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초기 생애 및 배경
아드리아누는 1982년 2월 17일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의 파벨라 빈민가에서 태어났다. 어린 시절, 그는 7세에 플라멩구 축구 아카데미에 입단하며 축구 선수로서의 첫 발을 내디뎠다. 당시에는 작고 왜소한 체격이었고 사이드백으로 뛰었으나, 17세 이하 팀으로 승격하면서 포워드로 포지션을 변경한 뒤 재능을 꽃피우기 시작했다.
2. 클럽 경력
아드리아누는 브라질과 유럽의 여러 명문 클럽을 거치며 활약했다. 특히 인테르 밀란에서 전성기를 보냈으나, 개인적인 어려움으로 인해 이른 시기에 기량이 하락하며 여러 클럽을 전전했다.
2.1. 브라질에서의 초기 경력
아드리아누는 1999년 플라멩구 유소년팀에서 공격수로 데뷔했으며, 이듬해인 2000년 2월 17세의 나이로 성인팀에 전격 승격했다. 그는 2000년 2월 2일 보타포구와의 토르네이우 히우-상파울루 경기에서 팀 데뷔전을 치렀고, 나흘 뒤 상파울루와의 같은 대회 경기에서 데뷔골을 기록했다. 2000년 6월 플라멩구와 2년 계약을 체결한 후 1년 반 동안 리그 24경기에서 10골을 기록하며 큰 기대를 모았다.
2.2. 유럽에서의 경력
2001년 여름, 아드리아누는 1318.90 만 EUR의 이적료로 세리에 A의 인테르 밀란으로 이적하며 유럽 무대에 진출했다. 그는 2001-02 시즌 프리시즌 기간 중 레알 마드리드와의 친선 경기에서 교체 출전하여 카시야스를 상대로 시속 105 km/h에 달하는 강력한 프리킥 골을 성공시키며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이 골을 본 당시 감독 엑토르 쿠페르의 요청으로 당초 계획되었던 임대 이적이 6개월 미뤄지기도 했다.
2002년 1월, 아드리아누는 피오렌티나로 임대되어 2001-02 시즌 후반기 세리에 A 15경기에서 6골을 기록하며 준수한 활약을 펼쳤다. 그 후 2002년 7월, 파비오 칸나바로의 이적에 포함되어 880.00 만 EUR와 마테오 페라리(€5.7M)의 공동 소유 계약으로 파르마로 이적했다. 파르마에서 그는 아드리안 무투와 인상적인 공격 듀오를 형성하며 36경기에서 22골을 터뜨렸다. 2003년 11월에는 부상으로 한 달간 경기에 나서지 못하기도 했다.
2.3. 인터 밀란에서의 전성기와 몰락
2004년 1월, 아드리아누는 2340.00 만 EUR에 산 시로의 인테르 밀란으로 복귀하여 4년 반 계약을 맺었다. 그는 2003-04 시즌 남은 기간 동안 16경기에서 9골을 기록하며 팀에 큰 기여를 했고, 코파 이탈리아 4강에서 유벤투스를 상대로 3골을 넣는 등 맹활약했다. 특히 엠폴리와의 시즌 최종전에서 2골을 기록하며 팀의 리그 4위와 UEFA 챔피언스리그 진출권을 확정지었다. 시즌 종료 후 팬들이 선정한 인테르 밀란 2003-04 시즌 올해의 선수로 선정되었다.
2004년 7월부터 2005년 6월까지, 아드리아누는 국내외 대회를 통틀어 42골을 기록하며 최고의 기량을 선보였다. 그는 2004년 FIFA 올해의 선수 6위, 발롱도르 6위에 올랐고, 이듬해 2005년에는 FIFA 올해의 선수 5위, 발롱도르 7위에 이름을 올렸다. 이러한 활약으로 인해 2005년 이적시장에서 많은 빅클럽들의 관심을 받았고, 인테르 밀란은 그를 붙잡기 위해 2005년 9월 30일까지 유효한 5년 계약을 제시했다. 2005-06 시즌 밀라노 더비에서는 경기 종료 직전 극적인 결승골을 포함하여 2골을 터뜨리며 팀의 3-2 승리를 이끌었다.

