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Early life and amateur career
호르스트 흐루베슈는 24세라는 비교적 늦은 나이에 프로 축구 경력을 시작한 대기만성형 선수로 알려져 있다.
1.1. Childhood and education
호르스트 흐루베슈는 1951년 4월 17일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주 함에서 태어났다. 그는 어린 시절부터 FC 페르쿰에서 축구를 배웠다. 동시에 핸드볼 선수로도 활동하며 다재다능한 운동 능력을 보였다. 프로 축구선수가 되기 전까지 그는 타일공으로 일하며 생계를 유지했다.
1.2. Early amateur career
프로 경력을 시작하기 전, 흐루베슈는 소규모 아마추어 클럽인 게르마니아 함, 하머 SpVg, SC 베스튀넨 등에서 활동하며 기량을 갈고닦았다. 이러한 아마추어 경력은 그가 24세에 로트바이스 에센과 계약하며 분데스리가에 데뷔하는 발판이 되었다.
2. Playing career
호르스트 흐루베슈는 주로 중앙 공격수로 활약하며 뛰어난 득점력과 특히 강력한 헤딩 능력으로 명성을 떨쳤다. 그는 함부르거 SV와 서독 국가대표팀에서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며 많은 성공을 거두었다.
2.1. Club career
흐루베슈는 1975년 로트바이스 에센에 합류하며 프로 경력을 시작했다. 그는 이곳에서 인상적인 활약을 펼쳤고, 클럽이 2. 분데스리가로 강등된 1977-78 시즌에는 42득점을 기록하며 리그 최고 득점자 중 한 명으로 부상했다.
1978년, 아인트라흐트 프랑크푸르트의 관심에도 불구하고 흐루베슈는 약 100.00 만 DEM의 이적료로 함부르거 SV로 이적했다. 함부르크에서 그는 분데스리가의 가장 생산적인 공격수 중 한 명으로 성장했으며, 곧 서독 국가대표팀에 발탁되었다. 흐루베슈는 같은 함부르크 선수이자 라이트백인 만프레트 칼츠와 강력한 공격 파트너십을 형성했다. 칼츠의 정확한 크로스는 흐루베슈의 헤딩 골이나 동료에게 득점 기회를 제공하는 어시스트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았다. 흐루베슈는 함부르크에서 1979년, 1982년, 1983년에 세 차례 서독 챔피언십(분데스리가) 우승을 차지했고, 1980년과 1982년에는 리그 준우승을 기록했다. 1979-80 시즌 유러피언컵에서는 9경기에서 7골을 기록하며 팀의 준우승에 기여했는데, 준결승전에서는 레알 마드리드를 상대로 5-1 대승을 거둘 때 2골을 터뜨리기도 했다. 1981-82 시즌에는 리그 29라운드 바이에른 뮌헨전에서 4-3으로 역전승을 거둘 때 막판 2골을 넣는 등 활약하며 팀의 두 번째 우승을 이끌었고, 자신도 리그 27득점으로 득점왕에 올랐다. 그는 1983년 유러피언컵 결승전에서 강력한 우승 후보였던 유벤투스를 상대로 1-0 승리를 거둘 때 팀의 주장을 맡아 우승컵을 들어 올리며 선수 경력의 정점을 찍었다. 함부르크에서 그는 총 159경기에서 96골을 기록했다. 유러피언컵 결승전 이후 그는 나이 문제를 이유로 클럽을 떠났다.
1983년 함부르크를 떠난 흐루베슈는 벨기에 클럽 스탕다르 리에주로 이적하여 2년간 활약했으며, 이 기간 동안 52경기에서 23골을 기록했다. 1985년 그는 분데스리가로 돌아와 보루시아 도르트문트에 합류하여 한 시즌 동안 17경기에 출전했다. 그러나 탈장 부상으로 인해 프로 선수로서의 경력을 마감하게 되었다. 그의 전체 프로 경력 동안 그는 분데스리가에서 224경기에 출전하여 136골을 득점했다.
