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트리니다드 토바고 공화국은 카리브해 남부에 위치한 섬나라로, 주요 섬인 트리니다드섬과 토바고섬 및 여러 작은 섬들로 구성된다. 베네수엘라 해안에서 북동쪽으로 약 11 km, 그레나다에서 남쪽으로 약 130 km 떨어져 있다. 수도는 포트오브스페인이며, 최대 도시는 차과나스이다. 지리적으로는 남아메리카 대륙붕에 속하나 문화적으로는 서인도 제도의 일부로 여겨진다. 1498년 크리스토퍼 콜럼버스의 상륙 이후 스페인의 지배를 받았고, 이후 프랑스인 유입과 영국 통치를 거쳐 1962년 독립, 1976년 공화국이 되었다. 주요 산업은 석유와 천연가스로, 다른 카리브해 국가들에 비해 관광업 의존도는 낮다. 인구는 아프리카계와 인도계가 주를 이루며, 이들의 문화가 융합되어 카니발, 스틸팬 음악, 칼립소, 소카 등 독특한 문화를 창출했다. 의원내각제 공화국으로 양원제 의회를 운영하며, 카리브 공동체(CARICOM)의 핵심 회원국이다. 국토 면적은 약 5128 km2이며, 다양한 생물군과 열대 기후를 특징으로 한다. 최근에는 높은 범죄율과 마약 밀매 문제에 직면하고 있으며, 정부는 이를 해결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2. 국명
트리니다드 토바고 공화국의 국명은 주요 두 섬인 트리니다드섬과 토바고섬의 이름을 합쳐 만들어졌다. 트리니다드섬의 원주민 이름은 벌새를 뜻하는 아라와크어 '이에레테'(ierèttê) 또는 '예레테'(yerettê)에서 유래한 '카이리'(Cairi벌새의 땅기타 언어)였다고 역사가 E. L. 조셉은 주장한다. 그러나 다른 학자들은 '카이리'가 벌새('투쿠시' 또는 '투쿠치'가 정확한 단어라고 함)를 의미하지 않거나, 단순히 '섬'을 뜻하는 '카이리'(kairi) 또는 '이에레'(iere)라고 반박하기도 한다. 크리스토퍼 콜럼버스는 1498년 세 번째 항해 중 이 섬을 발견하고, 출항 전 서약했던 대로 기독교의 삼위일체를 기리기 위해 '라 이슬라 데 라 트리니다드'(La Isla de la Trinidad삼위일체의 섬스페인어)라고 명명했다.
토바고섬의 이름은 시가 모양과 비슷하거나 원주민들이 담배를 사용했던 것에서 유래하여 스페인어 '카바코'(cabaco스페인어), '타바코'(tavaco스페인어), '토바코'(tobacco스페인어) 등으로 불렸을 가능성이 있다. 다른 원주민 이름으로는 '알루바에라'(Aloubaéra검은 소라기타 언어)와 '우루파이나'(Urupaina큰 달팽이기타 언어) 등이 있다. 영어 발음은 /təˈbeɪɡoʊ/이다. 인도계 트리니다드인들은 이 섬을 '치니닷'(Chinidat피지 힌디어) 또는 '치니다드'(Chinidad피지 힌디어)라고 불렀는데, 이는 '설탕의 땅'이라는 의미이다. 이 용어는 19세기 인도에서 노동자를 모집할 때 설탕 농장으로 유인하기 위해 사용되었다.
3. 역사
트리니다드 토바고의 역사는 지질학적 형성 과정부터 시작하여 원주민 정착, 유럽 열강의 식민 지배, 인도 계약 노동자 유입, 그리고 독립과 현대 국가로의 발전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사건들로 점철되어 있다. 각 시대는 이 지역의 사회, 경제, 문화적 특성을 형성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이 지역의 역사는 선사 시대 원주민들의 정착으로 시작되어, 유럽 열강들의 식민 통치 시대를 거쳐 영국으로부터의 독립, 그리고 현대 국가로 발전하는 과정을 포함한다.
3.1. 지질학적 역사 및 선사 시대
오늘날 트리니다드 토바고를 이루는 섬들은 소앤틸리스 제도 남단에 위치한다. 약 1억 5천만 년 전, 북대서양의 확장 과정에서 이 섬들은 카리브 판 가장자리에서 화산 활동에 의한 융기로 나타나기 시작했다. 이 시기 원주민들이 섬에 정착하여 독자적인 문화를 형성하였다.
3.1.1. 원주민

트리니다드섬과 토바고섬에는 남아메리카에서 건너온 아메리카 원주민들이 최초로 정착했다. 트리니다드섬은 최소 7,000년 전 농경 이전의 고대인들이 처음 정착한 곳으로, 카리브해 지역에서 가장 먼저 사람이 살기 시작한 곳이다. 트리니다드 남서부의 반와리 트레이스 유적은 약 기원전 5000년경의 것으로 카리브해에서 가장 오래된 고고학 유적지이다. 이후 수 세기 동안 여러 차례의 이주가 있었으며, 이는 고고학적 유물의 차이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유럽인들이 도착했을 당시 트리니다드섬에는 네포야족, 수포야족 등 다양한 아라와크어족 사용 집단과 야오족 같은 카리브어족 사용 집단이 거주하고 있었다. 반면 토바고섬에는 섬 카리브족과 갈리비족이 살고 있었다. 트리니다드는 원주민들에게 '이에리'(Ieri벌새의 땅기타 언어)로 알려져 있었다.
3.2. 유럽 식민지 시대
유럽 열강의 식민 지배는 크리스토퍼 콜럼버스의 1498년 도착으로 시작되어 초기 스페인의 정착 시도와 원주민과의 갈등, 다른 유럽 국가들의 토바고섬 개입으로 이어졌다. 이후 스페인 통치 하에서 프랑스인들이 대거 유입되며 인구 구성과 경제에 큰 변화가 일어났다.
3.2.1. 초기 식민화 시도와 갈등
크리스토퍼 콜럼버스는 1498년 세 번째 아메리카 항해 중 트리니다드섬을 처음으로 목격한 유럽인이었다. 그는 멀리 수평선 너머로 토바고섬도 보았다고 기록하며 '벨라포르마'(Bellaforma스페인어)라고 이름 붙였지만, 섬에 상륙하지는 않았다.
1530년대, 트리니다드섬 정복을 목표로 한 스페인 군인 안토니오 데 세데뇨는 소규모 군대를 이끌고 섬의 남서쪽 해안에 상륙하여 원주민을 복속시키려 했다. 세데뇨와 그의 군대는 여러 차례 원주민과 전투를 벌였고, 이후 요새를 건설했다. 다음 수십 년은 대체로 원주민과의 전쟁으로 점철되었으며, 1592년에 이르러서야 원주민 추장 와나와나레(일명 과나과나레)가 현재의 세인트조지프 주변 지역을 도밍고 데 베라 이 이바르겐에게 넘겨주고 섬의 다른 지역으로 물러났다. 이후 안토니오 데 베리오가 1592년 이 땅에 산호세데오루냐 정착지를 건설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영국 해적 월터 롤리가 1595년 3월 22일, 남아메리카에 있다고 오랫동안 소문으로만 전해지던 황금 도시 '엘도라도'를 찾아 트리니다드에 도착했다. 그는 산호세를 공격하고 안토니オ 데 베리오를 생포하여 심문했으며, 그와 추장 토피아와리로부터 많은 정보를 얻은 뒤 떠났고, 스페인의 권위는 회복되었다.
한편, 1620년대부터 1640년대까지 네덜란드, 영국, 쿠를란트인(현재 라트비아의 일부인 쿠를란트-젬갈레 공국 출신)들이 토바고섬에 정착을 시도했으나 큰 성공을 거두지 못했다. 1654년부터 네덜란드와 쿠를란트인들이 좀 더 안정적인 발판을 마련했고, 나중에는 수백 명의 프랑스 정착민들이 합류했다. 설탕, 인디고, 럼 생산을 기반으로 한 플랜테이션 경제가 발전했으며, 이는 곧 유럽 식민주의자들의 수를 훨씬 초과하는 아프리카 노예들의 노동력에 의존했다. 토바고섬은 프랑스, 네덜란드, 영국 간의 분쟁의 대상이 되면서 수많은 요새가 건설되었고, 1814년 이전까지 주인이 31번이나 바뀌었으며, 이러한 상황은 만연한 해적 행위로 인해 더욱 악화되었다. 영국은 1762년부터 1781년까지 토바고를 점령했으나 프랑스에 빼앗겼고, 프랑스는 1793년 영국이 섬을 다시 점령할 때까지 통치했다.
트리니다드섬의 17세기는 대체로 큰 사건 없이 지나갔지만, 스페인인들이 원주민을 통제하고 지배하려는 지속적인 시도는 종종 격렬한 저항에 부딪혔다. 1687년 가톨릭교의 카탈루냐인 카푸친 작은형제회 사제들은 트리니다드와 기아나 지역 원주민들의 개종 책임을 맡았다. 그들은 국가의 지원과 풍부한 자금 지원을 받아 트리니다드에 여러 선교부를 설립했으며, 국가는 또한 원주민에 대한 엔코미엔다 권리를 부여하여 원주민들이 스페인인들을 위해 노동력을 제공하도록 강요했다. 이러한 선교부 중 하나는 1689년에 설립된 산타 로사 데 아리마로, 이전의 타카리과와 아라우카(아루카) 엔코미엔다에서 온 원주민들이 더 서쪽으로 이전되었다. 스페인인과 원주민 사이의 긴장이 고조되면서 1689년 폭력 사태가 발생했는데, 산라파엘 엔코미엔다의 원주민들이 반란을 일으켜 여러 사제를 살해하고 교회를 공격했으며, 스페인 총독 호세 데 레온 이 에찰레스를 살해했다. 총독 일행 중 사망자에는 카우라, 타카리과, 아라우카의 네푸요 마을 선교사였던 후안 마시엔 데 소토마요르 신부도 포함되어 있었다. 스페인인들은 가혹하게 보복하여 수백 명의 원주민을 학살했는데, 이 사건은 아레나 학살로 알려지게 되었다. 결과적으로, 계속되는 스페인의 노예 약탈과 원주민들이 면역력이 없었던 외래 질병의 파괴적인 영향으로 인해 원주민 인구는 다음 세기 말에 이르러 거의 사라졌다.
이 기간 동안 트리니다드섬은 누에바에스파냐 부왕령에 속한 섬 주로, 중앙아메리카, 현재의 멕시코, 그리고 나중에 미국 남서부가 될 지역과 함께였다. 1757년 여러 차례의 해적 공격 이후 수도가 산호세데오루냐에서 푸에르토데에스파냐(현재의 포트오브스페인)로 이전되었다. 그러나 스페인인들은 섬들을 식민지화하려는 조직적인 노력을 기울이지 않았으며, 이 시기 트리니다드섬은 여전히 대부분 숲이었고, 소수의 스페인인들과 소수의 노예, 그리고 수천 명의 원주민들이 거주하고 있었다. 실제로 1777년 인구는 1,400명에 불과했고, 트리니다드에서의 스페인 식민화는 미약한 상태로 남아 있었다.
3.2.2. 스페인 통치와 프랑스인 유입
1777년, 프랑스계 크리올 여성과 결혼한 총독 루이스 데 운사가는 트리니다드에서 자유 무역을 허용하여 프랑스 정착민들을 유치했고 경제는 눈에 띄게 개선되었다.
트리니다드섬은 인구가 부족하다고 여겨졌기 때문에, 그레나다에 거주하던 프랑스인 루메 드 생로랑은 1783년 11월 4일 스페인 국왕 카를로스 3세로부터 인구 유치령(세둘라 데 포블라시온, Cédula de Población스페인어)을 얻어냈다. 이전에도 1776년에 국왕이 인구 유치령을 내렸었지만 별다른 성과를 거두지 못했기 때문에, 새로운 세둘라는 더욱 관대한 조건이었다. 이 법령은 스페인 국왕에게 충성을 맹세할 의향이 있는 로마 가톨릭 외국인 정착민들에게 10년간 무상 토지와 면세 혜택을 부여했다. 토지 부여는 자유인 남성, 여성, 어린이 각 1명당 30 파네가(13 헥타르/32 에이커)였고, 그들이 데려온 노예 1명당 그 절반이었다. 스페인은 새로운 총독 호세 마리아 차콘을 파견하여 새로운 세둘라의 조건을 시행하도록 했다.
세둘라는 프랑스 혁명 불과 몇 년 전에 발효되었다. 이 격동기에 마르티니크, 세인트루시아, 그레나다, 과들루프, 도미니카 등 인근 섬에서 온 프랑스 농장주들과 그들의 노예, 자유 유색인, 물라토들이 트리니다드로 이주하여 농업 기반 경제(설탕과 코코아)를 구축했다. 이 새로운 이민자들은 블랑쉬쇠즈, 샹플뢰르, 파라민, 캐스케이드, 카레나주, 라벤틸에 지역 공동체를 형성했다.
그 결과, 1789년 말까지 트리니다드섬의 인구는 15,000명 이상으로 급증했고, 1797년까지 포트오브스페인의 인구는 불과 5년 만에 3,000명 미만에서 10,422명으로 증가했으며, 다양한 인종의 혼혈인, 스페인인, 아프리카인, 프랑스 공화국 군인, 은퇴한 해적, 프랑스 귀족 등으로 구성된 다양한 인구를 이루었다. 트리니다드섬의 총인구는 17,718명이었으며, 이 중 2,151명이 유럽계, 4,476명이 "자유 흑인 및 유색인", 10,009명이 노예, 1,082명이 원주민이었다. 스페인 통치 기간(그리고 이후 영국 통치 기간에도) 동안의 희박한 정착과 느린 인구 증가는 트리니다드섬을 서인도 제도에서 인구가 가장 적은 식민지 중 하나로 만들었고, 플랜테이션 기반 시설도 가장 덜 발달된 곳으로 남게 했다.
3.3. 영국 통치 시대
1797년 영국의 트리니다드 점령 이후, 섬은 영국 왕령 식민지가 되었으며, 노예제 폐지와 인도 계약 노동자 유입, 20세기 초 석유 발견과 노동 운동 등 중요한 사회경제적 변화를 겪었다. 이러한 변화들은 이후 독립과 현대 국가 형성의 기반이 되었다.
3.3.1. 영국 점령과 초기 통치

