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몬테네그로는 동남유럽 발칸반도에 위치한 공화국이다. 남쪽으로 아드리아해와 접하며, 서쪽으로는 크로아티아, 북서쪽으로는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북동쪽으로는 세르비아, 동쪽으로는 코소보, 남동쪽으로는 알바니아와 국경을 맞대고 있다. 총 면적은 1.39 만 km2이며, 2023년 기준 인구는 약 623,633명이다. 행정 수도이자 최대 도시는 포드고리차이며, 옛 왕도이자 문화 중심지는 체티네이다.
몬테네그로의 역사는 6-7세기 슬라브족의 도래 이후, 이 지역에 형성된 여러 중세 공국들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중 두클랴는 11세기에 독립 왕국으로 발전했으며, 이후 제타라는 이름으로 알려졌다. 14세기 말부터 18세기 말까지 남부 몬테네그로의 상당 부분은 베네치아 공화국의 지배를 받았으며, 알바니아 베네타의 일부를 이루었다. 15세기 후반부터 '몬테네그로'라는 국명이 사용되기 시작했다. 오스만 제국의 지배 하에 놓인 후, 1696년 페트로비치-네고쉬 왕조의 통치 아래 반자치권을 획득하여 처음에는 신정 국가로, 이후에는 세속적인 공국으로 발전했다. 1878년 베를린 회의에서 독립을 국제적으로 인정받았고, 1910년 왕국으로 승격되었다.
제1차 세계 대전 이후 몬테네그로는 유고슬라비아 왕국의 일부가 되었다. 제2차 세계 대전 중에는 이탈리아와 독일의 점령을 받았으나, 저항 운동 끝에 해방되어 유고슬라비아 사회주의 연방 공화국(SFRY)의 구성 공화국인 몬테네그로 사회주의 공화국이 되었다. 유고슬라비아가 해체된 후, 몬테네그로는 세르비아와 함께 유고슬라비아 연방 공화국(신유고 연방), 이후 세르비아 몬테네그로를 구성했다. 2006년 5월 독립 국민투표를 통해 같은 해 6월 3일 독립을 선언하여 현재의 몬테네그로와 세르비아로 분리되었다.
몬테네그로는 상위 중산층 소득 국가로 분류되며, 주로 서비스업 중심의 경제 구조를 가지고 있다. 유엔, NATO, WTO, OSCE, 유럽 평의회, CEFTA 등의 회원국이다. 또한 지중해 연합의 창립 회원국이며, 2012년부터 유럽 연합(EU) 가입을 추진하고 있다. 정치 체제는 의원내각제를 채택한 단일 공화국이다. 공용어는 몬테네그로어이며, 유로를 법정 통화로 사용하고 있다.
2. 국명
몬테네그로의 공식 국명은 몬테네그로(Crna Gora츠르나 고라몬테네그로어, 키릴: Црна Гора츠르나 고라몬테네그로어)이다. 이는 세르비아어, 보스니아어, 크로아티아어에서도 동일하게 표기된다. 영어 국명 'Montenegro'는 베네토어에서 유래한 것으로, "검은 산"을 의미하는 몬테네그로어 구절 "Crna Gora"를 차용 번역한 것이다. 이는 로브첸산이 빽빽한 상록수림으로 덮여 검게 보였던 데서 유래했다. '츠르나고라'라는 명칭은 슈테판 우로슈 1세가 슈카다르호의 브라니나섬에 있는 세르비아 정교회 제타 주교좌에 발급한 칙령에서 처음 언급되었다. 이 명칭은 15세기에 이르러 현대 몬테네그로 영토의 대부분을 지칭하게 되었다.
현대 몬테네그로 지역은 1459년 세르비아 전제공국 멸망 이후 역사적 시기에 이 명칭으로 점점 더 알려지게 되었다. 원래는 파슈트로비치 부족의 통치하에 있던 좁은 땅만을 지칭했으나, 츠르노예비치 가문이 상부 제타에서 권력을 잡은 후 더 넓은 산악 지역을 가리키는 이름으로 사용되었다. 앞서 언급된 지역은 19세기경 '옛 몬테네그로'(Stara Crna Gora스타라 츠르나 고라몬테네그로어)로 알려지게 되었는데, 이는 독립 지역과 이웃한 오스만 제국 점령하의 몬테네그로 영토인 '브르다'("고원지대")를 구분하기 위함이었다. 몬테네그로는 20세기까지 오스만 제국과의 전쟁 결과로 옛 헤르체고비나, 메토히야 일부, 남부 라슈카를 합병하며 여러 차례 영토를 확장했다. 이후 국경은 거의 변하지 않았으나, 메토히야를 잃고 코토르만을 얻었다.
제2차 세계 대전 중 AVNOJ 제2차 회의 이후, 현대 몬테네그로 국가는 1943년 11월 15일 ZAVNOCGB에 의해 유고슬라비아 연방 내 몬테네그로 연방국(Savezna država Crne Gore사베즈나 드르자바 츠르네 고레몬테네그로어 (라틴문자) / Савезна држава Црне Горе사베즈나 드르자바 츠르네 고레몬테네그로어)으로 설립되었다. 전쟁 후 몬테네그로는 1945년 11월 29일 몬테네그로 인민공화국(Narodna Republika Crna Gora나로드나 레푸블리카 츠르나 고라몬테네그로어 (라틴문자) / Народна Република Црна Гора나로드나 레푸블리카 츠르나 고라몬테네그로어)이라는 이름의 공화국이 되었다. 1963년에는 몬테네그로 사회주의 공화국(Socijalistička Republika Crna Gora소치얄리스티치카 레푸블리카 츠르나 고라몬테네그로어 (라틴문자) / Социјалистичка Република Црна Гора소치얄리스티치카 레푸블리카 츠르나 고레몬테네그로어)으로 개칭되었다. 유고슬라비아 해체가 진행되면서, 1992년 4월 27일 공화국 명칭에서 "사회주의"라는 형용사를 제거하고 유고슬라비아 연방 공화국 내 몬테네그로 공화국(Republika Crna Gora레푸블리카 츠르나 고라몬테네그로어 (라틴문자) / Република Црна Гора레푸블리카 츠르나 고라몬테네그로어)으로 개칭되었다. 독립 1년 후인 2007년 10월 22일부터 국명은 단순히 몬테네그로로 알려지게 되었다. 알바니아인들은 이 나라를 Mali i Zi(말리 이 지, 말 그대로 '검은 산')로 부르며, 몬테네그로인, 세르비아인, 보슈냐크인, 크로아티아인들은 Crna Gora로 부른다.
과거 일본에서는 흑산국(黒山国)으로 음차하기도 했으며, 중국어에서는 흑산(黑山, 헤이산)으로 번역한다. 대만에서는 Montenegro를 '몽특내가라'(蒙特內哥羅, 멍터네이거뤄)로 음역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3. 역사
몬테네그로의 역사는 고대 일리리아인들의 정착에서 시작되어 로마 제국의 지배를 거쳐 중세 슬라브족 국가들의 형성과 발전을 이루었다. 이후 오스만 제국과 베네치아 공화국의 영향을 받았으며, 페트로비치-네고쉬 왕조 하에서 주교후국과 공국을 거쳐 왕국으로 발전했다. 제1차 세계 대전 이후 유고슬라비아 왕국에 통합되었고, 제2차 세계 대전 후에는 유고슬라비아 사회주의 연방 공화국의 일원이 되었다. 1990년대 유고슬라비아 해체 과정에서 세르비아와 함께 신유고 연방을 구성했으며, 2006년 독립 국민투표를 통해 현대적인 독립 국가로 새롭게 출발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3.1. 고대
현대의 몬테네그로 지역은 일리리아의 일부였으며, 인도유럽어족 계열 언어를 사용하는 일리리아인들이 거주했다. 일리리아 왕국은 일리리아-로마 전쟁에서 로마 공화국에 정복당했고, 이 지역은 일리리쿰 속주(나중에 달마티아와 프라에발리타나)에 편입되었다.
3.2. 슬라브족의 도래와 중세

몬테네그로 영토에는 세 개의 주요 공국이 위치했는데, 남부 절반에 해당하는 두클랴, 서부의 트라부니아, 북부의 라슈카가 그것이다. 두클랴는 1042년 동로마 제국으로부터 독립을 쟁취했다. 이후 수십 년 동안 이웃한 라슈카와 보스니아로 영토를 확장했으며 왕국으로도 인정받았다. 그러나 12세기 초부터 국력이 쇠퇴하기 시작했다. 보딘 왕이 사망(1101년 또는 1108년)한 후 내전이 발발했다. 두클랴는 보이슬라브의 아들 미하일로(1046년~1081년)와 그의 손자 콘스탄틴 보딘(1081년~1101년) 치하에서 전성기를 누렸다.

