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초기 생애 및 배경
크리스 프롱거는 캐나다 온타리오주 드라이든에서 짐과 에일라 프롱거 사이에서 태어났다. 그의 어머니 에일라는 핀란드 포리 출신 이민자로, 프롱거는 핀란드계 캐나다인이다.
1.1. 유년 시절 및 교육
프롱거는 고향에서 어린 시절을 보내며 마이너 하키를 시작했다. 15세 때 온타리오 U-17 프로그램을 통해 발탁되어 1990-91 시즌에 MWJHL의 스트랫퍼드 컬리턴스 주니어 B 클럽과 계약했다. 스트랫퍼드에서 그의 수비 파트너 중 한 명은 훗날 NHL 선수가 되는 그레그 드 브리스였다.
1.2. 초기 경력 개발
1991년 5월, 프롱거는 OHL에서 뛰는 대신 형 숀 프롱거가 있는 볼링 그린 주립 대학교에서 NCAA 하키를 할 계획을 밝혔다. 그러나 피터버러 피츠는 OHL 우선 선발에서 6라운드에 프롱거를 지명했고, 그는 처음 의도와 달리 피터버러에 합류했다. 피터버러에서 두 시즌 동안 뛰어난 활약을 펼치며 압도적인 체격, 속도, 공격 기술(특히 파워 플레이에서), 그리고 신체 능력의 희귀한 조합으로 높은 평가를 받았다. 그 결과 1993년 NHL 엔트리 드래프트에서 알렉상드르 데이글에 이어 전체 2순위로 하트퍼드 웨일러스에 지명되었다. 당시 데이글은 "내가 1순위로 드래프트되어 기쁘다. 아무도 2순위를 기억하지 못하기 때문이다"라는 유명한 발언을 남겼다.
2. 선수 경력
크리스 프롱거는 1993년부터 2012년까지 NHL에서 활약하며 뛰어난 수비 능력과 리더십으로 명성을 쌓았다.
2.1. 하트퍼드 웨일러스
프롱거는 1993-94 NHL 시즌에 웨일러스 소속으로 NHL에 데뷔하여 81경기에 출전했고, NHL 올-루키 팀에 선정되었다. 그러나 그는 그 시즌 웨일러스의 여러 선수들과 함께 경기 외적인 문제에 연루되었다. 3월 말 버펄로의 한 술집에서 발생한 난투극에 연루되어 체포된 여섯 명의 선수 중 한 명이었으며, 이 난투극에는 웨일러스의 보조 코치도 포함되어 있었다. 또한 루키 시즌이 끝난 지 3일 만에 오하이오주에서 음주운전으로 체포되기도 했다. 이로 인해 일부에서는 프롱거를 성급하고 미숙하다고 평가했다. 당시 팀 동료였던 켈리 체이스는 그의 루키 시즌에 대해 "프롱거에게 재능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지만, 그는 무심한 태도를 보였다. 그는 방향성이 없었다. 많은 압박을 받았고 책임감을 감당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물론 그 팀은 승리하는 방법을 아는 선수들로 가득 찬 팀이 아니었다"고 말했다. 웨일러스는 그 시즌 동부 콘퍼런스에서 뒤에서 두 번째로 마쳤다. 하트퍼드에서 두 번째 시즌을 보낸 후, 1995년 7월 27일 그는 스타 포워드 브렌던 섀너핸과 트레이드되어 세인트루이스 블루스로 이적했다.
2.2. 세인트루이스 블루스
세인트루이스에서의 초기 몇 년 동안 프롱거는 마이크 키넌 감독 겸 단장 아래에서 뛰었다. 키넌은 프롱거에게 컨디션을 개선하고 실수를 줄일 것을 요구했다. 세인트루이스에서의 첫 시즌 후반, 웨인 그레츠키의 영입은 프롱거의 부담을 덜어주었고, 이는 키넌의 훈련과 결합되어 프롱거가 수비력 향상에 집중할 수 있게 했다.