2.2. International career
흐루베슈는 29세라는 비교적 늦은 나이인 1980년 4월 2일 오스트리아와의 경기에서 서독 국가대표팀에 데뷔했다. 당시 중앙 공격수인 클라우스 피셔가 다리 부상으로 결장하면서 대체자로 발탁되었다. 1980년 6월 이탈리아에서 열린 UEFA 유로 1980에서 그는 서독 대표팀의 일원으로 출전했고, 벨기에와의 결승전에서 두 골을 터뜨리며 조국의 2회 대회 만의 우승에 크게 기여했다. 특히 89분에 터진 그의 두 번째 골은 그의 전매특허인 총알 같은 헤딩슛이었다. 당시 이 경기는 흐루베슈의 5번째 국가대표팀 출전이었으며, 몇 주 전 발목 부상으로 노팅엄 포리스트에게 패했던 유러피언컵 결승전에서의 아쉬움을 씻어내는 영광스러운 순간이었다. 이 대회 후 그는 UEFA 유럽 챔피언십 대회 베스트 XI에 선정되기도 했다.
1982년 스페인에서 열린 1982년 FIFA 월드컵에서 흐루베슈는 히혼의 수치로 알려진 사건에 개입했다. 1차 리그 최종전 오스트리아전에서 1-0으로 승리하는 결승골을 헤딩으로 넣었으며, 이는 양 팀의 담합 논란을 야기했다. 이 사건에서 그는 사실상 '승부조작사'의 역할을 수행했다는 비판을 받는다. 2차 리그부터는 피셔에게 주전 자리를 내주었다. 그러나 프랑스와의 준결승전에서는 연장전까지 3-3으로 맞서는 치열한 접전 속에서 73분에 교체 투입되어 활약했다. 108분에는 피에르 리트바르스키의 왼쪽 측면 크로스를 헤딩으로 받아 클라우스 피셔의 동점골을 어시스트했다. 이후 승부차기에서 서독의 5번째 키커로 나서 침착하게 성공시키며 팀을 결승으로 이끌었다. 당시 아일랜드 TV 평론가 지미 마지는 승부차기 중 흐루베슈를 "괴물이라 불리는 사나이"라고 묘사하며 영어권에 그의 별명을 알렸다. 이 승부차기에서 실축했던 울리 슈틸리케는 흐루베슈의 골로 독일이 승리하자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1982년 7월 11일 이탈리아와의 결승전이 그의 마지막 국가대표팀 출전이었으며, 그는 총 21번의 국제 A매치에 출전하여 6골을 기록했다.
2.3. Playing style and characteristics
호르스트 흐루베슈는 탁월한 헤딩 능력으로 유명했으며, 이로 인해 "다스 코프발-운게호이어"(Das Kopfball-Ungeheuer헤딩 괴물독일어)라는 별명을 얻었다. 그의 압도적인 공중 장악력은 상대 수비수들에게 큰 위협이 되었고, 동료인 만프레트 칼츠의 정확한 크로스와의 시너지를 통해 수많은 득점을 만들어냈다. 이러한 특기 덕분에 그는 클럽과 국가대표팀에서 중요한 득점원으로 활약할 수 있었다.
3. Coaching career
호르스트 흐루베슈는 선수 은퇴 후 다양한 클럽과 독일 축구 협회(DFBDFB독일어) 소속의 유소년 국가대표팀, 그리고 독일 여자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을 역임하며 지도자로서의 경력을 쌓았다.
3.1. Club coaching
흐루베슈는 1986년 로트바이스 에센의 감독 대행으로 부임하며 지도자 경력을 시작했다. 그는 1987년 9월까지 팀을 이끌었으며, 47번의 리그 경기에서 16승을 기록했다. 이후 1988년부터 1989년까지 VfL 볼프스부르크를 지휘했으나, 2경기에서 1무 1패의 기록을 남겼다.
