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타이슨 러셰인 게이(Tyson Lashane Gay영어)는 1982년 8월 9일 미국 켄터키주 렉싱턴에서 태어난 전직 육상 단거리 선수이다. 그는 100m와 200m 종목에서 주로 활약했으며, 개인 최고 기록 9.69초(미국 기록)와 19.58초를 보유하며 100m 역사상 우사인 볼트에 이어 두 번째로 빠른 선수 중 한 명으로 기록되었다. 게이는 뛰어난 경기력으로 수많은 국제 대회에서 메달을 획득했으나, 그의 경력은 도핑 논란으로 얼룩져 스포츠계에 큰 사회적, 윤리적 파장을 남겼다.
그는 2007년 세계 육상 선수권 대회에서 100m, 200m, 4x100m 계주에서 금메달을 휩쓸며 모리스 그린에 이어 같은 세계 선수권 대회에서 세 종목을 석권한 두 번째 선수가 되었다. 2008년 미국 올림픽 국가대표 선발전에서는 100m에서 9.77초의 미국 신기록을 세웠지만, 200m 종목에서 햄스트링 부상을 당해 2008년 베이징 올림픽 100m 결승 진출에 실패하고 4x100m 계주에서도 실격하며 메달을 획득하지 못했다. 2009년 베를린 세계 선수권 대회 100m 결승에서는 9.71초의 기록으로 은메달을 획득했으나, 이는 볼트의 세계 신기록에 이은 2위 기록이었다.
2012년 런던 올림픽에서는 100m 결승에서 4위에 머물렀고, 4x100m 계주에서 은메달을 획득하며 첫 올림픽 메달을 거머쥐는 듯했으나, 2013년 도핑 테스트 양성 반응으로 인해 이 메달은 박탈되었다. 이 사건은 그의 모든 2012년 7월 15일 이후 기록을 무효화시켰으며, 팀 동료들의 메달까지 박탈되는 결과를 초래하여 스포츠 윤리와 공정성에 대한 심각한 논의를 불러일으켰다. 은퇴 후에는 봅슬레이 선수로 전향을 시도하기도 했다.
2. 생애
타이슨 게이의 삶은 어린 시절부터 육상에 대한 열정과 가족의 영향으로 시작되었으며, 아마추어 경력을 통해 점차 세계적인 스프린터로 성장하는 기반을 다졌다.
2.1. 어린 시절과 성장 배경
타이슨 게이는 1982년 8월 9일 미국 켄터키주 렉싱턴에서 데이지 게이와 그렉 미첼의 외아들로 태어났다. 그의 키는 1.81 m이고 몸무게는 약 80 kg (80 kg (176 lb))이었다. 그의 가족은 운동 능력이 뛰어났는데, 할머니는 이스턴 켄터키 대학교에서 달리기 선수로 활동했고, 어머니 데이지도 젊은 시절 육상 경기에 참여했다. 게이의 누나 티파니 역시 뛰어난 단거리 선수였으며 고등학교 시절 성공적인 경력을 보냈다. 어머니의 격려 아래 게이와 티파니는 학교와 동네 언덕에서 훈련하며 끊임없이 경쟁했다. 게이는 누나의 빠른 반응 속도에 영감을 받아 자신의 기량을 향상시켰다고 회고했다. 어린 시절에는 지역 야구 클럽에서 활동하며 빠른 발을 이용한 도루로 두각을 나타냈고, 중학교 3학년이던 15세에 누나의 영향으로 육상을 시작했다.
2.2. 교육 및 아마추어 경력
고등학교 시절, 게이는 렉싱턴의 라파예트 고등학교 육상부에서 활동하며 200m 학교 기록을 경신했다. 전 100야드 대시 주 챔피언이었던 켄 노싱턴의 지도를 받으며 기술과 리듬을 개선하기 시작했다. 고학년이 되면서 100m에 집중하여 주 챔피언십에서 10.60초의 신기록으로 우승했다. 그러나 그의 어머니는 게이가 자신의 재능을 당연하게 여기고 학업에 충실하지 않았다고 언급했으며, 실제로 게이는 NCAA 디비전 I 스포츠 대학에 입학할 성적을 얻지 못했다.
하지만 2001년 6월 켄터키 고등학교 주 챔피언십에서 100m에서 10.46초의 개인 최고 기록이자 주 기록을 세우며 금메달을 획득했고, 200m에서는 21.23초로 은메달을 따내며 자신의 능력을 입증했다. 이 대회에서 게이는 트레이너 렌스 브라우먼을 만나 바턴 카운티 커뮤니티 칼리지에 진학하게 되었다. 이곳에서 그는 자메이카의 단거리 선수 베로니카 캠벨-브라운을 만나 훈련 파트너가 되었다.