하지만 2004년 8월 아버지의 갑작스러운 사망은 아드리아누의 삶과 경력에 치명적인 영향을 미 미쳤다. 당시 인테르 밀란의 주장 하비에르 사네티는 "아드리, 아버지가 돌아가셨어"라는 전화 한 통에 아드리아누가 방에서 소리를 지르며 절규했다고 회고했다. 사네티는 그날 이후 아드리아누가 이전과 같지 않았으며, 우울증에서 그를 벗어나게 하려 노력했지만 실패했다고 덧붙였다.
아버지의 죽음 이후, 아드리아누의 기량은 급격히 하락했다. 2006-07 시즌에는 나이트클럽에서 잦은 파티를 벌이는 모습이 포착되면서 직업윤리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었다. 브라질 대표팀 감독 둥가는 2006년 10월 그를 대표팀에서 제외하며 "태도를 바꾸고 축구에 집중하라"고 촉구했다. 2007년 2월 18일에는 생일 파티 여파로 팀 훈련에 불참하여 당시 인테르 감독 로베르토 만치니에 의해 UEFA 챔피언스리그 발렌시아전과 이어진 세리에 A 경기에서 벤치에 앉는 징계를 받았다.

2007년 11월 16일, 인테르의 구단주 마시모 모라티는 아드리아누의 부진한 신체 상태와 알코올 중독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그를 브라질로 무급 휴가 보냈고, 그는 상파울루의 훈련 센터에 합류했다. 그의 에이전트는 브라질 리그 복귀 의사를 부인했지만, 아드리아누는 정기적인 출전 시간을 위해 1월 이적 시장에서 인테르를 떠날 의향이 있다고 밝혔다. 맨체스터 시티 구단주 탁신 친나왓은 그에 대한 관심을 표명하며 "아드리아누는 최고의 선수였지만, 아버지의 사망 후 기량이 저하되고 살이 쪘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모라티는 아드리아누가 인테르에 남기를 바랐지만, 2007년 12월 19일 아드리아누는 2007-08 시즌 잔여 기간 동안 상파울루로 임대 이적하게 되었다. 상파울루 팬들은 그의 등번호 10번 유니폼을 사기 위해 긴 줄을 섰다. 그는 2008년 캄페오나투 파울리스타 개막전에서 구아라칭게타를 상대로 2골을 넣으며 성공적인 데뷔전을 치렀다. 그러나 2008년 2월 10일 산투스의 수비수 도밍고스에게 박치기를 가해 퇴장당했으며, 2경기 출장 정지 징계를 받았다. 2월 29일에는 훈련에 30분 늦고 일찍 떠나 사진기자와 말다툼을 벌여 상파울루로부터 벌금을 부과받았다. 결국 2008년 6월 17일, 상파울루는 아드리아누가 예정보다 일찍 인테르로 복귀한다고 발표했다.
2008-09 시즌 초반, 아드리아누는 세리에 A에서 꾸준히 득점하며 이탈리아와 브라질 세리에 A 통산 100골을 달성했다. 2008년 10월 22일, 그는 아노르토시스 파마구스타와의 경기에서 결승골을 넣으며 UEFA 챔피언스리그 통산 18골을 기록했다. 하지만 11월 이후 잦은 지각과 밤샘 파티 등 규율 위반으로 다시 선발 라인업에서 제외되기 시작했고, 12월 중순 부상자 명단에 오른 뒤 브라질로 돌아갔다. 2009년 4월 4일, 인테르는 아드리아누가 브라질 국가대표팀 임무를 마치고도 복귀하지 않았으며, 구단과 어떤 계약도 체결하지 않았음을 확인했다. 결국 2009년 4월 24일, 아드리아누는 인테르와의 계약을 해지하며 5년간의 인테르 생활을 마감했다. 그는 기자회견에서 축구에 대한 즐거움을 잃었으며, 이탈리아에서의 생활이 힘들었다고 고백했다.