세인트루이스에서의 세 번째 시즌이자 주장으로서의 첫 시즌에 프롱거는 다시 NHL 올스타전에 선정되었다. 그 해 1998년 스탠리컵 플레이오프에서 그는 디트로이트 레드윙스와의 경기 중 가슴에 퍽을 맞아 심장마비를 일으켰는데, 이는 심장진탕으로 인한 것이었다. 이 사건 이전, 그는 나가노에서 캐나다 올림픽 대표팀으로 뛰었다. 1999-2000 NHL 시즌에 프롱거는 개인 최고 기록인 62포인트와 +52의 플러스/마이너스 등급을 기록했다. 이러한 활약으로 그는 시즌 말 노리스 트로피와 하트 메모리얼 트로피를 수상했다. 프롱거는 하트 트로피 투표에서 아트 로스 트로피 수상자인 야로미르 야그르를 단 1점 차로 제치고 수상했는데, 이는 당시 이 상 역사상 가장 적은 득표 차이였다. (2년 후 자로메 이긴라와 호세 테오도르가 총 득표에서 동점을 이뤘고, 테오도르가 더 많은 1위 표를 얻어 수상했다.) 프롱거는 또한 NHL 퍼스트 올스타 팀에 선정되었다.
다음 시즌에 프롱거는 47포인트를 기록했지만, 부상 문제로 인해 51경기 출전에 그쳤다. 2002년 2월, 그는 솔트레이크시티에서 열린 2002년 동계 올림픽에서 캐나다 대표팀과 함께 금메달을 획득했다. 같은 해 NHL에서 그는 또 다른 훌륭한 시즌을 보냈고 다시 올스타전에 출전했다. 그러나 2002-03 시즌에 다시 부상 문제가 발생하여 단 5경기 출전에 그쳤고, 이 기간 동안 앨 맥기니스가 그를 대신하여 주장을 맡았다. 프롱거는 2003-04 NHL 시즌에 다시 좋은 시즌을 보내며 부활했다. 2004-05 NHL 록아웃과 NHL 샐러리캡 도입 이후, 블루스는 프롱거를 수비수 에릭 브루어, 제프 워이트카, 더그 린치와 트레이드하여 에드먼턴 오일러스로 보냈다. 블루스는 팀 급여를 줄여 팀 매각을 용이하게 해야 했지만, 오일러스는 프롱거와 5년 3125.00 만 USD 계약을 체결할 수 있었다.
2.3. 에드먼턴 오일러스
프롱거는 2006년 동계 올림픽에 캐나다 대표팀으로 출전하여 세 번째 연속 올림픽 출전을 기록했다. 같은 해 오일러스는 스탠리컵 파이널에 진출했다. 2006년 6월 5일, 2006년 스탠리컵 파이널 캐롤라이나 허리케인스와의 1차전에서 프롱거는 스탠리컵 파이널 경기에서 페널티 샷 골을 성공시킨 NHL 역사상 첫 번째 선수가 되었다. 오일러스는 7차전에서 패배했지만, 프롱거는 플레이오프 24경기에서 팀 최다인 21포인트(5골 16어시스트)를 기록했으며, 플레이오프 동안 팀 내 최고인 +10의 플러스/마이너스 등급을 기록했다.
2006년 6월 23일, 프롱거는 그의 에이전트 팻 모리스를 통해 에드먼턴 오일러스에 트레이드를 요청했다. 에드먼턴의 단장 케빈 로는 개인적인 이유 때문이라고 말했지만, 언론 매체들은 프롱거의 아내 로렌이 에드먼턴 생활에 불만을 가지고 있었다고 보도했다. 프롱거의 트레이드 요청을 둘러싼 논란으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그를 에드먼턴의 "공공의 적 1호"라고 묘사했다.