캔자스주 그레이트 벤드에 위치한 바턴 카운티 커뮤니티 칼리지로 옮기면서 게이의 기량은 더욱 발전했다. 2002년에는 100m에서 10.08초, 200m에서 20.21초(모두 풍속 보조 기록)를 기록했으며, 법적 풍속 조건에서는 100m 10.27초, 200m 20.88초로 개인 최고 기록을 경신했다. 그는 NJCAA 전국 챔피언십 100m에서 우승하며 경쟁자들을 압도했다. 이듬해 NJCAA 대회에서는 100m에서 10.01초로 동메달, 200m에서 20.31초로 은메달을 획득했다. 2003년 남은 기간 동안 부상으로 어려움을 겪었으며, 그의 코치 브라우먼이 아칸소 대학교의 단거리 코치로 옮기면서 게이도 그를 따라 아칸소 대학교로 편입했다.
아칸소 대학교에서 사회학과 마케팅을 전공한 게이는 22세에 처음으로 NCAA 대회에 참가했다. 3월 NCAA 남자 실내 육상 선수권 대회 60m에서 6.63초로 4위, 200m에서 20.58초로 5위를 기록했다. 6월 NCAA 남자 실외 육상 선수권 대회에서는 아칸소 대학교 최초의 100m NCAA 챔피언이 되었으며, 10.06초의 학교 신기록을 세웠다. 그의 노력은 아칸소 육상팀이 NCAA 챔피언십에서 우승하는 데 기여했다.
2004년 첫 미국 올림픽 선발전 결과는 게이가 100m와 200m 종목에서 떠오르는 경쟁자임을 확인시켜주었다. 비록 두 종목 모두 결승에 진출하지 못했지만, 경쟁이 치열한 100m 준결승에 진출했고 200m 예선에서는 20.07초의 개인 최고 기록을 세웠다. 탈수증으로 인한 햄스트링 부상으로 200m 결승에는 참가하지 못했지만, 게이는 이를 놓친 기회가 아닌 미래를 위한 발판으로 여겼다. 연말 트랙 앤드 필드 뉴스 순위에서 그는 100m에서 8위, 200m에서 4위를 기록하며 잠재력을 보여주었다.
아마추어 선수로서 마지막 해인 2005년, 게이는 2005년 챔피언십 시리즈 60m에서 6.55초의 개인 최고 기록이자 학교 신기록을 세우며 좋은 시작을 보였다. 그는 대학팀이 또 다른 NCAA 실외 대회에서 우승하는 데 기여했으며, 200m 예선에서 19.93초의 새로운 개인 최고 기록을 세우고 결승에서 3위를 차지했다. 훈련 파트너이자 친구인 월리스 스피어몬이 19.91초로 1위를 차지했으며, 게이의 19.93초는 그해 세계에서 두 번째와 세 번째로 빠른 200m 기록이었다. 두 선수는 마이클 그랜트와 오마 브라운과 함께 4x100m 계주에 출전하여 38.49초의 아칸소 신기록으로 우승했다. NCAA 챔피언십을 마친 2005년 6월, 게이는 2005년 세계 육상 선수권 대회 헬싱키 200m 미국 대표팀에 합류하는 것을 목표로 프로 선수로 전향하기로 결정했다.
3. 선수 경력
타이슨 게이는 프로 데뷔 이후 세계 최고의 스프린터 중 한 명으로 자리매김했으나, 부상과 도핑 논란으로 인해 그의 경력은 영광과 좌절을 동시에 경험했다.
3.1. 프로 데뷔와 초기 성과
프로로 전향한 게이는 미국 육상 선수권 대회에 참가하여 200m에서 20.06초로 은메달을 획득했다. 그는 핀란드 헬싱키에서 열린 2005년 세계 육상 선수권 대회 200m에 출전하여 4위를 차지했는데, 이는 저스틴 개틀린, 월리스 스피어몬, 존 케이플 등 세 명의 동료 선수들에게 뒤처진 결과였다. 이로써 미국은 이 대회에서 한 국가가 상위 4위를 모두 차지하는 전례 없는 기록을 세웠다. 게이는 4x100m 계주팀의 일원이었으나, 마디 스케일스와 레너드 스콧 간의 불안정한 배턴 터치로 인해 실격 처리되었다. 같은 달 말, 게이는 잠시 100m에 집중하여 리에티 그랑프리에서 10.08초의 시즌 최고 기록을 세웠다.
그는 2005년 시즌을 긍정적으로 마무리하며 2005년 IAAF 월드 애슬레틱스 파이널 200m에서 금메달을 획득, 자신의 첫 주요 챔피언십 타이틀을 거머쥐었다. 그의 기록 19.96초는 그해 두 번째로 빠른 기록이자 그 시즌 모든 단거리 선수 중 네 번째로 빠른 기록이었다. 그는 경기 전 경쟁의 질과 헬싱키에서의 기억 때문에 긴장했다고 밝혔지만, 세계 선수권 대회에서 자신을 이겼던 세 명의 미국 단거리 선수들을 모두 이겼고, 그 시즌 200m에서 개틀린을 이긴 최초의 선수가 되었다.
