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Early life and playing career
브뤼노 메취는 어린 시절부터 축구와 함께 성장했으며, 다양한 프랑스 클럽에서 미드필더로 활약하며 선수 경력을 쌓았다.
1.1. Early life and background
브뤼노 장 코르닐 메취는 1954년 1월 28일 프랑스 노르주의 Coudekerque-Village쿠드케르크빌라주프랑스어에서 태어났다. 십대 시절에는 축구 선수 경력을 시작하기 전 됭케르크 항구에서 택배원으로 일하기도 했다.
1.2. Playing career
메취는 공격형 미드필더로 활약했으며, 그의 선수 경력은 주로 모국 프랑스의 8개 클럽에서 이루어졌다. 청소년 시절에는 벨기에의 안데를레흐트에서 3년간 선수로 뛰었다. 1973년부터 1987년까지 14년간 프랑스 클럽에서 성인 선수로 활동하며 총 366번의 리그 1/리그 2 경기에 출전하여 30골을 기록했고, 쿠프 드 프랑스 경기에서는 28경기에 출전하여 2골을 기록했다.
그는 됭케르크 (1973-1974), SC HazebrouckSC 아즈브루크프랑스어 (1974-1975), 발랑시엔 (1975-1979), 릴 (1979-1981), 니스 (1981-1983), Excelsior AC Roubaix루베프랑스어 (1983-1984), 보베 (1984-1987) 등에서 뛰었다. 특히 발랑시엔에서는 1975년부터 1979년까지 선수 생활의 전성기를 보냈는데, 134번의 리그 경기와 쿠프 드 프랑스 경기에서 14골을 기록하여 클럽에서 가장 많은 골을 넣었다. 당시 그는 디디에 식스와 로저 밀라와 같은 정상급 선수들과 함께 뛰었다. 보베에서는 첫 시즌인 1984-85 시즌을 마친 후 팀이 리그 2로 승격하는 데 기여했다.
2. Managerial career
브뤼노 메취는 프랑스에서 감독 경력을 시작하여 아프리카 국가대표팀을 이끌고, 이후 페르시아만 지역의 다양한 클럽과 국가대표팀을 지휘하며 폭넓은 경험을 쌓았다.
2.1. In France
메취는 2000년 해외 감독직을 맡기 전까지 10년 이상 프랑스의 5개 클럽에서 감독 생활을 했다. 1987년 보베에서 선수 생활을 마친 후, 같은 해 보베 유소년팀 감독을 맡았다. 1988년에는 보베 유소년팀을 이끌고 쿠프 강바르델라 준우승을 차지했다. 1988년부터 1992년까지 보베 성인팀 감독을 역임했으며, 이 기간 동안 팀은 계속 리그 2에 머물렀다. 1988-89 시즌에는 구단 역사상 처음으로 쿠프 드 프랑스 8강에 진출했지만, 오세르에 합산 점수 1-2로 패해 탈락했다.
1992년 7월 1일, 38세의 나이로 리그 1 클럽 릴의 감독으로 부임했다. 그러나 그는 해당 시즌 첫 27경기에서 단 5승만을 기록하는 부진을 겪었고, 1993년 2월 28일 "소문을 들었는가? 우리가 당신을 해고할 것이네"라는 무례한 방식으로 경질당했다. 이는 라커룸에서 강력한 유대감을 형성하는 것을 자랑으로 여겼던 감독에게는 특히 불쾌한 해고 방식이었다.
메취는 1993년 5월 20일 올랭피크 드 마르세유와의 리그 1 경기에서 일부 선수들이 뇌물을 받고 승부 조작을 했다는 사실이 발각된 후 발랑시엔이 리그 2로 강등되는 구단 역사상 가장 암울한 시기에 감독으로 부임했다. 그는 발랑시엔에서 1년간 재직했으며, 이후 스당 (1995-1998)과 발랑스 (1998-1999)를 거쳐 기니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으로 부임하는 데 성공했다.
2.2. In Africa
메취는 기니와 세네갈 국가대표팀 감독직을 수행하며 아프리카 축구계에 큰 영향력을 행사했다.