7월 3일, 프롱거는 포워드 조프리 루펄, 수비 유망주 라디슬라프 슈미드, 애너하임의 2007년 1라운드 드래프트 지명권(훗날 애리조나 카이오티스로 트레이드되어 닉 로스를 지명), 조건부 1라운드 드래프트 지명권(덕스가 향후 3시즌 내에 스탠리컵 파이널에 진출할 경우, 실제로 진출하여 조던 에벌리를 지명하는 데 사용됨), 그리고 애너하임의 2008년 2라운드 드래프트 지명권(훗날 뉴욕 아일런더스로 트레이드됨)과 교환되어 애너하임 덕스로 트레이드되었다.
2.4. 애너하임 덕스

2007년, 프롱거는 덕스의 스탠리컵 우승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 이는 프롱거의 두 번째 연속 스탠리컵 파이널 진출이었다. 콘퍼런스 파이널에서 프롱거는 디트로이트 레드윙스의 토마스 홀름스트룀에게 가한 체크로 인해 한 경기 출장 정지 징계를 받았다. 그는 이후 캐나다 언론의 사건 보도를 비판했다. 파이널 라운드에서는 오타와 세너터스의 딘 맥아몬드의 머리를 팔꿈치로 가격하여 3차전에서 한 경기 출장 정지 징계를 받았다. 스탠리컵 우승으로 그는 트리플 골드 클럽의 일원이 되었다.
2007년 9월 28일, 프롱거는 2007-08 NHL 시즌 초반에 결장했던 스콧 니더마이어를 대신하여 덕스의 주장으로 임명되었다. 니더마이어가 시즌 후반에 복귀했지만, 프롱거는 다음 시즌 시작까지 주장을 유지했으며, 이후 니더마이어가 다시 주장으로 임명되자 부주장 역할을 맡았다.
2008년 3월 12일, 프롱거는 밴쿠버 캐넉스의 라이언 케슬러와 관련된 사건에 연루되었다. 프롱거는 애너하임 블루라인 뒤에서 케슬러와 엉킨 후 불필요하게 케슬러의 다리를 밟았다. 케슬러는 부상당하지 않았고, 초기 검토에서는 NHL이 프롱거에게 징계를 내리지 않았다. 그러나 더 나은 각도를 제공하는 새로운 비디오 증거가 나오자 NHL은 사건을 다시 검토하고 프롱거에게 8경기 출장 정지 징계를 내렸다. 일부에서는 크리스 사이먼이 같은 시즌 초에 밟기 행위로 30경기 출장 정지 징계를 받았던 것에 비추어 볼 때, 프롱거가 NHL MVP이자 "경기의 홍보대사"로서 특혜를 받았다고 주장하며 이 징계가 불충분하다고 비판했다. 그는 4월 6일 애너하임의 마지막 정규 시즌 경기인 피닉스 카이오티스전에서 복귀했다.
2008-09 NHL 시즌은 프롱거에게 매우 성공적인 시즌이었다. 그는 2009년 2월 20일 개인 통산 1,000번째 경기에 출전했다. 덕스는 시즌 후반부에 반등하여 서부 콘퍼런스 8위로 플레이오프에 진출했다. 그들은 프레지던츠 트로피 수상팀인 산호세 샤크스를 6경기 만에 물리쳤지만, 디트로이트 레드윙스에게 7경기 만에 패배했다. 프롱거는 플레이오프 13경기에서 2골 8어시스트를 기록했다.
