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Early life and background
조지 알라기아는 스리랑카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 가나로 이주했고, 이후 영국에서 교육을 받으며 언론인의 길을 걷게 되었다. 그의 초기 삶은 다양한 문화적 배경과 학업적 성취로 특징지어진다.
1.1. Childhood and education
조지 맥스웰 알라기아는 1955년 11월 22일 실론의 콜롬보 (현 스리랑카)에서 태어났다. 그의 부모는 실론 타밀족인 도널드 라트나라자 알라기아 (Donald Ratnarajah Alagiah, c. 1925년~2013년)와 테레사 카루나이암마 (Therese Karunaiamma, 1996년 사망, 본명 산티아필라이)였다. 그의 아버지 도널드는 토목공학자이자 이후 세계보건기구의 공중 보건 컨설턴트로 일했다. 그는 네 명의 여동생이 있었다. 조지 알라기아의 가족은 스리랑카의 타밀족 혈통을 가지고 있었다.
1961년, 그가 5살 때 그의 부모는 싱할라족에 의한 타밀족에 대한 민족 차별을 피하기 위해 서아프리카의 가나로 이주했으며, 그곳에서 크리스트 더 킹 국제학교에서 초등 교육을 받았다. 11살 때 영국으로 건너가 영국 포츠머스에 위치한 독립 로마 가톨릭 학교인 세인트 존스 칼리지에서 중등 교육을 받았다. 이곳에서 유일한 유색인종으로서 인종차별을 경험하기도 했지만, 학업에 정진했다. 그는 이후 더럼 대학교의 반 마일더트 칼리지에서 정치학을 전공했다. 더럼 대학교 재학 중에는 학생 신문인 팔라티네이트의 기자로 활동하며 편집장이 되었고, 더럼 학생회의 안식년 임원(sabbatical officer)을 역임했다.
2. Early career
조지 알라기아는 BBC에 입사하기 전 사우스 매거진에서 기자로서의 경력을 시작했으며, 아프리카 편집자로서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다.
대학 졸업 후인 1980년대에 조지 알라기아는 사우스 매거진(South Magazine)에 입사하여 아프리카 편집자로 일했으며, 1982년부터는 특파원으로 활동했다. 그의 초기 저널리즘 경력은 국제적인 시야와 개발도상국에 대한 깊은 이해를 형성하는 데 기반이 되었다.
그는 2004년 인도양 지진해일 참사 이후 스리랑카에 있는 그의 할아버지의 옛 집을 방문하여 피해 상황을 둘러보기도 했다. 가족의 옛집은 파괴되었지만, 그는 여동생들과 놀던 낡은 우물을 알아보았으나 우물은 복구할 수 없는 상태였다.
3. Broadcasting career
조지 알라기아는 BBC에서 7년간의 인쇄 저널리즘 경력을 바탕으로 방송 경력을 시작했으며, 외신 특파원과 주요 뉴스 진행자로서 폭넓은 활동을 펼쳤다.
3.1. Foreign correspondent activities
알라기아는 사우스 매거진에서 7년간의 인쇄 저널리즘 경력을 쌓은 후 1989년에 BBC에 입사했다. BBC 입사 후에는 런던에 본사를 둔 개발도상국 특파원으로 일했으며, 이후 남아프리카 요하네스버그에 주재하는 특파원으로 활동했다.
그는 BBC의 주요 외신 특파원 중 한 명으로서 르완다 학살, 이라크 남부의 습지 아랍인 문제, 아프가니스탄, 라이베리아, 시에라리온, 코소보, 소말리아의 내전 등 광범위한 사건들을 현장에서 취재했다. 그는 아프리카와 개발도상국에 대한 전문가로 평가받았으며, 넬슨 만델라, 데스몬드 투투 대주교, 전 유엔 사무총장 코피 아난, 짐바브웨의 로버트 무가베 대통령 등 국제적으로 중요한 인물들을 인터뷰했다.
