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선수 경력
마리오 베인은 로테르담에서 성장하며 축구 선수로서의 기량을 갈고닦았고, 이후 여러 클럽을 거치며 선수 생활을 이어갔다.
1.1. 유소년 시절 및 초기 경력
베인은 남홀란트주 로테르담의 항만 노동자 아들로 태어나, 7세 때 FC 로테르담에 입단하며 축구를 시작했다. 이듬해 페예노르트 유스팀으로 이적하여 공격형 미드필더로서 두각을 나타냈다. 18세이던 1982년, 클럽의 상징적인 선수인 빌럼 판 하네험의 지도 아래 로테르담 AD 토너먼트에서 성인팀 데뷔전을 치렀고, 아스널과의 경기에서 교체 출전하여 1골을 기록하며 깊은 인상을 남겼다. 1982년 9월 5일, N.E.C.와의 경기에서 공식 프로 데뷔전을 가졌다.
1.2. 페예노르트 시절
베인은 1982년부터 1988년까지 6년간 페예노르트에서 활약했다. 1982-83 시즌에는 한스 크라아이 Sr. 감독 아래에서 꾸준히 출전 기회를 얻었다. 그러나 요한 크라위프가 페예노르트에 합류한 다음 시즌에는 출전 시간이 줄어들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베인은 1984년 마르코 판 바스턴과 팀 동료 뤼트 휠릿을 제치고 최고의 유망주에게 주어지는 '하우던 스히윈' 상을 수상하며 재능을 인정받았다. 그는 경기장 위에서 유쾌하고 장난기 넘치는 모습으로 팬들에게 큰 인기를 얻었으며, 언론으로부터는 '피트예 벨'이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다.
1.3. 해외 리그 경력
1988년 7월, 베인은 페예노르트를 떠나 이탈리아의 피사로 이적하여 3시즌을 보냈다. 이 기간 동안 피사는 세리에 A와 세리에 B를 오갔다. 이탈리아에서의 생활을 마친 후, 1991년 네덜란드로 돌아와 로다 JC에 합류했다. 이후 SC 헤렌벤에서 한 시즌을 보낸 뒤, 1992년 오스트리아의 FC 티롤 인스브루크로 이적했다.
1.4. 네덜란드 복귀 및 후기 경력
FC 티롤 인스브루크에서의 활약 이후, 베인은 고향 팀인 SBV 엑셀시오르로 돌아와 3년간 뛰었다. 그는 엑셀시오르의 팀 주장으로 활약하며 팀의 핵심 선수로 자리매김했다. 1995년 9월 17일, HFC 하를럼과의 경기에서 엑셀시오르가 0대4로 패한 것이 그의 마지막 공식 경기였으며, 이 경기를 끝으로 선수 생활을 은퇴했다.
1.5. 국가대표 경력
베인은 1983년 FIFA 세계 청소년 축구 선수권 대회에 네덜란드 U-20 대표팀의 일원으로 참가했다. 이 대회에서 그는 마르코 판 바스턴, 헤라르트 파넨뷔르흐 등과 함께 뛰며 4경기에 출전하여 2골을 기록했다. 특히 브라질과의 첫 경기에서는 3명의 수비수를 드리블로 제치고 골키퍼의 키를 넘기는 칩 슛으로 선제골을 넣어 멕시코 과달라하라의 6만여 관중을 놀라게 했다. 1984년 11월 14일, 20세의 나이로 오스트리아와의 경기에서 톤 로크호프와 교체되어 후반 27분부터 18분간 뛰며 네덜란드 성인 국가대표팀 데뷔전을 치렀다. 그러나 이 경기는 0대1로 패배했고, 이후 그는 더 이상 국가대표팀에 소집되지 않았다.
1.6. 플레이 스타일 및 별명
마리오 베인은 공격형 미드필더로서 뛰어난 기술과 정확한 킥 능력을 자랑했다. 특히 그의 드리블 기술은 탁월하여, 전설적인 아르헨티나 축구 선수 디에고 마라도나의 이름을 따 '마리오도나'라는 별명이 붙었다. 또한 '슈퍼 마리오'라는 별명으로도 불리며 팬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았다. 그는 경기장에서의 활기찬 모습과 유머러스한 성격으로 '피트예 벨'이라는 별명까지 얻으며 대중적인 인기를 누렸다.
