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다카야스 아키라(髙安 晃, 髙安 晃Takayasu Akira일본어)는 1990년 2월 28일 일본 이바라키현 쓰치우라시에서 태어난 일본의 스모 선수이다. 그는 2005년에 프로로 데뷔하여 2011년 최상위 디비전인 막내에 진출했는데, 이는 헤이세이 시대에 태어난 선수로는 최초의 기록이다. 그의 최고 랭크는 오제키이며, 현재 다코노우라 방 소속으로 활동하고 있다.
다카야스는 스모 선수 경력 동안 7번의 준우승을 차지했으며, 12번의 특별상(감투상 6회, 수훈상 4회, 기능상 2회)을 수상했다. 또한 요코즈나를 꺾고 5개의 금성을 획득했다. 2017년 1월부터 5월까지 세 차례의 대회에서 총 34승을 거두며 2017년 5월 31일 공식적으로 오제키로 승격했다. 그는 오제키 랭크를 총 15개 대회 동안 유지하며 스모계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했다.
2. 어린 시절과 스모 입문
다카야스는 일본인 아버지와 필리핀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으며, 어린 시절부터 스모에 입문하기까지 여러 경험을 겪었다.
2.1. 어린 시절과 가정 환경
다카야스는 이바라키현 출신 아버지 다카야스 에이지와 필리핀 보홀섬 출신 어머니 베벨리타 베르나다스 사이에서 태어났다. 그에게는 5살 많은 형 히로유키가 있다. 그의 사촌 중 한 명은 록 밴드 MUCC의 전 드러머인 사토치이다. 어린 시절 다카야스는 어머니에게조차 혼난 적이 없을 정도로 응석받이였으며, 아버지는 그가 집중력이 없고 "즐거운 일만 하고 싶어 하는" 아이였다고 회상했다. 2018년 기준으로도 그의 어머니는 도쿄 대회 기간 동안 필리핀 요리인 칼데레타, 판싯 비혼(필리핀식 볶음면), 시니강 등 다양한 음식을 방의 스모 선수들을 위해 직접 만들어 가져다주곤 했다.
다카야스는 쓰치우라 시립 쓰치우라 제일 중학교에서 야구부 소속으로 중견수로 활약했다. 그는 고등학교에서도 야구를 계속할 생각이었으나, 그의 아버지는 이바라키현 출신 스모 선수인 기세노사토와 다카야스의 신체적 유사성을 보고 그에게 스모를 권유했다.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리틀리그에 소속되어 있었고, 당시 요미우리 자이언츠에서 활약하던 도밍고 마르티네스와 닮아 "마루짱"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중학교 시절에는 발에 맞는 신발이 없어 샌들을 신고 학교생활을 했음에도 발이 빨랐다고 어머니는 증언했다. 중학교 1학년 때부터 학원에 다녔으나 성적이 떨어지기 시작했고, 중학교 2학년 때 소수 정예 학원에 견학을 갔다가 강사로부터 "본인의 의지가 있다면 만회할 수 있지만, 지금부터는 늦다"는 말을 듣고 거절당했다. 이에 아버지는 "즐겁게 해라. 학원도 가지 않아도 된다"고 말하며 기술직으로의 진로도 고려했다. 고등학교 진학이 어려워졌지만 "자유의 몸"이 된 다카야스는 야구와 카드 게임에 몰두했다. 저녁 7시에는 귀가하여 부모님이 운영하는 에스닉 요리점을 도왔다.
2.2. 스모 입문 계기
아버지는 "요코즈나의 방에 맡기면 운이 좋으면 세키토리가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하여 "구경만 하자"며 다카야스를 차에 태우고 나루토 방(현 다코노우라 방)으로 사전 통보 없이 향했다. 당시 다카야스는 "절대 싫다!"며 견학을 거부했다. 중학교 졸업 후 진로를 고민하던 그는 "낮에는 일하고 밤에는 학교에 다니며 야구를 하고 싶다"고 생각했으나, "몸 하나로 돈을 버는 것이 적성에 맞다"고 결론 내렸다. 결국 아버지의 권유로 중학교 졸업과 동시에 나루토 방에 입문하여 2005년 3월 대회에서 첫 씨름을 시작했다. 당시 언론에서는 "원래 스모에 큰 관심이 없었지만, 중학교 졸업을 앞두고 호기심에 방문한 나루토 방에서 당시 스승이 큰 손과 발을 만져보고 칭찬하자, 곧바로 마음을 먹었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입문 당시 이미 180 cm의 키와 120 kg의 몸무게, 33 cm의 발 사이즈를 자랑하는 타고난 체격과 나루토 오야카타로부터 "고무공 같다"는 평가를 받은 체질 덕분에 일찍부터 장래가 촉망되었으며, 그 기대에 부응하여 순조롭게 랭크를 올려갔다. 그러나 나루토 방은 낮까지 훈련이 계속되는 등 엄격한 환경이었고, 입문 전의 쾌활함은 사라졌다. 그는 나루토 방의 엄격함을 견디지 못하고 총 7번(아버지는 10번 이상으로 기억)이나 탈주했다. 방이 있던 마쓰도에서 쓰치우라까지 6시간 동안 자전거를 타고 집으로 도망치기도 했다. 방으로 데려가기 전 부모님은 항상 야키니쿠 뷔페에 데려갔지만, 그는 그때마다 화장실에 가는 척하고 도망쳤다. 특히 4번째 탈주 때는 빨간 신호등에 정차한 틈을 타 차에서 뛰어내리기도 했다. 2017년 5월 대회 전까지 본인의 탈주에 대한 기억은 모호하며, 그는 "도망친 이유는 대단한 것이 아니었다고 생각한다. 15세에 익숙하지 않은 환경이었으니까. 좋은 추억이다"라고 말했다. 한번은 부모님이 다카야스가 더 이상 탈주하지 않도록 나루토 오야카타에게 스모 선수들에게 '가와이가리'(엄격한 훈련)를 자제해달라고 무릎을 꿇고 간청했다. 이에 다카야스는 "내가 부모님께 무슨 짓을 시키는 건가"라며 자신의 나약함을 깨달았다. 탈주를 반복하던 시절에는 기세노사토에게도 상대조차 되지 않았고, 좀처럼 기세노사토에게 지도를 받을 기회가 없었다.
3. 스모 경력
다카야스의 스모 선수로서의 활동은 데뷔부터 현재까지 꾸준한 성장과 도전을 거듭해왔다.
3.1. 데뷔와 하위 디비전
탈주를 일삼는 문제아였기에 와카노사토는 "들어왔을 때부터 격이 달랐다"고 평가받던 기세노사토와는 정반대로 보았고 별다른 기대를 하지 않았다. 그러나 기세노사토가 요코즈나 승격 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한 직후의 잡지 기사에서 와카노사토는 "원래 몸의 중심이 탄탄해서, 마쿠시타(幕下) 시절쯤에는 어쩌면 세키토리(関取)가 될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그것이 세키토리를 넘어 산야쿠(三役)에 오르고, 오제키를 목표로 하는 단계까지 왔다"며 다카야스가 출세하면서 자신의 견해가 바뀌었음을 밝혔다.
전환점은 2006년 아버지가 신장암을 앓아 신장 하나를 적출하는 대수술을 받고 운영하던 음식점을 정리한 것이었다. 다카야스는 오제키 승격 직후 이 시기에 대해 "아버지가 바라는 것은 스모에서 성공하는 것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힘내라'는 말을 들으니 마음속 깊이 와닿았다. 꾸물거릴 수 없었다. 결과를 내서 기쁘게 해드리고 싶은 마음이 강했다. 씨름판에 발이 닿으면서 랭크도 올라갔다"고 말했다. 요코노 레이코의 기사에서는 나루토 오야카타가 다카야스를 꾸짖은 적이 없다고 전해진다. 어느 날 밤, 불려가 나루토 오야카타의 방에 가보니, 오야카타는 냉장고에서 아이스크림을 꺼내 주었다고 한다. 다카야스는 "그때 엄하게 대하지 않았다면 지금의 나는 없었을지도 모른다. 스승님은 나를 잘 지켜봐 주셨다"며 지금은 고인이 된 은사에게 감사하고 있다. 다카야스의 재능을 높이 평가했던 나루토 오야카타는 한때 다카야스를 자신의 츠케비토(付人, 개인 비서)로 지목하여 스모에 대한 모든 것을 가르쳤다.
산단메(三段目) 상위 랭크까지 올라갔을 때, 처음으로 기세노사토에게 가슴을 내어주며 훈련했는데, 당시의 느낌을 다카야스는 후에 "몇 번을 부딪혀도 물러서지 않았다. 온몸의 관절 하나하나가 삐걱거리는 듯한 무게를 느꼈다"고 회상했다. 이러한 훈련을 포함하여 하루 100번이 넘는 훈련으로 강해졌다. 식사는 한 끼에 7~8가지 반찬으로 야채가 많았고, 영양식으로 다카야스의 몸은 더욱 강해졌다.
2010년 9월 대회에서 서쪽 마쿠시타 13위의 위치에서 7전 전승을 거두며 마쿠시타 우승을 차지했고, 내규에 따라 다음 11월 대회에서 새로운 주료로 승격하여 마스노야마(다카야스와 마찬가지로 일본-필리핀 혼혈)와 함께 헤이세이 시대에 태어난 최초의 세키토리 선수가 되었다. 주료 승격에 대해 그는 "고생이 헛되지 않았다", "그만두고 싶을 때도 있었다. 부모님의 응원이 힘이 되었다"고 소감을 밝혔고, 나루토 오야카타는 "산야쿠, 그 이상을 노릴 수 있다"며 기대를 표했다. 주료로 승격했을 때도 아버지가 본명으로 스모를 하기를 고집했기에 "일족이 다카야스의 시코나(四股名, 스모 선수 이름)로 스모를 해주면 감사하겠다", "'다카야스' 성을 모두에게 알리고 싶다"며 아래 이름까지 포함하여 바꾸지 않았고, 오제키 승격 후에도 본명을 한 글자도 바꾸지 않고 계속 사용하고 있다. 주료 승격 당시 "일족의 홍보를 위해 본명으로 스모를 하는 것은 전대미문이다"라는 항의가 일부 들어왔다고 한다.
3.2. 주료 및 마쿠우치 진출
새로운 주료로 승격한 직후인 2010년 10월 15일 아키 순업 쓰치우라 대회에서는 하쿠호에게 가슴을 내어주며 훈련했다. 이날 하쿠호는 세키토리 선수 중 가장 많은 18번을 씨름하여 17승 1패를 기록했는데, 유일한 1패는 다카야스에게 당한 것이었다. 후에 다카야스가 오제키로 승격했으니, 하쿠호에게는 선견지명이 있었던 셈이다.