그의 다큐멘터리 및 특별 보고서로는 미국의 차별 철폐 정책이 "잃어버린 대의"인 이유를 다룬 어사인먼트(Assignment) 프로그램의 보고서, 사담 후세인의 이라크 북부 쿠르드족에 대한 제노사이드 캠페인을 다룬 BBC의 뉴스나이트(Newsnight) 프로그램의 보고서, 그리고 됭케르크 철수 작전 참전 용사들의 마지막 재회를 다룬 보고서 등이 있다.
3.2. News presenting activities
조지 알라기아는 BBC에서 다양한 주요 뉴스 프로그램의 진행자를 역임했다. 1999년, 그는 BBC 원 오클락 뉴스(BBC One O'Clock News)와 BBC 나인 오클락 뉴스(BBC Nine O'Clock News)의 보조 앵커가 되었다. 2002년 BBC Four 뉴스가 출범하면서 진행자를 맡았으며, 이 프로그램은 이후 더 월드(The World)로, 다시 월드 뉴스 투데이(World News Today)의 다른 판으로 재출범했다.
2003년 1월부터는 BBC 식스 오클락 뉴스(BBC Six O'Clock News)에 합류하여 2005년 10월까지 소피 로워스와, 그리고 2007년 10월까지 나타샤 카플린스키와 공동 진행했다. 2007년 12월, 그는 식스 오클락 뉴스의 단독 진행자가 되었다. 2006년에는 BBC 월드 뉴스와 BBC Two에서 월드 뉴스 투데이를 진행하기 시작했으며, 이 프로그램은 2010년 2월 1일 GMT로 재편되었다. 그는 2014년까지 이 프로그램에 마지막으로 출연했다. 이전에는 BBC 뉴스 앳 텐(BBC News at Ten)의 대체 진행자로서 주로 주요 진행자인 휴 에드워즈와 피오나 브루스가 자리를 비울 때 월요일부터 목요일까지 진행했다. 그는 BBC의 아시아계 뉴스 앵커로서는 첫 사례로 알려져 있다. 2011년 10월, 알라기아는 영국의 인종간 결혼 역사에 대한 3부작 다큐멘터리 시리즈인 믹스드 브리타니아(Mixed Britannia)를 진행했다.
4. Awards and honors
조지 알라기아는 그의 저널리즘 경력 동안 여러 권위 있는 상을 수상하며 그의 뛰어난 보도 능력과 공로를 인정받았다.
2000년, 알라기아는 코소보 전쟁 보도로 BAFTA 어워드를 수상한 BBC 팀의 일원이었다. 그는 수많은 상을 수상했는데, 1993년 로열 텔레비전 협회의 '최우수 국제 보고서상'을 받았고, 1994년에는 국제앰네스티 영국 미디어상의 전체 수상자가 되었다. 2008년 신년 서훈에서 저널리즘에 대한 공로로 대영 제국 훈장 장교 (OBE)를 수여받았다. 2010년에는 아시안 어워드에서 '텔레비전 분야 탁월한 업적상'을 수상했다.
5. Other activities and interests
저널리즘 활동 외에도 조지 알라기아는 다양한 사회적 참여와 문학적 활동을 통해 그의 폭넓은 관심사와 재능을 보여주었다.
5.1. Social and public engagement
조지 알라기아는 2002년부터 2009년까지 페어트레이드 재단의 후원자로 활동했으나, 2009년 7월 BBC 경영진이 이해충돌을 주장하며 사임할 것을 요청하여 물러나게 되었다. 당시 BBC는 공정성 원칙에 따라 주요 언론인이 세계 무역에 대한 논란의 여지가 있는 견해를 명확히 대변하는 운동을 지지하는 것은 부적절하다고 해명했다. 이 결정에 대해 일부 대중으로부터 BBC에 항의가 접수되기도 했다.
그는 또한 마이크로파이낸스를 개발 도구로 지원하는 데 적극적으로 참여했으며, 오퍼튜티니 인터내셔널과 같은 단체를 지지하는 활동을 펼쳤다. 2000년에는 '페어런팅 UK'(Parenting UK)의 후원자가 되었다.
