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트란스니스트리아, 공식적으로 프리드네스트로비예 몰도바 공화국은 동유럽에 위치한 미승인 국가로, 국제적으로는 몰도바의 일부로 간주된다. 이 지역은 대부분 드네스트르강 동안과 몰도바-우크라이나 국경 사이의 좁고 긴 육지에 자리 잡고 있으며, 강 서안의 일부 영토도 포함한다. 수도이자 가장 큰 도시는 티라스폴이다.
트란스니스트리아의 역사는 1924년 우크라이나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 내에 수립된 몰다비아 자치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MASSR)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제2차 세계 대전 중 소련은 MASSR의 일부와 루마니아 왕국의 베사라비아 지역을 통합하여 1940년 몰다비아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MSSR)을 설립했다. 현대 트란스니스트리아의 역사는 1990년 소련의 붕괴 과정에서 시작되었는데, 당시 몰도바가 루마니아와의 통일이나 독립을 추구할 경우 소련 내에 남고자 했던 프리드네스트로비예 몰도바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이 수립되었다. 몰도바는 1991년 8월 독립을 선언했고, 곧이어 1992년 3월 양측 간의 군사 분쟁이 발발하여 그해 7월 정전으로 마무리되었다.
정전 협정의 일환으로 러시아, 몰도바, 트란스니스트리아 3자로 구성된 공동통제위원회(JCC)와 평화유지군이 창설되어 정전 위반을 감시하고 있다. 정전은 유지되고 있으나, 이 지역의 정치적 지위는 미해결 상태로 남아 있다. 트란스니스트리아는 사실상 독립한 대통령제 공화국으로, 자체 정부, 의회, 군대, 경찰, 우편 시스템, 통화(트란스니스트리아 루블), 차량 등록 제도를 갖추고 있다. 또한 헌법, 국기, 국가, 국장을 채택했다. 2017년부터는 러시아의 국기가 트란스니스트리아 국기와 동등한 법적 지위를 갖게 되었다. 트란스니스트리아 국장과 국기에는 소련 시절의 상징인 낫과 망치가 포함되어 있다.
2005년 몰도바와 우크라이나 간 협정에 따라, 우크라이나 국경을 통해 상품을 수출하려는 모든 트란스니스트리아 기업은 몰도바 당국에 등록해야 한다. 대부분의 트란스니스트리아 주민은 몰도바 시민권을 가지고 있지만, 많은 이들이 러시아, 루마니아, 또는 우크라이나 시민권도 보유하고 있다. 주요 민족은 러시아인, 몰도바인/루마니아인, 우크라이나인이다.
트란스니스트리아는 압하지야, 남오세티야와 함께 구소련 지역의 동결 분쟁 지역 중 하나이며, 이들 미승인 국가들은 서로 우호 관계를 유지하며 민주주의와 민족 권리 공동체를 형성하고 있다. 2022년 3월 유럽 평의회 의원총회는 이 지역을 러시아의 군사 점령 하에 있는 영토로 규정하는 결의안을 채택했다.
2. 국명
트란스니스트리아의 공식 명칭은 프리드네스트로비예 몰도바 공화국이며, 러시아어, 몰도바어(키릴 문자 사용), 우크라이나어가 공식 언어로 지정되어 각 언어별 명칭이 존재한다. "프리드네스트로비예"는 러시아어로 "드네스트르강변 지역"을 의미하며, 이는 드네스트르강을 기준으로 한 지리적 위치를 나타낸다. 반면, "트란스니스트리아"라는 명칭은 루마니아어에서 유래했으며 "드네스트르강 너머"를 의미한다. 이 용어는 1989년 몰도바 인민전선의 레오니다 라리가 선거 슬로건에서 처음 사용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공식 언어별 정식 명칭은 다음과 같다.
- 러시아어: Приднестровская Молдавская Республика프리드네스트롭스카야 몰답스카야 레스푸블리카러시아어 (약칭: ПМР페에메르러시아어)
- 몰도바어 (키릴 문자): Република Молдовеняскэ Нистрянэ레푸블리카 몰도베네아스커 니스트레아너몰도바어 (약칭: РМН에르메엔몰도바어)
- 우크라이나어: Придністровська Молдавська Республіка프리드니스트로우스카 몰다우스카 레스푸블리카우크라이나어 (약칭: ПМР페에메르우크라이나어)
일반적으로 사용되는 짧은 형태의 명칭은 다음과 같다.
- 러시아어: Приднестровье프리드네스트로비예러시아어
- 몰도바어: Нистрения니스트레니아몰도바어
- 우크라이나어: Придністров'я프리드니스트로비아우크라이나어
몰도바 정부 문서에서는 이 지역을 Stînga Nistrului스팅가 니스트룰루이루마니아어("드네스트르강 좌안") 또는 완전한 형태로 Unitățile Administrativ-Teritoriale din Stînga Nistrului우니터칠레 아드미니스트라티브-테리토리알레 딘 스틘가 니스트룰루이루마니아어("드네스트르강 좌안의 행정 영토 단위")로 지칭한다.
2024년 9월 4일, 트란스니스트리아 최고평의회는 지역 내에서 "트란스니스트리아"라는 용어 사용을 금지하는 법안을 통과시켰으며, 공공장소에서 해당 명칭을 사용할 경우 360 RUB의 벌금 또는 최대 15일의 구금에 처할 수 있도록 규정했다.
3. 역사
트란스니스트리아 지역의 역사는 고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민족과 세력의 영향을 받으며 복잡하게 전개되었다. 러시아 제국과 소비에트 연방 시기를 거쳐 몰도바로부터 분리 독립을 선언하고 전쟁을 치른 후, 현재까지 미승인 국가 상태로 남아 있다.
3.1. 고대 및 중세
트란스니스트리아 지역에는 고대부터 다양한 민족이 거주했다. 스키타이와 다키아인 부족들이 초기 거주민으로 알려져 있으며, 이후 고트족이 이주해왔다. 기원전 600년경에는 드네스트르강 하구(현재 우크라이나 영토)에 고대 그리스의 식민 도시인 티라스가 건설되기도 했다. 4세기에는 훈족의 침입을 받았으며, 이후 동로마 제국이 티라스 지역에 요새 도시 아스프로카스트론을 건설했다.
중세에는 동슬라브족과 유목민족인 페체네그인, 쿠만인 등이 이 지역을 통과하거나 정착했다. 10세기경에는 키예프 루스의 영향권에 속하기도 했으나, 13세기 몽골 제국의 침입으로 큰 변화를 겪었다. 14세기에는 제노바 공화국이 흑해 무역 거점을 확보하면서 이 지역에도 영향을 미쳤다. 같은 시기 몰다비아 공국이 성립되어 드네스트르강까지 영토를 확장했으나, 트란스니스트리아 지역은 주로 리투아니아 대공국의 일부였고, 이후 폴란드-리투아니아 연방의 영토로 편입되었다. 남부 일부 지역은 오스만 제국의 영향 아래 놓이기도 했다.
3.2. 러시아 제국 시대
18세기 말, 러시아 제국은 흑해 북부로 영토를 확장하는 과정에서 트란스니스트리아 지역을 차지하게 되었다. 1792년 야시 조약을 통해 오스만 제국으로부터 드네스트르강과 남부크강 사이의 영토를 획득하였고, 1793년 제2차 폴란드 분할로 폴란드-리투아니아 연방이 지배하던 북부 지역도 러시아에 편입되었다.
러시아 제국은 이 지역을 "새로운 몰다비아"(노보로시야)의 일부로 간주하고 전략적 요충지로 개발하기 시작했다. 1792년에는 알렉산드르 수보로프 장군의 지휘 아래 티라스폴 요새가 건설되었고, 이는 현대 트란스니스트리아 수도의 기원이 되었다. 러시아 정부는 이 지역의 인구 증가와 경제 발전을 위해 러시아인, 우크라이나인, 독일인, 불가리아인, 세르비아인 등 다양한 민족의 이주를 장려했다. 몰도바인 농민들에게도 토지를 분배하여 정착을 유도했다.
1812년 러시아가 베사라비아(드네스트르강 서안 지역)를 오스만 제국으로부터 획득하면서 트란스니스트리아는 국경 지대에서 내륙 지역으로 변모했다. 행정적으로는 주로 헤르손현에 속했으며, 일부는 포돌리아현에 포함되었다. 이 시기 동안 지역의 농업과 상업이 발전했으며, 민족 구성은 더욱 다양해졌다. 특히 러시아인과 우크라이나인의 비율이 높아졌고, 이는 이후 트란스니스트리아의 정체성 형성에 중요한 영향을 미쳤다.