2.5. 필라델피아 플라이어스
2009년 6월 27일, 프롱거는 포워드 라이언 딩글과 함께 필라델피아 플라이어스로 트레이드되었다. 대가로 조프리 루펄(2006년 프롱거를 위해 에드먼턴으로 트레이드되었던 선수), 수비수 루카 스비사, 두 장의 1라운드 드래프트 지명권, 그리고 조건부 3라운드 드래프트 지명권이 포함되었다. 10일 후, 프롱거는 7년 연장 계약을 체결했다. 계약 체결 약 한 달 후, NHL은 프롱거의 계약이 NHL 단체 협약의 샐러리캡을 회피하는지 여부를 판단하기 위해 조사를 시작했다고 발표했다. 이 계약은 마지막 두 시즌 동안 연봉이 단 52.50 만 USD에 불과하고 프롱거가 42세가 되는 해에 만료될 예정이었기 때문에, 프롱거와 플라이어스가 계약 만료 전에 은퇴할 가능성에 초점을 맞춰 조사가 시작되었다. 그러나 프롱거의 계약은 그의 35번째 생일 이후에 발효되었으므로, 현행 단체 협약에 따라 그의 35세 이상 계약은 그가 장기 부상자 명단에 오르지 않는 한 플라이어스의 샐러리캡에서 삭제될 수 없으며, 설령 장기 부상자 명단에 오르더라도 오프시즌에는 팀의 샐러리캡으로 다시 계산된다.
2009년 12월 30일, 프롱거는 밴쿠버에서 열리는 2010년 동계 올림픽에 캐나다 대표팀으로 출전할 선수로 선정되었다. 그는 시드니 크로스비와 자로메 이긴라와 함께 팀의 부주장 중 한 명으로 활동했다. 캐나다 대표팀은 그 해 금메달을 획득했다. 2010년 2월 28일 캐나다 대표팀으로 25번째 올림픽 경기에 출전한 프롱거는 캐나다 올림픽 출전 경기 수 역대 1위가 되었다.
NHL 정규 시즌에서 플라이어스는 시즌 마지막 날 뉴욕 레인저스와의 슛아웃 승리로 2010년 스탠리컵 플레이오프 진출권을 획득했다. 플레이오프에서는 뉴저지 데블스를 꺾고, 보스턴 브루인스를 상대로 시리즈 3대0 열세에서 역사적인 역전승을 거두었으며, 몬트리올 캐나디언스를 5경기 만에 제압하는 등 놀라운 활약을 펼쳤다. 그 결과 플라이어스는 2010년 스탠리컵 파이널에서 시카고 블랙호크스와 맞붙게 되었다. 플라이어스는 시리즈 4대2로 패했지만, 프롱거는 강력한 플레이오프 활약을 펼쳤고, 그를 영입한 팀을 세 번 연속으로 파이널에 진출시키는 데 기여했다. 반대로 프롱거를 트레이드한 팀들은 다음 해 플레이오프에 진출하지 못했다.
플레이오프가 끝난 후, 프롱거는 관절경 무릎 수술을 받았다. 그는 2010-11 NHL 시즌의 첫 두 경기에 결장했다. 여러 다른 부상으로 인해 프롱거는 50경기 출전에 그쳤는데, 이는 2001-02 NHL 시즌 (77경기 결장) 이후 처음으로 상당한 기간 동안 결장한 것이었다. 2011년 9월 16일, 프롱거는 플라이어스 역사상 18번째 주장으로 임명되었다. (그는 2011년 NHL 엔트리 드래프트 직전에 로스앤젤레스 킹스로 트레이드된 마이크 리처즈를 대신했다.) 2011년 10월 24일, 토론토 메이플리프스의 센터 미하일 그라봅스키가 슛을 날리는 과정에서 스틱으로 프롱거의 오른쪽 눈을 가격했다. 그는 심각한 눈 부상과 뇌진탕으로 인해 다음 6경기에 결장했다. 여러 차례의 충돌로 인한 뇌진탕 후 증후군 (마지막은 마르틴 한잘과의 충돌)으로 인해 프롱거는 12월 중순에 시즌 13경기 출전에 그쳤고, 그의 선수 경력은 위태로워졌다. 그는 또한 오른쪽 눈에 계속해서 문제를 겪었다.
