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엘살바도르 공화국은 중앙아메리카에 위치한 나라로, 북서쪽으로 과테말라, 북동쪽으로 온두라스와 국경을 접하며 남쪽으로는 태평양과 마주하고 있다. 수도는 산살바도르이며, 면적은 약 2.10 만 km2로 미주 대륙 본토에서 가장 작은 나라이지만 인구밀도는 가장 높다. 2024년 정부 인구 조사에 따르면 약 600만 명의 인구가 거주하고 있으며, 유엔 추산으로는 6,602,379명(2023년 기준)이다. 공용어는 스페인어이며, 2001년부터 미국 달러를 법정통화로 사용해왔고, 2021년에는 세계 최초로 비트코인을 법정통화로 추가 채택하였다.
엘살바도르의 역사는 선사 시대 마야 문명과 피필족의 쿠스카틀란 왕국으로 시작된다. 16세기 스페인의 정복 이후 약 300년간 식민 통치를 받았으며, 1821년 독립하여 중앙아메리카 연방 공화국에 참여했다가 1841년 완전한 주권 국가가 되었다. 19세기와 20세기 초에는 커피 경제를 중심으로 발전했으나, 정치적 불안정과 군사 독재가 반복되었다. 1932년 '라 마탄사'로 불리는 농민 학살과 1969년 온두라스와의 '축구 전쟁'은 중요한 역사적 사건이다. 1979년부터 1992년까지 이어진 참혹한 내전은 약 7만 5천 명의 희생자를 냈으며, 1992년 차풀테펙 평화 협정으로 종식되었다.
내전 이후 민주주의 정착과 경제 재건 노력이 이어졌으나, 높은 범죄율과 갱단 문제가 심각한 사회 문제로 대두되었다. 2019년 집권한 나이브 부켈레 대통령은 갱단에 대한 강력한 소탕 작전을 펼쳐 치안을 획기적으로 개선시켰다는 평가와 함께, 권위주의적 통치 방식과 인권 문제에 대한 비판도 받고 있다.
엘살바도르의 경제는 전통적으로 농업에 기반을 두었으나, 점차 제조업과 서비스업으로 다각화되고 있다. 해외 거주 엘살바도르인들의 본국 송금은 국가 경제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사회적으로는 높은 인구밀도, 도시화, 교육 및 보건 문제 등의 과제를 안고 있다. 문화적으로는 원주민, 스페인, 아프리카 문화가 융합된 다양성을 보이며, 푸푸사와 같은 전통 음식과 축구가 인기 있는 스포츠로 자리 잡고 있다.
2. 국호
엘살바도르의 공식 국명은 스페인어로 República de El Salvador엘살바도르 공화국스페인어이며, 통칭하여 El Salvador엘살바도르스페인어라고 부른다. 국명 '엘살바도르'는 스페인어로 '구원자'를 의미하며, 이는 예수 그리스도를 지칭하는 것이다. 16세기 초 스페인의 정복자 페드로 데 알바라도가 이 지역에 도착한 후, 가톨릭 신앙에 따라 '우리의 주 예수 그리스도, 세상의 구원자 지방'이라는 의미의 Provincia De Nuestro Señor Jesucristo El Salvador Del Mundo스페인어라는 긴 이름으로 명명하였다. 이후 이 이름은 점차 축약되어 '엘살바도르'로 불리게 되었다.
콜럼버스 이전 시대에 이 지역의 주요 원주민이었던 피필족은 자신들의 영토를 Cuzhcatl쿠스카틀나우와틀어 또는 스페인어화된 이름인 Cuzcatlán쿠스카틀란스페인어이라고 불렀다. 이는 나와틀어로 '귀중한 보석의 땅' 또는 '보석의 장소'를 의미한다.
1824년 중앙아메리카 연방 공화국의 일부로 국가가 형성될 당시에는 Estado del Salvador살바도르 주스페인어라는 명칭이 사용되기도 했다. 연방 해체 후에는 한동안 República del Salvador살바도르 공화국스페인어으로 불렸으나, 1915년 엘살바도르 의회는 국가의 공식 명칭을 정관사 'El'을 포함한 El Salvador엘살바도르스페인어로 명확히 규정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이는 '살바도르'라는 일반 명사가 아닌, '구원자'라는 고유한 의미를 강조하기 위함이었다. 1958년 의회는 다시 한번 이 국명을 재확인하였다. 엘살바도르는 스페인어권 국가 중 유일하게 국명에 정관사를 공식적으로 포함하여 사용하는 나라이다.
3. 역사
엘살바도르의 역사는 선사 시대 인류 정착에서부터 시작하여 마야 문명과 같은 고대 문명의 번영, 스페인 식민 통치, 독립과 공화국 수립, 그리고 20세기와 21세기의 정치적 격변과 사회 변화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시기를 거쳐왔다. 특히 커피 경제의 발전, 군사 독재, 내전, 그리고 최근의 사회 개혁과 치안 문제 해결 노력은 현대 엘살바도르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요소들이다.
3.1. 선사 시대와 콜럼버스 이전 시대
엘살바도르 지역에는 플라이스토세 시기부터 인류가 거주했던 것으로 추정되며, 다양한 거대 동물군이 서식했다. 이에는 코끼리 크기의 거대 땅늘보 에레모테리움, 코뿔소와 유사한 믹소톡소돈, 코끼리 친척인 쿠비에로니우스, 글립토돈트류인 글립토테리움, 라마의 일종인 헤미아우케니아, 그리고 말의 일종인 에쿠스 콘베르시덴스 등이 포함된다. 엘살바도르 서부에서 발견된 홈이 파인 석기는 팔레오인디언 시기부터 인간이 거주했을 가능성을 시사한다.
콜럼버스 이전 시대 엘살바도르의 고고학적 지식은 높은 인구 밀도로 인한 발굴의 어려움과 화산 폭발로 인한 유적지 매몰 등으로 인해 비교적 부족한 편이다. 특히 선고전기 이전 시기에 대한 정보는 더욱 제한적이다.
주요 고고학 유적지로는 기원전 1200년경 처음 정착이 이루어진 찰추아파가 있다. 이곳은 선고전기에 마야 문명의 주변부 주요 도시 중심지로 발전했으며, 도자기, 흑요석, 카카오, 적철광 등 귀중품 교역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 그러나 서기 430년경 화산 폭발로 큰 피해를 입은 후 이전의 명성을 회복하지 못했다. 엘살바도르 서쪽 끝에 위치한 카라 수시아는 기원전 800년경 작은 정착지로 시작하여 후기 고전기(서기 600년-900년)에 주요 도시로 성장했으나 10세기에 갑작스럽게 파괴되었다.

서기 800년경부터 멕시코의 아나와크 지역에서 이주해 온 나와어를 사용하는 피필족은 엘살바도르 중부와 서부 지역을 차지했다. 이들은 자신들의 영토를 나와트어로 '귀중한 보석의 땅'이라는 의미의 Kuskatan쿠스카탄나우와틀어이라고 불렀으며, 이는 스페인어로는 Cuzcatlán쿠스카틀란스페인어으로 알려졌다. 쿠스카틀란은 유럽인 접촉 시기까지 엘살바도르 영토에서 가장 큰 세력이었다. 한편, 동부 지역에는 렝카족이 거주하며 Intipucá인티푸카스페인어, Chirilagua치릴라과스페인어, Lolotique로로티케스페인어와 같은 지명을 남겼다.
엘살바도르 서부의 라고 데 과히아와 호야 데 세렌과 같은 유적지는 콜럼버스 이전 마야 문화를 보여준다. 특히 호야 데 세렌은 6세기경 로마 칼데라 화산 폭발로 화산재에 묻힌 마야 농촌 마을로, '아메리카의 폼페이'로 불리며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시와탄 유적은 북부 나와 문화, 동부 마야 및 렝카 문화, 남부 니카라과 및 코스타리카 원주민 문화와의 교역 흔적을 보여준다. 타수말 유적지의 작은 B1-2 구조물은 나와 문화와 관련된 탈루드-타블레로 양식의 건축을 보여준다. 동부 엘살바도르의 렝카 유적지인 켈레파는 콜럼버스 이전 주요 문화 중심지로, 온두라스 서부의 마야 유적지 코판 및 엘살바도르 서부의 찰추아파, 카라 수시아와 연결되어 있었다. 우술루탄의 라 라구나 유적지 조사에서도 렝카-마야 교역로와 관련된 코파도르 유물이 발굴되었다. 기원전 1천년 경에는 올멕 문명의 초기 영향도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3.2. 스페인 정복과 식민 시대 (1525년-1821년)

1521년경, 메소아메리카 지역의 원주민 인구는 천연두 유행으로 급격히 감소했지만, 쿠스카틀란이나 마나과라 북부 지역에는 아직 대유행 수준에 이르지 않았다. 1522년 5월 31일, 안드레스 니뇨 제독이 이끄는 스페인 탐험대가 현재 엘살바도르 영토에 처음으로 상륙했다. 그는 폰세카 만의 메앙게라 델 골포 섬에 도착하여 페트로닐라라고 명명한 후, 렘파강 하구의 히킬리스코 만까지 이동했다. 스페인인과 처음 접촉한 원주민은 엘살바도르 동부의 렌카족이었다.

1524년, 아즈텍 제국 정복에 참여했던 페드로 데 알바라도는 그의 형제 곤살로 데 알바라도와 부하들을 이끌고 파스강을 건너 남쪽 쿠스카틀란 영토로 진격했다. 스페인인들은 피필족이 과테말라나 멕시코에서 발견했던 것보다 금이 적다는 사실에 실망했다. 소량의 금마저도 사금 채취를 통해서만 얻을 수 있었다. 그러나 스페인인들은 곧 이 땅의 화산 토양의 비옥함을 인식했고, 이를 계기로 스페인 왕실은 엔코미엔다 제도에 따라 토지를 분배하기 시작했다.
페드로 알바라도는 1524년 6월 쿠스카틀란 왕국을 정복하기 위한 첫 번째 침공을 이끌었다. 왕국 국경에 도착했을 때 민간인들은 이미 대피한 상태였다. 쿠스카틀란 전사들은 해안 도시 아카후틀라로 이동하여 알바라도 군대를 기다렸다. 알바라도는 멕시코와 과테말라에서의 경험을 바탕으로 쉽게 승리할 것이라고 자신했다. 그러나 아카후틀라 전투에서 알바라도는 큰 피해를 입고 부상당했으며, 특히 멕시코 원주민 동맹군 사이에서 많은 사상자가 발생했다. 쿠스카틀란 병사들은 화려한 깃털로 장식된 방패와 화살이 뚫지 못하는 3인치 두께의 면 갑옷, 긴 창으로 무장하고 있었다.
알바라도는 군대를 재정비한 후 쿠스카틀란 수도로 향했으나 다시 무장한 쿠스카틀란군과 마주쳤다. 부상으로 전투 불능 상태가 된 알바라도는 매복을 두려워하며 멕시코인 전령들을 보내 협상을 시도했으나, 전령들은 돌아오지 않았고 처형된 것으로 추정된다. 쿠스카틀란군은 스페인 무기를 탈취하기도 했다. 결국 알바라도는 전쟁을 포기하고 동생 곤살로 데 알바라도에게 임무를 넘겼다. 1525년과 1528년 두 차례의 추가 원정을 통해 스페인군은 피필족을 점령했다. 당시 피필족은 천연두 유행으로 약화된 상태였다. 1525년 쿠스카틀란 정복이 완료되고 산살바도르 시가 건설되었지만, 피필족의 저항은 계속되었고 스페인군은 엘살바도르 동부 렌카족 지역에는 도달하지 못했다.

1526년, 페드로 알바라도의 조카인 루이스 데 모스코소 알바라도가 이끄는 또 다른 탐험대는 렌카족 영토인 마나과라 북부에 산미겔 수비대 마을을 건설했다. 구전 역사에 따르면 마야-렌카족의 왕세자비 안투 실란 울랍 1세가 정복자들에 대한 저항을 조직했다고 한다. 렌카족 연합은 모스코소의 침공에 경각심을 느끼고, 안투 실란은 현재 엘살바도르와 온두라스의 모든 렌카족 마을을 통합하여 스페인에 맞섰다. 기습 공격과 압도적인 병력으로 그들은 스페인군을 산미겔에서 몰아내고 수비대를 파괴했다. 10년 동안 렌카족은 스페인군이 영구적인 정착지를 건설하는 것을 막았다. 그 후 스페인군은 과테말라 원주민 공동체에서 강제 징집한 약 2,000명을 포함한 더 많은 병력을 이끌고 돌아와 렌카족 지도자들을 인티부카 주의 산맥으로 더욱 깊숙이 추격했다.
안투 실란 울랍은 결국 렌카족 저항군의 지휘권을 렘피라에게 넘겼다. 렘피라는 스페인군을 조롱하며 그들의 옷을 입고 전투에서 노획한 무기를 사용한 것으로 유명하다. 렘피라는 수천 명의 렌카군을 지휘하며 마나과라에서 6년 더 싸우다가 전투에서 사망했다. 남은 렌카군은 언덕으로 후퇴했고, 스페인군은 1537년 산미겔 수비대 마을을 재건할 수 있었다.
식민 시대 동안 산살바도르와 산미겔은 누에바에스파냐 부왕령의 행정 구역으로 1609년에 설립된 과테말라 총독령(Reino de Guatemala과테말라 총독령스페인어)의 일부였다. 엘살바도르 영토는 손소나테 시장이 관리했으며, 산살바도르는 1786년에 intendencia지방 행정 단위스페인어로 지정되었다. 경제는 주로 카카오, 발삼, 그리고 나중에는 인디고 생산에 기반을 두었다.
1811년, 내부 및 외부 요인들이 결합하여 중앙아메리카 엘리트들이 스페인 왕실로부터 독립을 시도하도록 동기를 부여했다. 가장 중요한 내부 요인은 스페인 당국의 개입 없이 현지 엘리트들이 국가 문제를 통제하려는 욕구와 크리올로들의 오랜 독립 열망이었다. 독립 운동을 촉진한 주요 외부 요인은 18세기 프랑스 혁명과 미국 독립 혁명의 성공, 그리고 나폴레옹 전쟁의 결과로 스페인 왕실의 군사력이 약화되어 식민지를 효과적으로 통제할 수 없게 된 점이었다.

