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 아베 조지**(安部 譲二아베 조지일본어, 1937년 5월 17일 ~ 2019년 9월 2일)는 일본의 소설가이자 탤런트이다. 본명은 아베 나오야(安部 直也아베 나오야일본어)이다. 그는 전직 야쿠자 출신으로, 자신의 복역 경험을 바탕으로 쓴 자전적 소설 『담장 안의 뉘우치지 않는 사람들』(塀の中の懲りない面々)이 베스트셀러가 되면서 유명해졌다. 이 작품은 영화로도 각색되었다. 또한 전 일본항공의 객실 승무원으로도 근무했으며, 만화 원작자로서도 활발히 활동하여 카키자키 마사스미와의 협업으로 제작된 『RAINBOW -이사실(二舎六房)의 일곱 명-』으로 제51회 쇼가쿠칸 만화상 일반 부문을 수상하는 등 다채로운 이력을 남겼다. 그는 2019년 9월 2일, 82세의 나이로 폐렴으로 사망했다. 그의 파란만장한 삶은 일본 사회의 다양한 단면을 조명하는 독특한 시각을 제공하며, 그의 작품은 일본에서 '담장 안'이라는 표현이 교도소를 지칭하는 데 영향을 미치기도 했다.
2. 생애 초반
아베 조지는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나 명문 학교에 다니는 등 엘리트 교육을 받았지만, 청소년기에 야쿠자 조직과 깊은 관계를 맺으며 파란만장한 삶의 궤적을 그리기 시작했다.
2.1. 출생 및 가족 관계
아베 조지는 1937년 5월 17일 도쿄부 도쿄시에서 일본우선에 근무했던 아버지 아베 마사오와 어머니 타마에 사이의 차남이자 4남매 중 막내로 태어났다. 그의 어머니는 이와타니 마츠헤이의 후손으로, 아베 조지 본인이 1994년 6월 NHK의 『라이벌 일본사』 프로그램에서 이와타니 마츠헤이의 생애를 해설하며 이를 밝힌 바 있다. 외할아버지인 가지와라 나카지는 메이지 시대의 자수성가한 인물로, 야마가타현에서 태어나 도쿄 제국대학을 졸업하고 은행가가 되었다. 어머니의 언니는 법학박사 기시 세이이치의 장남과 결혼했다. 또한 친할아버지는 조산 기사로, 나쓰메 소세키나 마사오카 시키와 도쿄 제국대학 동기였다.
2.2. 교육 및 해외 경험
아베 조지는 어린 시절 아버지의 전근으로 인해 영국 런던과 이탈리아 로마에서 유년기를 보냈다. 제2차 세계 대전의 영향으로 1941년 일본우선이 유럽 지점을 철수하자 가족과 함께 일본으로 귀국하여 시나가와구 히가시고탄다에 위치한 어머니의 친정에서 자랐으며, 모리무라 학원 유치원에 다녔다.
일본이 제2차 세계 대전에 참전하자, 1942년 군속으로 싱가포르(쇼난도)에 출정했던 아버지가 남긴 책꽂이에 있던 윌리엄 셰익스피어 전집, 소세키 전집, 세계문학 전집, 플루타르코스 영웅전, 명장언행록 등을 국민학교 저학년 시절부터 모두 독파하며 신동으로 불렸다. 특히 미나토구립 아자부 초등학교에서는 신동으로 불리기도 했다.
또한 대전 말기에는 아타미시에 있는 할머니의 별장으로 피난했으며, 그곳에서 쇼치쿠 로빈스의 감독이었던 닛타 교이치에게 야구를 배웠다. 이 인연으로 성인이 된 후 아베가 안도구미의 아마추어 야구팀에 있을 때, 그의 어머니가 아베가 야쿠자를 그만두고 프로 야구 선수가 되겠다는 말을 믿고 닛타를 통해 닛타의 게이오기주쿠 대학 야구부 후배인 벳토 카오루에게 아베를 소개하기도 했다.
2.3. 청소년기 활동 및 야쿠자와의 접점
아베 조지는 아자부 중학교 재학 중이던 2학년 때 에도가와 란포가 주재하는 잡지에 아브노말 섹스 소설을 투고하여 란포로부터 "이 아이는 마음이 병들었다"는 말을 듣고 기타카마쿠라의 절에서 사경을 하기도 했다. 그는 중학교 재학 시절부터 안도구미 대간부인 아베 긴고의 의형제가 되어 안도구미 사무실을 드나들었다. 이 때문에 아자부 고등학교로의 내부 진학이 허락되지 않았다.
1952년에는 여름 축제에서 여러 테키야들과 싸움을 벌이다 식칼로 인한 상해죄 사건을 일으켰다. 이로 인해 곤란해진 아버지에 의해 어린 시절을 보냈던 영국으로 유학을 가게 되었고, 윔블던 (런던)의 기숙학교에 진학했다. 이 학교 재학 중 남런던 지구 소년 복싱 대회에 출전하여 라이트웰터급 선수로 우승했다. 하지만 입학 4개월 후, 이탈리아에서 유학 온 여학생과 함께 전라로 장난치던 것이 사감에게 발각되어 퇴학 처분을 받았다. 16세 때에는 카메라맨의 보조원으로 네덜란드로 건너가 로버트 미첨과 매춘부를 두고 싸움을 벌인 경험도 있다.
