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초기 생활 및 아마추어 경력
올레 에이나르 비에른달렌은 노르웨이의 농장에서 성장하여 어린 시절부터 바이애슬론에 재능을 보였다. 주니어 선수로서 뛰어난 성적을 거두며 국제 무대에 데뷔했고, 1990년대 중반 프로 선수로서 첫 주요 우승을 달성하며 성공적인 경력의 토대를 마련했다.
1.1. 어린 시절과 교육
올레 에이나르 비에른달렌은 노르웨이 부스케루드주 드람멘 근교의 시모스트란다에 위치한 농장에서 5남매 중 넷째로 태어나 성장했다. 그의 형제 중에는 바이애슬론 선수로 활동했던 다그 비에른달렌도 포함되어 있다.
1985년부터 바이애슬론을 시작한 그는 16세에 집을 떠나 게일로의 스포츠 아카데미에 입학하여 스포츠 경력을 쌓기 시작했다. 그는 처음에는 크로스컨트리 스키와 바이애슬론을 병행하며 훈련했지만, 1년 후 바이애슬론에 전념하기로 결정했다.
1.2. 주니어 경력
비에른달렌은 주니어 선수 시절부터 두각을 나타냈다. 1992년 캐나다 캔모어에서 열린 주니어 세계 선수권 대회 팀 경기에서 동메달을 획득하며 첫 커리어 메달을 기록했다. 이듬해인 1993년 독일 루폴딩에서 개최된 주니어 세계 선수권 대회에서는 개인전, 스프린트, 단체전에서 각각 금메달을 획득하며 총 3개의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이는 세르게이 체피코프만이 달성했던 대기록으로, 비에른달렌은 이 대회를 통해 크게 주목받기 시작했다.
1.3. 프로 스포츠 입문
1993년 주니어 세계 선수권에서의 압도적인 성공을 바탕으로, 19세의 나이에 바이애슬론 월드컵 무대에 데뷔했다. 그의 월드컵 데뷔는 당시 노르웨이의 실력 있는 바이애슬론 선수였던 에이리크 크발포스를 대신하여 1994년 동계 올림픽 국가대표로 선발되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월드컵에서의 첫 돌파구는 1994년 오스트리아 바트 가슈타인에서 열린 스프린트 경기에서 첫 월드컵 포디움에 오르면서 마련되었다. 그는 자국 노르웨이에서 열린 1994년 릴레함메르 동계 올림픽에 출전하며 올림픽 무대에 첫 선을 보였지만, 이 대회 최고 성적은 스프린트 28위에 머물렀다. 프로 선수로서의 첫 주요 우승은 1996년 1월 11일 이탈리아 안테르셀바에서 열린 개인전 경기에서 달성했다.
2. 프로 바이애슬론 경력
올레 에이나르 비에른달렌은 1990년대 중반부터 2010년대 중반까지 바이애슬론 월드컵, 세계 선수권 대회, 동계 올림픽 등에서 꾸준히 정상급 기량을 선보이며 독보적인 활약을 펼쳤다. 특히 2002년 솔트레이크시티 동계 올림픽에서의 전 종목 석권은 그의 경력 중 가장 빛나는 순간으로 평가받는다.
2.1. 초기 월드컵 성공과 올림픽 데뷔 (1994-1997)
1994년 릴레함메르 동계 올림픽에서 스프린트 28위라는 다소 아쉬운 성적으로 데뷔했지만, 1994-95 시즌에는 종합 4위를 기록하며 월드컵 상위권에 진입했다. 이 시즌에 스프린트 월드컵에서 1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1995-96 시즌에는 종합 9위로 잠시 주춤했으나, 1996-97 시즌에는 303점을 획득하며 종합 준우승을 차지했고, 스프린트 월드컵 우승 및 추적 월드컵 3위를 기록하며 다시 상위권에 복귀했다. 이 시기에는 1997년 독일 오버호프와 루폴딩에서 각각 10km 스프린트 월드컵 우승을 포함하여 총 3개의 개인전 월드컵 우승을 달성했다.