그러나 그의 경쟁자들만이 미래의 어려움을 초래한 것은 아니었다. 게이의 코치 브라우먼은 바턴 칼리지와 아칸소 대학교 재직 시절 자격 없는 선수들에게 자금과 학점을 얻도록 도운 혐의로 기소되었다. 게이의 증언 후, 법원은 브라우먼의 유죄를 선고했고, 그 결과 아칸소 대학교의 두 NCAA 타이틀과 게이의 모든 대학 육상 기록은 무효화되었다. 선수들은 어떤 잘못도 기소되지 않았다. 브라우먼은 10개월 동안 수감되었지만, 주기적으로 게이에게 코칭 루틴과 기술을 업데이트하며 훈련을 계속했다.
3.2. 주요 대회 기록
3.2.1. 세계 육상 선수권 대회

2007년 시즌, 게이는 아사파 파월의 100m 세계 기록에 도전하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그는 시즌 초 두 차례의 풍속 보조 기록(9.79초, 9.76초)으로 자신의 발언을 뒷받침했다. 특히 9.76초는 허용 풍속을 0.2 m/s 초과한 기록이었음에도 파월의 9.77초 기록보다 빨랐다.
미국 육상 선수권 대회에서는 맞바람 속에서도 100m에서 9.84초로 자신의 최고 기록과 동률을 이루며 대회 신기록을 세웠다. 이는 모리스 그린의 9.82초에 이어 맞바람 기록 중 두 번째로 빠른 기록이었다. 이어서 200m 결승에서도 맞바람을 맞으며 19.62초의 새로운 개인 최고 기록을 세웠다. 이는 마이클 존슨이 1996년 애틀랜타 올림픽에서 세운 19.32초에 이어 역대 두 번째로 빠른 기록이었다. 게이는 자신의 성과에 만족했지만, 경쟁이 여전히 치열하다고 언급했다. 잠시 휴식기를 가진 후 일본 오사카에서 열린 2007년 세계 육상 선수권 대회를 준비했다. 그는 유럽 대회에서 200m 19.78초로 우승하고 셰필드와 런던에서 100m 우승을 차지하며 기량을 유지했다.

오사카 세계 선수권 대회 100m 결승은 그해 가장 기대되는 대결로 묘사되었다. 게이는 9.85초의 기록으로 우승하며 데릭 앳킨스와 3위의 파월을 제치고 새로운 100m 세계 챔피언이 되었다. 그는 파월에 대한 존경심을 표하며 자신을 "올해 가장 빠른 남자"이자 "세계 챔피언"으로 칭했다. 게이는 200m 종목에서도 금메달을 추가했다. 19.76초의 새로운 대회 신기록으로 우승하며 우사인 볼트와 월리스 스피어몬을 제쳤다. 볼트는 게이가 "세계 최고의 선수"이며 "현재로서는 무적"이라고 인정했다. 모리스 그린과 개틀린만이 이전에 세계 선수권 대회에서 단거리 2관왕을 달성했지만, 게이는 4x100m 계주에서 세 번째 금메달을 노렸다. 미국 팀은 파월과 볼트가 포함된 자메이카 팀과 치열한 경쟁을 펼쳤다. 자메이카는 국가 신기록을 세웠지만, 다비스 패튼, 스피어몬, 리로이 딕슨과 함께 37.78초의 세계 최고 기록을 세운 미국 팀을 이기지는 못했다. 게이는 이로써 1999년 세비야 세계 선수권 대회의 모리스 그린과 1983년, 1987년의 칼 루이스가 달성했던 3관왕의 위업을 재현했다.
2009년 8월 2009년 세계 육상 선수권 대회의 첫 종목은 100m였다. 예선에서 두 차례 10초 미만 기록을 세운 게이는 볼트, 파월과 함께 결승에 진출했다. 그는 결승에서 9.71초의 새로운 미국 신기록을 세웠는데, 이는 역사상 세 번째로 빠른 기록이었다. 하지만 볼트가 9.58초의 세계 신기록을 세우며 0.11초 차이로 게이의 100m 세계 타이틀을 가져갔고, 게이는 2위에 만족해야 했다.
2015년 2015년 세계 육상 선수권 대회 100m 결승에서는 볼트, 저스틴 개틀린, 트레이본 브로멜, 앙드레 드 그라스, 마이크 로저스에 이어 6위를 기록했다.