1811년 11월, 엘살바도르의 신부 호세 마티아스 델가도는 산살바도르의 라 메르세드 교회 종을 울려 봉기를 촉구하며 1811년 독립 운동을 시작했다. 이 봉기는 진압되었고 많은 지도자들이 체포되어 투옥되었다. 1814년에 또 다른 봉기가 일어났으나 이 역시 진압되었다.
3.3. 독립 (1821년)
1821년, 과테말라의 불안한 상황 속에서 스페인 당국은 항복하고 중앙아메리카 독립 선언서에 서명했다. 이로써 현재의 과테말라, 엘살바도르, 온두라스, 니카라과, 코스타리카 영토와 멕시코의 치아파스주를 포함하는 과테말라 총독령 전체가 스페인의 지배에서 벗어나 독립을 선언했다. 1821년 엘살바도르는 코스타리카, 과테말라, 온두라스, 니카라과와 함께 중앙아메리카 연방 공화국이라는 연합체를 결성했다.
1822년 초, 새로 독립한 중앙아메리카 주들의 당국은 과테말라 시티에서 회의를 열고 아구스틴 데 이투르비데가 이끄는 신생 멕시코 제1제국에 합류하기로 투표했다. 엘살바도르는 중앙아메리카 국가들의 자치권을 주장하며 저항했다. 멕시코 군대가 산살바도르로 진군하여 반대 의견을 진압했지만, 1823년 3월 19일 이투르비데가 몰락하자 군대는 멕시코로 철수했다. 직후, 각 주의 당국은 멕시코 합류 투표를 철회하고, 대신 남은 다섯 개 주(치아파스는 이 시점에 영구적으로 멕시코에 합류)로 구성된 중앙아메리카 연방 공화국이라는 연방 연합을 결성하기로 결정했다. 엘살바도르는 1841년 1월 30일 중앙아메리카 연방 공화국으로부터 독립을 선언했다. 이후 엘살바도르는 1896년 온두라스, 니카라과와 함께 중앙아메리카 대공화국을 결성했으나, 이 연합은 1898년에 해체되었다.
3.4. 19세기

19세기 중반 이후 엘살바도르 경제는 커피 재배를 중심으로 이루어졌다. 세계 시장에서 인디고의 수요가 줄어들면서 커피 가격 변동에 따라 경제가 번영하거나 어려움을 겪었다. 커피 단일 경작 수출로 얻은 막대한 이익은 소수의 과두 가문에게 토지가 집중되는 현상을 촉진했다. 19세기 후반 동안, 명목상으로는 보수와 자유주의 양측 모두를 아우르는 엘살바도르 과두 정치 세력 출신의 대통령들이 연이어 집권했다. 이들은 대체로 커피를 주요 환금 작물로 장려하고, 주로 커피 무역을 지원하기 위한 사회 간접 자본(철도 및 항구 시설) 개발, 추가적인 커피 생산을 용이하게 하기 위한 공동체 토지 소유 철폐, 토지를 잃은 농민(캄페시노)과 기타 농촌 주민들이 커피 농장(핀카)에 충분한 노동력을 제공하도록 보장하기 위한 부랑자 방지법 통과, 그리고 농촌 지역의 불만 억제 등에 합의했다.
만성적인 정치적, 경제적 불안정은 쿠데타, 반란, 그리고 연이은 권위주의 통치자들의 등장으로 특징지어졌다. 커피 경제는 소수의 엘리트 가문에게 부를 집중시켰고, 이는 광범위한 사회적 불평등을 야기했다. 이러한 상황은 20세기 초까지 이어지며 엘살바도르 사회의 깊은 갈등의 씨앗이 되었다. 1898년, 토마스 레갈라도 장군은 무력으로 라파엘 안토니오 구티에레스를 축출하고 1903년까지 대통령으로 통치했다. 그는 대통령이 후임자를 지명하는 관행을 부활시켰다. 임기를 마친 후에도 엘살바도르 군에서 활동했으며, 1906년 7월 11일 과테말라와의 전쟁 중 엘 히카로에서 전사했다.
3.5. 20세기
20세기 엘살바도르는 군사 독재, 정치적 불안정, 경제적 어려움, 그리고 사회적 갈등의 심화라는 격동의 시기를 겪었다. 이러한 배경 속에서 라 마탄사와 같은 비극적인 사건과 축구 전쟁과 같은 국제 분쟁이 발생하며 국가의 역사에 깊은 상처를 남겼다.
3.5.1. 군사 독재와 정치적 불안정

1913년까지 엘살바도르는 표면적으로는 정치적으로 안정되었으나, 대중적인 불만이 잠재해 있었다. 1913년 마누엘 엔리케 아라우호 대통령이 암살되자, 그의 살해 동기에 대한 많은 정치적 가설이 제기되었다. 아라우호 행정부 이후에는 1913년부터 1927년까지 지속된 멜렌데스-키뇨네스 왕조가 뒤를 이었다. 정부 장관이자 왕조의 신임받는 협력자였던 피오 로메로 보스케가 호르헤 멜렌데스 대통령의 뒤를 이었고, 1930년에 자유 선거를 발표하여 1931년 3월 1일 아르투로 아라우호가 집권했다. 이는 엘살바도르 최초의 자유 경쟁 선거로 여겨진다. 그러나 그의 정부는 노동당이 정치 및 정부 경험이 부족하고 정부 직책을 비효율적으로 사용했다는 하급 군 장교들의 비난을 받으며 단 9개월 만에 전복되었다. 아라우호 대통령은 경제 개혁과 토지 재분배를 기대했던 대중의 전반적인 불만에 직면했으며, 그의 행정부 첫 주부터 국립 궁전 앞에서 시위가 벌어졌다. 그의 부통령이자 전쟁 장관은 막시밀리아노 에르난데스 마르티네스 장군이었다.

1931년 12월, 하급 장교들이 조직하고 마르티네스가 이끈 쿠데타가 발생했다. 오직 제1기병연대와 국가경찰만이 대통령직을 방어했지만(국가경찰은 그의 급여를 받고 있었다), 그날 밤 몇 시간의 전투 끝에 수적으로 열세였던 방어군은 반란군에게 항복했다. 장교들로 구성된 지도부는 부유한 반공 은행가 로돌포 듀케라는 그림자 인물 뒤에 숨었고, 나중에 부통령 마르티네스를 대통령으로 임명했다. 이 반란은 아마도 아라우호 대통령으로부터 몇 달 동안 급여를 받지 못한 군대의 불만 때문에 일어났을 것이다. 아라우호는 국립 궁전을 떠나 반란을 진압하기 위한 군대를 조직하려 했으나 실패했다. 엘살바도르 주재 미국 공사는 지도부와 만나 나중에 마르티네스 정부를 인정했고, 마르티네스 정부는 대통령 선거를 치르기로 합의했다. 그는 재선을 위해 출마하기 6개월 전에 사임했고, 단독 후보로 출마하여 다시 대통령직을 차지했다. 그는 1935년부터 1939년까지, 그리고 1939년부터 1943년까지 통치했다. 1944년에 네 번째 임기를 시작했으나 총파업 이후 5월에 사임했다. 마르티네스는 재선될 수 없다고 규정한 헌법을 존중하겠다고 말했지만, 약속을 지키기를 거부했다.
기독교민주당(PDC)과 국민협상당(PCN)은 1960년부터 2011년까지 엘살바도르 정치에서 활동했으며, 2004년 대통령 선거에서 충분한 표를 얻지 못해 대법원에 의해 해산되었다. 두 정당은 이후 재창당되었다. 이들은 공통된 이상을 공유하지만, PDC는 중산층을, PCN은 엘살바도르 군부의 이익을 대변했다. PDC 지도자 호세 나폴레온 두아르테는 1964년부터 1970년까지 산살바도르 시장을 역임하며 PCN 대통령 훌리오 아달베르토 리베라 카르바요 정권 하에서 세 차례 선거에서 승리했다. 리베라는 시장과 국회의원 자유 선거를 허용했다. 두아르테는 나중에 국민야당연합(UNO)이라는 정치 단체로 대통령 선거에 출마했으나 1972년 대통령 선거에서 패배했다. 그는 전 내무부 장관 아르투로 아르만도 몰리나 대령에게 패배했으며, 이 선거는 광범위하게 부정 선거로 간주되었다. 두아르테가 과반수 표를 얻었다고 알려졌음에도 불구하고 몰리나가 승자로 선언되었다. 두아르테는 일부 군 장교들의 요청으로 선거 부정에 항의하는 반란을 지지했으나 체포되어 고문을 당한 후 망명했다. 두아르테는 1979년 베네수엘라에서 엔지니어로 일한 후 정치에 입문하기 위해 귀국했다.
3.5.2. 라 마탄사 (1932년 농민 학살)

1932년 1월부터 라 마탄사로 알려진 농촌 반란에 대한 잔혹한 진압이 시작되었다. 지난 몇 년간의 불안정한 정치 상황 속에서 사회 운동가이자 혁명 지도자인 파라분도 마르티는 중앙아메리카 공산당 창립을 돕고, 적십자에 대한 공산주의적 대안인 '국제 적색 구원'을 이끌며 대표자 중 한 명으로 활동했다. 그들의 목표는 마르크스-레닌주의 이념을 통해 가난하고 소외된 엘살바도르인들을 셔우는 것이었다. 1930년 12월, 국가의 경제적, 사회적 불황이 최고조에 달했을 때, 마르티는 국민들 사이에서의 인기와 다음 해 대통령 후보 지명 가능성에 대한 소문 때문에 다시 추방되었다. 1931년 아라우호가 대통령으로 선출되자 마르티는 엘살바도르로 돌아와 알폰소 루나, 마리오 사파타와 함께 이후 군부에 의해 중단된 운동을 시작했다.
1932년 1월 22일, 엘살바도르 서부에서 수천 명의 무장이 빈약한 농민들이 정부와 마르티네스에 대항하여 봉기했다. 이 반란은 1932년 입법 선거 결과 취소 이후 민주적 정치 자유 억압에 대한 광범위한 불만 속에서 일어났다. 반란군은 펠리시아노 아마와 파라분도 마르티가 이끌었으며, 주로 원주민과 공산주의자들로 구성되었다. 반란은 초기에 서부 지역의 여러 마을과 도시를 점령하며 약 2,000명을 살해하는 등 성과를 거두었다. 정부는 반란을 잔혹하게 진압하여 1만 명에서 4만 명 사이의 사람들, 대부분 피필족 농민들을 살해했다. 아마와 마르티를 포함한 반란 지도자 다수가 체포되어 처형되었다. 이 사건은 엘살바도르 역사상 가장 큰 규모의 학살 중 하나로 기록되며, 깊은 사회적 상처와 정치적 트라우마를 남겼다.
3.5.3. 축구 전쟁 (1969년)
역사적으로 엘살바도르의 높은 인구 밀도는 인접한 온두라스와의 긴장을 야기했다. 토지가 부족한 엘살바도르인들이 인구 밀도가 낮은 온두라스로 이주하여 미사용 또는 저사용 토지에 불법 정착했기 때문이다. 이 현상은 양국 간의 1969년 축구 전쟁의 주요 원인이었다. 최대 13만 명의 엘살바도르인이 온두라스에서 강제 추방되거나 도피했다. 이 단기 분쟁은 양국 관계뿐만 아니라 중앙아메리카 지역 전체에 영향을 미쳤으며, 국경 문제와 이민자 문제는 이후에도 양국 관계의 민감한 쟁점으로 남았다.
3.6. 엘살바도르 내전 (1979년-1992년)

카를로스 움베르토 로메로는 1931년에 시작된 엘살바도르 군사 독재의 마지막 대통령이었다. 미국은 로메로의 가장 큰 지지자였으나, 1979년 10월까지 카터 행정부는 엘살바도르에 정권 교체가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1979년 10월 15일, 쿠데타로 혁명 정부 평의회(JRG)가 권력을 잡았다. 이들은 많은 민간 기업을 국유화하고 사유지를 대거 인수했다. 이 새로운 평의회의 목적은 두아르테의 선거 도둑질에 대한 대응으로 이미 진행 중이던 혁명 운동을 막는 것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과두 세력은 농지 개혁에 반대했고, 아돌포 아르놀도 마하노 대령과 하이메 압둘 구티에레스 대령과 같은 군대의 젊은 개혁 성향 인사들과 기예르모 웅고, 알바레스와 같은 진보 인사들로 구성된 평의회가 형성되었다.