1992년 1월부터 6월까지는 오스트리아의 FC 스와로프스키 티롤을 임시로 맡아 14경기에서 9승 5패를 기록하며 성공적인 임시 감독 역할을 수행했다. 1993년에는 한자 로스토크의 지휘봉을 잡았으나, 21경기에서 7승 4무 10패를 기록하며 팀의 2부 리그 강등을 막지 못했다. 1994년 11월부터 1995년 3월까지 디나모 드레스덴 감독을 맡았지만, 5경기에서 승리 없이 2무 3패에 그쳤고, 팀의 파산이라는 어려운 상황을 경험했다. 1995년부터 1996년까지는 오스트리아의 FK 아우스트리아 빈 감독으로 41경기에서 16승 9무 16패를 기록했다. 1997년부터 1998년까지는 터키의 삼순스포르를 이끌며 38경기에서 17승 7무 14패를 기록했다. 1997년 UEFA 인터토토컵에서는 6조에서 함부르거 SV에 이어 2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2021년 5월 3일, 흐루베슈는 함부르거 SV의 감독 대행으로 다시 부임하여 2020-21 시즌 2. 분데스리가의 마지막 세 경기를 지휘했다. 그는 3경기에서 2승 1패를 기록했으나, 팀은 33라운드 VfL 오스나브뤼크전에서 2-3으로 패배하며 플레이오프 진출의 마지막 가능성을 놓쳤고, 최종적으로 4위로 시즌을 마쳐 1부 리그 승격에는 실패했다.
3.2. National youth teams coaching
1999년, 흐루베슈는 독일 축구 협회(DFBDFB독일어)의 코칭 스태프에 합류하며 유소년 국가대표팀 지도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그는 1999년 3월 22일부터 독일 B팀의 감독을 맡았고, 2000년 5월 8일에는 독일 성인 대표팀의 수석 코치로 임명되기도 했다.
2008년, 흐루베슈는 독일 U-19 국가대표팀을 이끌고 2008년 UEFA U-19 유럽 챔피언십에서 우승을 차지했다. 2009년 1월 9일, 그는 독일 U-21 국가대표팀의 임시 감독으로 임명되었고, 같은 해 6월 2009년 UEFA U-21 유럽 챔피언십 결승전에서 잉글랜드 U-21 대표팀을 4-0으로 완파하며 팀의 첫 우승을 이끌었다. 당시 팀에는 메수트 외질, 마츠 후멜스, 마누엘 노이어 등 현재 독일 축구의 주요 선수들이 포함되어 있었다.
2009년 11월 11일, 그는 다시 독일 U-19 국가대표팀 감독으로 부임했다. 2013년 6월 21일에는 라이너 아드리온 감독의 경질 이후 독일 U-21 국가대표팀의 신임 감독으로 재선임되었다. 그는 2015년 6월 2015년 UEFA U-21 유럽 챔피언십에서 팀을 1988년 서울 올림픽 축구 이후 첫 올림픽 본선 진출로 이끌었으나, 준결승전에서 U-21 포르투갈 대표팀에 0-5로 대패했다.
2016년 8월 브라질에서 열린 2016년 하계 올림픽에서는 독일 U-23 국가대표팀을 이끌었다. 당시 DFB와 분데스리가 각 클럽의 사정으로 인해 최정예 선수들을 차출하기 어려운 상황이었음에도 불구하고, 흐루베슈 감독은 팀을 결승전까지 진출시키는 데 성공했다. 비록 결승전에서 개최국인 브라질 올림픽 대표팀에 승부차기 끝에 패했지만, 은메달을 획득하며 큰 성과를 거두었다. 이 대회 후 흐루베슈는 U-21 대표팀 감독직에서 은퇴를 선언했다. 2017년 1월에는 한지 플릭의 후임으로 DFB의 스포츠 디렉터로 임명되었다.
3.3. Senior national teams coaching
2000년 5월 8일, 호르스트 흐루베슈는 독일 성인 축구 국가대표팀의 수석 코치로 임명되어 2002년 3월까지 역할을 수행했다.

2018년 3월 13일, 그는 독일 여자 축구 국가대표팀의 감독으로 부임했다. 그는 팀을 이끌고 2019년 FIFA 여자 월드컵 예선을 통과시켜 본선 진출을 확정시킨 후, 2018년 11월 30일에 감독직에서 물러났다.
2023년 10월 7일, 흐루베슈는 마르티나 포스-테클렌부르크 감독의 병가 및 이후 경질로 공석이 된 독일 여자 축구 국가대표팀의 임시 감독으로 다시 한번 부임했다. 그는 팀을 이끌고 2023-24 UEFA 여자 네이션스리그에서 3위를 차지했으며, 2024년 하계 올림픽 축구 여자에서는 동메달을 획득하는 성과를 거두었다.