3. 야쿠자 활동과 수감 생활
아베 조지는 청소년기부터 야쿠자 조직에 몸담았고, 여러 차례 수감 생활을 겪으며 자신의 파란만장한 이력을 쌓았다. 그의 반복된 구속과 복역은 훗날 그의 대표작이 되는 소설의 중요한 자산이 되었다.
3.1. 안도구미 및 기타 조직 활동
일본으로 돌아온 후 게이오기주쿠 고등학교에 입학했으며, 동교 체육회 권투부 주장을 맡았다. 하지만 16세에 본격적으로 폭력단 구성원이 되었고, 와세다 대학 학생 16명에게 싸움을 걸어 3명이 제압한 사건으로 인해 "학교의 명예를 심각하게 더럽혔다"는 이유로 1955년 봄 제명 처분을 받았다. (일설에는 당시 친분 있던 이시하라 신타로가 게이오기주쿠 고등학교 복싱부를 주제로 『태양의 계절』을 쓴 것이 학교의 명예를 손상시킨 복싱부원 중 한 명으로서 가와구치 히로시 등과 함께 퇴학 처분을 받게 된 원인이라는 설명도 있다.)
게이오기주쿠 고등학교 제명 후에는 고베 시립 스마 고등학교와 즈시 카이세이 중학교·고등학교 등 6개의 고등학교를 전전했으며, 안도구미 조직원이었던 시기에는 호젠 고등학교 정시제 과정에 입학했다. 이 기간 중 18세 때 요코하마시 이세자키초로 채권 추심을 갔다가 불량 외국인 브로커와 다툼 중 처음으로 총에 맞는 경험을 했다.
19세 때에는 요코하마에서 불량 외국인으로부터 빚을 받으러 갔다가 경호원에게 살해될 뻔했고, 반격하여 상대방의 권총과 차를 빼앗아 도주했다. 이로 인해 강도살인미수죄와 총포도검류소지단속법 위반으로 체포되어 소년원에서 요코하마 형무소 요코스카 형무지소로 신병이 옮겨졌다. 1심에서 징역 7년의 실형 판결을 받았으나, 접견 온 곤 히데미 등의 권유로 항소했다. 항소심에서 변호인의 노력으로 긴급피난이 인정되어 강도살인미수에서 절도죄·횡령죄·총포도검류소지단속법 위반으로 죄명이 변경되었고, 징역 2년 6개월, 보호관찰부 집행유예 5년의 유죄 판결을 받았다.
이후 '환상의 철'이라는 별명을 가진 주고쿠 지방의 거물 야쿠자 두목에게 신병이 맡겨져, 두목의 일가를 지키는 동시에 두목의 딸과 연인 관계가 되었다. 이 거물 두목은 곤 히데미가 소설 『해적』의 모델로 삼았던 우익 거물이자 전모렌의 히로시마 지부장이었던 이와타 유키오로 알려져 있다. 또한 젊은 시절에는 '블러디 나오'라는 링네임으로 지하 복싱 활동을 했으며, 해외를 전전하기도 했다. 세계 챔피언 샌디 새들러의 일본 내한 당시 스파링 파트너를 맡았다고도 하며, 서독 함부르크에서는 악역 프로레슬러로 링에 올라 역도산으로부터 "언제든 안도구미에 부탁할 테니 야쿠자 그만두고 레슬링을 하라"는 권유를 받기도 했다.
1980년대, 작가로 전향한 후 청년 잡지 인터뷰에서 "프랑스 체류 중 사격 대회에 출전하여 22구경 부문에서 우승했는데, 그 사실이 『르 몽드』지에 게재되자 주변에서 '일본에서는 권총을 소지할 수 없는데 어떻게 우승할 수 있느냐'는 질문이 나와 '나는 야쿠자다'라는 취지의 발언을 했고, 그 때문에 프랑스에서 국외 추방당했다"는 내용이 있다.
3.2. 수감 생활 및 전향
1966년부터 형무소에서 복역했다. 안도구미 해산 후인 1965년 1월, 일본항공을 퇴사한 후에도 여러 차례의 구속과 복역을 반복했다.
1975년에는 권총 불법 소지 및 마약 단속법 위반으로 실형을 선고받아 같은 해 가을부터 후추 형무소에서 4년간 복역했다. 당시 수감자 중에는 공산주의자 동맹 적군파(일본 적군) 활동가인 시로사키 쓰토무가 있었는데, 아베의 저서에 따르면 다카 일본항공 하이재킹 사건이 발생하기 직전 시로사키에게 오르그될 뻔한 적이 있었다고 한다.
1981년에 야쿠자 생활을 청산했다. 아베의 전과는 폭행, 상해, 도박, 마약, 청소년 보호 조례 위반 등 일본 내에서만 총 14범에 달했으며, 해외에서도 여러 차례 복역을 경험하여 해외 전과는 3범, 국내외 형무소 생활은 통산 8년에 이르렀다.
4. 다양한 직업 활동
아베 조지는 야쿠자 생활과 병행하거나 청산한 후에도 다양한 직업을 거치며 독특한 경력을 쌓았다. 이는 그의 인생 경험을 풍부하게 만들었고, 훗날 작가로서의 소재가 되었다.
4.1. 일본항공 승무원
1959년 22세의 나이로 호젠 고등학교 정시제 과정을 졸업하고 도쿄YMCA 국제호텔전문학교에 입학했다. 전학이 극히 잦았음에도 불구하고 부모의 확고한 신분과 뛰어난 영어 실력 덕분에 1961년 1월 23세의 나이로 일본항공에 입사했다. 당시 동기 입사자 중에는 훗날 역도산과 결혼한 다나카 게이코가 있었다.
