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파브리치오 미콜리 (Fabrizio Miccoli파브리치오 미콜리이탈리아어, 1979년 6월 27일 ~ )는 이탈리아 출신의 전 축구 선수로, 주로 포워드로 활약했다. 그는 9시즌 동안 세리에 A 259경기에 출전하여 103골을 기록했으며, 페루자, 유벤투스, 피오렌티나, 팔레르모 등에서 뛰었다. 특히 포르투갈의 벤피카에서도 인상적인 임대 생활을 보냈다. 현역 생활 말년에는 고향팀인 레체에서 두 시즌을 보냈으며, 몰타의 비르키르카라에서 선수 생활을 마감했다.
국가대표팀에서는 2003년부터 2004년까지 10경기에 출전하여 2골을 기록했다. 작은 체구에도 불구하고 뛰어난 기술, 빠른 스피드, 강력한 슈팅력을 겸비하여 '살렌토의 로마리우', '주머니 폭격기'라는 별명을 얻었으며, 디에고 마라도나에 비견되기도 했다. 은퇴 후에는 유소년 축구팀 운영, 코치 활동 등 축구계에 남아 활동했지만, 마피아 연루 의혹과 갈취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아 수감되는 등 논란의 중심에 서기도 했다. 미콜리의 선수 경력은 그의 재능과 함께 복잡한 개인사 및 법적 문제로 얼룩져 있다.
2. 생애 초기 및 배경
2.1. 유소년 경력
파브리치오 미콜리는 1979년 6월 27일 이탈리아 풀리아주 레체현 나르도에서 태어났다. 12세의 나이에 AC 밀란 유소년 팀에 입단하며 축구 경력을 시작했지만, 향수병에 시달려 2년 만에 고향인 풀리아로 돌아왔다. 1994년부터 1996년까지 고향의 세리에 C1 팀인 카사라노 유소년 팀에서 뛰었다.
2.2. 초기 프로 경력
1996년 16세의 나이로 카사라노에서 프로 데뷔를 하여 즉시 팀의 주축 선수로 활약했다.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뛰어난 기량을 선보인 그는 1998년 세리에 B의 테르나나로 이적하며 한 단계 더 도약했다. 테르나나에서 4시즌 동안 주전으로 뛰며 총 32골을 기록했는데, 마지막 시즌에는 15골을 몰아치며 득점력을 과시했다. 테르나나에서의 활약은 미콜리를 이탈리아 언론에서 "새로운 알레산드로 델 피에로"라고 불리게 할 정도로 주목받게 했다.
3. 클럽 경력
파브리치오 미콜리는 이탈리아와 포르투갈, 몰타의 여러 클럽을 거치며 활약했다.
3.1. 초기 주요 클럽
테르나나에서의 인상적인 활약으로 유벤투스의 관심을 끌었고, 2002년 7월 유벤투스는 그를 영입한 후 세리에 A 승격팀인 페루자로 임대 보냈다. 2002-03 시즌, 미콜리는 페루자에서 첫 세리에 A 시즌을 보내며 뛰어난 기술과 멋진 골을 선보였다. 그는 작은 키, 빠른 발, 기술적인 능력 덕분에 '살렌토의 로마리우', '살렌토의 디에고 마라도나', '주머니 폭격기' (bomber tascabile) 등의 별명을 얻었다. 그의 활약으로 페루자는 UEFA 인터토토컵 출전권을 획득했고, 미콜리 자신도 이탈리아 국가대표팀에 처음으로 발탁되었다. 시즌 후 유벤투스는 그를 다시 불러들였다.
2003-04 시즌 유벤투스 소속으로 6경기의 UEFA 챔피언스리그에 출전하여 1골을 기록했으며, 세리에 A에서도 7골을 넣었다. 하지만 파비오 카펠로 감독과의 불화로 출전 기회를 많이 얻지 못했고, 다음 시즌 그의 등록 권한 절반이 피오렌티나에 700.00 만 EUR에 팔렸다. 피렌체로 이적한 미콜리는 다시 한번 좋은 기량을 보여주며 시즌 마지막 날 브레시아를 세리에 B로 강등시키는 골을 넣어 피오렌티나의 잔류를 도왔다. 시즌 종료 후 피오렌티나와 유벤투스 간에 그의 소유권을 결정하기 위한 블라인드 입찰이 진행되었고, 유벤투스가 670.00 만 EUR에 미콜리, 엔초 마레스카, 조르조 키엘리니 세 선수의 권리를 다시 획득했다. 이로 인해 미콜리는 토리노로 돌아와야 했지만, 곧바로 벤피카로 임대되었다.