영국은 트리니다드섬에 깊은 관심을 갖기 시작했고, 1797년 랠프 애버크롬비 장군이 이끄는 영국군이 트리니다드 침공을 감행했다. 그의 함대는 보카스를 통과하여 차과라마스 해안에 정박했다. 수적으로 심각하게 열세였던 차콘 총독은 싸우지 않고 영국에 항복하기로 결정했다. 이로써 트리니다드섬은 영국 왕령 식민지가 되었으며, 프랑스어를 사용하는 인구가 다수이고 스페인 법이 적용되는 곳이 되었다. 영국의 통치는 이후 아미앵 조약(1802년)에 따라 공식화되었다. 식민지의 첫 영국 총독은 토머스 픽턴이었으나, 고문과 자의적 체포를 포함한 그의 강압적인 영국 권위 집행 방식은 결국 그의 소환으로 이어졌다.
영국 통치로 인해 영국 본토와 동카리브해의 영국 식민지에서 정착민들이 유입되었다. 영국인, 스코틀랜드인, 아일랜드인, 독일인, 이탈리아인 가족들이 도착했고, 1812년 전쟁에서 영국을 위해 싸우고 트리니다드 남부에 토지를 부여받은 "메리킨스"로 알려진 자유 흑인들도 있었다. 영국 통치 하에 새로운 주가 만들어지고 노예 수입이 증가했지만, 이 시기에는 노예제 폐지론에 대한 지지가 크게 증가했고 영국에서는 노예 무역이 공격받고 있었다. 노예제는 1833년 폐지되었고, 그 후 이전 노예들은 "견습" 기간을 거쳤다. 1837년, 포르투갈 노예 상인에게 붙잡혔다가 영국 해군에 의해 구조된 서아프리카 노예 상인 다가는 현지 연대에 징집되었다. 다가와 그의 동료들은 세인트조지프의 병영에서 반란을 일으키고 고향으로 돌아가기 위해 동쪽으로 향했다. 반란군은 아리마 마을 외곽에서 민병대의 기습을 받았다. 반란은 약 40명의 사망자를 내고 진압되었으며, 다가와 그의 일당은 나중에 세인트조지프에서 처형되었다. 견습 제도는 1838년 8월 1일 완전한 해방으로 끝났다. 그러나 1838년의 인구 통계 개요는 트리니다드섬과 인근 섬들 사이의 대조를 명확히 보여준다. 1838년 노예 해방 당시 트리니다드섬에는 노예가 17,439명에 불과했고, 노예 소유주의 80%는 10명 미만의 노예를 소유하고 있었다. 반면, 트리니다드섬 크기의 두 배인 자메이카에는 약 360,000명의 노예가 있었다.
3.3.2. 인도 계약 노동자 유입

아프리카 노예들이 해방된 후 많은 이들이 플랜테이션에서 계속 일하기를 거부하고, 종종 포트오브스페인 동쪽의 라벤틸이나 벨몬트 같은 도시 지역으로 이주했다. 그 결과 심각한 농업 노동력 부족 현상이 나타났다. 영국은 이 공백을 메우기 위해 계약 노동 제도를 도입했다. 인도인, 중국인, 포르투갈인 등 다양한 국적의 사람들이 이 제도 하에 계약되었다. 이 중 동인도인들이 가장 많이 수입되었으며, 1845년 5월 1일 무슬림 소유 선박인 파텔 라작 호에 225명의 인도인이 처음으로 트리니다드에 도착하면서 시작되었다. 인도인 계약 노동은 1845년부터 1917년까지 지속되었으며, 이 기간 동안 147,000명 이상의 인도인이 사탕수수 농장에서 일하기 위해 트리니다드로 왔다.
계약 노동 계약은 때때로 착취적이었기 때문에, 휴 팅커와 같은 역사학자들은 이를 "새로운 노예제"라고 불렀다. 이러한 묘사에도 불구하고, 노동자들은 급여를 받았고, 계약은 유한했으며, 한 개인이 다른 사람의 재산이라는 개념은 노예제가 폐지되면서 사라졌기 때문에 진정한 의미의 새로운 노예제는 아니었다. 또한, 계약 노동자를 고용한 고용주들은 노동자들을 채찍질하거나 때릴 법적 권리가 없었다. 계약 노동법을 시행하기 위한 주요 법적 제재는 법정에서의 기소였고, 그 뒤에는 벌금이나 (더 가능성 있는) 징역형이 따랐다. 사람들은 5년 계약으로 고용되었고, 20세기 초에는 일당이 25센트 정도로 낮았으며, 계약 기간이 끝나면 인도로 돌아갈 수 있는 귀환 여비를 보장받았다. 그러나 노동자들을 붙잡아두기 위해 강압적인 수단이 종종 사용되었고, 농장주들이 노동력을 너무 일찍 잃는다고 불평하자 1854년부터 계약 노동 계약은 10년으로 연장되었다. 귀환 여비 대신, 영국 당국은 곧 정착을 장려하기 위해 토지를 제공하기 시작했고, 1902년까지 트리니다드의 사탕수수 절반 이상이 독립적인 사탕수수 농부들에 의해 생산되었으며, 그들 대부분은 인도인이었다. 계약 노동 제도 하에서 겪었던 어려운 조건에도 불구하고, 인도 이민자들의 약 90%는 계약 기간이 끝난 후 트리니다드를 영구적인 고향으로 삼기로 선택했다. 식민지로 들어오는 인도인들은 또한 농장을 떠날 경우 통행증을 휴대해야 하고, 해방된 경우 "자유 증명서" 또는 계약 기간 완료 증명서를 휴대해야 하는 등 트리니다드 토바고의 나머지 인구와 분리시키는 특정 왕령법의 적용을 받았다.
그러나 토바고섬에는 인도인이 거의 정착하지 않았고, 아프리카 노예의 후손들이 계속해서 섬 인구의 대다수를 차지했다. 19세기 중후반의 지속적인 경제 침체는 광범위한 빈곤을 야기했다. 불만은 1876년 록스버러 농장에서 폭동으로 분출되었는데, 이 사건은 살해된 경찰관의 이름을 따 벨만나 봉기로 알려져 있다. 영국은 결국 통제를 회복했지만, 이 소요의 결과로 토바고섬 의회는 해산을 결의했고 섬은 1877년 왕령 식민지가 되었다. 설탕 산업이 거의 붕괴 상태에 있었고 섬이 더 이상 수익성이 없게 되자, 영국은 1889년 토바고섬을 트리니다드 식민지에 편입시켰다.
3.3.3. 20세기 초

1903년, 포트오브스페인에 새로운 수도 요금 도입에 반대하는 시위가 폭동으로 번져 18명이 총에 맞아 사망하고, 정부 청사인 레드 하우스가 화재로 손상되었다. 일부 제한된 권한을 가진 지방 선출 의회가 1913년에 도입되었다. 경제적으로 트리니다드 토바고는 주로 농업 식민지로 남아 있었으며, 사탕수수와 함께 카카오 작물도 19세기 말과 20세기 초 경제 수입에 크게 기여했다.
1919년 11월, 부두 노동자들은 열악한 관리 관행, 생활비 상승에 비해 낮은 임금에 항의하며 파업에 돌입했다. 항구를 통해 최소한의 물품이 계속 이동하도록 파업 파괴자들이 투입되었다. 1919년 12월 1일, 파업 중인 부두 노동자들은 항구로 몰려가 파업 파괴자들을 쫓아냈다. 그들은 이어서 포트오브스페인의 정부 건물로 행진했다. 같은 불만을 가진 다른 노조와 노동자들도 부두 노동자 파업에 동참하여 총파업으로 번졌다. 폭력 사태가 발생했고, 영국 해군 함정 HMS 캘커타(D82)의 선원들의 도움으로 겨우 진압되었다. 파업으로 인한 단결은 당시 다양한 인종 집단 간의 최초의 협력이었다. 역사학자 브린슬리 사마루는 1919년 파업이 "전쟁 후 계급 의식이 성장했음을 나타내는 것 같으며, 이는 때때로 인종적 감정을 초월했다"고 말한다.
그러나 1920년대에 사탕수수 산업의 붕괴와 코코아 산업의 실패가 동시에 일어나면서 트리니다드의 농촌 및 농업 노동자들 사이에 광범위한 불황이 발생했고, 노동 운동의 부상을 부추겼다. 1930년대 대공황이 시작되면서 섬의 상황은 더욱 악화되었고, 1937년에는 노동 폭동이 발생하여 여러 명이 사망했다. 노동 운동은 도시 노동 계급과 농업 노동 계급을 통합하는 것을 목표로 했으며, 주요 인물로는 트리니다드 노동당(TLP)을 이끈 아서 앤드루 시프리아니, 영국 제국 시민 및 노동자 자치당의 투발 유라이어 버틀러, 그리고 트리니다드 시민 연맹(TCL), 석유 노동자 노동조합, 전 트리니다드 설탕 농장 및 공장 노동자 조합을 이끈 에이드리언 콜라 리엔지가 있었다. 운동이 발전함에 따라 영국 식민 통치로부터 더 큰 자치권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광범위하게 퍼졌지만, 이러한 노력은 영국 내무부와 영국에서 교육받은 트리니다드 엘리트(그들 중 다수는 플랜테이션 계급의 후손)에 의해 심각하게 약화되었다.

석유는 1857년에 발견되었지만, 사탕수수와 코코아의 붕괴 및 산업화의 증가로 인해 1930년대 이후에야 경제적으로 중요해졌다. 1950년대까지 석유는 트리니다드 수출 시장의 주요 품목이 되었고, 트리니다드 인구 모든 계층에서 중산층이 성장하는 데 기여했다. 트리니다드의 주요 농산물 붕괴, 이어진 대공황, 그리고 석유 경제의 부상은 국가의 사회 구조에 큰 변화를 가져왔다.
제2차 세계 대전 중 트리니다드의 차과라마스와 쿠무토에 미군 기지가 존재했던 것은 사회에 심오한 영향을 미쳤다. 미군은 트리니다드의 기반 시설을 크게 개선하고 많은 현지인에게 고임금 일자리를 제공했지만, 섬에 주둔한 수많은 젊은 군인들이 가져온 사회적 영향과 그들의 종종 숨기지 않는 인종적 편견은 분노를 야기했다. 미군은 1961년에 철수했다.
전후 시기에 영국은 대영 제국 전역에서 탈식민지화 과정을 시작했다. 1945년 트리니다드 토바고에 보통 선거권이 도입되었다. 섬에는 정당들이 등장했지만, 이들은 대체로 인종적 노선에 따라 분열되었다. 아프리카계 트리니다드인과 토바고인들은 주로 1956년 에릭 윌리엄스가 결성한 인민민족운동(PNM)을 지지했고, 인도계 트리니다드인과 토바고인들은 주로 1953년 바다세 사간 마라지가 결성한 인민민주당(PDP)을 지지했으며, PDP는 나중에 1957년 민주노동당(DLP)으로 합병되었다. 영국의 카리브해 식민지들은 독립을 위한 수단으로 1958년 서인도 연방을 결성했지만, 1961년 자메이카가 국민투표 후 탈퇴하면서 연방은 해체되었다. 트리니다드 토바고 정부는 이후 영국으로부터 단독으로 독립을 추구하기로 결정했다.
3.4. 독립과 현대


트리니다드 토바고는 1962년 8월 31일 영국으로부터 독립했다. 그러나 엘리자베스 2세는 1976년 공화국 헌법이 통과될 때까지 총독 솔로몬 호초이가 현지에서 대표하는 국가 원수로 남아 있었다. 솔로몬 호초이는 독립 당시 총독이었다.
인민민족운동(PNM)의 에릭 윌리엄스가 초대 총리가 되어 1981년까지 중단 없이 그 직위를 유지했다. 독립 초기 야당의 주요 인물은 민주노동당(DLP)의 야당 대표 루드라나트 카필데오였다. 초대 하원 의장은 클라이터스 아놀드 토마소스였고 초대 상원 의장은 J. 해밀턴 모리스였다. 1960년대에는 부분적으로 미국의 민권 운동에서 영감을 받은 블랙 파워 운동이 부상했다. 시위와 파업이 흔해졌고, 1970년 4월 경찰이 시위대원 배질 데이비스를 사살하면서 사건이 절정에 달했다. 법과 질서의 붕괴를 우려한 윌리엄스 총리는 비상사태를 선포하고 많은 블랙 파워 지도자들의 체포를 명령했다. 블랙 파워 운동에 동조했던 일부 군 지도자들, 특히 라피크 샤와 렉스 라살은 반란을 시도했으나, 트리니다드 토바고 해안경비대에 의해 진압되었다. 윌리엄스와 PNM은 주로 야당의 분열 덕분에 권력을 유지했다.
1963년 토바고섬은 허리케인 플로라의 강타를 받아 30명이 사망하고 섬 전체에 막대한 파괴가 발생했다. 부분적으로 이로 인해 이후 수십 년 동안 관광업이 섬의 주요 수입원인 농업을 대체하게 되었다. 1968년 5월 1일, 트리니다드 토바고는 카리브 자유 무역 연합(CARIFTA)에 가입했는데, 이는 서인도 연방이 실패한 후 이전 영국령 서인도 제도 영어 사용 국가들 간의 정치적 연결이 아닌 지속적인 경제적 연결을 제공했다. 1973년 8월 1일, 트리니다드 토바고는 CARIFTA의 후속 기구인 카리브 공동체(CARICOM)의 창립 회원국이 되었는데, 이는 여러 카리브해 국가 및 영토 간의 정치적 및 경제 연합이다.
1972년에서 1983년 사이, 트리니다드 토바고는 유가 상승과 영해 내 광대한 신규 유전 발견으로 큰 이익을 얻었으며, 이는 생활 수준을 실질적으로 향상시킨 경제 호황으로 이어졌다. 1976년 트리니다드 토바고는 영연방 내 공화국이 되었지만, 최종 항소 법원으로서 영국 추밀원 사법위원회를 유지했다. 총독 직위는 대통령 직위로 대체되었으며, 엘리스 클라크가 이 대체로 의례적인 역할을 처음으로 맡았다. 토바고섬은 1980년 토바고 의회 창설과 함께 제한적인 자치권을 부여받았다.

