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말라위 공화국은 아프리카 남동부에 위치한 내륙국으로, 과거 니아살랜드로 알려졌다. 북쪽과 북서쪽으로 탄자니아와 잠비아, 동쪽, 남쪽, 남서쪽으로 모잠비크와 국경을 접하고 있다. 국토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말라위호는 아프리카에서 세 번째로 큰 호수이다. 수도는 릴롱궤이며, 주요 도시로는 블랜타이어, 음주주 등이 있다. '아프리카의 따뜻한 심장'이라는 별칭을 가지고 있으며, 다양한 민족과 언어, 종교가 공존한다.
말라위의 역사는 10세기경 반투족의 정착으로 시작되어, 15세기에는 마라비 제국이 형성되었다. 19세기 말 영국의 보호령이 되었고, 20세기 중반 로디지아 니아살랜드 연방을 거쳐 1964년 독립을 이루었다. 독립 이후 헤이스팅스 반다 대통령의 장기 집권 시대를 거쳐, 1990년대 초 다당제 민주주의로 전환하였다. 현재는 대통령 중심제 공화국으로, 입법, 사법, 행정의 삼권 분립을 따르고 있다.
말라위 경제는 농업에 크게 의존하며, 담배, 차, 사탕수수 등이 주요 생산물이다. 세계 최빈국 중 하나로 분류되며, 경제 발전을 위해 국제 사회의 지원에 상당 부분 의존하고 있다. 기반 시설, 교육, 보건의료 시스템 개선과 함께 HIV/AIDS 문제 해결 등이 주요 과제로 남아있다.
사회적으로는 높은 인구 밀도와 함께 낮은 평균 수명, 높은 유아 사망률 등의 문제를 안고 있다. 다양한 부족 문화가 존재하며, 전통 예술, 음악, 춤, 음식 등에서 그 특색을 엿볼 수 있다. 축구와 넷볼 등이 인기 스포츠이며, 말라위호 국립공원과 총고니 암각화 지역은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되어 있다.
2. 어원
말라위라는 국명은 이 지역에 거주하던 체와족의 옛 이름인 '마라비'에서 유래했다는 설이 있다. 체와어와 툼부카어에서 '말라위'는 '불꽃' 또는 '화염'을 의미하며, 이는 초대 대통령 헤이스팅스 반다가 채택한 이름이다. 영국 식민지 시절의 국명인 '니아살랜드'는 롬웨어로 '호수'를 뜻하는 '니아사'(nyasa니아사로지어)와 영어로 '땅'을 뜻하는 '랜드'(land랜드영어)를 결합한 것으로, 19세기 중반 이 지역을 탐험한 스코틀랜드 출신 탐험가 겸 선교사 데이비드 리빙스턴이 명명한 것이다. 일설에는 국기 디자인과 관련하여 '호수를 비추는 햇빛'에서 영감을 받았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3. 역사
말라위 지역의 역사는 선사 시대 수렵 채집민들의 거주로부터 시작하여, 반투족의 이동과 정착, 강력한 왕국의 건설, 유럽 열강의 식민 통치, 그리고 독립 이후의 정치적 변화와 사회 발전 과정을 거쳐 오늘에 이르고 있다. 각 시대별 주요 사건들은 말라위의 정체성 형성에 깊은 영향을 미쳤다.
3.1. 식민지 이전 시대

현재 말라위로 알려진 아프리카 지역에는 기원후 10세기경 북쪽에서 반투족 계열의 민족들이 이주해 오기 전까지 소수의 수렵채집인들이 거주하고 있었다. 이 초기 수렵채집민들은 아카풀라족 또는 아바트와족으로도 불렸다. 이후 유입된 반투족은 기존 주민들을 몰아내고 정착하였으며, 이 과정에서 공통의 조상을 기반으로 한 여러 부족 집단이 형성되었다.
