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페루 공화국은 남아메리카 서부에 위치한 국가로, 북쪽으로 에콰도르와 콜롬비아, 동쪽으로 브라질, 남동쪽으로 볼리비아, 남쪽으로 칠레와 국경을 접하며 서쪽으로는 태평양에 면해 있다. 수도이자 최대 도시는 리마이다. 페루는 지리적으로 건조한 태평양 연안의 평원, 안데스 산맥의 고산 지대, 아마존 분지의 열대 우림 등 다양한 환경을 포함하고 있으며, 이는 풍부한 생물 다양성의 기반이 된다. 총 면적은 128.52 만 km2로 세계에서 19번째, 남아메리카에서는 3번째로 넓다. 2023년 추정 인구는 약 3,435만 명이다.
페루의 역사는 기원전 수천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며, 카랄-수페 문명을 비롯한 여러 고대 안데스 문명의 발상지이다. 15세기에는 아메리카 대륙에서 가장 큰 제국이었던 잉카 제국의 중심지였으나, 16세기에 스페인 제국에 의해 정복되어 페루 부왕령이 설치되었다. 1821년 독립을 선언하고 1824년 아야쿠초 전투 이후 독립을 확고히 했으나, 이후 정치적 불안정과 경제적 어려움을 겪었다. 20세기에는 군부 통치와 내부 분쟁을 경험했으며, 알베르토 후지모리 대통령 집권기(1990-2000)에는 신자유주의 경제 정책과 권위주의 통치가 이루어졌다. 21세기 들어서는 민주주의 회복과 경제 성장을 이루었으나, 정치적 불안정과 부패 문제는 여전히 중요한 과제로 남아 있다.
페루는 대통령 중심 공화제 국가로, 행정부, 입법부, 사법부의 삼권 분립을 기반으로 한다. 경제는 광업, 제조업, 농업, 어업이 주축을 이루며, 관광 산업 또한 중요한 역할을 한다. 구리, 금, 은 등 풍부한 광물 자원을 보유하고 있으며, 커피, 아스파라거스, 감자, 퀴노아 등 다양한 농산물을 생산한다. 페루는 아시아 태평양 경제협력체(APEC), 태평양 동맹, 안데스 공동체 등의 회원국으로 국제 사회에서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
페루 사회는 메스티소, 원주민(케추아족, 아이마라족 등), 유럽계, 아프리카계, 아시아계 등 다양한 민족으로 구성되어 있다. 공용어는 스페인어이며, 케추아어와 아이마라어를 비롯한 여러 원주민 언어도 널리 사용된다. 이러한 다양한 문화적 배경은 페루의 예술, 음식, 음악, 문학 등 다방면에 걸쳐 독특하고 풍부한 문화 유산을 형성하는 바탕이 되었다. 특히 세비체, 로모 살타도와 같은 페루 음식은 세계적으로도 유명하며, 마추픽추, 나스카 지상화 등은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되어 있다.
2. 국명
페루라는 국명의 유래에 대해서는 여러 설이 있으나, 가장 유력한 설은 16세기 초 현재 파나마의 산미겔 만 근처에 살았던 지역 통치자의 이름인 '비루'(Birú스페인어)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이다. 1522년 스페인 사람들이 이곳에 도달했을 때, 이곳은 유럽인들에게 알려진 신세계의 최남단 지역으로 여겨졌다. 이후 프란시스코 피사로가 이끄는 스페인 정복자들이 더 남쪽 지역을 탐험하면서, 그 지역 전체를 '비루' 또는 '페루'라고 부르게 되었다.
다른 설로는 동시대 작가이자 잉카 공주와 스페인 정복자 사이에서 태어난 잉카 가르실라소 데 라 베가가 제시한 것이 있다. 그는 '비루'라는 이름이 페드로 아리아스 다빌라 총독의 탐험선 선원들과 우연히 마주친 한 평범한 아메리카 원주민의 이름이었으며, 공통 언어의 부재로 인해 더 많은 오해가 발생했다고 기술했다.
스페인 왕실은 1529년의 톨레도 협약(Capitulación de Toledo스페인어)을 통해 이 명칭에 법적 지위를 부여했으며, 이 협약에서 새롭게 발견된 잉카 제국을 페루 지방으로 지정했다. 1561년 반란을 일으킨 로페 데 아기레는 자신을 독립 페루의 "왕자"라고 선언했으나, 그의 반란은 체포와 처형으로 끝나고 말았다. 스페인 통치 하에서 페루는 페루 부왕령(Virreinato del Perú스페인어)이라는 명칭을 채택했으며, 페루 독립 전쟁 이후에는 페루 공화국(República Peruana스페인어)으로 불리다가, 1979년 헌법에 따라 현재의 국명인 페루 공화국(República del Perú스페인어, Piruw Ripuwlika케추아어, Piruw Suyu아이마라어)으로 확정되었다. 일본에서는 한자로 비로(秘露) 또는 평류(平柳)로 표기하기도 한다.
3. 역사
페루의 역사는 기원전부터 시작된 여러 고대 문명의 발흥과 15세기 아메리카 대륙 최대의 제국이었던 잉카 제국의 성립, 스페인 식민 통치, 그리고 독립 이후 공화국의 발전 과정으로 점철되어 있다. 각 시대는 페루의 정치, 사회, 문화에 깊은 영향을 미쳤으며, 오늘날 페루의 다층적인 정체성을 형성하는 기반이 되었다.
3.1. 선콜럼버스 시대

페루 영토에서 인간 존재의 가장 초기 증거는 우아카 프리에타 정착지에서 약 12,500년 전(기원전 10,500년경)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안데스 사회는 관개와 계단식 경작과 같은 기술을 사용하는 농업에 기반을 두었으며, 낙타과 동물 사육과 어업 또한 중요했다. 이러한 사회들은 시장이나 화폐 개념이 없었기 때문에 호혜와 재분배에 의존하여 조직되었다. 페루에서 가장 오래된 복합 사회로 알려진 카랄-수페 문명(노르테 치코 문명)은 기원전 3000년에서 1800년 사이에 태평양 연안을 따라 번성했으며, 아메리카 대륙 최초의 문명이자 세계 문명의 발상지 중 하나로 여겨진다.
이러한 초기 발전 이후에는 페루 전역의 해안과 안데스 지역을 중심으로 다양한 고고학적 문화들이 발전했다. 기원전 1000년에서 200년경 페루 태평양 연안에서 번성했던 쿠피스니케 문화는 초기 잉카 이전 문화의 한 예이다.

기원전 1500년에서 300년경에 발전한 차빈 문화는 정치적 현상이라기보다는 종교적 현상에 가까웠을 것으로 보이며, 그 종교 중심지는 차빈 데 우안타르에 있었다. 서기 1세기 초 차빈 문화가 쇠퇴한 후, 다음 천 년 동안 해안과 고원지대 모두에서 지역화되고 전문화된 여러 문화가 흥망성쇠를 거듭했다. 해안 지역에서는 파라카스 문화, 나스카 문화, 와리 문화, 그리고 더 뛰어난 치무 문화와 모체 문화가 이에 해당한다.
서기 1천년기에 절정에 달했던 모체 문화는 건조한 지형을 비옥하게 만든 관개 시스템, 정교한 도자기, 높은 건축물, 그리고 뛰어난 금속 공예로 유명했다. 치무 문화는 잉카 이전 문명의 위대한 도시 건설자들이었다. 페루 북부 해안을 따라 흩어져 있는 성벽 도시들의 느슨한 연합체로서 치무는 약 1140년부터 1450년까지 번성했다. 그들의 수도는 현재의 트루히요 외곽에 있는 찬찬이었다. 고원지대에서는 페루와 볼리비아의 티티카카 호수 근처에 있었던 티와나쿠 제국과 현재의 아야쿠초 시 근처에 있었던 와리 문화가 서기 500년에서 1000년 사이에 대규모 도시 정착지와 광범위한 국가 체제를 발전시켰다.
3.2. 잉카 제국


15세기, 잉카 제국은 강력한 국가로 부상하여 한 세기 만에 콜럼버스 이전 시대 아메리카 대륙에서 가장 큰 제국을 형성했으며 수도는 쿠스코에 두었다. 쿠스코의 잉카인들은 원래 상대적으로 작고 덜 중요한 민족 집단인 케추아족 중 하나였다. 점차적으로, 빠르면 13세기부터 그들은 주변 이웃을 확장하고 통합하기 시작했다. 잉카의 확장은 15세기 중반까지 느리게 진행되었으나, 특히 황제 파차쿠티의 통치 하에 정복 속도가 빨라지기 시작했다. 그의 통치와 그의 아들 투팍 잉카 유팡키의 통치 하에 잉카인들은 안데스 지역 대부분을 지배하게 되었으며, 900만에서 1,600만 명의 주민이 그들의 통치 하에 있었다. 파차쿠티는 또한 광대한 제국을 다스리기 위한 포괄적인 법전을 공포했으며, 웅장하게 재건된 쿠스코에서 통치하는 태양신으로서 그의 절대적인 현세적, 정신적 권위를 공고히 했다.
1438년부터 1533년까지 잉카인들은 정복에서 평화적 동화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방법을 사용하여 서부 남아메리카의 광대한 지역을 통합했다. 이 지역은 콜롬비아 남부에서 칠레 북부에 이르기까지, 서쪽의 태평양과 동쪽의 아마존 열대 우림 사이에 위치한 안데스 산맥을 중심으로 했다. 제국의 공식 언어는 케추아어였으나, 수백 개의 지역 언어와 방언이 사용되었다. 잉카인들은 자신들의 제국을 '타완틴수유'(Tawantinsuyu케추아어)라고 불렀는데, 이는 "네 개의 지역" 또는 "네 개의 연합된 주"로 번역될 수 있다. 제국 내에는 많은 지역적 숭배 형태가 지속되었으며, 대부분은 지역의 신성한 '우아카'(Huaca)와 관련이 있었다. 그러나 잉카 지도부는 태양신 인티 숭배를 장려했으며, 파차마마와 같은 다른 숭배 위에 그 주권을 강요했다. 잉카인들은 그들의 왕인 사파 잉카를 "태양의 아들"로 여겼다.

제국은 16세기 초까지 번영했지만, 어느 시점부터 유럽에서 전파된 전염병(파나마 지협을 통해 남쪽으로 전파됨)이 유행하기 시작했다. 황제 우아이나 카팍이 사망한 후, 제위 계승을 둘러싸고 키토를 기반으로 한 아타우알파와 쿠스코를 기반으로 한 그의 이복형 우아스카르 사이에 격렬한 잉카 내전(1529년-1532년)이 벌어졌다. 내전은 아타우알파의 승리로 끝났지만, 내전으로 인한 피폐함을 틈타 프란시스코 피사로가 이끄는 스페인의 콘키스타도르들이 파나마에서 페루 북부 해안으로 상륙하여 잉카 제국을 침략했다. 정복자들은 찬카족, 우앙카족, 카냐리족, 차차포야스족 등의 원주민 보조 부대의 지원을 받아 카하마르카 전투에서 아타우알파 황제를 패배시키고 생포했다. 수년간의 예비 탐사와 군사적 충돌 끝에, 이는 수십 년간의 전투로 이어졌지만 결국 스페인의 승리와 페루 부왕령으로 알려진 지역의 식민지화로 끝났다. 당시 '왕들의 도시'(La Ciudad de los Reyes스페인어)로 알려진 리마가 수도가 되었다. 페루 정복은 부왕령 전역에 걸친 파생 작전과 아마존 분지로의 원정으로 이어졌으며, 스페인은 원주민 저항을 진압하려 했다. 1533년, 스페인인들은 잉카 제13대 황제 아타우알파를 교수형에 처했고, 안데스를 지배하던 제국으로서의 잉카 제국은 사실상 붕괴했다. 프란시스코 피사로는 1534년에 리마 시를 건설했고, 이후 이 해안 도시가 이전까지 번영했던 쿠스코를 대신하여 페루의 중심지가 되었다. 마지막 잉카 저항은 1572년 스페인인들이 빌카밤바에 있던 신잉카국을 섬멸하면서 진압되었고, 마지막 황제 투팍 아마루 1세가 체포되어 처형되면서 잉카 제국은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3.3. 스페인 식민 시대

스페인 식민 통치 하에서 페루는 남아메리카 전체를 관할하던 페루 부왕령의 중심지가 되었으며, 수도는 고산 지대의 쿠스코에서 태평양 연안의 리마로 이전되었다. 금, 은과 같은 광물 자원의 채굴이 종주국 스페인에 의해 대대적으로 이루어졌으며, 특히 포토시(현재 볼리비아)와 우앙카벨리카의 거대한 은광과 금광이 발견되면서 페루 부왕령은 중요한 광물 자원 공급지로 번영했다. 페루의 귀금속은 스페인 왕실의 주요 수입원이 되었고, 유럽과 필리핀까지 확장되는 복잡한 무역망의 자금줄 역할을 했다. 아카풀코를 경유하는 마닐라 갈레온 무역을 통해 라틴 아메리카와 아시아 간의 상업 및 인구 교류가 이루어졌으며, 페루의 카야오는 아메리카 대륙에서 이 무역로의 가장 먼 종착점이었다. 이와 관련하여 파나마 총독이었던 돈 세바스티안 우르타도 데 코르쿠에라는 페루 군인과 식민지 주민들을 동원하여 필리핀의 삼보앙가 시를 건설하기도 했다.
원주민 인구는 스페인인들이 들여온 전염병, 착취, 사회경제적 변화로 인해 급격히 감소했다. 부왕 프란시스코 데 톨레도는 1570년대에 페루를 재조직하여 금은 채굴을 주요 경제 활동으로 삼고, 미타 제도에 따른 원주민 강제 노동을 주요 노동력으로 활용했다. 아프리카 노예들이 노동 인구에 추가되어 노동력을 확장했다. 식민 행정 기구와 관료제의 확장도 경제 재편과 병행하여 이루어졌다.
정복과 함께 남아메리카에 기독교가 전파되기 시작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강제로 가톨릭으로 개종했으며, 스페인 성직자들은 영국 식민지의 청교도 성직자들처럼 원주민들이 "악마에 의해 타락했고, 악마가 그들을 통해" 그들의 기반을 "좌절시키려 한다"고 믿었다. 인구를 개종시키는 데는 한 세대밖에 걸리지 않았다. 스페인인들은 모든 도시에 교회를 세우고 쿠스코의 코리칸차와 같은 일부 잉카 신전을 교회로 대체했다. 교회는 새로 개종한 가톨릭 신자들이 다른 종교나 신앙으로 이탈하지 않도록 고문을 사용하는 종교 재판을 시행했으며, 수도원 학교를 통해 특히 잉카 귀족과 상류층의 소녀들을 교육하여 "수녀가 되거나 수도원을 떠나 아버지가 페루에 세우려던 기독교 사회에서 자신의 역할('estado')을 맡을 수 있을 만큼 나이가 들 때까지" 가르쳤다. 페루의 가톨릭은 많은 라틴 아메리카 국가에서 발견되는 혼합주의를 따르며, 토착 종교 의식이 기독교 축하 행사와 통합되었다. 이러한 노력 속에서 교회는 원주민의 문화 변용에 중요한 역할을 하여 그들을 스페인 정착민의 문화권으로 끌어들였다.

18세기경, 은 생산량 감소와 경제 다변화로 인해 왕실 수입이 크게 줄어들었다. 이에 대응하여 스페인 왕실은 세금을 인상하고 부왕령을 분할하는 일련의 칙령인 부르봉 개혁을 단행했다. 새로운 법은 투팍 아마루 2세의 반란과 그 외 여러 반란을 촉발시켰으나, 모두 진압되었다. 이러한 변화와 기타 요인들로 인해 스페인인들과 그들의 크리올로 후계자들은 토지를 독점적으로 통제하게 되었고, 대규모 원주민 인구 감소로 버려진 많은 최상의 토지를 장악했다. 그러나 스페인인들은 포르투갈의 브라질 식민지화가 토르데시야스 조약의 경계선을 넘어 확장되는 것을 막지 못했다. 토르데시야스 조약은 1580년부터 1640년까지 스페인이 포르투갈을 지배했던 이베리아 연합 시기에는 의미가 없었다. 스페인과의 소통과 무역을 용이하게 할 필요성으로 인해 부왕령이 분할되고, 페루 부왕령의 영토를 희생하여 누에바그라나다 부왕령과 리오데라플라타 부왕령이 신설되었다. 이는 부왕령 수도로서의 리마의 권력, 명성, 중요성을 감소시켰고, 수익성이 높은 안데스 무역을 부에노스아이레스와 보고타로 이전시켰으며, 광업과 직물 생산의 몰락은 페루 부왕령의 점진적인 쇠퇴를 가속화했다.
결국, 19세기 초 국가 독립 운동의 도전에 직면하면서 부왕령은 대부분의 스페인 제국과 마찬가지로 해체되었다. 이러한 운동은 한때 페루 부왕령을 구성했던 영토에 오늘날 남아메리카 대부분의 현대 국가를 형성하는 결과를 낳았다. 정복과 식민 통치는 스페인인들이 페루 영토를 정복하기 전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문화와 민족의 혼합을 가져왔다. 많은 잉카 전통이 상실되거나 희석되었지만, 새로운 관습, 전통, 지식이 추가되어 풍부하고 혼합된 페루 문화를 창조했다. 스페인에 대항한 가장 중요한 원주민 반란 중 두 가지는 1742년 후안 산토스 아타우알파의 반란과 1780년 쿠스코 인근 고원지대에서 일어난 투팍 아마루 2세의 반란이었다.
3.4. 독립

19세기 초, 대부분의 남아메리카 국가들이 독립 전쟁의 열풍에 휩싸였을 때, 페루는 왕당파의 강력한 거점으로 남아 있었다. 페루 엘리트 계층이 해방과 스페인 왕정에 대한 충성 사이에서 동요하는 가운데, 호세 데 산 마르틴과 시몬 볼리바르의 군사 작전에 의한 점령 이후에야 페루 독립이 달성되었다.
경제 위기, 유럽에서의 스페인 세력 약화, 북아메리카의 독립 전쟁, 그리고 원주민 봉기는 남아메리카의 크리올로 주민들 사이에 해방 사상이 발전하는 데 유리한 환경을 조성했다. 그러나 페루의 크리올로 과두제는 특권을 누리며 스페인 왕실에 충성을 유지했다. 해방 운동은 아르헨티나에서 시작되었으며, 스페인 정부가 식민지에 대한 권위를 상실한 결과로 자치 정부(juntas)가 만들어졌다.
리오데라플라타 부왕령의 독립을 위해 싸운 후, 호세 데 산 마르틴은 안데스군을 창설하고 21일 만에 안데스 산맥 횡단에 성공했다. 칠레에 도착한 그는 칠레 육군 장군 베르나르도 오이긴스와 합류하여 1818년 차카부코 전투와 마이푸 전투에서 칠레를 해방시켰다. 1820년 9월 7일, 8척의 군함으로 구성된 함대가 산 마르틴 장군과 칠레 해군에서 복무 중이던 토머스 코크레인의 지휘 하에 파라카스 항구에 도착했다. 즉시 10월 26일, 그들은 피스코 마을을 장악했다. 산 마르틴은 11월 12일 우아초에 정착하여 본부를 설치했고, 코크레인은 북쪽으로 항해하여 리마의 카야오 항구를 봉쇄했다. 동시에 북쪽에서는 과야킬이 그레고리오 에스코베도 지휘 하의 반란군에게 점령당했다. 페루가 남아메리카에서 스페인 정부의 거점이었기 때문에, 산 마르틴의 페루 해방 전략은 외교를 이용하는 것이었다. 그는 리마에 대표단을 보내 페루 부왕에게 독립을 승인할 것을 촉구했으나, 모든 협상은 실패로 돌아갔다.