2. 지도자 경력
선수 은퇴 후, 마리오 베인은 축구 지도자의 길을 걸으며 여러 클럽에서 감독직을 수행했다.
2.1. 지도자 경력 시작
베인은 2000년 페예노르트의 베르트 판 마르베이크 감독 아래에서 수석 코치로 지도자 경력을 시작했다. 그는 판 마르베이크 감독이 2004년 보루시아 도르트문트로 떠날 때까지 이 직책을 유지했다. 이후 2006년 2006 FIFA 월드컵을 앞두고 레오 베인하커 감독을 보좌하여 트리니다드 토바고의 전술 분석가로 활동했다.
2.2. 에クセル시오르 감독
2005년, 베인은 페예노르트의 자매 클럽인 SBV 엑셀시오르의 감독으로 부임했다. 그는 부임 첫 시즌 만에 엑셀시오르를 에이르스터 디비시에서 에레디비시로 승격시키는 데 성공했다. 그의 팀은 매력적인 축구를 선보이며 2위 팀인 VVV 펜로를 승점 7점 차이로 따돌리고 우승을 차지했다.
2.3. NEC 나이메헌 감독

엑셀시오르에서의 성공적인 시즌 후, 베인은 2006년 N.E.C.의 감독으로 부임했다. 그는 클럽의 영광을 되찾겠다는 야심을 가지고 팀을 이끌었다. 2006-07 시즌에는 팀을 에레디비시 10위로 이끌었다. 2007-08 시즌 전반기에는 팀이 리그 최하위에 머물며 어려움을 겪었으나, 베인은 놀라운 반전을 이끌어내며 팀을 리그 8위로 끌어올렸다. 이로써 NEC는 UEFA컵 플레이오프 진출권을 획득했고, 베인의 팀은 매우 공격적이고 매력적인 축구를 선보이며 많은 골을 기록했다. 플레이오프 결승전에서 NAC 브레다를 상대로 홈에서 6대0, 원정에서 1대0 승리를 거두며 클럽 역사상 처음으로 유럽 대회 진출권을 획득했다.
2008-09 시즌은 베인 감독에게 있어 최고의 시즌이었다. UEFA컵 조별리그에서 FC 스파르타크 모스크바, 디나모 자그레브, 토트넘 홋스퍼 FC, 우디네세 칼초와 같은 강팀들과 한 조에 편성되었으나, 스파르타크 모스크바를 2대1로 꺾고, 우디네세 칼초를 2대0으로 이기며 다음 라운드 진출을 확정 지었다. 비록 다음 라운드에서 함부르크 SV에 합계 0대4로 패했지만, 베인은 이미 클럽 역사에 자신의 이름을 새겼다. 2009년 1월 28일, NEC와 페예노르트는 베인이 다음 시즌부터 페예노르트의 감독으로 부임하는 것에 합의했다. NEC 감독으로서의 마지막 경기에서 그는 만원 관중이 들어찬 스타디온 더 호페르트에서 팬들의 기립 박수를 받으며 클럽 최고의 감독 중 한 명으로 평가받았다. 그의 고별사는 눈물로 가득했지만, 팬들에게 남긴 마지막 말은 그의 전설적인 위상을 보여주었다.
2.4. 페예노르트 감독

2009년 여름, 베인은 재정난을 겪고 있던 유소년 시절의 친정팀 페예노르트의 감독으로 부임했다. 그는 로이 마카이, 데니 란트자트, 히오바니 판 브롱크호르스트와 같은 베테랑 선수들과 함께 매우 젊은 스쿼드를 이끌었다. 첫 영입은 그의 전 소속팀에서 다니 페르난데스를 오른쪽 풀백으로 데려온 것이었다. 베인의 페예노르트 감독 첫 시즌은 성공적이었다. 팀을 리그 4위로 이끌며 2010-11 시즌 UEFA 유로파리그 진출권을 확보했고, 이는 몇 년 만에 클럽의 최고 성적이었다.