2.4. 브라질 복귀 및 후기 경력
인테르와의 계약 해지 후 무소속이던 아드리아누는 2009년 5월 6일, 자신의 프로 경력을 시작했던 플라멩구와 1년 계약을 맺고 브라질 무대로 복귀했다. 2009년 5월 31일 아틀레치쿠 파라나엔시와의 복귀전에서 득점을 기록했으며, 6월 21일에는 인테르나시오나우를 상대로 해트트릭을 달성하며 4-0 승리를 이끌었다. 그의 활약에 힘입어 플라멩구는 1992년 이후 17년 만에 브라질 세리에 A 우승을 차지했다. 2010년 1월 31일에는 라이벌 플루미넨시와의 '플라-플루' 더비에서 두 번째 해트트릭을 기록하며 5-3 역전승을 거두는 데 기여했다.

2010년 6월 8일, 이탈리아 세리에 A 클럽 로마는 아드리아누와 3년 계약을 체결했다고 발표했으며, 그는 연간 500.00 만 EUR의 급여를 받게 되었다. 그는 등번호 8번을 배정받으며 기자회견에 참석했다. 하지만 로마에서도 훈련 불참 등 방탕한 생활을 이어갔고, 잦은 부상에 시달리며 출전 기회를 잡지 못했다. 2010년 말에는 세 번째로 이탈리아 세리에 A 최악의 선수에게 주어지는 비도네 도로 상을 수상하는 불명예를 안았다. 2011년 1월 코파 이탈리아 경기에서 어깨 부상을 당한 뒤 치료를 위해 브라질로 돌아갔으나, 현지에서 음주 및 운전면허 박탈 소식이 전해졌고 이탈리아 복귀를 무단으로 연기하는 등 문제가 끊이지 않았다. 결국 로마는 2011년 3월 8일, 계약 7개월 만에 아드리아누와의 계약을 해지했다. 영국 BBC의 축구 전문가 팀 비커리는 아드리아누의 로마 탈퇴 후 "그의 타고난 재능은 유통기한이 있었다"며 그의 몰락을 '낭비된 재능'이라고 평가했다.
2011년 3월 25일, 아드리아누는 코린치안스와 1년 계약을 맺고 다시 브라질 무대로 돌아왔다. 그러나 4월 19일 훈련 중 아킬레스건이 파열되는 큰 부상을 입었고, 수술 후 6개월간의 재활 기간을 거쳐야 했다. 2011년 10월 9일 아틀레치쿠 고이아니엔시와의 경기에서 코린치안스 데뷔전을 치렀고, 10월 20일 아틀레치쿠 미네이루와의 홈 경기에서 결승골을 기록하며 팀의 2-1 승리를 이끌었다. 하지만 불규칙한 출전과 축구에 대한 흥미 부족으로 인해 2012년 3월 12일 코린치안스에서도 방출되었다.
2012년 8월 21일, 아드리아누는 친정팀 플라멩구와 계약을 맺고 세 번째로 복귀했지만, 단 한 경기도 출전하지 못하고 2012년 11월 7일 다시 계약이 해지되었다. 이듬해인 2013년 3월에는 인테르나시오나우 입단이 임박했으나, 메디컬 테스트에 불합격하여 계약이 무산되기도 했다.
2014년 2월 11일, 아드리아누는 아틀레치쿠 파라나엔시와 계약하며 1년여 만에 프로 축구에 복귀했다. 그는 2013년 말부터 아틀레치쿠 파라나엔시에서 훈련하며 코칭 스태프를 돕기도 했다. 하지만 2014년 4월 11일, 코치진과의 불화와 무단 훈련 불참 등 규율 위반으로 3개월 만에 다시 방출되었다.