4. Statistics
호르스트 흐루베슈의 선수 및 감독 경력 통계는 다음과 같다.
4.1. Club statistics
클럽 | 시즌 | 리그 | DFB-포칼 | 유럽 대항전 | 총합 | |||||||
---|---|---|---|---|---|---|---|---|---|---|---|---|
디비전 | 출전 | 득점 | 출전 | 득점 | 출전 | 득점 | 출전 | 득점 | ||||
로트바이스 에센 | 1975-76 | 분데스리가 | 22 | 18 | - | 22 | 18 | |||||
1976-77 | 분데스리가 | 26 | 20 | - | 26 | 20 | ||||||
1977-78 | 2. 분데스리가 | 35 | 42 | - | 35 | 42 | ||||||
총합 | 83 | 80 | - | 83 | 80 | |||||||
함부르거 SV | 1978-79 | 분데스리가 | 34 | 13 | 1 | 0 | - | 35 | 13 | |||
1979-80 | 분데스리가 | 34 | 21 | 3 | 3 | 9 | 7 | 46 | 31 | |||
1980-81 | 분데스리가 | 29 | 17 | 5 | 7 | 6 | 7 | 40 | 31 | |||
1981-82 | 분데스리가 | 32 | 27 | 6 | 5 | 11 | 5 | 49 | 37 | |||
1982-83 | 분데스리가 | 30 | 18 | 4 | 2 | 8 | 2 | 42 | 22 | |||
총합 | 159 | 96 | 19 | 17 | 34 | 21 | 212 | 134 | ||||
스탕다르 리에주 | 1983-84 | 벨기에 퍼스트 디비전 | 23 | 9 | 2 | 1 | 25 | 10 | ||||
1984-85 | 벨기에 퍼스트 디비전 | 20 | 8 | 0 | 0 | 20 | 8 | |||||
총합 | 43 | 17 | 2 | 1 | 45 | 18 | ||||||
보루시아 도르트문트 | 1985-86 | 분데스리가 | 17 | 2 | - | 17 | 2 | |||||
커리어 총합 | 302 | 195 | 19 | 17 | 36 | 22 | 357 | 234 |
4.2. International statistics
4.3. Managerial statistics
팀 | 시작 | 종료 | 기록 | ||||||||
---|---|---|---|---|---|---|---|---|---|---|---|
경기 | 승 | 무 | 패 | 득점 | 실점 | 골득실 | 승률 | 비고 | |||
로트바이스 에센 | 1986년 7월 1일 | 1987년 9월 14일 | 48 | 16 | 12 | 20 | 77 | 84 | -7 | 33.33 | |
VfL 볼프스부르크 | 1988년 7월 1일 | 1989년 6월 30일 | 2 | 0 | 1 | 1 | 2 | 7 | -5 | 0.00 | |
스와로프스키 티롤 | 1992년 1월 1일 | 1992년 6월 30일 | 14 | 9 | 0 | 5 | 21 | 15 | +6 | 64.29 | |
한자 로스토크 | 1993년 1월 4일 | 1993년 6월 26일 | 21 | 7 | 4 | 10 | 21 | 29 | -8 | 33.33 | |
디나모 드레스덴 | 1994년 11월 22일 | 1995년 3월 1일 | 5 | 0 | 2 | 3 | 3 | 7 | -4 | 0.00 | |
FK 아우스트리아 빈 | 1995년 7월 1일 | 1996년 6월 1일 | 41 | 16 | 9 | 16 | 52 | 40 | +12 | 39.02 | |
삼순스포르 | 1997년 6월 21일 | 1998년 6월 30일 | 38 | 17 | 7 | 14 | 49 | 45 | +4 | 44.74 | |
독일 여자 국가대표팀 (임시) | 2018년 3월 13일 | 2018년 11월 30일 | 8 | 7 | 1 | 0 | 29 | 5 | +24 | 87.50 | |
함부르거 SV | 2021년 5월 3일 | 2021년 6월 30일 | 3 | 2 | 0 | 1 | 11 | 5 | +6 | 66.67 | |
독일 여자 국가대표팀 (임시) | 2023년 10월 7일 | 현재 | 17 | 11 | 2 | 4 | 38 | 17 | +21 | 64.71 | |
총합 | 197 | 85 | 38 | 74 | 303 | 255 | +48 | 43.15 |
5. Honours
호르스트 흐루베슈는 선수와 감독으로서 다음과 같은 주요 타이틀과 개인적인 영예를 획득했다.