새로운 주료로서 맞이한 다음 11월 대회에서는 11승 4패의 좋은 성적을 거두었고, 도요히비키와의 우승 결정전에서 패배하여 준우승을 차지했다. 동쪽 주료 3위까지 랭크를 크게 올린 다음 2011년 1월 대회에서도 9승 6패로 가치코시(勝ち越し, 승리 우세)를 기록했다. 이어진 5월 기량 심사 대회에서도 동쪽 주료 필두의 위치에서 8승 7패로 가치코시를 확정하며 다음 7월 대회에서 새로운 막내에 진출했다. 다카야스와 동시에 주료로 승격한 헤이세이 시대 태생의 마스노야마를 한 걸음 앞서 막내에 진출한 것에 대해 "목표했던 지위라 기쁘다"고 솔직하게 기뻐했다. 주료를 3개 대회 만에 통과한 요인에 대해 "망설임 없이 과감한 스모를 할 수 있게 되었다"고 설명했다. 아버지의 강력한 권유로 당분간 시코나는 본명인 다카야스를 그대로 사용하기로 했다. 그는 "정신력을 단련하여 우선 가치코시를 하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그러나 데일리 스포츠에서 다카야스 기사는 동시에 막내에 진출한 "마츠코 디럭스와 매우 닮은" 다카라후지와 "패배 우세로 승격"이라는 44년 만의 진기한 사건의 당사자가 된 다카미사카에게 밀려 작은 비중으로 다뤄졌다.
새로운 막내로 진출한 2011년 7월 대회에서는 8일차까지 7승 1패로 매우 좋은 컨디션을 보였고, 후반전에는 패배가 많았지만 최종적으로 9승 6패로 가치코시를 기록했다. 막내 4번째 대회인 2012년 1월 대회에서는 서쪽 마에가시라 3위까지 랭크를 올렸고, 8일차에는 요코즈나 하쿠호와 대결하여 헤이세이 시대 태생의 스모 선수로는 처음으로 무스비노이치반(結びの一番, 마지막 대결)을 치렀다. 같은 해 5월 대회에서는 자신의 최고 랭크인 서쪽 마에가시라 필두까지 랭크를 올렸으나, 5승 10패로 크게 마케코시(負け越し, 패배 우세)를 기록했다. 다음 7월 대회에서도 첫날부터 8연패를 기록하며 부진했으나, 후반에 회복하여 6승 9패로 마케코시를 기록했다. 다음 9월 대회에서는 첫날부터 8연승으로 나카비(中日, 대회 중간)에 가치코시를 확정했고, 승리하면 감투상 수상이 확정되는 센슈라쿠(千秋楽, 대회 마지막 날)의 마스노야마전에서 패배하여 산쇼 수상은 불발되었으나, 10승 5패의 좋은 성적을 거두었다.
3.3. 세키와케와 고무스비 시절
2013년 1월 대회에서는 6일차부터 9연승을 기록하며 10일차에 가치코시를 확정했고, 12승 3패의 좋은 성적으로 자신에게 처음으로 감투상을 안겨주었다. 당시 기자 클럽은 센슈라쿠에서 13승을 거둘 경우 기능상 수상도 추천했다. 다음 3월 대회에서는 3일차에 요코즈나 하루마후지를 꺾고 자신에게 처음으로 금성을 획득했으나, 결과적으로 5승 10패로 크게 마케코시를 기록했다. 이어진 2013년 7월 대회에서는 3일차에 요코즈나 하루마후지를 우와테히네리로 꺾고 두 번째 금성을 획득했으며, 그 후에도 5일차에 가쿠류, 6일차에 고토오슈 등 두 명의 오제키를 꺾고 9승 6패로 가치코시를 기록하며 첫 수훈상을 수상했다. 다음 9월 대회에서는 고무스비로 승격하여 헤이세이 시대 태생 최초의 산야쿠 선수가 되었다. 그러나 그 대회에서는 요코즈나와 오제키 선수들로부터 승리를 거두지 못하고(고토오슈의 부전승 제외), 5승 10패로 크게 마케코시를 기록했다. 다음 11월 대회에서는 랭크 운이 좋아 불과 2단계 반 하락한 동쪽 마에가시라 3위의 지위에 올랐으나, 여기서 3승 12패의 대패를 당했다.
2013년 말에는 스승인 14대 나루토(다카노츠루)가 다코노우라로 명적을 변경함에 따라 방을 이전하는 어려움을 겪었다. 다코노우라 방 소속 선수로서 맞이한 2014년 1월 대회 직전인 2014년 1월 2일에는 목도를 휘두르는 독특한 조정법을 실천하는 모습이 전해졌다. 1월 대회는 종반 4연승으로 추격하여 9승 6패로 가치코시를 기록했다.
같은 해 5월 대회를 동쪽 마에가시라 8위에서 6승 9패로 마친 다카야스는 센슈라쿠 다음 날 "우승 경쟁에 참여하고 싶다"며 다음 7월 대회를 향한 결의를 다지고 어머니의 고향인 필리핀으로 떠났다. 마닐라의 의원회관에서 매니 파퀴아오를 만나고 어머니의 형제들과 시간을 보냈다. 참고로 다카야스가 필리핀을 방문한 것은 이때가 처음이었다. 13대 나루토 오야카타도 파퀴아오를 복서로서 좋아했으며, 훈련장에서 경기에 대한 이야기를 자주 나누었다고 한다.
서쪽 마에가시라 11위의 지위로 맞이한 그 7월 대회는 2012년 9월 대회 이후 처음으로 나카비 가치코시를 달성했으며, 산야쿠 이상과의 대결이 오제키 고토쇼기쿠 단 한 명에 그쳤던 유리한 상황 덕분에 우승 경쟁에 끝까지 참여했으나, 센슈라쿠 경기를 마친 11승 4패 시점에서 12승 3패 동률인 선수들 간의 우승 결정전에 대한 희망은 사라졌다. 결국 우승은 13승 2패의 하쿠호가 차지했지만, 2013년 1월 대회 이후 처음으로 두 자릿수 승리를 거두었을 뿐만 아니라 감투상을 수상하는 활약을 펼쳤다.
동쪽 마에가시라 3위의 지위로 맞이한 11월 대회에서는 하쿠호에게 처음으로 승리하여 유일한 패배를 안겨주었고, 이 외에도 하루마후지, 고에이도 등 두 명의 요코즈나와 한 명의 오제키를 꺾는 활약으로 10승 5패의 좋은 성적을 거두었으며, 두 개의 금성이 평가되어 두 번째 수훈상을 수상했다.
2015년 봄 순업의 토너먼트전에서는 우승을 차지하여 100.00 만 JPY의 상금을 손에 넣었고, 이것이 계기가 되었는지 바로 다음 5월 대회에서는 10승 5패로 가치코시를 기록했다. 같은 해 9월 대회에서는 2일차에 오제키 고에이도를 격파하는 승리를 거두었으나, 3일차의 이치노조전에서 왼쪽 다리를 다쳐 "왼쪽 종아리 근육 좌상, 왼쪽 발목 인대 손상으로 약 3주간의 안정 가료가 필요할 것으로 예상된다"는 진단서를 제출하고 4일차부터 도중 휴장(이날 도치오잔전은 부전패)하여, 이것이 자신에게는 첫 휴장이 되었다. 휴장 후 맞이한 다음 11월 대회는 대회 전에 훈련을 하지 못했다고 본인이 말했으나, 9일차에 가치코시를 확정하는 등 좋은 컨디션을 보였다. 그러나 10일차 이후로는 13일차를 제외하고는 승리를 거두지 못하고, 종반의 부진으로 9승 6패에 그쳤다.
3.4. 오제키 승격
2016년 7월 대회에서는 고무스비로 복귀하여 11승 4패의 좋은 성적을 거두며 자신에게 처음으로 기능상을 안겨주었다. 다음 9월 대회는 새로운 세키와케로 승격했다. 한때 우승 경쟁에 참여하는 등 좋은 컨디션을 보였으나, 종반 3연패를 당하며 10승 5패로 대회를 마쳤다. 종반 3연패에 대해 "젠장"이라는 말을 남기고, 센슈라쿠 경기 후 준비실에서는 기자들의 질문에 일절 응하지 않았다. 그러나 다음 11월 대회는 오제키 승격이 걸린 대회였고, 승격을 맡은 심판부의 니쇼노세키 부장은 "우승 경쟁에 참여하고, 최소한 (승격 기준인 직전 3개 대회 합계) 33승을 달성해야 한다"며 12승을 오제키 승격의 목표로 설정했다. 10월 14일 아키 순업 도요하시 대회에서는 테루노후지와 산방게이코(三番稽古, 연속 훈련)를 하여 12연승을 기록하며 좋은 컨디션을 보였다. 그러나 11월 대회는 6일차까지 3패를 기록하며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었으나, 나카비의 4패로 이번 대회에서의 오제키 승격은 실패했다. 게다가 10일차에는 6패를 기록하며 오제키 승격을 다음 대회로 미룰 수 없게 되었다. 그리고 나카비부터 5연패를 기록하며 12일차에 마케코시를 기록, 세키와케에서 강등이 확정되었다. 그럼에도 13일차부터 남은 경기를 모두 승리하여 7승 8패로 의지를 보였다. 12월 9일 동 순업 아마쿠사 대회에서는 지요노쿠니, 쇼다이, 사토(현 다카케이쇼), 도치오잔, 고후, 가가야키를 상대로 12번을 씨름하여 8승 4패를 기록했다. 몸무게가 늘어난 탓인지 움직임에 날카로움이 부족했고, 사토(현 다카케이쇼)의 츠키오시(突き押し, 밀어붙이기)에 밀리는 모습이 보였다고 전해졌다.

2017년 1월 대회에서는 다시 동쪽 고무스비로 출전하여 하쿠호, 가쿠류 등 두 명의 요코즈나와 테루노후지, 고에이도, 고토쇼기쿠 등 세 명의 오제키를 꺾는 활약을 보였다. 최종적으로 11승을 기록하며 자신에게 4번째 감투상을 안겨주었다. 3월 7일 다코노우라 방의 오사카 대회 훈련장에서는 30번 연속으로 스모를 하여 요코즈나 기세노사토와 9승 14패, 훈련을 위해 방문한 막내 요시카제에게 6승 1패를 기록하며 충실한 훈련을 소화했다. 3월 대회는 세키와케로 복귀했다. 첫날부터 동방의 요코즈나 기세노사토와 함께 10연승을 기록했다. 같은 방 소속 스모 선수 두 명이 첫날부터 10연승을 기록한 것은 2004년 3월 대회 다카사고 방의 요코즈나 아사쇼류와 당시 마에가시라였던 아사세키류 이후 13년 만의 기록이다. 15일 제도가 정착된 이후, 같은 방 소속 두 명의 세키토리 선수만이 10전 전승을 기록한 것은 사상 처음이다. 그러나 11일차부터 3연패를 기록했다. 그럼에도 이번 대회는 12승 3패로 수훈상을 획득했다. 4월 21일, 아버지의 고향이자 자신도 유년기에 수년간 거주했던 이바라키현 미토시에서 열린 봄 순업에 참가했다. 우연히도 전날 숙박했던 호텔 바로 앞은 과거 부모님이 레스토랑을 운영했던 곳으로, 당시 기억이 확실치 않은 유치원 시절 이전의 일이지만 "그립다. 생각난다. 어렴풋이 기억나는 것은 아버지와 산책했던 일이다"라고 회상했다.