페루 부왕 호아킨 데 라 페수엘라는 호세 데 라 세르나를 충성파 군대의 총사령관으로 임명하여 산 마르틴의 침공 위협으로부터 리마를 방어하도록 했다. 1월 29일, 데 라 세르나는 데 라 페수엘라에 대항하여 쿠데타를 일으켰고, 이는 스페인으로부터 인정받아 페루 부왕으로 임명되었다. 이러한 내부 권력 투쟁은 해방군의 성공에 기여했다. 군사적 대결을 피하기 위해 산 마르틴은 새로 임명된 부왕 호세 데 라 세르나를 만나 입헌군주제 창설을 제안했으나 거절당했다. 데 라 세르나는 도시를 버리고 떠났고, 1821년 7월 12일 산 마르틴은 리마를 점령하고 7월 28일 페루의 독립을 선포했다. 그는 최초의 페루 국기를 만들었다. 알토페루(현재의 볼리비아)는 3년 후 시몬 볼리바르의 군대가 해방시킬 때까지 스페인의 거점으로 남아 있었다. 호세 데 산 마르틴은 페루의 보호자로 선포되었다. 페루의 국가 정체성은 이 시기에 형성되었는데, 라틴 아메리카 연방을 위한 볼리바르의 계획이 좌절되고 페루-볼리비아 연합과의 통합이 단명으로 끝났기 때문이다.
시몬 볼리바르는 북쪽에서 캠페인을 시작하여 1821년 카라보보 전투와 1년 후 피친차 전투에서 누에바그라나다 부왕령을 해방시켰다. 1822년 7월, 볼리바르와 산 마르틴은 과야킬 회담에서 만났다. 볼리바르는 페루를 완전히 해방시키는 임무를 맡았고, 산 마르틴은 첫 의회가 구성된 후 정치에서 은퇴했다. 새로 창설된 페루 공화국 의회는 볼리바르를 페루의 독재자로 임명하여 군대를 조직할 권한을 부여했다.
안토니오 호세 데 수크레의 도움으로 그들은 1824년 8월 6일 후닌 전투와 같은 해 12월 9일 결정적인 아야쿠초 전투에서 더 큰 스페인 군대를 격파하여 페루와 알토페루의 독립을 공고히 했다. 알토페루는 나중에 볼리비아로 건국되었다. 공화국 초기에는 군 지도자들 간의 고질적인 권력 투쟁으로 정치적 불안정이 야기되었다.
3.5. 19세기
독립이 선포된 후, 산 마르틴은 1821년 8월 3일 공포된 법령에 따라 보호자라는 칭호 아래 페루 자유 주의 군사-정치 지휘권을 장악했다. 보호령의 사업은 국립 도서관 설립(지식 증진을 위해), 국가 승인, 미타제 폐지(원주민을 위해)에 기여했다. 1821년 12월 27일, 산 마르틴은 세 개의 부처를 창설했다: 후안 가르시아 델 리오에게 맡겨진 국무외교부, 베르나르도 데 몬테아구도에게 맡겨진 전쟁해군부, 이폴리토 우나누에에게 맡겨진 재무부.
1840년대부터 1860년대까지 페루는 라몬 카스티야 대통령 재임 기간 동안 구아노 수출로 인한 국가 수입 증가를 통해 안정기를 누렸다. 1864년, 스페인 원정대가 친차 제도(구아노 생산지)를 점령하면서 페루 국내 정치에 큰 영향을 미치는 국제적 사건이 발생했고, 이는 후안 안토니오 페세트 대통령에 대한 쿠데타와 마리아노 정부의 수립으로 이어졌다. 페루는 볼리비아, 칠레, 에콰도르의 도움을 받아 스페인에 선전포고를 했다. 1866년 5월 2일 카야오 전투 이후 스페인 해군은 페루에서 철수했다. 호세 발타 정부는 중앙 철도 건설과 같은 인프라 사업에 막대한 투자를 했지만, 정부 지출 과잉의 첫 징후가 이미 감지되고 있었다. 1870년대에는 구아노 자원이 고갈되었고, 국가는 막대한 부채를 안게 되었으며, 정치적 내분이 다시 고조되었다.

1859년까지 약 41,000명의 페루인이 1829년 이후 나라를 뒤흔든 끊임없는 내전으로 사망했다. 구아노 판매 수익 덕분에 페루는 철도와 같은 다양한 공공 사업으로 현대화되기 시작했다. 민간 및 군 관료 조직이 성장했고, 원주민은 공물 납부를 중단했으며 노예는 자유를 얻었다. 독일인, 오스트리아인, 아일랜드인, 이탈리아인의 이민 정책이 시작되었다.
1879년 4월 5일, 칠레는 페루에 선전포고를 하여 태평양 전쟁을 촉발했다. 전쟁의 명분은 볼리비아와 칠레 간의 세금 문제 대립이었는데, 페루는 1873년 볼리비아와 체결한 방위 동맹 조약으로 인해 이 문제에 연루되었다. 그러나 페루 역사학계는 이 전쟁의 근본 원인이 페루 남부의 질산염과 구아노 영토를 장악하려는 칠레의 야심이었다는 데 만장일치로 동의한다. 전쟁 초기 해전 단계에서 페루 해군은 1879년 10월 8일까지 칠레의 공격을 격퇴했다. 이날 앙가모스 해전이 벌어졌는데, 칠레 해군의 코크레인, 블랑코 엔칼라다, 로아, 코바동가 함이 페루 해군의 주력함인 우아스카르 모니터함을 포위했다. 우아스카르 함은 제독 AP 미겔 그라우가 지휘했으며, 그는 이 전투에서 전사하여 이후 페루의 위대한 영웅이 되었다.
1879년 페루는 태평양 전쟁에 참전하여 1884년까지 지속되었다. 볼리비아는 칠레에 대항하여 페루와의 동맹을 발동했다. 페루 정부는 칠레 정부와 협상하기 위해 외교단을 파견하여 분쟁을 중재하려 했으나, 위원회는 전쟁이 불가피하다고 결론 내렸다. 페루 역사학은 이 전쟁의 근본 원인이 페루 남부와 볼리비아의 질산염 및 구아노 영토를 장악하려는 칠레의 야심이었다는 데 만장일치로 동의한다.

전쟁 초기 해전 단계에서 페루 해군은 1879년 10월 8일까지 칠레의 공격을 격퇴했다. 이날 앙가모스 해전이 벌어졌는데, 칠레 해군의 코크레인, 블랑코 엔칼라다, 로아, 코바동가 함이 페루 해군의 주력함인 우아스카르 모니터함을 포위했다. 우아스카르 함은 제독 AP 미겔 그라우가 지휘했으며, 그는 이 전투에서 전사하여 이후 페루의 위대한 영웅이 되었다. 거의 5년에 걸친 전쟁은 아타카마 지역의 타라파카 주와 타크나 주, 아리카 주의 상실로 끝났다. 프란시스코 볼로그네시와 미겔 그라우 세미나리오는 모두 전쟁의 유명한 영웅이다. 원래 칠레는 아리카와 타크나 시에 대해 몇 년 후 국민투표를 실시하여 국가 귀속을 자결하도록 약속했다. 그러나 칠레는 조약 적용을 거부했고, 양국 모두 법적 틀을 결정할 수 없었다. 태평양 전쟁은 페루가 치른 전쟁 중 가장 많은 피를 흘린 전쟁이었다. 태평양 전쟁 이후, 재건을 위한 특별한 노력이 시작되었다. 정부는 전쟁 피해를 복구하기 위해 여러 사회 경제적 개혁을 시작했다. 정치적 안정은 1900년대 초에야 달성되었다.
3.6. 20세기


전쟁 후 내부 투쟁에 이어 시빌리스타당 하에서 안정기가 지속되었으나, 아우구스토 B. 레기아의 권위주의 정권이 시작되면서 끝났다. 대공황은 레기아의 몰락, 새로운 정치적 혼란, 그리고 아메리카 혁명인민동맹(APRA)의 등장을 야기했다. 이 조직과 엘리트 및 군부 연합 간의 경쟁은 이후 30년 동안 페루 정치를 규정했다. 1929년 페루와 칠레 사이에 체결된 최종 평화 조약인 리마 조약은 타크나를 페루에 반환했다. 1932년에서 1933년 사이 페루는 아마소나스 주와 그 수도 레티시아를 둘러싼 영토 분쟁으로 콜롬비아와 1년간의 전쟁에 휘말렸다.
1941년 페루와 에콰도르는 에콰도르-페루 전쟁을 치렀고, 그 후 리우 의정서는 양국 간의 국경을 공식화하려 했다. 1948년 10월 29일 군사 쿠데타로 마누엘 A. 오드리아 장군이 대통령이 되었다. 오드리아의 대통령 임기는 '오체니오'(Ochenio스페인어, 8년 통치)로 알려져 있다. 그는 APRA를 강력히 탄압하여 과두정치와 우익 세력을 일시적으로 만족시켰으나, 가난한 사람들과 하층 계급에게 큰 호응을 얻은 포퓰리즘적 정책을 따랐다. 번영하는 경제는 그가 값비싸지만 대중의 환심을 사는 사회 정책을 펼 수 있게 해주었다. 그러나 동시에 시민적 및 정치적 권리는 심각하게 제한되었고 그의 정권 전반에 걸쳐 부패가 만연했다. 오드리아의 뒤를 마누엘 프라도 우가르테체가 이었으나, 광범위한 부정 선거 의혹으로 페루 군부는 프라도를 축출하고 리카르도 페레스 고도이가 이끄는 쿠데타를 통해 군사 평의회를 설치했다. 고도이는 단기 과도 정부를 운영하고 1963년 새로운 선거를 실시하여 페르난도 벨라운데 테리가 승리하여 1968년까지 대통령직을 맡았다. 벨라운데는 민주적 절차에 대한 헌신으로 인정받았다.
1968년 10월 3일, 후안 벨라스코 알바라도 장군이 이끄는 장교 그룹에 의한 또 다른 쿠데타로 군부가 권력을 장악했다. 이들은 CEPAL(라틴아메리카 경제위원회)의 종속 및 저개발 이론에 영향을 받아 "사회 발전과 통합 개발"이라는 민족주의적이고 개혁적인 교리를 적용하는 것을 목표로 했다. 쿠데타 6일 후, 벨라스코는 페루 석유를 착취하던 북미 회사인 인터내셔널 페트롤리엄 코퍼레이션(IPC)을 국유화하고 국가 기구 개혁과 농지 개혁을 단행했다. 이는 라틴 아메리카에서 시행된 가장 큰 농지 개혁으로, 대토지 소유제(라티푼디움)를 폐지하고 토지의 보다 공평한 재분배(농민의 90%가 협동조합 또는 사회적 이익을 위한 농업 협회를 구성)를 통해 농업을 현대화했다. 토지는 경작자에게 소유되어야 하며 대지주는 수용되었다. 유일하게 허용된 대규모 소유는 협동조합이었다. 1969년에서 1976년 사이, 325,000 가구가 국가로부터 평균 73.6 acre의 토지를 받았다. "혁명 정부"는 또한 교육에 대한 대규모 투자를 계획하고, 인구의 거의 절반이 사용하지만 그때까지 당국에 의해 경멸받던 케추아어를 스페인어와 동등한 지위로 격상시켰으며, 사생아에 대한 동등한 권리를 확립했다. 페루는 모든 종속으로부터 해방되기를 원했고 제3세계 외교 정책을 수행했다. 미국은 상업적, 경제적, 외교적 압력으로 대응했다. 1973년 페루는 농업 및 광업 개발 정책 자금을 조달하기 위해 국제 개발 은행으로부터 대출을 협상함으로써 워싱턴이 부과한 금융 봉쇄를 극복하는 것처럼 보였다. 칠레와의 관계는 피노체트 장군의 쿠데타 이후 매우 긴장되었다. 에드가르도 메르카도 하린 장군(총리 겸 육군 총사령관)과 기예르모 파우라 가이그 제독(해군 장관)은 모두 몇 주 간격으로 암살 시도에서 벗어났다. 1975년 프란시스코 모랄레스 베르무데스 세루티 장군이 권력을 장악하고 전임자의 정책과 결별했다. 그의 정권은 때때로 다른 아메리카 군사 독재 정권과 협력하여 콘도르 작전에 참여했다.
알란 가르시아 대통령의 경제 정책은 페루를 국제 시장에서 더욱 멀어지게 하여 국가에 대한 외국인 투자를 감소시켰다. 국가가 만성적인 인플레이션을 겪은 후, 1985년 중반 페루 솔은 잉티로 대체되었고, 잉티 자체는 1991년 7월 누에보 솔로 대체되었다 (누에보 솔은 10억 구 솔의 누적 가치를 가졌다). 1980년대 말 페루인의 1인당 연간 소득은 720달러(1960년 수준 이하)로 떨어졌고 페루의 GDP는 20% 감소했으며 국가 준비금은 9억 달러의 적자를 기록했다. 당시의 경제적 혼란은 페루의 사회적 긴장을 악화시켰고, 센데로 루미노소(빛나는 길)와 MRTA과 같은 폭력적인 농촌 반군 운동의 부상에 부분적으로 기여하여 전국에 걸쳐 큰 혼란을 야기했다.

