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초기 생애 및 배경
수시 수산티는 1971년 2월 11일 서자와주 타시크말라야에서 리사드 하디토노와 푸르워 바노와티 사이에서 태어났다. 그녀의 본명은 王蓮香옹롄향중국어이며, 이는 중국계 인도네시아인으로서의 혈통을 보여준다. 어린 시절부터 그녀는 아버지의 전폭적인 지원 아래 배드민턴 훈련을 받았다. 아버지는 젊은 시절 부상으로 세계 챔피언의 꿈을 포기해야 했기에, 그 꿈을 딸 수시를 통해 이루고자 했다. 아버지는 단순한 타격 훈련을 넘어 풋워크, 체력 등 세부적인 부분까지 직접 지도하며 그녀의 기량 발전에 크게 기여했다.
수시 수산티는 7년 동안 삼촌이 운영하는 PB 투나스 타시크말라야 클럽에서 훈련하며 주니어 레벨 대회에서 성공을 거두었다. 1985년, 중학생이었던 그녀는 배드민턴 선수로서의 경력을 더 넓히기 위해 자카르타로 이주했다. 당시 인도네시아의 두 큰 클럽인 PB 자야 라야와 PB 자룸으로부터 영입 제의를 받았는데, 자카르타에 친척이 있다는 점을 고려하여 PB 자야 라야에 합류하기로 결정했다. 이 시기부터 그녀는 량치우시아 코치의 지도를 받으며 전문 선수로서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2. 경력
수시 수산티는 1980년부터 배드민턴 선수 활동을 시작했으며, 1990년대 전반기를 지배하는 세계적인 선수로 성장했다.
2.1. 초기 경력 및 주니어 성과
1987년, 수시 수산티는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에서 열린 비만타라 세계 주니어 배드민턴 선수권 대회에서 여자 단식, 여자 복식, 혼합 복식 세 종목 모두 우승을 차지하며 인도네시아 배드민턴계의 큰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특히 여자 복식에서는 릴리크 수다르와티와 짝을 이루어 대한민국 길영아와 이정미 조를 물리쳤고, 혼합 복식에서는 아르디 위라나타와 함께 리키 수바그자와 릴리크 수다르와티 조를 꺾고 우승했다. 이 외에도 1987년 뒤인비크 주니어 대회 여자 단식과 여자 복식에서 우승을 기록하며 초기 주니어 경력에서 뛰어난 성공을 거두었다.
2.2. 올림픽
수시 수산티는 올림픽에서 역사적인 금메달과 동메달을 획득하며 배드민턴 경력의 정점을 찍었다.
1992년 바르셀로나에서 열린 1992년 하계 올림픽에서 배드민턴 여자 단식 결승에 진출했다. 결승전에서 대한민국의 방수현을 상대로 5-11, 11-5, 11-3의 스코어로 승리하며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이는 인도네시아 역사상 첫 올림픽 금메달이었으며, 같은 날 남자 단식에서 금메달을 획득한 알란 부디쿠수마와 함께 '올림픽 금빛 커플'로 불리게 되었다. 당시 수시 수산티는 경기를 앞두고 긴장감에 잠을 이루지 못하고 식욕도 잃을 정도였다고 회고했다.
1996년 애틀랜타에서 열린 1996년 하계 올림픽에서는 여자 단식 동메달 결정전에서 대한민국의 김지현을 11-4, 11-1로 꺾고 동메달을 획득했다. 그녀의 올림픽 경력은 이 두 대회를 통해 화려하게 장식되었다.
2.3. 주요 국제 대회
수시 수산티는 올림픽 외에도 수많은 국제 대회에서 압도적인 기량을 선보이며 세계 여자 배드민턴의 선두 주자로 자리매김했다.
그녀는 전영 오픈에서 1990, 1991, 1993, 1994년 네 차례 여자 단식 우승을 차지했고, 1989년에는 준우승을 기록했다. 월드 배드민턴 그랑프리 파이널에서는 1990년부터 1994년까지 5년 연속 우승을 포함하여 총 6회(1996년) 우승을 달성했다. 세계 배드민턴 선수권 대회에서는 1993년 버밍엄 대회에서 금메달을 획득했으며, 1991년 코펜하겐 대회와 1995년 로잔 대회에서는 동메달을 획득했다.