2.2. 압도적인 활약과 올림픽 전 종목 석권 (1998-2002)
1997-98 시즌에는 289점으로 종합 월드컵 우승을 차지하며 전성기를 맞았다. 특히 1998년 나가노 동계 올림픽에서는 남자 10km 스프린트에서 금메달을 획득했고, 4×7.5km 계주에서 은메달을 추가하며 첫 올림픽 메달을 목에 걸었다. 이 시즌에 그는 세계 선수권 금메달, 올림픽 금메달, 월드컵 종합 우승 타이틀을 모두 석권하는 위업을 달성했다.
2002년 솔트레이크시티 동계 올림픽은 비에른달렌의 경력에서 가장 빛나는 순간으로 기록된다. 그는 이 대회에서 남자 바이애슬론에 걸린 4개 종목(20km 개인, 10km 스프린트, 12.5km 추적, 4×7.5km 계주) 모두에서 금메달을 휩쓰는 전무후무한 기록을 세웠다. 이는 동계 올림픽 역사상 세 번째로 단일 대회에서 4개의 금메달을 획득한 선수이자, 바이애슬론 선수로는 처음으로 한 대회에서 2개 이상의 금메달을 획득한 선수로 이름을 올리는 순간이었다. 그는 솔트레이크시티 올림픽 이전 해에 열린 올림픽 테스트 이벤트에서도 3개 종목 모두 우승하며 대회를 준비했다.
2.3. 지속적인 성공 (2003-2009)
솔트레이크시티 올림픽 이후에도 비에른달렌의 활약은 계속되었다. 2002-03 시즌부터 2008-09 시즌까지 월드컵 종합 우승 5회, 준우승 2회를 기록하며 7년 연속 종합 포디움에 오르는 꾸준함을 보여주었다. 특히 2004-05 시즌에는 923점으로, 2008-09 시즌에는 1080점이라는 높은 점수로 종합 우승을 차지했다.
그는 2005년 바이애슬론 세계 선수권 대회와 2009년 바이애슬론 세계 선수권 대회에서 각각 4개의 금메달을 획득하며 솔트레이크시티 올림픽에서의 대기록을 세계 선수권 무대에서도 재현했다. 2009년 대한민국 평창군에서 열린 세계 선수권 대회 남자 12.5km 추적 경기에서는 15명 이상의 다른 선수들과 함께 경기 초반 잘못된 표식 때문에 코스를 이탈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선수들은 올바른 길 대신 다리 위로 스키를 탔고, 러시아 팀의 항의로 처음에는 1분 시간 페널티가 부과되었으나, 다른 7개 회원국의 항소 끝에 원 결과가 복원되었다. 비에른달렌은 이 대회에서 그의 첫 20km 개인전 세계 선수권 타이틀을 포함하여 10km 스프린트, 12.5km 추적, 4×7.5km 계주 등 6개 종목 중 4개 종목에서 금메달을 획득하는 압도적인 활약을 펼쳤다.

2005-06 시즌 월드컵에서는 3위로 시작했으나, 시즌 마지막 3개 레이스에서 모두 우승하며 총 6승을 거두고 종합 우승을 확정 지었다. 추적 및 매스 스타트 종목에서도 우승컵을 차지했고, 개인전 및 스프린트에서는 2위를 기록했다. 2006-07 시즌에는 첫 5개 레이스에서 모두 우승하며 완벽한 출발을 보였다. 특히 오스트리아 호흐필첸에서 열린 추적 경기에서는 2분 이상의 가장 큰 격차로 우승하기도 했다. 2006년 12월 30일, 독일 겔젠키르헨의 벨틴스 아레나에서 열린 바이애슬론 월드 팀 챌린지에서는 약 5만 1천 명의 관중 앞에서 린다 그루벤과 함께 4회 연속 우승을 차지했다. 시즌 중 잠시 훈련으로 인해 일부 월드컵 이벤트에 불참했음에도 불구하고, 종합 2위로 시즌을 마쳤다.