귀족들이 왕위를 놓고 다투면서 왕국은 약화되었고, 1186년경 현대 몬테네그로 영토는 스테판 네마냐가 통치하는 국가의 일부가 되었으며, 이후 2세기 동안 네마니치 왕조가 통치하는 다양한 국가 형성의 일부가 되었다. 14세기 후반 세르비아 제국이 붕괴한 후, 가장 강력한 제타 가문인 발시치 가문이 제타의 군주가 되었다.
13세기경부터 '두클랴' 대신 '제타'라는 명칭이 이 지역을 지칭하는 데 사용되었다. 14세기 후반, 남부 몬테네그로(제타)는 발시치 귀족 가문, 그 후 츠르노예비치 귀족 가문의 지배를 받았으며, 15세기에는 제타가 '츠르나고라'라고 불리는 경우가 더 많아졌다.
1421년 제타는 세르비아 전제공국에 합병되었으나, 1455년 이후 제타의 또 다른 귀족 가문인 츠르노예비치 가문이 이 지역의 군주가 되어 발칸반도에서 마지막으로 자유로운 군주국이 되었으나, 1496년 오스만 제국에 함락되어 슈코더르 산자크에 편입되었다. 짧은 기간 동안 몬테네그로는 1514년부터 1528년까지 독립적인 자치 산자크로 존재했다. 또한, 옛 헤르체고비나 지역은 헤르체고비나 산자크의 일부였다.
3.3. 오스만 제국과 베네치아 공화국 지배 시기
1392년부터 부드바 시를 포함한 영토의 많은 부분이 베네치아 공화국의 지배를 받았다. 당시 부드바는 "부두아"로 알려져 있었다. 베네치아 영토는 코토르만을 중심으로 했으며, 공화국은 몬테네그로 정치에 개입하는 총독을 파견했다. 베네치아는 1797년 멸망할 때까지 현재의 몬테네그로 영토를 지배했다.
1496년부터 1878년까지 넓은 지역이 오스만 제국의 지배하에 놓였다. 16세기 몬테네그로는 오스만 제국 내에서 독특한 형태의 자치권을 발전시켜 몬테네그로 부족들이 특정 제약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도록 허용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몬테네그로인들은 오스만 통치에 불만을 품었고, 17세기에는 반복적으로 반란을 일으켜 그 세기 말 대튀르크 전쟁에서 오스만 제국을 패배시키는 결과를 가져왔다.
몬테네그로 영토는 호전적인 부족들에 의해 통제되었다. 대부분의 부족에는 추장(knez)이 있었는데, 그는 전임자만큼 유능한 지도자임을 증명하지 않으면 그 칭호를 얻을 수 없었다. 몬테네그로 부족 회의(Zbor)는 매년 7월 12일 체티네에서 열렸으며, 성인 부족원은 누구나 참여할 수 있었다. 1515년 몬테네그로는 몬테네그로 수도대주교좌가 이끄는 신정 국가가 되었으며, 체티네의 페트로비치-네고쉬 가문이 주교후("몬테네그로의 블라디카"라는 칭호)가 된 후 번성했다. 이 역사적 시기의 몬테네그로 사람들은 정교회 세르비아인으로 묘사되었다.
3.4. 몬테네그로 주교후국과 공국

1858년, 오스만 제국에 대한 몬테네그로의 주요 승리 중 하나가 그라호바츠 전투에서 일어났다. 크냐즈 다닐로의 형인 미르코 페트로비치 대공은 7,500명의 군대를 이끌고 1858년 5월 1일 그라호바츠에서 수적으로 우세한 15,000명의 오스만 군대를 격파했다. 이로 인해 열강들은 몬테네그로와 오스만 제국 간의 국경을 공식적으로 확정하게 되었고, 이는 사실상 몬테네그로의 독립을 인정한 것이었다.
부치 도 전투에서 몬테네그로인들은 대재상 아흐메드 무흐타르 파샤가 이끄는 오스만 군대에 대패를 안겼다. 1877년-1878년 러시아-튀르크 전쟁에서 러시아가 오스만 제국에 승리한 후, 주요 강대국들은 발칸 지역의 지도를 재편했다. 오스만 제국은 1878년 베를린 조약에서 몬테네그로의 독립을 인정했다.
최초의 몬테네그로 헌법(다닐로 법전이라고도 함)은 1855년에 공포되었다. 니콜라 1세(1860년~1918년 통치) 치하에서 공국은 몬테네그로-튀르크 전쟁에서 여러 차례 영토를 확장했고 1878년에 독립을 인정받았다. 니콜라 1세는 오스만 제국과 외교 관계를 수립했다. 사소한 국경 분쟁을 제외하고는 외교는 1909년 압뒬하미트 2세가 퇴위할 때까지 약 30년간 양국 간 평화를 가져왔다.
압뒬하미트 2세와 니콜라 1세의 정치적 수완은 상호 우호적인 관계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 국가 현대화가 뒤따랐고, 1905년 헌법 초안 작성으로 절정에 달했다. 그러나 민주화 과정과 세르비아와의 연합을 지지하는 집권 인민당과 군주제를 지지하는 진정인민당 사이에 정치적 균열이 나타났다.
3.5. 몬테네그로 왕국



1910년 몬테네그로는 왕국이 되었고, 1912년~1913년 발칸 전쟁의 결과로 세르비아와 공동 국경이 설정되었으며, 슈코더르는 알바니아에 할양되었지만 현재 몬테네그로의 수도인 포드고리차는 알바니아와 유고슬라비아의 옛 국경에 있었다. 몬테네그로는 제1차 세계 대전(1914년~1918년) 동안 연합국 중 하나가 되었다. 1916년 1월 오스트리아-헝가리와 몬테네그로 왕국 사이에 벌어진 모이코바츠 전투에서 몬테네그로인들은 5대 1로 수적으로 열세였음에도 불구하고 결정적인 승리를 거두었다. 오스트리아-헝가리군은 1916년 1월 25일 군사 항복을 수락했다. 1916년부터 1918년 10월까지 오스트리아-헝가리가 몬테네그로를 점령했다. 점령 기간 동안 니콜라 국왕은 국외로 망명하여 보르도에 망명 정부를 수립했다.
3.6. 유고슬라비아 왕국 시기
1922년 몬테네그로는 공식적으로 세르브인 크로아트인 슬로벤인 왕국의 체티네 주가 되었으며, 부드바와 코토르만 주변 해안 지역이 추가되었다. 1929년 추가적인 구조 조정에서 네레트바강에 이르는 더 큰 유고슬라비아 왕국의 제타 바나테의 일부가 되었다.
니콜라의 손자인 세르비아 국왕 알렉산다르 1세가 유고슬라비아 정부를 장악했다. 제타 바노비나는 왕국을 구성하는 9개 바노비나 중 하나였으며, 현재의 몬테네그로와 세르비아, 크로아티아, 보스니아 일부로 구성되었다.
3.7. 제2차 세계 대전과 사회주의 유고슬라비아