15세기경에는 체와족을 중심으로 한 여러 반투족 부족들이 연합하여 '마라비'라고 불리는 강력한 정치 체제를 구축했고, 이는 마라비 제국(또는 마라위 제국)으로 발전했다. 16세기부터 번성한 마라비 제국은 현재의 은코타코타 북쪽에서부터 잠베지강 유역까지, 그리고 말라위호 서쪽에서 현재 잠비아의 루앙과강 유역에 이르는 광대한 지역을 통치했다. 이 시기에는 은카망가 왕국 등 다른 소규모 왕국들도 존재했다.
1600년경 이후, 마라비 제국은 지역 대부분을 통일하고 포르투갈인 상인 및 군인들과 접촉하며 교역하고 동맹을 맺기 시작했다. 또한 스와힐리 해안 도시의 아랍인 상인들과도 교역 관계를 맺었다. 그러나 1700년경에 이르러 제국은 여러 개별 부족 집단이 통제하는 지역으로 분열되었다. 19세기 중반에는 인도양 노예 무역이 절정에 달했으며, 매년 약 20,000명의 사람들이 은코타코타에서 킬와 키시와니로 끌려가 노예로 팔려나간 것으로 추정된다. 총고니 암각화 지역은 이 지역의 오랜 거주 역사를 보여주는 중요한 유적이다.
3.2. 식민 통치 시기

1859년, 스코틀랜드 출신의 선교사이자 탐험가인 데이비드 리빙스턴이 당시 니아사호로 불리던 말라위호에 도달하여 호수 남쪽의 시레고원을 유럽인 정착에 적합한 지역으로 지목했다. 리빙스턴의 방문 결과, 1860년대와 1870년대에 여러 성공회 및 장로회 선교부가 이 지역에 설립되었다. 1878년에는 무역 및 운송 사업을 목적으로 아프리카 호수 회사가 설립되었고, 1876년 블랜타이어에 소규모 선교 및 교역 정착지가 세워졌으며 1883년에는 영국 영사가 이곳에 주재하게 되었다. 포르투갈 정부 또한 이 지역에 관심을 보였으므로, 영국 정부는 포르투갈의 점령을 막기 위해 해리 존스턴을 영국 영사로 파견하여 포르투갈 관할권 밖의 현지 통치자들과 조약을 체결하도록 지시했다.
1889년, 시레고원에 영국 보호령이 선포되었고, 1891년에는 현재 말라위 전역을 포함하는 영국 중앙아프리카 보호령으로 확대되었다. 1907년, 보호령은 니아살랜드로 개칭되어 영국 통치가 끝날 때까지 이 이름으로 불렸다. 아프리카 식민 통치의 전형적인 "가는 백선(Thin White Line)" 방식으로, 니아살랜드 식민 정부는 1891년에 구성되었다. 행정관들은 연간 1.00 만 GBP (1891년 명목 가치)의 예산을 받았는데, 이는 유럽인 민간인 10명, 장교 2명, 펀자브 출신 시크교도 70명, 잔지바르 짐꾼 85명을 고용하기에 충분한 액수였다. 이 소수의 인원으로 약 9.40 만 km2에 달하는 영토와 100만에서 200만 명 사이의 인구를 관리하고 치안을 유지해야 했다. 같은 해, 노예제가 완전히 폐지되었다.
1915년, 목사 존 칠렘브웨가 주도한 봉기가 일어났으나 진압되었다. 이 봉기는 말라위에서 식민 지배에 대한 저항의 상징으로 여겨지며, 현재 말라위 콰차 지폐에는 칠렘브웨의 초상이 사용되고 있다.