3.3. 소비에트 연방 시대
러시아 혁명 이후 트란스니스트리아 지역은 복잡한 정치적 변화를 겪었다. 1917년 이후 우크라이나 인민공화국의 일부가 되기도 했으나, 소비에트-우크라이나 전쟁을 거쳐 1922년 우크라이ナ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우크라이나 SSR)의 영토로 확정되었다. 소비에트 연방은 이 지역의 전략적 중요성과 민족 구성을 고려하여 특별한 행정 단위를 구상하게 된다.

3.3.1. 몰다비아 자치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
1924년 10월 12일, 우크라이나 SSR 내에 몰다비아 자치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MASSR)이 설립되었다. MASSR의 설립 목적은 여러 가지가 있었는데, 첫째는 당시 루마니아 왕국 영토였던 베사라비아에 대한 소련의 영유권을 주장하고, 향후 베사라비아를 병합하기 위한 정치적 교두보를 마련하는 것이었다. 둘째는 드네스트르강 동안 지역에 거주하는 몰도바인들의 민족적 열망을 일부 수용하는 형태를 취함으로써 소비에트 체제에 대한 지지를 확보하려는 의도도 있었다.
MASSR의 초기 수도는 발타였으나, 1929년 티라스폴로 이전되었다. 영토는 현재의 트란스니스트리아 지역(약 4100 km2)과 우크라이나의 일부 지역(약 4200 km2)을 포함했다. 당시 MASSR의 민족 구성은 우크라이나인이 약 48%, 몰도바인(루마니아인)이 약 30%, 러시아인이 약 9%, 유대인이 약 8.5%를 차지했다. 몰도바인이 다수를 점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몰다비아" 자치 공화국으로 명명된 것은 베사라비아 병합을 염두에 둔 정치적 고려 때문이었다.
MASSR 시기에는 몰도바어의 지위 향상과 라틴 문자 사용을 장려하는 정책이 초기에 시행되기도 했으나, 1930년대 후반 스탈린 체제가 강화되면서 키릴 문자 사용이 강제되고 러시아화 정책이 추진되었다. 산업화도 일부 진행되었으나, 농업 중심의 경제 구조는 크게 변하지 않았다. 이 시기 MASSR은 베사라비아의 공산주의 운동을 지원하는 창구 역할도 수행했다.
3.3.2. 제2차 세계 대전과 몰다비아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
1939년 독소 불가침 조약의 비밀 의정서에 따라 베사라비아는 소련의 영향권으로 인정되었다. 1940년 6월 28일, 소련은 루마니아 왕국에 최후통첩을 보내 베사라비아와 북부코비나를 할양받았다. 1940년 8월 2일, 소련 최고회의는 베사라비아의 대부분 지역과 MASSR의 서부 6개 라욘(현재의 트란스니스트리아 대부분)을 통합하여 몰다비아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MSSR)을 창설했다. MASSR의 나머지 동부 지역은 우크라이나 SSR에 편입되었다.
1941년 나치 독일이 바르바로사 작전을 개시하며 소련을 침공하자, 추축국에 가담한 루마니아 왕국은 베사라비아와 트란스니스트리아 지역을 점령했다. 루마니아는 드네스트르강과 남부크강 사이의 지역(오데사 포함)을 트란스니스트리아 총독부로 명명하고 통치했다. 이 기간 동안 점령 당국은 로마자화 정책을 추진했으며, 유대인과 로마인에 대한 대규모 박해와 학살(홀로코스트)이 자행되어 약 15만에서 25만 명의 유대인이 희생되었다.
1944년 소련군이 야시-키시뇨프 공세를 통해 이 지역을 탈환하면서 루마니아의 점령은 끝났다. 전쟁 이후 트란스니스트리아는 다시 MSSR의 일부로 편입되었다. 소련 당국은 루마니아 점령 시기 협력자들을 처벌하고, 부농 계층에 대한 탄압과 카자흐 SSR 및 시베리아로의 강제 이주를 단행했다. 1949년 7월 6-7일에는 "남부 작전"으로 명명된 대규모 추방 작전으로 11,342가구가 넘는 사람들이 강제 이주되었다. 전후 MSSR에서는 산업화와 러시아화 정책이 강력하게 추진되었으며, 특히 트란스니스트리아 지역에는 중공업 시설이 집중적으로 건설되어 몰도바 전체 GDP의 약 40%와 전력의 90%를 생산하는 핵심 공업 지대로 발전했다. 이는 이후 트란스니스트리아와 드네스트르강 서안 지역 간의 경제적 격차와 정체성 차이를 심화시키는 요인이 되었다.
3.4. 분리 독립 과정
1980년대 후반, 미하일 고르바초프의 페레스트로이카와 글라스노스트 정책은 소련 전역에 정치적 자유화와 민족주의 운동을 촉발했다. 몰다비아 SSR에서는 루마니아와의 역사적·문화적 유대감을 강조하는 몰도바 민족주의가 급부상했다. 1988년 결성된 몰도바 인민전선(PFM)은 몰도바어의 유일 공식 언어화, 라틴 문자로의 전환, 몰도바인과 루마니아인의 민족적 정체성 공유 인정 등을 요구했다. 일부 급진파는 러시아인, 우크라이나인 등 소수 민족에 대한 배타적이고 쇼비니즘적인 주장을 펼치기도 했다.
1989년 8월 31일, 몰다비아 SSR 최고회의는 몰도바어를 공식 언어로 지정하고 라틴 문자 사용을 결정했다. 러시아어는 제2언어로서의 지위만 유지하게 되었다. 이러한 급격한 문화적 변화와 PFM의 민족주의적 수사는 트란스니스트리아 지역의 슬라브계 주민들(주로 러시아인과 우크라이나인)과 가가우즈인 등 소수 민족에게 큰 불안감을 안겨주었다. 이들은 러시아어가 민족 간 소통 언어로서의 지위를 상실하고, 몰도바가 루마니아와 통일될 가능성에 대해 우려했다. 이에 대응하여 슬라브계 주민들은 '예딘스트보'(단결) 운동을 조직하여 러시아어와 몰도바어의 동등한 지위를 요구했다.
트란스니스트리아 지역은 몰도바의 다른 지역과 민족 및 언어 구성에서 상당한 차이를 보였다. 러시아인과 우크라이나인의 비율이 높았고, 몰도바인을 포함한 다수 주민이 러시아어를 모국어로 사용했다. 1990년 초 몰다비아 SSR 첫 자유 총선거에서 PFM이 승리하자, 트란스니스트리아 지역의 불안감은 더욱 고조되었다. 1990년 4월, 민족주의 시위대가 러시아계 의원들을 공격하는 사건이 발생했으나 몰도바 경찰은 소극적으로 대처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1990년 9월 2일, 트란스니스트리아 지역 대표자들은 임시 총회를 열어 몰도바로부터의 분리와 소련 잔류를 목표로 프리드네스트로비예 몰도바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PMSSR) 수립을 선포했다. 이는 1989년부터 시작된 일련의 주민투표 결과를 근거로 한 것이었다. 소련 중앙 정부의 고르바초프 대통령은 1990년 12월 22일 PMSSR 선포를 무효화했지만, 실질적인 조치는 취하지 않았고, PMSSR 당국은 점차 지역에 대한 통제력을 강화해 나갔다. 1991년 8월 소련에서 8월 쿠데타가 실패로 돌아가자, PMSSR은 소련으로부터의 독립을 선언했고, 1991년 11월 5일 사회주의 이념을 포기하고 국명을 프리드네스트로비예 몰도바 공화국으로 변경했다.
3.5. 트란스니스트리아 전쟁

트란스니스트리아의 분리 독립 선언 이후 몰도바와의 긴장은 군사적 충돌로 이어졌다. 1990년 11월 두버사리에서 소규모 무력 충돌이 발생한 것을 시작으로, 1992년 3월 2일 몰도바가 유엔에 가입하자 본격적인 트란스니스트리아 전쟁이 발발했다.
전쟁의 주요 원인은 몰도바의 민족주의 정책과 트란스니스트리아 지역의 분리 요구, 그리고 이 지역에 주둔하던 구 소련 제14군의 역할이었다. 트란스니스트리아 측에는 러시아에서 온 자원병과 코사크 병력이 합류했다. 몰도바는 1992년 4월 국방부를 창설하고 구 소련군 장비의 일부를 인수받아 군사 작전을 전개했다.