1941년 4월, 나치 독일, 이탈리아 왕국, 그리고 다른 추축국 동맹국들이 유고슬라비아 왕국을 공격하고 점령했다. 이탈리아군은 몬테네그로를 점령하고 괴뢰 국가인 몬테네그로 왕국을 세웠다.
5월, 유고슬라비아 공산당 몬테네그로 지부는 7월 중순으로 계획된 봉기를 위한 준비를 시작했다. 공산당과 청년 동맹은 6,000명의 당원을 게릴라전을 위해 준비된 분견대로 조직했다. 일부 역사학자들에 따르면, 나치 독일 점령하 유럽 최초의 무장 봉기는 1941년 7월 13일 몬테네그로에서 일어났다.
예상치 못하게 봉기가 확산되었고, 7월 20일까지 32,000명의 남녀가 전투에 참여했다. 해안과 주요 도시(포드고리차, 체티네, 플레블라, 닉시치)가 포위된 것을 제외하고 몬테네그로는 대부분 해방되었다. 한 달간의 전투에서 이탈리아군은 5,000명의 사상자와 포로를 냈다. 봉기는 8월 중순까지 지속되었으며, 알바니아에서 동원된 67,000명의 이탈리아군 반격으로 진압되었다. 새롭고 압도적인 이탈리아군에 직면하여 많은 전투원들이 무기를 내려놓고 집으로 돌아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치열한 게릴라전은 12월까지 계속되었다.
무장을 유지한 전투원들은 두 그룹으로 나뉘었다. 대부분은 공산주의자들과 적극적인 저항을 지지하는 사람들로 구성된 유고슬라비아 파르티잔에 합류했다. 여기에는 아르소 요바노비치, 사바 코바체비치, 스베토자르 북마노비치-템포, 밀로반 질라스, 페코 다프체비치, 블라도 다프체비치, 벨코 블라호비치, 블라조 요바노비치 등이 포함되었다. 카라조르제비치 왕조에 충성하고 공산주의에 반대하는 사람들은 체트니크가 되어 파르티잔에 대항하여 이탈리아와 협력했다.
1942년 상반기에 파르티잔과 체트니크 사이에 전쟁이 발발했다. 이탈리아와 체트니크의 압력으로 몬테네그로 파르티잔의 핵심부는 세르비아와 보스니아로 이동하여 다른 유고슬라비아 파르티잔과 합류했다. 파르티잔과 체트니크 간의 전투는 전쟁 내내 계속되었다. 이탈리아의 지원을 받는 체트니크는 1942년 중반부터 1943년 4월까지 국가 대부분을 통제했다. 몬테네그로 체트니크는 "반공 민병대" 지위를 부여받고 이탈리아로부터 무기, 탄약, 식량 배급, 자금을 받았다. 그들 대부분은 모스타르로 이동하여 네레트바 전투에서 파르티잔과 싸웠지만 큰 패배를 당했다.
1943년 5월과 6월, 파르티잔에 대한 독일의 슈바르츠 작전 중 독일군은 연합군이 발칸반도를 침공할 경우 그들이 반기를 들 것을 우려하여 전투 없이 많은 체트니크를 무장 해제시켰다. 1943년 9월 이탈리아가 항복한 후 파르티잔은 잠시 몬테네그로 대부분을 장악했지만, 몬테네그로는 곧 독일군에 점령되었고 1943년 말과 1944년 내내 치열한 전투가 계속되었다. 몬테네그로는 1944년 12월 파르티잔에 의해 해방되었다.
몬테네그로는 공산주의 유고슬라비아 사회주의 연방 공화국(SFRY)의 6개 구성 공화국 중 하나가 되었다. 수도는 포드고리차가 되었고, 요시프 브로즈 티토 대통령을 기리기 위해 티토그라드로 개칭되었다. 전쟁 후 유고슬라비아의 기반 시설이 재건되고 산업화가 시작되었으며 몬테네그로 대학교가 설립되었다. 몬테네그로 사회주의 공화국이 1974년에 새로운 헌법을 비준할 때까지 더 큰 자치권이 확립되었다.

3.8. 유고슬라비아 연방 공화국 시기
1992년 유고슬라비아 사회주의 연방 공화국(SFRY)이 공식적으로 해체된 후, 몬테네그로는 세르비아와 함께 더 작은 유고슬라비아 연방 공화국의 일부로 남았다. 1992년 유고슬라비아 잔류에 관한 국민투표에서 투표의 96%가 세르비아와의 연방에 찬성했다. 이 국민투표는 몬테네그로 자유동맹, 사회민주당 및 사회당과 같은 야당과 몬테네그로 민주동맹과 같은 소수 민족 정당들에 의해 보이콧되었으며, 이로 인해 투표율은 66%로 비교적 낮았다.
1991년~1995년 보스니아 전쟁과 크로아티아 독립 전쟁 동안, 모미르 불라토비치 대통령과 내무장관 파블레 불라토비치의 명령 하에 몬테네그로 경찰과 군대는 세르비아군에 합류하여 크로아티아의 두브로브니크를 공격했다. 더 많은 영토를 획득하려는 이러한 작전은 대규모 인권 침해를 특징으로 했다.
몬테네그로 장군 파블레 스트루가르는 두브로브니크 폭격에 가담한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았다. 보스니아 난민들은 몬테네그로 경찰에 체포되어 포차의 세르비아 수용소로 이송되었고, 그곳에서 조직적인 고문과 처형을 당했다.
1996년, 밀로 주카노비치 정부는 슬로보단 밀로셰비치가 이끄는 세르비아와의 관계를 단절했다. 몬테네그로는 자체적인 경제 정책을 수립하고 독일 도이치 마르크를 통화로 채택했으며, 이후 유로존의 일부는 아니지만 유로를 채택했다. 이후 정부들은 독립 지향 정책을 추구했고, 베오그라드의 정치적 변화에도 불구하고 세르비아와의 정치적 긴장은 계속되었다.
1999년 연합군 작전 중 몬테네그로 내 목표물들이 NATO군에 의해 폭격당했지만, 이러한 공격의 범위는 시간과 피해 지역 모두 제한적이었다.
2002년 세르비아와 몬테네그로는 지속적인 협력을 위한 새로운 합의에 도달했고 유고슬라비아 연방 공화국의 미래 지위에 관한 협상에 들어갔다. 그 결과 베오그라드 협정이 체결되어 2003년 세르비아 몬테네그로라는 이름의 보다 분권화된 국가 연합으로 전환되었다. 베오그라드 협정에는 몬테네그로 독립에 관한 향후 국민투표를 최소 3년간 연기하는 조항도 포함되어 있었다.
3.9. 독립과 현대


