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Early life
존 조지 워커는 1952년 1월 12일 뉴질랜드 파파쿠라에서 태어났다. 그의 기본적인 배경 정보는 그의 스포츠 경력과 이후 공공 생활의 중요한 토대가 되었다.
2. Athletic career
존 워커의 선수 경력은 초기 두각을 나타낸 성과, 세계 기록 경신, 올림픽에서의 금메달 획득, 그리고 이례적인 장수 선수로서의 후기 경력으로 요약될 수 있다. 이 모든 과정에서 그의 끈기와 뛰어난 재능이 빛을 발했다.
2.1. Early achievements and rise to prominence
워커는 1974년 크라이스트처치에서 열린 1974년 코먼웰스 게임에서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다. 그는 1500m 종목에서 탄자니아의 필버트 바이(Filbert Bayi영어)에 이어 2위를 차지했는데, 이 경주는 역사상 가장 위대한 1500m 경주 중 하나로 꼽힌다. 워커와 바이는 모두 기존 세계 기록을 경신했으며, 다른 선수들 역시 역사상 4번째, 5번째, 7번째로 빠른 기록을 세웠다. 워커는 또한 800m에서 자신의 생애 최고 기록인 1분 44.92초로 동메달을 획득했다. 이 기록은 제임스 프레스턴과 피터 스넬에 이어 현재까지도 뉴질랜드 역대 세 번째로 빠른 기록이다.
세계 정상급 마일 선수로서 그의 경력 전반에 걸쳐 아치 젤리(Arch Jelley영어)가 코치를 맡았다. 젤리는 학교 교장이자 중거리 선수 출신으로, 과학적 기반의 세심한 훈련 프로그램과 효과적인 소통으로 선수들을 지도한 것으로 유명하다.
2.2. World record breaking runs
1975년 8월 12일 스웨덴 예테보리에서 워커는 3분 49.4초의 기록으로 마일 달리기 세계 기록을 경신하며, 이 종목에서 최초로 3분 50초의 벽을 돌파한 선수가 되었다. 이 기록은 같은 해 필버트 바이가 세운 3분 51.0초의 기록을 뛰어넘은 것이었다. 흥미롭게도 워커의 기록은 21년 전 로저 배니스터(Roger Bannister영어)가 최초로 4분 벽을 돌파한 역사적인 3분 59.4초보다 정확히 10초 더 빨랐다. 그는 같은 해 트랙 앤드 필드 뉴스로부터 '올해의 육상 선수'로 선정되었다. 1976년 신년 훈작에서 워커는 마일 종목에서 3분 50초 미만 기록을 세운 최초의 인물로서 육상에 대한 공로를 인정받아 대영 제국 훈장 장교(OBE)에 서훈되었다. 워커의 이 새로운 기록은 1979년 7월 17일 영국의 세바스찬 코(Sebastian Coe영어)에 의해 깨지기 전까지 유지되었다.
그 다음 해인 1976년 6월 30일 노르웨이 오슬로에서 워커는 4분 51.4초의 기록으로 2000m 세계 기록을 경신했다. 그는 프랑스의 미셸 자지(Michel Jazy영어)가 10년 동안 보유하고 있던 기록을 거의 5초 가까이 단축시켰다. 워커는 이 경주를 자신의 생애 최고의 경주로 평가했다. 이 기록은 1985년 8월 4일 헝가리 부다페스트에서 영국의 스티브 크램(Steve Cram영어)이 4분 51.39초로 0.01초 단축시키기 전까지 약 9년간 깨지지 않았다. 실내 경기에서는 워커가 1979년에 3분 37.4초의 기록으로 1500m 실내 세계 기록을 세웠다.
2.3. 1976 Montreal Olympic Games

1976년 몬트리올 올림픽 800m 종목에서 워커는 예선에서 1분 47.63초를 기록하며 준결승 진출에 실패했다. 그러나 1500m에서는 그가 유력한 금메달 후보였다. 당시 아프리카 국가들의 보이콧으로 인해 탄자니아의 필버트 바이를 포함한 여러 강력한 경쟁자들이 대회에 불참했기 때문이다.
1500m 결승 경주는 느린 페이스로 시작하여 첫 800m를 2분 03초에 통과했다. 경주는 마지막 스퍼트로 승부가 결정될 것이었다. 워커는 짧은 거리에서 더 빠른 선수들을 따돌리기 위해 결승선 300m 전부터 스퍼트를 시작했다. 그는 마지막 20m에서 약간 지치는 모습을 보였지만, 벨기에의 이보 판 담(Ivo Van Damme영어)과 서독의 파울 하인츠 벨만(Paul-Heinz Wellmann영어)을 제치고 금메달을 차지했다. 나중에 필버트 바이는 말라리아에 걸려 올림픽에 참가하지 못했을 것이라는 사실이 밝혀졌다.
1977년에는 영국의 스티브 오벳(Steve Ovett영어)이 IAAF 월드컵 1500m에서 워커를 꺾으며 세계 정상급 마일러로서의 그의 위치에 도전했다.