3.2.2. 올림픽 출전

2008년 브라우먼이 출소한 후, 게이는 브라우먼과 존 드러먼드와 함께 오프시즌 훈련을 하며 2008년 베이징 올림픽을 준비했다. 5월에 다시 경기에 복귀하여 2007년의 기세를 이어갔다. 킹스턴에서 200m 우승, 아디다스 트랙 클래식에서 두 단거리 종목 모두 금메달, 리복 그랑프리 100m에서 9.85초로 2위를 차지했다. 그러나 이 대회에서 볼트가 9.72초의 세계 신기록을 세우며 게이를 이겼다. 게이는 올림픽에서 볼트와 파월을 이기려면 9.70초 미만의 세계 신기록이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미국 반도핑 기구(USADA)는 BALCO 스캔들과 개틀린, 매리언 존스 등 유명 선수들의 도핑 사건으로 인해 손상된 단거리 육상에 대한 대중의 인식을 회복하기 위해 "프로젝트 빌리브"라는 정기적이고 광범위한 약물 검사 프로그램을 시행했다. USADA는 게이를 "깨끗한 선수"의 성공을 증명하는 데 활용하려 했다.
미국 올림픽 선발전 100m와 200m에서 모두 유력한 우승 후보였던 게이는 예선에서 강력한 기량을 선보였다. 첫 라운드에서 실수를 범해 탈락할 뻔했지만, 속도를 높이기로 결심하고 100m 준준결승에서 9.77초의 미국 신기록을 세우며 우승했다. 이 기록은 모리스 그린의 9년 된 기록을 깬 것이며, 볼트와 파월에 이어 역대 세 번째로 빠른 100m 기록이었다. 다음 날 열린 결승에서는 풍속 보조 기록 9.68초(4.1 m/s)로 1위를 차지했다. 이는 오바델레 톰프슨이 12년 전에 세운 9.69초 기록을 넘어선, 어떤 조건에서도 역대 가장 빠른 100m 기록이었다. 그러나 200m 종목에서는 예선에서 심각한 햄스트링 부상을 당해 올림픽 출전이 좌절되었다. 부상은 몇 주 동안 지속되었고, 그는 올림픽을 위해 회복하는 데 집중했다.
게이는 베이징에서 다시 경기에 복귀했지만, 부상으로 인해 100m 메달 가능성이 줄어들었고 볼트와 파월이 더 유력한 우승 후보로 점쳐졌다. 하지만 게이는 준결승에서 10.05초를 기록하며 5위에 그쳐 결승 진출에 실패했다. 그는 부상이 여전히 남아있지는 않다고 부인했지만, 햄스트링 문제로 훈련 일정이 틀어졌다고 주장했다. 더 큰 실망은 게이가 앵커로 뛰었던 미국 4x100m 계주팀이 결승 진출에 실패하면서 찾아왔다. 다비스 패튼과 게이가 예선에서 배턴을 주고받지 못했다. 게이는 개인적으로 배턴을 놓친 책임을 졌지만, 패튼은 이를 부인하며 자신의 책임이라고 말했다. 이전에 400m까지 출전하여 4개의 올림픽 금메달을 따겠다는 포부를 밝혔던 게이는 2008년 올림픽을 단 하나의 메달도 없이 마쳤다.
2012년 올림픽 선발전을 앞두고 게이는 아디다스 그랑프리 비공식 경기에서 맞바람 속에서도 10.00초를 기록하며 준비된 모습을 보였다. 그는 미국 올림픽 선발전 100m에서 저스틴 개틀린에 이어 9.86초로 2위를 차지하며 2012년 런던 올림픽 100m 출전 자격을 획득했다. 올림픽 전 2012년 다이아몬드 리그 파리 및 런던 대회 100m에서 우승하며 기량 회복을 입증했다.
2012년 런던 올림픽 남자 100m 결승은 역대 올림픽에서 가장 빠른 레이스였다. 7명의 선수가 10초 미만을 기록했다. 볼트가 9.63초로 우승했고, 요한 블레이크가 뒤를 이었다. 게이는 9.80초를 기록했으나, 동료 저스틴 개틀린에게 0.01초 차이로 동메달을 놓치며 4위에 그쳤다. 게이는 올림픽 시상대에 오르지 못한 것에 대해 눈물을 흘리며 "경기 흐름대로 달렸는데 아쉽게도 부족했다"고 말했다. 2012년 런던 올림픽 남자 4x100m 계주 결승에서 게이는 트렐 키먼스, 개틀린, 라이언 베일리와 함께 미국 신기록인 37.04초를 기록하며 첫 올림픽 메달을 획득했다. 이전 세계 기록과 동률을 이루었음에도 불구하고, 미국 팀은 자메이카 팀에 0.2초 뒤져 은메달을 차지했다. 그러나 그는 2013년 도핑 테스트 양성 반응으로 인해 이 메달을 박탈당했으며, 이는 나머지 계주 팀원들의 메달까지 박탈되는 결과를 초래했다.