몬테네그로와 세르비아 간의 연합 상태는 2006년 5월 21일 몬테네그로 독립에 관한 국민투표로 결정되었다. 총 419,240표가 투표되었으며, 이는 유권자의 86.5%에 해당한다. 이 중 230,661표(55.5%)가 독립에 찬성했고, 185,002표(44.5%)가 반대했다. 이는 유럽 연합이 정한 규칙에 따라 국민투표를 유효하게 만드는 데 필요한 55% 문턱을 간신히 넘은 수치였다. 선거관리위원회에 따르면 55% 문턱은 불과 2,300표 차이로 통과되었다. 세르비아, 유럽 연합 회원국, 유엔 안전 보장 이사회 상임 이사국 모두 몬테네그로의 독립을 승인했다.
2006년 국민투표는 OSCE/ODIHR 팀이 이끄는 5개의 국제 참관단과 총 3,000여 명의 참관인(국내 참관인 CDT (OSCE PA), 유럽 평의회 의원 총회 (PACE), 유럽 평의회 지방 및 지역 당국 회의 (CLRAE), 유럽 의회 (EP) 포함)에 의해 감시되었다. 국제 국민투표 참관단(IROM)은 예비 보고서에서 "국민투표 과정이 OSCE 약속, 유럽 평의회 약속, 기타 민주적 선거 과정에 대한 국제 표준 및 국내법을 준수했는지 평가했다." 또한, 보고서는 경쟁적인 국민투표 전 환경이 활발하고 대체로 평화로운 캠페인으로 특징지어졌으며 "기본적인 시민적, 정치적 권리에 대한 제한 보고는 없었다"고 밝혔다.
2006년 6월 3일, 몬테네그로 의회는 몬테네그로의 독립을 선언하여 국민투표 결과를 공식적으로 확인했다.
2006년 6월 28일, 몬테네그로는 유엔의 192번째 회원국으로 가입했다.
유고슬라비아 해체 이후 몬테네그로는 권위주의와 고객주의 체제를 구축했다는 비난을 받으면서도 조직범죄와 긴밀한 관계를 유지해 온 밀로 주카노비치(총리 4회, 대통령 2회)에 의해 지배되어 왔다. 주카노비치 시대의 대규모 사유화는 그와 그에게 가까운 과두들의 부를 축적하게 했다. 그의 형제 알렉산다르는 몬테네그로 최초의 민간 은행 소유주로서 사유화를 감독했고, 그의 여동생 아나 콜라레비치는 오랫동안 사법부를 장악했다. 여당의 고객주의 네트워크는 사회 생활의 모든 부문을 지배했다. 사업을 시작하거나 행정부에 자리를 얻기 위해서는 당원증이 필요했다. 이러한 정책은 또한 지역적 불균형과 사회적 불평등을 강화하는 데 기여했다. 실업률은 북부 지역에서 36.6%에 달하는 반면 해안 지역에서는 3.9%이며, 인구의 4분의 1이 빈곤선 이하에서 생활하고 있다 (2018년 기준).
2011년 7월 12일 몬테네그로 의회에서 페트로비치-네고쉬 왕조 후손 지위에 관한 법률이 통과되었다. 이 법은 몬테네그로 왕가를 복권하고 공화국 헌법 체계 내에서 제한적인 상징적 역할을 인정했다.
2015년, 탐사보도 언론인 네트워크 OCCRP는 몬테네그로의 오랜 대통령이자 총리인 밀로 주카노비치를 "올해의 조직범죄 인물"로 선정했다. 주카노비치의 부패 정도는 거리 시위와 그의 퇴진 요구로 이어졌다.

2016년 10월, 의회 선거 당일, 몬테네그로 야당 지도자, 세르비아 국민, 러시아 요원들을 포함한 일단의 사람들에 의해 쿠데타가 준비되었으나 저지되었다. 2017년에는 러시아 국적자 2명과 몬테네그로 야당 지도자 안드리야 만디치와 밀란 크네제비치를 포함한 14명이 "몬테네그로 헌법 질서와 안보에 대한 음모 준비" 및 "테러 시도" 등의 혐의로 쿠데타 시도에 가담한 혐의로 기소되었다.
몬테네그로는 러시아의 방해 시도에도 불구하고 2017년 6월 NATO 정식 회원국이 되었으며, 이 사건은 러시아 정부의 보복 조치를 약속하는 계기가 되었다.
몬테네그로는 2012년부터 EU와 가입 협상을 진행해 왔다. 2018년에는 2022년까지 가입한다는 이전 목표가 2025년으로 수정되었다. 몬테네그로 법률을 EU 회원국 요건에 맞추는 입법이 진행 중이다.
2018년 4월, 집권 사회주의자 민주당(DPS)의 지도자인 밀로 주카노비치가 몬테네그로 대통령 선거에서 승리했다. 이 베테랑 정치인은 총리를 6번, 대통령을 1번 역임했다. 그는 1991년부터 몬테네그로 정치를 지배해 왔다.
반부패 시위는 2019년 2월 주카노비치와 두슈코 마르코비치 총리가 이끄는 집권 몬테네그로 사회주의자 민주당(DPS) 정부에 대항하여 시작되었으며, DPS는 1991년부터 집권해 왔다.
2019년 말, 새로 채택된 종교법은 1918년 이전에 건축된 교회 건물과 토지의 소유권을 세르비아 정교회에서 몬테네그로 국가로 사실상 이전하는 내용으로, 대규모 시위와 도로 봉쇄를 촉발했다. 투표를 방해한 혐의로 야당 민주전선 의원 17명이 투표 전에 체포되었다. 시위는 2020년 3월까지 평화적인 행진으로 계속되었으며, 대부분 몬테네그로 대다수 지방 자치체에서 세르비아 정교회에 의해 조직되었다.
2020년 5월 프리덤 하우스의 전 세계 정치적 권리 및 시민적 자유 보고서에서 몬테네그로는 거버넌스, 사법, 선거, 언론 자유의 기준 하락으로 인해 민주주의가 아닌 혼합 정권으로 분류되었다. 30년 만에 처음으로 2020년 총선에서 야당이 주카노비치의 여당보다 더 많은 표를 얻었다. 2022년 2월, 바로 그 정부가 몬테네그로 역사상 최초의 성공적인 불신임 투표로 물러났다.
2022년 9월, 한 조사에서 러시아 외교관 6명과 임시 비자를 소지한 러시아 시민 28명, 현지 시민 2명이 스파이 혐의로 연루된 사실이 드러났다. 외교관들은 추방되었다. 러시아 시민들은 이후 몬테네그로 입국이 금지되었고, 전직 외교관을 포함한 현지인 2명은 불법 무기 소지, 범죄 조직 구성, 스파이 혐의로 기소되었다.
2023년 3월, 친서방 성향의 지금 유럽 운동 후보인 야코브 밀라토비치가 대선 결선투표에서 현직 대통령 밀로 주카노비치를 누르고 몬테네그로 대통령으로 당선되었다. 지금 유럽! 운동은 2023년 총선에서 가장 많은 의석을 확보했다. 2023년 10월 31일, 지금 유럽! 운동의 밀로이코 스파이치가 친유럽 및 친세르비아 정당 연합을 이끌며 몬테네그로의 새 총리가 되었다.
2024년 6월 몬테네그로 의회는 제2차 세계 대전 중 야세노바츠 강제 수용소에서 자행된 잔학 행위를 인정하는 결의안을 채택했다. 친세르비아 세력이 주도한 이 결정은 스레브레니차 학살에 관한 유엔 결의안에 대한 몬테네그로의 이전 지지에 대한 대응으로 간주된다. 크로아티아는 몬테네그로가 역사적 사건을 정치화하고 있다고 비판하며, 이것이 몬테네그로의 EU 가입 경로와 크로아티아와 몬테네그로 간의 양자 관계에 해를 끼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이 결의안은 양국 간의 외교적 긴장을 고조시켰다.
4. 지리
몬테네그로는 알바니아,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코소보, 세르비아와의 국경을 따라 높은 봉우리들이 특징이다. 또한 서부 발칸반도의 카르스트 지형 일부를 포함하며, 폭이 1.5 km에서 6 km에 불과한 좁은 해안 평야를 가지고 있다. 이 평야는 북쪽에서 갑자기 끝나는데, 이곳에서는 로브첸산과 오르옌산이 코토르만으로 깊숙이 들어간다.