2.2.1. Guinea national team
2000년, 메취는 기니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직을 맡으며 생애 첫 국가대표팀 감독이 되었다. 당시 그는 소박한 계약을 맺었다. 기니의 전 국가대표이자 스포츠 장관을 역임했던 티티 카마라는 "메취는 기니에서 너무나 많은 것들에 대해 불평했다. 열악한 인프라, 기니 축구 협회의 부실한 관리, 그리고 그의 업무에 대한 빈번한 간섭이 있었다"고 말했다. 메취는 2011년 La Voix du Nord라 부아 뒤 노르프랑스어 일간지와의 인터뷰에서 "그때는 축구가 너무 힘들다고 느꼈지만, 아프리카 선수들이 나에게 활력을 불어넣었다"고 회상했다. 선수들도 그에게 비슷한 감정을 느꼈으며, 메취는 1년도 채 되지 않아 기니 감독직을 떠나 2000년 세네갈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으로 부임했다.
2.2.2. Senegal national team
2000년 세네갈에 정착하여 세네갈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이 된 메취는 '테랑가의 사자들'(세네갈 국가대표팀의 별명)이 더 나은 축구를 하도록 영감을 불어넣는 임무를 맡았다. 2000년 2월, 테랑가의 사자들은 2000년 아프리카 네이션스컵 8강에서 공동 개최국 나이지리아에 연장전 끝에 1-2로 패한 상태였다.
메취는 즉시 세네갈 팀의 동지애를 함양하기 시작했다. 그는 규율 문제로 세네갈 축구 협회가 국가대표팀에 포함시키기를 꺼렸던 여러 선수들을 다시 불렀다. 그는 철권 통치로 팀을 관리하지 않았다. 대신 그는 선수들이 함께라면 특별한 일을 할 수 있다는 믿음을 중심으로 선수들을 단결시켰다. 메취의 여유로우면서도 영감을 주는 코칭 스타일은 팬과 관계자 모두의 찬사를 받으며 팀을 빠르게 최상의 상태로 만들었다.
2.3. In the Persian Gulf region
메취는 아랍에미리트, 카타르, 사우디아라비아 등 페르시아만 지역에서 클럽 및 국가대표팀 감독으로 활약하며 다양한 경험을 쌓았다.

2.3.1. Al Ain FC
세네갈에서의 성공은 메취를 아랍에미리트로 이끌었다. 2002년 8월, 그는 아부다비 에미르가 소유한 UAE 축구 리그 디펜딩 챔피언 알아인의 수석 코치로 부임하며 고액의 계약을 맺었다. 그는 팀을 이끌고 개편된 2002-03 AFC 챔피언스리그에서 첫 우승을 차지했으며, 같은 해 UAE 축구 리그에서도 우승하여 더블을 달성했다. 알아인은 2004년에도 UAE 축구 리그 타이틀을 방어했다. 이러한 성공으로 프랑스 출신인 메취에게 많은 제안이 쏟아졌고, 그는 알아인 FC의 불만에도 불구하고 2004년 5월 알아인 FC를 떠나 2004년 7월 카타르 클럽 알가라파의 감독으로 합류했다. 결국 메취는 계약 위반으로 벌금을 지불해야 했다.
2.3.2. Al-Gharafa SC (first spell)
2005년, 메취는 알가라파 감독 첫 시즌에 카타르 스타스 리그 우승을 이끌었으며, 2위 팀인 알 라이얀에 무려 14점 차로 앞섰다. 그러나 당시 리그 선수들이 클럽이 아닌 카타르 국가 올림픽 위원회에 계약되어 있어, 팀은 해체되어 마르셀 드사이가 알가라파에서 카타르 SC로 "이적"하기도 했다. 메취는 카타르 왕세자(카타르 국가 올림픽 위원회 의장)가 자신의 클럽 알 사드 SC가 알가라파에 의해 카타르 스타스 리그 챔피언 자리에서 물러난 것에 불만을 품고 이러한 이적을 지시했다고 주장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2005-06 셰이크 자심 컵에서 팀을 승리로 이끌었지만, 상황이 악화되어 2006년 4월 클럽을 떠났다. 알가라파는 또한 2006년과 2011년에 에미르 오브 카타르 컵 준우승을 기록했다.