3.2. 벤피카
2006년 7월, 아스톤 빌라의 초기 관심에도 불구하고 미콜리의 벤피카 임대가 확정되었다. 미콜리는 챔피언스리그 6경기에 출전하여 2골을 기록했으며, 특히 리버풀과의 경기에서 환상적인 가위차기 골을 터뜨려 벤피카를 8강으로 이끌며 팬들의 사랑을 받았다. 벤피카에서의 활약으로 로마와 인터 밀란 등 다른 클럽들의 관심을 받았지만, 미콜리는 리스본에서 벤피카와 한 시즌 더 함께하기로 결정했다.
35세에 미콜리는 벤피카에서의 경험이 자신의 경력 중 가장 아름다운 순간이었다고 회고했다. 그는 벤피카 팬들에게 가장 사랑받는 선수 중 한 명이었으며, 프리메이라 리가에서 39경기에 출전하여 14골을 기록했다.
3.3. 팔레르모

2007년 7월 5일, 팔레르모는 공식 웹사이트를 통해 미콜리와 3년 계약을 체결했음을 발표했으며, 이적료는 430.00 만 EUR이었다. 그는 이적 직후 팔레르모의 세 번째 UEFA컵 캠페인에 참가했다. 첫 시즌에는 여러 부상으로 꾸준히 출전하지 못했지만, 카타니아와의 시칠리아 더비에서 결승골을 포함해 총 8골을 기록했다.
2008-09 시즌, 안드레아 바르찰리와 크리스티안 차카르도의 이적 후 파비오 리베라니 다음으로 팔레르모의 부주장 자리를 맡게 된 미콜리는 새로운 감독 다비데 발라르디니 체제에서 놀라운 시즌을 보냈다. 그는 에딘손 카바니와 함께 막강한 공격 파트너십을 형성하며 각각 14골을 기록했다. 5월 30일에는 계약을 연장했다.
2009-10 시즌부터는 부상당한 파비오 리베라니를 대신하여 주장 역할을 맡았고, 리베라니가 팀에 복귀한 후에도 주장을 유지했다. 이 시즌 미콜리는 19골을 기록하며 세리에 A 득점 순위 공동 3위에 올랐다. 특히 2010년 3월 27일 볼로냐를 상대로 해트트릭을 달성했으며, 5월 9일 삼프도리아와의 홈 경기에서 페널티킥으로 자신의 41번째 팔레르모 세리에 A 골을 넣어 구단 역대 세리에 A 최다 득점자가 되었다. 이 경기에서 페널티킥을 얻어낸 파울로 인해 미콜리는 무릎에 부상을 입었고, 5월 13일 로마의 빌라 스튜어트 클리닉에서 수술을 받았다. 십자인대 손상은 성공적으로 복구되었고, 여름 동안 완전히 회복할 것으로 예상되었다.
미콜리의 2009-10 시즌 활약은 팔레르모가 세리에 A 5위로 시즌을 마치고 UEFA 챔피언스리그 진출에 아깝게 실패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이는 버밍엄 시티와 같은 프리미어리그 팀의 관심을 끌기도 했으며, 부상으로 다음 시즌 전반기를 거의 놓칠 것이라는 전망에도 불구하고 버밍엄 시티는 31세의 이 스트라이커에게 500.00 만 GBP를 제안했다.
2011-12 시즌에도 미콜리는 강한 출발을 보이며 인터 밀란과의 경기에서 2골을 넣어 4-3 승리에 기여했고, 5경기 후 팔레르모가 세리에 A 4위에 오르는 데 일조했다. 2011년 2월, 팔레르모는 레체를 4-2로 꺾었는데, 어린 시절부터 레체를 응원했던 미콜리는 하프타임 직전에 프리킥으로 득점했지만, 필드를 떠날 때 눈에 띄게 슬퍼하며 자진 교체되었다. 미콜리는 팔레르모와 함께 2011년 코파 이탈리아 결승에 진출했지만, 인터 밀란에 1-3으로 패했다.