일본 오픈에서 세 차례, 인도네시아 오픈에서 6차례 우승을 차지하는 등 다수의 배드민턴 그랑프리 시리즈 대회에서 우승을 기록했다. 특히 배드민턴 월드컵에서는 1989년, 1993년, 1994년, 1996년, 1997년 등 총 5회 우승을 차지했으며, 1990년과 1995년에는 준우승, 1991년에는 동메달을 기록했다. 그녀는 1994년과 1996년 우버 컵에서 중국을 꺾고 인도네시아 여자 대표팀을 우승으로 이끌었으며, 1989년 수디르만 컵에서 인도네시아 혼합 대표팀의 우승에 기여했다. 1990년, 1994년 아시안 게임에서는 여자 단식 동메달을 획득했고, 여자 단체전에서는 1990년과 1994년에 은메달을 획득했다.

이러한 수많은 업적은 그녀가 활동했던 1990년대가 여자 국제 배드민턴에서 상대적으로 강한 경쟁이 펼쳐지던 시기였음을 감안하면 더욱 빛난다. 당시 그녀의 주요 경쟁자로는 중국의 탕주훙, 황화, 예자오잉과 대한민국의 방수현 등이 있었다. 그녀는 올림픽, 세계 배드민턴 선수권, 전영 오픈 여자 단식 타이틀을 동시에 보유한 유일한 여자 선수로 역사에 기록되었다.
연도 | 개최지 | 상대 | 점수 | 결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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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1 | 코펜하겐, 덴마크 | 중국 탕주훙 | 4-11, 1-11 | 동메달 |
1993 | 버밍엄, 잉글랜드 | 대한민국 방수현 | 7-11, 11-9, 11-3 | 금메달 |
1995 | 로잔, 스위스 | 중국 예자오잉 | 11-5, 8-11, 2-11 | 동메달 |
연도 | 개최지 | 상대 | 점수 | 결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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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9 | 광저우, 중국 | 중국 한아이핑 | 11-5, 11-4 | 금메달 |
1990 | 자카르타, 인도네시아 | 인도네시아 사르웬다 쿠수마와르다니 | 5-11, 11-1, 11-12 | 은메달 |
1991 | 마카오 | 중국 황화 | 3-11, 2-11 | 동메달 |
1993 | 뉴델리, 인도 | 스웨덴 림 샤오칭 | 11-7, 11-5 | 금메달 |
1994 | 호치민 시, 베트남 | 대한민국 방수현 | 12-9, 11-6 | 금메달 |
1995 | 자카르타, 인도네시아 | 중국 예자오잉 | 9-12, 11-2, 9-12 | 은메달 |
1996 | 자카르타, 인도네시아 | 중국 왕천 | 11-7, 11-4 | 금메달 |
1997 | 족자카르타, 인도네시아 | 중국 예자오잉 | 11-8, 11-5 | 금메달 |
연도 | 개최지 | 상대 | 점수 | 결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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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7 | 자카르타, 인도네시아 | 인도네시아 엘리자베스 라티에프 | 5-11, 9-11 | 은메달 |
1989 | 쿠알라룸푸르, 말레이시아 | 인도네시아 사르웬다 쿠수마와르다니 | 11-7, 11-6 | 금메달 |
1991 | 마닐라, 필리핀 | 인도네시아 사르웬다 쿠수마와르다니 | 5-11, 11-8, 11-2 | 금메달 |
1995 | 치앙마이, 태국 | 태국 솜하루타이 자로엔시리 | 11-4, 11-0 | 금메달 |
연도 | 대회 | 상대 | 점수 | 결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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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9 | 전영 오픈 | 중국 리링웨이 | 8-11, 4-11 | 준우승 |
1989 | 차이니즈 타이베이 오픈 | 스웨덴 크리스틴 간드루프 | 11-8, 3-11, 7-11 | 준우승 |