페루 군부는 가르시아 행정부가 국가 위기를 처리하지 못하는 것에 좌절하여, 가난하고 토착적인 페루인들에 대한 대량 학살, 페루 언론 통제 또는 검열, 그리고 군사 평의회가 통제하는 신자유주의 경제 수립을 포함하는 녹색 계획(Plan Verde)을 입안했다. 국가정보국(SIN) 국장 로스피글리오시에 따르면, 후지모리가 취임하기 전에 후지모리, 블라디미로 몬테시노스, 그리고 녹색 계획에 관련된 일부 군 장교들 사이에 군의 요구를 준수하기로 하는 양해가 이루어졌다. 후지모리는 녹색 계획에 명시된 많은 정책을 채택했으며, 이로 인해 1990년 초 7,650%였던 인플레이션율이 1991년 139%, 1992년 57%로 급격히 하락했다. 후지모리가 개혁 노력에 반대에 직면하자, 그는 의회를 해산하고, 사법부를 정지시키고, 여러 야당 지도자를 체포하고, 1992년 4월 5일의 아우토골페("셀프 쿠데타")에서 전권을 장악했다. 그 후 그는 헌법을 개정하고, 새로운 의회 선거를 실시하고, 수많은 국영 기업의 민영화, 투자 친화적인 환경 조성, 건전한 경제 관리 등 실질적인 경제 개혁을 시행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정책들은 가장 가난한 사람들에게 많은 혜택을 주지 못했고, 후지모리의 경제적 성과에도 불구하고 불평등은 지속되었다.
후지모리 행정부는 반군 단체들, 특히 1980년대와 1990년대 내내 전국적으로 공격을 감행한 빛나는 길에 의해 시달렸다. 후지모리는 반군을 강력히 단속하여 1990년대 말까지 대체로 진압하는 데 성공했지만, 이 싸움은 페루 보안군과 반군 양측이 저지른 잔학 행위로 얼룩졌다. 정부 준군사 조직에 의한 바리오스 알토스 학살과 라 칸투타 학살, 빛나는 길에 의한 타라타 폭탄 테러와 프레쿠엔시아 라티나 폭탄 테러 등이 그 예이다. 후지모리는 또한 가능한 한 많은 행동을 범죄화하여 좌익 정치 반대파를 박해하기 위해 테러리즘의 정의를 확대했다. 반대파를 테러리즘으로 비난하는 데 사용된 공포 조장 전술인 테루케오를 사용하여, 후지모리는 자신을 영웅으로 묘사함으로써 개인숭배를 확립하고 좌익 이념을 페루의 영원한 적으로 만들었다. 이러한 사건들은 이후 폭력의 마지막 몇 년 동안 저질러진 인권 침해를 상징하게 되었다. 그의 국가 인구 계획(Programa Nacional de Población)은 또한 최소 30만 명의 가난하고 토착적인 여성들에 대한 강제 불임 시술을 초래했다.
1995년 초, 페루와 에콰도르는 다시 한번 세네파 전쟁에서 충돌했지만, 1998년 양국 정부는 국경을 명확히 구분하는 평화 조약을 체결했다. 2000년 11월, 후지모리는 사임하고 자진 망명하여 처음에는 새로운 페루 당국에 의한 인권 침해 및 부패 혐의에 대한 기소를 피했다.
3.7. 21세기

21세기 초 페루는 경제 성장을 유지하면서 부패와 싸우려 노력했지만, 후지모리주의는 후지모리와 그의 지지자들이 야당 참여 없이 작성한 1993년 헌법에서 만들어진 제도와 법률에 대한 통제권을 유지함으로써 페루 사회의 많은 부분을 장악했다. 반란 시기 이후 인권 상황이 진전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많은 문제들이 여전히 가시적이며 페루 분쟁의 폭력을 겪은 사람들의 지속적인 소외를 보여준다. 발렌틴 파니아과가 주재한 임시 정부는 새로운 대통령 및 의회 선거를 실시하는 책임을 맡았다. 그 후 알레한드로 톨레도가 2001년부터 2006년까지 대통령이 되었다. 2006년 7월 28일, 전 대통령 알란 가르시아가 2006년 선거에서 승리한 후 페루 대통령이 되었다. 2006년 알베르토 후지모리의 딸 케이코 후지모리는 아버지의 유산을 이어받고 후지모리주의를 표방하기 위해 페루 정치 무대에 진출했다. 2008년 5월, 페루는 남아메리카 국가 연합의 회원국이 되었다. 2009년 4월, 전 대통령 알베르토 후지모리는 1990년대 좌익 게릴라와의 전투 중 정부의 콜리나 그룹 암살단에 의한 살인 및 납치 사건에서의 역할로 인권 침해 유죄 판결을 받고 25년형을 선고받았다.
오얀타 우말라, 페드로 파블로 쿠чин스키, 마르틴 비스카라 대통령 재임 기간 동안, 케이코 후지모리가 이끄는 우익 의회는 대통령들이 수행한 많은 조치를 방해했다. 2011년 6월 5일 오얀타 우말라가 대통령으로 선출되었고, 그의 내각은 후지모리주의 의회에 의해 성공적으로 해임되었다. 페드로 파블로 쿠чин스키부터 시작하여 의회는 1993년 페루 헌법의 광범위하게 해석된 탄핵 문구를 사용하여 정당한 사유 없이 대통령을 탄핵할 수 있게 했고, 이는 대통령에게 압력을 가하여 그가 2018년 행정부를 둘러싼 여러 논란 속에서 사임하도록 강요했다. 부통령 마르틴 비스카라는 2018년 3월에 취임하여 반부패 헌법 국민투표 운동을 이끌면서 대체로 높은 지지율을 얻었다. 코로나19 범유행으로 페루는 세계에서 가장 높은 코로나19 사망률을 기록했으며, 후지모리 행정부 이후 지속된 많은 불평등을 드러냈고, 의회에 의한 비스카라 대통령 해임으로 이어진 경제 위기를 촉발했다. 의회에 의한 쿠데타로 널리 여겨졌던 그의 해임 이후, 의회 의장이자 새로 취임한 마누엘 메리노 대통령은 전국적인 시위에 직면했고, 5일 후 메리노는 대통령직에서 사임했다. 메리노의 뒤를 이어 프란시스코 사가스티 대통령이 취임하여 임시 중도 정부를 이끌고 비스카라의 이전 정책 대부분을 시행했다. 2021년 총선이 4월 11일에 실시되었고, 자유 페루당의 페드로 카스티요가 1차 투표에서 승리했으며, 케이코 후지모리가 그 뒤를 바짝 쫓았고, 후지모리와 동맹을 맺은 우익 정당들이 의회에서 의석을 유지했다.
2021년 7월 28일, 페드로 카스티요는 치열하게 경쟁한 결선 투표에서 근소한 차이로 승리한 후 페루의 새 대통령으로 취임했다. 같은 해 페루는 독립 200주년을 기념했다. 카스티요는 재임 기간 동안 우익이 장악한 의회로부터 여러 차례 탄핵 투표에 직면했고, 2022년 12월 7일 의회가 세 번째 탄핵 절차를 시작하기 몇 시간 전에 카스티요는 야당이 장악한 입법부를 해산하고 "예외적 비상 정부"를 만들려고 시도함으로써 이를 막으려 했다. 이에 대응하여 의회는 같은 날 긴급 회의를 열어 찬성 101표, 반대 6표(기권 10표)로 카스티요를 해임하고 부통령 디나 볼루아르테로 교체하기로 의결했다. 그녀는 페루 최초의 여성 대통령이 되었다. 카스티요는 멕시코 대사관으로 도피하려다 체포되어 반란죄로 기소되었다.
볼루아르테 정부는 우익 의회 및 군부와 동맹을 맺고 유권자들을 배신하면서 인기를 얻지 못했다. 이러한 분노는 볼루아르테와 의회 해임, 즉각적인 총선, 새 헌법 제정을 요구하는 2022-2023년 페루 정치 시위로 이어졌다. 당국은 시위에 폭력적으로 대응했으며, 이 시기에 아야쿠초 학살과 훌리아카 학살이 발생하여 20여 년 만에 국가에서 가장 심각한 폭력을 겪었다. 리마 정치 엘리트들의 강력한 대응은 그들이 권위주의 또는 민군 정부를 수립하려 한다는 우려를 불러일으켰다.
4. 지리

페루는 남아메리카 중서부 태평양 연안에 위치하고 있다. 국토 전체가 남반구에 속하며, 최북단은 적도에서 남쪽으로 위도 1.8분, 약 3.3 km 지점까지 이른다. 면적은 128.52 만 km2으로 남아메리카 서부에 해당한다. 북쪽으로는 에콰도르와 콜롬비아, 동쪽으로는 브라질, 남동쪽으로는 볼리비아, 남쪽으로는 칠레와 국경을 접하고, 서쪽으로는 태평양에 면한다. 안데스 산맥은 태평양과 평행하게 뻗어 있으며, 전통적으로 페루를 지리적으로 묘사하는 데 사용되는 세 지역을 구분한다.

서쪽의 코스타(해안)는 계절성 강으로 형성된 계곡을 제외하고는 대체로 건조한 좁은 평원이다. 시에라(고원)는 안데스 산맥 지역으로, 알티플라노 고원과 페루 최고봉인 6768 m 높이의 우아스카란 산을 포함한다. 세 번째 지역은 셀바(정글)로, 동쪽으로 뻗어 있는 아마존 열대우림으로 덮인 넓고 평평한 지형이다. 국토 면적의 거의 60%가 이 지역에 위치한다.

페루에는 54개의 수계 분지가 있으며, 그중 52개는 태평양으로 물을 방류하는 작은 해안 분지이다. 나머지 두 개는 내륙 유역인 티티카카 호 분지와 대서양으로 흘러드는 아마존 분지이다. 이 두 분지 모두 안데스 산맥으로 경계가 정해진다. 아마존 분지는 특히 주목할 만한데, 길이가 6872 km로 세계에서 가장 긴 강인 아마존 강의 발원지이며 페루 영토의 75%를 차지한다. 페루는 지구 담수량의 4%를 보유하고 있다.

대부분의 페루 강은 안데스 산맥의 봉우리에서 발원하여 세 개의 배수 분지 중 하나로 흘러 들어간다. 태평양으로 흘러드는 강들은 가파르고 짧으며, 간헐적으로만 흐른다. 아마존 강의 지류들은 훨씬 더 큰 유량을 가지며, 시에라를 벗어나면 더 길고 덜 가파르다. 티티카카 호수로 흘러드는 강들은 일반적으로 짧고 유량이 많다. 페루의 가장 긴 강들은 우카얄리 강, 마라뇬 강, 푸투마요 강, 야바리 강, 우아야가 강, 우루밤바 강, 만타로 강, 그리고 아마존 강이다.


페루에서 가장 큰 호수는 안데스 산맥 고지대에 페루와 볼리비아 사이에 위치한 티티카카 호수이며, 남아메리카에서도 가장 큰 호수이다. 페루의 해안 지역에 있는 가장 큰 저수지들은 포에초스, 티나호네스, 산 로렌소, 엘 프라일레 저수지이다.
4.1. 기후
페루는 전적으로 열대에 위치하지만, 열대 위도, 산맥, 지형 변화, 그리고 두 개의 해류(훔볼트 해류와 엘니뇨)의 조합으로 인해 페루는 매우 다양한 기후를 가지고 있다. 페루의 해발 고도는 -37 m에서 6778 m 범위에 있으며, 연간 강수량은 사막 지역에서는 20 mm 미만에서 열대 우림 지역에서는 8000 mm 이상까지 다양하다.
지리적 특성으로 인해 페루는 세 가지 주요 기후로 나눌 수 있다. 끊임없이 이어지는 비교적 좁은 해안 지역은 온화한 기온, 낮은 강수량, 높은 습도를 특징으로 하며, 더 따뜻하고 습한 북부 지역은 예외이다. 국토의 거의 3분의 1을 차지하는 산악 지역은 여름에 비가 잦으며, 고도가 높아질수록 기온과 습도가 감소하여 안데스 산맥의 얼어붙은 봉우리에 이른다. 페루 전체 면적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페루 아마존은 폭우와 고온을 특징으로 하며, 가장 남쪽 부분은 추운 겨울과 계절적 강우를 보인다.
4.2. 자연 환경 및 생태계

다양한 지리와 기후 덕분에 페루는 높은 생물 다양성을 자랑하며, 2003년 기준으로 21,462종의 동식물이 보고되었고 그중 5,855종이 고유종이다. 페루는 생물다양성 거대국가 중 하나이다.
페루에는 1,800종 이상의 조류(120종 고유종), 500종 이상의 포유류, 300종 이상의 파충류, 1,000종 이상의 담수어가 서식한다. 수백 종의 포유류에는 퓨마, 재규어, 안경곰과 같은 희귀종이 포함된다. 페루의 조류는 경제적으로 중요한 수출품인 다량의 구아노를 생산한다. 태평양에는 농어, 넙치, 멸치, 참치, 갑각류, 조개류가 풍부하며, 많은 상어, 향유고래, 고래의 서식지이다. 무척추동물 동물상은 훨씬 덜 조사되었지만, 적어도 딱정벌레(Coleoptera)는 미국 네브래스카 대학교의 캐롤라인 S. 차부가 이끄는 "페루의 딱정벌레" 프로젝트에서 조사되었으며, 이를 통해 페루에서 12,000종 이상이 기록되었고 많은 신종이 발견되었다.
페루는 또한 식물상도 마찬가지로 다양하다. 해안 사막은 언덕진 안개 오아시스와 독특한 식물 생명을 담고 있는 강 계곡을 제외하고는 선인장 외에는 거의 생산하지 못한다. 푸나 초원으로 알려진 수목 한계선 위의 고원지대는 관목, 선인장, 이추와 같은 가뭄에 강한 식물, 그리고 가장 큰 브로멜리아드 종인 장관을 이루는 푸야 라이몬디의 서식지이다. 안데스 산맥의 운무림 사면은 이끼, 난초, 브로멜리아드를 지탱하며, 아마존 열대우림은 다양한 나무와 수관 식물로 유명하다. 페루는 2019년 산림 경관 보전 지수 평균 점수가 8.86/10으로, 172개국 중 세계 14위를 차지했다.
5. 정부와 정치

페루는 다당제를 채택한 단일 준대통령제 공화국이다. 페루는 1993년 헌법에 따라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유지해 왔으며, 이 헌법은 대통령에게 더 많은 권한을 부여하기 위해 연방제로 기울었던 이전 헌법을 대체했다. 또한 페루는 중앙 정부가 가장 큰 권력을 보유하고 행정 구역을 만들 수 있는 단일 국가이다. 페루의 정부 체제는 미국의 정치 체제(성문 헌법, 자치적인 대법원, 대통령제)와 중화인민공화국의 정치 체제(단원제 의회, 총리 및 부처 제도)에서 파생된 요소들을 결합한 형태이다.
페루 정부는 다음과 같이 세 개의 부서로 분리되어 있다:
- 입법부: 페루 공화국 의회는 단원제로, 인구 비례에 따라 선출된 130명의 의원, 의회 의장, 상임위원회로 구성된다.
- 행정부: 대통령, 실질적으로 국내 입법을 통제하고 대통령의 내각 역할을 하는 각료회의(총리 및 18명의 국무 장관으로 구성)
- 사법부: 페루 대법원(리마 왕립 아우디엔시아로도 알려짐)은 대법원장을 포함한 18명의 판사, 28개의 고등법원, 195개의 1심 법원, 1,838개의 지방법원으로 구성된다.
헌법에 따라 페루 대통령은 국가원수이자 정부수반이며, 임기는 5년이고 즉각적인 연임은 불가능하다. 대통령은 각료회의에 18개 부처 장관(총리 포함)을 임명한다. 헌법은 총리에게 최소한의 권한만을 부여하며, 총리는 장관들이 대통령에게 자문하는 내각 회의를 주재하고 행정부 대변인 역할을 한다. 대통령은 또한 페루 의회에 신임 문제를 제기할 수 있으며, 결과적으로 의회 해산을 명령할 수 있다. 이는 1992년 알베르토 후지모리와 2019년 마르틴 비스카라에 의해 실행된 바 있다.

