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생애 및 배경
무로후시 시게노부는 선수 경력을 시작하기 전부터 학업과 다양한 스포츠 경험을 통해 기틀을 다졌으며, 특히 스모에 대한 깊은 애정을 가지고 있었다.
1.1. 출생 및 가족
무로후시 시게노부는 1945년 10월 2일 중국 허베이성 탕산시에서 태어났다. 그는 어린 시절부터 스모를 좋아하여 스모 역사가 되기를 열망했다. 특히 쇼와 시대의 요코즈나인 후타바야마 사다지(双葉山定次후타바야마 사다지일본어)가 직접 그에게 입문을 권유할 정도로 재능을 보였으나, 어머니의 반대로 인해 스모계 진출을 단념했다는 일화가 있다.

1972년 9월 29일, 그는 루마니아의 창던지기 선수였던 세라피나 모리츠(Serafina Moritz세라피나 모리츠루마니아어)와 시즈오카현 누마즈시에서 결혼했다. 두 사람의 자녀인 아들 무로후시 고지와 딸 무로후시 유카는 모두 올림픽에 참가한 해머던지기 선수로 성장했다.
1.2. 학력 및 초기 경력
무로후시 시게노부는 일본대학 경제학부를 졸업했다. 대학 졸업 후에는 다이쇼와 제지(大昭和製紙다이쇼와 제지일본어) 소속의 실업팀에서 활동하며 본격적으로 해머던지기 선수 경력을 시작했다. 해머던지기로 전향하기 전에는 스모와 투포환을 시도하기도 했다.
2. 선수 경력
무로후시 시게노부는 해머던지기 선수로서 수많은 국제 대회에서 뛰어난 성과를 거두며 아시아 육상계에 큰 족적을 남겼다.
2.1. 주요 대회 성적
무로후시 시게노부는 올림픽에 총 세 차례 참가하여 1972년 뮌헨 올림픽에서 8위, 1976년 몬트리올 올림픽에서 11위, 1984년 로스앤젤레스 올림픽에서 14위를 기록했다. 그는 아시안 게임에서 1970년 방콕 아시안 게임부터 1986년 서울 아시안 게임까지 5회 연속 금메달을 획득하는 전례 없는 기록을 세웠으며, 1966년 방콕 아시안 게임에서는 은메달을 획득하기도 했다. 또한 아시아 육상 선수권 대회에서는 1979년과 1981년에 각각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그의 주요 국제 대회 성적은 다음과 같다.
연도 | 대회 | 개최지 | 순위 |
---|---|---|---|
1966 | 아시안 게임 | 태국 방콕 | 2위 |
1970 | 아시안 게임 | 태국 방콕 | 1위 |
1972 | 올림픽 | 서독 뮌헨 | 8위 |
1974 | 아시안 게임 | 이란 테헤란 | 1위 |
1976 | 올림픽 | 캐나다 몬트리올 | 11위 |
1978 | 아시안 게임 | 태국 방콕 | 1위 |
1979 | 아시아 선수권 대회 | 일본 도쿄 | 1위 |
1981 | 아시아 선수권 대회 | 일본 도쿄 | 1위 |
1982 | 아시안 게임 | 인도 뉴델리 | 1위 |
1983 | 세계 육상 선수권 대회 | 핀란드 헬싱키 | 16위 |
1984 | 올림픽 | 미국 로스앤젤레스 | 15위 |
1986 | 아시안 게임 | 대한민국 서울 | 1위 |
그는 또한 일본 육상 경기 선수권 대회에서 10년 연속 우승을 차지하는 금자탑을 세웠다. 1993년에는 세계 마스터스 육상 선수권 대회에서 63.46 m를 기록하며 46~49세 부문 세계 신기록을 수립하고 우승했다.