훈련 후 객실 승무원으로서 국내선과 국제선에 탑승했으며, 호놀룰루와 프랑크푸르트 노선에서의 사진을 남기기도 했다. 일본항공 객실 승무원 시절의 근무 태도는 성실한 편이었지만, 감정적으로 행동하는 경우가 많아 동료의 여자친구를 빼앗아 교제하거나, 오만한 지점장을 폭행하거나, 승객을 집어던진 적도 있었다고 한다. 출근 시에는 차 안에서 안도구미의 가몬을 떼어내고 일본항공의 사장으로 바꿔 달았다고 전해진다.
객실 승무원 시절 동료였던 엔도 요코와 결혼했다. 훗날 작가가 되는 당시 일본항공 홍보부 사원이었던 후카다 유스케와도 알게 되었고, 후카다의 아내 또한 객실 승무부 동료였다. 당시 후카다는 아베를 "귀국 자녀 출신으로 전형적인 야마노테 지역 도련님 스타일"로 생각했으며, 그가 폭력단 조직원이었던 사실은 퇴사할 때까지 전혀 알지 못했다고 한다.
이 기간 중 1963년 4월 17일부터 1967년 8월 25일까지 발생한 제2차 히로시마 항쟁에 파견되기도 했다. 영화 『의리 없는 전쟁』 제4부 『의리 없는 전쟁 정상 작전』에서는 전국에서 싸움꾼들이 히로시마시로 집결하는 내용이 나오지만, 실제로는 전면전이 되지 않아 아베는 한가롭게 야구를 즐겼다고 한다. 어느 날 상점가 야구 대회에 참가하여 잘 날아가지 않는 연식 야구공을 히로시마 시민 구장 (초대)의 외야 스탠드로 날려 보내자, 상점가 회장이 "두목님께 잘 말씀드릴 테니 히로시마 도요 카프 입단 테스트를 받아보라"고 권유하기도 했다.
이 기간 동안 스튜어드에서 퍼서로 승진했으나, 불합리한 요구를 하는 승객과의 마찰로 그를 폭행한 것을 계기로 전과 3범(당시)으로 집행유예 중이었던 사실과 폭력단 조직원이었던 사실이 드러나 안도구미 해산(1964년) 후인 1965년 1월 퇴사하게 되었다.
4.2. 사업가 및 기타 활동
일본항공 퇴사 후인 1966년부터 형무소에서 복역했다. 같은 해 미시마 유키오 원작, 다미야 지로 주연으로 일본항공 시절의 아베를 모델로 한 영화 『복잡한 그』가 다이에이에서 제작, 개봉되었다. 다미야 지로가 연기한 주인공 '미야기 조지'는 훗날 아베가 작가로 데뷔할 때 필명이 되었다.
안도구미 해산 후에는 신주쿠구의 고가네이잇카로 헤드헌팅되었다. 동시에 아내와 함께 레스토랑 '사우살리토'를 경영하고, 골든 킥복싱 중계의 해설자, 라이브 하우스 경영, 프로모터, 경마 예상가 등 다양한 직업을 전전했다.
1960년대 후반부터 1970년대에 걸쳐 아오야마 (도쿄도 미나토구)에서 재즈 클럽 '로브로이'를 운영하던 시기에는 본점을 아내 엔도에게 맡기고, 아카사카 (도쿄도 미나토구)와 롯폰기, 미타 (도쿄도 미나토구)의 지점을 각각 애인에게 맡겼으며, 흰색 캐딜락 플리트우드를 몰고 도베르만을 키우며 오타구 우노키의 700평 규모 호화 저택에 살 정도로 기세등등했다. '로브로이'에서는 칸노 쿠니히코가 연주하기도 했지만, 당시 고등학생이던 야노 아키코도 연주했다. 훗날 아내 엔도가 당시를 회상하며 쓴 『아오야마 '로브로이' 이야기』는 텔레비전 드라마로도 제작되었다.
1974년 9월부터 반년간 볼리비아 정부군의 포정 항해장으로서 혁명군의 마을을 소탕하는 임무를 맡기도 했다고 한다. 또한 1975년에는 남베트남 정부군이 애용하는 프랑스제 메탐페타민 25 kg캔을 저렴하게 입수하고자 함락 직전의 사이공에 잠입했으나, 한 번은 1500.00 만 JPY에 구입한 메탐페타민을 군중에게 강탈당하고 가까스로 탈출한 적도 있다고 주장했다.
5. 작가 및 방송 활동
아베 조지는 수감 경험을 바탕으로 한 자전적 소설을 통해 베스트셀러 작가로 데뷔했으며, 그 특이한 이력과 솔직한 화법으로 텔레비전과 라디오에서 활발한 활동을 펼치며 대중적 인기를 얻었다.
5.1. 작가 데뷔 및 주요 저서
1983년부터 소설을 쓰기 시작했으나, 출판사를 찾기 어려웠다. 하지만 1984년 야마모토 나쓰히코에 의해 문재를 인정받아 잡지 『실내』에 형무소 복역 중의 체험기 『후추 목공장의 면면』 연재를 시작했다. 문필가로서의 길을 걷게 된 야마모토와의 만남에 대해서는 저서 등을 통해 수시로 "야마모토 선생님은 자신의 은사, 대은인이다"라고 언급했다.