2008-09 시즌에는 장기 질환의 영향으로 어려움을 겪었지만, 두 번의 추적 경기에서 준우승을 기록했다. 겔젠키르헨 월드 팀 챌지는 훈련에 집중하기 위해 불참했다. 휴식 후 복귀하여 루폴딩에서 스프린트와 추적 경기에서 우승했고, 오버호프에서 매스 스타트 3위를 차지했다. 평창 세계 선수권 대회 이후 캐나다 밴쿠버에서 열린 스프린트에서 2위를 차지하며 월드컵 종합 선두로 올라섰다. 이후 노르웨이 트론헤임에서 열린 대회에서는 2위 한 번과 2승(그 중 하나는 무결점 사격으로 매스 스타트 우승)을 추가하며 우승컵을 확보했다. 시즌 마지막 스프린트 경기였던 러시아 한티만시스크에서 2위를 차지하며 통산 6번째 종합 우승을 확정 지었다. 다음 추적 경기에서는 팀 동료 에밀 헤글레 스벤센에게 아쉽게 패했지만, 추적 월드컵 타이틀을 획득했다.
2.4. 후기 올림픽 출전 (2010-2014)
2006년 토리노 동계 올림픽에서는 5개 종목에서 2개의 은메달과 1개의 동메달을 획득했다. 2010년 밴쿠버 동계 올림픽에서는 남자 20km 개인전 은메달과 4×7.5km 계주 금메달을 획득하며 우시 디슬의 기록을 넘어 동계 올림픽 역사상 가장 성공적인 바이애슬론 선수가 되었다. 그는 2002년에 이어 2010년에도 노르웨이 계주 팀의 마지막 주자로 나서 금메달을 이끌었다. 이로써 그는 동계 올림픽 역대 다관왕 중 두 번째로 많은 메달을 획득한 선수이자, 동계 올림픽에서 11개 메달을 획득한 단 두 명의 선수 중 한 명이 되었다.

만 40세의 나이로 출전한 2014년 소치 동계 올림픽에서는 남자 10km 스프린트에서 금메달을 따내며 비에른 델리와 함께 동계 올림픽 역대 최다 메달(12개) 타이를 기록했다. 이 금메달은 역대 동계 올림픽 개인 종목 최고령 금메달리스트 기록이기도 했다. 이어 혼성 계주 팀의 일원으로 두 번째 금메달을 획득하며 총 13개의 메달로 델리를 넘어 동계 올림픽 최다 메달리스트가 되는 역사적인 순간을 만들었다. 이 기록은 2018년 동계 올림픽에서 마리트 비에르겐이 15개 메달을 획득하기 전까지 유지되었다.
2.5. 마지막 시즌과 은퇴
비에른달렌은 2018년 동계 올림픽에 선수로 참가할 계획이었으나, 대회에 앞서 열린 노르웨이 국내 선발전에서 월드컵 대회 톱 6 진입이라는 기준을 충족하지 못해 대표팀 선발에서 탈락했다. 이로써 그의 7회 연속 동계 올림픽 출전의 꿈은 아쉽게도 좌절되었다. 그러나 그는 아내 다리야 돔라체바를 지원하기 위해 벨라루스 올림픽 대표팀 코치 자격으로 대회에 참석했다.
2018년 4월 3일, 비에른달렌은 현역 선수 생활 은퇴를 공식 발표했다. 그는 지난 시즌 동안 여러 차례 겪었던 심장 잡음 문제로 인해 경기력에 영향을 받았다고 설명하며, 건강상의 이유가 은퇴 결정의 중요한 배경이 되었음을 밝혔다.
2.6. 사격 정확도
비에른달렌은 뛰어난 사격 능력을 갖추고 있었지만, 일반적으로 사격 정확도 순위에서 상위 20위권 밖이었다. 2005-06 시즌에는 사격 성공률 84%를 기록했으며, 345개의 표적 중 292개를 맞혀 사격 정확도 부문에서 36위를 차지했다. 엎드려 쏴(프론)와 서서 쏴(스탠딩) 기록은 거의 비슷하게, 각각 172개 중 146개, 173개 중 146개를 맞혔다. 세부 종목별로는 개인전 92%, 스프린트 89%, 추적 96%, 매스 스타트 93%, 계주 96%의 사격 성공률을 보였다.