주요 교전은 두버사리, 벤데르, 코치에리 등 드네스트르강 연안의 전략적 요충지에서 벌어졌다. 전쟁 초기에는 몰도바군이 일부 지역에서 우위를 점하는 듯했으나, 트란스니스트리아군은 제14군의 지원(일부 병력과 장비, 물자 등)을 받아 효과적으로 방어하고 반격에 나섰다. 특히 벤데르 전투는 전쟁의 향방을 가르는 중요한 전투 중 하나였다.
러시아는 공식적으로 중립을 표방했으나, 제14군은 사실상 트란스니스트리아 측을 지원했다. 전쟁 막바지에는 제14군이 몰도바군에 직접 포격을 가하기도 했다. 이 전쟁으로 약 700명에서 1,000명 사이의 사망자가 발생한 것으로 추정된다.
전쟁은 1992년 7월 21일 러시아, 몰도바, 트란스니스트리아 대표 간의 정전 협정 체결로 종식되었다. 정전 협정에 따라 공동통제위원회(JCC)가 구성되었고, 러시아군을 주축으로 한 평화유지군이 비무장 지대에 파견되었다.
전쟁의 결과로 트란스니스트리아는 사실상 몰도바로부터 독립적인 지위를 확보하게 되었으나, 국제 사회의 승인을 받지는 못했다. 몰도바는 트란스니스트리아 지역에 대한 실질적인 통제권을 상실했다. 이 전쟁은 이 지역에 장단기적으로 깊은 영향을 미쳤으며, "동결 분쟁"의 대표적인 사례로 남아 있다. 전쟁은 민족 간 불신을 심화시켰고, 경제적 어려움을 가중시켰으며, 러시아의 영향력 확대를 초래했다.
3.6. 전쟁 이후
트란스니스트리아 전쟁 이후, 이 지역은 사실상 독립 상태를 유지하고 있으나 국제적으로는 미승인 국가로 남아 있다. 정치적으로는 러시아의 강력한 지원을 받고 있으며, 경제적으로도 러시아에 대한 의존도가 높다. 국제 사회는 유럽 안보 협력 기구(OSCE)를 중심으로 중재 노력을 기울여 왔으나, 몰도바와 트란스니스트리아 간의 입장 차이로 인해 최종적인 해결에는 이르지 못하고 있다.

1997년 5월 8일, 페트루 루친스키 몰도바 대통령과 이고르 스미르노프 트란스니스트리아 대통령은 OSCE의 중재 하에 "몰도바 공화국과 트란스니스트리아 간 관계 정상화 원칙에 관한 각서"(프리마코프 각서)에 서명했다. 이 각서는 법적, 국가적 관계 수립을 지지했지만, 양측 정부는 그 조항들을 다르게 해석했다.
2003년 11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보좌관이었던 드미트리 코작은 몰도바를 비대칭적 연방 국가로 전환하는 내용의 "코작 각서"를 제안했다. 이 각서는 몰도바가 연방의 다수, 트란스니스트리아가 소수 구성원이 되지만, 트란스니스트리아에게 향후 헌법 개정에 대한 거부권을 부여하는 내용을 담고 있었다. 블라디미르 보로닌 몰도바 대통령은 처음에는 이 계획을 지지했으나, 국내의 반발과 OSCE 및 미국의 국제적 압력, 그리고 러시아가 트란스니스트리아의 요구대로 향후 20년간 러시아군 주둔을 보장하는 내용을 지지하자 서명을 거부했다.
2005년에는 트란스니스트리아, 몰도바, 우크라이나, 러시아, OSCE와 더불어 미국과 유럽 연합(EU)이 외부 참관국으로 참여하는 "5+2 형식" 협상이 시작되었으나, 수년간 뚜렷한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중단되었다. 2011년 2월 빈에서 협상이 재개되어 2018년까지 일부 사소한 합의가 이루어지기도 했지만, 근본적인 문제 해결에는 이르지 못했다. 2023년까지 몰도바는 외교 논의에서 5+2 형식이란 용어 사용을 중단했다.
3.6.1. 2006년 독립 주민투표
2006년 9월 17일, 트란스니스트리아 정부는 독립 유지 및 향후 러시아 연방으로의 편입 가능성을 묻는 주민투표를 실시했다. 투표 결과, 유권자의 97.2%가 몰도바로부터의 독립 유지 및 러시아와의 자유로운 연합(사실상 편입)에 찬성했다고 발표되었다. 투표율은 78.6%로 보고되었다.
이 주민투표는 트란스니스트리아가 몬테네그로의 독립 선언에 영향을 받아 추진한 것으로, 독립 의지를 재확인하고 러시아와의 관계 강화를 모색하려는 의도가 담겨 있었다. 트란스니스트리아 당국은 이 투표가 주민들의 민주적 의사를 반영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몰도바 정부, 유럽 연합, 미국, OSCE 등 국제 사회는 이 주민투표를 인정하지 않았다. 이들은 주민투표가 국제법적 기준에 미치지 못하고, 자유롭고 공정한 환경에서 치러지지 않았으며, 분쟁 해결 노력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몰도바 헬싱키 인권위원회는 투표율이 부풀려졌고, 투표 과정에서 협박과 강제가 있었다고 주장했다.
주민투표 결과에도 불구하고 트란스니스트리아의 국제적 지위에는 변화가 없었으며, 분쟁 해결을 위한 협상은 교착 상태를 벗어나지 못했다. 이 사건은 트란스니스트리아 문제의 복잡성과 러시아의 영향력을 다시 한번 드러내는 계기가 되었다.
3.6.2.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의 영향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트란스니스트리아의 정치, 경제, 안보 및 국제 관계에 중대한 영향을 미쳤다. 침공 초기부터 트란스니스트리아가 분쟁에 휘말릴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었다. 우크라이나는 트란스니스트리아와의 국경을 봉쇄했으며, 이는 이전까지 트란스니스트리아의 주요 교역로였던 우크라이나를 통한 물품 반입을 차단하는 결과를 낳았다. 이로 인해 트란스니스트리아는 수입품 통관을 전적으로 몰도바에 의존하게 되었다.
2022년 4월 25일, 트란스니스트리아 수도 티라스폴의 트란스니스트리아 국가보안부 청사 인근에서 여러 차례 폭발이 발생했으며, 다음 날에는 우크라이나 국경 근처 그리고리오폴 송신소의 러시아 라디오 방송용 안테나 2개가 폭파되는 사건이 발생했다. 트란스니스트리아 당국은 이를 테러 공격으로 규정했으나, 우크라이나와 몰도바는 러시아나 트란스니스트리아 내부 세력에 의한 자작극일 가능성을 제기하며, 지역 불안정을 조장하려는 도발 행위라고 비판했다. 러시아 중앙군관구 부사령관은 우크라이나 남부 장악 시 트란스니스트리아로 향하는 육로를 확보할 수 있다고 발언하여 긴장을 고조시켰다.
경제적으로 트란스니스트리아는 우크라이나와의 연결고리가 끊어지면서 몰도바와 EU 시장에 대한 의존도가 더욱 심화되었다. 이는 역설적으로 몰도바와의 대화와 협력을 강화하는 계기가 되기도 했으며, 우크라이나 난민 지원 등의 협력도 이루어졌다. 그러나 2024년 몰도바 정부가 트란스니스트리아 기업에 대해 몰도바와 동일한 세금 및 관세 규정을 적용하기로 하면서 양측 간 경제적 긴장이 다시 높아졌다. 트란스니스트리아 정치인들은 이러한 상황에 대해 점점 더 불안감을 느끼고 있으며, 2024년 2월 28일에는 트란스니스트리아 최고평의회가 2006년 이후 처음으로 소집되어 러시아에 경제 지원을 요청하고 몰도바가 이 지역에서 집단살해를 자행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보호" 요청과 일부의 국민투표 요구는 러시아가 2022년 우크라이나 점령지 합병과 유사하게 이 지역을 병합하려 할 수 있다는 관측을 낳았다.
2025년 1월 1일, 우크라이나를 경유하는 러시아산 가스 공급 계약이 종료되면서 트란스니스트리아로의 가스 공급이 중단되어 심각한 에너지 위기가 발생했다. 트란스니스트리아 당국은 몰도바로부터 시장 가격으로 가스를 구매하는 것을 거부했으며, 러시아도 대체 경로를 통한 공급을 재개하지 않고 있다. 이로 인해 일반 가정 난방이 중단되고 산업 시설 가동에도 차질이 빚어지고 있다.