그러나 다음 시즌을 앞두고 모든 베테랑 선수들이 은퇴하면서 어려운 상황에 직면했다. 그는 소수의 자유 계약 선수나 임대 선수만을 영입할 수 있었다. 페예노르트는 시즌 초반 혼란스러운 모습을 보였다. 개막전에서 FC 위트레흐트를 3대1로 꺾으며 좋은 출발을 보였으나, AA 헨트에 합계 1대2로 패하며 유로파리그 조별리그 진출에 실패했다. 2010년 10월 24일, 필립스 스타디온에서 PSV 에인트호번에게 0대10으로 참패하는 페예노르트 역사상 최악의 패배를 기록했다. 이러한 실망스러운 결과와 한때 강등 위기에 처하기도 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다음 시즌에도 감독직을 유지할 것으로 예상되었다.
하지만 2011년 7월 13일, 베인은 선수들의 신뢰 부족을 이유로 페예노르트 감독직에서 사임했다고 발표했다. 이는 충격적인 결정이었다. 그는 특히 당시 기술 이사였던 마르틴 판 헤일의 무책임한 대응을 강하게 비판하며, "판 헤일 씨는 베인하커와 나를 언제든지 환영한다고 말하지만, 우리가 아직 데 카윕에 가지 않는 것은 그가 있기 때문이다. 다시는 만나고 싶지 않다"고 언론에 밝히며 깊은 불화를 드러냈다.
2.5. KRC 헹크 감독
2011년 8월 말, 베인은 KRC 헹크의 새 감독으로 부임하며 2년 계약을 체결했다. 그는 프랑키 페르카우테렌의 후임으로, 페르카우테렌은 헹크를 이끌고 벨기에 리그 우승과 2011년 벨기에 슈퍼컵 우승을 차지한 뒤 알자지라 클럽으로 떠난 상태였다. 베인은 8월 31일 수요일에 헹크에서 첫 훈련을 진행했다. 그의 헹크 감독 데뷔전은 K. 신트트라위던서 VV를 4대3으로 꺾는 승리였다.
UEFA 챔피언스리그에서는 조별리그 E조에서 3무 3패로 승점 3점을 기록하며 4위에 머물렀다. 발렌시아 CF와의 첫 챔피언스리그 경기에서 0대0 무승부를 기록하며 클럽의 첫 챔피언스리그 승점을 획득했다. 2013년 5월 9일, 그는 헹크를 이끌고 벨기에 컵 우승을 차지했다. 그러나 2014년 2월 23일, 그는 헹크 감독직에서 해임되었다.
2.6. 아포엘 감독
2017년 5월 26일, 베인은 키프로스 챔피언인 아포엘 FC의 새 감독으로 임명되며 1년 계약을 맺었다. 그러나 2017년 7월 28일, 부임 후 단 3경기 만에 비토룰 콘스탄차에게 0대1로 패한 유럽 대항전 경기를 마지막으로 아포엘 감독직에서 조기 해임되었다.