과두 세력의 압력은 노동조합 결성권, 농지 개혁, 임금 인상, 의료 접근성 향상, 표현의 자유를 위해 싸우는 국민들에 대한 군의 탄압을 통제하지 못했기 때문에 곧 평의회를 해체시켰다. 그동안 게릴라 운동은 엘살바도르 사회 모든 부문으로 확산되었다. 중고등학생들은 MERS(중고등학생 혁명 운동)로 조직되었고, 대학생들은 AGEUS(엘살바도르 대학생 협회)에 참여했으며, 노동자들은 BPR(인민 혁명 블록)로 조직되었다. 1980년 10월, 엘살바도르 좌파의 다른 주요 게릴라 그룹들이 파라분도 마르티 민족해방전선(FMLN)을 결성했다. 1970년대 말까지 정부와 계약한 암살단은 매일 약 10명을 살해하고 있었다. 한편 FMLN은 6,000명에서 8,000명의 현역 게릴라와 수십만 명의 비정규 민병대, 지지자, 동조자를 보유하고 있었다.
미국은 정치 환경을 바꾸고 좌익 봉기의 확산을 막기 위해 제2의 평의회 창설을 지원하고 자금을 지원했다. 호세 나폴레온 두아르테는 이 새로운 평의회를 이끌기 위해 베네수엘라 망명에서 소환되었다. 그러나 혁명은 이미 진행 중이었고, 평의회 의장으로서의 그의 새로운 역할은 일반 대중에게 기회주의적인 것으로 비춰졌다. 그는 봉기의 결과에 영향을 미칠 수 없었다. 산살바도르의 로마 가톨릭 대주교 오스카르 로메로는 정부군에 의한 민간인 학살과 불의를 규탄했다. 그는 '목소리 없는 자들의 목소리'로 여겨졌으나, 1980년 3월 24일 미사 도중 암살단에 의해 암살되었다. 일부에서는 이를 1980년부터 1992년까지 지속된 본격적인 엘살바도르 내전의 시작으로 간주한다.
분쟁 중에 실종된 사람들의 수는 알 수 없으며, 유엔은 75,000명 이상이 사망했다고 보고했다. 미군이 훈련시킨 엘살바도르 육군의 아틀라카틀 대대는 800명 이상의 민간인(절반 이상이 어린이)이 살해된 엘모소테 학살, 엘 칼라보소 학살, 그리고 UCA 학자 살해 사건에 책임이 있다.

1992년 1월 16일, 알프레도 크리스티아니 대통령이 대표하는 엘살바도르 정부와 5개 게릴라 그룹의 사령관들(샤피크 안달, 호아킨 비얄로보스, 살바도르 산체스 세렌, 프란시스코 호벨, 에두아르도 산초)이 대표하는 FMLN은 유엔의 중재로 평화 협정에 서명하여 12년간의 내전을 종식시켰다. 멕시코의 차풀테펙 성에서 열린 이 행사에는 유엔 고위 인사들과 국제 사회의 다른 대표들이 참석했다. 휴전 협정 서명 후, 대통령은 새로이 전 게릴라 사령관들과 악수를 나누었으며, 이 행동은 널리 찬사를 받았다.
3.7. 내전 이후 (1992년-2019년)

소위 차풀테펙 평화 협정은 군대 규모 감축과 국가경찰, 재무경찰, 국가방위대, 그리고 준군사 조직인 민방위대의 해체를 명령했다. 새로운 시민경찰이 조직될 예정이었다. 군대에 의해 저질러진 범죄에 대한 사법적 면책이 종료되었고, 정부는 "1980년 이후 발생한 심각한 폭력 행위, 폭력의 성격과 영향, 그리고 국가적 화해를 증진하는 방법을 권고할" 엘살바도르 진실위원회(Comisión de la Verdad Para El Salvador)의 권고를 따르기로 합의했다. 1993년 위원회는 분쟁 양측의 인권 침해를 보고하는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5일 후 엘살바도르 의회는 해당 기간 동안의 모든 폭력 행위에 대한 사면법을 통과시켰다.
1989년부터 2004년까지 엘살바도르 국민들은 민족주의 공화 동맹(ARENA)을 선호하여 모든 선거에서 ARENA 소속 대통령(알프레도 크리스티아니, 아르만도 칼데론 솔, 프란시스코 플로레스 페레스, 안토니오 사카)을 선출했으나, 2009년에 이르러서는 변화가 일어났다. 좌파 정당이 대통령 선거에서 승리하려는 시도가 실패하자, 전 게릴라 지도자 대신 언론인을 후보로 선택했다. 2009년 3월 15일, 텔레비전 인물인 마우리시오 푸네스가 FMLN 출신 첫 대통령이 되었다. 그는 2009년 6월 1일에 취임했다. 푸네스 정부의 주요 관심사 중 하나는 과거 정부의 부패 혐의를 밝히는 것이었다. ARENA는 2009년 12월 공식적으로 사카를 당에서 제명했다. 국회에서 12명의 충성파 의원들과 함께 사카는 자신의 정당인 국민통합을 위한 대동맹(GANA)을 창설하고 FMLN과 전술적 입법 동맹을 맺었다. 사카의 GANA당이 FMLN에게 입법 다수당을 제공한 지 3년이 지났지만, 푸네스는 부패한 전직 관리들을 조사하거나 처벌하기 위한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1990년대 초 이후의 경제 개혁은 사회 조건 개선, 수출 부문 다변화, 투자 등급 수준의 국제 금융 시장 접근성 향상이라는 주요 이점을 가져왔다. 범죄는 여전히 투자 환경의 주요 문제로 남아 있다. 2000년대 초, 엘살바도르 정부는 기후 변화 우려에 대응하여 환경천연자원부(MARN)를 설립했다. 2014년 3월, 전 FMLN 게릴라 지도자 세렌이 대선에서 근소한 차이로 승리했다. 그는 2014년 5월 31일에 대통령으로 취임했으며, 엘살바도르 최초의 전직 게릴라 출신 대통령이었다.
2017년 10월, 엘살바도르 법원은 푸네스 전 대통령과 그의 아들 중 한 명이 불법적으로 재산을 증식했다고 판결했다. 푸네스는 2016년에 니카라과에 망명을 신청했었다. 2018년 9월, 사카 전 대통령은 3억 달러 이상의 국가 자금을 자신의 사업체와 제3자에게 유용한 혐의를 인정하여 징역 10년형을 선고받았다.
3.8. 나이브 부켈레 정부 (2019년-현재)

2019년 6월 1일, 나이브 부켈레가 엘살바도르의 새 대통령으로 취임했다. 부켈레는 2019년 2월 대선의 승자였다. 그는 새로 창당한 새로운 생각당(Nuevas Ideas)으로 참여하는 것이 거부되어 GANA를 대표했다. 엘살바도르의 두 주요 정당인 ARENA와 FMLN은 지난 30년 동안 엘살바도르 정치를 지배해왔다. 국제위기감시기구(ICG) 2020년 보고서에 따르면, 2019년 6월 부켈레가 대통령이 된 이후 엘살바도르의 살인율은 60%까지 감소했다. 그 이유는 정부 일부와 갱단 간의 '비공격 협정'일 수 있다는 분석도 있다.
부켈레가 창당한 새로운 생각당(NI)은 동맹 정당(GANA)과 함께 2021년 2월 총선에서 약 63%의 득표율을 기록했다. 그의 정당과 동맹 세력은 84석 의회에서 56석의 압도적 과반수를 훨씬 넘는 61석을 확보하여, 입법 차원에서 논란 없는 결정을 내릴 수 있게 되었다. 이 과반수는 부켈레 대통령의 정당이 사법부 구성원을 임명하고 대통령 임기 제한을 없애는 등의 법안을 거의 반대 없이 통과시킬 수 있게 했다. 2021년 6월 8일, 부켈레 대통령의 발의로 의회의 친정부 의원들은 비트코인을 국가 법정통화로 만드는 법안에 찬성표를 던졌다. 2021년 9월, 엘살바도르 대법원은 헌법이 대통령의 연임을 금지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부켈레가 2024년에 재선에 출마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판결을 내렸다. 이 결정은 부켈레가 임명한 판사들에 의해 조직되었다.
2021년 2월 25일, 엘살바도르는 세계보건기구(WHO)로부터 말라리아 퇴치 인증을 받은 최초의 중앙아메리카 국가가 되었다. 2022년 1월, 국제통화기금(IMF)은 엘살바도르에 암호화폐를 법정통화로 만든 결정을 철회할 것을 촉구했다. 비트코인 가치가 급락하면서 경제적 어려움이 발생했고, 2022년 5월에는 국채가 원래 가치의 40%에 거래되면서 국가 부도 위기에 직면하기도 했다. 부켈레는 2022년 1월 엘살바도르 화산 기슭에 '비트코인 시티'를 건설할 계획을 발표했다.
2022년 엘살바도르 정부는 범죄 조직 및 갱단 관련 폭력과의 대대적인 전쟁을 시작했다. 3월 27일 국가 비상사태가 선포되었고 7월 20일에 연장되었다. 53,000명 이상의 갱단 용의자가 체포되어 세계에서 가장 높은 수감률을 기록했다. 이 소탕 작전으로 수감자 수백 명이 사망했으며, 국제앰네스티와 같은 국제 인권 단체들은 이를 내전 이후 최악의 인권 유린이라고 규정했다.
2023년 11월 30일, 의회는 부켈레와 펠릭스 우요아 부통령에게 2024년 재선 운동에 집중할 수 있도록 휴가를 승인했다. 부켈레의 뒤를 이어 클라우디아 로드리게스 데 게바라가 대통령 권한대행이 되어 엘살바도르 역사상 최초의 여성 대통령이 되었다. 2024년 1월, 살인율이 전년 대비 거의 70% 감소하여 2022년 495건에서 2023년 154건으로 줄었다고 발표되었다. 2024년 2월 4일, 부켈레는 총선에서 83%의 득표율로 재선에 성공했다. 그의 정당 새로운 생각당은 의회 60석 중 58석을 차지했다. 2024년 6월 1일, 그는 두 번째 5년 임기를 시작했다. 2024년 12월, 엘살바도르 정부는 국제통화기금(IMF)의 압력에 따라 비트코인 정책을 축소한 후 14억 달러 규모의 IMF 구제금융 협상을 타결했으며, 전략적 비축량을 강화하기 위해 100만 달러가 넘는 11개의 새로운 BTC를 구매했다고 알려졌다.
4. 지리
엘살바도르는 중앙아메리카의 지협에 위치하며, 북위 13도에서 15도, 서경 87도에서 91도 사이에 자리 잡고 있다. 국토는 서북서에서 동남동 방향으로 약 270369 m (168 mile) 뻗어 있으며, 남북 길이는 약 141622 m (88 mile)이다. 총면적은 2.10 만 km2이다. 미주 대륙에서 가장 작고 인구 밀도가 높은 나라인 엘살바도르는 애칭으로 '미주의 엄지손가락'(Pulgarcito de America)이라고도 불린다. 엘살바도르는 과테말라 및 온두라스와 국경을 접하며, 남쪽으로는 태평양과 해안선을 공유한다. 총 국경 길이는 545566 m (339 mile)로, 과테말라와 202777 m (126 mile), 온두라스와 342789 m (213 mile)이다. 중앙아메리카 국가 중 유일하게 카리브해에 접하지 않은 나라이다. 태평양 해안선 길이는 307384 m (191 mile)이다.

엘살바도르에는 300개가 넘는 강이 있으며, 가장 중요한 강은 렘파강이다. 과테말라에서 발원하는 렘파강은 북부 산맥을 가로질러 중앙 고원의 많은 부분을 따라 흐르다가 남부 화산 산맥을 관통하여 태평양으로 흘러 들어간다. 렘파강은 엘살바도르에서 유일하게 항해가 가능한 강이며, 그 지류들과 함께 국토 면적의 약 절반을 배수한다. 다른 강들은 대체로 짧고 태평양 저지대를 배수하거나 중앙 고원에서 남부 산맥의 협곡을 통해 태평양으로 흐른다. 여기에는 고아스코란강, 히보아강, 토롤라강, 파스강, 그리고 리오그란데데산미겔강 등이 있다.