4. 지리

트란스니스트리아는 내륙국으로, 서쪽으로는 몰도바 본토(베사라비아 지역, 국경 길이 411 km)와 접하고, 동쪽으로는 우크라이나(국경 길이 405 km)와 국경을 맞대고 있다. 국토는 드네스트르강을 따라 남북으로 길게 뻗은 좁은 계곡 형태를 띠고 있으며, 이 강은 몰도바와의 사실상 국경 대부분을 형성한다. 총 면적은 4163 km2이다.
트란스니스트리아가 통제하는 영토는 대부분 드네스트르강 동쪽(왼쪽) 유역과 일치하지만, 전부는 아니다. 10개의 시와 읍, 69개의 코뮌(총 147개 지역)을 포함한다. 동쪽 유역의 6개 코뮌(코치에리, 몰로바타 노워, 코르조바, 피리타, 코슈니차, 도로츠카이아)은 1992년 트란스니스트리아 전쟁 이후 몰도바 정부의 통제 하에 남아 있으며, 두버사리구의 일부를 이룬다. 이들 지역은 트란스니스트리아가 통제하는 두버사리시의 북쪽과 남쪽에 위치한다. 몰로바타 노워 코뮌의 로기 마을도 트란스니스트리아가 통제한다.
서쪽 유역, 즉 베사라비아 지역에서는 벤데르(티기나)시와 그 동쪽 및 남동쪽, 남쪽에 위치한 4개 코뮌(6개 마을 포함: 프로테아가일로프카, 기스카, 키츠카니, 크레멘추그)이 트란스니스트리아의 통제 하에 있다.
몰도바가 통제하는 동쪽 유역의 지역, 로기 마을, 그리고 트란스니스트리아가 통제하는 동쪽 유역의 두버사리시는 서쪽 유역에서 트란스니스트리아가 통제하는 6개 마을 및 1개 시, 그리고 몰도바가 통제하는 서쪽 유역의 두 마을(바르니차, 코판카)과 함께 안보 구역을 형성한다. 이 구역 내의 안보 상황은 공동통제위원회의 결정에 따른다.
트란스니스트리아의 주요 교통로는 티라스폴에서 두버사리를 거쳐 르브니차로 이어지는 M4 고속도로이다. 이 고속도로는 전적으로 트란스니스트리아가 통제한다. 두버사리 북쪽과 남쪽에서는 도로츠카이아, 코치에리, 로기, 바실리예프카 마을 등 몰도바가 통제하는 토지 회랑을 통과하며, 바실리예프카는 도로 동쪽에 완전히 위치한다. 이 도로는 해당 지역에서 몰도바와 트란스니스트리아 간의 사실상 국경이다. 이 도로 동쪽의 농경지에 주민들이 접근하는 것을 트란스니스트리아가 막으면서 여러 차례 분쟁이 발생했다.
트란스니스트리아 주민들은 일반적으로 트란스니스트리아 통제 지역과 인접한 몰도바 통제 지역 및 우크라이나로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다. 국제 항공 여행객들은 몰도바 수도 키시너우 공항이나 우크라이나의 오데사 국제공항을 이용한다.
기후는 아열대성 특징을 지닌 습윤 대륙성 기후이다. 여름은 따뜻하고 겨울은 시원하거나 춥다. 강수량은 연중 일정하지만 여름철에 약간 증가하는 경향이 있다. 천연자원은 풍부하지 않으나, 건축 자재로 사용되는 석회암, 모래, 자갈 등이 채굴된다.
5. 정치
트란스니스트리아는 자체적인 정부, 의회, 사법부, 군대, 경찰, 통화 시스템을 갖춘 사실상의 독립 국가이지만, 국제적으로는 몰도바의 일부로 간주된다. 정치 체제는 강력한 대통령 중심의 준대통령제 공화국이며, 다당제를 채택하고 있으나 실제로는 특정 정당과 엘리트 그룹의 영향력이 크다. 선거는 정기적으로 실시되지만, 국제 사회로부터 자유롭고 공정성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기도 한다.

5.1. 정부 구조
트란스니스트리아의 정부 구조는 권력 분립 원칙에 기초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대통령에게 권력이 집중된 형태를 띤다.
- 행정부: 대통령이 국가원수이자 행정부 수반이다. 대통령은 국민 직접 선거를 통해 선출되며 임기는 5년이고, 연속 2회까지만 재임할 수 있다. 대통령은 총리와 내각을 임명하고, 외교 및 국방 정책을 총괄하며, 법률안 거부권을 행사한다. 현재 대통령은 바딤 크라스노셀스키이며, 총리는 알렉산드르 로젠베르크이다.
- 입법부: 단원제 의회인 트란스니스트리아 최고평의회(Supreme Council)가 입법권을 행사한다. 의원은 총 43명(2020년 선거 이후 33명으로 축소)으로, 소선거구제를 통해 5년 임기로 선출된다. 최고평의회는 법률 제정, 예산 심의 및 승인, 정부 감독 등의 기능을 수행한다. 현재 의장은 알렉산더 코르슈노프이다. 주요 정당으로는 친기업 성향의 갱신당이 다수당을 차지하고 있다.
- 사법부: 사법 체계는 헌법재판소, 최고재판소, 중재재판소 및 하급 법원들로 구성된다. 법관은 대통령이 임명하며, 최고평의회의 동의를 거친다. 그러나 사법부의 독립성은 정치적 영향력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는 비판이 있다.
5.2. 국제적 지위
트란스니스트리아는 1990년 몰도바로부터 독립을 선언했으나, 현재까지 유엔 회원국 중 어느 나라로부터도 국가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오직 압하지야, 남오세티야, 아르차흐 공화국(2023년 해체 이전) 등 다른 미승인 국가들만이 트란스니스트리아의 독립을 상호 인정하고 있다.
국제 사회는 트란스니스트리아를 몰도바의 영토로 간주한다. 몰도바 정부는 2005년 7월 22일 "드네스트르강 좌안 지역의 특별 법적 지위에 관한 기본 조항법"을 통과시켜, 트란스니스트리아(벤데르 및 몰도바 통제 하의 영토 제외)를 몰도바 공화국 내 "드네스트르강 좌안 행정 영토 단위"로 규정하고 광범위한 자치권을 부여하려 했으나, 트란스니스트리아 측은 이를 거부했다.
트란스니스트리아 주민 다수는 몰도바 시민권을 보유하고 있으며, 상당수는 러시아, 우크라이나, 루마니아 등의 복수 국적을 가지고 있다. 이는 여행의 편의성 및 경제적 기회 확보 등 현실적인 이유 때문이다.
2022년 3월 15일, 유럽 평의회 의원총회는 트란스니스트리아를 러시아의 군사 점령 하에 있는 몰도바 영토로 규정하는 결의안을 채택했다. 이는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트란스니스트리아의 지정학적 상황에 대한 국제 사회의 인식을 반영하는 것이다.
5.3. 대외 관계

트란스니스트리아의 대외 관계는 미승인 국가로서의 지위로 인해 극히 제한적이다. 주요 관계국은 러시아, 몰도바, 우크라이나이며, 특히 러시아와의 관계가 가장 중요하다.
- 러시아: 트란스니스트리아의 가장 강력한 정치적, 경제적, 군사적 후원국이다. 러시아는 트란스니스트리아에 평화유지군을 주둔시키고 있으며, 경제 지원과 함께 주민들에게 러시아 시민권을 발급하는 등 다방면으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트란스니스트리아는 여러 차례 러시아 연방으로의 편입을 희망하는 의사를 표명했으나, 러시아는 공식적으로 이를 수용하지 않고 있다.
- 몰도바: 법적으로 트란스니스트리아를 자국 영토로 간주하며, 분쟁 해결을 위한 협상을 지속하고 있다. 양측은 경제적으로는 상호 의존적인 부분이 있으나, 정치적으로는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다.
- 우크라이나: 지리적으로 국경을 맞대고 있어 중요한 관계국이었으나,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우크라이나는 트란스니스트리아와의 국경을 봉쇄하고 경계 태세를 강화하고 있다. 과거에는 중재자 역할을 시도하기도 했으나, 현재는 러시아의 영향권 확장을 우려하며 비판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다. 2024년 우크라이나 보안국은 비탈리 이그나티예프 트란스니스트리아 외무장관을 우크라이나의 영토 보전 침해 및 협력 혐의로 수배자 명단에 올렸다.
- 기타 미승인 국가들과의 연대: 트란스니스트리아는 압하지야, 남오세티야 등 다른 구소련 지역의 미승인 국가들과 함께 민주주의와 민족 권리 공동체를 결성하여 상호 인정하고 협력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니나 슈탄스키가 2012년부터 2015년까지 외무장관을 역임했으며, 이후 비탈리 이그나티예프가 그 뒤를 이었다.