윌리엄스는 1981년 사망했고, 조지 챔버스가 그 뒤를 이어 1986년까지 총리직을 수행했다. 이 시기에는 유가 하락으로 경기 침체가 발생하여 인플레이션과 실업률이 상승했다. 주요 야당들은 국가재건동맹(NAR)이라는 기치 아래 연합하여 1986년 총선에서 승리했고, NAR 대표 A. N. R. 로빈슨이 새로운 총리가 되었다. 로빈슨은 취약한 NAR 연립정부를 유지하지 못했고, 국제 통화 기금(IMF)의 구조 조정 프로그램 시행과 통화 평가절하와 같은 그의 경제 개혁은 사회 불안을 야기했다. 1990년, 야신 아부 바크르(이전에는 레녹스 필립으로 알려짐)가 이끄는 자마트 알 무슬리멘 소속 114명이 레드 하우스(의회 소재지)와 당시 국내 유일의 텔레비전 방송국이었던 트리니다드 토바고 텔레비전을 습격하여 로빈슨과 정부를 6일 동안 인질로 잡고 있다가 항복했다. 쿠데타 지도자들은 사면을 약속받았지만, 항복 후 체포되었고, 장기간의 법적 공방 끝에 결국 석방되었다.

패트릭 매닝이 이끄는 PNM은 1991년 총선 이후 정권을 되찾았다. 경제 개선을 발판 삼아 매닝은 1995년 조기 총선을 실시했지만, 이는 헝 의회를 초래했다. NAR 대표 두 명이 1989년 NAR에서 분리된 야당 통일국민회의(UNC)를 지지했고, 이로써 바스데오 판데이가 국가 최초의 인도계 트리니다드인 총리가 되어 정권을 잡았다. 여러 차례의 불확실한 선거 결과로 인한 정치적 혼란기 이후, 패트릭 매닝은 2001년에 다시 정권을 잡았고 2010년까지 그 자리를 유지했다.
2003년 트리니다드 토바고는 두 번째 석유 호황기에 접어들었고, 석유, 석유화학, 천연가스는 계속해서 경제의 중추 역할을 하고 있다. 관광업과 공공 서비스는 토바고섬 경제의 주축이지만, 당국은 섬 경제를 다각화하려고 노력해 왔다. 인민 파트너십 연합은 2010년 매닝을 물리치고 승리했으며, 캄라 페르사드비세사르가 국가 최초의 여성 총리가 되었다. 그러나 PP는 2015년 키스 롤리가 이끄는 PNM에 패배했다. 2020년 8월, 집권 인민민족운동은 총선에서 승리하여 현직 키스 롤리 총리가 두 번째 임기를 시작하게 되었다. 2025년 1월 3일, 키스 롤리 총리는 2025년 트리니다드 토바고 총선 전에 총리직에서 물러날 의사를 밝혔다. 2025년 2월 26일, 키스 롤리 총리는 3월 16일에 공식적으로 사임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2025년 1월 6일, 키스 롤리 총리는 인민민족운동 의원 총회에서 스튜어트 영 장관이 롤리의 뒤를 이을 총리로 선출되었다고 발표했다.
4. 지리
트리니다드 토바고는 카리브해 북쪽, 대서양 동쪽과 남쪽, 파리아만 서쪽에 위치하며, 북위 10° 2'와 11° 12', 서경 60° 30'와 61° 56' 사이에 자리 잡고 있다. 카리브해 지역의 극동남쪽에 위치하며, 트리니다드섬은 콜럼버스 해협을 사이에 두고 본토 남아메리카의 베네수엘라 해안에서 불과 11 km 떨어져 있다. 이 섬들은 지형학적으로 남아메리카의 연장선상에 있다. 면적은 5128 km2이며, 두 개의 주요 섬인 트리니다드섬과 토바고섬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이 두 섬은 폭 20 adj=on의 해협으로 분리되어 있다. 그 외에도 차카차카레섬, 모노스섬, 우에보스섬, 가스파르그란데섬(또는 가스파리), 리틀토바고섬, 세인트자일스섬 등 다수의 작은 섬들이 있다. 섬의 지형은 산과 평야가 혼합된 모습이며, 기후는 해양성 열대 기후로 건기와 우기가 뚜렷하다. 풍부한 생물 다양성은 이 지역의 주요 특징 중 하나이다.
4.1. 지형 및 지질


섬들의 지형은 산과 평야가 혼합된 형태이다. 트리니다드섬에서는 북부 산맥이 북쪽 해안과 평행하게 뻗어 있으며, 해발 940 m의 국가 최고봉(엘세로델아리포산)과 두 번째로 높은 봉우리(엘투쿠체산, 936 m)를 포함하고 있다. 섬의 나머지 부분은 대체로 평탄하며, 섬 중앙의 중앙 산맥과 몬세라트 언덕, 남쪽의 남부 산맥과 트리니티 언덕을 제외하면 그러하다. 세 개의 산맥은 트리니다드섬의 배수 패턴을 결정한다. 동쪽 해안은 해변으로 유명하며, 특히 만사니야 해변이 잘 알려져 있다. 섬에는 카로니 습지와 나리바 습지와 같은 여러 개의 큰 습지 지역이 있다. 트리니다드섬의 주요 수자원으로는 홀리스 저수지, 나벳 저수지, 카로니 저수지가 있다. 트리니다드섬은 다양한 토양 유형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대부분은 미세한 모래와 무거운 점토이다. 북부 산맥의 충적 계곡과 동서 회랑의 토양은 가장 비옥하다. 트리니다드섬은 또한 세계에서 가장 큰 천연 역청 저장고인 피치호를 포함하고 있는 것으로 유명하다. 토바고섬은 남서쪽에 평평한 평야를 가지고 있으며, 섬의 동쪽 절반은 더 산이 많고, 섬의 가장 높은 지점인 피전 피크는 해발 550 m에 달한다. 토바고섬은 또한 해안가에 여러 개의 산호초를 포함하고 있다.
인구의 대다수는 트리니다드섬에 거주하며, 따라서 가장 큰 도시와 마을이 이곳에 위치해 있다. 트리니다드섬에는 수도인 포트오브스페인, 샌퍼넌도, 아리마, 차과나스 등 네 개의 주요 자치체가 있다. 토바고섬의 주요 도시는 스카버러이다.


북부 산맥은 주로 상부 쥐라기와 백악기 변성암으로 구성되어 있다. 북부 저지대(동서 회랑과 카로니 평야)는 더 젊은 얕은 해양 쇄설성 퇴적물로 이루어져 있다. 이 남쪽으로, 중앙 산맥 습곡衝上단층대는 백악기와 에오세 퇴적암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남쪽과 동쪽 측면을 따라 마이오세 지층이 있다. 나파리마 평야와 나리바 습지는 이 융기의 남쪽 어깨를 형성한다.
남부 저지대는 마이오세와 플라이오세의 모래, 점토, 자갈로 구성되어 있다. 이들은 특히 로스 바호스 단층 북쪽에 있는 석유와 천연가스 매장지 위에 놓여 있다. 남부 산맥은 세 번째 배사 융기를 형성한다. 암석은 마이오세에 형성되어 플라이스토세에 융기된 사암, 셰일, 실트암, 점토로 구성되어 있다. 이 지역에는 특히 오일샌드와 이화산이 흔하다.
섬의 자연 경이 중 하나는 트리니다드섬에 있는 천연 역청 호수인 피치호로, 지구상에서 가장 큰 천연 아스팔트 매장지이다.
4.2. 기후

트리니다드 토바고는 해양성 열대 기후를 가지고 있다. 연중 두 계절이 있는데, 첫 다섯 달은 건기이고 나머지 일곱 달은 우기이다. 바람은 주로 북동쪽에서 불며 북동 무역풍의 지배를 받는다. 많은 카리브해 섬들과 달리 트리니다드 토바고는 주요 허리케인 경로에서 벗어나 있지만, 토바고섬은 1963년 9월 30일 허리케인 플로라의 강타를 받았다. 트리니다드섬의 북부 산맥에서는 지속적인 구름과 안개, 그리고 산악 지역의 폭우로 인해 아래 평야의 무더위보다 기후가 종종 더 시원하다.
트리니다드 토바고의 기록적인 기온은 포트오브스페인의 경우 최고 39 °C, 최저 12 °C이다.
4.3. 생물 다양성


트리니다드 토바고 섬들이 남아메리카 대륙붕에 위치하고 고대에 남아메리카 본토와 물리적으로 연결되어 있었기 때문에, 이 섬들의 생물 다양성은 대부분의 다른 카리브해 섬들과 다르며 베네수엘라의 생물 다양성과 훨씬 더 많은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주요 생태계는 해안 및 해양(산호초, 맹그로브 습지, 외해 및 해초층), 산림, 담수(강과 하천), 카르스트, 인공 생태계(농경지, 담수댐, 이차림), 사바나이다. 1996년 8월 1일, 트리니다드 토바고는 1992년 리우 생물 다양성 협약을 비준했으며, 생물 다양성 행동 계획과 국가의 생물 다양성 보전 기여를 설명하는 4개의 보고서를 작성했다. 이 보고서들은 생태계 서비스 제공을 통해 국가 국민의 복지에 대한 생물 다양성의 중요성을 공식적으로 인정했다.