1989 | 인도네시아 오픈 | 중국 황화 | 11-7, 11-0 | 우승 |
1990 | 전영 오픈 | 중국 황화 | 12-11, 11-1 | 우승 |
1990 | 인도네시아 오픈 | 대한민국 이영숙 | 11-1, 8-11, 4-11 | 준우승 |
1990 | 오스트레일리아 오픈 | 오스트레일리아 안나 라오 | 11-1, 11-4 | 우승 |
1990 | 월드 배드민턴 그랑프리 파이널 | 중국 탕주훙 | 8-11, 11-5, 12-10 | 우승 |
1991 | 차이니즈 타이베이 오픈 | 태국 솜하루타이 자로엔시리 | 11-1, 11-2 | 우승 |
1991 | 일본 오픈 | 중국 황화 | 3-11, 6-11 | 준우승 |
1991 | 전영 오픈 | 인도네시아 사르웬다 쿠수마와르다니 | 0-11, 11-2, 11-6 | 우승 |
1991 | 인도네시아 오픈 | 대한민국 이흥순 | 11-8, 11-3 | 우승 |
1991 | 덴마크 오픈 | 중국 황화 | 11-5, 6-11, 11-8 | 우승 |
1991 | 태국 오픈 | 대한민국 이흥순 | 11-7, 11-4 | 우승 |
1991 | 스웨덴 오픈 | 덴마크 페르닐레 네데르고르 | 11-2, 11-3 | 우승 |
1991 | 월드 배드민턴 그랑프리 파이널 | 대한민국 이흥순 | 9-11, 11-8, 11-1 | 우승 |
1992 | 덴마크 오픈 | 스웨덴 림 샤오칭 | 11-3, 11-3 | 우승 |
1992 | 일본 오픈 | 중국 예자오잉 | 11-2, 11-0 | 우승 |
1992 | 독일 오픈 | 인도네시아 사르웬다 쿠수마와르다니 | 11-7, 10-12, 11-8 | 우승 |
1992 | 홍콩 오픈 | 대한민국 방수현 | 11-5, 6-11, 7-11 | 준우승 |
1992 | 태국 오픈 | 대한민국 방수현 | 11-7, 11-4 | 우승 |
1992 | 월드 배드민턴 그랑프리 파이널 | 인도네시아 사르웬다 쿠수마와르다니 | 9-11, 11-3, 11-4 | 우승 |
1993 | 전영 오픈 | 대한민국 방수현 | 4-11, 11-4, 11-1 | 우승 |
1993 | 말레이시아 오픈 | 스웨덴 림 샤오칭 | 11-6, 11-2 | 우승 |
1993 | 인도네시아 오픈 | 중국 예자오잉 | 9-11, 11-12 | 준우승 |
1993 | 태국 오픈 | 태국 솜하루타이 자로엔시리 | 12-10, 11-2 | 우승 |
1993 | 코리아 오픈 | 대한민국 방수현 | 9-12, 5-11 | 준우승 |
1993 | 독일 오픈 | 중국 예자오잉 | 11-6, 11-8 | 우승 |
1993 | 네덜란드 오픈 | 덴마크 카밀라 마르틴 | 11-7, 11-1 | 우승 |
1993 | 월드 배드민턴 그랑프리 파이널 | 중국 예자오잉 | 11-3, 12-9 | 우승 |
1994 | 차이니즈 타이베이 오픈 | 대한민국 김지현 | 11-2, 11-5 | 우승 |
1994 | 전영 오픈 | 중국 예자오잉 | 11-5, 11-9 | 우승 |
1994 | 일본 오픈 | 중국 예자오잉 | 11-6, 10-12, 11-8 | 우승 |
1994 | 말레이시아 오픈 | 중국 예자오잉 | 11-3, 11-8 | 우승 |
1994 | 태국 오픈 | 스웨덴 림 샤오칭 | 11-5, 12-10 | 우승 |
1994 | 인도네시아 오픈 | 대한민국 방수현 | 2-11, 11-0, 11-7 | 우승 |
1994 | 월드 배드민턴 그랑프리 파이널 | 중국 예자오잉 | 4-11, 12-10, 11-4 | 우승 |
1995 | 일본 오픈 | 대한민국 방수현 | 11-7, 12-11 | 우승 |
1995 | 말레이시아 오픈 | 대한민국 방수현 | 11-1, 11-6 | 우승 |
1995 | 인도네시아 오픈 | 대한민국 방수현 | 11-1, 12-11 | 우승 |
1995 | 코리아 오픈 | 대한민국 방수현 | 3-11, 11-7, 11-9 | 우승 |
1996 | 일본 오픈 | 중국 예자오잉 | 7-11, 8-11 | 준우승 |
1996 | 인도네시아 오픈 | 중국 왕천 | 11-8, 11-8 | 우승 |
1996 | 차이니즈 타이베이 오픈 | 중국 예자오잉 | 11-5, 11-2 | 우승 |
1996 | 월드 배드민턴 그랑프리 파이널 | 중국 예자오잉 | 11-4, 11-1 | 우승 |
1997 | 말레이시아 오픈 | 중국 예자오잉 | 11-5, 11-7 | 우승 |
1997 | 인도네시아 오픈 | 인도네시아 메이루아티 | 11-4, 11-5 | 우승 |