1944년, 니아살랜드의 아프리카인들은 영국 정부에 현지 이익을 증진시키기 위해 니아살랜드 아프리카인 회의(NAC)를 결성했다. 1953년, 영국은 주로 정치적인 이유로 니아살랜드를 북로디지아(현 잠비아) 및 남로디지아(현 짐바브웨)와 통합하여 로디지아 니아살랜드 연방(CAF)을 설립했다. 이 연방은 반자치적이었지만, 아프리카 민족주의자들의 반발을 불러일으켰고 NAC는 대중적 지지를 얻었다. 연방에 대한 영향력 있는 반대자 중 한 명은 가나에서 활동하던 유럽 유학파 의사 헤이스팅스 반다였다. 그는 1958년 민족주의 운동을 돕기 위해 니아살랜드로 돌아오도록 설득되었다. 반다는 NAC 의장으로 선출되어 민족주의 정서를 동원하는 데 힘썼으나, 1959년 식민 당국에 의해 투옥되었다. 그는 1960년에 석방되어 니아살랜드의 새 헌법 초안 작성에 참여해 달라는 요청을 받았고, 이 헌법에는 아프리카인이 식민지 입법 평의회에서 과반수를 차지하도록 하는 조항이 포함되었다. 1962년 연방 내 자치권을 획득했고, 이듬해인 1963년 로디지아 니아살랜드 연방은 해체되었다.
3.3. 헤이스팅스 반다 시대

1961년, 헤이스팅스 반다가 이끄는 말라위 의회당(MCP)은 입법 평의회 선거에서 과반수를 차지했고, 반다는 1963년 총리가 되었다. 로디지아 니아살랜드 연방은 1963년에 해체되었으며, 1964년 7월 6일 니아살랜드는 영국으로부터 독립하여 국명을 말라위로 변경했다. 이 날은 말라위의 독립 기념일로 공휴일로 지정되어 기념되고 있다. 새 헌법에 따라 말라위는 공화국이 되었고 반다는 초대 대통령으로 취임했다. 새 헌법은 또한 말라위를 MCP가 유일한 합법 정당인 일당제 국가로 공식화했다.
1971년, 반다는 종신 대통령으로 선포되었다. 거의 30년 동안 반다는 매우 억압적인 전체주의 정권을 유지했으며, 이로 인해 말라위는 무력 분쟁을 겪지 않았다. 오턴 치르와의 말라위 자유 운동과 말라위 사회주의 연맹을 포함한 반대 정당들은 망명 중에 설립되었다. 반다 대통령 재임 기간 동안 말라위 경제는 가난하고, 내륙에 위치하며, 인구 밀도가 높고, 광물 자원이 부족한 국가가 농업과 산업 발전 모두에서 진전을 이룰 수 있는 사례로 종종 인용되었다.
외교적으로 반다 정권은 경제 발전의 필요성 때문에 당시 아파르트헤이트 정책을 시행하던 남아프리카 공화국과도 외교 관계를 유지했다. 또한, 아프리카에서 식민 제국을 유지하려던 포르투갈과도 협력하여 모잠비크를 경유하는 해안 지역과의 연결을 확보하려 하는 등, 아프리카 남부의 백인 정권에 접근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로 인해 수도 이전 및 철도망 정비에 있어 남아프리카 공화국으로부터 경제 지원을 받기도 했다. 또한 이 시기에는 반공주의적 관점에서 대만(중화민국)과 우호 관계를 유지했다.
3.4. 다당제 민주주의 시대
정치적 자유 증대에 대한 압력 속에서, 반다는 1993년 국민투표에 동의했고, 여기서 국민들은 다당제 민주주의를 선택했다. 1993년 말, 대통령 평의회가 구성되었고, 종신 대통령제가 폐지되었으며, 새 헌법이 제정되어 사실상 MCP의 통치가 종식되었다. 1994년 말라위에서 첫 다당제 선거가 실시되었고, 반다는 바킬리 물루지(전 MCP 사무총장이자 전 반다 내각 장관)에게 패배했다. 1999년 재선된 물루지는 2004년까지 대통령직을 유지했고, 그 해 빙구 와 무타리카가 대통령으로 선출되었다. 정치 환경은 "도전적"이라고 묘사되었지만, 2009년에도 말라위에는 다당제가 존재한다고 명시되었다. 2009년 5월 말라위에서 네 번째 다당제 의회 및 대통령 선거가 실시되었고, 무타리카 대통령은 경쟁자의 선거 사기 혐의에도 불구하고 성공적으로 재선되었다.