몬테네그로의 광대한 카르스트 지역은 일반적으로 해발 1000 m 고도에 위치하지만, 일부 지역은 해안 석회암 산맥 중 가장 높은 산괴인 오르옌산( 1894 m )처럼 2000 m까지 솟아 있다. 해발 500 m의 제타강 계곡은 가장 낮은 지역이다.

몬테네그로의 산들은 유럽에서 가장 험준한 지형 중 일부를 포함하며, 평균 고도가 2000 m 이상이다. 이 나라의 주목할 만한 봉우리 중 하나는 두르미토르산의 보보토브쿡산으로, 높이가 2522 m에 달하며 이전에는 이 나라에서 가장 높은 지점으로 여겨졌다. 2018년 새로운 삼각측량 결과, 프로클레티예산의 즐라콜라타산이 높이 2534 m로 더 높다는 것이 밝혀졌다. 서쪽 사면의 극도로 습한 기후 때문에 몬테네그로 산맥은 마지막 빙하기 동안 발칸반도에서 가장 많이 빙식된 지역 중 하나였다.

국제적으로 몬테네그로는 세르비아,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코소보, 알바니아, 크로아티아와 국경을 접한다. 북위 41°에서 44°, 동경 18°에서 21° 사이에 위치한다.

몬테네그로는 다뉴브강 보호를 위한 국제 위원회의 회원국으로, 국토의 2000 km2 이상이 다뉴브강 유역에 속한다.
몬테네그로에는 5개의 국립공원이 있다.
명칭 | 설립 연도 | 면적 |
---|---|---|
두르미토르 국립공원 | 1952 | 390 km2 |
비오그라드스카고라 국립공원 | 1952 | 54 km2 |
로브첸 국립공원 | 1952 | 64 km2 |
슈카다르호 국립공원 | 1983 | 400 km2 |
프로클레티예 국립공원 | 2009 | 166 km2 |
4.1. 생물 다양성

몬테네그로의 지질학적 기반, 경관, 기후, 토양의 다양성과 발칸반도 및 아드리아해에서의 위치는 높은 생물 다양성을 위한 조건을 만들어냈으며, 이로 인해 몬테네그로는 유럽 및 세계 생물 다양성의 "핫스팟" 중 하나로 꼽힌다. 몬테네그로의 단위 면적당 종 수 지수는 0.837로, 유럽 국가 중 가장 높다.
생물학적 추정에 따르면 몬테네그로에는 1,200종 이상의 담수 조류, 300종의 해양 조류, 589종의 이끼, 7,000~8,000종의 관다발 식물, 2,000종의 균류, 16,000~20,000종의 곤충, 407종의 해양 어류, 56종의 파충류, 정기적으로 방문하는 333종의 조류 및 높은 종 다양성의 포유류가 서식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몬테네그로는 지중해 생물지리 지역과 알프스 생물지리 지역을 포함하는 두 개의 주요 생물지리적 지역으로 나눌 수 있다. 또한 발칸 혼합림, 디나르알프스 혼합림, 일리리아 낙엽수림 등 3개의 육상 생태 지역이 있다. 2019년 산림 경관 보전 지수 평균 점수는 6.41/10으로, 172개국 중 전 세계 73위를 차지했다.
몬테네그로의 총 보호 지역 비율은 국토 면적의 9.05%이며, 이는 주로 5개의 몬테네그로 국립공원에서 비롯된다.
5. 정치
몬테네그로는 2007년에 제정된 성문 헌법을 가진 의원내각제 대의 민주주의 공화국이다. 헌법은 몬테네그로를 "법치주의에 기반한 시민적, 민주적, 생태학적 사회 정의 국가"로 규정하고 있다. 몬테네그로는 다당제를 채택하고 있다.

대통령
2023년 5월 20일 이후

총리
2023년 10월 31일 이후
몬테네그로의 대통령은 국가를 대표하는 국가원수이며, 직접 선거를 통해 5년 임기로 선출된다. 대통령은 외교 활동을 통해 국제적으로 국가를 홍보하고, 법령으로 법률을 공포하며, 의회 선거를 공고하고, 의례적으로 총리, 헌법재판소장 및 재판관 후보를 의회에 제안한다. 또한 대통령은 의례적으로 의회에 국민투표 소집을 제안하고, 국법에 규정된 형사 범죄에 대한 사면을 부여하며, 훈장과 포상을 수여하고 기타 헌법상의 의무를 수행하며 최고국방위원회 위원이다. 대통령의 공식 관저는 체티네에 있다. 현 대통령은 2023년 5월부터 재임 중인 야코브 밀라토비치이다.
몬테네그로 정부는 몬테네그로의 행정부이며 총리가 이끈다. 총리직은 몬테네그로에서 가장 정치적으로 강력한 직위이다. 2006년 이후 모든 몬테네그로 정부는 최소 3개의 정당으로 구성된 연립 정부였다. 정부는 주로 포드고리차에 기반을 두고 있다.
몬테네그로 의회는 포드고리차에 위치한 단원제 입법부이다. 의회는 정부를 임명하고, 입법(의회법)을 통과시키며, 법안(제안된 의회법)을 심의할 권한을 가진다. 또한 모든 법원의 판사를 임명하고, 예산을 승인하며, 국가 헌법에 의해 수립된 기타 의무를 수행한다. 의회는 단순 과반수 투표로 정부에 대한 불신임 결의를 통과시킬 수 있다. 몬테네그로 의회 의원(의원이라고 함) 1명은 유권자 6,000명당 선출된다. 현재 의석수는 81석이다. 의회 선거는 비례대표제의 한 형태인 동트 방식으로 실시된다.
2019년 몬테네그로는 미국 기반의 프리덤 하우스에 의해 혼합 정권(민주적 특징과 권위주의적 특징을 결합한 정치 체제)으로 묘사되었다. 이 단체는 국가 포획, 권력 남용, 그리고 밀로 주카노비치 총리(2008년~2010년 및 2012년~2016년)의 강권 통치를 그 이유로 들었다. 밀로 주카노비치는 세르비아와 몬테네그로 간의 연합 해체 전후로 대통령직을 포함한 여러 고위 정부 직책을 역임했다. 2021년 이코노미스트 민주주의 지수(EDI)는 몬테네그로를 "결함 있는 민주주의"로 선언했으며, 2023년 현재에도 EDI에 의해 그렇게 간주되고 있다.
밀로 주카노비치의 친유럽주의 및 친NATO 성향의 몬테네그로 사회주의자 민주당(DPS)은 2020년 총선에서 간신히 패배하여 30년간의 당 통치가 종식되었고, 주로 세르비아 민족주의 정당들로 구성된 친세르비아 성향의 "몬테네그로의 미래를 위하여"(ZBCG) 의원단이 즈드라브코 크리보카피치 총리 하에 정부를 구성했다. 크리보카피치 총리 정부는 집권 14개월 만에 불신임 투표로 무너졌다.
2022년 4월, 드리탄 아바조비치 총리가 이끄는 새로운 소수 정부는 친유럽 및 친세르비아 성향의 온건 정당들을 규합했다. 그러나 그의 정부는 불과 113일 만에 신임 투표에서 패배했다. 몬테네그로가 의회의 신임을 얻을 수 있는 정부를 찾지 못했기 때문에, 아바조비치는 2023년 6월 11일 총선 이후 스파이치 내각이 구성될 때까지 직위를 유지했으며, 이 선거에서 밀로이코 스파이치가 이끄는 지금 유럽!당이 가장 많은 의석을 차지했다. 2023년 10월, ZBCG의 신임 및 공급 지원을 받는 새로운 소수 정부가 출범하여 밀로이코 스파이치가 새 총리가 되었다.
5.1. 행정 구역
몬테네그로는 25개의 지방 자치체(opština)로 나뉜다. 각 지방 자치체는 여러 도시와 마을을 포함할 수 있다. 역사적으로 이 나라의 영토는 나히예로 나뉘었고, SR 몬테네그로 초기에는 군(srez)으로 나뉘었다.
통계청이 통계 목적으로 설계한 몬테네그로의 지역들은 행정 기능이 없다. 다른 조직들(예: 몬테네그로 축구 협회)은 유사한 지역의 일부로 다른 지방 자치체를 사용한다는 점에 유의해야 한다.
- 북부 지역
지방 자치체 | 면적 | 인구 | ||
---|---|---|---|---|
km2 | 순위 | 총계 | 순위 | |
안드리예비차 | 283 | 12 | 5,117 | 10 |
베라네 | 544 | 6 | 28,305 | 3 |
비옐로폴레 | 924 | 2 | 46,676 | 1 |
구신예 | 486 | 8 | 13,108 | 6 |
콜라신 | 897 | 3 | 8,420 | 8 |
모이코바츠 | 367 | 11 | 8,669 | 7 |
페트니차 | 173 | 13 | 6,686 | 9 |
플라브 | 486 | 7 | 13,549 | 5 |
플루지네 | 854 | 4 | 3,286 | 12 |
플레블라 | 1,346 | 1 | 31,060 | 2 |
로자예 | 432 | 10 | 23,312 | 4 |
샤브니크 | 553 | 5 | 2,077 | 13 |
자블라크 | 445 | 9 | 3,599 | 11 |
- 중부 지역
지방 자치체 | 면적 | 인구 | ||
---|---|---|---|---|
km2 | 순위 | 총계 | 순위 | |
체티네 | 899 | 3 | 16,757 | 4 |
다닐로브그라드 | 501 | 4 | 17,678 | 3 |
닉시치 | 2,065 | 1 | 72,824 | 2 |
포드고리차 | 1,399 | 2 | 187,085 | 1 |
투지 | 236 | 5 | 12,096 | 5 |
- 해안 지역
지방 자치체 | 면적 | 인구 | ||
---|---|---|---|---|
km2 | 순위 | 총계 | 순위 | |
바르 | 598 | 1 | 42,368 | 1 |
부드바 | 122 | 5 | 19,170 | 5 |
헤르체그노비 | 235 | 4 | 30,992 | 2 |
코토르 | 335 | 2 | 22,799 | 3 |
티바트 | 46 | 6 | 14,111 | 6 |
울친 | 255 | 3 | 20,265 | 4 |
5.2. 대외 관계