팔레르모의 부진한 시즌에도 불구하고 미콜리는 좋은 활약을 이어갔고, 2012년 2월 1일 산 시로에서 열린 인터 밀란과의 4-4 무승부 경기에서 해트트릭을 기록하며 구단 역대 최다 득점자가 되었다. 2012년 5월에는 키에보 원정 경기에서 해트트릭을 기록하며 4-4 무승부를 만들었다. 9월 30일에는 키에보와의 원정 경기에서 다시 해트트릭을 기록하며 4-1 승리를 이끌었다.
11월 24일, 미콜리는 카타니아를 상대로 3-1로 이긴 경기에서 자신의 세리에 A 통산 100번째 골을 기록했다. 2013년 4월 28일, 2012-13 시즌 세리에 A 34라운드 인터 밀란과의 경기에서 1-0 승리를 거두며 팔레르모 소속으로 세리에 A 최다 출전 기록 (161경기)과 동률을 이루었다. 5월 5일 유벤투스와의 다음 경기에서 1-0으로 패했지만, 그는 구단 최다 출전 기록을 경신했다. 6월 말, 미콜리에게 새로운 계약이 제안되지 않을 것이며 2013년 6월 30일부로 계약이 만료되어 6년간의 시칠리아 생활을 마감하게 될 것이 확인되었다. 이 시즌 팔레르모는 세리에 B로 강등되었다.
3.4. 레체
팔레르모에서 방출된 후, 미콜리는 고향팀인 레체와 합의에 도달하여 2013년 7월 17일 공식 계약을 체결했다. 그는 어린 시절부터 응원했던 팀의 주장으로 즉시 임명되었다. 그는 레체에서 27경기에 출전하여 14골을 기록하며 팀이 세리에 B로 승격하는 데 아깝게 실패한 2013-14 시즌 레가 프로 프리마 디비시오네 플레이오프 결승에 진출했지만, 프로시노네에게 패했다. 다음 2014-15 시즌에는 팀이 레가 프로 챔피언십 C조에서 6위를 기록하며 다시 승격에 실패했다.
3.5. 비르키르카라 및 은퇴
2015년 6월 24일, 미콜리는 몰타 프리미어리그 팀인 비르키르카라와 1년 계약에 합의했다. 그는 7월 2일 2015-16 유로파리그 예선 1차전에서 울리세스를 상대로 후반 71분에 교체 출전하며 데뷔전을 치렀다. 일주일 후 바즈겐 사르그샨 공화국 스타디움에서 열린 2차전에서 선발 출전하여 상대 수비의 실수로 선제골을 기록하며 3-1 승리에 기여했다. 예선 2차전에서는 타칼리 국립 경기장에서 웨스트햄 유나이티드를 상대로 결승골을 넣으며 총합 동점을 만들었지만, 이후 교체되었고 비르키르카라는 승부차기에서 패했다.
몰타 프리미어리그 2015-16 시즌, 미콜리는 11경기에 출전하여 6골을 기록했다. 8월 21일 낙사르 라이온스를 상대로 4-0 승리에서 시즌 첫 골을 넣었고, 10월 4일 세인트 앤드루스를 상대로도 2골을 기록하며 4-0 승리에 기여했다. 2015년 12월 16일, 미콜리는 프로 축구 선수로서의 은퇴를 공식 발표했다.
4. 국가대표 경력
파브리치오 미콜리는 2003년부터 2004년까지 이탈리아 국가대표팀에서 10경기에 출전하여 2골을 기록했다. 그는 2003년 2월 12일 제노아에서 열린 포르투갈과의 친선 경기에서 조반니 트라파토니 감독 지휘 아래 데뷔했다. 이 경기에서 베르나르도 코라디의 결승골에 기여하며 이탈리아의 1-0 승리를 도왔다. 2004년 3월 30일 브라가에서 열린 포르투갈과의 또 다른 친선 경기에서는 코너킥에서 직접 골을 넣어 이탈리아의 2-1 승리를 이끌었다.
미콜리는 UEFA 유로 2004 예선 경기에도 출전했으며, 2004년 11월 17일 메시나에서 열린 핀란드와의 친선 경기에서 프리킥으로 유일한 골을 기록하며 1-0 승리를 안겼다. 이 경기가 그의 마지막 국가대표 출전이었다.