무타리카 대통령은 점차 독재적이고 인권을 무시한다는 비판을 받았으며, 2011년 7월에는 높은 생활비, 악화되는 외교 관계, 열악한 통치, 외환 보유고 부족 등에 대한 시위가 발생했다. 이 시위로 18명이 사망하고 최소 44명이 총상을 입었다. 말라위 국기는 2010년에 세 개의 색 줄무늬와 흰색 태양으로 수정되었으나, 2012년에 이전 국기의 검은색-빨간색-녹색으로 복원되었다.
2012년 4월, 무타리카는 심장마비로 사망했다. 그의 사망은 48시간 동안 비밀에 부쳐졌으며, 시신을 남아프리카 공화국으로 옮기는 복잡한 과정도 포함되었다. 남아공 정부가 정보 공개를 위협하자, 부통령 조이스 반다(헤이스팅스 반다와는 무관)가 대통령직을 승계했다.
2014년 말라위 총선에서 조이스 반다는 3위로 낙선했고, 전 대통령 무타리카의 동생인 피터 무타리카가 대통령으로 당선되었다. 2019년 말라위 총선에서 피터 무타리카 대통령은 근소한 차이로 재선되었으나, 2020년 2월 말라위 헌법재판소는 부정행위와 광범위한 불규칙성을 이유로 결과를 무효화했다. 2020년 5월 대법원은 이 결정을 확정하고 7월 2일에 새 선거를 치르도록 발표했다. 이는 말라위 역사상 선거 결과가 법적으로 이의를 제기받은 첫 사례였다. 야당 지도자 라자루스 차퀘라가 2020년 대통령 선거에서 승리하여 말라위의 새 대통령으로 취임했다. 2024년 V-Dem 민주주의 지수에 따르면 말라위는 전 세계 선거 민주주의 국가 중 74위, 아프리카 선거 민주주의 국가 중 11위를 차지했다.
4. 지리
말라위는 아프리카 남동부에 위치한 내륙국으로, 북서쪽으로 잠비아, 북동쪽으로 탄자니아, 동쪽, 남쪽, 남서쪽으로 모잠비크와 국경을 접하고 있다. 북위 9도에서 18도, 동경 32도에서 36도 사이에 위치한다. 국토의 대부분은 고원 지대에 속하며, 동아프리카 지구대가 국토를 남북으로 관통한다.
4.1. 지형 및 수계

동아프리카 지구대가 말라위 국토의 중심을 남북으로 가로지르며, 이 지구대 동쪽에는 아프리카에서 세 번째로 큰 호수인 말라위호(니아사호)가 길게 뻗어 있어 말라위 동부 국경의 4분의 3 이상을 형성한다. 말라위호는 길이가 약 587409 m (365 mile), 폭이 약 83686 m (52 mile)에 달해 '달력 호수'라고도 불린다. 말라위호의 수면은 해발 약 457 m (1500 ft)에 위치하며, 최대 수심은 약 701 m (2300 ft)으로, 일부 지점의 호수 바닥은 해수면보다 약 213 m (700 ft) 이상 낮다.

말라위호 남단에서는 시레강이 발원하여 남쪽으로 흘러 모잠비크에서 잠베지강과 합류한다. 말라위호 남쪽의 주요 호수로는 마롬베호가 있으며, 남동부 모잠비크와의 국경 지대에는 치우타호와 칠와호가 있다. 특히 칠와호는 다른 호수들에 비해 수심이 매우 얕지만 어족자원이 풍부하여 말라위 전체 어획량의 20~30%를 차지하는 주요 어장이다. 다만 수심이 얕아 수위 변동이 잦으며, 2018년 가뭄 때는 수위가 크게 낮아지기도 했다.