선수 경력 재개가 불확실해지자 프롱거는 2013년 1월 15일 팀 주장 자리에서 물러났고, 클로드 지루가 그 뒤를 이었다. 그러나 프롱거는 2016-17 시즌까지 계약이 남아 있었기 때문에 NHL에서 공식적으로 은퇴하지는 않았다. NHL 단체 협약에 따라, 그가 계약 시작 전에 35세 이상이었기 때문에 플라이어스는 매 시즌 490.00 만 USD의 샐러리캡 비용을 부담해야 했지만, 매 시즌 시작 시 프롱거를 장기 부상자 명단에 올려 구제를 받을 수 있었다. 만약 프롱거가 공식적으로 은퇴했다면, 플라이어스는 이 능력을 잃고 그의 계약 금액 전체가 샐러리캡에 포함되었을 것이며, 그는 계약에 따라 남은 금액(2013-14 시즌 시작 시 1215.00 만 USD)을 받지 못했을 것이다. 더 이상 경기에 뛰지 않았지만, 프롱거는 플라이어스 구단에 남아 유망주 스카우트 및 인터뷰를 도왔다.
2015년 6월 27일, 필라델피아 플라이어스는 프롱거의 선수 권리(및 니클라스 그로스만)를 애리조나 카이오티스로 트레이드하고, 대가로 샘 개그너와 조건부 드래프트 지명권을 받았다. 이 거래는 각 구단의 샐러리캡 문제 해결을 위한 것이었으며, 프롱거는 애리조나에서 단 한 경기도 뛰지 않았다. 3일 후인 2015년 6월 30일, 그는 하키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다. 명예의 전당은 최소 대기 기간에 대한 기준으로 출전 경기 수만을 고려하기 때문에, 프롱거는 비록 기술적으로는 현역 선수였지만, 헌액 당시 3시즌 동안 경기에 출전하지 않았기 때문에 헌액 자격을 얻을 수 있었다.
3. 국제 경력
크리스 프롱거는 캐나다 국가대표팀의 주축 선수로 활약하며 올림픽과 세계 선수권 대회에서 뛰어난 성과를 거두었다.
3.1. 올림픽
프롱거는 1998년 나가노 동계 올림픽, 2002년 솔트레이크시티 동계 올림픽, 2006년 토리노 동계 올림픽, 2010년 밴쿠버 동계 올림픽에 캐나다 대표팀으로 출전했다. 그는 2002년과 2010년 동계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획득하며 캐나다의 우승에 기여했다. 특히 2010년 2월 28일, 그는 25번째 올림픽 경기에 출전하여 캐나다 선수 중 역대 최다 올림픽 출전 기록을 세웠다.
3.2. 기타 국제 대회
프롱거는 1993년 세계 주니어 아이스하키 선수권 대회와 1997년 세계 아이스하키 선수권 대회에도 캐나다 대표팀으로 참가했다.
4. 수상 및 업적
크리스 프롱거는 선수 경력 동안 수많은 개인 및 팀 상을 수상하며 NHL 역사상 가장 위대한 수비수 중 한 명으로 인정받았다.
4.1. CHL/OHL 수상
수상 | 연도 |
---|---|
맥스 카민스키 트로피 | 1993 |
플러스/마이너스 상 | 1993 |
퍼스트 올스타 팀 | 1993 |
CHL 올해의 수비수 | 1993 |
4.2. NHL 수상
수상 | 연도 |
---|---|
스탠리컵 우승 | 2007 |
제임스 노리스 메모리얼 트로피 | 2000 |
하트 메모리얼 트로피 | 2000 |
NHL 플러스/마이너스 상 | 1998, 2000 |
NHL 올스타전 | 1999, 2000, 2001 (선발되었으나 부상), 2002, 2004, 2008 |
NHL 올-루키 팀 | 1994 |
NHL 퍼스트 올스타 팀 | 2000 |
세컨드 올스타 팀 | 1998, 2004, 2007 |
4.3. 국제 대회 수상
- 2002년 동계 올림픽 아이스하키 금메달
- 2010년 동계 올림픽 아이스하키 금메달
- 트리플 골드 클럽 회원
- IIHF 역대 캐나다 팀 (2020)
4.4. 명예의 전당 헌액
프롱거는 2015년 하키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다. 이는 그가 NHL에서 공식적으로 은퇴하지 않은 상태에서 이루어진 헌액으로, 명예의 전당의 헌액 기준(최소 대기 기간에 대한 기준으로 출전 경기 수만을 고려)에 따라 3시즌 동안 경기에 출전하지 않았으므로 자격을 갖추었다.