2.3.3. Al-Ittihad
메취의 다음 행선지는 2006년 사우디아라비아였다. 6회 사우디 프로페셔널 리그 챔피언인 알이티하드는 당시 2005-06 시즌 리그 테이블에서 5위에 머물러 있었고, 4개 팀이 겨루는 리그 타이틀 플레이오프 진출에 실패할 위기에 처해 있었다. 메취는 만수르 알빌라위 구단주로부터 플레이오프 진출을 돕기 위한 1개월 계약을 제안받았다. 그는 팀을 이끌고 리그 3위로 시즌을 마쳤다. 그러나 알이티하드는 플레이오프 2차전에서 알힐랄에 패배하여 최종 플레이오프 진출에는 실패했다.
2.3.4. United Arab Emirates national team
메취는 2006년 아랍에미리트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으로 복귀했다. 그는 2007년 1월 30일 아부다비의 만원 관중 앞에서 열린 제18회 아라비안 걸프컵에서 팀을 승리로 이끌었다. 이는 아랍에미리트의 첫 아라비안 걸프컵 우승으로, 메취는 이전 국가대표팀 감독들이 모두 실패했던 일을 해냈다.
아랍에미리트는 2007 AFC 아시안컵에서 일본, 지역 라이벌 카타르, 공동 개최국 베트남이 포함된 조에서 1승 2패로 3위를 기록하며 탈락했다. 특히 개막전에서 베트남에 0-2로 패배한 것은 충격적이었다. 2010년까지 계약되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메취는 아랍에미리트가 2010 월드컵 예선 4차 예선 B조에서 첫 두 경기를 패배한 후 2008년 9월 22일 사임했다. 메취의 아랍에미리트에서의 전체 기록은 42경기 (공식 22경기)에서 13승 (공식 11승) 9무 (공식 3무) 20패 (공식 8패)를 기록했으며, 47골을 득점하고 59골을 실점했다.
2.3.5. Qatar national team
2008년 9월 25일, 메취는 카타르 국가대표팀 감독직을 수락하며 카타르로 돌아왔다. 카타르는 2011년 1월 2011 AFC 아시안컵을 개최했다. 이 대회에서 카타르는 2승 1패로 조 2위를 기록하며 8강에 진출했지만, 2011년 1월 21일 8강에서 일본에 2-3으로 패배했고, 그 결과 메취는 2011년 2월 경질되었다.
2.3.6. Al-Gharafa SC (second spell)
메취는 새로운 일자리를 찾는 데 오래 걸리지 않았다. 그는 2005년 카타르 스타스 리그 우승을 이끌었던 알가라파의 감독으로 2011년 3월 3년 계약을 맺고 재부임했다. 그의 팀은 2011년 4월 카타르 크라운 프린스 컵에서 우승했다. 그러나 그는 계약 후 1년 만인 2012년 3월 15일 경질되었다. 알 라이얀에 홈에서 1-5로 처참하게 패배하는 등 부진한 결과로 팀이 카타르 스타스 리그 순위에서 7위까지 떨어졌기 때문이었다.
2.3.7. Al Wasl FC
2012년 2월, 메취는 세네갈 축구 협회로부터 세네갈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 복귀 가능성에 대한 연락을 받았다. 2012년 6월에는 이란 클럽 페르세폴리스의 감독직과 연결되었지만, 최종적으로는 마누엘 조제가 부임했다. 2012년 7월 12일, 메취는 이틀 전 경질된 디에고 마라도나의 후임으로 알와슬의 새로운 감독으로 임명되었다. 하지만 2012년 10월 26일, 두바이에서 대장암 진단을 받고 입원하면서 알와슬 감독직에서 사임했다.
3. Illness and death
브뤼노 메취는 대장암 진단을 받고 투병 생활을 이어갔으나, 결국 병마를 이기지 못하고 사망했다.
3.1. Illness and diagnosis
2012년 10월, 알와슬의 감독으로 부임한 지 3개월 만에 메취는 대장암 진단을 받았다. 당시 암은 이미 폐와 간으로 전이되어 말기 상태였고, 그는 3개월 시한부 선고를 받았다. 이후 그는 암 치료를 위해 화학요법을 받았다. 그는 생애 마지막 몇 달을 프랑스 북부에 위치한 고향인 Coudekerque-Village쿠드케르크빌라주프랑스어에서 암과 싸우며 보냈다.