5.2. Writing activities
그는 첼트넘 문학 페스티벌, 케스윅, 헤이 온 와이, 런던 등 다양한 문학 페스티벌에 출연했다. 또한 왕립 지리학회, 왕립 예술 협회, 왕립 해외 연맹 등에서 강연을 진행했다. 그는 로열 셰익스피어 컴퍼니의 이사회 이사이기도 했다.
2020년 그의 첫 소설인 더 버닝 랜드(The Burning Land)가 '작가 협회' 상 후보에 올랐다. 이 책은 남아프리카 공화국에서의 부패와 살인 사건을 다룬 "흥미진진하고 박진감 넘치는 스릴러"로 묘사된다.
6. Personal life
조지 알라기아의 개인적인 삶은 학창 시절 만난 배우자와의 결혼, 그리고 두 아들을 둔 가정생활로 대중에게 알려져 있다.
1984년 4월, 그는 더럼 대학교에서 만난 프랜시스 로바탄과 결혼했다. 두 아들 애덤과 매튜가 있으며, 북런던의 스토크 뉴잉턴에 거주했다.
7. Illness and death
조지 알라기아는 오랜 기간 직장암과 싸웠으며, 암의 재발과 전이 속에서도 대중에게 자신의 상황을 솔직하게 공유했다.
7.1. Illness
2014년 4월, 조지 알라기아가 직장암 치료를 받고 있음이 발표되었다. BBC의 성명은 "그는 지금까지 받은 모든 좋은 소원에 감사하며 긍정적인 결과에 대해 낙관하고 있다"고 밝혔다. 6월 28일, 알라기아는 트위터를 통해 "고무적인 진전"을 보이고 있다고 알렸다. 2015년 10월 말, 그는 치료가 공식적으로 끝났다고 트위터에 발표했으며, 11월 10일 BBC로 복귀했다.
2018년 1월, 암이 재발하여 추가 치료를 받을 예정임이 밝혀졌다. 2018년 3월, 선데이 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알라기아는 자신의 암이 말기이며, 잉글랜드에서는 60세부터 자동 제공되는 암 검진 프로그램이 스코틀랜드처럼 50세부터 제공되었다면 더 일찍 발견될 수 있었을 것이라고 언급했다. 2020년 6월, 알라기아는 암이 폐, 간, 림프절로 전이되었지만 "만성적"이거나 "말기" 단계는 아니라고 말했다. 2022년 1월 인터뷰에서는 자신의 암이 "결국 나를 잡을 것 같다"고 말하면서도 "매우 운이 좋다고 느낀다"고 덧붙였다. 2022년 10월, 알라기아는 암이 더 광범위하게 전이되었다고 발표했으며, 이후 새로운 치료 과정을 위해 TV 출연을 잠시 중단했다.
7.2. Death
조지 알라기아는 2023년 7월 24일, 67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그의 사망 소식은 BBC를 통해 발표되었으며, 그를 기억하는 많은 이들의 애도가 이어졌다.
8. Legacy and reception
조지 알라기아는 영국 언론계에서 깊은 존경을 받았던 인물로 평가된다. 그는 오랜 기간 BBC의 주요 뉴스 진행자이자 뛰어난 외신 특파원으로 활동하며 대중에게 신뢰와 전문성을 쌓았다.
특히 르완다 학살과 같은 비극적인 사건들을 현장에서 생생하게 보도하며, 분쟁 지역과 개발도상국의 현실을 알리는 데 기여했다. 이는 그의 저널리즘적 용기와 인도주의적 관점을 잘 보여주는 부분이다. 그는 BBC에서 첫 아시아계 뉴스 앵커로서 다양성과 포용성 증진에 상징적인 역할을 수행했다.
방송 활동 외에도 페어트레이드 운동과 마이크로파이낸스 지원 등 다양한 사회 공헌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며 사회적 책임감을 보여주었다. 그의 소설 더 버닝 랜드 또한 문학적 재능을 드러내는 계기가 되었다. 오랜 기간에 걸친 암과의 투병 과정은 대중에게 깊은 감동과 연민을 주었으며, 그의 투병 중 보여준 용기와 솔직함은 많은 이들에게 귀감이 되었다. 그는 마지막까지 자신의 경험을 공유하며 질병에 대한 인식 제고에도 기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