엘살바도르의 지형은 화산 활동으로 형성되었다. 엘살바도르는 지구상의 화산과 지진 대부분이 발생하는 불의 고리에 위치해 있다. 가장 주목할 만한 화산은 차파라스티케 화산(산미겔 화산)으로, 가장 활발한 화산 활동을 보인다. 가장 높은 화산은 해발 2384 m (7821 ft)에 달하는 일라마테펙 화산(산타아나 화산)이다. 이 외에도 활동 중이거나 잠재적으로 활동 가능한 화산을 포함하여 20개 이상의 화산이 있다. 엘살바도르는 중앙아메리카 국가 중 두 번째로 많은 화산을 보유하고 있다.
엘살바도르에는 화산 분화구로 둘러싸인 여러 호수가 있으며, 그중 가장 중요한 것은 일로팡고 호수(면적 70 km2)와 코아테페케 호수(면적 26 km2)이다. 과히아 호수는 엘살바도르에서 가장 큰 자연 호수(면적 44 km2)이다. 렘파강을 막아 건설된 여러 인공 호수 중 가장 큰 것은 세론 그란데 저수지(면적 135 km2)이다. 엘살바도르 국경 내 총 수역 면적은 320122530 m2 (123.6 mile2)이다.
엘살바도르에서 가장 높은 지점은 온두라스와의 국경에 있는 엘피탈산으로, 해발 2730 m (8957 ft)이다. 두 개의 평행한 산맥이 엘살바도르 서부를 가로지르며 그 사이에 중앙 고원이 있고, 태평양을 따라 좁은 해안 평야가 펼쳐져 있다. 이러한 지형적 특징은 국토를 두 개의 지리적 지역으로 나눈다. 국토의 85%를 차지하는 산맥과 중앙 고원은 내륙 고지대를 구성하며, 나머지 해안 평야는 태평양 저지대라고 불린다. 국토의 약 10%가 삼림 지대이지만, 그중 80%는 인공 조림으로 재생된 것이며 자연림은 거의 남아있지 않다.
4.1. 기후
엘살바도르는 뚜렷한 우기와 건기가 있는 열대 기후이다. 기온은 주로 고도에 따라 달라지며 계절 변화는 거의 없다. 태평양 연안 저지대는 일 년 내내 덥고 습하며, 중앙 고원과 산악 지역은 비교적 온화하다.
우기는 현지에서 invierno겨울스페인어로 알려져 있으며, 5월부터 10월까지 지속된다. 연간 강우량의 거의 전부가 이 시기에 내리며, 특히 남향 산비탈의 연간 강우량은 2000 mm에 달할 수 있다. 보호 구역과 중앙 고원은 그보다 적지만 여전히 상당한 양의 비가 내린다. 이 계절의 강우는 일반적으로 태평양 상공의 저기압에서 비롯되며, 보통 오후에 심한 뇌우 형태로 내린다. 허리케인이 태평양에서 가끔 형성되기도 하지만, 1998년의 허리케인 미치(실제로는 대서양에서 형성됨)와 1973년의 허리케인 에밀리를 제외하고는 엘살바도르에 거의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11월부터 4월까지는 북동 무역풍이 날씨 패턴을 지배한다. 이 기간 동안 카리브해에서 불어오는 공기는 온두라스의 산맥을 넘으면서 대부분의 수분을 잃는다. 이 공기가 엘살바도르에 도달할 때는 건조하고 덥고 안개가 낀 상태가 되며, 이 계절은 현지에서 verano여름스페인어로 알려져 있다.
기온은 계절에 따라 거의 변하지 않으며, 고도가 주된 결정 요인이다. 태평양 연안 저지대가 가장 더운 지역으로, 연평균 기온은 25 °C에서 29 °C 사이이다. 수도 산살바도르는 중앙 고원을 대표하며, 연평균 기온은 23 °C이고, 최고 기온은 38 °C, 최저 기온은 6 °C를 기록한 바 있다. 산악 지역이 가장 시원하며, 연평균 기온은 12 °C에서 23 °C 사이이고, 최저 기온은 때때로 영하에 가까워지기도 한다.
4.2. 자연재해
엘살바도르는 지리적 위치로 인해 지진, 화산 활동, 허리케인, 홍수, 가뭄 등 다양한 자연재해에 취약하다. 이러한 재해는 인명 피해뿐만 아니라 사회경제적으로도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4.2.1. 극한 기상 현상
엘살바도르의 태평양 연안 위치는 폭우와 극심한 가뭄을 포함한 악천후에 노출되게 하며, 이러한 현상들은 엘니뇨 및 라니냐 효과에 의해 더욱 심화될 수 있다. 대서양에서 형성되어 중앙아메리카를 가로지른 허리케인 미치와 같은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하고는 태평양에서 허리케인이 가끔 형성된다.
2001년 여름, 심각한 가뭄으로 엘살바도르 농작물의 80%가 파괴되어 농촌 지역에 기근이 발생했다. 2005년 10월 4일에는 폭우로 인해 위험한 홍수와 산사태가 발생하여 최소 50명이 사망했다.
4.2.2. 지진과 화산 활동
엘살바도르는 태평양 불의 고리를 따라 위치하고 있어 상당한 지각 활동에 노출되어 있으며, 잦은 지진과 화산 활동이 발생한다. 수도 산살바도르는 1756년과 1854년에 파괴되었고, 1919년, 1982년, 1986년의 지진으로 큰 피해를 입었다. 최근 사례로는 2001년 1월 13일 발생한 리히터 규모 7.7의 지진이 있으며, 이로 인해 800명 이상이 사망하는 산사태가 발생했다. 한 달 뒤인 2001년 2월 13일에는 또 다른 지진으로 255명이 사망하고 전국 주택의 약 20%가 파손되었다. 1986년 발생한 5.7 Mw 지진은 1,500명의 사망자, 1만 명의 부상자, 10만 명의 이재민을 발생시켰다.
엘살바도르에는 20개가 넘는 화산이 있으며, 그중 두 개인 산미겔 화산과 이살코 화산은 최근 몇 년 동안 활동했다. 19세기 초부터 1950년대 중반까지 이살코 화산은 규칙적으로 분화하여 '태평양의 등대'라는 별명을 얻었다. 그 눈부신 불꽃은 바다 멀리서도 선명하게 보였고, 밤에는 빛나는 용암이 화산을 빛나는 원뿔로 만들었다. 가장 최근의 파괴적인 화산 폭발은 2005년 10월 1일에 발생했는데, 이때 산타아나 화산이 화산재, 뜨거운 진흙, 암석 구름을 분출하여 인근 마을에 떨어져 2명이 사망했다. 이 지역에서 가장 심각했던 화산 폭발은 서기 5세기에 일로팡고 화산이 VEI 6의 강도로 분화하여 광범위한 화쇄류를 생성하고 마야 도시들을 황폐화시킨 사건이다.
4.3. 동식물

엘살바도르에는 약 500종의 조류, 1,000종의 나비, 400종의 난초, 800종의 나무, 그리고 800종의 해양 어류가 서식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전 세계 8종의 바다거북 중 6종이 중앙아메리카 연안에 서식하며, 그중 4종(장수거북, 대모거북, 푸른바다거북, 올리브각시바다거북)이 엘살바도르 해안에 서식한다. 특히 대모거북은 심각한 멸종 위기에 처해 있다.
최근의 보존 노력은 국가 생물 다양성의 미래에 희망을 주고 있다. 1997년 정부는 환경천연자원부(MARN)를 설립했다. 1999년에는 국회에서 일반 환경 기본법이 승인되었다. 여러 비정부기구(NGO)들이 국가의 가장 중요한 삼림 지역 일부를 보호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그중 가장 대표적인 단체는 살바나투라(SalvaNatura)로, 엘살바도르 환경 당국과의 협정에 따라 국내 최대 국립공원인 엘임파서블 국립공원을 관리하고 있다.
엘살바도르에는 중앙아메리카 산지림, 시에라마드레데치아파스 습윤림, 중앙아메리카 건조림, 중앙아메리카 소나무-참나무숲, 폰세카만 맹그로브, 북부 태평양 연안 건조 맹그로브 등 6개의 육상 생태계가 존재한다. 2018년 산림 경관 보전 지수 평균 점수는 4.06/10으로, 전 세계 172개국 중 136위를 기록했다. 엘살바도르의 국조는 토로고스(청록색 눈썹 모토못, Eumomota superciliosa)이다.
5. 정부와 정치
엘살바도르는 대통령 중심의 민주 공화국으로, 입법, 행정, 사법의 삼권 분립을 기반으로 한 다당제 정치 체제를 채택하고 있다. 국가의 최고 법규는 1983년 제정된 헌법이다. 최근 몇 년간 정치 지형에 큰 변화가 있었으며, 특히 나이브 부켈레 대통령의 등장과 그의 정당인 새로운 생각당의 약진이 두드러진다.
5.1. 정치 체제

엘살바도르는 대통령제 대의 민주주의 공화국으로, 다당제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 대통령은 국가 원수이자 정부 수반이다. 현재 대통령은 나이브 부켈레이다. 행정권은 정부에 의해 행사되며, 입법권은 정부와 의회(단원제) 모두에게 부여된다. 사법부는 독립되어 있으며 대법원이 최고 사법 기관이다.
1983년 헌법은 국가의 최고 법규이다. 엘살바도르는 민주적이고 대표적인 정부를 가지고 있으며, 세 가지 주요 기관은 다음과 같다:
# 행정부: 공화국 대통령이 이끌며, 직접 선거로 선출되어 5년 임기를 수행한다. 연임은 불가능하지만 한 번의 선거 기간을 건너뛴 후 재선될 수 있다(그러나 부켈레 대통령의 경우 이 규정이 도전받거나 변경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대통령은 자신이 임명하는 각료들로 구성된 내각을 가지며, 군대의 총사령관이기도 하다.
# 입법부: 엘살바도르 의회(단원제)라고 불리며, 의원 수는 2024년 선거 이후 60석으로 조정되었다(이전에는 84석). 의원 임기는 3년이다.
# 사법부: 대법원이 이끌며, 15명의 판사로 구성되고 그중 한 명이 사법부 의장으로 선출된다.
V-Dem 민주주의 보고서 2023에 따르면, 엘살바도르는 라틴 아메리카 및 카리브해 지역에서 선거 민주주의 수준이 5번째로 낮은 국가로 평가되었다.
5.2. 주요 정당 및 정치 동향

엘살바도르는 다당제 시스템을 가지고 있다. 과거에는 민족주의 공화 동맹(ARENA, 우파)과 파라분도 마르티 민족해방전선(FMLN, 좌파) 두 정당이 선거를 주도하는 경향이 있었다. ARENA 후보들은 1989년부터 2009년 마우리시오 푸네스(FMLN)가 당선될 때까지 4번 연속 대통령 선거에서 승리했다. FMLN은 이념적으로 좌파이며, 의회 내 다수를 차지하는 마르크스-레닌주의 분파와 2014년까지 마우리시오 푸네스가 이끌었던 사회자유주의 계열로 나뉘어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양당 구도는 2019년 대선에서 GANA 소속의 나이브 부켈레 후보가 승리하면서 깨졌다.
2021년 2월 총선 결과는 엘살바도르 정치에 큰 변화를 가져왔다. 나이브 부켈레 대통령의 새로운 연합 정당인 새로운 생각당(Nuevas Ideas, NI)이 압도적인 과반 의석(당시 84석 중 61석, 2024년 선거 이후 60석 중 54석)을 차지했다. 이는 부켈레 대통령과 그의 정당이 사법부 구성원 임명, 대통령 임기 제한 해제 가능성 등 주요 정책 결정을 거의 반대 없이 추진할 수 있게 만들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전통적으로 중부 및 해안 지역의 주들('붉은 주')은 비교적 좌파 성향을, 동부, 서부 및 고지대 지역의 주들('푸른 주')은 비교적 보수 성향을 보였으나, 새로운 생각당의 전국적인 지지세 확장으로 이러한 지역적 정치 성향 구분은 다소 약화되었다. 현재 주요 정치 동향은 부켈레 대통령의 높은 지지율, 강력한 갱단 소탕 정책, 비트코인 법정통화화 실험, 그리고 이에 따른 권위주의적 통치 방식 및 인권 문제에 대한 국내외의 논쟁이다.
5.3. 대외 관계

엘살바도르는 국제 연합(UN) 및 여러 전문 기구의 회원국이다. 또한 미주 기구(OAS), 중앙아메리카 의회, 중앙아메리카 통합 체제(SICA) 등의 회원국이기도 하다. 지역적 군비 통제를 촉진하려는 중앙아메리카 안보 위원회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엘살바도르는 세계무역기구(WTO) 회원국이며 지역 자유무역협정 체결을 추진하고 있다. 미주 정상회의 과정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며, 미주자유무역지대(FTAA) 구상 하에 시장 접근에 관한 실무 그룹 의장을 맡고 있다.
1950년 11월, 엘살바도르는 새로 권력을 잡은 14대 달라이 라마의 티베트 정부 각료가 중화인민공화국의 티베트 합병을 막기 위해 유엔 총회에 호소하는 전보를 지지함으로써 도움을 준 유일한 국가였다. 다른 국가의 지지가 없어 "유엔은 만장일치로 티베트의 청원을 의제에서 제외했다."
엘살바도르는 국제형사재판소 로마 규정의 당사국이다. 전통적으로 중화민국(대만)과 외교 관계를 유지했으나, 2018년 중화인민공화국과 수교하면서 대만과 단교했다. 미국과는 역사적으로 안보 및 경제 분야에서 강력한 유대 관계를 맺어왔으며, 특히 내전 당시 미국은 정부를 지원했다. 현재에도 많은 엘살바도르인이 미국에 거주하고 있다. 다만, 부켈레 정부의 민주주의 후퇴 논란으로 인해 미국과의 관계에 일부 마찰이 있기도 했다. 엘살바도르는 2003년부터 2008년까지 이라크 전쟁에 군대를 파병한 유일한 라틴 아메리카 국가였다.
5.4. 군사