5.3.1. 국경 관세 분쟁
트란스니스트리아는 몰도바와 우크라이나 사이에 위치하여 대외 무역에서 이들 국가와의 국경 통관 및 관세 문제가 지속적인 갈등 요인이 되어 왔다.
2006년 3월 3일, 우크라이나는 트란스니스트리아와의 국경에 새로운 통관 규정을 도입했다. 우크라이나는 2005년 12월 30일 몰도바와 합의한 공동 관세 의정서의 이행의 일환으로, 몰도바 세관 당국이 처리한 서류를 갖춘 상품에 한해서만 트란스니스트리아로부터의 수입을 허용한다고 선언했다. 트란스니스트리아와 러시아는 이를 "경제 봉쇄"라고 비난했다. 미국, 유럽 연합, OSCE는 우크라이나의 조치를 지지했지만, 러시아는 이를 정치적 압력 수단으로 간주했다. 이에 트란스니스트리아는 3월 4일 자국 국경에서 몰도바와 우크라이나의 수송을 차단하는 것으로 대응했으나, 2주 후 해제했다. 그러나 몰도바와 우크라이나의 규제는 지속되었고, 이는 양측 간의 지위 해결 협상 진전에 장애가 되었다. 규제 도입 후 몇 달 동안 트란스니스트리아의 수출은 급감했으며, 트란스니스트리아는 "인도주의적 재앙"을 선포했지만 몰도바는 이를 "의도적인 허위 정보"라고 일축했다. 러시아는 이에 대응하여 인도적 지원 물품을 보냈다.
2014년 몰도바가 EU와 연합 협정을 체결하면서, 법적으로 몰도바의 일부로 간주되는 트란스니스트리아도 EU로의 무관세 수출 혜택을 누리게 되었다. 이로 인해 트란스니스트리아의 대EU 수출이 증가하는 등 무역 구조에 변화가 생겼다.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우크라이나가 트란스니스트리아와의 국경을 봉쇄하면서, 트란스니스트리아의 모든 수출입품은 몰도바를 경유해야만 하게 되었다. 2024년 몰도바 정부는 자국과 EU 간의 자유무역협정에 따라 트란스니스트리아의 수출입품도 몰도바와 동일하게 취급하기로 결정하고, 트란스니스트리아 수입업자들이 몰도바에 등록하고 수입품에 대한 세금을 몰도바에 납부하도록 요구하면서 새로운 경제적 갈등이 야기되었다.
5.4. 법률
트란스니스트리아의 법체계는 소련의 법률 전통에 기반을 두고 있으며, 자체적으로 제정한 헌법을 최고 법규로 한다. 헌법은 권력 분립, 기본권 보장 등을 명시하고 있으나, 실제 법 적용에 있어서는 행정부, 특히 대통령의 영향력이 강하게 작용한다는 평가가 있다.
주요 법률 분야는 다음과 같이 분류될 수 있다:
- 헌법 및 기본 법질서 관련법: 헌법, 최고평의회, 중재법원, 헌법재판소 등 국가기관의 설립 및 운영, 판사, 최고평의회 의원, 검사 등 공직자의 지위, 인권 위원, 특별 법적 제도, 시민권법 등을 규정한다. 헌법 개정 절차도 포함된다. (헌법 관련 법률 28개, 기본 법질서 및 국가기관 관련 법률 81개)
- 예산, 재정, 경제, 조세 관련법: 국가 예산 편성 및 집행, 재정 정책, 경제 활동 규제, 조세 제도 등을 다룬다. (55개 법률)
- 사법 제도 및 절차법: 법원 조직, 민사소송, 형사소송, 행정소송 등 사법 절차 전반을 규정한다. (13개 법률)
- 형법, 관세법, 행정법: 범죄의 종류와 처벌, 국경 통관 및 관세, 행정 행위 및 구제 절차 등을 다룬다. (12개 법률)
- 군사 및 국방 관련법: 군 조직, 병역 의무, 국방 정책 등을 규정한다. (16개 법률)
- 민법, 주택법, 가족법: 재산 관계, 계약, 불법행위, 주택 소유 및 임대차, 혼인, 이혼, 상속 등 시민 생활과 관련된 법률 관계를 다룬다. (28개 법률)
- 보건 및 사회보장 관련법: 의료 서비스, 전염병 예방, 연금, 실업 보험 등 국민의 건강과 사회적 안전망을 규정한다. (49개 법률)
- 농업 및 환경 관련법: 농업 생산, 토지 이용, 환경 보호 등을 다룬다. (28개 법률)
- 산업, 무역, 민영화, 건설, 운송, 에너지, 통신 관련법: 주요 산업 활동, 대외 무역, 국유 재산 민영화, 건설 규제, 교통 및 물류, 에너지 공급, 정보통신 서비스 등을 규정한다. (42개 법률)
- 교육, 문화, 스포츠, 청소년 정책, 언론, 시민의 정치적 권리 및 자유 실현 관련법: 교육 제도, 문화 활동 지원, 스포츠 진흥, 청소년 정책, 언론의 자유와 책임, 집회 및 결사의 자유 등 시민의 기본권 실현과 관련된 법률을 포함한다. (43개 법률)
- 정부 프로그램 및 정부 목표 프로그램 관련법: 특정 정책 목표 달성을 위한 정부 주도 프로그램의 법적 근거를 마련한다. (20개 법률)
미승인 국가로서 국제법적 지위가 불안정하여, 외국과의 법적 분쟁 해결이나 국제 협약 이행에 한계가 있다.
6. 군사
트란스니스트리아는 자체 군사력을 보유하고 있으며, 이 지역에는 러시아 연방군도 주둔하고 있어 군사적으로 복잡한 상황을 형성하고 있다.

6.1. 트란스니스트리아군
트란스니스트리아군은 1991년 9월 6일 창설되었으며, 1992년 트란스니스트리아 전쟁에 참전하여 몰도바군과 교전했다. 2007년 기준으로 병력은 약 4,500명에서 7,500명 사이로 추정되며, 예비군은 약 15,000명에서 25,000명에 달한다. 군은 티라스폴, 벤데르, 르브니차, 두버사리에 주둔하는 4개의 차량화 보병여단을 중심으로 편성되어 있다.
주요 장비로는 약 18대의 전차(주로 T-64), 107대의 장갑차(APC), 73문의 야포, 46기의 대공포 설비, 173기의 대전차무기 등을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공군은 Mi-8T 1기와 Mi-24 헬리콥터 1기를 운용하고 있으며, 과거에는 An-26, An-2, Yak-52 등의 고정익기와 Mi-2, 추가적인 Mi-8T 및 Mi-24 헬리콥터를 운용한 바 있다. 징병제를 시행하고 있으며, 군사 작전 능력은 제한적이지만 러시아의 지원을 받고 있다.
6.2. 러시아군 주둔

트란스니스트리아에는 러시아 연방군 작전집단(OGRF)이 주둔하고 있다. 이는 1992년 정전 협정에 따라 파견된 평화유지군의 일부와, 구 소련 제14군의 잔여 병력으로 구성된다. 제14군은 소련 붕괴 후 이 지역에 주둔하며 트란스니스트리아 전쟁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 1995년 4월 제14군은 OGRF로 개편되었으며, 2010년대에는 2개 대대, 약 1,500명 이하의 병력으로 축소되었다.
1994년 10월 21일, 러시아와 몰도바는 3년 내 러시아군 철수에 합의했으나, 러시아 국가두마의 비준 거부로 이행되지 않았다. 1999년 OSCE 이스탄불 정상회의에서 러시아는 2002년 말까지 트란스니스트리아에서 중화기를 철수하기로 약속했으나, 이 역시 완전히 이행되지 않았다. 러시아는 현재 주둔 병력이 1992년 정전 협정에 따른 합법적인 평화유지군이며, 분쟁이 완전히 해결될 때까지 주둔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반면 몰도바는 평화유지군으로 승인된 병력은 500명 미만이라고 주장하며, 이들을 불법 주둔 외국군으로 간주하고 철수를 요구하고 있다. 2015년부터 몰도바는 과도한 러시아 병력의 자국 공항 이용을 막고 추방하기 시작했다.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유럽 평의회 의원총회는 트란스니스트리아를 러시아의 군사 점령지로 규정했다. 2016년 6월 트란스니스트리아는 자국 내 러시아군 평화유지 임무를 비판하거나 "거짓"으로 해석하여 제시하는 행위를 처벌하는 법을 시행했다.