지구대 주변의 산악 지형에서는 고원들이 일반적으로 해발 914 m (3000 ft)에서 1219 m (4000 ft) 높이로 솟아 있으며, 북부 일부 지역은 2438 m (8000 ft)에 이르기도 한다. 말라위호 남쪽에는 시레고원이 약 914 m (3000 ft) 높이로 완만하게 펼쳐져 있다. 이 지역에는 좀바산과 물란제산괴가 각각 2134 m (7000 ft)와 0.3 만 m (1.00 만 ft)의 높이로 솟아 있다.
4.2. 기후
말라위의 기후는 남부 저지대는 덥고 북부 고원지대는 온화한 편이다. 고도가 적도성 기후를 완화시키는 역할을 한다. 11월부터 4월까지는 기온이 따뜻하며 적도성 비와 뇌우가 내리고, 3월 말에 폭풍이 가장 심해진다. 3월 이후 강수량은 급격히 줄어들고, 5월부터 9월까지는 고원에서 고원으로 습한 안개가 흘러들며 이 기간에는 거의 비가 내리지 않는다.
수도 릴롱궤의 경우, 여름(11월~4월) 평균 기온은 17°C에서 29°C 사이이며, 겨울(5월~10월) 평균 기온은 7°C에서 23°C 사이이다. 강수량은 전반적으로 많은 편으로, 고원 지대에서는 연간 2000 mm 이상 내리는 곳도 있으며, 강수량이 가장 적은 남부 저지대에서도 약 800 mm 정도의 강수량을 보인다. 우기는 11월(또는 12월)부터 4월까지이며, 건기는 5월부터 10월(또는 11월)까지이다.
4.3. 동식물

말라위 고유의 동물에는 코끼리, 하마, 영양, 들소, 대형 고양이과 동물, 원숭이, 코뿔소, 박쥐 등의 포유류가 포함된다. 조류 또한 매우 다양하여, 맹금류, 앵무새, 매, 물새와 대형 도요새, 올빼미, 명금류 등이 서식한다. 말라위호는 "세계에서 가장 풍부한 호수 어류 동물상을 가진 곳 중 하나"로 묘사되며, 약 200종의 포유류, 650종의 조류, 30종 이상의 연체동물, 5,500종 이상의 식물 종의 서식지이다. 특히 시클리드과에 속하는 참보(Chambo)라는 흰살 생선이 특산물로 유명하며, 다양한 어종이 어획된다. 호수에는 수달, 악어 등도 서식한다.
말라위 국경 내에는 7개의 육상 생태 지역이 있다: 중앙 잠베지 미옴보 삼림지대, 동부 미옴보 삼림지대, 남부 미옴보 삼림지대, 잠베지 및 모파니 삼림지대, 잠베지 범람 초원, 남부 말라위 산지림-초원 모자이크, 남부 지구대 산지림-초원 모자이크. 말라위에는 5개의 국립공원, 4개의 야생동물 및 수렵 보호구역, 그리고 2개의 기타 보호구역이 있다. 2019년 산림경관 완전성 지수 평균 점수는 5.74/10으로, 전 세계 172개국 중 96위를 차지했다.
5. 정치
말라위는 대통령 중심제 공화국으로, 다당제 민주주의를 채택하고 있다. 현행 헌법은 1995년 5월 18일에 발효되었다. 정부는 행정부, 입법부, 사법부의 삼권 분립을 기반으로 구성된다. 현 대통령은 라자루스 차퀘라이다. 말라위는 과거 헤이스팅스 반다 대통령 시절 일당 독재를 경험했으나, 1993년 국민투표를 통해 다당제로 전환했다. 그러나 정치적 부정부패는 여전히 심각한 문제로 지적되며 경제 발전을 저해하는 요소로 작용하고 있다. 한 예로 국제 통화 기금(IMF) 말라위 소장은 말라위 국민총생산의 30%가 정치적 부패로 사라지고 있다고 언급한 바 있다.