5. 경력 통계
크리스 프롱거의 정규 시즌, 플레이오프, 국제 대회, 올스타전 통계는 다음과 같다.
5.1. 정규 시즌 및 플레이오프
정규 시즌 | 플레이오프 | |||||||||||
---|---|---|---|---|---|---|---|---|---|---|---|---|
시즌 | 팀 | 리그 | 출전 | 골 | 어시스트 | 포인트 | 페널티 | 출전 | 골 | 어시스트 | 포인트 | 페널티 |
1990-91 | 스트랫퍼드 컬리턴스 | MWJHL | 48 | 15 | 37 | 52 | 132 | - | - | - | - | - |
1991-92 | 피터버러 피츠 | OHL | 63 | 17 | 45 | 62 | 90 | 10 | 1 | 8 | 9 | 28 |
1992-93 | 피터버러 피츠 | OHL | 61 | 15 | 62 | 77 | 108 | 21 | 15 | 25 | 40 | 51 |
1993-94 | 하트퍼드 웨일러스 | NHL | 81 | 5 | 25 | 30 | 113 | - | - | - | - | - |
1994-95 | 하트퍼드 웨일러스 | NHL | 43 | 5 | 9 | 14 | 54 | - | - | - | - | - |
1995-96 | 세인트루이스 블루스 | NHL | 78 | 7 | 18 | 25 | 110 | 13 | 1 | 5 | 6 | 16 |
1996-97 | 세인트루이스 블루스 | NHL | 79 | 11 | 24 | 35 | 143 | 6 | 1 | 1 | 2 | 22 |
1997-98 | 세인트루이스 블루스 | NHL | 81 | 9 | 27 | 36 | 180 | 10 | 1 | 9 | 10 | 26 |
1998-99 | 세인트루이스 블루스 | NHL | 67 | 13 | 33 | 46 | 113 | 13 | 1 | 4 | 5 | 28 |
1999-2000 | 세인트루이스 블루스 | NHL | 79 | 14 | 48 | 62 | 92 | 7 | 3 | 4 | 7 | 32 |
2000-01 | 세인트루이스 블루스 | NHL | 51 | 8 | 39 | 47 | 75 | 15 | 1 | 7 | 8 | 32 |
2001-02 | 세인트루이스 블루스 | NHL | 78 | 7 | 40 | 47 | 120 | 9 | 1 | 7 | 8 | 24 |
2002-03 | 세인트루이스 블루스 | NHL | 5 | 1 | 3 | 4 | 10 | 7 | 1 | 3 | 4 | 14 |
2003-04 | 세인트루이스 블루스 | NHL | 80 | 14 | 40 | 54 | 88 | 5 | 0 | 1 | 1 | 16 |
2005-06 | 에드먼턴 오일러스 | NHL | 80 | 12 | 44 | 56 | 74 | 24 | 5 | 16 | 21 | 26 |
2006-07 | 애너하임 덕스 | NHL | 66 | 13 | 46 | 59 | 69 | 19 | 3 | 12 | 15 | 26 |
2007-08 | 애너하임 덕스 | NHL | 72 | 12 | 31 | 43 | 128 | 6 | 2 | 3 | 5 | 12 |
2008-09 | 애너하임 덕스 | NHL | 82 | 11 | 37 | 48 | 88 | 13 | 2 | 8 | 10 | 12 |
2009-10 | 필라델피아 플라이어스 | NHL | 82 | 10 | 45 | 55 | 79 | 23 | 4 | 14 | 18 | 36 |