엘살바도르 군대(Fuerza Armada de El Salvador, FAES)는 엘살바도르 육군, 엘살바도르 공군, 엘살바도르 해군의 세 개 군으로 구성된다. 총 병력은 약 25,000명 수준이다. 엘살바도르 내전 이후 평화 협정에 따라 군 규모가 축소되었으며, 과거 국내 치안 유지에 관여했던 국가경찰, 재무경찰, 국가방위대 등은 해체되고 새로운 시민경찰(Policía Nacional Civil, PNC)이 창설되었다. 현재 군대의 주된 임무는 국토 방위와 주권 수호이며, 자연재해 발생 시 구호 활동 및 유엔 평화유지 활동에도 참여한다. 나이브 부켈레 정부 하에서는 갱단 소탕 작전 등 국내 치안 유지 활동에 군대가 적극적으로 투입되고 있어, 이에 대한 국내외의 다양한 평가가 존재한다. 과거 징병제를 시행했으나 현재는 모병제를 채택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국방 예산은 GDP 대비 일정 비율을 유지하고 있으며, 미국 등으로부터 군사 원조 및 훈련 지원을 받고 있다.
5.5. 인권
엘살바도르의 인권 상황은 과거 내전 기간 동안 심각한 문제를 겪었으며, 최근 나이브 부켈레 정부의 갱단 소탕 작전과 관련하여 다시 국제적인 주목을 받고 있다.
국제앰네스티는 경찰에 의한 불법적인 살해 사건에 대한 몇몇 경찰관 체포 사례에 주목해왔다. 또한 실종 아동 문제, 여성 대상 범죄에 대한 사법 당국의 부적절한 수사 및 기소, 노동조합 활동 불법화 시도 등도 앰네스티가 지적하는 문제점이다.
엘살바도르에서는 강간, 근친상간, 임산부 생명 위협의 경우를 포함하여 예외 없는 낙태 금지법이 시행되고 있다. 이로 인해 지난 20년 동안 180명의 여성이 유산이나 사산을 이유로 최장 30년까지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이는 세계적으로도 매우 엄격한 낙태 금지 정책 중 하나이다.
LGBT에 대한 차별은 매우 광범위하게 존재한다. 2013년 퓨 연구센터 조사에 따르면 엘살바도르인의 53%가 동성애를 사회적으로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동성애 자체는 합법이지만, 동성결혼은 법적으로 인정되지 않으며, 관련 제안은 2006년에 두 번, 2009년에 다시 한 번 거부되었다.
부켈레 정부의 대규모 갱단 소탕 작전은 살인율을 극적으로 낮추는 성과를 거두었지만, 이 과정에서 심각한 인권 침해 논란이 제기되고 있다. 국가 비상사태 하에서 수만 명이 체포되었으며, 이는 세계에서 가장 높은 수감률로 이어졌다. 국제앰네스티, 휴먼라이츠워치 등 국제 인권 단체들은 적법 절차 위반, 구금 중 사망, 고문 혐의, 교도소 과밀 문제 등을 지적하며 우려를 표명하고 있다. 사법부 독립성 약화와 언론 자유에 대한 공격 또한 비판의 대상이 되고 있다.
5.6. 행정 구역
엘살바도르는 14개 주(스페인어: departamento)로 구성되며, 이 주들은 다시 하위 행정 단위로 나뉜다. 2023년 행정 구역 개편으로 기존의 262개 시(municipio)가 44개 시로 통합되었으며, 이 44개 시는 다시 과거의 시에 해당하는 262개 구(distrito)로 세분화되었다. 14개 주의 명칭과 각 주의 주도는 다음과 같다.
# 아우아차판 주 (주도: 아우아차판)
# 산타아나 주 (주도: 산타아나)
# 손소나테 주 (주도: 손소나테)
# 찰라테낭고 주 (주도: 찰라테낭고)
# 라리베르타드 주 (주도: 산타테클라)
# 산살바도르 주 (주도: 산살바도르 - 수도)
# 쿠스카틀란 주 (주도: 코후테페케)
# 라파스 주 (주도: 사카테콜루카)
# 카바냐스 주 (주도: 센순테페케)
# 산비센테 주 (주도: 산비센테)
# 우술루탄 주 (주도: 우술루탄)
# 산미겔 주 (주도: 산미겔)
# 모라산 주 (주도: 산프란시스코고테라)
# 라우니온 주 (주도: 라우니온)
6. 경제
엘살바도르 경제는 지진 및 허리케인과 같은 자연재해, 대규모 경제 보조금을 의무화하는 정부 정책, 공무원 부패 등으로 인해 때때로 어려움을 겪어왔다. 이러한 문제들은 국가 경제의 안정적인 성장을 저해하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으며, 정부는 경제 구조 다변화와 투자 환경 개선을 위한 노력을 지속하고 있다.
6.1. 경제 구조 및 동향
엘살바도르 경제는 과거 지진, 허리케인과 같은 자연재해, 막대한 정부 보조금, 공무원 부패 등으로 어려움을 겪어왔다. 2012년 4월에는 정부 보조금 문제가 심각해져 국제통화기금(IMF)이 중앙 정부에 대한 7.50 억 USD 규모의 대출을 중단하기도 했다. 당시 푸네스 대통령 비서실장이었던 알렉스 세고비아는 경제가 "붕괴 직전"이라고 인정했다.
2021년 추정 구매력 평가 기준 국내총생산(GDP)은 579.50 억 USD이며, 2021년 실질 GDP 성장률은 4.2%였다. 산업 구조를 보면 서비스업이 GDP의 가장 큰 비중(64.1%, 2008년 추정)을 차지하며, 그 뒤를 산업(24.7%), 농업(11.2%, 2010년 추정)이 잇고 있다. 1996년 이후 GDP는 연평균 3.2%의 실질 성장률을 기록했으며, 2007년 GDP 실질 성장률은 4.7%에 달했다. 2017년 12월 기준 순 국제 외환보유고는 35.70 억 USD였다.
엘살바도르는 오랫동안 경제 다변화를 위한 새로운 성장 동력 개발에 어려움을 겪어왔다. 과거에는 금과 은을 생산했으나, 지역 경제에 수억 달러를 추가할 것으로 예상되었던 광업 부문 재개 시도는 사카 대통령이 퍼시픽 림 마이닝 코퍼레이션의 운영을 중단시킨 후 무산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앙아메리카 재정 연구소(Instituto Centroamericano for Estudios Fiscales)에 따르면, 2010년부터 2015년까지 금속 광업의 기여도는 국가 GDP의 0.3%에 불과했다. 사카 대통령의 결정은 정치적 동기가 없지 않았지만, 지역 주민과 풀뿌리 운동의 강력한 지지를 받았다. 푸네스 대통령은 나중에 국내 주요 강 중 하나의 시안화물 오염 위험을 이유로 회사의 추가 허가 신청을 거부했다.
다른 이전 식민지들과 마찬가지로 엘살바도르는 오랫동안 단일 수출 경제(하나의 수출 품목에 크게 의존하는 경제)로 간주되었다. 식민 시대에는 엘살바도르가 인디고의 주요 수출국이었으나, 19세기 합성 염료 발명 이후 새로 수립된 현대 국가는 커피를 주요 수출품으로 전환했다.
정부는 간접세에 초점을 맞춰 현재 세수 징수를 개선하려고 노력해왔다. 1992년 9월에 시행된 10%의 부가가치세(스페인어로 IVA)는 1995년 7월에 13%로 인상되었다. 인플레이션은 안정적이며 이 지역에서 가장 낮은 수준에 속한다. 자유무역협정의 결과로 2000년부터 2006년까지 총수출은 19% 증가하여 29.40 억 USD에서 35.10 억 USD로 늘어났고, 총수입은 54% 증가하여 49.50 억 USD에서 76.30 억 USD로 늘어났다. 이로 인해 무역 적자는 102% 증가하여 20.10 억 USD에서 41.20 억 USD로 늘어났다.
2006년 엘살바도르는 중앙아메리카 5개국과 도미니카 공화국이 미국과 협상한 중앙아메리카-도미니카 공화국 자유무역협정(CAFTA-DR)을 최초로 비준한 국가가 되었다. CAFTA는 엘살바도르 정부가 자유 무역을 촉진하는 정책을 채택하도록 요구한다. CAFTA는 가공식품, 설탕, 에탄올 수출을 강화하고, 2005년 다자간 섬유 협정 만료로 아시아 경쟁에 직면했던 의류 부문 투자를 지원했다. 의류 부문 경쟁력 저하를 예상하여 이전 행정부는 지역 유통 및 물류 허브로서 국가를 홍보하고 세금 인센티브를 통해 관광 투자를 촉진함으로써 경제를 다변화하려고 노력했다.
2021년 6월, 나이브 부켈레 대통령은 비트코인을 엘살바도르의 법정통화로 만드는 법안을 도입하겠다고 밝혔다. 비트코인 법은 2021년 6월 9일 엘살바도르 의회에서 통과되었으며, 비트코인은 2021년 9월 7일 공식적으로 법정통화가 되었다. 이 법의 일환으로 외국인은 엘살바도르에 비트코인 3개를 투자하면 영주권을 얻을 수 있게 되었다. 이 법 시행은 시위를 동반했으며, 국민 대다수는 비트코인을 법정통화로 사용하는 것에 반대했다. 엘살바도르 상공회의소가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2022년 3월 현재 국내 상인의 14%만이 최소 한 번의 비트코인 거래를 처리한 것으로 나타났다. 2024년 5월 현재 엘살바도르 비트코인 사무소는 정부가 약 3.54 억 USD 상당의 비트코인 5,750개를 보유하고 있으며, 이 중 약 2900.00 만 USD 상당의 비트코인 474개는 2021년 9월 이후 테카파 화산의 지열 에너지를 사용하여 채굴되었다고 보고했다.
엘살바도르는 1인당 송금액에서 이 지역을 선도하며, 유입액은 거의 모든 수출 수입과 맞먹는다. 2019년에는 235만 명의 엘살바도르인이 미국에 거주했으며, 전체 가구의 약 3분의 1이 송금을 받았다. 미국에 거주하는 엘살바도르인들이 엘살바도르의 가족에게 보내는 송금은 주요 외화 수입원이며 무역 적자를 상쇄한다. 송금액은 2000년대 초부터 꾸준히 증가하여 2006년 33.20 억 USD(GDP의 약 16.2%)에서 2019년에는 거의 60.00 억 USD(GDP의 약 20%, 세계은행에 따르면 세계 최고 수준 중 하나)로 증가했다.
2024년 12월, 나이브 부켈레 정부는 전략적 비축량을 강화하기 위해 100만 달러가 넘는 새로운 비트코인 11개를 구매했다.
6.2. 주요 산업
엘살바도르의 주요 산업은 전통적인 농업 부문, 제조업 부문, 그리고 성장하는 서비스업 부문으로 구성된다.
- 농업: 전통적으로 국가 경제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해왔다. 주요 작물로는 커피, 사탕수수, 목화(과거 주요 작물이었으나 현재는 비중 감소), 옥수수, 콩, 쌀 등이 있다. 특히 커피는 오랫동안 엘살바도르의 대표적인 수출품이었으며, 여전히 경제에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그러나 국제 가격 변동과 기후 변화 등으로 인해 어려움을 겪고 있다.
- 제조업: 주로 식품 가공, 음료, 섬유 및 의류 산업이 중심을 이룬다. 특히 의류 산업은 CAFTA-DR 발효 이후 대미 수출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이 외에도 석유 제품, 담배, 화학 제품, 가구 등의 제조업이 있다.
- 서비스업: 최근 몇 년간 가장 빠르게 성장하고 있는 부문이다. 관광업, 금융업, 소매업, 물류업 등이 주요 서비스 산업이다. 정부는 특히 관광 산업을 육성하고 엘살바도르를 지역 물류 허브로 발전시키기 위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과거에는 금과 은 채굴도 이루어졌으나, 현재 광업 부문의 경제 기여도는 미미하다. 경제 다변화를 위한 새로운 성장 동력 발굴이 지속적인 과제로 남아있다.
6.3. 통화
엘살바도르의 통화 역사는 여러 단계를 거쳐왔다. 원주민들은 카카오를 화폐처럼 사용했으며, 스페인 식민 통치 이후에는 마카코(Macaco)라 불리는 은화가 비공식적으로 사용되다가 1856년 법정통화가 되었다. 이 시기에는 스페인 페세타도 널리 유통되었고, 농민들은 '핀카의 동전(fiches de finca)'이라는 황동 동전을 사용하기도 했다. 1877년에는 살바도르 레알(Real)이 발행되기 시작했고, 1883년에는 살바도르 페소(Peso)가 법정통화가 되어 '1페소 = 8레알'(후에 10레알로 변경)로 교환되었다.
1892년(일부 자료는 1882년)에는 엘살바도르 콜론(SVC)이 도입되어 살바도르 페소를 대체했다. 1919년 이전의 모든 통화를 폐지하고 콜론만이 유일한 법정통화가 되었다.
2001년 1월 1일, 엘살바도르 정부는 경제 안정을 목표로 미국 달러(USD)를 콜론과 함께 법정통화로 채택하는 달러화 정책을 시행했다. 고정 환율은 1 미국 달러 = 8.75 살바도르 콜론이었다. 이후 콜론은 점차 유통이 중단되었고, 사실상 미국 달러가 유일한 통용 화폐 역할을 해왔다.
2021년 6월, 나이브 부켈레 대통령 정부는 세계 최초로 비트코인(BTC)을 법정통화로 추가 채택하는 법안을 통과시켰고, 이는 같은 해 9월 7일부터 발효되었다. 이로써 엘살바도르는 미국 달러와 비트코인이라는 두 가지 법정통화를 가지게 되었다. 그러나 비트코인의 법정통화화는 낮은 상업적 채택률과 국제통화기금(IMF) 등의 우려 표명 등 논란이 지속되고 있다.
6.3.1. 비트코인 법정통화화
2021년 6월, 나이브 부켈레 엘살바도르 대통령은 비트코인을 국가의 법정통화로 지정하는 법안을 발의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이 비트코인 법은 2021년 6월 8일(또는 9일) 엘살바도르 의회에서 찬성 다수로 통과되었으며, 같은 해 9월 7일부터 공식적으로 발효되었다. 이로써 엘살바도르는 세계에서 처음으로 비트코인을 법정통화로 채택한 국가가 되었다. 미국 달러 역시 계속해서 법정통화로 사용된다.
정부는 비트코인 법정통화화의 주요 배경으로 해외 송금 수수료 절감, 금융 포용성 증대(은행 계좌가 없는 국민 다수), 투자 유치 등을 내세웠다. 또한, 외국인이 엘살바도르에 비트코인 3개 상당액을 투자하면 영주권을 부여하는 정책도 함께 시행되었다. 정부는 '치보(Chivo)'라는 공식 디지털 지갑 애플리케이션을 출시하고, 국민들에게 30 USD 상당의 비트코인을 지급하며 사용을 장려했다.
그러나 비트코인 법정통화화 정책은 시행 초기부터 여러 도전과 논란에 직면했다. 국내에서는 반대 시위가 있었고, 다수의 국민이 비트코인 사용에 회의적인 반응을 보였다. 엘살바도르 상공회의소의 2022년 3월 조사에 따르면, 국내 상인의 약 14%만이 최소 한 번 이상의 비트코인 거래를 처리한 것으로 나타나 낮은 상업적 채택률을 보였다.
국제통화기금(IMF)은 2022년 1월, 금융 안정성, 금융 건전성, 소비자 보호 등에 대한 심각한 위험을 이유로 엘살바도르 정부에 비트코인의 법정통화 지위를 철회할 것을 촉구했다. 비트코인 가격의 높은 변동성은 정부의 비트코인 보유 자산 가치에 영향을 미쳤으며, 엘살바도르의 국가 신용등급도 하향 조정되는 요인 중 하나로 작용했다. 부켈레 정부는 비트코인 추가 매입, 지열 에너지를 이용한 비트코인 채굴 도시 '비트코인 시티' 건설 계획 발표 등 비트코인 정책을 지속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2024년 5월 기준, 엘살바도르 정부는 약 5,750 BTC(당시 약 3.54 억 USD 상당)를 보유하고 있다고 알려졌다.
2024년 말, 엘살바도르는 IMF의 압력에 따라 비트코인 관련 정책을 일부 축소한 후 14.00 억 USD 규모의 구제금융 협상을 타결한 것으로 보도되었으나, 동시에 전략적 비축량 강화를 위해 비트코인을 추가 매입하는 등 정책의 향방은 여전히 유동적인 상황이다.
6.4. 에너지

