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생애
미챠 니키슈는 1899년 5월 21일 독일 라이프치히에서 태어나 1936년 8월 5일 이탈리아 베네치아에서 사망한 피아니스트이자 작곡가, 지휘자이다. 그의 생애는 저명한 음악가 부모님의 영향 속에서 시작되었고, 다양한 음악적 시도와 함께 개인적인 삶의 변화를 겪었다.
1.1. 유년기 및 교육
미챠 니키슈는 유명한 헝가리 출신의 지휘자 아르투르 니키슈와 벨기에 출신의 가수이자 작곡가인 아멜리 니키슈의 아들로 태어났다. 부모의 영향으로 어려서부터 음악적 재능을 키웠으며, 라이프치히 음악원에서 정식 음악 교육을 받았다. 그는 이곳에서 로베르트 타이히뮐러와 요제프 펨바우어에게 피아노를 사사했고, 슈테판 클레르에게 작곡을 배웠다.
1.2. 사생활
미챠 니키슈는 연극 및 영화배우 노라 그레고르와 결혼했다가 이혼한 이력이 있다. 말년에 그는 모스크바 출신의 여성 알렉산드라 미로노바와 사랑에 빠졌다. 알렉산드라 미로노바는 그보다 12세 연하로, 독일 베를린의 실러 극장에서 '바바라 디우'라는 예명으로 활동하던 저명한 여배우였다. 미챠 니키슈는 그녀의 러시아 이름 대신 '바바라'라고 불렀는데, 이는 그가 러시아 이름을 선호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두 사람은 결혼을 계획하고 있었으나, 미챠 니키슈가 림프암 진단을 받으면서 그들의 관계는 비극적인 전환을 맞았다.
2. 경력 및 예술 활동
미챠 니키슈는 고전 음악과 대중음악이라는 상이한 두 분야에서 모두 주목할 만한 경력을 쌓았다. 그의 음악 활동은 재능과 함께 시대적 상황의 영향을 깊이 받았다.
2.1. 고전 음악 활동
미챠 니키슈는 부모님처럼 뛰어난 고전 음악 해석가로 성장했다. 1918년 4월 22일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와의 협연으로 피아노 독주자로 데뷔하며 고전 음악 경력을 시작했다. 1919년부터 본격적으로 피아니스트로서 활동을 이어갔으며, 빌헬름 푸르트벵글러와 헨리 J. 우드 경과 같은 저명한 지휘자들과 협연하며 고전 음악계에서 인정을 받았다. 하지만 그가 가장 큰 명성을 얻은 것은 이후의 댄스 밴드 활동이었다. 나치 독재로 인해 댄스 밴드 활동을 중단하게 된 후, 그는 다시 콘서트 피아니스트로서의 경력을 이어가고자 고전 음악 연주에 전념했다.
2.2. 댄스 밴드 리더
미챠 니키슈는 바이마르 공화국 시기 베를린에서 인기 있는 재즈 밴드의 리더로서 가장 큰 명성을 얻었다. 그는 1925년 직접 '미챠 니키슈 댄스 오케스트라'를 결성하여 유행하는 클럽에서 연주했으며, 당대 독일에서 가장 존경받는 대중음악 연주자들이 이 밴드에 참여했다. 저명한 기타리스트 오토 작센하우어는 미챠 니키슈의 밴드를 "베를린에서 들어본 댄스 밴드 중 최고"라고 극찬했다. 그러나 나치 정권이 등장하면서 정치적 탄압이 심해졌고, 미챠 니키슈는 밴드를 해체할 수밖에 없었다. 이로 인해 그의 활발했던 대중음악 활동은 막을 내리게 되었다.
2.3. 작곡 활동
미챠 니키슈는 말년에 작곡가로서도 중요한 족적을 남겼다. 림프암 진단을 받고 살 날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알게 되자, 그는 열정적으로 피아노 협주곡을 작곡하기 시작했다. 이 작품은 그의 삶의 마지막 에너지를 쏟아부은 역작으로, 매일 여러 시간을 할애하며 작업에 매달렸다. 그는 이 협주곡을 그의 두 번째 아내이자 새로운 사랑이었던 바바라(알렉산드라 미로노바)에게 헌정했다. 1936년 8월 5일, 그는 협주곡을 완성한 직후 사망했으며, 바바라는 당시 업무차 런던에 있었다. 그녀가 베네치아로 돌아와 발견한 손글씨 악보는 너무나 짧았던 미챠 니키슈의 삶을 상징하는 유작이 되었다.
3. 사망
미챠 니키슈는 1936년 8월 5일 이탈리아 베네치아에서 37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그는 북이탈리아에서 여름휴가를 보내던 중 림프암 진단을 받았다. 병세가 악화되자 그는 자신이 살 날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직감하고 피아노 협주곡 작곡에 몰두했으며, 이 작품을 완성한 날 세상을 떠났다. 일본어 기록 중 일부에서는 그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고도 전해지나, 영어 기록에서는 림프암으로 인한 죽음과 작곡에 대한 그의 열정을 상세히 설명하고 있다.
4. 음반 및 작품
미챠 니키슈는 고전 음악 피아니스트로서, 그리고 댄스 밴드 리더로서 다수의 음반을 남겼다. 또한 작곡가로서도 중요한 유작을 남겼으며, 그의 작품은 다른 아티스트들에 의해 녹음되기도 했다.
4.1. 고전 음악 음반
고전 음악 연주자로서 미챠 니키슈는 피아노 연주용 음반 몇 개와 상업용 음반 한 장을 남겼다. 1934년 녹음된 모차르트의 피아노 협주곡 20번 라단조, K. 466이 대표적이며, 이 음반은 루돌프 슐츠-도른부르크가 지휘하는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와의 협연으로 녹음되었다. 이 음반은 2007년에 타라(Tahra) 레이블에서 4장의 CD 세트(TAHRA 595-598)의 일부로 재발매되기도 했다.
4.2. 댄스 밴드 음반
'미챠 니키슈 댄스 오케스트라' 명의로 발표된 대중음악 음반들에는 다음과 같은 곡들이 포함된다.
- 나시오 허브 브라운과 아서 프리드가 MGM 영화 '브로드웨이의 로드 바이런'을 위해 만든 곡인 "Should I (Reveal Exactly How I Feel)"의 독일어 버전인 "Ich kann, ich will"이 있다. 이 곡은 폴 돈의 보컬과 함께 1931년 일렉트롤라(Electrola) EG2228 (max. 0D 107-2)으로 베를린에서 녹음되었다.
- 'Madelon dream waltz'
- 'I can't do without you = Ich kann nichts ohne dich' (아빙 어빙 벌린의 곡)
4.3. 주요 작품 및 녹음
그의 대표적인 작곡 작품은 1936년에 완성된 그의 피아노 협주곡이다. 이 곡은 그가 죽기 직전 열정적으로 작업한 유작으로, 그의 개인적인 고뇌와 사랑이 담겨 있다. 이 피아노 협주곡은 후에 하워드 셸리(피아노)가 그라운케 심포니 오케스트라와 함께 쿠르트 그라운케의 지휘로 녹음되어 에디션 세디나(Edition Sedina) E.S. 107 CD로 발매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