2016년 2016년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에 출전한 게이는 미국 4x100m 계주팀의 세 번째 주자로 뛰었다. 팀은 저스틴 개틀린, 마이크 로저스, 트레이본 브로멜, 그리고 게이로 구성되었다. 팀은 자메이카와 일본에 이어 3위를 기록했다. 그러나 게이는 또다시 올림픽 메달을 박탈당했는데, 미국 팀이 저스틴 개틀린의 규칙 위반으로 실격 처리되었기 때문이다. 인용된 규칙은 170.7조로, 배턴 교환에 관한 것이었다. 로저스가 개틀린에게 배턴을 넘길 때, 배턴이 교환 구역에 도달하기 전에 개틀린의 손에 닿았다. 이로 인해 미국 4x100m 계주팀은 리우에서 실격되었고, 게이는 올림픽에서 메달을 따지 못한 역사상 가장 빠른 선수가 되었다. 결과적으로 앙드레 드 그라스가 앵커로 뛴 캐나다 팀이 동메달을 받았다.
3.2.3. 기타 국제 대회
2006년 육상 시즌은 게이가 처음으로 순위권에 오르며 100m에서 진정한 경쟁자로 부상한 해였다. 그는 2006년 미국 실외 챔피언이 되었는데, 원래는 강한 맞바람 속에서 10.07초로 2위를 차지했지만, 저스틴 개틀린의 1위 기록이 나중에 금지 약물 사용으로 인해 취소되었기 때문이다. 게이는 로잔에서 열린 IAAF 그랑프리 200m에서 이전 개인 최고 기록을 0.2초 이상 단축했다. 그러나 그의 19.70초 기록은 19.63초로 역대 두 번째 빠른 기록을 세운 신예 제이비어 카터를 이기기에는 부족했다. 100m에서도 기량 향상이 이어져 레팀노 육상 대회에서 우승하며 9.88초의 새로운 개인 최고 기록을 세웠다. 게이는 스톡홀름 그랑프리 100m에서 9.97초로 아사파 파월에 이어 2위를 차지하며 10초 미만 기록을 또다시 세웠고, 런던에서 열린 200m에서는 19.84초로 우승하며 마이클 존슨의 영국 올커머스 기록을 경신했다. 취리히 골든 리그 대회 100m에서는 개인 최고 기록을 9.84초로 경신했지만, 자신의 세계 기록과 동률인 9.77초를 기록한 파월을 이기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슈투트가르트에서 열린 2006년 IAAF 월드 애슬레틱스 파이널 200m에서의 게이의 활약은 매우 성공적인 한 해의 정점이었다. 그는 19.68초의 개인 최고 기록을 다시 경신하며 월드 애슬레틱스 파이널 챔피언이 되었고, 나미비아의 프랭키 프레더릭스와 함께 역대 200m 공동 3위가 되었다. 게이는 프레더릭스가 자신의 기록과 동률을 이루는 것을 현장에서 지켜본 것에 대해 기뻐했다. 그는 또한 100m에서 동메달을 획득하며 파월과 스콧에 이어 3위를 차지했다. 그러나 게이는 2006년 IAAF 월드컵 100m에서 9.88초로 금메달을 따내며 자신의 100m 실력을 증명했다. 시즌이 끝날 무렵, 개틀린이 출전 금지된 상황에서 게이는 트랙 앤드 필드 뉴스 2006년 미국 순위에서 100m 최고 기록 7개 중 6개(스콧 3위)와 200m 최고 기록 6개 중 4개(카터와 스피어몬에 이어)를 차지하며 압도적인 모습을 보였다. 또한 그는 그해 세계 기록 보유자 파월에 이어 세계에서 두 번째로 빠른 100m 선수였다.
2010년 실외 육상 시즌 초, 게이는 400m에서 44.89초의 새로운 개인 최고 기록을 세웠다. 이 기록은 이전 기록보다 거의 0.7초 단축된 것으로, 100m 10초 미만, 200m 20초 미만, 400m 45초 미만을 달성한 역사상 최초의 단거리 선수가 되었다.

5월 잉글랜드 맨체스터에서 열린 그레이트 시티 게임즈에서 게이는 토미 스미스가 44년 전에 세운 200m 직선 코스 세계 최고 기록을 깨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그는 19.41초로 스미스의 19.5초 기록을 경신했는데, 첫 100m는 9.88초, 첫 150m는 14.41초였다. 그는 경기 후 햄스트링 문제를 겪었지만, 7월 오리건주 유진에서 열린 프리폰테인 클래식에 출전했다. 200m 경기에서 19.76초를 기록했지만, 1년 만에 복귀한 월터 딕스에게 패했다. 일주일 후 영국 그랑프리에 참가하여 좋지 않은 날씨에도 불구하고 9.93초로 라이벌 아사파 파월에게 승리했다. 같은 달 말 모나코에서 열린 헤르쿨리스 대회에서는 19.72초의 대회 신기록을 세웠지만, 요한 블레이크가 결승선에서 자신을 거의 따라잡을 뻔한 것에 대해 실망감을 표했다.