1986년에 연재 내용이 정리되어 『담장 안의 뉘우치지 않는 사람들』(塀の中の懲りない面々)이라는 제목으로 분게이슌주에서 출판되었다. 이 책은 베스트셀러가 되었고 영화화되면서 아베 조지는 인기 작가로서의 지위를 확립했다. 일본에서 형무소를 '담장 안'이라고 표현하게 된 것은 이 작품의 영향이다.
5.2. 만화 원작 활동
아베 조지는 만화 작품의 원작에도 참여하여 2005년에는 『RAINBOW -이사실(二舎六房)의 일곱 명-』으로 제51회 쇼가쿠칸 만화상 일반 부문을 수상했다. 그 외 주요 만화 원작 작품으로는 다나카 마사히토가 작화한 『시부야 혼키 통키』, 키시야마 나오가 작화한 『붉은 탄환』, 후카야마 유키오가 작화한 『압사라스』, 미네기시 노부아키가 작화한 『구렌대 천황, 만수 11 전설 구렌』 등이 있다.
5.3. 텔레비전 및 라디오 출연
정보 오비 프로그램 『추적』(닛폰 TV 방송망 계열)의 금요 레귤러를 시작으로 텔레비전과 라디오에 다수 출연하며 탤런트로도 활동했다. 1990년에는 이시하라 프로덕션 제작의 형사 드라마 『대표이사 형사』에 경찰서장 역으로 레귤러 출연하는 등 활동의 폭을 넓혔다.
후지 TV의 『골든 킥복싱』 해설자로도 활동했으며, 마이니치 방송의 『퀴즈 세계는 쇼바이!!』, 『아베 조지의 스포츠 잔마이』, 『세계 통째로 2001년』, TV 도쿄의 『아베 조지의 위험한 밤』 등에 출연했다.
라디오에서는 TBS 라디오의 『즈바리 쾌답! 텔레폰 신상 상담』에서 답변자로 활동했으며, 이쥬인 히카루 심야의 바보력에도 출연했다. 닛폰 방송의 『당당! 천하무적』 진행도 맡았다.
1997년에는 시티헌터 텔레비전 스페셜 『굿 바이 마이 스위트하트』에 에리카 역으로 특별 출연하기도 했다.
6. 개인 생활 및 관심사
아베 조지는 다양한 분야의 저명인사들과 교류했으며, 그의 취미 생활과 정치적 견해 또한 그의 독특한 삶의 일부를 형성했다.
6.1. 교우 관계
아베 조지는 평생 다양한 분야의 저명인사들과 교류했다. 『내가 반한 남자들 - 일본 쾌남아 열전』에서 소개한 인물들만 해도 안도 노보루, 이시하라 유지로, 이즈미 소슈, 에나쓰 유타카, 오카와 코스케, 오노 반보쿠, 카네히라 마사키, 오고네이 미츠요시, 고시다 토시나리, 새드 샘 이치노세(다도 마리노의 매니저), 시마다 타케시, 조지 카와구치, 타카모토 키미오, 하타케야마 다카노리, 하나무라 모토지, 피스톤 호리구치, 맥 스즈키, 미야자와 쿠니히로, 무라타 가쓰시, 모리타 마사, 야마테 마사루, 유사 요시쿠니, 와타나베 마사토 등 화려한 면면을 자랑한다. 또한 뒷골목 인물 및 단체로는 '우나바라 세이헤이', '이와타 유키오', '모리와키 마사미츠', '투계협회' 등이 있으며, 해외 인물로는 필리핀의 '로페 사리엘' 등도 그의 저서에 등장한다.
그는 나가타 마사이치에게 깊은 은혜를 느끼고 있었으며, 마사이치의 손자이자 TBS 라디오의 디렉터 겸 프로듀서를 역임한 나가타 마모루의 부탁은 거절할 수 없었다고 한다. 나가타 마모루가 초대 프로듀서 겸 디렉터를 맡았던 『이쥬인 히카루 심야의 바보력』에서는 우치다 유키, 엔도 쿠미코, 샤론 스톤의 흉내를 계속 내거나, 데이팅 사이트에 등록하여 얼마나 인기가 있는지 다른 출연자들과 경쟁하는 등 다른 방송에서는 볼 수 없는 대우를 받기도 했다.
동갑내기인 우메미야 타츠오와는 "타츠짱", "조지"라고 부를 정도로 친한 사이였다. 또한 오카다 나나의 열렬한 팬으로 알려져 있으며, 자신이 원작을 쓴 영화 작품에 그녀를 출연시키기도 했다.
6.2. 취미 및 정치적 견해
아베 조지는 한신 타이거스의 열렬한 팬으로, 어릴 적 요시다 요시오의 볼 다루는 솜씨를 보고 광팬이 되었다. 또한 야구계에서는 아오타 노보루와 깊은 친분을 유지하고 있음을 블로그 등을 통해 밝히기도 한다.
그의 취미 중 하나인 바둑은 아마추어 유단자 실력으로, 1989년에는 일본 쇼기 연맹에서 발행하던 『쇼기 매거진』에 당시 A급 기사이자 타이틀 홀더들과의 2점 접대 대국 자전기 『져도 뉘우치지 않는 12번』을 연재했다. 오야마 야스하루에게 승리했을 때는 남의 시선을 아랑곳 않고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이 연재는 훗날 『돌격 쇼기 12번 - 톱 기사와의 2점 접대 대국 분전기』로 책으로 출간되었다.
그는 또한 대단한 고양이 애호가로 알려져 있다. 고양이 그림이 그려진 셔츠를 입고 있다가 두목에게 싫은 소리를 들은 적도 있다고 한다.