5월 대회 전인 5월 2일에는 "첫날부터 당당하게 전승을 목표로 하겠다"고 강한 발언을 했다. 2017년 5월 28일, 5월 대회를 11승 4패로 마치며 총 34승을 기록했고, 경기 후 12대 니쇼노세키(와카시마즈) 심판부장이 다카야스의 오제키 승격을 의제로 한 긴급 임시 이사회를 요청했다고 발표했다. 이로써 오제키 승격이 확실시되었다. 5월 31일, 다카야스는 오제키 승격 전달식에서 "오제키의 이름에 부끄럽지 않게 정정당당하게 정진하겠습니다"라고 힘찬 구상을 밝혔다. 승격 전달식 직전에 구상에 대해 다카야스는 "제가 생각하는 것을 솔직하게 말하고 싶다. 앞으로의 각오와 마음을 담아 전달하고 싶다"고 말했다. 승격 전달식 후에는 구상에 포함된 "정정당당"이라는 단어에 대해 산야쿠에 정착한 지 1년 정도 전부터 마음속에 품고 있던 말이라고 밝히며 "가장 좋아하는 말이다. 이 말을 가슴에 품고 노력하여 이런 날을 맞이할 수 있게 되면 사용하려 했다"고 설명했다. 오제키 승격 전달식이 열렸을 때, 다카야스는 다음 7월 대회에 대해 "역시 여기(오제키)에서 더 위로 올라가려면 우승밖에 없다. 목표로 삼아 노력하겠다"고 취재에 답했고, 기세노사토와의 우승 결정전 이미지를 묻자 10초 가까이 생각한 후 "가능하다면 최고일 것 같다"며 형님을 넘어서겠다는 각오를 다지고 힘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시코나에 대해서는 새로운 주료로 승격할 때 아버지가 당시 스승에게 본명으로 스모를 해달라고 부탁하여 이후 본명으로 정착했기에 개명할 의사는 없다고 밝혔다.


3.5. 오제키 시절의 도전과 부상
6월 5일 본격적인 훈련을 재개했다. 본인에 따르면 3일 동안 훈련장에서 가볍게 땀을 흘렸다고 한다. 5일에는 스모를 하지 않고 스리아시(すり足, 발 끌기)를 하거나 젊은 선수들에게 가슴을 내어주었다. 당분간은 기본 운동과 코어 근육 강화에 힘쓸 방침이며 "격렬한 훈련을 해도 망가지지 않는 몸을 만들고 싶다"고 설명했다. 5월 여름 대회 센슈라쿠에서 오제키 테루노후지의 고테나게(小手投げ, 팔 비틀어 던지기)에 굴복했을 때 오른쪽 팔꿈치를 다쳤으나 "이제 나았다"며 문제가 없음을 강조했다. 6월 26일 7월 대회 반즈케(番付, 랭크표)가 발표되었고, 반즈케에 오제키로서 다카야스의 이름이 올랐다. 첫 씨름부터 오제키 승격까지 73개 대회가 소요되었는데, 이는 당시 기준으로 역대 9위의 느린 기록이다. 7월 대회의 목표로는 "여기서 위(요코즈나)를 목표로 하려면 우승이 필요하다. 15일 동안 당당하게 스모를 하여 우승하고 싶다"고 말했다. 7월 대회는 3일차인 11일에 스모 저널리스트 아라이 타로가 "대회 전 훈련에서 컨디션이 좋았던 오제키 다카야스 선수가 13승으로 우승할 것으로 예상한다"고 말했으며, 실제로 10일차에 가치코시를 확정하는 등 이때까지는 순조로웠으나, 11일차부터 14일차까지 계속 패배하며 갑자기 무너졌다. 센슈라쿠의 고에이도전에서는 승리하여 4연패를 끊었으나, 9승 6패로 다소 부진했다. 또한 이 대회의 첫날에는 처음 만난 호쿠토후지에게 패배하여, 2009년 11월 대회 하루마후지(대 요시카제) 이후 쇼와 시대 이래 4번째로 새로운 오제키가 첫날 처음 만난 상대에게 패배한 기록이 되었다(새로운 오제키가 처음 만난 상대와 대결한 것은 10번째 사례). 이날에는 고에이도, 테루노후지도 연이어 패배하여, 첫날에 3명의 오제키 전원이 패배한 것은 1978년 9월 대회 이후 처음으로, 미에노우미, 아사히쿠니, 다카노하나 이후의 기록이다. 2017년 8월 2일 여름 순업 도야마 대회에서는 컨디션 난조로 훈련 씨름판에 오르지 못했으나, 19일 삿포로 대회에서는 니시키기와 시간 관계상 중단될 때까지 총 16번의 산방게이코를 했다. 전날에는 아부사키와 스모를 하는 등 요코즈나, 오제키 선수 중 유일하게 연일 훈련을 했다. 그는 "나는 하지 않으면 안 된다. 어떤 상황에서도 하지 않으면 순업의 생활 리듬이 나빠진다"고 당연하다는 듯이 말했다. 준비실에서도 다카노이와 등과 캐치볼을 하며 "땀이 난다"고 말하는 등 힘이 넘치는 모습이었다.
9월 대회는 첫날 승리했다. 그러나 2일차 다마와시전에서 다마와시의 격렬한 츠키오시(突き押し, 밀어붙이기)에 일방적으로 밀리며, 반신 자세로 오른쪽 다리 하나로 씨름판에 남으려다 오른쪽 허벅지를 다쳤다. 다카야스는 패배 후 인사를 하려고 씨름판으로 돌아왔으나 이미 이때는 다리를 절고 있었고, 그 후 휠체어를 타고 스모 진료소로 향했다. 이후 다카야스는 "오른쪽 대퇴근군 손상" 진단서를 스모 협회에 제출하고 휴장했으며, 3일차 호쿠토후지전은 부전패가 되었다. 아키 순업을 전면 휴장한 다카야스는 그동안 치료와 병행하여 훈련을 했다. 깁스를 풀고 목발 없이 걸을 수 있게 된 것은 10월 초였다. 10월 31일, 후쿠오카현 오노조시 다코노우라 방의 규슈 대회 훈련장에서 기세노사토와 훈련하여 1승 10패를 기록, 기세노사토의 회복을 인상 깊게 보여주었다. 오제키 3번째 대회에서 갑작스럽게 카도반(角番, 강등 위기)이 된 다카야스는 "편하게 하겠다. 절박하게 하면 내 스모를 제대로 할 수 없다. 이번 대회가 안 되면 다음 대회라는 마음으로 하겠다"고 말하며, 앞으로는 출장 훈련도 고려하여 조정해 나갈 방침을 밝혔다. 걸을 수 있게 된 시기가 늦었기에, 대회 전 스모 잡지 기사에서는 11월 대회에서의 활약 가능성이 낮게 평가되었다.
11월 대회는 첫 카도반이었으나 3일차 아부사키전에서 상대가 발을 헛디디는 행운의 승리를 거두기도 하여 11일차에 가치코시를 확정했다. 그러나 12일차 경기에서 부상을 당했다. 13일차부터 "오른쪽 내전근 근육 손상으로 3주 정도의 가료가 필요하다"는 진단서를 제출하고 휴장했다. 13일차 고에이도전은 부전패가 되었다. 다코노우라 오야카타에 따르면 "지난 대회와 같은 부위를 다쳤다. 걸을 수는 있지만 스모를 하는 것은 어렵다. 끝까지 출전하기를 바랐지만, 여기서 부상이 길어져 악화되면 안 된다고 판단했다"고 한다. 오제키로서의 진가가 시험될 2018년 1월 대회는 7일차까지 4승 3패로 초반에 주춤했으나, 남은 경기를 모두 승리하여 12승 3패를 기록하며 자신에게 처음으로 오제키로서 두 자릿수 승리를 달성함과 동시에 2위와의 2승 차이로 준우승을 기록했다. 이어진 3월 대회는 첫날부터 연패를 기록했으나, 그 후 12일차까지 연승하며 2패로 우승 경쟁에 참여했다. 그러나 12일차에 지요마루에게 패배하며 연승이 끊겼다. 우승은 놓쳤지만, 그 후 다시 연승을 기록하여 센슈라쿠에서는 재경기 끝에 요코즈나 가쿠류를 꺾고 12승 3패로 2개 대회 연속 준우승을 기록했다. 4월 3일 봄 순업 사카이 대회에서는 산방게이코에서 아비, 쇼다이, 세키와케 미타케우미와 총 12번을 씨름하여 11승을 기록했다.
5월 대회는 첫날부터 "왼쪽 상완삼각근 부분 파열로 약 3주간의 안정과 가료가 필요하다"는 진단서와 함께 휴장을 신고했다.
두 번째 카도반으로 맞이한 7월 대회는 타치아이(立ち合い, 시작 자세)의 파워가 돌아오지 않아 초반에 패배를 기록했으나, 12일차에 가치코시를 확정하며 9승 6패로 마쳤다. 8월 31일 열린 요코즈나 심의위원회의 훈련 총견은 허리 통증 등으로 회피했으나, 9월 2일 도키쓰카제 방으로 출장 훈련을 가서 방의 도요야마, 마찬가지로 출장 훈련을 온 아사노야마와 총 19번의 스모를 하여 14승을 기록했다. 다카야스 본인은 훈련에 대해 "80% 정도일 것이다"라고 말했다.
9월 대회에서는 첫날부터 7연승을 기록했다. 8일차에 쇼다이에게 패배하며 첫 패배를 기록했으나, 9일차에 가치코시를 확정했다. 10일차에는 같은 1패인 고에이도에게 승리했으나, 다음 날 전승 중이던 하쿠호에게 패배하며 2패로 후퇴했다. 그 후 11승까지 승수를 늘렸으나 14일차, 센슈라쿠에 연패하며 우승을 놓쳤다.
11월 대회는 7일차까지 2패를 기록했으나, 그 후 순조롭게 승수를 늘려 10일차에 가치코시를 확정했고, 12일차에 두 자릿수 승리를 달성했다. 14일차에는 1패인 다카케이쇼에게 역전승을 거두며 2패로 동률을 이루었다. 센슈라쿠, 다카케이쇼가 이미 13승을 거두었기에 자신이 승리하면 결정전으로 이어지는 상황이었으나, 긴 씨름 끝에 스쿠이나게(掬い投げ, 퍼올려 던지기)로 미타케우미에게 패배하여 또다시 우승을 놓쳤다. 그럼에도 자신에게 가장 많은 승수인 12승 3패로 대회를 마쳤다.
2019년 1월 대회는 9일차까지 4승 5패였으나, 종반에 역전하여 9승 6패를 기록했다. 대회 후 2월 10일 열린 오즈모 토너먼트에서 첫 우승을 차지했다. 결승전에서 요시카제를 요리키리(寄り切り, 밀어내기)로 꺾은 다카야스는 우승 상금 250.00 만 JPY의 사용처에 대해 "몸에 투자하겠다"고 말했다.