페루 공화국 의회는 25개 행정 구역에서 각 지역 인구에 따라 선출된 130명의 의원으로 구성되며, 임기는 5년이다. 법안은 행정부와 입법부에 의해 제안되며, 의회에서 과반수 찬성으로 통과되어 법률이 된다. 사법부는 명목상 독립되어 있으나, 역사적으로 사법 문제에 대한 정치적 개입이 빈번했다. 페루 의회는 또한 불신임 동의를 가결하고, 장관을 문책하며, 탄핵을 발의하고 행정부 관료를 유죄 판결할 수 있다. 페루 1993년 헌법의 광범위하게 해석된 탄핵 조항으로 인해, 입법부는 정당한 사유 없이 대통령을 탄핵할 수 있어 사실상 행정부가 의회에 종속되게 되었다. 최근 역사에서 입법부는 반쯤 성공적인 탄핵과 두 차례의 성공적인 탄핵을 통과시켰다: 알베르토 후지모리는 2000년 해임 전에 사임했고, 페드로 파블로 쿠чин스키는 2018년에 사임했으며, 마르틴 비스카라는 2020년에 해임되었고, 페드로 카스티요는 2022년에 해임되었다. 의회 의원들이 선출하는 페루 헌법재판소의 2023년 2월 판결에 따라, 입법부에 대한 사법적 감독 또한 법원에 의해 제거되어 본질적으로 의회가 페루 정부를 절대적으로 통제하게 되었다.
페루의 선거 제도는 18세부터 70세까지의 시민(이중 국적자 및 해외 거주 페루인 포함)에게 의무 투표제를 적용한다. 의회 의원은 각 선거구 유권자에 의해 비례대표제를 통해 직접 선거로 선출된다. 대통령은 부통령과 함께 총선에서 결선투표제를 통해 과반수 득표로 선출된다. 선거는 국가 선거 관리 위원회, 국가 선거 과정 사무소, 국가 신원 및 민사 등기소에 의해 감독 및 조직된다.
페루는 의회 선거와 총선에서 다당제를 사용한다. 연방 및 입법 차원에서 정부를 구성한 주요 그룹은 역사적으로 경제적 자유주의, 진보주의, 우익 포퓰리즘(특히 후지모리주의), 민족주의, 개혁주의를 채택한 정당들이다.
가장 최근의 총선은 2021년 4월 11일에 실시되었으며, 자유 페루당이 의회에서 가장 많은 의석을 차지했지만 과반수에는 훨씬 못 미쳤다. 페드로 카스티요와 케이코 후지모리 간의 대통령 결선 투표는 2021년 6월 5일에 실시되어 카스티요의 승리로 끝났다.
5.1. 정치 부패 의혹
1990년대부터 2020년대에 이르기까지 많은 페루 대통령들이 부패 혐의로 해임되거나 투옥되었다. 알베르토 후지모리는 재임 기간(1990-2000) 중 반란 진압 작전에서 민간인을 살해한 암살단을 지휘한 혐의로 25년형을 복역 중이었다. 그는 나중에 부패 혐의로도 유죄 판결을 받았다. 전 대통령 알란 가르시아(1985-1990 및 2006-2011)는 2019년 4월 오데브레히트 뇌물 수수 계획에 가담한 혐의로 페루 경찰이 체포하러 도착하자 자살했다. 전 대통령 알레한드로 톨레도는 재임 기간(2001-2006) 중 브라질 건설 회사 오데브레히트로부터 뇌물을 받은 혐의로 기소되었다. 전 대통령 오얀타 우말라(2011-2016) 또한 대통령 선거 운동 기간 중 오데브레히트로부터 뇌물을 받은 혐의로 조사를 받고 있다. 우말라의 후임자인 페드로 파블로 쿠чин스키(2016-2018)는 검찰이 오데브레히트와의 계약 특혜 혐의로 조사하는 동안 가택 연금 상태이다. 전 대통령 마르틴 비스카라(2018-2020)는 몇 년 전 지방 주지사 시절 뇌물을 받았다는 언론 보도 이후 의회에 의해 논란 속에 축출되었다.
부패는 또한 의원들이 의원 면책 특권 및 기타 혜택을 위해 직위를 이용하는 등 의회 전반에 만연해 있으며, 대다수의 페루 국민들은 의회와 그 행태에 대해 반대하고 있다.
5.2. 헌법
페루 헌법은 페루 공화국의 최고 법규이다. 1993년에 제정된 현행 헌법은 페루의 정치 체제, 국가 기관의 구성 및 권한, 그리고 국민의 기본적인 권리와 의무를 규정하고 있다. 헌법은 삼권분립의 원칙에 따라 국가 권력을 행정부, 입법부, 사법부로 나누고 있으며, 대통령 중심의 공화제를 채택하고 있다.
헌법의 주요 원칙으로는 국가 주권의 국민 귀속, 법치주의, 기본권 보장, 그리고 사회 정의 실현 등이 있다. 국민의 권리로는 생명권, 자유권, 평등권, 재산권 등이 명시되어 있으며, 동시에 납세의 의무, 국방의 의무 등 국민의 의무 또한 규정하고 있다.
국가기관의 구성과 관련하여, 행정부는 대통령을 수반으로 하며, 대통령은 국가 원수이자 정부 수반의 역할을 수행한다. 입법부는 단원제인 공화국 의회로 구성되며, 국민의 직접 선거를 통해 선출된 의원들로 이루어진다. 사법부는 대법원을 최고 법원으로 하여 각급 법원으로 구성되며, 사법부의 독립성을 보장하고 있다. 이 외에도 헌법은 헌법재판소, 국가 선거 관리 기구, 감사원 등 독립적인 국가기관의 설치와 운영에 관한 내용을 담고 있다. 헌법 개정 절차 또한 규정되어 있어, 시대 변화에 따른 헌법의 적응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다.
5.3. 대통령과 행정부
페루의 대통령은 국가 원수이자 행정부 수반으로서 국가의 최고 지도자이다. 대통령은 국민의 직접 선거를 통해 선출되며, 임기는 5년이고 연임은 금지되어 있다. 현 대통령은 디나 볼루아르테이다. 대통령은 헌법과 법률에 따라 국가 정책을 수립하고 집행하며, 국군 통수권, 외교 관계 수립, 조약 체결 및 비준, 법률 공포, 각료 임명 및 해임 등의 광범위한 권한을 가진다.
행정부는 대통령을 정점으로 하여 총리와 각 부처 장관으로 구성된 각료회의(내각)를 중심으로 운영된다. 총리는 대통령이 임명하며, 대통령의 지시에 따라 행정 각부를 통할하고 국정 운영을 보좌한다. 현재 총리는 구스타보 아드리안센이다. 각 부처 장관들은 해당 부처의 업무를 책임지며, 대통령과 총리를 보좌하여 국가 정책을 집행한다. 주요 부처로는 외교부, 국방부, 경제재정부, 내무부 등이 있다. 행정부는 법률안을 의회에 제출할 수 있으며, 의회에서 통과된 법률을 공포하고 집행할 책임을 진다. 또한, 국가 예산을 편성하고 집행하며, 공공 서비스 제공, 사회 질서 유지, 국가 안보 확보 등 국가 운영 전반에 걸친 업무를 수행한다.
5.4. 입법부 (공화국 의회)
페루의 입법부는 단원제인 공화국 의회(Congreso de la República스페인어)로 구성된다. 의회는 국민의 직접 선거를 통해 선출된 130명의 의원으로 이루어지며, 의원의 임기는 5년이다. 의회는 법률 제정, 예산 심의 및 승인, 정부 감독, 조약 비준, 대통령 및 각료에 대한 탄핵 소추 등 국가 운영에 관한 중요한 권한을 행사한다.
의회의 주요 기능은 다음과 같다:
- 법률 제정: 국가 운영에 필요한 법률을 제정하고 개정한다. 법안은 정부 또는 의원에 의해 발의될 수 있으며, 의회 내 위원회의 심사를 거쳐 본회의에서 표결로 의결된다.
- 예산 심의 및 승인: 정부가 제출한 국가 예산안을 심의하고 승인하여 국가 재정 운영의 틀을 마련한다.
- 정부 감독: 행정부의 국정 운영을 감시하고 견제한다. 이를 위해 국정감사, 청문회 개최, 장관 출석 요구 등의 권한을 행사할 수 있다.
- 탄핵 소추: 대통령, 부통령, 각료 등이 헌법이나 법률을 위반했을 경우 탄핵을 소추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진다.
- 조약 비준: 국제 조약에 대한 비준 동의권을 행사하여 국가의 대외 관계에 영향을 미친다.
의회 내에서는 다양한 정당들이 활동하며 의석을 확보하고 있다. 주요 정당들의 의석 분포는 선거 결과에 따라 변동되며, 이는 페루 정치 지형의 역동성을 반영한다. 현재 자유 페루당, 인민의 힘, 진보를 위한 동맹 등이 주요 정당으로 활동하고 있다. 의회의장은 의회 운영을 총괄하며, 현재 의장은 에두아르도 살우아나이다.
5.5. 사법부
페루의 사법 체계는 페루 대법원(Corte Suprema de Justicia de la República del Perú스페인어)을 정점으로 하여 구성된다. 대법원은 국가의 최고 사법기관으로서 법률 해석의 최종 권한을 가지며, 하급 법원의 판결에 대한 상고심을 담당한다. 대법원 판사는 대통령이 지명하고 의회의 동의를 얻어 임명된다.
대법원 아래에는 각 지역을 관할하는 고등법원(Cortes Superiores de Justicia스페인어)이 있으며, 이들은 1심 법원의 판결에 대한 항소심을 주로 담당한다. 1심 법원으로는 전문 분야별 법원(민사, 형사, 노동 등)과 일반 지방법원이 있다. 또한, 경미한 사건을 다루는 평화법원(Juzgados de Paz스페인어)도 운영되고 있다.
사법부의 주요 기능은 다음과 같다:
- 법률 적용 및 분쟁 해결: 민사, 형사, 행정, 노동 등 다양한 분야의 법적 분쟁에 대해 법률을 적용하여 판결을 내린다.
- 헌법 수호: 법률이나 정부 행위가 헌법에 위배되는지 여부를 심사하고 판단한다. (단, 최종적인 위헌법률심판권은 헌법재판소가 가짐)
- 사법 정의 실현: 공정하고 신속한 재판을 통해 국민의 권리를 보호하고 사회 질서를 유지한다.
페루 헌법은 사법부의 독립성을 보장하고 있으나, 역사적으로 정치적 간섭이나 부패 문제가 사법부의 신뢰성을 저해하는 요인으로 작용하기도 했다. 사법 개혁과 독립성 강화는 페루 사회의 중요한 과제 중 하나로 남아 있다.
5.6. 주요 정당
페루의 정치 지형은 다수의 정당들이 경쟁하는 다당제 시스템을 특징으로 한다. 각 정당은 고유의 이념, 지지 기반, 그리고 정치적 영향력을 바탕으로 활동하며, 선거와 의회 운영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수행한다. 최근 페루 정치에서는 정당들의 이합집산이 잦고, 신생 정당의 등장과 기존 정당의 부침이 반복되는 경향을 보인다.
주요 정당들은 다음과 같다:
- 자유 페루당 (Perú Libre스페인어): 사회주의를 표방하는 좌익 정당으로, 농촌 지역과 소외 계층을 주요 지지 기반으로 한다. 2021년 대선에서 페드로 카스티요 후보를 당선시키며 집권당이 되었으나, 이후 정치적 혼란 속에서 분열과 세력 약화를 겪었다.
- 인민의 힘 (Fuerza Popular스페인어): 알베르토 후지모리 전 대통령의 딸인 케이코 후지모리가 이끄는 우익 정당으로, 후지모리주의를 계승하며 시장 경제와 강력한 국가를 강조한다. 전통적으로 강력한 지지층을 보유하고 있으며, 의회에서 중요한 영향력을 행사해왔다.
- 진보를 위한 동맹 (Alianza para el Progreso스페인어, APP): 중도우파 성향의 정당으로, 기업가 출신의 세사르 아쿠냐가 창당했다. 지방 정부에서의 영향력을 바탕으로 전국 정당으로 성장했으며, 실용주의적 정책을 추구한다.
- 대중 행동당 (Acción Popular스페인어, AP): 페루에서 오랜 역사를 가진 중도 성향의 정당 중 하나로, 과거 여러 차례 대통령을 배출했다. 민주주의와 국가 발전을 중시하며, 비교적 안정적인 지지 기반을 가지고 있다.
- 전진 국가당 (Avanza País스페인어): 경제적 자유주의를 강조하는 우익 정당으로, 최근 선거에서 의석을 확보하며 주목받기 시작했다.
- 페루를 위한 함께 (Juntos por el Perú스페인어, JP): 다양한 좌파 세력의 연합체로, 사회 정의와 환경 보호 등을 주요 정책으로 내세운다.
이 외에도 다수의 군소 정당들이 존재하며, 이들은 선거 시기에 연합하거나 특정 정치적 쟁점에 따라 협력하기도 한다. 페루 정당들은 이념적 스펙트럼이 다양하지만, 잦은 정치적 불안정과 부패 스캔들로 인해 국민들의 정당에 대한 신뢰도는 전반적으로 낮은 편이다.
5.7. 선거
페루의 선거 제도는 국가의 주요 공직자를 선출하는 핵심적인 민주적 절차이다. 주요 선거로는 대통령 선거와 의회 선거가 있으며, 지방자치단체장 및 지방의회 의원 선거도 주기적으로 실시된다.
- 대통령 선거: 페루 대통령은 국민의 직접, 보통, 평등, 비밀 선거를 통해 선출된다. 임기는 5년이며, 연속 재임은 금지된다. 대통령 후보는 부통령 후보 2인과 함께 출마한다. 1차 투표에서 과반수 득표자가 나오지 않으면, 득표율 상위 2명의 후보가 결선 투표를 치러 다수 득표자가 당선된다.
- 의회 선거: 페루 공화국 의회는 단원제로, 130명의 의원으로 구성된다. 의원들은 각 선거구(주 단위)에서 비례대표제를 통해 선출되며, 임기는 5년으로 대통령 임기와 같다. 유권자는 정당 명부에 투표하며, 각 정당은 득표율에 따라 의석을 배분받는다.
- 지방 선거: 주지사, 시장, 지방의회 의원을 선출하는 선거도 정기적으로 실시된다.
투표는 18세 이상 70세 미만의 모든 페루 시민에게 의무이며, 정당한 사유 없이 투표에 불참할 경우 벌금이 부과될 수 있다. 해외 거주 페루인에게도 투표권이 부여된다.
선거 관리는 독립적인 국가기관인 국가선거관리위원회(Jurado Nacional de Elecciones스페인어, JNE), 국가선거사무국(Oficina Nacional de Procesos Electorales스페인어, ONPE), 국가신원등록청(Registro Nacional de Identificación y Estado Civil스페인어, RENIEC)이 담당한다. JNE는 선거 과정의 합법성을 감독하고 선거 결과를 공표하며, ONPE는 투표 및 개표 과정을 조직하고 실행하며, RENIEC은 유권자 등록 및 신원 확인을 담당한다.
최근 페루 선거에서는 정치적 양극화, 정당 난립, 후보자 간의 치열한 경쟁이 두드러지는 경향을 보인다. 2021년 대선에서는 페드로 카스티요 후보가 근소한 차이로 당선되었으나, 이후 정치적 불안정이 지속되었다.
5.8. 정치적 과제와 논쟁
페루 정치는 여러 가지 복합적인 과제와 사회적 논쟁에 직면해 있으며, 이는 국가 발전과 민주주의 공고화에 중요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 부패 문제: 부패는 페루 정치의 고질적인 문제로, 역대 대통령을 포함한 고위 공직자들이 부패 스캔들에 연루되어 사법 처리되거나 정치적 위기를 겪는 사례가 빈번했다. 오데브레히트 사건과 같은 대규모 부패 사건은 정치권 전반에 대한 국민적 불신을 심화시켰다. 부패 척결은 주요 정치적 과제이지만, 실질적인 성과를 거두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 정치적 불안정: 잦은 대통령 탄핵, 의회 해산, 내각 교체 등 정치적 불안정은 페루의 만성적인 문제이다. 1993년 헌법의 대통령 해임(도덕적 무능력) 조항에 대한 광범위한 해석은 정치적 대립을 격화시키고 정국 불안을 야기하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이러한 불안정은 정책의 일관성을 저해하고 국가 발전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 사회적 불평등: 경제 성장에도 불구하고 페루 사회에는 여전히 심각한 소득 불평등과 지역 간 격차가 존재한다. 특히 농촌 지역과 원주민 공동체는 빈곤, 교육 및 의료 서비스 접근성 부족 등의 문제에 직면해 있다. 사회적 불평등 해소와 포용적 성장은 중요한 정치적 과제이다.
- 지역 갈등: 중앙 정부와 지방, 특히 광물 자원이 풍부한 지역 간의 갈등이 때때로 발생한다. 광산 개발을 둘러싼 환경 문제, 이익 분배 문제 등은 지역 사회의 반발을 초래하고 사회적 긴장을 유발하기도 한다.
- 제도적 취약성: 정당 시스템의 취약성, 사법부의 독립성 문제, 행정 시스템의 비효율성 등 제도적 문제점들도 페루 정치의 발전을 저해하는 요인으로 지적된다. 정당들은 이념적 기반이 약하고 개인 중심으로 운영되는 경우가 많아 정치적 안정성을 확보하기 어렵다.
- 인권 문제: 과거 내부 분쟁 시기 발생했던 인권 침해 문제에 대한 진상 규명과 책임자 처벌, 피해자 배상 등은 여전히 진행 중인 과제이다. 또한, 최근 시위 과정에서의 과도한 공권력 사용과 인권 침해 논란도 사회적 논쟁의 대상이 되고 있다.
이러한 과제들을 해결하고 사회적 합의를 도출하기 위한 노력은 페루 정치의 중요한 과제로 남아 있으며, 국민들의 삶의 질 향상과 지속 가능한 발전을 위해 필수적이다.
6. 행정 구역
페루는 24개의 주(departamento스페인어), 카야오 특별주(Provincia Constitucional del Callao), 그리고 어떤 주에도 속하지 않고 국가 수도 역할을 하는 리마 군(Provincia de Lima, LIM)으로 구성된 총 26개의 단위로 나뉜다. 헌법에 따라 24개 주와 카야오 주는 선출된 "지방" 정부로 구성되며, 이 정부는 지방 주지사와 지방 의회로 이루어진다. (주 정부는 "지방" 정부로 불리지만 실제로는 주 단위이다.)
주지사는 행정 기관을 구성하고, 예산을 제안하며, 법령, 결의안, 지방 프로그램을 만든다. 지방 의회는 해당 주의 입법 기관으로, 예산을 논의하고 표결하며, 지방 공무원을 감독하고, 주지사, 부지사 또는 의회 의원을 해임할 수 있다. 지방 주지사와 지방 의회는 4년 임기로 봉사하며, 즉각적인 재선은 불가능하다. 이러한 정부는 지방 개발을 계획하고, 공공 투자 프로젝트를 실행하며, 경제 활동을 촉진하고, 공공 재산을 관리한다.
리마와 같은 군(province)은 시장이 이끄는 시의회에 의해 관리된다. 지방 및 시 정부에 권력을 이양하는 목표 중 하나는 대중 참여를 개선하는 것이었다. NGO들은 지방 분권화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으며 여전히 지방 정치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페루의 일부 지역은 구역(district) 지역과 중첩되는 대도시권으로 정의된다. 그중 가장 큰 리마 대도시권은 아메리카 대륙에서 일곱 번째로 큰 대도시다.
6.1. 주요 도시

페루에는 수도인 리마를 비롯하여 역사적, 경제적, 문화적으로 중요한 여러 주요 도시들이 있다. 이들 도시는 각기 독특한 특성을 지니고 있으며, 페루의 다양한 면모를 보여준다.
- 리마: 페루의 수도이자 최대 도시로, 태평양 연안에 위치한다. 약 천만 명(리마 대도시권)이 거주하는 정치, 경제, 문화의 중심지이다. 식민지 시대의 유서 깊은 건축물과 현대적인 도시 경관이 공존하며, 리마 역사 지구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있다. 페루 요리의 중심지로도 유명하다.
- 아레키파: 페루 남부에 위치한 제2의 도시로, '백색 도시'라는 별칭으로도 알려져 있다. 주변에 미스티 산을 비롯한 화산들이 있으며, 아름다운 식민지 시대 건축물들이 많아 역사 지구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 인구는 약 117만 명이다.
- 트루히요: 페루 북서부 해안에 위치한 도시로, 콜럼버스 이전 시대의 모체 문화와 치무 문화의 중심지였다. 찬찬 고고 유적지가 근처에 있으며, 식민지 시대의 건축물과 활기찬 문화생활로 유명하다. 인구는 약 104만 명이다.
- 쿠스코: 페루 남동부 안데스 산맥에 위치한 도시로, 과거 잉카 제국의 수도였다. 잉카 시대의 유적과 스페인 식민지 시대의 건축물이 조화롭게 어우러져 있으며, 마추픽추로 가는 관문 역할을 한다. 도시 전체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있다. 인구는 약 49만 명이다.
- 치클라요: 페루 북서부 해안에 위치하며, 람바예케 주의 주도이다. 상업과 농업의 중심지이며, 시판 왕 무덤을 비롯한 중요한 고고학적 유적지들이 근처에 있다. 인구는 약 61만 명이다.
- 피우라: 페루 북서부 해안에 위치한 도시로, 페루에서 스페인인들이 최초로 세운 도시 중 하나이다. 농업과 어업이 발달했으며, 따뜻한 기후와 해변으로도 알려져 있다. 인구는 약 58만 명이다.
- 이키토스: 페루 북동부 아마존 열대우림 지역에 위치한 도시로, 아마존 강 연안의 주요 항구 도시이다. 육로로는 접근이 어렵고 주로 항공이나 수상 교통을 이용한다. 독특한 자연환경과 문화를 경험할 수 있는 곳이다. 인구는 약 45만 명이다.
- 우앙카요: 페루 중부 안데스 산맥에 위치한 도시로, 후닌 주의 주도이다. 상업과 교통의 중심지이며, 만타로 계곡의 아름다운 자연환경으로 유명하다. 인구는 약 56만 명이다.
이 외에도 침보테, 푸칼파, 타크나, 이카, 훌리아카, 카하마르카 등 각 지역의 중심 역할을 하는 도시들이 다수 존재한다.
7. 대외 관계