2016년 1월 28일, 아드리아누는 NPSL(미국 4부 리그) 소속의 마이애미 유나이티드와 계약을 맺었으나, 2016년 5월 28일 팀을 떠났다. 이후 2016년 34세의 나이로 공식 은퇴를 선언했다.
3. 국가대표 경력

아드리아누는 2000년 11월 15일, 18세의 나이로 월드컵 예선 콜롬비아전에서 브라질 성인 국가대표팀에 데뷔했다. 그는 한때 호나우두의 장기적인 후계자로 지목되기도 했다. 2001년 FIFA U-20 월드컵에 출전하여 브라질이 8강에서 탈락했음에도 불구하고 6골을 기록하며 득점 2위에 올라 전 세계에 이름을 알렸다. 2003년 6월 11일 나이지리아와의 친선 경기에서 국가대표팀 첫 골을 기록했다. 같은 해 2003년 FIFA 컨페더레이션스컵에도 참가하여 호나우지뉴와 함께 브라질의 공격을 이끌며 2골을 넣었으나, 팀은 조별리그에서 탈락했다.
이듬해 아드리아누는 2004년 코파 아메리카에서 인상적인 활약을 펼쳤다. 그는 조별리그 코스타리카전에서 해트트릭을 기록했고, 8강 멕시코전에서 2골을 넣었으며, 4강 우루과이전에서도 득점했다. 특히 아르헨티나와의 결승전에서는 후반 93분 극적인 동점골을 터뜨려 승부를 승부차기로 끌고 갔고, 브라질은 승부차기에서 4-2로 승리하며 우승을 차지했다. 카를루스 아우베르투 파헤이라 감독은 경기 후 아드리아누가 우승의 매우 중요한 요소였다고 평가했다. 이러한 활약으로 아드리아누는 이 대회에서 7골로 골든 부트를 수상하고 골든 볼까지 거머쥐며 3관왕에 올랐다.
2005년, 아드리아누는 2005년 FIFA 컨페더레이션스컵에서도 브라질 대표팀과 함께 다시 한번 뛰어난 토너먼트를 보냈다. 그는 독일과의 준결승전에서 2골을 넣고 호나우지뉴의 페널티킥을 유도하며 경기 최우수 선수(MOM)로 선정되었다. 아르헨티나와의 결승전에서는 2골을 기록하며 브라질의 4-1 승리를 이끌었다. 이 대회에서도 아드리아누는 5골로 골든 부트와 골든 볼을 동시에 수상하며 2년 연속 국제 대회 3관왕이라는 위업을 달성했다. 이처럼 2004년부터 2005년까지 2년간 브라질 대표팀에서 23경기 19골을 넣는 대활약으로, 그는 2006년 FIFA 월드컵을 앞두고 득점왕 등극 가능성이 가장 높은 공격수로 평가되기도 했다.
2006년 FIFA 월드컵에서 아드리아누는 호나우두, 호나우지뉴, 카카와 함께 '매직 콰르텟(Magic Quartet)'이라는 화려한 공격진을 구성하며 기대를 모았다. 그는 6월 18일 오스트레일리아전에서 월드컵 첫 골을 기록했고, 가나전에서 두 번째 골을 넣었다. 하지만 이 대회에서 아드리아누는 총 5개의 슈팅만을 기록하는 등 다소 실망스러운 활약을 보였고, 브라질도 공수 균형을 맞추는 데 실패하며 결국 8강에서 프랑스에 패해 탈락했다.
실망스러운 월드컵 이후, 아드리아누의 국제 경력은 클럽에서의 부진과 개인적인 문제로 인해 내리막길을 걸었다. 2007년 2월 6일 포르투갈과의 친선 경기 이후 1년 넘게 대표팀에 발탁되지 못했다. 2008년 상파울루 임대 기간 동안 기량을 회복하며 다시 국가대표팀에 소집되었고, 2008년 10월 10일 베네수엘라와의 월드컵 예선에서 2년 만에 국제 경기 골을 기록했다. 그는 월드컵 예선 기간 동안 꾸준히 대표팀에 이름을 올렸으나, 2010년 FIFA 월드컵 최종 23인 명단에서는 둥가 감독의 선택을 받지 못하며 월드컵에 출전하지 못했다.