3월 대회는 3일차에 패배를 기록했으나, 안정적인 스모 내용으로 9일차에 가치코시를 확정했다. 그 후 요코즈나 가쿠류에게만 승리를 거두고 부진했으나, 2개 대회 만에 두 자릿수 승리인 10승 5패로 대회를 마쳤다. 센슈라쿠에 허리를 다쳐 도중부터 참가하게 되었다. 4월 18일 봄 순업 아다치 대회에서는 도치오잔과 산방게이코를 하여 5승 4패로 컨디션이 좋지 않았다. 26일 오메 대회에서는 이치노조와의 산방게이코에서 7승 1패를 기록하며 컨디션을 끌어올렸다. 그러나 5월 6일 요코즈나 심의위원회의 훈련 총견에서는 하쿠호를 제외한 산야쿠 이상 선수들과의 모시아이(申し合い, 자유 훈련)에서 5승 11패로 부진한 모습이 전해졌다.
5월 대회는 첫날 어이없이 패배했고, 6일차까지 마에가시라 선수들에게 3패를 기록했다. 7일차부터 4연승을 기록했으나, 12일차에 5패를 기록하며 우승 경쟁에서 완전히 탈락했다. 그러나 13일차에는 우승 경쟁 선두에 있던 가쿠류를 꺾었고, 센슈라쿠에서는 이미 오제키 복귀를 확정했던 도치노신을 상대로 특기인 요츠(四つ, 상대의 마와시를 잡는 기술)로 꺾는 등 의지를 보였으나, 결국 두 자릿수 승리에는 미치지 못하는 9승 6패로 대회를 마쳤다.
7월 대회는 2일차에 일찌감치 패배했으나, 그 후 6연승을 기록했다. 그러나 8일차 다마와시전에서 오시다오시(押し倒し, 밀어 넘어뜨리기)로 7승을 거두었을 때 다마와시의 고테나게에 왼쪽 팔꿈치를 다쳐 팔을 감싸며 씨름판을 내려왔다. 가치코시가 걸린 9일차 쇼다이전에서는 보호대를 착용하고 대결했으나, 도효기와(土俵際, 씨름판 가장자리)의 츠키오토시(突き落とし, 밀어 떨어뜨리기)에 패배했다. 다음 10일차 아키세이전에서는 왼쪽 팔을 거의 사용하지 않고 오른쪽 팔로 계속 공격하여 요리키리로 8승 2패를 기록하며 가치코시를 확정했다. 그러나 왼쪽 팔꿈치 부상은 좋지 않았고, 11일차 요코즈나 하쿠호전은 "왼쪽 팔꿈치 관절 내측 측부 인대 파열로 약 1개월의 휴식 및 가료가 필요할 것으로 예상된다"며 도중 휴장했다. 이로 인해 쇼와 시대 이후 처음으로 4명의 오제키 전원이 휴장하는 이상 사태가 발생했다(카도반인 다카케이쇼는 첫날부터 전휴로 다음 대회 세키와케 강등, 도치노신과 고에이도는 도중 휴장). 대회 후 여름 순업은 전면 휴장했다. 다음 9월 대회 전까지도 왼쪽 팔꿈치가 회복되지 않아 맹훈련을 할 수 없었고, 이 대회는 첫날부터 전면 휴장을 선언했다.
2019년 10월 28일, 엔카 가수 모리 고노미와 약혼한 사실이 밝혀졌다. 두 사람은 2016년 2월 NHK 복지 오즈모에서 처음 만났고, 2017년 5월 다코노우라 방의 여름 대회 센슈라쿠 파티에서 모리가 호소카와 다카시와 함께 초대되어 재회했다. 동갑이라는 점에 의기투합하여 곧 교제가 시작되었고, 2019년 여름 다카야스가 프러포즈했다고 한다.
그러나 11월 2일 사도가타케 방에서 열린 니쇼노세키 이치몬(一門, 문파) 연합 훈련에서는 류덴 등 마에가시라 3명에게 총 27번의 씨름에서 13승 14패로 부진한 모습이 전해졌다. 부상당한 왼쪽 팔꿈치를 감싸는 스모 때문에 이치몬 이사인 시바타야마에게 "자신의 형태로 훈련하지 않으면 대회 중에도 어중간해진다. 이제 와서 팔꿈치가 '무섭다'고 말할 때가 아니다"라고 혹평을 받았다.


3.6. 오제키 강등
세 번째 카도반으로 맞이한 11월 대회는 7일차 종료 시점에서 3승 4패로 패배가 앞서며 부진했다. 그리고 나카비에는 스모 역사상 처음으로 막내 도효이리(土俵入り, 씨름판 입장식)를 마친 후, 준비실에서 준비 운동 중 허리 통증 악화(급성 요통)를 호소하며 갑작스럽게 휴장을 발표했고, 다카라후지전은 부전패가 되었다. 도효이리 참가 후 갑자기 휴장이 발표되어 관객석은 크게 술렁였다고 한다. 그 후 재출전하지 않겠다고 선언했으며, 오제키로서 2개 대회 연속 마케코시를 기록하여 다음 대회에는 세키와케로 강등이 확정되었다. 오제키 재위 대회 수는 15개 대회로, 현재 바루토와 함께 역대 12위 타이의 단명 오제키이다.
대회 후인 11월 27일, 12월 1일부터 시작되는 겨울 순업을 첫날부터 휴장할 것이 스모 협회로부터 공표되었다. 2020년 1월 8일 오구루마 방에서 열린 니쇼노세키 이치몬 연합 훈련에서는 세키토리 선수 중 가장 많은 19번의 씨름을 했고, 스모 해설가 기타노후지도 "(다카야스는) 생각보다 좋다. 그만큼 많은 횟수를 소화할 수 있다. 후련해진 것 같다"며 부활을 예감했다.
2020년 1월 대회, 10승을 거두면 오제키로 특례 복귀할 수 있는 상황이었으나, 첫날부터 부진이 계속되었다. 그리고 9일차 다카라후지전에서 6패를 기록하며 1개 대회 만의 오제키 특례 복귀는 사라졌다. 이 대회는 6승 9패로 마쳐 다음 대회에는 마에가시라로 강등될 것이 확정되었다.
2월 9일 제44회 일본 오즈모 토너먼트에서는 2년 연속 2번째 우승을 차지하며 좋은 컨디션을 보였다. 28일 사카이시 오구루마 방 오사카 대회 훈련장에서는 니쇼노세키 이치몬 연합 훈련에서 다카케이쇼와 10번의 산방스모를 하여 7승 3패를 기록했다.
그러나 3월 대회는 첫날부터 4연패를 기록했고, 4일차 가쿠류전에서 왼쪽 다리를 다쳐 5일차부터 협회에 "왼쪽 대퇴 이두근 손상, 반건양근 손상, 반막양근 손상으로 약 4주 정도의 안정 가료가 필요할 것으로 예상된다"는 진단서를 제출하고 도중 휴장했다.
동쪽 마에가시라 13위로 맞이한 7월 대회는 첫날 고토노와카에게 패배하는 등 불안한 출발이었으나, 11일차부터 센슈라쿠까지 5연승을 기록하며 10승 5패로 두 자릿수 승리를 달성했다. 또한 6일차에는 전 오제키 테루노후지와 대결하여 승리했다. 이 대회를 우승하게 된 테루노후지에게 마에가시라 선수 중 유일하게 패배를 안겨주며 존재감을 과시했다.
2020년 8월 6일, 모리 고노미와 7월 중순에 혼인 신고를 마친 사실이 공표되었다. 모리 고노미는 당시 임신 4개월이었고, 2021년 2월 출산 예정이라고 전해졌다. 다카야스는 "남자아이라면 스모 선수로, 여자아이라면 엔카 가수로. 어느 쪽일까"라며 탄생을 손꼽아 기다리는 모습을 보였다.
동쪽 마에가시라 6위로 맞이한 아키 대회에서는 나카비 시점에서 6승 2패로 우승 경쟁 선두에 나란히 있었다. 그러나 9일차부터 컨디션이 좋았던 와카타카카게, 아부사키, 쇼다이에게 연달아 패배하며 우승 경쟁에서 탈락했다. 그러나 12일차부터 4연승을 기록하며 2개 대회 연속 10승 5패를 기록했다.
2020년 10월 22일 합동 훈련에서는 미타케우미 등과 14번을 씨름하여 10승 4패를 기록했다. 훈련 후, 7월에 첫 아이가 태어날 예정인 가운데 "아직 은퇴할 생각은 없고 스모를 열심히 해서 (첫 아이가) 철이 들었을 때 좋은 모습을 보여줄 수 있도록 아직 더 노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11월 대회는 복귀 산야쿠인 서쪽 고무스비로 맞이하여 8승 7패로 마쳤다.
2020년 12월 18일 료고쿠 고쿠기칸 내 스모 교습소에서 열린 합동 훈련에서는 타치아이에서 좌우에 구애받지 않고 부딪히는 등 다양한 시도를 했으며, 세키와케 미타케우미, 고무스비 테루노후지 등을 상대로 13승 2패의 충실한 내용을 선보였다.
2021년 목표로 첫 우승과 오제키 복귀를 내세웠다.
2021년 1월 대회는 동쪽 고무스비 랭크에서 9승 6패로 마쳤다.
2021년 2월 17일, 첫 아이인 딸이 태어났다.
지난 대회와 마찬가지로 동쪽 고무스비로 맞이한 2021년 3월 대회는 첫날 아키세이에게 패배했으나, 그 후 9연승을 기록하며 10일차 시점에서 2위와 2승 차이를 벌렸다. 그러나 11일차에는 부진하던 오제키 쇼다이에게 패배하며 2패로 후퇴했다. 게다가 13일차 이후 3연패를 당하며 최종적으로 10승 5패로 대회를 마쳤다. 센슈라쿠에는 승리하면 감투상 수상이라는 조건이 붙었으나, 아오이야마에게 패배하여 감투상을 수상하지 못했다.
동쪽 세키와케가 된 5월 대회는 나카비 시점에서 6승 2패였으나, 테루노후지나 다카케이쇼에게 패배하며 우승 경쟁에서 탈락했다. 그럼에도 14일차에 10승을 거두며 2개 대회 연속 두 자릿수 승리를 달성했다. 참고로 이 대회는 12일차에 부전승으로 가치코시를 확정하고 인터뷰를 했으나, 그 승리는 아사노야마의 불상사로 인한 것이었다.
7월 대회는 성적에 따라 9월 대회에서 오제키 복귀도 가능성이 있는 상황이었으나, 대회 직전인 7월 1일 훈련 후 급성 요통이 발생하여 대회 휴장이 결정되었다. 당시에는 9월 대회에서의 오제키 복귀는 절망적으로 보였으나, 3일차부터 출전했다.
대회 중, 형제 선수인 기세노사토가 아라이소 방 신설을 앞두고 있는 가운데, 방에 입문 초기부터 함께 훈련했던 기세노사토와의 훈련에 대해 "1만 번 이상은 했을 것이다"라고 회상하며 방을 떠나는 기세노사토를 아쉬워했다.