엘살바도르의 에너지 산업은 다각화되어 있으며, 국내 전력 생산을 위해 화석 연료, 수력 발전, 기타 재생 가능 에너지(주로 지열 발전)에 의존하고, 석유 수입에 의존하고 있다. 엘살바도르의 설치된 발전 용량은 1,983 MW이며, 연간 5,830 GWh의 전기를 생산한다. 이 중 84%는 재생 가능 에너지원에서 생산되며, 지열 발전(국내 다수 화산에서 생산)이 26.85%, 수력 발전이 29.92%를 차지하고 나머지는 화석 연료에서 생산된다.
국가 에너지 위원회에 따르면, 2021년 1월 총 주입량의 94.4%가 수력 발전소(28.5% - 124.43 GWh), 지열 발전(27.3% - 119.07 GWh), 바이오매스(24.4% - 106.43 GWh), 태양광 발전(10.6% - 46.44 GWh), 풍력 발전(3.6% - 15.67 GWh)에서 나왔다. 엘살바도르의 메타판에는 중앙아메리카 지역에서 가장 큰 풍력 발전 단지인 벤투스(Ventus) 풍력 발전 단지가 위치해 있다. 정부는 신재생 에너지 개발을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있으며, 특히 지열 및 태양광 발전 잠재력이 높은 것으로 평가된다.
6.5. 통신 및 미디어
엘살바도르의 유선 전화 회선은 약 90만 개, 유선 광대역 회선은 50만 개이며, 이동 전화 가입 건수는 940만 건에 달한다. 인구의 상당 부분이 스마트폰과 모바일 네트워크를 통해 인터넷에 접속하며, 정부 규제 완화는 유선망보다 모바일 보급 확대를 촉진하고 있으며, 2020년부터 5G 서비스 테스트가 시작되었다. TV/라디오 방송의 디지털 전환은 2018년에 ISDB-T 표준을 채택하여 이루어졌다. 수백 개의 민영 국내 TV 방송국, (국제 채널도 제공하는) 케이블 TV 네트워크, 라디오 방송국이 있으며, 정부 소유 방송국도 1개 있다.
그러나 나이브 부켈레 정부 하에서 언론 환경에 대한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비판적인 언론인에 대한 공격, 정부 광고를 이용한 언론사 압박 등 언론의 자유가 위축되고 있다는 지적이 국내외에서 나오고 있다.
6.6. 관광
2014년 엘살바도르를 방문한 국제 관광객은 139만 4천 명으로 추산되었다. 2019년 관광 산업은 엘살바도르 GDP에 29.70 억 USD를 기여했으며, 이는 총 GDP의 11%에 해당한다. 관광 산업은 2013년에 80,500개의 일자리를 직접 지원했으며, 이는 엘살바도르 총고용의 3.1%를 차지했다. 2019년에는 간접적으로 317,200개의 일자리를 지원하여 총고용의 11.6%를 차지했다.
북미와 유럽 관광객 대부분은 엘살바도르의 해변과 밤문화를 찾아온다. 엘살바도르의 관광 환경은 다른 중앙아메리카 국가들과 약간 다르다. 지리적 크기와 도시화로 인해 생태 관광이나 대중에게 공개된 고고학 유적지와 같은 자연 테마 관광지는 많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엘살바도르는 해변과 화산으로 가장 잘 알려져 있다. 가장 자주 방문하는 해변으로는 엘툰코, 푼타로카, 엘순살, 엘손테 해변, 코스타델솔, 엘마하우알, 라리베르타드 해변 등이 있다. 가장 많이 등반하는 화산은 산타아나 화산과 이살코 화산이다. 이 외에도 마야 유적인 호야 데 세렌(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아메리카의 폼페이'), 타수말, 산안드레스 등 고고학 유적지와 식민 시대 건축물도 주요 관광 자원이다. 정부는 세금 인센티브를 통해 관광 투자를 장려하고 있으며, 특히 서핑 관광을 위한 '서프 시티(Surf City)' 구상을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6.7. 해외 노동자 송금과 경제
엘살바도르 경제에서 해외 거주 엘살바도르인들의 본국 송금은 매우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 이는 국가의 주요 외화 수입원이며 만성적인 무역 적자를 상쇄하는 데 기여한다.
2019년 기준으로 약 235만 명의 엘살바도르인이 미국에 거주하고 있으며, 전체 가구의 약 3분의 1이 해외로부터 송금을 받는 것으로 추산된다. 송금액은 2000년대 초부터 꾸준히 증가하여, 2006년에는 약 33.20 억 USD(GDP의 약 16.2%)였던 것이 2019년에는 거의 60.00 억 USD에 달했다. 이는 당시 GDP의 약 20%에 해당하는 규모로, 세계은행에 따르면 세계적으로도 매우 높은 수준이다.
이러한 송금은 수혜 가구의 소비를 지원하고 빈곤 완화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지만, 한편으로는 국가 경제의 송금 의존도를 높이고 소위 '네덜란드 병'과 유사한 효과를 야기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정부는 비트코인을 법정통화로 채택한 배경 중 하나로 송금 수수료 절감을 언급하기도 했으나, 실제 비트코인을 통한 송금은 아직 미미한 수준이다.
7. 사회 기반 시설
엘살바도르의 사회 간접 자본은 국가 발전에 있어 중요한 요소이지만, 여러 부문에서 개선의 여지가 남아 있다. 정부는 상하수도, 보건 의료, 교통망 등의 현대화와 접근성 확대를 위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7.1. 상하수도
엘살바도르의 상수도 및 위생 시설 접근 수준은 상당히 향상되었다. 2015년 노스캐롤라이나 대학교에서 실시한 연구에 따르면, 엘살바도르는 상수도 및 위생 시설 접근성 증가와 도시-농촌 간 접근 불균형 감소 측면에서 세계적으로 가장 큰 진전을 이룬 국가로 평가되었다.
그러나 수자원은 심각하게 오염되어 있으며, 폐수의 상당 부분이 아무런 처리 없이 환경으로 배출되고 있다. 제도적으로 단일 공공 기관이 사실상 부문 정책 수립과 주요 서비스 제공자 역할을 모두 담당하고 있다. 새로운 법률을 통해 이 부문을 개혁하고 현대화하려는 시도는 지난 20년 동안 결실을 보지 못했다. 도시 지역의 상수도 보급률은 비교적 높지만, 농촌 지역은 여전히 미흡하며, 식수원 관리와 수질 문제 해결, 하수 처리 시스템 확충이 주요 과제로 남아 있다. 정부는 관련 인프라 개선 및 관리 시스템 효율화를 위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7.2. 보건 및 의료