6.3. 무기 통제 및 군축 문제
트란스니스트리아 지역, 특히 콜바스나에는 구소련 시절부터 막대한 양의 무기와 탄약이 보관되어 있다. 이 탄약고는 동유럽 최대 규모 중 하나로 알려져 있으며, 약 2만 톤의 탄약이 저장된 것으로 추정된다. 이는 심각한 안보 위협이자 환경 재앙의 잠재적 원인으로 지적되어 왔다.
소련 붕괴 후, 이 무기고의 통제권과 처리 문제는 국제적인 관심사가 되었다. 2000년대 초반, 러시아는 유럽 재래식무기 감축조약(CFE)에 따라 일부 무기와 탄약을 철수하거나 현지에서 파괴했다. 2000년부터 2003년까지 OSCE 임무단은 총 42,000톤의 탄약 중 약 2만 톤(48%)과 상당량의 군사 장비가 철수된 것을 확인했다. 그러나 2004년 3월 이후 철수 작업은 중단되었으며, 여전히 많은 양의 탄약이 남아있다.
트란스니스트리아 당국이 이 무기를 불법적으로 거래하거나 분쟁 지역으로 유출할 수 있다는 의혹이 꾸준히 제기되어 왔다. 트란스니스트리아 당국은 무기 제조 및 수출 관여를 부인하고 있다. OSCE와 유럽 연합 관계자들은 2005년 트란스니스트리아가 무기나 핵물질을 밀매했다는 증거가 없다고 밝혔으며, 많은 경고는 몰도바 정부가 트란스니스트리아에 압력을 가하려는 시도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언급했다. 2007년 유엔 전문가들은 과거 무기 불법 생산 및 밀매에 대한 증거가 과장되었을 수 있으나, 투명성 부족과 국제 감시단에 대한 완전한 조사 거부가 부정적인 인식을 강화했다고 지적했다.
2010년 우크라이나의 트란스니스트리아 특사는 당시 우크라이나-몰도바 국경의 트란스니스트리아 구간을 통한 무기나 마약 밀매는 없었다고 밝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콜바스나 탄약고의 존재와 그 관리 문제는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과제로 남아 있으며, 국제 사회는 러시아와 트란스니스트리아 당국에 투명한 처리와 완전한 철수를 요구하고 있다.
7. 행정 구역

트란스니스트리아는 5개의 구(라욘)와 2개의 시(수도 티라스폴과 벤데르)로 구성되어 있다. 벤데르시는 지리적으로 드네스트르강 서안에 위치하며 몰도바 중앙 당국이 정의한 트란스니스트리아 영토 단위에 속하지 않지만, 트란스니스트리아 당국이 통제하며 자국의 행정 조직 일부로 간주한다. 각 구는 도시와 코뮌으로 더 세분화된다. 다음은 북쪽에서 남쪽 순으로 나열한 행정 구역이다.
명칭 | 중심지 | 면적 (km²) | 인구 (2015년) | 민족 구성 (2004년) |
---|---|---|---|---|
카멘카구 (Camenca카멘카루마니아어, Каменка카멘카몰도바어) | 카멘카 | 436 km2 | 21,000 | 47.82% 몰도바인, 42.55% 우크라이나인, 6.89% 러시아인, 2.74% 기타 |
르브니차구 (Rîbnița르브니차루마니아어, Рыбница르브니차몰도바어) | 르브니차 | 850 km2 | 69,000 | 29.90% 몰도바인, 45.41% 우크라이나인, 17.22% 러시아인, 7.47% 기타 |
두버사리구 (Dubăsari두버사리루마니아어, Дубэсарь두버사르몰도바어) | 두버사리 | 381 km2 | 31,000 | 50.15% 몰도바인, 28.29% 우크라이나인, 19.03% 러시아인, 2.53% 기타 |
그리고리오폴구 (Grigoriopol그리고리오폴루마니아어, Григориопол그리고리오폴몰도바어) | 그리고리오폴 | 822 km2 | 40,000 | 64.83% 몰도바인, 15.28% 우크라이나인, 17.36% 러시아인, 2.26% 기타 |
슬로보지아구 (Slobozia슬로보지아루마니아어, Слобозия슬로보지아몰도바어) | 슬로보지아 | 873 km2 | 84,000 | 41.51% 몰도바인, 21.71% 우크라이나인, 26.51% 러시아인, 10.27% 기타 |
티라스폴시 (Tiraspol티라스폴루마니아어, Тираспол티라스폴몰도바어) | 티라스폴 | 205 km2 | 129,000 | 18.41% 몰도바인, 32.31% 우크라이나인, 41.44% 러시아인, 7.82% 기타 |
벤데르시 (Tighina티기나루마니아어, Тигина/Бендер티기나/벤데르몰도바어) | 벤데르 | 97 km2 | 91,000 | 25.03% 몰도바인, 17.98% 우크라이나인, 43.35% 러시아인, 13.64% 기타 |
8. 경제
트란스니스트리아는 혼합 경제 체제를 가지고 있으며, 1990년대 후반 대규모 민영화 과정을 거쳐 대부분의 기업이 민간 소유로 전환되었다. 경제는 중공업(철강 생산), 전력 생산, 제조업(섬유 생산)을 기반으로 하며, 이들 산업이 총 산업 생산량의 약 80%를 차지한다. 자체 중앙은행인 트란스니스트리아 공화국 은행을 통해 국가 통화인 트란스니스트리아 루블을 발행하며, 이는 트란스니스트리아 내에서만 자유 변동 환율로 환전 가능하다.


8.1. 경제사 및 거시 경제
소련 시절, 트란스니스트리아는 고도로 산업화되어 1990년에는 몰도바 전체 인구의 17%에 불과했음에도 불구하고 몰도바 GDP의 40%와 전력의 90%를 담당했다. 소련 붕괴 후 초기에는 레오니트 브레즈네프 시대와 유사한 계획 경제로의 복귀를 시도했으나, 몇 년 후 시장 경제 체제로 전환했다.
트란스니스트리아 정부에 따르면, 2007년 GDP는 67억 8900만 루블(약 7.99 억 USD)이었고, 1인당 GDP는 약 1500 USD였다. GDP는 11.1% 증가했고 물가상승률은 19.3%였으며, 1인당 GDP는 2140 USD로 당시 몰도바의 1인당 GDP 2040 USD보다 높았다. 2007년 정부 예산은 2.46 억 USD였고, 약 1.00 억 USD의 적자가 예상되었으며 정부는 이를 민영화 수입으로 충당할 계획이었다. 2008년 예산은 3.31 억 USD였고, 약 8000.00 만 USD의 적자가 예상되었다.
2004년 기준 트란스니스트리아의 부채는 12.00 억 USD(이 중 3분의 2는 러시아에 대한 부채)로, 이는 1인당 기준으로 몰도바(트란스니스트리아 제외)보다 약 6배 높은 수치였다. 2007년 3월 가스프롬에 대한 천연가스 구매 부채는 13.00 억 USD로 증가했다. 같은 해 3월 22일 가스프롬은 이 부채를 트란스니스트리아 최대 기업인 몰도바 철강 공장을 소유한 러시아 사업가 알리셰르 우스마노프에게 매각했다. 이고르 스미르노프 당시 대통령은 트란스니스트리아가 가스프롬에 법적 부채가 없다며 가스 부채를 지불하지 않을 것이라고 발표했다. 2007년 11월, 트란스니스트리아 공공 부문의 총 부채는 16.40 억 USD에 달했다.
2021년 명목 GDP는 약 12.01 억 USD, 1인당 GDP는 2584 USD로 추정된다. 2023년 상반기 경제 상황은 악화되어 수입은 12% 증가한 13.20 억 USD에 달했으나 수출은 10% 감소한 3.46 억 USD에 그쳤다. 무역 적자는 9.70 억 USD로, 이는 2021년 전체 GDP와 거의 맞먹는 규모이며, 러시아로부터의 천연가스 공급 대금 미지급으로 재정적 어려움을 겪고 있다. 2025년 1월 1일부터 우크라이나를 경유한 러시아 가스 공급이 중단되면서 심각한 에너지 위기에 직면했다.
트란스니스트리아 경제는 종종 밀수 및 무기 밀매에 의존한다는 비판을 받아왔으며, 일부 논평가들은 마피아 국가라고까지 칭하기도 했다. 이러한 주장은 트란스니스트리아 정부에 의해 부인되고 있으며,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관리들에 의해서도 때때로 경시된다.