9월 대회 11일차 테루노후지전에서는 요리키리로 패배하여 씨름판 아래로 떨어졌을 때 곧바로 일어나지 못하고 미동도 하지 않는 모습이 있었다. 이에 기타노후지도 "저도 걱정했지만, 그 경우에는 씨름판 아래에 있던 심판이 좀 더 침착하게 움직였어야 했다고 생각한다. 다카야스가 움직이지 못하게 된 후 상당한 시간 동안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지켜보기만 했는데, 일단 먼저 승리를 선언했어야 했다고 생각한다"며 심판부의 대응에 불만을 표했다. 이 부상으로 인해 협회에 "오른쪽 대둔근 근육 좌상 의심으로 약 2주간의 안정 가료가 필요할 것으로 예상된다"는 진단서를 제출하고 12일차부터 휴장했다. 마케코시가 확정되었고, 다음 11월 대회에는 6개 대회 연속 지켜왔던 산야쿠에서 강등될 것이 확실시되었다.
10월 25일 스모 교습소에서 열린 합동 훈련에서는 세키와케 미타케우미 등을 상대로 총 14번의 스모를 하여 "감각이 좋았다. 공격적인 스모를 할 수 있었다"고 회상했다. 부상 상태에 대해서는 "타박상이었는데, 이제 괜찮다. 순조롭다"며 완벽한 상태임을 강조했다.
2022년 3월 1일, 아내 모리 고노미가 공식 블로그에서 둘째 아이 임신 사실을 밝혔으며, 같은 해 여름쯤 출산 예정이라고 밝혔다.
3월 대회는 한때 170 kg 중반까지 떨어졌던 몸무게를 근력 훈련과 식사 훈련으로 183 kg까지 되돌렸고, NHK 스모 중계 해설을 맡은 21대 마가키(하쿠호 쇼)가 "먹기 좋은 때랄까, 육즙이 많다고 할까. 싱싱함이 있다. 탄력이 있다"고 평가할 정도로 외모도 변화했다. 이 대회는 절정의 컨디션으로 2017년 3월 대회 이후 처음으로 나카비 가치코시를 확정했다. 또한 센슈라쿠 결과와 상관없이 감투상 수상이 확정되었다. 12승 3패로 와카타카카게와의 우승 결정전에 진출했으나, 패배하여 첫 우승을 놓쳤다. 우승 결정전 후, 앞으로도 막내 최고 우승을 목표로 하는 의지를 밝혔다.
13대 니쇼노세키(기세노사토)는 젊은 시절 탈주를 일삼던 다카야스가 이 대회에서 우승 직전까지 분투한 것에 대해 "설마 세키토리가 될 줄은 몰랐던 스모 선수였으니까요. 우승이라니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고 웃었다. 또한 대회 딱 1년 전, 다카야스와의 산방게이코에서 힘과 무게를 느끼지 못해 다카야스의 끝을 예감했으나, 이 대회의 다카야스를 13대 니쇼노세키는 "어깨부터 등까지의 탄력이 대단하다. 허리 주변도 상당히 굵다. 햄스트링도 부활했다"며 놀라워했다. 13대 니쇼노세키는 또한 훈련에서 가슴을 내어주며 젊은 선수들과 훈련하는 방법을 궁리하고 있을지도 모른다고 추측했다.
5월 대회 전인 5월 1일, 방의 젊은 선수들과 50번 스모를 하는 등 맹훈련으로 순조롭게 컨디션을 끌어올리고 있다고 말했다. 대회 직전 기타노후지의 칼럼에서는 다카야스가 우승 후보로 거론되었다. 그러나 대회에서는 막내 상위 랭크의 벽에 막혀 우승 경쟁은커녕 6승 9패로 마케코시를 기록했다.
6월 6일 스모 선수들의 출장 훈련이 2년 3개월 만에 재개되었고, 자신도 곧바로 오테카제 방에서 출장 훈련을 했다. 13대 니쇼노세키가 방에서 독립한 이후 방의 젊은 선수들과만 훈련할 수 있었던 상황에서 출장 훈련이 재개된 것이었다.
6월 29일, 28일에 스모 협회 회원들을 대상으로 실시된 검사에서 다카야스와 같은 다코노우라 방의 스모 선수 2명이 코로나19에 감염된 사실이 발표되었다. 방에서는 정기적인 검사를 실시하여 출전 여부를 판단할 것이라고 했으나, 7월 2일에 스모 선수 1명의 추가 감염이 확인되었다. 이에 따라 스승인 16대 다코노우라 오야카타가 나고야 입국이 어렵다고 판단하여, 7월 대회는 다카야스를 비롯한 다코노우라 방 소속 스모 선수 15명 전원이 전면 휴장했다.
대회 후 여름 순업에 참가했다. 8월 11일 여름 순업 고가 대회에서는 "첫 우승은 대단하다. 감화되었다. 다음은 내가, 라는 마음으로 임하고 싶다"며 첫 우승을 노리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19일, 둘째 아이인 아들이 태어났다.
9월 대회는 9일차에 테루노후지를 오시다시(押し出し, 밀어내기)로 꺾고 금성을 획득했다. 46개 대회 만의 금성 획득은 쇼와 시대 이후 역대 2위의 공백 기록이다. 13일차 종료 시점에서는 2패로 단독 선두인 다마와시를 호쿠토후지와 함께 1승 차이인 3패로 추격하는 입장이었다. 센슈라쿠에는 2패인 다마와시와 3패인 자신이 직접 대결하게 되어, 본 경기와 우승 결정전에서 연승하면 첫 우승이 확정되는 상황이었다. 하나다 마사루는 자신의 칼럼에서 "우승 결정전이 된다면 이번 대회는 체력 소모도 없었고, 패배했지만 봄 대회의 우승 결정전에서도 움직임을 보였던 다카야스가, 괜히 긴장하지 않는 한 다소 유리할 것이다"라고 예상했다. 그러나 하나다의 예상과 달리, 센슈라쿠는 본 경기에서 패배하여 다마와시에게 우승을 넘겨주었다. 그럼에도 우승 경쟁에 참여한 것이 평가되어 자신에게 6번째 감투상을 수상했다. 이 해 두 번째 준우승을 기록했으나, 본인은 "평소와 다름없이 준비하고, 좋은 스모를 하려 했다. 최선을 다해 스모를 했다. 다마와시 선수가 강했다. 완패다"라고 다마와시와의 대결을 회상하며 "약했기 때문에 졌다. 아직 훈련이 부족했다는 뜻이다"라고 반성했다. "더 이상 후회는 없다. 우승은 못했지만, 내 안에서 (우승과의) 거리감은 줄어들었다. 몇 번이고 도전하고 싶다. 이 마음을 잊지 않고 단련하겠다"고 다짐했다. 이 랭크와 성적이라면 보통 산야쿠를 노릴 수 있었으나, 막내 상위 랭크에서 산야쿠에 걸쳐 가치코시나 좋은 성적, 혹은 버틴 성적의 스모 선수들이 많아 다음 11월 대회는 동쪽 마에가시라 필두에 머무는 등 랭크 운이 좋지 않았다. 11월 대회는 내내 우승 경쟁에 참여하여 14일차 종료 시점에서 12승 2패로 단독 선두에 올랐고, 이 시점에서 수훈상 획득이 확정되었다. 센슈라쿠는 본 경기에서 아비에게 패배하여 12승 3패로 마쳤고, 다카케이쇼도 포함하여 바전(巴戦, 3인 토너먼트)이 된 우승 결정전에서도 패배하여 아비에게 우승을 빼앗겼다. 결정전에서 아비와의 대결에서는 머리를 아비의 가슴 부근에 격렬하게 부딪혀 의식이 혼미해져 혼자 일어서지 못했다. 결정전 후 "훈련이 부족하다. 다시 한번 단련하겠다. 반드시 정상을 노리겠다"고 다음 2023년을 향한 포부를 밝혔다. 2023년 1월 대회에서는 서쪽 세키와케가 되었고, 성적에 따라 오제키 복귀 가능성도 거론되었으나, 오른쪽 다리를 다쳐 6일차부터 휴장하여 무산되었다. 2023년 3월 대회는 서쪽 마에가시라 7위에서 10승 5패의 좋은 성적을 거두었다. 대회 후 봄 순업 후쿠이 대회에서는 눈과 목에 위화감을 호소하며 일시 귀경했다. 5월 대회는 첫날 아침 훈련 중 오른쪽 허벅지 뒤쪽을 다쳐 같은 날부터 휴장했다. 스승은 증상 등에 대해 "걸을 수는 있지만, 씨름을 하는 것은 어렵다. (재출전은) 어떻게든 가능하게 하고 싶다"고 말했다. 11일차부터 씨름판에 복귀하게 되었다. 가료 예상 기간보다 빠른 복귀였다. 6월 2일 쓰쿠바산 신사에서, 10일에는 아내의 고향인 홋카이도 신궁에서 지역 관계자들을 중심으로 피로연을 열었고, 3번째 결혼 피로연은 17일 도쿄 시내 호텔에서 개최되었다. 3번째 피로연에는 히라사와 가쓰에이, 모리의 스승인 호소카와 다카시, 스모계에서는 형제 선수였던 기세노사토의 니쇼노세키 오야카타 등 700명이 넘는 하객들이 두 사람의 새로운 시작을 축하했다. 그는 "역시 정진하여 가족을 기쁘게 해주고 싶다. 피로연에도 이렇게 많은 분들이 와주셨다.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서라도 스모 선수로서 정상을 노려 열심히 하고 싶다", "더욱 마음을 다잡고 나고야로 향하고 싶다. 결과를 내고 싶다"고 말했다. 9월 대회는 센슈라쿠를 선두와 1승 차이인 4패로 맞이했으며, 센슈라쿠에서 5패를 기록하며 우승을 놓쳤지만 준우승을 기록했다. 이 대회는 우승하면 수훈상을 수상하는 조건이 붙었으나, 우승을 놓쳐 수상은 불발되었다. 참고로 이 대회는 센슈라쿠 무스비노이치반(千秋楽結びの一番, 마지막 대결)에 올랐는데, 마에가시라 선수가 센슈라쿠 무스비노이치반에 오르는 것은 막내 경기가 모두 나카이리(中入り, 중간 휴식) 후에 편성된 1927년 1월 대회 이후 5번째 사례이다. 2023년에는 3개 대회에서 10승 5패의 성적을 남겼고, 이에 대해 "아주 컨디션이 좋았던 것은 아니었지만, 그런 상황에서도 노력하여 10승을 할 수 있었다는 것은 제 안에서 아직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주었다"고 소감을 밝히며 "내년은 좋은 해가 될 것 같다. 그런 느낌이 든다"고 말했다. 2024년 5월 대회는 요통으로 6일간 휴장했으나, 출전한 9일 동안은 7승 2패로 실력을 보여주었다. 그러나 전 요코즈나 무사시마루의 무사시가와 오야카타의 칼럼에서는 강했던 것은 어디까지나 우승 경쟁에 참여하지 않아 압박감을 느끼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지적하며, 여전히 상대에게 맞추는 스모를 한다며 적극성 부족을 혹평했다. 같은 해 7월 대회는 첫날 세키와케 기리시마와 대결하여 패배했고 다음 날부터 센슈라쿠까지 휴장했다. 9월 대회는 동쪽 마에가시라 15위로 랭크가 떨어졌다.