최근 수십 년 동안 페루의 외교 관계는 역사적으로 미국 및 아시아와의 긴밀한 관계에 의해 지배되어 왔으며, 특히 아시아 태평양 경제협력체(APEC), 세계무역기구(WTO), 태평양 동맹, 메르코수르, 미주 기구(OAS)를 통해 이루어졌다.
페루는 여러 지역 무역 블록의 적극적인 회원국이며, 안데스 공동체의 창립 회원국 중 하나이다. 또한 미주 기구(OAS) 및 유엔과 같은 국제기구의 회원국이기도 하다. 저명한 페루 외교관인 하비에르 페레스 데 케야르는 1981년부터 1991년까지 유엔 사무총장을 역임했다.
페루는 경제적 성공과 제도 강화 노력을 바탕으로 2021년까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완전히 통합될 계획이었으며, 이러한 요소들이 OECD 가입 요건을 충족한다고 평가받았다. 페루는 세계무역기구(WTO) 회원국이며, 다수의 주요 자유무역협정(FTA)을 추진해왔다. 가장 최근에는 미국-페루 무역촉진협정, 중국-페루 자유무역협정, 유럽연합 자유무역협정, 일본과의 자유무역협정 등이 있다.
페루는 다른 남아메리카 국가들과 통합된 관계를 유지하고 있으며, 최근에는 미주 기구, 메르코수르, 안데스 공동체, 태평양 동맹, 아시아 태평양 경제협력체(APEC) 등 다양한 남아메리카 정부 간 협정의 회원국이다. 페루는 역사적으로 칠레와 긴장된 관계를 경험했으며, 이는 페루-칠레 국제 법원 판결 및 칠레-페루 해양 분쟁을 포함한다. 그러나 양국은 관계 개선을 위해 협력하기로 합의했다.
페루는 리마 그룹 설립을 통해 베네수엘라 위기 해결에 주도적인 역할을 수행하는 데 참여했다.
페루는 2024년 세계평화지수에 따르면 세계에서 99번째로 평화로운 국가이다.
7.1. 대한민국과의 관계
페루와 대한민국은 1963년 4월 1일 공식적으로 외교 관계를 수립하였다. 이후 양국은 정치, 경제, 문화 등 다양한 분야에서 우호 협력 관계를 발전시켜왔다. 대한민국은 페루에 주페루 대한민국 대사관을, 페루는 대한민국에 주한 페루 대사관을 각각 운영하고 있다.
정치적으로 양국은 고위급 교류를 꾸준히 이어오고 있으며, 국제 무대에서도 상호 지지하며 협력하고 있다. 경제적으로는 2011년 한-페루 자유무역협정(FTA)이 발효되면서 교역과 투자가 크게 확대되었다. 대한민국의 주요 수출품은 자동차, 전자제품, 기계류 등이며, 페루로부터는 주로 구리, 아연, 커피, 수산물 등을 수입한다. 한국 기업들의 페루 인프라 건설 및 자원 개발 참여도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문화 교류 또한 활발하여, K-pop, 한국 드라마 등 한류가 페루 젊은층 사이에서 인기를 얻고 있으며, 페루의 전통 음악, 음식, 공예품 등이 한국에 소개되고 있다. 양국 정부는 문화 교류 증진을 위한 다양한 프로그램을 지원하고 있으며, 민간 차원에서의 교류도 점차 확대되고 있다.
페루는 1988년 서울 하계 올림픽에 선수단을 파견한 바 있으며, 대한민국은 페루의 경제 발전과 사회 인프라 개선을 위해 공적개발원조(ODA)를 제공하는 등 개발 협력도 지속하고 있다. 2010년에는 한국인 정흥원 씨가 페루 찬차마요 시 시장으로 당선되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양국은 상호 이해와 신뢰를 바탕으로 미래지향적인 동반자 관계를 더욱 심화시켜 나갈 것으로 기대된다. 한편, 페루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과도 1988년에 수교하였다.
7.2. 주변국과의 관계
페루는 지리적으로 에콰도르, 콜롬비아, 브라질, 볼리비아, 칠레 등 5개 국가와 국경을 접하고 있으며, 이들 주변국과의 관계는 페루 외교 정책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 역사적으로 국경 문제로 인한 갈등이 있었으나, 현재는 대부분 해결되었거나 관리되고 있으며, 경제적, 문화적 교류와 협력이 강화되는 추세이다.
- 에콰도르: 과거 여러 차례 국경 분쟁을 겪었으며, 특히 1941년 에콰도르-페루 전쟁과 1995년 세네파 전쟁이 대표적이다. 그러나 1998년 브라질리아 평화 협정 체결 이후 양국 관계는 크게 개선되었으며, 현재는 국경 지역 개발과 경제 협력을 중심으로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 콜롬비아: 과거 아마존 지역의 영토를 둘러싸고 레티시아 분쟁을 겪었으나, 1930년대에 해결되었다. 현재 양국은 마약 밀매, 불법 벌목 등 국경 지역의 공동 문제에 대처하기 위해 협력하고 있으며, 안데스 공동체 회원국으로서 경제 통합을 추구하고 있다.
- 브라질: 페루의 가장 긴 국경을 접하고 있는 국가로, 전통적으로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해왔다. 최근에는 아마존 지역의 인프라 연결(예: 남미횡단도로) 및 에너지 협력, 환경 보호 등 다양한 분야에서 협력을 강화하고 있다.
- 볼리비아: 역사적으로 잉카 제국의 일부였으며, 독립 이후에도 페루-볼리비아 연합을 시도하는 등 긴밀한 관계를 가져왔다. 현재는 안데스 공동체 회원국으로서 경제 협력을 증진하고 있으며, 문화적 유사성을 바탕으로 교류가 활발하다. 티티카카 호수 관리 등 공동의 관심사도 존재한다.
- 칠레: 19세기 태평양 전쟁으로 인해 페루가 타라파카, 아리카 지역을 상실하면서 양국 관계에 깊은 상처를 남겼다. 이후에도 영토 문제와 해양 경계선 문제로 갈등이 지속되었으나, 2014년 국제사법재판소(ICJ)의 해양 경계선 판결 이후 관계 개선의 노력이 이루어지고 있다. 경제적으로는 중요한 교역 상대국이며, 태평양 동맹 회원국으로서 협력하고 있다.
페루는 주변국들과의 양자 관계뿐만 아니라, 안데스 공동체, 남미 국가 연합(UNASUR) 등 다자 협력체를 통해 지역 통합과 공동 번영을 추구하고 있다.
7.3. 주요 국가와의 관계
페루는 주변국 외에도 세계 여러 주요 국가들과 다양한 분야에서 관계를 맺고 협력하고 있다. 특히 경제적, 정치적 중요성을 고려할 때 미국, 중국, 일본, 유럽연합(EU) 등과의 관계가 주목할 만하다.
- 미국: 페루의 전통적인 주요 협력국으로, 정치, 경제, 안보 등 다방면에 걸쳐 긴밀한 관계를 유지해왔다. 미국은 페루의 주요 수출 시장 중 하나이며, 양국 간에는 2009년 발효된 자유무역협정(FTA)을 통해 경제 교류가 활발하다. 마약 퇴치, 테러 방지, 민주주의 증진 등에서도 협력하고 있다.
- 중국: 최근 페루의 가장 중요한 경제 파트너로 부상했다. 중국은 페루의 최대 교역 상대국이자 주요 투자국으로, 특히 광물 자원 개발 분야에서 중국 자본의 투자가 두드러진다. 2010년 중국-페루 FTA가 발효되었으며, 최근에는 중국이 지원하는 찬카이 항구 건설 프로젝트가 주목받고 있다. 중국의 영향력 확대에 대한 국제적인 관심도 높아지고 있다.
- 일본: 페루와 일본은 19세기 말 일본인 이민을 시작으로 오랜 교류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 일본은 페루의 주요 원조 공여국 중 하나였으며, 경제 기술 협력, 문화 교류 등이 활발하다. 일본계 페루인인 알베르토 후지모리 전 대통령의 존재는 양국 관계에 특별한 의미를 더하기도 했다. 현재도 경제, 문화, 학술 등 다양한 분야에서 교류가 지속되고 있다.
- 유럽연합 (EU): EU는 페루의 중요한 교역 및 투자 파트셔 중 하나이다. 페루는 콜롬비아, 에콰도르와 함께 EU와 다자간 무역협정을 체결하여 2013년부터 발효 중이다. 이 협정은 상품, 서비스, 투자 등 광범위한 분야를 포괄하며 양측의 경제 관계 심화에 기여하고 있다. EU는 또한 페루의 민주주의 발전, 인권 보호, 지속 가능한 개발 등을 위한 지원도 제공하고 있다.
페루는 이 외에도 캐나다, 러시아, 인도 등 여러 국가들과 개별적인 관계를 발전시키고 있으며, 국제 무대에서 자국의 이익을 증진하고 글로벌 이슈 해결에 기여하기 위해 다자외교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8. 군사

페루군은 라틴 아메리카에서 네 번째로 큰 규모를 자랑하며, 육군(Ejército del Perú스페인어, EP), 해군(Marina de Guerra del Perú스페인어, MGP), 공군(Fuerza Aérea del Perú스페인어, FAP)으로 구성된다. 2020년 기준 총 병력은 392,660명(정규군 120,660명, 예비군 272,000명)이다. 페루군의 주요 임무는 국가의 독립, 주권, 영토 보전을 수호하는 것이다.
각 군의 기능은 다음과 같이 분리된다:
- 페루 육군: 참모총장, 2개의 통제 기관, 2개의 지원 기관, 5개의 군관구, 6개의 지휘 사령부로 구성된다.
- 페루 공군: 1929년 5월 20일 페루 항공단이라는 이름으로 공식 창설되었다. 주요 기능은 국가 방공이며, 접근이 어려운 인구에 대한 사회 지원 캠페인 참여, 재난 시 항공 수송 지원, 국제 평화 유지 임무 참여 등도 수행한다. 주요 공군 기지는 피우라, 카야오, 아레키파, 이키토스에 위치한다.
- 페루 해군: 국가의 해양, 하천, 호수 방위를 담당한다. 26,000명의 해군으로 구성되며, 인원은 고급 인력, 하급 인력, 수병으로 나뉜다.
페루군은 총사령관인 페루 대통령, 국방부, 그리고 페루군 합동사령부(Comando Conjunto de las Fuerzas Armadas del Perú스페인어, CCFFAA)의 지휘를 받는다. CCFFAA는 작전사령부와 특별사령부를 예하에 두고 국방 및 행정부가 부여한 임무 수행에 필요한 군사 작전을 수행한다. 1999년 징병제가 폐지되고 모병제로 전환되었다. 페루 국립경찰은 종종 군대의 일부로 분류되기도 하지만, 별도의 조직 구조와 순수 민간 임무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특히 지난 20년간 대테러 부대로서의 훈련과 작전은 뚜렷한 군사적 특성을 부여하여, 상당한 육해공 능력을 갖춘 사실상의 제4군으로 여겨지기도 하며, 약 14만 명의 인력을 보유하고 있다. 페루군은 국방부를 통해 보고하며, 페루 국립경찰은 내무부를 통해 보고한다.
2000년 페루 내부 위기가 종식된 이후, 연방 정부는 국방 예산을 크게 줄였다. 2016-2017년 예산에서 국방 지출은 GDP의 1.1%(23.00 억 USD)로, 아르헨티나에 이어 남아메리카에서 GDP 대비 두 번째로 낮은 지출을 기록했다. 최근 페루군은 민방위에 동원되고 있다. 2020년 페루는 코로나19 범유행 기간 동안 엄격한 검역 조치를 시행하기 위해 군인력과 예비군까지 동원했다.
9. 경제

페루 경제는 세계에서 48번째 규모(구매력 평가 기준)이며, 세계은행에 의해 '상위 중산층 소득' 국가로 분류된다. 페루는 2000년대 경제 호황에 힘입어 2011년 기준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성장하는 경제 중 하나였다. 인간개발지수(HDI)는 0.77로 평균 이상이며 지난 25년간 꾸준히 개선되어 왔다. 역사적으로 페루의 경제 성과는 수입품 및 외채 상환 자금을 마련하기 위한 경화 확보 수단인 수출에 의존해왔다. 수출이 상당한 수입을 제공했지만, 자립 성장과 보다 평등한 소득 분배는 달성하기 어려웠다. 2015년 자료에 따르면 전체 인구의 19.3%가 빈곤층이며, 그중 9%는 극빈층이다. 2012년 물가상승률은 1.8%로 라틴 아메리카에서 가장 낮았으나, 2013년 석유 및 원자재 가격 상승으로 증가하여 2014년 기준 2.5%를 기록했고, 2023년에는 8.6%였다. 실업률은 2012년 3.6%였다.
페루의 경제 정책은 지난 수십 년간 큰 변화를 겪었다. 1968년부터 1975년까지의 후안 벨라스코 알바라도 정부는 농지 개혁, 외국 기업 국유화, 경제 계획 시스템 도입, 대규모 국영 부문 창설 등 급진적인 개혁을 단행했다. 이러한 조치들은 소득 재분배와 선진국에 대한 경제적 종속 탈피라는 목표를 달성하지 못했다.
이러한 결과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개혁은 1990년대까지 유지되다가, 알베르토 후지모리의 자유화 정부가 가격 통제, 보호무역주의, 해외 직접 투자 제한, 대부분의 국영 기업 소유를 철폐하면서 종료되었다.
2010년 기준, 서비스업이 페루 국내총생산(GDP)의 53%를 차지하며, 제조업(22.3%), 채굴 산업(15%), 세금(9.7%)이 그 뒤를 잇는다. 최근의 경제 성장은 거시경제 안정, 교역 조건 개선, 투자 및 소비 증가에 힘입은 바 크다. 2006년 4월 12일 체결된 미국과의 자유무역협정 시행 이후 교역은 더욱 증가할 것으로 예상되었다. 페루의 주요 수출품은 구리, 금, 아연, 섬유, 어분이며, 주요 교역 상대국은 미국, 중국, 브라질, 칠레이다.
2019년 국립 통계 정보원(INEI)에 따르면 비공식 노동자는 노동 시장의 70%를 차지한다. 2016년에는 거의 300만 명의 어린이와 청소년이 비공식 부문에서 일했다.
9.1. 주요 산업
페루 경제는 다양한 산업 분야로 구성되어 있으며, 특히 광업, 농업, 어업, 제조업, 관광업 등이 핵심적인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이러한 산업들은 페루의 경제 성장과 고용 창출에 중요한 기여를 하고 있다.
9.1.1. 광업

페루는 풍부한 광물 자원을 보유한 국가로, 광업은 전통적으로 페루 경제의 핵심 동력이자 주요 수출 산업이다. 2023년 기준 원자재 수출의 61.3%를 차지할 정도로 의존도가 높다. 2019년 기준, 페루는 구리 세계 2위, 아연 세계 2위, 금 세계 8위, 납 세계 3위, 주석 세계 4위, 붕소 세계 5위, 몰리브덴 세계 4위 생산국이다. 2023년에는 세계 3위의 은 생산국이었다. 페루는 라틴 아메리카 광업 분야에서 선도적인 위치를 유지하고 있으며, 오랜 광업 역사와 경험을 가지고 있으나 산업화 수준은 낮은 편이다. 이로 인해 국제 원자재 가격 변동에 경제가 민감하게 반응하는 경향이 있다.
카하마르카에 위치한 야나코차 광산은 페루 금 채굴의 주요 원천이며, 남아메리카 최대, 세계 2위 규모의 금광으로 평가된다. 2005년에는 3,333,088 온스의 금을 생산했다. 광업 수출액은 1990년 14억 4,700만 달러에서 2023년 396억 3,900만 달러로 증가하며 광업 부문의 성장을 보여준다.
9.1.2. 농업