2004-05 시즌에는 85%의 사격 성공률로 노르웨이 선수 중 두 번째로 좋은 기록을 세웠다. 그는 364개의 표적 중 331개를 맞혔다. 엎드려 쏴는 180개 중 169개(92%)로 뛰어났지만, 서서 쏴는 184개 중 163개(81%)로 상대적으로 낮았다. 이 시즌에 그는 개인전, 스프린트, 계주에서 평균 88%, 매스 스타트에서 91%의 사격 성공률을 기록했지만, 추적에서는 79%에 그쳤다. 1999-2000 시즌부터 2003-04 시즌까지 그의 사격 성공률은 평균 82% (1999-00), 78% (2000-01), 74% (2001-02), 86% (2002-03), 80% (2003-04)를 기록했다. 이 5년간 그의 서서 쏴는 엎드려 쏴와 비슷하거나 더 나은 정확도를 보였다.
사격 부문 | 2004-05 | 2005-06 | 2006-07 | 2007-08 | 2008-09 | 2009-10 | 2010-11 | 2011-12 | 2012-13 | 2013-14 | 2014-15 | 2015-16 | 2016-17 |
---|---|---|---|---|---|---|---|---|---|---|---|---|---|
전체 | 85% | 84% | 84% | 83% | 85% | 83% | 86% | 80% | 84% | 84% | 85% | 84% | 85% |
엎드려 쏴 | 89% | 84% | 85% | 84% | 85% | 87% | 89% | 85% | 86% | 86% | 88% | 84% | 86% |
서서 쏴 | 81% | 84% | 84% | 82% | 86% | 80% | 83% | 75% | 81% | 81% | 82% | 84% | 84% |
2.7. 친선 경기 및 기타 활동
비에른달렌은 주요 국제 대회 외에도 다양한 전시 및 비정규 대회에 참가하여 뛰어난 성적을 거두었다. 2001년 라구나 비치에서 열린 비치 발리볼 챔피언십에서 우승하는 이색적인 경력을 가지고 있다.
그는 독일 겔젠키르헨에서 열리는 바이애슬론 전시 이벤트인 월드 팀 챌린지에서 2003년, 2004년, 2005년, 2006년 4년 연속 우승을 차지하며 이 대회의 강자임을 입증했다. 2018년에는 아내 다리야 돔라체바와 함께 이 대회에서 동메달을 획득하기도 했다. 또한 2003년 이탈리아 코르티나 담페초에서 열린 장거리 크로스컨트리 스키 대회인 도비아코-코르티나(42 km)에서 2위를 기록했다. 그는 이 권위 있는 대회의 26회 대회에서 이탈리아의 코스탄틴 피에를루이지에 이어 2위를 차지하며 1시간 43분 16.5초라는 우승 기록에 0.5초 뒤진 기록으로 결승선을 통과했다.
2008년 독일 퓌틀링겐에서 열린 바이애슬론 전시 이벤트에서는 카티 빌헬름과 함께 우승했으며, 2011년에는 막달레나 노이너와 함께 준우승을 차지했다. 이 외에도 2005년 나탈리 산테르와, 2010년 사브리나 부흐홀츠와 함께 이 대회에서 동메달을 획득했다. 2008년 노르웨이 산네스에서 열린 블링크 페스티벌에서도 우승을 차지했고, 2016년 4월에는 러시아 튜멘에서 열린 챔피언스 레이스에서 카린 오베르호퍼와 함께 우승했다.
3. 크로스컨트리 스키 활동
올레 에이나르 비에른달렌은 바이애슬론 선수로서의 활동 외에도 크로스컨트리 스키 선수로도 출전하여 월드컵에서 우승하는 등 뛰어난 기량을 선보였다. 그는 두 종목에서 모두 올림픽 메달을 획득하고자 했으나 아쉽게 실패했다.
비에른달렌은 바이애슬론 외에도 크로스컨트리 스키 선수로서 활동하며 뛰어난 기량을 선보였다. 그는 1998년 11월 핀란드 무오니오에서 열린 FIS 크로스컨트리 월드컵 10 km 프리스타일 경기에 처음 참가하여 23위를 기록했다.