선거에서는 항상 일본 공산당에 투표했으나, 일본사회당과 일본 공산당의 지지를 받아 서민파 도쿄도지사로 재임 중이던 미노베 료키치가 고급 호텔인 호텔 오쿠라에서 아침 식사를 하고 있는 것을 목격하고 미노베와 한바탕 소동을 벌였다고 자서전에 기록하고 있다. 또한 2009년 제45회 일본 중의원 의원 총선거에서는 민주당에 투표하고 후회했다고도 언급했다.
우연히 개그맨 라이브를 보러 갔다가 "이 녀석은 뜰 것이다"라고 생각한 사람이 후카와 료였다. 훗날 텔레비전에 나오는 후카와를 보고 "봐, 떴잖아!"라고 말했다고 한다.
7. 사망
아베 조지는 2019년에 급성 폐렴으로 생을 마감하며, 그의 파란만장했던 삶의 막을 내렸다.
7.1. 사망 경위
아베 조지는 2019년 9월 2일 오전 1시 18분, 급성 폐렴으로 사망했다. 향년 82세였다.
8. 주요 저작
아베 조지는 소설, 만화 원작, 칼럼 등 다양한 형태의 저작을 남겼으며, 그의 작품들은 영화, 드라마, 애니메이션 등 여러 매체로 영상화되었다.
8.1. 소설
- 『담장 안의 뉘우치지 않는 사람들』(塀の中の懲りない面々, 분게이슌주, 1986년, 이후 문고판)
- 『담장 안의 플레이볼』(塀の中のプレイボール, 고단샤, 1987년, 이후 문고판)
- 『극도 세상의 멋진 사람들 - 28년간 이 남자들에게 매료되다』(極道渡世の素敵な面々 28年間、この男たちに魅せられて, 쇼덴샤, 1987년)
- 『극도의 은혜갚음 - 아베 조지 악인의 마권학』(極道の恩返し 安部譲二ワルの馬券学, 네스코, 1987년, 이후 슈에이샤 문고)
- 『담장 밖의 남녀들』(塀の外の男と女たち, 와니북스, 1987년)
- 『나의 감옥 수행』(ぼくのムショ修業, 고단샤, 1987년, 이후 문고판)
- 『때리고 맞고』(殴り殴られ, 슈에이샤, 1987년, 이후 문고판)
- 『안녕, 극도』(さらば、極道, 카도카와 쇼텐, 1987년)
- 『눈물점』(泣きぼくろ, 고단샤, 1988년, 이후 문고판)
- 『아베 조지의 의협심 학원』(安部譲二の侠気塾, 매거진 하우스, 1988년)
- 『담장 안의 뉘우치지 않는 사람들 2』(塀の中の懲りない面々 2, 분게이슌주, 1988년, 이후 문고판)
- 『제트 스트림』(ジェット・ストリーム, 고단샤, 1988년, 이후 문고판)
- 『흐린 뒤 맑음 무대 - 뉘우치지 않는 조지의 끝없는 라이브』(曇りのち晴れ舞台 懲りないジョージのエンドレス・ライブ, 도쿠마 쇼텐, 1988년)
- 『괴걸 조로메』(怪傑ゾロ目, 분게이슌주, 1988년, 이후 문고판)
- 『징역 그림 장인』(懲役絵図師, 고분샤, 1988년, 이후 문고판)
- 『건달 세상』(ちんぴら渡世, 지지쓰교노니혼샤, 1988년)
- 『담장 위의 곡예사들』(塀の上の曲芸師たち, 쇼덴샤, 1989년)
- 『협박하라, 샐러리맨!』(スゴめ、サラリーマン!, 도쿠마 쇼텐, 1989년)
- 『상 없음 벌만 있음 고양이도 있음』(賞ナシ罰アリ猫もいる, 분게이슌주, 1989년, 이후 문고판)
- 『프로 야구 죽어도 부탁드립니다 - 전직 야쿠자인 나만이 말할 수 있다』(プロ野球死んでもらいます 元極道の私だから言える, 학습연구사, 1989년)
- 『황금의 악몽』(黄金の悪夢, 쇼덴샤, 1989년)
- 『자갈의 노래꾼』(つぶての歌吉, 아사히 신문사, 1989년, 이후 문고판)
- 『여자에게 기대어 극도 세상 - 나의 사랑스러운 바보 아내・악처・성녀・마녀들...』(女にすがって極道渡世 わが愛しの愚妻・悪妻・聖女・魔女...たち, 슈후토세이카츠샤, 1989년)
- 『지렁이의 콧노래』(みみずのハナ唄, 분게이슌주, 1990년, 이후 문고판)
- 『우리는 천사가 아니야』(俺達は天使じゃない, 고단샤, 1990년, 이후 문고판)
- 『남자의 조건 - 더 강한 남자가 되고 싶다』(男の条件 もっと強い男になりたい, 고마쇼보, 1990년)
- 『버섯』(きのこ, 주오코론샤, 1991년)
- 『시속 14노트, 동쪽으로』(時速十四ノット、東へ, 고단샤, 1992년, 이후 문고판)
- 『음모에 빠진 기수』(謀られた騎手, 쇼덴샤, 1992년)
- 『담장 밖의 뉘우치지 않는 두 사람』(塀の外の懲りない二人, 지지쓰교노니혼샤, 1992년)
- 『항상 목숨 걸고! 소설 조지 카와구치 이야기』(いつも命がけ!小説ジョージ川口物語, 닛폰 TV 방송망, 1992년)