페루는 다양한 기후와 지형 조건 덕분에 다채로운 농산물을 생산하는 국가이다. 페루는 세계 최대의 퀴노아 및 마카 생산국이며, 아보카도, 블루베리, 아티초크, 아스파라거스 생산량에서 세계 5위권 안에 든다. 또한 커피와 카카오 생산량은 세계 10위권, 감자와 파인애플 생산량은 세계 15위권에 속한다. 이 외에도 포도, 사탕수수, 쌀, 바나나, 옥수수, 카사바 등을 상당량 생산하며 농업이 상당히 다각화되어 있다. 축산업 분야에서는 닭고기 생산량이 세계 20위권 안에 든다.
그러나 2022년 8월 유엔 식량 농업 기구(FAO) 보고서에 따르면, 페루 인구의 절반(1,660만 명)이 중간 정도의 식량 불안 상태에 있으며, 20% 이상(680만 명)은 심각한 식량 불안 상태로, 하루 종일 또는 며칠 동안 음식을 섭취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FAO 페루 국장은 "페루는 인구를 위한 충분한 식량을 보유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것은 큰 역설"이라고 지적했다. 페루는 식량 순생산국이자 지역의 주요 농산물 수출국 중 하나이다. 식량 불안은 높은 사회 불평등과 낮은 임금 때문이며, 페루의 최저 임금은 남아메리카에서 가장 낮은 수준 중 하나이고 비공식 부문이 크다. FAO에 따르면 소규모 농부들 자신도 굶주림에 시달린다. 낮은 보수를 받는 그들은 또한 기후 변화의 영향을 받고 있으며, 그들의 땅에서 마약 밀매 문제와 토양을 고갈시키는 광산 활동에 직면해 있다.
9.1.3. 어업
페루는 태평양 연안을 따라 길게 뻗어 있어 풍부한 한류성 어족 자원을 보유하고 있으며, 이는 페루 어업 발달의 중요한 기반이 된다. 특히 훔볼트 해류의 영향으로 플랑크톤이 풍부하여 다양한 어종이 서식한다.
페루 어업의 주요 어획물은 멸치(anchoveta)로, 이는 세계적으로도 중요한 어종이다. 멸치는 주로 어분 및 어유 가공 산업의 원료로 사용되며, 페루는 세계 최대의 어분 수출국 중 하나이다. 어분은 양식 어류 및 가축 사료의 중요한 단백질 공급원이다.
멸치 외에도 정어리, 고등어, 가다랑어 등 다양한 어종이 어획된다. 페루의 수산업은 어획뿐만 아니라 양식업도 포함하며, 새우, 가리비, 송어 등의 양식이 이루어지고 있다.
페루 어업은 국가 경제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며, 수출을 통해 외화를 획득하고 고용을 창출한다. 그러나 엘니뇨 현상과 같은 기후 변화, 남획 문제, 지속 가능한 어업 관리 등은 페루 어업이 직면한 과제이기도 하다. 정부는 어족 자원 보호와 지속 가능한 어업 발전을 위한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9.1.4. 제조업
페루의 제조업은 국가 경제에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며, 다양한 분야에서 발전하고 있다. 주요 제조업 분야로는 섬유 및 의류, 식품 가공, 금속 제련, 화학 제품, 기계 및 장비 등이 있다.
- 섬유 및 의류 산업: 페루는 고품질의 알파카 및 면 섬유 생산으로 유명하며, 이를 바탕으로 의류 및 섬유 제품 제조업이 발달했다. 특히 알파카 제품은 국제적으로 높은 평가를 받고 있으며, 주요 수출품 중 하나이다.
- 식품 가공 산업: 풍부한 농수산물을 기반으로 다양한 식품 가공업이 이루어진다. 과일 및 채소 통조림, 냉동 수산물, 유제품, 음료 등이 생산되며, 국내 소비뿐만 아니라 수출도 활발하다.
- 금속 제련 산업: 페루는 구리, 아연, 납, 은 등 다양한 광물 자원이 풍부하여, 이를 제련하고 가공하는 산업이 발달했다. 제련된 금속은 주요 수출품으로 국가 경제에 크게 기여한다.
- 화학 제품 산업: 비료, 플라스틱, 페인트, 의약품 등 다양한 화학 제품이 생산된다.
- 기계 및 장비 산업: 일부 기계 부품 및 장비 생산도 이루어지고 있으나, 아직까지는 수입 의존도가 높은 편이다.
페루 정부는 제조업 발전을 위해 투자 유치, 기술 혁신 지원, 수출 증진 등 다양한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그러나 인프라 부족, 높은 비공식 경제 비중, 숙련 노동력 부족 등은 제조업 발전의 과제로 남아 있다. 최근에는 자유무역협정(FTA) 체결 확대를 통해 제조업 제품의 해외 시장 진출을 모색하고 있으며, 고부가가치 산업으로의 전환을 위한 노력도 기울이고 있다.
9.2. 관광


관광업은 페루에서 어업과 광업에 이어 세 번째로 큰 산업이다. 페루에는 십만 개가 넘는 고고학 유적지가 있어 관광은 주로 고고학 기념물에 집중된다. 페루 정부의 연구에 따르면 페루 방문 후 관광객 만족도는 94%에 달한다. 관광업은 페루에서 가장 빠르게 성장하는 산업으로, 지난 5년간 연평균 25%의 성장률을 기록했으며, 이는 남아메리카의 다른 어떤 나라보다 높은 성장률이다.
관광업은 페루 GDP의 7%에 영향을 미치며, 대외 무역 관광부의 페루 수출 관광 진흥 위원회에 의해 규제되고 활성화된다. 이러한 이유로 2011년에는 페루에서 생산된 제품의 구매와 소비를 촉진하기 위해 대외 무역 관광부와 페루 기업 및 스타트업이 협력하여 마르카 페루(Marca Perú)가 만들어졌다. 이 계획의 핵심은 수출, 관광, 투자이다. 관광업은 페루 경제 활동 인구의 11%(직접 고용 484,000명, 간접 고용 340,000명)를 고용하며, 대부분은 숙박업과 운송업에 종사한다. 페루는 문화, 생태, 모험, 미식, 해변, 고급 여행에 완벽한 곳으로 알려져 있다.
관광객들이 가장 많이 찾는 곳은 리마 시와 그 역사 지구, 잉카 및 식민지 시대 건축물로 특징지어지는 쿠스코(주요 명소는 잉카의 성스러운 계곡과 마추픽추), 역사 지구와 콜카 협곡으로 유명한 아레키파, 그리고 티티카카 호수가 있는 푸노이다. 페루의 주요 관광 코스는 남부 서킷으로, 이카, 나스카, 피스코, 파라카스, 아야쿠초, 푸에르토 말도나도 등 건축, 문화, 자연 명소가 있는 도시들을 포함한다. 두 번째로 중요한 경로는 앙카시 주의 카예혼 데 우아일라스로, 모험 관광의 본거지이자 새로운 안데스 미식의 주요 기준점이다. 페루에는 14개의 세계문화유산과 11개의 국립공원이 있다.
페루에는 다른 많은 관광 경로가 있다. 이 중에는 우앙카요 시를 축으로 하는 만타로 강 계곡과 또 다른 축인 타르마 계곡이 있으며, 이는 중앙 정글과 북부 도시 트루히요(세계에서 가장 큰 어도비 성채인 찬찬, 전통 온천 우안차코, 치무 문화에 속하는 태양의 우아카와 달의 우아카가 위치)로 가는 입구이다. 치클라요, 피우라, 열대 우림 도시 이키토스도 매우 인기 있는 관광지이다. 대외 무역 관광부에 따르면, 2015년 외국인 관광객 방문은 7% 증가했으며, 페루에 35억 달러의 외화를 창출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9.3. 무역
페루는 개방 경제 체제를 지향하며 국제 무역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주요 수출입품, 교역 상대국, 무역수지 현황, 그리고 자유무역협정(FTA) 체결 등 대외 무역 정책은 페루 경제의 중요한 부분을 구성한다.
- 주요 수출품: 페루의 전통적인 주요 수출품은 광물 자원이다. 구리, 금, 아연, 납, 주석, 은 등이 전체 수출액에서 큰 비중을 차지한다. 농산물 또한 중요한 수출품으로, 아스파라거스, 포도, 망고, 아보카도, 블루베리, 퀴노아, 커피 등이 세계 여러 나라로 수출된다. 어업 분야에서는 어분과 냉동 수산물이 주요 수출품이며, 섬유 및 의류 제품(특히 알파카 제품)도 중요한 수출 품목이다.
- 주요 수입품: 페루는 주로 공업제품, 자본재, 중간재, 소비재 등을 수입한다. 구체적으로는 기계류, 차량, 전자기기, 석유 및 석유제품, 화학제품, 플라스틱, 의약품 등이 주요 수입 품목이다.
- 주요 교역 상대국: 페루의 가장 큰 교역 상대국은 중국과 미국이다. 이 두 국가는 페루 수출입 모두에서 큰 비중을 차지한다. 그 외 주요 교역 상대국으로는 유럽연합(EU), 브라질, 칠레, 캐나다, 대한민국, 일본 등이 있다.
- 무역수지 현황: 페루의 무역수지는 국제 원자재 가격 변동, 특히 광물 가격에 따라 영향을 받는 경향이 있다. 광물 가격이 높을 때는 무역흑자를 기록하기도 하지만, 가격이 하락하거나 수입 수요가 증가할 경우 무역적자를 보이기도 한다.
- 자유무역협정(FTA): 페루는 대외 무역 확대를 위해 적극적으로 FTA를 추진해왔다. 미국(2009년 발효), 중국(2010년 발효), 유럽연합(2013년 발효), 대한민국(2011년 발효), 일본, 캐나다, 칠레 등 다수의 국가 및 경제 블록과 FTA를 체결했다. 또한 태평양 동맹(Pacific Alliance) 회원국으로서 멕시코, 콜롬비아, 칠레와의 경제 통합을 심화시키고 있으며, 포괄적·점진적 환태평양 경제 동반자 협정(CPTPP)에도 참여하고 있다.
페루 정부는 수출 다변화, 고부가가치 상품 수출 증대, 새로운 시장 개척 등을 통해 무역 구조를 개선하고 경제 성장을 도모하기 위한 정책을 지속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9.4. 사회 기반 시설
페루의 사회 기반 시설은 국가 발전과 국민 생활 향상에 필수적인 요소로, 교통, 에너지, 통신 등 다양한 분야를 포함한다. 정부는 지속적인 투자를 통해 인프라를 개선하고 현대화하려는 노력을 기울이고 있으나, 지리적 특성과 재정적 제약으로 인해 여전히 해결해야 할 과제들이 남아 있다.
- 교통:
- 도로:
이카 인근 고속도로 2021년 기준 페루의 도로망은 총 17.56 만 km이며, 이 중 2.96 만 km가 포장도로이다. 주요 간선도로로는 팬아메리칸 하이웨이와 남미횡단도로(Interoceanic Highway)가 있다. 2016년 기준 복선 고속도로는 827 km였으며, 2026년까지 2634 km로 확대할 계획이었다.
- 철도: 페루의 철도망은 비교적 작은 규모로, 2018년 기준 총 연장은 1939 km에 불과하다. 주로 광물 수송과 관광 목적으로 이용되며, 안데스 산맥을 횡단하는 노선이 대표적이다.
- 항만:
카야오 항구 페루의 주요 항구로는 태평양 연안의 카야오, 일로, 마타라니 등이 있다. 카야오 항은 페루 최대의 항구이지만, 중국과 페루의 합작 프로젝트로 리마 북부 찬카이에 건설 중인 찬카이 항만 터미널이 완공되면 라틴 아메리카 최대 항구가 될 전망이다. 1단계 건설은 2024년 말 완공 예정이다.
- 공항: 호르헤 차베스 국제공항(리마), 알레한드로 벨라스코 아스테테 국제공항(쿠스코), 로드리게스 발론 국제공항(아레키파) 등 주요 국제공항이 있다. 호르헤 차베스 국제공항은 현재 확장 공사 중으로, 새로운 활주로, 관제탑, 터미널 등을 건설하여 연간 4천만 명의 승객을 수용할 수 있도록 할 예정이다. 쿠스코의 친체로 국제공항 건설 프로젝트도 진행 중이다.
- 에너지:
우루밤바 강의 댐 (2013년) 페루의 전력 부문은 최근 몇 년간 눈에 띄는 개선을 이루었다. 전등 설비를 갖춘 가구 수는 2007년 82%에서 2016년 94.2%로 증가했으며, 서비스 제공의 질과 효율성도 향상되었다. 현재 발전 용량은 화력 발전과 수력 발전이 균등하게 나뉘어 있다. 국가 상호 연결 전력 시스템(SEIN)은 연결된 인구의 85%에 전력을 공급하며, 나머지 지역은 여러 독립 시스템이 담당한다. 2022년 10월 페루의 전력 생산량은 총 5.1 TWh였으며, 이 중 52%는 수력 발전소, 38.3%는 화력 발전소(석유, 가스, 석탄 사용), 9.7%는 풍력, 태양광 등 신재생 에너지 발전소에서 생산되었다. 2021년 기준, 페루는 수력 발전 5,490 MW(세계 34위), 풍력 발전 409 MW(세계 49위), 태양광 발전 336 MW(세계 62위), 바이오매스 185 MW의 설비 용량을 보유하고 있다.
- 통신: 페루의 통신 시장은 민영화 이후 경쟁이 활발해지면서 인터넷 및 이동통신 서비스가 크게 확대되었다. 도시 지역을 중심으로 광대역 인터넷 보급률이 높아지고 있으며, 이동통신 가입자 수도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그러나 농촌 및 산간 지역의 통신 인프라는 여전히 부족하여 디지털 격차 해소가 과제로 남아 있다.
페루 정부는 인프라 개발을 국가 발전의 우선 과제로 인식하고 있으며, 민간 투자 유치와 국제 협력을 통해 지속적인 개선을 추진하고 있다.
- 도로:
10. 사회
페루 사회는 다양한 인구 통계학적 특징, 다채로운 민족 구성, 여러 언어의 공존, 종교적 신념, 교육 시스템, 그리고 보건 의료 현황 등 복합적인 요소들로 이루어져 있다. 이러한 사회적 특징들은 페루의 역사, 문화, 그리고 현재 직면한 과제들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배경을 제공한다.
10.1. 인구

2022년 국가 통계 정보원(INEI)의 추정 및 전망에 따르면 페루의 인구는 33,396,698명으로, 남아메리카에서 네 번째로 인구가 많은 국가이다. 인구 밀도는 평방 킬로미터당 25.79명이며 연간 성장률은 1.1%이다. 페루 인구의 58.8%는 해안 지역에, 27%는 산악 지역에, 14.2%는 정글 지역에 거주한다. 2020년 기준, 2,700만 명의 페루인이 도시 지역에 거주하며, 이는 전체 인구의 80%에 해당한다. 페루의 인구는 1940년에 700만 명이었으며, 1950년에서 2000년 사이 인구 증가율은 2.6%에서 1.6%로 감소했고, 2050년에는 인구가 약 4,200만 명에 이를 것으로 예상된다.
2017년 기준, 도시 지역 거주 인구는 79.3%, 농촌 지역 거주 인구는 20.7%였다. 주요 도시로는 리마 대도시권(980만 명 이상 거주), 아레키파, 트루히요, 치클라요, 피우라, 이키토스, 쿠스코, 침보테, 우앙카요 등이 있으며, 이들 도시는 모두 2007년 인구 조사에서 25만 명 이상의 주민을 보고했다. 아레키파는 페루에서 두 번째로 큰 도시로 추정 인구는 1,177,000명이며, 트루히요는 1,048,000명으로 세 번째로 큰 도시이다. 페루에는 15개의 알려진 미접촉부족 아메리카 원주민 부족이 있다. 페루의 기대수명은 세계은행의 2016년 최신 데이터에 따르면 75.0세(남성 72.4세, 여성 77.7세)이다.
경제 활동 인구는 총인구의 53.78%에 해당하는 약 17,830,500명이다. 가장 큰 도시들은 술라나, 피우라, 치클라요, 트루히요, 침보테, 리마, 이카 등 해안 지역에 위치한다. 산악 지역에서는 아레키파, 쿠스코, 우앙카요, 카하마르카, 훌리아카 시가 두드러진다. 마지막으로 정글 지역에서는 이키토스가 가장 중요하며, 푸칼파, 타라포토, 모요밤바, 팅고 마리아가 그 뒤를 잇는다.
10.2. 민족

페루는 5세기에 걸쳐 다양한 민족의 연속적인 유입으로 형성된 다민족 사회이다. 아메리카 원주민들은 16세기 스페인의 정복 이전에 수천 년 동안 페루 영토에 거주했다. 역사학자 노블 데이비드 쿡에 따르면, 그들의 인구는 1520년대 약 500만~900만 명에서 1620년경 약 60만 명으로 감소했는데, 이는 주로 전염병 때문이었다.
2017년 인구 조사에서는 처음으로 민족 자아 정체성에 대한 질문이 포함되었다. 결과에 따르면, 60.2%가 메스티소(유럽계와 원주민의 혼혈)로, 22.3%가 케추아족으로, 5.9%가 백인으로, 3.6%가 흑인으로, 2.4%가 아이마라족으로, 2.3%가 기타 민족 집단으로, 3.3%가 자신의 민족을 밝히지 않았다. 페루 역사의 여러 단계에서 민족 구성은 변화해 왔으며, 다양한 사회경제적 및 사회문화적 요인, 산아 제한, 높은 사망률, 배제 등으로 인해 원주민 비율은 지속적으로 감소했다. 페루는 식민 시대 초기부터 현재까지 모든 민족 부문의 점진적인 일반화된 혼혈 경향을 보인다. 페루 인구의 대다수가 메스티소가 되면서, 일부는 산악 및 정글 지역 원주민에 대해 단어를 제대로 발음하지 못하거나 단순히 글을 잘 읽지 못한다는 이유로 우월감을 느끼는 경향이 있으며, 이는 그들에 대한 일종의 인종차별로 이어진다.
페루 부왕령 시대에는 스페인인과 아프리카인이 대거 유입되어 서로 그리고 원주민과 광범위하게 섞였으며, 주로 해안 지역에서 이러한 현상이 두드러졌다(산악 및 정글 지역은 혼혈이 매우 적은 원주민 다수 지역으로 남아 있었다). 독립 이후에는 스페인, 이탈리아, 영국, 프랑스, 독일 등 유럽 국가들과 중동으로부터의 이민이 있었다. 페루는 1854년에 흑인 노예를 해방시켰다. 중국인과 일본인은 노예제 폐지 이후 노동자로 1850년대에 도착했으며, 이후 페루 사회에 주요한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 최초의 크로아티아 이민자들은 1573년 두브로브니크에서 페루로 왔다.
최근 수십 년 동안 페루인의 해외 이주 수치는 현저한 증가세를 보였으며, 현재 페루인의 10% 이상이 해외에 거주하고 있다. 이러한 이주 움직임은 2000년 이후 더욱 심화되었으며, 1990년부터 2011년까지 페루 이민자의 공식 수치는 2,444,634명이다. 이는 후손 인구와 주로 이웃 국가에 있는 불법 체류 인구를 고려하지 않은 수치이다. 지난 82년 동안 350만 명 이상의 페루인이 국외로 이주한 것으로 추정된다. 1990년에서 2011년 사이 페루 이민자의 주요 목적 국가는 미국(31.5%), 스페인(16%), 아르헨티나(14.3%), 이탈리아(10.1%), 칠레(8.8%), 일본(4.1%), 베네수엘라(3.8%)였다. 페루 이민자의 75%는 19세에서 49세 사이이며, 여성이 약간 더 많다. 대부분의 페루 이민은 노동 이민이다.
역사적으로 페루는 유럽(주로 스페인과 이탈리아, 그리고 프랑스, 영국, 기타 중부 유럽 및 남부 유럽 국가들로부터의 이민은 그보다 적음),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 동아시아(중국과 일본)로부터 이민을 받아들였다. 현재는 자국의 경제 위기를 피해 온 베네수엘라 이민자들을 대거 수용하고 있다. 2016년부터 페루로의 베네수엘라 이민자 유입이 증가하여, 그해 6,615명이었던 거주자가 2019년 6월 중순까지 약 82만 명으로 늘어났으며, 이는 21세기 페루에서 가장 중요한 이민 물결이다. 페루는 콜롬비아에 이어 두 번째로 많은 베네수엘라 이민자를 수용하고 있다.
10.3. 언어