척추동물에 대한 정보는 상당히 포괄적이어서, 472종의 조류(2종 고유종), 약 100종의 포유류, 약 90종의 파충류(소수 고유종), 약 30종의 양서류(여러 고유종 포함), 50종의 담수어 및 최소 950종의 해수어가 있다. 주목할 만한 포유류 종으로는 오셀롯, 서인도제도매너티, 목도리페커리(현지에서는 퀭크로 알려짐), 붉은궁둥이아구티, 라페, 붉은마자마사슴, 신열대수달, 우는꼬리감기원숭이, 붉은고함원숭이가 있으며, 흡혈박쥐와 주름입술박쥐를 포함한 약 70종의 박쥐도 있다. 현재 서식하는 대형 파충류로는 섬 해변에 산란하는 것으로 알려진 5종의 바다거북, 녹색아나콘다, 보아뱀, 안경카이만이 있다. 최소 47종의 뱀이 있으며, 그중 위험한 독사는 4종뿐(토바고에는 없고 트리니다드에만 서식)이고, 녹색이구아나, 투피남비스 크립투스, 그리고 몇몇 종의 담수 거북과 육지 거북과 같은 도마뱀도 서식한다. 양서류 중에서는 황금청개구리와 트리니다드독개구리가 트리니다드 북부 산맥의 가장 높은 봉우리와 인근 베네수엘라의 파리아 반도에서 발견된다. 해양 생물은 풍부하여, 여러 종의 성게, 산호, 바닷가재, 말미잘, 불가사리, 쥐가오리, 돌고래, 알락돌고래, 고래상어가 섬 해역에 서식한다. 도입된 쏠배감펭은 많은 토착 어종을 잡아먹고 천적이 없어 해충으로 간주되며, 현재 이 종의 개체수를 줄이기 위한 노력이 진행 중이다. 이 나라는 트리니다드 토바गो 습윤림, 소앤틸리스 건조림, 트리니다드 토바고 건조림, 배풍도 건생 관목림, 트리니다드 맹그로브 등 5개의 육상 생태 지역을 포함한다.
트리니다드 토바고는 특히 많은 조류 종으로 유명하며, 조류 관찰객들에게 인기 있는 여행지이다. 주목할 만한 종으로는 붉은따오기, 코크리코, 왜가리, 반짝이는카우버드, 바나나퀴트, 오일버드 및 다양한 종의 꿀빨이새, 트로곤, 왕부리새, 앵무새, 풍금조, 딱따구리, 개미새, 솔개, 매, 부비, 펠리컨, 독수리가 있으며, 세계에서 세 번째로 작은 장식깃코케트를 포함한 17종의 벌새도 있다.
무척추동물에 대한 정보는 흩어져 있고 매우 불완전하다. 약 650종의 나비, 최소 672종의 딱정벌레(토바고에서만), 그리고 40종의 산호가 기록되었다. 기타 주목할 만한 무척추동물로는 바퀴벌레, 잎꾼개미, 그리고 수많은 종의 모기, 흰개미, 거미, 타란툴라가 있다.
목록이 완전하지는 않지만, 지의류를 포함하여 1,647종의 균류가 기록되었다. 전 세계 모든 균류의 약 7%만이 지금까지 발견되었다는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지는 추정치를 고려할 때, 실제 균류의 총 종수는 훨씬 더 많을 것이다. 고유 균류의 수를 추정하려는 첫 번째 노력에서 잠정적으로 407종이 목록에 올랐다.
미생물에 대한 정보는 흩어져 있고 매우 불완전하다. 거의 200종의 해조류가 기록되었다. 실제 미생물 종의 총 수는 훨씬 더 많아야 한다.
최근 발표된 체크리스트 덕분에 트리니다드 토바고의 식물 다양성은 약 3,300종(59종 고유종)이 기록되어 잘 문서화되어 있다. 상당한 벌목에도 불구하고 숲은 여전히 국토의 약 40%를 덮고 있으며 약 350종의 다양한 나무 종이 있다. 주목할 만한 나무는 만치닐인데, 이는 인간에게 매우 유독하며 수액에 닿기만 해도 피부에 심한 물집이 생길 수 있다. 이 나무에는 종종 경고 표지판이 붙어 있다. 2019년 이 나라의 산림 경관 완전성 지수 평균 점수는 6.62/10으로, 172개국 중 세계 69위를 차지했다.
국가의 생물 다양성에 대한 위협으로는 과도한 사냥과 밀렵(사냥#트리니다드 토바고 참조), 서식지 손실 및 파편화(특히 산불 및 채석, 농업, 불법 점유, 주택 및 산업 개발, 도로 건설을 위한 토지 개간으로 인한), 수질 오염, 침입종 및 병원균 도입 등이 있다.
5. 정부와 정치


트리니다드 토바고는 양당제와 웨스트민스터 체제에 기반한 양원제 의회 제도를 갖춘 공화국이다. 대통령이 국가원수이며 총리가 정부수반이다. 입법, 사법, 행정의 삼권 분립이 이루어져 있으며, 토바고섬은 자체적인 의회를 통해 자치권을 행사한다. 주요 정당으로는 인민민족운동(PNM)과 통일국민회의(UNC)가 있으며, 이들 정당은 주로 인종적 기반에 따라 지지층이 나뉜다. 국방군은 국가 방위와 안보 유지의 책임을 맡고 있으며, 대외적으로는 카리브 공동체(CARICOM) 회원국으로서 역내 협력과 국제 사회의 일원으로서 역할을 수행한다.

트리니다드 토바고의 국가원수는 대통령이며, 현재는 크리스틴 칸갈루이다. 이 대체로 의례적인 역할은 1976년 트리니다드 토바고가 공화국이 되면서 트리니다드 토바고 군주를 대표하던 총독의 역할을 대체했다. 정부수반은 총리이며, 현재는 키스 롤리이다. 2025년 1월 3일, 키스 롤리 총리는 2025년 트리니다드 토바고 총선 전에 총리직에서 물러날 의사를 밝혔다. 2025년 2월 26일, 키스 롤리 총리는 3월 16일에 공식적으로 사임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2025년 1월 6일, 스튜어트 영은 인민민족운동 의원 총회에서 롤리의 뒤를 이을 총리로 선출되었다. 대통령은 의회 양원 전체 의원으로 구성된 선거인단에 의해 선출된다.
5년마다 실시되는 총선 후, 대통령은 하원에서 과반수의 지지를 받는 사람을 총리로 임명한다. 이는 일반적으로 선거에서 가장 많은 의석을 얻은 정당의 지도자였다(2001년 총선의 경우는 예외).
1980년부터 토바고섬은 총선과 별도로 자체 선거를 실시해 왔다. 이 선거에서 의원들은 단원제 토바고 의회에 선출되어 봉사한다.
의회는 상원(31석)과 하원(41석, 의장 포함)으로 구성된다. 상원 의원은 대통령이 임명한다. 16명의 정부 상원 의원은 총리의 조언에 따라 임명되고, 6명의 야당 상원 의원은 야당 대표(현재 캄라 페르사드비세사르)의 조언에 따라 임명되며, 9명의 무소속 상원 의원은 대통령이 시민 사회의 다른 부문을 대표하도록 임명한다. 하원 의원 41명은 "단순 다수제" 시스템에서 최대 5년 임기로 국민에 의해 선출된다.
5.1. 통치 구조
트리니다드 토바고는 대통령을 국가원수로, 총리를 정부수반으로 하는 의원내각제 공화국이다. 대통령은 의회 양원 의원들로 구성된 선거인단에 의해 선출되며, 주로 의례적인 역할을 수행한다. 실질적인 행정권은 총리가 이끄는 내각에 있다. 총리는 하원에서 다수당의 지지를 받는 의원이 대통령에 의해 임명된다. 입법부는 양원제 의회로, 상원(31석, 대통령 임명)과 하원(41석+의장, 국민 직접 선거)으로 구성된다. 상원 의원 중 16명은 총리의 추천, 6명은 야당 대표의 추천, 9명은 대통령이 시민 사회 각계를 대표하여 임명한다. 하원 의원의 임기는 최대 5년이다. 사법부는 영국 보통법에 기반하며, 최종 항소 법원은 영국 추밀원 사법위원회이다.
5.2. 행정 구역
트리니다드섬은 9개 지역(Region)과 5개 자치구(Municipality)로 구성된 총 14개의 지역 및 자치체로 나뉘며, 이들은 제한된 수준의 자치권을 갖는다. 5개 자치구는 아리마 자치구, 차과나스 자치구, 포인트포르틴 자치구, 그리고 포트오브스페인시, 샌퍼넌도시이다. 9개 지역은 쿠바-타바키테-탈파로 지역, 디에고마틴 지역, 페날-데베 지역, 프린세스타운 지역, 리오클라로-마야로 지역, 산후안-라벤틸 지역, 상그레그란데 지역, 시파리아 지역, 투나푸나-피아르코 지역이다. 다양한 협의회는 선출직 및 임명직 의원으로 구성된다. 선거는 3년마다 실시된다. 토바고섬은 토바고 의회에 의해 관리된다. 이전에는 국가가 주(County)로 나뉘어 있었다.
5.3. 정치 지형
트리니다드 토바고의 주요 양대 정당은 인민민족운동(PNM, People's National Movement)과 통일국민회의(UNC, United National Congress)이다. 두 정당 모두 중도좌파 성향을 보이지만, 이념보다는 인종적 기반에 따라 지지층이 나뉘는 경향이 있다. PNM은 아프리카계 트리니다드인의 다수 지지를 꾸준히 얻고 있으며, UNC는 인도계 트리니다드인의 다수 지지를 받고 있다. 이 외에도 여러 소규모 정당들이 존재한다. 2020년 8월 총선 기준으로 19개의 정당이 등록되어 있었으며, 여기에는 진보역량강화당(Progressive Empowerment Party), 트리니다드인권운동(Trinidad Humanity Campaign), 새로운국가비전(New National Vision), 사회정의운동(Movement for Social Justice), 인민회의(Congress of the People), 국가발전운동(Movement for National Development), 진보민주애국자당(Progressive Democratic Patriots) 등이 포함된다. 현재 야당 대표는 UNC의 캄라 페르사드비세사르이다.
5.4. 군사