그의 첫 크로스컨트리 월드컵 포디움은 2001년 11월 25일 쿠오피오에서 열린 10 km 프리스타일 경기에서 2위를 차지하며 달성했다. 한 달 후인 12월 22일 오스트리아 람자우 암 다흐슈타인에서 열린 30 km 프리스타일 매스 스타트 경기에서도 페르 엘로프손에 이어 2위를 차지했다.
2006년 11월 18일 스웨덴 옐리바레에서 열린 월드컵 15 km 프리스타일 경기에서 우승하며 역사상 처음으로 크로스컨트리 월드컵에서 우승한 남자 바이애슬론 선수가 되었다. 그는 2006년과 2007년에 스카르베레넷에서 우승했고, 2008년에는 페테르 노르투그에 이어 2위를 기록했다.
비에른달렌은 노르웨이 크로스컨트리 계주 월드컵에서도 두 차례 포디움에 올랐다. 2003년 베이토스톨렌에서 그의 팀이 3위를 차지했고, 2006년 프랑스 라 클뤼자에서는 노르웨이 팀이 2위를 기록했다. 이 외에도 국제 스키 연맹 주최 대회에서 1997년 30 km 프리스타일, 2006년 10 km 프리스타일에서 각각 우승했다. 또한 1998년 이탈리아 미수리나에서 열린 15 km 프리스타일과 2004년 베이토스톨렌에서 열린 10 km 프리스타일에서 2위를 기록했으며, 2001년 베이토스톨렌 10 km 프리스타일에서는 3위를 차지했다.
2001-02 시즌 크로스컨트리 월드컵에서 두 차례 포디움에 오른 후, 2002년 동계 올림픽에서 바이애슬론과 크로스컨트리 스키 두 종목에서 올림픽 메달을 획득하는 최초의 선수가 되기를 희망한다고 밝히기도 했다. 그러나 비에른달렌은 2002년 2월 9일 솔트레이크시티에서 열린 30 km 프리스타일 크로스컨트리 경기에서 5위로 아쉽게 메달 획득에는 실패했다.
4. 은퇴 후 활동
선수 생활 은퇴 후, 올레 에이나르 비에른달렌은 바이애슬론 코치로서 새로운 경력을 시작하며 벨라루스와 중국 대표팀을 지도했다.
4.1. 코치 경력
2018년 동계 올림픽에서 현역 선수로 출전하지 못한 후, 그는 아내 다리야 돔라체바가 소속된 벨라루스 바이애슬론 대표팀의 코치로 활동했다. 2019년 9월에는 다리야 돔라체바와 함께 중국 바이애슬론 대표팀의 수석 코치 및 여자팀 코치로 각각 임명되어 새로운 도전에 나섰다.
5. 개인사
올레 에이나르 비에른달렌은 두 차례의 결혼을 통해 가정을 이루었으며, 특히 두 번째 부인인 다리야 돔라체바와의 사이에서 딸을 두는 등 안정적인 개인 생활을 유지했다.
비에른달렌은 오스트리아 오버티리아흐에 거주하고 있다. 그는 이전에 이탈리아 토블라흐에서 이탈리아-벨기에 바이애슬론 선수인 나탈리 산테르와 함께 살았다. 두 사람은 1998년부터 교제를 시작하여 2006년 5월 27일 결혼했다. 결혼 후 산테르는 국적을 벨기에로 변경했으며, 이들 부부는 각자의 국적을 유지하며 국제 대회에 참가했다. 2012년 10월 4일, 두 사람은 상호 합의 하에 이혼했다.
2016년 4월, 그는 2018년 동계 올림픽까지 선수 생활을 계속할 것이라고 발표하면서, 벨라루스 바이애슬론 선수 다리야 돔라체바와 연인 관계임을 인정하고 그녀가 자신들의 첫 아이를 임신 중임을 밝혔다. 두 사람은 2016년 7월 7일 노르웨이 슈시엔에서 결혼식을 올렸으며, 같은 해 10월 1일에는 딸 크세니아가 태어났다. 비에른달렌과 돔라체바는 결혼 후에도 각자의 국적을 유지하며 선수 생활을 이어갔으며, 2018년 동계 올림픽 이전까지 이들 부부가 획득한 올림픽 메달은 금메달 11개를 포함하여 총 18개에 달했다.