유벤투스를 떠나 여러 차례 임대 생활을 한 후, 미콜리는 마르첼로 리피 감독 체제에서 더 이상 대표팀에 소집되지 못했으며, 2006 FIFA 월드컵 우승팀 명단에서도 제외되었다. 로베르토 도나도니나 체사레 프란델리 감독 체제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이탈리아 언론의 많은 부분은 미콜리가 2006년 칼초폴리 스캔들("Calciopoli")에서 유벤투스에 불리한 증언을 한 것이 리피 감독이 그를 대표팀에서 제외한 이유라고 분석했다. 유벤투스는 리피 감독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는 클럽이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리피는 2005년에 미콜리에 대해 "나는 그를 계속 관찰하고 있다. 그는 큰 자질을 가진 선수이며 기술적으로 정말 뛰어나다. 그는 천재다. 미콜리는 그가 뛰는 모든 팀에 정말 중요한 존재가 될 수 있는 공격수다"라고 긍정적으로 언급했다.
2009-10 시즌 세리에 A에서의 맹활약으로 이탈리아 언론과 축구계 인사들 사이에서 미콜리가 2010 FIFA 월드컵 대표팀에 복귀할 수 있다는 주장이 여러 차례 제기되었다. 미콜리 자신도 국가대표팀에서 뛰고 싶다는 지속적인 관심을 표명했다. 그러나 미콜리는 월드컵을 위한 리피 감독의 명단에 선택되지 않았고, 2011년 3월 심각한 무릎 부상에서 복귀한 후 사실상 더 이상 국가대표 경력을 추구하지 않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5. 플레이 스타일
미콜리는 주로 창의적인 세컨드 스트라이커로 배치되었으며, 그의 경력 전반에 걸쳐 뛰어난 공격력과 창의적인 능력으로 잘 알려져 있었다. 특히 그의 기술, 속도, 양발을 이용한 강력하고 정확한 페널티 에어리어 내외에서의 마무리는 그의 주된 강점이었다. 미콜리는 다작의 득점원이었을 뿐만 아니라, 꾸준히 어시스트를 제공하는 선수이기도 했다.
그의 가속력, 균형감각, 민첩성, 그리고 기술적인 능력 덕분에 미콜리는 때때로 플레이메이커 역할의 공격형 미드필더로도 기용될 수 있었는데, 이 위치에서 그는 드리블 돌파를 통해 역습을 이끌고 팀원들에게 득점 기회를 창출하는 능력을 보여주었다. 그의 경력 내내 그는 윙어로도 활약했는데, 공을 다루는 기술과 볼 컨트롤 능력 덕분에 1대1 상황에서 상대 선수를 제쳐내는 능력을 발휘했으며, 왼쪽 측면에서 오른발로 슈팅을 감아차 골을 노리기도 했다. 미콜리는 또한 정확한 세트피스와 페널티킥 전담 키커였다. 그는 현역 시절 페널티킥을 찰 때 '파넨카' 제스처를 자주 사용했으며, 또한 '더미 페인트'를 사용하여 달려들다 속도를 늦추고 슈팅하는 척하며 최종적으로 볼을 차는 방식을 자주 사용했다.
어린 시절부터 유망한 선수로 평가받았던 미콜리는 작은 체구, 체격, 속도, 재능, 득점력, 기술적인 능력 덕분에 언론에서 '살렌토의 로마리우'로 불렸다. 또한 그의 우상이었던 디에고 마라도나를 지칭하는 '루 마라도나', '나르도의 피베' (마라도나의 별명 '황금 소년'과 그의 고향 나르도를 결합한 별명), '살렌토의 마라도나' 등의 별명을 얻었다. 그의 작은 체구와 골을 향한 집중력은 그에게 '주머니 폭격기' (bomber tascabile)라는 별명을 안겨주었으며, 테르나나 시절에는 그의 플레이 스타일이 유벤투스의 공격수 알레산드로 델 피에로와 비교되기도 했다. 그는 팔레르모의 주장으로서 리더십 자질 또한 칭찬받았다.
그의 재능에도 불구하고, 일부 언론에서는 그의 비정통적인 성격, 논란이 많았던 경기장 밖의 생활, 그리고 잦은 부상으로 인해 잠재력을 완전히 발휘하지 못했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이로 인해 그는 큰 클럽보다는 작은 클럽에서 더 많은 성공을 거두었다.
6. 선수 은퇴 후 경력
은퇴 후 미콜리는 2012년에 자신이 설립한 고향인 살렌토 지역의 유소년 축구팀에서 계속 활동했다.
2020년 12월 30일, 그는 프란체스코 모리에로 감독을 보좌하여 알바니아 클럽 디나모 티라나의 새로운 수석 코치로 발표되었다. 또한 구단의 유소년 부문 책임자로도 임명되었다. 그러나 2021년 3월 2일, 모리에로 감독과 미콜리 모두 단 두 리그 경기만을 지휘한 후 구단에서의 코치직을 사임했다.