4. 플레이 스타일
아드리아누는 속도와 뛰어난 피지컬을 민첩한 발놀림, 정교한 기술과 결합한 다재다능하고 현대적인 스트라이커로 평가받았다. 그라운드에서의 지배력, 힘, 기술 덕분에 그는 이탈리아에서 유명한 로마 황제 하드리아누스의 이름을 따서 '임페라토레(L'Imperatore이탈리아어, 황제)'라는 별명을 얻었다. 그는 주로 왼발을 사용하는 선수였으며, 뛰어난 볼 컨트롤, 드리블, 그리고 창의력을 겸비했다. 강력한 슈팅력으로 먼 거리에서도 상대 골문을 위협했으며, 특히 왼발에서 뿜어져 나오는 대포알 같은 슈팅은 종종 경외감을 불러일으켰다. 정확하고 강력한 프리킥에도 능했으며, 공중볼 경합에서도 강점을 보였고, 팀 동료들과의 연계 플레이와 어시스트 능력도 뛰어났다.
그의 동료였던 즐라탄 이브라히모비치는 아드리아누에 대해 "나는 위대한 챔피언들과 뛰었다. 이미 '와우'였던 선수들과 뛰었고, 재능이 있다고 생각했는데 '와우'가 된 선수들과도 뛰었지만, 내가 가장 오래 활약할 수 있을 것이라 느꼈고, 그러지 못한 선수는 인테르 시절 아드리아누였다. 그는 어떤 각도에서도 슛을 날릴 수 있었고, 아무도 그를 막을 수 없었으며, 아무도 공을 빼앗을 수 없었다. 그는 순수한 짐승이었다"고 평가했다.
어린 시절부터 매우 유망한 선수로 평가받았던 아드리아누의 기량과 플레이 스타일은 동료였던 호나우두와 자주 비교되었고, 언론에서는 그를 호나우두의 잠재적인 후계자로 여겼다. 하지만 타고난 재능에도 불구하고, 아버지의 사망 이후 그의 일관성, 성격, 체력, 그리고 훈련 태도가 문제시되었다. 우울증과 알코올 중독으로 인한 어려움, 방탕하고 turbulent한 사생활, 잦은 부상과 훈련 규율 부족은 그의 경력이 진행될수록 심각한 체중 증가로 이어졌다. 이러한 후기 경력의 불규칙성 때문에 그는 초기 잠재력을 발휘하지 못했다는 평가를 널리 받았다. 전성기에는 세계 최고의 선수 중 한 명으로 간주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이탈리아 세리에 A 최악의 선수에게 주어지는 비도네 도로 상을 2006년, 2007년(인테르) 그리고 2010년(로마)에 걸쳐 세 차례나 수상하는 불명예를 안았다.
5. 개인사 및 사생활
아드리아누의 인생은 아버지의 죽음 이후 큰 전환점을 맞았다. 2004년 8월 아버지의 사망은 그에게 깊은 우울증과 알코올 중독을 안겨주었으며, 이는 언론에 공공연히 알려진 사실이다. 그는 술과 파티에 빠져들면서 훈련에 불참하거나 규율을 어기는 등 방탕한 생활을 이어갔다. 한때 "내 인생을 낭비하는 것에 사로잡혀 있다"고 고백하기도 했다.
2014년 11월, 리우데자네이루의 한 판사는 2010년부터 제기되었던 마약 밀매 혐의에 대해 증거 불충분으로 아드리아누의 무죄를 선고했다. 2024년 10월 31일에는 리우데자네이루의 파벨라 거리에서 심하게 취해 비틀거리는 아드리아누의 모습이 담긴 영상이 온라인에 확산되기도 했다. 이와 함께 24일 만에 이혼한 그의 짧은 결혼 생활 등 최근 결혼 생활의 문제점도 언급되었다.