스톡홀름 DN 갈란 대회 100m에서 게이는 그해 볼트와 처음으로 맞붙었다. 그는 올림픽 및 세계 챔피언인 볼트를 9.84초 대 9.97초로 압도적인 승리를 거두며 놀라움을 안겼다. 이는 볼트가 100m 결승에서 패배한 두 번째 사례였으며, 첫 패배는 2008년 7월 파월에게 당한 것이었다(역시 스톡홀름 올림픽 스타디움에서). 게이는 파월의 경기장 기록을 깼고, 이 업적으로 1캐럿 다이아몬드를 받았다. 게이는 볼트가 최고 컨디션이 아니었음을 인정하며 승리의 중요성을 과대평가하지 않았다. 볼트와 파월이 모두 부상으로 결장한 가운데, 게이는 다음 주 런던 그랑프리에서 악천후에도 불구하고 9.78초의 세계 최고 기록으로 무난히 우승했다. 메모리얼 반 담 대회에서 9.79초로 우승하며 100m 부문 첫 다이아몬드 레이스 트로피를 획득했다.
2011년 시즌은 맨체스터 그레이트 시티 게임즈 150m 직선 코스에서 14.51초를 기록하며 시작했는데, 이는 볼트의 2009년 기록에 약간 뒤처지는 것이었다. 100m 시즌 최고 기록인 9.79초는 6월 클레르몽, 플로리다에서 나왔으며, 그해 이 종목에서 세 번째로 빠른 기록이었다. 게이는 뉴욕 아디다스 그랑프리에서 스티브 멀링스에게 패했지만, 멀링스는 같은 달 말 도핑 테스트에 실패하여 영구 출전 금지 처분을 받았다. 고질적인 고관절 부상으로 인해 게이는 2011년 미국 육상 선수권 대회에서 기권했고, 7월에는 비구순 수술을 받았다. 이후 거의 1년이 지나서야 다시 경기에 출전할 수 있었다.
2014년 2014년 IAAF 다이아몬드 리그 결승 100m에서 10.01초로 6위를 기록했다.
2015년 2015년 IAAF 월드 릴레이 바하마 나소에서 4x100m 계주에서 37.38초의 미국 신기록이자 대회 신기록으로 우승했다.
3.3. 개인 최고 기록
종목 | 기록 (초) | 풍속 (m/s) | 대회 | 장소 | 날짜 | 비고 |
---|---|---|---|---|---|---|
100m | 9.69 | 2 m/s | 상하이 골든 그랑프리 | 중국 상하이 | 2009년 9월 20일 | 미국 기록, 대회 기록 |
9.68 | 4.1 m/s | 미국 올림픽 선발전 | 미국 오리건주 유진 | 2008년 6월 29일 | 풍속 보조 기록 | |
150m | 14.51 | 1.5 m/s | 그레이트 시티 게임즈 맨체스터 | 영국 맨체스터 | 2011년 5월 15일 | 미국 기록, 대회 기록 |
200m | 19.58 | 1.3 m/s | 아디다스 그랑프리 | 미국 뉴욕주 뉴욕 | 2009년 5월 30일 | |
200m 직선 코스 | 19.41 | -0.4 m/s | 그레이트 시티 게임즈 맨체스터 | 영국 맨체스터 | 2010년 5월 16일 | 세계 최고 기록 |
400m | 44.89 | n/a | 톰 존스 메모리얼 클래식 | 미국 플로리다주 게인즈빌 | 2010년 4월 17일 |
3.4. 부상 및 재기
타이슨 게이는 선수 경력 동안 여러 차례 부상에 시달렸지만, 뛰어난 회복력과 의지로 재기에 성공하며 세계 정상급 기량을 유지했다.
2008년 미국 올림픽 선발전 200m 예선에서 그는 심각한 햄스트링 부상을 당하며 경기 도중 넘어졌고, 결국 2008년 베이징 올림픽 200m 출전이 좌절되었다. 이 부상은 몇 주 동안 지속되었고, 그는 올림픽에 맞춰 회복하기 위해 다른 육상 대회 출전을 포기해야 했다. 베이징 올림픽 100m 준결승에서 5위에 그쳐 결승 진출에 실패한 후, 게이는 부상 때문이 아니라고 부인했지만 햄스트링 문제로 훈련 일정이 틀어졌다고 인정했다.
2011년 시즌에는 고질적인 고관절 부상에 시달렸다. 이로 인해 그는 2011년 미국 육상 선수권 대회에서 기권해야 했고, 7월에는 비구순 수술을 받았다. 이 수술로 인해 그는 거의 1년 동안 경기에 출전하지 못했다. 그러나 2012년 런던 올림픽 선발전을 앞두고 아디다스 그랑프리 비공식 경기에서 100m를 10초에 주파하며 부상에서 회복되었음을 알렸다. 그는 미국 올림픽 선발전 100m에서 2위를 차지하며 올림픽 출전 자격을 획득했고, 올림픽 전 2012년 다이아몬드 리그 파리 및 런던 대회 100m에서 우승하며 성공적으로 복귀했다.