2.2. 일본 기록 및 순위
무로후시 시게노부는 1984년에 75.96 m의 일본 신기록을 세웠다. 이 기록은 1998년 그의 아들 무로후시 고지에 의해 깨지기 전까지 14년 동안 유지되었다. 현재 이 기록은 일본 역대 해머던지기 기록 중 2위에 해당한다. 1984년 무로후시 시게노부가 일본 기록을 세운 이래로, 무로후시 부자가 지속적으로 일본 해머던지기 기록을 보유하고 있다. 그의 딸이자 고지의 여동생인 무로후시 유카 또한 여자 해머던지기 일본 역대 2위 기록 보유자이다.
2.3. 기술 및 특징
무로후시 시게노부는 외국인 선수들과의 체격 차이를 극복하기 위해 자신만의 독창적인 투척 자세인 '倒れ込み다오레코미일본어(넘어지는 던지기)'를 개발했다. 그는 당시에는 일반적이지 않던 비디오를 통한 자세 분석과 인체 관련 전문 서적을 탐독하며 수많은 시행착오 끝에 이 기술을 완성했다. 체격이 큰 선수들은 자신의 등 근육 힘으로 해머의 원심력을 견디며 던질 수 있지만, 체격이 작은 무로후시 시게노부는 자신의 등 근육만으로는 해머의 원심력을 감당하기 어려웠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그는 뒤로 넘어지듯이 던지는 동작을 통해 해머의 원심력을 보강하고, 회전 반경을 넓혀 해머 끝의 원심력을 증가시키며 회전 속도를 높일 수 있었다. 이 기술은 아들 무로후시 고지에게도 전수되어, 고지가 올림픽과 세계 육상 선수권 대회에서 금메달을 획득하는 데 중요한 요인이 되었다. 이러한 혁신적인 기술 개발과 뛰어난 성과로 그는 'アジアの鉄人아시아의 철인일본어'이라는 별명으로 불리게 되었다.
3. 지도자 경력
선수 은퇴 후 무로후시 시게노부는 육상 지도자로서 후학 양성에 힘썼으며, 다양한 직책을 역임하며 일본 육상계 발전에 기여했다.
3.1. 육성 선수
그는 지도자로서 2004년 아테네 올림픽 해머던지기 금메달리스트인 아들 무로후시 고지를 비롯하여 수많은 명선수들을 육성했다. 그가 지도한 주요 선수들은 다음과 같다.
- 무로후시 고지: 2004년 아테네 올림픽 남자 해머던지기 금메달리스트
- 무로후시 유카: 2004년 아테네 올림픽 여자 해머던지기 대표, 여자 해머던지기 일본 기록 역대 2위
- Yasuo Nakamura야스오 나카무라영어: 1998년 나가노 올림픽 보브슬레이 대표
- 도이 히로아키: 부산 아시안 게임 남자 해머던지기 은메달리스트
- 아야 마스미: 에드먼턴 세계 육상 선수권 대회 여자 해머던지기 대표
- 우에 데쓰: 후지쓰 육상 경기부에서 활약
3.2. 소속 및 직책
무로후시 시게노부는 1977년 일본대학 문리학부 강사로 취임하며 지도자 경력을 시작했다. 이후 1980년 중경대학 체육학부 조교수로 부임했으며, 1989년에는 중경대학 체육학부 교수로 승진했다. 그는 중경대학 육상 경기부 감독을 역임했으며, 2004년 아테네 올림픽에서는 일본 선수단 헤드코치를 맡아 아들 고지의 금메달 획득에 크게 기여했다. 2011년 3월, 정년 퇴임을 5년 앞두고 중경대학에서 퇴직했으며, 동 대학으로부터 '명예교수' 칭호를 수여받았다. 1991년에는 산산 누마즈 대사(燦々ぬまづ大使산산 누마즈 대사일본어)로 위촉되었다.
4. 개인사
무로후시 시게노부의 개인적인 삶은 그의 가족, 특히 운동선수로서의 자녀들과 깊이 연결되어 있다.
그는 1972년 9월 29일 루마니아의 창던지기 선수였던 세라피나 모리츠(Serafina Moritz세라피나 모리츠루마니아어)와 결혼했다. 두 사람의 자녀인 아들 무로후시 고지와 딸 무로후시 유카는 모두 아버지의 뒤를 이어 해머던지기 선수로 활동했으며, 올림픽에도 참가한 경력이 있는 저명한 선수들이다.