외무부는 다른 국가 행정 기관, 대통령, 국회의장 및 기타 관련 이해 관계자들과 협력하여 외교 정책 우선 순위와 그 이행에 필요한 활동을 정의하는 임무를 부여받았다.
몬테네그로는 2017년 6월 5일 NATO에 가입했다. 유럽 연합(EU) 통합은 세르비아로부터 독립한 이후 몬테네그로 외교 정책의 초점이 되어 온 최우선 과제이다. 2023년 6월, 새로 선출된 밀라토비치 대통령은 몬테네그로가 2027년 또는 2028년까지 EU에 가입할 것으로 예상한다고 밝혔다.
5.3. 법
현재의 몬테네그로 헌법은 2007년 10월 19일 몬테네그로 제헌 의회에서 필요한 3분의 2 초다수결 표를 얻어 비준 및 채택되었다. 2007년 10월 22일에 공식적으로 공포되었다.
헌법은 몬테네그로를 정부의 주권에 의해 수립된 시민적, 민주적, 환경 친화적 국가이며 사회 정의를 추구한다고 정의한다.
몬테네그로의 사법부는 여러 법원으로 구성되며, 대법원이 최고 사법 기관이다. 대법원은 법률의 통일된 적용을 감독한다. 행정 법원은 공공 행정과 관련된 분쟁을 처리한다. 사법부에는 또한 기본 법원(경미한 민사 및 형사 사건), 고등 법원(더 심각한 사건 및 항소), 하급 법원 결정을 검토하는 항소 법원이 포함된다.
헌법재판소는 별도의 기관으로, 법률 및 공권력 행위가 헌법에 부합하는지 검토하여 헌법을 보호하는 임무를 맡는다.
몬테네그로의 판사는 사법위원회에서 임명하며 67세까지 재직한다. 대통령은 사법위원회의 추천에 따라 판사를 임명한다. 또한, 몬테네그로 인권 및 자유 보호관(옴부즈맨)은 의회에서 6년 임기로 임명되어 인권과 사회 정의 보호를 보장한다.
몬테네그로는 살인율이 비교적 낮으며, 최근 몇 년간 인구 10만 명당 살인 건수는 1.5~2.0건 사이에서 변동하고 있다.
몬테네그로에서 낙태는 임신 첫 10주 동안 요청 시 합법이다.

성적 지향 및 성 정체성에 따른 차별은 고용, 상품 및 서비스 제공, 교육 및 보건 서비스에서 금지된다. 몬테네그로는 또한 성적 지향과 성 정체성을 차별 금지 사유로 포함하는 증오범죄 및 증오 발언 법을 보유하고 있다.
2021년 7월 15일부터 동성 커플은 그들의 관계를 생활 동반자 관계로 등록할 수 있다.
5.4. 치안
몬테네그로의 법 집행은 내무부 산하 여러 기관에서 수행한다.
몬테네그로의 민간 법 집행은 주로 국가 경찰인 경찰국이 담당한다. 시립 경찰(Communal Police)은 각 지방 자치체에서 지역 법규를 시행한다.
주요 법 집행 기관은 몬테네그로 경찰국으로, 범죄 수사, 공공 질서 유지 및 일반적인 법 집행을 담당한다. 시립 경찰은 주로 교통 규제 및 경미한 공공 질서 문제에 중점을 두고 지역 법 집행 업무를 지원한다.
민간 보안 회사는 몬테네그로에서 운영되지만 용의자를 체포하거나 구금할 법적 권한은 없다.
국가보안기관(ANB)은 방첩 및 내부 보안을 담당하며, 인터폴 몬테네그로는 국제 기관과 협력하여 초국가적 범죄에 대응한다. 특수 대테러 부대(SAJ)와 같은 경찰 내 특수 부대는 조직 범죄, 테러 및 고위험 작전을 처리한다.
2023년 7월 발효된 EU와의 협정에 따라 EU 프론텍스 국경 관리 인력이 몬테네그로에서 활동하여 몬테네그로 내 다른 비 EU 국경에서 활동하는 지역 국경 경찰을 지원할 수 있게 되었다.
몬테네그로의 응급 서비스에는 의료 서비스, 소방대, 수색 구조대가 있으며, 이는 비상 상황국에서 조정한다. 응급 의료 서비스는 지역 보건 기관에서 운영하지만 보건부에서 감독한다.
5.5. 군사

몬테네그로군은 몬테네그로 육군, 몬테네그로 해군, 몬테네그로 공군의 세 전문 군종으로 구성된다. 몬테네그로군은 국방부에서 관리하며, 참모총장이 통제한다. 대통령은 군대의 총사령관이며, 군인들은 대통령에게 충성을 맹세한다. 군대는 몬테네그로를 보호하고, 세계 안보 이익을 증진하며, 국제 평화 유지 노력을 지원하는 임무를 맡고 있다.
몬테네그로는 NATO 회원국이자 아드리아해 헌장 회원국이다. 정부는 군대가 국제 안보 지원군과 같은 유엔 및 NATO를 통한 평화 유지 임무에 참여할 계획이었다.
몬테네그로는 2024년 세계 평화 지수에 따르면 세계에서 35번째로 평화로운 국가이다.
6. 경제
몬테네그로 경제는 주로 서비스 기반이며 시장 경제로의 후기 전환기에 있다. IMF에 따르면 2019년 몬테네그로의 명목 GDP는 54.24 억 USD였다. 2019년 PPP GDP는 125.16 억 USD, 즉 1인당 2.01 만 USD였다. 유로스타트 자료에 따르면 2018년 몬테네그로 1인당 GDP는 EU 평균의 48% 수준이었다.