5.1. As a player
클럽
- 분데스리가: 1978-79, 1981-82, 1982-83 (함부르거 SV)
- 유러피언컵: 1982-83 (함부르거 SV)
- 준우승: 1979-80 (함부르거 SV)
- UEFA컵: 준우승: 1981-82 (함부르거 SV)
국가대표팀
- UEFA 유럽 챔피언십: 1980
- FIFA 월드컵: 준우승: 1982
개인
- 분데스리가 득점왕: 1981-82
- UEFA 유럽 챔피언십 대회 베스트 XI: 1980
- 옹즈 도르 (Onze d'Or): 1980, 1983
- 옹즈 드 브롱즈 (Onze de Bronze): 1980
- 스포르트 이데알 유럽 XI (Sport Ideal European XI): 1980
- 발터-벤제만 상 (Walther-Bensemann-Preis): 2018
5.2. As a coach
독일 U-19
- UEFA U-19 유럽 챔피언십: 2008
독일 U-21
- UEFA U-21 유럽 챔피언십: 2009
독일 U-23
- 하계 올림픽: 은메달: 2016
독일 여자 국가대표팀
- UEFA 여자 네이션스리그: 3위: 2023-24
- 하계 올림픽: 동메달: 2024
6. Legacy and reception
호르스트 흐루베슈는 선수와 감독으로서 독일 축구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으며, 특히 그의 압도적인 헤딩 능력과 유소년 팀에서의 성공적인 지도력은 높이 평가받고 있다.
6.1. Positive reception
흐루베슈는 "헤딩 괴물"이라는 별명에서 알 수 있듯이, 그의 뛰어난 공중 장악력과 득점력으로 함부르거 SV의 전성기를 이끌었으며, 서독 국가대표팀의 주요 대회 우승과 준우승에 결정적인 기여를 했다. 늦은 나이에 프로 경력을 시작했음에도 불구하고 세계적인 수준의 선수로 성공한 그의 이력은 많은 이들에게 영감을 주었다.
감독으로서도 그는 DFB 유소년 시스템에서 수많은 재능을 발굴하고 육성하며 독일 축구의 미래를 책임지는 데 크게 기여했다. 특히 2008년 UEFA U-19 유럽 챔피언십, 2009년 UEFA U-21 유럽 챔피언십 우승, 2016년 하계 올림픽 은메달 등 유소년 대표팀에서의 연이은 성공은 그의 리더십과 전술적 역량을 증명한다. 독일 여자 축구 국가대표팀에서도 위기 상황에서 팀을 맡아 올림픽 동메달을 획득하는 등 긍정적인 결과를 만들어내며 지도자로서의 명성을 이어갔다.
6.2. Criticism and controversies
호르스트 흐루베슈의 경력에는 일부 비판과 논란이 존재한다. 가장 대표적인 것은 1982년 FIFA 월드컵 조별리그 최종전인 히혼의 수치 사건이다. 이 경기에서 서독과 오스트리아는 1-0으로 서독이 승리할 경우 양 팀 모두 2차 라운드에 진출하는 결과가 나오자, 경기 초반 서독의 선제골 이후 사실상 경기를 중단하고 시간을 끄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 흐루베슈는 이 경기에서 선제골을 기록하며 '승부조작사' 역할을 했다는 비난을 받았다. 이는 당시 국제 축구계에 큰 논란을 불러일으켰으며, 축구의 스포츠 정신을 훼손했다는 비판을 면치 못했다.
감독으로서도 모든 임기가 성공적이었던 것은 아니다. 그는 한자 로스토크와 디나모 드레스덴 등 일부 클럽에서 팀의 강등이나 파산 등의 어려운 상황을 겪기도 했다. 또한, 2015년 UEFA U-21 유럽 챔피언십 준결승전에서 U-21 포르투갈 대표팀에 0-5로 대패한 것은 그의 지도 경력 중 오점으로 남았다. 2021년 함부르거 SV 임시 감독으로 부임했을 때도 팀의 1부 리그 승격에는 실패하여 아쉬움을 남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