- 『마음의 담장은 스스로 넘어서라 - 아베 조지의 사랑받고 싶은 사람에게 사랑받는 법』(心の塀は自分で越えろ 安部譲二の好かれたい人に好かれる法, 아즈 커뮤니케이션즈, 1992년, 이후 PHP 문고)
- 『징역의 달인. "미국판" 담장 안의 뉘우치지 않는 사람들』(懲役の達人。「アメリカ版」塀の中の懲りない面々, 슈에이샤, 1992년)
- 『대열차 여행 오리엔트 익스프레스 15000킬로』(大列車旅行 オリエント・エクスプレス15000キロ, 분게이슌주, 1992년)
- 『돌격 쇼기 12번 - 톱 기사와의 2점 접대 대국 분전기』(突撃将棋十二番 トップ棋士との二枚落ち奮戦記, 일본 쇼기 연맹, 1992년)
- 『죄수 도로』(囚人道路, 고단샤, 1993년, 이후 문고판)
- 『바람 저편에』(風の向こうに, 카도카와 쇼텐, 1993년)
- 『속여서 미안해 - 내가 혀를 내두른 5명의 사기꾼들』(欺してごめん 私が舌を巻いた五人の詐欺師たち, 크레스트샤, 1993년)
- 『담장 안의 뉘우치지 않는 사람들 3』(塀の中の懲りない面々 3, 분게이슌주, 1994년)
- 『뉘우치지 않는 남자라고 해도...』(懲りない男と言われても..., 코사이도 출판, 1994년)
- 『불시착』(不時着, 샌드케 출판국, 1994년)
- 『동반 도박』(同伴賭博, 지지쓰교노니혼샤, 1994년)
- 『고양이의 주장, 고양이의 편』(猫のいいぶん、猫のみかた, 카와데 쇼보 신샤, 1995년, 이후 문고판)
- 『도박・갬블・떠돌이』(博奕・ギャンブル・旅烏, 플레이그래프샤, 1995년)
- 『나는 백수(110)의 왕』(僕は百獣(110)の王, 나군도, 1995년)
- 『시합 증서 - 충신장 외전』(仕合証文 忠臣蔵外伝, 유라쿠 출판사, 1996년)
- 『일어나, 잠든 호랑아! 사랑하니까 말한다.』(起きろ、寝ぼけトラ!愛しているから言う。, 소니 매거진스, 1996년)
- 『이 녀석만은 용서 못 해 - 세상을 대신하여 악인을 쏘다』(こいつだけは許せねえ 世間に代わってワルを撃つ, 일본 분게이샤, 1996년)
- 『미국 동해안・담론풍발』(アメリカ東海岸・談論風発, 코사이도 출판, 1996년)
- 『해결! 골프에 지친 사람이 잘 치게 되는 법』(解決!ゴルフに懲りた人がうまくなる, PHP 연구소, 1997년)
- 『조지로부터 사랑을 담아』(ジョージから愛をこめて, 코사이도 출판, 1997년)
- 『추억의 고로냥』(想い出のゴロニャン, 동식물 출판사, 1997년)
- 『천하의 13인』(天下御免の13人, PHP 연구소, 1998년)
- 『아아!! 여자가 일본을 망친다』(ああ!!女が日本をダメにする, 추케이 출판, 1998년, 이후 도쿠마 문고)
- 『가을은 스며들어 보였다』(秋は滲んで見えた, PHP 연구소, 1998년)
- 『인협으로 지이다』(仁侠でござる, 유라쿠 출판사, 1999년)
- 『파이널 라운드』(ファイナル・ラウンド, 고단샤, 1999년)
- 『잘라내기 블루스』(きりとりブルース, 도쿠마 문고, 1999년)
- 『행복을 권함 - "용기"와 "신념"으로 살아가기』(幸福のすすめ "勇気"と"信念"で生きる, 야마토 출판, 2000년)
- 『담장 밖의 동창회』(塀の外の同窓会, 분게이슌주, 2000년)
- 『부자는 나라의 보물입니다 - 화나는 이런 사회를 어떻게 살 것인가』(お金持ちは国の宝です 腹がたつこんな社会をどう生きる, 파르스 출판, 2000년)
- 『내가 반한 남자들 - 일본 쾌남아 열전』(俺が痺れた男たち 日本快男児列伝, 후타바샤, 2001년)
- 『야쓰가타케 아카게라 일지』(八ヶ岳あかげら日誌, PHP 연구소, 2001년)
- 『엄마, 죄송해요 - 엄마와 방황한 아들의 이야기』(母さん、ごめんなさい 母とグレた息子の物語, PHP 문고, 2001년)
- 『60세부터의 말썽쟁이 길』(六十歳からのやんちゃ道, 와이앤에프, 2001년)
- 『기억에 남는 권왕들』(記憶に残る拳豪たち, 쇼가쿠칸, 2001년)
- 『나의 빚 지옥 - 디플레이션・구조조정, 다가와라!』(オレの借金地獄 デフレ・リストラ、どんとこい!, 쇼덴샤, 2002년)
- 『일본 괴사 인물 열전』(日本怪死人列伝, 후소샤, 2002년, 이후 문고판)
- 『담장 안팎 식탐가 좌충우돌』(塀の内外喰いしんぼ右往左往, 고단샤+α 신서, 2003년)
- 『고양이의 꼬리』(猫のシッポ, 고단샤, 2003년)
- 『넘버원이 되지 않는 삶의 방식』(ナンバーワンにならない生き方, 일본 실업출판사, 2004년)
- 『남색 바다』(藍色の海, PHP 연구소, 2004년)