몬테네G르는 2007년 CEFTA에 가입했고, 2012년부터 EFTA와 자유 무역 협정을 맺고 있다. 몬테네그로 중앙은행은 유로 시스템의 일부는 아니지만, 이 나라는 유로화를 일방적으로 통화로 사용하는 "유로화" 상태이다. 몬테네그로는 2024년 세계 혁신 지수에서 65위를 차지하여 2023년 75위에서 상승했다.
6.1. 사회 기반 시설
몬테네그로의 도로 기반 시설은 서유럽 수준에 미치지 못한다. 완전한 고속도로 기준을 충족하는 도로는 없다. 새로운 고속도로 건설은 균형 잡힌 경제 발전과 매력적인 관광지로서의 몬테네그로 발전에 중요하기 때문에 국가적 우선 과제로 간주된다.

몬테네그로를 통과하는 유럽 고속도로는 E65와 E80이다.
몬테네그로 철도망의 중추는 베오그라드-바르 철도로, 세르비아 방면으로 국제 연결을 제공한다. 국내 지선인 닉시치-포드고리차 철도는 수십 년 동안 화물 전용선으로 운영되다가 2012년 재건 및 전화 이후 여객 운송을 시작했다. 포드고리차에서 알바니아 국경으로 향하는 다른 지선인 포드고리차-슈코더르 철도는 사용되지 않고 있다.
몬테네그로에는 포드고리차 공항과 티바트 공항 두 개의 국제공항이 있다.
바르항은 몬테네그로의 주요 항구이다. 1906년에 처음 건설된 이 항구는 제2차 세계 대전 중 거의 완전히 파괴되었다. 재건은 1950년에 시작되었다. 연간 5백만 톤 이상의 화물을 처리할 수 있도록 설비되어 있지만, 적자를 기록하며 수용 능력에 훨씬 못 미치는 수준으로 운영되고 있다. 베오그라드-바르 철도 재건과 제안된 베오그라드-바르 고속도로는 운영 수준을 수용 능력으로 되돌릴 것으로 예상된다.
2023년에는 가스 수입을 위해 바르에 LNG 터미널을 설치할 계획이 있다.
6.2. 관광


2022년 몬테네그로를 방문한 총 방문객 수는 210만 명이었으며, 이들은 총 1,240만 박을 머물렀다. 몬테네그로를 방문하는 외국인 방문객의 대다수는 이웃 국가인 세르비아,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코소보 및 러시아 출신이다.
몬테네그로 아드리아해 연안은 길이가 295 km이며, 72 km의 해변과 잘 보존된 고대 도시들이 많이 있다. 가장 인기 있는 해변으로는 야즈 해변, 모그렌 해변, 베치치 해변, 스베티스테판 해변, 벨리카플라자 등이 있다. 한편, 가장 인기 있는 고대 도시로는 헤르체그노비, 페라스트, 코토르, 부드바, 울친 등이 있다.
내셔널 지오그래픽 트래블러(10년에 한 번 편집)는 몬테네그로를 "일생의 50곳" 중 하나로 꼽는다. 몬테네그로 해변 마을 스베티스테판은 한때 이 잡지의 표지로 사용되기도 했다. 몬테네그로 해안 지역은 전 세계 관광객들 사이에서 위대한 "발견" 중 하나로 여겨졌다. 2010년 1월, 뉴욕 타임스는 벨리카플라자, 아다보야나섬, 울친의 호텔 메디테란을 포함한 몬테네그로 울친 남부 해안 지역을 전 세계 순위의 일환으로 "2010년에 가봐야 할 상위 31곳" 중 하나로 선정했다.
7. 사회
몬테네그로는 다민족 국가로, 몬테네그로인이 인구의 다수를 차지하며 세르비아인, 보슈냐크인, 알바니아인 등 다양한 민족이 공존한다. 공용어는 몬테네그로어이며, 세르비아어, 보스니아어, 알바니아어, 크로아티아어도 공식적으로 사용된다. 주요 종교는 동방 정교회이며, 이슬람교와 가톨릭 신자도 상당수 존재한다. 교육 제도는 초등, 중등, 고등 교육으로 구성되며, 보건 시스템은 국가 주도로 운영된다.
7.1. 민족
2023년 인구 조사에 따르면 몬테네그로에는 623,633명의 시민이 거주하고 있다. 몬테네그로는 민족적 다수 없이 다민족 국가이다. 몬테네그로인이 인구의 41.1%를 차지하고, 세르비아인이 32.9%, 보슈냐크인이 9.45%, 알바니아인이 4.99%, 러시아인이 2.01%를 차지한다. 로마인, 크로아티아인, 우크라이나인, 벨라루스인, 튀르키예인을 포함한 다른 민족 집단도 상당수 존재한다.
몬테네그로는 GHI 점수가 5 미만인 22개국 중 하나이다.
7.2. 언어
몬테네그로의 공용어는 몬테네그로어이다. 세르비아어, 보스니아어, 알바니아어, 크로아티아어는 공식 사용이 인정된다. 몬테네그로어, 세르비아어, 보스니아어, 크로아티아어는 세르보크로아트어의 표준 변종으로서 상호 이해 가능하다. 세르비아어는 이 나라에서 가장 많이 사용되는 언어로, 인구의 43.18%가 모국어로 간주하며, 34.52%가 몬테네그로어를 사용한다. 또한 보스니아어(6.98%), 알바니아어(5.25%), 러시아어(2.36%)를 사용하는 사람들도 상당수 있다.
7.3. 종교