1997 | 베트남 오픈 | 중국 쉬 화이원 | 11-4, 11-1 | 우승 |
1997 | 월드 배드민턴 그랑프리 파이널 | 중국 예자오잉 | 4-11, 4-11 | 준우승 |
1998 | 싱가포르 오픈 | 중국 예자오잉 | 5-11, 6-11, 2-11 | 준우승 |
연도 | 대회 | 파트너 | 상대 | 점수 | 결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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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7 | 인도네시아 오픈 | 인도네시아 베라와티 파드린 | 인도네시아 로시아나 텐데안 | ||
1990 | 오스트레일리아 오픈 | 오스트레일리아 리사 캠벨 | 오스트레일리아 론다 카토르 |
연도 | 대회 | 파트너 | 상대 | 점수 | 결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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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 | 오스트레일리아 오픈 | 인도네시아 아르디 위라나타 | 홍콩 히 팀 |
연도 | 대회 | 상대 | 점수 | 결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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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7 | 뒤인비크 주니어 | 인도네시아 릴리크 수다르와티 | 11-2, 11-3 | 우승 |
2.4. 플레이 스타일
수시 수산티는 상대방의 체력을 소모시키고 실책을 유도하기 위해 긴 랠리를 선호하는 매우 끈질긴 수비형 선수였다. 이러한 그녀의 스타일은 당시 대부분의 여자 배드민턴 상위권 선수들, 예를 들어 방수현, 탕주훙, 황화, 예자오잉 등이 더 공격적인 스타일을 구사했던 것과는 대조적이었다.
수시 수산티가 정상급 선수들과 치른 경기는 대개 느린 페이스로 길게 이어지는 것이 특징이었다. 특히 서브를 가진 선수만이 득점할 수 있었던 15점제 시대에는 더욱 그러했다. 그녀는 백라인 깊숙이 보내는 클리어 샷으로 빠른 공격 교환의 기회를 제한했고, 팽팽한 드롭샷을 섞어 상대방이 코트 전체를 커버하도록 만들었다. 수시 수산티는 자신의 민첩성과 허리를 굽히는 유연성을 활용하여 백핸드 쪽을 오버헤드 포핸드로 자주 처리했다.

비교적 키가 작았음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코트 구석이나 자신에게서 멀리 떨어진 낮은 샷을 처리하기 위해 다리를 매우 넓게 뻗는 동작을 자주 선보였다. 훈련을 통해 발전된 이러한 다리 뻗기 동작은 거의 발레와 같은 움직임으로, 때로는 완전한 다리 찢기로 이어지기도 하는 그녀의 상징적인 자세가 되었다. 선수 경력 후반에는 공격적인 스매싱을 자신의 기술에 더 많이 접목하여, 소모전을 예상하던 상대 선수들을 혼란에 빠뜨리기도 했다.
3. 은퇴 및 은퇴 후 활동
수시 수산티는 1998년에 배드민턴 선수로서 공식 은퇴를 선언했다. 그녀는 사실 2년 정도 더 선수 생활을 이어갈 수 있었고, 유일하게 우승하지 못한 국제 대회인 아시안 게임에서 금메달을 따고 싶다는 강한 열망이 있었다. 그러나 1998년 임신 사실을 알게 된 후, 그녀는 아시안 게임에 불참하고 은퇴를 결정했다.
19년 동안 배드민턴 외길을 걸었던 그녀의 은퇴식은 1999년 10월 30일 이스토라 스나얀에서 열렸다. 인도네시아 배드민턴 협회(PBSI)에서 최초로 진행한 선수 은퇴식이었으며, 2,500여 명의 팬들이 운집하여 "수시, 수시"를 연호하며 그녀의 마지막을 배웅했다. 이 자리에서 PBSI는 그녀에게 25 g의 금을 선물하며 공로를 인정했다.
은퇴 후 수시 수산티는 가정주부로서의 삶을 살면서도 남편 알란 부디쿠수마와 함께 다양한 사업 활동을 시작했다. 이들은 배드민턴 의류 브랜드인 아스텍(Astec)을 설립하고, 엘리자베스 라티에프와 공동으로 스포츠 마사지 센터인 폰타나(Fontana)를 운영했다. 개인적으로는 자녀들이 부부의 명성이 부담이 될까 염려하여, 자녀들에게는 배드민턴 선수가 아닌 다른 직업을 선택하도록 장려했다.