엘살바도르는 공공 및 민간 의료 서비스 체계를 갖추고 있다. 주요 도시에는 종합병원 및 전문 의료 시설이 분포해 있으나, 농촌 지역이나 소외 계층의 의료 접근성은 여전히 개선이 필요한 부분이다. 의료 인력 확보와 장비 현대화도 지속적인 과제이다. 국민 건강보험 제도가 운영되고 있으나, 보장 범위와 서비스 질에 대한 개선 요구가 있다.
코로나19 범유행에 대응하여 정부는 2020년 6월, 수도 산살바도르의 주요 컨벤션 센터를 개조하여 엘살바도르 병원(Hospital El Salvador)을 개원했다. 이는 라틴 아메리카에서 가장 큰 병원으로 알려졌으며, 대규모 투자를 통해 영구 시설로 전환되었다. 1단계 전환 비용으로 2500.00 만 USD가 소요되었고, 전체 시설 비용은 7500.00 만 USD에 달하며 혈액 은행, 영안실, 방사선과 등을 갖추고 있다. 3단계 완료 시 총 1,083개의 중환자실(ICU) 병상과 총 2,000개의 병상을 확보할 것으로 발표되었다.
엘살바도르는 2021년 2월, 세계보건기구(WHO)로부터 말라리아 퇴치 국가로 인증받는 성과를 거두었다. 이는 중앙아메리카 국가 중 최초이다. 그러나 만성 질환, 전염병 예방, 모자 보건 등 여전히 해결해야 할 보건 과제들이 남아 있다.
7.3. 교통
엘살바도르의 교통 인프라는 도로망, 항만 시설, 국제공항을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다.
- 도로망: 팬아메리칸 하이웨이가 국토를 관통하며 주요 도시들을 연결한다. 국도 및 지방도 네트워크가 있으나, 일부 지역에서는 도로 상태 개선 및 확장이 필요하다. 도시 지역의 교통 체증은 심각한 문제 중 하나이다. 대중교통은 주로 버스에 의존하며, 노후화되고 비효율적인 경우가 많다.
- 항만 시설: 주요 항구로는 태평양 연안의 아카후틀라 항과 라 우니온 항(쿠투코 항)이 있다. 아카후틀라 항은 엘살바도르의 주요 무역항 역할을 하며, 라 우니온 항은 최근 개발되었으나 아직 활용도가 낮은 편으로, 물류 중심지로 발전할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
- 공항: 주요 국제공항은 수도 산살바도르에서 남동쪽으로 약 40 km 떨어진 곳에 위치한 몬시뇰 오스카르 아르눌포 로메로 국제공항(SAL)이다. 이 공항을 통해 미주 및 유럽 주요 도시와의 항공편이 운행된다. 산살바도르 시내에 위치한 일로팡고 국제공항은 주로 국내선, 일반 항공 및 군용으로 사용된다.
- 철도: 과거에는 주로 커피 운송을 위해 철도(FENADESAL/CEPA)가 운영되었으나, 내전과 관리 부실로 대부분 노후화되어 운행이 중단된 상태이다. '태평양 철도(Tren del Pacífico)'와 같은 일부 노선 복원 및 현대화 계획이 논의되고 있다.
정부는 교통 인프라 개선을 위해 도로 확장, 항만 현대화, 대중교통 시스템 개선 등의 노력을 기울이고 있으나, 재정적 제약과 지리적 조건 등으로 인해 어려움을 겪고 있다.
8. 인구
엘살바도르의 인구는 2024년 정부 인구 조사 기준으로 약 600만 명이며, 유엔 추산으로는 6,602,379명(2023년 기준)이다. 이는 1950년의 220만 명에 비해 크게 증가한 수치이다. 2010년 기준 연령별 인구 구조는 15세 미만이 32.1%, 15세에서 65세 사이가 61%, 65세 이상이 6.9%였으나, 최근 출산율 감소와 평균 수명 증가로 고령화가 진행 중일 가능성이 있다.
수도인 산살바도르 대도시권에는 약 210만 명의 인구가 거주하고 있다. 전국적으로 약 42%의 인구가 농촌 지역에 거주하는 것으로 추산되지만(최신 자료 확인 필요), 1960년대 이후 급격한 도시화가 진행되어 도시 계획 및 서비스 관련 문제를 야기하고 있다. 엘살바도르는 미주 대륙 본토에서 인구 밀도가 가장 높은 국가 중 하나이다.
이웃 국가인 니카라과 출신 주민이 약 10만 명 거주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2024년 세계 기아 지수에서는 조사 대상 127개국 중 43위를 차지했으며, 기아 수준은 '낮음'(8.0점)으로 평가되었다.
8.1. 인종 및 민족 구성
엘살바도르 인구의 민족 구성은 메스티소(아메리카 원주민과 유럽인 혼혈)가 약 86.3%, 백인이 12.7%, 원주민이 0.23%, 흑인이 0.13%, 그리고 기타가 0.64%를 차지한다 (2007년 센서스 기준). 백인의 대부분은 스페인계 혈통이지만 프랑스, 독일, 스위스, 이탈리아계 후손도 소수 존재한다.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체코, 독일, 헝가리, 폴란드, 스위스 등지에서 피난 온 중부 유럽 이민자들도 일부 정착했다.
완전한 원주민 혈통이라고 밝힌 인구는 앞서 언급된 0.23% 외에도, 일부 조사에서는 1%에 이르기도 하나 매우 적은 비율이다. 주요 원주민 집단으로는 카카위라족(전체 인구의 0.07%), 피필족(0.06%), 렝카족(0.04%) 등이 있다. 대부분의 원주민은 오랜 시간에 걸쳐 지배적인 메스티소 문화에 동화되어 고유한 관습과 전통을 유지하는 경우가 드물다. 특히 1932년 라 마탄사 학살은 원주민 인구와 문화에 큰 타격을 주었다.
엘살바도르는 역사적으로 흑인 이민을 제한하는 정책(20세기 초 마르티네스 정권)을 시행했기 때문에 다른 중앙아메리카 국가들에 비해 아프리카계 엘살바도르인의 비율(0.13%)이 매우 낮다. 그러나 식민지 시대 및 그 이후 노예로 끌려온 아프리카인들의 후손들은 이미 엘살바도르 인구 및 문화에 통합되어 왔다.
소수 이민자 집단 중에서는 팔레스타인계 기독교인들이 주목할 만하다. 수는 적지만 경제적, 정치적으로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해 왔으며, 안토니오 사카, 나이브 부켈레와 같은 대통령을 배출하기도 했다. 샤피크 안달과 같은 정치 지도자도 팔레스타인 혈통이다.
2004년 기준 약 320만 명의 엘살바도르인이 국외에 거주하고 있으며, 미국이 주요 이주 대상국이다. 2012년에는 약 200만 명의 엘살바도르 이민자 및 엘살바도르계 미국인이 미국에 거주하여, 미국 내 여섯 번째로 큰 이민자 집단을 형성했다. 이 외에도 과테말라, 온두라스, 니카라과 등 인접 국가를 비롯하여 캐나다, 멕시코, 영국, 스웨덴, 브라질, 이탈리아, 콜롬비아, 호주 등지에도 엘살바도르인 공동체가 형성되어 있다.
8.2. 언어
엘살바도르의 공식 언어는 스페인어이며, 사실상 모든 주민이 사용한다. 현지에서 사용되는 스페인어 방언은 Caliche칼리체스페인어라고 불리며, 비공식적인 구어체로 간주된다. 다른 중앙아메리카 및 남아메리카 지역과 마찬가지로 엘살바도르인들은 2인칭 단수 대명사로 'tú' 대신 'vos스페인어'를 사용하는 보세오 현상을 보인다.
소수의 원주민 언어도 존재하지만, 사용자는 극히 드물다. 피필족이 사용하는 나와트어(피필어)는 약 500명 정도만이 구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언어 부활을 위한 노력이 이루어지고 있다. 포코맘어, 카카오페라어, 렝카어와 같은 다른 원주민 언어들은 사멸했다. 과테말라 및 벨리즈 출신 원주민 이민자들이 사용하는 켁치어도 일부 사용된다.
학교 교육을 통해 영어가 교육되며, 특히 교육 수준이 높은 계층이나 미국과의 관계가 있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영어가 통용되기도 한다.
8.3. 종교
엘살바도르 인구의 대다수는 기독교 신자이다. 가톨릭교가 43.3%로 가장 큰 단일 교파이며, 개신교 신자는 33.9%이다. 특정 종교에 소속되지 않은 인구는 18.6%를 차지한다. 그 외 여호와의 증인, 하레 크리슈나, 이슬람교, 유대교, 불교, 몰몬교, 토착 종교 신앙을 따르는 사람들 및 불가지론자 또는 무신론자 등이 나머지 4.2%(기타 종교 3.0%, 불가지론/무신론 1.2%)를 구성한다. (이 수치는 조사에 따라 다소 차이가 있을 수 있다. 예를 들어, 다른 조사에서는 가톨릭 41.9%~57%, 개신교 33.9%~35.9%로 나타나기도 한다.) 특히 오스카르 로메로 대주교는 엘살바도르 최초의 성인이자 국가적 영웅으로 추앙받으며, 2018년 교황 프란치스코에 의해 시성되었다.
최근 몇 년간 엘살바도르에서는 개신교, 특히 오순절주의와 같은 복음주의 교파의 신자 수가 빠르게 증가하고 있는 추세이다. 종교의 자유는 헌법에 의해 보장되지만, 가톨릭교는 역사적으로 엘살바도르 사회와 문화에 깊은 영향을 미쳐왔다.
8.4. 교육
엘살바도르의 공립 교육 시스템은 자원 부족 문제를 겪고 있으며, 일부 공립학교의 학급당 학생 수는 50명에 달하기도 한다. 경제적 여유가 있는 가정에서는 사립학교를 선호하는 경향이 있으며, 사립학교는 일반적으로 공립학교보다 교육의 질이 높다고 여겨진다. 대부분의 사립학교는 미국, 유럽 또는 기타 선진 교육 시스템을 따르고 있다. 저소득층 가정은 공립 교육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엘살바도르의 교육은 고등학교까지 무상으로 제공된다. 9년간의 기초 교육(초등-중학교)을 마친 후, 학생들은 대학 진학을 준비하는 2년제 고등학교 또는 직업 경력을 쌓거나 대학에 진학하여 선택한 분야의 교육을 심화할 수 있는 3년제 고등학교 중 하나를 선택할 수 있다.
국민 식자율은 지속적으로 향상되어, 2021년 세계은행 자료에 따르면 15세 이상 인구의 식자율은 90.3%에 달한다. (2001년 센서스에서는 80% 수준이었다.)
주요 고등 교육 기관으로는 1841년에 설립된 국립 엘살바도르 대학교(UES)가 있으며, 그 외에도 중앙아메리카 호세 시메온 카냐스 대학교(UCA - 예수회 소속, 내전 중 학자 피살 사건으로 유명), 엘살바도르 기술 대학교(UTEC), 돈 보스코 대학교, 프란시스코 가비디아 대학교 등 다수의 사립 대학교가 있다.
엘살바도르는 세계지식재산기구(WIPO)가 발표하는 글로벌 혁신 지수(Global Innovation Index)에서 2024년 98위를 기록하여 2019년의 108위에서 상승했다.
9. 치안
엘살바도르는 과거 세계적으로 악명 높은 조직범죄, 특히 갱단 문제로 인해 심각한 치안 불안을 겪어왔다. 그러나 최근 나이브 부켈레 정부의 강력한 갱단 소탕 작전으로 인해 치안 상황에 급격한 변화가 나타나고 있으며, 이에 대한 평가는 엇갈리고 있다.
9.1. 범죄율 및 유형
21세기 초부터 엘살바도르는 갱단 관련 범죄와 청소년 비행을 포함한 높은 범죄율을 경험했다. 온두라스, 과테말라와 함께 갱단 위기의 중심지로 여겨졌다. 주요 범죄 유형으로는 살인, 강도, 갈취, 마약 밀매 등이 있으며, 특히 갱단에 의한 폭력과 살인은 오랫동안 심각한 사회 문제였다.
과거 엘살바도르는 세계에서 가장 높은 살인율을 기록한 국가 중 하나였다. 그러나 나이브 부켈레 대통령 취임 이후, 특히 2022년 대규모 갱단 단속 작전이 시작되면서 살인율을 비롯한 주요 범죄율이 극적으로 감소했다.
9.1.1. 살인율 추이
엘살바도르의 살인율은 극적인 변화를 겪어왔다.
- 2004년: 인구 10만 명당 41건 (이 중 60%가 갱단 관련)
- 2012년: 인구 10만 명당 66건 (당시 멕시코의 3배 이상)
- 2015년: 살인 사건 6,650건으로 정점 (인구 10만 명당 약 103~105건), 전쟁 중이 아닌 국가 중 세계 최고 수준.
- 2018년: 살인 사건 3,348건 (인구 10만 명당 51건)
- 2019년: 살인 사건 2,398건 (인구 10만 명당 36건) - 부켈레 대통령 임기 중반부터 감소 시작.
- 2020년: 살인 사건 1,322건 (인구 10만 명당 19.7건)
- 2021년: 살인 사건 1,147건 (인구 10만 명당 17.6건) - 내전 이후 최저치 기록.
- 2022년: 살인 사건 495건 (인구 10만 명당 7.8건) - 대규모 갱단 단속 시작.
- 2023년: 살인 사건 154건 (인구 10만 명당 2.4건)
- 2024년 말: 인구 10만 명당 1.9건으로 추정, 라틴 아메리카 최저 수준. 9년 만에 98% 감소.
2023년 5월, 부켈레 대통령은 2019년 이후 살인 사건 없는 날이 (비연속적으로) 총 365일에 달했다고 발표했다. 이러한 급격한 살인율 감소는 부켈레 정부의 주요 치적으로 평가받고 있으나, 일각에서는 과거 푸네스 및 산체스 세렌 정부 시절, 그리고 부켈레 정부 초기에도 갱단과의 암묵적 휴전이 살인율 변동에 영향을 미쳤을 수 있다는 분석도 제기된다.
9.2. 조직범죄 (갱단)
엘살바도르의 주요 갱단으로는 MS-13(마라 살바트루차)과 그 경쟁 조직인 바리오 18(18번가 갱단)이 있다. 이들 갱단은 본래 미국 로스앤젤레스의 엘살바도르 이민자 사회에서 결성되었으나, 구성원들이 본국으로 추방되면서 엘살바도르에 뿌리내리게 되었다. 대규모 단속 작전 이전에는 약 7만 명의 갱단원이 활동하는 것으로 추산되었다. 이들은 갈취, 마약 밀매, 살인, 강도 등 각종 범죄를 저지르며 특정 지역을 장악하고 사회에 막대한 악영향을 끼쳤다.
과거 정부들은 '마노 두라(단호한 손)', '수페르 마노 두라(더욱 단호한 손)'와 같은 갱단 소탕 정책을 시행했으나 큰 성공을 거두지 못했고, 유엔 등으로부터 비판을 받기도 했다. 푸네스, 산체스 세렌 정부 시절에는 갱단과의 휴전 협상이 있었다는 의혹도 제기되었다. 한편, '솜브라 네그라'와 같은 자경단 성격의 암살단이 갱단원들을 표적으로 삼는 일도 있었다.
9.2.1. 2022년 대규모 갱단 단속
2022년 3월, 갱단에 의한 폭력 사건이 급증하여 단 3일 만에 87명이 사망하는 사태가 발생하자, 나이브 부켈레 정부는 같은 달 27일 국가비상사태를 선포하고 대규모 갱단 소탕 작전에 돌입했다. 국가비상사태는 여러 차례 연장되었으며, 이 기간 동안 결사의 자유, 변호인 조력권, 영장 없는 체포 시한 등 일부 헌법상 권리가 제한되었다.
이 작전을 통해 2023년 8월까지 72,000명 이상(현재는 80,000명 이상으로 추산)의 갱단 용의자가 체포되었으며, 엘살바도르는 세계에서 가장 높은 수감률을 기록하게 되었다. 정부는 갱단 가입에 대한 처벌을 최대 45년으로 강화하고, 갱단 메시지 유포(독립 언론의 갱단 위기 보도 포함)에 대해서도 최대 15년의 징역형을 부과하는 등 법적 조치를 강화했다. 갱단원들을 수용하기 위해 '테러리스트 감금 센터'(CECOT)라는 대규모 교도소가 건설되어 4만 명을 수용할 수 있게 되었다.
이러한 강력한 단속의 결과, 살인율을 비롯한 각종 갱단 관련 범죄가 극적으로 감소하고 전반적인 치안 상황이 개선되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으며, 부켈레 대통령에 대한 국민적 지지율도 매우 높게 유지되고 있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임의 구금, 적법 절차 위반, 변호인 접근 제한, 구금 중 사망(인권 단체 보고 수백 명), 고문 혐의, 교도소 과밀 등 심각한 인권 침해 문제가 발생했다는 비판이 국제앰네스티, 휴먼라이츠워치, 유엔 등으로부터 제기되고 있다. 무고한 시민이 부당하게 체포되거나 피해를 입는 사례도 보고되고 있어, 치안 개선의 성과와 인권 문제 사이에서 논란이 지속되고 있다.
10. 문화