3.7. 산야쿠 복귀 및 지속적인 활동
2023년 마지막 두 대회에서 연속으로 10승을 기록한 후, 다카야스는 다시 고무스비 랭크로 산야쿠에 복귀했다. 2024년 1월 대회 시작과 함께 허리 통증으로 이틀 만에 휴장했다. 6일차에 복귀했으나, 이틀 더 경기를 치른 후 8일차에 다시 휴장했다. 그의 진단서에는 인플루엔자 감염과 허리 통증 재발로 약 10일간의 자택 요양 및 안정 가료가 필요하다고 명시되었다. 2024년 5월 대회 3일차 시작 직전에도 부상을 입어 오노사토와 와카모토하루를 상대로 연승을 거두었음에도 불구하고 큐조를 선언할 수밖에 없었다. 대회 후반에는 다시 출전 의사를 밝혔고, 복귀 후 9일차에는 오제키 호쇼류를, 10일차에는 고토자쿠라를 꺾으며 호쇼류와의 상대 전적을 11전 9승으로 끌어올렸다. 2024년 7월 대회 첫날 세키와케 기리시마에게 패배한 후 경기가 끝나자 가슴을 움켜쥐는 모습이 보였다. 다음 날 휴장했으며, 왼쪽 대흉근 부분 파열 진단을 받아 3주간의 치료가 필요하다고 했다. 다카야스는 9월 대회에 참가할 의도로 훈련을 재개했으며, "30.00 만 km를 달린 차를 운전하는 것 같다"고 말하며 훈련에 더 집중하고 있다고 언급했다.
4. 경기 스타일
다카야스는 기본적으로 츠키오시(突き押し, 밀어붙이기)를 특기로 하며, 입문 초기부터 13대 나루토 오야카타로부터 "부딪혀서 오로지 츠키오시만 하라"는 가르침을 받았다. 한편, 왼쪽 요츠(左四つ, 왼손으로 상대의 마와시를 잡는 기술)에서의 요리(寄り, 밀어붙이기)도 강점이다. 상대의 마와시를 잡는 손의 되받아치기가 다소 미숙하더라도, 가슴을 맞대고 체력으로 밀어붙이는 경우가 많다. 앞서 언급했듯이 우와테히네리(上手捻り, 위팔을 비틀어 던지기)도 특기이며, 던지기는 왼쪽 요츠가 되면 위팔로든 아래팔로든 나온다. 젊은 시절에는 공격이 빨라 출발이 둔한 스모 선수들과 상성이 좋았다. 베테랑이 되면서 힘으로 밀어붙이기보다는 몸놀림으로 승리하는 스모도 눈에 띄게 늘었다. 반면, 쉽게 마와시를 잡으려다 타치아이(立ち合い, 시작 자세)가 약해지면 상위 랭크 선수들에게 고전한다. 후술하듯이 상대의 움직임에 너무 맞추는 기용빈곤(器用貧乏, 재주가 많아 오히려 한 가지에 뛰어나지 못함)한 어중간한 스모도 약점이며, 특히 어중간한 스모는 오제키에서 강등된 원인이 되었다. 젊은 시절에는 스모가 빨랐지만, 오제키에서 부진한 이후에는 스모의 느림, 공격 수단이나 적극성 부족도 과제로 지적되고 있다(한때 개선된 시기도 있지만).
하체는 단단하지만 상체는 유연하며, 독특한 상체 체질로 상대의 츠키오시를 받아넘긴다. 2016년 11월 대회 전에는 왼쪽 요츠만을 고집하는 스모 선수가 되기로 결심했으나, 실제로 왼쪽 요츠 중심의 스모를 시도하다 마케코시를 기록하여 포기했다. 타타키(叩き, 때리기)도 잘하며, 무리하게 공격하는 상대에게는 이나시(いなし, 몸을 비틀어 피하기)로 타이밍 좋게 넘어뜨리는 경우가 많다. 오제키 후보로 거론된 이후 본인은 "츠키오시 후 전개하는 스모가 잘 맞는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츠키오시만으로 승부가 결정되는 경우도 늘고 있다. 강력한 카치아게(かち上げ, 팔꿈치로 올려치기)나 츠키, 오시를 중심으로 오제키 지위를 얻었으나, 승격 직후 기사에서는 "지금까지 해왔던 자신의 스타일을 강화해 나갈 것"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한편, 허리가 높고 겨드랑이가 헐거워 수세에 몰리면 약하며, 특히 마와시를 잘 잡는 상대에게는 고전한다. 모로자시(諸差し, 양팔로 상대의 마와시를 잡는 기술)를 특기로 하는 도치오잔은 큰 약점으로, 상대 전적은 8승 20패(부전패 1회 포함)로 크게 뒤지고 있다. 또한 기동형 스모 선수도 약점으로, 훈련장에서는 형제 선수인 다카노야마를 어려워했다. 오제키 승격 직전에는 타치아이에서 주춤하여 수세에 몰려도 노련함으로 승리하는 경우가 늘었다. 오제키 재위 중에는 카치아게의 형태가 나빠지고 타타키가 늘었으며, 왼쪽 팔 사용의 미숙함이 지적되기도 했다. 2018년 1월 대회 후 기사에서는 후지시마 (전 오제키 무사시야마)로부터 "타치아이의 몸통 박치기에서 나오는 파워는 대단하지만, 정상을 노리려면 다른 타치아이도 익혀야 한다"는 의견을 받았다.
성적표에 나타나는 특징으로는 초반 부진이 눈에 띈다. 오제키 승격에 가까워질수록 몸무게가 늘어난 영향인지, 2017년 7월 대회 후 무사시가와의 칼럼에서는 체력 부족이 지적되기 시작했고, 그 후로도 무사시가와로부터 체력 부족을 지적받았다. 그러나 2021년 11월 대회 2일차 다카라후지전에서는 3분 이상 긴 씨름을 제압했기에, 일률적으로 체력이 없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이 대회는 3일차 묘기류전에서도 패배를 기록했으나 1분 43초의 긴 씨름을 했고, 4일차 시마노우미전에서도 3분 32초의 열전을 제압하는 등 오히려 체력 자랑을 인상 깊게 보여주었다.
오제키 시절 후반에는 타치아이의 위력 저하, 몸무게 등 신체 능력 저하가 지적되었다. 2020년 1월 대회 7대 다카사고의 분석에 따르면, 상대에게 밀리면 바로 흥분하여 응전하고 요츠를 갈고닦지 못한 점이 단명 오제키로 끝난 이유라고 한다.
2021년 3월 대회 중 핫카쿠 이사장은 좋은 컨디션의 요인으로 묵직한 발 디딤에서 나오는 출족(出足, 앞으로 나가는 힘)과 오른쪽 오쓰케(おっつけ, 상대의 팔을 옆으로 밀어내는 기술)를 꼽았다. 대회 후 무사시가와는 상대의 움직임에 맞춰 스모를 할 뿐 스스로 공격하지 않는 점, 결정적인 순간에 기회를 잡지 못하는 멘탈이 약한 점을 지적했다.
2022년경에는 스모가 빨라지고 적극적이 되었으며, 아내와 자녀를 위해 노력한다는 정신적인 충실함도 전문가들로부터 지적되었다.
같은 해 11월 대회 중 하나다 마사루는 자신의 칼럼에서 약점이었던 도효기와(土俵際)에서의 마무리가 개선되었다고 말했다.
여러 차례 우승을 놓치면서 멘탈적인 문제가 지적되기 시작했고, 결국 2023년 9월 대회 후 전 무사시마루의 무사시가와 오야카타는 "센슈라쿠 기리시마전에서는 굳어져서 긴장하는 모습이 역력했다. 이제는 마음의 문제일 것이다"라며 결정적인 순간에 굳어지는 나쁜 버릇을 지적하고 "한 번이라도 우승하면 흐름이 바뀔 텐데"라며 아쉬워하면서도 "어쨌든 가장 좋은 약은 한 번이라도 우승하는 것이다"라고 격려했다. 동시에 상대에게 맞추고, 두려워하며 상대의 움직임을 너무 살피는 느린 스모를 그만두고, 허리 부상 등 신체 부담을 고려하여 짧은 스모를 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2024년경에는 쉽게 재출전하는 스모로 인해 요통 등 자기 관리 능력도 의심받고 있으며, 훈련 열심은 인정하지만 근본적인 원인을 고치지 않으면 안 된다고 무사시가와로부터 지적받았다. 같은 해 5월 대회에서도 'zakzak'은 "이렇게 이길 수 있다면 쉬지 않고 계속 나와야 한다"는 고참 오야카타의 말을 인용하며 안이한 휴장과 재출전을 비판했다.
5. 개인 생활
2019년 10월, 다카야스는 엔카 가수 모리 고노미와의 약혼을 발표했다. 두 사람은 2020년 7월에 결혼했고, 2021년 2월 첫 아이인 딸을 맞이했다. 다카야스는 2020년 7월 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거둔 이유로 아내의 임신 소식을 꼽았다. 딸이 태어난 직후인 2021년 3월 대회에서도 마찬가지로 좋은 성적을 거두었는데, 이로 인해 "파파야스"라는 별명이 생겼다. 2022년 8월에는 둘째 아이인 아들을 맞이했다. 코로나19 사태로 인해 부부는 2023년 6월 홋카이도 신궁에서 종교적인 결혼식을 올렸고, 같은 달 말 도쿄에서 700명의 하객을 초청하여 피로연을 개최했다.
6. 주요 성적 및 수상 경력
다카야스는 스모 경력 전반에 걸쳐 뛰어난 성과와 다양한 수상 경력을 쌓았다.
6.1. 통산 성적
- 통산 성적**: 759승 576패 156휴 (승률 0.569)
- 통산 재위**: 118개 대회
- 막내 성적**: 599승 460패 156휴 (승률 0.566)
- 막내 재위**: 81개 대회
- 오제키 성적**: 113승 57패 55휴 (승률 0.665)
- 오제키 재위**: 15개 대회
- 산야쿠 성적**: 117승 88패 5휴 (승률 0.571)
- 산야쿠 재위**: 14개 대회 (세키와케 6개 대회, 고무스비 8개 대회)
6.2. 각단 우승
- 마쿠시타 우승: 1회 (2010년 9월 대회)
- 막내 최고 우승 동점: 2회 (역대 9위 타이)
6.3. 삼상 및 금성
- 삼상**: 12회 (역대 10위 타이)
- 수훈상: 4회 (2013년 7월 대회, 2014년 11월 대회, 2017년 3월 대회, 2022년 11월 대회)
- 감투상: 6회 (2013년 1월 대회, 2014년 7월 대회, 2016년 9월 대회, 2017년 1월 대회, 2022년 3월 대회, 2022년 9월 대회)
- 기능상: 2회 (2016년 7월 대회, 2017년 5월 대회)
- 금성**: 5개
- 하쿠호: 1개
- 하루마후지: 3개
- 테루노후지: 1개
6.4. 하나즈모(花相撲)
- 일본 오즈모 토너먼트 우승: 3회 (2019년, 2020년, 2025년)
7. 에피소드 및 평가
다카야스는 선수 생활 중 다양한 일화와 평가를 받았다.