6. 수상 및 영예
올레 에이나르 비에른달렌은 선수 경력 동안 수많은 상과 영예를 얻었다. 1998년에는 아프텐포스텐 금메달을 수상했다. 그는 2002년과 2014년에 노르웨이 올해의 스포츠인으로 선정되었다. 바이애슬론과 크로스컨트리 스키에서의 뛰어난 업적을 인정받아 2002년에는 에게베르그 명예상을 수상했으며, 같은 해 피언리 올림픽 명예상도 받았다. 국제 스포츠 기자 협회(AIPS)는 그를 2002년 '최고의 남자 선수'로 선정했다.
2003년에는 로레우스 세계 스포츠상 '올해의 남자 스포츠인' 후보에 올랐으며, 당시 랜스 암스트롱에 이어 2위를 차지했으나 암스트롱의 수상은 나중에 철회되었다. 2008년에는 그의 고향인 시모스트란다에 조각가 키르스텐 코킨이 제작한 약 3 m 높이의 청동상이 세워지며 그의 업적을 기렸다. 2009년에는 이탈리아 피오렌티노의 카스틸리온에서 '페어 플레이 메세난테 상'을 수상했다. 그는 2002년, 2003년, 2005년, 2009년에 AIPS 노르딕 스키 및 바이애슬론 위원회로부터 '올해의 바이애슬론 선수'로 선정되기도 했다.
2011년 3월에는 미하엘 그라이스 및 안드레아 헨켈과 함께 홀멘콜렌 메달을 수상하며 바이애슬론 선수로는 최초로 이 영예를 안았다. 2014년 2월, 그는 국제 스포츠 기자 협회로부터 2014년 동계 올림픽 '최고의 남자 선수'로 선정되었으며, 같은 해 11월에는 국가 올림픽 위원회 연합으로부터 '2014년 소치 올림픽 최고의 남자 선수' 상을 받았다.
7. 유산과 영향
올레 에이나르 비에른달렌은 바이애슬론 스포츠 역사상 가장 위대한 선수 중 한 명으로 평가받으며, 그의 업적과 영향력은 이 스포츠의 발전과 대중적 인기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7.1. 기록과 업적
그는 선수 경력 동안 수많은 기록과 업적을 달성했다.
- 동계 올림픽**: 총 13개의 메달(금 8개, 은 4개, 동 1개)을 획득하며 역대 동계 올림픽 다관왕 목록에서 2위에 올라 있다. 특히 2002년 솔트레이크시티 동계 올림픽에서는 바이애슬론 역사상 전 종목(스프린트, 추적, 개인, 계주)을 석권한 유일한 선수이며, 2014년 소치 동계 올림픽에서는 만 40세의 나이로 개인 종목 금메달을 획득하며 역대 최고령 올림픽 금메달리스트 기록을 세웠다. 같은 대회에서 비에른 델리의 기록을 넘어 동계 올림픽 최다 메달리스트로 등극하기도 했다.
- 바이애슬론 세계 선수권 대회**: 총 45개의 메달(금 20개, 은 14개, 동 11개)을 획득하여 역대 세계 선수권 대회 최다 메달리스트 기록을 보유하고 있다. 2005년 호흐필첸과 2009년 평창 세계 선수권 대회에서 각각 4개의 금메달을 획득하는 압도적인 활약을 펼쳤다.
- 바이애슬론 월드컵**: 개인전 월드컵에서 95승을 기록하여 역대 최다 우승 기록을 가지고 있으며, 크로스컨트리 월드컵에서의 1승을 포함하면 총 96승을 거두었다. 종합 월드컵 타이틀을 6회(1997-98, 2002-03, 2004-05, 2005-06, 2007-08, 2008-09 시즌) 차지했으며, 1996-97 시즌부터 2008-09 시즌까지 13시즌 연속으로 월드컵 종합 3위 이내에 드는 꾸준함을 보였다. 그는 2009년 2월 개인 통산 87번째 월드컵 우승을 차지하며 잉게마르 스텐마르크를 넘어 스키 종목 월드컵 최다 우승 기록을 경신했다. 또한 스프린트 월드컵 9회 우승, 추적 월드컵 5회 우승, 매스 스타트 월드컵 5회 우승, 개인전 월드컵 1회 우승을 기록했다.