엘살바도르 문화는 원주민(피필, 렌카 등), 스페인 식민 시대, 그리고 일부 아프리카 문화의 영향이 혼합되어 형성된 복합적인 모습을 보인다. 특히 로마 가톨릭교회는 엘살바도르 문화에 깊은 영향을 미쳤으며, 엘살바도르 내전 전후로 인권 유린에 저항한 오스카르 로메로 대주교는 국가적 영웅으로 추앙받는다. 1989년 엘살바도르 군에 의해 살해된 예수회 신부이자 교수였던 이그나시오 에야쿠리아, 이그나시오 마르틴-바로, 세군도 몬테스 등도 엘살바도르 현대사에 중요한 인물들이다.
미술 분야에서는 회화, 도자기, 직물 공예가 주요 예술 매체이다. 화가로는 라 팔마 지역의 민속 예술 스타일로 유명한 페르난도 요르트, 그리고 노에 칸후라, 카를로스 카냐스, 훌리아 디아스, 카밀로 미네로, 아우구스토 크레스핀, 마우리시오 메히아, 마리아 엘레나 팔로모 데 메히아, 로베르토 우에소, 미겔 앙헬 세르나(MACLo), 에사엘 아라우호 등이 있다. 최근에는 호세 캄포스(스튜디오 렌카)와 같은 현대 작가들도 활동하고 있다. 영화감독으로는 발타사르 폴리오, 파트리시아 치카가 있으며, 풍자만화가 토뇨 살라사르도 유명하다. 또한, 어린 왕자의 작가 앙투안 드 생텍쥐페리의 아내였던 콘수엘로 데 생텍쥐페리는 엘살바도르 귀족 출신이다.
10.1. 음식

엘살바도르의 가장 대표적이고 유명한 전통 음식은 푸푸사(pupusa)이다. 푸푸사는 손으로 만든 옥수수 토르티야(스페인어: masa de maíz 또는 masa de arroz, 라틴 아메리카 요리에 사용되는 옥수수나 쌀가루 반죽)에 다음 중 하나 이상을 채워 넣은 음식이다: 치즈(일반적으로 케시요(quesillo)와 같은 부드러운 엘살바도르 치즈, 종종 로로코(loroco, 중앙아메리카 자생 식용 꽃봉오리)와 함께 사용), 치차론(chicharrón, 튀긴 돼지고기), 또는 콩조림(refried beans). '푸푸사스 레부엘타스'(pupusas revueltas)는 콩, 치즈, 돼지고기를 섞어 채운 푸푸사이다. 채식주의자를 위한 옵션도 있으며, 일부 식당에서는 새우나 시금치를 넣은 푸푸사를 제공하기도 한다. '푸푸사'라는 이름은 피필-나와틀어 단어인 'pupushahua'에서 유래했다. 푸푸사의 기원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지만, 엘살바도르에서의 존재는 스페인인 도착 이전부터 알려져 있다. 푸푸사는 보통 쿠르티도(curtido, 양배추, 양파, 당근을 절인 것)와 토마토 살사와 함께 제공된다. 엘살바도르에서는 매년 11월 둘째 주 일요일을 '푸푸사의 날'로 지정하여 기념한다.
다른 대표적인 엘살바도르 음식으로는 유카 프리타(yuca frita)와 파네스 콘 포요(panes con pollo)가 있다. 유카 프리타는 튀긴 카사바 뿌리에 쿠르티도와 돼지 껍데기 튀김, 그리고 '페스카디타스'(pescaditas, 튀긴 작은 정어리)를 곁들여 먹는 음식이다. 유카는 튀기는 대신 삶아서 제공되기도 한다. 파네스 콘 포요/파보(pan con pollo/pavo)는 따뜻한 칠면조 또는 닭고기를 채운 서브마린 샌드위치이다. 고기는 양념하여 구운 후 손으로 찢어 사용하며, 전통적으로 토마토와 물냉이, 오이, 양파, 상추, 마요네즈, 머스타드와 함께 제공된다.
엘살바도르의 대표적인 아침 식사 중 하나는 튀긴 플랜틴(스페인어: plátanos fritos)이며, 보통 크림(스페인어: crema)과 함께 제공된다. 말린 호박씨를 갈아 만든 조미료인 알과슈테(alguashte)는 짭짤하거나 달콤한 엘살바도르 요리에 흔히 사용된다. 디저트로는 오렌지 마멀레이드에 적셔 가루 설탕을 뿌린 층층 케이크인 '마리아 루이사'(Maria Luisa)와 세 가지 우유(연유, 농축 우유, 크림)로 만든 '파스텔 데 트레스 레체스'(Pastel de tres leches)가 인기가 많다.
엘살바도르인들이 즐겨 마시는 음료로는 오르차타(horchata)가 있다. 엘살바도르 오르차타는 멕시코 오르차타(쌀 기반)와 달리 모로 씨앗(히카로), 견과류, 향신료, 쌀 등을 갈아 우유나 물, 설탕과 섞어 만든다. 커피 또한 일반적인 아침 음료이다. 다른 인기 음료로는 다진 과일을 과일 주스에 넣어 마시는 '엔살라다'(ensalada)와 사탕수수 맛 탄산음료인 '콜라샴판'(Kolachampan)이 있다.
10.2. 음악

엘살바도르 전통 음악은 원주민, 스페인, 아프리카의 영향이 혼합된 형태를 띤다. 여기에는 종교 음악(주로 크리스마스 및 기타 공휴일, 특히 성인들의 축일에 사용)이 포함된다. 다른 음악 레퍼토리로는 행진 밴드, 거리 공연, 또는 단체나 짝을 이루어 무대에서 추는 춤에 사용되는 단사(danza), 파시요(pasillo), 마르차(marcha), 칸시오네(cancione) 등이 있다. 풍자적이고 시골풍의 서정적인 주제가 일반적이다. 사용되는 전통 악기로는 마림바, 테페우아스테(tepehuaste), 플루트, 드럼, 스크레이퍼(güiro), 박, 기타 등이 있다. 엘살바도르의 잘 알려진 민속춤은 '슈크'(Xuc 또는 Shook)로 알려져 있으며, 이는 쿠스카틀란주 코후테페케에서 유래되었다.
현대 대중음악에서는 카리브해, 콜롬비아, 멕시코 음악이 라디오와 파티에서 일상적으로 들리며, 특히 볼레로, 쿰비아(매우 인기 있으며, "살바도르 쿰비아" 스타일이 있음), 메렝게, 라틴 팝, 살사, 바차타, 레게톤이 인기가 많다. 유명한 음악가로는 로맨틱 팝 장르의 알바로 토레스, 힙합 그룹 페스코사다, 록 밴드 아드레날리나, 쿰비아 밴드 마리토 리베라 이 수 그루포 브라보 등이 있다.
10.3. 스포츠
엘살바도르에서는 다양한 스포츠가 행해지지만, 그중에서도 축구가 가장 압도적인 인기를 누리고 있다. 이 외에도 육상, 농구, 핸드볼, 수영, 배구, 야구, 권투 등도 즐겨 하며, 태평양 연안의 좋은 파도 덕분에 서핑도 점차 인기를 얻고 있다.
10.3.1. 축구

엘살바도르에서 축구는 가장 인기 있는 스포츠이다. 엘살바도르 축구의 역사는 깊으며, 국내 프로 축구 리그인 프리메라 디비시온(리가 마요르 데 푸트볼)이 운영되고 있다.
엘살바도르 축구 국가대표팀은 "라 셀렉타(La Selecta)"라는 애칭으로 불리며, FIFA 월드컵 본선에 두 차례(1970년, 1982년) 진출했다. 1970년 월드컵 예선 과정은 온두라스와의 축구 전쟁으로 얼룩지기도 했다. 1982년 스페인 월드컵에서는 1차 리그에서 헝가리에 1-10으로 패배하여 월드컵 역사상 최다 점수 차 패배 기록을 남겼다. CONCACAF 골드컵(과거 CONCACAF 챔피언십 포함)에서는 1963년과 1981년에 준우승을 차지한 것이 최고 성적이며, 골드컵 시대에 들어서는 여러 차례 8강에 진출했다.
국가대표팀의 홈 경기장은 산살바도르에 위치한 에스타디오 쿠스카틀란이다. 1976년에 개장했으며 약 53,400명을 수용할 수 있어 중앙아메리카 및 카리브해 지역에서 가장 큰 경기장 중 하나이다. 엘살바도르 출신의 유명 축구 선수로는 중앙아메리카 역대 최고 선수 중 한 명으로 꼽히는 마히코 곤살레스, 그리고 라울 디아스 아르세, 마우리시오 시엔푸에고스, 호르헤 "엘 사파테로" 로드리게스 등이 있다.
10.4. 문학
엘살바도르 문학은 국가의 역사, 사회, 문화를 반영하며 발전해왔다. 주요 작가와 흐름은 다음과 같다.
- 프란시스코 가비디아 (1863년-1955년): 시인, 철학자, 역사가. 엘살바도르 모더니즘의 선구자로, 니카라과의 위대한 시인 루벤 다리오에게 영향을 미쳤다.
- 살라루에 (살바도르 살라사르 아루에, 1899년-1975년): 작가, 시인, 화가. 농촌 생활과 관습을 묘사한 단편 소설(예: 진흙 항아리 이야기)로 유명하다.
- 클라우디아 라르스 (카르멘 브라논 베가, 1899년-1974년): 시인. 엘살바도르의 가장 중요한 여성 문학가 중 한 명으로 꼽힌다.
- 알프레도 에스피노 (1900년-1928년): 시인. 시집 슬픈 히카라 열매로 잘 알려져 있다.
- 페드로 헤오프로이 리바스 (1908년-1979년): 시인, 언어학자, 인류학자. 나와트어를 연구했다.
- 로케 달튼 (1935년-1975년): 시인, 수필가, 언론인. 혁명적 인물이었으며 암살당했다. 그의 작품은 정치적 혼란을 반영한다.
- 만리오 아르게타 (1935년 출생): 소설가, 시인. 내전 중 농민 생활을 그린 생의 하루로 유명하다.
- 호세 로베르토 세아 (1939년 출생): 시인, 소설가, 극작가.
엘살바도르 문학의 주요 주제는 국가 정체성, 사회적 불의, 정치적 갈등, 농촌 생활, 원주민 유산 등이다. 특히 1950년대 로케 달튼, 만리오 아르게타, 호세 로베르토 세아 등이 참여한 '헌신 세대'(Generación Comprometida)는 사회적, 정치적 문제에 초점을 맞춘 작품 활동을 펼쳤다.
10.5. 공휴일
엘살바도르의 주요 법정 공휴일은 다음과 같다. (일부 기념일은 관습적이거나 지역적일 수 있음)
- 1월 1일: 새해 (Año Nuevo)
- 1월 16일: 평화 협정의 날 (Día de los Acuerdos de Paz) - 1992년 내전 종식 기념 (공식 휴일 여부 및 실제 휴무는 해마다 다를 수 있음)
- 3월/4월 중: 성주간 (Semana Santa) - 부활절 전 주간 (목요일: 성목요일, 금요일: 성금요일, 토요일: 성토요일은 주요 공휴일) (이동 공휴일)
- 5월 1일: 노동절 (Día del Trabajo)
- 5월 3일: 십자가의 날 (Día de la Cruz) - 전통 기념일
- 5월 10일: 어머니의 날 (Día de la Madre)
- 6월 17일: 아버지의 날 (Día del Padre)
- 8월 첫째 주 (주요 행사는 8월 3일, 5일, 6일): 8월 축제 / 산살바도르 축제 (Fiestas Agostinas / Fiestas del Divino Salvador del Mundo) - 8월 6일은 국가 수호성인인 '세계의 구세주' 축일
- 9월 15일: 독립기념일 (Día de la Independencia) - 1821년 스페인으로부터 독립 기념
- 10월 12일: 인종의 날 / 콜럼버스 데이 (Día de la Raza) - 기념 방식에 대해 논란이 있을 수 있음
- 11월 2일: 모든 영혼의 날 / 죽은 자의 날 (Día de los Difuntos / Muertos)
- 12월 25일: 크리스마스 (Navidad) - 12월 24일(Nochebuena, 크리스마스 이브)도 중요한 날로 여겨짐
이 외에도 지역별 수호성인 축일이나 기타 기념일이 있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