1993년 페루 헌법에 따르면, 페루의 공용어는 스페인어이며, 케추아어 및 기타 원주민 언어가 우세한 지역에서는 해당 언어들도 공용어로 인정된다. 스페인어는 인구의 82.6%가 모국어로 사용하며, 여러 원주민 언어와 공존한다. 그중 가장 중요한 언어는 케추아어로, 인구의 16.92%가 사용하며, 1.7%는 아이마라어를, 0.8%는 다른 원주민 언어를 사용한다. 국가의 도시 지역, 특히 해안 지역에서는 스페인어 단일 언어 사용이 우세한 반면, 국가의 많은 농촌 지역, 특히 아마존 지역에서는 다국어 사용 인구가 우세하다.
스페인어는 정부에서 사용되며 국가의 주류 언어로, 미디어, 교육 시스템, 상업에서 사용된다. 안데스 고산지대에 거주하는 아메리카 원주민들은 케추아어와 아이마라어를 사용하며, 안데스 산맥 동쪽과 아마존 분지에 인접한 열대 저지대에 거주하는 다양한 원주민 그룹과는 민족적으로 구별된다.
페루의 뚜렷한 지리적 지역은 스페인어가 아메리카 원주민 언어보다 우세한 해안 지역과, 산악 및 고지대의 보다 다양한 전통적인 안데스 문화 사이의 언어적 분할에 반영된다. 안데스 동쪽의 원주민 인구는 다양한 언어와 방언을 사용한다. 이들 그룹 중 일부는 여전히 전통적인 원주민 언어를 고수하는 반면, 다른 그룹은 거의 완전히 스페인어에 동화되었다. 케추아어가 사용되는 지역의 공립학교에서 케추아어를 가르치려는 조직적이고 증가하는 노력이 있어왔다. 페루 아마존 지역에서는 아샤닌카어, 보라어, 아과루나어를 포함한 수많은 원주민 언어가 사용된다.
많은 페루 지명은 원주민 언어에서 유래했다. 앙카시, 쿠스코, 푸노 지역의 안데스 공동체에서는 케추아어 또는 아이마라어 이름이 압도적으로 우세하다. 그러나 스페인어 기반의 철자법은 이들 언어의 표준화된 알파벳과 충돌한다. 2016년 7월 22일 공식 신문 엘 페루아노에 발표된 법률 29735 규정을 승인하는 최고령 제004-2016-MC호 제20조에 따르면, 국립 지리원(Instituto Geográfico Nacional, IGN)이 사용하는 명칭을 표준화하기 위해 원주민 언어의 표준화된 알파벳으로 된 지명의 적절한 철자를 점진적으로 제안해야 한다. 국립 지리원은 페루 공식 지도에서 필요한 변경을 수행한다.
10.4. 종교

로마 가톨릭은 수세기 동안 페루의 지배적인 신앙이었지만, 종교 관습은 원주민 전통과 높은 수준의 혼합주의를 보인다. 페루의 두 대학인 페루 가톨릭 교황청 대학교와 산 파블로 가톨릭 대학교는 페루 상위 5개 대학에 속한다. 2017년 인구 조사 기준으로, 12세 이상 인구의 76%가 자신을 가톨릭 신자라고 밝혔고, 14.1%는 복음주의자, 4.8%는 개신교, 유대교, 후기 성도, 여호와의 증인이었으며, 5.1%는 무종교였다.
아메리카 원주민의 종교 전통은 페루인들의 신앙에 계속해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성체 축일, 성주간, 크리스마스와 같은 가톨릭 축제는 때때로 아메리카 원주민 전통과 혼합된다. 콜럼버스 이전 아메리카 원주민 축제는 여전히 널리 퍼져 있으며, 고대 잉카 축제인 인티 라이미는 특히 농촌 공동체에서 여전히 기념된다.
대부분의 마을, 도시, 촌락에는 자체 공식 교회나 대성당 및 수호성인이 있다. 페루의 두 성인은 아메리카 최초의 성인인 리마의 로사와 마르틴 데 포레스이다. 페루에서 가장 큰 대성당은 리마 대성당이다. 다른 주목할 만한 교회와 대성당으로는 쿠스코 대성당, 아레키파 대성당, 산토 도밍고 대성당이 있다.
10.5. 교육

페루의 교육은 국가 교육 정책의 수립, 시행 및 감독을 담당하는 교육부의 관할 하에 있다. 페루 정치 헌법에 따르면, 유아, 초등 및 중등 교육은 공립학교에서 의무적이고 무료이다. 또한, 학업 성적이 우수하고 입학 시험에 합격한 학생들에게는 공립 대학교 교육도 무료이다. 페루의 대부분 학교는 사립학교 및 종교학교이다.
교육은 여러 단계로 나뉜다: 초기 교육은 0세에서 5세 사이의 기간에 해당하며, 어린이에게 포괄적인 발달에 필요한 자극을 제공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유아원과 기술-교육 활동을 제공하는 유치원이 담당한다. 초등 교육은 1학년과 2학년으로 구성된 첫 번째 주기로 시작된다. 어린이의 입학 연령은 6세이다. 이 단계는 초등학교 1학년에서 시작하여 6학년으로 끝난다. 중등 교육은 1학년부터 5학년까지 5년으로 구성된다. 그 다음에는 기술, 생산, 기술 또는 대학 교육이 가능한 고등 교육이 이어진다. 대학교에 입학하기 위해서는 입학 시험을 치르는 것이 필수적이지만, 시험의 난이도는 대학의 요구 사항에 따라 다르다.
페루의 문해율은 2007년 기준 92.9%로 추정되며, 이 비율은 도시 지역(96.3%)보다 농촌 지역(80.3%)에서 더 낮다. 초등 및 중등 교육은 의무 교육이며 공립학교에서는 무료이다.
페루는 신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고등 교육 기관 중 하나를 보유하고 있다. 산마르코스 국립대학교는 페루 부왕령 시대인 1551년 5월 12일에 설립되었으며, 아메리카 대륙에서 공식적으로 설립된 최초이자 가장 오래 지속적으로 운영되는 대학교이다. 산마르코스 대학교는 페루 최고이자 남아메리카 최고 대학 중 하나로 알려져 있다.
10.6. 보건 및 의료

범미 보건 기구에 따르면, 남성의 기대 수명은 72.6세, 여성은 77.9세이다. 영아 사망률은 출생 천 명당 18명으로, 1990년부터 2011년까지 76% 감소했다. 페루인의 주요 사망 원인은 종양, 인플루엔자 및 폐렴, 세균성 질환, 허혈성 심장 질환, 뇌혈관 질환이다. 2017년 인구 및 주택 총조사에 따르면, 인구의 75.5%가 어떤 형태로든 건강 보험에 가입되어 있으며, 이는 22,173,663명에 해당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구의 24.5%는 어떠한 종류의 보험도 가지고 있지 않다.
11. 문화

페루 문화는 주로 이베리아와 안데스 전통에 뿌리를 두고 있지만, 다양한 유럽, 아시아, 아프리카 민족 집단의 영향도 받았다. 페루의 예술 전통은 잉카 이전 문화의 정교한 도자기, 직물, 보석, 조각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잉카인들은 이러한 공예를 유지하고 마추픽추 건설을 포함한 건축적 업적을 이루었다. 식민지 시대 예술은 바로크 양식이 지배적이었지만, 토착 전통에 의해 변형되었다.
이 시기 동안 대부분의 예술은 종교적 주제에 초점을 맞추었다. 그 시대의 수많은 교회와 쿠스코 화파의 그림들이 대표적이다. 독립 이후 예술은 침체되었다가 20세기 초 인디헤니스모의 등장으로 다시 활기를 띠었다. 1950년대 이후 페루 예술은 절충적이며 외국 및 국내 예술 흐름 모두에 의해 형성되었다.
11.1. 음식

스페인의 아메리카 탐험과 발견으로 인해 탐험가들은 감자, 토마토, 옥수수 등 구세계에는 알려지지 않았던 식재료를 포함하는 콜럼버스 교환을 시작했다. 현대 페루 원주민 음식에는 종종 옥수수, 감자, 고추가 포함된다. 페루 감자 연구소에 따르면 현재 페루 땅에는 3,000가지가 넘는 종류의 감자가 재배되고 있다.
현대 페루 요리는 아메리카 원주민과 스페인 음식에 중국, 아프리카, 아랍, 이탈리아, 일본 요리의 강한 영향을 혼합한 것이다. 흔한 요리로는 안티쿠초, 세비체, 파차만카 등이 있다. 페루의 다양한 기후는 요리에 좋은 다양한 식물과 동물의 성장을 가능하게 한다. 페루는 세계 최고의 요리 중 하나를 보유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수도 리마에는 세계 최고 레스토랑 중 하나인 센트럴 레스토랑테가 있으며, 페루 각 지리적 지역(코스타(해안), 시에라(산맥), 셀바(열대우림))의 다양한 페루 요리를 제공한다.
페루 요리는 지역 관행과 재료를 반영하며, 잉카인을 포함한 원주민 인구와 식민지 개척자 및 이민자들이 들여온 요리의 영향을 받았다. 고국에서 익숙한 재료가 없었기 때문에 이민자들은 페루에서 구할 수 있는 재료를 사용하여 전통 요리를 변형했다. 페루 요리의 네 가지 전통 주식은 옥수수, 감자 및 기타 덩이줄기, 명아주과(퀴노아, 카니와, 키위차) 및 콩과(콩과 루핀)이다. 스페인인이 들여온 주식에는 쌀, 밀, 육류(소고기, 돼지고기, 닭고기)가 포함된다. 퀴노아, 키위차, 고추, 여러 뿌리와 덩이줄기와 같은 많은 전통 음식은 최근 수십 년 동안 인기가 높아졌으며, 이는 토착 페루 음식과 요리 기술에 대한 관심의 부활을 반영한다. 관광객들이 방문하는 쿠스코와 같은 마을에서는 전통 요리가 현대적인 감각으로 제공되는 것을 흔히 볼 수 있다. 셰프 가스톤 아쿠리오는 현지 재료에 대한 인식을 높이는 데 기여한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11.2. 예술
페루 예술은 안데스 문명에서 기원한다. 이들 문명은 스페인의 아메리카 식민지화 이전에 현대 페루 영토에서 발생했다. 페루 예술은 스페인 정복 이후 유럽 요소를 통합했으며 수세기에 걸쳐 현대에 이르기까지 계속 발전했다.
11.2.1. 선콜럼버스 시대 예술

페루의 가장 초기 예술 작품은 태평양 연안에 집중된 쿠피스니케 문화와, 리마 북쪽 안데스 산맥의 코르디예라 네그라와 코르디예라 블랑카 사이에 주로 위치했던 차빈 문화에서 유래했다. 대략 기원전 9세기경의 이 시대 장식 작품은 상징적이고 종교적인 성격을 띠었다. 예술가들은 금, 은, 도자기를 사용하여 다양한 조각품과 부조 조각을 만들었다. 이들 문명은 건축과 목조 조각으로도 유명했다.
파라카스 문화의 카베르나스와 네크로폴리스 문화는 기원전 9세기에서 서기 2세기 사이에 페루 남부 해안에서 발전했다. 파라카스 카베르나스는 종교적 표현을 담은 복잡한 다색 및 단색 도자기를 생산했다. 파라카스 네크로폴리스의 무덤에서는 또한 정교한 기하학적 패턴으로 제작된 많은 직물을 포함한 복잡한 직물이 출토되었다. 기원전 3세기는 람바예케 지역에서 도시 문화인 모체가 꽃피운 시기였다. 모체 문화는 태양의 와카와 달의 와카, 그리고 시판의 우아카 라하다와 같은 건축 작품을 생산했다. 그들은 계단식 경작과 수리 공학의 전문가였으며 독창적인 도자기, 직물, 회화 및 조각 작품을 제작했다. 또 다른 도시 문화인 와리 문화는 8세기에서 12세기 사이에 아야쿠초에서 번성했다. 그들의 중앙 집중식 도시 계획은 파차카막, 카하마르키야, 와리 윌카와 같은 다른 지역으로 확장되었다. 서기 9세기에서 13세기 사이에 군사 도시 티와나쿠 제국이 티티카카 호수 국경에서 일어났다. 현대 볼리비아의 같은 이름의 도시를 중심으로 한 티와나쿠는 기념비적인 유형의 석조 건축과 조각을 도입했다. 이러한 건축과 예술 작품은 티와나쿠가 필요한 도구를 만들 수 있게 해준 청동 개발 덕분에 가능했다.
도시 건축은 14세기와 15세기 사이에 치무 문화에서 새로운 정점에 도달했다. 치무는 라리베르타드의 모체 강 계곡에 찬찬 도시를 건설했다. 치무는 숙련된 금세공인이었으며 뛰어난 수리 공학 작품을 만들었다. 스페인 정복 직전 몇 세기 동안 페루를 패권 하에 통합한 잉카 제국은 이전 문명의 문화 유산의 상당 부분을 자신들의 작품에 통합했다. 그들의 예술 작품과 건축의 중요한 유물은 쿠스코와 같은 도시, 삭사이와만과 마추픽추와 같은 건축 유적, 그리고 쿠스코를 잉카 제국의 나머지 지역과 연결했던 석조 포장 도로에서 볼 수 있다.
11.2.2. 식민지 시대 예술

페루의 조각과 회화는 세비야 바로크 화파의 강한 영향을 받은 수도사들이 설립한 아틀리에에서부터 그 정체성을 정의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맥락에서 리마 대성당 성가대석의 의자, 페드로 데 노게라가 제작한 리마 중앙 광장의 분수, 그리고 식민지 시대 생산물의 상당 부분이 기록되었다. 스페인인들이 설립한 최초의 예술 중심지는 쿠스코 화파로, 케추아어를 사용하는 예술가들에게 유럽 회화 양식을 가르쳤다. 디에고 키스페 티토(1611년-1681년)는 쿠스코 화파의 초기 구성원 중 한 명이었고, 마르코스 사파타(1710년-1773년)는 마지막 구성원 중 한 명이었다.
이 시기의 회화는 유럽과 원주민의 영향이 혼합된 양상을 반영하는데, 이는 D. 데 모라가 그린 죄수 아타우알파의 초상화나 이탈리아 화가 마테오 페레스 데 알레시오와 안젤리노 메도로, 스페인 화가 프란시스코 베하라노와 J. 데 이예스카스, 그리고 크리올로 J. 로드리게스의 캔버스에서 분명하게 드러난다.
17세기와 18세기 동안, 과도한 장식과 주로 곡선을 사용하는 바로크와 로코코 양식은 건축과 조형 예술 분야에서도 지배적이었으며, 리마의 산프란시스코 수도원 벽 등이 그 예이다.
11.3. 문학
페루 문학은 현대 페루 공화국에서 생산된 문학뿐만 아니라 식민지 시대 페루 부왕령에서 생산된 문학, 그리고 케추아족, 아이마라족, 찬카족과 같이 선콜럼버스 시대에 현재 페루 지역에 살았던 다양한 민족 집단이 창조한 구전 전통도 포함한다.