트리니다드 토바고 국방군(TTDF)은 트리니다드 토바고 공화국의 국방을 책임지는 군사 조직이다. 국방군은 연대, 해안경비대, 항공경비대, 그리고 국방군 예비군으로 구성된다. 1962년 트리니다드 토바고가 영국으로부터 독립한 후 설립된 TTDF는 영어권 카리브해 지역에서 가장 큰 군사력 중 하나이다.
국방군의 임무는 "트리니다드 토바고 공화국의 주권적 이익을 방어하고, 국가 공동체 발전에 기여하며, 국가 및 국제 목표 달성에 있어 국가를 지원하는 것"이다. 국방군은 1970년 블랙 파워 운동과 자마트 알 무슬리멘 쿠데타 시도와 같은 국내 사건과 1993년부터 1996년까지의 아이티 유엔 임무와 같은 국제 임무에 참여해 왔다.
2019년 트리니다드 토바고는 핵무기 금지 조약에 서명했다.
2024년 세계 평화 지수에 따르면 트리니다드 토바고는 세계에서 87번째로 평화로운 국가이다.
5.5. 대외 관계
트리니다드 토바고는 카리브해 이웃 국가들 및 주요 북미, 유럽 무역 상대국들과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영어권 카리브해 지역에서 가장 산업화된 두 번째로 큰 국가로서, 트리니다드 토바고는 카리브 공동체(CARICOM)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수행하며 CARICOM 경제 통합 노력을 강력히 지지한다. 또한 미주 정상회의 과정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미주자유무역지대 설립을 지지하며, 사무국을 포트오브스페인에 유치하기 위해 다른 국가들을 설득하고 있다.
CARICOM 회원국으로서 트리니다드 토바고는 아이티에 정치적 안정을 가져오려는 미국의 노력을 강력히 지지했으며, 1994년 다국적군에 인력을 파견했다. 1962년 영국으로부터 독립한 후, 트리니다드 토바고는 유엔과 영연방에 가입했다. 1967년에는 영연방 국가 중 최초로 미주 기구(OAS)에 가입했다. 1995년 트리니다드 토바고는 카리브 국가 연합 창립 회의를 주최했으며, 경제 발전과 회원국 간 통합을 추구하는 이 35개 회원국 그룹의 본부가 되었다. 국제 포럼에서 트리니다드 토바고는 독립적인 투표 기록을 가진 국가로 자신을 정의하지만, 종종 미국과 유럽 연합의 입장을 지지한다.
대한민국과는 1985년 7월 외교 관계를 수립하였으며, 주 베네수엘라 대한민국 대사관이 겸임하고 있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과는 1990년 10월 외교 관계를 맺었다.
5.6. 사법 및 치안
트리니다드 토바고의 사법 및 치안은 경찰청을 비롯한 여러 법 집행 기관이 담당하며, 높은 범죄율, 특히 마약 밀매와 살인 사건이 주요 사회 문제로 다뤄지고 있다. 정부는 테러리즘 위협에도 대응하고 있으며, 교정 시설 운영을 통해 범죄자 관리 및 재활을 시도하고 있다.
5.6.1. 법 집행 기관
트리니다드 토바고의 주요 법 집행 기관은 국가안보부 산하의 트리니다드 토바고 경찰청(TTPS)이다. 현재 장관은 피츠제럴드 하인즈이며, 국가안보부 장관 보좌역은 키스 스코틀랜드 SC이다. 2025년 2월 5일, 하원은 주니어 벤자민 경찰청 차장을 경찰청장 대행으로 임명하는 정부안을 승인했다. 또 다른 법 집행 기관은 농촌개발지방정부부 산하의 트리니다드 토바고 지방경찰청(TTMPS)이다. 이들은 다양한 시, 자치구, 지역 자치체 내에서 활동한다. 현재 장관은 파리스 알-라위이며, TTMPS의 행정관은 수렌드라 사그람싱 경찰청 차장 보좌관이다. 기타 법 집행 기관은 다음과 같다.
- 국가안보부
- 트리니다드 토바고 해안경비대(TTCG): 국가 영해 내 해상법 집행 담당.
- 전략서비스국(SSA): 마약 밀매, 조직 범죄, 국가 안보 위협 등 중대 범죄 관련 정보 수집 및 분석 담당.
- 트리니다드 토바고 법과학센터: 1983년 12월 1일 운영 시작. 법의병리학 및 법과학을 활용하여 경찰관 및 기타 의뢰인이 제출한 모든 물리적 증거 수집, 분석, 해석 담당.
- 트리니다드 토바고 이민국: 이민, 여권, 시민권법 관리 및 집행 담당.
- 재무부
- 트리니다드 토바고 관세소비세국: 관세 및 소비세법 집행 담당.
- 트리니다드 토바고 금융정보분석원(FIUTT): 2010년 2월 운영 시작. 자금세탁방지 금융대책기구(FATF)의 자금 세탁 방지 및 테러 자금 조달 방지 정책 이행 담당.
- 농업토지수산부
- 농작물절도단속반(PLS): 2013년 11월 설립. 국내 농작물 절도 발생 감소 책임.
- 노동교통부
- 교통단속반: 2011년 설립. 트리니다드 토바고 도로 교통 관리, 통제, 규제에 있어 경찰 지원.
토바고섬의 트리니다드 경찰 차량
5.6.2. 범죄와 사회 안전
트리니다드 토바고는 최근 수십 년 동안 비교적 높은 범죄율로 어려움을 겪어왔으며, 현재 연간 약 500건의 살인 사건이 발생하고 있다. 이 나라는 남아메리카에서 카리브해 전역 및 북미로 향하는 불법 마약 밀매의 주요 경유지로 알려져 있다. 일부 추정에 따르면 "지하 경제"의 규모는 측정된 GDP의 20~30%에 달한다. 2022년 7월 18일, 키스 롤리 총리는 정부가 폭력과 범죄 문제를 공중 보건의 관점에서 검토할 것이라고 발표했으며, 이 문제를 정의하고 실행 계획을 개발할 위원회가 구성되었다고 밝혔다. 2024년 말, 살인 사건 급증으로 치안이 급격히 악화되자 정부는 비상사태를 선포하기도 했다.
5.6.3. 테러리즘
1990년 자마트 알 무슬리멘 쿠데타 시도 이후 테러 관련 사건은 발생하지 않았지만, 트리니다드 토바고는 여전히 잠재적인 표적으로 남아 있으며, 약 100명의 국민이 이슬람 국가를 위해 싸우기 위해 중동으로 여행한 것으로 추정된다. 2017년 정부는 대테러 및 극단주의 대응 전략을 채택했다. 2018년에는 트리니다드 토바고 카니발에서의 테러 위협이 법 집행 기관에 의해 저지되었다.
5.6.4. 교정 시설 운영
트리니다드 토바고의 교정 행정은 트리니다드 토바고 교정청(TTPrS)이 담당하며, 현재 교정청장 대행은 카를로스 코라스페이다. 그는 2024년 7월 9일 공직위원회에 의해 임명되었다. 교도소 수감률은 인구 10만 명당 292명이다. 미결 구금자 및 재판 대기자를 포함한 총 수감자 수는 3,999명이다. 미결 구금자 및 재판 대기자의 인구 비율은 전체 인구 10만 명당 174명(수감자 인구의 59.7%)이다. 2018년 여성 수감자 인구 비율은 전체 인구 10만 명당 8.5명(수감자 인구의 2.9%)이다. 미성년 수감자는 수감자 인구의 1.9%를 차지하며 외국인 수감자는 수감자 인구의 0.8%를 차지한다.
트리니다드 토바고 교정 시스템의 수용률은 2019년 기준 81.8%이다. 트리니다드 토바고에는 골든 그로브 교도소, 최고 보안 교도소, 포트오브스페인 교도소, 동부 교정 재활 센터, 구금 교도소, 토바고 수형자 교도소, 카레라 수형자 섬 교도소, 여성 교도소, 청소년 훈련 및 재활 센터 등 9개의 교정 시설이 있다. 트리니다드 토바고는 또한 노동 수용소를 교도소 또는 처벌 수단으로 사용한다.
6. 경제
트리니다드 토바고는 카리브해 지역에서 가장 발전된 국가 중 하나이며 가장 부유한 국가 중 하나로, 세계 70개 고소득 국가 중 상위 40위(2010년 정보)에 속한다. 1인당 국민총소득은 2.01 만 USD(2014년 아틀라스 방식 기준)로 카리브해 지역에서 가장 높은 수준이다. 2011년 11월, OECD는 트리니다드 토바고를 개발도상국 목록에서 제외했다. 트리니다드 경제는 석유 산업의 영향을 크게 받는다. 관광업과 제조업 또한 지역 경제에 중요하다. 관광업은 특히 토바고섬에서 성장하고 있는 분야이지만, 다른 많은 카리브해 섬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중요성은 훨씬 낮다. 농산물로는 감귤류와 코코아가 있다. 또한 카리브해 지역에 식품, 음료, 시멘트와 같은 공산품을 공급한다. 석유 및 가스 산업이 국가 경제의 핵심이며, 최근에는 경제 다각화와 창조 산업 육성에도 힘쓰고 있다. 교통 및 통신 인프라도 잘 발달되어 있으며, 에너지 정책은 신재생 에너지 비중 확대와 기후 변화 대응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6.1. 석유 및 가스 산업
트리니다드 토바고는 카리브해 지역의 주요 석유 및 가스 생산국이며, 경제는 이러한 자원에 크게 의존하고 있다. 석유와 가스는 GDP의 약 40%, 수출의 80%를 차지하지만, 고용은 5%에 불과하다. 최근 성장은 액화천연가스(LNG), 석유화학, 철강 분야 투자에 힘입은 것이다. 추가적인 석유화학, 알루미늄, 플라스틱 프로젝트가 다양한 계획 단계에 있다.
이 나라는 또한 지역 금융 중심지이며, 경제는 무역 흑자가 증가하고 있다. 지난 6년간 애틀랜틱 LNG의 확장은 트리니다드 토바고에서 가장 큰 단일 지속 경제 성장 단계를 창출했다. 이 나라는 LNG 수출국이며 2017년에 총 134억 입방미터를 공급했다. 트리니다드 토바고 LNG 수출의 가장 큰 시장은 칠레와 미국이다.
트리니다드 토바고는 석유 기반 경제에서 천연가스 기반 경제로 전환했다. 2017년 천연가스 생산량은 총 185억 입방미터로, 2016년 186억 입방미터 생산량에서 0.4% 감소했다. 석유 생산량은 지난 10년간 2007년 연간 710만 미터톤에서 2017년 연간 440만 미터톤으로 감소했다. 2005년 12월, 애틀랜틱 LNG의 네 번째 생산 모듈 또는 "트레인"이 액화천연가스(LNG) 생산을 시작했다. 트레인 4는 애틀랜틱 LNG의 전체 생산 능력을 거의 50% 증가시켰으며, 연간 LNG 520만 톤으로 세계에서 가장 큰 LNG 트레인이다.
6.2. 관광업

트리니다드 토바고는 다른 많은 카리브해 국가 및 영토에 비해 관광업 의존도가 훨씬 낮으며, 대부분의 관광 활동은 토바고섬에서 이루어진다. 정부는 최근 몇 년간 이 부문을 활성화하기 위해 노력해 왔다.
섬의 매력 중 일부는 길거리 음식 문화와 문화 행사이며, 포트오브스페인의 아리피타 애비뉴는 이를 위한 유명한 장소 중 하나이다. 마라카스 폭포는 높이가 90 m가 넘는 국내에서 가장 높은 폭포이다.
6.3. 농업
역사적으로 설탕과 커피를 포함한 농업 생산이 경제를 지배했으며, 사탕수수가 가장 많은 돈을 벌고 가장 많은 고용을 제공했다. 생산된 설탕의 일부는 트리니다드에서 소비되었지만 대부분은 영국, 캐나다, 미국에 판매되었다. 코코아는 두 번째로 가치 있는 작물이었으며 사탕수수보다 더 많은 면적을 차지했다. 설탕 생산은 당시의 가격 하락과 높은 생산 비용으로 인해 2010년경 중단되었다.
대부분의 농부들은 스스로 재배할 수 없는 다른 나라에 판매하기 위해 코코아를 재배한다. 트리니다드는 한때 에콰도르에 이어 두 번째로 큰 코코아 생산국이었지만 오래가지 못했다. 서아프리카와 남아메리카 국가들이 더 낮은 가격으로 코코아를 재배하기 시작하면서 트리니다드는 많은 고객을 잃었다.
농업은 20세기 이후 급격히 쇠퇴하여 현재 국가 GDP의 0.4%, 노동력의 3.1%만을 차지한다. 오이, 가지, 카사바, 호박, 다신(토란), 코코넛과 같은 다양한 과일과 채소가 재배되며, 어업 또한 여전히 흔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6.4. 경제 다각화 및 기타 산업
트리니다드 토바고는 다각화를 통한 경제 변혁을 위해 2012년 국가 유일의 투자 유치 기관으로 인베스트TT(InvesTT)를 설립했다. 이 기관은 상공부와 연계되어 있으며, 국가의 비석유 및 가스 부문을 중요하고 지속 가능하게 성장시키는 핵심 역할을 담당한다.
식음료 산업은 트리니다드 토바고의 중요한 분야로, CARICOM 최대의 양조 회사인 카리브 양조회사가 위치해 있으며, 네슬레 공장을 비롯한 다수의 식품 생산 시설이 있다. 섬의 토지 부족과 평균보다 높은 소득으로 인해 식품 수입 경향이 있지만, 우유, 초콜릿, 코코넛, 주류 등 많은 제품이 현지에서 생산된다. 2022년 식음료 및 담배 산업의 생산량은 거의 80억 트리니다드 달러에 달했다. 트리니다드 토바고의 대표적인 레스토랑 체인으로는 로열 캐슬이 있다.
창조 산업 또한 경제 성장의 동력으로 인식되고 있다. 2015년 설립된 트리니다드 토바고 창조산업회사(CreativeTT)는 음악(MusicTT), 영화(FilmTT), 패션(FashionTT) 세 분야의 사업 개발 및 수출 활동을 촉진하여 국가적 부를 창출하는 임무를 맡고 있다.
6.5. 교통 및 통신

트리니다드 토바고는 잘 발달된 통신 부문을 보유하고 있다. 통신 및 방송 부문은 2014년에 약 56억 3천만 트리니다드 달러(미화 8억 8천만 달러)를 창출했으며, 이는 GDP의 3.1%에 해당한다. 이는 전년 대비 이 산업의 총수입이 1.9% 증가한 수치이다. 총 통신 및 방송 수입 중 이동 음성 서비스가 22억 트리니다드 달러(39.2%)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했으며, 인터넷 서비스가 11억 8천만 트리니다드 달러(21.1%)로 그 뒤를 이었다. 유선 음성 서비스와 유료 TV 서비스가 각각 7억 6천만 트리니다드 달러와 7억 트리니다드 달러(각각 13.4%와 12.4%)로 그 다음으로 높은 수입을 올렸다. 국제 음성 서비스는 2억 7천만 트리니다드 달러(4.7%)의 수입을 창출했다. 무료 공중파 라디오 및 텔레비전 서비스는 각각 1억 8천만 트리니다드 달러와 1억 3천만 트리니다드 달러(각각 3.2%와 2.4%)를 기여했다. 마지막으로 기타 수입과 전용 회선 서비스가 각각 1억 6천만 트리니다드 달러와 5천만 트리니다드 달러(각각 2.8%와 0.9%)의 수입을 올렸다. 통신 시장의 각 부문에는 여러 공급업체가 있다. 유선 전화 서비스는 디지셀, TSTT(bmobile로 운영), 케이블 & 와이어리스 커뮤니케이션스(FLOW로 운영)에서 제공하며, 이동통신 서비스는 TSTT(bmobile로 운영)와 디지셀에서, 인터넷 서비스는 TSTT, FLOW, 디지셀, 그린닷, 리사 커뮤니케이션스에서 제공한다.
트리니다드 토바고의 교통 시스템은 두 주요 섬 전역의 촘촘한 고속도로 및 도로망, 포트오브스페인과 스카버러 및 샌퍼넌도를 연결하는 페리, 그리고 두 섬의 국제공항으로 구성된다. 유라이어 버틀러 고속도로, 처칠-루스벨트 고속도로, 솔로몬 호초이 경 고속도로가 트리니다드섬을 연결하고, 클로드 노엘 고속도로는 토바고섬의 유일한 주요 고속도로이다. 육상 대중교통 수단으로는 공영 버스, 개인 택시, 미니버스가 있다. 해상 교통 수단으로는 섬 간 페리와 도시 간 수상 택시가 있다.