2010-11 | 필라델피아 플라이어스 | NHL | 50 | 4 | 21 | 25 | 44 | 3 | 0 | 1 | 1 | 4 |
2011-12 | 필라델피아 플라이어스 | NHL | 13 | 1 | 11 | 12 | 10 | - | - | - | - | - |
NHL 합계 | 1,167 | 157 | 541 | 698 | 1,590 | 173 | 26 | 95 | 121 | 326 |
5.2. 국제 대회
연도 | 팀 | 대회 | 결과 | 출전 | 골 | 어시스트 | 포인트 | 페널티 |
---|---|---|---|---|---|---|---|---|
1993 | 캐나다 | WJC | - | 7 | 1 | 3 | 4 | 6 |
1997 | 캐나다 | WC | - | 9 | 0 | 2 | 2 | 4 |
1998 | 캐나다 | OG | 4위 | 6 | 0 | 0 | 0 | 4 |
2002 | 캐나다 | OG | - | 6 | 0 | 1 | 1 | 2 |
2006 | 캐나다 | OG | 7위 | 6 | 1 | 2 | 3 | 16 |
2010 | 캐나다 | OG | - | 7 | 0 | 5 | 5 | 2 |
주니어 합계 | 7 | 1 | 3 | 4 | 6 | |||
성인 합계 | 34 | 1 | 10 | 11 | 36 |
5.3. 올스타전
연도 | 장소 | 골 | 어시스트 | 포인트 | |
---|---|---|---|---|---|
1999 | 탬파베이 | 0 | 2 | 2 | |
2000 | 토론토 | 0 | 0 | 0 | |
2001 | 콜로라도 | - | - | - | |
2002 | 로스앤젤레스 | 0 | 1 | 1 | |
2004 | 미네소타 | 0 | 0 | 0 | |
2008 | 애틀랜타 | 0 | 0 | 0 | |
올스타전 합계 | 0 | 3 | 3 |
6. 논란 및 징계
크리스 프롱거는 NHL 경력 동안 총 8번의 징계를 받았다.
- 1995년 10월 29일: 세인트루이스 소속 - 워싱턴 캐피털스의 팻 피크에게 슬래싱으로 4경기 출장 정지.
- 1998년 12월 17일: 세인트루이스 소속 - 피닉스 카이오티스의 제러미 로닉에게 하이 스틱으로 4경기 출장 정지.
- 2000년 10월 11일: 세인트루이스 소속 - 로스앤젤레스 킹스의 켈리 부흐베르거와의 싸움에 벤치 이탈로 1경기 출장 정지.
- 2002년 4월 3일: 세인트루이스 소속 - 댈러스 스타스의 브렌던 모로에게 크로스 체크로 2경기 출장 정지.
- 2004년 3월 14일: 세인트루이스 소속 - 캘거리 플레임스의 빌레 니에미넨을 발로 차서 1경기 출장 정지.
- 2007년 5월 15일: 애너하임 소속 - 디트로이트 레드윙스의 토마스 홀름스트룀에게 머리 가격으로 플레이오프 1경기 출장 정지.
- 2007년 6월 3일: 애너하임 소속 - 오타와 세너터스의 딘 맥아몬드에게 팔꿈치로 머리 가격으로 플레이오프 1경기 출장 정지.
- 2008년 3월 12일: 애너하임 소속 - 밴쿠버 캐넉스의 라이언 케슬러의 다리를 밟아 8경기 출장 정지. 이 사건은 초기에는 징계를 받지 않았으나, 새로운 비디오 증거가 제시된 후 징계가 내려졌다. 일부에서는 크리스 사이먼이 유사한 행위로 30경기 징계를 받은 것에 비해 프롱거의 징계가 불충분하다고 비판하며, NHL이 MVP 선수에게 특혜를 주었다는 논란이 있었다.