4. 개인사

수시 수산티는 9년간의 교제 끝에 1997년 알란 부디쿠수마와 결혼했다. 이들은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에서 각각 여자 단식과 남자 단식에서 금메달을 획득하여 인도네시아에 첫 올림픽 금메달을 안겨주었기에 '올림픽 황금 커플'이라는 별칭으로 불렸다.
두 사람의 결혼식은 1997년 2월 9일 자카르타 남부 쿠닝안의 그란 멜리아 호텔 볼룸에서 성대하게 열렸으며, 약 4,000명의 하객이 참석했다. 배드민턴계 주요 인사들 외에도 인도네시아 국가체육위원회 (KONI) 위원장 위스모요 아리스마난다르, 인도네시아 배드민턴 협회 (PBSI) 회장 소에르자디, 그리고 당시 인도네시아 제6대 부통령이자 전 PBSI 회장이었던 트리 수트리스노, 그리고 자야 라야 클럽의 소유주인 기업가 치푸트라 등이 참석했다. '그랜드 아테나 웨딩'이라는 테마로 진행된 이 결혼식은 두 사람이 자카르타 북부 성 야고보 교회에서 혼인성사를 올린 지 일주일 후에 진행되었다. 1997년 3월호 『배드민턴』 잡지에 따르면 결혼식 비용은 당시 10.00 억 KRW에 달했으며, 수시의 웨딩드레스는 화려하게 디자인되었고, 15 kg에 달하는 다이아몬드 왕관을 착용했다고 한다.
이들의 결혼 과정에서는 인도네시아 공민권 증명서(SBKRI) 정책으로 인한 어려움이 있었다. 당시 중국계 인도네시아인에게 적용되던 이 차별적인 정책 때문에 수시는 혼인 서류를 발급받는 데 난항을 겪었다. 그러나 그녀가 여러 언론을 통해 이 문제에 대한 항의의 목소리를 내면서, 결국 결혼 관련 서류 절차가 신속하게 완료될 수 있었다.
수시와 알란 부부에게는 로렌시아 아베리나(1999년생), 알베르투스 에드워드(2000년생), 세바스티아누스 프레데릭(2003년생) 세 자녀가 있다. 장녀 로렌시아가 태어났을 당시 인도네시아는 일련의 내전과 폭력 사태로 혼란스러웠는데, 수시는 딸이 국가에 평화를 가져다주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딸의 이름을 '평화'를 의미하는 '로렌시아 아베리나 위라타마'로 지었다.
5. 유산 및 인정
수시 수산티는 인도네시아 배드민턴 및 전반적인 스포츠 발전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그녀의 업적은 다양한 수상과 인정으로 이어졌다.
1992년, 그녀는 인도네시아 정부로부터 빈탕 자사 우타마(Bintang Jasa Utama) 명예 훈장을 수여받았다. 2002년에는 국제 배드민턴 연맹 (IBF, 현 BWF)으로부터 허버트 스킬 트로피를 수상했다. 그리고 2004년 5월에는 세계 배드민턴 연맹 (당시 IBF) 배드민턴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다. 그녀는 루디 하르토노 쿠르니아완, 딕 수디르만, 크리스티안 하디나타, 리엠 스위 킹에 이어 명예의 전당에 이름을 올린 다섯 번째 인도네시아 선수이다.
그녀의 지속적인 영향력을 보여주는 또 다른 상징적인 사건은 2018년에 자카르타와 팔렘방에서 열린 2018년 아시안 게임 개막식에서 그녀가 최종 성화 점화자로 나선 것이다. 이는 인도네시아 스포츠 영웅으로서 그녀의 위상을 다시 한번 확인시켜 주었다.
6. 대중문화에서
수시 수산티의 생애는 인도네시아어로 제작된 전기 영화를 통해 대중문화 속에서 재현되었다. 그녀의 삶을 바탕으로 한 영화 『수시 수산티: 러브 올』(Susi Susanti: Love All인도네시아어)은 심 에프 감독이 연출했으며, 배우 로라 바수키가 수시 수산티 역을, 디온 위요코가 알란 부디쿠수마 역을 맡아 2019년 10월 24일에 개봉되었다. 이 영화는 전설적인 배드민턴 선수의 알려지지 않았던 면모를 보여주며 대중의 관심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