- 노르웨이 선수권 대회**: 노르웨이 선수권 대회에서 총 44개의 금메달을 획득했다. 겨울 바이애슬론 종목에서 개인전 20개(개인전 4, 스프린트 6, 추적 6, 매스 스타트 4), 계주 및 팀 경기 10개(계주 8, 팀 2)의 금메달을 획득했다. 여름 바이애슬론 종목에서도 스프린트 7개, 추적 7개 등 14개의 개인전 금메달을 추가했다.
7.2. 스포츠에 미친 영향
'바이애슬론 황제'라는 별명은 그의 압도적인 기량과 스포츠에 미친 영향력을 상징한다. 그는 사격과 크로스컨트리 스키 능력을 동시에 극대화하여 바이애슬론의 경기 수준을 한 단계 끌어올렸다는 평가를 받는다. 특히 선수 생활 초기에 사격의 약점을 크로스컨트리 스키의 강력한 주행으로 만회하는 호쾌한 경기 운영을 보여주었으며, 2000년대 초반에는 약점으로 지적되던 사격 정확도를 크게 향상시켜 상위권 선수가 아닌 '항상 우승하는 선수'로 거듭났다. 그의 꾸준함과 장수 만년의 활약은 바이애슬론 팬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으며, 스포츠의 인기를 높이는 데 크게 기여했다. 그의 성공은 많은 후배 선수들에게 귀감이 되었고, 바이애슬론의 국제적 위상을 높이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8. 후원 및 장비
올레 에이나르 비에른달렌은 그의 뛰어난 성과를 바탕으로 여러 유명 브랜드와 협력했다. 그는 2011년부터 Certina의 앰버서더로 활동했으며, 2015년부터는 InstaForex 브랜드 앰버서더로도 활동했다.
그가 사용했던 주요 스포츠 장비 브랜드로는 매드슈스와 오들로, 카스코 등이 있다. 매드슈스는 그의 스키와 부츠, 폴을 제공했고, 로테펠라 NNN 바인딩을 사용했다. 오들로는 그의 장갑과 베이스 레이어를, 카스코는 안경을 공급했다. 2006년 비시즌 동안 비에른달렌은 매드슈스 부츠 제조사와 함께 토르스뷔 스키 터널에서 하이힐 부츠를 테스트하기도 했는데, 이는 무릎을 더 앞으로 당겨 좋은 자세를 유지하고 대둔근을 더 효과적으로 활용하기 위함이었다.
9. 주요 경력 기록
올레 에이나르 비에른달렌은 선수 경력 동안 수많은 메달과 월드컵 포인트를 획득하며 바이애슬론 역사에 획기적인 기록들을 남겼다.
9.1. 동계 올림픽 메달 기록
총 13개의 메달 (금 8개, 은 4개, 동 1개)을 획득하며 동계 올림픽 역사상 가장 성공적인 선수 중 한 명으로 기록되었다.
대회 | 개인 | 스프린트 | 추적 | 매스 스타트 | 계주 | 혼성 계주 |
---|---|---|---|---|---|---|
1994 릴레함메르 | 36위 | 28위 | - | - | 7위 | - |
1998 나가노 | 7위 | 금 | - | - | 은 | - |
2002 솔트레이크시티 | 금 | 금 | 금 | - | 금 | - |
2006 토리노 | 은 | 11위 | 은 | 동 | 5위 | - |
2010 밴쿠버 | 은 | 17위 | 7위 | 27위 | 금 | - |
2014 소치 | 33위 | 금 | 4위 | 22위 | 4위 | 금 |
9.2. 바이애슬론 세계 선수권 대회 메달 기록
총 45개의 메달 (금 20개, 은 14개, 동 11개)을 획득하여 역대 세계 선수권 대회 최다 메달리스트 기록을 보유하고 있다.