3.2. Death and funeral
메취는 암과의 투병 끝에 2013년 10월 15일, 프랑스 쿠드케르크브랑슈의 Clinique des Flandres플랑드르 클리닉프랑스어에서 사망했다. 향년 59세였다. 유족으로는 배우자 비비안 디에예 메취와 세 자녀, 그리고 첫 번째 부인과의 사이에서 낳은 아들이 있다.
축구 감독 클로드 르 루아, 프랑스 스포츠 장관 발레리 푸르네롱, 세네갈 공격수 술레만 카마라, 세네갈 대통령 마키 살 등 운동선수, 정치인, 스포츠계 인사들이 그의 죽음에 애도를 표했다.
2013년 10월 18일, 프랑스 됭케르크 시는 메취를 추모하기 위한 공적 추모식을 개최했다. 이 행사는 스타드 데 플랑드르 내 Salle Pierre Delaporte살 피에르 들라포르트프랑스어에서 메취의 관 주변에 진행되었으며, 메취의 미망인과 여동생, 프랑스 주재 세네갈 대사, 됭케르크 시장을 포함한 약 400여 명이 참석했다.
2013년 10월 21일, 메취는 세네갈 수도 다카르에서 이슬람식 장례식을 치렀다. 그의 미망인 비비안, 세 자녀, 마키 살 세네갈 대통령, 무스타파 니아스 세네갈 국회 의장, 그리고 엘 하지 디우프, 칼릴루 파디가, 알리우 시세, 페르디난드 콜리 등 여러 유명 세네갈 축구 선수들이 다카르 주립병원 (l'Hôpital Principal de Dakar)에서 열린 장례식에 참석했다. 메취의 관은 세네갈 국기와 녹색 이슬람 깃발로 덮였다. 장례식에서 마키 살 대통령은 메취를 "인간성과 미덕의 모범"이자 "세네갈 영웅 중의 영웅"이라고 묘사했다. 메취는 이후 요프의 무슬림 묘지에 안장되었다.
4. Honours
브뤼노 메취는 감독으로서 클럽과 국가대표팀에서 다음과 같은 주요 업적을 달성했다.
- 클럽
- 알아인 FC
- UAE 축구 리그: 2002-03, 2003-04
- UAE 슈퍼컵: 2003
- AFC 챔피언스리그: 2002-03
- 알가라파 SC
- 카타르 스타스 리그: 2004-05
- 셰이크 자심 컵: 2005-06
- 카타르 크라운 프린스 컵: 2011
- 에미르 오브 카타르 컵 준우승: 2006, 2011
- 국가대표팀
- 세네갈
- 아프리카 네이션스컵 준우승: 2002
- 아랍에미리트
- 아라비안 걸프컵: 2007
- 세네갈
- 알아인 FC
5. Legacy and reception
브뤼노 메취의 생애와 경력은 특히 세네갈에서의 성공으로 인해 깊은 존경을 받았다.
5.1. Positive reception
메취는 '테랑가의 사자들'에게 용기와 불굴의 정신을 심어준 감독으로 세네갈에서 주로 묘사된다. 그의 이러한 영향은 이후 유소년 계층과 국내 클럽 팀으로까지 퍼져나갔다. 그는 "나라의 축구에 새로운 정신을 불어넣고 어린 재능들이 어디서든 거인으로 성장하도록 자극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세네갈 대통령 마키 살은 그의 장례식에서 메취를 "인간성과 미덕의 모범"이자 "세네갈 영웅 중의 영웅"이라고 묘사하며 그의 공헌을 기렸다.
5.2. Criticism and controversies
메취는 튀르키예와의 8강전 패배 후 세네갈 언론으로부터 비판을 받기도 했다. 언론은 그가 경기에서 지치고 소진된 선수들을 출전시켰으며, 부적절한 교체로 인해 패배를 자초했다고 비난했다. 일부 세네갈 관계자, 축구 선수, 팬들은 그가 올바른 선수 기용과 교체를 했더라면 세네갈이 8강을 통과했을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또한, 알아인을 떠나 알가라파로 이적하는 과정에서 계약 위반으로 벌금을 지불해야 했으며, 알가라파에서 두 번째 재임 시 팀이 해체된 배경에는 카타르 왕세자가 자신의 클럽이 리그 우승을 놓친 것에 대한 불만으로 이적을 지시했다는 그의 주장이 논란이 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