5.1. 정부 구조

말라위의 행정부는 국가 원수이자 정부 수반인 대통령, 제1부통령과 제2부통령, 그리고 내각으로 구성된다. 대통령과 부통령은 5년 임기로 국민 직접 선거를 통해 함께 선출된다. 대통령은 다른 정당 출신 인사를 제2부통령으로 임명할 수 있다. 내각 각료는 대통령이 임명하며, 입법부 내외의 인사 중에서 임명될 수 있다. 국무총리직은 1966년에 폐지되었다.
입법부는 단원제인 국민의회(National Assembly)로 구성되며, 의원 정수는 193명이다. 의원은 5년 임기로 국민 직접 선거를 통해 선출된다. 헌법에는 80석 규모의 상원(Senate) 설치가 규정되어 있으나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는다. 만약 상원이 구성된다면 전통 지도자, 각 지리적 구역, 그리고 장애인, 청년, 여성을 포함한 특별 이익 집단을 대표하게 될 것이다.
사법부는 독립적이며 영국법 모델을 기반으로 한다. 사법 체계는 대법원(Supreme Court of Appeal), 고등법원(High Court - 일반, 헌법, 상업 재판부로 나뉨), 산업관계법원(Industrial Relations Court), 그리고 치안법원(Magistrates Courts - 5개 등급으로 나뉘며 아동사법법원 포함)으로 구성된다. 말라위가 1964년 독립한 이후 사법 제도는 여러 차례 변경되었으며, 관습법 법원과 전통 법원이 다양한 조합으로 운영되어 왔으나 그 성공과 부패 수준은 다양했다.
5.2. 주요 정당 및 선거
말라위의 주요 정당으로는 현 대통령 라자루스 차퀘라가 이끄는 말라위 의회당(MCP)을 중심으로 한 톤세 동맹(Tonse Alliance)이 여당 연합을 이루고 있으며, 민주진보당(DPP)이 주요 야당이다. 그 외에 과거 여당이었던 통합민주전선(UDF), 조이스 반다 전 대통령이 이끌었던 인민당(PP) 등이 있다. 말라위 의회당은 주로 체와족 기반으로 중부 지역에 지지 기반을 두고 있으며, 통합민주전선은 야오족 기반으로 남부 지역에 지지 기반을 둔다.
선거권은 18세 이상의 모든 국민에게 주어진다. 2005년 2월, 당시 대통령이었던 빙구 와 무타리카는 통합민주전선(UDF)에서 탈당하여 자신의 정당인 민주진보당(DPP)을 창당했으며, 이 정당은 다른 정당의 개혁 성향 관리들을 영입하여 2006년 전국 보궐선거에서 승리했다. 2008년 무타리카 대통령은 국가의 주요 부패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개혁을 단행하여 최소 5명의 UDF 고위 당직자들이 형사 고발되기도 했다.
2012년, 말라위는 아프리카 거버넌스에 관한 이브라힘 지수에서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 전체 국가 중 7위를 차지했다. 국가 거버넌스 점수는 대륙 평균보다 높았지만, 남아프리카 지역 평균보다는 낮았다. 가장 높은 점수는 안전 및 법치주의였고, 가장 낮은 점수는 지속 가능한 경제 기회였으며, 교육 기회 부문에서는 대륙 47위를 기록했다.
최근 주요 선거로는 2019년 대통령 선거에서 피터 무타리카 당시 대통령이 재선되었으나, 헌법재판소에 의해 부정선거로 판결되어 결과가 무효화되었다. 2020년 7월에 치러진 재선거에서 라자루스 차퀘라 후보가 승리하여 대통령으로 취임했다.