8.2. 대외 무역
2020년 트란스니스트리아 세관 보고에 따르면 수출은 6.33 억 USD, 수입은 10.53 억 USD를 기록했다. 2000년대 초반에는 수출의 50% 이상이 독립국가연합(CIS), 주로 러시아뿐만 아니라 벨라루스, 우크라이나, 몰도바(트란스니스트리아 당국은 외국으로 간주)로 향했다. 주요 비CIS 시장은 이탈리아, 이집트, 그리스, 루마니아, 독일이었다. CIS는 수입의 60% 이상을 차지했으며, EU의 비중은 약 23%였다. 주요 수입품은 비철금속, 식품, 전기 등이었다.
2014년 몰도바가 EU와 연합 협정을 체결한 후, 법적으로 몰도바의 일부로 간주되는 트란스니스트리아는 EU로의 무관세 수출 혜택을 누리게 되었다. 그 결과 2015년 트란스니스트리아의 수출액 1.89 억 USD 중 27%가 EU로 향했고, 러시아로의 수출은 7.7%로 감소했다. 이러한 EU 시장으로의 전환은 2016년에도 계속 성장했다.
2022년 3월부터 우크라이나 국경이 트란스니스트리아에 대해 폐쇄되면서, 트란스니스트리아를 오가는 모든 무역 상품은 몰도바를 통과해야 하며, 트란스니스트리아는 제품 수출 시 몰도바 및 EU 표준을 준수해야 한다. 2023년 상반기 수출의 48%는 몰도바 나머지 지역으로, 33% 이상은 EU로, 9%는 러시아로 향했다. 수입의 68%는 러시아에서, 14%는 EU에서, 7%는 몰도바에서 이루어졌다.
2024년 몰도바와 유럽 연합 간의 자유무역협정의 결과로, 트란스니스트리아도 혜택을 받게 되면서, 몰도바는 트란스니스트리아로/부터의 수출입을 몰도바와 동일하게 취급하기로 결정했다. 이에 따라 트란스니스트리아 수입업자가 몰도바를 통해 수입하고자 할 경우 등록해야 하며, 상품에 따라 몰도바에 수입세를 납부해야 할 수도 있다.
8.3. 주요 산업
트란스니스트리아의 주요 산업은 철강, 전력 생산, 섬유, 주류 생산 등이다.
- 철강: 르브니차에 위치한 몰도바 철강 공장(러시아 메탈로인베스트 홀딩스 소속)이 핵심 기업으로, 트란스니스트리아 예산 수입의 약 60%를 차지한다.
- 전력 생산: 드네스트로프스크에 위치한 쿠추르간 발전소(몰다브스카야 GRES, 러시아 인테르 RAO UES 소속)가 주요 전력 공급원이며, 몰도바 전력 수요의 상당 부분도 담당한다. 가스 전송 및 배급 회사인 티라스폴트란스가즈는 가스프롬이 통제하는 것으로 추정되나, 가스프롬은 공식적으로 소유권을 확인해주지 않고 있다.
- 섬유: 티로텍스(Tirotex)가 유럽에서 두 번째로 큰 섬유 회사라고 주장하며, 주요 수출품목 중 하나이다.
- 주류: 티라스폴에 위치한 가장 오래된 주류 생산업체 크빈트(KVINT)는 브랜디, 와인, 보드카 등을 생산하여 수출한다.
- 기타: 셰리프라는 거대 복합기업은 소매(슈퍼마켓), 주유소, 통신, 건설, 방송, 스포츠(FC 셰리프 티라스폴) 등 다양한 분야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은행 부문은 가스프롬방크를 포함한 8개의 상업은행으로 구성되어 있다.
9. 사회
트란스니스트리아의 사회는 다민족 구성, 러시아 문화의 강한 영향, 미승인 국가로서의 특수한 상황 등으로 특징지어진다. 교육, 인권, 언론 환경 등 여러 분야에서 국제 사회의 기준과 차이를 보이며, 주민들의 생활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9.1. 인구

2015년 10월 트란스니스트리아 당국이 실시한 인구 조사에 따르면, 총인구는 475,373명으로, 2004년 인구 조사 당시 555,347명에 비해 14.5% 감소했다. 이는 출산율 저하와 함께 경제적 어려움 등으로 인한 외부로의 인구 유출이 지속되고 있음을 시사한다. 도시화율은 69.9%였다.
민족 구성은 다음과 같다:
- 러시아인: 29.1% (161,300명, 다른 출처에서는 34%)
- 몰도바인: 28.6% (156,600명, 다른 출처에서는 33%)
- 우크라이나인: 22.9% (126,700명, 다른 출처에서는 26.7%)
- 불가리아인: 2.4% (13,300명)
- 가가우즈인: 1.1% (5,700명)
- 벨라루스인: 0.5% (2,800명)
- 트란스니스트리아인: 0.2% (처음으로 "트란스니스트리아인"으로 자신을 밝힐 선택권이 주어짐)
- 기타 국적: 1.4%
- 국적 미상: 약 14%
공식 언어는 러시아어, 몰도바어(키릴 문자 사용), 우크라이나어이다. 러시아어가 민족 간 소통 언어(링구아 프랑카)로 널리 사용된다.
9.1.1. 역대 인구 조사 결과
트란스니스트리아 지역의 인구 및 민족 구성은 역사적으로 변동을 겪어왔다.
- 1926년 (몰다비아 ASSR 시기, 현재 트란스니스트리아보다 넓은 영역): 우크라이나인 48%, 몰도바인 30%, 러시아인 9%, 유대인 8.5% 등.
- 1989년 (트란스니스트리아 전쟁 직전, 보안 지대 포함): 총인구 679,000명. 몰도바인 39.9%, 우크라이나인 28.3%, 러시아인 25.5%. 이 시기까지 러시아인 비율은 꾸준히 증가한 반면, 몰도바인 비율은 감소하는 경향을 보였다.
- 2004년: 총인구 555,347명. 몰도바인 32.1%, 러시아인 30.4%, 우크라이나인 28.8%, 불가리아인 2.5%.
- 2015년: 총인구 475,373명. 러시아인 29.1%, 몰도바인 28.6%, 우크라이나인 22.9%.
이러한 인구 변화는 정치적 상황, 경제적 요인, 이주 등 복합적인 원인에 기인한다. 특히 소련 붕괴 이후의 인구 감소는 주목할 만하다.
도시 | 소속 구 | 인구 | 이미지 |
---|---|---|---|
티라스폴 | 티라스폴 | 129,367 (2015년) | ![]() |
벤데르 | 벤데르 | 91,197 (2015년) | ![]() |
르브니차 | 르브니차구 | 46,000 (2015년) | ![]() |
두버사리 | 두버사리구 | 23,650 (2004년) | ![]() |
슬로보지아 | 슬로보지아구 | 16,062 (2004년) | |
드네스트로프스크 | 슬로보지아구 | 10,000 (2015년) | |
카멘카 | 카멘카구 | 10,323 (2004년) | |
그리고리오폴 | 그리고리오폴구 | 10,252 (2004년) | |
수클레이아 | 슬로보지아구 | 10,001 (2004년) | |
파르카니 | 슬로보지아구 | <8,000 (2004년) |
9.2. 종교

트란스니스트리아의 주요 종교는 동방 정교회이다. 공식 통계에 따르면 인구의 92%가 동방 정교회 신자이며, 4%는 로마 가톨릭 신자이다. 로마 가톨릭 신자들은 주로 폴란드계 소수 민족이 거주하는 북부 지역에 분포한다.
트란스니스트리아 정부는 정교회 성당의 복원과 신축을 지원하며, 종교의 자유를 보장하고 114개의 종교 단체 및 신앙 공동체가 공식적으로 등록되어 있다고 밝히고 있다. 그러나 2005년까지 여호와의 증인과 같은 일부 종교 단체들은 등록 과정에서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 2007년 미국 기반의 기독교 방송 네트워크(CBN)는 트란스니스트리아 내 개신교 박해를 비판한 바 있다.
대부분의 정교회 신자들은 몰도바 정교회(모스크바 총대주교청 산하) 소속이며, 트란스니스트리아 지역은 티라스폴 및 두버사리 주교가 관할한다.
9.3. 교육
트란스니스트리아의 교육 제도는 러시아의 교육 표준을 따르며, 주로 러시아 교육 과정을 사용한다. 학제는 초등, 중등, 고등 교육으로 구성되며, 티라스폴 국립대학교(타라스 셰브첸코 기념 프리드네스트로비예 국립대학교)를 비롯한 여러 고등 교육 기관이 있다.