5. 수상 경력
무로후시 시게노부는 선수 및 지도자로서의 공로를 인정받아 여러 상훈과 표창을 받았다.
- 1972년: 헬름스상(Helms Award헬름스상영어)
- 1973년: 문부대신 스포츠 공로자 표창(文部大臣スポーツ功労者表彰문부대신 스포츠 공로자 표창일본어)
- 1986년: 내각총리대신 현창(内閣総理大臣顕彰내각총리대신 현창일본어)
6. 저술 및 출판물
무로후시 시게노부는 자신의 경험과 지식을 바탕으로 여러 저서와 비디오를 출판하여 육상 경기, 특히 해머던지기에 대한 이해를 높이는 데 기여했다.
- 『鉄球(ハンマー)は教えてくれた철구(해머)는 가르쳐 주었다일본어』 (저서, 강담사, 1982년 11월)
- 『その瞬間にかける그 순간에 걸다일본어』 (저서, 원생림, 1988년 3월)
- 『室伏重信の楽しい陸上競技무로후시 시게노부의 즐거운 육상 경기일본어』 (저서, 소봉서점, 1991년 4월)
- 『ハンマー投げ해머던지기일본어』 (저서, 베이스볼 매거진사, 1994년 9월)
- 『ジュニア陸上競技教典주니어 육상 경기 교전일본어』 (전국고등학교체육연맹 육상경기부 편, 육상 경기사, 1997년 3월, 해머던지기 항목 집필)
- 『陸上競技ビデオ全集 VOL.15「ハンマー投」육상 경기 비디오 전집 VOL.15 "해머던지기"일본어』 (DVD, 소켄 네트워크 감수)
- 『Super陸上 VOL.11「ハンマー投」슈퍼 육상 VOL.11 "해머던지기"일본어』 (DVD, 소켄 네트워크 감수)
- 『ハンマー室伏の健康体操해머 무로후시의 건강 체조일본어』 (VHS/CD)
7. 유산 및 평가
무로후시 시게노부는 'アジアの鉄人아시아의 철인일본어'이라는 별명으로 상징되는 아시아 해머던지기의 선구자이자 상징적인 인물로 평가받는다. 그의 아시안 게임 5연패와 일본 육상 경기 선수권 대회 10연패는 그의 압도적인 기량과 꾸준함을 보여주는 금자탑으로 남아있다.
특히 그가 개발한 '倒れ込み다오레코미일본어' 기술은 체격적 한계를 극복하고 해머던지기의 효율성을 극대화한 혁신적인 방법론으로 인정받는다. 이 기술은 아들 무로후시 고지에게 전수되어 고지가 올림픽과 세계 육상 선수권 대회에서 금메달을 획득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는 점에서 그의 기술적 유산의 중요성이 더욱 부각된다.
또한, 1984년에 세운 그의 75.96 m 일본 기록은 14년 동안 깨지지 않았으며, 이후 아들 고지에 의해 경신된 후에도 여전히 일본 역대 2위 기록으로 남아있다. 이는 무로후시 시게노부가 세운 기준이 얼마나 높았는지를 증명한다. 무로후시 가문이 1984년부터 현재까지 일본 해머던지기 기록을 계속해서 보유하고 있다는 사실은 그의 업적이 단순히 개인적인 성공을 넘어 일본 해머던지기의 발전에 지속적인 영향을 미쳤음을 보여주는 중요한 증거이다.
8. 기타
무로후시 시게노부는 선수 경력 외에도 여러 특별한 활동을 수행했다.
그는 1984년 로스앤젤레스 올림픽에서 일본 선수단의 기수를 맡아 개막식에 참가했다. 또한, 그는 1964년 도쿄 올림픽 대표 선발전에서 아쉽게 탈락했으며, 1980년 모스크바 올림픽에서는 대표로 선발되었으나 일본의 보이콧으로 인해 대회에 참가하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