- 『도세이의 학교』(渡世の学校, 리드샤, 2004년)
- 『마주에게만 돈 벌게 하지 마라 - 뒷면에서 본 마권술』(馬主だけに儲けさせるな-ウラ側から見た馬券術, 하루키 문고, 2005년)
- 『"똑똑한 악당"이어야 인생이 잘 풀린다!』("頭のいいワル"だから、人生うまくいく!, 미카사 쇼보, 2006년)
- 『겉과 속이 있을 리 없다. 격차 사회를 앞지르는 행동학』(裏も表もあるもんか。格差社会を出し抜く行動学, 리드 문고, 2008년)
- 『멸종 위기종의 유언』(絶滅危惧種の遺言, 고단샤 문고, 2009년)
- 『이제 고양이 없이는 살 수 없어.』(もう、猫なしでは生きていけない。, 아오시샤, 2013년)
8.2. 공저 및 편저
- 『꿈을, 실현한다. 발을 씻은 나의 삶의 방식, 인생을 개척하는 법 - 통쾌하게 풀어낸 이야기』(夢を、実現する。足を洗った俺の生き方、人生の拓き方 痛快語り下ろし, 경제계, 1989년, 사토 마사타다 공저)
- 『일본의 명수필』 별권 56 도박(편)(日本の名随筆 別巻 56 賭事, 사쿠힌샤, 1995년)
- 『대승부 노무라 한신 VS 나가시마 교진 - 남자의 프라이드를 건 마지막 싸움』(大勝負 野村阪神VS長嶋巨人 男のプライドを賭けた最後の闘い, 추케이 출판, 1999년, 에나쓰 유타카 공저)
- 『사람은 왜 사는가 - 살아 있어서 좋았다고 생각하기 위해』(人はなぜ生きるのか 生きていてよかったと思えるために, 분게이샤, 2001년, 나미카와 에이타 공저)
- 『담장 안에서 본 인생』(塀の中から見た人生, 카나리아 쇼보, 2004년, 야마모토 조지 공저)
- 『인생 상담 극장』(人生相談劇場, 야마다 에이미 공저, 주오코론신샤, 2014년)
8.3. 번역서
- 로널드 리처드 로버츠 『에디슨 군의 더브』(エディソン郡のドブ, 후소샤, 1994년)
- 조지 포먼 『패배하지 않는 자』(敗れざる者, 카도카와 하루키 사무소, 1995년)
8.4. 만화 원작 및 칼럼
- 『시부야 혼키 통키』(渋谷ホンキィトンク시부야 혼키 통키일본어, 작화: 다나카 마사히토, 주간 플레이보이, 슈에이샤)
- 『붉은 탄환』(赤い弾丸아카이 단간일본어, 작화: 키시야마 나오, 빅 코믹 스피리츠, 쇼가쿠칸)
- 『압사라스』(アプサラス압사라스일본어, 작화: 후카야마 유키오, 주간 영 선데이, 쇼가쿠칸)
- 『RAINBOW -이사실(二舎六房)의 일곱 명-』(RAINBOW-二舎六房の七人-레인보우 -이사실(二舎六房)의 일곱 명-일본어, 작화: 카키자키 마사스미, 주간 영 선데이 ~ 빅 코믹 스피리츠, 쇼가쿠칸)
- 『구렌대 천황, 만수 11 전설 구렌』(愚連隊の神様、万寿十一伝説 紅蓮구렌대 천황, 만수 11 전설 구렌일본어, 작화: 미네기시 노부아키, 근대 마작 골드, 다케쇼보)
- 연재 칼럼: 『뉘우치지 않는 편집장 아베 조지의 뭐 이래저래』(데일리 스포츠)
- 기타: 『라이벌 일본사 3』(NHK 취재반 편, 카도카와 쇼텐)
8.5. 영상화 작품
아베 조지의 작품 중 일부는 영화, V 시네마, 텔레비전 애니메이션, 오리지널 비디오 애니메이션 등 다양한 형태로 영상화되어 대중에게 공개되었다.
8.5.1. 영화
- 『담장 안의 뉘우치지 않는 사람들』(塀の中の懲りない面々, 1987년, 쇼치쿠)
- 『담장 안의 플레이볼』(塀の中のプレイボール, 1987년, 쇼치쿠)
- 『극도 세상의 멋진 사람들』(極道渡世の素敵な面々, 1988년, 도에이)
- 『크레이지 보이즈』(クレイジーボーイズ, 1988년, 쇼치쿠 후지)
- 『컴백』(カンバック, 1990년, 쇼치쿠)
8.5.2. V 시네마
- 『네오 건달 철포다마 퓨~』(ネオチンピラ 鉄砲玉ぴゅ~, 1990년, 도에이 비디오/도호쿠신샤) ※『눈물점』의 영상화
- 『작귀 5 / 혼자만의 은퇴 시합』(雀鬼5/ひとりだけの引退試合, 1995년, 다케쇼보) - 아토 역
8.5.3. 텔레비전 애니메이션
- 『RAINBOW -이사실(二舎六房)의 일곱 명-』(RAINBOW-二舎六房の七人-레인보우 -이사실(二舎六房)의 일곱 명-일본어, 2010년, 닛폰 TV 방송망 외)
8.5.4. 오리지널 비디오 애니메이션
- 『아베 조지 캇토비 청춘기 시부야 혼키 통키』(安部譲二かっとび青春記 渋谷ホンキィトンク, 1988년, 나크 영화, 도쿠마 재팬, 도쿠마 커뮤니케이션즈, 전 4권)
9. 출연 목록
아베 조지는 작가 활동 외에도 다양한 텔레비전 프로그램, 라디오, 영화에 출연하며 대중에게 얼굴을 알렸다.