5.3. 인권
2017년 기준으로 국제 관찰자들은 말라위의 여러 인권 분야에서 문제를 지적했다. 경찰과 보안군에 의한 과도한 무력 사용이 면책 하에 자행되는 것으로 보였고, 군중 폭력도 간헐적으로 발생했으며, 교도소 환경은 여전히 열악하고 때로는 생명을 위협할 정도였다. 그러나 정부는 과도한 무력을 사용한 보안군을 기소하려는 일부 노력을 보였다. 다른 법적 문제로는 언론의 자유 및 표현의 자유 제한, 장기적인 재판 전 구금, 자의적 체포 및 구금 등이 있었다. 정부 내 부패는 말라위 반부패국(ACB)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주요 문제로 간주되었다. 보안군 내의 부패 또한 문제점으로 지적된다.
말라위는 세계에서 조혼 비율이 가장 높은 국가 중 하나였으나, 2015년 법정 결혼 연령을 15세에서 18세로 상향 조정했다. 여성에 대한 폭력, 인신매매, 아동 노동도 사회적 문제로 남아있다. 성적 학대와 괴롭힘으로부터 여성을 적절히 법적으로 보호하지 못하는 문제, 매우 높은 산모 사망률, 주술 혐의와 관련된 학대 등도 제기된 문제들이다.
2010년 기준으로 동성애는 말라위에서 불법이었다. 2010년 한 사례에서는 동성애자로 간주된 커플(남성과 트랜스여성)이 유죄 판결을 받고 장기 징역형에 처해질 뻔했으나, 반기문 당시 국제 연합 사무총장의 개입 후 2주 만에 사면되었다. 2012년 당시 대통령이었던 조이스 반다는 동성애를 범죄화하는 법을 폐지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녀의 후임자인 피터 무타리카는 2015년 해당 법률에 대한 추가 검토가 있을 때까지 반동성애법의 효력을 정지시키는 모라토리엄을 부과했다. 2021년 6월 26일, 말라위의 성소수자 공동체는 릴롱궤에서 첫 번째 프라이드 퍼레이드를 개최했다.
6. 행정 구역
말라위는 3개 주(Region)와 그 하위 행정 단위인 28개 현(District)으로 구성된다. 각 주는 다시 약 250개의 전통적 권위체(Traditional Authorities)와 110개의 행정구(Administrative Wards)로 세분화된다. 지방 정부는 중앙 정부가 임명한 주 행정관과 현 행정관에 의해 운영된다. 다당제 시대 최초의 지방 선거는 2000년 11월 21일에 실시되어 통합민주전선(UDF)이 가용 의석의 70%를 차지했다. 헌법상 규정된 두 번째 지방 선거는 2005년 5월에 예정되어 있었으나 정부에 의해 취소되었다.
날짜 | 한국어 명칭 | 현지어 명칭 (영어) | 비고 |
---|---|---|---|
1월 1일 | 새해 첫날 | New Year's Day | |
1월 15일 | 존 칠렘브웨의 날 | John Chilembwe Day | 1915년 반영 봉기를 주도한 존 칠렘브웨 목사를 기념 |
3월 3일 | 순교자의 날 | Martyrs' Day | 영국 식민 통치에 맞서 싸운 영웅들을 추모 |
3월/4월 중(매년 변동) | 성금요일 | Good Friday | 부활절 전 금요일 |
3월/4월 중(매년 변동) | 부활절 월요일 | Easter Monday | 부활절 다음 월요일 |
5월 1일 | 노동절 | Labour Day | |
5월 14일 | 카무주 반다의 날 | Kamuzu Day | 초대 대통령 헤이스팅스 반다의 생일 기념 |
7월 6일 | 독립기념일 | Independence Day / Republic Day | 1964년 영국으로부터 독립 및 1966년 공화국 선포 기념 |
10월 15일 | 어머니의 날 | Mother's Day | 세계 농촌 여성의 날과 겸함 |
12월 25일 | 크리스마스 | Christmas Day | |
12월 26일 | 박싱 데이 | Boxing Day | |
이슬람력 샤왈 1일 | 이드 알피트르 | Eid al-Fitr | 라마단 종료 축제 (날짜 매년 변동)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