트리니다드섬은 피아르코에 위치한 피아르코 국제공항이 운항하며, 1931년 1월 8일에 개항했다. 해발 17.4 m에 위치하며, 면적은 680 ha이고 활주로 길이는 3200 m이다. 공항은 북쪽 터미널과 남쪽 터미널 두 개로 구성되어 있다. 구 남쪽 터미널은 2009년 제5차 미주 정상회의 기간 동안 VIP 출입구로 사용하기 위해 개조되었다. 북쪽 터미널은 2001년에 완공되었으며, 국제선용 제트웨이가 있는 14개의 2층 항공기 게이트, 2개의 지상층 국내선 게이트, 82개의 발권 카운터로 구성되어 있다.
2008년 피아르코 국제공항의 여객 처리량은 약 260만 명이었다. 카리브해에서 7번째로 분주한 공항이며, 영어권 카리브해에서는 생스터 국제공항과 린든 핀들링 국제공항에 이어 세 번째로 분주한 공항이다. 국영 항공사인 캐리비안 항공은 피아르코 국제공항을 주요 허브로 운영하며 카리브해, 미국, 캐나다, 남아메리카에 취항한다. 이 항공사는 트리니다드 토바고 정부가 전액 소유하고 있다. 5천만 달러의 추가 현금 투입 후, 트리니다드 토바고 정부는 2010년 5월 1일 자메이카 항공사인 에어 자메이카를 인수했으며, 6~12개월의 전환 기간이 뒤따랐다.
토바고섬은 크라운포인트에 있는 A.N.R. 로빈슨 국제공항이 운항한다. 이 공항은 북미와 유럽으로 정기 항공편을 운항한다. 두 섬 사이에는 정기 항공편이 있으며, 요금은 정부에서 대폭 보조금을 지급한다.
트리니다드는 이전에 철도망이 있었으나 1968년에 폐쇄되었다. 섬에 새로운 철도를 건설하는 논의가 있었지만 아직까지 구체적인 결과는 없다.
6.6. 에너지 정책과 기후 변화

트리니다드 토바고는 이 지역의 주요 석유 및 가스 수출국이지만, 2008년 카리브 공동체(CARICOM) 이웃 국가들이 소비하는 에너지의 90% 이상을 화석 연료 수입에 의존했다. 이러한 취약성으로 인해 CARICOM은 2013년에 승인된 에너지 정책을 개발하게 되었다. 이 정책에는 CARICOM 지속 가능한 에너지 로드맵 및 전략(C-SERMS)이 수반된다. 이 정책에 따라, 회원국의 총 발전량 중 신재생 에너지원의 비중을 2017년까지 20%, 2022년까지 28%, 2027년까지 47%로 늘리는 것을 목표로 한다.
2014년 세계은행에 따르면 트리니다드 토바고는 카타르와 퀴라소에 이어 1인당 CO2 배출량이 세계에서 세 번째로 많은 국가였다. 평균적으로 각 주민은 대기 중에 34.2 미터톤의 CO2를 배출했다. 이에 비해 같은 해 세계 평균은 1인당 5.0톤이었다. 최근 몇 년 동안 CO2 배출량이 감소하여, 2021년에는 1인당 21.01톤으로, 인구 50만 명 미만의 소규모 국가를 제외하면 세계에서 네 번째로 높았으며, 나머지 최악의 7개 1인당 CO2 배출국 중 유일하게 중동 국가가 아니다.
경제의 배출 집약도(GDP 단위당 CO2 배출량으로 정의) 측면에서 트리니다드 토바고는 세계 3위를 차지했다. 배출원 프로필은 CO2 배출 집약도가 가장 높은 국가들 사이에서 독특한데, 산업 공정 배출, 농업 토양 및 폐기물을 포함하는 소위 "기타 부문"이 발전 산업, 기타 산업 연소, 운송 및 건물 부문보다 화석 CO2 배출량의 50% 이상을 차지한다.
트리니다드 토바고의 카리브 산업 연구소는 기후 변화 연구를 촉진하고 식품 안보와 관련된 연구 개발을 위한 산업 지원을 제공한다. 또한 주요 산업을 위한 장비 테스트 및 교정을 수행한다.
7. 사회
트리니다드 토바고는 다민족, 다문화 사회로, 인도계와 아프리카계가 주된 인구 집단을 이루며, 다양한 언어와 종교가 공존한다. 교육 시스템은 초등부터 고등 교육까지 잘 갖추어져 있으며, 주요 도시를 중심으로 인구가 분포되어 있다. 여성의 사회 참여 또한 활발하다.
7.1. 인구 구성
2020년대 중반 기준 트리니다드 토바고의 인구는 약 140만에서 150만 명으로 추산된다. 인종 구성은 정복과 이민의 역사를 반영한다. 초기 거주민은 원주민 혈통이었지만, 현재 국가의 두 주요 그룹은 인도-남아시아계와 아프리카계이다.
- 인도계: 35.4%
- 아프리카계: 34.2%
- 혼혈: 15.3%
- 더글라 (아프리카계/인도계 혼혈): 7.7%
- 미상: 6.2%
- 기타: 1.3%
인도계 트리니다드 토바고인이 국가 최대 인종 그룹(약 35.4%)을 차지하며, 이들은 주로 설탕 농장에서 일하던 해방된 아프리카 노예들을 대체하기 위해 인도에서 온 계약 노동자의 후손이다. 문화 보존을 통해 많은 인도계 주민들은 조상의 전통을 계속 유지하고 있다. 인도계 트리니다드인은 주로 트리니다드섬에 거주하며, 2011년 인구 조사 기준으로 토바고섬 인구의 2.5%만이 인도계였다.
아프리카계 트리니다드 토바고인은 국가에서 두 번째로 큰 인종 그룹으로, 인구의 약 34.2%가 아프리카계 혈통으로 확인된다. 아프리카계 배경을 가진 대다수는 16세기 초부터 섬으로 강제 이송된 노예의 후손이다. 이 그룹은 토바고섬 인구의 85.2%를 차지하며 다수를 이룬다.
나머지 인구의 대부분은 혼혈 혈통으로 확인되는 사람들이다. 또한 아메리카 원주민, 유럽계, 포르투갈계, 베네수엘라인, 중국계, 아랍인 혈통의 소수이지만 중요한 소수 민족도 있다.
트리니다드의 아리마는 카리브 여왕의 본부이자 산타로사 제1민족 공동체의 소재지로서 제1민족 문화의 주목할 만한 중심지이다. 트리니다드 토바고에는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 사이에 코코아 농장에서 일하기 위해 베네수엘라에서 온 스페인계, 원주민, 아프리카계 혼혈 이주 노동자의 후손인 코코아 파뇰 공동체가 있다.
7.2. 언어

영어가 공식 언어이다(현지 표준 영어는 트리니다드 토바고 영어 또는 더 정확하게는 트리니다드 토바고 표준 영어(TTSE)로 약칭됨). 그러나 주요 사용 언어는 두 가지 영어 기반 크리올어(트리니다드 크리올어 또는 토바고 크리올어) 중 하나이며, 이는 국가의 원주민, 유럽, 아프리카, 아시아 유산을 반영한다. 두 크리올어 모두 다양한 아프리카 언어의 요소를 포함하고 있다. 그러나 트리니다드 영어 크리올어는 프랑스어와 프랑스 크리올어(파투아)의 영향도 받았다.
트리니다드 힌두스탄어, 트리니다드 보즈푸리어, 트리니다드 힌디어, 인도어, 플랜테이션 힌두스탄어, 또는 가온 케 볼리(마을 말)는 트리니다드 토바고에서 사용되는 힌두스탄어의 다양한 명칭이다. 초기 인도 계약 이민자 대다수는 보즈푸리어와 아와디어 방언을 사용했으며, 이것이 나중에 트리니다드 힌두스탄어로 형성되었다. 1935년, 인도 영화가 트리니다드 관객에게 상영되기 시작했다. 대부분의 인도 영화는 표준 힌두스탄어(힌디-우르두어) 방언으로 되어 있었고, 이는 표준 힌디어와 우르두어 구문과 어휘를 트리니다드 힌두스탄어에 추가함으로써 트리니다드 힌두스탄어를 약간 변형시켰다. 인도 영화는 또한 인도계 트리니다드 토바고인들 사이에서 힌두스탄어를 부활시켰다. 영국 식민 정부와 농장주들은 트리니다드의 힌두스탄어와 인도 언어에 대해 경멸과 무시를 보였다. 이로 인해 많은 인도인들은 이를 빈곤과 사탕수수밭에 얽매이게 하는 깨진 언어로 여겼고, 제1언어가 아닌 유산 언어로 전수했으며, 탈출구로서 영어를 선호했다. 1960년대 중후반경 인도계 트리니다드 토바고인들의 링구아 프랑카는 트리inidad 힌두스탄어에서 일종의 힌디어화된 영어 버전으로 바뀌었다. 오늘날 힌두스탄어는 바잔, 인도 고전 음악, 인도 민속 음악, 필미, 피차카리, 처트니, 처트니 소카, 처트니 파랑과 같은 인도-카리브 트리니다드 토바고 음악 형식을 통해 살아남아 있다. 2003년 기준으로 트리니다드 힌두스탄어를 사용하는 인도계 트리니다드 토바고인은 약 15,633명이며, 2011년 기준 표준 힌디어를 사용하는 사람은 약 10,000명이다. 오늘날 많은 인도계 트리니다드 토바고인들은 트리니다드 힌두스탄어 어휘와 구문이 많이 섞인 트리니다드 토바고 영어를 사용하는 일종의 힝글리시를 사용하며, 많은 인도계 트리니다드 토바고인들은 오늘날 힌두스탄어로 된 구문이나 기도를 암송할 수 있다. 트리니다드 토바고에는 힌두스탄어에서 유래한 지명이 많이 있다. 일부 구문과 어휘는 국가의 주류 영어 및 영어 크리올 방언에도 영향을 미쳤다. 세계 힌디어의 날은 매년 1월 10일에 기념되며, 인도 문화 국립 위원회, 힌디 니디 재단, 인도 고등 판무관 사무소, 마하트마 간디 문화 협력 연구소, 사나탄 다르마 마하 사바에서 행사를 주최한다.

스페인어는 1498년부터 1797년까지 트리니다드섬의 공식 언어였으나, 1780년대와 1790년대에 프랑스인과 프랑스 크리올 이주민들이 트리니다드섬에 도착하면서 프랑스어와 프랑스 크리올어가 스페인어를 대체하기 시작했다. 1797년 트리니다드섬이 영국 식민지가 되면서 영어는 공식 언어가 되었고, 스페인어는 소수 언어로 전락했다. 스페인어는 코코아 파뇰과 최근 베네수엘라 이민자들에 의해 계속 사용되고 있다. 2020년 기준 트리니다드 토바고에는 4만 명 이상의 베네수엘라인이 거주하고 있으며, 이는 인구의 약 2.85%에 해당한다. 정부는 모든 초등학생에게 스페인어를 가르치고 있으며, 2005년 3월부터는 공공 문서에도 스페인어를 병기하는 "외국어로서의 스페인어(SAFFL)" 계획을 시행하고 있다.
타밀어는 일부 나이든 타밀(마드라시) 인도계 트리니다드 토바고인 인구가 사용한다. 주로 현재 인도 타밀나두주 출신의 계약 인도 노동자의 몇 안 되는 남은 자녀들이 사용한다. 이 언어를 사용하는 다른 사람들은 타밀나두에서 온 최근 이민자들이다.
19세기에 이주한 대다수의 중국인들은 중국 남부 출신이었고 중국어의 객가어와 월어 방언을 사용했다. 20세기에는 계약 노동 기간이 끝난 후부터 현재까지 더 많은 중국인들이 사업을 위해 트리니다드 토바고로 이주했으며, 그들은 계약 노동자들의 방언과 함께 관화와 민난어와 같은 다른 중국어 방언을 사용한다. 1906년에 J. 다이어 볼은 "트리니다드에는 약 20년 전에 4,000명 또는 5,000명의 중국인이 있었지만, 아마도 약 2,000명 또는 3,000명으로 감소했을 것이다 [1900년에는 2,200명]. 그들은 설탕 농장에서 일했지만, 지금은 주로 상점 주인이며, 일반 상인, 광부, 철도 건설업자 등이기도 하다."라고 기록했다.
원주민 언어로는 트리니다드섬의 야오어와 토바고섬의 카리나어(둘 다 카리브어족), 그리고 트리니다드섬의 셰바야어(아라와크어족)가 있었다.
7.3. 종교

2011년 인구 조사에 따르면, 기독교가 트리니다드 토바고에서 가장 큰 종교로, 인구의 55.2%가 믿는다고 답했다.
- 기독교: 55.2%
- 힌두교: 18.2%
- 이슬람교: 5.0%
- 오리샤: 0.9%
- 라스타파리: 0.3%
- 기타 종교: 7.0%
- 무종교/미응답: 13.3%
로마 가톨릭교가 전체 인구의 21.60%로 단일 기독교 교파 중 가장 컸다. 오순절교회/복음주의/완전복음주의 교파가 인구의 12.02%로 두 번째로 큰 기독교 그룹이었다. 기타 다양한 기독교 교파로는 영신침례교(5.67%), 성공회(5.67%),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회(4.09%), 장로교 또는 회중교회(2.49%), 여호와의 증인(1.47%), 침례교(1.21%), 감리교(0.65%), 모라비아 교회(0.27%)가 있다.
힌두교는 2011년 기준 인구의 18.2%가 믿는 두 번째로 큰 종교였다. 힌두교는 전국적으로 행해지며, 디왈리는 공휴일이고 다른 힌두교 공휴일도 널리 기념된다. 트리inidad 토바고에서 가장 큰 힌두교 단체는 1952년 두 주요 힌두교 단체가 합병하여 결성된 사나탄 다르마 마하 사바이다. 트리니다드 토바고의 대부분의 힌두교도는 사나타니(사나타니스트/정통 힌두교도)이다. 다른 종파 및 단체로는 아리아 사마지, 카비르 판트, 세우나리아니(시에우나리니/시브 나라야니), 라마난디 삼프라다야, 아우가르(아고르), 칼리 마이(마드라시), 사티야 사이 바바 운동, 시르디 사이 바바 운동, ISKCON(하레 크리슈나), 친마야 미션, 바라트 세바슈람 상가, 디바인 라이프 소사이어티, 무루간(카우마람), 가나파티 사치다난다 운동, 자가드구루 크리팔루 파리샤트(라다 마다브), 브라마 쿠마리스가 있다.
무슬림은 2011년 인구의 4.97%를 차지했다. 이드 알피트르는 공휴일이며 이드 알아드하, 마울리드, 호세이, 샤베바라트 및 기타 이슬람 공휴일도 기념된다.
아프리카에서 유래했거나 아프리카 중심적인 종교도 행해지는데, 특히 트리니다드 오리샤(요루바) 신자(0.9%)와 라스타파리안(0.27%)이 있다. 전통적인 오베아 신앙의 다양한 측면이 여전히 섬에서 흔히 행해지고 있다.
수 세기 동안 섬에는 유대인 공동체가 있었지만, 그 수는 결코 많지 않았으며 2007년 추정치에 따르면 유대인 인구는 55명이었다.
종교적 소속을 밝히지 않은 응답자는 인구의 11.1%를 차지했으며, 2.18%는 자신이 무종교라고 밝혔다.
두 가지 아프리카 혼합주의 신앙인 샤우터 또는 영신침례교와 오리샤 신앙(이전에는 덜 경칭적인 의미의 샹고라고 불림)은 가장 빠르게 성장하는 종교 그룹 중 하나이다. 마찬가지로, 대부분의 트리니다드인이 "오순절교회"로 통칭하지만 종종 부정확한 지정인 복음주의 개신교와 근본주의 교회의 수가 눈에 띄게 증가하고 있다. 시크교, 자이나교, 바하이, 조로아스터교, 불교는 소수의 인도계 트리니다드 토바고인이 믿고 있으며, 대부분 최근 인도에서 온 이민자들이다. 불교, 중국 민간 신앙, 도교, 유교와 같은 여러 동양 종교는 소수의 중국계 트리니다드 토바고인이 따르고 있으며, 대부분은 기독교인이다.
7.4. 교육