9.1. 텔레비전
- 『골든 킥복싱』(닛폰 TV 방송망 계열) - 해설자
- 『퀴즈 세계는 쇼 바이 쇼 바이!!』(닛폰 TV 방송망 계열)
- 『추적』(닛폰 TV 방송망 계열) - 금요 파트너
- 『아베 조지의 스포츠 잔마이』(마이니치 방송)
- 『세계 통째로 2001년』(마이니치 방송・TBS TV 계열)
- 『아베 조지의 위험한 밤』(TV 도쿄)
- 텔레비전 드라마: 『대표이사 형사』 (1990년 ~ 1991년, TV 아사히 계열) - 다쓰미 서장 오시마 시게조 역
- 텔레비전 드라마: 『담장 안의 뉘우치지 않는 사람들』(TBS 계열)
- 텔레비전 애니메이션: 『시티헌터 텔레비전 스페셜 『굿 바이 마이 스위트하트』』(1997년, 닛폰 TV 계열) - 에리카 역 ※특별 출연
9.2. 라디오
- 『즈바리 쾌답! 텔레폰 신상 상담』(TBS 라디오) - 답변자
- 『이쥬인 히카루 심야의 바보력』(TBS 라디오)
- 『당당! 천하무적』(닛폰 방송)
9.3. 영화
- 『담장 안의 뉘우치지 않는 사람들』(塀の中の懲りない面々, 1987년, 쇼치쿠) - 미즈타 준이치 역
- 『담장 안의 플레이볼』(塀の中のプレイボール, 1987년, 쇼치쿠)
- 『극도 세상의 멋진 사람들』(極道渡世の素敵な面々, 1988년, 도에이) - 아리가 기요시 역
- 『크레이지 보이즈』(クレイジーボーイズ, 1988년, 쇼치쿠 후지) - 라면집 주인 역
- 『컴백』(カンバック, 1990년, 쇼치쿠)
- 『슈라가 간다 4 도쿄 대전쟁』(修羅がゆく4 東京大戦争, 1997년, 나크) - 오니쓰카 이와오 역
- 『차오 1・2』(借王1・2, 1998년, 닛카츠) - 오사카부 경찰 나니와미나미 경찰서장 역
- 『극도의 아내들 결착』(極道の妻たち 決着, 1998년, 도에이) - 에가시라 역
- 『극도는 크리스천/슈라의 항쟁』(極道はクリ스チャン/修羅の抗争, 2004년, knack) - 스에마쓰 겐지 역
10. 음악 작품
- 『전설의 "붉은 구슬"』(伝説の"赤い玉", 1991년 2월 5일, 테이치쿠 엔터테인먼트) - 사야마 유카와 공동 출연
11. 평가 및 유산
아베 조지의 삶과 작품은 그가 겪었던 파란만장한 경험을 통해 일본 사회에 독특한 시각을 제시했으며, 특히 그의 대표작은 교도소에 대한 대중의 인식을 변화시키는 데 큰 영향을 미쳤다.
11.1. 문화 및 사회에 미친 영향
아베 조지의 대표작인 『담장 안의 뉘우치지 않는 사람들』은 형무소를 지칭하는 '담장 안'이라는 표현을 일본 사회에 널리 퍼뜨리는 데 기여했다. 그의 자전적 작품들은 전직 야쿠자이자 수감자로서의 경험을 생생하게 그려내며, 독자들에게 일반적인 사회에서는 접하기 어려운 세계를 엿볼 기회를 제공했다. 이는 단순히 흥미를 넘어 일본 사회의 어둡고 잘 알려지지 않은 단면에 대한 이해를 높이는 데 일조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또한, 그는 텔레비전 탤런트로 활약하며 자신의 독특한 이력을 바탕으로 한 솔직하고 거침없는 발언으로 대중에게 큰 인기를 얻었다. 이는 사회적 금기를 깨고 파란만장한 삶을 살아온 인물에 대한 대중의 호기심과 동시에, 솔직함을 높이 평가하는 일본 대중문화의 한 단면을 보여주었다. 그의 작품은 만화와 영상화로 이어지며 더 넓은 대중에게 영향을 미쳤다.
11.2. 비판 및 논란
아베 조지는 자신의 야쿠자 시절 과거에 대해 "대체로 10%만이 사실이고, 나머지는 부풀리고 각색한 것"이며, "작가는 정치인이나 공무원과 같아서 사실을 말할 리 없다"고 발언하여 자신의 저술의 신뢰성에 대한 논란을 자초하기도 했다. 이러한 발언은 그의 작품이 단순한 사실 기록이 아닌, 작가적 허구가 가미된 창작물임을 시사한다. 또한, 그의 파란만장한 과거 이력과 방송 활동 중의 거침없는 발언은 때때로 사회적 논란을 야기하기도 했다. 예를 들어, 금연 보조제 광고에 출연하여 "저는 편하게 담배를 끊었습니다"라고 대대적으로 광고했지만, 본인은 자신의 블로그 등에서 담배를 끊지 않았음을 고백하여 비판을 받기도 했다.
12. 같이 보기
- 안도 노보루
- 노무라 슈스케
- 하코다 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