공용어인 몰도바어 교육은 소련 시절에 만들어진 몰도바 키릴 문자를 사용하여 이루어진다. 루마니아어(라틴 문자 사용) 교육은 소수의 학교에서만 제공되며, 이들 학교는 종종 트란스니스트리아 당국과의 갈등을 겪어왔다 (자세한 내용은 #루마니아어 사용 학교 문제 참조).
트란스니스트리아 당국이 발행한 고등 교육 졸업장은 대부분의 국가에서 인정받지 못한다. 이로 인해 졸업생들은 몰도바나 서방 국가에서 좋은 일자리를 얻는 데 어려움을 겪으며, 러시아가 학생과 졸업생들의 주요 행선지가 되는 경향이 있다.
9.4. 인권
트란스니스트리아의 인권 상황은 여러 정부 및 국제기구로부터 비판을 받아왔다. 2007년 미국 기반의 프리덤 하우스가 발표한 "세계 자유 보고서"는 트란스니스트리아를 "자유롭지 않은" 영토로 규정하며, 정치적 권리와 시민적 자유 모두에서 열악한 상황이라고 평가했다.
2006년 미국 국무부 보고서에 따르면, 시민들의 정부 교체 권리가 제한되었으며, 당국이 고문, 자의적 체포 및 구금을 지속적으로 사용했다는 보고가 있었다. 언론의 자유가 제한되었고, 당국은 일반적으로 자유로운 집회를 허용하지 않았다. 소수 종교 단체에 대한 등록 거부 및 괴롭힘이 지속되었으며, 이 지역은 인신매매의 중요한 근원지 및 경유지로 남아있었다.
9.4.1. 성소수자 권리
트란스니스트리아는 동성결혼을 포함한 어떠한 형태의 동성 결합도 법적으로 인정하지 않는다. 2002년 발효된 혼인 및 가족법은 결혼을 남성과 여성 간의 자발적인 결합으로 명시하고 있으며, 이성 또는 동성 커플을 위한 다른 형태의 파트너십을 인정하지 않는다. 동성애는 비범죄화되어 있으나, 성소수자에 대한 사회적 인식은 부정적이며 차별과 편견이 존재한다. 성소수자 권리 운동은 매우 제한적이며, 공개적인 활동은 거의 불가능한 상황이다.
9.4.2. 언론 매체
트란스니스트리아에는 여러 텔레비전 방송국, 신문, 라디오 방송국 등 다양한 현대적 뉴스 매체가 존재한다. 그러나 OSCE에 따르면 트란스니스트리아의 언론 환경은 제한적이며, 당국은 독립적인 반대 목소리와 단체를 침묵시키기 위한 오랜 캠페인을 지속하고 있다.
2006년 미국 국무부 보고서에 따르면, 지역의 주요 신문 두 곳 모두 당국에 의해 통제되었다. 벤데르와 북부 도시 르브니차에 각각 독립 주간지가 하나씩 있었으나, 분리주의 당국은 트란스니스트리아 정권에 대한 비판적 보도를 이유로 독립 신문들을 괴롭혔다. 대부분의 텔레비전, 라디오 방송국 및 인쇄 매체는 트란스니스트리아 당국에 의해 통제되며, 당국이 편집 정책과 재정 운영을 크게 좌우한다. TSV 텔레비전 방송국과 INTER-FM 라디오 방송국과 같은 일부 방송 네트워크는 지역 내 최대 독점 기업인 셰리프가 소유하고 있으며, 셰리프는 지역 의회에서도 다수석을 차지하고 있다. 2005년 7월 트란스니스트리아 최고평의회는 선거법을 개정하여 당국이 통제하는 언론이 선거 관련 여론조사 결과 및 예측을 발표하는 것을 금지했다.
9.4.3. 루마니아어 사용 학교 문제
트란스니스트리아에서 공식적으로 "몰도바어"로 불리는 루마니아어 공교육은 소련 시절에 만들어진 몰도바 키릴 문자를 사용하여 이루어진다. 라틴 문자 사용은 6개 학교에서만 제한적으로 허용되었으며, 이 학교들은 종종 트란스니스트리아 당국과의 갈등에 직면해왔다.
2004년, 이들 중 4개 학교가 공식 인가 신청을 거부했다는 이유로 당국에 의해 강제 폐쇄되었다. 이 학교들은 이후 사립학교로 재등록하여 다시 문을 열었으며, 이는 유럽 연합의 압력이 작용한 결과일 수 있다. OSCE 몰도바 임무단은 르브니차 시 당국에 몰수된 건물을 라틴 문자 사용 학교에 반환할 것을 촉구했다. 이 건물은 2004년 학교 위기 당시 트란스니스트리아가 통제권을 장악했을 때 거의 완공 단계였다.
2005년 11월, 트란스니스트리아의 루마니아어 학교 교장이자 인권 운동가이며 분리주의 정권 비판가였던 이온 이오브체프는 자신이 분리주의 정권을 비판했기 때문이라고 주장하는 협박 전화를 받았다.
2021년 8월, 트란스니스트리아 정부는 티라스폴의 루치안 블라가 고등학교 등록을 거부하고 3개월간 활동을 중단하도록 강요했으며, 이는 해당 학교 학생들의 학업에 영향을 미치고 아동의 권리에 관한 협약 여러 조항을 위반하는 행위로 간주되었다. 이러한 문제들은 트란스니스트리아 내 소수 민족의 언어권 및 교육권 침해에 대한 국제 사회의 우려를 지속적으로 야기하고 있다.
9.5. 공휴일
트란스니스트리아에서 지정한 주요 국가 공휴일은 다음과 같다. 이들 공휴일은 역사적 사건, 종교적 전통, 그리고 구소련 시절의 기념일들을 반영하고 있다.
- 1월 1일-1월 2일: 새해 첫날 (Новый Год노비 고트러시아어) - 2006년부터 이틀 연휴
- 1월 7일: 정교회 성탄절 (Рождество Христово로즈데스트보 흐리스토보러시아어)
- 2월 23일: 조국 수호자의 날 (День защитника отечества덴 자시트니카 오테체스트바러시아어) - 구소련 군 창설 기념일
- 3월 8일: 국제 여성의 날 (Международный женский день메즈두나로드니 젠스키 덴러시아어)
- 5월 1일-5월 2일: 노동절 (День солидарности трудящихся덴 솔리다르노스티 트루댜시흐샤러시아어)
- 5월 9일: 승전 기념일 (День Победы덴 포베디러시아어) - 제2차 세계 대전 승전 기념일
- 9월 2일: 공화국의 날 (День Республики덴 레스푸블리키러시아어) - 트란스니스트리아 독립 선언 기념일
- 11월 7일: 10월 혁명 기념일 (Годовщина Великой Октябрьской социалистической революции고도프시나 벨리코이 옥탸브리스코이 소치알리스티체스코이 레볼류치러시아어) (2017년까지 공휴일, 이후 폐지됨)
- 12월 24일: 헌법의 날 (День конституции덴 콘스티투치러시아어) - 1996년부터
- 12월 25일: 성탄절 (그레고리력 기준) (Рождество Христово по григорианскому календарю로즈데스트보 흐리스토보 포 그리고리안스코무 칼렌다류러시아어) - 소수 가톨릭 신자들을 위해 지정 가능성 있음. (주: 주요 성탄절은 1월 7일 정교회 성탄절임)
이 외에도 부활절 등 정교회 관련 종교 휴일이 중요하게 지켜진다.
10. 스포츠
트란스니스트리아에서 가장 인기 있는 스포츠는 축구이다. 국제적으로 미승인 국가이기 때문에 트란스니스트리아 자체 국가대표팀이 FIFA나 UEFA 주관 대회에 참가할 수는 없지만, 트란스니스트리아를 연고로 하는 클럽팀들은 몰도바 리그에 참가한다.
가장 유명한 팀은 FC 셰리프 티라스폴이다. 이 팀은 2021-22 시즌 UEFA 챔피언스리그 본선 조별 리그에 진출하여 레알 마드리드를 상대로 승리하는 등 파란을 일으키며 국제적으로 큰 주목을 받았다. 이는 몰도바 리그 팀 최초의 챔피언스리그 본선 진출이었다.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UEFA는 안보상의 이유로 FC 셰리프 티라스폴이 트란스니스트리아 내에서 홈 경기를 치르는 것을 금지했다. 이에 따라 팀은 몰도바의 다른 지역에서 홈 경기를 치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