아드리아누에게는 2006년에 태어난 아들 아드리아누 주니어가 있으며, 그 역시 축구 선수로 활동하고 있다. 아드리아누 주니어는 2025년 2월 22일 포르투갈의 아카데미카 드 코임브라로 이적했다. 아드리아누는 골을 넣은 후 두 손가락으로 하늘을 가리키며 돌아가신 아버지에게 바치는 세레머니를 자주 선보였다. 그는 인기 축구 게임 프로 에볼루션 사커 시리즈의 6번째 타이틀인 '월드 사커 위닝 일레븐 10'의 메인 모델이기도 했다.
6. 평가 및 유산
아드리아누는 한때 세계 축구에서 가장 잠재력 있는 스트라이커 중 한 명으로 평가받았지만, 그의 경력은 '낭비된 재능'의 전형적인 사례로 기억되고 있다. 전성기 시절의 압도적인 기량과 뛰어난 득점력은 많은 축구 팬들을 열광시켰으나, 아버지의 죽음 이후 겪은 깊은 심리적 어려움과 그로 인한 통제 불능의 사생활은 그의 축구 인생을 송두리째 바꿔놓았다. 우울증, 알코올 중독, 잦은 부상, 훈련 불참, 체중 증가 등 개인적인 문제들은 그의 일관성과 규율을 무너뜨렸고, 결국 재능만큼의 성과를 내지 못하는 선수로 전락시켰다.
그의 몰락은 단순한 기량 저하를 넘어 한 선수의 정신적 취약성이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비극적인 사례로 회자된다. 그는 세리에 A에서 최악의 선수에게 주어지는 비도네 도로 상을 3회(2006, 2007, 2010년)나 수상하며 한때의 영광과는 상반되는 불명예를 안기도 했다. 비록 그는 자신이 가진 모든 잠재력을 펼치지는 못했지만, 전성기 시절 보여준 순수한 재능과 파괴력은 여전히 많은 사람들의 기억 속에 강렬한 인상으로 남아 있다.
7. 수상 경력
아드리아누는 선수 경력 동안 클럽과 국가대표팀에서 다양한 우승을 경험하고 개인상도 수상했다.
- 클럽
- 플라멩구**
- 리오데자네이루 주 챔피언십: 2000, 2001
- 브라질 챔피언스 컵: 2001
- 브라질 세리에 A: 2009
- 인테르나치오날레 밀라노**
- 세리에 A: 2005-06, 2006-07, 2008-09
- 코파 이탈리아: 2004-05, 2005-06
- 수페르코파 이탈리아나: 2005, 2006, 2008
- 코린치안스**
- 브라질 세리에 A: 2011
- 국가대표팀
- 브라질 U-17**
- FIFA U-17 월드컵: 1999
- 브라질 U-20**
- CONMEBOL 청소년 축구 선수권 대회: 2001
- 브라질**
- 코파 아메리카: 2004
- FIFA 컨페더레이션스컵: 2005
- 개인
- CONMEBOL 청소년 축구 선수권 대회 득점왕: 2001
- FIFA U-20 월드컵 실버슈: 2001
- 발롱도르: 2004 (6위), 2005 (7위)
- FIFA 올해의 선수: 2004 (6위), 2005 (5위)
- 피라타 도로 (인테르나치오날레 올해의 선수): 2004
- 코파 아메리카 골든 볼: 2004
- 코파 아메리카 골든 슈: 2004
- 코파 아메리카 대회 베스트 11: 2004
- FIFA 컨페더레이션스컵 골든 볼: 2005
- FIFA 컨페더레이션스컵 골든 슈: 2005
- IFFHS 세계 최고 득점자: 2005
- 캄페오나투 브라질레이루 세리에 A 득점왕: 2009
- 캄페오나투 브라질레이루 세리에 A 올해의 팀: 2009
- 볼라 지 오루: 2009
- 볼라 지 프라타: 2009
- 비도네 도로: 2006, 2007, 2010
- 브라질 U-17**
- 플라멩구**
8. 통계
아드리아누의 클럽 및 국가대표팀 통계는 다음과 같다.