7.1. 인물
다카야스는 평소 온화한 성격이며, 13대 나루토 오야카타로부터 "씨름판에 들어서면 인격을 바꿔라"는 조언을 받았다. 2017년 9월 대회 센슈라쿠 축하회에서는 가토 사리가 기세노사토에게 꽃다발을 증정하고, 호소카와 다카시가 다카야스와 기세노사토와 함께 술통을 깨는 거울 깨기를 했으나, 애교 있게 행동하는 기세노사토와 달리 다카야스는 뚱한 표정으로 참석자들을 대했다. 호소카와는 다카야스를 무대 위로 초대하여 "아직 미혼이라고 들었는데, 교제하는 분이 있습니까? 좋아하는 여성의 타입은 있습니까?"라고 물었으나, 다카야스는 뚱한 표정으로 "아니요"라고만 답하여 장내에 썰렁한 분위기가 감돌았고 오래가지 못했다. 스모 관계자들로부터는 "안 되겠네"라는 목소리가 나왔고, 이에 호소카와는 황급히 니시이와를 무대 위로 올려 거의 강제적으로 맥주를 원샷하게 하여 분위기를 수습했다. 이는 다카야스가 팬 서비스에 능숙하지 않음을 보여주는 일화이다. 2024년 11월 30일 방송된 토크 버라이어티 프로그램 『장크 스포츠』(후지 TV)에서는 아내 모리 고노미가 "기본적으로 스모 선수들은 식사 중에는 말이 없어요. '맛있네' 같은 말도 없고, 식사도 일의 일환이니까요"라고 식사 중의 모습을 증언했다.
7.2. 씨름판 및 스모 기록
2017년 4월 기준으로, 입문 이래 어머니의 생일인 9월 16일에는 한 번도 패배한 적이 없다. 2019년 11월 대회 8일차, 도효이리(土俵入り, 씨름판 입장식) 후 허리 통증(급성 요통)이 재발하여 급히 휴장하게 되었다. 카도반(角番) 대회였기에 재출전 가능성을 고려하여 협회 측이 급히 경기 편성을 재조정하는 진기한 사태가 발생했다. 2020년 5개 대회에서의 랭크 승강은 27단계로, 이 해 5개 대회 모두 막내에 재위한 29명 중 1위였다.
7.3. 현상금 및 타니마치 관련
2017년 1월 대회부터 전 전투기 제조업체이자 도쿄도 다치카와시에 본사를 둔 부동산 개발 회사인 "다치히 홀딩스"에서 현상금이 걸렸다.
7.4. 케쇼마와시 및 소메누키
찰리 채플린의 케쇼마와시(化粧廻し, 의식용 샅바)를 가지고 있다. 2017년 7월 대회 3일차에는 "승부"를 의미하는 창포(菖蒲) 문양의 소메누키(染め抜き, 염색 무늬)를 입고 대회장에 들어섰다. 2018년 7월 대회에는 백합이 그려진 소메누키를 입고 대회장에 들어섰다.
7.5. 이벤트 및 토크쇼 관련

2017년 6월 8일, 도쿄도 에도가와구 히가시코마쓰가와 보트 레이스 에도가와에서 열린 "지역 젊은 프로 선수 토크쇼" 이벤트에 참가했다. 오후 1시경부터 같은 에도가와구를 연고로 활동하는 여자 보트 레이서 도카시 레이카와 1차 토크쇼를 진행했다. 같은 해 5월 23일, 오제키 승격이 걸린 다카야스는 여름 대회 10일차에 하쿠호에게 패배하여 2패를 기록했다. 실망하여 방으로 돌아왔으나, 도카시가 참가했던 "트랜스워드 트로피 2017 남녀 W 우승전"(도카시는 이 레이스에서 첫 우승을 차지했다)을 보고 마음을 바꿨다. "매우 실망하고 있었는데, 레이스를 보고 소름이 돋았고, 다음 날 이후 좋은 동기 부여가 되었다"고 오제키 승격으로 이어진 일화를 밝혔다. 도카시와의 2차 토크쇼에서도 "좋아하는 음식은 조림 생선", "케이크보다 푸딩을 좋아한다" 등 팬 서비스를 했다. 사회자의 요청에 따라 도카시를 공주님 안기하는 서비스도 보여주었다. 마지막에는 우승 선수에게 꽃다발을 증정하는 세리머니 등으로 이벤트에 활기를 더했다. 보트장 팬들로부터 "요코즈나가 되어라!"는 외침도 나왔다.
7.6. 노래 관련
노래를 잘한다. 2016년 2월 21일 방송된 NHK 복지 오즈모의 "오타노시미 우타쿠라베"(즐거운 노래 대결)에서는 May J.와 함께 『이토시노 에리』를 불렀다. 2018년 2월 10일 제51회 NHK 복지 오즈모에서는 미즈모리 가오리와 『캐나다에서의 편지』를 듀엣으로 불렀고, 솔로로는 『겨울의 리비에라』를 불렀다.
7.7. 성씨 및 일족 관련
성씨 "다카야스"는 현재 오사카부 야오시에서 유래했다고 전해지며, 아스카 시대인 667년 덴지 천황이 다카야스산에 다카야스성을 축조했고, 그 호족 중 하나가 다카야스 씨가 되어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다카야스의 오제키 승격 확정 직후, 긴테쓰 오사카선 다카야스역 근처 상점가에서는 다카야스 열풍이 불었다고 보도되었고, 지역의 이불 가게에서는 수제 특대 사이즈 방석을 평소 1.00 만 JPY에서 7000 JPY로 할인 판매했다. 빵집에서는 "다카야스 오제키 트위페"라는 특제 빵을 200 JPY에 판매했다. 자신과 같은 이름의 교토시 사쿄구 라멘집 "추카소바 다카야스"도 다카야스 선수의 활약과 함께 인지도를 더욱 높였다.
7.8. 방의 선수들과의 관계
2017년 3월 대회 전, 13대 나루토 오야카타가 과거 자신에게 그랬던 것처럼, 한꺼번에 5명이 새로 입문한 신인 선수들에게 아이스크림을 대접했다.
7.9. 취미 및 기호
좋아하는 만화는 원피스. 2017년 7월 대회 종료 시점의 보도에 따르면, 전권을 소장하고 있다고 한다.
7.10. 신체 및 생활 습관
입문 전부터 하루 4끼를 먹는 대식가였으며, 몸이 완성된 현재도 한 끼에 밥을 4~5그릇 먹고, 그 외에 외식과 간식을 한다. 본인은 "늘리려고 마음먹으면 몸무게는 200 kg까지 늘릴 수 있다"고 말했다. 연예인이자 스모 애호가인 야마네 치카에 따르면, 털이 얇을 때의 다카야스는 컨디션이 좋다고 한다. 털이 얇다는 것은 훈련으로 털이 마모되었다는 이유에서 이 징크스가 성립된다. 고토츠루 준야의 저서 『스모메시』(후소샤)에 따르면 "깔끔하게 이긴다"는 의미와 연결되기 때문에 바지락 된장국과 돈가스를 징크스 삼아 즐겨 먹는다.
7.11. 훈련장 관련


다카야스는 눈여겨본 스모 선수에게는 맹훈련을 시킨다. 2017년 5월 대회 전 아부마쓰 방으로 출장 훈련을 갔을 때 아부사키와 36번의 산방스모를 했는데, 이때는 17승 19패로 오히려 아부사키가 우세했다. 2019년 5월 대회 전 니쇼노세키 이치몬의 연합 훈련이 열렸을 때 다카케이쇼와 30번의 산방스모를 하여 17승 13패를 기록했다. 코어 근육을 단련하기 위해 워터백을 도구로 사용한다. 2017년 4월 봄 순업 가토 대회에서는 츠케비토(付人)의 실수로 워터백이 도쿄로 보내졌으나, 다카야스는 츠케비토에게 일시 귀경 시 찾아오게 하여 바로 다음 후지사와 대회에서 워터백을 안고 스리아시(すり足) 훈련을 했다.
7.12. 가족
2017년 7월 대회 종료 시점의 보도에 따르면, 도쿄 대회에서는 부모님이 송영차 운전수를 맡고 있다고 한다.
7.13. 교류 관계
개그맨 하와 노부유키(나이츠)와 교류가 있다.
7.14. 다른 스모 선수와의 관계
료고쿠 고쿠기칸에서 합동 훈련이 열린 2021년 10월 26일, 은퇴한 하쿠호에게 "막내에 들어서면서 요코즈나를 꺾는 것이 하나의 목표였고, 항상 하쿠호 선수가 위에 있었기 때문에 매 대회마다 꺾어야 한다는 마음으로 연구도 하고 훈련도 했으며, 그곳에 목표가 있었기에 오늘날까지 스모를 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고 감사를 표했다. 오노사토는 형제 스모 선수의 제자, 즉 조카 제자이며, 훈련장과 순업에서도 자주 함께 훈련하는 관계이다.
7.15. 기타
2017년 5월 31일 방송된 정보 프로그램 『비비드』(TBS TV)에서 다카야스의 오제키 승격 전달식 현장에서 생중계한 MC 마야 미키가 다카야스가 전달식에서 어떤 구상(口上)을 말할지 묻자 가미지 유키에 리포터는 "다카야스 선수는 '정정당당'이라는 말을 매우 좋아한다고 하니, 어쩌면 그 사자성어가 들어갈지도 모른다"고 예상했다. 다카야스의 얼굴 사진이 인쇄된 과자 상품 "다카야스 사브레"가 일본 스모 협회로부터 공인받아 쓰치우라의 새로운 명산품으로 9월부터 판매되기 시작했다. 이 상품은 쓰치우라시 히가시마나베의 과자 제조 판매 회사인 규게쓰소혼포(요코야마 가즈히로 사장)가 판매를 시작했다. 이 회사는 스모 협회와 다카야스 상품의 제조 판매에 대한 1년 계약을 맺었다. 다카야스의 얼굴 사진과 "다카야스 세키 정정당당 오제키 스모" 등의 응원 문구가 어묵과 같은 천연 착색료를 사용하여 인쇄되어 있다. 2023년 오즈모의 칠석 기획에서는 단자쿠(短冊, 소원 적는 종이)에 "아내의 신곡 아시카제 고개(葦風峠)가 히트하기를."이라고 소원을 적었다. 2024년 7월 대회 직전에 발표된 스모 라이터 이이즈카 사키의 기사에서는 공상 제도에 대해 악용하는 스모 선수가 나올 우려가 있고 옛날 스모 선수들이 순업이 많아 더 힘들었다는 등의 이유로 도입하지 않아도 된다는 입장을 밝혔다. 또한 중졸 출신으로서 학생 스모 출신 엘리트들에 대한 대항심도 있다는 취지의 이야기를 했다.