아이들은 보통 2세 반에 유치원을 시작하지만 의무는 아니다. 그러나 초등학교에 입학할 때는 기본적인 읽기 및 쓰기 능력을 갖추고 있어야 한다. 학생들은 5세에 초등학교를 시작하여 7년 후에 중등학교로 진학한다. 초등학교 7개 학년은 1학년과 2학년, 그리고 표준 1학년부터 표준 5학년까지로 구성된다. 초등학교 마지막 학년 동안 학생들은 중등 입학 평가(SEA)를 준비하고 응시하며, 이 시험은 아이가 다닐 중등학교를 결정한다.
학생들은 최소 5년 동안 중등학교에 다니며, 영국 GCSE O 레벨에 해당하는 카리브 중등 교육 자격증(CSEC) 시험으로 이어진다. 만족스러운 성적을 받은 아이들은 추가 2년 동안 고등학교를 계속 다니기로 선택할 수 있으며, 이는 GCE A 레벨에 해당하는 카리브 고급 능력 시험(CAPE)으로 이어진다. CSEC와 CAPE 시험은 모두 카리브 시험 위원회(CXC)에서 주관한다. 공립 초등 및 중등 교육은 모두 무료이지만, 사립 및 종교 학교는 유료로 이용할 수 있다.
서인도 제도 대학교(UWI), 트리니다드 토바고 대학교(UTT), 남카리브 대학교(USC), 트리니다드 토바고 과학 기술 응용 예술 대학(COSTAATT) 및 기타 특정 지역 공인 기관에서 학사 학위 수준까지의 고등 교육 수업료는 GATE(수업료 정부 지원)를 통해 제공된다. 정부는 현재 일부 석사 과정에도 보조금을 지급하고 있다. 정부와 민간 부문 모두 재능 있거나 궁핍한 학생들을 위해 지역, 역내 또는 국제 대학교에서 공부할 수 있도록 학술 장학금 형태로 재정 지원을 제공한다. 트리니다드 토바고는 2024년 세계 혁신 지수에서 108위를 차지했으며, 2019년 91위에서 하락했다.
7.5. 주요 도시
트리니다드 토바고의 주요 도시로는 수도인 포트오브스페인을 비롯하여 샌퍼넌도, 차과나스, 아리마, 포인트포르틴 등이 있다. 포트오브스페인은 국가의 행정, 금융, 문화 중심지 역할을 하며, 주요 항구와 정부 청사가 위치해 있다. 샌퍼넌도는 남부 트리니다드의 산업 중심지이며, 차과나스는 가장 빠르게 성장하는 상업 중심지이다. 아리마는 원주민 문화의 중심지로 알려져 있으며, 포인트포르틴은 석유 산업과 관련된 도시이다. 토바고섬의 주요 도시는 스카버러로, 섬의 행정 및 관광 중심지이다. 이 외에도 산후안, 디에고마틴, 쿠바, 프린세스타운, 투나푸나 등 다수의 중소 도시들이 각 지역의 중심지 역할을 하고 있다.
7.6. 여성
트리니다드 토바고 여성은 인구의 약 49%를 차지하지만, 국가 노동력의 거의 55%를 구성하며 사회 경제적으로 활발하게 참여하고 있다. 교육 수준 또한 지속적으로 향상되어 고등 교육 이수율이 높다.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다양한 분야에서 여성의 역할이 증대되고 있으며, 정부 차원에서도 여성의 권익 향상과 양성평등을 위한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그러나 여전히 가정 폭력, 성차별, 고용 불평등과 같은 사회 문제에 직면해 있으며, 이에 대한 사회적 인식 개선과 제도적 지원이 요구되고 있다.
8. 문화

트리니다드 토바고는 아프리카, 인도, 크리올, 유럽, 중국, 원주민, 라틴 아메리카, 아랍 등 다양한 문화가 융합된 독특한 문화적 특징을 지니고 있다. 이러한 다양성은 수 세기 동안 섬으로 이주해 온 다양한 공동체를 반영한다. 스틸팬 음악, 림보 댄스 경연대회, 정교한 의상을 자랑하는 카니발, 그리고 카리브해 길거리 음식 등이 이 섬들의 유명한 문화 중 일부이다. 예술, 음식, 춤, 축제, 문학, 음악 등 다양한 분야에서 이러한 문화적 다양성이 나타난다.
8.1. 예술 및 디자인
트리니다드 출신 디자이너 피터 민শাল은 카니발 의상뿐만 아니라 바르셀로나 올림픽, 1994년 FIFA 월드컵, 1996년 하계 올림픽, 2002년 동계 올림픽 개막식에서의 역할로도 유명하며, 이 공로로 에미상을 수상했다. 19세기 화가 미셸장 카자봉은 트리니다드의 풍경과 생활상을 그린 작품으로 잘 알려져 있다. 현대 시각 예술 분야에서도 활발한 활동이 이루어지고 있으며, 다양한 갤러리와 예술 공간에서 전시회가 열린다.
8.2. 음식


다양성은 아프리카, 인도, 중국, 크리올, 유럽, 아메리카 원주민, 라틴 아메리카, 북미 등 다양한 영향을 받은 요리 문화에서도 드러난다. 길거리 음식이 인기가 있으며, 그 예로는 더블스, 알루 파이, 사히나, 폴루리, 카초리, 베이가니, 파이, 아크라, 베이크 앤 샤크, 바비큐, 사우스, 차우, 블랙 푸딩, 아레파스, 기로스 등이 있다. 주요 요리 및 반찬으로는 커리 크랩 앤 덤플링, 펠라우, 오일 다운, 파스텔레스, 불졸, 쿠쿠, 칼랄루, 뿌리채소, 플랜틴 튀김, 팥밥, 닭튀김, 스튜 치킨, 바비큐 치킨, 생선 튀김, 마카로니 파이, 프라이 베이크, 달 바트(달과 밥), 쿠르히, 달푸리, 파라타, 사다 로티, 도스티 로티, 커리 치킨, 커리 염소, 지라 포크, 커리 생선, 커리 새우, 커리 차나와 알루, 커리 베이건, 바지, 망고 타르카리, 커리 샤타뉴, 보디, 세임, 호박(코흐라), 베이건 초카, 다마돌(토마토) 초카, 알루 초카, 키치리, 타르카리스, 페퍼 슈림프, 볶음밥, 차우멘 등이 있다. 유명한 수프로는 닭고기 수프, 소 발굽 수프, 생선 육수, 옥수수 수프가 있다. 디저트와 단 음식으로는 카사바 폰, 스위트 브레드, 코코넛 드롭스, 커런트 롤, 스펀지 케이크, 블랙 케이크, 쿠르마, 굴랍자문, 잘레비, 라두, 할와, 모한보그(파르사드), 페라, 구지야, 말리다, 랍시, 스위트 라이스, 바르피, 라스굴라, 사와인, 슈가 케이크, 툴룸, 코코넛, 망고 또는 사워솝 아이스크림이 있다.
이 중 가장 유명한 것 중 하나는 더블스로, 바라(튀긴 플랫브레드) 두 개에 차나(커리 병아리콩)와 처트니스, 쿠첼라, 페퍼 소스와 같은 다양한 양념을 곁들인 것이다. 이는 트리니다드 토바고에서 가장 인기 있는 길거리 음식이다. 더블스는 늦은 밤 간식이나 아침 식사로 인기가 있으며, 1936년 트리니다드에서 발명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인기 있는 음식 종류로는 길거리 음식, 축하 음식, 디저트, 그리고 다양한 처트니와 같은 양념이 있다. 신선한 코코넛 워터, 럼, 마우비 등이 그 예이다. "젤리"를 곁들인 신선한 코코넛 워터, 비터스, 다양한 칵테일, 소렐은 이 섬들의 주목할 만한 음료 중 하나이다. 트리니다드식 기로스와 샤와르마는 레바논과 시리아 이주민들에 의해 대중화된 또 다른 주목할 만한 음식이다.
8.3. 춤
림보 춤은 트리니다드에서 추도식 때 열리던 행사에서 유래했다. 림보는 아프리카에 뿌리를 두고 있다. 1950년대 댄스 개척자 줄리아 에드워즈("림보의 퍼스트 레이디"로 알려짐)와 그녀의 무용단이 여러 영화에 출연하면서 대중화되었다. 벨레, 봉고, 와이닝 또한 아프리카에 뿌리를 둔 춤 형식이다.
재즈, 볼룸, 발레, 모던, 살사 춤 또한 인기가 있다.
인도 춤 형식 또한 트리니다드 토바고에서 널리 퍼져 있다. 카타크, 오디시, 바라타나티얌은 트리니다드 토바고에서 가장 인기 있는 인도 고전 무용 형식이다. 인도 민속 무용인 라운다 케 나치뿐만 아니라 발리우드 춤과 처트니 춤 또한 인기가 있다.
8.4. 축제 및 공휴일


이 섬은 특히 연례 카니발 축제로 유명하다. 섬에서 행해지는 다양한 종교와 문화에 뿌리를 둔 축제들도 인기가 있다. 힌두교 축제로는 디왈리, 파그와(홀리), 나우라트리, 비자야다샤미, 마하 시브라트리, 크리슈나 잔마슈타미, 람 나우미, 하누만 자얀티, 가네쉬 우트사브, 사라스와티 자얀티, 카르틱 나한, 마카르 산크란티, 피트루 박샤, 락샤 반단, 메샤 산크란티, 구루 푸르니마, 툴라시 비바하, 비바하 판차미, 칼바이로 자얀티, 닷타 자얀티, 기타 자얀티 등이 있다. 기독교 공휴일 및 기념일로는 영신침례교 해방일, 사순절, 종려주일, 부활절, 성목요일, 성금요일, 재의 수요일, 성주간, 부활절 월요일, 부활절 팔일 축제, 오순절, 성령 강림 대축일 월요일, 올드 이어스 데이, 새해 첫날, 크리스마스, 박싱 데이, 주님 공현 대축일, 성모 승천 대축일, 성체 축일, 위령의 날, 모든 성인 대축일 등이 있다. 이슬람 공휴일로는 호세이(아슈라), 이드 알피트르, 이드 알아드하, 아라파의 날, 마울리드, 라마단, 찬드 라트, 샤베바라트 등이 있다. 인도계 사람들은 1845년부터 시작된 계약 인도인 조상의 도착을 기념하기 위해 인도인 도착일을 기념하고, 아프리카계 사람들은 아프리카 조상들이 노예제에서 해방된 날을 기념하기 위해 해방일을 기념한다. 트리니다드 토바고는 세계에서 이 두 공휴일을 모두 인정하고 공휴일로 지정한 최초의 국가이다. 아메리카 원주민들은 산타로사 원주민 축제를, 중국계 트리니다드인들은 중국 설날을 기념하지만, 이는 국가 공휴일은 아니다. 독립기념일, 공화국의 날, 노동절과 같은 국경일도 기념된다.
8.5. 문학

트리니다드 토바고는 두 명의 노벨 문학상 수상 작가를 배출했다. V. S. 나이폴과 세인트루시아 태생의 데릭 월컷(트리니다드 극장 워크숍도 설립)이다. 다른 주목할 만한 작가로는 마이클 앤서니, 닐 비순다스, 바니 카필데오, 멀 호지, C. L. R. 제임스, 얼 러블레이스, 라빈드라나트 마하라지, 케네스 람찬드, 새뮤얼 셀본이 있다.
20세기에는 아이티 혁명을 그린 『블랙 자코뱅』(The Black Jacobins영어; 1938년)을 저술한 C. L. R. 제임스와 카리브해 지역 흑인 최초의 역사서가 된 『자본주의와 노예제』(1944년), 『콜럼버스에서 카스트로까지』 등을 저술한 에릭 윌리엄스에 의해 영국 자본주의 형성 과정에서 카리브해 노예들의 역할이 밝혀졌다.
8.6. 음악