8.1. 클럽
클럽 | 시즌 | 리그 | 국내 컵1 | 대륙 대회 | 기타2 | 총합 | ||||||
---|---|---|---|---|---|---|---|---|---|---|---|---|
디비전 | 출전 | 득점 | 출전 | 득점 | 출전 | 득점 | 출전 | 득점 | 출전 | 득점 | ||
플라멩구 | 2000 | 세리에 A | 19 | 7 | - | 8 | 1 | 13 | 3 | 40 | 11 | |
2001 | 세리에 A | 5 | 3 | 4 | 1 | 2 | 0 | 8 | 1 | 19 | 5 | |
합계 | 24 | 10 | 4 | 1 | 10 | 1 | 21 | 4 | 59 | 16 | ||
인테르 밀란 | 2001-02 | 세리에 A | 8 | 1 | 1 | 0 | 5 | 0 | - | 14 | 1 | |
피오렌티나 (임대) | 2001-02 | 세리에 A | 15 | 6 | - | - | - | 15 | 6 | |||
파르마 | 2002-03 | 세리에 A | 28 | 15 | 1 | 0 | 2 | 2 | - | 31 | 17 | |
2003-04 | 세리에 A | 9 | 8 | 2 | 0 | 2 | 1 | - | 13 | 9 | ||
합계 | 37 | 23 | 3 | 0 | 4 | 3 | - | 44 | 26 | |||
인테르 밀란 | 2003-04 | 세리에 A | 16 | 9 | 2 | 3 | - | - | 18 | 12 | ||
2004-05 | 세리에 A | 30 | 16 | 3 | 2 | 9 | 10 | - | 42 | 28 | ||
2005-06 | 세리에 A | 30 | 13 | 5 | 0 | 11 | 6 | 1 | 0 | 47 | 19 | |
2006-07 | 세리에 A | 23 | 5 | 3 | 1 | 3 | 0 | 1 | 0 | 30 | 6 | |
2007-08 | 세리에 A | 4 | 1 | - | - | - | 4 | 1 | ||||
2008-09 | 세리에 A | 12 | 3 | 3 | 2 | 7 | 2 | - | 22 | 7 | ||
합계 | 115 | 47 | 16 | 8 | 30 | 18 | 2 | 0 | 163 | 73 | ||
상파울루 (임대) | 2008 | 세리에 A | - | - | 10 | 6 | 19 | 11 | 29 | 17 | ||
플라멩구 | 2009 | 세리에 A | 30 | 19 | - | - | - | 30 | 19 | |||
2010 | 세리에 A | 2 | 0 | - | 7 | 4 | 12 | 11 | 21 | 15 | ||
합계 | 32 | 19 | - | 7 | 4 | 12 | 11 | 51 | 34 | |||
로마 | 2010-11 | 세리에 A | 5 | 0 | 1 | 0 | 1 | 0 | 1 | 0 | 8 | 0 |
코린치안스 | 2011 | 세리에 A | 4 | 1 | - | - | - | 4 | 1 | |||
2012 | 세리에 A | - | - | - | 3 | 1 | 3 | 1 | ||||
합계 | 4 | 0 | - | - | 3 | 1 | 7 | 2 | ||||
아틀레치쿠 파라나엔시 | 2014 | 세리에 A | 1 | 0 | - | 3 | 1 | - | 4 | 1 | ||
마이애미 유나이티드 | 2016 | NPSL | 0 | 0 | - | 0 | 0 | 1 | 1 | 1 | 1 | |
경력 총합 | 241 | 107 | 25 | 9 | 70 | 33 | 59 | 28 | 405 | 177 |
1코파 두 브라질, 코파 이탈리아 포함
2수페르코파 이탈리아나, 캄페오나투 카리오카, 캄페오나투 파울리스타 등 기타 국내 대회 포함
8.2. 국가대표