7. 선수 경력 이적
크리스 프롱거의 선수 경력 동안 있었던 주요 트레이드 및 계약 관련 정보는 다음과 같다.
- 1993년 6월 26일: 1993년 NHL 엔트리 드래프트에서 하트퍼드 웨일러스에 1라운드 전체 2순위로 지명.
- 1995년 7월 27일: 브렌던 섀너핸과 트레이드되어 세인트루이스 블루스로 이적.
- 2005년 8월 3일: 에릭 브루어, 제프 워이트카, 더그 린치와 트레이드되어 에드먼턴 오일러스로 이적.
- 2006년 7월 3일: 조프리 루펄, 라디슬라프 슈미드, 2007년 1라운드 지명권(라일리 내시), 2008년 2라운드 지명권(훗날 뉴욕 아일런더스로 트레이드되어 트래비스 해모닉 지명), 그리고 2008/2009/2010년 드래프트 중 하나에 대한 조건부 1라운드 지명권(조건 충족으로 2008년 조던 에벌리 지명)과 트레이드되어 애너하임 덕스로 이적.
- 2009년 6월 26일: 라이언 딩글과 함께 필라델피아 플라이어스로 트레이드. 대가로 조프리 루펄, 루카 스비사, 필라델피아의 2009년 1라운드 지명권(훗날 콜럼버스 블루재키츠로 트레이드되어 존 무어 지명), 2010년 1라운드 지명권(에머슨 이템 지명), 그리고 2010년 또는 2011년 드래프트에 대한 조건부 지명권(조건 불충족)을 받음.
- 2015년 6월 27일: 니클라스 그로스만과 함께 애리조나 카이오티스로 트레이드. 대가로 샘 개그너와 2016년 또는 2017년 드래프트에 대한 조건부 지명권을 받음. 이 거래는 샐러리캡 문제 해결을 위한 것이었으며, 프롱거는 애리조나에서 뛰지 않았다.
8. 은퇴 후 활동

크리스 프롱거는 2017년 NHL 계약이 만료된 후 공식적으로 선수 생활에서 은퇴했으며, 플로리다 팬서스와 계약하여 구단의 하키 운영 수석 고문이 되었다. 이에 앞서 2014년 10월에는 NHL과 계약하여 선수 안전 부서를 지원하기도 했다. 그는 선수 생활을 계속할 수 없게 된 후에도 플라이어스 구단에 남아 유망주 스카우트 및 인터뷰를 도왔다.
9. 개인 생활
프롱거는 1999년에 아내 로렌과 결혼하여 세 자녀를 두었다. 그는 애너하임 덕스에서 뛰는 동안 어바인에 거주했다. 현재는 미주리주 체스터필드에 거주하며 아내와 함께 고급 여행사를 운영하고 있다.
그는 비디오 게임 NHL 2000과 NHL 히츠 2003의 표지 모델로 등장했다. 그의 형은 전 NHL 선수인 숀 프롱거이다.
10. 영향력 및 평가
크리스 프롱거는 NHL 역사상 가장 위대한 수비수 중 한 명으로 널리 인정받고 있다. 2017년에는 NHL이 선정한 "가장 위대한 NHL 선수 100인"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그는 1999-2000 시즌에 하트 메모리얼 트로피를 수상하며 1971-72 NHL 시즌의 보비 오어 이후 처음으로 이 상을 수상한 수비수가 되었다. 2015년 하키 명예의 전당에 헌액된 것은 그의 뛰어난 경력과 아이스하키에 대한 기여를 공식적으로 인정받은 것이다. 그는 강력한 수비력, 뛰어난 공격 가담 능력, 그리고 경기 내외에서의 리더십으로 팀에 큰 영향력을 미쳤다. 또한 스탠리컵 우승과 두 차례의 올림픽 금메달 획득은 그의 성공적인 경력을 더욱 빛나게 한다.