4. 개인사
4.1. 가족 관계
타이슨 게이는 플로리다주 클레르몽에 거주하고 있다. 그는 쇼샤나 보이드와의 사이에서 딸 트리니티 게이를 두었으며, 딸을 돌보는 데 헌신적이었다. 게이의 어머니 데이지는 1995년 팀 로우와 재혼하여 게이의 가족에 이복 남매인 세스 로우와 헤일리 로우가 추가되었다.
2016년 10월 16일, 15세의 트리니티 게이는 켄터키주 렉싱턴의 한 레스토랑 주차장에서 발생한 두 차량 탑승자 간의 총격전 도중 유탄에 맞아 목에 총상을 입고 사망했다. 그녀는 사건 현장의 행인이었으며, 사건 직후 켄터키 대학교 의료 센터에서 사망 판정을 받았다. 이 비극적인 사건은 게이에게 큰 충격을 주었다.
4.2. 신앙과 지역 사회
게이는 어린 시절 세인트 존 선교 침례교회에 다녔으며, 고향에 돌아올 때마다 여전히 교회 예배에 참석한다. 그는 자신을 "종교적인 사람"이라고 칭하며, "하느님이 주신 능력"을 믿고 예상치 못한 일을 해낼 수 있다고 믿는다고 말했다. 그는 또한 자신이 기록을 깨거나 메달을 딸 수 있다고 굳게 믿는다고 밝혔다. 그의 겸손한 성격은 스포츠계에서도 높이 평가받았으며, 그는 경쟁자들에게도 존경심을 표하는 모습을 자주 보였다.
5. 도핑 및 논란
타이슨 게이의 경력은 2013년 도핑 위반 사건으로 인해 큰 오점을 남겼으며, 이는 그의 메달 박탈과 스포츠계의 윤리적 논란으로 이어졌다.
5.1. 약물 검사 위반 및 징계
2013년 7월 14일, 모스크바 세계 선수권 대회를 앞두고 게이가 2013년 5월에 실시된 약물 검사에서 금지 약물 양성 반응을 보였다는 사실이 발표되었다. 게이는 도핑 사실을 인정했지만, "기본적으로 누군가를 믿었는데 실망했다"며 특정되지 않은 제삼자에게 책임을 돌렸다. 이에 아디다스는 게이와의 후원 계약을 중단했다. 판결을 기다리는 동안 그는 2013년 세계 선수권 대회를 포함한 모든 대회에서 자발적으로 철수했다.
2014년 5월 2일, 미국 반도핑 기구(USADA)는 게이가 2014년 6월 23일까지 출전 징계 처분을 받으며, 2012년 7월 15일부터 출전 정지 기간까지의 모든 기록이 삭제될 것이라고 발표했다. 이는 2012년 런던 올림픽에서 획득한 은메달도 포함되었다. 원래 2년까지 가능했던 출전 정지 기간은 게이가 조사에 협력한 것이 인정되어 1년으로 단축되었다.
5.2. 메달 및 기록 박탈
도핑 규정 위반으로 인해 타이슨 게이는 2012년 7월 15일 이후의 모든 경기 결과가 무효화되었다. 이로 인해 가장 큰 타격을 입은 것은 2012년 런던 올림픽 4x100m 계주에서 획득했던 은메달이었다. 게이의 메달 박탈은 그와 함께 뛰었던 트렐 키먼스, 저스틴 개틀린, 라이언 베일리 등 팀 동료들의 메달까지 함께 박탈되는 결과를 초래했다. 이는 스포츠에서 개인의 도핑이 팀 전체에 미치는 심각한 영향을 보여주는 사례가 되었다.
또한, 2013년 미국 육상 선수권 대회 100m 및 200m 우승 기록도 무효화되었다. 2015년 2015년 세계 육상 선수권 대회 4x100m 계주와 2016년 2016년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 4x100m 계주에서도 실격 처리되어 메달을 획득하지 못했다. 특히 2016년 올림픽 계주에서는 팀 동료의 배턴 교환 구역 위반으로 실격되었는데, 이로 인해 게이는 올림픽에서 메달을 따지 못한 역사상 가장 빠른 선수라는 불명예를 안게 되었다.
6. 평가 및 영향
타이슨 게이는 뛰어난 재능과 성과로 스포츠계에서 높은 평가를 받았지만, 도핑 사건은 그의 유산에 지울 수 없는 그림자를 드리웠다.
6.1. 스포츠계의 평가
게이는 2007년 IAAF 세계 올해의 선수로 선정되었고, 2007년 트랙 앤드 필드 뉴스와 2008년, 2011년 ESPY 어워드에서 최고의 육상 선수로 선정되었다. 그는 또한 제시 오언스 상을 두 차례 수상했다. 그는 2007년 100m와 200m에서 그해 가장 빠른 단거리 선수로 연말 순위에서 1위를 차지했으며, 미국 남자 단거리 선수 최고에게 주어지는 해리슨 딜러드 상을 수상했다.