2021년 7월에는 트리에스티나의 19세 이하 팀 총괄 코치직을 수락했으나, 9일 만에 사임했다. 그는 자신의 과거가 클럽에 영향을 미치기를 원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7. 개인 생활
미콜리는 17세 때 처음 만난 14세의 플라비아나와 결혼했다. 그들은 2003년 3월에 태어난 딸 수아미와 2008년 6월에 태어난 아들 디에고를 두었다. 아들의 이름은 그의 우상인 디에고 마라도나의 이름을 따서 지었다.
2010년 초, 미콜리는 어린 시절 영웅이었던 디에고 마라도나의 귀걸이를 구입하여 전국적인 뉴스에 보도되었다. 이 귀걸이는 마라도나가 이탈리아 방문 중 국가 세무 당국에 의해 압수된 것이었다 (마라도나는 이탈리아 정부에 수백만 유로의 세금을 체납하고 있었다). 이 귀걸이는 공개 경매에서 2.50 만 EUR에 팔렸다. 구매를 확인한 후, 미콜리는 마라도나를 만나면 귀걸이를 돌려줄 것이라고 밝혔다. 그의 우상 마라도나처럼, 미콜리는 오른 다리에 체 게바라의 문신을 가지고 있다.
미콜리는 어린 시절부터 레체의 열렬한 팬이었으며, 2013년 레체에 합류하기 전에도 미래에 그 클럽에서 뛰고 싶다는 의사를 여러 차례 표명한 바 있다. 그는 또한 프로 레슬링 단체인 WWE의 열렬한 팬으로 알려져 있다.
8. 논란과 법적 문제
8.1. 마피아 연루 의혹
2013년 6월 22일, 이탈리아 통신사 ANSA는 팔레르모 검찰청이 미콜리에 대해 갈취 혐의로 수사를 시작했다고 보도했다. 그는 시칠리아 마피아 보스 안토니노 라우리첼라의 아들인 마우로 라우리첼라에게 자신이 나이트클럽으로부터 받아야 할 돈을 대신 받아달라고 의뢰했다는 혐의를 받았다. 또한 신문 라 레푸블리카에 공개된 도청 전화 통화 녹취록에서 미콜리가 암살된 반마피아 판사 조반니 팔코네를 fango("더러운 것", "쓰레기")라고 언급한 사실이 밝혀졌다.
이후 2013-14 시즌 동안 FIGC 연방 검찰청은 그에게 1경기 출장 정지와 5.00 만 EUR의 벌금을 요구했지만, 2014년 2월 27일 연방 축구 징계 위원회는 그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그러나 콜레오네 시는 이 사건으로 인해 미콜리의 명예 시민권을 철회했다.
8.2. 법적 판결 및 수감
2015년 4월 20일, 미콜리는 이솔라 델레 펨미네에 있는 디스코텍 "일 파파라치"에서 물리치료사 친구로부터 1.20 만 EUR를 회수하기 위해 라우리첼라와 지속적으로 접촉한 사실 때문에 가중된 갈취 혐의로 다시 조사를 받았다.
2017년 10월 21일, 미콜리는 팔레르모 법원에서 마피아 수법으로 가중된 갈취 혐의에 대해 약식 기소를 통해 3년 6개월의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이 형량은 2020년 1월 항소심에서도 확정되었다. 2021년 11월 23일, 미콜리의 상고는 대법원에서 기각되었고, 형량이 최종 확정되었다. 다음 날, 그는 로비고 교도소에 자수하여 수감되었다. 그는 남은 형량을 사회봉사로 대체하는 것에 동의한 후 2022년 5월에 석방되었다.