국가대표팀 | 연도 | 출전 | 득점 |
---|---|---|---|
브라질 | 2000 | 1 | 0 |
2001 | 0 | 0 | |
2002 | 0 | 0 | |
2003 | 6 | 3 | |
2004 | 11 | 9 | |
2005 | 12 | 10 | |
2006 | 6 | 3 | |
2007 | 1 | 0 | |
2008 | 6 | 2 | |
2009 | 4 | 0 | |
2010 | 1 | 0 | |
총합 | 48 | 27 |
No. | 날짜 | 개최지 | 상대팀 | 스코어 | 결과 | 경기 유형 |
---|---|---|---|---|---|---|
1 | 2003년 6월 11일 | 아부자, 나이지리아 | 나이지리아 | 3-0 | 3-0 | 친선 경기 |
2 | 2003년 6월 21일 | 리옹, 프랑스 | 미국 | 1-0 | 1-0 | 2003년 FIFA 컨페더레이션스컵 |
3 | 2003년 6월 23일 | 생테티엔, 프랑스 | 튀르키예 | 1-0 | 2-2 | |
4 | 2004년 7월 11일 | 아레키파, 페루 | 코스타리카 | 1-0 | 4-1 | 2004년 코파 아메리카 |
5 | 3-0 | |||||
6 | 4-0 | |||||
7 | 2004년 7월 18일 | 피우라, 페루 | 멕시코 | 2-0 | 4-0 | |
8 | 3-0 | |||||
9 | 2004년 7월 21일 | 리마, 페루 | 우루과이 | 1-1 | 1-1 | |
10 | 2004년 7월 25일 | 리마, 페루 | 아르헨티나 | 2-2 | 2-2 | 2004년 코파 아메리카 결승 |
11 | 2004년 9월 5일 | 상파울루, 브라질 | 볼리비아 | 3-0 | 3-1 | 2006년 FIFA 월드컵 지역 예선 (CONMEBOL) |
12 | 2004년 10월 9일 | 마라카이보, 베네수엘라 | 베네수엘라 | 5-0 | 5-2 | 2006년 FIFA 월드컵 지역 예선 |
13 | 2005년 6월 16일 | 라이프치히, 독일 | 그리스 | 1-0 | 3-0 | 2005년 FIFA 컨페더레이션스컵 |
14 | 2005년 6월 25일 | 뉘른베르크, 독일 | 독일 | 1-0 | 3-2 | 2005년 FIFA 컨페더레이션스컵 준결승 |
15 | 3-2 | |||||
16 | 2005년 6월 29일 | 프랑크푸르트, 독일 | 아르헨티나 | 1-0 | 4-1 | 2005년 FIFA 컨페더레이션스컵 결승 |
17 | 4-0 | |||||
18 | 2005년 9월 4일 | 브라질리아, 브라질 | 칠레 | 3-0 | 5-0 | 2006년 FIFA 월드컵 지역 예선 |
19 | 4-0 | |||||
20 | 5-0 | |||||
21 | 2005년 10월 12일 | 벨렝, 브라질 | 베네수엘라 | 1-0 | 3-0 | |
22 | 2005년 11월 12일 | 아부다비, 아랍에미리트 | 아랍에미리트 | 8-0 | 친선 경기 | |
23 | 2006년 6월 4일 | 제네바, 스위스 | 뉴질랜드 | 4-0 | 친선 경기 | |
24 | 2006년 6월 18일 | 뮌헨, 독일 | 오스트레일리아 | 1-0 | 2-0 | 2006년 FIFA 월드컵 |
25 | 2006년 6월 27일 | 도르트문트, 독일 | 가나 | 2-0 | 3-0 | 2006년 FIFA 월드컵 |
26 | 2008년 10월 10일 | 산크리스토발, 베네수엘라 | 베네수엘라 | 3-0 | 4-0 | 2010년 FIFA 월드컵 지역 예선 (CONMEBOL) |
27 | 2008년 11월 19일 | 브라질리아, 브라질 | 포르투갈 | 6-2 | 친선 경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