2.4. Later career and achievements
1981년, 워커는 오클랜드에서 열린 대회에서 3분 50.6초의 기록으로 뉴질랜드 국내 마일 기록을 세웠다. 1982년 노르웨이 오슬로에서 열린 '드림 마일' 경주에서 스티브 스콧(Steve Scott영어)이 3분 47.69초, 워커가 3분 49.08초, 레이 플린(Ray Flynn영어)이 3분 49.77초를 기록하며 상위 세 자리를 차지했다. 이 세 선수는 각각 미국, 뉴질랜드, 아일랜드의 국가 기록을 동시에 수립했다. 이 세 국가 기록은 2007년 7월 21일 앨런 웹(Alan Webb영어)이 스콧의 미국 기록을 깨기 전까지 25년간 유지되었다. 워커와 플린의 기록은 여전히 각국의 국가 기록으로 남아있다.
1982년 브리즈번에서 열린 코먼웰스 게임에서 워커는 1500m에서 영국의 스티브 크램에 이어 은메달을 획득했다. 그는 1984년 로스앤젤레스 올림픽과 1986년 코먼웰스 게임에서는 5000m 종목에 출전했지만 큰 성공을 거두지는 못했다. 1984년 로스앤젤레스 올림픽 개회식에서 그는 뉴질랜드 선수단의 기수를 맡았다.
1990년 코먼웰스 게임에서는 800m와 1500m에 모두 출전했는데, 1500m에서는 초반에 넘어졌지만 끝까지 완주했다. 당시 우승자인 영국의 피터 엘리엇(Peter Elliott영어)은 워커와 함께 우승 기념 바퀴를 돌자고 설득하기도 했다.
1985년, 워커는 마일 달리기에서 인류 최초로 100번의 4분 미만 기록을 달성한 선수가 되었는데, 이는 그의 친구이자 라이벌이었던 미국의 스티브 스콧보다 앞선 것이었다. 이와 관련하여 약간의 논란이 있었다. 스콧은 두 사람이 각자 99번의 4분 미만 마일을 달성한 후 경주를 통해 누가 100번째 4분 미만 마일을 먼저 달성할지 결정하기로 합의했다고 주장했지만, 워커는 그러한 합의는 없었다고 부인했다.
경력이 길어지면서 다리 부상과 복부 경련이 훈련에 영향을 미치기 시작했다. 1990년대 초 그는 40세가 넘어 4분 미만 마일을 달성하는 최초의 선수가 되는 것을 목표로 했지만, 다리 부상으로 인해 성공하지 못했다. 그의 라이벌 이몬 코글런(Eamonn Coghlan영어)이 1993년에 이를 달성했다. 이 시점에서 그의 국제적인 경력은 거의 20년 가까이 이례적인 장수 기록을 보여주었다. 워커는 총 135번의 4분 미만 마일 기록을 세우며 선수 경력을 마쳤다.
3. Life after athletics
선수 생활 은퇴 후 존 워커는 오클랜드 시의회 의원으로서 공공 서비스에 참여하고, 개인적인 삶에서도 파킨슨병 진단이라는 어려움에 직면하는 등 다양한 활동을 통해 지역 사회에 기여했다.
3.1. Local government activities
워커는 선수 생활을 마친 후 마누카우 시 시의원을 역임했으며, 이후 통합된 오클랜드 시의회의 시의원으로 활동했다. 그는 2010년, 2013년, 2016년에 마누레와-파파쿠라 지역구에서 시의원으로 재선되었다. 그는 2019년 지방 정부 선거에서 공직에서 은퇴했다.
| 재임 기간 | 지역구 | 소속 |
|---|---|---|
| 2010 ~ 2013 | 마누레와-파파쿠라 | 무소속 |
| 2013 ~ 2016 | 마누레와-파파쿠라 | 무소속 |
| 2016 ~ 2019 | 마누레와-파파쿠라 | 무소속 |
3.2. Health and personal life
1996년, 워커는 파킨슨병을 앓고 있다고 발표했다. 현재 그는 아내 헬렌과 함께 오클랜드 뉴마켓에서 승마 용품점을 운영하고 있다. 워커와 그의 아내는 네 명의 자녀를 두고 있다.
4. Honours and recognition
존 워커는 스포츠와 지역 사회에 대한 지대한 공헌을 인정받아 수많은 영예와 표창을 받았다.
1975년 그는 뉴질랜드 올림픽 위원회의 론스데일 컵을 수상했다. 1976년 신년 훈작에서는 육상에 대한 공로로 대영 제국 훈장 장교(OBE)에 서훈되었다. 1990년에는 뉴질랜드 스포츠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다. 1992년 여왕 탄신 훈작에서는 육상에 대한 공로로 대영 제국 훈장 3등급 사령관(CBE)으로 승격되었다. 1996년에는 국제 올림픽 위원회로부터 올림픽 동장을 수여받았다. 2009년 여왕 탄신 훈작에서는 스포츠 및 지역 사회에 대한 공로를 인정받아 뉴질랜드 공로 훈장 기사 동반자(KNZM)에 서훈되며 '경(Sir)' 칭호를 받았다.
5. Legacy
존 워커는 마일 달리기에서 3분 50초의 벽을 최초로 돌파하고 올림픽 금메달을 획득함으로써 육상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한 선수이다. 그의 기록은 육상 선수들에게 새로운 목표와 영감을 제시했으며, 그의 꾸준함과 스포츠 정신은 오랫동안 많은 사람들에게 귀감이 되었다. 선수 경력 이후에는 오클랜드 시의회 의원으로서 지역 사회에 봉사하며, 스포츠를 넘어선 사회적 책임감을 보여주었다. 파킨슨병 진단 후에도 굴하지 않고 활동하는 모습은 많은 사람들에게 용기와 희망을 주었으며, 그는 뉴질랜드 스포츠와 지역 사회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존경받는 인물로 기억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