트리니다드 토바고는 칼립소 음악과 스틸팬의 발상지이다. 트리니다드는 또한 소카 음악, 처트니 음악, 처트니-소카, 파랑, 랍소, 피차카리, 처트니 파랑의 발상지이기도 하다. 1930년대 석유를 저장하기 위한 드럼통에서 탄생한 악기 스틸팬(스틸드럼)은 "20세기 최대의 어쿠스틱 악기 발명"으로 불리며, 1992년 독립기념일에는 정식으로 "국민 악기"로 인정받았다. 스틸팬은 선진국으로의 이민을 통해 세계 음악에 영향을 미쳤으며, 많은 예술가들이 이를 활용하고 있다. 소카 역시 이 나라에서 유래했으며, 페르시아계 사람들의 타사나 인도계 사람들의 처트니와 같은 음악적 요소를 받아들여(처트니 소카) 뉴욕 이민 사회를 통해 힙합과 상호 영향을 주고받으며 세계 대중음악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유명한 음악가로는 아틸라 더 훈, 로드 키치너, 에드문도 로스가 있다. 또한, 미국에서 활동하는 래퍼 겸 싱어송라이터 니키 미나즈도 수도 포트오브스페인 출신이다.
8.7. 미디어 및 공연 예술
제프리 홀더(보스코 홀더의 형제)와 헤더 헤들리는 연극으로 토니상을 수상한 트리니다드 태생의 두 예술가이다. 홀더는 또한 영화 경력도 뛰어나며, 헤들리는 그래미상도 수상했다.
인도 연극 또한 트리니다드 토바고 전역에서 인기가 있다. 나우탄키와 라자 하리쉬찬드라, 라자 날, 라자 라살루, 사르와니어(샤르완 쿠마르), 인더르 사바, 바크트 프라할라드, 로리카얀, 고피찬드, 알하-칸드와 같은 드라마들이 인도인들에 의해 트리니다드 토바고로 전해졌으나, 인도 문화 단체들의 보존 노력 전까지는 대체로 사라져가고 있었다. 힌두교 신 라마의 생애를 다룬 드라마인 람릴라는 샤라드 나바라트리와 비자야다샤미 사이에 인기가 있으며, 힌두교 신 크리슈나의 생애를 다룬 드라마인 라스 릴라(크리슈나 릴라)는 크리슈나 잔마슈타미 무렵에 인기가 있다.
신문, 라디오, 텔레비전 방송 등 미디어 현황도 활발하며, 연극 및 영화 분야도 꾸준히 발전하고 있다.
8.8. 미인 대회
트리니다드 토바고는 두 명의 미스 유니버스 우승자를 배출한 가장 작은 나라이기도 하다. 1977년 자넬 코미숑이 흑인 여성 최초로 우승했으며, 1998년에는 웬디 피츠윌리엄이 그 뒤를 이었다. 또한 1986년에는 지젤 라론드가 미스 월드에서 우승했다.
8.9. 박물관 및 정원
트리니다드 토바고에는 클래식 자동차, 미술, 역사, 동물학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을 다루는 다양한 박물관이 있다. 대표적인 시설로는 국립 박물관 및 미술관, 차과라마스 군사 역사 및 항공 박물관, 머니 박물관 등이 있다. 또한, 엠퍼러 밸리 동물원과 왕립 식물원은 시민들과 관광객들에게 인기 있는 여가 및 교육 공간이다.
8.10. 스포츠
트리니다드 토바고의 스포츠는 국민들의 생활과 문화에 깊이 뿌리내리고 있으며, 특히 크리켓과 축구가 큰 인기를 누리고 있다. 올림픽을 비롯한 국제 대회에서도 꾸준한 성과를 거두며 국가적 자부심을 높이고 있다.
8.10.1. 올림픽
헤이즐리 크로퍼드는 1976년 하계 올림픽 남자 100m에서 트리니다드 토바고 최초의 올림픽 금메달을 획득했다. 트리니다드 토바고의 9명의 다른 선수들은 올림픽에서 12개의 메달을 획득했으며, 이는 1948년 로드니 윌크스가 역도에서 은메달을 딴 것에서 시작되었다. 가장 최근에는 2012년 남자 창던지기에서 케숀 월컷이 금메달을 획득했다. 아토 볼든은 육상에서 트리니다드 토바고를 위해 가장 많은 올림픽 및 세계 선수권 메달을 획득했으며, 총 8개(올림픽 4개, 세계 선수권 4개)이다. 볼든은 1997년 아테네 200m 세계 선수권 대회에서 우승했으며, 2013년 모스크바에서 제휴 고든이 우승할 때까지 트리니다드 토바고가 배출한 유일한 세계 챔피언이었다. 수영 선수 조지 보벨 3세는 2004년 남자 200m 개인 혼영에서 동메달을 획득했다. 2017년 런던 세계 선수권 대회에서 남자 4x400m 계주팀이 우승을 차지하여, 현재 이 나라는 3개의 세계 선수권 타이틀을 보유하고 있다. 이 팀은 재린 솔로몬, 재림 리처즈, 마첼 세데니오, 랄론드 고든으로 구성되었으며, 예선에서 뛴 레니 쿼우도 포함되었다.
2018년 스포츠 중재 재판소는 2008년 올림픽 4x100m 계주에서 자메이카팀의 도핑 샘플 실패에 대한 최종 결정을 내렸다. 트리니다드 토바고팀은 계주 경기 중 2위를 차지했기 때문에 금메달을 받게 되었다.
2023년 트리니다드 토바고는 2023년 영연방 청소년 경기 대회를 개최했다.
2024년 트리니다드 토바고 단거리 선수 레아 버트런드는 2024년 파리 올림픽에 처음으로 출전했다. 전반적으로 트리니다드 토바고는 2024년 대회에 약 17명의 선수를 파견했으며, 여기에는 유명 선수인 미셸-리 아히(단거리), 제림 리처즈(200m 및 400m), 딜런 카터(수영), 케숀 월컷(창던지기), 니콜라스 폴(사이클)이 포함되었다. 케숀 월컷은 이전 올림픽 메달리스트로 금메달과 동메달을 획득했다.
8.10.2. 크리켓

크리켓은 종종 트리니다드 토바고의 국민 스포츠로 여겨지며, 카리브해 이웃 국가들과 치열한 섬 간 경쟁이 있다. 트리니다드 토바고는 서인도 제도 대표팀의 일원으로서 테스트 크리켓, 원데이 인터내셔널 및 트웬티20 크리켓 수준에서 대표된다. 국가 대표팀은 지역 4일 대회 및 지역 슈퍼50과 같은 지역 대회에서 1군 수준으로 경기한다. 한편, 트린바고 나이트 라이더스는 카리브 프리미어 리그에서 경기한다.
포트오브스페인에 위치한 퀸스 파크 오벌은 서인도 제도에서 가장 큰 크리켓 경기장으로, 2018년 1월까지 60번의 테스트 경기를 개최했다. 트리니다드 토바고는 카리브해의 다른 섬들과 함께 2007년 크리켓 월드컵을 공동 개최했다. 동국 출신의 브라이언 라라는 세계 크리켓 역사상 역대 최고의 선수 중 한 명으로 꼽힌다.
8.10.3. 축구

축구 또한 트리니다드 토바고에서 인기 있는 스포츠이다. 남자 축구 국가대표팀은 2005년 11월 16일 마나마에서 바레인을 꺾고 2006년 FIFA 월드컵 본선에 처음으로 진출하여, 아이슬란드에 이어 역대 두 번째로 인구가 적은 본선 진출국이 되었다.
네덜란드 출신 감독 레오 베인하커르가 이끌고 토바고 출신 주장 드와이트 요크가 주도한 이 팀은 도르트문트에서 열린 스웨덴과의 첫 조별 리그 경기에서 0-0으로 비겼으나, 두 번째 경기에서는 잉글랜드에게 막판 골을 허용하며 0-2로 패했다. 조별 리그 마지막 경기에서 파라과이에 0-2로 패한 후 탈락했다.
2006년 월드컵 본선 진출 이전, 트리니다드 토바고는 1974년 FIFA 월드컵 예선에서 논란의 여지가 있는 경기 끝에 본선 진출에 아쉽게 실패했다. 이 경기 후, 아이티와의 결정적인 경기의 심판은 그의 판정으로 인해 영구 자격 정지 처분을 받았다. 트리니다드 토바고는 1990년에도 월드컵 본선 진출에 거의 성공할 뻔했으나, 미국과의 홈 경기에서 무승부만 거두면 되었지만 0-1로 패했다.
대표팀은 헤이즐리 크로퍼드 스타디움에서 홈 경기를 치른다. 트리니다드 토바고는 2001년 FIFA U-17 세계 선수권 대회와 2010년 FIFA U-17 여자 월드컵을 개최했다.
TT 프로 리그는 국내 주요 축구 대회이며 트리니다드 토바고 축구 리그 시스템의 최상위 리그이다. 프로 리그는 트리니다드 토바고의 프로 축구 클럽을 위한 리그 역할을 한다. 이 리그는 국가 대표팀을 강화하고 국내 선수 발전을 향상시키기 위한 프로 리그의 필요성에 따라 1999년에 시작되었다. 첫 시즌은 같은 해에 8개 팀으로 시작되었다.
8.10.4. 기타 스포츠

농구는 트리니다드 토바고의 대학, 대학교 및 다양한 도시 농구 코트에서 흔히 즐겨 하는 스포츠이다. 국가대표팀은 카리브해 지역에서 가장 성공적인 팀 중 하나로, 카리브 농구 선수권 대회에서 1986년부터 1990년까지 4회 연속 금메달을 획득했다.
넷볼은 오랫동안 트리니다드 토바고에서 인기 있는 스포츠였지만 최근 몇 년 동안 인기가 감소했다. 넷볼 월드컵에서는 1979년에 공동 우승을 차지했고, 1987년에는 준우승, 1983년에는 3위를 기록했다.
럭비는 트리니다드 토바고에서 행해지며 계속해서 인기 있는 스포츠이고, 경마도 국내에서 정기적으로 관람된다.
트리니다드 토바고 야구/소프트볼 협회가 관리하는 트리니다드 토바고 야구 국가대표팀도 있으며, 국제 대회에서 국가를 대표한다. 이 팀은 팬아메리칸 야구 연맹의 임시 회원이다.
트리니다드 토바고에는 여러 개의 9홀 및 18홀 골프 코스가 있다. 가장 오래된 곳은 트리니다드 마라발의 세인트 앤드루스 골프 클럽(일반적으로 모카라고 불림)이며, 피아르코 공항 근처 트린시티에는 밀레니엄 레이크스라는 새로운 코스가 있다. 차구라마스와 포인트아피에르에는 18홀 코스가 있고, 쿠바와 세인트 마들린에는 9홀 코스가 있다. 토바고에는 2개의 18홀 코스가 있다. 두 곳 중 더 오래된 곳은 마운트 어바인에 있으며, 막달레나 호텔 & 골프 클럽(이전 토바고 플랜테이션스)은 더 최근에 건설되었다.
비록 소수 스포츠이지만, 보디빌딩은 트리니다드 토바고에서 관심이 증가하고 있다. 전 세계적인 보디빌더였던 대럼 찰스는 트리니다드 토바고 출신이다.
드래곤보트는 또한 최근 몇 년 동안 빠르게 성장하고 있는 수상 스포츠이다. 2006년에 도입된 이후, 이 단체는 TTDBF(트리니다드 토바고 드래곤보트 연맹) 회원 수를 늘리고 2011년 미국 탬파에서 열린 제10회 IDBF 세계 국가 드래곤보트 선수권 대회와 같은 국제 수준에서 성과를 거두는 데 꾸준한 진전을 이루었다.
클로드 노엘은 프로 복싱 전 세계 챔피언이다. 그는 토바고에서 태어났다.
트리니다드 토바고 체스 선수권 대회는 1937년에 시작되었으며, 연례 전국 체스 선수권 대회이다.
9. 국가 상징
트리니다드 토바고를 대표하는 공식적인 상징물들은 국가의 정체성과 역사, 자연환경을 반영한다. 국기, 국장, 국가, 국화, 국조 등이 있으며, 각각 고유한 의미를 담고 있다.
9.1. 국기
국기는 1962년 독립 위원회에서 채택되었다. 빨강, 검정, 하양은 각각 국민의 따뜻함, 대지의 풍요로움, 물을 상징한다.
9.2. 국장
국장은 독립 위원회에서 디자인했으며, 붉은따오기(트리니다드 토종), 코크리코(토바고 토종), 벌새를 특징으로 한다. 방패에는 세 척의 배가 그려져 있는데, 이는 삼위일체와 콜럼버스가 항해했던 세 척의 배를 모두 나타낸다.
9.3. 국가
이 섬나라의 국가는 "Forged from the Love of Liberty자유의 사랑으로 단련되어영어"이다. 그 외의 국가적인 노래로는 "God Bless Our Nation우리나라를 축복하소서영어"와 "Our Nation's Dawning우리나라의 새벽영어"이 있다.
9.4. 국화와 국조

트리니다드 토바고의 국화는 차코니아꽃(Warszewiczia coccinea)이다. 이 꽃은 트리니다드 토바고의 역사를 목격한 토종 꽃이기 때문에 국화로 선정되었다. 또한 국기와 국장의 빨간색을 닮은 붉은색을 띠고 트리니다드 토바고 독립기념일 무렵에 피기 때문에 국화로 선정되기도 했다.
트리니다드 토바고의 국조는 붉은따오기와 코크리코이다. 붉은따오기는 정부가 이 새들을 보호하기 위해 마련한 카로니 새 보호구역에서 안전하게 보호받고 있다. 코크리코는 토바고섬 토종으로 숲에서 더 흔히 볼 수 있다. 벌새는 원주민들에게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어 또 다른 트리니다드 토바고의 상징으로 여겨지지만, 국조는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