대회 | 개인 | 스프린트 | 추적 | 매스 스타트 | 팀 | 계주 | 혼성 계주 |
---|---|---|---|---|---|---|---|
1994 캔모어 | - | - | - | - | 4위 | - | - |
1995 안테르셀바 | 12위 | 4위 | - | - | - | 5위 | - |
1996 루폴딩 | 19위 | 6위 | - | - | 4위 | 4위 | - |
1997 브레즈노-오스르블리에 | 6위 | 9위 | 동 | - | - | 은 | - |
1998 포클류카 | - | - | 은 | - | 금 | - | - |
1999 콘티올라흐티 | 4위 | 19위 | 5위 | 동 | - | 동 | - |
2000 오슬로 | 20위 | 5위 | 4위 | 동 | - | 은 | - |
2001 포클류카 | 10위 | 19위 | 4위 | 은 | - | 동 | - |
2002 오슬로 | - | - | - | 7위 | - | - | - |
2003 한티만시스크 | 30위 | 금 | 8위 | 금 | - | 4위 | - |
2004 오버호프 | 동 | 동 | 동 | 7위 | - | 은 | - |
2005 호흐필첸 | 6위 | 금 | 금 | 금 | - | 금 | - |
2006 포클류카 | - | - | - | - | - | - | 은 |
2007 안테르셀바 | 32위 | 금 | 금 | 4위 | - | 은 | - |
2008 외스테르순드 | 은 | 동 | 금 | 은 | - | 은 | - |
2009 평창 | 금 | 금 | 금 | 4위 | - | 금 | 4위 |
2010 한티만시스크 | - | - | - | - | - | - | 은 |
2011 한티만시스크 | 6위 | 22위 | 24위 | 6위 | - | 금 | 금 |
2012 루폴딩 | 47위 | 20위 | 14위 | 8위 | - | 금 | 금 |
2013 노베 메스토 | 25위 | 4위 | 10위 | 24위 | - | 금 | - |
2015 콘티올라흐티 | 6위 | 19위 | 5위 | 4위 | - | 은 | - |
2016 오슬로 | 17위 | 은 | 은 | 동 | - | 금 | - |
2017 호흐필첸 | 47위 | 8위 | 동 | 23위 | - | 8위 | - |
9.3. 월드컵 시즌 종합 순위
시즌 | 종합 순위 | 개인전 | 스프린트 | 추적 | 매스 스타트 |
---|---|---|---|---|---|
1992-93 | 62위 | - | - | - | - |
1993-94 | 30위 | - | - | - | - |
1994-95 | 4위 | - | 1위 | - | - |
1995-96 | 9위 | - | 6위 | - | - |
1996-97 | 2위 | 8위 | 1위 | 3위 | - |
1997-98 | 1위 | 3위 | 1위 | - | - |
1998-99 | 2위 | 2위 | 5위 | 3위 | 3위 |
1999-00 | 2위 | - | 1위 | 1위 | 9위 |
2000-01 | 2위 | 2위 | 1위 | 2위 | 2위 |
2001-02 | 3위 | 2위 | 5위 | 3위 | 17위 |
2002-03 | 1위 | 34위 | 1위 | 1위 | 1위 |
2003-04 | 2위 | 6위 | 2위 | 2위 | 2위 |
2004-05 | 1위 | 1위 | 1위 | 2위 | 1위 |
2005-06 | 1위 | 2위 | 2위 | 1위 | 1위 |
2006-07 | 2위 | 6위 | 10위 | 2위 | 1위 |
2007-08 | 1위 | 7위 | 1위 | 1위 | 1위 |
2008-09 | 1위 | 4위 | 1위 | 1위 | 2위 |
2009-10 | 10위 | 25위 | 7위 | 16위 | 7위 |
2010-11 | 10위 | 4위 | 14위 | 20위 | 7위 |
2011-12 | 16위 | - | 18위 | 5위 | 17위 |
2012-13 | 22위 | 35위 | 19위 | 16위 | 26위 |
2013-14 | 6위 | 44위 | 4위 | 9위 | 8위 |
2014-15 | 14위 | 11위 | 14위 | 19위 | 16위 |
2015-16 | 13위 | 7위 | 12위 | 14위 | 11위 |
2016-17 | 9위 | 9위 | 8위 | 17위 | 7위 |
2017-18 | 43위 | 32위 | 43위 | 46위 | 43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