2.7. 감독 경력 통계
팀 | 시작 | 종료 | 대회 | 기록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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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수 | 승 | 무 | 패 | 득점 | 실점 | 득실차 | 승률 (%) | ||||
엑셀시오르 | 2005 | 2006 | 에이르스터 디비시 | 38 | 22 | 9 | 7 | 68 | 25 | 57.89 | |
KNVB컵 | 2 | 1 | 0 | 1 | 6 | 6 | 0 | 50.00 | |||
총계 | 40 | 23 | 9 | 8 | 74 | 31 | 57.50 | ||||
N.E.C. | 2006년 7월 | 2009년 6월 9일 | 에레디비시 | 102 | 35 | 30 | 37 | 126 | 134 | ||
34.31 | |||||||||||
KNVB컵 | 9 | 6 | 0 | 3 | 19 | 11 | 66.67 | ||||
유럽 | 8 | 3 | 1 | 4 | 7 | 9 | |||||
37.50 | |||||||||||
기타 | 10 | 7 | 1 | 2 | 17 | 6 | 70.00 | ||||
총계 | 129 | 51 | 32 | 46 | 169 | 160 | 39.53 | ||||
페예노르트 | 2009년 1월 24일 | 2011년 7월 13일 | 에레디비시 | 68 | 29 | 20 | 19 | 107 | 85 | 42.65 | |
KNVB컵 | 8 | 5 | 1 | 2 | 15 | 8 | 62.50 | ||||
유럽 | 2 | 1 | 0 | 1 | 1 | 2 | |||||
50.00 | |||||||||||
총계 | 78 | 35 | 21 | 22 | 123 | 95 | 44.87 | ||||
헹크 | 2011년 8월 30일 | 2014년 2월 23일 | 벨기에 프로 리그 | 82 | 40 | 18 | 24 | 161 | 118 | 48.78 | |
벨기에 컵 | 9 | 6 | 0 | 3 | 21 | 6 | 66.67 | ||||
유럽 | 21 | 9 | 7 | 5 | 27 | 29 | |||||
42.86 | |||||||||||
기타 | 1 | 0 | 0 | 1 | 0 | 1 | |||||
0.00 | |||||||||||
총계 | 113 | 55 | 25 | 33 | 209 | 154 | 48.67 | ||||
아포엘 | 2017년 5월 26일 | 2017년 7월 28일 | 키프로스 1부 리그 | 0 | 0 | 0 | 0 | 0 | 0 | 0 | 0.00 |
키프로스 컵 | 0 | 0 | 0 | 0 | 0 | 0 | 0 | 0.00 | |||
유럽 | 3 | 2 | 0 | 1 | 2 | 1 | 66.67 | ||||
기타 | 0 | 0 | 0 | 0 | 0 | 0 | 0 | 0.00 | |||
총계 | 3 | 2 | 0 | 1 | 2 | 1 | 66.67 | ||||
커리어 총계 | 리그 | 290 | 126 | 77 | 87 | 462 | 362 | 43.45 | |||
컵 | 28 | 18 | 1 | 9 | 61 | 31 | 64.29 | ||||
유럽 | 34 | 15 | 8 | 11 | 37 | 41 | |||||
44.12 | |||||||||||
기타 | 11 | 7 | 1 | 3 | 17 | 7 | 63.64 | ||||
총계 | 363 | 166 | 87 | 110 | 577 | 441 | 45.73 |
3. 개인사
마리오 베인의 아들 잔루카 빈은 1990년에 태어나 페예노르트, SBV 엑셀시오르, 델타스포르트 블라르딩언, VV 아우더 마스, BVV 바렌드레흐트 등에서 축구 선수로 활동했다. 마리오 베인과 잔루카는 함께 바렌드레흐트에서 '라 에르마나'라는 이름의 타파스 와인 바를 공동 운영하고 있다.
4. 수상 경력
마리오 베인은 선수 시절과 지도자 시절 모두에서 중요한 수상 경력을 가지고 있다.
- 선수
- 하우던 스히윈: 1984년
- 지도자
- 벨기에 컵: 2012-13 시즌 (KRC 헹크)
5. 영향력 및 평가
마리오 베인은 선수 시절 페예노르트의 '데 카윕' 경기장에서 팬들에게 큰 사랑을 받았다. 그의 유쾌한 성격과 뛰어난 기술은 그를 팀의 인기 선수로 만들었다. 지도자로서 그는 SBV 엑셀시오르를 승격시키고, NEC 네이메헌을 UEFA컵에 진출시키는 등 약팀을 이끌고 인상적인 성과를 내는 능력을 보여주었다. 특히 NEC를 떠날 때는 팬들과 선수들로부터 최고의 감독 중 한 명으로 평가받으며 눈물의 고별사를 남기기도 했다.
그러나 페예노르트 감독 시절에는 PSV 에인트호번에게 0대10으로 대패하는 등 어려운 시기를 겪었고, 결국 선수단의 신뢰 부족을 이유로 사임했다. 이 과정에서 당시 기술 이사였던 마르틴 판 헤일과의 불화가 공개적으로 드러나기도 했다. 이러한 논란에도 불구하고, 그는 네덜란드 축구계에서 선수와 감독으로서 모두 중요한 족적을 남긴 인물로 평가받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