몬테네그로는 역사적으로 다문화주의의 교차로에 서 있었으며, 수세기에 걸쳐 기독교와 이슬람 인구 간의 독특한 공존을 형성해 왔다. 몬테네그로인들은 역사적으로 몬테네그로 및 연안부 수도대주교좌와 부디믈랴 및 닉시치 교구가 관할하는 세르비아 정교회 신도인 동방 정교회 신자들이었다. 동방 정교회는 몬테네그로의 주요 종교로, 인구의 71.1%가 이 종교를 믿는다. 한편, 세르비아 정교회는 가장 크고 가장 인기 있는 교회로, 몬테네그로 정교회 신자의 약 90%가 이 교회를 따른다. 1993년 세르비아 정교회에서 분리된 몬테네그로 정교회라는 분파 교회는 나머지 10%의 정교회 신자들이 따르고 있다. 이 교회는 콘스탄티노폴리스 세계총대주교청으로부터 공식적으로 인정받지 못했으며 다른 어떤 정규 정교회와도 교류하지 않는다.
보스니아 전쟁 중 종교 집단 간의 긴장에도 불구하고 몬테네그로는 종교적 관용과 신앙 다양성에 대한 주민들의 관점 덕분에 비교적 안정적으로 유지되었다. 종교 기관은 권리를 보장받고 국가와 분리되어 있다. 두 번째로 큰 종교는 이슬람교로, 인구의 19%가 믿는다. 몬테네그로는 유럽에서 무슬림 비율이 가장 높은 국가 중 하나이며, 슬라브 국가 중에서는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와 북마케도니아에 이어 세 번째로 높다. 몬테네그로 알바니아인의 4분의 1 이상이 가톨릭 신자(2003년 인구 조사에서 8,126명)이며, 나머지(22,267명)는 주로 수니파 무슬림이다. 2012년 의정서는 이슬람교를 공식 종교로 인정하여 군사 시설, 병원, 기숙사 및 사회 시설에서 할랄 음식이 제공되도록 보장하고, 무슬림 여성이 학교 및 공공 기관에서 머릿수건을 착용할 수 있도록 허용하며, 무슬림이 주므아(금요일) 예배를 위해 금요일에 휴가를 가질 권리를 보장한다. 보이슬라블레비치 왕조 시대부터 가톨릭은 몬테네그로 지역에서 토착 종교였다. 소수의 로마 가톨릭 인구는 대부분 알바니아인과 일부 크로아티아인으로 구성되며, 세르비아 수석주교가 이끄는 안티바리 대교구와 크로아티아 가톨릭교회의 일부인 코토르 교구로 나뉜다.
7.4. 교육
몬테네그로의 교육 제도는 미취학, 초등, 일반 및 직업 중등, 고등 교육, 성인 교육으로 구성된다. 미취학 교육은 공립 및 사립 유치원에서 제공되지만, 1세 미만의 아동을 위한 공립 기관은 거의 없다. 아동은 6세에 초등학교에 입학하여 9년 동안 교육을 받으며, 이는 의무 교육이자 무료이다.
일반 중등 교육은 김나지움에서 이루어지며, 4년이 소요되고 졸업 시험(마투라)으로 마무리된다. 직업 중등 교육은 3년 또는 4년 과정의 직업 학교와 4년 과정의 미술 학교에서 제공된다. 고등 교육 기관에는 공립 몬테네그로 대학교와 2개의 사립 대학교(지중해 대학교, 도냐고리차 대학교) 및 다수의 독립 학부가 있다. 몬테네그로 대학교는 19개의 학부와 3개의 연구소로 구성되어 있다.
7.5. 보건
몬테네그로의 보건 시스템은 보편적 의료보험 원칙에 따라 조직되어 있으며, 모든 시민에게 의료 서비스 접근권을 보장한다. 주요 공공 의료 제공자는 몬테네그로 보건 기금이며, 국가 예산과 시민들의 의무적인 건강 보험료로 자금을 조달한다. 민간 의료 부문도 성장하고 있으며, 다양한 전문 진료와 서비스를 제공한다. 국가에는 여러 종합 병원과 전문 병원, 그리고 지역 사회 건강 센터 네트워크가 있다. 주요 건강 문제로는 심혈관 질환, 암, 호흡기 질환 등이 있으며, 정부는 예방 프로그램과 건강 증진 활동을 통해 이러한 문제에 대처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의료 서비스의 질은 점차 개선되고 있지만, 일부 농촌 지역이나 외딴 지역에서는 여전히 접근성 문제가 남아 있다.
8. 문화
몬테네그로 문화는 가장 중요하게는 정교회, 오스만 (터키), 슬라브, 중앙 유럽, 그리고 (특히 베네치아 공화국과 같은 이탈리아 일부 지역과 같은) 해양 아드리아 문화에 의해 형성되었다.


몬테네그로에는 로마네스크 이전, 고딕, 바로크 시대의 유적지를 포함하여 많은 중요한 문화 및 역사 유적지가 있다. 몬테네그로 해안 지역은 코토르의 성 트리폰 대성당, 성 루카 대성당 (800년 이상), 바위의 성모 섬 (슈크르피엘라), 사비나 수도원 등을 포함한 종교 기념물로 유명하다. 중세 수도원에는 예술적으로 중요한 많은 프레스코화가 남아 있다.
문화적 차원 중 하나는 초이스트보 이 유나슈트보(Čojstvo i Junaštvo츠오이스트보 이 유나슈트보몬테네그로어), 즉 "인간성과 용맹성"이라는 윤리적 이상이다. 몬테네그로인의 전통 민속춤은 오로이며, "독수리춤"이라고도 불리는데, 원을 그리며 춤을 추고 중앙에서 남녀 한 쌍이 번갈아 가며 춤을 추다가 무용수들이 서로의 어깨 위에 서서 인간 피라미드를 형성하는 것으로 마무리된다.
8.1. 언론
텔레비전, 잡지, 신문은 광고, 구독, 기타 판매 관련 수익에 의존하는 국영 기업과 영리 기업 모두에 의해 운영된다. 몬테네그로 헌법은 언론의 자유를 보장한다. 몬테네그로의 미디어 시스템은 국가의 나머지 부분과 마찬가지로 변화하고 있다.
8.2. 스포츠

몬테네그로의 스포츠는 주로 수구, 축구, 농구, 핸드볼, 배구와 같은 단체 스포츠를 중심으로 이루어진다. 그 외 관련된 스포츠로는 권투, 테니스, 수영, 유도, 가라테, 육상 경기, 탁구, 체스 등이 있다.
수구는 가장 인기 있는 스포츠이며 국가 스포츠로 간주된다. 몬테네그로 남자 수구 국가대표팀은 세계 최고 수준의 팀 중 하나로, 스페인 말라가에서 열린 2008년 유럽 남자 수구 선수권 대회에서 금메달을 획득했고, 포드고리차에서 열린 2009년 FINA 남자 수구 월드 리그에서도 금메달을 획득했다. 코토르 출신의 몬테네그로 팀 PVK 프리모라츠는 크로아티아 리예카에서 열린 LEN 유로리그 2009에서 유럽 챔피언이 되었다. 몬테네그로는 2016년 올림픽 남자 수구에서 4위를 차지했다.
축구는 두 번째로 인기 있는 스포츠이다. 2006년에 창설된 몬테네그로 축구 국가대표팀은 UEFA 유로 2012 플레이오프에 진출하여 역대 최고 성적을 거두었다. 몬테네그로 농구 국가대표팀은 뛰어난 경기력으로 유명하며 유고슬라비아 농구 국가대표팀의 일원으로 많은 메달을 획득했다. 2006년 몬테네그로 농구 연맹은 독립 이후 이 팀과 함께 국제 농구 연맹(FIBA)에 독자적으로 가입했다. 몬테네그로는 두 번의 유로바스켓에 참가했다.
여자 스포츠 중에서는 국가 핸드볼팀이 가장 성공적이며, 2012년 하계 올림픽에서 은메달을 획득하여 국가 최초의 올림픽 메달을 안겨주었다. 이후 2012년 유럽 선수권 대회에서 몬테네그로가 우승하여 유럽 챔피언이 되었다. ŽRK 부두치노스트 포드고리차는 EHF 챔피언스 리그에서 두 번 우승했다. 몬테네그로는 2022년 유럽 여자 핸드볼 선수권 대회의 개최국 중 하나였으며 3위를 차지했다.
8.3. 음식

몬테네그로 요리에 처음 큰 영향을 미친 것은 레반트와 터키 요리이다: 사르마, 무사카, 필라프, 피타, 기바니차, 부레크, 체바피, 케밥, 주베치, 그리고 바클라바와 툴룸바와 같은 터키 디저트가 있다. 헝가리 요리는 스튜와 사타라시에 영향을 미쳤다. 반면 중앙유럽 요리는 크레프, 도넛, 잼, 다양한 종류의 비스킷과 케이크, 그리고 다양한 종류의 빵의 보급에서 두드러진다. 몬테네그로 요리는 또한 지리적으로 다양하며, 해안 지역의 요리는 북부 고원 지역의 요리와 다르다. 해안 지역은 전통적으로 지중해 요리를 대표하며, 해산물이 일반적인 요리이다. 몬테네그로 아드리아해 연안의 전통 요리는 내륙 지역과 달리 이탈리아 요리의 영향을 크게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