스페인인들은 16세기에 문자를 도입했다. 식민지 시대 문학 표현에는 연대기와 종교 문학이 포함되었다. 초기 연대기 작가 중 일부는 군사 원정의 공식 기록을 작성하는 책임을 맡은 작가이자 군인이었다. 또한 이 지역을 정복하고 식민지화하려는 노력에 대한 독특한 개인적 통찰력을 제공한 비공식 연대기 작가 또는 개인 일기 작가 그룹도 소수 있었다. 대부분의 경우, 이들 연대기 작가들은 모두 스페인 정복자의 관점에서 글을 썼으며, 그들의 임무는 페루 원주민들을 "문명화"하고 "진정한 신앙을 드러내는" 것이었다. 공식 스페인 연대기 작가 중에는 피사로의 개인 비서였던 프란시스코 헤레스가 있었는데, 그는 1534년에 페루와 누에바 카스티야라고 불리는 쿠스코 주의 정복에 대한 진실된 이야기(Verdadera relación de la conquista del Perú y provincia del Cuzco llamada la Nueva Castilla스페인어)를 저술했다. 원주민 연대기 작가들도 알려져 있는데, 예를 들어 티투 쿠시 유팡키는 스페인 문화에 익숙해진 후 1570년에 스페인인들이 어떻게 페루에 들어왔고 그들이 함께 살았던 시기에 망고 잉카가 겪었던 일들에 대한 이야기(Relación de cómo los españoles entraron en Pirú y el subceso que tuvo Mango Inca en el tiempo en que entre ellos vivió스페인어)를 저술했다.
독립 이후, 코스툼브리스모와 낭만주의가 가장 일반적인 문학 장르가 되었으며, 리카르도 팔마의 작품이 그 대표적인 예이다. 20세기 초의 인디헤니스모 운동은 시로 알레그리아와 호세 마리아 아르게다스와 같은 작가들에 의해 주도되었다. 19세기 말과 20세기 초의 아방가르드 운동은 잡지 콜로니다와 아마우타의 창간을 보았는데, 후자는 1926년 저명한 사회주의 수필가 호세 카를로스 마리아테기에 의해 창간되었다. 영향력 있는 시인 세사르 바예호는 그 협력자 중 한 명으로, 1920년대와 1930년대에 모더니즘적이고 종종 정치적으로 참여적인 시를 썼다. 현대 페루 문학은 라틴 아메리카 붐의 주요 구성원인 노벨 문학상 수상자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와 같은 작가들 덕분에 인정받고 있다.
11.4. 음악과 춤


페루 음악은 안데스, 스페인, 아프리카의 뿌리를 가지고 있다. 선콜럼버스 시대에는 각 지역마다 음악적 표현이 매우 다양했으며, 케나와 틴야가 일반적인 악기였다. 스페인인들은 기타와 하프와 같은 새로운 악기를 도입했고, 이는 차랑고와 같은 혼합 악기의 발전으로 이어졌다. 페루 음악에 대한 아프리카의 기여에는 그 리듬과 타악기인 카혼이 포함된다. 페루 민속춤에는 마리네라, 톤데로, 사마쿠에카, 디아블라다, 우아유노 등이 있다.
페루 음악은 국가 악기인 차랑고가 지배적이다. 차랑고는 류트 계열 악기의 일원으로, 식민지 시대에 스페인 비우엘라를 모방한 음악가들에 의해 발명되었다. 카나스와 티티카카 지역에서는 차랑고가 구애 의식에 사용되며, 상징적으로 인어를 악기로 불러내어 여성을 남성 연주자에게 유혹한다. 1960년대까지 차랑고는 가난한 농촌 사람들의 악기로 폄하되었다. 1959년 혁명 이후 인디헤니스모 운동(1910년-1940년)이 일어났고, 차랑고는 다른 연주자들 사이에서 대중화되었다. 변형으로는 왈라이초, 치야도르, 친릴리, 그리고 더 크고 낮은 음을 내는 차랑곤이 있다.
스페인 기타가 널리 연주되지만, 스페인에서 유래한 반두리아도 마찬가지이다. 기타와 달리, 이것은 수년에 걸쳐 페루 연주자들에 의해 변형되어, 12현 6코스 악기에서 단 4코스에 12~16현을 가진 악기로 바뀌었다. 유럽에서 유래한 바이올린과 하프도 연주된다. 페루에서 매우 유명한 악기는 잉카 시대로 거슬러 올라가는 팬플루트이다. 이것은 속이 빈 대나무 관으로 만들어졌으며 페루 안데스 산맥에서 널리 연주된다.
11.5. 영화

페루 영화 산업은 다른 일부 라틴 아메리카 국가들만큼 다작을 하지는 못했지만, 일부 페루 영화들은 지역적으로 성공을 거두었다. 역사적으로 페루 영화는 1932년 이키토스에서 안토니오 웡 렌히포에 의해 시작되었으며 (1900년의 중요한 초기 영화 광고판과 함께), 이는 고무 붐과 기술을 도시에 가져온 외국인들의 유입 덕분이었다. 이는 수도 리마에서 제작된 영화와는 다른 스타일을 특징으로 하는 광범위하고 독특한 영화 목록의 발전으로 이어졌다.
페루는 또한 라틴 아메리카 최초의 3D 애니메이션 영화인 카야오의 해적들을 제작했다. 이 영화는 식민지 시대에 네덜란드와 영국 사략선들의 공격으로부터 자신을 방어해야 했던 역사적인 항구 도시 카야오를 배경으로 한다. 이 영화는 페루 회사 알파마요 엔터테인먼트가 제작했으며, 1년 후 두 번째 3D 영화인 드래곤: 불의 운명을 만들었다.
2006년 2월, 페루와 스페인의 합작으로 제작되고 클라우디아 요사가 감독한 영화 마데인우사는 상상의 안데스 마을을 배경으로 하며, 마갈리 솔리에르가 연기한 마데인우사의 정체된 삶과 내전 후 페루의 트라우마를 묘사한다.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의 마술적 사실주의 요소를 공유한 요사는 로테르담 국제 영화제에서 상을 받았다. 요사의 두 번째 장편 영화인 슬픔의 우유("La Teta Asustada")는 아카데미 역사상 최초의 페루 영화로 제82회 아카데미상 외국어 영화상 후보에 올랐다. 이 영화는 2009년 베를린 영화제에서 황금곰상을 수상했다.
11.6. 스포츠


스포츠의 개념은 16세기 스페인인들의 도착과 함께 시작되었지만, 많은 게임과 다른 토착 형태의 오락은 식민지 시대 이전에 존재했다. 최근에는 상업화와 연결된 미국의 체육 이념이 광범위한 호응을 얻고 있다. 페루의 스포츠는 여러 스포츠 연맹(각 스포츠 종목마다 하나씩)으로 나뉘며, 이들은 그 실행을 규제하는 최고 국가 기관인 페루 스포츠 연구소(IPD)의 후견 하에 있다. 대부분의 스포츠 연맹은 리마의 비야 데포르티바 나시오날에 기반을 두고 있다. 페루에서 가장 큰 경기장은 8만 명 이상을 수용할 수 있는 에스타디오 모누멘탈 "U"로, 남아메리카에서 두 번째로 큰 경기장이다. 페루의 국립 경기장은 에스타디오 나시오날이다. 페루는 2004년 코파 아메리카, 2005년 FIFA U-17 세계 선수권 대회, 2013년 및 2024년 볼리바르 경기 대회, 그리고 페루가 개최한 가장 큰 스포츠 행사인 2019년 팬아메리칸 게임 등 다양한 스포츠 행사를 개최했다.
축구는 페루에서 가장 인기 있고 널리 행해지는 스포츠이다. 페루 프리메라 디비시온은 페루에서 가장 중요한 클럽 토너먼트이다. 남자 대표팀은 세계 무대에서 몇 차례 중요한 성과를 거두었다. 그들은 FIFA 월드컵에 다섯 번 참가했다. 마찬가지로, 그들은 1939년과 1975년 두 차례 코파 아메리카 챔피언이 되었으며, 1936년 하계 올림픽에서는 8강전에서 오스트리아에게 기권승이 주어진 후 귀국하기 전에 인상적인 경기를 펼쳤다. 테오필로 쿠비야스는 페루 최고의 축구 선수로 여겨진다. 클럽 수준에서는 우니베르시타리오 데 데포르테스가 1972년 코파 리베르타도레스 준우승, 스포르팅 크리스탈이 1997년 준우승으로 두각을 나타냈다. 국제 대회 우승 경력이 있는 유일한 페루 클럽은 2003년 레코파 수다메리카나와 2004년 레코파 수다메리카나를 우승한 시엔시아노와, 2011년 U-20 코파 리베르타도레스 챔피언인 우니베르시타리오이다.
페루에서 인기 있는 다른 스포츠로는 배구, 서핑, 가라테가 있다. 페루는 팬아메리칸 게임에서 다수의 금메달, 은메달, 동메달을 획득했다. 페루 여자 배구 국가대표팀은 1980년대와 90년대에 지배적인 팀 중 하나였으며, 1988년 하계 올림픽에서 은메달을 획득했는데, 당시 소련에 3-2로 패배했지만 경기 초반에는 큰 차이로 앞서고 있었다. 페루는 전통적으로 서핑과 배구에서 강세를 보여왔다.
11.7. 세계유산
페루에는 유네스코 세계유산 목록에 등재된 문화유산 8건, 자연유산 2건, 복합유산 2건이 있다. 주요 세계유산은 다음과 같다.
- 쿠스코 시가지 (1983년, 문화유산): 잉카 제국의 수도였던 쿠스코는 잉카 시대의 석조 건축물과 스페인 식민지 시대의 교회가 조화를 이루는 독특한 도시 경관을 자랑한다. 잉카의 정교한 석조 기술과 바로크 양식의 건축물이 어우러져 역사적 가치가 높다.
- 마추픽추 역사 보호 지구 (1983년, 복합유산): '잉카의 잃어버린 도시'로 불리는 마추픽추는 안데스 산맥 해발 2430 m에 위치한 잉카 시대의 성채 도시이다. 뛰어난 건축 기술과 주변 자연환경과의 조화가 경이로우며, 문화적, 자연적 가치를 모두 인정받아 복합유산으로 등재되었다.
- 차빈 고고 유적 (1985년, 문화유산): 기원전 900년경 번성했던 차빈 문화의 중심지로, 복잡한 신전 건축물과 독특한 석조 조각으로 유명하다. 안데스 고대 문명의 종교와 예술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유적이다.
- 우아스카란 국립공원 (1985년, 자연유산): 세계에서 가장 높은 열대 산맥인 코르디예라 블랑카 산맥에 위치하며, 페루 최고봉인 우아스카란 산(6768 m)을 포함한다. 다양한 고산 생태계와 아름다운 빙하, 호수 등이 잘 보존되어 있다.
- 찬찬 고고 유적지 (1986년, 문화유산): 치무 왕국의 수도였던 찬찬은 세계에서 가장 큰 어도비(흙벽돌) 도시 유적이다. 넓은 면적에 걸쳐 정교한 도시 계획과 화려한 부조 장식이 남아 있어 치무 문화의 높은 수준을 보여준다.
- 마누 국립공원 (1987년, 자연유산): 아마존 열대우림의 서쪽 가장자리에 위치하며, 세계적으로도 생물 다양성이 매우 높은 지역 중 하나이다. 다양한 고도에 걸쳐 다채로운 생태계를 포함하며, 수많은 희귀 동식물의 서식지이다.
- 리마 역사 지구 (1988년, 1991년, 문화유산): 페루의 수도 리마의 구시가지로, 스페인 식민지 시대의 중요한 건축물들이 잘 보존되어 있다. 대성당, 수도원, 궁전 등 바로크 양식과 신고전주의 양식의 건축물들이 역사적 가치를 지닌다.
- 리오 아비세오 국립공원 (1990년, 복합유산): 안데스 산맥 동쪽 사면에 위치하며, 열대 안데스 생태계와 중요한 고고학 유적을 함께 보유하고 있다. 특히 멸종 위기종인 노란꼬리울리원숭이의 서식지이며, 차차포야스 문화의 유적도 발견된다.
- 나스카와 후마나 평원의 지상화 (1994년, 문화유산): 건조한 나스카 사막 평원에 그려진 거대한 지상화들로, 동물, 식물, 기하학적 도형 등 다양한 형상을 하고 있다. 제작 목적과 방법은 여전히 수수께끼로 남아 있으며, 고대 나스카 문화의 독특한 유산이다.
- 아레키파 역사 지구 (2000년, 문화유산): '백색 도시'로 불리는 아레키파의 역사 지구는 화산암인 실라르(sillar)로 지어진 아름다운 건축물들로 유명하다. 바로크 양식과 안데스 토착 요소가 결합된 독특한 건축 양식을 보여준다.
11.8. 축제 및 공휴일
페루는 다채로운 전통 축제와 국경일 및 공휴일이 풍부한 나라이다. 이러한 행사들은 페루의 역사, 종교, 문화를 반영하며 국민들의 삶에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
대표적인 전통 축제:
- 인티 라이미 (태양제, Inti Raymi스페인어): 매년 6월 24일 쿠스코에서 열리는 잉카 제국의 가장 중요한 축제로, 태양신 인티에게 제사를 지내던 의식을 재현한다. 화려한 의상과 전통 음악, 춤이 어우러져 장관을 이룬다.
- 세뇨르 데 로스 밀라그로스 (기적의 주님 축제, Señor de los Milagros스페인어): 매년 10월 리마에서 열리는 페루 최대의 종교 축제 중 하나이다. 지진으로부터 리마를 보호했다고 믿어지는 '기적의 주님' 성화를 모시고 대규모 행렬을 벌인다.
- 칸델라리아 성모 축제 (Fiesta de la Virgen de la Candelaria스페인어): 매년 2월 푸노에서 열리는 축제로, 다채로운 전통 춤과 음악 공연이 펼쳐진다.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되어 있다.
- 카르나발 (Carnaval스페인어): 사순절 전에 페루 전역에서 열리는 축제로, 지역마다 독특한 방식으로 진행된다. 물싸움, 거리 행진, 전통 음식 나누기 등이 일반적이다.
주요 국경일 및 공휴일:
날짜 | 한국어 표기 | 스페인어 표기 | 비고 |
---|---|---|---|
1월 1일 | 새해 첫날 | Año Nuevo | |
3월 - 4월 중 | 성주간 | Semana Santa | 이동 휴일 (목요일, 금요일) |
5월 1일 | 노동절 | Día de los Trabajadores | |
6월 29일 | 성 베드로와 성 바오로 대축일 | San Pedro y San Pablo | |
7월 28일-7월 29일 | 독립기념일 | Fiestas Patrias | 28일은 독립 선언일, 29일은 군대 및 경찰 기념일 |
8월 30일 | 리마의 성녀 로사 기념일 | Santa Rosa de Lima | |
10월 8일 | 앙가모스 해전 기념일 | Combate de Angamos | |
11월 1일 | 모든 성인 대축일 | Día de Todos los Santos | |
12월 8일 | 원죄 없이 잉태되신 동정 마리아 대축일 | Inmaculada Concepción | |
12월 25일 | 크리스마스 | Navidad |
이 외에도 각 지역별로 고유한 축제와 기념일이 다수 존재한다.
12. 관련 인물
페루는 역사, 정치, 학문, 예술, 스포츠 등 다양한 분야에서 중요한 업적을 남기거나 국제적으로 알려진 많은 인물들을 배출했다. 주요 인물들은 다음과 같다.
- 파차쿠티: 잉카 제국의 제9대 황제로, 제국의 기틀을 다지고 영토를 크게 확장한 위대한 정복 군주이자 개혁가이다.
- 아타우알파: 잉카 제국의 마지막 황제로, 스페인 정복자 프란시스코 피사로에게 사로잡혀 처형당했다.
- 투팍 아마루 2세: 18세기 스페인 식민 통치에 맞서 대규모 원주민 봉기를 이끈 지도자이다.
- 호세 데 산 마르틴: 아르헨티나 출신의 장군으로, 페루를 비롯한 남아메리카 여러 국가의 독립을 이끈 핵심 인물이다. 페루에서는 '페루의 보호자'로 불린다.
- 시몬 볼리바르: 베네수엘라 출신의 독립운동가로, 페루를 포함한 남아메리카 북부 지역 국가들의 독립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 라몬 카스티야: 19세기 페루의 대통령으로, 두 차례 집권하며 노예제 폐지, 구아노 수출을 통한 경제 발전 등 국가 근대화에 기여했다.
- 미겔 그라우 세미나리오: 태평양 전쟁 당시 페루 해군의 영웅으로, '앙가모스의 기사'로 불리며 칠레 해군에 맞서 싸우다 전사했다.
- 리카르도 팔마: 19세기 페루의 작가이자 학자로, 페루의 역사와 전설을 담은 《페루 전통》(Tradiciones Peruanas)으로 유명하다.
- 세사르 바예호: 20세기 페루를 대표하는 시인으로, 아방가르드 문학의 선구자로 평가받으며 그의 작품은 전 세계적으로 번역되었다.
- 호세 카를로스 마리아테기: 20세기 초 페루의 사상가이자 언론인으로, 라틴 아메리카 마르크스주의의 중요한 인물로 평가받는다.
- 빅토르 라울 아야 데 라 토레: 아메리카 혁명인민동맹(APRA)의 창시자로, 20세기 페루 정치에 큰 영향을 미친 정치 지도자이다.
- 호세 마리아 아르게다스: 20세기 페루의 소설가이자 인류학자로, 안데스 원주민의 세계와 문화를 깊이 있게 다룬 작품들로 유명하다.
- 알베르토 후지모리: 일본계 페루인으로, 1990년부터 2000년까지 페루 대통령을 역임했다. 경제 안정과 테러 조직 소탕 등의 업적이 있으나, 권위주의 통치와 인권 침해 논란으로 평가가 엇갈린다.
- 하비에르 페레스 데 케야르: 페루의 외교관으로, 1982년부터 1991년까지 제5대 유엔 사무총장을 역임했다.
-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 페루를 대표하는 세계적인 소설가로, 2010년 노벨 문학상을 수상했다. 라틴 아메리카 붐 세대의 주요 작가 중 한 명이다.
- 가스톤 아쿠리오: 페루의 유명 셰프이자 레스토랑 경영자로, 페루 요리를 세계에 알리고 페루 식문화 발전에 크게 기여했다.
- 클라우디아 요사: 페루의 영화감독으로, 영화 《슬픔의 우유》로 2009년 베를린 국제 영화제 황금곰상을 수상했다.
- 테오필로 쿠비야스: 페루의 전설적인 축구 선수로, 1970년대 페루 축구의 황금기를 이끌었으며 FIFA 월드컵에서 뛰어난 활약을 펼쳤다.
- 파올로 게레로: 현역 페루 축구 선수로, 페루 축구 국가대표팀의 주장이자 역대 최다 득점자이다.
이 외에도 많은 인물들이 페루의 역사와 문화 발전에 기여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