, 1903-1999): 스페인 출신이지만 파라과이에서 활동하며 시, 희곡, 소설, 비평 등 다양한 분야에서 중요한 업적을 남긴 여성 작가이다.
- 엘리비오 로메로 (Elvio Romero, 1926-2004): 사회 참여적인 시를 많이 쓴 시인이다.
- 최근에는 여성 작가들의 활동도 활발해지고 있으며, 역사 소설, 사회 문제를 다룬 소설, 시 등 다양한 장르의 작품들이 발표되고 있다.
파라과이 문학은 과라니어 사용 문제, 정체성 탐구, 독재의 상처와 기억, 사회적 불평등 등과 같은 주제를 지속적으로 다루며 발전하고 있다.
10.5. 언론 및 미디어
파라과이의 언론 및 미디어 환경은 민주화 이후 상당한 발전을 이루었으나, 여전히 정치적 영향력, 소유 집중, 언론인에 대한 위협 등의 과제를 안고 있다.
- 신문: 수도 아순시온을 중심으로 여러 일간지가 발행되고 있다. 주요 전국지로는 오랜 역사를 가진 ABC 콜로르(ABC Color), 울티마 오라(Última Hora), 라 나시온(La Nación) 등이 있으며, 이들은 각기 다른 정치적 성향을 보이기도 한다. 지방 도시에서도 지역 신문이 발행된다.
- 방송:
- 텔레비전: 다수의 민영 지상파 방송국과 케이블 TV 채널이 운영되고 있다. 국영 방송국도 존재한다. 뉴스, 드라마, 예능, 스포츠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방영하며, 외국 프로그램 수입도 활발하다.
- 라디오: 텔레비전보다 더 넓은 지역에 보급되어 있으며, 특히 농촌 지역에서는 중요한 정보 전달 수단이다. 수많은 AM 및 FM 라디오 방송국이 전국적으로 운영되고 있으며, 음악, 뉴스, 토크쇼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제공한다. 과라니어로 방송하는 라디오 채널도 있다.
- 온라인 미디어: 인터넷 보급이 확대되면서 온라인 뉴스 포털과 소셜 미디어의 영향력이 커지고 있다. 기존 언론사들도 온라인 플랫폼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으며, 독립적인 온라인 매체들도 활동하고 있다.
- 언론 환경 및 자유: 파라과이 헌법은 언론의 자유를 보장하고 있으나, 실제 언론 환경은 여러 도전에 직면해 있다.
- 정치적 압력: 일부 언론이 특정 정치 세력이나 경제 집단의 영향을 받는다는 비판이 있다.
- 소유 집중: 소수의 미디어 그룹이 주요 언론 시장을 장악하고 있어 여론 다양성을 저해한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 언론인에 대한 위협: 특히 부패, 마약 밀매, 국경 지역의 불법 활동 등을 취재하는 언론인들이 협박이나 폭력에 노출되는 경우가 발생하며, 이는 언론 활동을 위축시키는 요인이 된다. 국제 언론 감시 단체들은 파라과이의 언론 자유 수준에 대해 지속적으로 주의를 환기하고 있다.
민주주의 발전과 함께 언론의 역할이 중요해지고 있으며, 독립적이고 비판적인 언론 육성을 위한 노력이 요구되고 있다.
10.6. 스포츠

파라과이에서 스포츠는 국민들의 일상생활과 문화에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며, 특히 축구는 압도적인 인기를 누리고 있다.
- 축구: 파라과이에서 가장 인기 있는 스포츠이다. 프로 축구 리그인 파라과이 프리메라 디비시온이 운영되고 있으며, 올림피아, 세로 포르테뇨, 리베르타드, 과라니 등이 전통적인 강팀으로 꼽힌다. 올림피아는 코파 리베르타도레스에서 3회 우승한 경력을 가진 남미의 명문 클럽 중 하나이다.
파라과이 축구 국가대표팀은 "로스 과라니에스(Los Guaraníes스페인어)" 또는 "알비로하(Albirroja스페인어, 흰색과 붉은색)"라는 애칭으로 불리며, FIFA 월드컵 본선에 8번 진출했다. 최고 성적은 2010년 FIFA 월드컵에서 거둔 8강 진출이다. 코파 아메리카에서는 1953년과 1979년에 두 차례 우승한 경험이 있다. 호세 루이스 칠라베르트, 로케 산타 크루스, 카를로스 가마라, 미겔 알미론 등 세계적으로 알려진 축구 선수들을 배출했다.
- 기타 스포츠:
- 농구: 축구 다음으로 인기 있는 팀 스포츠 중 하나이다. 프로 리그가 운영되며, 국제 대회에도 꾸준히 참가하고 있다.