7.16. 경력 요약
- 2005년 3월 대회 - 첫 씨름
- 2005년 5월 대회 - 조노구치(序ノ口)
- 2005년 7월 대회 - 조니단(序二段)
- 2007년 3월 대회 - 산단메(三段目)
- 2008년 5월 대회 - 마쿠시타(幕下)
- 2010년 11월 대회 - 주료(十両)
- 2011년 7월 대회 - 막내(幕内)
- 2013년 9월 대회 - 신 고무스비(新小結)
- 2016년 9월 대회 - 신 세키와케(新関脇)
- 2017년 7월 대회 - 신 오제키(新大関)
- 2020년 1월 대회 - 세키와케 강등
7.17. 막내 대전 성적
| 스모 선수명 | 승수 | 패수 | 스모 선수명 | 승수 | 패수 | 스모 선수명 | 승수 | 패수 | 스모 선수명 | 승수 | 패수 | |
|---|---|---|---|---|---|---|---|---|---|---|---|---|
| 아오이야마 | 12 | 12 | 아사세키류 | 4 | 0 | 아사노야마 | 3(1) | 2(1) | 아사히마쓰 | 1 | 0 | |
| 아타미후지 | 1 | 3 | 아비 | 6 | 8(2) | 아미니시키 | 2 | 9 | 아무루 | 2 | 0 | |
| 아라와시 | 4 | 0 | 아란 | 0 | 6 | 이키 | 13 | 4 | 이시우라 | 1 | 0 | |
| 이치노조 | 8 | 6 | 이치야마모토 | 2 | 2 | 우라 | 4 | 3 | 엔도 | 18 | 9 | |
| 엔호 | 0 | 1 | 오쇼마 | 1 | 0 | 아부카츠 | 0 | 2 | 아부사키 | 5 | 5 | |
| 오호 | 3 | 0 | 오스나아라시 | 3 | 0 | 오노사토 | 1 | 0 | 오키노우미 | 16 | 5 | |
| 가이세이 | 12 | 5 | 가가루마루 | 6 | 2 | 가가미자쿠라 | 1 | 0 | 가가야키 | 5 | 1 | |
| 가쿠류 | 10(1) | 13 | 기타타이키 | 8 | 2 | 기무라야마 | 1 | 0 | 교쿠슈호 | 3 | 2 | |
| 교쿠텐호 | 3 | 1 | 기리시마 | 7 | 9 | 긴보잔 | 1 | 2 | 고에이도 | 19(1) | 13(1) | |
| 고노야마 | 2 | 4(1) | 고카이 | 1 | 0 | 고토에코 | 2 | 1 | 고토오슈 | 2(1) | 2 | |
| 고토자쿠라 | 4(1) | 4(1) | 고토쇼기쿠 | 16 | 12 | 고토쇼호 | 6 | 2 | 고토유키 | 3 | 1 | |
| 사가쓰카 | 2 | 1 | 사다노우미 | 8 | 1 | 사다노후지 | 3 | 1 | 사토야마 | 1 | 0 | |
| 시마노우미 | 3 | 0 | 조코류 | 4 | 3 | 쇼다이 | 9 | 19 | 쇼텐로 | 6 | 3 | |
| 쇼난노우미 | 3 | 0 | 쇼호잔 | 9 | 6 | 시로쿠마 | 1 | 0 | 소코쿠라이 | 4 | 2 | |
| 다이아마미 | 1 | 0 | 다이에이쇼 | 11 | 11 | 다이쇼호 | 0 | 1 | 다이도 | 3 | 0 | |
| 다카케이쇼 | 10 | 11 | 다카노이와 | 3 | 2 | 다카노쇼 | 3 | 5 | 다카미사카 | 1 | 0 | |
| 다카라후지 | 23 | 6(1) | 고후 | 4 | 10 | 다마아스카 | 2 | 0 | 다마와시 | 21 | 18(1) | |
| 지요호 | 2 | 3 | 지요쇼마 | 7 | 3 | 지요다이류 | 12 | 3 | 지요노쿠니 | 6 | 1 | |
| 지요마루 | 2 | 1 | 테루츠요시 | 2 | 0 | 테루노후지 | 13 | 12 | 텐카이호 | 0 | 1 | |
| 도키텐쿠 | 5 | 4 | 도쿠쇼류 | 4 | 3 | 도사유타카 | 1 | 0 | 도치오잔 | 8 | 20(1) | |
| 도치노신 | 14(1) | 9 | 도치노나다 | 1 | 0 | 도치노와카 | 4 | 6 | 토비자루 | 7 | 2 | |
| 도요노시마 | 5 | 7 | 도요히비키 | 7 | 5 | 니시키기 | 6 | 1 | 니시키후지 | 5 | 2 | |
| 하쿠오호 | 0 | 2 | 하쿠호 | 2 | 21(1) | 바루토 | 2 | 2 | 하루마후지 | 5 | 15 | |
| 히데노우미 | 0 | 2 | 히라도우미 | 4 | 2 | 후지아즈마 | 3 | 1 | 부쇼잔 | 1 | 0 | |
| 호쇼류 | 9(1) | 2(1) | 호치야마 | 2 | 0 | 도요마사 | 4 | 3 | 기타세이호 | 1 | 0 | |
| 호쿠토후지 | 16 | 11(1) | 호마레후지 | 1 | 1 | 마스노야마 | 2 | 1 | 미타케우미 | 24 | 10 | |
| 미도리후지 | 4 | 4 | 미야비야마 | 5 | 1 | 묘기류 | 10 | 15 | 메이세이 | 5 | 4 | |
| 도요야마 | 1 | 1 | 요시카제 | 11 | 10 | 류덴 | 6 | 2 | 로가 | 3 | 1 | |
| 와카아라시오 | 2 | 3 | 와카타카카게 | 4 | 8 | 와카모토하루 | 5 | 2(1) |
- 괄호 안의 숫자는 승수, 패수 중 부전승, 부전패의 수를 나타낸다.
- 우승 결정전(바전 포함)에서는 와카타카카게, 아비에게 각각 1패가 있다.
7.18. 장소별 성적
| 연도 | 1월 (하츠) | 3월 (하루) | 5월 (나츠) | 7월 (나고야) | 9월 (아키) | 11월 (규슈) |
|---|---|---|---|---|---|---|
| 2005 | 마에즈모 | 조노구치 서29위 | 조니단 서129위 | 조니단 동98위 | 조니단 동73위 | |
| 2006 | 조니단 동48위 | 조니단 동78위 | 조니단 동98위 | 조니단 동44위 | 조니단 동67위 | 조니단 동41위 |
| 2007 | 조니단 동5위 | 산단메 동86위 | 산단메 동55위 | 산단메 서27위 | 산단메 서41위 | 산단메 동26위 |
| 2008 | 산단메 동2위 | 산단메 동11위 | 마쿠시타 서59위 | 마쿠시타 서51위 | 산단메 동5위 | 마쿠시타 동54위 |
| 2009 | 마쿠시타 동39위 | 산단메 동3위 | 마쿠시타 동54위 | 마쿠시타 동44위 | 마쿠시타 서36위 | 마쿠시타 동27위 |
| 2010 | 마쿠시타 동22위 | 마쿠시타 동18위 | 마쿠시타 동10위 | 마쿠시타 동6위 | 마쿠시타 서13위 (우승) | 주료 동11위 |
| 2011 | 주료 동3위 | 대회 취소 | 주료 동1위 | 마쿠우치 동11위 | 마쿠우치 동6위 | 마쿠우치 서8위 |
| 2012 | 마쿠우치 서3위 | 마쿠우치 동7위 | 마쿠우치 서1위 | 마쿠우치 동5위 | 마쿠우치 서9위 | 마쿠우치 동4위 |
| 2013 | 마쿠우치 동7위 (준우승, 감투상) | 마쿠우치 동1위 (금성) | 마쿠우치 서5위 | 마쿠우치 동1위 (수훈상, 금성) | 고무스비 동1위 | 마쿠우치 동3위 |
| 2014 | 마쿠우치 동9위 | 마쿠우치 동3위 | 마쿠우치 동8위 | 마쿠우치 서11위 (감투상) | 마쿠우치 동2위 | 마쿠우치 동3위 (수훈상, 금성) |
| 2015 | 고무스비 동1위 | 마쿠우치 동3위 | 마쿠우치 서8위 | 마쿠우치 동2위 | 마쿠우치 동3위 (1승 3패 11휴) | 마쿠우치 동12위 |
| 2016 | 마쿠우치 동8위 | 마쿠우치 동1위 | 마쿠우치 서5위 | 고무스비 동1위 (기능상) | 세키와케 동1위 (감투상) | 세키와케 동1위 |
| 2017 | 고무스비 동1위 (감투상) | 세키와케 서1위 (수훈상) | 세키와케 서1위 (기능상) | 오제키 동2위 | 오제키 동1위 (1승 2패 12휴) | 오제키 동1위 (8승 4패 3휴) |
| 2018 | 오제키 동1위 (준우승) | 오제키 동1위 (준우승) | 오제키 동1위 (전휴) | 오제키 동1위 | 오제키 동1위 | 오제키 동1위 (준우승) |
| 2019 | 오제키 동1위 | 오제키 동1위 | 오제키 동1위 | 오제키 동1위 (8승 3패 4휴) | 오제키 동1위 (전휴) | 오제키 동1위 (3승 5패 7휴) |
| 2020 | 세키와케 동1위 | 마쿠우치 동1위 (0승 5패 10휴) | 대회 취소 | 마쿠우치 동13위 | 마쿠우치 동6위 | 고무스비 서1위 |
| 2021 | 고무스비 동1위 | 고무스비 동1위 | 세키와케 동1위 | 세키와케 동1위 (7승 6패 2휴) | 고무스비 동1위 (4승 8패 3휴) | 마쿠우치 동5위 |
| 2022 | 마쿠우치 동7위 (전휴) | 마쿠우치 동7위 (준우승, 감투상) | 마쿠우치 동1위 | 마쿠우치 서4위 (전휴) | 마쿠우치 서4위 (준우승, 감투상, 금성) | 마쿠우치 동1위 (준우승, 수훈상) |
| 2023 | 세키와케 서2위 (1승 5패 9휴) | 마쿠우치 서7위 | 마쿠우치 동2위 (3승 3패 9휴) | 마쿠우치 동7위 | 마쿠우치 동7위 (준우승) | 마쿠우치 동3위 |
| 2024 | 고무스비 동1위 (2승 4패 9휴) | 마쿠우치 서8위 | 마쿠우치 동3위 (7승 3패 5휴) | 마쿠우치 동3위 (0승 2패 13휴) | 마쿠우치 동15위 | 마쿠우치 서9위 |
| 2025 | 마쿠우치 동6위 | 마쿠우치 동4위 |
- 개명 이력**:
- 다카야스 아키라 (髙安 晃, たかやす あきら): 2005년 3월 대회 - 현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