게이는 겸손한 성격으로 평가받았다. 그는 세계 기록 보유자 파월에 대한 존경심을 표하며, 자신이 세계 기록을 보유해야만 칼 루이스, 모리스 그린과 같은 위대한 단거리 선수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다고 언급했다. 그는 "가장 빠른 선수"보다는 "가장 강한 선수"가 되고 싶다고 말했으며, 실제로 2007년 오사카 세계 선수권 대회에서는 당시 100m 세계 기록 보유자였던 아사파 파월을 꺾었다.
그는 후반 추월형 선수로, 특히 50m를 넘어서면서부터의 추월 능력이 탁월했다. 2009년 베를린 세계 선수권 대회에서는 고관절 통증을 안고 진통제를 맞아가며 출전했음에도 불구하고 개인 최고 기록을 경신했다. 그는 경기 후 기자회견에서 "최상의 컨디션이었다면 지금도 세계 기록을 낼 자신이 있다"고 말했다. 또한 볼트에게 패배했음에도 불구하고 깔끔하게 패배를 인정하고 승자를 칭찬하는 태도로 인기를 얻었다.
6.2. 스포츠 윤리 및 공정성에 대한 영향
타이슨 게이의 도핑 사건은 스포츠의 공정성과 윤리에 심각한 영향을 미쳤다. BALCO 스캔들과 저스틴 개틀린, 매리언 존스 등 유명 선수들의 도핑으로 인해 이미 대중의 단거리 육상에 대한 인식이 크게 손상된 상황에서, 게이의 양성 반응은 스포츠의 신뢰도를 더욱 떨어뜨렸다.
게이는 한때 미국 반도핑 기구(USADA)의 "프로젝트 빌리브"에 참여하며 "깨끗한 선수"의 상징으로 여겨지기도 했다. 그러나 그의 도핑 인정은 이러한 노력을 무색하게 만들었으며, 스포츠계에 만연한 도핑 문제에 대한 회의론을 심화시켰다. 그의 사건은 단순히 개인의 일탈을 넘어, 시스템적인 도핑 가능성과 선수들이 압박감 속에서 금지 약물에 의존하게 되는 윤리적 딜레마를 다시 한번 상기시켰다. 메달 박탈은 그의 개인적인 영광뿐만 아니라, 팀 동료들의 노력까지도 무효화시켰다는 점에서 스포츠의 연대 책임과 공정성 원칙에 대한 중요한 논의를 촉발했다. 이는 깨끗한 선수들이 정당하게 경쟁하고 인정받을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강조하는 계기가 되었다.
6.3. 후대에 미친 영향
게이는 100m 9초대, 200m 19초대, 400m 45초대를 모두 달성한 역사상 최초의 선수로 기록되며, 단거리 육상에서 전례 없는 다재다능함을 보여주었다. 그의 이러한 기록은 후대 단거리 선수들에게 새로운 목표와 가능성을 제시했다.
그의 경기력과 정신력은 많은 선수들에게 영감을 주었다. 특히 그의 강력한 후반 추월 능력과 부상에도 불구하고 재기하려는 의지는 높이 평가받았다. 우사인 볼트가 큰 보폭으로 속도를 내는 반면, 게이는 높은 발 회전율로 속도를 내는 독특한 주법을 가지고 있었다. 2009년 100m 달리기에서 게이는 9.71초를 기록하며 46걸음으로 결승선을 통과했고(평균 1걸음당 0.2110초), 볼트는 9.58초를 기록하며 41걸음으로 결승선을 통과했다(평균 1걸음당 0.2336초). 이러한 스타일의 차이는 단거리 육상 기술에 대한 다양한 접근 방식을 보여주며 후대 선수들에게 연구 대상이 되었다.
그러나 그의 도핑 사건은 후대 선수들에게 경고의 메시지로 남았다. 아무리 뛰어난 선수라도 약물 사용은 경력과 명예를 한순간에 무너뜨릴 수 있다는 점을 분명히 보여주었다. 이는 스포츠의 순수성과 윤리적 가치를 지키는 것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젊은 선수들이 올바른 길을 선택하도록 교육하는 데 중요한 사례가 되었다.
7. 수상 경력
타이슨 게이는 선수 경력 동안 다음과 같은 주요 상과 타이틀을 획득했다.
- 세계 육상 올해의 선수 (남자):** 2007년
- 제시 오언스 상**: 2007년, 2013년
- 트랙 앤드 필드 뉴스 올해의 남자 선수:** 2007년
- USOC 올해의 스포츠맨**: 2007년
- ESPY 어워드 최고의 육상 선수:** 2008년, 2011년
7.1. 서킷 우승
7.2. 국내 타이틀
- 미국 육상 선수권 대회**
- 100m: 2006년, 2007년, 2008년, 2015년
- 200m: 2007년
- NCAA 디비전 I 챔피언십**
- 100m: 2004년
- 4x100m 계주: 2005년
- NJCAA 디비전 I 챔피언십**
- 100m: 2002년
- NJCAA 디비전 I 실내 챔피언십**
- 60m: 2002년
- 200m: 2002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