9. 통계
9.1. 클럽 통계
클럽 | 시즌 | 리그 | 컵 | 대륙 대회 | 기타 | 총합 | ||||||
---|---|---|---|---|---|---|---|---|---|---|---|---|
디비전 | 출전 | 득점 | 출전 | 득점 | 출전 | 득점 | 출전 | 득점 | 출전 | 득점 | ||
카사라노 | 1996-97 | 세리에 D | 27 | 8 | 2 | 0 | - | - | 29 | 8 | ||
1997-98 | 세리에 D | 30 | 11 | - | - | - | 30 | 11 | ||||
총합 | 57 | 19 | 0 | 0 | 0 | 0 | 0 | 0 | 59 | 19 | ||
테르나나 | 1998-99 | 세리에 B | 30 | 1 | 2 | 0 | - | - | 32 | 1 | ||
1999-2000 | 세리에 B | 33 | 9 | 7 | 0 | - | - | 40 | 9 | |||
2000-01 | 세리에 B | 23 | 7 | 2 | 0 | - | - | 25 | 7 | |||
2001-02 | 세리에 B | 34 | 15 | 4 | 3 | - | - | 38 | 18 | |||
총합 | 120 | 32 | 15 | 3 | 0 | 0 | 0 | 0 | 135 | 35 | ||
페루자 (임대) | 2002-03 | 세리에 A | 34 | 9 | 6 | 5 | 2 | 2 | - | 42 | 16 | |
유벤투스 | 2003-04 | 세리에 A | 25 | 8 | 6 | 1 | 6 | 1 | 1 | 0 | 38 | 10 |
2004-05 | 세리에 A | 0 | 0 | 1 | 0 | 0 | 0 | - | 1 | 0 | ||
총합 | 25 | 8 | 7 | 1 | 6 | 1 | 0 | 0 | 39 | 10 | ||
피오렌티나 | 2004-05 | 세리에 A | 35 | 12 | 4 | 0 | - | - | 39 | 12 | ||
벤피카 (임대) | 2005-06 | 프리메이라 리가 | 17 | 4 | 0 | 0 | 6 | 2 | - | 23 | 6 | |
2006-07 | 프리메이라 리가 | 22 | 10 | 0 | 0 | 11 | 3 | - | 33 | 13 | ||
총합 | 39 | 14 | 0 | 0 | 17 | 5 | 0 | 0 | 56 | 19 | ||
팔레르모 | 2007-08 | 세리에 A | 22 | 8 | 0 | 0 | 0 | 0 | - | 22 | 8 | |
2008-09 | 세리에 A | 30 | 14 | 1 | 0 | - | - | 31 | 14 | |||
2009-10 | 세리에 A | 35 | 19 | 3 | 3 | - | - | 38 | 22 | |||
2010-11 | 세리에 A | 21 | 9 | 4 | 1 | 3 | 0 | - | 28 | 10 | ||
2011-12 | 세리에 A | 28 | 16 | 0 | 0 | 2 | 1 | - | 30 | 17 | ||
2012-13 | 세리에 A | 29 | 8 | 1 | 2 | 0 | 0 | - | 30 | 10 | ||
총합 | 165 | 74 | 9 | 6 | 5 | 1 | 0 | 0 | 179 | 81 | ||
레체 | 2013-14 | 레가 프로 프리마 디비시오네 | 27 | 14 | 4 | 0 | - | - | - | 31 | 14 | |
2014-15 | 레가 프로 프리마 디비시오네 | 17 | 3 | 2 | 2 | - | - | 19 | 5 | |||
총합 | 44 | 17 | 6 | 2 | 0 | 0 | 0 | 0 | 48 | 19 | ||
비르키르카라 | 2015-16 | 몰타 프리미어리그 | 11 | 6 | - | 4 | 2 | 1 | 1 | 16 | 9 | |
커리어 총합 | 530 | 191 | 49 | 17 | 34 | 11 | 2 | 1 | 615 | 220 |
9.2. 국가대표 통계
년도 | 출전 | 득점 |
---|---|---|
2003 | 5 | 0 |
2004 | 5 | 2 |
총합 | 10 | 2 |
# | 날짜 | 장소 | 상대 | 점수 | 결과 | 대회 |
---|---|---|---|---|---|---|
1. | 2004년 3월 31일 | 에스타디오 무니시팔 드 브라가, 브라가, 포르투갈 | 포르투갈 | 1-2 | 1-2 | 친선 경기 |
2. | 2004년 11월 17일 | 스타디오 산 필리포, 메시나, 이탈리아 | 핀란드 | 1-0 | 1-0 | 친선 경기 |
10. 수상 경력
10.1. 클럽
; 유벤투스
- 수페르코파 이탈리아나: 2003
- 코파 이탈리아 준우승: 2003-04
; 팔레르모
- 코파 이탈리아 준우승: 2010-11
; 비르키르카라
- 몰타 슈퍼컵 준우승: 2015
10.2. 개인
- 코파 이탈리아 득점왕: 2002-03 (5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