- 배구, 핸드볼, 풋살: 학교 체육과 클럽 활동을 중심으로 인기가 있으며, 특히 풋살은 실내에서 즐기기 좋아 대중적인 스포츠이다.
- 수영, 테니스: 개인 스포츠로서 꾸준히 저변을 넓혀가고 있다.
- 럭비 유니언, 체스, 모터스포츠, 골프, 조정: 특정 계층이나 동호인을 중심으로 즐기는 스포츠이다.
파라과이 정부는 스포츠 진흥을 통해 국민 건강 증진과 국가 이미지 제고에 힘쓰고 있으며, 국제 스포츠 대회 유치에도 관심을 보이고 있다.
10.7. 공휴일
파라과이의 공휴일은 국경일, 종교적 기념일, 그리고 역사적 사건을 기리는 날들로 구성된다. 다음은 주요 공휴일 목록이다. (일부 날짜는 매년 변동될 수 있음)
날짜 | 한국어 명칭 | 스페인어 명칭 | 비고 |
---|---|---|---|
1월 1일 | 새해 첫날 | Año Nuevo스페인어 | |
3월 1일 | 영웅의 날 | Día de los Héroes스페인어 | 삼국 동맹 전쟁 중 사망한 영웅들, 특히 프란시스코 솔라노 로페스 대통령을 추모하는 날. |
부활절 관련 (매년 변동) | 성목요일 | Jueves Santo스페인어 | |
부활절 관련 (매년 변동) | 성금요일 | Viernes Santo스페인어 | |
5월 1일 | 노동절 | Día del Trabajador스페인어 | |
5월 14일 | 독립 기념일 | Día de la Independencia Nacional스페인어 | 1811년 독립 선언일 (5월 14-15일 연휴) |
5월 15일 | 독립 기념일 | Día de la Independencia Nacional스페인어 | |
6월 12일 | 차코 평화의 날 | Día de la Paz del Chaco스페인어 | 차코 전쟁 종전 기념일 (1935년) |
8월 15일 | 아순시온 창건일 | Fundación de Asunción스페인어 | 수도 아순시온 창건 기념일 (1537년) |
9월 29일 | 보케론 전투 승리의 날 | Victoria de Boquerón스페인어 | 차코 전쟁 중 보케론 전투 승리 기념일 |
12월 8일 | 카쿠페 성모의 날 | Día de la Virgen de Caacupé스페인어 | 파라과이의 수호성인 카쿠페 성모 마리아 축일 |
12월 25일 | 크리스마스 | Navidad스페인어 |
이 외에도 선거일 등 임시 공휴일이 지정될 수 있으며, 일부 공휴일은 주말로 옮겨져 연휴로 시행되기도 한다.
10.8. 세계유산
파라과이에는 2024년 현재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문화유산이 1건 있다.
- 라 산티시마 트리니다드 데 파라나와 헤수스 데 타바랑게 예수회 선교단 시설 (Jesuit Missions of La Santísima Trinidad de Paraná and Jesús de Tavarangue)
- 등재 연도: 1993년
- 분류: 문화유산
- 설명: 이 유산은 17세기와 18세기에 파라과이 남동부 지역에 건설되었던 예수회 선교 마을(리덕션, Reducción스페인어)의 유적이다. 특히 라 산티시마 트리니다드 데 파라나 유적과 헤수스 데 타바랑게 유적이 잘 보존되어 있다. 이 선교 마을들은 예수회가 과라니족 원주민들을 대상으로 기독교를 전파하고 공동체를 이루어 생활하도록 하기 위해 설립한 것이다.
- 라 산티시마 트리니다드 데 파라나 (La Santísima Trinidad de Paraná스페인어): 1706년에 설립되어 가장 크고 잘 조직된 리덕션 중 하나였다. 웅장한 교회당, 학교, 작업장, 주거 시설 등의 유적이 남아 있으며, 바로크 양식과 토착 양식이 결합된 독특한 건축미를 보여준다.
- 헤수스 데 타바랑게 (Jesús de Tavarangue스페인어): 1685년에 설립되었으며, 미완성 상태로 남겨진 거대한 교회당 유적이 인상적이다. 만약 완성되었다면 당시 아메리카 대륙에서 가장 큰 교회 중 하나가 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 가치: 이 유적들은 예수회의 선교 활동과 과라니족의 사회 및 문화적 변화 과정을 보여주는 중요한 역사적 증거이다. 또한, 유럽의 건축 양식과 원주민의 예술적 감각이 조화를 이룬 독특한 문화적 가치를 지닌다. 유네스코는 이 유산이 17-18세기 예수회의 사회적, 문화적, 종교적 실험을 보여주는 뛰어난 사례라고 평가하고 있다.
파라과이는 이 외에도 잠정 목록에 여러 유산을 등재하고 세계유산 확대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